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그리고 앞으로
이번 연구는 2023년 3월에 열린 한국철학회 2023 70주년 정기학술대회 2부: 남북철학을 말한다 에서 발표한 「지눌에 대한 북한의 근 ․ 현대 연구 고찰」1)의 후속 연구이다.
1) 이 발표는 수정 ․ 보완을 거쳐서 철학 제157집(한국철학회, 2023년11월)에 수록되었다.
지난 연구는 기초 작업으 로서 북한 철학 연구의 기본 원칙(계급주의, 역사주의)과 시기별 연구 특징을 살펴본 후 본 작업으로 서 지눌 관련북한 연구의 특징과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
오늘의 연구는 지난 연구를 바탕으로 지난 연구의 확장과 심화를 진행하고자 한다.
먼저 확장은 연구 대상 범위를 지눌에서 고려시대로 넓히는 것을 가리킨다.
다음으로 심화는 지눌 대상의 지난 연구에서 수차례 언급되고 주요하게 다루어지기는 했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주제를 조금더깊이 다루고자 한다.
즉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평가가 근거하는 원칙과 그 원 칙의 이례적인 경우, 그리고 원칙에 의해 도출된 관념론과 그 관념론이 분화된 개념인 주관적․ 객관 적 관념론에 대해서 주목하여 논의할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이번 연구는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관한 북한 연구의 구체적인 사항보다는 북한이 고려시대 불교철학을 연구할 때 기본으로 삼고 있는 관점 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확장과 심화를 통해 관점에 주목하여 북한의 고려시대 불교철학 연구를 고찰하는 이번 연구의 목 적은 이를 통하여 북한의 불교철학 연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작업을 진행하는데 있다.
이와 관련 하여 다음과 같은 앞으로의 연구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거시적 접근 단계이다.
앞서 발표에서 다룬삼국시대, 이번 발표의 범위인 고려시대 그리고 아직 진행되지 않은 조선시대와 그 이후 근현대 시대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연구를 파악함으로써 북한의 불교철학에 대한 기본 입장을 통시적으로 이해한다.
더불어 이를 남한의 불교철학에 대한 기 본 입장과 상호비교하는 작업을 병행한다.
둘째, 미시적 접근 단계이다.
거시적 접근 단계의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불교철학에 대한 기본 입장을 이해한 상태에서 세부적인 주제, 예를 들어 인물별(원효, 의상, 지눌, 설잠 등), 개념별(해탈, 일심, 불성, 돈오점수 등), 종파/학파/부파별(화엄종, 법상종, 천태종, 선종 등) 항목에 대한 북한의 연구를 탐구한다.
이 또한 남한의 상응하는 연구와 비교하는 작업이 요청된다.
셋째, 통합적 접근 단계이다.
거시적 접근과 미시적 접근을 통한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북한의 조 선철학 연구 일반의 이해를 위해 유교철학, 실학, 그리고 이른바 유물론철학 등에 대한 연구와 연결 하여 종합한다.
이러한 일련의 단계별 작업을 통해서 북한의 철학 일반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디딤돌을 마련하는데 이 연구의 궁극적인 목적과 의의가 있다.
2. 북한의 고려시대 불교철학 연구의 시기 구분
우선 논의의 범위를 정하기 위하여 북한의 조선철학 연구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것 은 이전 발표에서 북한의 지눌 연구를 시기별 특성에 따라서 정리한 것을 수정한 것이다.
<표 1> 북한의 고려시대 불교철학 연구
제 1시기. 1960년대 초반~1967년: 철학연구의 창간과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의 창조적 적용
㉮ 1962 조선철학사 상 -제2절 고려 시기의 유교, 불교, 도교 관념론 철학의 대립 정진석 ․ 정성철 ․ 김창원 단행본 (철학사)
제 2시기. 1967년~1980년대 중반: 철학연구의 중단 ․ 주체철학의 이론적 체계화
㉯ 1976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서의 불교철학의 전파와 그 해독성 -제4장 고려시기 불교철학사상의 발전과 그 해독성 최봉익 단행본
제 3시기. 1980년대 중반 이후~2000년: 주체의 방법론에 의한 철학연구의 주제별 분화, 조선민족제일주의의 시작
㉰ 1986 조선철학사개요 -제3장 고려시기 철학(10세기~14세기) 최봉익 단행본 (철학사)
제 4시기. 2000년 이후~: 불교철학 연구의 양적 증가와 질적 심화, 조선민족제일주의의 본격화
㉱ 2010 조선철학전사 3 -제3편 고려 전반기의 철학사상 -제4편 고려 후반기의 철학사상 강명흡 단행본 (철학사)
이번 연구의 대상은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연구이지만 이번 연구에서는 그 가운데북 한에서 시기별로 간행된 조선철학사 류(類)로 범위를 한정하여 진행하고자 한다.
