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아올라 부대
1942 년 10 월 18 일에 헐지 제독이 남태평양해역군이 되었을 때 미육군의 독립연대인 제 147 보병연대의 제 1 대대는 산타크루즈 제도의 은데니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 남태평양해역군 육군사령관인 하몬 장군은 은데니 상륙작전이 필요없다는 자신의 지론을 끈질기게 주장하고 있었다. 남태평양해역군 사령관이 우유부단한 곰리 제독에서 과단성있는 헐지 제독으로 바뀌자 하몬 장군은 3가지 이유를 들어 헐지 제독에게 은데니 상륙작전을 공식적으로 폐기하자고 주장했다.
그가 내세운 3가지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항공정찰 결과와 달리 실제로 상륙하여 조사해 본 결과 은데니 섬은 지형이 험준하여 비행장 건설에 적합한 평지가 없다.
2. 에스피리투산토에서 과달카날로 직접 항공기 증원이 가능하므로 기능이 중복된다.
3. 은데니 섬의 말라리아는 매우 치사율이 높다.
3 번과 관련하여 실제로 은데니 섬의 말라리아는 초기에 심한 중추신경계 침범 증상이 나타나면서 80% 이상의 대단히 높은 치사율을 보였다.
은데니 섬을 정찰하기 위하여 상륙했던 미군들 중이 악성 말라리아에 걸린 사람들은 거의 예외없이 목숨을 잃었다. 헐지 제독은 하몬 장군의 의견을 받아들여 1942 년 10 월 20 일에 은데니 상륙작전을 공식적으로 폐기하고 , 제 147 연대를 과달카날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제 147 연대가 과달카날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터너 제독은 제 147 연대를 교두보 내에 상륙시키지 말고 , 룽가 곶에서 남동쪽으로 50km 정도 떨어진 아올라 지역에 상륙시켜 두번째 비행장을 만들게 하자고 제안하여 헐지 제독의 승인을 받았다.
그리하여 제 1/147 대대를 중심으로 해병제 2 기습대대의 C 중대 및 E 중대 , 제 5해병방어대대의 분견대 , 아메리칼 사단 소속인 제 246 야포대대의 K 포대 , 그리고 500 명의 해군건설대대원으로 이루어진 총 1,700 명 규모의 병력이 아올라 부대라는 이름으로 11 월 4 일에 아올라 만에 상륙하게 되었다.
이들 중 K 포대는 급한대로 영국군의 25 파운드 야포를 장비하고 있었으며 , 아올라 부대장은 제 147 보병연대장인 터틀 대령이 맡았다.
( 영국제 QF25 파운드 야포.Ordnance QF 25 Pounder Gun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6624961 )
기다리던 증원부대가 교두보 바깥에 상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 마침 휘하 부대를 시찰하러 남태평양에 와있던 미해병대 사령관 홀콤 해병중장도 상륙작전 당시 수송함대를 지휘했던 해군제독이 상륙 4 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여전히 해병사단장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사실을 알고는 분노가 폭발했다.
그는 당장 해병대 지휘관은 상륙작전시 수송함대를 지휘하는 해군제독과 동등한 위치이며 상륙부대에 대하여 완전한 지휘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해병대 총사령관 명의의 문서를 만들어서 헐지 제독에게 서명을 요구했다.
헐지 제독이 이 문서에 서명하자 그는 이 문서를 가지고 당장 진주만으로 날아가서 니미츠 제독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니미츠 제독은 문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문서에는 아랫 쪽에 서명을 위한 4 개의 칸이 마련되어 있었으며 , 가장 윗칸에는 홀콤 장군 자신의 서명이 , 두번째 칸에는 헐지 제독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세번째 칸은 자기를 위한 것이었으니 마지막 칸은 보나마나 킹 제독의 서명을 받기 위한 것이었다.
니미츠 제독은 홀콤 장군의 기세로 보아 자신이 이 문서에 서명하거나 아니면 반대로 명확하게 거부해버리면 당장 워싱턴에 달려가서 킹제독의 면전에 노기등등한 태도로 이 문서를 들이밀 것이 분명했고 그러면 킹 제독의 성격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따라서 니미츠 제독은 문서에 서명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은 이 문서의 내용에 전적으로 찬성이니 당장 실무적인 협의를 시작하자고 말하여 일단 홀콤 장군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헐지 제독의 친필 서명이 포함된 진본 문서를 은근슬쩍 자기 책상 서랍에 넣어버려서 일단 폭발력이 강한 문서를 홀콤 장군의 손에서 빼앗았다.
