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함형수 시 연구 -만주 이주 이전의 작품을 중심으로-/고봉준.경희대

<목 차>

Ⅰ. 서론

Ⅱ. 생애와 작품 연구사의 문제점

Ⅲ. 연작형식과 소년 화자를 통해 본 세계 인식

Ⅳ. 결론

<국문초록>

한국문학사에서 함형수는 1930년대에 활동한 ‘생명파’의 일원으로 평가된다. 이 것은 그의 시 세계를 「해바라기의 비명」에 국한한 일면적 평가에 불과하다. 그동 안 함형수의 시는 제대로 연구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젊은 나이에 죽었으며, 특히 생전에 한 권의 개인 시집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보인다. 이 글은 *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부교수. 10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102집 ‘함형수=생명파’라는 기존의 인식에서 벗어나 함형수의 시가 지닌 다양한 면모를 살펴보려고 했다. 그 일환으로 선행연구에서 그의 생애와 작품 목록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으려고 했고, 시적 형식과 ‘소년’ 화자라는 특징을 중심으로 초현실주의, 그리고 실존적 관점에서 그의 시 세계를 조명하려 했다. 1930년대 중 반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함형수는 이상, 서정주, 오장환 등과 교유하면서 다양한 시적 경향을 실험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함형수=생명파’라는 기존의 평가로 인 해 제대로 주목되지 못했다. 이 논문은 ‘생명파’ 담론에 한정된 함형수 시에 대한 연구가 모더니즘, 초현실주의 등 193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다양한 시적 경향과의 영향관계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생명파, 초현실주의, 모더니즘, 연작형식, 시인부락

Ⅰ. 서론

함형수는 1930년대 중반 새로운 감수성과 시적 경향을 선보이면서 등장한 시 인이다.

1935년을 전후한 시기 한국 시단(詩壇)은 카프(KAPF)가 주도한 계급문 학이 퇴조하고 새로움과 다양성이 분출하던 시대였다.1)

1) 1930년대 시문학의 특징에 대해서는 김유중, 󰡔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양상들󰡕, 이승하 외, 󰡔한국 현대 시문학사󰡕, 소명출판, 2019, 83-137면 참고.

이 시기 시문학의 다양 성은 새로운 세대, 유파, 동인지 등의 출현으로 요약된다. 이 무렵 모더니즘, 생 명파, 청록파 등으로 평가받으며 등장한 시인들은 일제 후반기, 그리고 해방 이 후 시단(詩壇)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면서 사실상 한국 문학의 주류로 성장 했다. 함형수 역시 이 새로운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문학사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평가는 매우 미미하다.

그는 1930년대 중반에 등 장하여 「해바라기의 비명」이라는 대표작을 남기고 요절한 시인, ‘생명파’의 일원 으로서 『시인부락󰡕(1936)과 『자오선󰡕(1937) 동인으로 활동한 시인의 한 사람 정 도로 기억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일차적 원인은 개인 시집은 물론이고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상태에서 이른 나이에 죽은 시인의 불행한 개인사에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와 해방 이후의 문단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몇몇 시인들에만 관심을 집중해 온 연구의 관행에도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함형수의 경 우, 이러한 학문적 무관심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점의 하나가 바로 본격적인 연구가 부재함으로 인해 생애와 작품의 목록에 대한 실증 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2)

그동안 함형수의 시는 두 가지 맥락에서 연구되었다. 하나는 1930년대 『시인 부락󰡕이나 『자오선󰡕 등의 동인지3)와 관련된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1990년대 후 반에 등장한 만주 문학과 관련된 연구이다.4)

전자는 1990년대 중반 이전의 연구 경향으로서 함형수의 문학을 주로 ‘생명파’의 관점에서 분석한 것이고, 후자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만주 문학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본격화하면서 『만선일보󰡕, 『만주시인집󰡕(1942), 『재만조선시인집󰡕(1942)에 수록된 작품이 발굴․소개된 것 들이다.5)

함형수 시에 대한 두 가지 연구 경향은 관심사가 매우 달라 두 경향을 포괄하거나 연속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연구가 사실상 부재한 상태이다. 게 다가 함형수는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고 만주에서 상당 기간 생활하다가 해 방 직후에 사망함으로써 생애에 대한 회고나 실증적 자료도 거의 남아 있지 않 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그나마 축적된 자료에도 잘못된 정보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6)

2)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에서 검색하면 함형수를 단독으로 연구한 소논문은 5편, 학위논문은 1편밖에 없다.

3) 최호빈, 「1930년대 후반 동인문학 장의 형성과 세대론의 전개: 󰡔시인부락󰡕을 중심으로」, 󰡔한국근대 문학연구󰡕 37, 한국근대문학회, 2018.; 신범순, 「《시인부락》파의 ‘해바라기’와 동물 기호에 대한 연구」, 󰡔관악어문연구󰡕 37,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12.

4) 김진희, 「제국과 식민지 경계의 텍스트: 1930년대 후반 문인의 만주행」, 󰡔한국문학연구󰡕 48, 동국 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5.; 조규익, 「在滿詩人·詩作品 硏究(Ⅲ): 함형수와 그의 시」, 󰡔한어문교 육󰡕 2,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1994.; 오양호, 「1940년대 초기 만주 이민문학 연구: 󰡔만주시인집󰡕, 󰡔만선일보󰡕 문예란 소재 작품 연구 서설」, 󰡔한민족어문학󰡕 27, 한민족어문학회, 1995.

5) 오양호,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자료집󰡕, 역락, 2022.; 이애숙, 󰡔1`930~1940년대 재만 조선인 시문학 작품선󰡕, 서우얼출판사, 2005.; 오양호, 󰡔일제강점기 만주조선인 문학연구󰡕, 문예출 판사, 1996 등이 대표적인 성과이다.

6) 함형수의 생애에 관해서는 김선학의 논문이 선구적이다. 김선학, 「함형수 시 연구」, 󰡔동경어문논집󰡕 2,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1986.

