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초록>
본고의 목적은 이광수의 소설 <꿈>(1947)과 두 편의 신상옥 영화 <꿈>(1955, 1967)
에 나타난 각색의 양상과 그 의미를 비교, 분석하는 데 있다. <꿈>은 신상옥의 초기
주요 작품이고, 그가 두 번이나 제작할 만큼 애착을 보인 작품이다. 그 원인은 무엇이
었으며, 또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점을 문화 연구적 맥락에서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이 논문의 의도이다.
이를 통해 본고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확인하였다. 신상옥이 최초에 이광수의 소
설 <꿈>을 영화화 하고자 의도했던 이유는 원작이 가진 박진감 있는 희곡적 구성, 불
교적 소재가 지닌 한국적(동양적) 정체성 때문이었다. 신상옥이 특히 한국적 정체성을
내포한 서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50년대 초반 일본 고유의 전통과 정체성을 담은
일본 영화가 국제영화제를 석권한 현상을 목도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도피와 추적의
플롯, 웨스턴 영화 스타일의 승마 추격 장면을 활용하여 영화에 서사적 박진감을 부여
하고, 특유의 입체감 있는 영상미를 가미하여 예술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1967작에서는 양상이 달라진다. 신상옥은 이 무렵 영화감독이자 거대영화기
업 신필름의 제작자이기도 했기에 영화의 흥행성과 더불어 해외시장 개척에 주력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영화 <꿈>의 재제작은 이러한 맥락에서 시도되었다. 때문에 그는 한
국영화의 첫 해외영화제 수상작 <시집가는 날>의 작가이자 한국 최고의 국제영화계
실력자인 오영진의 시나리오를 토대로 <꿈>의 두 번째 각색을 시도하였다. 국제영화
제의 수상과 해외시장 진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1967년 영화에서 이전에 비해 작품의 대중성을 보다 강화하는 각색을 시도하였
다. 여기에서 인물의 다양화를 시도한 것은 바람직한 것이었지만, 이광수 원작의 맥락
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대중적 흥미를 위해 일부 인물을 속물화한 것은 각색의 실패
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 신상옥, 이광수, 오영진, 각색, 도피와 추적의 플롯, 대중성.
1. 머리말
영화감독 신상옥의 필모그래피(filmography)를 훑어 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꿈>이다. 이 영화는 <악야>(1952),
<코리아>(1954)에 이은 신상옥의 세 번째 작품이면서 그의 생애에 두
차례 제작되었을 정도로 각별한 애착을 보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상옥은 이광수의 원작 소설 <꿈>(1947)을 토대로 1955년, 그리고 1967
년 두 차례에 걸쳐 동명영화 <꿈>을 제작하였다. 이 글은 신상옥 감독이
만든 두 편의 <꿈>에 나타난 각색의 양상을 비교, 분석하는 것을 일차적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더 나아가 신상옥이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만들
만큼 이광수의 소설 <꿈>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광수의
소설을 각색, 극화한 첫 번째 <꿈>과 이광수 원작을 오영진의 시나리오
각색을 거쳐 제작한 두 번째 <꿈>에서 각각 표현하고자 했던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을 밝히는 것이 이 논문의 주요
과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랫동안 필름이 전해지지 않았
던 1955년작 <꿈>이 최근에 발굴, 복원된 덕분에 비로소 영화 텍스트
간의 비교, 분석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1) 신상옥의 <꿈> 두 편을 비교,
분석하는 작업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며 연구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이는 영화의 관점에서 보면 영화작가 신상옥 작품세계의
변화양상을 읽어내는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며, 문학과 문화연구의
관점에서 보면 이광수의 원작 소설에 대한 매체 전환과정에 나타난 텍스
트 해석의 차이, 각색의 전개양상을 살펴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보다 더 흥미롭고 의미심장한 것은 신상옥의 영화에 기원이 되는 문학
작품들과 영화 텍스트와의 상관성을 파헤침으로써 신상옥 작품을 둘러
싼 문화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일이 될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 <꿈>이
영화화되기 위해 선택된 이유는 무엇인지, 소설 <꿈>은 신상옥의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오영진의 시나리오는 이광수의 소설과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등을 따져보는 것은 신상옥의 영화 <꿈>에 나타난
텍스트 의미의 두께를 확장시키는 데 매우 흥미로운 기여를 할 수 있으리
라 생각한다.
그동안 신상옥의 영화 <꿈>에 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2)
신상옥의 <꿈>은 이른바 사극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작품이다. 신상옥은
특히 사극 장르에 많은 관심을 일관성 있게 보여준 영화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데뷔 초기에 <꿈>(1955),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
등 일련의 사극영화를 잇달아 제작하면서 사극 장르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춘향>(1961), <연산
군>(1961), <폭군 연산>(1962), <이조잔영>(1967), <내시>(1968), <이조
1)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은 개인 소장가가 보관하던 신상옥의 1955년작 <꿈>의 16미리
필름을 구입하여 디지털로 복원하였으며, 이를 2010년 5~6월에 상암동 시네마테크
KOFA에서 상영하였다. (「故 신상옥의 ‘꿈’ 55년만의 복원」, 동아일보, 2010.5.18.)
