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서론
2. 군의 정치개입(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3. 분석틀: 국내정치 안정성-군의 조직적 분열
4. 이집트와 이스라엘군의 정치개입 비교
가. 이집트: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직적 분열
나. 이스라엘: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적 통합
5. 결론
초 록
‘군의 정치개입(MIP)’에 대한 인식은 국가별로 매우 상이하다. 한국처럼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국가도 있지만 중동지역의 이집트와 이스라엘처럼 긍정적인 인식을 가진 국가도 있다.
다만, 두 국가의 차이점은 이집트의 경우 군의 정치개입이 극단적인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반해, 이스라엘의 경우 제도권 내에서 온건한 형 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본 연구 는 ‘국내정치 안정성(Internal Stability)-군의 조직적 분열(Divided Military)’ 분석틀을 사용하였다.
그 결과,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 직적 분열’의 이집트는 민간권력을 대체할 수 있는 기관으로 군이 신임을 얻고 정치에 개입하고 있지만 이원화된 군 운용으로 인해 급진적인 형태를 보였다.
이와는 반대로,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 적 통합’의 이스라엘은 지속적인 안보위협과 독특한 민군관계 형성 으로 평시 외교 안보정책 결정과정에서 군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직의 이해관계가 제도적으로 보장받는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급진적인 정치개입 행태를 보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성숙된 민군관계와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온건한 군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지고 있는 이스라엘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도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갖기 보다는 전문화된 군이 국가의 안보정책과 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도와 문화를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주제어 : 군의 정치개입, 민군관계, 국내안정성, 군의 분열, 이집트, 이스라엘
1. 서론
2017년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가 ‘위수령’과 ‘계엄령’ 선 포를 내부적으로 검토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대한민국 정치가 혼란에 휩싸였다. 해당 문건은 기무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 핵소추가 기각 또는 각하될 경우 발생하게 될 사회적 혼란과 최 악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작성한 것으로 관계 법령에 의해 작 성되었다고 주장하였으나, 해당 계획의 작성책임은 기무사가 아 닌 합동참모본부에 있다는 점에서 문제시 되었다.1) 여기에 더해 공개된 문건의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면서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에 대해 정치권의 의견은 양분되었는데 보수 진 영에서는 단순히 실무 차원에서 검토된 ‘계획’일 뿐이고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군이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부분 으로 보았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해당 문건이 ‘친위 쿠데타’ 를 모의한 것이라며 문건 작성자와 가담자에 대한 처벌과 기무 부대 개혁, 검찰 수사 등을 요구하였다.2) 결국 이 사건은 국방 개혁과 맞물려 기무사 개혁을 가속화시켰으며, 2018년 9월 1일 부로 기무사는 공식적으로 해편되었고 임무와 활동범위가 축소 된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창설되었다.3)
1) BBC 코리아, “기무사 계엄령: ‘기무사 계엄령’ 파문을 이해하는 4가지 질문,” https://www.bbc.com/korean/news-44803438 (검색일: 2021년 7월 25일).
2) 월간조선, “기무사 계엄령 검토 문건 작성 의혹,” http://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nNewsNumb=2018081 00013 (검색일: 2021년 7월 27일).
3) 연합뉴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닻 올렸다...기무사 시대 마감,” https://www.yna.co.kr/view/AKR20180831116851014 (검색일: 2021년 7월 27일).
해당 문건의 적법성과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고려는 차치하더라도 본 사건을 통해 다시 한번 분명히 드러난 점은 우리는 '군 의 정치개입(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이하 MIP)'에 대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는 장기간의 군사정권 경험과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 군이 저질렀던 과오, 문민통제에 기초한 민군관계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유독 군의 정치개입은 금기시되고 항상 정치적 중립을 요구받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 ‘터부(Taboo)’시 되면서 군 내부에서 정치를 논하는 것 자체가 매우 낯설고 어색한 일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그 어떤 민주국가보다 문민통제 에 대한 의식이 정치엘리트와 국민들 사이에 확고히 자리잡게 되었으며, 군 스스로도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국가들은 어떠한가? 실제로 다른 지역 국가들 에 대한 연구들에 따르면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매우 다른 국가들도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4)
4)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David J. Myers et al, “Support for Coups in Democratic Political Culture: A Venezuelan Exploration,” Comparative Politics, Vol. 30, No. 2(Jan., 1998); J. I. Elaigwu, “Military Intervention in Politics: An African Perspective,” Geneva-Africa, Vol. 19, No. 1(Jan., 1981); Majid Khadduri, “The Role of the Military in Middle East Politics,”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47, No. 2(Jun., 1953); Martin C. Needler, “Political Development and Military Intervention in Latin America,” The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Vol. 60, No. 3(Sep., 1966); Robert D. Putnam, “Toward Explaining Military Intervention in Latin American Politics,” World Politics, Vol. 20, No. 1(Oct., 1967); Robert H. Epperson, “Russian military intervention in politics 1991-96,” The Journal of Slavic Military Studies, Vol. 10, No. 3(Sep., 1997); Vincenzo Bove et al, “Beyond Coups: Terrorism and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Vol. 26, No. 1(Mar., 2020) 등을 참조.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는 군의 정치개입(쿠데타 포함)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나라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터키의 경우 3차례에 걸쳐 민주정부가 혼란에 빠졌을 때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였고, 사회를 안정시킨 이후 민주정부로 정권을 이양하면서 광범위한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또한, 베네수엘라의 경우 쿠데타와 군사 정권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쿠데타’는 지지하지만, ‘군사정권’은 지지하지 않는다고 한다. 베네수엘라인들은 ‘쿠데타’와 ‘민주주의’ 가 상호 모순되지 않는다고 인식하면서 쿠데타를 의원내각제 하 에서 의회에 대한 불신임 투표 정도로 인식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5) 본 글의 연구대상인 이집트와 이스라엘도 군의 정치개입이 일 상적인 나라들 가운데 하나다. 이집트는 2011년 민주화 시위를 통해 30년 동안 집권했던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을 권력에서 물러나게 하고 민주주의를 달성하였지만 2013년 군부 쿠데타가 발생해 다시 군부정권이 권력을 잡는 현상이 발생하였 다.6)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이행 이론에 따르면 민주화 ‘이행 (Initial Transition)’에 성공한 국가는 ‘공고화(Consolidation)’ 의 모습이 나타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공고화’ 대신 다시 군부정 권이 들어서는 역행이 발생했던 것이다. 심지어 민주적인 선거 를 통해 통치의 정당성을 얻고 집권하였던 무르시(Mohamed Morsi) 정부에 대한 군부 쿠데타를 시민들이 지지하는 매우 독 특한 현상도 나타났다.7)
5) David J. Myers and Robert E. O’Connor, “Support for Coups in Democratic Political Culture: A Venezuelan Exploration,” Comparative Politics, Vol. 30, No. 2(Jan., 1998) 참조.
