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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맹자> 불인지심(不忍之心)의 감각적 한계에 대한 도덕 심리학적 접근/이서현.성균관

[한글요약]

맹자는 우물로 기어가는 아이를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 불쌍한 마음이 들 것이라는 비유를 통해 사람은 모두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을 가지고 있다고 논증했다. 그러나 소를 양으로 바꾼 제선왕의 일화를 보면 차마 하지 못하는 이 마음이 직접 눈 으로 보거나 보지 못하는 상황에 따라 발현할 수도 있고 발현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는 감각적 한계가 있다는 점 에 주목하고 이를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해석해보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의 도덕성에는 시각적·물리적 한계, 식별 가능한 피해자 효과와 같은 한계가 존재함을 논 증하고, 이러한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았다. 따라서 도덕심 리학자인 조슈아 그린의 해법과 맹자의 철학을 통해 사람이 타고난 도덕성의 한계를 넘어 더 나은 도덕적 판단과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밝혀보고자 하였다.

주제어: 맹자, 불인지심(不忍之心), 도덕심리학, 감각적 한계, 이중과정모형, 도덕적 확장

1. 문제 제기

먼저 지금 내 눈앞에서 아이가 위험한 차도로 기어가고 있는 것을 바로 앞 에서 보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마도 깜짝 놀라서 나는 당장 손을 뻗어 (나 의 위험은 우선 접어두더라도) 아이를 구하고자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가정 을 조금만 더 비틀어보자. 사고 싶은 물건을 사고 있는데 우연히 지금 지구의 어느 지역에서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의 영상을 보았다고 해보자. 이 때 나는 사고자 하는 물건을 사지 않고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지금 당장 성 금을 낼 수 있을까? 현재 내가 보고 있는 대상은 지금 당장 위험에 빠진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지만, 두 상황에서 과연 내가 느끼는 측은지심의 정도나 위급성의 문제까지 같을 수 있을까? 지금부터 2300여년 전, 맹자는 사람은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라는 상황을 예로 들어 사람은 모두 이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차마 하지 못하는 마 음’이 있다1)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차원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의문이 바로 여기에 있다. 맹자가 말하는 불인지심은 도덕적 상황2)에서 늘 똑같이 발현하는가? 그리 고 비슷한 도덕적 상황임에도 도덕주체가 느끼는 불인지심의 발현 정도가 같 지 않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 연구는 맹자의 불인지심의 감각적 한계3)에 주목하여 이를 도덕심리학4)적 관점으로 접근하여 진화론적 관점을 통해 감각적 한계를 밝혀보고 나아가 감각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1) 孟子 「公孫丑」上6: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 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2) “맹자는 인간은 누구나 남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인 도덕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의 ‘성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있다. 맹자에 의하면, 우리들이 구체적인 도덕적 상황(moral situation)에 직면하는 경우에 누구나 마음속에 있는 네 가지 도덕적 인 마음(四端之心)이 발동하여 도덕적인 행위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유희성, 「맹자의 도 덕창조론」, 양명학 제19호, 한국양명학회 2007, 3쪽.

3) 논문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께서 “감각적 한계가 왜 문제 상황인가?”라는 질문을 해주 셨다. 본고에서 필자는 맹자의 “不仁之心”에 주목을 했고, 이 마음은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진화론적’으로 설명가능한 도덕적 본성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 이 부분 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보고, 서론에서 이에 대해 수정·보완하였다.

4) 오늘날 도덕에 관한 연구는 뇌신경과학, 사회생물학, 도덕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영역에서 다루고 있으며, 이들 학문은 대개 진화적 측면에서 인류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도덕성을 내재화했다고 보고 있으며, ‘도덕성은 협력을 가능케 하기 위해 진화했다.’고 보고 있다.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3, 46쪽. 본고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진화론과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의 연구를 언급하되, 주된 논의는 조슈아 그린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므로 제목에는 ‘도덕심리학’으로 접근하였다고 썼다.

본 논문의 주 제에 따라 다음 두 가지의 질문이 가능할 수 있다. 첫째, 왜 도덕심리학적 접 근인가. 일찍이 김시천은 ‘철학적’ 해석보다는 생물학적, 진화론적 해석이 맹 자의 사상의 특성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5)고 주장한 바 있으며 필 자 역시 이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철학적’ 연구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인간의 본성이라는 차원에서 ‘도덕성’의 문제는 인간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6) 필자는 도덕이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의 문제라고 한다 면 ‘진화론’으로 접근할 때 가장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한다.7)

5) “서구 근대 형이상학과 인식론으로 접근하는 ‘철학적’ 해석에 비해 현대의 진화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이 제공하는 이론과 용어들로 맹자 사상을 해석할 때 맹자 사상이 갖는 특 징과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김시천, 「다윈이 맹자와 만났을 때: 고전적 유가 수양론의 진화론적 사유 구조」, 의철학연구 제4집, 한국의철학회, 2007, 71쪽.

6) “호모사피엔스는 초협력적인 영장류이자 어쩌면 유일하게 도덕적인 영장류일 것이기 때 문에 우리는 더 나아가 인간의 도덕이, 인간 개개인으로 하여금 특히 협력적인 사회적 배 치 상황에서 살아남고 번성할 수 있게 해주는, 인간 종에 특유한 일군의 핵심적인 근접기 제proximate mechsnism-인지·사회적 상호작용·자기규제의 심리적 과정-를 구성한다고 가정한다.” 마이클 토마셀로, 도덕의 기원, 유강은 옮김, 서울: 이데아, 2019, 16쪽.

7) 윌슨에 따르면 집단유전학 이론에 따르면 환경의 변화에 비해 유전자의 속도가 매우 느 렸으며, “원시 시대의 인간 본성을 근대 역사의 혼돈 속으로 밀어넣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인간의 행동을 평가할 때 행동 유전자를 고려하는 일은 현명한 선택처럼 보인다. 인간사회생물학의 주요 연구 전략은 가장 높은 진화적 적응도를 안겨주는 사회 행동이 무엇인지를 예측하기 위해 집단유전학과 생식생물학의 기본원리에서 연구를 시작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에드워드 O. 윌슨,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 스, 2005, 297쪽.