2) 영화 <꿈>에 관한 개별적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신상옥의 사극영화를 다룬
논문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박아나의 「1952년에서 1975년까
지의 신상옥의 영화제작과 장르(멜로드라마, 사극) 연구」(중앙대 석사논문, 2003)와
같은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인잔혹사>(1969) 등과 같은 주목할 만한 사극영화를 만들어 영화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3) <꿈>은 이광수의 소설을 영화화 했다는 점에서
문예영화의 계열로 분류될 수도 있는 작품이다. 동시에 <꿈>은 <젊은
그들>, <무영탑>과 더불어 신상옥 사극영화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
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광수의 소설 <꿈>이나 오영진의 시나리오 <꿈>에 관한 연구 또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관심이 매우 희소한 편이다. 본래 이광수
의 <꿈>이 삼국유사의 조신설화를 각색한 소설이므로 이 작품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설화의 소설화 양상에 치우쳐 있다.4) 또 조신설화 자체가
불교적 사상에서 유래하고 있으므로 <꿈>에 나타난 불교사상에 관한
연구, 그리고 ‘꿈’의 주제론적 연구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5)
이밖에 분량은 극히 적지만 <꿈>의 각색양상에 관한 연구도 있다.6) 이에
3) 신상옥의 사극영화에 대한 연구는 주로 1960년대에 제작된 작품, 특히 <성춘향>과
<연산군>, <폭군 연산> 연작 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에 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백문임, 「역사물과 공포영화」, 민족문학사연구 20호, 2002.
김호영, 「신상옥의 사극영화 연구 : 이미지 텍스트를 중심으로」, 정신문화연구,
2003년 겨울호.
안진수, 「역사의 부담과 작인성의 딜레마」, 대중서사연구제17호, 2007.
박유희, 「한국 사극영화 장르 관습의 형성에 관한 일고찰 : 신필름의 <연산군> 연작을
중심으로」, 문학과 영상, 2008년 여름호.
최영희, 「1960년대 ‘춘향’ 영화 연구」, 판소리연구 24집, 2007.
4) 진영환, 「춘원의 <꿈>과 <조신설화>와의 대비연구」, 대전개방대 논문집 3집, 1985.
안윤선, 「이광수의 <꿈> 연구」, 단국대 석사논문, 2001.
5) 송하춘, 「<꿈>의 주제사적 조명」,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김열규, 신동욱 편), 새문
사, 1994.
이재선, 한국문학의 주제론, 서강대출판부, 1989.
6) 한명환, 「각색영화와의 비교를 통해 본 소설의 의미 재고」, 현대문학이론연구 24호,
2005.
장주영, 「한국문학의 연쇄적 변용 연구」, 아주대학교 석사논문, 2007.
비해 오영진의 시나리오 <꿈>에 관한 개별 연구는 더 더욱 희소하다.
대체로 오영진의 작품론을 검토하면서 민속, 설화 소재 시나리오를 다룰
때 부분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7) 이렇
듯, 이광수, 오영진, 신상옥에게 있어서 <꿈>이라는 작품은 각자의 작품
세계 안에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맥락을 갖고 있으나 비중있게 다루어지
지 못했다. 그동안 유실되었던 신상옥의 1955년작 <꿈>이 최근에 발굴,
복원된 것은 이광수, 오영진, 신상옥에 이르는 <꿈>의 작품 계열이 갖는
문화사적 의미를 규명하는 데 매우 좋은 계기가 된다. 이를 통해 세 작가
가 이룩한 <꿈>의 각색 양상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2. 1955년작 <꿈> : 이광수의 소설과 신상옥의 영화
일제 말기에 도쿄미술학교를 다닌 미술학도였던 신상옥은 해방을 맞
아 고려영화사 미술부에 입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하게 된다. 고려영화
사에서 그는 당시 한국영화계 최고의 테크니션이라고 불리던 최인규 감
독 문하에 들어가 조감독으로 활동하게 된다. 1952년 <악야>를 발표함으
로써 그는 감독으로 데뷔하게 된다. <악야>는 잡지 백민의 33인 단편
특집의 하나로 게재된 김광주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것으로서 전후 한국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이었다.8) 현재 필름이 전하지 않는
7) 한옥근, 오영진 연구, 시인사, 1993.
정선주, 「오영진 시나리오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석사논문, 1996.
8) 황남은 <악야>를 신상옥의 첫 연출작으로 선정한 것은 자신이었다고 증언하였다.
