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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기무라 다이켄 원시불교사상론의유정론(有情論)과 의지주의/김영진.동국대

Ⅰ. 머리말

Ⅱ. 유정(有情)의 본질과 생명 활동

Ⅲ. 12지연기설과 욕망의 이중기원

Ⅳ. 절대법성과 ‘의지의 형이상학’

Ⅴ. 맺음말

국문요약

기무라 다이켄(木村泰賢)은 일본 다이쇼(大正) 시기 활동한 저명한 불교학자이다.

그는 조동종 승려로 조동종 대학을 졸업한 후 도쿄제국대학선과생(選科生)으로 입학해 공부했고, 대학 졸업 후 유럽으로 유학해 영국과 독일 등지에서 공부했다.

그는 유학 기간에 원시불교사상론 원고를 썼고, 1922년 일본에서 간행했다.

이 책에서 기무라는 대승불교가 분명히 원시불교를 계승했고, 원시불교와 대승불교가 모두 의지주의(voluntarism)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의지주의는 그의 12지연기 이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는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아 무명(無明)을 ‘맹목적 의지’로 파악했다.

기무라는 유정(有情)의 본질은 욕망이고, 그것이 생명 활동의 동력이라고 보았다.

또한 12지연기를 애욕과 무명이라는 욕망이 전개하는 유정의 생명 활동으로 파악했다.

하지만기무라가 보기에 욕망은 단지 번뇌를 양산하는 의지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초월한 절대법성으로서 의지이기도 하다.

그는 무여열반이나절대법성이라는 말로 의지를 물자체나 형이상학적 실재로 파악하려는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유정론은 일종의 ‘의지의 형이상학’이라고할 수 있다.

그는 욕망이라는 유정의 분명한 현실을 기반으로 하여 번뇌하는 유정의 생명 활동뿐만 아니라 번뇌를 초월한 절대 세계를 설명하고자 했다.

주제어 : 기무라 다이켄(木村泰賢), 원시불교사상론, 유정론, 무명, 의지주의

I. 머리말

기무라 다이켄(木村泰賢, 1881-1930)은 근대 일본의 저명한불교학자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불교계에도 영향을끼쳤다.

중국의 경우,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해조음(海潮音), 내학(內學) 등 주요한 불교 간행물에 기무라의 글 20여 편이번역 소개됐다.1) 또한 량치차오(梁啓超, 1873-1929)는 1925년 기무라의 원시불교사상론(이하 원시불교)을 중요하게 참고하여「 불타시대 및 원시불교 교리강요(佛陀時代及原始佛敎敎理綱要)」를썼다.2) 한국의 경우, 기무라가 쓴 「종교의 본질과 불교(宗敎の本質と佛敎)」가 1924년에서 25년에 걸쳐 조선불교(朝鮮佛敎) 제8호에서 10호까지 세 차례 일문(日文)으로 소개됐고, 1925년 불교 지 13호에 한글 번역문인 「종교의 본질과 불교」가 소개됐다.3)

김법린(金法麟)은 1928년 불교지에 원시불교의 12연기 해설부분을 번역하여 「12인연에 대하여」로 소개했다.4)

1) 민국시기 간행된 불교잡지 검색시스템인 ‘民國佛教期刊文獻集成及補編資料庫’를 통해서 20년대부터 40년대까지 다양한 글을 확인할 수 있다.

2) 肖平(2003). 제5장 「佛學硏究事業的恢復與日本的佛學硏究」가 집중적으로 중국 근대불교학과 일본 근대불교학의 관련에 대해 다룬다. 특히 제4절에서일본 근대불교학 연구 성과의 중국 내 번역과 그것의 영향을 다룬다. 여기서도 1910년대 기무라 다이켄의 영향이 꽤 컸음을 확인할 수 있다.

3) 역자로 보이는 宗圓은 역자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성 종교에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은 오늘날 인도철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기무라교수의 高論을 듣는 것은 피폐한 교계에 하나의 新機軸을 암시함이다. 선생이 언제나 주창하는 신대승주의 면목이 약동하는 듯하다. 다만 역자의譯意가 충분치 못하여 고론에 흠을 낸 게 유감이다.” 木村泰賢(1925), 11.

4) 김법린(1928), 11-21

1920년대 일본에서 유학한 이들에게도 작지 않게 영향을 끼쳤다.

기무라는 일본 조동종 소속 승려로서 일찍이 1903년 조동종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 도쿄제국대학 선과생(選科生)으로 입학해 1909년 졸업했다. 재학 기간 무라카미 센쇼(村上專精, 1851-1928), 이노우에 테츠지로(井上哲次郞, 1855-1944)5), 다가쿠스 준지로(高楠順次郎, 1866-1945), 아네사키 마사하루(姉崎正治, 1873-1949) 등에게 배웠다.6)

기무라는 저들의 학풍에 크고 작게 영향을 받았다. 1912년 기무라는 도쿄제국대학 강사로 임용됐다. 1914년 다가쿠스준지로와 인도철학종교사(印度哲學宗敎史)를 공저했고, 이듬해 인도육파철학(印度六派哲學)을 출판했다. 1917년 기무라는 조교수로 승진했고, 1919년 말 정부 지원으로2년간 일정으로 영국 유학을 떠났다. 영국에서 리즈 데이비스(Mrs. Rhys Davids, 1857-1942) 여사 등과 교류했다.

영국 유학만기 후 반년 간 연장하여 독일 등지의 여러 학자를 방문했다. 1922년 5월 일본으로 귀국하여 도쿄제국대학 인도철학 제2강좌를담당했고, 그해 원시불교사상론(原始佛敎思想論)(이하 원시불교)과 아비달마론의 연구(阿毘達磨論の硏究)를 출판했다. 두 책의원고는 유럽 체류 중 완성했다. 그는 아비달마론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로 승진하여 도쿄제국대학의 불교학 대표 강좌라고 할 수 있는 ‘인도철학 제1강좌’를 담당했다.7)

기무라는 명실공히 1920년대를 대표하는 일본 불교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와대비되는 동시대 인물은 우이 하쿠주(宇井伯壽, 1882-1963)이다.8)

기무라는 원시불교, 아비달마론의 연구 등 당시로는 획기적인 작품을 간행하여 불교학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실증주의에 입각한 문헌학 방법론만이 아니라 철학 방법론을 동원하기도 했다.9)

5) 이노우에 테츠지로기 도쿄대학 내에서 행한 인도철학과 불교 관련 강의와연구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이태승(2016).

6) 당시 도쿄제국대학의 불교학 및 인도철학 관련 강좌 개설과 교수자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스에키 후미히코(2009), 204-220.

7) 기무라 다이켄의 약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했다. 稻葉茂(1930), 215-218. 西義雄(1930), 219-231.

8) 기무라 다이켄과 우이 하쿠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山折哲雄(2009), 133-154.

그의 스승이기도 한 아네사키는 기무라 사후 그를 추모하는 글에서 “기무라는 학자이자 사상가였다.”라고 평가했다.10)

사실 이미 문헌주의가 불교학 방법론으로 상당히 자리를 잡은일본 불교학계 상황에서 불교학자에게 행한 ‘사상가’라는 평가는대단히 특별하다.

기무라의 글을 읽어보면 우리는 얼른 그가 단순한학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원시불교에서 “교조 그 자체의주석적 해설을 피하고, 문제를 중심으로 살피는 것”11)을 저술방침으로 했다.

그래서 그는 분명한 주제와 문제를 갖고 논의를진행했다.

전문적인 학술서 혹은 개괄적인 불교학 개론서 저술을목표로 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은 원시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저작에도 관철됐다.

이 때문에 도키와 다이조우(常盤大定, 1870-1945) 는 기무라가 “원시불교에 대해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부여하여현대 학계의 흥미를 환기했다.”12)라고 평가했다.