6) Martin Beck, “The July 2013 Military Coup in Egypt: One normative clarification and some empirical issues,” News Analysis of SDU’s Resource Center on Middle East Studies (Jul., 2013), p. 2. 7) 김은비, “이집트군의 정치개입,” 『중동연구』 제37권 제1호(2018), pp. 59-61.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로 군의 정치개입에 있어 기존의 프레임 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국가이다. 일반적으로 민군관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일수록 군에 대한 문민통 제가 잘 이루어진다. 문민통제는 민간인과 군인 집단 간의 상대 적 권력 배분과 관련된 것으로 이 분야의 권위자인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에 따르면 군에 대한 문민통제 방식은 2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첫째, 주관적(Subjective) 통제로 이 는 민간권력의 극대화를 통해 군대를 정치에 완전히 예속시키는 것이다.
둘째, 객관적(Objective) 통제로 군 직업주의를 극대화 하면서 군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영역을 인정하고 정치적으로 중 립화시키는 것이다.
헌팅턴은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일수록 ‘객 관적 문민통제’가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스라엘은 중동 지역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서구식 민주주의가 정착했음에도 불구하고8) 군의 정치개입이 매우 일상적이다.
8) 전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여 지수로 나타낸 PolityⅣ Project에 따르 면 이스라엘은 1948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9점 이상을 기록하면서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민주주의가 발달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다. https://www.systemicpeace.org/polity/isr2.htm (검색일: 2021년 8월 16일).
다만, 두 국가 사이의 차이점은 이집트의 경우 ‘쿠데타’처럼 급진적인 형태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졌는데 반해, 이스라엘은 제 도권 내에서 외교 ‧ 안보 정책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온건한 형태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두 국가 사이에 군의 정 치개입이 서로 다른 행태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군의 정치개입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변수는 무엇인가? 본 글은 상기 연구질문을 중심으로 먼저 제2장에서 ‘군의 정치개입’ 개념과 기존연구에 대해 살펴본다. 제3장에서는 양 국가에서 군의 정치개입 모습이 서로 상이하게 나타나는 원인을 분석한 다. 물론 그러한 차이가 나타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변수가 영향을 미치겠지만 ‘국내정치 안정성(Internal Stability) - 군 의 조직적 분열(Divided Military)’ 분석틀을 중심으로 접근해 본다. 여기서 ‘국내정치 안정성’은 한 국가 내부의 정치 ‧ 경제 ‧ 사회적 혼란 정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안정성이 낮은 경우 집권 세력은 다른 권력집단이나 엘리트, 시민사회로부터 정권 유지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 ‘군의 조직적 분열’은 한 국가 내에서 군이 수직적 또는 수평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경우 를 의미한다.9)
9) 김인수 ‧ 이봉원, “이집트군의 분열 양상과 2010년 시민혁명,” 『국방정책연구』 제 27권 제1호(2011), p. 91.
수직적 분열은 이원화된 군을 운용하는 것이며, 수평적 분열은 군 내부에서 출신, 계층, 인종, 종교 등의 이유로 분열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특정 세력의 행위가 다른 세력의 급진적 대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제4장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례 비교를 통해 상기 두 변수가 ‘언제’ 그리고 ‘어떻게’ 군의 정치개입을 추동하고 개입형태에 영향을 미쳤는지 검증한다. 마지막으로 결론에서 본문의 내용을 요약 하고 본 연구가 가지는 함의와 한계를 도출하는 것으로 연구를 마무리한다.
2. 군의 정치개입(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민군관계’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있는 군의 정치개입은 일부 학자들이 학술적인 용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광범위하게 동의를 얻고 있는 명확한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군의 정치개입을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가 아닌 ‘Military Intervention in Politics’로 사용하거나 두 단어를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하지만, 뉘앙스에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으 로 보인다. 두 단어 모두 ‘군의 정치개입’으로 번역되지만 ‘Involvement’는 군이 정치의 영역에 ‘관여’하거나 ‘관련’되는 것 으로 정치엘리트와 국민들 사이의 합의와 필요에 의해 군이 자 발적 ‧ 비자발적으로 정치에 있어 일정한 역할을 하는 포괄적 의 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Intervention’은 ‘개입’ 또는 ‘간섭’의 의미로 조금 더 강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 강하다. 군이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거나 또는 제한적인 역할만 하다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으로 이해 된다.10) 여기에 더해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군의 정치개입’에 대 한 개념정의를 하고 있다. 많이 인용되는 정의 중 하나는 사무 엘 파이너(Samuel E. Finer)의 “군의 정치개입은 군대가 그들 의 정책과 인원을 민간 권력이 대체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 이다.11) 또 다른 연구에서 클로드 웰치(Claude E. Welch)는 “정책의 선언, 발전, 이행과 관련하여 군과 민간 사이에 존재하 는 지속적인 관계”로 정의한다.12) 최근에 진행된 빈센조 보베 (Vincenzo Bove)의 연구에서는 “군이 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 정치적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군 스스로 또는 정책 결정자가 승인하는 과정과 행동”으로 표현된다.13)
10) 본 글에서는 ‘쿠데타’부터 ‘정계 진출’까지 직 ‧ 간접적인 ‘군의 정치개입’을 광 범위하게 다루기 때문에 조금 더 포괄적인 의미의 ‘Involvement’를 사용한다.
11) Samuel E. Finer, The Man on Horseback: The Role of the Military in Politics (London: Pall Mall Press, 1962), p. 23.