이 글은 시인 연구의 1차 자료라고 말할 수 있는 그의 작품과 생애에 대 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고, ‘생명파’라는 유파적 이해를 벗어나 그의 작품을 분 석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함형수 문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출발점을 제시하고자 한다.7)

7) 함형수 문학은 만주 이민(1937~1938)을 분기점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의 활동 시기 가 길지 않고 작품 또한 많지 않아서 포괄적인 연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작품 경향의 변화나 생애, 작품에 관한 새로운 정보가 다수 포함될 수밖에 없어 만주 이민 이후의 문학 연구는 별도의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Ⅱ. 생애와 작품 연구사의 문제점

함형수는 1916년 함경북도 경성(鏡城)에서 태어났다.

그는 함흥 경성고보 3학 년인 1932년 일명 함북재건공산당 사건8)에 연루되어 퇴학당했고, 1935년 중앙 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9)

1989 년에 출간된 시집 『해바라기의 비명󰡕(문학과비평사, 1989) 등에는 함형수가 1936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다고 적혀 있지만 서정주의 회고, 1935년 『조 선일보󰡕에 발표한 「차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함경선(咸鏡線)에서」(1935.8.2)의 저자 약력에 ‘불전(佛專) 함형수’라고 표기된 것으로 보아 1935년에 입학한 것으 로 보인다.

서정주는 회고에서 “1935년 4월 개학 때” 함형수를 처음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함형수가 1935년에 이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10)에 다 수의 작품을 발표한 것으로 보아 서정주와 만나기 전부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한 듯하다..

8) 당시 발행된 󰡔동아일보󰡕(1932.10.27)와 󰡔조선일보󰡕(1933.7.28)에 수록된 <함북재건공산당 예심 결정서 전문>에는 함형수의 본적이 “함경북도 경성군 오천면 수성동 15번지”로, 주소는 “同上 111 번지”로 기재되어 있다.

9) 시집 󰡔해바라기의 비명󰡕(문학과비평사, 1989)을 비롯하여 권영민 편, 󰡔한국 근대문인대사전󰡕(아세 아문화사, 1990) 등의 자료에는 함형수가 1914년생이라고 적혀 있다. 하지만 서정주의 회고에 따르 면 함형수는 서정주보다 한 살 아래이다. 서정주가 1915년생(生)이므로 함형수는 1916년생이 맞는 듯하다. 또한 시집 『해바라기의 비명󰡕에는 함형수가 1936년에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다고 적 혀 있으나 서정주는 1935년 4월에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한 함형수를 처음 만났다고 회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한 따라서 함형수가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 학한 해도 1936년이 아니라 1935년일 듯하다. 서정주, 「함형수의 추억」, 월간 󰡔現代文學󰡕, 1963년 2월호, 279-185면.; 서정주, 「시인 함형수 소전」, 계간 󰡔시와 시학󰡕󰡕 5호, 1992 참고.

10) 함형수는 1935년 한 해에만 󰡔조선일보󰡕에 「마음의 초불」(3.9), 「소상(塑像)」(4.12), 「차중쾌주 스켓치 함경선에서」(8.2), 「구월의 시」(9.4)를, 󰡔동아일보󰡕에 「마음의 단편」(1.26), 「손구락」과 「담뇨」(2.5), 「동해의 진주」(2.8), 「촌철집」(3.5)을 발표했다.

함형수는 서정주를 만난 이후 오장환, 김동리 등과 폭넓게 교우하면서 『시인 부락󰡕(1936)과 『자오선󰡕(1937) 동인으로 활동했다.

함형수는 1937년 무렵 생활고 때문에 만주 도문(圖們)으로 건너가 소학교의 교원 생활을 했다.

그렇지만 1937년에는 『삼천리󰡕와 『자오선󰡕창간호에 여러 편의 작품을 발표했고, 1939~40년 에는 원산에서 발행된 잡지 『초원󰡕을 비롯하여 『시학󰡕, 『삼천리󰡕 등의 매체에 꾸 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11)

게다가 1940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음」이 당선되기도 했는데, 이는 궁핍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시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현존하는 함형수의 생애에 관한 정보는 대부분은 서정주의 회고12)에 의존한 것이다.

서정주에 따르면 함형수는 학비와 하숙비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해서 “노동자 공동하숙소에 끼어 새우잠을 자고 지내”13)다가 1937년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에서 교원 생활을 시작했다.

1963년 발표된 회고에 서 서정주는 1940년 가을 용정에서 함형수를 다시 만났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종합하면 함형수의 생애는 함흥(1930년대 초반)-경성(1930년대 중반)-만주(193 0년대 후반-1940년대 초반)으로 정리할 수 있다.

함형수는 해방 이전에 고향으 로 돌아와 생활하다가 1945년 해방 직후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서 추락하여 사망 했다.

함형수가 “해방 후 북한에서 정신적 갈등에 의한 착란으로 시달리다가 사 망했다”14)라고 주장하는 연구도 있으나 명확한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15)

11) 이에 대해서는 신연수, 「‘해바라기’의 시인 함형수의 발굴 시 6편」, 󰡔근대서지󰡕 14, 근대서지학회, 2016, 207-219면 참고.

12) 서정주, 「함형수의 추억」, 월간 󰡔現代文學󰡕, 1963년 2월호, 279-185면.; 서정주, 「시인 함형수 소전」, 계간 󰡔시와 시학󰡕 5호, 1992.

13) 서정주, 「함형수의 추억」, 월간 󰡔現代文學󰡕, 1963년 2월호, 285면.

14) 조규익, 「재만시인․시작품 연구(Ⅲ): 함형수와 그의 시」, 󰡔한어문교육󰡕 2, 한국언어문학교육학회, 1994, 240면.

15) 서정주는 함형수의 죽음을 이렇게 증언한다. “1945년 해방되던 해 월남한 그곳 친구들한테 들으 니, 실성을 하여 해방되던 해 남으로 간다고 기차의 기관차를 올라타다 떨어져 불귀의 객이 되었다 고 한다.” 서정주, 「함형수의 추억」, 월간 󰡔현대문학󰡕 1963년 2월호, 285면. 반면 오양호는 윤영천 의 견해를 빌려 함형수가 사회주의 이념을 좇아 만주로 갔고 1946년 장개석의 국민군과 모택동의 홍군이 맞붙은 장춘전투에 모택동군으로 참가하여 중상을 입었고, 회령으로 돌아왔으나 후유증으 로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오양호,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연구󰡕, 역락, 2021, 264면.