기무라가 원시불교13)를 기술하는 태도나 방법에서 크게 두가지 특징을 포착할 수 있다.

첫째, 기무라는 원시불교를 대승불교나 동아시아불교의 분명한 연원으로 간주하고 그것들 간 연속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원시불교의 부제가 “특히 대승사상의연원에 주의해서”(特に大乗思想の淵源に注意して)라는 점에서도이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둘째, 기무라가 ‘의지주의(voluntarism)’라는 서양철학의 이론을 불교 교리 해석에 강하게 적용했다는 점이다.14)

9) 기무라 다이켄의 불교 연구 방법론에 관해서는 다음을 글을 참조할 수 있다. 木村泰賢(1979)b, 25-50. 10) 姊崎正治(1930), 218.

11) 木村泰賢(1979)a, 192.

12) 常盤大定(1930), 221.

13) 근대 일본 불교계에서 ‘원시불교’ ‘초기불교’ ‘근본불교’ 등 명칭의 조어와그 범위 확정 그리고 그것의 활용 등에 관해서는 다음을 참고할 수 있다. 이자랑(2020), 9-37. 본고에서는 기무라에 따라 주로 ‘원시불교’란 표현을 사용했다.

14) 본고에서 사용하는 意志主義, 主意論, 唯意志論은 동일한 의미이고, 맥락에따라 달리 썼을 뿐이다.

기무라는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철학의 의지 개념을 동원하여 유정(有情)의 욕망과 세계의 전개를 설명했다.

그의 불교 이해에 이 ‘의지주의(voluntarism)’가 중요한역할을 한다.

기무라는 그것을 주로 주의론(主意論)으로 묘사했다.

기무라는 이 주의론을 통해서 원시불교와 대승불교를 연결한다.

그래서 두 특징은 맞물려 있다고 해도 좋다.

본고에서는 원시불교를 중심으로 기무라의 유정론(有情論)을이해하고 여기에 동원된 의지주의를 분석하여 근대불교학 내부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철학 방법론이 운용된 사례를 추출하고자한다.

본고에서는 그의 연구 성과에 대한 시비 판단이나 원시불교관련 연구사 검토가 아니라 그가 불교 연구에 사용한 방법론과그가 불교 연구에서 보인 태도를 분석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그의 방법론이 동아시아 근대불교학 성립 과정에서 진행한 하나의실험임을 확인할 것이다.

Ⅱ. 유정(有情)의 본질과 생명 활동

기무라는 원시불교 머리말에서 자신은 본래 ‘인도불교사’ 단행본 저술을 계획했지만 여의치 않아 계획을 변경하여 부분별로출간하게 됐고, 본서가 그 결과임을 밝혔다.

그는 아울러 원시불교의 특징을 밝히는데, “아함의 사상을 조직적으로나 논리적으로더 나아가 시대정신과 교섭을 고려하여 논술하였고”, “아비달마논사처럼 문구 이면의 의의를 밝히고”, “오늘날 학문 태도에 서서그것의 근본적 입각지를 명백히 밝히려 했다.”라고 말한다.15)

15) 木村泰賢(1979)a, 8-9.

그는 이렇게 근대 학술의 입장에서 원시불교를 분석할 것임을 밝혔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기무라가 원시불교에서 “후대의대·소승 사상이 의존하여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계기를 찾으려 노력했다.”라는 사실이다.

기무라는 당시 여전히 ‘대승 독존’과 ‘소승폄하’ 분위기가 존재하고, 또한 근대불교학에 힘입어 ‘원시불교정통주의’가 발흥했음을 인지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불교 전체맥락에서 원시불교를 조망했다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인도 대승불교뿐만 아니라 화엄이나 선 등 동아시아불교의 여러 교파 또한원시불교 교의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한다.

원시불교는 기무라가 귀국하기 전인 1922년(타이쇼 11) 4월간행됐고, 동년 5월과 7월에 각각 재판과 증정(增訂) 삼판이 간행됐다.

기무라 사후인 1930년 제10판이 발행됐다.16)

당시 꽤 각광받은 작품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은 제1편 총론, 제2편 사실적 세계관, 제3편 이상과 그 실현 등 전체 3편으로 구성됐다. 기무라는 제2편과 제3편을 각각 사성제 가운데 고·집 2제와 멸·도2제에 대응시킨다.

제2편에서는 인연, 유정, 윤회 등 현실 삶을 설명하는 세간에 관한 교설을 다루고, 제3편은 수행, 윤리, 열반 등이상 세계를 향한 출세간에 관한 교설을 다룬다.

제2편의 제2장이‘유정론 일반’이지만 실제 제2편 전체에서 유정론을 다룬다고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현실 세계는 근본 단위가 개별유정(satta)일 수밖에 없다.

불교에서 유정은 5취·6취 혹은 5도·6도 등으로 분류하고, 탄생의 방식에 따라 태(胎)·난(卵)·습(濕)·화(化) 4종 생(生)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당연히 오늘날 행하는 동물 분류와 다르다.

그의 유정론은 “무아론(anattā vāda)에 기초한 생명관”17)이라고 할 수있다.

하지만 기무라는 상당히 제한적인 의미로 무아론을 사용했다.

또한, 그는 대승불교사상론에서는 유정론을 “인간을 중심으로한 생물관”으로 정의했다.18)

16) 본고에서 원시불교는 1979년 간행 木村泰賢全集 (東京: 大法輪閣) 수록본을 인용한다. 한글 번역은 박경준 역(1992)을 참조했다. 일일이 밝히지는 않겠다.

17) 木村泰賢(1979)a, 120.

18) 木村泰賢(1979)b, 75.

이 때문에 그의 유정론은 생명론이자 인간론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유정에 대해 크게 두 가지갈래로 접근한다.

첫째는 ‘구성물로서 유정’인데 이는 그의 말에따르면 기계적이고 분석적인 관찰이다.

둘째는 ‘생명으로서 유정’인데 이는 본질적인 측면의 접근이다.

먼저 첫째 측면을 보자. 유정이 구성물이라면 그 구성 요소가중요한데, 불교 내부에는 그 요소가 무엇이냐에 따라 몇몇 학설이존재한다. 일차적으로 유정은 ‘물질적 요소’(rūpin)와 ‘비물질적요소’(arūpin)의 결합이다.

기무라는 이 요소를 명색(名色, nāmarūpa) 으로 정리했는데 오온설에 한정해서 보면 명은 정신적 요소인수· 상·행·식 4온을 가리키고, 색은 물질적 요소로 사대(四大)로 구성된육체 전반을 가리킨다. 기무라는 이를 “붓다가 이원론적 경향이있었고 일종의 병행론(parallelism)으로 이해할 수 있다.”라고 지적한다.19)

색심(色心) 이원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말한대로 5온·12 처·18계 등의 이론이나 육계설(六界說)·사식설(四食說)20) 등은 유정을 구성적으로 이해하는 학설이다.

19) 木村泰賢(1979)a, 122.

20) 사식(四食, cattāro āhāra)은 유정을 양육하는 데 4가지 음식물을 가리키는데, 실제로는 유정과 유정의 활동을 구성하는 요소를 가리킨다. 4가지가운데 단식(段食)은 유정의 신체 기관을 가리키고, 촉식(觸食)은 감각기관을 통한 감각 등 심리작용을 가리키고, 사식(思食)은 감각 내용에 대한판단과 행동 등 의지작용을 가리키고, 식식(識食)은 정신 주체를 가리킨다. 雜阿毗曇心論이나 成唯識論 등 주로 아비담 문헌과 그것을 계승한 유식 문헌에서 언급하는 내용이다. 慈怡(1989), 1741-1742

그런데 저런 유정의 구성적 이해에서 기무라가 주목한 점은질료인(質料因)으로서 개별적 요소가 결합할 때 결합의 원동력은어떻게 발생하는지 문제이다.