둘째, 왜 진화론적 해석인가? 오늘날 우리는 엄청난 정보와 기술의 발전 속 에서 서로 부딪히고 융합하며 새로운 기술과 문화가 탄생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학문 또한 통섭의 장에서 각각의 영역에서 축적된 학문적 성과를 통 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져 있다. 특히 도덕심리학은 진화론을 비롯하여 생물학, 뇌신경과학, 진화심리학 등 다양한 영역을 흡수하며 발 전하고 있다. 주희가 송대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이기론(理氣論)으로 유학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구축했던 것과 같이, 현재의 우리는 진화론과 생물학, 신경과학과 심리학과 같은 현대의 학문적 성과를 통해 도덕성과 같은 인간본성의 기원과 역사를 과학적 탐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8)

8)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에드워드, O 윌슨의 통섭이 번역된 이후, 동양철학계에서는 진화론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생물학과 관련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 적이 있으며, 지금 도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도덕교육학계에서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도덕성의 기원과 역사를 제대로 파악해야 도덕판단과 도덕행동과 같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덕 교육과 윤리 문화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애를 이야기하면서 외국인을 혐오하고,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인종을 차별하는 것은 현재도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도덕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러한 일을 막을 수는 없다.

호모 사피엔스 종은 다른 종 과 달리 도덕성이 있지만 왜 이 도덕성이 구별과 차별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어떻게 하면 타인들과 더 협력하고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본성에 관한 새로운 과학은 생물학적 정보가 풍부하고 현실적인 인본주의에 이르는 도구가 될 수” 있고, “그것은 신체적 외모나 지역 문화와 같은 피상적 차이 밑에 숨어있는 인류의 심리적 통일성을 밝혀준다.” 따라서 우리는 “도덕적 직관을 이용해 우리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사람들의 감정에 대해 이론적으로 이야기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감정에 근거하여 그들을 대하게 함으로써 자연스러운 인간관계를 약속할 수 있다.9)

9) 스티븐 핑커, 빈 서판, 김한영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20, 14쪽.

따라서 본 연구는 먼저 맹자 성선설의 근간인 ‘불인지심(不忍之心)’, 즉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살펴보고 이 마음이 감각적 한계가 있음을 밝히는 데서 시작한다. 이어서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우리의 도덕본성에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논증한 다음, 마지막으로 이러한 감각적 한계를 넘어 도덕의 확장 에 대하여 맹자와 그린의 입장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이처럼 필자는 성선의 근간이 되는 맹자의 불인지심에 대한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맹자 철학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2. 불인지심(不忍之心)의 감각적 한계

맹자는 고자(告子)와 함께 성(性)을 논하면서 고자가 사람의 성에는 선과 불선의 구분이 없다고 주장했을 때, 사람의 성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이 선하다10)고 주장하면서, 이것은 곧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고유한 특수성, 즉 ‘인간적’인 것이 존재하며 이 특성이 바로 인간의 윤리적 실천을 가능하게 한다고 보았다.11) 이에 대한 논증은 아래 인용문에서 더욱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중 략) 사람이 모두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지금 사람이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모두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을 가지니, 이는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친우들에게 명예를 구해서도 아니며, 잔인하다는 소문을 싫어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12)

인용문에서 서술한 것과 같이 만약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면, 누구나 깜짝 놀라고 측은한 마음을 가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 사례는 아마 맹자가 살았던 시기에도 그랬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반박하기 어려운 예증이라 할 수 있다.13)

그 리하여 첫째 아무런 계산 없이 나 아닌 다른 이의 안녕을 순수하게 즉각적으로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점에서 선한 마음이며, 둘째 실제로 이런 상황이라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이 수긍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이 마음은 사람의 보편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14)

10) 孟子, 「告子2: 告子曰, “性猶湍水也, 決諸東方則東流, 決諸西方則西流. 人性之無分於善不善也, 猶水之無分於東西也.” 孟子曰, “水信無分於東西, 無分於上下乎? 人性之善也, 猶水之就下也. 人無 有不善, 水無有不下. 今夫水, 搏而躍之, 可使過顙, 激而行之, 可使在山. 是豈水之性哉? 其勢則然 也. 人之可使爲不善, 其性亦猶是也.”

11) 임헌규, 「맹자·고자의 인성론 논쟁에 대한 재고찰」, 범한철학 제39집, 범한철학회, 2005, 125∼126쪽.

12) 孟子, 「公孫丑」6: 孟子曰, “人皆有不忍人之心. 先王有不忍人之心, 斯有不忍人之政矣. 以不忍人 之心, 行不忍人之政, 治天下可運於掌上. 所以謂人皆有不忍人之心者,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 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13) 이경무는 맹자의 성선설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시도로써 “(1) 가설 설정: 사람 이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2) 귀결 연역: 모든 사람은 (자기도 모 르게)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3) 귀결 검사: 어린 애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깜짝 놀라 측은해 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보고, 이는 “맹자의 성선설은 넓은 의미에서 사람에 관한 관찰을 통해 얻은 증거를 근거로 삼고 사람에 관한 원대한 가설을 확립하려는 시도”라고 보았다. 이경무, 「맹자 성선설의 논리적 정당화 가능성」, 철학논총 제87집, 새한철학회, 2017, 397쪽.

14) 사이코패스와 같이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경우는 다를 수 있다. 조너선 하이트는 사이코패스 를 정의하는 특징을 두 가지 들면서 “첫째로 사이코패스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고(이러한 충동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은 유년기부터 시작된다), 둘째로 이들에게는 도덕적 감정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이들은 동정심, 죄책감, 수치심을 느끼지 못 하며 심지어 당황하지도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사이코패스에게는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의 감정은 찾아볼 수 없다. 사이코패스들에게 세상 모든 것은 물건일 뿐이고, 그런 물 건 일부가 어쩌다 두 발이 달려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을 뿐이다. (중략) 추론 능력은 있는 데 거기에 도덕적 감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보았다. 조 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129∼131쪽.

때문에 사람의 성(性)이 선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게 된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맹자의 차마 하지 못하는 이 마음은 공감을 바탕을 둔 측은지심에서 비롯하며 이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도덕15)에 해당한다. 또한 이 마음은 어떤 다른 목적이나 의도 없이 광경을 보자마자 곧바로 떠오르는 마음이므로 직관16)적이다. 도덕적 직관은 뇌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보자마자 도덕적 정서가 자동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진화론적으로 사람들이 ‘생존’을 위 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뇌 에 새겨져 진화가 되었다고 본다.17) 또한 진화적으로 감정은 행동의 방향을 지시하도록 설정되어 있으며 특히 도덕감정은 직접 보고 듣는 감각과 연결되어 자동적으로 일어나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본다.18) 따라서 맹자의 ‘차마 하지 못 하는 마음’도 몸의 감각을 통해 의식하기도 전에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이 므로 본고에서는 맹자의 불인지심을 도덕적 직관으로 일컫고자 한다. 맹자는 불인지심에 대한 예증에 이어 이 마음에서 사람에게는 인의예지라는 사단(四 端)이 있음을 주장했고, 나아가 이 사단에서 비롯한 사심(四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는 주장을 통해 사람은 모두 사람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음을 논 증한다.19)

15) “공감의 도덕은 가장 기본적이다. 타인의 안녕에 대한 관심은 모든 도덕적인 것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공감하는 관심은 진화적으로 혈연선택을 기반으로 한 부모의 자녀 돌봄에서 나온 것으로 거의 확실하다. 공감의 표현은 비교적 직접적이다. 제 새끼나 다 른 새끼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결정하는 데서 일정한 인지적 복잡성이 존재하겠지만, 일 단 결정하고 나면 도움은 도움이다. 심각한 갈등이 존재한다면 문제는 그 도와주는 행 동을 유발하는 공감이, 관련된 이기적인 동기를 극복할 만큼 충분히 강하냐하는 점뿐이 다. 공감하는 관심으로 추동되는 도움의 행동은 무상으로 수행되는 이타적인 행동이며, 가장 순수한 형태에서는 의무감을 수반하지 않는다.” 마이클 토마셀로, 도덕의 기원, 유강은 옮김, 서울: 이데아, 2019, 14쪽.

