48. 산타크루즈 해전 (1) - 일본함대의 남하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은 일본군의 제 3 차 공세와 발맞추어 항공모함 5척과 전함 4 척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함대를 과달카날 방면으로 파견했다 . 곤도 노부다케 중장의 제 2 함대와 나구모 주이치 중장의 제 3 함대로 이루어진 일본함대는 육군의 헨더슨 비행장 점령과 때를 맞추어 해병대의 교두보를 포격하여 육군의 전투를 지원하고 , 과달카날을 탈환하러 접근하는 미국함대를 격멸하는 임무를 맡았다 .
교두보를 포격하여 일본육군을 직접 지원하는 임무는 제 2 함대인 곤도 제독의 전진부대가 맡았다 . 전함 공고 , 하루나 및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진 구리타 다케오 중장의 제 3전대가 교두보를 포격할 임무를 맡았으나 실제로는 곤도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중순양함 4 척 ( 아타고 , 다카오 , 묘고 , 마야), 경순양함 1 척 ( 이스즈) 및 구축함 6척도 제 3전대와 함께 행동했다 .
이러한 곤도 제독의 수상함 부대는 항공모함 히요 , 준요와 구축함 4 척으로 이루어진 가쿠다 가쿠지 소장의 제 2 항공전대의 엄호를 받게 되어 있었다 . 그러나 , 10 월 22 일에 가쿠다 제독의 기함인 항공모함 히요가 엔진고장으로 구축함 2척과 함께 트럭으로 회항해 버리는 바람에 제 2 항공전대는 항공모함 준요와 구축함 2척으로 세력이 줄어들어 버렸다 . 준요는 제로기 24 대 , 99식 함상폭격기 21 대 , 97 식 함상공격기 10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
( 일본해군의 항공모함 준요 .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418452 )
일본함대의 주력은 나구모 주이치 제독의 제 3 함대인 공격부대였다 . 공격부대는 다시 나구모 제독이 직접 지휘하는 본대와 아베 히로아키 소장의 전위부대로 나뉘어져 있었다 . 본대는 정규항공모함 2척 ( 쇼가쿠 , 즈이가쿠), 경항공모함 1 척 ( 즈이호), 중순양함 1 척 ( 구마노), 구축함 8척으로 이루어져 미국의 항모기동부대를 격멸할 임무를 맡고 있었다 .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의 교훈에 따라 제 3 함대에게는 헨더슨 비행장 폭격을 비롯하여 과달카날에서의 육군전투를 지원해야 할 어떤 임무도 부과하지 않음으로써 나구모 제독이 모든 신경을 오로지 미국항모기동부대를 격멸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 과달카날의 육군을 지원하는 임무는 온전히 곤도 제독이 지휘하는 제 2 함대의 책임이었다 . 항공모함 쇼가쿠는 제로기 18 대 , 99식 함상폭격기 20 대 , 97 식 함상공격기 23 대를 보유하고 있었고 , 즈이가쿠는 제로기 27 대 , 99식 함상폭격기 27 대 , 97식 함상공격기 18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
경항모 즈이호는 제로기 18 대와 97 식 함상공격기 6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 아베 히로아키 제독의 전위부대는 전함 히에이와 기리시마로 이루어진 제 11 전대를 중심으로 중순양함 2척 ( 도네 , 치쿠마), 경순양함 2척 ( 스즈야 , 나가라),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나구모 제독은 전함 2척을 포함한 강력한 수상함부대인 전위부대를 공격부대의 전방 130km 지점에 내보내어 미국 항공모함들의 공격력을 일정부분 흡수하고 , 추격시 활용할 예정이었다 .