질료인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쉽게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학(Physics)에서 자연 탐구의 방법으로 제시한 사인설(四因說)을 떠올릴 것이다.

기무라는물질 원인으로서 질료인만 말하고 나머지 형상인, 작용인, 목적인은 거론하지 않고 오직 동력인(動力因)만 추가할 뿐이다.

그는5온이라는 질료를 결합하게 하는 원동력을 ‘접착제’라고 했고,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업(業, kamma)·무명(無明, avijjā)·욕(欲, tanḥā) 등을 제시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5온을 결합하는 힘인 집착(執着, upādāna)이 바로 동력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여기서무아설을 견지하기 때문에, 어떤 주체가 ‘집착’하거나 ‘접착’하는게아니라 저들 구성 요소를 결합하는 동력이 그 자체로 작동한다고본다.

기무라는 이를 ‘유정 조직의 접착제’라고 부른다.

5온을 결합하는 제1 원인은 먼저 무명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그목적을 위해 그들 요소가 각각 활동하게 하는 것은, 곧 그들을 유기체로 결합하여 떨어지지 않게 하는 근본 동력이다.

그리하여 그 활동의결과가 또한 그 유기체를 특수화하여, 장래에 있을 특수한 활동의기초를 쌓는 것이 곧 제2 원동력이다.

더욱이 이 무명 업은 한순간도중지하지 않고 단절되지도 않는다.21)

생명론 차원의 무명 이해는 기무라가 견지한 원시 불교관의핵심이다.

그는 무명을 일종의 ‘의욕’으로 이해하고, 쇼펜하우어의말을 빌려 “살고자 하는, 더욱이 맹목적인 근본적인 의지”라고 규정한다.

기무라는 꽤 대담하게 무명을 ‘맹목 의지’에 대응시킨 셈이다.

그가 말하는 유정, 생명 등 주요 개념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이 ‘맹목 의지’와 관련 있다.

기무라 불교관 전체에 이 구도는 흔들림 없이 관철된다.

그래서 특정한 사조로 기무라의 저런 견해를정리하자면, 그것은 주의론(主意論) 혹은 의지주의이다.

5온의 접착제가 무명이고, 그 무명은 의지이고, 생명 현상의 발생과 전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는 게 기무라의 생각이다.

유럽 유학 이전인 1917년쓴 논문 「원시불교를 귀착점으로 한 주의론 발달의 경과(原始佛敎を歸着点として印度における主意論發達の經過一斑)」(이하 「주의론」) 에서 그는

"붓다의 교설에 의하면 생명의 본질은 비록 심리학의욕망이라고 하지만 그 자신은 사실 단지 무의식의 충동이다.”22)

라고 선언한다.

21) 木村泰賢(1979)a, 127-128.

22) 木村泰賢, 釋依觀譯(2021), 354.

이 충동은 영원히 만족을 모르는 갈망이다.

다음은 두 번째 측면인 ‘생명으로서 유정’을 보자. 물론 이‘생명’이란 말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대체로 의지에 따른 유정의 총체적 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기무라가 주목한 개념은‘무시무명’이다.

‘무시무명’은 유정이 ‘무시 이래 간직한 무명’을 가리키고 ‘무시이래(無始以來)’라는 말은 당연히 그 시작을 알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근본 시점부터’란 뜻이다.

또한 이는 그 이전 사태에 대한 질문을 차단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무라는 이것을 ‘제1조건’이라고 표현했다.

개체 단위로 보면 그것은 선험이고, 세계 단위로 보면 태초이다.

요한복음의 “태초에 말씀이 있었느니라.”라는 버전으로 바꾸면 “태초에 무명이 있었느니라.”라고말할 법도 하다.

이 무명이 동력인이 되어 5온 혹은 사식을 취합한다고 말하는 것도, 결국 근본 의지가 다양하게 활동할 때, 그 기관으로서 자신 속에 전개한 것을 잠시 특징에 따라 요소로 구분하여 관찰한 것으로 결코 자신이외의 것에 작용하여 생명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이해하여서는안 된다.

즉 무명이 자신 안에 이미 적어도 가능성으로서의 5온 혹은사식 등이 될 수 있는 요소를 갖추었다.23)

23) 木村泰賢(1979)a, 130

기무라는 ‘구성물로서 유정’을 말하면서 접착제로서 무명을제시하지만 ‘생명으로서 유정’을 말하면서는 현상의 기원이자 일종의 장으로서 무명을 말한다.

“5온이나 사식은 무명이 자신 속에서전개한 것”이라는 기무라의 이해는 다소 놀랍다.

사실 이런 생각은 그가 유정의 요소론적 이해를 기계론적 이해로 파악하고 그것을 다시 “유물론자의 생각” 정도로 평가하는 데서 약간은 예측할수 있었다.

일반적 이해로 보자면, 원시불교에서 5온이나 사식개념은 정신과 물질 두 측면을 포괄하지만 그것이 모두 하나의기원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것을 형이상학적 실재 하부로 편입시키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무라는 5온과사식 등은 실은 근본 의지의 전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는본고 제4장에서 다룰 ‘의지의 형이상학’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앞서 유정은 “제 요소의 유기적 결합임으로 오히려전체가 먼저 있고 나서 부분이 있다.”라고 이해했다.

그가 말한‘부분과 전체’를 ‘개인과 국가’라는 사회학적이고 정치학적인 수사로 이해하지 않더라도 부분 혹은 개별 요소 상위에 모종의 존재를 상정하려는 경향을 읽을 수 있다.

무명이 전체라면 5온은 부분이자 개별이다.

또한 유정의 성립은 무명이 하나의 기관으로서혼연일체로 상속한다.

기무라는 자신의 이런 생각이 유아론적 경향임을 인정한다.

또한 윤회의 주체로 상정된 독자부(犢子部)의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 경량부(經量部)의 세의식(細意識), 화지부(化地部)의 궁생사온(窮生死蘊), 유가행파의 아뢰야식 등이 이런 경향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기무라는 “저들은 어느 경우나 무명 혹은 욕망(taṇhā)을 기초로하여 생명을 고찰했기에 저런 결론에 도달했다.”24)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무라는 부파와 유식가의 유아론적 경향이 상좌부 보다붓다의 진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기무라는 그럼에도 붓다가굳이 무아론을 주장한 까닭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무아관(無我觀)은 소극적으로 말하면 아집과 아욕을 떠나기 위한선관적(禪觀的) 수행의 주요 공안이었고, 적극적으로는 애타적 도덕을장려하는 주된 기초가 되었다.25)

기무라는 붓다가 특수한 효용을 기대하고 무아설을 말했다고본다. 달리 말하면, 붓다는 기능적이고 윤리적인 이유로 무아설을주장했다. 기무라는 붓다의 생명관은 결국 유아론적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26)

24) 木村泰賢(1979)a, 131.

25) 木村泰賢(1979)a, 132.

26) 이런 기무라의 주장은 그가 원시불교 간행 이후 ‘이단’이란 혹평을 받은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붓다가 자아의 유동성을 말함으로써 실체론적 자아관을 부정하였기에 그것이 무아설로보이지만 유동성 속에서도 상속하는 존재를 상정하였기에 오히려유아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특히 기무라는 무아설이 붓다 당대행한 사상적 역할은 근대 유럽에서 기독교의 영혼관과 유물론자의 물질관 양측을 지양하고 조화한 격이라고 말한다.

기무라가 무아설의 역할을 제한하고 유아설의 경향을 부각한이유는 뭘까?

이는 그가 이후 대승불교를 설명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는 ‘주체’로서 유정을 강조한 것이라고할 수 있다.

