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약
[연구 목적]
본 연구의 목적은 유교의 성론(性論)에서 동중서(董仲舒)의 인성론(人性論)이 차 지하는 위상(位相)을 검토하여 유교 인성론의 흐름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연구 내용]
본 연구에서는 동중서 이전과 이후의 인성론을 성(性)에 관한 추상적 관념론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동중서의 인성론은 매우 구체적인 동시에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이 론 체계이자 지침으로 구명하였다. 먼저, 공자-자사-맹자-순자-주자로 이어지는 전통 인성론의 특징을 간략하게 정돈하고, 다음으로 동중서 인성론의 특징을 논의한 후, 유교 인성론의 역사 와 내용에 근거한 동중서 인성론의 지위를 재정립하였다.
[결론]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의 유교 인성론은 공자에서 주자에 이르기 까지 추상적 관념론의 차원으로 이해되어 왔다.
둘째, 동중서의 성삼품설은 원시유교의 특성 을 종합하는 동시에 주자학의 인성을 여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셋째, 동중서의 성삼품론은 유 교 인성론의 중간 지대를 형성하며 구체적인 현실성을 띠면서 정교에 구현되었다. [주제어] 성상근(性相近), 천명(天命), 성선(性善), 성악(性惡), 성삼품(性三品), 본연(本然), 기질 (氣質)
Ⅰ. 서론
유교에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논의는 학술의 중심을 가로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맹자의 ‘성선(性善)’과 순자의 ‘성악(性惡)’을 중심으로 그것을 처리하는 문제는 인간과 사회의 존재를 구명하는 열쇠처럼 인식되어 왔다.
주지하다시피, 공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는 않았다.
논어에서도 ‘성(性)에 관한 구체적 언표는 두어 번에 지나지 않는다.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 다!’라는 표현과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관에 의해 서로 달라진다!’라는 대명제를 제시하였 을 뿐이다.
이후, 맹자와 순자는 본성에 ‘선(善)’과 ‘악(惡)’이라는 가치를 강력하게 개입시켰다. 맹자가 강조한 성선이나 순자가 주장한 성악은 인간 사회의 제반 영역에서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를 상당히 다른 양상으로 진행시켜 나가게 만들었다.
인간의 본성을 선으로 인식하는 경우에 는 그 선을 확장해 나가는 삶을 강조했고, 악하게 인식할 때는 그와 반대의 인생을 고민하게 유도하였다.
그것은 ‘선한 본성의 계발이냐?’, ‘악한 본성의 교정이냐?’라는 인성에 대한 ‘추상 적 관념’을 극단적으로 이끌어 냈다.
엄밀하게 말하면, 인간의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명확하게 재단하여 구명하기란 쉽지 않다. 부분적으로 특정한 근거를 들어 관념적으로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때문에 맹자와 순자의 ‘선악’으로 나눠지는 ‘이분법적 논의’는 ‘관념에 의한 추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기존의 본성에 관한 유교의 전통은 공자 이후, 자사와 맹자를 거쳐 주자로 이어지는 ‘성선의 지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런 만큼 순자는 유학 전통에서 배제되었다.
대신, ‘존천리알인욕(存天理遏人慾)’, 또 는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慾)’이라는 차원에서 선을 대변하는 천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보존하여, ‘악(惡)’ 또는 ‘불선(不善)’으로 대변되는 인욕을 막거나 없애는 작업을 삶의 중심 문 제로 삼았다.
그것은 성악과 연관된 논의가 성선의 그늘에 가려 금기처럼 취급되었다는 학문적 파열음으로 드러났다. 이 지점에서 성악에 관한 인식과 ‘선-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닌,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유기적 차원’의 성품에 관한 이해가 요청된다.
이는 인성론의 발전 과정에서 동중서(董仲舒, B.C.179∼B.C.104)가 제기한 ‘성삼품설(性三品說)’의 위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공자 에서 주자로 이어지는 기존의 인성론 전통이 ‘추상적 관념론’에 치우쳐 있다고 인식하고, 동중 서의 인성론이 그것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구체적 현실론’에 자리하고 있음을 구명해 보려는 시도이다.
Ⅱ. 성(性)에 관한 추상적 관념론
1. 공자의 성상근(性相近)과 천도(天道)
논어에서 공자가 성(性)을 언급한 곳은 두 번 정도이다. 하나는 공자가 직접 말한 대목이 고, 다른 하나는 제자 자공(子貢)의 견해이다.
인간이 타고난 성은 서로 가깝지만 후천적 노력과 습관에 따라 멀어진다(Lunyu, Yanghuo).1)
선 생님의 문장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성(性)과 천도(天道)에 대해 말씀하시 는 것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Lunyu, Gongyechang).2)
1) 論語․陽貨, “子曰, 性相近也, 習相遠也.”
2) 論語․公冶長,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이때 공자가 어떤 의미에서 성을 거론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분명한 것 은 인간의 보편적 속성으로 성을 거명했다는 점이다. 특히, ‘성(性)’과 ‘습(習)’을 대비하면서, ‘선천적 자연성’과 ‘후천적 사회성’을 동시에 거론하고 있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Li, 1998: 60-61).
인간은 태어날 때 선천적으로 보편적 성품을 지닌다. 그것은 ‘성상근(性相近)’으로 표현 된다. 하지만 인간의 삶에는 반드시 후천적 요인이 개입한다. 주변의 다양한 환경이나 영향을 미치는 힘은 사람마다 구별되는 특수한 인성을 형성하게 만든다. 이것은 배우고 익히며, 습관 화를 거치는 가운데 다른 양상으로 표출된다.
그러기에 공자는 ‘습상원(習相遠)’의 시각을 신중 하게 제기했다. 유학에서 인간성을 이해하는 방식은, 이 지점에서 만난다. ‘성상근’과 ‘습상원’으로 요약되는 인생의 함수는 본성과 습관을 어떻게 활성화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성 은 서로 비슷한 형태이거나 비슷한 가능성의 세계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인생을 어떻게 운용 하느냐의 여하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인간이 서로 비슷한 보편적 본성을 지녔다는 ‘인격적 특 징[personality]’은 본연지성(本然之性)에 해당한다. 반면에 ‘다르다’는 인식, 즉 개인마다 구체적 이고 특수한 양식의 ‘성격적 특성[character]’은 기질지성(氣質之性)로 이해된다. 이 가운데 본연 지성은 순수선(純粹善), 또는 적어도 선한 것이고, 기질지성은 선악(善惡)이 혼재되거나 악의 경 향성을 띤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자공이 언급한 성은 ‘성상근’과는 다른 차원에서 이해된다.
