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신유물론 시대와 인문학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 대세이다. 많은 이들이 ‘물질적 전회’(material turn)를 외친다. 신유물론 이전에 이미 유물론은 서구를 비롯한 인류 사유의근원적 사유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고전 과학에 기반한 유물론이 물질의 수동성에기반한다면 신유물론에서 물질은 내재된 역능을 지니고 있으며 생기(vitalism) 혹은능동성을 지니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뇌과학이다. 전기화학 물질의 전달체계가고도로 발달한 뇌에서 모든 물질, 화학물질, 전기에너지는 마치 살아있듯이상호작용을 벌인다. 분자생물학에서 자세히 논의되듯 분자들은 법칙을 따르지만그법칙이허용하는 한계 안에서 무수히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내며, 진화의 역사속에서분자들의 돌연변이로 세계는 풍요로워지고 생명의 다양성이 획득되었다.
여러철학자가 논하듯 세상의 차이를 생산함으로써 다양화되는 것이 세계 발전의방향이다. 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과학은 이미 경험적 세계와물질을수학적 기호들과 데이터와 새로운 물질의 생산으로 물질세계를 파악하고가공하고새롭게 혁신하고 있다. 특수 혹은 일반상대성 이론이나 양자역학처럼직관적으로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실험으로 증명되기 이전에 수리적 모델로만 증명된가설들이 실제로 현상으로 증명되기도 했다. 물질은 이미 존재하지만 우리는물질을숫자나 언어로 환원해야만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개념생산이근원인 철학에서 물질은 ‘물자체’(thing itself)로 접근이 되지 않는다고논의에서제외되거나, ‘대상’(object) 혹은 ‘사물’(thing)로 변환되어 인식됐다.
물질(matter)의 세계 자체가 아닌 반성적이고 개념적 프레임을 지닌 인간이 판단하고인식해야지만 물질이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유물론에서 인간이 완전히 빠지는것은아니다. 인간은 정신과 영혼이 아니라 신체로서 사물들 혹은 대상들과의관계를갖는 물질의 다양체이다. 니체는 인간의 영혼과 정신은 모두 신체의 일부라고보았다. 신유물론에서 정신이나 영혼은 모두 신체라는 물질 다양체의 표상들이다. 그러나 신유물론은 단순히 과학만능주의나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과같이 과학을 맹종하거나 기계와 인간의 합성을 통한 유토피아의 창조를목표로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유물론(New Materialisms)을 편찬한 다이아나쿨(Diana Coole)과 사만사 프로스트(Smantha Frost)그들이 쓴 서론에서 물질성(materiality) 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왔음에도 철학의 역사에서 유물론은 변방적 사유로취급받았다고 주장하며 물질성의 공간이 열리게 될 때 언어, 의식, 주체, 작용인(agency), 영혼, 상상, 감정이나 가치나 의미 등의 비물질적인 것들도 드러남에도, 비물질적인 것들이 역사상 이상적인 것들로 여겨졌으며 생물학적 물질의비천한욕망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물질의관점에서주체와 인간과 언어 중심의 사유에 대해 기울여졌던 관심과 같은 크기로물질적현실을 살피려 한다고 주장한다 (2). 예술의 영역에서 이러한 노력은 오랫동안있었다.
특히 영화에서는 SF영화만이 아니라 신유물론 관점에서 해설이 가능한물질과 인간에 대한 과학적이면서도 인문학적 사유를 담은 영화들이 있었다. 그중하나로 최근에 평단의 찬사와 더불어 대중적 성공도 거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올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본논문은<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신유물론을 통해 사유해 보고 영화가지닌세계관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II.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멀티버스와 양자역학
아카데미상 7관왕에 오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A24가제작한 186 김 대 중 영화로서 양자역학과 멀티버스와 들뢰즈의 ‘되기’(becoming)를 통해잠재성(the virtual)의 의미를 펼쳐 보이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까지보여준다.
영화는 잠재성의 세계인 멀티버스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Everything everywhere)와 악의 중심으로 묘사되는 검은 베이글이 상징하는 ‘무’(nothing), 그리고 현재 인물들이 사는 세계가 ‘동시에 모두’ (all at once) 대립한다. 영화는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패러디하고 콜라주를 이룬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올앳원스>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Ultimat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1나 <릭 앤 모티>(Rick and Morty)와 유사하게키치적이고포스트모던한 스타일로 과학을 이용해 정신없으면서도 즐거우면서 사색적인서사를 전개한다.
1 특히 키치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영화에서 삶과 우주의 궁극적 답으로 제시되는42는<에브리씽>영화에도 나온다.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구조는 멀티버스이다.
멀티버스는평행우주론에 기반하며 여러 SF영화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멀티버스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스시대에이미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는 세상의 근원은 원자라고 했고, 에피쿠로스(Epicurus)나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등은 인간이 속한 우주전체를하나의 실체의 각기 다른 양태들이라고 보았다. 토마스 네일(Thomas Nail), 크리스토퍼 갬블(Christopher Gamble), 죠슈아 하난(Joshua Hanan)의 「신유물론이란무엇인가」(“What is New Materialism”)에 따르면 레우키포스(Leucippus)와데모크리투스(Democritus)는 모든 현실은 궁극적으로 영원하고 미세하며 나눠지지않는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원자들은 공백(void)를 통해 영원히 기울어져질주한다고 보았다.