즉 고려시대 세부 주제, 예를 들어 인물별, 주제별 등에 대한 개별 연구는 이번 연구에서 다루지 않는다.
이는 앞서 언 급한 바와 같이 다음 단계의 연구를 기대한다.
각 시기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제 1시기는 북한의 (조선)철학 연구 태동기로서 북한은 남한과 비 교할 때 상당히 이른 시기인 1962년에 조선철학에 대한 통사적 연구 성과인 ㉮ 정진석 등의 조선철 학사 상을 간행한다.
제 2시기는 조선철학을 비롯한 철학 연구 일반의 침체기로서 그 대신 북한은 주체철학의 이론적 체계화에 집중한다.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한정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후 고려시대 불교철학, 나아가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기본적인 입장과 방향성을 확정하는 주요저술 인 ㉯ 최봉익의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서의 불교철학의 전파와 그 해독성(1976)이 출간된다.
제 3 시기는 주체철학의 체계화가 일단락된 후의 시기로서 이를 바탕으로 한 철학 일반(조선철학 포함) 의 정립, 분화가 가속화되며 이와 동시에 1986년부터는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비롯되어 이것이 철학 연구의 제 3의 원칙으로 등장한다.
이 때 최봉익은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 조선철학사개요를 새로 출간한다.
제 4시기는 2000년 이후로서 불교철학 관련 연구가 양적으로 증가하고 질적으로 심 화하며 또한 제 3시기에 비롯된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불교철학쪽 연구에서 본격적으로 작용하는 시 기이다.
이 시기에는 불교철학 분야에 한정하면 그 이전 시기까지 불교철학을 주도했던 최봉익에 이 어서 강명흡이 등장하여 새롭게 간행되는 조선철학전사 중에서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제 3권(㉱) 을 담당한다.2)
2) 더욱 자세한 각 시기별 구분의 근거와 특징에 대해서는 박보람(2023, pp.73-76)을 참조.
3.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평가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연구를 고찰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중심에 두고 강조해야 할 것은 북한의 철학 연구 기본 원칙인 계급주의와 역사주의, 그 중에서도 계급주의 원칙에 따른 관점 에서 도출된 유물론과 관념론의 구분이 조선철학> 불교철학> 고려시대 불교철학에도 엄연히 적용 되며 그리고 이에 따라서 관념론으로 규정되는 불교철학> 고려시대 불교철학은 북한의 관련 연구 전체를 통틀어서 착취지배계급의 이익에 부역한 이데올로기로서 평가된다는 점이다.
고려 시기의 불교는 유교와 아울러 착취계급들의 중요한 사상 통치 수단이였다.3)
불교철학은 종교로서의 불교를 리론적으로 합리화한 일종의 관념론적인 철학사상조류로서 그 본질은 착취계급사회의 모든 반동철학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주성을 말살하고 근로인민대중을 억압착취하 며 그들을 노예화하기 위한 착취계급들의 일종의 반동적인 사상리론적도구였다.4)
고려시기 불교관념론철학은 봉건사회를 종교적으로 신성화, 합리화하는 중요한 사상적수단으로서 사 상분야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있었다.…중략…불교관념론철학은…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지향을 억제하고 마비시키는데 복무한 반동적학설이였다.5)
3) ㉮ 정진석 ․ 정성철 ․ 김창원, 조선철학사 상(평양: 과학원출판사, 1962), p.34.
4) ㉯ 최봉익,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서의 불교철학의 전파와 그 해독성(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6), p.14.