공자는 정말 성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성에 대해 다양하게 언급했으나 내용이 어려워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없 었는가? 이에 대해서도 성리학의 견해를 빌려서 이해해야만 하는 사상적 한계가 있다.
주자는 “성은 사람이 부여받은 천리이다”라고 해석한다(Lunyu-jizhu, Gongyechang).3)
3) 論語․公冶長, “性者, 人所受之天理.”
그것은 실제로 천지자연의 본체인 천도(天道), 즉 자연의 질서와 같다. 이는 천리가 인간의 내면으로 전이되어 성으로 내재한다는 우주론적 특징이다. 다시 말하면 성은 인간이 타고나면서 천으로부터 부여 받은 자연적 질서이자 이치이다. 여기에서 성리학의 기본 명제인 ‘성즉리(性卽理)’의 사고가 싹 텄다. 성은 천지자연의 질서가 인간에게 선천적이고 숙명적이며 일정한 양식으로 주어진 것이 다. 그것은 이치라는 불변의 형이상학적 법칙으로 주어졌기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필연이다. 공자가 말한 성과 자공이 언급한 성은 의미 맥락상 차원이 다르다. 서복관(徐復觀)은 주자의 해설을 빌려, 공자가 말한 성상근에서 성을 기질지성으로 보았다. 반면, 자공이 말한 성은 의리 지성(義理之性)으로 이해하였다(Xu, 1965: 77-80). 공자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두 차원을 동시에 고려하며 인간성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인간 내 부에서 본성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즉 본성 자체에 존재하는 유사함과 차이의 가능성에 대한 긍정이다. 인간은 사람으로서의 보편성과 각자의 깨우침을 통해 자기의 성품을 독특하게 펼쳐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기에 인간은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며 그것을 향해 노력한다. 자공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타고나는 보편성에 기초한 본성을 자연의 질서와 동시에 거론하 였다. 누구에게나 공유되는 객관적․보편적 체계로서의 성품은 다른 사물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간직한다. 이런 차원에서 논어에는 기질지성과 의리지성이라는 성의 두 차원이 동시 적이며 이중적으로 제기되어 있다.
2. 자사(子思)의 천명(天命)
자사가 지었다고 하는 중용(中庸)의 첫 마디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다.
이 구절은 일방적 차원으로 이해하면, 형식적으로는 천이 인간을 비롯한 만물에게 명령을 내려 본성을 부 여한 듯하다. 그러나 상호 주체의 측면에서는 대대적(待對的)이다. 명(命)은 천(天)이 준 것이고 성(性)은 만물이 받은 것이다. 명과 성은 주고받은 차원에서 하나 의 이치이다. 천이 만물에게 주는 측면에서는 명령이고 사람과 물건이 받는 측면에서는 본성이다 (Zhongyongzhangju-daquan, Chapter 1).4)
4) 中庸章句大全․第一章 註, “天所賦爲命, 物所受爲性, 理一也, 自天所賦予萬物言之謂之命, 以人物所稟受 於天言之謂之性.”
이처럼 주체의 전이를 통해 명과 성은 준 자와 받은 자 사이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이는 천 의 의리와 도덕 질서를 인간이 스스로 부여하고 적용하는 양상을 띤다. 인간은 천에서 부여한 명령에 따라 본성을 받고 그것을 세상에 펼쳐낸다. 그러기에 “사람 알기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天을 알아야만 한다.”(Zhongyongzhangju, Chapter 20)5)라고 했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연의 질서 를 인생의 준거로 이해하고 삶을 실현하기 때문이다(Ge, 1998: 33-91). 천에 대한 인식은 ‘도덕적 의미’로서의 ‘의리천(義理天)’을 강구 한데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중용의 첫마디인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에서 천은 인간에 의해 도덕적 의미를 부여 받는다. ‘지고한 우주의 근원적 원리(highest primordial principle of the universe)’ 또는 ‘도덕적 원리(moral principle)’로 이해되는 것이다(Fung, 1983: 31). 이때의 천은 단순히 객관적 자연이 나 종교적 숭배 대상을 넘어 도덕 정신의 기준으로 자리매김 된다. 즉 인간에게서 객관적이고 외재적 대상이던 것이 내면으로 반성된다. 거기에서 인간의 다양한 권리와 책임, 의무를 포함 하는 삶의 바탕, 이른바 윤리 의식이 형성된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 삶의 바탕은 자연적 질서 로부터 선천적으로 부여되었다(De Bary & Tu, 1998: 12). 객관 대상인 천은 인간에게 삶의 지침과 권리를 주었다. 이는 단순한 천, 즉 ‘창공(the sky)’ 으로서 물리적 실제가 아니다. 그리고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유일신(唯一 神, the One and Only God)인 하나님이나 알라(Allah)가 모든 것을 주재하여 인간에게 부여한 것과 근원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인식론적으로 인간이 자연의 질서를 삶의 관점에서 파악하고 도출했다는 의미이다.
요컨대, ‘천명=성’이라는 개념을 상정하여 자연과 인간을 통일적이고 연 속적으로 바라보려는 세계관의 표출이다.
3. 맹자의 선단(善端)과 성선(性善)
맹자의 성선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마음과 본성, 감정과 재능의 관계, 이른 바 ‘심(心)-성(性)-정(情)-재(才)’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Yang, 1995: 27-32).
심(心)은 ‘양심(良心)’이며 ‘도덕심(道德心)’이다. 이른바, ‘측은지심(惻隱之心)-수오지심(羞惡之 心)-사양지심(辭讓之心)-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네 차원의 마음을 인간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도덕적 가치 의식으로 정돈했다. 이는 양심이 본구적 양식임을 강변한다. 성선설은 바로 이 본구적․선천적 속성인 사단의 가치자각에서 출발한다(Lao, Jeong trans., 1986). 성(性)은 타고난 속성을 말하는 것으로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생물학적 특성이 잘 드러나는 ‘생리적 성’이고 다른 하나는 도덕 윤리적 특징이 핵심인 ‘의리적 성’이다. 입으로 맛을 보거나 눈으로 색을 보는 것은 생리적 성이고,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나 군신 간의 의리 는 의리적 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맹자는 인간에게서 진정한 성을 도덕 윤리적 차원에서 강조하였다(Mengzi-jizhu, Jinxin II).6)
5) 中庸章句․第二十章, “思知人, 不可以不知天.”
6) 孟子集註․盡心下, “口之於味也, 目之於色也, 耳之於聲也, 鼻之於臭也, 四肢之於安佚也, 性也, 有命焉, 君子不謂性也. 仁之於父子也, 義之於君臣也, 禮之於賓主也, 智之於賢者也, 聖人之於天道也, 命也, 有性焉, 君子不謂命也.”