16) “직관은 추론이나 분석 등과 같은 의식적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이나 상황을 직 접적이고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정신 또는 판단을 일컫는다.” 이정렬, 「도덕적 직관과 도 덕 교육」, 도덕윤리과교육 제56호,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회, 2017, 109쪽.

17) 스티븐 핑커는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라고 하며 도덕은 일종 의 ‘윤리 모듈’이라고 부른다.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김한영 옮김, 파주: 소소, 2007, 48쪽.

18)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3, 208∼212쪽.

19) 孟子 「公孫丑」上6: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仁也.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 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 者也. 凡有四端於我者, 知皆擴而充之矣, 若火之始然, 泉之始達. 苟能充之, 足以保四海, 苟不充之, 不足以事父母.”

그렇다면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와 비슷한 예를 한 번 들어보자.

1. 당신이 공원을 거닐고 있는데 한 어린아이가 연못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장면 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어렵지 않게 연못으로 뛰어들어 이 아이 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500달러 이상을 주고 새로 산 당신의 고급 양복이 엉망이 될 것이다. 당신의 양복을 지키기 위해 이 아이가 익사하게 놔둔다면, 그것은 과연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2. 당신이 500달러를 국제원조기구에 기부하면 한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데도 그 돈으로 양복을 구입하는 것은 어째서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만약 당신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이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먼 지역의 가난한 아이들을 구하는 것은 도덕적 선택 사 항인가?20)

1의 인용문은 맹자의 비유와 매우 비슷해 보인다. 바로 눈앞에 아이가 위험 에 처한 상황에서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혹은 다른 이유를 들어) 아이 를 구하지 않는다면 이는 도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살짝 달라 지는 문제는 바로 2의 인용문이다. 같은 아이인데도 눈앞에서 바로 위험에 처한 아이에 대한 동정심과는 다르게 나의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아이의 생명을 구하는 데는 이상하리만치 인색한 것은 물론, 의외로 이것은 도덕적으로도 가책을 별로 받지 않는다. 이는 다시말해 도덕적 직관은 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에서는 당장 발현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발현하지 않거나 혹은 그 정도가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주장 역시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이는 맹자 「양혜왕」 7장에서 맹자는 제선왕이 끌려가는 소가 벌벌 떨며 우는 것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던 일화를 통해 제선왕에게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음을 확인하는 내용21)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20)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7, 38 쪽.

21) 孟子 「梁惠王」上7: “臣聞之胡齕, 曰, 王坐於堂上, 有牽牛而過堂下者, 王見之, 曰, ‘牛何之?’ 對 曰, ‘將以釁鐘.’ 王曰, ‘舍之! 吾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 對曰, ‘然則廢釁鐘與?’ 曰, ‘何可廢也? 以羊易之!’ 不識有諸?”

백성들은 왕이 재물을 아꼈다고 이야기하지만 왕은 소가 불쌍해서 양으로 바꾸었을 뿐이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에 맹자는 왕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준다.

 

왕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재물을 아껴서 양으로 바꾸게 한 것은 아닌데도 당 연히 백성들은 내가 재물을 아꼈다고 하겠구나.” 맹자가 말했다. “나쁠 것이 없 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을 하는 방법이니, 소는 보았고 양은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자는 짐승이 살아있는 것을 보고 차마 그 죽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으면서 애처롭게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는 차마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하는 것입니다.”22)

22) 孟子 「梁惠王」上7: 王笑曰, “是誠何心哉? 我非愛其財而易之以羊也. 宜乎百姓之謂我愛也.” 曰, “無傷也, 是乃仁術也, 見牛未見羊也. 君子之於禽獸也, 見其生, 不忍見其死, 聞其聲, 不忍食其肉. 是以君子遠庖廚也.”

결과적으로 제선왕은 소는 직접 보았기 때문에 불쌍한 마음이 들어 살려주 었지만, 양은 아직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양을 소로 대신하게 한 것이다. 맹자는 이를 인(仁)을 하는 방법이라고 보았으며, 이때의 측은지심은 직접 보았는가 보지 못했는가의 문제에 따라 도덕적 감정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눈앞에 바로 보거나 들을 때는 바 로 솟구치던 불쌍한 감정이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는 바로 솟구치지도 않고 가책을 느끼는 것도 덜하다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은 직접 보거나 보지 못하 는 등의 감각에 얽매여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도덕적 직관이 성선의 증거라고 하지만 직접 보거나 보지 못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다면, 우리의 도덕적 직관에는 ‘감각적 한계’가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仁)을 하는 방법이 말 그대로 어떤 상황을 직접 보거나 듣지 않도록 피하 는 데 불과하다면, 여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본 장에서는 먼저 불인지심이 라는 맹자의 도덕적 직관의 감각적 한계를 살펴보는 데 있으므로, 이후 맹자 의 논의는 우선 4장으로 미루기로 한다. 이어지는 3장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도덕적 직관의 감각적 한계를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밝혀보고자 한다.

3. 도덕심리학적 접근

1) 도덕심리학의 이해

우리나라에서 도덕심리학에 대한 연구는 주로 도덕교육학계에서 많은 논의 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도덕판단에서 직관 및 신경과학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서구에서 도덕심리학23)은 인지혁명이라 할 수 있는 1960~70년대를 지나 1980년대 정서혁명이 일어나면서 사회 심리학, 신경과학, 진화론 등을 연결한 새로운 방법의 연구가 시작이 된다.

인지발달적 접근에서 볼 때 도덕판단은 전형적인 이성의 작동이지만 1990년대 를 지나면서 도덕판단에 대한 연구는 정서 작용에 주목하게 되는데, 특히 조너선 하이트24)와 조슈아 그린25)의 연구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26) 본고에서도 주로 다루게 될 두 연구자의 특징은 바로 사람의 사고를 정서와 이성의 판단으로 나누고 도덕판단에서 이를 판단의 이중과정 문제로 바라 보고 있다는 점이다.

