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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51) -산타크루즈 해전 (4) /blog.naver.com/imkcs0425/60113629964


51. 산타크루즈 해전 (4) - 사우스다코타의 활약

사우스다코타의 초대 함장으로서 1942 년 3 월 20 일부터 이 강력한 신예전함을 지휘하고 있던 토머스 개치 대령은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었다. 부하들의 마음을 단번에 휘어잡는 대단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던 개치 대령은 함장이 승무원의 복장이나 함정의 청결에 신경쓰는 전투함 치고 싸움 잘하는 배가 없다고 믿고 있었다.
함장의 생각이 그러하니 당장 사우스다코타는 승무원들의 복장상태가 거의 야만인 수준으로 엉망이며 신조함임에도 불구하고 지독하게 더러운 함정이라는 악평을 얻게 되었다. 대신 개치 함장은 부하들에게 복장 관리와 함정 청소에 들일 시간과 정력을 오로지 전투훈련 , 그중에서도 특히 사격훈련에 집중하도록 몰아붙였다.
진주만에서 수리하는 기간 동안 사우스다코타가 장비했던 구형의 1.1 인치 대공포가 중거리에서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는 보포스 40mm 대공포로 교체됨에 따라 진주만을 떠나 남태평양으로 항해하는 도중에 사우스다코타 함상에서는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공사격훈련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시되었다.
따라서 , 산타크루즈 해전이 벌어질 시점에서 사우스다코타의 승무원들은 대부분 미숙한 신병들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실력과 탄탄한 팀워크를 가진 아주 효율적인 전투집단으로 변모해 있었다.

( 토머스 개치 대령 )

1942 년 10 월 26 일 오전 10 시 2 분 , 일본기들의 공습을 받아 치명상을 입은 호넷이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던 시간에 해상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구하러 달려가던 제 16기동부대의 구축함 포터가 일본잠수함 I - 21 호가 발사한 어뢰에 기관실을 맞았다.
또다른 구축함 쇼가 즉시 달려가서 전사자 15 명을 제외한 포터의 승무원 전원을 구조한 후 포터를 처분했다. 그리하여 쇼는 일본기가 공격해 왔을 때 대공원형진을 벗어나 있었다.
오전 11 시 5분 , 사우스다코타의 레이더가 전방 90km 지점에서 일본기들을 발견했다. 오전 8시 10 분에 즈이가쿠를 떠난 제 2 차 공격대의 제 1 진인 제로기 5 대와 99식 급강하폭격기 19 대였다. 하필이면 이때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기능장애를 일으켜 제 16기동부대는 전투공중초계를 맡고있던 와일드캣을 유도하는데 완전히 실패함으로써 일본기들은 1 대를 제외하고 모두 무사히 제 16기동부대 상공에 도달했다.
99식 급강하폭격기 1 대는 접근 도중에 호넷을 발견하고 폭격을 가했으나 명중시키는데 실패했다.  엔터프라이즈의 레이더가 기능장애를 일으키는 바람에 대공원형진의 사격통제는 전함 사우스다코타가 맡게 되었다. 99식 급강하폭격기 조종사들은 미국항공모함이 최우선 목표라는 명확한 지시를 받고 있었고 , 모두 엔터프라이즈를 목표로 달려들었다.
곧 대공원형진을 구성한 제 16기동부대의 경순양함들과 구축함 , 그리고 원형진 중앙의 엔터프라이즈와 사우스다코타가 쏘아올리는 대공포화가 제 16기동부대 상공을 까맣게 물들였다. 사우스다코타는 고속의 신형전함이 항공모함을 공습에서 보호하는데 얼마나 크게 도움이 되는지를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사우스다코타의 함장인 개치 대령은 엔터프라이즈와 900m 거리를 유지한 채 고속으로 복잡하게 기동하면서 까딱 잘못하면 충돌사고로 참화를 초래할 수 있는 어렵고도 위험한 조함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또한 사우스다코타가 함대 전체의 대공전투를 지휘하게 되면서 개치 대령은 지금껏 갈고닦은 부하들의 사격실력을 마음껏 펼쳐보일 절호의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수한 사격통제 레이더와 잘 훈련된 승무원이 조작하는 신형의 보포스 40mm 대공포로 무장한 사우스다코타는 대공전투에서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날 하루동안 사우스다코타가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격추 댓수만 26 대에 달했다.
사우스다코타와 같은 보포스 40mm 대공포로 무장하고 당시 미해군 전체에서 최고의 숙련도를 지녔다고 누구나 인정하고 있던 엔터프라이즈의 공인 격추 댓수가 7 대인 사실과 비교해 보면 이날 사우스다코타의 활약이 얼마나 대단했던지를 잘알수 있다.