정(情)은 일반적으로 구체적 상황, 현재의 정황이나 실정, 또는 감정 등을 가리킨다.
맹자는 그 정과 같은 것이라면 선을 행할 수 있다고 하여, 정을 성의 움직임으로 보았다(Mengzi-jizhu, Gaozi I).7) 성정의 관계는 ‘우산지목(牛山之木)’을 통해 구체적으로 비유된다(Mengzi-jizhu, Gaozi I).8) 성은 본래의 성향이고 정은 실제의 정황이다. 존재 자체의 동정(動靜) 문제로 환원 해 볼 때, 성은 고요함이고 정은 움직임이다. 이는 펼쳐지기 전의 상황인 미발(未發)과 펼쳐진 후의 정황인 이발(已發)의 관계와도 같다. 이때 정과 성은 표리 관계이다. 인간의 고요한 마음 의 상황이 행위 작용으로 나아간 차원에 비유된다. 정은 마음을 펼쳐내느냐 잃어버리느냐의 작 용에 관한 것이다. 재(才)에 대한 인식은 맹자의 선단(善端)을 이해하는 열쇠이다. 맹자에게서 재는 세 가지 뜻 을 품고 있다. 첫째는 사람이 처음 태어날 때의 ‘바탕’으로 질(質)이고, 둘째는 만들어 갈 수 있 다는 차원의 ‘재능(才能)’이며, 셋째는 재능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Mengzi-jizhu, Gaozi I; Jinxin II; Jinxin I).9) 재(才)는 원래 ‘초목의 싹’을 의미하는 글자로, 초목이 싹을 틔우고 막 자 라나는 것을 뜻했다. 그러므로 인간이 처음 태어나면서 지닌 잠재능력이며, 발전 가능성을 내 포하고 있다. 거기에서 재능으로 의미가 확장되었고, 재능을 보유한 인간으로 발전되었다고 판 단된다. 맹자에게서 인간의 바탕은 본구적 선단이었다. 그러므로 재질이나 재능 또한 마땅히 선이다(Mengzi-jizhu, Gaozi I).10)
7) 孟子集註․告子上, “乃若其情則可以爲善矣, 乃所謂善也.; 情者, 性之動也.”
8) 孟子集註․告子上, “牛山之木, 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兩露之 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 也哉.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 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 與人相近也者, 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 不 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 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9) 孟子集註․告子上, “若夫爲不善, 非才之罪也.”; 孟子集註․盡心下, “其爲人也, 小有才.”; 孟子集註․盡心 上, “得天下英才而敎育之.”
10) 孟子集註․告子上, “才, 猶材質, 人之能也. 人有是性, 則有是才, 性旣善, 則才亦善.”
이렇게 볼 때, 심, 성, 정, 재를 구체적으로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양상에 따라 다르기는 하 나, 서로 유사하며 통하기도 하고 동일한 의미로 드러나기도 한다. 그래도 뉘앙스를 달리하는 표현으로 정돈하면, 심은 인간의 본질적 존재 근거로 보이지 않는 형태의 신령스러운 것이다.
성은 이 심을 외면적으로 표현하는 말이고, 정은 실제로 드러난 상황이며, 재는 그것을 가능하 게 만드는 저변의 힘이다. 맹자의 성선론은 이런 인간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4. 순자(荀子)의 욕망(欲望) 분출
맹자가 도덕적 차원에서 선단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여한데 비해, 순자는 성을 ‘있는 그대 로의 자연성’으로 강조한다. 성은 본래 질박한 것이고, 인위는 문명이 점차 자라난 것이다(Xunzi, Lilun).11)
나면서부터 저절 로 그러한 것을 성이라 하는데, 그 성의 조화된 상태가 자라나서 구체적인 감응을 받아 자연적으 로 일어나는 작용 또한 성이다(Xunzi, Zhengming).12)
성이란 타고난 그대로를 말하는 것이지, 후 천적으로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Xunzi, Xinge).13)
성 자체에 대한 언급만으로 볼 때, 순자는 맹자가 주장하는 천(天)의 도덕 의지를 적극적으 로 수용하지 않았다.
맹자는 인위적으로 도덕적 자각 의식을 불어넣으려고 강조했지만, 순자는 자연성이나 자연 질서의 실체를 선차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 다음, 선에 대한 설명과 ‘성이 악하다’는 논리를 전개한다(Xunzi, Xinge).14)
11) 荀子․禮論, “性者, 本始材樸也, 僞者, 文理隆盛也.”
12) 荀子․正名, “生之所以然者, 謂之性, 性之和所生, 精合感應, 不事而自然, 謂之性.”
13) 荀子․性惡, “凡性者, 天之就也, 不可學.”
14) 荀子․性惡, “人之性惡, 其善者僞也. 今人之性, 生而有好利焉. 順是故爭奪生, 而辭讓亡焉. 生而有疾惡焉. 順是故殘賊生, 而忠信亡焉. 生而有耳目之欲, 有好聲色焉. 順是故淫亂生, 而禮義文理亡焉. 然則從人之性, 順人之情, 必出於爭奪, 合於犯分亂理, 而歸於暴. 故必將有師法之化, 禮義之道. 然後出於辭讓, 合於文理, 而歸於治. 用此觀之, 然則人之性惡明矣, 其性者僞也.”
순자가 말하는 성은 사람이 태어나면서 지니고 나온 자연성이다. 이 자연성은 인간뿐만 아니 라 짐승이나 여타의 동물도 갖추고 있다.
본능과도 비슷하게, 개개의 사물이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타고난 감각기관 자체, 즉 자연성이 악 자체는 아니다. 순자가 고민한 것은 인간의 감각적 욕망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하려는 욕구, 개인의 사사로 운 욕심과 욕망에 이끌리어 자연성이 악의 경향으로 추락하는 것에 대한 염려, 이것이 본래 타 고난 성을 악으로 규정하는 이유이다. 인간의 욕망은 이익을 추구하고, 시기와 질투, 미움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의 눈과 귀는 너무나 감각적인 욕망으로 치우쳐 있어 사회를 퇴폐와 음란 속으로 빠트릴 우려가 있다. 간단하게 정돈하면, 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자연성으로서의 욕망-본능 그 자체-을 순수한 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Xiang, 1990: 66). 문제는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한다. 인간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욕망의 대상은 유한하다. 하지만 개인의 욕망은 무한하게 흐를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기에서 혼란과 쟁탈, 질시 등 악이 발생할 개연성이 보인다. 자연성으로서의 욕망은 선악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본래 그러한 자연 일 뿐이다. 하지만 개인의 욕망이 인간관계의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될 때, 악이 개입한다.
