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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안영탁.성대


목 차
1. 서론
2. 인성의 본원으로서의 天命과 性
3. 率性과 道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의지
4. 修道와 敎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수양
5. 결론


<국문초록>
이 논문은 中庸의 첫 장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를 人性美의 근원과 儒
家美學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연구목적으로 한다. 인간의 性은 天이 인성에
드러난 것이고, 천의 본질은 순선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인성의 본원이며,
근원이 되는 것이다. 中庸은 유학에 있어서의 인간심성의 도덕철학이며 삶의
철학이다. 왜냐하면 ‘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에서 인간본성의 시원을 밝히고 있
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일상과 이상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
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선한 인성에서 발현한다.
이러한 인성에서 인간의 도덕의식이 함양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적 인성미는 天
理를 따르고 사욕을 절제하는 도덕수양에 의하여, 일상에서의 도덕행위로 드러나
게 된다. 이러한 인간의 인성미가 도덕적 행동으로 나타날 때 이것이 유가미학의
참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적 자율의지가 진정한 率性이며 率性은 性
대로 따르는 것이므로 곧 天命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率性이 본성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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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도덕적 의지라면, 修道는 그 선택된 길을 끊임없이 갈고 닦고 보수해 나가야
하는 문명창출의 실천적 도덕의지라고 할 수 있다. 修道之謂敎에서의 敎는 순선한
본성을 바탕으로 예악형정이라는 문화와 제도를 창출해 내는 인간의 길이다. 이것
이 곧 修道와 敎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수양이며 유가미학에서 추구하는 심미
적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성미가 일상의 생활에서 도덕적 美行으로 드러
날 때, 이것이 곧 유가미학의 참된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인성과
인격의 아름다움이 외부로 나타날 때 우리 사회는 밝고 아름다울 수가 있으며, 이것
은 天에 인성의 근원이 있음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주제어 : 中庸, 天命, 儒家美學, 率性, 修道


1. 서론
이 논문의1) 연구목적은 中庸의 첫 장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를
人性美의 근원과 儒家美學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中庸은 인간이 天地自然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현세 속에서 인간
의 도덕적인 삶의 완성을 위한 인성의 본원을 밝히고 至善에 이르는 倫理
的 理想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본질적 문제를 하늘이 품부한 本性에 대한 이해를 통한 인간심성
과 道德行爲의 규명에 있다고 전제한다면, 中庸의 天命과 性, 道, 敎에
대한 유가의 심미의식에 대한 分析은 의미 있는 學問的 省察이 될 것이다.
人性의 美는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본성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1) 이 논문은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인 「中庸과 孟子에 나타난 道德的 人性論에 대
한 硏究」의 전 단계 작업으로써 쓰였던 글임을 밝힌다. 그러므로 일부 내용에서 필자의
박사학위논문을 재인용하였다. 그리고 유가미학, 인성미학, 심미활동, 심미의식, 심미의
지, 심미수양 등의 개념어는 이택후, 조민환, 김동수, 서경요 등의 선행연구자들이 이미
사용하였던 것임을 밝힌다.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37


지극히 中和를 이룬 상태이므로, 유가에서 주장하는 ‘中和之美’란 이러한
人性에서 비롯된 인격의 아름다움에 대한 도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2)
이 논문은 여기에서부터 논리적 문제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
면 “中和之美”라는 도덕적이고, 형이상학적 개념이 어떻게 미학적인 의미
에서의 아름다움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도덕의 영역 일반을
그대로 미적 영역으로 여기는, 즉 도덕판단과 미적판단과 동일시하고 있다
는 비난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학이란 개념은 근세유럽에서
칸트의 판단력 비판에서 비롯된 ‘aesthetics’이고, 동북아시아에서는 19세
기 전까지 미학이란 존재하지 않았다는 관점을 전제하면 더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은 유가사상을 주체로 하는 중화의 전통
미학에 대한 존재를 긍정하는 자세로 조심스럽게 이 글의 논지를 진행하고
자 한다. 특히 유가의 조종인 공자의 심미의식에 대한 이택후의 주장에서
유가미학의 의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본다.
“공자가 말한 이러한 즐거움은,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또
친구가 멀리서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며, 외재세계에 대한 실천성의 자유스런
파악뿐만이 아니라, 또 인도人道․인성과 인격 완성에 대한 관심이기도 하다. 그
것은 사람의 자연적인 심리 정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또 동물적 관능과는 거리
가 먼 즐거움이기도 하여, 심령의 현실과 인생의 자유가 된다. 그 중에 침전되고
용해된 인간의 지혜와 덕행은, 지혜와 도덕 기초상의 초지혜․초도덕적인 심리
본체가 된다. 그것에 도달하면, 곧 부귀를 멸시할 수 있고, 빈천도 달콤할 수 있으
며, 광포함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인간됨도 자유로울 수 있다. 이것은 인생이
며, 또 심미審美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곧 <인仁>의 최고 경지이다.”3)
儒家哲學에서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어떻게 해야 人間的인 가치를 지


2) 김동수, 「先秦儒家의 審美境界-孔․孟․荀의 미학사상을 中心으로-」, 儒敎思想
硏究 第16集, 2002, 137면 참조.
3) 이택후, 권호 역, 華夏美學, 동문선, 1990, 7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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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價値論的 人間學이 주요 명제가 된다. 그래서
인간됨의 情理를 일상에서 體現시키는 도리를 문제 삼는다.4) 이런 관점에
서 생각해 보면 순선한 인성에서 발현된 인격의 아름다움 역시 내면의 성찰
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실현함으로써 그 의미
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미의 가치는 ‘修己治人’과 ‘內聖外
王’이라는 유가적 도덕가치와 목표를 인간 사회에 구현하는 것이다.