도덕판단에 대하여 빠르고 직관적인 사고와 느리고 신중한 사고라는 두 가지 종류의 사고 구분은 고대부터 철학 및 심리학 저술에 널리 존재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전자에 해당하는 자동과정인 시스템 1의 작동 은 신속하고 자동적이며 제어하거나 수정하기 어려운 반면, 후자에 해당하는 추론과정인 시스템 2의 운영은 더 느리고 직렬적이며 의도적으로 제어되면 상대적으로 유연하고 잠재적으로 규칙지배적이라고 본다. 현대의 연구는 인간의 판단 및 의사결정 대부분이 단순히 의식적인 시스템 2의 추론 결과가 아니라 대체로 직관적이고 자동적인 시스템 1의 작용이며, 이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정신과정의 인식 없이 도출된 대응으로 이해가 된다.27) 먼저 하이트의 연구를 보면 직관과 이성의 작용을 코끼리와 기수로 비유28) 하면서 도덕판단과 추론에 대한 ‘사회적 직관주의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23) 도덕심리학의 연구는 도덕성의 인지발달적 접근을 제시한 피아제(1896∼198 )로부터 시작하여 콜버그(1927∼1987)와 길리건(1936∼)으로 이어진다.

24)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25)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26) 도덕심리학과 관련된 구체적인 연구 내용 및, 국내 연구의 동향은 본 논문을 참고하시 오. 박형빈,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직관과 정서」, 도덕윤리과교육 제72호, 한국 도덕윤리과교육학회, 2021, 31∼36쪽.

27) 박형빈,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직관과 정서」, 도덕윤리과교육 제72호, 한국도덕 윤리과교육학회, 2021, 37쪽.

28) “직관에서 늘 눈을 떼지 말라. 그리고 도덕적 추론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도 덕적 추론이란 대체로 그때그때 맞춰 만들어지는 사후 구성물로, 하나 이상의 전략적 목적을 염두에 두고 치밀하게 만들어진다. 둘로 나뉜 마음은 코끼리 위에 기수가 올라 탄 모습이고 기수의 역할은 코끼리의 시중을 드는 데 있다. 여기서 기수는 우리의 의식 적 추론능력, 즉 우리가 온전히 인식하는 가운데 일어나는 일련의 말과 이미지의 흐름 을 가리킨다. 코끼리는 나머지 99퍼센트의 정신 과정을 가리키는 말로서, 이 과정은 우 리의 인식 바깥에서 일어나지만 실질적으로는 우리의 행동 대부분을 지배한다.”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22쪽.

하이트는 “직관이 먼저”라고 주장하면서 이는 단순히 특정 행동이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는지 여부를 직감에 따라 판단함을 말하지만 강한 도덕적 직관이 있음에도 적절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도덕적 말막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고 본다. 그리하여 도덕적 신념과 동기는 진화가 인간의 마음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준비한 작은 직관에서 비롯하고, 도덕판단은 느리고 의식적인 도덕적 추론을 일으키는 신속하고 자동적인 직관의 산물이라는 주장을 통해 도덕 판단은 개인적인 인지 행위가 아닌 사회적 과정으로 이해하였다.29) 그리하여 그는 도덕성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 진화심리학, 사회심리학 연구에서 나타난 자동화 혁명의 도덕성 연구 흐름을 토대로 6가지 도덕 기반인 배려/피해, 공평성/부정, 충성심/배신, 권위/전복, 고귀함/추함30)에 집중하여 도덕판단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 도덕성에 대하여 핵심적인 네 가지 주장을 내놓게 된다.

첫째, 도덕적 마음은 초안이 있는 것이므로 빈 서판 이 아니라는 점,

둘째 도덕적 사고의 초안은 문화 내에서 발전하는 동안 편집 되며,

셋째 직관이 우선하고,

넷째 도덕성에는 많은 심리적 기초가 있다31)는 내용이다.

이어서 조슈아 그린의 그의 저서 옳고 그름에서 인간 개개인의 도덕성의 문제와 함께 지역주의 도덕을 이야기한다.32)

각각의 다른 부족의 양치기들이 새 목초지에서 함께 양의 풀을 먹여야 하고 이들은 서로 다른 면도 있지만 핵심적인 가치도 공유하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의 도덕적인 기준이 있지만, 이들은 때로 격렬한 갈등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서로 싸우는 이유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도덕적인 사회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양립할 수 있는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각 부족은 서로 다른 도덕적 ‘상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는 것이다.33)

29) 박형빈,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직관과 정서」, 도덕윤리과교육 제72호, 한국도덕 윤리과교육학회, 2021, 46∼48쪽.

30)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238∼239쪽 도표 참고.

31) 박형빈, 「도덕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직관과 정서」, 도덕윤리과교육 제72호, 한국도덕 윤리과교육학회, 2021, 48쪽.

32) 조슈아 그린과 맹자의 인성론과 관련된 연구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였다. 채석용, 「그린 (J. Greene)의 이중과정모형에 의한 맹자 인성론 해석」, 문화와 융합 제40권, 한국문화 융합학회, 2018.

33)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11∼12쪽.

또 한 각기 다른 부족들 사이의 협력을 막는 심리적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로 나 뉜다. 첫째 집단 수준에서 작동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오래된 이기심인 ‘부족 주의’다. 둘째 집단들 사이에는 협력의 적절한 조건을 둘러싼 의견의 불일치, 즉 가치관의 차이가 존재한다. 이처럼 집단 간의 갈등은 자연스럽게 뒤섞여 있고, 그린은 이러한 현상을 ‘편향된 공정성’이라고 부른다.34)

조슈아 그린이 이 책에서 새 목초지의 우화를 인용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 는 도덕이 각각의 역사와 문화, 풍습 등에 따라 지역적으로 서로 다를 수 있다 는 점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배려 하는 도덕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이는 또한 지역에 따라 각각의 도덕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갈등하고 배척할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다. 인종, 특정 계층, 소수자, 성별,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 또한 그리고 그린은 도덕적 지역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이중과정모형’을 설정한다.35) 그린은 정서적 반응과 추론적 반응36)을 카메라의 자동설정과 수동설정에 비유하여 이중과정모형(dual-process model)으로 설명하면서, 자동설정은 매우 효율적이지만 융통성이 없지만 수동설정은 정반대다.