함형수 작품의 목록화, 즉 원전 확정에도 상당한 문제점이 존재한다.

1989년 에 출간된 시집 『해바라기의 비명󰡕에는 함형수가 『조선일보󰡕(1935.8.2)에 발표한 「차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 함경선(咸鏡線)에서」가 전체 18개 부분 가운데 일부가 삭제된 채로 수록되어 있다.

오양호가 편집한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 선인 시 자료집󰡕에는 함형수가 만주에서 ‘시현실’ 동인으로 가입하면서 두 차례 에 걸쳐 『만선일보󰡕(1940.12.22~24)에 발표한 시론 「나의 시론 - 엇던 시인에 게」가 시 작품으로 잘못 소개되어 있다.

또한 조규익은 「재만시인․시작품(Ⅲ): 함 형수와 그의 시」에서 ““명치 문학의 사적 고찰(『해외문학󰡕 2, 1927.7)”/“1월 창 작평(『동아일보󰡕 1930.1.31~2.3)”/“침체 절정에 선 민중예술 - 일본 문단(『동아 일보󰡕 1930.4.6)”/“4월 창작평(『대중공론󰡕, 1930.6)”/“자기의 비평적 태도-「4월 창작시평에 대하야」(『동아일보󰡕 1930.7.31~8.7)”/“창작계의 이삼고찰-최근 1년 간의 작품과 작가(『동아일보󰡕 1931.1.30~2.10)”/“상반기의 창작평(『동아일보󰡕 1 931.9.2~9.5)”/“9월 창작평(『문예월간󰡕 창간호, 1931.11)””처럼 다수의 비평을 함형수가 쓴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들은 1920년대에 해외문학연구회의 일원으로 활동한 평론가 함일돈이 쓴 것이다.16)

16) 함일돈이 쓴 비평 목록에 대해서는 권영민, 󰡔한국 근대문인 대사전󰡕, 아세아문화사, 1990, 1303-1304면 참고.

한편 작품의 목록을 작성하고 원전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다양한 혼돈 은 함형수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근대서지󰡕 제14호에 발표된 신연수의 「‘해바라기’의 시인 함형수의 발굴 시 6편」과 <함형수 시 작품 목록>(자료)를 통 해 상당 부분 정리되었다.

특히 후자는 함형수 작품의 최초 발표 지면을 꼼꼼하 게 확인하여 제시하고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다수 발굴하여 정리함으 로써 함형수 시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계기를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 만 이 목록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함형수가 1935년 3월 5일 『동아일보󰡕에 ‘촌철집’이라는 표제로 발표한 7개의 소묘(素描)를 일곱 편의 작품으로 제시한 것이 대표적인 문제이다.

함형수는 ‘촌철집’을 비롯해 『시인부락󰡕 1~2집에는 ‘소 년행초(少年行抄)’라는 표제로, 『자오선󰡕 창간호에는 ‘소년행(少年行)’이라는 표 제로, 『시학󰡕 5집에는 ‘무명(無明)에서’라는 표제로 연작형식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 작품들은 열차 안팎의 풍경을 18개의 파편적인 이미지로 제시하고 있는 「차 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 함경선(咸鏡線)에서」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형식적 고 려에 따라 창작된 것들이다.

‘촌철(寸鐵)’, ‘초(抄)’, ‘스켓치’ 같은 표현에서 암시되듯이 함형수는 다양한 풍경과 의식을 하나로 전체화하는 대신 파편적으로 나 열하는 방식을 선호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외부 세계와 현실에 대한 종합적 의식을 강조한 이전 세대의 창작 방식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몇몇 연작형식의 작품을 하나, 즉 단일한 작품으로 간주 할 것인지 아닌지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하지만 ‘촌철집’이라는 표제로 『동아일 보󰡕에 발표한 것은 7편의 작품이 아니라 7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하나의 작품이 다.

이러한 형식적 특징은 『조선일보󰡕(1935.11.25)에 발표한 「소년행」에서도 분 명히 확인된다.

이 작품은 함형수가 함지(咸池)라는 가명(假名)으로 발표한 작 품17)으로서 <귀목> <개잇는풍경> <유폐(幽閉)> <초련(初戀)>이라는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7) 󰡔근대서지󰡕 제14호에 수록된 「함형수 시 작품 목록」에는 이 작품의 ‘원 게재지 미확인’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이 작품은 함형수가 ‘함지(咸池)’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1935.11.25)에 발표 되었다.

반면 함형수가 함일사(咸逸史)라는 가명(假名)으로 『조선일보󰡕 (1934.11.17)에 발표한 작품인 「가을」은 <기러기> <낙엽> <귀뜨람이> <달> <두 사람> <개잇는풍경>의 여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초의 발표 지면에 ‘가을 외 2편’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여섯 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작품을 왜 ‘가을 외 2편’이라고 소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함형수의 이러한 창작 형식 이 텍스트를 확정하는 단계에서 중요한 논점이 될 수밖에 없음은 분명해 보인다.

2016년에 작성된 <함형수 시 작품 목록>(자료)에는 지금까지 발굴된 함형수의 시가 총 58편이라고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폈듯이 연작 형태의 작품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숫자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이 목 록에는 함형수가 ‘함지(咸池)’와 ‘함일사(咸逸史)’라는 가명(假名)으로 발표한 작 품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이 자료에는 1935년 4월 12일에 발표된 「소상(塑像)」 의 발표날짜가 1935년 4월 2일로, 『재만조선시인집󰡕(1942)에 발표한 「화석의 고 개」가 「화석의 노래」로 잘못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Ⅲ. 연작형식과 소년 화자를 통해 본 세계 인식

함형수에 대한 문학사적 평가는 1930년대 ‘생명파’의 한 사람, 특히 「해바라기 의 비명」의 시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생명파’는 1930년대 중반 “시 창작 이 념으로 휴머니즘 문학론을 수용”18)하면서 등장했다.