(한국영상자료원 편, 한국영화를 말한다 : 1950년대 한국영화, 이채, 2004, 412쪽)
그러나 이와 달리 신상옥은 작품을 고르던 중 김광주의 소설 <악야>를 발견하고 영화
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회고하였으며, 작품 선정에 관해 황남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
다. (신상옥, 난, 영화였다, 랜덤하우스, 2007. 46쪽)
이 작품은 한 지식인과 양공주의 조우를 통해 전쟁기의 궁핍한 참상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볼 때, 전후의 암울한 현실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포착한 신상옥의 <지옥화>(1958)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품
경향은 신상옥이 영화스승 최인규로부터 받은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최인규의 <집 없는 천사>(1941), <자유만세>(1946)에 나타난 네오리얼
리즘적 스타일과 분위기가 초기 신상옥 영화 <악야>, <지옥화>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9)
그러나 이 시기에 네오리얼리즘보다 신상옥의 관심을 더 끌었던 것은
한국 고유의 문화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6.25 사변 후 최초의 35미리 영화’10)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
아>(1954)는 그러한 작업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한국의 문화정체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의도로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재와 명승지를 카메
라에 담아 다큐멘터리 영화 <코리아>를 제작하였다. 여기에 그는 처용의
노래, 무영탑에 얽힌 사연, 춘향전 등 극적 장면들을 삽입하여 극영화적
요소를 첨가시켰다.11) 한국의 모습을 담은 영상들을 한국적인 이야기로
재구성하기 위해 유치진과 전창근으로부터 자문을 구했고, 극영화적 장
면들을 첨가하기 위해 김동원, 이해랑 등 극단 신협 단원들의 도움을
받았다.12)
그 이듬해에 제작된 영화 <꿈>은 <코리아>의 연장선상에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 고유의 문화를 영상 서사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영화 <꿈>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꿈>은 신상옥이
9) 이상우, 「남북한 분단체제와 신상옥의 영화」, 한국어문학 제110집, 2010, 279
-280쪽.
10) 「35미리 국산영화 <코리아>」, 경향신문, 1954.4.25.
11) 신상옥, 난, 영화였다, 랜덤하우스, 2007. 52-53쪽.
12) 한국영상자료원 편, 앞의 책, 414쪽.
<꿈>의 각색과 그 의미 207
매우 사랑한 영화라고 전해진다. 신상옥은 <코리아>에 극단 신협의 연극
춘향전 장면을 삽입하면서 배우 최은희를 만나게 되었다. 최은희와 사랑
에 빠진 신상옥은 그녀에게 청혼하고 나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어릴 때 춘원의 <꿈>을 읽었는데, 그날 밤 머릿속으로 내내 영화를 찍었
소. 그때 내가 상상하던 여주인공이 바로 은희 씨의 모습 그대로요. 내가
<꿈>을 찍게 되면 달례 역을 맡아줘요.”13)
이와 같은 최은희의 회고를 통해, 신상옥이 춘원의 소설 <꿈>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오랫동안 소설 <꿈>의 영화화를 꿈꿔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춘원의 <꿈>을 어릴 때 읽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춘원의 중편소설 <꿈>이 간행된 것은 이광수가 해방 이
후 사릉에 칩거하던 때인 1947년이었으므로 신상옥이 최은희와 사랑에
빠진 1954년의 시점으로부터 불과 7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춘원의
<꿈>이 출간되었을 때 신상옥은 만21세의 청년이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이광수는 <꿈>이라는 제목으로 두 편의 소설을 썼다. 1939년 7월에
잡지 문장 임시증간호에 발표한 단편이 하나이고, 1947년에 사릉에
칩거하면서 쓴 중편이 다른 하나이다. 이 중에 신상옥이 읽었다는 <꿈>
은 달례가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1939년 단편소설과는 무관하며 1947년
중편소설 <꿈>이 분명하다. 오랫동안 소설 <꿈>의 영화화를 소망해왔다
는 진술이 사실이라면 신상옥은 1947년, 혹은 적어도 1940년대 말에 이
광수의 소설 <꿈>을 읽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의 데뷔작 <악야>가 1950
년 6.25 전쟁 발발 무렵에 기획, 제작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화 <꿈>은 그의 필모그래피 순서상 세 번째 작품이지만 사실상 그의
13) 최은희, 최은희의 고백, 랜덤하우스, 2007, 117쪽.
첫 번째 구상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꿈>은 순서
를 떠나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광수의 <꿈>을 영화화하고 싶은 욕망을 갖게 되
었을까. 그에 대해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지만, 먼저 이광수의 중편소설
<꿈>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중편소설 <꿈>은 해방 직후
친일인사로 몰려 지탄의 대상되던 시기에 춘원이 가족과 떨어져 경기도
남양주 사릉 근처에 칩거하면서 쓴 작품이다. 이광수는 사릉에서 자신
을 추종하는 문생(門生) 박정호, 그리고 1946년 봄에 구입한 자빠뿔소와
함께 기거하면서 농사를 짓고 글을 쓰며 살았다. 그것은 춘원에게 있어
서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속죄이자 참회의 삶이면서 동시에 불교 행자
다운 ‘수행’이기도 했을 것이다.14) 당시 면학서관에서 <꿈>이 출간되었
을 때, 많은 독자들은 이 소설이 춘원의 참회록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래
서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 대해 각별한 호기심을 품고 책을 사서 읽었
다고 한다.15)
주지하다시피, 중편소설 <꿈>은 삼국유사권3의 ‘낙산이대성 관음
정취 조신조’에 실린 조신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조신설화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① 명주에 있는 세규사의 장원 관리를 맡은 조신이 태수 김흔공의 딸을 흠모
하게 되어서 낙산사 관음보살에게 그녀와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빌었다.