순자 는 이러한 인간 본성이 감각적 욕망을 펼쳐나가는 근거라는 점에 주목하였다. 본성은 악으로 뻗어나갈 필연성을 함장하고 있다. 따라서 순자는 인간의 교화, 즉 예(禮)와 법(法)에 의한 삶의 조절과 통제를 강조한다.
5. 주자(朱子)의 성론(性論): 본연(本然)과 기질(氣質)
성에 대한 주자의 생각은 공․맹․순의 견해와 상당히 다른 차원에서 거론된다.
성리학의 집 대성이 그렇듯이, 앞에서 언급한 공맹과 자사의 인성은 성선의 측면에서, 성리학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었다.
주자는 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은 리일 뿐이다. 그런데 리는 천의 기와 땅의 질에 자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리는 기의 청명함을 얻으면, 가리거나 갇히지 않고 순순히 펼쳐 나온다. 가리거나 갇힌 정도가 작은 것은 천 리를 펼쳐 내어 사욕을 이기고, 가리고 갇힌 정도가 큰 것은 사욕이 천리를 이기므로, 본원의 성 이 착하지 않은 것이 없음을 볼 수 있다. …… 단지 저 기질의 혼탁이 있기 때문에 틈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므로 기질의 성에 대해, 군자는 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배워서 그것을 돌이키면, 천 지지성이 보존된다. 그러므로 성을 말할 때는 기질을 아울러 말해야 성의 모습이 제대로 갖추어진 다. …… 성은 리일 뿐이다. 기질의 성 또한 저 리에서 나올 뿐이다. 리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면, 정도에 지나쳐 엉뚱한 곳에 귀착할 것이다. 천지지성을 논한다면, 오로지 리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고, 기질지성을 논한다면, 리와 기를 섞어서 말한 것이다. …… 성은 기질이 아니면 의지할 곳 이 없고, 기는 천성이 아니면 이룰 것이 없다(Zhuzi-yulei, Volume 4).15)
인간의 성은 두 측면이 있다. 하나는 순수한 천리를 지닌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기질의 어 둡고 흐림으로 말미암아 사욕으로 흐르는 측면이다.
이 두 성은 모두 인간이 갖추고 있는 리이 다. 그런데 주자는 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분리한다. 문제는 이 두 성을 서로 다른 것 으로 보지 않으려는 독특한 논리이다. “본연지성이 기질 가운데 떨어져 있는 것이 기질지성이다.”(Zhuzi-daquan, Volume 58)16)
15) 朱子語類․卷四, “性只是理. 然無那天氣地質, 則此理沒安頓處. 但得氣之淸明則不蔽錮, 此理順發出來. 蔽 錮少者, 發出來天理勝, 蔽錮多者, 則私欲勝, 便見得本原之性無有不善. …… 只被氣質有昏濁, 則隔了, 故 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學以反之, 則天地之性存矣. 故說性, 順兼氣質說方備. …… 性只是理. 氣質之 性, 亦只是這裏出. 若不從這裏出, 有甚歸著. …… 論天地之性, 則專指理言, 論氣質之性, 則以理與氣雜而 言之. …… 性非氣質, 則無所寄, 氣非天性, 則無所成.”
16) 朱子大全․卷五十八, “氣質之性, 只是此性墮在氣質之中.”
기 질 가운데 떨어져 있는 본연지성, 그것이 기질지성이다. 따라서 기질 자체가 별도로 하나의 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기질지성은 별도로 존재하는 하나의 성이 아니라 기질 가운데 존재하 는, 기질중지성(氣質中之性)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성은 어디까지나 본연지성이다(Yoo, 1980: 209-210).
이러한 본연지성이 성리학에서 보편적으로 지향한 의리지성(義理之性)이다. 의리지성은 본연 지성과 관련하여 다양하게 언표된다. ‘천지지성(天地之性), 본원지성(本源之性), 천명지성(天命之 性)’ 등이 그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여된 순수하고 지극한 최고선으로서 성이다. 하지만 인 간은 태어날 때부터 제각기 다른 기질을 지녔다(Daxuezhangju, Preface).17)
그 각각의 기질을 발휘하여 인성을 형성한다. ‘청명(淸明)․혼탁(混濁)․박후(博厚)․혼명(昏明)’과 같은 기질의 실 현, 특히 혼탁의 불완전성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기질지성이다. 이처럼 인간은 본연지성이라는 보편성과 기질지성이라는 특수성, 양 측면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본연지성이 라는 ‘이념적 본성’과 기질지성이라는 ‘현실적 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Han, 1996: 104). 여기에서 ‘현실적 본성’은 사욕(私欲)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고 가정한다. 그러기에 주자는 선을 구심으로 악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가 기질지성을 거 론한 이유이기도 하다. 기질지성은 개인에 따라 다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형이하학적이 다. 이런 사유는 아래에서 논의할 동중서 성론의 그림자를 밟고 있다. 사람마다 다른 선악의 혼재가 이에 속한다. 주자는 그것을 자신의 성도(性圖)에서 분명하게 내비쳤다. 성은 선하다. 성은 선하지 않음이 없다. / 악은 선으로부터 바로 스며 나온다고 할 수 없다. 선 을 행할 수 없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쳐 악이 되는 것일 뿐이다. / 선은 펼쳐져서 절도에 딱 맞 는 것이므로 어디를 가도 선하지 않음이 없다(Xingli-daquan, Volume 29).18)
17) 大學章句․序, “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然其氣質之稟, 或不能齊.”
18) 性理大全․卷二十九, “性善. 性無不善.” / “惡, 不可謂從善中直下來, 只是不能善, 則偏於一邊爲惡.” / “善, 發而中節無往不善.”
이런 사유를 이전의 자사나 맹자에게서는 찾을 수 없다.
자사와 맹자는 본연의 순선한 가능 성만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반면 순자의 경우에는 그 일단을 발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순자는 인간성에 차이를 주는 정욕적 악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자 성리학은 전통적으로 선을 기준으로 본연지성의 보존과 확장을 추구한다. 기질지성 중 악한 측면을 없애고 선한 측면을 회복하려고 한다. 그것은 이른바 ‘존천리알인욕(存天理遏人 欲)’, 또는 ‘존천리거인욕(存天理去人欲)’으로 표현된다. 선한 마음의 천리인 성을 보존하고, 악 한 마음으로 물들려는 경향이 있는 인욕을 없애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본연지성의 선한 속성 을 보존하고 선악 또는 선불선이 혼재하는 기질지성 가운데 악한 속성을 내보내는 작업이다.
