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산타크루즈 해전 (2) - 즈이호 피격
1942 년 10 월 26 일 오전 5시 , 제 61 기동부대를 지휘하던 킨케이드 제독은 일본함대의 접촉 보고 사실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엔터프라이즈의 돈틀레스 16 대에 서쪽에서 북쪽방면에 이르는 90 도 범위에 대한 수색폭격임무를 주어 발진시켰다.
고참 조종사와 신참 조종사가 모는 돈틀레스 2 대가 정찰팀을 이루었다. 각 돈틀레스들은 225kg 폭탄 1 발씩을 장착하고 있었다. 비비안 웰치 대위와 브루스 맥그로 중위의 정찰팀은 엔터프라이즈로부터 140km 떨어진 지점에서 역시 정찰에 나선 일본군의 97식 함상공격기 1 대를 발견했으나 일본함대를 찾기 위하여 그냥 지나쳤다.
웰치 대위의 정찰팀은 오전 6시 17 분에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를 만나 주의깊게 관찰한 후 6시 30 분에 보고하고 , 일본군의 항공모함을 찾아 나섰으나 발견하는데 실패했다.
( SBD 돈틀레스 급강하폭격기. Douglas SBD Dauntless
U.S. Navy SBD releasing a bomb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rectek2/10031674207 )
일본군의 항공모함을 발견한 것은 제임스 리 소령과 윌리엄 존슨 소위의 정찰팀이었다. 리 소령의 정찰팀은 26 일 오전 6시 50 분에 미국함대로부터 서북쪽으로 320km 떨어진 해상에서 나구모 제독의 공격부대를 발견하고 즉시 보고했다.
리 소령과 존슨 소위는 일본항공모함을 폭격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8 대의 제로기가 급상승하면서 공격해 오는 바람에 폭격을 포기하고 도망칠 수 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리 소령의 돈틀레스는 1 대 , 존슨 소위의 돈틀레스는 2 대의 제로기를 격추했다.
스톡턴 스트롱 대위와 찰스 어빈 소위의 정찰팀은 리 정찰팀의 보고를 듣고 일본함대 상공에 나타났다. 오전 7시 40 분에 스트롱 대위와 어빈 소위는 일본군의 경항공모함 즈이호에게 급강하 폭격을 감행하여 후방 비행갑판에 225kg 짜리 폭탄 2 발을 명중시켰다.
이 폭탄들은 즈이호의 후방비행갑판에 직경 15m 짜리 구멍을 뚫어놓았고 , 후방 대공포들을 파괴하면서 화재를 일으켰다. 즈이호는 즉시 연기에 휩싸이며 항공작전 능력을 상실했으나 함재기들을 모두 발진시킨 이후라 추가 유폭은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즈이호는 화재를 진압한 후 트럭으로 회항했다. 전투공중초계를 담당하던 제로기들이 달려들었으나 스트롱 대위의 정찰팀은 2 대의 제로기를 격추하면서 탈출에 성공했다. 나머지 정찰팀들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지만 돌아오던 중에 정찰 중이던 97식 함상공격기 1 대를 만나 격추했다.
( 일본해군의 경항공모함 즈이호. 航空母艦 瑞鳳 Japanese Aircraft Carrier Zuiho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35422227)
수색폭격을 나섰던 16 대의 돈틀레스는 적의 위치를 확인하고 , 적의 경항공모함 즈이호에 폭탄 2 발을 명중시키고 , 5 대의 제로기와 97식 함상공격기 1 대를 격추한 후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이로써 서전은 제 61 기동부대가 기분좋게 이겼으나 본격적인 전투는 이제부터였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함대가 유리했다.
( 산타크루즈 해전 상황도 )
나구모 제독은 미군의 돈틀레스가 자신의 함대를 발견하기 20 분 전인 오전 6시 30 분에 자신의 정찰기로부터 호넷의 위치를 보고받고 즉시 공격명령을 내렸다.