“동양철학, 특히 선진유가에서 논하는 美는 서양의 미학처럼 ‘우리와 독
립해서 존재하는 미의 객관적 법칙성’을 찾으려는 개별과학의 성격이 아니
라, ‘우리의 삶과 유기적․역동적 관계 속에서’ 그 의의를 찾으려는 ‘미와
사회의 合一的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해 단순히 美 그 자체만을 추
구하기 위한 美의 학문이 아니라, 우리 삶의 본질로서의 美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한 美의 추구를 기본적으로 전제하고 있다.”5) 이러한
관점에서 바라보면 “동양에서의 미학은 철학이요, 철학은 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6) 왜냐하면 철학이 서양에서 정의하는 그것과 같이 ‘認識
論’, ‘存在論’, ‘實踐論’을 갖춘 논리적이고 정합적인 형태여야 한다면 동양
철학은 철학이 아닌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발에 맞추어서
발을 자를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의 개념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이해할 수 있다면 본고에서 말하고자 하는 유가미학의 인식에 대한 지평이
넓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儒學에서 ‘天命’이란 인간의 심성인 ‘人性’의 근원으로서 中庸의 ‘天
命之謂性’에서 발원한 개념이다.7) 주희는 ‘天命之謂性’의 의미를 “天이


4) 서경요, 「儒家倫理의 人間美學的 理解」, 東洋哲學硏究 第21集, 1999, 313면 참조.
5) 심현섭, 「선진유가의 미학사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6, 2면.
6) 심현섭, 위의 논문, 9면.
7) “공자 이전의 ‘천명이 하강하여 인간의 본성과 관통하여 하나로 된다’는 개념과 중용
의 “天이 내게 명하여 부여한 것을 性이라고 한다.”는 함의가 약간 다르다. 표면상으로
볼 때 중용」은 비록 ‘천명이 유행하여 사물을 이루고 동시에 사물에 내재되어 사물이
본성이 된다’는 우주론적인 표현으로 인성론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배후에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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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萬物을 化生할 때 陰陽五行의 氣로 形을 이루고 여기에 理를 부
여하니 이것이 命이고, 인간과 物이 태어남에 각기 부여받은 바의 理를 얻
음으로서 健順五常의 德을 삼으니 이것이 곧 性이다.”라고 주석하였다.8)
이와 같이 유가철학 특히 성리학의 주요한 맥락은 인간의 ‘性’에 내재한
心性이 그 中心思惟였다. 이러한 심성에 대한 관심은 中庸에 나타난 天,
命, 性, 道, 敎, 中, 誠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인성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위주로 하는 心性論을 전개하였다. 또한 中庸의 이해를 통한 天命의 본
뜻에 대한 실천에 따라 사회질서가 정립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가 천지자연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음으로써 자연에 화육된다고 여겼
다. 이와 같이 天의 관념은 가장 궁극적이며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였다.
특히 유가에 있어서 天은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시원이 되며, 유가미학을
성립하게 하는 근간이 된다고 본 조민환은 유가미학은 天理를 인간에게 적
용시켰을 때 나타나는 성선적인 인간의 완성과 그 성선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며, 그것은 교육적 차원에서 논의된다고 하였다.
즉 사람의 몸에 내재한 性이 하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게 하고, 道가
性에 근거하여 나왔다는 것은 알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9)이와 같은 조민환
공자의 踐仁知天과 맹자의 眞心知性知天의 의리를 깔고 있다. 중용의 천명지위성
은 공맹의 심성학문을 경과한 후에 다시 天과 심성관계를 우주론적인 설명 체계로 표현
한 것에 불과하다. 맹자도 심성은 “천이 나에게 부여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는데 이것과
중용의 천명지위성은 실제로 동일한 의미이다. 공자 이전의 ‘천명이 하강하여 인간의
본성과 관통하여 하나로 된다’의 의리는 ‘인격신의 천이 형이상의 실체로 전환되고 다시
敬의 실천 과정 중에 한층 한층 내려와 인간의 본성으로 형성된다’는 것으로 비록 ‘천도
와 생명이 관통하여 하나로 된다’는 의리를 표현하고 있지만 중용과 같이 仁의 실천
과 본심의 실현 과정을 통하여 천도의 진정한 도덕적 의리와 심성천 삼자가 하나이다를
완전하게 체득한 단계는 아니다.”


황갑연, 공맹철학의 발전, 서광사, 1998, 62~63면.
8) 中庸章句 第1章. 朱子註: 命猶令也, 性則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
形, 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9) 조민환, 중국철학과 예술정신, 예문서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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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天과 性에 관한 이해는 성선의 회복이라는 도덕적인 관점에서의 인성미라
는 측면과 교육적 차원으로 분석할 수 있다. 다만 中庸을 유가미학적인
측면에서 좀 더 심도 있는 분석이 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다음으로 신창호는 中庸의 性, 道, 敎의 의미를 인간학적 관점으로 이
해하여 교육학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즉 中庸의 첫 장은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길, 교육을 통한 문화세계가 어떻게 구축되는지를 유기적으로 담고
있는 유교교육학의 강령이라고 한다.10)
신창호의 이러한 관점은 率性과 修道의 문제를 인간의 자율의지에 의한
부단한 수양의 길로 이해하여 그것을 유가미학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는 본 연구자의 의도와도 상통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신창호의
분석은 교육적 차원에만 머물고, ‘天命’과 ‘率性’, 그리고 ‘修道’가 어떻게
하여 유가미학의 심미적 의식에 대한 본원이 될 수 있는가에 관한 분석에
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이와 같은 선행연구의 실적을
바탕으로 中庸의 수장에 나타나는 天命과 性, 道, 敎를 人性의 本源으
로 이해하여 유가미학의 관점으로 분석하겠다. 이러한 작업은 天에 인성의
본원이 있음을 밝히고, 유가의 도덕적 인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미의식의 지
평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학문적 계기가 될 것이다.