기무라에게 유정은 욕망 주체이자 깨달음 주체이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해 그는 논문 「종교의 본질과 불교」에서 “필연과 자유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종교의 목적이 있다.”27)라고 했다.

 

27) 木村泰賢(1925), 9.

욕망은 오히려 필연이고, 깨달음은 자유이다.

하지만 욕망의 주체와 깨달음의 주체는 동일해야 한다. 적어도 그가 보기에는 그러했다.

그는 동일한 주체와 동일한 기원을 가지고 인간과 세계를설명하고자 한다.

Ⅲ. 12연기론과 욕망의 이중기원

기무라는 원시불교가 유정의 생명 활동을 교리적 차원에서 정리한 내용이 ‘12연기론’이라고 본다. 근대 일본의 불교 연구 성과를국내에 단정하게 소개한 김동화는 유명한 불교학개론에서 “12연기설은 일체 유정이 생사고해에 윤회하는 상태를 인과(因果) 관계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했다.”28)라고 평가했다.

28) 김동화(1984), 162.

12연기의 각지분(支分)은 무명(無明, avijjā)·행(行, saṇkhāra)·식(識, viññāṇa)·명색(名色, nāmarūpa)·육입(六入, saḷāyatana)·촉(觸, phassa)·수(受, vedana)·애(愛, taṇhā)·취(取, upādāna)·유(有, bhava)·생(生, jāti)· 노사(老死, jarā-maraṇa) 등이다.

사실 12지(支)의 연쇄로 유정의생명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정교해 보이는 것만큼 기계적이다.

냐하면 유정의 복잡다단한 생명 활동을 12지의 연쇄로 특정할수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12지연기로 통상 알려졌지만 니카야나아함 등 원시불전에는 12지설뿐만 아니라 5지설에서 10지설까지다양한 연기지가 등장한다.29)

기무라는 12지는 한역 문헌에 의해거의 확정된 것임을 지적했다.

그도 주로 12지연기설을 다룬다.

연기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연기론은 결국 노사(老死, 늙고죽음)이라는 유정의 근본적 생명 활동에 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데, 바로 노사가 인간 유정이 현실에서 경험하는 최대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사문유관(四門遊觀)에서 보듯, 노· 병·사가 붓다가 고민한 최초 지점이다.

사실 기무라가 원시불교 를 시작하면서 유정의 생명 활동을 고성제와 집성제의 측면에서바라보겠다고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2지연기론은 유정의생명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설명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기무라는 12지연기론의 세 가지 해석 방식을 제시했다.

왕관적(往觀的) 해석, 환관적(還觀的) 해석, 분단적(分段的) 해석 등이다.

이는 기존 해석과 자신의 해석을 종합한 것이다.

주요하게는앞두 해석법에 집중한다. 앞 둘은 전통적인 명명법에 따르면 각각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이다.

세 번째는 이른바 ‘삼세양중인과’와같은 전통적 해석을 가리킨다.

“왕관은 주어진 사실로부터 출발하여 그것이 그렇게 된 조건을 찾으려는 것”이고, “환관은 발생적또는 논리적 순서”라고 본 것이다.30)

29) 한역 중아함경과 잡아함경에도 12지뿐만 아니라 11지설에서 5지설까지 다양한 연기지가 등장한다. 김동화(1983), 67-68.

30) 木村泰賢(1979)a, 206-207.

기무라는 12지연기를 해석할때, 5계열 혹은 5단계로 잘게 나누어 설명하기도 하지만 주요하게 는 3계열로 이해한다.

제1 계열은 “노사·생·유·취·애”이고, 제2 계열은 “수·촉·육입→명색·식”이고, 제3 계열은 “행·무명”이다.

그의말에 따르면 제1 계열은 운명론과 주의론 입장이고, 제2 계열은심리론과 인식론의 결합이고, 제3 계열은 생명론 입장이다.

욕망론은 제1 계열과 제3 계열에 이중으로 등장한다.

바로 ‘애욕’과‘무명’이다. 먼저 제1 계열을 보자. 기무라가 왕관을 설명하면서 언급한“주어진 사실”은 12지에서 보자면 노사(老死), 생(生), 유(有) 등이다. 이에 비해 취·애는 관념적이고 심리적인 부분이다.

물론 관찰의출발점은 ‘늙고 죽음’이다.

늙고 죽음이 고통이 아니라고 하는사람도 있지만, 고대 인도인이 생각한 인간 유정의 가장 큰 두려움은 이것이었다.

‘사문유관’이라는 사건에서도 이 점이 강조된다. 태자 고타마 싯타르타는 노·병·사의 고통을 보고 두려움에 떨면서왕궁으로 돌아온다.

“노사·생·유” 단계에서는 아직 이 현실이전개되는 계기를 언급하지는 않았다.

기무라는 ‘유(有)’가 가능한계기는 “자아에 대한 집착을 기초로 하여 그 욕망을 수행하려고하는 의지(意志)”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바로 취(取)이다. 취는 추구또는 집착의 의미인데, 이것의 원인도 있다.

그 원인은 애욕(愛欲, taṇhā)이다.

기무라는 이 애욕이야말로 “붓다가 집제 즉 현실계의본원이라고 밝힌 것”이라고 파악했다.

나아가 이 애욕을 생존욕[有欲, bhavataṇhā]·성욕(性欲, kāmatṇhā)·번영욕(繁榮欲, vibhavataṇhā)으로 구분하고 바로 이것이 유정 생명 활동의 본원력이라고 본다.

주의론 견지에서 붓다의 연기관 체계는 여기서 완결된다. 왜냐하면애욕의 본원은 애욕 자신으로서 살고자 하는 생명 이상 소급할 수없기 때문이다.31)

31) 木村泰賢(1979)a, 209.

의지주의 입장에서 보면 욕망 이전은 상상할 수 없다.

태초에 욕망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욕망의 원인을 추적할 수 없다.

기무라는 애욕을 ‘살고자 하는 생명’이라고 규정했다. 이 욕망에서시작해서, 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로 진행한다고 보았다.

이 5지연기에서 사실은 유정의 생명 활동은 온전히 설명된다.

간단히 말하면 애욕이라는 욕망이 결국 노사라는 고통을 초래한다. 12지연기론에서 보이는 욕망의 이중기원 가운데 첫째 기원이라고할 수 있다.

사실 기무라가 말했듯, 주의론 입장에서는 이는 이미온전히 종결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제2 계열이추가된다.

제2 계열은 “수(受)·촉(觸)·육입(六入)·명색(名色)·식(識)” 이다.

사실 이 계열을 제1 계열의 애욕에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기무라는 어쩔 수 없이 애욕을 심리 활동의 일종이자 특수한감정 상태로 제한한다.

이런 제한을 통해서 애욕의 배후를 설계한다.

기무라는 일반 감정으로서 수(受)를 말한다.

그는 “수(受)←촉(觸)←육입(六入)” 구조를 심리적 조건이라고 파악하고, “명색(名色)←식(識)”을 인식론적 조건으로 파악한다.

제3 계열은 “행(行) ←무명(無明)” 구조로 생명론적 조건이다.

여기서 무명이라는두번째 욕망을 거론한다.

앞서 말한 인식 활동으로서 “식은 의지의목적을 수행하는 기관일 뿐이다.” 이 의지가 바로 행이다.

사실행을 의지라고 하지만 기무라는 여러 곳에서 무명을 ‘맹목 의지’로보았다.

이렇게 보면 ‘행과 무명’ 모두 의지이자 의지의 활동이다.

그래서 12지연기는 3종 층위로 이해할 수 있다.

