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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의 계보화 - 조선철학전사(2010)를 중심으로 - /이행훈.한림대

1. ‘조선철학사’의 기본 사관과 문제의식

북한의 철학사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역사적 투쟁사이다

특히 주체철학 이후 사람이 모든 것의 주 인이며, 인민대중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의해 발전하는 역사관이 사회 전반의 기조가 되었다.

2010년 발표된 북한의 조선철학전사 총15권 가운데, 김형직과 김일성 관련 기술을 제외하면 8권 까지가 한국철학의 탐색 대상이라 할만하다.

제1권은 고대철학사상, 제2권부터 6권까지는 중세철 학사상으로 세나라시기와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2권), 고려시기(3권), 리조전반기(4권), 리조후반 기(5, 6권)가 포함되며, 제7권은 근대철학사상 1, 제8권은 근대철학사상 2로 구성하였다.

앞서 예비 적 탐색으로 북한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철학자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1960년 최초의 철학통사인 조선철학사(상)에서 처음으로 최한기를 소개한 이후 근래까지 북한 학술에서 최한기가 중요한 철 학자로 지속적으로 조명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민족고전학 설립과 민족고전 번역사업의 국가정책 적 지원으로 북한에서는 남한보다 14년 앞선 1965년에 신기통을 번역하였고, 2017년도 김일성 종합대학출판부 교양서적으로 출판된 조선철학사사료집에도 그 번역이 가장 큰 비중으로 수록 되어 있다.

남한과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최한기 철학사상을 상찬하는 이유는 무얼까.

유물론과 관 념론의 투쟁사라는 철학 사관으로 돌아가 보면, 1960년에 일찍이 “중세 유물론 철학의 완성자, 최한 기”, ‘중세철학을 유물론의 승리로 끝낸철학자, 최한기’로 정형화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선행연구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1) 1970년대 중반 주체철학과 수령영도체제 확립 과정에서는 맑 스-레닌주의 철학도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기치 아래 비판을 면할 수 없었다.

1) 이행훈, 「북한의 최한기 철학 독법과 한계」, 한국학논집 91집, 2023, 177~214쪽;「북한의 최한기 저작 번역 과 해석」, 동양고전연구 92집, 2023, 471~519쪽.

1970년대 정성철이 나 최봉익의 조선철학사 관련저술은 주체철학을 강령으로 내걸었다.

조선시대 실학에 대한 평가도 부침이 잇따랐다.

역사주의와 계급주의 원칙을 적용하여 봉건적 제한성을 얼마나 강조하느냐에 따 라 서술과 평가가 엇갈렸다.

당대에는 선진적이고 진보적인 사상일지라도 중세 봉건사회의 시대적 제약과 과학기술의 미성숙을 벗어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시대 봉건 유교 도덕과 관련해 서는 주자성리학자는 물론이고 실학자 그리고 유물론의 완성자로 불리는 최한기까지도 예외 없이 그 한계가 지적되었다.

토대와 상부구조의 도식에 따라 사회ㆍ역사적 산물인 철학 또한 역사적ㆍ계 급적 성격과 한계는 반드시 짚어야 할 기본문제였다.

북한 철학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과 투쟁의 역사라는 전제에 따라, 고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 르기까지 객관적 관념론과 주관적 관념론에 맞섰던 유물론적 철학사상을 지속 발굴해왔다.

김정일 은 우리나라 중세 유물론 철학의 발전을 동방철학, 세계철학 발전에 기여할 정도로 높은 수준에 도 달했다고 지적했다.

고대 소박한 유물론으로부터 삼국시대 고려시대 관념론 철학인 불교의 유행, 조 선시대 주자성리학의 지배적 위상 아래에서도 중세 유물론 철학이 계승ㆍ발전하였음을 밝히는 일 은 북한 전통철학계의 지상과제일 수밖에 없다.

학술 연구의 성격을 띠긴 했으나 ‘조선철학사’는 이 념과 체제의 도구여야 했다.

따라서 불교, 도교는 물론 조선시대 성리학의 신성불가침한 지배적 지 위에서도 이들 관념론 철학에 맞선 유물론 철학투쟁사와 그 계보화, 유물론 철학의 계승ㆍ발전이라 는 조선철학사 서술에 대한 검토는 북한 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관건이다.

남한의 다양한 주제적 접근이나 자유로운 문제 제기와 논쟁, 유교, 불교, 도교나 조선 성리학과 실학, 양명학 등의 학문적 구분, 시기별 서술과 단순비교하더라도, 북한의 철학사관은 그 이상에 있는 이념적 절대 기준이다.

북한 학술의 기본적인 지향이 유지되는 한 기준은 바뀌지 않을 테고, 고대로부터 현대 철학까지 그 리고 사회ㆍ정치사상에도 분석의 기준점으로 작동할 것이다.

최한기 관련 다수 소논문에서도 일관 됨을 금방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최근 작지만 변화도 감지된다.

먼저조선철학전사(2010)는 종전의 철학사에 비해 한층 학술적 모양새를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해석도 보인다.

성리학의 ‘천’, ‘천명’론은 그 종교 관 념론적 신비주의와 숙명론으로 인민대중의 주체성에 해독을 끼친다는 점에서 극심한 비판의 대상 이었으나, 이황의 철학사상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는 등 다소 변화가 나타난다.2)

2) 강경현은 이황철학의 인식론이 “신비적 직관[神悟]”을 방법으로 한다는 해석, 그리고 동아시아관념론을 발전 사적으로 바라보며 주희 철학의 관념론적 사유가 이황 철학에 이르러 완결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철학사적 이 해가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북한의 이황 철학 연구 ‒객관적 관념론에서 신학적 관념론으로‒」, 철학 157 집, 2023, 93~128쪽 참조.)

일차적으로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사라는 관점에서, 조선시대 성리학은 세계의 객관적 실재를 승인한 객관관 념론으로서 주관관념론이 주류인 불교사상에 비해 긍정적으로 바라볼 여지가 있는 탓이다.

또한 변 증법적 역사 발전의 도식으로도 대립과 지양을 거친 조선 성리학에서 그 발전의 결과물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사후 김정일 세습체제가 안정되는 한편 중소냉전의 틈바구니에 서 독자적 생존방안을 모색하는 생존전략으로 주창된 ‘민족제일주의’와 ‘애국주의’도 조선철학사 서술 전반에 긍정적 시각을 더한 것으로 추정한다.

후술하겠으나 조선전기를 중세철학 발전의 전성 기로 규정하고, 이황의 철학이 일본에 전파되어 학술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특기하였다.

북한은 고대에도 소박한 유물변증법 사상이 존재했음을 전제한다.

중세 유물론 철학의 발전은 세 계의 시원과 본질,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과 운동, 관념론에 대한 비판, 사회정치사상 등에서 형이상 학적 철학과 구분된다.

구체적으로는 유물론적 관점에서 세계를 인식하고, 종교 미신 등 관념론의 허구성과 주체의 불평등과 자주성을 제약하는 숙명론과 신비주의를 비판하며, 낡은 제도를 개혁하고 계급사회에서 수탈당하는 인민의 고초를 이해하고 대변하는 사회정치적 견해를 철학의 진보로 내세운다.

역사주의와 계급주의의 두 원칙이 철학사상의 진보를 가늠하는 한 축이라면, 근원적인 한 축은 세계에 대한 인식 문제로서 기일원론적 유물론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중세철학의 특징을 유물론의 발달로 규정하고 체계화하는 시도는 조선철학사(2010)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여기서는 이규보, 김시습, 서경덕, 장유, 임성주, 이규경, 최한기에 이르는 기일원 론적 유물론의 계보를 검토한다. 먼저 고려시대 이규보의 원기설에 기초한 유물론 또는 원기일원론 적 유물론, 조선 전기 김시습의 물질적 기를 중심으로 한 유물론적 자연관과 서경덕의 기불멸설에 입각한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 조선 후기 장유의 객관적 실재로서의 우주 자연론과 유물론 철학, 임성주의 기일분수적 기일원론 철학, 이규경의 자연과학적 유물론 철학, 그 대미로서 최한기의 기일 원론적 유물론 철학이다.

이상 기일원론적 유물론의 계보를 관통하는 근본적 철학 문제는 세계의 시 원과 본질을 물질적 ‘기’로 보는가이다. 따라서 태극, 태허, 무극, 이기 관계, 음양의 상호작용에 관한 논의에 초점을 맞춘다.

2. 조선시대 철학사상의 특징

조선철학전사 4(중세철학사상 3)에서는. 김시습과 서경덕을 제2장 리조 전반기 기일원론적유 물론철학의 발전에서, 권근, 리언적, 리황을 제3장 리조 전반기 리일원론적 관념론철학의 발전에서, 정도전, 김종직, 조광조, 리이를 제4장 리조 전반기 성리학내 진보적경향의 발전으로 나누어 기술하 였다.

서술방식에서, 본문 기술 사이사이에 별표표시를 하고 문단을 들여서 주요 개념의 의미나 해 석, 전후 철학사적 분석 등을 부연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아래는 임성주의 인식론을 기술한 본문 중 간에 ‘심’과 ‘성’에 대한 설명이다.

동방철학에서 심은 여러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식론적 측면에서 볼때심은 사유기관, 인식의 생리적 기초 또는 의식을 의미한다. 심과 마찬가지로 성도 여러 의미로 사용되었다. 인간의 성이 선하냐 악하냐 하는 견지에서 보면 성은 윤리 적 개념이며, 사람의 성, 나무의 성, 쇠의 성이 무엇이냐 하는 견지에서 보면 성은 그 대상에 고유한 특성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인식론적 견지에서 보면 성은 정(감성적 인식)과 대치된 이성적 인식을 의미한다.3)

3) 조선철학전사 5, 121~122쪽. 140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

이런 중간 설명은 각주나 미주를 사용하지 않는 기술 방식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

인용문의 출 처를 더꼼꼼히 밝혔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한글만으로 표기하여 원문의 번역이나 특정 개념어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조선전기는 중세철학 발전의 전성기다.

이 시기의 특징은

첫째, 유물론 철학의 발전,

둘째, 주자성 리학이 리조봉건사회 통치사상으로 지배적 지위 점유,

셋째, 우리나라 철학이 이웃 나라 철학 발전 에 영향을 미친 점이다.

첫째로 세나라시기로부터 고려시기까지는 유교와 불교 등 외래종교 사상이 범람하여 유물론 철 학이 명확한 하나의 사상조류로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유물론 철학이 고려시기 종교 관념론 철 학에도 불구하고 사멸되지 않고 명맥을 이은 데는 ‘원기유물론학설’을 제기한 리규보가 있었기 때 문이다.

