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대통령의 각서
산타크루즈 해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 제 2사단이 실시한 제 3 차 공세가 실패함에 따라 과달카날을 둘러싼 일본군의 처지는 더욱 악화되었다.
산타크루즈 해전 직후에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제독은 대본영에 과달카날의 포기를 건의했다. 그러나 , 이미 체면을 구길대로 구긴 대본영 육군부는 오기가 발동하여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육군부는 라바울에 대기 중인 제 38사단의 주력을 과달카날에 상륙시켜 다시 한번 미군의 교두보를 공격하라고 제 17 군에 명령을 내렸다.
일본해군은 할수 없이 육군부대를 안전하게 수송하고 , 다시 전함을 사용하여 헨더슨 비행장을 포격하는 등 육군을 지원하기 위한 작전 계획을 수립했다.
( 일본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山本五十六)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45536292)
미군 또한 과달카날에 대한 증원을 서두르고 있었다. 이러한 미군의 증원계획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서 큰 도움을 받았다. 즉 마루야마 중장의 제 2사단 병력들이 헨더슨 비행장을 향하여 돌격했던 1942 년 10 월 24 일에 루스벨트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에 각서를 보내 다른 지역에 보낼 자원을 삭감해서라도 과달카날과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에 최우선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라고 명령했던 것이다.
( 루스벨트 대통령.Franklin Delano Roosevelt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46818178 )
1942 년 10 월 말의 상황은 제 2 차 세계대전이 그야말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엘 알라메인에서는 10 월 23 일에 영국육군의 몽고메리 장군이 롬멜 장군의 군대에 대하여 오랫동안 준비해 왔던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고 , 볼가 강 연안의 스탈린그라드에서는 소련군이 막강한 전력을 보유한 독일 제 6 군과 일진일퇴의 처절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1942 년 10 월에 대서양에서 상실한 수송선은 58 만톤을 넘어서 바야흐로 대서양 전투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 육군항공대 사령관 아놀드 장군은 한시라도 빨리 영국을 기지로 삼아 독일을 폭격하기 위하여 4 발 중폭격기들을 필사적으로 끌어모으고 있었다.
뉴기니 섬의 부나 - 고나 지역에서 일본군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던 맥아더 장군은 남서태평양해역군에 대한 지원을 늘려달라고 계속 요청하고 있었고 , 호주 정부도 맥아더 장군에게 적극 호응하여 호주군에 대한 지원을 늘려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이렇듯 전 세계의 미군 및 동맹군들이 모두들 무기 , 보급품 , 병력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빨리 지원해달라고 아우성치는 가운데 11 월 9 일로 예정된 북아프리카 상륙작전마저 눈 앞에 닥쳐오자 합동참모본부는 그만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려 이름도 생소한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싸우던 미군들에게 참화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을 걱정한 킹 제독이 10 월 중순에 과달카날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내야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데 이어 10 월 21 일에는 니미츠 제독이 남태평양 지역에 강력한 항공세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항공기를 대대적으로 증원해 달라고 합동참모본부에 요청했다.
( 태평양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Chester William Nim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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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해군에 호의적이고 관심이 많아서 해군의 작전 상황이나 해군이 처한 입장을 항상 자세하고 정확하게 알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이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다가 전격적으로 개입한 것이었다.
이 각서 1 장으로 과달카날은 순식간에 다른 모든 지원요청을 누르고 , 미군과 영국군의 대규모 연합상륙작전인 북아프리카 상륙작전과 동등한 자원 배분에서의 우선권을 가지게 되었다.
미함대 총사령관이자 해군참모총장인 킹 제독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즉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사우스다코타 급의 2 번 함인 BB- 58 인디애나와 순양함 6척 , 구축함 2 척 , 잠수함 24 척및 다수의 어뢰정들과 전투기 75 대 , 급강하폭격기 41 대 , 뇌격기 15 대를 당장 남태평양에 파견하겠다고 보고했다.
또한 남태평양에서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7,000 톤 급의 신형수송함 30척을 11 월 말까지 , 추가로 20척을 12 월말까지 보내겠다고 보고하여 만족한 루스벨트 대통령으로부터 승인을 얻었다.