감정은 자동적인 과정으로써 행동의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한 장치이며, 감정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자동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추론은 수동설정 으로써 의사결정 규칙을 의식적으로 적용하는 행위를 포함하며, 추론을 바탕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왜 하는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추론 덕분에 현재 자극만으로 자동적으로 활성화되지 않는 가치들에도 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추론은 정서적 입력이 아주 간접적으로라도 있지 않으면 훌륭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수동설정에 해당하는 통제된 체계는 현재와 미래의 보상을 포함한 큰 그림을 살피는 반면, 자동설정에 의한 체계 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37)

34)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111∼112쪽.

35) “태초에, 원초적 형태의 수프가 있었다. 협력적인 분자들은 더 큰 분자들을 형성했으며, 그중 일부는 자신을 복제하고 보호막으로 자신을 감쌀 수 있었다. 협력적인 세포들은 합쳐져 복잡한 세포들을 형성했으며 이어서 협력적인 세포 덩어리들을 형성했다. 생명은 개체의 희생으로 집단의 성공을 얻는 마법의 구석을 거듭 발견함으로써 꿀벌부터 피그미침팬지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복잡하게 성장했다.

그러나 협력적 유기체들은 보편적 협력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협력은 경쟁의 무기로서, 다른 유기체들을 경쟁 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으로써 진화했다. 그러므로 최고 수준의 협력은 ‘그들’보다 ‘우리’를 편애하는 힘들의 반대에 직면하는 껄끄러운 것일 수밖에 없다.”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521쪽.

36) 그린은 기능적 자가공명영상을 활용하여 감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적은 비인신적 트롤리 딜레마와 감정을 유발하는 경향이 매우 큰 인식적 인도교 딜레마 상황에서 사람들의 뇌 영역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 실험을 했다. 이를 통해 신체적 위해를 가하지 않는 비인신적 딜레마 ‘인지적’ 반응(배외측 전전두 피질)이 일어났고, 신체적 위해를 직접 가하는 인신적 딜레마 상황에서는 ‘정서적’ 반응(복내측 전전두 피질)이 일어났음을 연구하였다. 채석용, 「그린(J. Greene)의 이중과정모형에 의한 맹자 인성론 해석」, 문화와 융합 제 40권, 한국문화융합학회, 2018, 548∼549쪽.

그린은 자동설정의 바탕이 되는 경험을 세 가지로 보고, 이를 유전자에 의한 형성, 그리고 문화적 학습, 마지막으로 개인적 경험들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통제된 인지 능력인 수동설정의 경우 자동설정을 사용해 풀 수 없는 문제 들을 풀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영리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첫째, 생물학적 조상들이나 주위의 사람들 또는 우리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적응적 본능을 획득해야 하고

둘째, 영리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수동설정의 능력이 필요하며

셋째, 사진 찍는 사람의 기술과 비슷한 고차 인지 기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도덕심리학은 인간의 도덕 본성과 도덕 판단에 연구하는 과정에서 오늘날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융합하여 다양한 시도가 이 루어지고 있다. 물론 소개한 두 연구자들의 연구에는 뚜렷한 한계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38) 그러나 필자가 앞서 말한 맹자 불인지심의 감각적 한계에 대한 답은 지금까지 살펴본 도덕심리학적 접근, 즉 도덕직관의 한계를 통해 해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2) 도덕심리학적 접근

류근성은 그의 논문에서 “첫째 (중략) 도덕감정은 진화생물학적으로 논증가능한 선험적 인간본성이며, 둘째 도덕의 기초는 경험에서 선험으로 전화한 도덕감정에 있고, 셋째 도덕수양의 핵심은 도덕감정의 보존과 확산, 즉 친민, 애 민, 애물이라는 동심원적 확장에 있음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도덕감정은 출발점일 뿐이므로 자연적 도덕감정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보완하는 방법론적 모색이 필요하다.”39)고 주장한 바 있다. 필자 또한 여기에 동의하며, 이를 도덕심리학이라는 방법을 통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맹자의 불인지심에 감각적 한계가 있다는 주장은 앞서 살펴보았으며, 이제 본 장에서는 도덕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이러한 한계의 이유를 밝혀보기로 한다.40)

37)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205∼217쪽.

38) 박형빈은 위의 논문에서 두 연구자들이 거의 항상 정서와 감정이 도덕판단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데 동의하지만 규범적 도덕 결론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보고 특히 하이트의 한계에 대하여 첫째 도덕논쟁의 실효성 논란, 둘째 도덕 모듈의 비인지주의적 편향, 셋째 도덕성이 합리적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는 가정의 허약성을 들었다. 박형빈, 「도덕 철학과 도덕심리학에서 직관과 정서」, 도덕윤리과교육 제72호, 한국도덕윤리과교육학 회, 2021, 50∼53쪽.

39) 맹자의 도덕성과 관련된 논의는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다. 특히 류근성, 류근성, 「맹자의 직관윤리학의 진화론적 이해」, 범한철학 제59집, 범한철학회, 2010, 51쪽.

40) “최근 규범 윤리학의 논의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간 존재와 인간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결정적인 방법이 되려면, 실제 세계에 대 한 체계적인 경험적 연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중략) 이러한 흐름 속에서 뇌 과학과 신경 과학의 발달은 ‘신경윤리(neuroethics)’라는 새로운 분야의 윤리학을 개척하는 바탕이 되었다. 신경윤리는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전통적인 윤리학과는 다른 방법을 통해 설명한다.” 김일수, 「이중과정이론과 도덕적 직관의 문제」, 윤리연구 제121호, 한국윤리학회, 2018, 229쪽.

맹자는 양혜왕에게 소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다고 보고 그 마음을 그대로 들어 백성들에게는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눈앞에 울며 가는 소를 보며 느꼈던 그 마음은 그 상황에 발현된 감정일 뿐이다. 그 마음을 들어 백성들에게 옮기는 것에는 의지와 행동 등이 강력하게 뒤따라야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상황에 의해 발현된 감정이 동기가 되고 의지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개인의 감정을 넘어선 사명감과 의무등 다양한 원동력이 필요할 것이다. 더구나 필자가 볼 때 우리가 가진 도덕적 직관은 그 자체로 강력한 행동의 원인이나 꿋꿋한 의지가 되기에는 그 자체만으로는 허약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직관 그 자체에는 뚜렷한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도덕심리학적 차원에서 볼 때 사람의 도덕성은 진화적으로 자동설정된 기능이며, 이것은 직관적으로 떠오른다는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지만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는 바로 시각과 같은 감각적 한계, 또는 물리적 거리 의 한계, 식별 가능한 피해자 효과41)와 같은 것들이다. 예컨대 시각과 같은 감 각적 한계가 바로 앞서 살펴본 맹자 불인지심의 경우와 같다. 눈앞에서 위험 에 처한 아이를 보는 것(혹은 사지로 끌려가며 우는 소를 눈 앞에서 보는 것) 과 보지 않는 것의 차이는 측은지심이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가에 중요한 상황적 원인이 된다. 불인지심은 직접 보고 듣는 순간 직관적으로 떠오르지만, 바로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곳에 사는 아이에게는 쉽게 떠오르는 감정이 아니다. 물리적 거리의 한계도 비슷해서 지금 내 앞에서 당장 벌어지는 상황과 물리적으로 거리가 아주 멀어서 지금 당장 당면한 상황이 아닌 경우라면 느껴 지는 감정의 크기가 같지 않을 것이다. 식별 가능한 피해자 효과42) 또한 마찬가지다.