② 그러던 사이에 이 여인에게 배필이 생겼다. 관음보살을 원망하던 조신은
불상 앞에서 잠시 잠이 들었다.
14)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3), 한길사, 1986. 1058-1066쪽.
15) 그러나 김동인은 <꿈>에서 참회록을 기대했던 당시 다수 독자들은 이광수에게 크게
속고 말았다고 일갈하였다. (김동인, 「춘원의 <나>」, 김동인전집(6), 삼중당, 1976,
262쪽)
③ 꿈속에서 김낭(金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조신에게 함께 살기를 간청한다.
④ 조신은 김낭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년간 자녀 다섯을 두고 살았다.
⑤ 극심한 가난을 이기지 못하고 15세 된 큰아이는 굶어 죽고, 10세 된 계
집아이는 밥을 얻으러 다니다 개에게 물렸다.
⑥ 견디다 못한 김낭이 조신에게 헤어지자고 말한다.
⑦ 이 말을 듣고 조신은 크게 기뻐하며 각자 아이 둘씩을 데리고 작별하다
가 꿈에서 깨었다.
⑧ 꿈에서 깬 조신은 수염과 머리털이 모두 희어졌고 세상일에 뜻이 없어졌다.
⑨ 큰아이 묻은 곳을 파보니 돌미륵이 나왔다. 사재를 털어 정토사를 세워
불도에 정진하였다.16)
조신설화의 기본 구조는 김만중의 <구운몽>과 같이 ‘입몽(入夢) - 꿈
- 각몽(覺夢)’의 환몽구조(幻夢構造)로 이루어져 있다.17) 꿈밖의 이야기
와 꿈속의 이야기로 나뉜다는 점에서 액자 형식의 구성을 갖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즉, 이 설화는 몽자(夢字)류 액자형의 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8) 조신설화의 환몽구조를 세분해보면, ‘Ⓐ 꿈 이전,
Ⓑ 꿈, Ⓒ 꿈 이후’의 세 가지 이야기로 나눌 수 있다.19) 다시 말해, ‘Ⓐ
꿈 이전: ①, ② - Ⓑ 꿈: ③, ④, ⑤, ⑥, ⑦ - Ⓒ 꿈 이후: ⑧, ⑨’의 3단
구성을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설화 속의 등장인물로는 조신, 김낭(김흔
공의 딸), 아이들이 있을 뿐이다. 이 중에 대사와 행동이 있는 실질적
인물은 조신과 김낭, 두 인물에 불과하다. 조신을 주인공으로 볼 때, 꿈
16) 일연, 박성규 역, 완역 삼국유사, 서정시학, 2009, 295-299쪽.
17) 조신설화와 김만중의 <구운몽>, 이광수의 <꿈>을 비교 연구한 것으로 안윤선의 「이
광수의 <꿈> 연구」(단국대 석사논문, 2001)가 주목할 만하다.
18) 이재선, 한국문학의 주제론, 서강대출판부, 1989, 123쪽.
19) 이윤석, 「조신설화의 문학적 가치에 관한 소고」, 한국전통문화연구 제4집, 1988,
177쪽.
속 이야기에서 조신의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가난이라는 한 가지
문제가 있을 뿐이다. 꿈밖의 서사에서 조신의 장애물이 애욕이라고 본다
면, 그것을 극복하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해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볼 때, 꿈속의 서사는 가난과 이별이라는 단조로운 갈등
구조로 이야기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광수는 이처럼 단조로운 3단 구성의 설화에 흥미를 부여하기 위해를
원전 설화에 없는 다양한 인물들을 설정하였다. 조신과 달례(김 태수의
딸), 아이들 이외에 낙산사 스님 용선화상, 평목, 그리고 모례 화랑과
그 일행 등을 설정하였다. 인물의 다양화는 사건의 복잡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괄목할 만한 사건의 복잡화는 꿈 속 이야기에서 나타
난다. 조신설화에서 조신은 김낭과 함께 아무런 방해 없이 고향으로 돌아
가 수십 년 동안 행복하게 산다. 극심한 가난으로 인해 자식들을 잃는
고통을 겪고 김낭과 작별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갈등양상일 뿐이다.
이광수는 조신설화의 가난이라는 장애물 대신에 도피와 추적의 플롯을
들어앉혀 서사의 흥미를 크게 증대시켰다.
이광수 소설 <꿈>의 서사구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권
① 낙산사 스님 조신은 태수의 행차 소식을 듣고 1년 전 김흔공 태수의 딸
달례와 첫 만남을 회상한다.
② 1년 전 조신은 달례의 청을 듣고 절벽 위의 철쭉꽃을 꺾어준다. 이때 이
후로 달례를 흠모하게 된다.