데모크리투스는 정신 역시 물질적 원자들로 이루어져있다고보았을 뿐 아니라, 우리의 세계가 사실상 유일하지 않으며, 무한한 원자들이존재하듯, 동시에 존재하는 무한의 우주들 혹은 코스모이(kosmoi)들이 존재한다고보았다고 한다(14).
이후 여러 가능한 원자들의 우주에 대한 개념은 에피쿠르스에의해다른 방향으로 발전하다.
에피쿠르스는 ‘벗어남’(swerve)이라는 개념으로개별적원자에 ‘자발적 비예측성’(spontaenous unpredictability)이 있다고 보았다.
에피쿠르스의 수정된 개념에서, 원자들이 일반적으로 임의적이고 예정된 길을 간다고할지라도, 때때로 어떤 단일한 원자는 옆에 있는 길로 경로를 바꾸고 이에따라잠재적으로 엄청난 사건들을 일어나게 한다고 보았다(14). 그의 이론은 현대카오스이론이나 ‘나비 이론’과 유사하다.
물론 고대 물리학이나 과학은 어디까지나직관에의한 것일 뿐 실험으로 엄밀해진 과학은 아니다. 이에 반해 현대 물리학은직관으로 알 수 없고 오직 수식으로만 증명되는 세계가 되었다.
그럼에도 현대과학은직관을 넘어 엄밀함으로 오히려 인간의 상상을 극대화시켰다.
현대 양자역학에서이러한 불확실성은 더욱 잘 드러난다.2
2 현대 물리학에서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르빈 쉬뢰딩거, 아인슈타인등이양자역학의 기초를 세웠다. 현대 물리학에서 열역학과 엔트로피와 엔트로피의 반대인 네젠트로피(negentropy)이나 프리고진(Ilya Prigogine)의 비평형 열역학, 나비효과로 많이 알려진복잡계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끈이론, 우주의 기본적 힘으로 알려져 왔던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통합하는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 엔트로피에 따라 모든 것이무질서의극대로 우주의 종말을 예고하는 빅프리즈(Big Freeze)이론, 가이아이론등은 전문가들조차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수식으로만 표현이 되면서도 많은 이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양자역학은 이중 슬릿 실험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실험 결과에 대한의문에서시작되었다.
과학자들은 이중 슬릿 실험을 통해 광자가 두 개의 슬롯을동시에통과하면서 광자가 입자이면서 간섭이나 회절현상이 있는 파동이라는 모순된결과를발견한다. 이렇게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내용을 담은 이론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이다. 양자역학에서 입자의위치나속도는 모든 조건이 완전히 동일한 상태라고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온다.
동전을던져서 나오는 결과가 우연이라고 해도, 던지는 힘이나 외부 조건을 완벽하게똑같이 하면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 기존의 과학적 사유로는 이해될 수 없는현상이다.
더구나 관찰자의 위치나 시선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게 나온다. 입자는확률파동으로서 인과율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더구나 실험에 따르면 관찰자의시선만으로도 양자의 파동은 사라지고 입자가 된다. 마치 “관찰자가 현실을만들어내는것처럼” 보인다(세페르 139). 이렇게 보면 세계는 관찰하기에 존재한다. 현대 물리학에서 영화의 배경이 되는 멀티버스, 다중우주론은 양자역학과도연결된다. <씨네 21>에 기고된 물리학자 김범준의 해설에 따르면 “<에브리씽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3레벨의 양자역학 평행우주를 그린다. 입자가 어디에서관찰될지는 확률로만 정해진다.
양자역학은 왼쪽, 오른쪽에서 입자가 관찰될확률이각각 얼마라고 예측할 수 있지만 정말로 왼쪽에서 관찰되는 순간, 오른쪽의가능성은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이다.
한편 다세계해석은측정의 순간 우주가 두 갈래로 나뉜다고 주장한다”라고 설명한다.
우주는그안을완전히 보기 전까지 얼마만큼의 확률로 어떤 현상들이 동시에 존재하는지알수없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면 관찰할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선 곳의 우주는우리가상상할 수 없는 확률로 다른 우주가 되어 있을 수 있다.
즉 우리의 관측너머에 다중우주들이 있고 어떤 이유로 이 다중우주들이 서로 간섭하고 있다고볼가능성이 있다.
그럼 영화로 돌아가보자.
영화는 가족 서사와 우주 서사로 나뉜다. 가족서사는 전체 영화의 중심이다. 전형적인 이민 디아스포라를 배경으로 한 이영화에서에블린(Evelyn)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편 웨이먼드(Waymond)와결혼후 남편의 아메리칸드림에 따라 홍콩을 떠나 미국에 이민을 온다.
이후고집불통에블린의 아버지도 미국으로 와 함께 지내게 된다. 에블린은 예전에 가졌던중국경극 가수나 연예인 등의 꿈을 모두 버리고 현실에 짓눌린 중년의 여성으로서여러 위기에 처해있다.