( 미함대 총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 킹 제독.Ernest Joseph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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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육군참모총장 마셜 장군은 과달카날에 대한 육군자원의 추가 배분을 거부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보고하길 남태평양에 이미 파견되어 있는 육군 병력만으로도 과달카날 전투를 승리로 이끌기에 충분하며 다만 남태평양해역군 자체의 수송능력이 문제일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항공기에 있어서도 남태평양에는 중폭격기 46 대 , 쌍발폭격기 27 대 , 전투기 133 대가 이미 배치되어 있으며 , 추가로 23 대의 중폭격기와 전투기 53 대가 남태평양을 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마셜 장군은 따라서 맥아더 장군도 요구하고 있던 하와이의 제 25보병사단을 과달카날로 보내도록 허용하고 , 하와이와 크리스마스 섬의 P-39 및 P-40 전투기들을 남태평양으로 파견하며 , 필요하면 호주에 주둔 중인 중폭격기 3개 비행대대를 임시로 남태평양 해역군에 배속시키는 이외에 미본토로부터의 추가 지원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못을 박았고 , 대통령도 동의했다.
( 미육군참모총장 마셜 장군. George C. Marshall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52478284 )
해군으로서는 어쨌든 좋았다. 마셜 장군의 지적은 사실이었으며 , 남태평양 해역군에는 더 이상의 육군 병력이나 항공기는 사실 크게 필요가 없었다. 대신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7,000 톤 급의 신형 수송함들을 12 월말까지 무려 50척이나 배정받은 것이 큰 수확이었다.
북아프리카 상륙작전의 규모와 중요성을 감안하면 남태평양 해역군에서 2 달 만에 50척의 신형수송함을 확보한다는 것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각서가 없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산타크루즈 해전 이후인 1942 년 10 월 말부터 11 월 초에 걸친 일본군의 무리한 과달카날 증원은 다분히 미군에 대한 기싸움의 의도가 있었으며 , 이 시기는 일본군과 미군을 막론하고 무자비한 소모전에 시달리던 양측에게 몹시도 힘들고 괴로운 시기였다.
이런 시기에는 설령 객관적인 전력이 우세하더라도 의지가 약한 쪽이 상대방의 투지에 밀려 패배하기 쉽기 때문에 만일 일본군의 상대인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이 나약한 곰리 제독이었다면 어쩌면 일본군의 무리수가 통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군에게는 불행하게도 이제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은 투지와 배짱이라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공격적인 ' 황소 ' 헐지 제독으로 교체되어 있었다.
(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 헐지 제독.William Frederick Halsey, Jr.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51213763 )
헐지 제독은 1942 년 10 월 18 일에 남태평양해역군에 취임한 직후 전임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인 곰리 제독을 비롯하여 사령부의 어느 누구도 과달카날의 현지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현황파악을 위하여 즉시 과달카날로 시찰을 가려 했으나 남태평양해역군의 현재 상황을 브리핑받고 , 참모진을 교체하며 그 와중에 사령부를 에어컨도 없는 좁고 후덥지근한 수송선 아르곤 호에서 넓고 쾌적한 육상건물로 옮기느라고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헐지 제독은 과달카날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있던 해병제 1 사단장 반데그리프트 장군에게 전문을 보내어 가능한 최대한 빠른 시간 내로 누메아로 와서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과달카날에는 10 월 21 일부터 해병대 총사령관인 토머스 홀콤 해병중장이 시찰을 하고 있었다.
( 해병제 1 사단장 알렉산더 반데그리프트 장군.Alexander Archer Vandegrift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48301861)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홀콤 장군과 함께 10 월 22 일에 누메아로 날아와서 23 일부터 25 일까지 새 얼굴로 바뀐 남태평양해역군 사령부의 지휘관들 및 참모들과 일련의 회의를 가졌다.
10 월 25 일에 열린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회의에서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헐지 제독에게 말라리아로 신음하고 있는 부하들의 고충을 포함하여 과달카날의 현재 상황을 사실 그대로 자세하게 설명했다.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반데그리프트 장군의 설명을 다 듣고난 헐지 제독이 과달카날을 지킬 수 있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현재보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진다면 분명히 지킬 수 있다고 확답했다.
그러자 헐지 제독은 반데그리프트 장군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그곳으로 돌아가시오 , 반데그리프트. 약속하건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원해 주겠소." (" You go back there, Vandegrift. I promise to get you everything I have.")
그리고 헐지 제독은 그 약속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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