③ 태수 일행이 불공을 드릴 때 조신은 달례가 모례 화랑과 정혼한 사실을
알게 된다.
④ 조신은 용선화상에게 달례와 자신이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
원한다.
⑤ 용선화상의 가르침에 따라 조신은 법당에서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해달라며 관음기도를 한다. 기도 중에 깜빡 잠이 든다.
⑥ 달례가 법당으로 조신을 찾아와 사랑을 고백하며 함께 달아나자고 한다.
⑦ 조신과 달례는 도피 행각을 시작한다. (도피1)
Ⓑ 둘째 권
⑧ 평목이 두 사람을 따라와 낙산사로 돌아가자고 한다. 조신, 평목을 물리
친다. (추적1)
⑨ 15년 후, 태백산 깊은 곳에 조신과 달례는 4명의 자식들을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⑩ 평목이 다시 찾아와 조신을 협박하며 딸을 요구한다. 조신, 평목을 목 졸
라 살해한다. (추적2)
⑪ 조신, 죄책감을 느끼며 갈등한다.
⑫ 모례 화랑 일행이 조신이 사는 마을로 사냥하러 온다. 평목의 시체가 발
견된다. (추적3)
Ⓒ 셋째 권
⑬ 조신, 살인의 증거를 없애려다 모례에게 발각되어 가족과 함께 도주한다.
(도피2)
⑭ 모례의 추격을 피해 도주 중에 자식을 잃는다. (추적4)
⑮ 조신, 주막에서 모례 일행에게 붙잡힌다.
⑯ 조신, 감옥에서 처형되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나다.
⑰ 일심으로 수도에 정진하여 명승이 된다.
20)
조신설화가 3단 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이광수의 <꿈>도 3단 구성
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조신설화의 구성이 ‘Ⓐ꿈 이전(입몽) - Ⓑ꿈 -
20) 이광수, <꿈>, 이광수전집(5), 삼중당, 1971, 참조.
212 Journal of Korean Culture 19
Ⓒ꿈 이후(각몽)’라는 현실과 꿈의 경계로 단순하게 구분되는 반면, 이광
수의 <꿈>은 작가 나름으로 구축한 서사구조에 의해 ‘Ⓐ 첫째 권 - Ⓑ
둘째 권 - Ⓒ 셋째 권’이라는 3단 구성으로 나눠지고 있다. 이 서사구조를
요약하면 Ⓐ 첫째 권은 ‘욕망(입몽)/도피의 플롯’, Ⓑ 둘째 권은 ‘살인/추
적의 플롯’, 그리고 Ⓒ 셋째 권은 ‘추적/해탈(각몽)의 플롯’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조신설화의 서사구조와 비교하면, 소설 <꿈>이 ‘도피
- 추적 - 살인 - 추적’이라는 극적 사건(행동)을 부여함으로써 서사적
흥미를 증대시켰다고 볼 수 있다.
김동인에 따르면, 이광수의 <꿈>은 출간 당시 엄청난 대중적 인기를
모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대중적 인기는 이 소설이 가진 도피
와 추적의 플롯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플롯을 만들기
위해 이광수는 조신설화에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인물들을 부가시켰다.
낙산사 중 용선화상과 평목, 그리고 모례 화랑과 그 일행이 대표적 인물
들이다. 이들은 용선화상을 제외하고 모두 조신과 달례의 애정 도피 행각
에 대한 추적자들이라는 점에 공통점이 있다. 이광수는 도피, 추적의 플
롯을 위해 필요한 인물을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평목은 서사구
조상 추적1과 추적2의 실행자이며, 모례 화랑은 추적3과 추적4의 실행자
라 할 수 있다. 사랑의 도피 행각을 이 소설의 주요 행동이라고 볼 때,
이 작품의 갈등구조는 ‘조신(도피자)/모례, 평목(추적자)’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소설 <꿈>의 서사구조는 추적의 플롯을
서사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추적의 플롯이야
말로 대표적인 ‘몸(행동)의 플롯’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몸의 플롯이
란 행동(action)이 중심이 되는 플롯을 말한다.21) 그러므로 몸의 플롯이
21) 로널드 토비아스, 김석만 역,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풀빛, 1997,
74-75쪽.