남편인 웨이먼드는 낙천적이고 무능력하면서도 자신에게관심이 없는 에블린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이혼을 요구하려 한다. 에블린은레즈비언인 딸 조이(Joy)와도 심각한 갈등 관계 속에 있다. 에블린은 딸의 동성애를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딸의 파트너인 베키(Becky)도 인정하기어려워한다. 많은 부모가 그렇듯 에블린은 자신과의 다툼 등이 조이 자신의문제라기보다 누군가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아서 발생했다고 생각한다. 여인무사(Woman Warrior)나 조이 럭 클럽(Joy Luck Club) 등의 전통을 받아, 이 영화는중국식복종을 요구하는 엄마와 미국식 개인주의 성향의 딸 사이에서 벌어지는전형적인아시아계 미국 여성 문학의 중심주제 중 하나인 문화적 대립에서 비롯되는‘세대트라우마’를 담고 있다.
더구나 에블린은 미국에서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국세청(IRS) 직원인 디어드리(Deirdre)가 제기하는 세금 문제로 코너에 몰려있다. 에블린의 이민자 가족 공동체는 미국 사회 공동체와 어울리지 못하고 삐걱거리고있다.
그러나 세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세청에 방문한 에블린은 생각지도못하게남편과 같은 모습을 한 알파버스에서 온 ‘알파 웨이먼드’에 의해 각성을하고‘버스점핑’을 통해 무수히 많은 평행우주들 속의 잠재적 에블린들이 된다. 버스점핑은 버려진 껌을 씹는다든지 찹스틱을 먹는 것같이 알고리즘에서 가장 개연성이떨어지는 행위를 할 때 발생한다.
물론 <매트릭스>(Matrix)를 연상시키는버스점핑에도 문제는 있다.
버스 점핑을 해서 다른 유니버스 속 자신이 현실로돌아오면다른 유니버스 속 또다른 나도 그 영향을 받게 된다.
가령 현실 속 내가버스점핑으로 무술 고수가 되어 적들로부터 공격을 받으면 다른 유니버스 속 무술고수인나도 충격을 느낀다.
유니버스들은 서로 얽혀있다. 알파 웨이먼드는 에블린이알파유니버스에서 다른 우주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아내고 멀티버스에서 기억과기술과감정까지 공유할 방법을 발견한 영웅이라며 에블린을 칭송하고 도움을청한다.
그러면서도 알파 웨이먼드는 현재의 에블린과 웨이몬드는 다른 평행우주들중에서가장 불행한 버전들이지만, 다른 평행우주들 속에서 에블린들이 조부 투파키(Jobu Tupaki)에 의해 살해당한 반면, 역설적으로 가장 불행한 에블린만이평행우주의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최상의 잠재성”(ultimate potential)을 가지고 있다고설명한다.
웨이먼드는 “실패 자체가 다른 삶을 가진 또 다른 에블린에게 성공으로가지를 치기도 하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까운 대안적 삶의 길들을가지고 있어. 그러나 여기에 있는 당신은 모든 것이 나쁘기 때문에 무엇이든가능한거야”라고 말한다. 다른 유니버스들에서의 에블린의 잠재적 모습들이 우월해보이는 것은 그녀의 현재가 초라하기 때문이며, 현재의 상황이 최악이기에에블린은미래에 지금보다는 나아질 수밖에 없는 역설 속에 있다. 에블린이 다른유니버스에서 겪는 것들은 모두 가장 불행한 현재의 에블린이 언젠가 한 번은 꿈을꾸거나상상했거나 이루고 싶거나 거부하고 싶던 유니버스 속 모습들이다. 에블린은남편이 없이 쿵푸 고수가 되거나 실제 양자경의 모습이기도 한 여배우가 되어화려하게 된 삶을 경험하지만 그 삶들에 있는 또다른 갈등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모든 모습들이 에블린의 잠재적 자신들이다. 버스점핑과 멀티버스를 발견한 알파 유니버스의 에블린은 버스점핑이많아지 190 김 대 중 면 균열이 심해지기 때문에 균열을 줄이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도알게된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발생한다. 알파 에블린이 젊은이들을훈련시키다 가장 특별한 아이로 뽑아 극한의 훈련을 시킨 아이가 우주 대마왕조부투파키가 된다.
훈련의 부작용으로 조부의 뇌는 산산조각이 났지만 조브의“정신은모든 세계와 모든 가능성을 정확하게 같은 때에 경험하고 멀티버스의 무한한지식과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기에도덕성과객관적 진실에 대한 믿음마저 잃는다.”
에블린의 멀티버스가 그녀가 이루지못했거나 잠재성으로만 현재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담은 평행우주라면 조브투파키는조이가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모든 희망과 좌절과 사랑과 배신감과 우울과분노의결집체이다.
물론 조브의 모습은 온라인을 통해 모든 것을 경험하면서도현실에서는 허무감을 느끼는 요즘 세대를 풍자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다. 혹은들뢰즈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잠재성들을 사유하고 되기를 통해 탈영토화를이루기보다재영토화에 만족하고 더 이상의 탈영토화를 멈춘 상태라고도 설명할 수있다. 잠재성에 대한 통찰은 새로운 ‘나’의 탄생과 나와 관계되는 새로운공동체의창조와 연결된다. 에블린은 자신의 “잠재성”(potentiality)을 한계로까지실험하고자한다(1:24).