12) Claude E. Welch, Civilian Control of the Military; Theory and Cases from Developing Countries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76), p. 3.
13) Vincenzo Bove et al, “Beyond Coups: Terrorism and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European Journal of International Relations, Vol. 26, No. 1(March, 2020), Online Appendix, p. 2.
이와 같은 정 의에서 공통되는 점을 추출해보면 “군이 민간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정책결정과 이행과정에 직 ‧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의 정치개입 수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가장 낮은 수준의 개입으로는 군인들이 군 개혁이나 국방예산과 관련한 일상적인 정치적 의사결정과정 에 참여하는 것이다. 조금 더 높은 수준의 개입은 군이 ‘상위 정치’의 영역에 개입하는 것인데 이는 외교정책에 대한 논쟁이라든 지 국가 형성과정에서 헌법 작성에 관여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14) 가장 극단적이고 급진적인 형태의 정치개입은 쿠데타를 통해 군사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다른 분류로는 ‘영향력 발 휘(Influence)’, ‘참여(Participation)’, ‘통제(Control)’ 3가지 유 형의 정치개입을 구분하는 연구가 있다. 군의 ‘영향력 발휘’는 합법적인 채널을 통한다는 점에서 은근한 압력이나 협박을 사용 하는 ‘참여’와 구분된다. 세 번째 유형은 ‘통제’로 이는 군이 직 ‧ 간접적으로 정부권력을 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15)
14) Vincenzo Bove et al(2020), Online Appendix, p. 2.
15) Claude E. Welch(1976), pp. 3-5.
마지막으로 사무엘 파이너(Samuel E. Finer)는 그의 저서에서 군의 정치개 입을 4가지 수준(level)로 구분하였는데 이를 정리하면 다음 표 와 같다.
<그림 1. 군의 정치개입 스펙트럼>
온건(Moderate) ↔ 급진(Radical)
영향 (Influence) - 압력 또는 협박 (Pressure or Blackmail) -축출 (Displacement) - 대체 (Supplantment)
먼저, 영향(influence)는 가장 온건한 형태의 정치개입으로 군부가 민간 권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민간 권력의 우위를 인정하면서 법적 ‧ 제도적으로 적합한 방식을 활 용한다. 군 역시 다른 행정부처와 마찬가지로 관료조직의 하나 로 기능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압력 또는 협박(pressure or blackmail)은 군이 민간 권력을 강압 또는 설득하기 위해 위협 이나 제재를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압력의 범위는 매우 폭넓은데 합법적/불법적 방식을 모두 포괄한다. 세 번째로 축출 (displacement)은 군이 현재의 내각이나 지도자를 제거하고 다 른 세력으로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 지배세력은 폭력이나 폭력의 위협을 통해 상대적으로 순응적인 민간 권력으 로 교체된다. 마지막으로 대체(supplantment)는 가장 급진적인 형태의 정치개입으로 민간 권력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군이 차 지하는 것이다. 군이 쿠데타를 통해 군사정권을 수립하는 가장 높은 수준의 개입형태인 것이다.16)
16) Samuel E. Finer(1962), pp. 86-87.
군의 정치개입을 구분하는 연구들과 달리 군이 정치에 개입하 는 경우 적절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연구들도 있 다. 이러한 연구들은 크게 2가지 견해로 구분되는데 그들의 상 반된 견해를 간략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긍정적인 견해 를 가진 입장에서는
첫째, 개발도상국가에서는 군이 가장 현대 적인 조직으로서 근대화 추진세력으로 역할이 가능하다.
둘째,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해 경제개발 및 사회개혁이 가능하다.
셋 째, 사익과 무관하게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집단으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부류는
첫째, 정치를 위해 전문화된 집단이 아니므로 기술적인 능력이 부족하다.
둘 째, 군의 지배에 대한 도덕적 명분과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셋째, 정치활동을 억압하고 언론 ‧ 출판 ‧ 보도의 자유를 제한하며, 헌법을 폐지하는 등 민주화에 부정적이다.
넷째, 기타 부정부패 조장, 정치참여와 토론문화 저하, 군 전투력 약화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17)
17) 조영갑, 『민군관계와 국가안보』 (서울: 북코리아, 2005) 참조. 18) Robert D. Putnam, “Toward Explaining Military Intervention in Latin American Politics,” World Politics, Vol. 20, No. 1(Oct., 1967), pp. 84-87.
그렇다면 군의 정치개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와 관련한 기존 연구들은 크게 4가지 카테고리로 변수를 구분 하고 있다. 먼저, 가장 일반적으로 사회 ‧ 경제적 저발전과 군의 정치개입 경향성에 대한 가설이다. 이는 사회적 동원능력(도시 화, 교육수준, 커뮤니케이션 등), 경제발전(특히, 산업화), 중산 층의 증가 등이 군의 정치개입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둘 째, 정치적 발전과 군의 정치개입을 연결시키는 연구들이 있다. 이들에 따르면 민간기관들에 대한 공공의 지지, 정치참여에 대 한 대중의 관심, 정당 ‧ 이익집단 ‧ 민간 정부기관의 효율성 등이 군의 정치개입에 핵심적인 변수이다. 셋째, 군 조직의 내부적 특 성이 군의 정치개입에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있다. 이는 군의 전문화 또는 정치개입의 습관화, 군 조직의 크기와 고도화를 핵 심변수로 상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외세의 영향을 주장하는 가설이 있다.18) 하지만 상기한 연구들은 군의 정치개입 실행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언제, 그리고 왜 군의 정치개입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답 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다. 본 논문의 목적인 ‘어떻게 군의 정치 개입 형태가 달라지는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공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언제’와 ‘어 떻게’에 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새로운 분석틀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 분석틀에 대한 설명은 다음 장에서 자세히 다룬다.
그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 많은 군 출신 인사들이 정치권에 진출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군의 정치개입’으로 포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러한 경 우 일반적으로 현역 신분이 아닌 민간인의 신분으로 영향력 발 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군의 정 치개입이 간접적인 방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큰 문 제는 없어 보인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이스라엘 군의 정 치개입에 있어 직접적인 방식보다 간접적인 방식이 더 큰 영향 력과 함의를 지닌다는 분석도 있다.19)
19) Ahn Sung-Hun, “A Study on the Influence and Implications of Israel’s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한국중동학회논총』 제35권 제2호(2014), pp. 21-22.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스 라엘의 간접적인 방식의 정치개입을 포함하여 분석한다.