그리고 , 제 2 함대 및제 3 함대와는 별도로 제 8 함대 소속의 경순양함 1 척 ( 유라) 와 구축함 8 척이 제 2 함대보다 앞서서 아이언바텀사운드에 돌입하여 상황을 확인하고 필요하면 교두보를 포격할 예정이었다 . 이외에 급유함 4 척이 구축함 노와키의 호위 하에 급유를 담당했고 , 고마츠 데루히사 소장이 지휘하는 제 6 함대 소속의 잠수함 12 척이 2개의 부대로 나뉘어서 작전을 보조했다 .
따라서 일본함대의 세력은 잠수함을 제외하고도 정규항공모함 3 척 , 경항공모함 1 척 , 전함 4 척 , 중순양함 7척 , 경순양함 4 척 , 구축함 38척에 달했으며 , 함재기 숫자도 제로기 87 대 , 99식 함상폭격기 68 대 , 97식 함상공격기 57 대등 212 대에 달했다 . 또한 라바울에 기지를 둔 구사카 진이치 중장의 제 11 항공함대가 220 대 정도의 지상발진 항공기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해전이 라바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의 산타크루즈 제도 부근에서 벌어지는 바람에 실제 일본함대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했다 .
산타크루즈 제도(과달카날섬을 포함한 솔로몬군도 남동쪽에 위치함, 미국본토근처의 산타크루즈섬과 이름은 같으나 다른 섬임))
한편 일본함대의 움직임을 눈치챈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헐지 중장도 즉시 휘하의 항공모함들을 내보내어 일본군과 맞섰다 . 마침 10 월 24 일에 엔터프라이즈 중심의 제 16 기동부대가 때맞춰 남태평양에 도착하여 헐지 제독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 이때 제 16기동부대에 포함된 전함 사우스다코타는 통가 근처에서 암초에 부딪혀 진주만에서 수리를 받았는데 이게 사실 전화위복이 되었다 .
이때 사우스다코타는 구식 1.1 인치 대공포를 신형인 보포스 40mm 대공포로 교체했는데 이 신형 40mm 보포스 대공포는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게 된다 .
( BB- 57 사우스다코타 .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gold829921/60062401360 )
제 61 기동부대로 명명된 미국함대는 킨케이드 소장의 제 16기동부대와 머레이 소장의 제 17기동부대로 이루어져 있었다 . 제 16기동부대는 항공모함 1 척 ( 엔터프라이즈), 전함 1 척 (사우스다코타), 중순양함 1 척 ( 포틀랜드), 대공경순양함 1 척 ( 산후앙), 그리고 구축 함 8 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엔터프라이즈는 와일드캣 34 대 , 돈틀레스 36 대 , 아벤저 13 대로서 총 83 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
( CV- 6 엔터프라이즈 .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imkcs0425/60065277517 )
제 17기동부대는 항공모함 1 척 ( 호넷 ), 중순양함 2척 ( 노댐턴 , 펜사콜라), 대공경순양함 2척 ( 샌디에고 , 쥬노 ), 그리고 구축함 6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 호넷은 와일드캣 36 대 , 돈틀레스 36 대 , 아벤저 16 대등 총 88 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
( CV- 8 호넷 .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8151405 )
그리하여 제 61 기동부대는 전체적으로 항공모함 2척 , 전함 1 척 , 중순양함 3척 , 경순양함 3척 , 구축함 14 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 와일드캣 70 대 , 돈틀레스 72 대 , 아벤저 29 대등 총 171 대의 함재기를 보유하고 있어서 수상함 세력이나 함재기 세력에서 일본함대에 비하여 상당히 열세였다 . 오브리 피치 소장의 지상발진 항공기 부대인 제 63 임무부대는 헨더슨 비행장과 에스피리투산토 , 그리고 누메아에 상당한 숫자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 과달카날의 헨더슨 비행장을 기지로 하는 칵터스 항공대는 와일드캣 26 대 , P- 39 및 P-400 전투기 12 대 , 돈틀레스 20 대 , 아벤저 2 대 등 총 60 대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 12 대의 P- 39 전투기가 누메아에서 증원차 달려오는 중이었다 . 에스피리투산토에는 와일드캣 23 대 , B- 17 중폭격기 39 대 , 뉴질랜드 공군의 허드슨 쌍발폭격기 12 대 ,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32 대 , 킹피셔 수상기 5 대가 있었다 . 누메아에는 P- 39 전투기 46 대 , P- 38전투기 15 대 , B- 26 쌍발폭격기 16 대 , 뉴질랜드 공군의 허드슨 쌍발폭격기 13 대가 있었다 . 이들 중 헨더슨 비행장의 칵터스 항공대는 교두보를 포격하는 임무를 맡은 곤도 제독의 일본제 2 함대에게 대단히 위협적인 세력이었고 , 에스피리투산토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들은 제 61 기동부대를 위하여 정찰을 해 주었다 .