한편 15~16세기에 들어서는 주자성리학 조류와 계통을 달리하는 기일원론 철학 조류가 확 연히 구별되어 투쟁하였다고 본다.

김시습은 ‘리조유물론의 개척자’로서 물질적인 기를 세계의 시 원으로 규정하고, 유물론적인 우주본체론과 무신론사상을 결합시켜 종교신비주의와 숙명론을 비 판하는 모범을 창조하였다.

나아가 서경덕은 리조 전반기까지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사에서 가장 이 름있는 철학자로서 기일원론적자연관을 수립하고 심오한 변증법사상을 제기하여 조선철학사뿐아 니라 세계철학사발전에도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고 평가했다.

둘째로 주자성리학에서는 세계의 시원으로 태극(리)을 설정하고 그것을 세계의 사물현상의 발생 과 발전을 규제하는 최고원리로 내세웠다.

여기서 리란 천지만물이전부터 존재하는 절대적이며 추 상적인 정신적실체이다.

주자성리학은 관념론적 원리에 기초하여 봉건적 신분질서를 보편타당한 것으로 합리화한다.

또한 ‘인성’론과 ‘천리인욕’설을 비롯한 관념론적인 륜리도덕학설을 통해 봉건 적사회관계와 질서들이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임을 논증하고 그에 맞게 행동할 것을 설교하였다.

이 시기 권근, 리황을 비롯한 성리학자들은 정신적 실체인 리를 세계의 본 질, 자연과 사회의 주재자로 하는 리일원론적객관관념론사상을 제기함으로써 ‘리의 체현자’인 왕을 정점으로 하는 봉건통치체제를 세계관적으로 합리화하였다.”

섯째로 서경덕은 소강절, 장재 등을 뛰어넘는 기불멸설과 기자이설을 체계화하여 동방 유물론의 거장이 되어 그의 저서 화담집은 유일하게 사고전서에 수록되었으며, 중세 최대 성리학자인 리황의 철학은 일본주자학의 형성에서 종결까지 근저에서 작용했다고 평가했다.4)

4) 조선철학전사 4, 조선사회과학학술집 230, 2010, 7~18쪽 참조.

조선후기 철학사상사의 특징을 개괄하면 다음과 같다.

임란 이후(임진조국전쟁)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문란, 인민대중의 반봉건 투쟁 속에서 주자성리학은 17세기 례론, 18세기 인물성동이론 등 당파싸움의 이론적 도구로 공리공담화하여 반동적인 사상으로 전락하는 한편에서 진보적인 실학사 상, 반주자학적사상, 유물론철학 조류가 출현하여 투쟁하였다.

리조 후반기 주자성리학의 유일적 지배가 실현되고 주희에 대한 절대적 숭배에 따라 학문의 폐쇄성이 심해졌다.

한편으로 주자학의 절 대성을 부인하고 유교경전을 새롭게 검토하면서 다른 주석들을 수용하는 반주자학적 사상조류가 발생했다.이수광, 윤휴, 박세당이 대표적이다.

김정일은 “실학사상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 는 귀중한 민족문화유산입니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실학사상은 17세기 중엽에 형성되기 시작하 여 19세기 중엽까지 주자성리학의 공리공담과 반동적인 사회정치사상을 반대한 애국적이며 진보 적인 사상조류이다.

이들은 실용지학의 구호 아래 민생을 안정시키고 사회제도의 개혁을 모색하였 으며 사대주의를 반대하고 학문적 주체성을 확보하며 부국강병에 도움이 되는 자연과학과 기술에 주목했다.

200여년의 실학사상사에서 사회개혁에 주목한 초기실학 대표자로 류형원, 이익, 사회개 혁과 함께 과학기술 발전에 주목한 중기실학 대표자로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 개국통상, 과 학기술 문제를 주로 논의한 후기실학의 대표로 이규경과 최한기를 꼽았다.

김시습, 서경덕에 의해 전성기를 맞았던 유물론은 성리학적 관념론의 사상적 탄압 속에서도 장유, 임성주, 홍대용, 박지원, 이규경 등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계승 발전되었다.

17세기에 장유는 서경덕 의 태허설과 기불멸설을 계승하여 리와 기의 호상문제를 해결하였으며, 18세기에 임성주는 기일분 수설과 ‘자연처’사상으로 서경덕의 태허설과 ‘기외무리’(기밖에 리가 없다)사상을 시대적 조건에 맞게 발전시켜, 19세기 유물론의 대표자 최한기 사상으로 이어지는 교량자 역할을 수행했다.

최한 기는 기일원론철학을 집대성하여 체계정연한 유물론철학을 내놓음으로써 중세시기의 철학투쟁을 유물론의 승리로 끝맺었다.5)

5) 조선철학전사 5, 12~16쪽 참조.

이제 조선시대 유물론철학을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이규보의 원기설에 기초한 유물론 철학에 대 해서 살펴보자.

고대로부터 이어온 소박한 유물론이 이규보에 이르러 비로소 이론적으로 구체화하 하며, 김시습과 서경덕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3. 조선 중세 유물론 철학의 계보학적 고찰

3.1 원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 이규보

이규보는 고려 후반기 진보적 철학의 하나로서, 초자연적인 천의 존재와 전지전능을 부정하고 물 질적 시원인 ‘원기’로 우주만물의 발생변화를 설명하는 ‘원기’ 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으로 특징지었 다.

그의 철학사상은 자연관, 변증법, 종교미신에 대한 비판적 견해, 사회정치사상으로 나누어 기술 하였다.

원기설은 세계의 시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다.

원기는 시원물질이다.

이규 보는 우선 기를 ‘하나의 기(一氣)’로 보았다.

그는 ‘일기’를 사람의 생명활동의 근원으로 이해하였으 며, 기를 공기와 같은 미세한 알갱이로 기의 유형성을 주장했다.

공놀이를 보면서 지은 시에서, 기가 들어 차면 공이 되고 기가 빠지면 빈주머니가 된다는 것은(동국이상국집 권6 우견기구인우의)

마 치 최한동이 안에 차 있는 기로 인해 동이를 물에 빠뜨려도 물이 들어가지 않는 점을 예로 기의 유형 성을 증명한 것과 유사하다.

여기서 ‘무형의 기’는 물질적 실체로, 유형의 기는 사물 또는 그 재료로 구분된다.

이규보가 주장한 원기는 사물 발생의 아무런 조짐이 없는 상태, 천지개벽 이전 모든 것이 뒤섞인 혼돈상태의 기로서 물질적 시원 형태이다.

그는 ‘천무위’ 즉 천을 무목적, 무의지, 무조작하다고 규 정하여 ‘조물주’란 허구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대신 만물이 원기에 의해 산생되며 그 과정은 스스로 진행되는 ‘자화’로 표현하였다.

「문조물」에서, “대체로 사물이란 스스로 발생하고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지 내가(조물) 무엇을 만들며 무엇을 알겠는가?”(동국이상국후집 권11 문조물)라고 했다.

그에게서 천은 자연 그 자체이며 천도는 고유한 운동법칙이다.

따라서 천의, 천령, 천사와 같은 것도 인 격적 주재자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필연성을 의미한다.

또한 우주만물이 “자연에서 발생하니 천도 모르고 조물도 또한 모른다.”라 거나, “대체로 사람은 본래 자기스스로 생기는 것(自生)이지 천이 나 게 하는 것이 아니며(天不使)”라고 하여, 사람을 포함한 일체 사물은 천이나 조물주가 아니라 자연 에서 발생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자연’은 천지자연으로서 대상이라기보다는 원래 그러하다는 속성 으로써 무위와 통하는 개념으로 규정했다.6)

6) 조선철학전사 3, 123쪽 참조.

이는 서경덕철학의 핵심 이론인 ‘기자이’설의 뿌리가 된다.

조선철학사상에서 우주 창조와 만물 변화에서 신의 존재를 배제한 시도는 고대의 기유물론이며, 음양설이 그 중심에 있다.

이규보는 고대 유물론적 음양설을 자신의 자화설과 결합시켜 자생자화의 유물론적 운동관을 확림함으로써 원기일원론의 토대를 구축하였다.(126쪽)

비록 인간이 자기 운명 의 주인이라는 견해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숙명론적 관점을 극복하는 데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또 한 우주만물이 부단한 생성변화한다는 상생생화(常生常化)를 주장하는 동시에 사물이 발전과정의 극점에 이르면 자기 대립물로 전화한다는 변증법적 견해를 피력한 것으로 평가했다.

즉 “부정이 극 도에 달하면 긍정이 되고 막힘이 오래되면 통하게 되는바 이것이 음양의 법칙이다.”(동국이상국집 권24 천개동기)라는 언급이 하나의 예이다.

이외에 시를 지을 때, 말과 뜻이 함께 아름다워야 한다는 ‘어의쌍미(語義雙美)’ 주장을 내용과 형식의 통일이라는 변증법적 견해로 해석했다.

나아가 “곱게 만 하려다 알맹이를 놓치면 시의 참뜻은 잃어버린 것이라.”는 구절을 들어, 형식의 우위성을 주장하 는 형이상학적 견해를 반대했다고까지 평가했다.

그러나 이러한 변증법적 견해는 우주자연의 법칙 성으로 확장하지 못한 제한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생과 사, 화와 복은 사람 자신이 불러낸다는 ‘자초’설은 유물론적 생사관에 가깝다.

이규보의 영혼 소멸관은 다소 불철저한 면이 있으나,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겠는가. 혼자 앉아서 곰곰이 생 각하니 죽은 뒤에 아무리 귀신을 잘섬겨도 살아 생전에 술 한잔만 못하도다.”(동국이상국후집 권 3 시 자질장단구)라고 하여, 영혼 불사 관념을 믿지 않았고 막대한 사회적 낭비를 가져오는 제사와 미신행위를 비판했다.

또한 불교의 ‘청련불계’와 같은 인간세상 밖의 비현실적 극락세계를 이상시 하는 허무주의적 교리에 반대하는 한편 단군신화에 깃든 홍익인간과 선인사상을 계승한 것으로 이 해했다.

3.2 유물론적 자연관을 확립한 김시습

김시습은 물질적 기를 세계의 시원으로 보고, 모든 사물 현상이 기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주장하였 다.