서사의 근간이 된다는 것은 소설 <꿈>이 행동 요소(극적 요소)가 강한
극적 소설(dramatic novel)이 된다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따라서 소설
<꿈>은 극적 요소가 매우 강한 작품이어서 극화(dramatize)하기에 충분
한 조건을 갖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원전 설화의 서사가 가진 3단 구성(꿈 이전 - 꿈 - 꿈 이후)은
기본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처음(beginning) - 중간(middle) -
끝(ending)’의 3단 구성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다. 춘원은 원전 설화의
3단 구성 근간을 유지하면서 이를 ‘첫째 권 - 둘째 권 - 셋째 권’의 형식
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3단 구성의 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한 플롯(plot)의 3단 구성(처음 - 중간 - 끝)과 본질적으로 흡사한 것이
다. 즉, 신상옥이 이광수의 <꿈>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고 영화화의 흥미
를 느끼게 된 것은 <꿈>이 갖고 있는 희곡(극)적 구성으로 인해 영화화하
기에 좋은 조건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편으로는 <꿈>이 갖고 있는 한국적 요소들이 신상옥에게 영화
화의 매력을 느끼게 하였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전술한
대로, 신상옥은 <코리아>(1954) 제작 당시부터 자신의 영화에 한국적
문화정체성을 담아내고픈 강렬한 욕구를 갖고 있었다. 그러한 욕구 때문
에 그는 <코리아>에서 한국적 영상이라는 시각적 표현에만 매몰되고,
플롯이 취약해서 그림엽서 같은 인상을 주는 영화라는 뼈아픈 지적을
받기도 했다.22) <꿈>(1955), <젊은 그들>(1955), <무영탑>(1957)은 그러
한 한국적인 것의 재현 욕구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일련의 사극
제작 취향 역시 그러한 욕구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적 정체성을 자신의 영화에 담아내고자 하는 욕구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
까. 당대 오영진의 발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22) 박인환, 「한국영화의 전환기, 영화 <코리아>를 계기로 하여」, 경향신문, 1954.5.2.
우리 영화도 세계시장에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최근 우리 영
화제작계와 업자 간에 신중히 논의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물론 해외수출
의 가능성은 농후하고 수출 후의 수입의 확률도 안전하다.
최근 서구라파에 있어서의 동양제국의 영화에 대한 관심은 놀랄만하다. 특
히 1951년도 일본영화가 베니스 국제영화콩쿨에서 대상을 획득하고 작년에
는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감독이 동(同) 콩쿨에서 영화감독상을 획득하고
1952년에는 일본의 카메라맨 스키야마 코헤이(杉山公平)가 칸느영화제에서
득상하고 필리핀 영화가 수상되었다.
그러니 우리 영화도 상을 탈 것이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서구에서
가장 권위 있고 역사가 깊은 두 국제영화콩쿨에서 동방의 영화가 기염을 토
하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크나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데에는 틀림이 없
다.23) (강조, 인용자)
1953년에 쓴 글에서 오영진은 1951년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
1952년 미조구치 겐지의 <사이가쿠의 일대녀> 등 일본영화가 연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을 전하자 한국영화의 해외 진출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는 단지 오영진만의
낙관적 전망은 아니었을 것이다. <코리아>부터 <꿈>, <젊은 그들>, <무
영탑>에 이르는 일련의 한국적 색채의 영화를 제작한 신상옥의 내면에도
해외 진출에 대한 희망 섞인 욕망이 없었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6.25
전쟁 이후 나온 최초의 35미리 영화인 <코리아>가 1954년 5월 시공관에
서 개봉되었을 때 해외 진출도 어렵지 않을 작품이라는 언론의 평가가
나온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24) 당시 일본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이면에는 근대 이전을 무대로 하여 기모노와 사무라이
23) 오영진, 「영화의 해외진출」(1953), 오영진전집(4)(이근삼, 서연호 편), 범한서적주
식회사, 1989, 344쪽.
24) 「35미리 국산영화 <코리아>」, 경향신문, 1954.4.25.
등 일본의 전통적 요소를 등장시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욕망
을 충족시켜주고자 했던 일본 영화제작사의 기획 의도가 내포되어 있었
다.25) 그런 관점에서 당시 신상옥의 영화들을 본다면 그 영화 속에 내포
된 한국적 소재와 배경, 정서, 스펙터클들이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었으리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신상옥이 춘원의 <꿈>을 영화화하고자 했던 욕망을 품게
된 근저에는 첫째로 소설 <꿈>이 지닌 박진감 넘치는 극적 구성, 그리고
둘째로 서양인의 오리엔탈리즘을 충족시켜줄만한 동양적(한국적) 요소
가 풍부한 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신상옥이 1955년에 제작한 영화 <꿈>의 시퀀스 구성을 개괄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예불 장면, 조신의 염원과 달례의 정혼 사실이 내레이션을 통해 전달된다.
② 1년 전 조신과 달례의 첫 만남, 조신이 달례에게 꽃을 따준다.
③ 조신, 용선화상에게 달례와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④ 조신, 용선화상의 말을 듣고 법당의 관음보살상 앞에서 염불을 한다.
⑤ 달례가 등장하여 조신에게 고백하며 유혹한다.
⑥ 조신, 달례와 함께 깊은 산중으로 도피한다. (도피1)
⑦ 달례의 겁탈 위기 등을 겪으며 두 사람은 도피에 성공하여 평화로운 생
활을 영위한다.
⑧ 평목이 두 사람을 찾아오며, 겁이 난 조신은 평목을 살해한다. (추적1)
⑨ 조신, 살인행위에 대한 죄의식에 시달린다.
⑩ 화랑 모례 일행이 말을 타고 나타나 사냥을 하다가 평목의 시체를 발견
한다.