3. 분석틀: 국내정치 안정성-군의 조직적 분열
‘군의 정치개입’과 관련한 기존 연구들은 거의 대부분 군이 정 치에 개입하게 되는 원인과 조건, 또는 군의 국내정치적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군의 정치개입이 왜 서로 다른 형태로 나 타나는가에 대한 연구는 학자들의 관심을 거의 받지 못하였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왜 군의 정치개입 은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는가?’ 라는 연구질문에 답하기 위해 ‘국내정치 안정성(Internal Stability)-군의 조직적 분열 (Divided Military)’ 분석틀을 사용하고자 한다. 먼저 ‘국내정치 안정성’은 “국가 내부의 정치 ‧ 경제 ‧ 사회적 혼란의 수준”을 나타내는 것으로 안정성이 높은 경우 사회통합과 국가의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지만, 낮은 경우 집권 하고 있는 세력은 다른 정치 엘리트나 권력집단, 시민사회로부 터 정권 유지에 대한 도전에 직면할 수 있고 정권 안보에 위협 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국내정치 안정성이 낮은 경우 군의 정치 개입을 추동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군의 역할은 외부위협에 대한 대응을 주임무로 하지만 내부의 혼란 상황에 직면하여 치안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 대부분의 국가는 군을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비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군의 조직적 분열’은 “한 국가 내에서 국방을 담당 하는 군이 수직적 ‧ 수평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경우를 의미”한 다. 수직적 분열의 경우 주로 중동국가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모 습으로 일부 국가들이 ‘이원화된 군(Dual Military)’을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각 국가마다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규군-보안군(이집트), 공화국군-혁명수비대(이란), 정규군-공화국수비대 (이라크), 정규군-국방군(사우디) 등이 대표적이다. 이원화된 군 을 운용하는 국가들은 일반적으로 그 역할을 구분하고 있는데 정규군은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응하는 임무를 맡는다. 일반적인 국가의 군대처럼 ‘국 가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정권의 친위대 성격이 강한 보안군20)은 ‘정권안보’를 담당하고 있는데 주로 왕정이나 권위주의 정권을 보호하고 내부 치안 및 질서유지를 주임무로 한다.
20) 앞서 설명했다시피 이원화된 군을 지칭하는 용어는 다양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이 집트를 사례로 다루고 있는 만큼 ‘보안군’ 용어를 사용한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와 다르게 중동지역의 권위주의 정권 에서 군을 이원화해서 운영하는 것은 여러 가지 반정부 ‘쿠데타 방지책(Coup-proofing)’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표 1. 군의 수직적-수평적 분열 양상21)>
수직적 분열 수평적 분열
이집트(2013년 쿠데타)/이란/이라크/사우디 등 이집트(1952년 쿠데타)/예멘 등
수평적 분열의 경우 단일한 군을 운용하고 있지만 내부에서 출신, 계층, 민족, 종교, 인종 등의 이유로 분열되고 통합되어 있지 않은 상황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1952년 쿠데타 당시 나 세르가 하급장교 위주의 ‘자유장교단((Free Officers)’을 조직하 여 별도의 세력을 구축한 것이나, 또는 예멘의 군대가 살레(Ali Abdullah Saleh) 대통령의 친 ‧ 인척으로 구성된 군 수뇌부와 일반 장교들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 대표적이다.22)
21) Insoo Kim, “Bringing the Military Back in Political Transition: Democratic Transition by and for Powerless Officers in South Korea,” Ph. D. Dissertation(University of Wisconsin, 2008), p. 18을 참고하여 저자가 재작성.
22) 김인수, “중동 독재국가 군부의 분열양상과 민주주의 혁명,” 『국제문제연구』 제14 권 제3호(2014), p. 95.
그렇다면 2가지 변수의 조합이 각각 어떠한 메커니즘을 통해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냈는가? 먼저, ‘국내정치 불안정’과 ‘군 이 조직적으로 분열’되어 있는 경우를 살펴보자. ‘국내정치 불안 정’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사회적 혼란에 직면한 국가의 경우 군을 최후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인식은 군 의 정치개입에 대한 필요성과 정당성을 각인시킨다. 특히, 국민 들이 군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러 한 경향성은 더욱 커지게 된다. 사회적 혼란 상황은 군의 신속 한 개입을 요구하게 되고 기존에 마련되어 있던 제도적 절차나 관행은 무시된다. 여기서 ‘군의 조직적 분열’은 군이 급진적인 선택을 하는데 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른 지휘관계와 임무, 조 직, 편성, 교리 등은 이원화된 군 사이에 동질성을 저해하고 이 질성을 점점 더 증가시킨다. 이러한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 직 간 경쟁심, 상호불신을 키우고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 군이 수직적/수평적으로 분열된 상태에서 특정 조직의 행동은 다른 조직의 불안을 불러일으켜 신속하고 급진적인 형태의 행동을 유 발하는 것이다. 군 조직 내부에서 일종의 ‘안보딜레마(security dilemma)’ 또는 ‘권력경쟁(power race)’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정치 안정’과 ‘군이 조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를 살펴보자. ‘국내정치 안정’을 유지하는 국가에서 정치 엘 리트들과 국민, 그리고 군의 관심은 외부 위협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국내 상황이 잘 통제가 되기 때문에 군을 동원하지 않고 서도 치안을 유지할 수 있으며 군이 정상적으로 정치에 관여할 수 있는 법적 절차나 제도적 보장은 제대로 작동한다. 특히, 군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있는 경우 군의 입장에서도 굳이 급진적인 방법을 통해 정치에 개입할 필요가 없는데, 군 조직의 이해관계가 일정 수준 이상 보장되고 시간적으로 조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군이 조직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경우 조직 간 경쟁이 불필요하고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 러한 메커니즘이 작동한 결과 ‘쿠데타’와 같은 급진적인 방식은 정당성을 잃게 되고 조금 더 적법한 절차와 간접적인 방식으로 군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진다. 이를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표 2. 분석틀: 국내정치 안정성 – 군의 조직적 분열>
국내정치 안정성(Internal Stability)
불안정(instability) 안정(stability)
군의 조직적 분열 (Divided Military)
예 (divided) Supplantment (이집트) Pressure (이란)
아니오 (integrated) Displacement (터키) Influence (이스라엘)
지금까지 ‘국내정치 안정성’-‘군의 조직적 분열’ 변수의 조합을 통해 군의 정치개입이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다음 단계로 이러한 과정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사 례를 통해 검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분석틀의 적절 성과 설명력을 검증하기 위해 다음 장에서 ‘국내정치 불안정-군 의 조직적 분열’ 사례로서 이집트와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적 통합’ 사례로서 이스라엘을 비교한다. 두 사례에 집중하는 것은 양 극단에 있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비교함으로써 각 국가에서 서로 다른 형태로 군의 정치개입이 나타나게 된 과정과 핵심변 수를 검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 연구의 목적과 지면 관계상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직적 통합’ 사례와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적 분열’ 사례는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는 존재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해당 사례에 대한 예측가능한 분석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직적 통합’의 경우 국내정치 불안정이 군의 정치개입을 추동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만, 군 조 직이 통합되어 있기 때문에 분열된 경우와 달리 조직간 경쟁은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직적 분열’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급진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 면,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적 분열’은 국내정치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군의 개입은 비교적 제도권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 다. 다만, 군 조직이 분열되어 있다는 점에서 군내 조직 간 비대 칭적 권력 분포가 존재할 것이다. 특히, 정권보위를 우선으로 하 는 조직이 국토방위를 맡은 조직보다 상대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러한 조직간 경쟁은 군의 정치개입을 비교적 급진 적인 형태로 나타나게 할 가능성이 높다.