행(行)이란 드러난 입장으로 보면 신·구·의에 활동을 일으키는 원동력이고, 감추어진 입장으로 보면 의지의 성격으로 업과 다르지 않다. 이리하여 마침내 최종으로 이 의지의 근본 소의(所依)를 찾아 무명(無明)에 도달한다.32)

32) 木村泰賢(1979)a, 211-212

욕망의 이중기원을 말하는 기무라지만 굳이 말하자면 그는‘무명(無明, avijja)’에 더 주목한다. 그는 12지연기론의 기본적 발상이 불교의 독자의 것이 아님을 언급하는데, 리그베다(Rig Veda)나우파니샤드(Upanishads) 뿐만 아니라 상키아 학파나 자이나교, 니야야 학파에서도 생명 활동을 특정한 상황의 인과로 이해했다고 소개한다. 여기서도 주목해야 할 점은 기무라가 붓다 이전혹은 동시대의 저런 이론을 ‘의지주의’로 파악했다는 사실이다.

그가의지주의로 인도철학과 불교를 이해하려는 태도는 「주의론」에서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는 베다에서부터 우파니샤드, 상키아학파, 원시불교에 이르기까지 갈망, 애욕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심리학적 혹은 생물학적인 의지주의가 관철됨을 주장한다.

원시불교에서도 이런 의지주의의 출발로서 베다를 소개한다.

하나의 종자(種子, ābhu)가 열기(熱氣, tapas)의 힘으로 전개하여의욕(kāma)이 되고, 의욕으로부터 다시 전개하여 현식(現識, manas)이되고 여기서 우주가 성립한다.33)

33) 木村泰賢(1979)a, 194

기무라는 이상 베다 「무유가(無有歌, nāsadīya sūkta)」의내용을 “무명-행-식”의 계열과 유사하게 보았고, “사람은 의욕에의해 형성되고, 의욕에 따라 지향(kratu)이 있고, 지향에 따라 업이있고, 업에 따라 과(果, phala)가 있다.”라는 우파니샤드 내용을“무명-행-식(이하 포함)-노사”의 계열로 파악했다.

그에 따르면저들이 말하는 욕망과 지향은 주의론의 핵심이고, 이것을 통해서인간과 세계를 설명하려는 사상 경향이 바로 의지주의이다.

그렇다면 붓다의 12지연기론은 기존 주의론적 인간 이해와무엇이 다를까?

기무라는 두 가지 차이를 제시한다.

첫째, 기존연기관에 비해 12지연기론은 형식적으로 완성형이다.

둘째, 12지연기론은 심리적 조건 특히 인식론적 조건을 중시했다. 다시 말하면12지연기론은 “식과 명색의 관계로부터 시작하여 육입-촉-수-애취 등의 심리 활동이 일어나는 순서를 밝혀 이것을 세계에까지 결부시켰다.”34)

만약 인식론적 특징을 제외하면 12지연기는 “무명-행-유-생-노사”라는 주의론의 기본 골격만 남게 된다. 이것은단순하지만 오히려 명쾌한 진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저추가된 인식론적 조건을 붓다의 독창성이라고 주장한다.

기무라가 제시한 노사(老死)의 출발은 ‘무명과 행’의 관계가아니라 ‘식과 명색’의 관계이다.

무명과 행은 이 연기 관계에는 없다. 10지연기인 것이다. 이런 점을 보면 붓다 연기관은 10지연기론이아니었나 추측할 수도 있다. 그런데 기무라는 10지연기도 경전에등장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그것만이 붓다의원음이라는 주장에는 단호히 반대한다.

그는 ‘10지연기’와 ‘12지연기’ 둘 다 인정하자는 쪽이다.

붓다가 무명을 일체 유정의 근원이라고 간주한 것은 가장 오래된것으로 여겨지는 교설 중에도 있다. 마찬가지로 행을 유정의 근원적활동 요소라고 한 것도 또한 지금까지 이미 서술해 온 바로 다같이제일의적(第一義的) 입장에서 붓다 자신의 주장이었던 것은 의심할수없는 사실이다.35)

34) 木村泰賢(1979)a, 198.

35) 木村泰賢(1979)a, 202.

기무라가 이런 입장이지만 붓다가 10지연기를 말한 것을 나름이해하려 드는데, 그는 “붓다가 오로지 심·신 활동의 현실에 대해관찰했고, 그 현실 활동이 성립하는 형식적인 근본 조건을 밝히고자 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다시 말하면 붓다는 ‘무명과 행’이라는 어떻게 보면 현실 경험 이전 단계를 설정하지 않고 오로지현실의 몸과 마음이 활동하는 수준에서 삶의 관계를 해석하고자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10지연기를 설하는 붓다는 그러했다고주장한다. 특이하게도 기무라는 이런 방식은 인식론 상 완벽한 칸트의 입장이라고 파악한다.

기무라는 “붓다의 입장은 쇼펜하우어와비슷하게 식의 근저에 무명과 업의 의지가 있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결코 인식의 주체인 식만으로 일체를해결할 수 없다.”36)라고 단언한다.

기무라는 두 가지 학설을 모두인정하는 것같이 보이다가 결국 12지연기설을 지지한다. 사실기무라는 ‘무명과 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원시불교 해석에서보인 의지주의 입장은 ‘무명과 행’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무명이 기초가 되어 생명 활동이 있고, 생명 활동이 있는 곳에 반드시 심리 활동이 있다. 이는 앞에서 서술한 유정의 구성 요소가 지닌성질에 비추어 볼 때, 분명한 사실이다. 심리 활동은 무명이라는 근본의지(意志)가 그 살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 방향을 가리키는 빛으로 자기 안에 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37)

기무라는 원시불교에서 12지연기를 왕관(往觀), 환관(還觀), 분위(分位) 세 방면에서 이해했다.

이는 기무라가 기존 12지연기해석 일반과 자신의 해석을 함께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세 가지 이해 방식을 “첫째는 주로 현실 생활을 기초로한동시적 의존 관계 입장이고, 둘째는 생명 발동의 전진 경과를밝히는 방식이고, 셋째는 삼세에 걸친 윤회의 상황을 밝힌 것”이라고 정리했다.38)

원시불교 간행 이후 전개된 12지연기관 논쟁에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전통적 해석을 중시하는 측(赤沼智善)은이단적 해석이라고 평가했고, 문헌적 고증가 측(宇井伯壽)은 독단적 해석이라고 비난했다.”라고 자술한다.39)

36) 木村泰賢(1979)a, 204.

37) 木村泰賢(1979)a, 135.

38) 木村泰賢(1927), 2.

39) 木村泰賢(1927), 3.

기무라는 저들 가운데 아카누마 치젠(赤沼智善, 1884-1937)은 시간론적 해석으로 12지연기의 분위적 해석이라고 파악했고, 우이 하쿠주는 논리주의적해석으로 12지연기의 왕관적 해석이라고 파악했다.

저들에 상대하여자신은 생명론적 해석이라고 자평했다.

전통적으로 12연기 이해 중의 무명은 사제법에 대한 무지라고 하지만 기무라는 이런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는 무명은 지성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임을 지적하면서“우파니샤드 이래 그것의 배경 및 발전을 고려하면 불교에서말하는 무명은 사실 근본욕의 무의식적 당체, 즉 쇼펜하우어가말한 맹목적 의지에 해당한다.”40)라고 다소 과감하게 주장한다.

12 지연기의 왕관적 해석, 즉 순관적 해석은 노사의 관찰에서 시작해식까지 도달한다. 앞서 말했듯, 여기까지만 해도 우리가 경험하는현실 삶은 해석된다.

하지만 기무라는 “행과 무명”이 무궁한 생사의 이유와 생명의 본질임을 천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행(行)이란 드러난 입장으로 보면 신·구·의에 활동을일으키는 원동력이고, 감추어진 입장으로 보면 의지의 성격으로서업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마침내 최종으로 이 의지의 근본소의(所依)를 찾아 무명에 도달한다. 즉 우리는 근저에 무시이래 맹목적 의지가 있기 때문에 생명 활동이 있다는 사실에 귀결한 것이 연기(緣起)의 마지막이다.41)

‘연기의 마지막’이란 말은 연기의 결과라기보다는 왕관적 입장에서 연기의 출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연기의 최초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맹목적 의지이고, 근본 무명이다. 여기서 생명 활동이라는 연기가 출발하고 작동한다.