( PBY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8151405 )
미군이 남하 중인 일본함대를 최초로 발견한 것은 1942 년 10 월 23 일이었다 . 에스피리투산토를 출발한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에스피리투산토 북방 1,050km 해상에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나구모 제독의 공격부대를 발견했다 .
이날 밤에 어뢰를 장비한 몇 대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에스피리투산토를 떠나 일본함대를 공격하러 북상했는데 조지 엔로 중위가 조종하는 1 대만이 일본함대를 찾아 내는데 성공하여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 24 일에 제 16기동부대와 제 17기동부대가 에스피리투산토의 동북방 440km 지점에서 만나 제 61 기동부대를 형성한 후 산타크루즈 제도 북쪽으로 이동했다 .
헐지 제독은 항공모함들을 산타크루즈 제도의 북서쪽에 매복시켰다가 일본함대가 과달카날을 공격할 때 측면에서 기습을 가하여 미드웨이해전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 같은 날인 10 월 24 일에 야마모토 제독은 제 17 군 사령부에 짜증섞인 전문을 보냈다 . 제 17 군은 애당초 18 일에 총공격을 실시한다고 했다가 22 일로 다시 24 일 밤으로 공격일자를 늦추었다 .
그때마다 교두보 포격임무를 맡은 제 2 함대는 과달카날로 돌입하다가 급히 칵터스 항공대의 초계권 바깥으로 물러나는 일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 안 그래도 트럭에 비축된 함정연료가 모자라서 전전긍긍하던 야마모토 제독은 제 2 함대가 2 주씩이나 해상에서 하릴없이 떠돌면서 피같은 연료만 축내게 되자 드디어 인내심에 한계를 느낀 것이었다 .
그는 이 전문에서 만약 육군이 당장 헨더슨 비행장을 점령하지 못하면 연료문제로 일본함대를 철수시킬 수 밖에 없다고 퉁명하게 말했다 . 이에 제 17 군 사령부는 25 일 아침까지는 헨더슨 비행장을 반드시 점령할 것이라고 회답했다 . 실제로 당시 일본해군의 연료문제는 심각하여 급유함들이 트럭에 정박 중인 야마토와 무츠의 연료를 빼내어 작전 중인 함대에 보급할 정도였다 .
일본육군은 24 일 저녁에 공격을 개시하여 25 일 새벽에는 한때 헨더슨 비행장을 점령했다는 오보가 나왔으나 곧 상황은 다시 불투명해졌고 , 25 일 오후가 되자 헨더슨 비행장이 아직도 미군 수중에 있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 제 2 함대 사령관 곤도 제독과 트럭에 정박한 야마토 함상의 야마모토 제독은 일본육군의 작전 과정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으나 애당초 육군을 지원할 임무 자체가 없었던 공격부대의 나구모 제독은 과달카날의 전황과는 상관없이 오직 미국의 항공모함 기동부대를 찾는데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
그러나 , 이번에도 미군이 먼저 나구모 제독의 함대를 찾아내었다 . 25 일 정오 경에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제 61 기동부대로부터 서쪽으로 580km 떨어진 지점에서 항공모함 2 척을 포함한 일본함대를 발견하고 즉시 보고했다 . 그러나 날씨가 나쁘고 마침 일본함대가 스콜에 진입하는 바람에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은 일본함대와의 접촉을 잃어버렸다 .