2. 인성의 본원으로서의 天命과 性
유학에서 天命이란 인간심성의 근원이 된다. 이것은 中庸의 ‘天命之
謂性’에서 발원한 것이다. 유가는 전통적으로 ‘天’에 근거한 인간의 보편적
인 도덕성이 ‘善’하다고 여겼다. 특히 中庸을 중시하였던 新儒家들은 인
간은 天의 理致를 품부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이 하늘을 본받아서 맑
10) 신창호, 「중용首章의 교육학적 해석」, 교육철학 제34집, 2008.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41
고 순선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天에 근거한 인간의 ‘性’은 인간행위의 도
덕적 근본이며, 美德과 美行의 근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땅 속 깊은 곳에서 처음으로 솟아오르는 맑은 샘물과 같다.
다만 이러한 맑은 샘물이 보다 큰 물결을 따라가다 보면 탁해질 수도 있
지만, 그 탁한 물은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탁한 물은 여과시키면 본래의
맑은 물이 되듯이 인욕에 가리어 본래의 순선한 아름다움을 잃은 인간의
성품 역시 천리의 회복을 통하여 그 본성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선악의 문제 역시 어두움이 빛에 대립하여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소멸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악 또한 선이 가려짐으로써
의 결핍일 뿐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면 악의 책임이 실재성의
근원으로서의 天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선을 실현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할 수 있다.11)
주희는 ‘天命之謂性’의 의미를 “天이 인간과 萬物을 化生할 때 陰陽五
行의 氣로 形을 이루고 여기에 理를 부여하니 이것이 命이고, 인간과 物이
태어남에 각기 부여받은 바의 理를 얻음으로서 健順五常의 德을 삼으니
이것이 곧 性이다.”12)라고 주석하였다.
中庸의 이해를 통한 天命의 본뜻의 실천에 따라 사회질서가 정립된다
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가 천지자연의 질서에 어긋나지 않음
으로써 자연이 화육된다고 여겼다. 이와 같이 中庸에서는 인간이 하늘로
부터 품부 받은 바의 인성의 탁월함과 후천적인 선한 습관의 학습과 축적
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인간을 인간답게 할 수 있는, 곧 인간을 다른 여타의
외물들과 구분하게 만드는 인성의 고귀한 특질인 선한 본성의 발현을 목표
로 하는 것이다.
11) 한자경, 동서양의 인간이해, 서광사, 2001, 54~55면 참조.
12) 中庸章句 第1章. 朱子註: 命猶令也, 性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
形, 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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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의 관념은 유가에 있어서 가장 궁극적이며 근원적인 철학적 문제이
다. 고대 중국에 있어서 中庸 이전의 天의 개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었
다. 예를 들면 天은 祖上神이나 神으로서의 帝, 또는 上帝의 의미로 해석
되었다. 또한 인간과 대비되는 ‘自然’으로 해석되기도 하였다.”13)
그 후 주나라에 와서는 帝의 관념에서 天의 관념으로 바뀌게 된다. 이러
한 帝와 天의 관계에 대하여 徐復觀은 “주나라 역시 은나라 문화와 제도를
계승하여 발전시키게 되는데 주나라 초기의 天, 帝, 天命 등의 관념들은 모
두가 은나라 문화의 전통을 이은 것이라고 하였다.”14) 절대적 권능을 가진
절대자로서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한 은나라 시기의 帝는 주나라 초기에
이르러서는 역시 인간의 위에서 주재하지만 백성의 고통과 어려움을 가엾
게 여기고 살피는 愛民의 특색을 지닌 ‘天人同心’과 ‘天人合德’의 모습이
나타나게 된다.15)
이와 같이 당시에는 天이 인간은 물론이고 천지만물의 궁극자로서 절대
적 권위를 지닌 지고 무상한 존재였다. 또한 인간생명의 근원이며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天에 대하여 徐坰遙는 물리적으로 존재
하는 단순한 자연적 의미의 天과 인간 행위를 주재하는 인격적 의미의 天
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천명이란 인간성명의 내면세계에 있는 인간존재가 인간다울 수 있는 가
능근거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천은 인간존재의 근원인 동시에 인간에
게 품부된 실천적 사명으로서의 당위법칙인 것이다. 중용에서 ‘하늘이 사
람에게 명한 것을 본성이라 한다’는 명제는 곧 천명이 성이요, 인간의 본성
은 천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임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16) 天에 관한 이해
를 바탕으로 中庸에서는 모든 존재의 근원인 하늘과 인간의 본성을 하나
13) 양국영, 황종원 譯, 유교적 사유의 역사,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6, 106면.
14) 徐復觀, 中國人性論史, 臺灣商務印書館, 1990, 15~21면.
15) 조원일, 선진유가의 사상, 전남대학교출판부, 2011, 48면 참조.
16) 서경요, 조선조 유학자의 중용읽기, 문사철, 2009, 97~98면.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43
로 연결하여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中庸은 인간 본성의 도덕적
가능성을 하늘과의 연계에서 이해함으로써 인간으로서 순선한 본성의 회
복과 실현을 지향하는 것이다.