그는 동양철학에서 우주의 시원을 가리키는 ‘태극’을 음양 즉 물질적 기로 이해하였다.(매월당 문집 권5 설 「태극설」)

‘태극이 음양을 생한다’는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태극’은 운동기능르 가지지 못하는 무능의 ‘실체’인데 반해, 김시습은 태극은 음양과 독립하여 존재할 수 없으며, 음양은 태극 속에 들어 있는 고유한 운동기능으로 이해했다.

즉 태극은 본질에 있어서 물질적 기이며 음양 의 상호작용에 의해 스스로 운동하는 물질적 실체라는 것이다.

또한 원기가 만물을 주재한다고 주장 하여, 성리학의 리의 지배적 위치를 원기주재설로 바꿔놓았다.

이와 같은 기의 내재적 주제는 서경 덕으로 이어진다.

결국김시습의 철학에서 기는 만물 구성의 기초물질이며 자체의 운동변화력을 가 지고 세계의 존재와 운동을 규제하는 물질적 실체가 된다.

이와 더불어 세계의 물질적 통일성에 대한 견해로 ‘일기’설에 주목했다.

‘하나의 기’는 음양의 통 일체이며 세계의 통일적 시원이다.

이에 의해 사물현상과 운동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천지간에는 오직 일기가 풀무질할 뿐이다.”(매월당문집 권5 설 신귀설)를 예로 들고 기일분수론적 경향으로 파악하여, 18세기 임성주의 기일분수론이 김시습에 의해 마련되었다고 평가했다.7)

7) 조선철학전사 4, 조선사회과학학술집 230, 2010, 21~24쪽 참조.

천지 간에 가득 찬 기의 작용으로 천체의 운동, 자연의 기후현상, 사람과 동식물의 변화가 나타난 다.(매월당문집 권2 잡저 제2범10장 복기)

김시습은 이기의 관계 자체에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으 나 유물론적으로 이해했다.

예컨대, “리란 날마다 쓰이는 사물에 각각 조리가 있는 것”(금오신화 남염부주지)이라고 하여, 리는 물질세계와 독립하여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 현상에 있 는 ‘사물의 조리’이지 초월적 실체가 아니며, 사물 현상의 존재와 운동이 종결되면 리 역시 소멸한다 는 것이다.

예컨대, “기가 흩어진 것이 죽어서 귀(鬼)로 되니 귀라는 것은 리가 돌아가 멸(滅)한 것이 다.”(매월당문집 권5 설 생사설)라고 하여, 리를 사물의 내재적 법칙성으로 규정하고 세계의 시원 은 오직 물질적 기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연관에는 리일분수론적 요소도 남아 보수적인 ‘명분설’의 사회정치사상으로 연결되는 제한성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우주자연에 대한 유물론적 학설은 무신론적 세계관의 기초가 되어 신비 주의와 숙명론을 고취하는 종교관념론사상을 분쇄하는 데에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보았다.

김 시습의 무신론은 생사화복과 영혼소멸, 반불교사상으로 요약된다.

관련하여 “세계의 모든 종교는 현실세계에서 수난을 감수하여야 래세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신이 제정한 숙명적인 운명을 고 스란히 감수하여야 하나는 두가지 사상으로 요약되여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라는 김정일의 지적을 먼저 제시하였다.

객관관념론인 성리학도 불교와 도교심지어 유교의 미신적 요소까지 배격하는 듯 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리를 천이나 상제로 도식화하여 신비주의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세 계 개조와 자기 운명을 개척하려는 인민대중에게 해독을 끼쳤다고 보았다.

때문에 우주자연의 근원 을 초자연적인 신이나 정신적인 요인에서 찾고, 신비적 존재에 의해 사람의 생사가 결정된다는 종 교, 미신을 배격한 김시습의 유물론적 ‘천’관에서 진보적이고 선진적인 면모를 발견했다.

천은 종교관념론철학에서 불가항력의 존재로 간주되었고, 성리학자들은 천이 곧 리라고 하여, 리 의 체현자 혹은 절대성의 상징으로 내세워봉건사상과 제도를 합리화하였다.

천명, 천인감응설이 대 표적인데, 김시습은 천을 의지도 힘도 지니지 않는 자연적 존재로 이해했다.

예컨대, “천이 무슨 말 을 하겠는가. 사시가 행하고 만물을 생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태극이다.”(매월당문집 권5 설 태극 설)라고 하여, ‘천’ 역시 본질에서는 물질적 기의 한 형태로 이해했다.

또한 ‘명’을 하늘과 땅의 기가 조화되어 이루어지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삶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의 근원이 사람에게 달려 있다는 유물론적 생사관을 제기했다.

즉, “흥망과 길흉은 오직 사람이 불러 오는 것이다.”(매월당 문집 권2 잡저 제2범10장 상장)라고 하여, 리규보의 무신론에서 제기된 자초(自招)설을 계승한 것 으로서, 서경덕에 의해 원리적으로 심화되며, 최한기도 “평생의 길흉화복은 자기의 말과 행위에 의 해 초래된다.”(기측체의 추측록 권6 추출측사 화복조단호부부)라고 한데서 무신론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29쪽)

아울러 김시습은 사람이 죽으면 정신이 육체를 떠나 실체화된다는 영혼불멸의 관념론적 견해에 반대하고, 육체가 소멸되면 정신도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즉 “죽음에 이르면 정기는 흩어지면서 오 르고내리고 하여 근원으로 돌아간다. 어찌깊고 어두운 곳에 가서 머무를 수 있겠는가.”(금호신화 남염부주지)라고 하여, 사람이 죽은 후 ‘정기’ 즉 정신이 따로 실체로 존재할 수 없으며, 근원으로 돌 아간다는 점에서 기의 구체적인 형태는 소멸해도 근원인 원기는 영원하다는 일종의 기불멸사상의 맹아를 담고 있다고 보았다.

귀신에 대해서도 천지조화의 자취이고 기의 두 측면인 음과 양의 본능, 다시말해 물질적인 기의 변화작용에 불과할 뿐이라고 이해함으로써 종교, 미신의 숙명론적 관점을 불식했다.

그 연장에서 김시습은 “불교의 무리들이란 인연과 업에 대해 논하면서 요사스러운 말을 하는 것들이다.”라고 하고, “어찌저승에 가상적 형체가 있어 지옥벌을 받겠는가.”라고 하여, 인과응 보설과 천당지옥설을 배격했다.

물론 불교의 자비나 자애와 같은 윤리적인 요소는 유교의 인의와 마 찬가지로 사회의 화목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일부 수용하였으나 그의 철학사상을 불 교사상으로 볼 수 없다고 단정 지었다.

가령 사람과 말이 동시에 넘어지면 “사람이 다치지 않았느 냐?”라고 물어야지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 것”(매월당문집 권5 의애물의)처럼, 맹목적인 불교 의 자비나 주역의 대덕에 반대했다.

북한 철학에서, 인간의 본성은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되고 발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본성을 선천적인 것으로 보고, 그 본성에 인의예지와 같은 도덕의식이 구비되어 있다거나, 기질에 따라 성 인과 중인을 구분한 김시습의 인성론은 관념론이자 신분제도를 합리화한 봉건변호론의 일종으로 평가된다.

3.3 최초로 기일원론 철학을 체계화한 서경덕

북한에서 서경덕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기일원론철학을 체계화한 16세기의 대표적인 유물론 자이다.

기가 우주자연의 유일한 물질적 기초며, 그 영원한 변화도 자기 운동으로 담보됨을 이론적 으로 확증했기 때문이다.

그의 기일원론은 리기호상 문제, 태허설, 우주발생론, 기불멸설이 중심이 고, 물질 운동의 원인과 동력, 사물 현상의 호상 연관에서 변증법 사상을 보이며, 생사관과 인식론에 서도 유물론적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최익한이 실학파와 정다산(1955)에서 거론한 화담철학의 유물론적 성격은, 조선철학사(상) (1960)에서 최한기에 의해 완성되는 계보가 그려졌다.

이를 이어 정성철은, “실학에 선행한 사상리론가운데서 실학 형성의 전제로 된 것은 주로 서경덕을 대표로 하는 16세기의 유물론적 자연관과 리 이를 대표로 하는 16세기의 사회개혁 사상이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화담철학의 위상을 제고하는 한편 유물론 철학을 조선철학의 특징으로 자리매김했다.8)

북한은 중세철학의 기와 리 관계를 철학의 기본문제인 물질과 의식의 관계 문제로 이해한다.

서경 덕은, “기를 떠나서 리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리란 기의 주재이다. 주재라고 하는 것은 외부 로부터 와서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기의 조화가 그 옳은 리치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화담집 권2 잡저 리기설)고 하였다. 이는 리와 기의 불가분리성을 주장하는 한편, 관념론적 주재설의 핵심 인 외래성을 제거한 것이다.

그에게 리는 독립적인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기 자체의 고유한 내재적 속성이다.

따라서 리가 기의 주재(理者氣之宰也)라고 할 때, 리는 기의 자기 주재력 혹은 기 자체가 자신을 주재하는 내적 속성을 가리킨다.9)

8) 정성철, 「조선실학의 철학적 특징」, 력사과학, 1990.4, 45~47쪽.

9) 조선철학전사 4, 조선사회과학학술집 230, 2010, 55쪽 참조.

조선철학전사 서술의 특징으로 중국철학이나 전후 조선철학을 적절히 비교분석하는 태도를 들 수 있다.

여기서도 주희가 주돈이를 이어 세계의 본원적 실체로 상정된 태극을 리로 규정하고, 그 것을 우주자연의 일차적이고 궁극적인 요인으로 전화시킴으로써, ‘리선기후’의 관념론적인 리기관 을 도출했다고 전제한 후, 서경덕은 주돈이의 ‘무극이태극’을 유물론적으로 해석했다고 비교했다.

예컨대 ‘태허’의 본질에 대해, “멀끔한 그 본질을 말하면 하나의 기요, 그 혼연한 기상을 말하면 태일 (太一)인데 주렴계는 이에 대하여 다만 ‘무극이태극’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뿐이다.”(화담집 권2 잡저 원리기)라는 대목을 인용하여 서경덕의 기일원론 철학이 주렴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음을 분 명히 했다.

즉 그는 태극 개념을 물질적인 기의 운동 변화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기가 능히 생생화화하 여 멎지 않는 바가 바로 태극의 묘한 것이다.”(화담집 권2 잡저 리기설)라고 하였다.

요컨대 태극 은 대립물의 상호작용으로 진행되는 물질적 실체인 기의 부단한 자기 운동의 원인이다.

태극을 리로 보아 신비적, 초월적 성격을 부여한 주희의 태극-리설이 여기서 부정되고 유물론적인 태극-기설이 확립된다.