영화에서 에블린은 ‘내가 누구인가’나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질문이 멀티버스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잠재성에서 나온 질문들인 ‘내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와 ‘내가 어떤 삶을 선택할수있는가’ 그리고 ‘내가 누구와 함께 변할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들이다.
베르그손은 현재란 과거라는 잠재성 총체가 모두 함께한 순간이라고 인식했다.
베르그손의이론을 발전시킨 들뢰즈는 ‘잠재성’을 존재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 잠재성은“현실성이 그렇듯 실재의 부분”(part of the real, just as actuality is)이다(May 49).
들뢰즈에 의하면 현실태(the actual)는 잠재성과 함께 있다.
잠재성과 현실태의차이는 현재 우리의 몸이 현실태로 존재하지만 실제로 우리 몸속에는 무수히많은유전자의 자기복제를 통해 새로운 ‘내’가 될 잠재성들이 숨겨져 있다는사례로도이해할 수 있다.
잠재성은 차이가 근원이다.3
3 차이에는 두 종류가 있다. 헤겔식의 동일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두 대상 간의 차이가있다. 이러한 차이는 비교되고 유사성이 점검되고 차이가 인식된다. 그러나 잠재성 속에서 차이는미분적으로 나뉘고 모두 현실에 관련된다.
차이는 현재에 잠재적으로주름을이루면서 하나의 동일성 혹은 정체성을 어느 순간에라도 무너뜨릴 힘을 지니고있다.
에블린의 멀티버스는 철학적으로 이 모든 잠재성들이 동시에 차이그자체들로 현현하는 세계를 보여준다.
잠재성들에 대한 감각과 인식은 현재라는동일성과정체성의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힘을 지닌다.
이 각각의 유니버스들에서에블린은 하나의 동일성을 가진 정체성으로 통합되지 않는다.
그들은 각기자신들만의유니버스에서 특이성(singularity)을 지닌 유일한 존재들이다.
다만 그들이각기속한 유니버스를 제외한 모든 다른 잠재적 유니버스들 속에서의 현실이잠재적으로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각 유니버스들은 모두 N(무한 잠재성)-1(현실)의상태들이기에 동일성이나 유사성으로 비교되지 않는다.
각 유니버스들은 차이들로만존재한다. 이것을 아는 조브 투파키는 잠재성을 완전히 없애서 현재마저없애려한다. 그녀는 이미 모든 유니버스들을 경험했고 잠재성으로 펼쳐진 모든유니버스들에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며 허무를 느낀다. 그녀는 잠재성들을 모두없애면현실도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즉 N-1에서 현실을 제외한 모든 무한한유니버스들을 없애면 현재 에블린과 자신만이 남게 되고, 어머니와 자신이 사라지면1-1로 되기 때문에 0이 될 것이라고 여긴다.
즉 어머니가 사라져야만 자신의현존과모든 멀티버스가 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에블린은 잠재성으로 있는 각각의 유니버스 속 다른 에블린‘되기’ 를 경험한다.
이 경험을 통해 에블린은 조부 투바키와 달리 자신이 현재있는유니버스의 소중함과 다른 잠재성 속 에블린들의 삶들과의 차이를 깨닫고현재의삶을 미래로 투사하며 선택에 집중한다.
들뢰즈 개념으로서 ‘되기’(becoming)는삶의잠재성을 열어 보이는 사건들이며 현실의 한계를 넘는 순간들이다.
들뢰즈에게되기란 우리의 현재의 모습이나 우리의 정체성이라고 현재 규정된 모습을벗어나는감각과 사유 방식이다.
되기를 통해 인간은 동물 무리가 되기도 하고 여성이되기도 하고 소수자가 되기도 한다. ‘되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긍정’(affirmation)이다. 긍정적 존재론(positive ontology)에 기반한 실천으로서의 ‘되기’는 잠재성의현재를 제외한 가능성, 즉 n-1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삶의 태도이자 창조적 삶의 태도이다.
‘되기’는 탈주의 선을 그리는 것이며 강렬도로 이루어진다. 되기는잠재성의 실현이지만 현실 권력의 중심인 가부장이나 남자 되기는 없다.
되기는소수자(minor) 되기만 가능하고 되기에는 분자나 세포 등의 물질되기도 포함된다.4
4 들뢰즈에 따르면 되기는 “원소 되기, 세포되기, 분자되기, 지각되지 않기 되기”(becomingselementary, -cellular, molescule, and even becomings-imperceptible)까지 확장된다(Thousand Plateaus 248).
신유물론 관점에서 볼 때 되기는 실재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가령 되기는분자생물학의 차원에서 일어난다. 입자의 재조합은 새로운 존재를 만들 수 있으며화장된인간의 시체는 바위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는 바위를부수고 들어가 그 안의 광물들을 물과 함께 흡수하고 광합성을 통해 새로운‘소나무- 바위 되기’를 이룬다.
되기는 감각적 되기이기도 하다.
재즈의 음악을 들으면추상적 음률에 신체와 감정이 ‘변용’(affect)되고 음악가는 바로 그 재즈의 음률에참여한다. 영화에 나오듯 라따뚜이가 아닌 라쿠나이가 된 너구리가 모자에들어가요리사인 너구리-인간을 조정하기도 하고 입자가 되어 우주 전체로 퍼지기도한다.