中庸은 자연의 질서와 인간사회의 질서를 직접 연계하여 天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를 나타내는 사상이다. 그러나 이것은 天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지가 아닌 天意가 人事를 따른다고 하는 현실 긍정 사상이라고 할 수 있
다.17) 유가의 天命의식은 子思의 中庸을 관통하여 맹자에 이르렀다.
“맹자는 공자를 계승하여 심미 쾌락을 인생의 최고 이상으로 여겼는데, 명
확히 <부모를 섬기고 事親(仁)> <형을 따르는 從兄(義)> 윤리 질서를 이
러한 쾌락의 기초로 삼았다.”18) 이와 같이 맹자에 있어서의 진정한 심미의
식은 인간의 心性에 본래부터 내재되어 있는 ‘仁義禮智’라는 순선한 性의
도덕의지라고 할 수 있다. 주희 역시 본성에 대하여 인간의 善을 이를 수
있는 도덕적 근원이라고 여겼다.19)
그러므로 心과 性의 관계에서 말하면 心은 곧 性으로 仁의 주관적인 의
미가 도출될 수 있으며, 性과 理의 관계에서 말하면 性은 곧 理로 仁의 객
관적인 의미가 도출될 수 있으며, 理와 道의 관계에서 말하면 理는 곧 道
로써 仁의 절대적인 의미가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20)
2하늘은 유가에게 있어서 인간존재의 도덕적 근거가 되고 존재하는 모든
천지만물의 기원이며 창조의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中庸에서의 天
命은 天道의 구체적인 표현이며 자기실현이다. 그러므로 中庸에서의 性
은 生生不已하는 天의 자기실현의 과정이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 속에
구현된 것으로서 本然의 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17) 안영탁, 「中庸과 孟子에 나타난 道德的 人性論에 대한 硏究」, 성균관대학교 박
사학위논문, 2013, 27면.
18) 이택후, 권 호 譯, 앞의 책, 88면.
19) 양국영, 황종원 譯, 앞의 책, 107면 참조.
20) 蔡仁厚, 儒家心性之學論要, 文津出版社, 1990, 2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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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中庸에서의 性이 맹자의 성선설에 입각한 성으로 언급되는 것에
무리가 있고 性을 理로 간주하는 주희의 주장에 인간과 사물의 본성에 대한
논리적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의 性은 완전한 善으
로 가기 위한 善의 단서가 되는 근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본고가
지금까지 분석한 인간생명의 근원으로의 하늘이며 그 생명의 인성이 아름다
울 수 있게 하는 善의 본원으로서의 天命과 性에 대한 분석의 귀결이다.
3. 率性과 道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의지
앞의 단원에서 주희는 ‘天’에 대한 개념을 천인합일적 의미의 道德天으
로 이해하였다. 그리고 ‘性’이란 어길 수 없는 하늘의 명령으로 이해되고 있
다. 이러한 논리를 토대로 하여 주희는 ‘性’을 ‘理’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인
간의 性과 物의 性을 동일하게 파악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인간과 物의 性
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라는 사변철학적인 논쟁을 불러왔다.21) 본고의
역할은 이러한 학문적 논쟁에 관한 해명이 아니다. 다만 하늘의 命을 받은
純善한 인간의 心性과 人性은 타자로서의 인간은 물론이고 천지자연의 모
든 사물까지도 배려하고 관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본고가 생각하는
유가철학에서의 하늘이 품부한 性을 따르는 도덕에 입각한 인간의 미적 탐
구의지라고 생각한다.
中庸에서는 “性을 따르는 것은 率이라고 하며 道를 品節해 놓은 것을
교라고 한다”22)고 하였다. 이 말의 의미는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순선한
인간 본성의 확충이며, 그것은 학습의 축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내용을 살펴본다.
21) 안영탁, 위의 논문, 40면.
22) 中庸集註 第1章: 率性之謂性, 修道之謂敎.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45
“道라는 것은 情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며 情이라는 것은 性으로부터 생겨
나는 것이다. 道의 시작은 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학습을 거쳐 완성되는
목표지점은 義에 가까운 것이다.”23)
道가 情에서 비롯되고 情은 性에서 생겨난다는 것은 天理를 보존하여
情의 상태를 올바르게 택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率 에는 天理
를 보존해야 하는 인간의 능동적인 도덕적 자율의지가 담지 되어 있다. 그
러나 이것은 간단없는 학습을 통한 선의 확충으로 이루어지는 인간의 길이
다. 이 길 또한 한 순간도 쉼 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유지보수의 지난한 修
道의 길이다. 이러한 修道의 길은 궁극적으로 義를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
므로 義는 情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善의 확충은 天理를 보존하는 理의 배
양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아름다운 인성의 情理가 들어나는 도덕적
인 관점에서의 미적 탐구의지에 있는 것이다. 심미적 감성이 메마른 사회는
무미건조하며 독선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희는 “‘率性之謂道’의 ‘率’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率은 따름
이고 道는 路와 같다. 사람과 물건이 각각 그 性의 自然을 따르면 일상생
활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이른바 곧 도라고 하는 것이다.”24) 주희는 “본성은 이치이다.”라는 전제 하
에 率性, 즉 性을 따르는 것을 마땅히 걸어가야 할 길로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은 곧 주희에 있어서 인간의 길은 자연적인 순선한 도덕적 본성에 따라
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25)
그러나 이 논문이 ‘率性과 道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의지’라고 한 이
유는 무의지적인 순종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의 순선한 도덕적 자율의지를
23) 性自命出 : 道始於情, 情生於性, 始者近情, 終者近義.
24) 中庸集註 第1章 朱子註: 率, 循也, 道, 猶路也, 人物, 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
事物之間, 莫不各有當行之路, 是則所謂道也.
25) 안영탁, 위의 논문, 40면.