4. 이집트와 이스라엘군의 정치개입 비교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중동지역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만 같 을 뿐 완전히 다른 역사와 인종, 종교, 문화, 정치, 경제체제를 가진 두 나라다. 심지어 두 국가는 1978년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전까지 서로를 자신의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로 인식 하였다. 먼저, 두 국가는 현대에 들어 국가건설(Nationbuilding) 과정에서 전혀 다른 역사를 경험하였다. 이집트의 경 우 1952년 공화국을 선포하는 과정에서 군부의 역할이 결정적이 었다. 당시 나세르를 중심으로 조직된 ‘자유장교단’은 쿠데타를 통해 파루크(Faruq)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집트공화국’을 선언하 였다.23)
23) 이집트의 이러한 경험은 군부와 쿠데타에 대한 인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무능한 정권과 부패한 권력 엘리트들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이집트 군부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뒤이어 발생한 1956년 수에즈 전쟁 에서의 승리는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데 기여하였다. 이후 이집트에서는 강력한 군사독재가 시행되고 나세르에 이어 사다트, 무바라크 등 군 출신 인사들이 연이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군은 이 과정에서 국가 운영의 핵심적인 기관으로 기능하였고 군인들은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등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 국가건설이 내부적 혁명보다는 외부로부터 - 특히, 영국 - ‘주어진(Given)’ 것에 가깝다. 물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공통의 기억을 유 지시킨 유대인 공동체와 시오니즘의 기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국제정세와 팔레스타인 지역의 환경을 고려했을 때 1917년 영국의 벨푸어 선언이 이스라엘 건국에 핵심적이었음 을 부인할 수는 없다. 상기한 국가건설 배경의 차이에 따라 두 국가에서는 완전히 다른 정치체제가 수립되었다.24) 이집트에서는 군부에 의한 권위 주의 정권이 수립되었고 역대 대통령들도 대부분이 군 출신 인 사들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봄(Arab Spring) 이후 민주적 선거 를 통해 집권한 무르시(Morsi)만이 유일하게 민간 출신 대통령 이었다. 일부 학자들은 이러한 이집트를 집정관 국가 (Praetorian State)로 칭하면서 “군이 정부와 정치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으며, 행정부를 지배할 가능성이 있는 국가”로 인식한 다.25) 반면, 이스라엘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정착 하였다. 물론 군인 출신 총리가 선출되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국 내정치는 다당체계와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성숙한 민주주의가 정착하였다.26)
24) 일부 연구에 의하면 정치체제 형태에 따라 군의 정치개입이 내부 불안정 패턴과 수준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Robert A. Hanneman et al, “Military Involvement and Political Instability: An Event History Analysis 1940-1980,” Journal of Political and Military Sociology, Vol. 18, No. 1(Summer, 1990), p. 17.
25) Derek Lutterbeck, “Arab Uprisings, Armed Forces, and Civil-Military Relations,” Armed Forces & Society, Vol. 39, No. 1(January, 2013), p. 30.
26) 윤용희, “이스라엘의 정당체계와 선거과정,” 『정치정보연구』 제3권 제1호(2000), p. 77.
해마다 각 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평가하는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2020년 ‘민주주의 지수 (Democracy Index)’ 자료에 따르면 이집트는 2.93점(권위주 의), 이스라엘은 7.84점(결함있는 민주주의)으로 큰 차이를 보인 다.27)
27)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Democracy Index 2020: In sickness and in health?,” The Economist (2020), pp. 9-12.