되기를 통해 변용된 신체는 곧 다른 신체나 물질의 변용을 가져오고 그변용은사건으로 이어져 의미를 만들어낸다.
III. 구글리 아이 vs. 검은 베이글
2장 「에브리웨어」(“Everywhere”)에서 에블린은 조브가 된 조이와 본격적인대결을 펼친다.
그녀의 ‘되기’는 모든 유니버스를 겪으며 발생한다
. 조브는에블린에게 되기를 통해 “당신은 이제 어떻게 모든 것들이 진동하는 상위에 있는입자들의임의의 재조합에 불과한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우리가 하는 모든것들이모든 다른 가능성의 바다로 씻겨나가는지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현실이입자의확률로 결정된다면 현실은 하나로만 존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과거도하나로만존재할 수 없다. 양자역학 세계에서 모순되어 보이는 대립되는 항들은모두하나로 연결되거나 하나의 다른 모습들에 불과하다.
양자역학에서 모순율은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양자역학 관점에서의 삶의 임의성과 재조합의 가능성에대한조브의 설명은 양자역학에서 유명한 사유실험인 쉬뢰딩거의 고양이를 떠올리게한다.
쉬뢰딩거의 1935년에 있었던 사고실험은 입자의 특이한 세계를 잘 보여준다.
슈뢰딩거는 이중슬릿 원리에 따라 만든 폐쇄장치가 달린 상자에 고양이를 넣고방사능을 띤 원자 하나를 두 개의 상자로 옮겨서 원자가 닿는 상자의 추가 떨어져독가스가 든 병이 깨진다는 상황을 상정한다.
그런데 양자물리학에 따르면고양이는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은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
쉬뢰딩거는 이 고양이를이용한사유로 양자역학의 모순을 비판하려 했으나 오히려 양자역학은 이것이가능하다는것을 증명해 냈다.
입자는 “멀리서도 간접 측정으로 그 어떤 접촉도 없이우리가자기를 쳐다보는지 알 뿐 아니라, 관찰자의 은밀한 의도를 읽어내고 과거를미래에 따라 바꾸는 역의 인과성”을 드러낸다(세페르 107).
관찰할 때 아무런흔적도남기지 않는 입자가 관찰될 때에만 현실을 만들어내고 그에 따른 이야기도만들어낼 뿐 아니라 관찰에 맞게 과거도 만들어낸다. 이런 가정이 옮다면 과거는미래처럼 결정되지 않았고 현재에 따라 무수히 많은 확률로만 존재하고 하나만실현된상태이다.
멀티버스가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한히 작은양자역학의세계에서는 시간조차 직관할 수 없는 형태를 지녔다. 세페르에 따르면“우주는모호한 구름, 시공간 속 양자장의 확률 파동이다”(139).
양자역학의 측면에서 유니버스들과 그 안의 모든 존재들은 양자장의확률파동으로 존재하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있음과 없음이 결정된다.
현실은 어떤입장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일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삶을 잠재적으로살수 있다.
이러한 잠재성의 인식은 ‘되기’에 연관된 기억과 공동체 문제와도관련이된다.
에블린의 멀티버스 속 ‘되기’와 잠재성의 경험들은 윤리적 책임의발견이자순수기억으로만 남아있던 기억 속 자신과 남편과 딸의 발견이기도 하다.
에블린은기억들 속에 숨겨져 있던 가족들의 모습들을 멀티버스들 속에서 다른 모습들로만난다. 특히 딸의 기억은 에블린에게 자신이 무엇을 잃어왔는지 보여준다.
에블린은어린 딸의 즐겁게 뛰던 모습, 딸을 돌보며 가슴 아파했던 순간, 엄마에게분노하고좌절하고 슬퍼하는 딸을 보며 분노하던 순간 등을 다른 유니버스 속의조브와의 194 김 대 중 만남을 통해 기억해 낸다. 과거의 순수기억들은 에블린의 기억들 속에서하나씩의유니버스가 된다. 조이와 에블린의 기억과 현실과 다중우주는 서로 얽혀있다. 사랑스러운 조이의 모습에 대한 기억, 우울한 조이의 모습에 대한 기억, 화가난에블린의 기억, 사랑스럽던 남편의 기억, 좌절스러운 남편의 행동에 대한 기억은모두각각의 유니버스 속 인물들을 통해 동시적으로 존재하고 서로 얽힌다.
이러한잠재성과 되기의 경험을 통해 에블린은 조브가 된 딸의 극심한 우울이 투영된세계들을 겪고 딸에게 처음으로 “이건 너의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라고말하며 그녀의 좌절과 우울을 공감한다. 그러나 공감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않는다. 영화 중반 조이의 상황에 공감을 표하는 중에도 에블린은 모든 문제가조브투바키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이의 또 다른 모습이 조브 투바키임을 인정하지못하고 그 존재가 사라지면 자신이 믿고 싶은 모습이 돌아올 거라는 생각은반영적사유이다.
대립은 이제 삶과 잠재성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윤리적 태도들의대립으로 이어진다.