(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분전하고 있는 사우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의 이런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11 대의 99식 급강하폭격기가 엔터프라이즈를 겨냥하여 22 발의 250kg 폭탄을 투하하여 명중탄 2 발과 지근탄 1 발을 기록했다.
오전 11 시 17 분에 최초의 명중탄이 엔터프라이즈의 선수 부근 비행갑판을 뚫고 나가 함정에서 15m 정도 떨어진 허공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함체에 160 여개의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렸으며 , 비행갑판에 주기해 있던 돈틀레스 1 대가 파괴되면서 뒷좌석에서 7.62mm 기총을 쏘고 있던 수병 1 명이 전사했다.
불과 몇초 후에 두번째 폭탄이 전방 엘리베이터 뒷쪽에 명중했다. 이 폭탄은 격납고 갑판을 통과하면서 둘로 쪼개져서 뒷쪽은 격납고 갑판에서 폭발하고 , 앞쪽은 주로 수병들의 거주지역인 제 3 갑판의 천장 부근에서 폭발하여 화재를 일으키면서 40 여명의 전사자를 기록했다.  11 시 19 분에 세번째 폭탄이 엔터프라이즈의 우현 후방 선체에서 불과 3m 떨어진 수심 2.5m 깊이의 해중에서 폭발했다.
이 폭발로 엔터프라이즈의 우현 철판 여러 장이 뜯겨져 나갔고 , 주터빈의 베어링이 손상을 입었다.  동부솔로몬 해전에서 이미 실전을 겪은 엔터프라이즈의 손상관리반이 즉각 활동을 시작하여 신속하게 화재를 진압하고 , 침수되는 구멍을 틀어막았으며 부상자를 구출했다.
엔터프라이즈는 44 명의 전사자와 75 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으나 , 여전히 속력과 전투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본기들은 대공포화와 와일드캣의 뒤늦은 추격으로 2 대의 제로기와 12 대의 99 식 함상폭격기를 상실했다.
11 시 44 분에 즈이가쿠를 출발한 제 2 차 공격대의 제 2진인 97식 함상공격기 16 대와 제로기 4 대가 제 16기동부대에 접근했다. 이번에는 엔터프라이즈 비행전대의 베타자 대위가 이끄는 와일드캣 편대가 제대로 요격에 성공했다.
베타자 대위는 엔터프라이즈의 항공통제관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못했지만 일본기가 접근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서 매복했고 곧 11 대의 97식 함상공격기들을 발견했다. 베타자 대위는 후방 상공에서 아랫쪽으로 기습하고 이탈했다가 다시 후방 상공으로 돌아와서 기습하는 방식으로 5 대의 97식 함상공격기를 격추하고나자 기관총탄이 떨어져 버렸다.
이미 호넷의 피격시 폭격을 가하고 이탈하는 99식 급강하폭격기 2 대를 격추했던 배타자 대위는 이로써 단 1 회 출격에서 7 대의 적기를 격추하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베타자 대위의 동료들이 1 대를 추가로 격추하여 이제는 총 10 대로 줄어든 97식 함상공격기들이 엔터프라이즈에 접근했다.
살아남은 97식 함상공격기들 중 1 대가 대공포화에 의하여 피격되자 어뢰를 매단 채로 구축함 스미스의 함수에 달려들어 자폭했다. 함교 전방이 온통 불바다가 되자 함장 헌터 우드 소령은 즉시 후방 지휘소로 이동하여 전화로 조함을 지휘했고 , 그동안 손상관리반이 함의앞쪽 절반에 걸친 화재를 진압하고 부상자를 구출했다. 
스미스는 이런 식으로 함의 절반이 불타는 가운데에서도 복잡한 고속기동과 변침이 필요한 대공원형진에서 이탈하지 않고 계속 머물면서 후방의 대공포로 사격을 지속하여 승무원들의 높은 숙련도를 증명했다.  스미스에서는 28 명이 전사하고 , 23 명이 부상을 입었다.
살아남은 97식 함상공격기 9 대중 5 대가 엔터프라이즈의 우현 쪽에서 어뢰를 발사했다. 엔터프라이즈의 함장 하디슨 대령은 함의 우현 전방에서 달려오는 어뢰를 보자 즉시 함을 최대한 우회전시켜 3 발의 어뢰를 함수 쪽으로 빗나가게 한 다음 즉시 고속으로 직진하여 4 번째와 5 번째 어뢰를 함의 뒷쪽으로 흘려 보냈다.
이들중 4 번째 어뢰는 함미에서 불과 30m 후방을 통과했다. 남은 4 대의 97 식 함상공격기는 엔터프라이즈가 최대한 우회전하는 순간 좌현 쪽에서 4 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하디슨 함장을 즉시 엔터프라이즈를 최대한 좌회전시킨 다음 고속항진하여 다시 3 발의 어뢰를 뒷쪽으로 흘려보냈으나 4 번째 어뢰는 함의 중앙을 향하여 똑바로 달려왔다.
그 순간 중순양함 포틀랜드가 어뢰와 엔터프라이즈 사이에 끼어들어 좌현에 일본군의 어뢰를 정통으로 맞았으나 천만다행으로 불발탄이었다. 일본기들은 철수 과정에서 다시 3 대를 추가로 상실하여 제 2진은 총 10 대의 97식 함상공격기를 잃었다.