“<시인부락>의 첫 시인 함 형수의 「해바라기의 비명」과 <후기>를 읽어보면 ‘해바라기’와 ‘태양’이 이 동인 지 앞뒤를 장식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19)라는 지적처럼, 그동안 함형수 시에 등 장하는 ‘해바라기’는 “‘시인부락’의 문화적 종의 표지”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유 로 인해 문학사에서는 ‘함형수=「해바라기의 비명」=생명파’라는 등식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문학사적 상식은 역설적으로 함형수의 문학을 ‘생 명파’라는 기호에 제한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함형수의 첫 작품은 경성고보 2학년 재학 당시 인 1932년에 발표한 「오늘 생긴 일」이다.

이 시는 1932년 『동광(東光)󰡕이 주최한 제1회 남녀중학생 문예경기대회에서 2등을 차지한 수상작으로서, 이때는 함형수 가 함북재건공산당 사건으로 체포되기 직전이었다.

시인은 어느 봄날 한 마을에 서 발생한 다양한 사건을 ‘오늘’이라는 시간의 동시성을 중심으로 열거하고 있 다.

하루라는 시간에 발생한 사건들을 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는 시인의 취사 선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는데, 시인은

“三吉아버지네 집이/끝끝내 차압을 당하 엿지”, “강건너 煙草工場에 다니는 宋아저씨가/스트라익密謀 發覺으로/××에 들 어간 모양이지”,

“뽕펫집 李君이 오늘부터/學校에 오지못하게 되엇지/月謝金이 여섯달치가 밀린때문!”

처럼 다양한 사건들 가운데 유독 사회성이 짙은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해 함형수는 사회주의자로 평가되기도 한 다.20)

18) 오세영, 󰡔20세기 한국시 연구󰡕, 새문사, 1989, 200면.

19) 신범순, 「《시인부락》파의 "해바라기"와 동물 기호에 대한 연구 -니체 사상과의 관련을 중심으로-」, 󰡔관악어문연구󰡕 37,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12.12, 293면.

20) 오양호,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연구󰡕, 역락, 2021, 264면.

하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쓰고 발표한 1935년 전후 그의 작품에서 는 사회주의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함형수는 1935년 한 해에만 10편 이상의 작품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1936~37년에는 『시인부락󰡕 1~2집. 『삼천리󰡕, 『자오선󰡕 등의 다양한 매체에 집중적으로 발표했다.

함형수는 194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이 미 등단 이전에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던 시인이었다.

따라서 1930년대 함 형수의 시적 관심사는 1935~1937년에 집중적으로 발표된 작품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발표된 함형수의 시는 ‘촌철집(寸鐵集)’, ‘소년행초(少年行抄)’, ‘소년행(少年行)’, ‘위무용(爲舞踊)’, ‘무명(無明)에서’처럼 연작(連作) 형식을 원용 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다양한 풍경과 의식을 비유기적인 방식으로 제시 하기 위해 고안된 형식적 특징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것은 ‘촌철(寸鐵)’, ‘초(抄)’, ‘스켓치’ 같은 표현에서 추측할 수 있다.

즉 함형수는 단편적인 인상들 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전통적인 창작 방식에서 벗어나 단편적인 인상을 파편 적인 방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적 감각을 추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령 1935년 3월 5일 『동아일보󰡕에 발표한 「촌철집」을 살펴보자.

이 시는 일곱 개의 장면(1. 기러기, 2. 촌길, 3. 담배, 4. 마도로쓰파이푸, 5. 어머니, 6. 삼면(三面)기사, 7. 시(詩))이 ‘촌철집’이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묶어서 제시되고 있다.21)

21) 󰡔근대서지󰡕 제14호에 수록된 <함형수 시 작품 목록」에서는 이들 일곱 개의 장면이 개별적인 작품으로 제시되어 있으나 이는 오류이다.

이는 ‘촌철집(寸鐵集)’이라는 단일한 제목으로 여러 장면을 포 괄하되 각각의 장면들이 중심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성을 지닐 수 있도록, 그러면 서도 한 편의 작품이라는 형식적인 경계를 벗어나지 않도록 구성한 결과로 보인 다.

시인은 ‘기러기’에서 가을 하늘을 날아가는 기러기의 모습에서 ‘집시’의 무리 와 ‘방랑’의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촌길’에서는 ‘갓’으로 표상되는 전통과 ‘자전 거’로 표상되는 근대성이 공존하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불일치를 풍자하고 있고, ‘담배’에서는 저축을 권장하는 기독교인에 맞서 담배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그 리고 ‘마도로쓰파이푸’에서는 파이프 담배를 물고 있는 인물에게서 허무주의자 의 형상을 발견하고 있다.

시인 이상과의 친분 관계를 고려하면 여기에 등장하는 마도로스 파이프를 물고 있는 훌륭한 허무주의자가 구본웅이 그린 <친구의 초 상>(1935)에 등장하는 이상일 가능성이 높다.

‘어머니’에서는 “어머니란 영원히 존재를 원코 싶다”라는 진술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고, ‘삼면 기사’에서는 육십 대 노인이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는 신문 기사를 원용하여 안타까운 죽음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일곱 번째 부분인 ‘시(詩)’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정방(正方)의 흰 벽에다 세잔누 한 폭(幅)을 비뚜루 붙여본다. (수직선에다 그어놓는 사선(斜線)) - 아무래도 신경과민된 시인은 시를 그 속에서 본다. 이것은 1930년대 중반 함형수가 시에 대해 갖고 있던 생각의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여기에서 ‘세잔누’는 그림을 지칭하는 ‘폭(幅)’이라는 단어가 뒤따라 등장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인 듯하다. 그리고 “신 경과민된 시인”이란 보들레르가 ‘현대적 삶의 화가’라는 말로 설명한 현대성, 즉 파편화된 세계인 근대에서 살고 있는 시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구절은 현대의 시인은 흰 벽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그림, 그러니까 정방형이나 수직선으로 표상 되는 안정적인 질서가 아니라 ‘비뚜루=사선(斜線)’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적인 것을 발견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여기에서 ‘세잔’은 인상주의자의 한 사람이었 던 초기의 세잔이 아니라 입체파에게 영향을 끼친 후기의 세잔, 즉 사실성을 무 너뜨린 회화적 경향을 표상하는 기호이다. “수직선에다 그어놓는 사선(斜線)”과 “정방(正方)의 흰 벽에” 비스듬히 붙여 놓은 “세잔누 한 폭(幅)” 역시 같은 의미 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이 시기에 함형수는 ‘사선(斜線)’으로 표상되는 비사실적․비재현적 예 술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시적 특징은 작품의 내용과 형식 모두 에서 발견된다. 그런데 1930년대 중반 조선에서 이러한 시적 경향의 선구자는 이상(李箱)이었다. 이상은 함형수보다 여섯 살이 많았다. 하지만 서정주가 회고 에서 “이상과 같이 밤 깊도록 술 마시고 다니던 이 해의 어느 겨울밤의 우리의 아닌 밤중의 통곡의 자리에서도 이상(李箱)보다도 더 단단한 얼굴을 하던 것은 이 함형수였다.”22)