25) 요모타 이누히코, 박전열 역, 일본영화의 이해, 현암사, 2001, 160-162쪽.
⑪ 조신, 달례는 도주하며, 모례 일행은 말을 타고 이들을 추격한다. (도피2
/ 추적2)
⑫ 달례는 말에서 떨어져 죽고, 조신은 모례 일행에게 사로잡힌다.
⑬ 조신, 모례의 칼에 죽으려는 순간 꿈에서 깨어난다.
⑭ 법당의 관음불 앞에서 안도하는 조신, 깨우침을 얻는다.26)
1955년작 영화 <꿈>의 시퀀스 구성은 대체로 춘원의 소설 <꿈>의 서
사구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상옥이 춘원의 소설을 저본으로 삼아 영화
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춘원의 소설에 충실하고자 노력한
흔적은 서사적 구성, 인물 설정, 장면 묘사, 대화 장면 등 몇 가지 부분에
서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원작 소설의 대화 장면에서 대화(dialogue)를
시나리오의 대사로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많다. 또 인물을 보면,
원작 소설에 나타난 조신의 외모 묘사에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된다. 원작 소설에 조신은 추남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주인공 조신
역을 미남배우와 전혀 거리가 먼 황남에 맡김으로써 원작의 의도에 충실
하고자 했다. 이는 달례 역을 맡은 미녀배우 최은희와의 ‘추남/미녀’ 대조
를 통해 달례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조신의 행동에 자연스러운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한 의도도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신상옥의 영화텍스트에서 나타난 특징으로 주목되는 부분은 꿈 이전
과 꿈 이후의 장면에 내레이션을 설정한 점, 도피, 추적 장면의 영상미,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 웨스턴 영화 스타일을 도입한 점 등이다. 영화
의 시작과 끝 부분을 내레이션으로 처리한 것은 내레이션을 통한 시간의
압축을 노린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55년작 <꿈>은 75분 분량의 비교적
짧은 극영화다. 영화 전체의 분량을 줄이기 위해 내레이션 설정이 불가피
26)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필름을 텍스트로 삼는다. 이 필름은 35미리 흑백영화로 1955년
제작되었으며, 2009년 11월 한국영상자료원이 디지털본으로 재제작한 것이다.
했을 것이다. 1955년 영화 <꿈>은 몇몇 장면들에서 신상옥 특유의 영상
미를 보여준다. 특히 조신, 달례가 경사진 산의 능선을 타고 추적자들을
피해 도주하는 장면들은 흑백 명암의 대비를 통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
준다. 또 클로즈업의 빈번한 사용이 눈에 띤다. 법당에서 조신이 염불하
는 장면에서 관음불과 목탁의 클로즈업, 조신과 달례의 애정 장면에서
조신 얼굴의 클로즈업, 평목을 살해한 뒤 죄의식을 나타내는 조신 얼굴의
클로즈업, 모례에게 참수당하는 순간 조신 얼굴의 클로즈업 등이 그것이
다. 이러한 클로즈업은 의미의 강조, 인물의 섬세한 내면상태의 표현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모례 화랑 일행을 말을 탄 추적자들로 설정한 것은 시각적 영상미와
서사적 박진감을 위한 선택이었으리라 판단된다. 한국 최초로 시도된
승마 추격 장면은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킬 뿐만 아니라 도피와 추적의
서사를 더욱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말 탄 추적자들과
역시 말을 타고 도주하는 조신, 달례의 장면들(도피2/추적2)은 극의 후반
부를 박진감 넘치는 웨스턴 영화 스타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는 영화의
대중성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신상옥
은 춘원의 소설 <꿈>의 각색을 통해 원작이 가진 한국적이면서 동양적인
특이하고 몽환적인 소재와 색채감을 살리면서 특유의 영상적 조탁을 가
미하고 웨스턴 영화 스타일의 대중성을 접목시키고자 했다. 한국적 문화
정체성과 대중적 서사, 영상미를 조화시켜 해외 진출이라는 자신의 개인
적 꿈을 이루고자 욕망했던 작품이 1955년작 <꿈>이었으리라 생각된다.
3. 1967년작 <꿈>, 그리고 두 개의 영화 판본
1955년 <꿈>의 개봉 이후 10여 년간은 이른바 한국영화의 황금기(Gol
den Age of Korean Movies)에 해당되는 시기이다. 한국영화의 연간 제작
편수, 서울의 영화관 수, 연간 동원관객 수가 매년 꾸준히 상승하여 1960
년대 후반에 최고치에 이르게 된다. 1955년 15편에 불과하던 연간 영화
제작 편수가 <춘향전>, <자유부인>의 흥행 성공을 기점으로 급상승하여
1950년대 말에는 100여 편을 넘어서게 된다.27)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
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한 끝에 1968년에 마침내 연간 200편을 돌파하
게 되었다.28) 서울의 영화관 수도 크게 늘어 1955년 19개에 불과하던
것이 1968년에는 95개로 10여 년 사이에 5배의 증가세를 보였다.29) 이
외형적 성장세는 한국영화의 질적 수준 향상과도 연관이 있음을 부인하
기 어렵다. 이러한 한국영화 황금기의 한 가운데 존재했던 사람이 바로
신상옥이다.