조이와 에블린의 대립은 긍정적 니힐리즘과 부정적 니힐리즘을 상징하는구글리 아이(googly eye)와 검은 베이글이라는 두 가지 원환(circle)들의 대립으로도형상화된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세계는 원환의 세계이다.
요한상징들인 검은 베이글과 구글리 아이와 거울은 모두 원이며 그들의 삶에위기를상징하는 문제가 된 영수증에 그려진 원 역시 차이 있는 반복이다.
화는검은원 가운데가 하얀색인 검은 베이글로 상징되는 부정적 허무주의와 흰 바탕에검은눈알을 가진 구글리 아이로 상징되는 긍정적 허무주의의 대립을 보여준다.
조브투파키는 어떤 욕망도 목적도 없이 그저 사라지기만을 원하고 조브/조이의극단적죽음충동이 부정적 허무주의를 담은 검은 베이글로 상징된다.
조브가된조이는에블린에게 “당신은 내가 왜 이 베이글을 만들었는지 아나요? 이것은모든것을파괴하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이것은 나를 파괴하기 위한 것이에요. 나는내가이안에 들어가면, 마침내 내가 탈출할 수 있을까 알기를 원했어요. 죽음으로의탈출 말이에요. 적어도 이런 방식으로....하지만 나는 혼자서 사라지고 싶지는않아요”라고 말한다.
검은 베이글은 극단적 우울감 속에서 자신의 존재와 세상이 모두없어지기를바라는 조이의 마음 상태를 대변한다. 하지만 조이는 자신만이 사라지는것이아니라 자신의 존재와 불행의 근원이라고 생각되는 에블린과 같이 사라지길바란다.
현실의 조이는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는 자신을이우주에서 지우려 한다고 여기고, 어머니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가 사라지는것과 같다는 생각에 차라리 자신과 에블린과 함께 사라지길 바란다.
‘멜랑꼴리아’의극단적 상태는 영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꼴리아>에 나오는멜랑꼴리아행성과 부딪쳐 지구가 박살이 나는 환상이다.
검은 베이글은 자신의 모든가능성과 잠재성을 올려놓고 검은 원안으로 모든 잠재적 우주들, 즉 현실에있는모든잠재적 가능성과 그로 인한 미래들이 빨려 들어가 0(nil)이 되길 바라는원환이다. 모든 희망과 사랑과 잠재성들이 이 검은 베이글을 통해 빨려나가고 남은세계에서조이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요’라는 뜻으로 “nothing matters”만이진실이라고말한다. 그러자 에블린 역시 이 말이 이중적 뜻인 “별일 아니다”라는 의미라고되받는다.
조이의 베이글이 사라지고 싶고 모든 것을 0으로 돌리고 싶은 부정적허무주의를 상징한다면 에블린이 자기 이마에 붙이는 ‘구글리 아이’는 우주의모든잠재성을 경험하면서도 자기파괴가 아닌 현재를 긍정하는 긍정적 허무주의(optimistic nihilism)를 보여준다.
긍정적 허무주의를 담은 영겁회귀(eternal recurrence)는니체의 중요한 사상들 중 하나이다. 영겁회귀는 물질과 에너지가 시간을 통해변화하는 영원한 사이클 속에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며 고대 스토아학파에서도주장되었던 개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는다시동일한 삶도 나은 삶도 유사한 삶도 아닌, 영원히 바로 스스로 동일한 이 삶으로돌아온다”라고 말한다. 니체의 언명은 긍정적 허무주의로서 운명에 대한 사랑이며어떤 현재의 고통도 긍정적으로 살아낸다는 언명이다. 그러나 들뢰즈는 니체의긍정적 니힐리즘을 한 단계 더 끌고 간다.
그는 니체와 철학(Nietzsche and Philosophy)에서 “영겁회귀는 같은 것의 영원함도 아니며 동일함의 평형상태나안정된 장소가 아니다.
영겁회귀에서 돌아오는 것은 ‘동일자’나 ‘일자’가아니며 돌아오는 것은 그 자체가 다양성으로 그리고 차이나는 것에 속하는 회귀이다”라고정의한다(46).
즉 들뢰즈는 영겁회귀가 현재의 고통이 아무리 똑같이 반복되더라도견뎌내는 능력이 아니라 현재가 무한히 차이가 나는 반복이 되는 생성의세계를의미하는 긍정적 니힐리즘이라고 해석한다.
들뢰즈의 영겁회귀는 같은삶의반복에 대한 긍정뿐 아니라 매번 다르게 반복되는 삶의 잠재성을 인정하는‘되기’의긍정(affirmation)이다.
영화의 결론에서 에블린이 도달한 세계관은 이러한 긍정적 허무주의이다.
인생의 고통은 끝날 수 없고 어떤 유니버스에 가더라도, 어떤 현실이 미래에도래하더라도 고통은 현존하고 대립은 사라지지 않는다.
현재는 무한한 잠재성의한현실화(actualization)에 불과하다.
멀티버스로 펼쳐진 무한한 유니버스 속 자신을만난다 해도 완전한 행복이나 완전한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차이나는 반복에 불과하다. 반복되면서 유일하게 매번 존재하는 것은 ‘있음’이있다는것과 무한의 잠재성은 현재에 그대로 N-1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부정적니힐리즘이이것을 부정한다면 긍정적 니힐리즘은 이것을 긍정한다.