5) ㉱ 강명흡, 조선철학전사 3(평양: 사회과학출판사, 2010), pp.226-227. 100
북한의 이러한 평가와 관련하여 발표자는 두 가지 점을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 불교철학에 대한 북한의 이러한 평가가 불교철학의 내재적인 측면, 즉 그 자체의 사상적, 수 행론적 차원에서 접근한 결과인가, 아니면 외재적인 측면, 즉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관점에서 도출 된 평가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내재적 ․ 외재적 관점 둘 다 모든 사상의 생주이멸(生住離滅)에 관여하지만, 그렇게 때문에 어떤 사상에 접근하는데에 이 둘의 영향력을 매우 주의깊게 균형 감각을 유 지한 채 사상 이해에 도입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상의 생주이멸을 파악한다는 것, 그것을 내재적․ 외 재적 측면으로 나누어 바라본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사상사 방법론에 대한 거대 담론으로서 이 발표 의 범위를 벗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점을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균형 감각에 대한 필요성, 당위성을 환기하고자 하는 이유에서이다.
이러한 점에서 발표자 개인적으로는 불교철학>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대한 위와 같은 북한의 평 가가 외재적 관점에 치우친, 균형 감각이 흐트러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발표자가 파악하는 근거는 북한의 조선철학사 류가 불교철학을 이렇게 평가하면서 사상 자체의 생성․ 변화․ 소멸에 관 한 사상사적 맥락에 대해서 전혀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즉 내재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고려시기 불교철학의 주요인물로 북한 연구들이 거론하는 균여의 화엄사상이 그 이전의 어떤 사상, 예를 들어 의상과 법장의 화엄 사상의 상호 관계 중 어떤맥락에서 어떤 난맥상을 타개하려고 하였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균여가 승려로서의 정체성을 제일 우선순위의 정체성으로 삼고 있었다면 당연한 귀결인, 이러한 사상을 통해서 어떻게 이고득락의 해탈락을 얻으려 했는가에 대한 논의가 아예 다루어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이러한 흐트러진 균형 감각-실제로는 흐트러졌다기보다는 균형 감각 자체에 대한 무감각 내지는 무시이지만-이 북한 철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철학계, 아니 발표자가 확인한 바에 한 정하면, 남한의 불교철학계에도 만연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로 표현되는 신라시대 의상(義相)의 상즉(相卽) 사상이 당시 신라 전제왕권 옹호를 위한 이데올로기였 다는 주장, 균여의 화엄사상이 당시 고려 광종의 중앙권력 강화 시책에 발맞추어 형성되었다는 이론 등이 남한 학계에서도 일세를 풍미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다.
물론 이러한 사상들이 실제 신라 전제왕권 옹호와 고려 중앙권력 강화에 쓰이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쓰였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만 이러한 사상의 생주이멸을 외재적 요인 만으로, 또는 제일 원인으로 해명하는 것은 한 쪽눈을 가리고 달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발표자가 어떤 사상의 생성 과정에서의 본래 의도나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이 후에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 우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발표자의 주장은 그보다 어떤 사상의 생성을 정치사회경제적 등의 외재 적 요인으로만 또는 주요 원인으로 삼아 이해하려는 주장에 대한 거부감을 토로하는 것이다.
지눌의 돈오점수가 당시 무신정권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일까?
또 하나 이와 관련하여 유의해야 할 점은 불교철학과 불교교단의 구분이다.
불교교단은 동아시아 에서 많은 경우 왕족/귀족 등의 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전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불 교교단의 생주이멸을 이해하는 데에는 정치경제사회적인 외재적인 측면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 러나 불교교단 그대로 불교철학이 아닌 만큼 불교철학 이해에는 불교교단 이해와는 다른 접근 방법 이 필요하다.
4. 기본 평가의 예외적인 경우로 보이는 사례
이 연구가 대상으로 삼고 있는 조선철학사 류는 모두 불교철학> 고려시대 불교철학에 대해서 위 와 같은 입장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간혹 예외적인 주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음에서는 몇 가지 예를 소개한다.
4.1 석가모니 붓다의 불교철학
제 2시기의 최봉익은 석가모니 붓다의 사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석가무니는 원래 종교적측면에서는 당시 브라만교를 반대하면서 철학에서는 유물론과 우파니사드의 관 념론(브라만교를 합리화하던 종교관념론조류)을 다같이 부정하고 2원론적립장을 취하였다.…중략…그 의 이러한 견해가운데는 일정하게 원시적인 소박한 변증법적사유의 요소들이 내포되여있다.6)
이 글을 보면 최봉익이 석가모니 붓다의 사상(?)을 유물론도, 관념론도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 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리고 발표자가 파악하는 한 그것이 석가모니 붓다의 원래 입장일 것이다.
이 에 따르면 사실 ‘2원론적 립장’이라는 말도 [발표자가 생각하는] 석가모니 붓다에게는 들어맞지 않 는다.