이는 맹자의 성선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어떤 차원에서는 순자의 성악을 인간의 본질로 인정 하면서도 그것의 억제를 목적으로 하는 듯하다.
이렇게 볼 때, 주자에게서 성은 맹자와 순자를 종합하여, 인간으로서의 천리 회복을 노리는 것 같다.
그것은 현실적 악을 뒤로 하고 이상적 선을 구현하려는 관념의 일단이다.
Ⅲ. 동중서의 성(性), 그 구체적 현실적 실천론
1. ‘성미선(性未善)-선질(善質)’과 ‘탐(貪)-인(仁)’의 구체적 인식
동중서는 당시까지 제기되었던 성론, 즉 성선이나 성악으로 대표되는 인간 본성을 다른 방식 으로 이해한다.
인간의 본성이라 명명할 때 이는 타고나는 것 아닌가? 자연스럽게 자질로 타고나는 것을 성이 라 이른다. 성이란 자질이다(Chunqiufanlu, Shenchaminghao).19)
성이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근 본 바탕이다(Chunqiufanlu, Shixing).20)
성이란 타고난 자질이다(Hanshu, Dong Zhongshu).21)
동중서는 맹자나 순자가 선악을 강변하며 논의한 것과 달리, 선이나 악과 같은 어떤 가치도 개입시키지 않았다. 있는 그대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인간의 본성을 탐구했다. 겉으로만 보면, 동중서의 ‘생지자연지자(生之自然之資)’는 고자(告子)의 ‘생지위성(生之謂性)’이나 순자의 ‘본 시재박(本始材朴)’ 등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Park, 2010: 55). 그것은 선과 악이라는 가치를 개입하기 이전의 인성으로, 인간이 태어나면서 지니는 소질이다. 맹자의 성선을 기준 으로 볼 때, 동중서의 본성론은 그것과는 다른 ‘성미선(性未善)’과 ‘선질(善質)’로 정돈된다 (Chunqiufanlu, Shenchaminghao; Cao & Dai, 2022: 146-150).22)
인간 본성의 경우, 자연스럽게 생성한 것을 성정(性情)이라 한다. 성과 정은 서로 합쳐서 하나 의 명(暝)이 된다. 정 또한 성이다. 성이 이미 선하다고 말한다면 정은 어떻게 되는가? 그러므로 공자는 성선을 말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름 붙일 경우 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얽매이기 때문이다(Chunqiufanlu, Shenchaminghao).23)
19) 春秋繁露․深察名號, “性之名非生與? 如其生之自然之資謂之性. 性者, 質也.”
20) 春秋繁露․實性, “性者, 天質之樸也.”
21) 漢書․董仲舒傳, “性者, 生之質也.”
22) 春秋繁露․深察名號, “今萬民之性, 有其質而未能覺, 譬如瞑者待覺, 教之然後善. 當其未覺, 可謂有善質, 而不可說服力善, 與目之瞑而覺, 一概之比也.”
23) 春秋繁露․深察名號, “天地之所生, 謂之性情. 性情相與爲一瞑. 情亦性也. 謂性已善, 奈其情何? 故聖人莫 謂性善, 累其名也.”
성(性)과 정(情)은 성분이 다른 동일한 물질이므로 실재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실제이다. 성과 정을 동일한 본체의 다른 작용 양상으로 놓고 이해하면, 인간 본성은 두 가지 의미를 지 닌다. 하나는 ‘타고난 자질로서의 본성’이고 다른 하나는 ‘정욕에 대립하는 본성’이다. 그런데 타고난 자질로서 근원적 본성은 정욕에 대립하는 ‘성(性)’인 ‘인(仁)’과 정욕을 함유한 ‘정(情)’ 인 ‘탐(貪)’을 모두 포함한다(An, 2015: 59). 이는 주자에게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탈바꿈 하여 드러난 것은 아닐까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동중서는 본성의 일반적 범 주 이외에, 본성을 다시 성과 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때 성은 사람의 본질이고 정은 사람 의 욕망이다(Dai, 2019: 634). 사람의 참다운 실정에는 탐과 인의 측면이 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사람의 몸에 깃들어 있다. 몸이라는 명칭은 자연에서 연유한다. 자연은 음과 양이라는 두 기운의 작용을 겸비하고 있다. 자 연에 있는 음은 제어를 받아야 한다.
몸에도 정욕이 있어 절제를 받아야 한다.
이는 자연의 질서 와 같다.
천이 이처럼 음을 제어하는데, 사람이 어찌 자신의 욕망을 덜어내고 정욕을 멈추게 하여, 자연의 질서에 적응하지 않겠는가?(Chunqiufanlu, Shenchaminghao)24) 여기에서 ‘탐’과 ‘인’의 내용과 형식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Chenn, 2019: 331-332).
24) 春秋繁露․深察名號, “人之誠, 有貪有仁. 仁貪之氣, 兩在於身. 身之名, 取諸天. 天兩有陰陽之施, 身亦兩 有貪仁之性. 天有陰陽禁, 身有情欲, 與天道一也. 是以陰之行不得干春夏, 而月之魄常厭於日光. 乍全乍傷, 天之禁陰如此, 安得不損其欲而輟其情以應天.”
‘인’의 기 운은 본성을 주도하는 측면이고, ‘탐’의 기운은 종속적 측면에 해당한다. ‘인’은 본성 가운데 사 회의 도덕을 추진하고 발전시키는 선천적 요소를 가리키고, ‘탐’은 본성 가운데 사회의 도덕을 저해하고 퇴폐시키는 선천적 요소를 가리킨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의 본성 자체에 동시 거주하 면서 대립하는 특성을 지닌다. 이런 차원에서 인간은 욕망을 소유한 존재이다.
따라서 인간의 순순한 성품을 선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윤리적 교화가 요청되고, 정욕을 억제시키기 위해서는 도덕적 규범이 필요하다(Kim, 2017: 23). 이것이 바로 현실적 실천을 위한 힘이다.
2. 선(善)의 현실적 특성
동중서 이전에도 여러 측면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지만, 크게 보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로 대별된다.
성선과 성악은 ‘도덕적 선험론’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는다 (Jin, 2006: 155-159). 다시 강조하면, ‘추상적 관념론’에 불과하다.
그러나 동중서는 맹자와 순 자의 성론이 지닌 장점과 단점, 그리고 그들 이론이 갖고 있는 모순을 정확하게 인지하였다.