아울러 리와 기의 선후차성에 대해, “리가 기보다 먼저 존재하는 것이 아닌바, 기에 시초 가 없으니 리에도 물론 시초가 없다.”(화담집 권2 잡저 리기설)고 하여, 기는 원래부터 존재한 우 주자연의 근원적인 기초이며, 결코 리가 기에 앞서 존재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고 기가 리 에 앞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기와 리는 본체와 속성의 관계이며 절대 분리될 수 없으므 로 리기의 선후 또한 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경덕은 우주 만물의 존재근거와 전개의 합리 적 원인인 기의 자기 주재를 내세워 리의 선차성과 주재자적 역할을 강조하던 성리학적 견해를 일축 했다.

그가 말하는 태허의 ‘허’는 물질적 실체로서의 기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허즉기’, “허는 만물 의 시초”(관자, 심술상편)로서 세계의 물질적 시원이다.

또한 “태허는 허하면서도 허하지 않으니 허가 곧 기이다. … 기는 시초도 없었으며 또 생긴 적도 없다. 시초가 없는데 어찌 종말이 있으며 생긴적이 없는데 어찌 소멸이 있겠는가. 로자가 말하는 허무나 불가에서 말하는 적멸은 리기의 근원을 모르는 말이다.”(화담집 권2 잡저 리기설)와 “한계가 없는 것을 태허라 하고 시초가 없는 것을 기 라고 하니 허가 바로 기이다. 허가 본래 무궁하고 기 역시 무궁하니 기의 근원은 처음부터 하나이 다.”(화담집 권2 잡저 리기설), “허하고 고요한 것이 곧 기의 본체요 모이고 흩어지고 하는 것이 기 의 작용이기 때문이다.”(화담집 권2 잡저 태허설)라고 한 데서, 서경덕이 ‘허’를 기의 내적 징표 또 는 본체론 규정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파악했다고 보았다.

여기서 ‘태허’는, 무한성, 충만성, 가침 투성, 비감각성, 실재성을 특징으로 한다.

‘태허’는 구체적인 형체를 가지지 않는 물질적 실체이며 객관적으로 실재하고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우주 자연의 보편적 시원이다.

서경덕은 ‘태허’ 즉 기를 먼지와 같이 유동적인 최초의 물질적 입자로 표상했다.

허무나 적멸, 리와 같은 비현실적인 절대자 를 내세워 세계를 신비화하던 온갖 종교 관념론적 학설들을 비판하고, 중세 기일원론적 자연관, 유 물론적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공중에 날아다니는 짐승들이 날개에 자기 몸을 싣는” 이치를 관찰과 사색으로 깨달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이도 서경덕이 선행학설을 수용한 게 아 니라 자득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천동설과 인력의 존재를 추측하지 못한 한계도 분명하다.

그는 ‘담일청허한 기’를 기의 본질이자 우주의 시원 물질로 이해했다.

우주 만물의 형성은 기와 형 (질)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때 기는 공기와 비슷한 매우 가벼운 질량을 가진 물질적 존재를 가리키며 형은 비교적 무거운 형질을 의미한다.

그의 우주자연관에서 특출한 점은 기불멸설이다.

우주 자연의 본원적 기초로서 ‘기자체’와 그 영원성, 물질의 무시무종에 관한 사상을 철학 이론적으로 정립한 유 물론적 학설로 평가된다.10)

10) 서경덕의 철학사상을 ‘물질불멸론’으로 특징 지은 건 이미 1921년 개벽에 발표된 황의돈의 「世界中 最初 의 物質不滅論者 徐敬德先生, 朝鮮 十大偉人 紹介의 其一」에서였다. 이 글은 개벽 13호의 조선 10대 위인 투표에서 과학자 분류에서 최고점을 얻은 서경덕에 대한 소개 형식의 글이다. 一. 先生의 誕生과 幼年時代, 二, 先生의 修養時代, 三,.先生의 老成時代, 四. 先生 以前의 中國儒敎 思想發展의 梗槪, 五. 先生 以前의 朝鮮 儒敎發展의 梗槪, 六.先生의 思想의 梗槪 순으로 생애사를 개관하고, 중국과 조선의 사상사적 배경을 정리한 뒤, 서경덕 사상의 위대성을 기렸다. 필자 黃義敦(1890~1964)은 매천 황현과 족친간으로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대성학교, 보성고등보통학교 등에서 20여 년간 국사와 한문을 강의하다가 1938년 국사ㆍ국어 교육 이 일제에 의해 금지되자 교사직에서 물러나 조선일보사 기자가 되었다. 1942년 불교에 귀의하였고, 광복 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하였다. 오지영의 동학사 서문, 대동청사, 대동청사, 중등조선역사 등의 저 술이 있다. 그는 서경덕의 위대성은 과학적 연구 위에서 건설한 철학적 사조이며, 그가 주창한 물질불멸론 도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라고 했다. 특히‘무시무종의 우주 전체에 대한 명제’를 특필하고, 전철의 각종 술어 를 이끌어 독자적인 氣元論 곧 ‘우주의 존재가 氣的 一元’뿐임을 증명했으며, 나아가 그 기가 自存自立하고 自行自止함을 증명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즉 일원의 기는 스스로 운동하며 나아가 리는 기의 변화작 용하는 법칙의 가명일뿐 실재가 아님을 밝히고 더하여 우주 일원적 氣軆의 無始無終, 不生不滅의 原理를 단 언하고 결론적으로 물질의 불생불멸한 진리를 갈파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조선철학전사의 서술과 그 핵 심에서 상당히 유사하다.(「世界中 最初의 物質不滅論者 徐敬德先生, 朝鮮 十大偉人 紹介의 其一 」, 개벽 제 14호, 1921.08.01., 85~96쪽 참조.)

담일청허한 것이 기의 본체라면 취산은 그 현상이다.

기가 취산할지언정 유무는 없다.

즉 담일청 허한 기는 무시무종한 기의 본체로서 선천에는 태허속에 존재하다가 후천에는 자연 만물을 형성하 며 사멸하면 흩어져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

또한 “물이란 가고 가도 그 감이 다하지 않나니”(화담집 권1 시 有物吟)라고 한데서, 물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개개의 사물들을 총괄하는 개념을 넘어서 본체와 현상, 일과 다의 통일체로서 보다 일반적인 물질 개념에 근접했다고 보았다.

더불어 향과 초가 타고 없어지더라도 남은 기만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여기’(餘氣)는 그의 독자적 발견으로서(귀신사생론), 본연의 기의 여기로의 전화는 기의 개별적 형태의 사멸일뿐 전체로서의 ‘기자체’는 불변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증가와 감소도 없이 그대로 보존된다는 물질 보존 사상의 맹아적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리에 대한 기의 보편성, 정신에 대한 물질의 시원성 이론은 장유나 임성주 등에 의해 계승되었다.(70쪽)

서경덕은 스피노자보다 한 세기 이상이나 앞서 물질세계가 초자연적인 신이나 신비적인 리에 의 하여 창조되고 운동한다는 견해를 배격하고 자체로 존재하며 자기 원인에 의하여 스스로 운동 변화 한다고 주장했다.(74쪽)

또한 사물현상들의 상호연관에 대해, ‘물물뢰상의(物物賴相依 모든 사물은 서로 작용하고 호상의존한다. 화담집 권1 시 천기)’하며, 온천물이 뜨거운 원인을 음양의 상호연 관 속에서 해명한 것은 변증법적 관점의 발현이라고 할 만하다.(「온천변」)

그러나 운동 변화에 관한 사상은 ‘복’(반복)을 사물 운동의 근본 법칙, 기본방향으로 간주하여 순환론을 벗어나지 못했다.( 화담집 권2 잡저 복기견천지지심설)

1982년 김정일은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 정한다는 사상, 다시 말하여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세계의 개조자, 자기 운명의 개척 자라는 사상은 관념론이나 형이상학과는 근본적으로 대립됩니다.”라고 하였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이 조선철학사 서술에 투영된 관점이라면, 주체철학은 조선철학사 서술의 강령으로 서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척도로 하여 철학사상의 가치를 평가한다.

마르크스-레닌주의의 반종교 사상은 종교 관념론 철학으로 확장한다.

인간의 운명이 신과 같은 어떤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존재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숙명론 사상을 반대하고, 스스로 사회의 진 보와 개조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사상사는 유물론사상(반종교사상)과 종교관 념론사상의 투쟁사이다.

서경덕은 귀신이 다만 기의 취산일 뿐이라고 하여, 생사와 귀신의 유무 문 제를 유물론적으로 고찰했다.(「귀신사생론」)

서경덕은 ‘정사자득’(정밀히 사색하여 자체로 해득함)의 태도를 강조하여, 끊임없는 사색을 거듭 함으로써 20대에 벌써 사물 이치의 근원을 자체로 완전히 통달하는데 이르렀다.(화담집 권3 부록1 신도비명)

그러나 관찰과 사색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식론은 실천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서경덕의 기일원론 철학은 ‘태허’설과 ‘기자이’론, 기불멸설을 비롯한 독자적 학설이 결합되어 비 로소 학문적으로 체계화되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유물론 철학의 진정한 가치는 우주만물과 인간 을 초자연적 주재자나 신비로운 정신의 산물로 추상화하여 사람들의 세계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저애 하고 착취자와 억압자들이 지배하는 불공정한 사회를 불가피한 것으로, 숙명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반동적인 관념론 철학을 근저로부터 분쇄하고, 사람들의 운명 개척, 자주성 실현에 이바지하는 데 있다.(88, 89쪽)

3.4 객관적 실재로서의 우주 자연론, 장유

장유는 무극을 세계의 물질적 시원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이해했다.

즉, “모든 사물이 갖추어져 천 지에 충만된 것이 모두 무극자가 한 것이다. 이것이 하늘과 땅의 어머니이며 만물의 시조이다.”(계 곡집 권3 잡저 우언이수)라고 하였다.

무극자는 태허 속에 있다거나 무극은 원기를 담고 있다고 하 여, 이규보와 서경덕을 이어 물질적 시원을 무극자로 규정하고 그 절대성을 근거 지었다.

무극자는 무궁하고 무한하며 시종이 없는 절대적 실체이다.

형체가 서면 기가 형체 속에 있고 형체가 무너지면 기가 태허로 돌아간다고 보았다.(계곡집 권3 잡기)

또 기의 본체는 지극히 허하고, 태허란 기의 본체라고 하면서 태허의 물질성을 긍정하였다.