이러한 역사적 ‧ 정치적 배경의 차이는 양 국가에서 ‘군의 정 치개입’이 진행되는 방향성에 차이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의 경우 끊임없는 외부위협과 지속되는 저강도 분쟁(Low-intensity Conflict)이 국민들로 하여금 군이 정치에 개입하도록 ‘끌어당긴 (Pull)’ 측면이 있는 반면에, 이집트의 경우 국가건설 과정에서부터 군 스스로가 민족주의와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정치에 개입해 ‘들어간(Push)’ 측면이 강하다. 즉, 이스라엘군은 국민들의 필요 와 요구에 의해 정치에 관여하였으나, 이집트는 군의 조직적 이 해관계가 우선적으로 작동하여 정치에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가. 이집트: 국내정치 불안정-군의 조직적 분열 이집트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두 차례 군부에 의한 쿠 데타(1952년, 2013년)가 발생하였는데, 쿠데타가 발생했던 당시 이집트 사회를 돌아보면 내부적 불안정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 던 것으로 보인다. 두 시기 모두 집권세력의 실정, 부패, 전쟁,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는데, 정 부는 이를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채 혼란한 상황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먼저 1952년 쿠데타 이전의 이집트 사회를 살펴보자. 1922년 영국의 보호국 지위에서 벗어나 왕국 형태로 독립했던 이집트는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과 동시에 제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벌이게 된다. 하지만 이집트군은 신생 이스라엘군에 패배하였고 이러한 결과는 이집트 내부적으로 많은 반성과 의문을 불러 일 으켰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나세르 (Gamal Abdel Nasser)였는데 그는 군사력에서 우위에 있었던 이집트가 전쟁에서 패배한 이유는 ‘무능한 정치’ 때문이라고 생 각했다. 나세르는 영국에 의존적인 파루크(Faruq) 왕정과 기득 권에 연연하는 의회 때문에 이집트군이 무력했고, 정부기구가 부패했기 때문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28)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나세르는 그의 사관학교 동기들과 개혁 성향의 장교들 을 규합하여 쿠데타를 모의하게 된다. 당시 군은 수평적인 분열 상태에 있었다. 나세르를 필두로 하 급장교들이 주축이 된 자유장교단이 기존 군부세력에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세르는 영국의 지배와 봉건적인 귀족 주의에서 벗어나 민주적이고 현대적인 이집트를 만들고자 하였 다. 이러한 나세르에게 있어 당시 군 수뇌부와 고급 지휘관들은 영국군과 결탁하고 귀족정의 도구로 전락한 세력이었다.29) 그들 은 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단지 계급에 연연할 뿐이었 다.30)
28) Abdel Nasser, “The Egyptian Revolution,” Foreign Affairs, Vol. 33, No. 2(Jan., 1955), p. 203. 29) 나세르와 함께 자유장교단의 일원이었던 나기브 역시 이집트 주간지 Ruz al-Yusuf에 익명의 컬럼을 기고하면서 군 수뇌부의 부패와 무능을 고발하였다. Joel Gordon, Nasser’s Blessed Movement: Egypt’s Free Officers and the July Revolu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p. 50.
30) Peter Johnson, “Egypt Under Nasser,” MERIP Reports, No. 10(Jul., 1972), p. 3.
나세르의 이러한 인식은 1952년 쿠데타 직후 군 수뇌부에 대한 숙청으로 이어졌다. 이집트군의 수평적 분열이 급진적 정치개입을 불러일으키는 과정은 자유장교단이 쿠데타를 계획 및 진행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자유장교단의 정치적 행위는 최초 이집트의 자유화와 군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1952년 7월 16일 파루크 왕이 장교클럽(Officers Club) 해산을 명령하고 친왕정 성향의 고위장교를 등용하면서 쿠데타를 위한 움직임을 촉발하게 되었 다.31)
기존의 집권세력과 군 수뇌부에 대한 반감이 정치개입을 급진적인 방향으로 몰고 간 것이다. 2013년 쿠데타 당시 이집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민주화 시위를 통해 무바라크 정권을 무 너뜨린 이집트는 민주적 선거를 통해 무르시 정권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2년 뒤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였다. 이집트 국민들은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군부 쿠데타에 대해 저항하기는커녕 오히 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합법적인 정당성을 지닌 채 집권했던 무르시 정권이 기대와는 달리 국가를 안정시 키지 못했으며, 국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러 한 과정에서 이집트 국민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표방하는 무슬 림 형제단보다는 군을 더 신뢰하였으며,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지지하였다. 실제로 이집트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조사에 따르 면 군은 가장 신뢰받는 기관임과 동시에 국익을 위해 헌신하는 유일한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32)
31) Joel Gordon(1992), pp. 51-56.
32) Tewfik Aclimandos, “Egyptian Army: Defining a New Political and Societal Pact,” Aljazeera Centre for Studies(February, 2011); Derek Lutterbeck(2013), p. 36에서 재인용.
2013년 쿠데타에서도 이집트군은 분열되어 있었다. 당시 군은 수직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이는 1967년 제3차 아랍-이스라 엘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세르는 이집트가 전쟁에서 패배한 원인이 군의 정치개입으로 인해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보안군을 창설하여 군의 국 내질서 유지 임무를 맡기면서 이집트군은 이원화되었다. 이때부 터 정규군은 국방부의 통제를, 보안군은 내무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33) 그 결과 이집트 정규군의 정치적 영향력은 감소하였 으며, 두 조직은 경쟁하게 된다. 두 조직 사이의 갈등은 서로에 대한 인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이집트 정규군은 스스로를 보안군과 전혀 다 른 별개의 조직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보안군이 각 종 경제적 이권에 관여하면서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반정부 인 사들에 대한 고문, 여성시위대에 대한 성폭력 등 도덕적으로 부 패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보안군이 무바라크 개인의 군 대로 전락하면서 ‘국민의 군대’를 표방하는 정규군의 입장에서는 더욱 거리를 두게 되었다.34) 실제로 2011년 1월 이집트에서 발 생한 반정부 시위에서 보안군의 시위 진압을 지원하기 위해 투 입된 정규군이 보안군과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시위대에게 협력 한 일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두 조직 사이의 반목에서 비롯된 정규군의 보안군에 대한 쿠데타로 평가되기도 한다.35)
33) 김인수‧ 이봉원(2011), p. 91.
34) Paul Amar, “Why Mubarak is Out,” In Bassam Haddad et al, The Dawn of the Arab Uprisings; End of an Old Order (London: Pluto Press, 2012), pp. 84-85.
35) Paul Amar, “Why Mubarak is Out,” http://www.jadaliyya.com/pages/index/516/why-mubarak-is-out(검색일: 2014년 9월 6일); 김인수(2014), p. 97에서 재인용.