라고 밝힌 것을 참고하면 이들 사이의 영향 관계를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을 듯하다.

또한 함형수는 1939년에 발표한 「new arabian night」23)에 ‘아-밤은 만키도하더라…故 이상’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함형수와 이상(李箱) 간의 영향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22) 서정주, 「함형수의 추억」, 월간 󰡔現代文學󰡕, 1963년 2월호, 284면.

23) 함형수, 「new arabian night」, 󰡔비판󰡕 10권 9호, 1939.9.

실제로 다수의 단편적인 장면들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어서 발표하는 함형수의 스타일은 이상이 「오감도(烏瞰圖)」를 비롯하여 「역단(易斷)」, 「위독(危篤)」, 「파첩(破帖)」 등에서 사용한 형식과 거의 동일하다.24)

24) 김주현은 이러한 형식을 여러 수로 구성된 ‘계열시’, ‘연작시’라고 명명했다. 김주현 편, 󰡔정본 이상문학 전집-시󰡕, 소명출판, 2005, 110면 각주 298번 참고.

함형수가 만주에서 초현실주의를 지향 한 ‘시현실’ 동인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직․간접적으로 이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도 있을 듯하다.

1 자리를 내여주니 저춤거리다가 안즌 村각시는 될수잇는 대로 나의 시선을 避하러고 애썼다.

2 집 보담도 백양나무가 만흔조그만마을이 잇다.

3 공손히 담배불을 빌려준 계집처럼 생긴순사.

4 크다란 村색 하나 부끄러워도 안하고 국다란 두다리를 잔디우에 뻐더버린채 泰然 히 汽車를 처본다. (이 亂暴하고도 無禮한 過客안테는 禮儀가 必要업다고 생각한 게지)

5 논(田)두던에 쉬면서 理由모를 빙글우슴을 車窓에 던지든 얼골 싯거믄 村내외

6 넓다란 新作路를 列을 지어가는 거러지의 一群이 잇다

7 거츠른 長崎瓣의 온나는 늘나의 얼골을 도덕질하여 보면서 必要以上으로 어린아기와 짓거렷다.

8 都市와는 퍽 떠러저 잇는가 보아서 바닷가에서 작난치는 계집아히나 사내아히나 샤쓰를 입은 애는 하나도 업다. 9 나어린 보통학교생이 門을 열어주어서 겨우 老人은 便所로 들어갓다.

10 누-런 니빨을 보이면서 구구히 港口에서 벌이 한다는 아들說明을 하는 村할머니가잇다.

11 크다란 돌(石)을 그냥 내여버려 둔 山허리의 조이밧에 늙은 할아버지 한분이 긴 담뱃대에다 담배를 피우고 안엇다.

12 偉大한 夫婦와도 갓이 두개의 큰 바위가 바닷가에 서잇다.

13 늘 꿈 꾸는듯한 눈맵시를 하고서 나의 겻헤 안저잇던 색시는 기여코 昇降口에서 이쪽을 도라다 보고 말엇다. 14 捕縛되여서 汽車에 오르든 陰凶한 눈빗츨 한 罪人은 우리들의 車輛에는 들어오지 인젓다.

15 컴컴한 돈네루속에 들어가면汽車는 가뿐 숨을 쉰다.

16 漠漠한 솔밧뒤에 바다가 잇는 곳.

17 한묵컴의 菖蒲꼿을 車窓을 向해 자랑하면서 귀엽게 웃어보이든 바지저고리의 少年

18 오랜 절도사碑들이 쓸쓸하게서잇는 고향山이 보인다.

1 흔들리는 車안에서 까지 算盤알을 튀기지 안으면 아니될 人間이 잇다.

2 어제날 故鄕색시 지금은 어린아기를 안고 나를 모른다.

3 소(牛)를 치이고 停車한 汽車는 요란과 不安을 실고 다시 發車하엿다.

4 아모리 安心식혀도 마음조리는 나릴데를 지나탄 村 어머니가 잇다.

5 골재기를 빠저 물(江)이 보이니 車안은 별안간 밝어 진다.

1935.77.오후 1시 남양 도착 - 「차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함경선(咸鏡線)에서」 전문

이 시는 1935년 8월 2일자 『조선일보󰡕에 ‘불전 함형수’라는 이름으로 발표되 었다.

‘함경선’에서라는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은 1935년 여름 어느 날 함경선을 타고 ‘남양(南陽)’에 도착했는데, 이때의 경험을 시․공간의 변화에 따라 23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함경선은 함경남도 원산과 함경북도 종성군 상삼봉(上三峰) 사이에 부설된 철도이고, 남양은 조선의 최북단에 위치한 도시로서 만주에 근접한 국경 도시이다.

‘스켓치’라는 제목처럼 화자는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자신이 목격한 기차 내․외부의 풍경을 소묘(素描)처럼 가볍게 묘사한다.

같은 해에 발표된 「촌철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또한 여러 개의 장 면과 풍경들을 모자이크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에서는 내용보 다 형식에 더 많은 의미가 부여된다.

흥미로운 점은 ‘1’에서 ‘18’까지 열여덟 개 의 풍경이 모두 제시된 이후에 다시 1부터 5까지 다섯 개의 장면이 추가로 등장 한다는 것이다.