장 유는 ‘무극이태극’이라는 애매한 표현을 버리고 다만 무극자로 세계의 시원을 규정하며 무극자와 태허를 동일시했다.

무극자는 태허(본체)이면서 동시에 혼돈이고 우주 그 자체이다.

이는 서경덕이 우주를 대체로 선천으로 표현하여 만물 발생 이전의 본체의 세계를 지칭했던 것과 달리 유물론의 시 야가 자연으로서의 우주로 확대된다.

이는 18세기 홍대용에 견주어 당시로서 선진적인 것이었다.

또한 서경덕의 기자체의 동일성에 초점을 둔 기불별사상을 계승하여 우주의 무한성으로 확장했 다.(81쪽)

장유는 유학자들이 리와 기를 각개의 물건으로 여기고 리만 인정하고 기를 부정하는 논의를 비판 하면서 리와 기의 통일을 주장하였다.

본래 성리학은 불교의 주관관념론을 반대하고 세계의 객관적 실재성을 승인하였기 때문에 리기불가분을 내세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리와 기의 선 후를 나누고(주희), 주재와 재료로 구분하는(이황) 등 리의 선차성, 절대성을 주장했다.

나흠순은 리 를 기의 리로 해석하여 리기일물설을 주장하였고, 이이는 이원론적 입장에서 리와 기를 일물로 보 나흠순과 이물론 본 이황의 견해를 절충하여 이원론적일물설을 제기하였다.(율곡전서 권10 서 답성호원 참고)

그러나 장유는 리기일물에서 나아가 기를 만물의 근본으로, 리를 그 법칙으로 규정 하여 유물론적으로 해석하였다. 즉 “태극은 리의 총적 명칭이고 태허는 기의 본체이다. 하나의 태극 이 만물에 나누어져 체현되어 있으며 하나의 태허가 만물을 발생시킨다. 리는 작용이 없다. 그러므 로 태허속에 있는 것이며 리와 같이 만물속에 있은 것이며 역시 그와 같이 기가 작용하는 것이다. … 모여서 실하고 형태도 있다. 모여있는 것은 마침내는 반드시 흩어지며 흩어지면 다시 태허로 돌아간 다.”(계곡집 권3 잡저 잡기)라고 하여, 기의 물질성, 기의 본체인 태허가 만물을 발생시키고, 리는 작용이 없이 태허, 만물 속에 있는 것이고, 만물이 파괴되면 다시 태허로 돌아간다는 유물론적 견해 를 제기했다.(84쪽)

장유는 ‘유기(遊氣)’와 ‘한기(閒氣)’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계의 생명현상과 인간의 정신현상을 설 명하였다.

조화를 일으키는 것은 ‘하나의 기’일 뿐인데, 유기는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이며 한 기는 특수한 기로서 사람에게 있어서는 정신현상을 발생시키는 물질적 요소이다.(계곡집 구너3 류종원사이위신론)

이처럼 특수한 기에 의해 정신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물질의 산 물임을 해명한 것으로서 종교와 관념론의 신비주의와 허위성을 폭로하는데 기여하였다.(85쪽)

그 는 불교의 윤회설은 사람을 기만하는 것으로서 혼백, 정신은 형체나 혈육에 비하면 비록 청허한 것에 속하나 모두 기가 모여든 것으로 본연 태허의 체가 아니라고 하였다.

즉 정신, 영혼은 ‘한기’가 모 인 것으로서 끝내는 소멸한다는 것이다.(계곡집 권3 잡기)

또한 그는 모든 사물이 부단한 변화과정에 있으며, 변화의 원인이 사물 그 자체에 있다는 변증법 적 견해를 피력했다.

자연계의 운동변화는 오직 음양의 상호작용뿐이며, 기의 틀이 한번 움직이면 사물이 발생한다고 하여 서경덕의 ‘기자이’ 사상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장유는 물질세계 위에 군 림하는 조물주의 존재와 주관적인 심의 창조적 역할도 부인했다.

존재하는 것은 물질적 기로 이루어 진 객관적인 물질세계뿐이며, 자연의 운동변화는 스스로 진행된다는 유물론적 견해를 피력했다.(88 쪽)

그러나 장유의 변증법적 견해는 변법사상이나 사회개혁사상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한계 로 지적했다.

장유의 인식론은 유럽 근세철학의 경험론과 합리론이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 한쪽에 치우친 데 비해, 인식을 주관과 객관의 결합으로 고찰하고 그 과정을 감성적 인식과 이성적 인식의 통일로 써 분석한 점에서 선진적 견해로 평가했다.

그는 일정한 질을 갖춘 사물의 소리와 모양, 냄새와 맛을 감각하고 파악하는 것은 심의 작용곧 인간의 인식이라고 주장하였다.(90쪽)

나면서부터 다 안다는 성인일지라도 감각기관으로 경험하지 않으면 그 사물이 있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물이 있는지 모르 면 그 리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라고 단정했다.(계곡집 권3 잡저 잡술)

리를 인식하는 심의 작용 은 이성적 인식으로 객관세계에 대한 직관인 감각의 감성적 인식 위에 이루어진다.

대상의 내적 본 질 해명과 사물 현상들의 고유한 합법칙성은 감성적 인식이 이성적 인식의 단계로 제고되어야 밝힐 수 있다.

끝으로 그의 인성론은 성선설과 현실의 불일치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눈 장재의 ‘성두층 리로’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정일은 “사람의 본질을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은 단순한 학술상 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적 리해관계를 반영한 사회정치적 문제이다.”(김정일선집 13권, 464쪽)라 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본연지성은 유교적 덕치주의와 도덕적 교화의 타당성을 합리화하고, 기질지 성은 봉건사회의 계급, 계층의 차이가 기질의 차이로 인해 숙명적이라는 것을 논리가 된다.

장유도 이 구분에 의거해 상지, 중인, 하우로 구분된 계급적 차별을 정당화함으로써 사회역사적으로 형성되 는 사람의 본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사회적 관계와 동떨어진 추상적인 존재로 간주하게 되었다.

이 글의 필자는 성두층리론의 두 번째철학적 부당성으로 인의예지 사단을 절대화하여 그것이 사람의 본성의 전부인 것으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사람은 사단 외에도 사유, 도덕, 예술, 로 동 언어 등 여러 가지 고유한 특성을 지니며 이런 매개 특성들은 인간 활동의 일정한 측면을 논한 개 별적 속성에 불과하며 사람을 근본적으로 특징짓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장유는 인간 본성의 선 천성을 완전히 부인하진 못했으나 교육에 의한 후천성과 가변성을 주장함으로써 유물론적 경향 발 전에 일정하게 기여했다고 보았다.(94, 95쪽)

3.5 기일분수적 기일원론 철학, 임성주

임성주의 유물론적 견해는 기일분수설, 자연처사상, 리일분수설 비판, 리통기국설 비판로 모아지 며, 이전 시기 기일원론자들에 비해 신비적 요소가 제거되고 유물론적 성격이 강화되었다.

기일분수 설의 핵심은, “리일분수에서 ‘분’자는 마땅히 리에 속하여야 하지만 만약 기를 기본으로 보는 입장 에서 말한다면 기일분수라고 해도 역시 그럴 수 있다.”(녹문집 권19, 녹려잡지)11)는 언급에서 찾 을 수 있다.

11) 조선철학사 5는 녹려잡지를 녹려잡식으로 표기.

리일분수설은 정신적 리에 의한 세계의 통일성을 설명한 관념론적 견해로서 사물들은 모두 하나의 리의 체현이며 창조물이라면, 기일분수설은 세계가 물질적 기로써 통일되어 있다는 유 물론적 견해이다.

이 글의 필자는 리일분수설을 기일분수설로 대치한 것을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로 평가했다.(102쪽)

성리학의 이론적 초석인 리일분수설에 대해 역으로 물질적 기의 절대성 을 인정하고 기의 분수로 세계를 해석하며 리를 기의 법칙으로 보는 유물론적 사유로의 전환 주장은 성리학의 체계를 근본적으로 뒤집는 혁신적 사고라는 것이다.

임성주는 “담일청허한 기는 다른 게 아니라 곧 천이다.”(녹문집 권19 녹려잡지)라고 하여, 기의 무한성과 영원성을 확보했다.

기는 무내무외, 무시무종하고 가득 차서 조화를 일으켜 사람과 사물을 생겨나게 한다.

이때 기, 천은 극존무대한 이황의 리와 같은 지위를 갖는다.

또한 음양오행을 관통하 는 담일청허한 기를 세계의 물질적 시원으로 보고, 그 기의 운동에 의해 세계만물이 이루어졌다고 이해했다.

즉 “세계만물은 천차만별하지만 그 시원을 따져보면 모두 일기에서 나온 것이다.”(녹문 집 권5 여이백술)

임성주는 당시 논의되던 철학적 개념들을 기의 각이한 측면에 따라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서경덕의 「원리기」나 최한기의 「일기이칭」에서도 일관된다.

성리학의 여러 범주와 개념들을 기로써 일관함으로써 철학적 개념에 덧씌운 신비적 외피를 제거하고 기일분수설 의 정당성을 공고히 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자연처(自然處)사상이란 기와 독립하여 존재하면서 물질세계를 주재하는 관념론적 리 를 부인하고 리를 기의 운동의 내재적 합법칙성으로 규정한 것이다.

리는 소이연과 소당연으로서 자 연법칙과 도덕준칙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리를 실체화 절대화함으로써 성리학이 관념론으로 기울었다.(107쪽)

즉 성리학은 리를 기의 운동에서 분리하여 구체적 사물에 앞서 존재하는 정신적 실체로 내세우고 리에 사물의 운동을 주재하는 절대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리를 실체화한 예로, “천지가 있기 전에 필경 이 리가 있었다. 이 리가 있어서 천지가 있게 된다.”(주자어류 권1)를 들 고, 리를 절대화한 예로는, “리는 것은 형이상의 도이며 만물발생의 근본이다. 기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이며 만물발생의 질료이다.”(주자어류 권1), “리는 기의 주재자이며 기는 리의 재료이다.”(퇴 계집 권25)를 사례로 제시했다. 임성주는 문헌 고증을 거쳐‘리’라는 글자가 정주학 이후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보고, 리를 자연으 로 단정하였다.

또한 기의 능력과 작용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그러할 뿐이니, 이 자연 처를 성인은 도 또는 리라고 이름붙였다고 했다.(녹문집 권19 녹려잡지)

즉 리는 기의 자연을 의미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또 자연, 당연은 기를 따르는 것이며 연(然)이란 글자도 기의 운동을 가리 킨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그러나 자연법칙의 필연성으로부터 도덕규범의 필연성을 도출하는 성리 학의 봉건성을 극복하진 못했다.