2013년 쿠데타를 통해 드러난 점은 쿠데타 방지책(Coupproofing)의 하나로 인식되어 온 군의 이원화 정책이 내부불안 정시 오히려 쿠데타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역설적인 모습이 나타 났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쿠데타 방지책에는 ① 군사 엘리트 와 지도자 사이의 민족, 종교, 개인적 유대를 통해 개인적 충성심을 높이는 방법 ② 무장집단의 조직을 나누어 정규군과 준군 사조직이 경쟁하게 만드는 방법 ③ 장교들의 보직을 자주 순환 하는 방법 ④ 장교집단에 경제적 이권을 주거나 기회를 제공함 으로써 군을 매수하는 방법 등이 포함되는데36) 이집트에서는 군 조직 사이의 갈등이 쿠데타를 촉발한 것이다.
36) Holger Albrecht, “Does Coup-Proofing Work? Political-Military Relations in Authoritarian Regimes amid the Arab Uprisings,” Mediterranean Politics, Vol. 20, No. 1(2015), p. 39; James T. Quinlivan, “Coup-Proofing: Its Practical and Consequences in the Middle East,” International Security, Vol. 24, No. 2(Fall, 1999), p. 135.
나. 이스라엘: 국내정치 안정-군의 조직적 통합
이에 반해, 이스라엘 사회는 이집트에 비해 상당히 안정적이 다. 종교적 신앙심에 기반한 국가건설, 성숙한 민주주의, 아픈 역사의 공유된 기억은 이스라엘 국민들을 통합시켰다. 거기에 더해 지속적인 외부위협과 또 다시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국민들을 더욱 결집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이스라엘 내부에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다수의 이민자들 이 공존하고 있으며 다양한 계층, 민족, 종교로 구성되어 있어 국가건설 당시부터 잠재적 사회분열의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 다.37) 더구나 같은 유대인이라고 하더라도 유럽 출신 (Ashkenazim)과 중동/아프리카 출신(Mizrahim) 간 분열은 이 스라엘 사회에 만연해 있다.38)
37) Martin Edelman, “A Portion of Animosity: The Politics of the Disestablishment of Religion in Israel,” Israel Studies, Vol. 5. No. 1(Spring, 2000), pp. 204-205.
38) 김은비, “이스라엘의 사회적 통합, 그 과제와 교훈,” 『중동문제연구』 제16권 제3 호(2017), p. 33.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갈등도 외 부의 안보위협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정부의 통제가 가능한 상황이며, 정권안보에 크게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정치적 안정은 군이 국내정치에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을 방지한다. 여기까지는 민주주의가 발달한 다른 서방국가와 유사한 흐름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특유의 외부적 위협과 지속 되는 저강도 분쟁(Low-intensity Conflict) 이스라엘군의 정치 개입에 ‘기회의 창’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국민들 스스로 군의 정 치개입을 요구하도록 만든다.39) 이는 이스라엘이 발전시켜 온 독특한 민군관계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지역 민군 관계를 연구한 캄라바(Mehran Kamrava)에 따르면 중동 국가 들 내에서도 국가 특성, 역사적 경험 등을 통해 서로 다른 민군 관계가 형성되었다. 특히, 이스라엘은 ‘군 민주주의(military democracy)’ 형태의 민군관계를 발전시켰는데, 이는 군의 정치 적 영향력에 관한 의문이 전혀 제기되지 않고 군이 가장 인기있 는 국가기관임과 동시에 군인들은 존경을 받는 특징을 지닌 다.40)
39) Ahn Sung-Hun(2014), pp. 12-14.
40) Mehran Kamrava, “Military Professionalization and Civil-Military Relations in the Middle East,” Political Science Quarterly, Vol. 115, No. 1(Spring, 2000), pp. 67-76.
따라서 평시부터 외교 ‧ 안보 정책결정과정에 군이 직 ‧ 간접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더구나 이스라엘군(IDF)은 내부적으로 상당히 통합되어 있다 고 평가받는다. 이집트처럼 수직적 ‧ 수평적 분열양상은 보이지 않으며 매우 응집력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좁은 영토와 적은 인구, 지속되는 인접 아랍국가들의 위협 등 이스라엘의 지정학 적 특성은 생존을 위해 강한 군대를 육성하게 했고 군의 결속과 전문직업주의가 발달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이 스라엘의 역사에서 군이 쿠데타를 계획하거나 시도했다는 사실 이 없다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군은 국가의 외교 ‧ 안보 정책결정과정에 직 ‧ 간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총참모장과 고위급 지휘관은 내각회의에 참여하면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41) 따라서 제도 권 내에서 군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질 뿐 이집트나 터키처럼 급 진적인 축출(Displacement)이나 대체(Supplantment)가 발생하 지 않는다. 이스라엘군의 이러한 특성은 국가건설 당시 권력기 관 사이의 관계가 명확하지 않았던 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 다. 이스라엘은 국가 건설 당시 종교정당의 반대로 권력기관 사 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헌법을 채택하지 못하였고 1964년에 이르 러서야 기본법(Basic Laws of Israel)을 제정해 안보정책 결정 기관들 사이의 관계를 명시하였다. 이러한 모호성은 정치-군사 영역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하였고 이스라엘 군대를 ‘민군관계’ 보다는 ‘파트너’의 관점에서 보도록 만들었다.42)
41) Mehran Kamrava(2000), p. 75.
42) Rebecca L. Schiff, The Military and Domestic Politics: A Concordance Theory of Civil-Military Relations (Oxford: Routledge, 2009), pp. 116-117.
이러한 독특한 관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군은 자연스럽게 민간권력의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 스며든 것으로 보인다.
5. 결론
지금까지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군의 정치개입이 서로 다른 수준과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집트에서는 가장 급진적인 형태로서 쿠데타를 통한 군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졌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에서는 온건하고 간접적인 방식으로 국가안보와 관련한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차이를 ‘국내정치 안정성’과 ‘군의 조직적 분열’이라는 변수를 통해 살펴 본 결과 두 변수는 군의 정치개입 형태에 영향을 미치는 의미있 는 변수들이었다. 본 연구를 통해 밝혀진 특징적인 부분은 같은 조건이라면 군 이 분열되어 있는 경우 정치개입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쿠데타가 민간으로부터 권 력을 탈취하여 군사정권을 세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쿠데타의 계획과 실행에 있어 군이 내부적으로 통합되어 있어야 될 것으 로 예상된다. 하지만 연구결과 정반대로 오히려 군이 분열되어 있어야 쿠데타가 촉진되는 현상이 발견되었다. 이 문제는 다음 과 같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첫째, 군의 정치개입에 대 한 견해가 군 내부에서도 상당히 엇갈린다는 점이다.