“12지연기는무명의 근본욕을 기초로 하여, 식과 명색의 인식 관계로부터 애를발생하기에 이르는 심리적 경과를 밝히고, 그럼으로써 욕의 창조적 결과로서의 유에 결부시키려고 한 고찰법이다.”42)

40) 木村泰賢, 釋依觀譯(2021), 354.

41) 木村泰賢(1979)a, 211-212.

42) 木村泰賢(1979)a, 213.

기무라는12 지연기를 생명 활동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단순히 번뇌 발생의사슬 정도로 취급하지는 않는다.

달리 말하면 ‘생명 활동’이라고 하면 번뇌에 휩싸인 가치나의미 부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번뇌하는 그 생명 활동을 안타까워 하지만 동정하고 존중하려는 경향이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그는 “연기의 주제는 사실은 유(존재)에 있다고 해야 한다.”라고말하고, “하나의 유가 끊임없이 그 자신을 변화시켜 가는 경과와원동력을 밝히려고 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평가한다.43)

43) 木村泰賢(1979)a, 213.

그의 이런언급은 의지주의가 단순히 저급한 욕망론이 아님을 주장하는대목이다. 그는 근본적 무명 혹은 맹목적 의지가 가진 부정적 뉘앙스를 거부하고 유정이 생명 전개 과정의 유일한 동력이라고 보았다.

Ⅳ. 절대법성과 ‘의지의 형이상학’

우리는 붓다가 14무기설을 통해 형이상학을 거부한 것으로알고 있다.

유명한 전유경(箭喩經)에 등장하는 붓다와 만동자가나눈 대화는 초기불교가 형이상학적 질문과 지향을 무용한 것으로 취급했음을 알려준다.44)

기무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붓다는 처음부터 브라만이라든가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가정하여 매달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생에 입각하였고”, “본체보다는 현상에, 존재보다는 생성에 중점을 둔 당시 학풍을 따랐다.”45)라고 평가한다.

44) 中阿含經(T1, 804b).

45) 木村泰賢(1979)a, 8

하지만 기무라는 붓다는 ‘사실 이해’에서멈추지 않았고 세간 현상을 관통하는 일관된 법칙을 발견하는데세계 이해의 목적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붓다가 이중적인태도를 보였다고 본 셈이다.

그런데 이는 붓다의 이중적인 태도라기보다는 기무라의 이중적인 태도로 봐야 한다. 원시불교에서도이중적인 태도가 자주 등장한다.

그는 초기불교가 ‘현실’에 집중한 종교라고 말하고 바로 이어서 ‘현실 너머’의 사실도 열심히 탐구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인생이라는 현상의 성립이라든가 활동을 관찰하는 목적은 결국 이를 통해 그 배후에 놓여 있는 보편 필연의 법칙, 굳이 말하자면 도(道) 또는 로고스(logos)를 발견해 내는 데 있었다.

나아가 이 점은 본체론(本體論)을 주된 관심사로 삼지 않은 원시불교에결국 형이상학적 색채를 부여했다는 것은 다툼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고, 후대 대승불교에서 보인 형이상학은 모두 이로부터 개발되었다.46)

‘현실 너머’ 존재를 다루는 학문이 형이상학이고, 이 학문의주제가 도(道)이고, 로고스이고, 본체이다.

기무라는 이 본체를 실체적인 사물이라기보다는 법칙에 가깝게 이해한다. 어떻게 보면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데, 무아설이나 무상설을 지지하면서 형이상학을 말하려면 실체가 아니라 법칙 즉 이법(理法)으로서 본체를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본체론이라고 해서 무아설과무상설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그는 이와 관련하여원시불전에 등장하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이란 말에 주목했다. 기무라가 보기에 여실지견의 다른 말이 반야(般若), 명(明) 등이고이 최고지로 파악하는 대상이 바로 진여(眞如), 불변성(不變性) 등법성(法性, dhammatā)이다.

이렇게 법성은 본질이나 이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불광대사전의 해설을 따르면, “여실의 여(如) 는 계합의 의미이고,여실의 실(實)은 진실의 의미이다. 실상그대로의 지견을 여실지견이라고 부르고,또한 진실한 도리에 계합하는 지견을 가리킨다.”47)

46) 木村泰賢(1979)a, 88.

47) 慈怡(1989), 2376.

다소 중국적인 해설이지만 ‘실상’이나‘진실도리’는 기무라가 말하는 이법, 진여, 법성 등에 부합한다. 이상 기무라의 언급을 보면, 그가 대승불교의 입장을 많이 반영하여원시불교를 해석함을 알 수 있다.

원시불교에서 기무라는 “불타의 이른바 공(空)이라는 것도결국 법성이 그 자신의 자리에서, 활동하지 않는 당체를 가리킨것이라고 적극적으로 전환해 생각해도 가능할 것이다.”48)라고 언급했다.

여기서 법성 혹은 당체는 형이상학적 실재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붓다가 인간 인식의 배후에 의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붓다의 그런 세계관을 ‘주의론적 세계관’이라고 명명했다.49)

그가 주목한 경문은 다음과 같다.

그때 저 천자(天子)는 붓다에게 게송으로 질문했다. “누가 세간을지배하고, 누가 세간을 견인하며, 어떤 일법(一法)이 세간을 통제하는가?” 붓다는 게송으로 대답했다. “마음이 세간을 지배하고, 마음이세간을 견인하며, 마음이 일법이 되어 세간을 통제한다.”50)

48) 木村泰賢(1979)a, 227.

49) 木村泰賢(1979)a, 223.

50) 雜阿含經(T2, 264a), “時彼天子說偈問佛, 誰持世間去, 誰拘牽世間, 何等爲一法 制御於世間, 爾時世尊說偈答言, 心持世間去, 心拘引世間, 其心爲一法 能制御世間.

이 구절에서 마음이 세계를 관장하는 일법(一法, ekadhamma) 으로 등장한다. 기무라는 마음을 정의적(情意的)인 것으로 간주하고 “세간은 욕망 혹은 의지라는 일법이 만들고 지배한다.”라고이해한다. 그런데 기무라처럼 마음을 간단히 욕망 혹은 의지로 규정할 수 있을까? 기무라는 그 근거를 밝힌다. 그가 보기에 “세간은욕망(taṇhā)에 이끌리고 욕망에 구속된다. 욕망이라는 일법이모든 것을 제어한다.”

기무라가 욕망이라고 번역한 어휘의 원어는칫타(citta)인데, 잡아함경 해당 구절에서는 심(心)으로 한역됐다.

그는 마음과 욕망을 호환시킨다. 그가 주장하고 싶은 점은당연히 세계 배후의 일법(일자)이 욕망이자 의지라는 사실이다. 그에 따르면 오온설에서 보듯,

불교가 물질과 정신으로 이원론적세계관을 제시한 것 같지만 실은 “세계는 의지를 1차적 원리로하고, 인식을 2차적 원리로 하여 우리 마음이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다.”51)

그는 형이상학적 일법을 상정하려 노력한다. 기무라는 「주의론」에서 “불교는 순수한 유의지론으로 지성의독립을 완전히 부정하고, 개인의 맹목적 의지를 중심으로 일체존재를 설명하고자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맹목적 충동이면에 “무궁한 생명의 암시가 잠재되어 있음”을 지적한다.52)

기무라는 이어서 동물로서 인간의 욕망이 어떤 기제로 작동하는지말한다.