41)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의 관찰에 따르면 사람들은 통계상의 불특정한 피해자들에 비해 구체적으로 식별 가능한 피해자들에게 더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393쪽.

42) “사람들은 하나의 개인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염려하기 더 쉽기 때문에 (이것을 식별 가능한 희생자 효과identifiable victim effect라고 한다) 외부자를 공평하게 대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 한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데 들어가는 부담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눈곱만큼도 하지 못한다. 이런 역학은 사회 간에, 그리고 사회 안의 다른 민족 간에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그것이 대인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다.” 마 크 모펫, 인간 무리, 김성훈 옮김, 파주: 김영사, 2020, 302쪽.

내가 알고 있는 사람, 혹은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름을 알고 개인화된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과 모르는 사람들의 무리를 바라볼 때의 감정이 같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단순히 아동 학대 피해아동의 수가 100명이라고 하면 단순히 개선해야겠다고 여기는 정도 이겠지만,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사연을 알고 이름을 알게 된다면 바로 그 아 이에게 측은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합리적으로 보면 소가 양보다 목숨 이 더 중하다거나 더 불쌍할 이유는 없다.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아이건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아이건 생명이 위급한 상황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도덕성은 분명한 감각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선험적 도덕성이라는 측면에서 필자는 위에서 소개한 류근성의 주장과 같이 맹자가 말한 불인지심 또한 진화생물학적으로 논증가능한 선험적 인간본 성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이 선한 마음을 진화론적으로 보면 ‘부족주의’와 같은 한계가 뚜렷하게 나타난다.43) 진화생물학적 차원에서 보면 인간 본성이란 문화의 진화를 한쪽으로 편향시켜 유전자와 문화를 연결해주는 정신 발달의 유전적 규칙성인 후성규칙44)일 뿐이다.

생물사회과학자들은 유전자·문화 공진화에서 인과적 사건들이 유전자, 세포, 조직, 뇌, 행동의 순서에 따라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뇌는 생물학적 질서 의 최고 단계들의 산물로서 개체의 해부학적 구조와 생리적 작용에 함축되어 있는 후성규칙들의 제약을 받고 있으며, 뇌는 환경 자극의 범람 속에서 작동 하는 가운데 보고 듣고 배우며 자신의 미래를 계획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진화 과정에서 수많은 뇌의 집합적 선택은 유전자와 후성규칙, 의사소통하는 마음과 문화 등의 진화적 운명을 결정하게 된다고 본다.45)

43) “종교적 배타성과 편협성은 부족주의(tribalism), 즉 자기 부족의 선천적 우월성과 특권적 지위에 대한 신념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에드워드 O. 윌슨,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9, 443쪽. 조슈아 그린 역시 “우리의 도덕적 뇌는 집단 내에서, 그중에서도 개인적인 인간관계 안에서의 협력을 위해서 진화”했을 뿐, “집단 사이의 협력을 위해서는 진화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 김, 서울: 시공사, 2018, 46쪽.

44) 에드워드 O. 윌슨,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9, 291쪽.

45) “뇌와 행동의 후성규칙들을 규정하는 유전자들은 거대 분자들의 단편일 뿐이다. 그것은 감정도 없고 신경 쓰는 일도 없고 물론 의도도 없다. 그저 고도로 구조화되 수정 세포 내에서 발생을 조절하는 화학 작용의 연쇄를 촉발시킬 뿐이다. 그것의 문서는 분자에서 세포 그리고 기관의 수준으로 확장된다. 연쇄적인 생화학 작용으로 이뤄진 발생의 초기 단계는 결국 감각계와 뇌가 자신을 조리하는 단계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그 후로 개체가 완성되어야만 정신 활동은 창발적 과정을 통해 출현하게 된다.” 에드워드 O. 윌슨, 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9, 292∼293쪽.

그렇다면 인간의 의지는 어디쯤 존재하는 것일까. 우리의 타고난 도덕적 직 관에 이렇게 확연한 한계가 존재한다면, 우리의 도덕적 의지나 우리의 선한 행동이란 다만 타고난 한계에서 그치고 마는 것일까?

4. 도덕직관의 한계를 넘어

도덕심리학자인 그린은 시스템 1인 도덕직관을 자동설정이라 보고 시스템 1인 합리적인 추론을 수동설정이라고 하여 이중설정모형을 고안하였다. 이를 통해 그린은 자동과 수동을 오가는 도덕원리를 실용적 공리주의에서 답을 찾 는다. 공리주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슬로건으로 소수의 행복에 무관심하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공리주의가 더 큰 행복의 노예가 되라고 요구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볼 때 공리주의는 도덕적으로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도덕적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의 극복을 위해 인간적으로 가능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요구한다고 보고 있다.46)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다른 도덕적 직관, 서로 다른 자동설정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모두 추론이라는 수동설정을 사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 아가 도덕적 지역주의를 넘어 새 목초지에서 함께 살기 위해서는 명시적이고 일관성 있는 도덕철학, 직감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방향을 제 시할 제2의 도덕적 나침반이 바로 공리주의라고 보았다.47) 그린은 또한 근본적으로 상이한 두 종류의 도덕적 문제들이 있다고 보았다. 첫 번째는 나 대 우리의 문제에서 우리의 도덕적 뇌는 감정으로 해결한다. 이 때는 나의 이익보다 우리의 이익을 앞세우도록 하며 혐오와 분노의 감정을 통 해 다른 이들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자동설정이 되어있다. 두 번째는 우리 대 그들에 관한 것으로 이것이 바로 도덕적 지역주의의 문제이다.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이 되는 이 문제는 서로 상이한 감정과 신념을 가지고 있어 함께 지 내기 어렵다. 이때 직관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수동설정으로 전환해야 한 다48)고 보는 것이다.

46)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427∼428쪽.

47)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436∼437쪽.

48)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서울: 시공사, 2018, 439∼446쪽.

그리하여 결국 수동설정 전환을 위해 편향된 직관을 버리면 공리주의에 가깝다고 그린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린은 이같은 이중과정모형을 실질적으로 잘 활용하기 위해 여섯 가지의 규칙을 제안한다.