346 인문학연구 제52집
강조하기 위함이다. 정명도와 정이천과 주희를 비롯한 송대의 신유가들은
天命을 하늘의 초월적인 도덕근원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그것을 품부 받은
性은 인간존재의 순선하고 선천적인 도덕적 본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에
게 있어서 率性의 의미는 무조건적이고 무의지적으로 도덕적 본성을 충실
히 따르는 맹목적인 순종의 의미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필자는 率에는 반
드시 인간의 도덕적 자율의지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길은 무조건 따라가는 선천적으로 정해진 길이 아니다. 다만 하늘
과의 간단없는 교섭과 소통에서 性의 발현을 선택하는 것, 이러한 인간의
지가 率性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는 여러 갈래의 길들이
기다리고 있다. 인간이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길을 선택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 개개인의 자율적인 의지며 결단이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자율적 의지가 진정한 率性이며, 率性은 ‘性’을 따르는 것이므로 곧
天命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天命이 곧 道라고 할
수 있으며 이 道라는 것은 인간에 있어서 잠시도 떠나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中庸에서는 “도란 잠시도 떠날 수 없는 것이니 떠날 수가 있
으면 도가 아니다”26)라고 하였다. 본고는 中庸을 만물일체의 생명의식
으로 파악하여 능산자의 위치에 있는 인간이 모든 일체만물과 화합하고 소
통하는 생명의 길로서 이해하였다.27) “性이 개체적인 성격을 강조하여 표
현한 말인 점에서 본다면, 性을 따르는 것이 道라고 했을 때의 道는, 개체
의 구체적인 행위에 관한 판단기준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말하면 天道가 아니라 人道가 되는 것이다.
道는 우리말로 ‘길’이라는 뜻이므로 人道란 ‘사람이 다니는 길’이 되는데 사
람들은 길 아닌 곳으로 다니기도 하기에 이를 경계하는 의미에서 ‘사람이
마땅히 다녀야 할 길’로 그 뜻이 확대되고, 또 길을 다니는 것이 사람의 행
26) 中庸集註 第1章: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非道也.
27) 안영탁, 위의 논문, 42면.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47
위 일반을 상징하게 됨으로써 道는 결국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리’
라는 뜻으로 정리된다.”28) 그러므로 인간의 순선한 의지에서 발로하는 사
람이 마땅히 다녀야 하는 길로서의 人道를 강조한다.
“인간은 인간이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는 경우가 많다. 이 길은 하늘이
명한 길이 아니다. 타자와의 화해와 공존을 외면하고 개인적인 욕심에 눈이
멀어 본성에서 멀어지면 그 길은 사람이 가야 할 길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
간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인 올바른 人道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부단한 자기
의지의 성찰과 수양의 노력을 해야만 되는 것이다. ‘道’라는 것은 잠시도 떠
날 수 없는 것이며 떠나는 순간 그것은 바로 道가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率性 즉 性을 따르는 진정한 의미를 바르게 인식해야 된다.
인간에게는 각기 자질의 차가 있어서 그러한 자질의 차이에 따라서 자기가
지녀온 ‘性’에 대한 自覺程度와 자기실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기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 본성 자체는 인간
모두가 천부적인 ‘善’의 단서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모
든 가치와 가능으로 충만 되어 있는 천지자연에서 독립 자존하는 주체로서
자기완성과 자기실현의 모든 능력과 책임을 자각해야 된다.”29)
“그러므로 인간은 참된 교육을 통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道’를 개척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이 잘 어우러져서 교류하는 생명존중의 문명을 개
척해 나가야 한다.”30)
‘道’는 위대한 길이어야 한다. 위대한 길이란 정정당당하고 정의로운 문
명창출의 길이다. 그러므로 大道는 또한 숨김이 없는 밝은 길이다. 도덕생
명은 대체로 은밀한 곳에서 상처를 입고 훼손된다. 그러나 하늘이 내려다보
고, 나의 마음이 알고 있으므로 천하에 비밀은 없다. 그러므로 홀로 있음에
28) 이기동, 대학중용강설,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1993, 93면.
29) 안영탁, 위의 논문, 43~44면.
30) 안영탁, 위의 논문, 43~44면.
348 인문학연구 제52집
더욱 더 戒愼하고 恐懼해야 되는 것이다. ‘道’는 나의 몸 밖에 존재하는 어
떤 객관적 절대가 아닌 바로 나의 몸과 함께 하는 것으로서의 나이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道’는 나의 참다운 삶의 방식이며 인생의 길인 것이다. 도
덕생명의 실현은 ‘道’에서 비롯된 지극한 ‘善’과의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
것이 천명을 따르는 참된 率性의 길이며, 인간의 도덕적 자율의지에 기반
한 유가적 미의식에 대한 의지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4. 修道와 敎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수양
率性이 본성을 따라가는 인간의 길이라는 의지적 선택이라면, 修道는
그 선택된 길을 끊임없이 갈고 닦고 보수해 나가야 하는 문명창출의 실천
적이고 도덕적인 인격수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道는 영원한 修道
의 대상이다. 이 修道를 곧 敎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교육이라고
도 할 수 있다. 교육은 문화와 문명창출의 길이며 참된 인성을 기르는 率性
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31) 주희는 ‘修道之謂敎’를 주석하면서 敎의 主體
로서 聖人을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聖人의 가르침은 구체적으로 ‘禮樂刑
政’이라고 할 수 있다.
中庸의 ‘率性之謂道’의 ‘道’가 天命으로서의 하늘의 道라면 인간이
修道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사물이 함께 어우러
져 공존, 공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르침의 대상과 주체는
특정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며 또한 지배계급의 확대재생산에 기여하
기 위한 것은 아니다.32) 다음은 주희의 修道와 敎에 관한 주석의 내용이다.