“욕망을 표면적으로 살펴본다면 요컨대 개체 및 종족의보존과 지속 및 확대를 요구하는 본능이다.”

이 점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도킨스는 생명은 ‘종의 지속과 확대’라는지고지순한 목표를 실현하려는 본능이라고 했다.

이 본능으로 개체간 혹은 종 간 행사하는 폭력과 사랑을 설명한다.

기무라는 이본질적인 지점에서 생명의 본질을 말하고 또한 “생명의 무한, 즉항상과 보편의 자주를 구비한 절대적 생명”53)이라는 말로 오히려저런 욕망을 극복한 지점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이상(理想)이다.

기무라가 보기에 붓다는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그 이상의 심리적 근거 역시 욕망 즉, 무명 속에서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가 말하는 주의론은 욕망이라는 현실을 일차적으로 인정하고, 그것의 초월 또한 현실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현실과 이상은일종의 역접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현실과 역접한 이상의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 그는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는 다분히 대승적인 개념을 절대적 생명이라는 이상에 연결시킨다.

‘상락아정’은 잘 알려졌다시피 열반사덕(涅槃四德)이다. 승만경에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가 열반이고, 열반은 바로 여래법신이다.”54)라고 하고, “여래법신은 상(常) 바라밀, 락(樂) 바라밀, 아(我) 바라밀, 정(淨) 바라밀인데 부처의 법신을 이렇게 통찰하는 것을 정견이라고 이름한다.”55)라고 말한다.

51) 木村泰賢(1979)a, 223.

52) 木村泰賢, 釋依觀譯(2021), 340.

53) 木村泰賢(1979)a, 238.

54)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T12, 220c), “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 即是涅槃界, 涅槃界者即是如來法身.

55) 勝鬘師子吼一乘大方便方廣經(T12, 222a), “如來法身, 是常波羅蜜, 樂波羅蜜, 我波羅蜜, 淨波羅蜜, 於佛法身, 作是見者, 是名正見.”

또한 대반열반경에서는 “법계와 법성의 몸에는 상·락·아·정의법을 간직하니 이것을 대열반락이라고 이름한다.”56)라고 선언한다.

이는 제행무상·일체개고·제법무아·오탁악세라는 원시불교의인간 이해와 세계 이해를 초월하여 완전히 긍정할만한 세계와상태로 제시된 것이다. 그야말로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열반 사덕 가운데 앞선 세 가지는 각각 유욕, 애욕, 번영욕 등3종욕망에서 나왔고 마지막 정(淨)은 이들 욕망의 절대적 정화를가리킨다고 말한다. 사실 기무라의 논리를 쉽게 수긍할 수는 없다.

보통 사람이 눈앞 작은 욕망에 사로잡혔을 때 붓다는 무한히 커다란욕망 즉, 절대적 욕망으로 곧장 나아갔다. 훗날 대승에서 사람은 모두불성을 가졌다든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라든지 하는 등의 이야기가나오게 된 것도 실은 이런 이치를 갈파한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욕망의 표면에만 머무는 한 그것은 번뇌이지만 한 번 그 내면적인의의에 다다르면 마침내 그것은 불사무한을 구하는 보리심이 된다.57)

56) 大般涅槃經(T12, 548c), “法界法性身, 有常樂我淨之法, 是則名爲大涅槃樂.”

57) 木村泰賢(1979)a, 239.

상기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 기무라는 이중의 욕망을 말한다.

하나는 번뇌의 동력으로 일상의 욕망이고 또 하나는 그 욕망초월의 동력으로 ‘절대적 욕망’이다. 기무라가 초기 경전을 근거로해서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는 대승불교, 특히불성 사상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번뇌즉보리’, ‘일체중생실유불성’, ‘즉신성불’ 등은 “현실생활을 긍정하고그것을 바탕으로 이상경을 실현하고자 한 대승”의 사상이다.

물론그가 말하는 ‘번뇌즉보리’는 원래 중론의 논리를 이론 배경으로하지만 기무라는 중관의 논리에서 많이 벗어났다.

기무라는 “번뇌와 보리 두 쪽 다 공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라는말을 모순적 사실의 동일을 말하는 사례로 사용한다. 그는 ‘번뇌즉보리’를 ‘현실즉이상’ 정도로 파악한 듯하다.

기무라는 현실과 이상을 욕망이라는 하나의 층위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물론 그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는지 여기서 확정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의도는 비교적 분명하다.

우리는 동아시아불교의 중요 문헌이자 기무라에게도 영향을 끼쳤을 대승기신론 의 논의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 논의는 이른바 ‘일심이문(一心二門)’의 구조에 집중된다.

기신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심법, 즉 중생심에 의지하기에 두 가지 영역이 있게 된다. 무엇이둘인가? 하는 심진여문이고, 또 하나는 심생멸문이다. 이 두 가지영역은 모두 각각 일체법을 모두 포섭한다. 왜냐하면 이 두 영역은 서로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58)

기무라식(式)으로 말하면 기신론의 중생심은 일상의 욕망과절대적 욕망 둘 다 지녔다.

이때 중생심은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원시불교 제6장 ‘열반론’에서 ‘이상’이라는 표현보다 좀더적극적으로 본질 혹은 ‘본체 세계’란 표현을 쓴다. 그는 유여열반과 무여열반을 구분해서 설명하면서 “유여열반은 번뇌의 불길이꺼진 당체(當體)”라고 규정했다.59)

58) 大乘起信論(T32, 576a), “依一心法, 有二種門, 云何爲二? 一者心眞如門, 二者心生滅門.”

59) 木村泰賢(1979)a, 351.

여기서 ‘당체’라는 말은 사실그다지 분명한 표현은 아니다.

이 말은 ‘그 자체’ 정도의 의미이다. 기무라는 당체라는 말로 실체나 본질이란 표현을 피하면서 그것을 가리키고자 한다.

기무라는 “번뇌가 소멸한 당체에서 아직까지경험한 적이 없었던 어떤 적극적인 힘이 새롭게 발생할 것임”을말하고 이 적극적인 힘이 번뇌를 완전히 타파할 것임을 강조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이 ‘적극적 힘’이란 것이 열반처럼 수행의결과인지 아니면 열반을 획득할 수 있는 원인인지 질문하지 않을수 없다. 기무라는 당체 개념을 이중적으로 쓴다. 그는 무여열반은 “인연의 굴레를 벗어난 당체, 즉 무명이 멸하여 행이 멸하고, (중략) 생과 노사가 멸한 당체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한다.60)

그는 이렇게 무여열반을 실재론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처럼 무여열반의 경지는 천국(天國), 신(神), 브라만(梵), 자아(我) 등과 같은 일종의 체상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와 비존재를초월한 불가설·불가사의의 어떤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나위가 없다.61)

이는 중관학에서 말하는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중도관이 아니다.

오히려 비유비무, 즉 유무 초월의 실재를 상정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그는 무여열반을 “법성의 당체에 귀일한 경계로 이해하는것이 지당하다.”62)라고 주장한다.

60) 木村泰賢(1979)a, 354.

61) 木村泰賢(1979)a, 356.

62) 木村泰賢(1979)a, 358.

아울러 “움직이는 차원의 세계에서 연기의 법칙과 해탈의 법칙이 움직이지 않는 차원의 세계에의거한 당체와 합치되는 것으로 본다.”라고 말한다.

다소 난해한이야기인데, 그가 말하는 무여열반은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합치 혹은 생멸문과 진여문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신론에서 진여의 두 가지 속성으로 불변(不變)과 수연(隨緣)을 말하는데, 기무라도 절대법성을 말하고 그것을 의지와 대응시키면서 “의지성으로서 동적 작용력을 구비하는 것”으로 파악한다.