먼저 이 시에 등장하는 장면들을 기차 내부의 풍경과 외부의 풍경으로 구분해 보자.

이 기준에 따라 살펴보면 1, 3, 7, 9, 10, 13, 14는 기차 내부의 풍경으로, 2, 4, 5, 6, 8, 11, 12, 16, 17, 18은 외부의 풍경으로 구분된다.

1이 내부이고 2가 외부이며 3이 내부이고 4가 외부이므로 작품 전체가 내부와 외부를 규칙적 으로 반복한다고 예상할 수도 있지만, 이 작품에 그러한 규칙성은 존재하지 않는 다.

게다가 15는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으므로 내․ 외부로 분류할 수도 없다.

그리고 18번 이후에 등장하는 1~5의 경우 1, 2, 4는 내부 풍경, 3은 소가 치이는 사건으로 인해 잠시 멈췄던 열차가 다시 출발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5는 “골재기를 빠저 물(江)이 보이니 車안은 별안간 밝어 진 다.”처럼 도착역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목격한 바깥 풍경과 내부 풍경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서 민중적 삶의 건강성이나 피폐한 민 족의 현실을 읽어낼 수도 있지만 그것은 환원적인 해석일 뿐 설득력이 없다.

이 시에서 중요한 점은 시인의 시선이 기차의 내부와 외부를 반복적으로 왕래한다 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목격한 다양한 풍경을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도 그 풍경들이 하나의 시선에 의해 통일되기보다는 한 편의 파노라 마처럼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화자의 시선에는 다양한 삶의 장면들이 단 순한 ‘풍경’으로 인식될 뿐이다.

여기에서의 ‘풍경’이란 사토 겐지가 “열차의 네 모난 창에 잘려 스쳐 지나가는 광경은 그 자체로 과거에는 느낄 수 없었던 역동 적 경험”25)이라고 지적했던 그것이다.

25) 사토 겐지, 󰡔풍경의 생산, 풍경의 해방󰡕, 정인선 옮김, 현실문화연구, 2020, 8면.

사토 겐지의 지적처럼 근대는 기차의 창에 의해 잘려진 광경이나 까마득한 공 중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우리의 감각과 유리된 풍경이 사진이나 인쇄 같은 복 제 기술로 인해 광범위하게 생산되고 확산된 시대이다.

이런 점에서 기차 여행은 구체적인 삶의 장면들을 볼거리, 즉 ‘풍경’으로 만드는 풍경 생산의 장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함형수의 시에서 화자의 시선은 기차의 바깥만이 아니라 내 부의 모습도 단순한 시각적 대상, 즉 풍경으로 제시하고 있다.

차창 밖의 풍경을 가리켜 “집 보담도 백양나무가 만흔조그만마을이 잇다.”, “논(田)두던에 쉬면서 理由모를 빙글우슴을 車窓에 던지든 얼골 싯거믄 村내외”, “넓다란 新作路를 列 을 지어가는 거러지의 一群이 잇다”, “크다란 돌(石)을 그냥 내여버려 둔 山허리 의 조이밧에/늙은 할아버지 한분이 긴 담뱃대에다 담배를 피우고 안엇다.”, “偉 大한 夫婦와도 갓이 두개의 큰 바위가 바닷가에 서잇다.”라고 진술할 때, 여기에 서는 대상에 대한 시인의 능동적인 개입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볼프강 쉬벨부시는 철도의 등장이 차창 밖의 세계를 ‘파노라마’로 바꿔놓았다 고 지적했다.

“창을 통해 보이는 전망들은 그들이 지닌 심층적인 차원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것들은 빙둘러 서 있으며, 어디나 채색된 평면뿐인 하나의 동일한 파노라마 세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26)

26)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박진희 옮김, 궁리, 1999, 83면.

초기 철도여행에서 개인과 세계는 관객 과 풍경의 관계를 형성했다.

한쪽에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창밖의 세계를 바라 보는 시선이 존재하고, 다른 한쪽에는 세계의 구체성과 심층적 차원을 완전히 상 실하고 한 폭의 풍경이 되어 빠르게 지나가는 세계가 존재한다.

공간을 축소시키 는 열차의 속도로 인해 이 세계들은 원래의 연속성을 상실하고 파노라마적 풍경 으로 바뀐다.

세계가 풍경이 되고 그것을 바라보는 개인이 관객이 될 때, 기차의 유리창은 거대한 스크린이 되는 것이다.

이 스크린 위에서 개인의 시선은 오직 풍경을 볼거리로만 받아들인다.

「차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함경선(咸鏡線)에 서」에 등장하는 다양한 풍경과 장면,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맺 는 관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는 어떠한 해석의 가능성도 존재하지 않는 다.

따라서 이 시의 의미는 내용적 층위보다는 형식적 층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 는데, 시인은 원심력이 강한 이러한 제시 방식을 통해 시적 현대성을 추구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캐롤라인 레빈은 미학적 형식과 사회적 형식, 즉 사회적 형식을 문학적 형식의 근거로 간주하는 해석에 반대하지만, 함형수는 이러한 시적 형식이야말로 예술에서 현대성을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던 듯하다.27)

27) 캐롤라인 레빈, 󰡔형식들󰡕, 백준걸․황수경 옮김, 앨피, 2021, 58면.

사나운몸부림치며밤내하누바람은연약한바람벽을뒤흔들고.

미친듯울음치며긴긴 밤을눈보라는가난한볏짚이엉에몰아쳤으나.

굳게굳게닫히운憎惡의窓에밤은깊어도 깊어도한그루의붉은純情의등불이꺼질줄을모르고.

무서웁게무서웁게어두운바깥을 노려보는날카로운적-은눈동자들이빛났다.

- 「무서운 밤」 전문

집도고향도아무것도잊어버리고소년은그저어려운alphabet의위를독수리눈처럼달 렸다.

조-그만쇠그물窓의하늘에도조각구름이지나가고.

밤이되면파-란별이뜨고봄이 자나가고여름이지나가고가을이지나가고겨울은지나갔으나.

소년은불쌍한소년의어머 니가그다닥때앉은까아마이불속에서괴로운목소리로몇번이고몇번이고소년의이름을 마지막부르는것도.