때문에, 동중서는 근원적으로 맹자와 순자의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분법적 구도를 해체한다. 물론, 상당수의 학자들은 동중서의 성론이 맹자와 순자의 성론을 ‘절충’한 것으로 인식하기도 하고 종합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맹자와 순자의 인성론은 선악의 도덕가치가 선천 적으로 부여된 것에 무게중심을 둔다. 동중서의 경우, 본성은 성악이라는 도덕적 가치개입을 앞세우기보다는 자연 소질 자체이고, 성에 녹아든 정욕의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인간의 노 력을 통한 후천성에 무게중심을 둔다. 성의 순수한 측면을 선으로 이해하면 맹자의 관점이 엿 보이고, 정욕을 악으로 이해하면 순자의 관점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동중서의 인성론은 맹자 순자와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절충을 ‘서로 다른 견해나 관점을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게 조절하여 알맞게 한다’라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의미나 개념을 절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변증법적 종합’이라는 측면에서 절충이라 기보다는 ‘부정을 통한 새로운 창조’로 인식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 할 수 있다. 하나는 동중서가 고자나 순자의 사유를 이어받아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을 ‘생지자연지자(生之自然之資)’의 구조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맹자의 인식은 거부된다. 성이라는 개념을 문자 구조적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이는 악으로 흐를 가능성을 열어 둔 것으 로 현실적 악의 발생 근거인 ‘인-탐(仁-貪)’이나 ‘성-정(性-情)’의 구조를 설명하는 동시에 황제 나 성왕 또는 성인의 교화를 요청하기 위한 현실적 고민을 자아낸다. 다른 하나는 맹자의 성선 설을 비판하면서, 그와 동시에 ‘선(善)’의 질적 차이를 설정하여 ‘선질(善質)’의 개념을 도출한 다. 이는 맹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선을 자발적으로 확충하는 논리가 아니다. 성왕의 교화를 정 의로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의 자질을 설정하여 교화의 유용성과 필연성을 구축하려 는 시도이다(Park, 2008). 이 지점에서 필연적으로 ‘교화(敎化)’라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범주가 마련된다.25)
25) Cao, Yingchun & Dai, Chunmin (2021). Comprehensive explanation of Dong Zhongshu's thoughts. Hebei: Yanshan University Press.; Cao, Yingchun & Dai, Chunmin (2022). Deyin Moisturizing - Appreciation of Dong Zhongshu's famous quotes. Hebei: Yanshan University Press.; Wei, Yanhong (2018). A review of Dong Zhongshu's research on educational thought. Dong Zhongshu and Confucianism, 5th Edition. Chengdu: Bashu Press.
다시 말하면, 동중서는 인간의 본성과 선을 엄격히 구분하였다. 그는 인성과 선을 가능성과 현실성, 또는 근거와 결과의 관계로 파악하였다. 본성은 선의 가능성이자 선이 내재하는 근원 이다. 선은 본성의 이러한 가능성과 내재적 근거이다.
때문에 인간의 노력을 허용하는 조건에 따라, 도덕적 선이 현실의 인격으로 전환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인성 가운데는 기본적 욕망인 정욕과 탐욕이 근원적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맹자처럼 성이 이미 선하다고 의미를 부여하면, ‘선천적인 정’은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가?
동중서는 인간의 본성과 선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인간의 본성이란 태어나면서 지니고 있는 근본 바탕이고, 선이란 왕의 가르침에 의한 교화를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 그 바탕이 없으면, 왕의 교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왕의 교화가 없으면 바탕의 소박함은 선할 수 없다. 본성은 점진적인 교화를 거쳐 비로소 선으로 바뀐다. 본성이 선으 로 바뀐 것은 교화가 만들어낸 결과이지 천성적 본질이 바로 이런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본 성이라 말하지 않는다(Chunqiufanlu, Shixing).26)
인간의 본성은 벼에 비유되고, 선은 쌀에 비유된 다. 벼에서 쌀이 산출되어 나오더라도 벼의 상태는 아직 온전하게 쌀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마 찬가지로 선이 본성에서 산출되어 나오더라도 성의 상태는 아직 온전하게 선이 되었다고 할 수 없다. 성은 누에고치와 같고 계란과 같다. 계란은 어미 닭이 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 병아리를 까고 병아리가 자라나 닭이 된다. 누에고치는 고치 켜기를 기다려야 실이 된다. 본성은 교화를 통 해 시간이 지나야 인격적 선이 된다(Chunqiufanlu, Shenchaminghao).27)
본성에는 선의 실마리가 있고 마음에는 선의 바탕이 있다(Chunqiufanlu, Shixing).28)
26) 春秋繁露․實性, “性者, 天質之樸也; 善者, 王教之化也. 無其質, 則王教不能化; 無其王教, 則質樸不能善. 質而不以善性. 性待漸於教訓而後能爲善. 善, 教訓之所然也, 非質樸之所能至也, 故不謂性.”
27) 春秋繁露․深察名號, “性比於禾, 善比於米. 米出禾中, 而禾未可全爲米也. 善出性中, 而性未可全爲善也. 性如繭如卵. 卵待覆而成誰, 繭待繅而爲絲, 性待教而爲善.”
28) 春秋繁露․實性, “性雖出善, 而性未可謂善也.”
이런 관점에서 보면, 본성은 근원에서 가치가 담겨 있는 선이 아니다. 선은 본성에서 우러나 온다.
그 과정에 인간의 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다시 강조하면, 인간 사회의 진보를 위한 노력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본성은 인격적 선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동중서가 인생에서 왜 공동체적 삶의 열정과 노력이 필요한지, 그 논리적 근거를 마련하는 학문적 고심이다.
그 결과, 선은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 도덕이 된다. 즉 도덕적 인격을 열망하고 달성하려고 한다. 그것이 다름 아닌, 선이 던지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힘이다.
3. 성삼품설(性三品說)의 실천적 구현
동중서의 인간 사회에 대한 염원은 아주 간략하면서도 강렬한 실천을 요청한다.
‘본성은 인 간의 노력 이후에 선하게 된다!’ 본성은 인간의 삶에 대한 열정과 실천적 노력이 없을 경우, 국 가사회를 지도할 인재로서 선한 인간 양성을 꿈꿀 수 없다.
동중서의 인성에 관한 사유는 형식 적으로 볼 때, 맹자나 순자, 그 이전의 몇몇 인성론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선
악으로 대변 되는 추상적 사유의 절충이나 종합이 결코 아니다.
맹자가 강조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본성이 이미 선하다면, 인간 사회의 진보를 확대해 나갈 근거나 의미가 강렬하게 등장할 수 없다.