더욱이 필자가 말한 것처럼, 연기의 법도 해탈의 법도 그 본질을깊이 파헤쳐 보면 결국 의지 자체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이입장에서 무여열반이란 필경 절대 의지 그 자체의 당체를 향한 귀일(歸一)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절대적 법성이란 이 입장에서 의지적 존재 적어도 의지성(意志性)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63)

기무라는 쇼펜하우어가 의지를 물자체(物自體)로 파악한 것처럼, 의지 개념을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한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표상으로서 세계에서 “물자체로서의 의지는 그 의지의 현상과는전적으로 상이하고, 그 현상의 모든 형식에서 완전히 자유롭다.”64)라고 하면서 칸트식 언명을 활용한다. 기무라도 의지를 물자체로 사용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는 무명과 같은 생명 활동의 근거로서 의지를 말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법성으로서 절대적 의지내지 의지성(意志性)을 말한다. 이는 일종의 ‘의지 형이상학’(Metaphysics of the Will)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 기무라는 의지주의로 불교 전체에 연속성을 부여했고, 그래서“후일의 대승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무여열반의 절대법성관 또는 절대의지관으로부터 출발했으며, 그 법성을 활동하는 것으로 본 데에 대승의 특색이 있다.”65)라고언급한다. 기무라가 언급하지는 않지만 그가 활동한 일본 타이쇼 시대대표적인 철학자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는 1911년간행한 선(善)의 연구에서 “의지의 근원에 이성이 잠재하고있다.”라고 주장한다.66) 물론 그도 충동적 의지를 인정하는데 그것을 ‘선택적 의지’로 보고 그것을 오히려 ‘의지의 속박’이고 의지의자유 상실 상태로 파악한다.67)

63) 木村泰賢(1979)a, 358

64) Schopenhauer, 홍성광 역(2015), 204.

65) 木村泰賢(1979)a, 361.

66) 西田幾多郞, 서석연 역(2001), 33.

67) 西田幾多郞, 서석연 역(2001),

욕망으로서 의지와 이법으로서의지 둘 다 인정한 격이다. 니시다의 의지론과 쇼펜하우어나 기무라의 의지론은 물론 다르지만, 당시 일본에서 이 의지론이 중요한철학 사조이자 논의 주제였음을 알려준다.

또한, 의지 자체에서충동이나 욕망 극복의 동력이나 기제를 찾으려는 철학 시도가있었음도 뚜렷이 보여준다. 기무라는 원시불교를 마치면서 독일 쇼펜하우어협회 창설자이자 저명한 인도학자인 파울 도이센(Paul Jakob Deussen, 1845-1919)이 형이상학 원리(Die Elemente der Metaphysik) (1877)에서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형이상학적 경계에 대해서는 단순히 이것을 무욕, 의지의부정, 열반, 공 등의 부정적 표현을 통해서만 언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형이상학적 경계 그 자체는 오히려 특유한 적극성과 실유성을 지니며, 더욱이 이것에 비하면 이렇게 명백한 대우주도 오히려 꿈, 그림자, 호흡, 허무에 지나지 않는다.68)

기무라는 원시불교를 말할 때도 ‘진공묘유’라는 동아시아불교의개념을 동원한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이런 언설은 사실 기무라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주제였다. 위 도이센의 언급을 빌리면 진공의‘적극성과 실유성’이 묘유인 셈이다. 기무라는 “불교의 범신사상은일단 한 번 세계를 부정하고 다시 이것을 긍정함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회기점은 요컨대 절대공의 열반을법성의 입장에서 절대유로 전화시킨 데 있기 때문이다.”69)라고 지적한다.

68) 木村泰賢(1979)a, 359.

69) 木村泰賢(1979)a, 360.

기무라는 의지 혹은 욕망이 문제의 원인임을 인정하면서도결국 그것을 다시 자신의 극복 근거로 긍정한다.

Ⅴ. 맺음말

기무라는 1920년대 일본 불교학계를 대표하는 학자이다.

그는 메이지 일본 불교학의 세례를 받아 유럽 유학 이전 불교학연구역량을 구축했고, 연구 성과도 내놓았다.

물론 유럽 유학 이후그의 학문은 완성됐다고 할 수 있다.

기무라는 당시 많은 사람이 근대 문헌학을 학술 방법론으로 하여 실증주의 방법론으로 불교연구에 임한 것과 달리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전체 불교를 관통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의 주제는 의지주의였고, 이를 통해서 원시불교와 부파불교 그리고 대승불교를 단절이나 굴절이아니라 뚜렷한 연속으로 파악했다.

특히 동아시아불교의 몇몇 주제를 원시불교에서 그 연원을 찾아내려 노력했다.

의지주의를 말하는 기무라는 분명 쇼펜하우어의 영향을 받았다.

그는 무명을 ‘맹목적 의지’로 해석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하나의 충동이자 욕망으로 무명을 해석하지만 그렇다고 욕망을 해결 불가능한 문제꺼리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이 욕망의, 이의지의 이면에는 절대적 욕망 즉 절대적 의지가 빛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찍이 모순적인 두 성격이 순접이 아니라 역접(逆接) 하는 사례를 기신론에서 보았다.

심진여와 심생멸의 불이(不離)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기무라에게 유정은 번뇌의 주체일수도 있고, 깨달음의 주체일 수도 있다.

그의 유정론은 욕망에휩싸인 현실의 유정에서 오히려 욕망 초월의 근거 마련하고자 하는의도이다.

또한 그는 의지로서 번뇌의 유출뿐만 아니라 법성의 존재까지 설명하려 했기에 ‘의지의 형이상학’을 제기했다고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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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ory of Sentient Being (Sattva) and Voluntarismin Taiken Kimura's On Primitive Buddhist Thought (Genshi bukkyō shisōron)

Kim, Young Jin Dongguk Univ.

Taiken Kimura (木村泰賢) was a distinguished Buddhist scholar active during Japan's Taisho period. As a monk affiliated with the Japanese Soto Zen, he completed his education in the Department of Indian Philosophy at Tokyo Imperial University. Subsequently, he pursued further studies in Europe, including stints in England and Germany. During his European sojourn, he authored On Primitive Buddhist Thought (Genshi bukkyō shisōron), which was published in Japan in 1922. Within this publication, Kimura posited that both Primitive Buddhism and Mahayana Buddhism were underpinned by voluntarism. He underscored Mahayana Buddhism's continuity with Primitive Buddhism. Kimura extensively employed voluntarism to analyze the Twelvefold Dependent Origination in Primitive Buddhism. Notably, he associated the concept of “ignorance”(avijjā) within the Twelvefold Origination with “blind will”, a notion articulated by Schopenhauer. Central to Kimura's perspective was the belief that the essence of sentient beings lay in desire, constituting the driving force behind life's activities. He identified two desires within the Twelvefold Dependent Origination, “craving”(taṇhā) and “ignorance”(avijjā), understanding them as manifestations of will. According to his viewpoint, the life activities of sentient beings unfolded as expressions of desire or will.Nevertheless, Kimura contended that desire transcended its role as a mere producer of “defilements” (kilesa), extending into an absolute “actual reality”(dharmatā). He frequently associated the concept of “nibbana without residue”(anupdisesanibbana) or absolute “actual reality” with the will, sometimes identifying it as a material or metaphysical reality. His theoretical framework could be characterized as a form of Metaphysics of Will. Drawing from the apparent reality of sentient beings as driven by desires, Kimura aimed to elucidate not only the life activities of sentient beings amid suffering but also to expound upon the absolute world that transcends suffering.

Key words : Kimura Taiken(木村泰賢), On Primitive Buddhist Thought (Genshi bukkyō shisōron), theory of sentient being, “ignorance”(avijjā), voluntarism

투고일 2023. 12. 19 | 심사기간 2024. 01. 31 - 02. 15 | 게재확정 2024. 02. 17

佛敎硏究제6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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