이러한 긍정을통해긍정적 허무주의는 ‘무엇이 옳은가’나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나 ‘무엇이문제였기에지금 이런 꼴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될 수 있는가’를 무한히 사유하고창조해낼 수 있다. 이러한 긍정적 허무주의의 핵심에는 ‘코나투스’(conatus)가있다.
데카르트는 코나투스를 기계적 생명력을 본 반면 스피노자는 자연과 인간의마음이 서로 통하는 지점으로서의 생존에 대한 욕망과 실천들을 코나투스로보았다.
물론 코나투스는 생명체와 물질에 모두 해당된다.
에블린은 멀티버스를통한잠재성에 대한 탐험을 통해 인생은 어떤 불확실성도 받아들이고 자신의 욕망에충실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이를 조이에게 알려주려 한다
. 그녀는 조이에게생명이 소중하고 지금의 나를 사랑해야 하며, 과거와 현재의 사유가 아닌미래의사유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다.
미래는 열려 있고 과거는 미래의잠재성들에 불과하다.
물론 현재에 공존하는 잠재성들에 대한 감각적 열림과 사유만이미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잠재성에 대한 인정과 ‘되기’의가능성들을 천착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잠재성과 되기의 사유는 새로운 연대와 공동체를 가능하게한다. 에블린은 멀티우주 속에서 자신이 사랑하거나 미워하던 이의 잠재태들과 새로운관계의 변주들을 만든다. 가령 현실에서는 옹고집이고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못하는에블린의 아버지는 알파 유니버스에서 에블린을 대신해 탐사대를 이끄는대장역할을 하면서, 에블린이 조브처럼 카오스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에블린을죽이려고까지 한다.
아버지는 자신 안에 있는 자식들을 사랑하는 모습과 영어를거의못하며 미국에 사는 천덕꾸러기가 된 자신의 모습과의 대립에서 비롯된 좌절을겪게되고 이것이 알파버스에서의 독재적이고 폭력적 폭군이라는 잠재성으로현현된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결혼을 반대하고 자신에게 심하게 몰아붙이던 젊은아버지의화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알파 아버지를 보고, 에블린은 아버지의 좌절감을비롯한복잡한 마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아버지와 화해를 이룬다. 에블린은잠재적자신들과 우주들에서 잠재적 남편들을 겪으며 남편의 진심을 깨닫는다.
또다른유니버스의 웨이먼드는 ‘다시 태어난다면 당신과 빨래방을 하는 삶을 살고싶다’는말을 에블린에게 해준다.
그리고 조부의 베이글 안으로 끌려가던 에블린은남편의‘친절해지자’(be kind)라는 말을 되뇌며 자신의 과거 속 남편의 다정했던모습들을떠올린다. 잠재성은 과거의 총합이기도 하다.
순수기억으로 남은 그 기억들이다시돌아올 때 인간은 다른 우주를 여행하듯 친숙한 대상의 진정한 모습을깨닫는다.
에블린이 남편의 말을 수용하고 남편을 안으며 현재 자신의 모습이 잊었던과거의기억이 대안우주로 반복되며 제시하는 또다른 가능성을 탐색한다. 마찬가지로에블린은 다른 유니버스에서 소시지 손가락을 한 자신과 동성애 애인이되기도한국세청 직원의 어려웠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안아주고 아픔을보듬어준다.
이러한 과거 기억에 기반한 ‘되기’의 시뮬레이션으로서의 경험과 그경험들이담아내는 긍정적 허무주의를 통해 에블린의 현재 세계가 바뀐다. 가령바위로바위인 조이와 암묵적 대화만 나눌 뿐 만나지 못하던 에블린-바위는 구글리아이를달고는 생기(vitality)를 지닌 물질이 되어 조이-바위에게 다가간다.
돌은움직일수없다는 조이-바위에게 에블린-바위는 “법칙 따위는 없어!”(there are no rules!)라고 198 김 대 중 자막으로 외치고 끝까지 조이-바위에게 다가가려 한다.
그러자 조브가 데려온일군의 공격자들은 자신들의 잠재성으로만 가지고 있던 모습들을 발견하며행복해진다.
가령 빨래방에 자주 오던 한 아저씨는 악당으로 나오지만 에블린을 공격하려던순간 그의 총에서 죽은 아내의 향을 지닌 향수가 발사되면서 행복을 되찾는다.
IV. 긍정적 니힐리즘과 변화의 가능성
그리고 그한계물론 마지막 순간까지 에블린은 조이와의 관계 회복은 어려움을 겪는다.
에블린은 우선 자신과 조이가 똑같이 고집스럽고 현실에 갇혀 있는 삶을 살고있다고조이에게 고백한다.
그리고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검은 베이글이라는죽음충동으로 빨려 들어가는 조이를 다른 가족들과 힘을 합해 끌어내린다.
그러나끌려나오고도 조이가 자신을 그냥 놔두어 달라고 부탁하자 에블린은 그 모든문제가해결되지 않는다고 해도 “나는....영원히....영원히...너와 함께 여기 있기를바래”(I will always… always… want to be here with you)라고 말한다.
지금까지의잠재성과 멀티버스를 통한 대환장 사건들은 이 한마디의 말을 위해 존재했다.