그는 리일분수설이 불성론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불교화엄종의 4법계론은 세계를 4개의 법례로 나눈 다음 그 세계는 절대정신의 발현으로서 리(본체세계)와 사(현상세계)를 상호 의존관계로 상정 한다.

리일분수설은 일즉다, 다즉일이라는 4법계론을 토대로 조작된 것이며, 세계의 구체적 사물현 상들의 차이를 부정한 관념론적 궤변이라고 비판했다.(111쪽)

나흠순이나 왕부지도 리일분수설을 비판하면서도 자기 철학체계로 끌어들이는 개작의 수준이었다면, 임성주는 기일분수설로 리일분 수설을 전면 부정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평가했다.(114쪽)

오희상은 임성주의 주장이 나흠순의 견 해를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 폐해가 닥칠 것을 우려했는데, 결국 최한기에 이르러 중세 철학사는 유물론의 승리로 귀결되었다고 한다.

필자는 임성주가 “담일청허한 것은 음 양 5기 밖에 따로 있는 기가 아니다.”라는 언급을 인용하면서, 기일분수설은 리일분수설과 달리 개 별적인 사물에 내재된 일반적인 것을 염두에 두고 일기를 강조하였다는 점에서 일반과 개별의 관계 를 왜곡하지 않은 정확한 이해라고 부연하였다.(115쪽)

기정진이 이이의 이통기국설에 들어 있는 기자이사상과 기유위론에 대해 리일원론적 입장에서 이원론을 비판한 것이라면, 임성주는 기일원론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먼저 이통기국설이 리와 기의 관계를 형이상과 형이하의 두 실체로 간주하면서 일물(一物)이라고 주장하긴 하나, 여기 서 리와 기는 분리되어 리기이물설이 되고 마침내 관념론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즉 “이통기국론은 오로지 기를 만수에 귀착시키고 또 담일청허한 기가 많은 경우 있지 않다는 것인데, 그 귀착을 보면 끝내 이물설의 의심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녹문집 녹려잡지)는 것이다.

특히 통과 국 두 글자 를 리와 기에 나눠 고정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비판했다. 임성주는 리와 기의 관계를 사물과 그 법칙, 실체와 그림자 관계로 파악했다. 본연(理)는 그림자이며 기질(氣)은 실체로서 둘은 하나이고 실체는 그림자를 나타내며 그림자는 실체를 따른다. 가령 등잔불의 실체는 기름이며 그 밝기가 다른 것은 기름의 차이 때문이다. 둘로 나누어 볼 수 없으며 마찬가지로 리와 기는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일물 이다.(녹문집 권19 녹려잡지)

최한기도 “기를 버리고 도나 리를 구명한다면 이는 마치 형체를 버 리고 그림자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하고,(인정 권10 도리구어기) 촛불이 밝은 것은 바로 물건을 비치는 기 때문이지 물건을 비치는 리 때문이 아니라고 비유했다. 이이는 서경덕의 기불멸설을 부정하면서 구체적인 사물들의 소멸과정에서 기의 본연인 담일청허 한 기도 사라져버린다는 기국사상을 내놓았는데, 이는 물질소멸론으로서 유물론의 타파를 노린 것 이며, 여기에 이이 철학의 관념론적 본질이 있다고 단정했다.(율곡전서 권10 서 답성호원)

이에 대해 임성주는 기불멸설의 입장에서 담일청허한 기는 곧 천인데 천이 어찌 존재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이는 담일청허한 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많다고 했으나, 임성주는 비록 편벽되고 탁 한 곳일지라도 기가 침투하지 않는 곳이란 없다고 반박했다.

이는 서경덕의 허즉기사상과 물질불멸 상의 계승이자 관념론의 공격으로부터 유물론적 입장을 공고히 한 것으로 평가했다.

임성주는 인식의 담당자인 심을 물질적 기의 산물로 보아, “심은 곧 기의 정영(精英)”, “기의 신은 심이고, 덕은 성이며 그 실지는 일기뿐”이며, 심은 사람의 육체를 이루고 있는 기질의 작용이라고 하 였다. 성리학에서는 일반적으로 심을 이와 기의 합으로 본다.(퇴계집 권18)

그런데 이이의 인식론 을 계승한 주기론자들 가운데는 심을 다만 기의 정수로 이해하고 주관관념론적인 양명학의 심즉리 를 반대하였다.(121쪽)

임성주는 심즉기의 입장을 관철하여 성을 기로 이해하였다.

심과 성은 하나 로서 분리될 수 없고, 심은 기의 령(靈)이며, 성은 기의 덕이다.

이 기가 없으면 심과 성의 명색도 역 시 스스로 성립될 수 없다.(녹문집 권16 잡저 대학)

그는 관념론자들이 감성적 인식을 과소평가했 던 것과 달리, 유물론적 견해에서 인식의 지각, 경험의 역할을 중시했다.

지와 행의 문제에서 임성주 는 이원론적 지행병진론에서 관념론적 지선행후를 주장했으며, 봉건적 도덕수양론의 테두리에 갇 혀행선지후에는 이르지 못했다.

3.6 자연과학적 유물론 철학, 이규경

이규경은 19세기 중엽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자연과학을 기본으로 하는 백과전서적 연구를 진 행하고, 세계발전 추세를 예리하게 통찰하여 ‘개국론’을 주장했다.

그는 ‘일기(一氣)’에 의해 만물이 발생한다는 유물론적 관점을 견지하여 물질적인 것의 1차성과 개관적 사물의 실재성을 인정하였다.

또한 천체의 운행으로부터 만물의 운동변화는 모두 자기 운동의 법칙이 있는 그 법칙이 바로 리라고 해석하였다.

나아가 물질세계는 다양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들이 모두 하나의 물질적인 시 원에 귀착된다고 보았다.

그는 「물성즉쇠변증설」에서 세상의 모든 사물이 발생, 발전, 소멸의 단계를 거치는 것을 필연적 이며 법칙적인 것으로 인정했다.

나아가 사물발전이 극에 도달하면 반드시 대립면으로 전환된다는 소박한 변증법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사물 발전의 ‘무한부정’ 사상과 그 발전의 요인을 사물 자체의 대립적 경향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한 점이 그것이다. 인식론에서는 의식, 사유의 물질적 기초로 정(精)을 내세워물질적 시원인 기와 구분했다.

인체는 바로 정, 기, 신이 통일되어 있으나 정이 근본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고려의학의 성과에 기초한 것 으로 인간의 의식이 고도로 조직된 물질인 뇌수의 기능이라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리하여 감 각, 지각의 중추는 뇌수지만 사유활동의 중추는 심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연의 물질적 대상에 접하 여 그 속성과 원리, 법칙과 이치를 연구하는 ‘격물’을 중시하고, 성리학에서는 격물치지를 말하면서 도 실지는 소원한 공리공담을 일삼는다고 비판했다.

이규경은 배불론의 대표자인 정도전의 업적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불교의 천당지옥설과 윤회설 을 체계적으로 논박하는 등 종교 미신을 반대하고 무신론적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당시 조선에 전파 된 카톨릭교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그러나 여타 유물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삼강오륜의 도덕질서를 합리화하였다.

그래도 성리학의 천리인욕설을 반대하여, “사람의 욕심은 이목구비사지의 욕이므로 없앨 수 없으며, 이는 악이 아니며 인욕대로 행동하여 절제가 없을 때 악이 된다.”(오주연문장전산 고 권29 인심도심변증설)고 하였다.

그의 사회역사관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인구의 증감을 사회발전의 중요한 요인으로 이해한 것이 다.(오주연문장전산고 권35 판적증감변증설)

또한 “물질적 부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백성들의 힘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다.”(오주연문장전산고 팔로리병변증설)라고 한데서, 사회의 물질적 부의 생산에서 노동력이 지닌 의의와 역할을 일정 정도 인식했다고 평가했다.

3.7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의 집대성, 최한기

최한기는 중세 유물론 철학을 관념론과의 투쟁에서 승리로 이끌었을 뿐만 아니라, 실학 발전의 종 점을 빛나게 장식한 실학자로 평가된다.

아울러 철학 및 사회정치사상은 비록 중세기적 제한성을 완 전히 탈피할 수 없었으나 조선철학사를 넘어 세계철학사 발전에 크게 기여한 가치있는 사상으로 인 정하였다.

그는 우주만물의 발생은 모두 기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서 후세의 경험에 의해 기가 점점 명백해져 서 사람들이 표준을 갖게 됨으로써 리와 기의 논쟁을 끝내게 되었다고 하였다.(기측체의 서)

물질 적 기의 시원성, 통일성, 무한성, 영원성과 함께 인간의 의식과 독립하여 실재하며 그 어떤창조주의 창조물이 아니라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기측체의 신기통 권1 체통 천인지기)

천이 란 기가 쌓인 것의 총칭이며, 우주에 다양한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기와 질의 결합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기측체의 신기통 권1 체통 기질각이)

또한 기를 천지의 기와 형체의 기로 구분하여 만물 의 생성소멸에 따라 형체의 기도 천지의 기로 환원된다고 하여 기 불멸론 전통을 이었다.

당시 사용 되던 철학적 범주와 개념들에 대한 종교신비적 해석, 주자성리학적 해석을 전면부정하고 물질적인 기 개념과 결부시켜 통일적으로 해석하였다.

그에게 리는 기의 조리로서 기가 운동변화하는 법칙이다.

촛불의 비유나 인간기계론적 견해, 근대 화학원소 지식을 수용한 56개 원질 등 자연에 대한 견해 와 유물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자주의식 발전에 기여한 진보적 사상으로 평가했다.

조선철학사 서술 외에도 최한기 관련 연구에서 가장 큰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식론에 관한 것이다.

그는 인식의 물 질적 기전으로서의 뇌수설을 주장한 조선의 첫 인물이다.

앞서 이익도 서양의학의 성과를 수용하여 뇌수를 언급했으나 뇌수는 감각을 주재할 뿐 인간의 사유활동을 규제하는 것은 심이라고 보아 전통 적 이해를 답습했다.

“뇌수는 두개골 안에 있는데 형질이 정밀하고 부드러우며 소리, 색깔, 냄새, 맛, 여러 촉각이 신기에 느껴 통하기 쉽다. … 전후를 기억하고 사물을 추측하는 기능을 갖추고 골육과 혈액, 오장육부에 비길바가 아니다.”(신기천험 권1 뇌일신지주)

최한기는 세계의 가인식성에서 출발하여 인식의 주체와 객체, 인식과정, 인식과 실천, 진리의 기 준 등에 대해 심도있는 견해를 피력했다.