이 미 선한 상황인데 무엇을 더 선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가! 그것은 악으로 물든 사회를 바로 잡 거나 인간이 바라는 보다 올바른 사회를 구현하려는 의지를 부정하는 작업이나 마찬가지가 된다(Shin, 2021).
동중서는 교훈의 불이행을 무위의 자연으로 인식하고, 유위나 인위(人爲)가 없는 교훈에 강 력한 회의(懷疑)를 제기한다.
지금 말하는 본성이 이미 선하다면, 이런 상황에서는 특별히 선으로 만들기 위한 가르침이 필 요 없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스스로 자라는 자연과 같은 것이 아닌가?(Chunqiufanlu, Shixing)29) 맹자나 순자가 강조한 본성의 선악 입장에서 보면, 동중서의 본성 이해는 이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상당히 현실적이고 비판적이며, 무엇보다도 인간의 노력에 의해 건설해 나가려는 의 지가 깃들어 있다. 동중서는 선진 시기부터 한나라 초기까지 보편적으로 유행하던, 인간 본성 을 이해하는 여러 이론을 진지하게 성찰하였다. 특히, 공자가 언급한 인간성의 등급을 고민하 며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론화하여 실천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듯하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인 간의 등급 차이에 대해 언급하였다. 보통 사람 이상에게는 고차원적 사안을 말해 줄 수 있으나 보통 사람 이하에게는 그런 것을 말 해줄 수 없다(Lunyu, Yanghuo).30)
가장 지혜로운 사람과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변화시킬 수 없다 (Lunyu, Yongye).31)
29) 春秋繁露․實性, “今謂性已善, 不幾於無教而如其自然!”
30) 論語․雍也, “子曰, 中人以上, 可以語上也; 中人以下, 不可以語上也.”
31) 論語․陽貨, “子曰, 唯上智與下愚不移.”
공자는 인간을 ‘상-중-하’의 위계로 나누었다.
그리고 중간급에 속하는 보통 사람, 즉 중인(中 人)을 인간의 속성을 구별하는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사유는 보편적이면서도 구체적으 로 증명할 수 있는 현실성을 띠기 때문에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중인 이하의 자질을 지닌 사람에게 갑자기 고상한 차원의 형이상학적인 이론을 말하면 제대로 알아듣지 못 한다.
교화는 사람의 지적 수준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눈높이를 맞추어 실시해야 한다.
많이 배우고 도덕성을 갖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수양해 나가기 때문에 별도의 교화를 하지 않아도 그 수준이 함부로 떨어지지 않는다.
그와 반대편에 자리하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수준이 낮 은 인간의 경우, 교화를 한다고 해서 어느 순간에 자질이 놀랍게 향상되기도 어렵다.
공자는 이처럼 인간 본성의 층계에 대해 어렴풋이 지적하였다.
그러나 동중서는 보다 과학적이고 세밀하게, 상당히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인간의 성품을 정돈하였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세 가지 등급으로 분명하게 나누었다(Kim, 1990: 368).
성인의 차원에서 본성은 일반적인 본성으로 명명할 수 없다. 그릇이 작은 사람의 본성도 일반 적인 본성으로 명명할 수 없다. 일반적인 본성으로 명명하는 것은 보통 사람의 본성이다. 일반 백 성의 본성은 누에고치나 계란과 비슷하다. 계란은 어미 닭이 20일을 품어야 병아리가 될 수 있다. 누에고치도 삶고 켜는 작업을 한 다음에야 실을 뽑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본성도 단계별 교육과 훈련을 거친 다음에야 완전한 인격을 형성할 수 있다. 선은 교육과 훈련을 거쳐 그렇게 된 것이지 바탕이 소박하게 미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성이라 하지 않는다(Chunqiufanlu, Shixing).32)
본성 이라고 명명할 때, 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성도 아니고 어리석은 사람의 성도 아니며, 중간 정도의 수준을 갖춘 보통 사람의 본성을 말한다(Chunqiufanlu, Shenchaminghao).33)
32) 春秋繁露․實性, “聖人之性不可以名性, 斗筲之性又不可以名性, 中民之性如繭如卵. 卵待覆二十日而後能 爲雛, 繭待繰以涫湯而後能爲絲, 性待漸於教訓而後能爲善. 善, 教訓之所然也, 非質樸之所能至也, 故不謂 性.”
33) 春秋繁露․深察名號, “名性, 不以上, 不以下, 以其中名之.”
이 세 가지 등급의 본성 가운데 동중서가 기준으로 삼은 것은 보통 사람, 즉 ‘일반 백성’에 해당하는 ‘중민(中民)’이다(Wei, 2018: 278). 공자가 말한 ‘중인(中人)’이 아니라 ‘중민(中民)’이 다. 그것은 역사 발전과 사회 진보의 과정에서, 일반적 차원에서의 사람인 ‘인(人)’이 국가적 차 원에서 규정된 존재로서의 사람인 ‘민(民)’으로 나아가는, 구체적 현실성과 실천의 동력에 변화 가 있음을 지시한다. 그러면서도 맹자와 순자가 추상적으로 제기한 일반적 차원에서 인간의 본 성을 가치가 개입된 선과 악의 양극단에서 취하지 않고, ‘국가 내’에 살고 있는 ‘민’이라는 인 간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중간에서 취하였다. 이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실존을 근거로 규정 하는 실천적 구현임을 담보한다. 그러므로 동중서는 공자가 말한 중인의 본성을 보다 구체적이 고 현실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중민의 본성으로 안착시켰다. 교화(敎化)는 인간의 능력이 유사하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 경우가 있다. 하물 며 동일한 수준이 아닐 경우, 그 효과나 결과가 비슷하거나 동일할 수 있겠는가? 세 가지로 나 눈 성품 가운데, 성인의 차원에 있는 사람은 자각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억제하며 반드 시 선의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릇이 작은 사람, 즉 두소(斗筲)에 해당하는 사람은 감정과 욕망 이 강렬하고 스스로 절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드시 악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들은 교 화를 통해 선으로 유도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중간 지점에 걸쳐 있는 보통 사 람, 즉 일반 백성인 ‘중민’의 본성을 소유한 인간이 교화의 주요 대상이 된다. 특히, 중민은 그 들이 지닌 정(情)을 선하게 바꾸어야 한다(Son, 2012: 287). 동중서는 인간 본성의 기준을 성인(聖人)이나 두소(斗筲)에 두지 않고 보통 사람에 두었다. 하지만 그 최종 목표는 성인의 본성을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인성론은 본질적으로 ‘교화’ 에 핵심을 두고 있다(Cao & Dai, 2021: 77-86). ‘중민’이라는 일반 백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적 시하고, 국가 발전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차원에서, 인간의 본성을 과학적으로 구명해낸 것이다.