에블린의 이 말은 이 둘의 관계에서 다른 모든 잠재성들이 있음을 깨달을 수있는한, 바로 이 순간 이 장소가 무한히 반복된다고 할지라도, ‘운명을 사랑’(amor fati)하고 차이 나는 미래를 만들겠다는 결심을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빨래방은파산에서 벗어나고 에블린과 웨이먼드와 에블린은 조이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의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모든 사건들이 유토피아적 현실로 끝나지는 않았다.
미래는열려있고 에블린과 웨이먼드는 앞으로 이 가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은전투를벌여야 할 것이다.
어느 유니버스에서도 대립과 전투는 끊이지 않는다.
이영화속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삶은 다문화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환상 너머의 아픈현실을보여주고 있다.
최근에 있었던 스파숍에서 한국인들의 집단 학살과 아무런이유없이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폭력의 대상이 되는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모습들은우 리에게 과연 현실의 잠재적 모습에서 어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지 의문을품게한다.
그러나 기억은 공동체의 잠재성을 발견하게 하는 희망의 전조가된다.
가령일반적으로 LA 폭동이라고 불리는 4.29. 이후 한국계 미국인들은 불타버린폐허에서 공존의 가능성 역시 발견했다.
518광주 민주화운동이나 이태원 참사에대한기억의 공유를 통한 민주시민들의 공동체 의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실은도피의대상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새로운 현실의 잠재성을 탐구하고 이를 통해혐오와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해방의 계기를 공동체에서 찾는 ‘되기’의 장이기도하다.
또다른 유니버스에서 에블린은 자신의 적이라고 여겼던 국세청 직원과 소시지손가락 대신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레즈비언으로 살면서 화합을 이룬다.
들뢰즈에따르면 시간의 마지막 세 번째 종합은 미래로의 종합이다. 현재 속에 과거전체와공존하며 미래는 도래한다.
이 종합에서 동일자와 정체성은 사라지고 차이로돌아온다. 도래하는 그 미래의 공동체를 이 영화는 지금 우리에게 상상해 보길요구하고 있다.
주제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신유물론, 긍정적 니힐리즘, 멀티버스, 되기
Works Cited(참고문헌)
Bum Il, Kim. “[Special]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③From the Perspective of Kim, Bum Ill, a Physicist: Parallel Universe in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Cine 21. Web. 3 Nov. 2022. [김범일. 「[기획]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③ 김범준물리학자의관점에서: 에에원의 평 행우주론」. 씨네21. Web. 3 Nov. 2022.] Daniel Kwan and Daniel Scheinert. dir. Lionsgate, 2022. Film. Coole, Daiana and Smantha Frost. “Introduction.” New Materialisms: Ontology, Agency, and Politics. London: Duke UP, 2010. Print. Deleuze Gilles. Nietzsche and Philosophy. New York: Columbia UP, 1983. Print. _____,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Trans. Brian Massumi. Minneapolis: U of Minnesota P, 2005. Print. Gamble, Christopher N., Hanan, Joshua S. and Nail, Thomas. “What is new materialism?” Angelaki 24.6 (2019): 111-34. Print. May, Todd. Gilles Deleuze: An Introduction. Cambridge: Cambridge UP, 2005. Print. Nietzsche, Friedrich Wilhelm, Thus Spoke Zarathustra: a Book for All and None. Cambridge :Cambridge UP, 2006. Print. Schafer, Laurent. Quantix: la physique quantique et la relativité. Seoul: Hanbitbiz, 2020. Print. [세페르, 로랑. 퀀텀: 만화로 배우는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서울: 한빛비즈, 2020.]
ABSTRACT:
Becoming in the Era of New Materialism and Positive Nihilismin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Daejoong Kim (Kangwon National U)
This essay aims to analyze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through the theoretical frames of new materialism and the philosophical understanding of positive nihilism. New materialism has deconstructed the binary division between mind and body, material and soul, proposing a new perspective on the agency of matter. Nietzsche also proposed positive nihilism, recognizing the will to power and its relation to the eternal recurrence. The movie,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directed by Daniel Kwan and Daniel Scheinert and released in 2021, has garnered various awards and acclaim for its poignant and thought-provoking portrayal of the multiverse, embedding serious philosophical and cultural questions regarding the new materialistic understanding of the universe and matter, as well as Asian American heritages. The movie is divided into two narratives: the traditional Chinese American narrative of generational gap and struggle, and the cosmological aspect of the relation between matter and humanity. In the film, Evelyn, a Chinese immigrant, grapples with numerous challenges, including emotional tension with her daughter Joy, who is a lesbian, a midlife crisis triggered by dissatisfaction with her marriage to her husband Waymond, and financial turmoil stemming from an IRA investigation. This essay primarily focuses on the clash between the acceptance of mutual recognition through positive nihilism, represented by the googly eye, versus negative nihilism symbolized by the black bagel. Additionally, the essay delves into the issue of becoming and its implications, as well as the materialistic understanding of multiple identities.
Key Words: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New Materialism, Positive Nihilism, Multiverse, Becoming Copyright
Received: Feb 27, 2024 / Reviewed: Mar 11, 2024 / Accepted: Mar 12, 2024
동서비교문학67권 2024년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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