“경험이 곧 지각이다.”라는 명제를 제기하여, 지각이 의식 에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다는 관념론적 견해를 비판했다.

그렇다고 감성적 인식만 중시한 건 아니 다.

그는 인식에서 이성적, 논리적 역할도 강조하였다.

감각 경험을 통해 표상하고 사물의 본질, 법칙 을 인식하는 추리와 판단의 의의를 인정했다.

특히 유행지리와 추측지리를 구분하여, 인간의 추측한 이치가 객관적 자연과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여, 인식의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것은 객관세계이며, 여기서 검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추측론에는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을 인식하는 귀납법과 이미 알고 있는 일반적인 것으로부터 개별적인 것을 인식해 나가는 연역법 과 같은 방법도 포함되어 있다.

같은 맥락에서 지와 행의 문제에 대해서도 행선지후를 기본으로 하 되, 지선행후도 인정하였다.

중세 철학사상에서 최한기만큼 종교, 미신의 인식론적 근원을 밝혀 비판한 사람은 없으며, 그의 변증법 사상에는 물질과 운동, 운동의 절대성과 정지의 상대성에 관한 사상도 있다고 평가했다.

4. 관점, 개념, 철학의 분단을 넘어

유물론 대 관념론의 투쟁사라는 북한의 조선철학사 인식틀은 1950년대 이래 현재까지 일관된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형이상학적 관념론의 대립과 발전은 북한 학계의 최초 조선철학통사로 평가할 만한 1960년의 조선철학사(상)에서 정식화되었다.

최한기를 처음철학사에 포함한 이 책은 “중세 유물론 철학의 완성자”라는 수식을 부여했고, 이후 최한기 연구의 이정표가 되었다.

이러한 평가에 주체사상과 수령영도체제도 한몫했다.

서구 중세와 달리 조선 중세철학의 유물론 발달은 세계철학 사에 이바지할 정도로 우수하다는 김정일 지적이 그것이다.

이로써 유물론 철학의 승리로 귀결하는 하나의 서사로서 철학사 전형이 재생산되었다.

남한에 비해 학술적 성과가 미흡하고 이념적 도구라는 점을 전제하더라도 총 8권에 이르는 조선 철학사 발간은, 한국철학사 상중하(1987) 발간 이후 별다른 진전이 없는 현재로선 부러운 일이다.

사실 1980년대 조선철학사(상)이 남한에 소개되었을 때 많은 논란이 일었다.

원전 번역의 오류뿐 만 아니라 해석 문제도 지적되었고, 유물론 철학을 조선철학사에 왜곡ㆍ적용했다는 비판도 나왔 다.12)

12) 이준모, 「조선철학사에 적용된 유물사관」, 조선철학사연구, 도서출판 광주, 1988, 321~342쪽.

반면 당대 사회 문제에 더 주목하고, 대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운다는 점 등은 참고할 지점이 란 평가도 있었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까지 시도되던 남북 학술교류는 중단되었고, 2010년 북한 의 조선철학사 발간도 그다지 관심 대상이 못됐다.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과 투쟁, 근로 인민대중 과 지배계급 간의 투쟁은 주체철학을 중심으로 현대 부르조아철학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 그리고 주체철학에 의해 북한의 조선철학사 기술은 현 재 과학기술 지식에 의해 과거를 평가하는 것이고, 역사주의 원칙에 따라 여러 제한성을 전제로 사 상의 선진성과 진보성을 결정해왔다.

관점을 내세우다 보니 때때로 개념의 의미론적 차이가 무시된 다.

이런 양상은 조선철학전사(2010)에 이르러 다소 해소되었다.

유물론의 발전이라는 철학사의 기본 관점에 거칠게 적용되었던 역사주의와 계급주의가 이전에 비해 다소 유연해졌다.

당대 중국철 학이나 서양철학의 유물론 또는 관념론과 비교를 통해서 철학사적 평가를 보완한다는 점도 중요한 특징이다.

또한 주체철학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상 평가에 하나의 잣대로 작용하는 한편, 민 족제일주의와 애국주의 고양이라는 김정일의 지적에 따라 외세의 침탈에 대응했던 조선후기 성리 학이 재조명되면서 쇄국주의로 폄하되었던 위정척사론도 재평가의 계기를 맞이했다.

유물론 계보화 과정에서 일관된 강조점의 하나는 바로 무신론이다.

반종교의 기치 아래 신비주의나 미신에 대한 부정과 더불어 목적론적 숙명론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 주조를 이룬다.

이규보의 「문 조물」로부터 최한기에 이르기까지 무신론은 유물론철학의 공통된다.

다른 하나는 봉건 유교도덕에 대한 비판이다.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사상은 주자성리학의 관념론에 비해 상대적으로 양반 지배 계급의 양민에 대한 수탈을 비판하고 제도 개혁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인성론이나 수양론에서 유 교 도덕규범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였다.

유교가 군자라는 인간상을 지향한다고 할 때, 그 수양과 공부가 유물론의 잣대로 봉건성 낙인을 찍고 모두 폐기되는 것은 적당하지 않아 보인 다.