또하나의푸른囚衣를입은낯설은소년의아버지가묵묵히머리를숙여 눈물겨운그의역사를더듬는것도몰랐다.

- 「유폐행」 전문

1930년대 중반 함형수는 『시인부락󰡕 1집(1936.11)에 「소년행초(少年行抄)」 연 작 4편, 『시인부락󰡕 2집(1936.12)과 『자오선󰡕 창간호(1937.11)에 「소년행」 연작 13편을 각각 발표했다.

‘소년행초(少年行抄)’에서 ‘소년행’으로 이어지는 이 작품 들은 소년 시절의 경험을 담고 있는 실존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위의 인용시에서 확인되듯이 이 시기 함형수의 시에서 ‘소년’과 세계의 관계는 ‘공포’ 와 ‘유폐’ 같은 부정적 정서로 귀결된다.

「무서운 밤」에서 ‘소년’을 둘러싸고 있 는 세계에는 밤새 사나운 바람이 불고 있다.

‘연약한바람벽’을 경계로 내부에서 는 소년이 어두운 바깥을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고,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요란한 울음소리를 내며 밤새 휘몰아치고 있다.

시인은 이러한 공간적 대립을 “한그루의 붉은純情의등불”과 “미친듯울음치며긴긴밤을눈보라”가 휘날리는 장면으로 변주 하는데, 이러한 대립은 날씨, 즉 자연적 현상만이 아니라 세계를 대면하는 ‘소년 =시인’의 내면 상태를 이미지를 통해 드러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소년의 실존을 위협하는 무서운 외부 현실과 그런 현실에 대해 무서움을 느끼면서도 좀처 럼 물러서지 않는 대립이 연출하는 긴장감은 그 경계를 ‘증오의 창’이라고 표현 하는 데서 절정에 이른다.

이 시에서 세계(현실)에 대한 소년이 갖고 있는 정동(a ffect)은 ‘증오(憎惡)’이다. ‘소년’ 화자가 등장하는 함형수의 시에서 공간은 결코 안정적인 곳이 아니다.

지리학자 에드워드 렐프는 ‘공간’과 ‘장소’를 구분하면서

“인간답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로 가득한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곧 자신의 장소를 가지고 있으며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28)

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공간’과 달리 ‘장소’가 인간 실존의 근본적인 토대라는 의미이다.

‘장소’가 한 개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곳이 친숙함과 안정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 서 하이데거는 ‘장소’가 “인간 실존이 외부와 맺는 유대를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 의 자유와 실재성의 깊이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인간을 위치시킨다”29)라고 이야 기했다.

28)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 외 옮김, 논형, 2005, 25면.

29) 같은 책, 25면.

이 기준에 따르면 함형수의 시에서 ‘집’은 결코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의 시에서 ‘소년’은 장소 상실, 즉 실존과 외부의 유대가 부재하는 상태에 처해 있다.

이러한 공간 경험은 「유폐행」에서 ‘유폐’라는 경험으로 드러난다.

이 시에 서 소년은 “조-그만쇠그물窓”과 “푸른囚衣”가 표상하는 감옥에 갇혀 있다.

앞에 서 설명했듯이 함형수는 1932년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된 적이 있는데, 이 시는 그때의 경험을 표현한 것이다.

서정주의 회고에 따르면 함형수가 시국사건 에 연루되어 감옥에 있을 때 방랑자였던 그의 아버지 또한 아내, 즉 함형수의 모 친을 폭행한 죄로 같은 감옥에 수감되었다.

감옥에서 이들 부자(父子)의 상봉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아버지는 유서를 남긴 채 감옥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유 폐행」은 바로 이 사건을 시로 표현한 것으로서 여기에 등장하는 “또하나의푸른 囚衣를입은낯설은소년의아버지”가 바로 함형수의 부친이다.

이들 두 작품 외에 도 “소년의얼굴은고통으로가득찼었고소년의두눈은殺氣를띠고빛났다”(「회상의 방」), “어두운저녁저자에소년은이것도어느것도모조리던져버렸다.”(「조개비」) 등 처럼 「소년행초(少年行抄)」와 「소년행」 연작에서 ‘소년’의 내면은 시종일관 부정 적인 상태로 그려진다.

Ⅳ. 결론

1941년 『만선일보󰡕에 발표된 함형수의 비평 「만주의 선계(鮮系) 지식인에게: 유물주의 사상의 천박성과 정신적 각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시작된다.

“내 가 말하고 싶은 것은 현대의 유물주의 사상의 천박성이다. 현대유물주의 혹은 일 반으로 그렇게 불리워지는 것은 바로 말하면 유물주의 혹은 향락주의라고 불리 워져야 할 것이다.

거기서는 정신으로서의 인간 생활보다도 육체로서의 인간 생 활이, 이성으로서의 인간존재보다도 감각으로서의 인간존재의 저열(低劣)한 주 장이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함형수는 1941년 『만선일보󰡕에 발표한 비평에서도 ‘육체’에 대한 ‘정신’의 우위, ‘감각’에 대한 ‘이성’의 우위를 강조하는 등 휴머니 즘에 기초한 인간존재의 의미와 생명의 탐구라는 ‘생명파’의 문제의식을 유지하 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그의 시 세계를 ‘생명파’로 환원할 수 있다는 의 미는 아니다.

그것은 ‘소년’ 화자를 등장시켜 실존적인 세계를 작품화한 1930년 대 시에서 이미 초현실주의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목격되기 때문이다.

시인 이상과의 친분, 특히 1930년대 중반 장시 「전쟁」, 「수부(首府)」, 「황무 지」 등을 통해 정치적 내용과 실험적인 형식을 통합하려 했던 오장환30)과의 각 별한 인연을 언급하지 않아도 「차중쾌주(車中快走) 스켓치 함경선(咸鏡線)에서」 과 「new arabian night」를 비롯하여 함형수가 30년대에 발표한 작품들에서는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의 흔적이 광범위하게 드러난다.

30) 이에 대해서는 이성혁, 「1930~1940년대 초반 한국 아방가르드 시의 정치성 연구」, 󰡔외국문학연 구󰡕 66, 2017, 123-129 참고.