31) 김충열, 중용대학강의, 예문서원, 2007, 132면 참조.
32) 안영탁, 위의 논문, 46면.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49
사람과 사물이 생겨남에 각각 부여받은 바의 理를 얻음으로 인하여 健順․五
常의 德을 삼으니, 이른바 性이라는 것이다. 率은 따름이고 道는 路와 같다. 사
람과 물건이 각각 그 性 의 自然을 따르면 일상 생활하는 사이에 각각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이 있지 않음이 없으니 이것이 곧 이른바 道라는 것이다. 修는
品節함이다. 性과 道가 비록 같으나 氣稟이 혹 다르기 때문에 過하고 不及한
차이가 없지 못하다. 그러므로 聖人이 사람과 물건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것을
인하여 品節하여 天下에 法이 되게 하셨으니 이것을 일러 敎라 하니 禮樂과
刑政 같은 등속이 이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몸에 性이 있음은 아나 하늘에서 나
온 것은 알지 못하고, 일에 道 가 있음은 아나 性에서 말미암음은 알지 못하고
聖人의 가르침이 있음은 아나 나의 固有한 것을 인하여 만들었음은 알지 못한
다. 그러므로 子思께서 여기에 첫 번째로 이것을 發明하셨으니 董子의 이른바
‘道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다’는 것도 또한 이러한 뜻이다.33)
위의 내용에서 주희는 修道의 뜻을 삶의 길에 차 등을 두어서 절차를 매
긴다 라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修의 의미는 품격에 따라 절도 있게 행한
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제재하고 교정하는 일로서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
을 마름질하고 바르게 잡아서 중도에 맞게 하는 일이다.34) 그러므로 修道
之謂敎에서의 敎는 성인의 가르침을 교훈으로 하면서 보다 더 의지적인
도덕적 인격수양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敎는 인간의 삶을 높이고 보
다 더 질서 있고 합리적으로 만드는 제도적인 장치이다.
이러한 관점을 확장하면 中庸에서 말하는 敎는 ‘求諸己’에서 시작하는
修身과 修齊가 治平으로 확산되어가는 궁극의 이치를 닦고 수련하는 유가
33) 中庸集註 第1章. 朱子註: 人物之生, 人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
性也, 率, 循也, 道, 猶路也, 人物, 各循其性之自然, 則其日用事物之間, 莫不各有當
行之路, 是則所謂道也, 修, 品節之也, 性道雖同, 而氣稟或異, 故, 不能無過不及之差,
聖人, 因人物之所當行者而品節之, 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敎, 若禮樂刑政之屬, 是
也, 蓋人, 知己之有性而不知氣出於天, 知事之有道而不知其由於性, 知聖人之有敎
而不知其因吾之所固有者裁之也, 故, 子思於此, 首發明之, 而董子所爲道之大原出
於天, 亦此意也.
34) 박완식, 중용, 여강, 2005, 1면 참조.
350 인문학연구 제52집
적 심미쾌락을 추구하는 일종의 심미적 관점에서의 인격수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35) 이와 같은 심미수양의 기저는 학문의 연마를 통한 인성의 함양
이라고 할 수 있다. 즉 修道의 최종적인 목표는 ‘大義’가 구현된 아름다운
‘至善'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데 있으며,
자신은 물론 타자에 이르기까지 늘 새롭게 깨우쳐서 지극한 선에 머무는
것이다”라고 하였다.36) 지극한 선에 머무르게 할 수 있는 인간의 도덕생명은
심미적 감성의 발현이며, 이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곧 仁의 실현인 것이다.
儒家의 학문 또한 仁의 체현이며 구현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
간의 도덕생명에 대한 심미적 감성활동은 잠시도 멈출 수가 없는 것이다.
荀子「勸學」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학문은 어디에서 시작하고 어디에서 끝나는가. 이르기를, “그 방법은 誦經에
서 시작해 禮를 읽는 것으로 끝나고 그 뜻은 선비가 되는 데서 시작해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난다”고 했다. 積力이 오래 되어야 비로소 그런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니 학문이란 죽은 뒤에나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학문의 방법에는 끝이
있지만 그 뜻은 須臾라도 버려둘 수 없다. 학문을 하면 사람이 되고 학문을 버리
면 짐승이 된다. 그런데 書는 政事를 기록한 것이고 시는 음악에 맞는 것들
을 모아놓은 것이고 예는 법의 대분이고 여러 일에 관한 綱紀이다. 그래서 학
문은 예기에 이르러 그치는 것이다. 무릇 이를 일컬어 道德之極이라고 한다.
예의 敬文과 樂의 中和, 시․서의 廣博, 春秋의 隱微가 천지의 사이
에 있게 되면 모든 것을 마치는 것이다.37)
35) 안영탁, 위의 논문, 47면 참조.
36) 大學集註 第1章: 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新)民, 在止於至善.