제로기 21 대 , 99식 함상폭격기 21 대 , 97식 함상공격기 20 대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제 1 차 공격대가 무라다 소좌의 지휘 하에 오전 7시 10 분부터 쇼가쿠의 비행갑판을 떠나기 시작하여 7시 25분까지 발진을 마쳤다. 오전 7시 40 분에 2 대의 돈틀레스가 즈이호를 폭격하여 전열에서 탈락시켰으나 , 공격대의 발진은 계속되어 8시 10 분에는 제로기 5 대와 99 식 함상폭격기 19 대로 이루어진 제 2 차 공격대가 즈이가쿠를 떠났고 , 8 시 45분에는 어뢰 장착이 늦어졌던 즈이가쿠의 97식 함상공격기 16 대가 추가로 출격했다. 이로써 공격에 나선 일본기는 총 102 대에 달했다.
제 61 기동부대에서도 공격대가 출격하기 시작했다. 일본함대보다 20 분 늦은 오전 7시 30 분에 돈틀레스 15 대 , 아벤저 6 대 , 와일드캣 8 대로 이루어진 제 1 차 공격대가 윌리엄 위드헬름 소령의 지휘 하에 호넷의 비행갑판을 떠났다.
8시에는 돈틀레스 3 대 , 아벤저 8 대 , 와일드캣 8 대로 이루어진 제 2 차 공격대가 게인즈 소령의 지휘 하에 엔터프라이즈를 출격했고 , 8시 15 분에는 돈틀레스 9 대 , 아벤저 9 대 , 와일드캣 7 대로 이루어진 로디 중령의 제 3 차 공격대가 호넷을 떠났다. 미군이 발진시킨 공격대는 총 73 대였다.
제 61 기동부대를 떠난 미군공격대는 제 16 기동부대의 약 100km 전방에서 일본공격대와 만났다. 위드헬름 소령의 제 1 차 공격대는 일본기들과 그냥 스쳐 지나갔지만 엔터프라이즈를 떠난 제 2 차 공격대는 12 대의 제로기들로부터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태양을 등지고 유리한 위치에서 공격한 제로기들은 8 대의 와일드캣과 교전하여 3 대를 격추하고 , 1 대에 손상을 입혔으며 이어서 아벤저들을 공격하여 4 대를 격추하고 1 대에 손상을 입혔다. 일본군의 피해는 제로기 2 대가 격추된 것이 모두였다.
이로써 제 2 차 공격대는 적 함대 상공에 도달하기도 전에 절반 가까운 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 일본해군의 0식 함상 전투기.A6 M 0식 함상전투기 (零式艦上戰鬪機)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43229943 )
공격대를 내보낸 제 61 기동부대는 방어준비를 시작했다. 킨케이드 제독의 제 16기동부대는 엔터프라이즈와 전함 사우스다코타를 중심으로 중순양함 포틀랜드 , 대공경순양함 산후앙 , 그리고 8척의 구축함으로 견고한 대공원형진을 구성했다.
15km 떨어진 해상에서는 머레이 제독의 제 17기동부대가 항공모함 호넷을 중심으로 중순양함 2척 , 대공경순양함 2척 , 구축함 7척으로 이루어진 대공원형진을 편성했다. 제 61 기동부대의 전투공중초계 세력은 합쳐서 38 대의 와일드캣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엔터프라이즈의 항공 통제관이 모두 통제했다.
38 대의 와일드캣은 동부 솔로몬 해전 때의 54 대보다는 적었지만 적절히 배치되면 충분히 일본군의 공습을 막을 수 있을만한 숫자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엔터프라이즈의 항공통제관은 신출내기였다. 미드웨이 해전을 겪었던 고참 항공통제관은 헐지 제독의 참모로 누메아의 사령부에 앉아 있었다. 일본함대도 방어준비를 시작했다.
일본함대는 비록 제 61 기동부대처럼 조직적이고 강력한 대공원형진을 구사하지는 못했지만 제로기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오는 미군기의 공격은 함정들의 기동력을 사용하여 피할 생각이었다. 또한 , 나구모 제독은 항공모함 기동부대의 전방에 배치된 아베 제독의 전위부대나 곤도 제독의 수상함대가 미군기의 공격력을 일부 흡수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함대와 일본함대는 서로의 위치를 알고 있었고 서로를 공격하기 위하여 자신들이 가진 항공기를 이미 발진시켰다.
이제 어느 쪽의 항공기가 보다 큰 전과를 올리고 , 또한 어느 쪽 함대가 적의 공격을 잘 방어하느냐에 따라 전투의 승패가 갈라질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