Ⅳ. 결론 : 유교 성론(性論)의 지형도
유교 성론의 돌파구는 공자의 ‘성상근(性相近)’이다.
공자는 성이 무엇인지 적시하지는 않았 다. 하지만 그것은 성리학자들과 후대 유학자들의 탐구로 새롭게 해석되었다.
성(性)이 습(習)을 통해 차이를 나타낼 수 있다는 차원에서 ‘성상근’의 ‘성’은 ‘기질의 성’으로 이해되었다.
제자 자공을 통해 간접적으로 드러난 또 다른 공자의 성은 천도와 결부되어 ‘의리의 성’으로 정돈되 었다.
이는 공자의 성이 기질과 의리의 두 축으로 이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사의 중용은 분명하게 성선을 정통으로 내세우는 듯하다.
천명을 상정하고, 그 지고지선의 세계가 인간의 성으로 부여됨을 확정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리의 성이다. 맹자와 순자는 성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 소박한 규정인 공자의 ‘성상근’ 과 달리, 선단[성선]과 성악으로 분명하고 자신 있게 강변한다. 맹자는 선천적 도덕 의지를 지 닌 선의 가능성을 강조하였고, 순자는 반도덕적 욕망과 이익을 추구하는 악의 가능성을 강조하 였다(Huang, 1975: 463).
엄밀하게 말하면, 유학의 인성론 분화는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인간 본성은 고자의 설명처럼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는 ‘빙빙 도는 물’과 같을 수도 있다 (Mengzi-jizhu, Gaozi I).34)
34) 孟子集註․告子上, “告子曰, 性, 猶湍水也. 決諸東方則東流, 決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 水之無分於東西也.”
그러나 유학의 성론은 맹자의 성선설-선단론-을 정통으로 인정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맹자의 선과 순자의 악은 성의 이중적 특징을 서로 다른 측면에서 강조한 것 같기도 하다. 맹자는 순수하게 선한 순선의 본연지성을, 순자는 선과 불선, 또는 선악이 혼 재한 기질지성을 성을 이해하는 중심축으로 설정한 듯하다. 다시 말하면, 맹자의 선단론과 순 자의 욕망론은 성에 관한 규정 방식의 차이이다.
맹자의 경우, 양심의 가치 선언을 통해 인간 의 본질을 구명했고, 순자는 욕망이 분출하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인간의 특성을 발견하였다.
이런 문제가 주자를 비롯한 성리학자들의 핵심 고민으로 다가왔다는 의심을 저버릴 수 없다. 그렇다고 법가로 흘러버린 순자를 유교의 정통으로 삼지 않은 것도 후대 유학자들이 내린 당연 한 귀결일 수도 있다.
주자는 순자의 사유를 깊이 있게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론적으로 논리적으로 악의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숙제였다.
주자는 본연과 기질이라 는 성에 관한 인식을 통해, 이를 해소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이런 주자의 사유 논리가 동중서 의 인성론을 반영한 것은 아닐까? 주자의 기질에 관한 논의가 북송오자, 특히 장횡거의 ‘기’철 학을 발전시켜 정돈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사상의 역사성과 사회성을 고려해 볼 때, 그 이전에 확립된 동중서의 성삼품설을 변형했을 여지는 없는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이는 하나의 성에서 포착되는 두 가지 차원이다.
문제는 인간이 태어 날 때부터 다른 기질을 가졌다는 점이다. 이 ‘다름’이 성을 규정할 때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동 중서에게서 ‘다름’은 ‘삼품’이라는 범주로 설정된다.
삼품 가운데 본연지성의 보편적 특징과 기 질지성의 개별적 특징이 동시에 맞물려 역동할 때, 인간의 성은 파지 하기가 쉽지 않다.
이상에서 요약한 것이 유학의 성론에 관한 전통적 변주이다.
한국학계의 경우, 동중서의 성 삼품설에 관한 연구나 위상 정립에 관한 논의가 상대적으로 미진했다.
앞에서 간략하게 논의한 것처럼, 동자의 성삼품설은 인성의 심학적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개인성을 넘어 현실 사회 의 교화를 위한 주요한 체제로 등장했다.
강력한 공동체성을 열망하는 형태로 가치와 동기가 새롭게 부여되었다. 개인성이라는 추상적 관념의 차원을 벗어나 사회의 진보라는 구체적 현실 성을 띠는 실천의 담보로 작용했다.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려는 강력한 의지를 인간의 본성에서 찾고, 그 본성을 실제적으로 구명하여 사회 제도를 구상하였다.
그러한 사회성과 문명화를 고 려하여 인간학을 정돈하려는 노력이 동중서 사상이 지닌 현실적 힘이다. 이러한 논의를 인성론 의 진보와 발전의 차원에서 아래와 같이 도식해 본다.
[그림 1] 유교 성론(性論)의 지형도(地形圖) A Topographical Map of Confucian Human Nature Theory
: 생략 (첨부논문파일참조)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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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Objectiv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establish the flow of Confucian human nature theory by examining the status of Dong Zhongshu’s human nature theory in Confucian nature theory.
[Contents]
To accomplish this purpose, the theory of personality before and after Dong Zhongshu was analyzed at the level of abstract idealism about nature, and the theory of personality of Dong Zhongshu was investigated as a theoretical system and guideline that is very specific and can be put into practice in reality. First, the characteristics of the traditional theory of personality from Confucius, Tzu-Tzu, Mencius, Xunzi, and Zhu Xi were briefly established. Next, the characteristics of Dong Zhongshu’s theories of personality were discussed, and the status of the Dong Zhongshu’s theories of personality based on the history and content of Confucian personality theory was established. [Conclusions] Based on the results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e existing Confucian theory of personality has been organized at the level of abstract idealism from Confucius to Zhu Xi. Second, Dong Zhongshu’s theory of the Holy Trinity synthesized the characteristics of primitive Confucianism and at the same time provided a starting point for opening up the character of Confucianism. Third, Dong Zhongshu’s theory of the Holy Trinity formed a middle ground with the Confucian theory of human nature and was embodied in Orthodoxy with specific reality.
[Keywords] Xingxiangjin(性相近), Tianming(天命), Xingshan(性善), Xinge(性惡), Xingsanpin (性三品), Bonyeon(本然), Gijil(氣質)
종교교육학연구76권(2024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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