1. 도덕적 논쟁에 직면하면 당신의 도덕적 본능을 참고는 하되, 신뢰는 하지 마 라.

2. 권리는 논쟁을 펼치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끝내기 위해 있는 것이다.(권리는 직관적 도덕을 합리화하는 도구일 뿐이다.)

3.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게 하라.

4. 편향된 공정성을 경계하라.

5. 공동 통화를 사용하라.(우리는 모두 행복하길 원한다. 우리는 모두 황금률과 그것의 바탕을 이루는 공평성의 이상을 이해하고 있다.)

6 주어라.

조슈아 그린, 옳고 그름, 최호영 옮김, 서울: 시공사, 2018, 525∼529쪽

이처럼 그린은 자동설정의 한계를 뚜렷이 파악하고 이를 넘어서는 방법으로써 수동설정이라는 이중설정모형을 통해 도덕직관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 였다. 하지만 그린의 주장대로라면 우리의 도덕판단은 카메라의 설정과 같이 상황에 따라 자동설정 아니면 수동설정이라는 두 설정 가운데 하나만을 사용 해야 한다. 하지만 자동설정이라는 도덕적 직관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큰 인 류애를 발휘하기 위해 합리와 실용에 초점이 있는 공리주의적 수동설정을 사 용했을 때, 자칫 우리의 도덕적 직관이 가진 ‘감정이라는 따뜻함’이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필자는 그린의 수동설정에도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따뜻함, 공감을 통해 나 아닌 타인을 이롭게 할 수 있는 마음이 가장 근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이트 또한 “도덕이나 정치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정말로 누구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다면, 나 자신의 눈으로는 물론 그 사람의 눈으로도 사물을 바라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깊이 있게, 직관적으로) 그 반응으로 어느새 나 자신의 마음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 다. 공감이야말로 서로가 바르다는 확신을 녹이는 해독제49)”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맹자의 도덕적 직관은 어떻게 감각적 한계를 넘어 그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50)

49) 조너선 하이트, 바른 마음, 왕수민 옮김, 서울: 웅진지식하우스, 2014, 109쪽.

50) 맹자의 철학에는 개인 도덕성의 감각적 한계뿐만 아니라 이민족이나 이단을 향한 뚜렷한 배타성도 엿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김상희는 “맹자의 철학은 정치론, 인성론, 사회경제론에 이르기까지 이단과의 차별성을 강하게 강조하였고, 공문 유학이 중앙집권적 통일국가의 지도원리에 합당한 사상이 되도록 힘을 기울였다. (중략) 맹자가 제시하는 인성론은 그 자체 절대적인 인간의 본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가 질서와 자율 개인의 문제를 놓고 고민한 결과물로써, 상대적인 인간본성론일 뿐”이라고 보았다. 김상희, 「 “동일성[同]”과 “배타적 차별성[不和]”의 문맥에서 본 맹자(孟子) 철학의 구조: 화이부동 (和而不同)의 연대를 향하여)」, 동양철학 제31집, 한국동양철학회, 2009, 127∼128쪽.

맹자는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보며 느꼈던 불인지심을 백성들로 옮길 수 있다고 보았다.

왕이 자기 마음속에 있는 이 따뜻한 도덕성 이 있음을 인지하고 이 마음을 들어 백성들에게 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겨서 남의 노인에게까지 미치고, 내 어린이를 어린이로 사랑해서 남의 어린이에게까지 미친다면 천하를 손바닥에 놓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과처에게 모범이 되어서 형제에 이르러 집과 나라 를 다스린다’ 하였으니,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가할 뿐임을 말한 것입니다. 그 러므로 은혜를 미루면 족히 사해를 보호할 수 있고 은혜를 미루지 못하면 처자 를 보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일반인보다 크게 뛰어난 까닭은 딴 것 이 없으니, 그 하는 바를 잘 미루었을 뿐입니다. 지금은 은혜가 족히 금수에게 까지 미쳤으되 공효가 백성들에게 이르지 않음은 유독 어째서입니까?51)

51) 孟子 「公孫丑」上7: “老吾老, 以及人之老, 幼吾幼, 以及人之幼. 天下可運於掌. 詩云, ‘刑于寡妻, 至于兄弟, 以御于家邦.’ 言擧斯心加諸彼而已. 故推恩足以保四海, 不推恩無以保妻子. 古之人所以大 過人者, 無他焉, 善推其所爲而已矣. 今恩足以及禽獸, 而功不至於百姓者, 獨何與?”

위의 인용문에서 맹자는 소를 보고 불쌍히 여겼던 그 측은지심을 미루고 넓혀 백성들에게까지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앞서 맹자는 우물로 들어 가는 아이의 비유를 통해 사람은 모두 측은지심이라는 도덕감정이 있음을 논 증하였다. 그리고 이제 사람은 이 마음이 있음을 인지하고 나아가 이 마음을 미루어 확장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내 노인을 섬기고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다른 노인과 다른 아이를 사랑하는 데까지 이 마 음을 미루어 넓힐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측은지심은 인(仁)52)이고 정(情)53)이 다.

52) 孟子, 「告子」上6: “惻隱之心, 仁也, 羞惡之心, 義也, 恭敬之心, 禮也, 是非之心, 智也. 仁義禮智, 非由外鑠我也, 我固有之也, 弗思耳矣.”

53) 김시천은 맹자의 도덕감정을 “정(情)의 인간학”이라고 보고 측은지심이라는 이 인간적인 정은 “누구나 갖고 있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이므로 자신의 본성으로 있음을 인지하고 사회와 정치 영역으로까지 이 마음을 근간으로 확충해나가야 본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필자 또한 동의한다. 김시천, 「다윈이 맹자와 만났을 때: 고전적 유가 수양론의 진화론적 사유 구조」, 의철학연구 제4집, 한국의철학회, 2007, 78∼82쪽.

그리고 고재석이 말한 것과 같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아 현현되는 맹 자의 성선은 사랑의 실천에 있어 친소(親疏)의 구분이나 존비(尊卑)의 차례를 두지 않을 수 없다”54)고 보면서도 이 사랑은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드러나는 순선한 도덕감정에 따라 선후본말을 구분하고 마주한 대상에게 진심을 다해 베푸는 방식을 제안55)하고 있는 것이다.

54) “혈연선택은 유전자가 그 자신을 운반하는 개체에 미치는 효과와 그 유전자로 인해 그 개체의 모든 유전적 친족에 미치는 효과를 더한 것에 기초하여 자연선택이 그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을 뜻한다. 혈연선택은 이타적 행동의 기원에서 특히 중요하다.” 에드워드 O. 윌슨, 통섭, 최재천·장대익 옮김, 서울: 사이언스북스, 2009, 298쪽.