석가모니 붓다는 이 세계의 실상에 관하여 어떠한 종류의 ‘원론’(元論)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원론’ 자체를 부정하는 무아․ 연기설의 입장이라고 발표자는 이해한다.
최봉익은 이러한 일견 타당해보이는 논의 후에 별다른 전개 과정 없이 이어지는 글7)에서 불교철 학의 근간을 이루는 변하지 않는 핵심은 착취계급에 종사한 반동적 관념론이라고 회귀한다.
6) ㉯ 최봉익, 봉건시기 우리 나라에서의 불교철학의 전파와 그 해독성, pp.11-13.
7) 각주 4의 본문.
발표자 는 최봉익이 어떤 의도에서 이러한 논리적 불일치, 또는 시종일관으로부터의 이탈을 드러냈는지 알 지 못한다.
아니면 의도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일탈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는 분 명하지 않지만 이러한 사례가 다른 시기의 북한의 조선철학사 류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것은 눈여겨 볼 만하다.
4.2 불교 내의 상대적인 비교
북한은 고려시대 불교철학 전반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불교를 다 시 구분하여 이들 사이에 비판의 강도를 달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경우는 불교철학 내 교종 (敎宗)과 선종(禪宗)의 비교, 고려의 선종과 중국의 선종의 비교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서는 그 중 교종과 선종의 경우를 살펴본다.
교종과 선종의 비교는 불교를 교학 중심의 기존 전통인 교종(敎宗)과 이를 비판한 수행 중심의 신 흥 세력인 선종(禪宗)으로 구분한 후 교종보다 선종에 제한적으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경우이다.
이는 지눌과 지눌이 창건한 조계종에 대한 북한의 연구들에서 잘 나타난다.
지눌의 조계종불교철학은 본질에서 의연히 불교철학의 한 류파에 지나지 않으나 일부 문제들에서는 당 시의 력사적조건에서 일정하게 합리적인 측면들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하여 우리 나라 철학사상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특히 그의 일부 범신론적사상요소들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발전되면서 무신론 사상에 접근하였다.8)
이 인용문은 제 3시기 최봉익의 연구 중 일부로서 지눌의 조계종을 일정 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하 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같은 연구에서 최봉익은 지눌 사상이 진심을 바탕으로 이 세계를 이해하 여 부처가 곧 인간이라는 주관관념론의 입장에서 “종전의 불교류파들의 부처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 과는 달리 사람의 리성과 지혜를 통하여 불교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보려는 측면들이 나타나있 다.”고 한다.
또한 그의 사상이 “범신론적사상에로 나가고있었”으며 이는 앞서 인용한 것처럼 이후 무신론사상에 접근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철학사상발전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는 입 장을 취한다.9)
8) ㉰ 최봉익, 조선철학사개요(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86), p.130.
9) 교종과 선종의 비교 부분은 박보람(2023), pp.81-82를 참조하여 정리한 것이다.
5.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
북한은 계급주의 원칙에 따라서 철학을 유물론과 관념론의 두 범주로 구분한 후 다양한 철학 사상 을 이 범주에 맞추어 규정한다.
이에 따라서 불교와 유교는 이 두 범주 가운데 관념론의 범주에 속하 게 되며 이 범주의 성격상 비과학적이고 결국착취지배계급의 이익에 부역한 반동적 사상이라는 낙 인이 찍히게 된다.
관념론 범주 안에서도 다시 종류가 나뉘어지는데 조선철학사 류의 연구에서 보이 는 것은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의 구분이다.
그의 사상의 철학사적 의의는 그가 불교적 주관적 관념론을 반대하고 현실적 의의가 강한 유교적 객관적 관념론을 후대들에게 선전함으로써불교의 신비주의적 측면을 반대한 데 있다.10)
10) ㉮ 정진석 외 조선철학사 상, p.34.
제 1시기의 대표적 연구인 정진석 등의 조선철학사 상에서 고려 시기의 유교, 불교, 도교 관념 론 철학의 대립을 다루는 중, 유학자 최충(崔沖, 984~1068)의 활동을 평가하는 구절이다.
여기에서 이 연구는 불교를 주관적 관념론에, 유교를 객관적 관념론에 배대한다.
다만 여기에서 사용되는 ‘주 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는 보이지 않기에 이 연구에서 사용하 는 이 개념의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다.