그는 워싱턴으로 돌아가는 홀콤 장군 일행의 출발을 일부러 늦추어서 시간을 끄는 동시에 즉시 문서의 사본을 킹 제독에게 보내어 이 사실을 알렸다.
니미츠 제독이 보내온 문서의 사본을 훑어본 킹 제독은 진주만에 머물던 홀콤 장군에게 전문을 보내어 그러면 해상수송 중에도 해병대원들에 대한 해군제독의 지휘를 거부한다는 뜻이냐고 물어왔다.
홀콤 장군은 진주만에서 친화력이 뛰어난 니미츠 제독과 함께 지내면서 해군이 결코 해병대를 무시하지 않는다는 걸 확신하게 되었다.
분노가 많이 가라앉은 홀콤 장군은 킹 제독의 질문에 대하여 만일 해군 측에서 필요하다면 상륙하기 전까지 해병대원들이 해군제독의 지휘를 받는 것에는 동의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홀콤 장군의 양보에 따라 킹 제독이 상륙하기 전까지는 상륙병력이 수송함대를 지휘하는 해군제독의 지휘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이 문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상륙작전에 따른 지휘권 문제가 일단락되어 이후로는 상륙작전시 일단 공격개시선을 통과한 상륙병력에 대한 지휘권은 완전하게 지상군 지휘관에게 귀속되었다.
상급 사령부에서 벌어진 이러한 소동과는 별도로 터너 제독은 자신의 권한 내에서 반데그리프트 장군의 반대를 무마할 돌파구를 찾아내었다.
그는 1942 년 10 월 29 일에 반데그리프트 장군에게 아주 솔깃한 제안을 했다. 즉 반데그리프트 장군이 11 월 4 일로 예정된 아올라 부대의 상륙에 동의해 준다면 자신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11 월 2 일까지 강력한 155mm 롱톰 평사포 2개 포대 6 문을 교두보 내에 상륙시키고 , 사모아 섬에 주둔 중이던 해병제 2사단 소속의 제 8해병연대를 아올라 부대의 상륙과 동시에 교두보 내에 상륙시키겠다고 제안했다.
기존 계획에 따르면 제 8해병연대의 상륙은 빨라야 11 월 중순에야 가능했으므로 , 11 월 4 일에 상륙시키겠다는 터너 제독의 제안은 기존 계획을 10 일 이상 앞당긴 것이었다.
반데그리프트 장군으로서는 육군 1 개 대대를 중심으로 한 1,700 명 대신 같은 날에 믿음직한 해병대원 4,000 명으로 이루어진 해병연대 하나를 10 일 이상 빨리 통째로 상륙시켜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에서 10 일이면 어쩌면 전투의 승패를 가를 수도 있는 긴 시간이었다. 결국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아올라 부대 또한 상륙과 동시에 완전하게 자신의 지휘 하에 들어온다는 조건으로 터너 제독의 제안을 수용했다.
터너 제독이 이렇게 과감한 제안을 할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11 월에 30척 , 12 월에 20척의 신형수송함이 도착함에 따라 기존의 수송함 운용계획에 커다란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수송함 3척과 고속수송함 2척에 탑승한 아올라 부대는 11 월 4 일에 교두보 내에 상륙하는 제 8 해병연대와 동시에 아올라 지역에 상륙하여 견고한 방어선을 편성했고 , 해군건설대대원들은 즉시 활주로 건설에 착수했다.
그러나 , 막상 공사를 시작해보니 생각보다 습지가 너무 많아서 공사가 지지부진했다. 결국 11 월 22 일에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헐지 제독에게 아올라 지역을 포기할 것을 건의했다.
남태평양해역군 항공사령관 피치 제독도 반데그리프트 장군의 의견에 동조하자 아올라 지역을 선택했던 당사자인 터너 제독의 묵인 하에 헐지 제독은 반데그리프트 소장의 건의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제 2기습대대를 제외한 아올라 부대에게 애당초 해병대가 제 2 비행장 부지로 점찍었던 콜리 곶의 볼리나부아 지역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
제 2기습대대는 이미 반데그리프트 소장의 명령으로 아올라 부대의 지휘를 벗어나서 독자적인 작전을 실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11 월 29 일의 추가 상륙으로 제 3/147 대대 , 제 264 야포대대의 추가병력 , 제 9 해병방어대대의 분견대와 더 많은 해군건설대대를 추가로 보유하게 된 아올라 부대는 12 월 3 일에 콜리 곶으로의 이동을 마쳤다.
콜리 곶에서 제 9 해병방어대대의 나머지 병력들 및제 18해군건설대대와 합류한 아올라 부대는 1942 년 12 월 초부터 콜리 곶 동쪽의 볼리나부아 지역에서 제 2 비행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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