37) 荀子 「勸學」: 學惡乎始惡乎終曰, 其數則始乎誦經, 終乎讀禮其義則始乎為士,
終乎為聖人, 真積力久則入, 學至乎沒而後止也, 故學數有終, 若其義則不可須臾舍
也, 為之人也, 舍之禽獸也, 故書者, 政事之紀也, 詩者, 中聲之所止也, 禮者, 法之大
兮, 類之綱紀也, 故學至乎禮而止矣, 夫是之謂道德之極, 禮之敬文也, 樂之中和也,
詩書之博也, 春秋之微也, 在天地之間者畢矣.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51
위의 내용에서 不可須臾離는 학덕의 겸수겸행을 잠시라도 그칠 수 없다
는 것으로 하늘의 이치와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고 풀이하고 있다. 순자가
학문은 죽은 뒤에나 끝난다고 말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순자의 해석은 愼獨의 올바른 뜻이 天理의 궁구를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학문과 덕행의 치열한 연마의 과정으로 자칫 불가의 면벽좌선으로 오
해할 수 있는 성리학자들의 오류를 경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문이라는 인격수양의 공효는 禮에 이르러 그치는 것이라고 하며
도덕의 지극함이라고 하고 있다. 결국 修道와 敎의 유가미학적 공효는 예
악형정의 형태로 현실사회의 제도적 장치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修道의 유가미학적 이상은 개개인의 완성을 넘어서 그 공효가 義라는 사
회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성을 유가에서 추구하는 대동
사회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38)
이러한 공동체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이
敎의 역할이다. 敎에 대한 현대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교육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修道之謂敎에서의 敎는 말 그대
로 修道의 내용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학덕수행의 공효라고 할
수 있다. “率性之謂道의 道가 천도라면 왜 修道를 계속해야 하는가? 도
앞에 수가 더해졌다면 그 도는 절대불변 최대선의 완벽한 길이 아니다.
성인의 도 또한 시대에 따라 끊어지기도 하고 있어도 다니지 않아 없어
지기도 한다. 그러니 계속적인 修理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것을 누가 修
理하는가? 성인의 가르침을 받은 군자가 많은 사람과 함께 가기 위해 길을
넓혀야 하고 또 필요에 따라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도 한다.39) 공자는 “사람
이 능히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道
가 사람을 계발하고 키워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道를 개척하고 확대할
38) 안영탁, 위의 논문, 46면.
39) 김충열, 위의 책, 133면 참조.
352 인문학연구 제52집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스스로 길을 개척하고 그 길을 뚫음으로써
문명을 만들어 더 많은 존재와 어우러져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그만큼의 많은 사물과 어우러진다면 더 크고 넓은 길을 개척할 수
있다. 이렇게 문명과 길은 상호 작용해서 발전하고 승화한다. 다시 말하지
만 길을 넓히는 것은 사람의 몫이다. 모두가 사람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위대하게 길러내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40) 天命之謂
性의 性은 절제와 교화를 통한 하늘이 준 ‘善端’을 개발해야 하는 교육적
과정과 자기수행의 과정이며 率性之謂道에서의 率 또한 개발과 절제를 통
한 수행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修道의 의미는 사람이 道를 개척하
고 확대하여 大同社會建設이라는 유가적 이상향으로 귀결되는 것이다.41)
“인간의 성이란 천이 드러난 것인데 이때의 천의 본질은 절대선으로 이해
된다. 이후 논의되겠지만 천의 본질이 절대선으로 이해되는 것은 天道의
생성의 이치[生生之理]와 관련이 있다.
천이 드러나게 된 의미를 지니는 인간의 ‘性’은 性善의 내용을 가진다.
도란 천이 인간의 성에 투영되어 나타난 것으로서, 이 도의 실천은 예악 등
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일단 천, 도, 교 모두가 성에서 섭렵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악이 거론된다는 것은 성과 도가 이미 근원적인 측면에
서 미적 차원으로 논의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
럼 유가의 경우 예술은 일단 도덕적 인성교육의 차원에서 논의된다. 유가에
서는 특히 교육의 내용으로서 예악을 거론하고 있다.
교의 내용을 조금 더 확장시켜 말한다면, 군자가 되는 데 필요한 가장 기
본적인 육예(六藝)를 거론할 수 있다. 유가는 도가 드러난 것을 문文이라
고 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인 내용으로 예악과 제도를 말하고 있다. 여기서
예악이 형정․제도와 함께 논의되는 것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42)
40) 김충열, 위의 책, 132~133면.
41) 안영탁, 위의 논문, 49면 참조.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53
인간의 性은 天이 드러난 것이며 도란 인간의 性이 투영된 것으로서 이러
한 道의 실천은 예악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修道之謂敎에서의 敎는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하여 순선한 본성을 바탕으로 예악형정이라는 문화와
제도를 창출해 내는 인간의 길이다. 이것이 곧 修道와 敎의 심미적 관점에서
의 도덕수양이며 유가미학에서의 인성미의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가의 심미의식은 天 혹은 天理를 인간에게 적용시켰을 때 나타나는 성선
적 인간의 완성과 그 성선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교육의 차원에서 논의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유가의 미적
수양은 매우 도덕적이고 교육적이며 인문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유가의 예술과 미학관을 우리가 다른 측면으로 이해한다면 바
로 형이상학적 仁의 체득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
면 천도의 ‘善’적인 측면이나 인간의 성선은 결국 교육을 통한 仁의 완성으
로 이해하기 때문이다.43) 이것이 본고가 생각하는 修道之謂敎의 진정한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수양이며 유가 미학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5. 결론
지금까지의 분석에 의하면 인간의 性은 天이 인성에 드러난 것이고, 천
의 본질은 순선함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인성의 본원이며, 근원이 되는
것이다. 中庸은 유학에 있어서의 인간심성의 도덕철학이며 삶의 철학이
다. 왜냐하면 ‘天命之謂性’이라는 명제에서 인간본성의 시원을 밝히고 있
다. 또한 인간의 일상과 이상적인 모습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도덕적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순선한 인성에서 발현
42) 조민환, 위의 책, 38면.
43) 조민환, 위의 책, 41면 참조.