다만 문맥상 이 연구는 주관적 관념론에 배대된 불교에 반대 한 객관적 관념론인 유교를 관념론 내에서는 제한적으로나마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철학 연구에서 유교를 불교보다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북한의 태도는 이후 조선철 학사 류에서 변함없이 유지된다.
제 2시기 최봉익의 연구에서는 이러한 구도에 변화가 생긴다.
[불교-주관적 관념론] 대 [유교-객 관적 관념론]에서 나아가 불교 내에서도 주관적 관념론과 객관적 관념론의 구분을 설정하게 된다.
원래 보조의 《조계종》불교철학은 선행한 《교종》불교의 《부처》우상에 대한 맹목적숭배와 불교에 대한 교조 그리고 신라선종의 신비주의를 부정하여나온 불교철학으로서…중략…그러나 그것은 사상적본질 에 있어서 불교철학내부에서의 주관관념론이 객관관념론을 반대하는 투쟁이였으며낡은 정통적신앙을 반대하는 새신앙의 투쟁에 불과하였다.
여기에서 최봉익은 지눌의 조계종을 주관관념론으로, 그 이전의 교종을 객관관념론으로 규정하 고 이 둘의 투쟁으로 조계종 이후의 고려시대 불교철학을 바라본다.
다만 여기에서도 주관관념론과 객관관념론의 정의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다만 최봉익은 지눌의 조계종 불교철 학이 진심을 강조하고 마음이 곧 부처임(心卽是佛)을 강조하는 점에 주목하여 이를 주관관념론으로 규정하고, 그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그 이전의 교종 불교는 부처를 자기 마음밖에서 찾기에(心外有 佛) 객관관념론에 해당시킨 것으로 발표자는 문맥에 의거하여 추정한다.
균여철학은 주관적인 심에 기초하여 전개되고 체계화된 주관관념론적세계관이다.11)
주관적인 심의 절대성을 주장하는것과 함께 비로자나부처와 같은 심밖의 객관적인 정신적실체를 인정 하는것으로 하여 화엄종불교철학은 자연히 객관관념론적요소를 다분히 내포하고있으며 주관적인 심만 을 유일무이한 실체로 간주하는 선종불교철학에 비하여 세계관적측면에서 신비주의적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균여의 화엄종철학이 가지고있는 객관관념론적경향 즉 《심외유불》의 관점은 후날 지눌을 비롯한 선종 불학자들에 의해 비판되었다.
그들은…부처의 실체성을 부인하였으며 주관적인 심만을 유일한 실체로 규정하였다.12)
11) ㉱ 강명흡, 조선철학전사 3, p.58.
12) ㉱ 강명흡, 조선철학전사 3, p.65.
제 4시기 강명흡의 연구에서는 주관관념론과 객관관념론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 이전보다 자세하 다.
그에 의하면 고려시대 주관관념론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균여의 화엄철학은 주관적인 심을 강조 하는 동시에 비로자나부처와 같은 객관적인 정신적 실체를 인정하기 때문에 주관관념론과 객관관 념론이 혼합되어 있다.
이에 반하여 지눌의 조계종 철학은 오로지 자기의 마음만을 유일한 실체로 규정하기 때문에 교종의 대표 주자인 화엄종 철학에 비하여 순수한(?) 주관관념론이라고 할 수 있 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종은 주관관념론에, 선종은 객관관념론에 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구분은 어떤 의미일까?
관념론에서 주관과 객관을 나누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관념론 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만약 북한이 사용하는 맥락에서처럼 유물론에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관념론이라면 모든 물질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얄팍하게, 작업가설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물질’이 무엇인가는 제쳐놓고. 그렇다면 여기서 주관과 객관을 무엇을 기준으로 구분 한다는 것일까?
강명흡의 설명에 의하면 주관적인 심, 자기 마음을 기준으로 주관과 객관을 구분하 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불교철학의 이른바 제 1원리, 제 1주장이라고 하면 자기 관념, ‘나’라는 생 각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철학을 주관․ 객관 관념론으로 구분하는 것은 ‘나’라는 생각을 부정하는 불교철학을 ‘나’라는 생각을 기준으로 둘로 나누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는 마치 신을 부정 하는 무신론(atheism)을 일신론적(heno-/mono-theistic) 무신론과 다신론적(henotheistic) 무신론으 로 구분하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유심(唯心) 사상의 대표주자인 화엄종 불교철학에서 주관과 객관 의 분리, 심밖의 실체를 인정하는가?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2024.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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