둘째, 군 전체가 아닌 일부 핵심적인 소수 전력만으로도 쿠데타의 계획과 실행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두 국가에서 군의 정치개입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공통 점도 발견된다.
첫째, 군의 정치개입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분명 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역사, 종교, 정치체제, 경제시스템, 교육 수준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 두 국가에서 군의 정 치개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만큼은 유일하게 동일한 모습을 보 였다. 물론 두 국가 국민들이 공통적으로 군의 정치개입을 지지 한다고 하더라도 그 배경은 사뭇 다르다. 이스라엘이 외부로부 터의 공격위협과 지속되는 저강도 분쟁으로 인하여 안보상 이유 로 국민들이 군의 정치개입을 지지하는데 반해, 이집트의 경우 집권세력의 무능과 부패, 실정 등으로 인하여 대안적 정치세력 으로서 군의 정치개입을 지지하는 성격이 강하다.
둘째, 양 국가 모두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영역에 있어서도 군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이집트의 경우 특히, 캠프데이비드 협정 이후 국방예산 감축에 따라 군은 자구책으로 경제활동에 깊게 관여하기 시작했다. 경제활동을 전담하는 별도 의 조직(NSPO)을 만들고 경제적 독립성이 인정되었으며, 경제 활동으로 벌어들인 자금은 국방부 자체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점들로 인해 이집트 경제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가 군대라 는 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43) 이스라엘군 역시 경제영역에서의 활동이 활발하다. 다만, 이집트와의 차이점은 이스라엘의 경우 주로 스타트업, 벤처기업 등 첨단기술산업과의 연계가 주를 이 룬다는 점이다.44) 결론적으로 권위주의-민주주의, 강대국-약소국 구분없이 거 의 모든 국가는 일정한 수준 이상 군의 정치개입을 허용하고 있 으며 각 국가는 서로 다른 저마다의 개입 기준선(Baseline)을 설정하고 있다.45)
민간권력도 일정한 기준선을 넘지 않는 수준 에서 군의 정치개입을 용인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실시된 한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기준선은 국가가 처한 상황과 여건에 맞 게 변화할 수 있으며, 특히 테러위협이나 공격 등 국가의 위기 상황에 직면한 국가에서는 군의 정치개입이 증가하는 모습을 보 였다. 군의 입장에서 테러리즘이 정치개입의 기준선을 낮추는 하나의 ‘기회의 창’으로 작동했음을 알 수 있다.46)
43) National Service Projects Organization(NSPO)은 정부 부처, 지방 정부 및 공 공 부문 기업을 위한 프로젝트를 연구하고 구현하기 위해 국방부 내 설립된 조직 으로 원래는 현역 감축에 따른 예비역 장교들을 흡수하기 위해 설립되었으나 이후 군의 경제활동에 주요한 행위자가 되었다. Robert Springborg et al, Routledge Handbook on Contemporary Egypt (Oxford: Routledge, 2021), p. 88.
44) Ori Swed et al, “Military Capital in the Israel Hi-tech Industry,” Armed Forces & Society, Vol. 41, No. 1(January, 2015), p. 123.
45) Vincenzo Bove et al(2020), Online Appendix, p. 2.
46) Vincenzo Bove et al(2020), p. 1.
물론 본 연구가 가지는 한계 또한 명확하다. 먼저 군이 이원화되어 있는 중동지역의 다른 국가들에서 쿠데타가 발생하지 않 은 사례를 설명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중동지역에는 쿠데타 방지책의 하나로 이원화된 군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 다. 하지만 모든 국가에서 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아니었으며, 이 러한 경우 본 연구에서 제시한 분석틀에 더해 다양한 분석수준 의 변수가 추가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군이 이원화되지 않은 다른 국가(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 발생한 쿠데타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결국 본 연구가 가지는 설명력은 다소 제한적이며 일반화시키기에는 추가적인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례를 통해 중동지역에서의 ‘군 의 정치개입’을 살펴보았다. 두 국가 사례의 비교는 우리의 역사 와도 많은 유사점을 보여주었다.
특히, 과거 우리가 경험했던 쿠 데타는 이집트의 그것과 매우 유사했으며, 성숙된 민군관계와 민주주의 시스템 속에서 온건한 군의 정치개입이 이루어지고 있 는 이스라엘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모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 서 우리도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갖기 보 다는 전문화된 군이 국가의 안보정책과 전략 수립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적절한 제도와 문화를 형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 하면서 글을 마무리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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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Comparison of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Focusing on the Cases of Egypt and Israel
Lee, Hanhyung
The awareness on MIP(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is quite different in every country. In some cases, like the Republic of Korea and other countries, MIP is considered very negatively while others, like Egypt and Israel in the Middle East, are viewed favorably. However, there is clear distinction between the cases of the Egypt and Israel. Although military involvement occurs in a moderate manner within Israel's formal political system, while it does so in a radical manner in Egypt. To explain these variations, this study used the ‘Internal Stability-Divided Military’ analysis framework. As a result, Egypt of 'internal instabilitydivided military' showed a radical manner due to dualized military, although the military gained credibility and intervened in politics as an institution that could replace civilian power. On the contrary, in Israel, which is an ‘internal stability-integrated military’, the military have influenced in the diplomatic and security policy-making process in peacetime due to constant security threats and unique civil-military relations. It suggests there was no need to radically intervene in politics in a circumstance where the organization's interests are institutionally safeguarded. In conclusion, Israel, which has a developed civil-military relations and a enhanced democratic government systems, is the example I believe we should follow. There, the military engages in very moderate manner political engagement. Therefore, rather than having a blanket rejection of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 we also propose that it is vital to create a suitable system and culture that would allow the professionalized military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national security strategy and policy.
www.dbpia.co.kr
Keywords : Military Involvement in Politics(MIP), Civil-Military Relations, Internal Stability, Divided Military, Egypt, Israe
원고투고일 : 2022. 7. 5, 심사수정일 : 2023. 1. 4, 게재확정일 : 2023.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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