354 인문학연구 제52집
한다. 이러한 인성에서 인간의 도덕의식이 함양되는 것이다. 인간의 도덕적
인성미는 天理를 따르고 사욕을 절제하는 도덕수양에 의하여, 일상에서의
도덕행위로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본고는 이러한 인간의 도덕적 인성이
행동으로 나타날 때, ‘仁義禮智’라는 유가적 미 의식의 구현이며 이것이 유
가미학의 참된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中庸에서의 性은 生生不已
하는 天의 자기실현과정이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 속에 구현된 것으로서
本然의 性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인간의 性은 완전한 善으
로 가기 위한 善의 단서가 되는 근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완전한 善이 이
룩된 세상은 곧 至善의 세계이다. 이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아름다움
이 ‘美’이며 이것은 양[羊]같이 착함이 크다[大]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至善
에 이르는 사람은 진정한 도덕적 美人이며 아름다운 인성미를 구현한 사람
이라고 할 수 있다.44) 이것이 본고가 지금까지 분석한 인간생명의 근원으
로의 하늘이며, 그 생명의 인성이 아름다울 수 있게 하는 善의 본원으로서
의 天命과 性에 대한 분석의 귀결이다.
인간의 자율적 도덕의지가 진정한 率性이며, 率性은 ‘性’을 따르는 것이
므로, 곧 天命을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性’을 이렇게 자각할 때, ‘率
性之謂道’ 에서의 ‘率’은 부단한 자기노력을 통하여 학습하고 수행한다는
의미가 된다. ‘道’에 대한 규정 역시 천도나 객관적 법칙의 자연 본래의 ‘道’
가 아닌 인간 교화의 ‘道’가 될 수 있다. 率性이 본성을 따라가는 인간의
길이라는 의지적 선택이라면, 修道는 그 선택된 길을 끊임없이 갈고 닦고
보수해 나가야 하는 실천적인 심미적 관점에서의 도덕의지에서 비롯되는
인격수양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中庸의 ‘率性之謂道’의 ‘道’가 天命으
로서의 하늘의 ‘道’라면, 인간이 修道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과 인간, 그
리고 인간과 사물이 함께 어우러져 공존, 공생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中庸에서 말하는 敎는 ‘求諸己’에서 시작하는 修身과 修齊가 治平으로
44) 안재순, 앞의 책, 2~53면 참조.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55
확산되어가는 궁극의 이치를 닦고 수련하는 인격수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修道의 미적이상은 개개인의 완성을 넘어서 그 공효가 義
라는 사회성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성을 유가에서 추구하
는 대동사회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敎에 대한 현대적 의미는 일반적으로 교육자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행위
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修道之謂敎’에서의 ‘敎’는 말 그대로 修道의
내용이다. 그 과정을 통해서 드러나는 학덕수행의 공효라고 할 수 있다. 天
命之謂性의 性은 절제와 교화를 통한 하늘이 준 善端을 개발해야 하는 교
육적 과정과 자기수행의 과정이며 率性之謂道에서의 ‘率’ 또한 개발과 절
제를 통한 수행의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修道의 의미는 사람이 도를
개척하고 확대하여 대동사회건설이라는 유가의 도덕적인 미적이상으로 귀
결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하여 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는 유가의 도덕적 미의식의 시원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인
성미가 또한 일상의 생활에서 도덕적 美行으로 드러날 때, 이것이 곧 유가
미학의 참된 의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인성과 인격의 아름다움
이 외부로 나타날 때 우리 사회는 밝고 아름다울 수가 있으며, 이것은 天에
인성의 근원이 있음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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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自命出.
荀子.
中庸章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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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庸에 나타난 天命과 性, 道, 敎의 유가미학적 관점에 대한 연구 357
Abstract
A study on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 awareness of
heaven's will and seong, do, kyo (性, 道, 敎) in Jungyong(中庸)
Ann, Young-tak*45)
The purpose of this research is to analyze heaven's will and seong, do,
kyo (性, 道, 敎) on the first chapter of Jungyong(中庸)through the root
of personality beauty(人性美) and aesthetic awareness of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s(儒家美學). Humane personality(性) is showing heaven(天) in
personality and essence of heaven is pure goodness. It's the foundation
and root of personality. Jungyong(中庸) is ethical philosophy of humane
personality and philosophy of life because the origin of humane personality
is shown in proposition of ‘cheonmyungjiwiseong’(天命之謂性). In addition,
it concretely expresses human's daily life and process to their ideal
appearance.
Ethical behavior of human is caused by good personality of human.
Ethical awareness of human is cultivated by the personality. Ethical
personality beauty of human follows heaven reason(天理) and shows ethical
behavior of daily life by ethical cultivation controlling private desires. When
the personality beauty of human is shown as ethical behavior, it can be
true meaning of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s. Ethical autonomous will
of human is true following of personality and following of personality means
following by personality, so it means following of heaven's will(天命). If
following of personality(率性) is the selection of will to follow personality,
morality cultivation(修道) can be practical aesthetic cultivation of cultivation
creation to develop, improve and repair the selected way. Kyo(敎) of
Sudojiwikyo(修道之謂敎) is the way of human who creates culture and
system, Yeakhyungjung, based on good personality. It can be rightly aesthetic
* Department of Eastern Philosophy / SungKyunKwan University
358 인문학연구 제52집
cultivation of morality cultivation(修道) and kyo(敎) and aesthetic ideal
of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s. When personality beauty of human is
shown as beautiful behavior(美行) in daily life, it can be true meaning of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s. When humane personality and personality
beauty are shown outward, our society can be bright and beautiful and
it can be possible when we correctly recognize the root of personality is
in heaven.
Key Words : Jungyong(中庸), Heaven's will(天命), oriental philosophy aesthetics(儒家美
學), following of personality(率性), morality cultiv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