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해병제 1 사단의 철수
반데그리프트 장군은 1942 년 10 월 말에 누메아에서 헐지 제독과 회의를 하면서 해병제 1 사단을 기후가 좋은 곳으로 철수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헐지 제독은 동의했지만 당시는 일본군의 공격이 진행 중이어서 도저히 해병제 1 사단이 철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과달카날 해전 이전까지는 해병제 1 사단을 교체할만한 대규모의 병력을 실은 수송선단에게 과달카날 근해는 너무 위험했다. 하지만 과달카날 해전의 결과 미해군이 과달카날 근해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자 해병제 1 사단을 대체할 병력들이 속속 상륙하기 시작했다.
사실 과달카날 이후의 전투에 비교해보면 해병제 1 사단의 피해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해병제 1 사단은 1942 년 8 월 초에 과달카날에 상륙한 이후 12 월에 철수할 때까지 전사 및 실종 681 명 , 부상 1,278 명 등 총 1,959 명의 사상자를 기록했는데 1943 년 11 월에 타라와에 상륙했던 해병 제 2 사단은 상륙 첫날에만 1,500 여명의 사상자를 기록했고 , 불과 76 시간 지속된 전투에서 1,000 명이 넘는 전사자를 기록했다.
( 타라와 전투 포스팅은 여기로 http://blog.naver.com/imkcs0425/60058865864 )
해병제 1 사단은 사상자 이외에도 말라리아를 비롯한 갖가지 열대성 질병으로 고생을 했는데 총 8,580 명이 질병 때문에 적어도 일시적으로 병원신세를 졌다. 물론 말라리아나 기타 질병으로 2 회 이상 입원한 병사들도 많았고 , 일부 환자들은 퇴원한 이후에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기도 했다.
반면 , 증세가 가벼운 말라리아 환자나 기타 질병 환자는 전혀 입원을 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남태평양해역군 사령부는 태평양함대 사령부에 과달카날 철수 당시 해병제 1 사단 장병들의 말라리아 감염율이 약 75% 라고 보고했다.
말라리아를 제외하고라도 해병제 1 사단 장병들의 건강상태는 전반적으로 좋지 않았다. 열대의 폭염은 모든 사람들을 약화시켰다. 한낮의 온도가 40 도에 달하는 덥고 습한 과달카날에서는 일선의 초소 사이를 정찰하는 일상적인 과업도 큰 노력을 요하는 중노동이었다.
게다가 과달카날 전투 초기에는 식량부족으로 체력이 저하되었고 , 이후에도 지속적인 전투와 하역작업을 비롯한 각종 작업으로 인하여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체력을 보충할 여유가 없었다.
1942 년 12 월 7 일과 8 일에 실시된 건강검진에서 해병제 1 사단의 병력 중 약 34% 가 전투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남태평양해역군 사령부는 해병제 1 사단이 다시 전투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좋은 기후와 안락한 시설이 갖추어진 곳에서 3개월 내지 6 개월 정도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고 판단했다.
미함대 총사령관 킹 제독은 맥아더 장군에게 해병제 1 사단을 넘겨주기 싫어서 남태평양해역군 사령부 관할인 뉴질 랜드로 철수시킬 생각도 해 보았으나 결국 마음을 바꾸어서 1942 년 11 월 30 일에 호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1942 년 12 월 9 일 , 과달카날의 지휘권이 반데그리프트 소장에게서 아메리칼 사단장인 알렉산더 패치 소장에게 넘어갔다. 바로 그날 제 5 해병연대와 포병연대인 제 11 연대가 수송함을 타고 과달카날을 떠나 호주로 향했다. 제 1 해병연대는 12 월 22 일에 떠났고 , 제 7 해병연대가 1943 년 1 월 5 일에 마지막으로 과달카날을 떠났다.
( 과달카날을 떠나는 상륙주정에 올라타고 있는 해병제 1 사단 병사들 )
해병제 1 사단은 호주에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해병제 1 사단에게 대통령 표창을 내렸고 , 사단장 반데그리프트 장군에게는 직접 명예훈장을 수여했다.
( 루스벨트 대통령이 반데그리프트 장군에게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광경.
장군의 뒤에 서 있는 여자는 장군의 부인이고 대통령 옆에 서 있는 장교는 아들인 알렉산더 반데그리프트 주니어 소령이다.)
(이 사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는 대단히 크며 어쩌면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미국이 일본에 승리로 이끌었으리란 생각이 든다. 전쟁터에서 미군들은 몸을 사리지않고 임무수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모든 전쟁터에서 다 그런가. 미군의 용맹성의 원천은 뭐니뭐니해도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서 국가나 국민들이 최선을 다하여 진심으로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보상을 해준다는 것이다. 일본제국군인을 보면 극명하게 대조된다.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목숨을 스스로 끊어라. 하지만 천황이나 국가가 어떤 대책이나 보상을 해준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상을 해주면 받고 주지않더라도 천황과 국가를 위해서 충성을 다했으니 그것이 영광스럽지 아니한가" 라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떠힌가)
또한 해병제 1 사단은 미군 사단 중 처음으로 군복에 사단 고유의 표식를 달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 해병제 1 사단의 표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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