한편 나구모 제독은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에 발각되자 북쪽으로 변침했다 . 엔터프라이즈에서는 25 일 오후 1 시 30 분에 12 대의 돈틀레스에게 정찰폭격임무를 주어 일본함대가 발견된 방향으로 파견했고 , 2시 20 분에는 29 대로 구성된 공격대를 일본함대가 목격된 장소로 파견했다 . 그러나 ,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들은 이미 북쪽으로 변침해 버린 일본함대를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야간착함을 해야만 했다 .
이 과정에서 1 대가 비행갑판에 추락하고 , 6 대가 부근 바다에 불시착하여 엔터프라이즈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7 대의 함재기를 잃었다 . 25 일 하루동안 에스피리투산토를 떠난 카탈리나 정찰비형정들과 B- 17 중폭격기들은 곤도 제독의 제 3 함대와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잇달아 발견했다 . 정찰 중에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발견한 B - 17 중폭격기 1 대가 전함 기리시마에 폭격을 가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
25 일 저녁이 되자 항공어뢰와 폭탄을 장비한 카탈리나 정찰비행정 5 대가 또다시 일본함대를 공격하기 위하여 에스피리투산토를 출격했다 . 이들중 폭탄을 장비한 1 대가 26 일 새벽 0 시 30 분에 구축함 이소카제를 , 또다른 1 대가 오전 2시 50 분에 항공모함 즈이가쿠를 폭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
( 산타크루즈해전 전투상황도)
10 월 25 일 저녁이 되자 야마모토 제독은 육군의 제 3 차 공세 결과에 상관없이 미국 항모기동부대와 결전을 벌이기로 결심하고 , 오후 9시 18 분과 10시 40 분에 2 차례에 걸쳐 나구모 제독에게 전문을 보내어 과달카날의 전황과 상관없이 다음날인 26 일에 미국 항모기동부대를 찾아서 전투를 벌이라고 명령했다 .
이 명령에 따라 항공모함 준요와 구축함 2척으로 이루어진 가쿠다 제독의 제 2 항공전대도 나구모 제독의 공격부대를 도와서 미국 항공모함 기동부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었다 .
그 동안 제 61 기동부대는 일본함대를 사정거리에 넣기 위하여 20 노트의 속력으로 북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26 일 새벽 0시 11 분에 제 61 기동부대로부터 북서쪽으로 480km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의 항모기동부대를 발견했다는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의 보고가 있었다 .
오전 3시 10 분에는 즈이가쿠를 폭격했던 카탈리나 정찰비행정이 제 61 기동부대에서 북서쪽으로 320km 떨어진 해상에서 항공모함을 포함한 일본함대를 발견했다는 결정적인 보고를 타전했다 .
그러나 , 불안정한 통신망 덕분에 이 보고가 킨케이드 제독에게 도달한 것은 2시간이 지난 후였다 . 일본군 항모기동부대를 발견했다는 보고는 에스피리투산토를 거쳐 누메아의 헐지 제독에게 먼저 도달했다 . 자신의 집무실에서 이 전보를 받아 본 헐지 제독은 전보 용지를 팔랑거리면서 그의 작전용 지도를 바라보았다 . 일본군 항모기동부대는 제 61 기동부대의 공격권 내에 있었다 . 그는 즉시 킨케이드 제독에게 단 3 마디로 이루어진 명령을 내렸다 .
" 공격하라- 반복한다- 공격하라 !" (" Attack- Repeat-Attack!")
이 짤막한 명령은 26 일 오전 5시 12 분에 일본함대에 대한 위치보고와 함께 엔터프라이즈 함상의 킨케이드 제독에게 도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