경험을 유기적으로 통합 하려는 의지보다는 하나의 표제 아래에 다양한 풍경을 파편적인 방식으로 배열 함으로써 균열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형식, 띄어쓰기를 무시함으로써 낯설게 하 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수법, 그리고 시적 대상과 풍경에 대한 주관적 개입을 배제하는 시적 태도 등은 함형수의 시가 ‘생명파’라는 유파적 흐름에서 벗어나 새롭게 논의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요컨대 1930년대 함형수의 시에는 ‘생명파’라 는 문제의식과 모더니즘 또는 초현실주의라는 형식적․실험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적 경향의 다양성은 1940년 이후 초현실주의 운동(<시현실> 동인)과의 연속선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한편으로는 그의 생애와 작품 실증에 대한 선행연구의 문제점을 바로잡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명파’라는 유파적 이해의 바깥에서 함형수의 시를 해석할 단 초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그의 만주 시기 작품들, 특히 1938년 이후 의 작품과의 관계 속에서 충분히 논의됨으로써 일단락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김주현 편, 󰡔정본 이상 문학 전집-시󰡕, 소명출판, 2005. 오양호,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자료집󰡕, 역락, 2022. 이애숙, 󰡔1930~1940년대 재만 조선인 시문학 작품선󰡕, 서우얼출판사, 2005. 함형수, 󰡔해바라기의 비명󰡕, 문학과비평사, 1989. , 󰡔시인 함형수󰡕, 아라플렉스, 2018.

2. 단행본

권영민 편, 󰡔한국 근대문인대사전󰡕, 아세아문화사, 1990. 오세영, 󰡔20세기 한국시 연구󰡕, 새문사, 1989. 오양호, 󰡔1940년대 전반기 재만조선인 시 연구󰡕, 역락, 202. , 󰡔일제강점기 만주조선인 문학연구󰡕, 문예출판사, 1996. 볼프강 쉬벨부쉬, 󰡔철도여행의 역사󰡕, 박진희 옮김, 궁리, 1999. 사토 겐지, 󰡔풍경의 생산, 풍경의 해방󰡕, 정인선 옮김, 현실문화연구, 2020. 에드워드 렐프, 󰡔장소와 장소상실󰡕, 김덕현 외 옮김, 논형, 2005. 캐롤라인 레빈, 󰡔형식들󰡕, 백준걸․황수경 옮김, 앨피, 2021.

3. 논문

김선학, 「함형수 시 연구」, 󰡔동경어문논집󰡕 2,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국어국문학과, 1986. 김유중, 「확대와 심화, 혼란과 좌절의 양상들」, 이승하 외, 󰡔한국 현대 시문학사󰡕, 소명출판, 2019, 김진희, 「제국과 식민지 경계의 텍스트: 1930년대 후반 문인의 만주행」, 󰡔한국문학연구󰡕 48, 동국대학교 한국문학연구소, 2015. 서정주, 「시인 함형수 소전」, 계간 󰡔시와 시학󰡕 5호, 1992. , 「함형수의 추억」, 월간 󰡔현대문학󰡕, 1963년 2월호, 1963. 신범순, 「《시인부락》파의 "해바라기"와 동물 기호에 대한 연구 -니체 사상과의 관련을 중심 으로-」, 󰡔관악어문연구󰡕 37,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2012. 신연수, 「‘해바라기’의 시인 함형수의 발굴 시 6편」, 󰡔근대서지󰡕 14, 근대서지학회, 2016. 오양호, 「1940년대 초기 만주 이민문학 연구: 󰡔만주시인집󰡕, 󰡔만선일보󰡕 문예란 소재 작품 연구 서설」, 󰡔한민족어문학󰡕 27, 한민족어문학회, 1995. 함형수 시 연구 29 이성혁, 「1930~1940년대 초반 한국 아방가르드 시의 정치성 연구」, 󰡔외국문학연구󰡕 66,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2017. 조규익, 「재만시인․시작품 연구(Ⅲ): 함형수와 그의 시」, 󰡔한어문교육󰡕 2, 한국언어문학교육 학회, 1994. 최호빈, 「1930년대 후반 동인문학 장의 형성과 세대론의 전개: 󰡔시인부락󰡕을 중심으로」, 󰡔한국근대문학연구󰡕 37, 한국근대문학회, 2018.

<Abstract>

A Study of Ham Hyung-su’s Poetry -Focusing on Works Prior to Emigrating to Manchuria-

Ko, Bong-Jun

Ham Hyeong-su is evaluated as a member of the 'Saengmyungpa' active in the 1930s in the history of Korean literature. This assessment merely confines his poetic world to the aspect found in "The Scream of Sunflowers." So far, Ham Hyeong-su's poetry has not been adequately researched, likely due to his early death and the fact that he did not leave behind a personal collection of poems during his lifetime. This article aims to move beyond the existing perception of 'Ham Hyeong-su equals Saengmyungpa' and explore the various facets of his poetry. As part of this effort, the article seeks to correct inaccuracies about his life and works that have been misunderstood in previous studies. It focuses on poetic forms and the characteristic of a 'boy' speaker to illuminate his poetic world from the perspectives of surrealism and existentialism. Beginning his literary activities in the mid-1930s, Ham Hyeong-su experimented with various poetic tendencies while engaging with figures such as Lee-Sang, Seo Jeong-ju, and Oh Jang-hwan. Unfortunately, his endeavors have not received proper attention due to the conventional evaluation associating him with the 'Ham Hyeong-su equals Saengmyungpa' notion. This paper argues that research on Ham Hyeong-su's poetry, limited to the discourse of the 'Saengmyungpa,' should be reinterpreted within the context of the influences and relationships with various poetic trends that emerged in the 1930s, such as modernism and surrealism. 󰠐Key words󰠐 Saengmyungpa, surrealism, modernism, serial form, the Poet's Village

2024년 1월 15일 접수 2024년 2월 7일에 심사완료 2024년 2월 7일 게재확정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102집 (28권 1호)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24. 2

함형수 시 연구 -만주 이주 이전의 작품을 중심으로- (1).pdf
1.7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