고대 소박한 유물론에서 최한기에 이르는 기일원론철학의 계보화처럼 주체철학이 없더라도 그 들이 강조하는 인간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에 대한 지향과 실천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또한 역 사적ㆍ철학적 연구와 평가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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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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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1) 이규보 박문성, 「문조물에 반영된 리규보의 유물론사상」,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3권 제2호 (루계 520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7, 34~37쪽.(중복) 정홍교, 한인영, 조선사회과학학술집 504 문학편 :조선고전작가론 2, 사회과학출판사, 2015. 백운거사 리규보 1. 리규보의 생애와 창작활동... 5 1) 비상한 탐구력과 조국애로 불타던청소년시절... 5 2) 곡절많은 관료생활체험과 독자적인 창작세계의 개척... 17 1. 리규보의 세계관과 미학적견해... 32 1) 진보적인 세계관과 사회정치적견해... 32 2) 문학과 창작, 평론에 대한 새로운 견해... 43 156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 강명흡, 「(론문)리규보의 ≪천명≫관에 대한 고찰」, 사회과학원학보, 주체100(2011)년1호(루계70호), 2011, 31~32쪽. 최봉익, 「리규보와 그의 철학 사상」, 로동신문, 1964.01.13., 4면. 변정암, 「리규보의 무신론」, 사회과학원학보 2004년 제3호(루계43호), 사회과학출판사, 2004.09.01., 53~쪽. 박영태, 「리규보의 유물론의 력사적지위」, 철학연구, 2004년 제1호(루계96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4, 41~쪽. 리명일, 「리규보의 무신론사상」, 철학연구, 2004년 제3호(루계98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4, 45~쪽. 정해섭, 「리규보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견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47권 제3호 (루계 331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0, 27~쪽. 학사 정도일, 「리규보의 반침략애국사상」, 정치법률연구 2006년(주체94) 제1호(루계13호), 과학백과사전 출판사, 2006, 38~쪽. 박영태, 「리규보의 유물론적원기설」, 교원선전수첩 2004년 제1호(루계364호), 교육신문사, 2004, 164~쪽. 박영태, 「리규보의 변증법사상」, 교원선전수첩 2004년 제2호(루계365호), 교육신문사, 2004, 160~쪽. 2) 김시습 리순범 박사 부교수, 「김시습과 리익의 생재론에 대한 비교연구」, 사회과학원학보 주체107(2018)년 2호 (루계99호), 사회과학출판사, 2018.05.25., 49~50쪽. 한인영, 박길남, 김진국, 조선사회과학학술집 506 문학편 :조선고전작가론 4, 사회과학출판사, 2015. 3) 진보적인 시론의 제시... 52 2. 유구한 민족사에 대한 긍지높은 찬양과 시창작에서의 랑만주의적 경향... 63 1) 초기창작에서의 랑만주의적경향과 특색있는 력사물주제의 탐구... 63 2) 장편력사서사시 <동명왕편>... 72 3. 현실생활에 대한 다방면적인 체험과 시창작에서의 사실주의적경향... 83 1) 후기창작에서의 사실주의적경향과 다양한 현실주제와 형식의 탐구... 83 2) 반침략애국정신의 구현... 90 3) 가난하고 천대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 99 4) 불공평한 사회현실에 대한 폭로와 비판... 114 5) 다양한 인생체험과 생활정서의 반영... 132 4. 고려후반기 문학발전에 기여한 리규보의 산문... 156 1) 리규보의 창작적재능이 반영된 산문유산의 다양성... 156 2) 전기 및풍자산문의 창작과 <게으름병을 조롱한다>... 168 3) 의인전기체소설<국선생전>과 <청강사자 현부전>... 184 4) 기타 예술적산문의 활발한 창작... 195 매월당 김시습 1. 김시습의 류다른 인생체험과 창작... 5 1) 방랑으로 이어진 김시습의 곡절많은 한생... 5 2) 불의의 세상에 저항해나선 김시습의 창작활동... 24 1. 김시습의 세계관 및 미학적견해... 24 2. 김시습의 시세계와 현실반영의 진실성 1) 타협할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불만과 비판, 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처지에 대한 진실한 반영... 68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의 계보화 157 김춘식, 「김시습의 인식론사상이 우리나라 중세유물론적 인식론형성발전에서 차지하는 위치」, 철학연구 2013년 제4호(루계135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3, 42~43쪽.(중복) 김수영, 「(론문)김시습의 <원기주재>설」, 사회과학원학보 주체102(2013)년4호(루계81호), 사회과학출판 사, 2013.11.15., 42, 45쪽. 김수영, 「내용과 형식의 통일에 관한 김시습의 변증법적견해」, 철학연구 2008년 제4호(루계115호),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2008, 40~쪽. 김 창, 「김시습의 철학사상」, 문학신문, 문학신문사, 1960.12.16., 3면. 「문학, 사회, 정치 및 철학에 대한 김시습의 견해」, 문학신문, 문학신문사, 1960.12.20., 2면. 학사 김수영, 「김시습의 무신론사상」, 철학연구 2005년 제2호(루계101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5, 34~쪽. 학사 김수영, 「김시습의 자연관의 유물론적성격」, 사회과학원학보 2005년 제3호(루계48호), 사회과학출 판사, 2005.08.01., 21~쪽. 학사 김수영, 「김시습의 사회정치사상」, 정치법률연구 2006년(주체94) 제2호(루계14호), 과학백과사전출 판사, 2006, 41~쪽. 3) 서경덕 안영진, 「서경덕과 장재의 인식론에 대한 비교연구」, 철학, 사회정치학 연구 = 철학연구 2019년 제2호(루 계157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9, 54~56쪽. 변정암 박사, 「서경덕의 우주생성에 대한 견해」, 철학연구 2010년 제3호(루계122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0, 37~38쪽. 변정암 박사, 「(론문)서경덕의 유물론적생사관」, 사회과학원학보 주체97(2008)년 4호(루계61호), 사회과 학출판사, 2008.11.25., 28~29쪽. 량만석, 「서경덕의 기일원론적철학사상」, 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93년 제2호(루계53호), 31~ 34쪽.(중복) 정해섭 교수 ․ 박사,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에 대한 주체적연구(1)」,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39권 제5호 (루계215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93, 72~76쪽.(중복) 김춘택, 「서경덕의 철학사상과 문학」, 문학신문, 문학신문사, 1967.03.24., 3면. 류정수, 「서경덕의 유물론 철학체계」, 로동신문, 로동신문사, 1966.02.02., 3면. 「탁월한 철학자 화담 서 경덕 그의 탄생 470주년에 제하여」, 로동신문, 로동신문사, 1959.03.27., 5면. 김창원, 「서화담의 유물론적 철학 사상 연구」, 철학론문집, 과학원출판사, 1959, 87~쪽. 박사 변정암, 「서경덕이 밝힌 세계의 시원 및운동에 관한 견해」, 철학연구 2006년 제1호(루계104호), 과학 백과사전출판사, 2006, 44~쪽. 정해섭 교수 ․ 박사, 「서경덕의 기일원론철학의 철학사적의의」,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49권 제4호 (루계358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03, 35~쪽.(중복) 박사 변정암, 「서경덕의 기불멸설」, 사회과학원학보 2005년 제4호(루계49호), 사회과학출판사, 2005.12.01., 39~쪽. 2) 민족유구한 력사와 조국산천의아름다움, 민족세태생활에 대한 찬양... 102 3) 다양한 시형ㅅ힉과 형상수법의 탐구리용... 121 3. 김시습의 소설문학과 단편소설집 <금오신화>... 128 1) 김시습의 소설창작과 <금오신화>의 주제사상적특성... 129 2) <금오신화>의 예술적형상화의 특성... 151 158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 「중세기 유물론철학자 서경덕」, 금수강산, 1997년 제10호 (루계제98호), 오늘의 조국사, 1997.10.01., 45~쪽. (교수) 정진석, 「(명인 이야기) 서경덕」, 천리마, 1964년3 (66호), 113~115쪽. 4) 장유 김 명, 「장유의 시묶음 <24장>의 사상예술적특성」, 김일성종합대학학보 어문학 2018년 제4호 (루계 제539 호), 2018, 13~23쪽. 김 명, 「장유의 시작품들의 사상정서적특성」, 김일성종합대학학보 어문학 2017년 제2호 (루계 제521호), 2017, 15~19쪽. 「장유의 시문학에서의 풍자와 비판의 예리성」, 문학신문 2015년 3월 28일 제9호 (루계제2281호), 문학신 문사, 2015.03.28., 4면. 장미남, 「장유의 인식에 대한 유물론적견해」, 철학연구 2012년 제3호(루계130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2, 41~41쪽.(중복) 리순범, 「장유와 그의 유물론철학」, 민족문화유산 2002년 제4호 (루계제8호), 조선문화보존사, 2002, 25~쪽. 학사 리순범, 「장유의 유물론사상」, 철학연구 2005년 제2호(루계101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5, 36~쪽. 5) 임성주 강철, 「리기호상관계문제에 대한 임성주의 유물론적견해」, 철학, 사회정치학 연구 = 철학연구 2016년 제2 호(루계145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6, 47~48쪽.(중복) 정성철, 「임성주의 철학사상」, 로동신문, 로동신문사, 1966.03.30. 4면. 리순범, 「임성주의 유물론 철학」, 사회과학원학보 2002년 제4호(루계36호), 사회과학출판사, 2002.12.01., 28~쪽. 6) 리규경 「실학자 리규경」, 교육신문 = (舊)교원신문, 2010년8월 12일 제32호 (루계제3621호)2010년 월 29일 제30 호 (루계제3625호), 교육신문사, 2010.08.12., 4면. 「리규경의 유물론 철학 사상」, 로동신문 1965년1월 22일 (루계제6366호), 로동신문사, 1965.01.22., 6면. 「이름난 언어학자 리규경」, 문화어학습 2002년 제1호 (루계제208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2, 56~쪽. 학사 박문성, 「리규경의 실학적학풍의 특징」,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53권 제1호 (루계397 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07, 36~쪽 박시형, 조선사회과학학술집 306 력사학편 :17세기이후 우리 나라 봉건사회의 몇개부문 학문유산 3, 사회 과학출판사, 2013. 지리학편 --- ( 3 ) 머리말 --- ( 3 ) 제1장. 정치행정지리 --- ( 10 ) 1. 류형원의 <<군현지제>> 2. 정다산의 <<군현분예>> 제2장. 경제지리 --- ( 45 ) 1. 리익의 <<생재>>론 2. 리중환의 <<사대부 가거처>> 혹은 <<택리지>> [부] <<대동와유록>> 3. 리규경의 <<팔로리병변증설>> 기일원론적 유물론 철학의 계보화 159 7) 최한기 김춘숙, 「최한기의 추리에 대한 견해」, 철학연구 2004년 제4호 박경희, 「최한기의 감성적인식과 리성적인식에 대한 견해」, 철학연구 2004년 제2호 박국철, 「실학사상가 최한기의 인식사상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교원선전수첩, 2007년 제4호 박덕봉, 「최한기의 개국론」, 철학연구, 2012년 제2호 박문성, 「리조말기 위기에 처한 성리학적관념론의 인식적근원을 비판한 최한기의 유물론적견해」, 김일성종 합대학학보 54권 4호 정철웅, 「리기호상관계문제에 대한 최한기의 유물론적 견해」, 사회과학원학보, 2011년2호 정철웅, 「<기측체의>에 반영된최한기의 변증법사상」, 철학연구, 2011년 제3호 조홍수, 「최한기의 정치사상」, 철학연구 2001년 제2호 조흥수, 「최한기의 인식심리(2)」, 민족문화유산, 2001년3호 최동종, 「최한기의 리기 호상관계문제에 대한 견해」, 철학연구, 1994년 제4호 최동종, 「최한기의 우주에 대한 견해」, 철학연구, 1992년 제4호 8) 기타 : 기일원론, 유물론 김수향, 「기일원론철학의 특징」, 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7년 제1호(루계148호), 41~42쪽. 리정섭, 「중세기 기일원론철학의 인식심리사상」, 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1년 제3호(루계126호), 38~39쪽. 리현성, 「리조후반기 기일원론철학사상」, 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08년 제3호(루계114호), 40~ 42쪽. 박문성, 「15-16세기 우리 나라 기일원론철학의 의의와 제한성」, 철학연구,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97년 제 3호(루계70호), 39~41쪽. 오혁철, 「부여건국설화에서 제기된<기>에 관한 사상」, 철학연구, 1998년 제2호 김열철, 「조선봉건왕조시기 철학에서 세계의 운동변화에 대한 유물론적견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 경제학 제64권 제3호 (루계535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8, 55~61쪽. 로학희, 「조선봉건왕조시기철학에서 세계의 본질에 대한 유물론적견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 학 제권 제호 (루계532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8, 40~46쪽. 조국철, 「중세동방에서 유물론철학의 발전」,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3권 제1호 (루계517 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7, 57~60쪽. 박문성, 「16세기 리경창의 유물론사상」,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3권 제4호 (루계526호), 김 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7, 48~53쪽. 박문성, 「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에 대한 리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2 권 제2호 (루계508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6, 38~41쪽. 박문성, 「철학의 중심문제해결을 통하여 본 중세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2)」,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0권 제4호 (루계490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5, 39~42쪽. 박문성, 「철학의 중심문제해결을 통하여 본 중세 우리 나라 유물론철학의 발전(3)」,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제학 제61권 제2호 (루계496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2015, 41~44쪽. 김광복 준박사, 「맑스주의유물론적력사관의 기본공식에 대한 주체적리해」, 김일성종합대학 학보 : 철학,경 제학 제권 제5호 (루계215호),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93, 56~60쪽. 제3장. 군사지리 --- ( 81 ) 이 시기 취해진 군사지리적대책들에 대한 시비와 평가 --- ( 330 ) 160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 최광, 「17~19세기 우리 나라 유물론발전의 주요특징」, 철학연구 2015년 제2호(루계141호), 과학백과사전 출판사, 2015, 41~43쪽. 리덕남 박사 ․ 부교수, 「중세기 우리 나라에서 유물론적인식론이 철학발전에 미친 영향」, 철학연구 2012년 제4호(루계131호), 과학백과사전출판사, 2012, 39~41쪽. 신순철, 「중세 우리 나라에서 기유물론철학사상과 그 제한성」, 철학연구, 2002년 제4호 량만석, 「15~16세기 우리 나라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의 투쟁」, 철학연구 1989년 제3호(루계38호), 과학백 과사전출판사, 1989, 44~48쪽.

2. 남한 자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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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黃義敦, 「世界中最初의 物質不滅論者徐敬德先生, 朝鮮十大偉人紹介의 其一」, 개벽 제14호, 1921.08.01., 85~96쪽. 강경현, 「북한의 이황 철학 연구 ‒객관적 관념론에서 신학적 관념론으로‒」, 철학 157집, 2023, 93~128쪽 김교빈, 「북한철학계의 전통철학 연구 경향과 앞으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연구」, 시대와 철학 5권 2호, 1994, 38~74쪽. 박민철, 「‘조선철학’ 대 ‘한국철학’ ‘북’의 조선철학 연구 특징과 남북철학의 공동연구 가능성」, 시대와철학 30권 3호, 2019, 49~88쪽. 박민철, 「2000년대 이후 북한철학계의 연구경향과 그 특징―『철학연구』(2000-2016)을 중심으로」, 민족문 화연구 제83집, 2019, 617~644쪽. 이준모, 「조선철학사에 적용된 유물사관」, 哲學硏究 23, 1988.

2024년도 한국철학회 학술대회자료(24.3.23)

2024년도_한국철학회_학술대회_자료집 (1) (1) (4).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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