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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과달카날 전투 (54) -제 8 해병연대의 상륙 /blog.naver.com/imkcs0425/60113881115


54. 제 8 해병연대의 상륙

루스벨트 대통령의 각서로 기회를 잡은 킹 제독은 남태평양 해역군에 새로운 함정 및 항공기들과 함께 특히 2 달 내로 귀중한 7,000 톤급 신형수송함들을 50척이나 보내줄 수 있게 되었다. 이 희소식을 들은 헐지 제독은 이제 마음놓고 동원가능한 모든 수송함들을 투입하여 정력적으로 과달카날의 미군을 증원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남태평양항공사령관인 피치 제독도 칵터스 항공대에 대한 증원에 열을 올렸다.
1942 년 10 월 14 일 새벽의 일본전함들에 의한 포격과 15 일 새벽의 순양함들에 의한 포격으로 돈틀레스 4 대를 제외하고 사실상 전멸했던 칵터스 항공대는 에스피리투산토에서의 긴급 증원에다가 정비병들이 필사적으로 재생해 낸 항공기 몇 대를 합하여 16 일에는 와일드캣 9 대 , 돈틀레스 11 대 , P- 39 및 P-400 전투기 14 대 등 총 34 대의 작전 가능한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산타크루즈 해전이 벌어진 10 월 26 일까지 추가로 와일드캣 20 대와 돈틀레스 12 대가 도착하여 10 월 26 일에는 손실분을 빼고도 60 대의 항공기가 작전가능상태에 있었다. 칵터스 항공대는 착실히 증강되어 과달카날 해전을 앞둔 11 월 12 일에는 와일드캣 28 대 , 돈틀레스 37 대 , 아벤저 9 대 , P- 38 쌍발전투기 18 대 , P- 39 및 P-400 전투기 2 대등총 94 대로 증가했다.
이후 새로 투입되는 항공기와 손실되거나 항공모함으로 돌아간 해군항공기들의 숫자가 균형을 이루면서 11 월 24 일에는 와일드캣 29 대 , 돈틀레스 15 대 , 아벤저 9 대 , P- 38 쌍발전투기 11 대 , P- 39 전투기 15 대 , P- 40 전투기 1 대 , B - 17 중폭격기 8 대 , 그리고 뉴질랜드 공군의 허드슨 6 대등 총 94 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때부터 칵터스 항공대의 세력은 다시 수직상승하기 시작하여 불과 3 일 후인 11 월 27 일에는 와일드캣 39 대 , 돈틀레스 18 대 , 아벤저 9 대 , P- 38 쌍발전투기 12 대 , P- 39 및 P-400 전투기 17 대 , B - 17 중폭격기 13 대 , 킹피셔 수상정찰기 4 대 , 기타 7 대등총 116 대로 늘어났고 , 다시 3 일 후인 11 월 30 일에는 각종 항공기 188 대가 칵터스 항공대에서 작전가능상태에 있었다.

( OS2U 킹피셔 수상정찰기.OS2U-2 Kingfisher in flight 1942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rectek2/10091725768 )

11 월 중순에 칵터스 항공대의 병력은 총 1,748 명으로 해병제 14 비행전대 1,261 명 , 해병제 142 비행전대 294 명 , 해군조종사 33 명 , 육군항공대의 제 347 비행전대 144 명 , 제 37전투비행대대 16 명 이었다.
11 월 21 일에는 에스피리투산토에 육군항공대의 제 5 중폭격비행전대가 도착했다.
칵터스 항공대의 증강과 더불어 과달카날의 미지상군도 증원을 받았다. 1942 년 11 월 2 일에는 수송함 알치바와 풀러가 대공경순양함 애틀란타와 구축함 애런워드 , 뷰캐넌 , 플레처 , 라드너의 호위를 받으면서 과달카날에 도착하여 미군이 오랫동안 기다리던 155mm 롱톰 평사포 2개 포대 ( 육군제 244 해안포대대의 F 포대와 해병제 14 방어대대의 A 포대 ) 6 문을 예비부품 및 탄약과 함께 양륙했다.

( 미군의 155mm 롱톰 평사포.M59 155mm Long Tom cannon  자세한 내용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mirejet/110066633183 )

이제야 일본군의 96식 150mm 곡사포에 대항할 수 있는 화력을 보유한 미군은 기회만 기다렸다. 155mm 롱톰 평사포가 양륙한 지 4 시간이 채 안 되었을 때 일본군의 150mm 곡사포 1 문이 다시 사격을 실시하자 즉시 6 문의 155mm 롱톰 평사포가 대응사격을 퍼부었고 , 기겁한 일본군의 150mm 곡사포는 즉시 사격을 멈추었다.
이후로 일본군의 150mm 곡사포는 사격을 가할 때마다 155mm 롱톰 평사포로부터 몇 배나 되는 대응사격을 받았고 , 게다가 포탄공급마저 딸리기 시작하자 결국 완전히 침묵하고 말았다.
이로써 과달카날의 미군들은 그들을 괴롭히던 일본군의 150mm 곡사포를 드디어 제압할 수 있었다.
11 월 4 일에는 사모아에 주둔하고 있던 리처드 제스케 대령의 제 8 해병연대가 75mm Pack Howitzer 를 장비한 프레슬리 릭시 중령의 제 1/10 대대와 함께 교두보에 상륙했다.
해병제 2사단 소속인 제 8해병연대에는 제 1/10 대대 이외에도 제 2 전차대대 B 중대 , 제 2 공병대대 B 중대 , 제 2 수송대대 B 중대 , 제 2의무대대의 B 중대 및 C 중대가 배속되어 있어서 총 병력은 4,000 명에 달했다. 제 8해병연대의 도착으로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교두보를 확장하기에 충분한 여력을 가지게 되었다.

( 미군의 M1A1 75mm pack Howitzer(곡사포). 무게 : 653kg, 구경장 : 15.9, 발사속도 : 분당 16 발 , 최대 사거리 : 8.9km, 포탄무게 : 6.6kg)

한편 제 8해병연대와 같은 선단을 이루고 왔던 수송함 3 척과 고속수송함 2척은 제 8해병연대와 동시에 교두보에서 동쪽으로 65km 떨어진 아올라 만에 일단의 미군병력을 상륙시켰다.
미육군의 독립연대인 제 147 보병연대 제 1 대대를 기간으로 하는 아올라 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