( 어뢰를 피하기 위하여 급기동 중인 엔터프라이즈.
폭탄에 맞은 부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한편 , 나구모 제독으로부터 항공작전 권한을 이어받은 준요의 가쿠다 제독은 오전 9시 45 분에 준요로부터 제로기 12 대와 99식 함상폭격기 17 대로 이루어진 제 3 차 공격대를 발진시켰다.
이제 3 차 공격대도 미군 측의 혼란 때문에 12시 20 분에 단 1 대의 손실도 없이 제 16기동부대 상공에 도달했다. 애당초 사우스다코타의 레이더가 12시 1 분에 접근하는 일본기들을 발견했었다. 그런데 12시 10 분에 사우스다코타의 레이더가 기동부대 상공에서 정체불명의 항공기들을 발견하고 즉시 대공사격을 실시했으나 이건 엔터프라이즈에 착륙하려던 6 대의 미군 돈틀레스들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혼란에 휩싸인 사우스다코타는 레이더 상에서 접근하는 일본기들에게 과감한 공격명령을 내리지 못했고 , 그동안 일본기들은 제 16기동부대 상공에 무사히 도달해 버렸다. 제 3 차 공격대의 99식 함상폭격기 중 10 대가 엔터프라이즈를 목표로 20 발의 250kg 폭탄을 투하했으나 명중탄은 없이 1 발의 지근탄만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엔터프라이즈의 우현에서 5m 정도 떨어진 2.5m 깊이의 물 속에서 폭발한 이 폭탄은 엔터프라이즈의 우현 함체를 약 70cm 정도 안쪽으로 우그러뜨렸다.

산타크루즈해전에서 엔터프라이즈호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1942년 10월 27일 산타쿠르즈해전에서 전날 전사한 44명의 엔터프라이즈호 선원들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나머지 일본기들은 호위함정들을 공격했는데 12시 17 분에 사우스다코타를 폭격한 99식 함상폭격기 1 대가 제 2 번 주포탑 상면에 250kg 짜리 폭탄을 1 발 명중시켰다.
당시 두꺼운 장갑 아래 보호된 포탑 내의 승무원들은 폭탄이 명중했는지도 모르고 있었으나 , 갑판에 노출된 인원 중 1 명이 전사하고 , 50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때 함교 밖에 나와있던 함장 개치 대령도 목에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함장이 쓰러지자 조함지휘권은 즉시 후방 통제소에 있던 부장에게 넘어갔으나 이 사실이 통지되고 부장이 조함 지휘권을 이어받는 1 분동안 사우스다코타는 아무런 조함 지휘도 받지 못한 채 고속으로 직진하여 하마터면 엔터프라이즈와 충돌할 뻔했다.
대공경순양함 산후앙도 1 발의 250kg 짜리 철갑탄에 맞아 폭탄이 함체 밑바닥까지 도달했으나 천만다행으로 불발탄이었다. 제 16기동부대의 대공포화로 인하여 제 3 차 공격대는 11 대의 99식 함상폭격기를 상실했다.
일본군의 공습을 무사히 물리친 엔터프라이즈는 자신과 호넷의 함재기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엔터프라이즈의 비행갑판에 있던 돈틀레스 13 대는 비행갑판을 비워주기 위하여 에스피리투산토로 날아가야만 했다.
함재기의 수용 결과 곧 엔터프라이즈의 함재기 수가 적정 댓수인 85 대를 넘어 95 대에 이르렀고 , 이로써 엔터프라이즈는 적의 공격에 매우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의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킨케이드 제독은 26 일 오후 2 시에 철수명령을 내렸다.



( 철수하는 제 16기동부대. 사우스다코타에서 찍은사진이다.)


엔터프라이즈가 일본기들의 거듭되는 공습을 막아내는 동안 오전에 일본기들의 공습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던 호넷은 살아남기 위하여 처절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