55) 고재석, 「맹자 성선의 의미에 대한 연구: 본성현현과 본성실현의 특성 분석을 중심으로 」, 동양철학연구 제90집, 동양철학연구회, 2017, 47∼49쪽.

측은지심은 내 마음과 타인의 마음이 같음을 느끼는 공감능력이며(특히 아 픔이나 고통과 같이 생존과 관련된 강한 감정) 이 공감능력은 인간 종(種)을 초월하여 짐승과 식물 등 살아있는 모든 생물에게도 확장될 수 있는 마음이다. 물론 맹자의 이 ‘확장[推]56)’은 사람이 본래 가지고 인(仁)한 마음의 뿌리에서 발현하여 그 마음의 동심원을 넓혀 세상 전부도 안을 수 있는 마음이다.

56) “자아는 본래 타자와 하나인 일체적 자아와 천지만물과 크게 하나인 大體적 자아이다. (중략) ‘修己’는 나에게만 관심 갖고 수양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남이 포함된 나이 므로, 나 이외의 존재자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또한 ‘治人’도 남에게만 사 랑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이미 나와 분리되지 않는 남이므로, 서로 살리는 것[相 生]을 전제한다.” 고재석, 「맹자 성선의 의미에 대한 연구: 본성현현과 본성실현의 특성 분석을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제90집, 동양철학연구회, 2017, 47쪽.

따라서 맹자의 불인지심의 확장은 그린이 말한 것과 같은 이성적 추론보다는 인 (仁)한 마음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 마음의 작용이 다르다.

맹자의 확장은 이 마음을 들어 저기에 더하는 것, 즉 따뜻한 본성 그대로를 미루어 나아가는 것이다.

5. 결론

본 연구는 지금까지 맹자의 불인지심을 도덕적 직관이라고 보고, 여기에 감 각적 한계가 있음을 살펴본 다음, 도덕심리학으로 접근을 통해 이 한계가 진 화론적 뿌리가 있음을 확인해 보았으며 이를 토대로 우리의 도덕적 직관의 감 각적 한계를 넘어 도덕적 확장이 가능한 지점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본 연구는 맹자의 성선론을 전제로 두고 논의를 이어갔지만, 맹자의 성선설을 지지하지 않는 입장 또한 있을 것이다. 2005년 신문의 한 기사를 보 면 성선설(性善說)을 지지하는 응답 비율은 45.7퍼센트였지만, 선악이 모두 있 다는 응답이 30퍼센트를 넘었고,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응답도 20퍼센트 를 조금 넘었다고 한다.57) 하지만 1984년에 비해 성선설을 지지하는 응답이 14퍼센트 가량 감소했다고 하니,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21년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응답을 할지 문득 궁금해진다.58)

57) “‘태어날 때부터 인간은 선하다’는 성선설(性善說)을 지지하는 응답 비율도 45.7%로, 1984년 조사 결과(59.8%)에 비해 14.1% 포인트 감소했다. 나머지는 ‘태어날 때부터 선 과 악이 있다’(31.4%), ‘태어날 때부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20.8%) 등 순이었다.” 「 세계일보」 2005년 6월 8일 기사.

58) 실제로 필자는 2016년, 대학교 교양과목을 강의하면서 20대 남녀대학생 8 명을 대상으 로 직접 설문조사를 한 바 있다. 이때 성선설을 지지하는 학생은 16명(20%)이었고, 선악 이 모두 있다는 학생이 25명(31.25%)이었으며,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보는 학생이 39명(48.75%)이었다.

줄어들고 성무선악설을 지지하는 입장이 높아진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본성보다는 양육에 초점을 맞춘 20세기의 영향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인 듯하다.59)

59) 스티븐 핑커는 20세기의 인간의 본성을 빈 서판이라고 보고 ‘타고난 본성’ 보다는 ‘양육’ 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보았다. 하지만 21세기 이 후 진화론과 심리학, 뇌신경과학 등 다양한 과학적 사실들을 들어 우리의 ‘마음기계’는 오랫동안 진화되었고, 이 때문에 도덕적 직관을 포함한 다양한 직관들을 이미 본성적으 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스티븐 핑커, 빈 서판, 김한영 옮김, 서울: 사이 언스북스, 2020.

하지만 우리 에게 도덕적 직관과 같은 본성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향해 마음을 열 고 서로 도울 수 있겠는가. 모든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서로 싸우고 갈등한 다. 하지만 인간만이 생존을 넘어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고 때로 자신의 안 위와 관계없이 남을 돕는다. 인간에게 도덕적 본성이 있다고 말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성선이란 인간이 ‘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같다. 그리고 이 가능성은 그 자체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을 향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따뜻한 감정이라는 데 초점이 있다. 만약 이 감정이 없 다면 우리는 ‘관계’의 대부분 나와 너를 나누며 각자의 이익이나 몫을 따지고 계산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직업이나 지위, 나이, 성별, 인종 등의 차이가 있더라도 사람 대 사람으로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본고에서 맹자의 불인지심에 감각적 한계가 있다는 점에 초점 을 맞추다 보니, 이 한계를 넘어 ‘어떤 방식으로’ 확장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면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이는 후속 연구를 기약해보기로 한다.

참 고 문 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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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the Moral Psychological Approach for Sensory Limitations of the Burenzhixin 不忍之心 of Mencius

Lee, Suh Hyun (Sungkyunkwan Univ.)

Mencius argued that everyone has a Burenzhixin 不忍之心 (heart that cannot be overcome) through the metaphor that anyone would be surprised and feel pity when one sees a child crawling to a well. However, if you look at the anecdote of King Xuan of Qi 齊宣王, who changed a cow into a sheep, it could be regarded as this heart, which one cannot be overcome, may or may not be manifested depending on the situation one could or could not see with one’s own eyes. Therefore, in this paper, we tried to interpret this through a moral psychological approach, paying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ere is a sensory limitation to the morality of a man. Thus, we have argued that there are limitations in our morality, such as visual and physical limitations and the identifiable victim effect, and been in agony about ways to overcome these limitations. Therefore, with the solution of moral psychologist Joshua Green and Mencius’s philosophy, we tried to reveal a way to go beyond the limits of innate morality and move toward better moral judgment and behavior.

Keywords: Mencius, Heart that cannot be overcome, Moral Psychology, Sensory limitations, Dual process model, Moral expansion ▌

접수일: 2021.11.29, 심사일: 2021.11.29 - 12.23, 게재확정일: 2021.12.23.

인문예술학회 논문집 인문과 예술 제11호 2021. 12.

 

『맹자』 불인지심(不忍之心)의 감각적 한계에 대한 도덕 심리학적 접근.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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