1950년대에 <꿈>을 비롯해 <젊은 그들>, <무영탑>, <지옥화>를 만들
어 제작 역량을 축적한 신상옥은 1960년대에 접어들어 <성춘향>, <연산
군>, <폭군 연산> 등 잇단 흥행작을 발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사랑
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로맨스 그레이>, <빨간 마후라> 등 1960
년대의 주목할 만한 문제작들을 생산하였다. 이 시기에 신상옥은 영화작
가로서의 입지 확립에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제작자로서도 위치
를 공고히 하게 된다. 그는 1960년대에 한국 영화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영화사 신필름의 대표였을 뿐만 아니라 1966년에는 한국 최대 규모
의 안양영화촬영소를 인수하면서 한국영화계의 거대제작자로 입지를 굳
히게 되었다.
27) 이영일, 한국영화전사(개정증보판), 소도, 2004, 242쪽.
28) 박지연, 「1960, 70년대 한국영화정책과 산업」, 한국영화사공부 : 1960-1979, 이채,
2004, 153쪽.
29) 이길성, 「1960, 70년대 상영관의 변화와 관객문화」, 한국영화사공부 : 1960-1979,
이채, 2004, 191-193쪽.
이러한 시기에 그는 이광수의 원작을 다시 소환하여 두 번째 <꿈>을
만들고자 기획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영화 <꿈>을 다시 제작하고자
했을까. 신상옥의 두 번째 <꿈>이 제작, 개봉된 것은 1967년이다. 그러나
실상 두 번째 <꿈>은 이미 1960년대 초에 기획된 것이다. 1961년 9월
30일자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수년전 영화화 된 바 있는 춘원 원작
<꿈>이 칼라 시네스코로 역시 신상옥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될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각본은 오영진.”30)이라고 되어 있다. 신상옥이 1961년에
오영진의 시나리오로 컬러영화 <꿈>의 재제작을 기획했다는 얘기인 것
이다. 시나리오 <꿈>은 1959년에 오영진이 쓴 것인데, 신상옥이 오영진
의 시나리오로 다시 <꿈>의 재제작을 의도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앞의 기사 내용을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서 옛 영화의
재작(再作) 붐이 두드러지는 것이 1961년 영화의 특징이라고 규정하고,
그러한 원인으로 시나리오의 빈곤과 흥행의 안전성 확보라고 지적하였
다.31) 신상옥이 <꿈>의 재제작을 시도한 이유도 마찬가지였으리라고 보
인다. 신상옥이 초기부터 꿈꾸어온 한국적 영상미의 표현 욕망을 안정적
이고 검증된 원작(이광수)과 시나리오 작가(오영진)를 통해 이루고자 하
는 의도였으리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오영진의 시나리오를 택하고자 했을까 하
는 의문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사실 신상옥은 오영진과 악연을 갖고
있었기에 이는 더욱이 납득되기 어려운 것이다. 신상옥은 1959년에 이
승만을 미화하는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의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이승만을 홍보하기 위해 전 영화계를 강
제동원하여 만든 영화였는데, 임화수가 이끄는 반공청년단이 영화의 제
30) 「옛 영화의 再作 붐」, 동아일보, 1961.9.30.
31) 위의 글.
작을 맡았다.32) 이때 신상옥은 영화 완성도를 위해 이승만 청년시절의
민족주의 활동을 다룬 오영진의 시나리오 <청년>을 각본으로 채택하고
자 했으나 오영진이 높은 원고료를 불러 사용하지 못하여서 할 수 없이
유치진의 시나리오로 대신했다고 한다.33) 그러나 실제로 <독립협회와
청년 이승만>은 오영진의 시나리오 <청년>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만든
영화였다고 할 수 있으니 오영진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의 시나리오를
독재 권력과 신상옥에 의해 도용당한 셈이 되고 만 것이다. 1959년의
시점에서 볼 때 신상옥과 오영진은 시나리오 도용 사건의 가해자와 피
해자 관계였던 것이다.
이러한 악연에도 불구하고 신상옥은 오영진에게 다시 손을 내민 셈인
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앞의 동아일보 기사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선 재영화화 붐의 몇 가지 현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병일 감독으로 제작되어 한때 해외영화제의 ‘파이어니어’ 역할을 했던 오
영진 작 <시집가는 날>을 이용민 감독이 원제 <맹진사댁 경사>라는 타이틀로
촬영에 들어갔다. 이번 것은 칼라 35미리, 조미령 역을 최은희, 김유희 역을
이빈화가 대신하고 김진규, 김승호가 그대로 분(扮)하고 있다.34) (강조, 인용자)
1961년 옛 영화의 재제작 붐 현상에서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영화가
32) 신상옥, 앞의 책, 64쪽.
33) 오영진이 높은 작품료를 요구한 것은 “영화계에서는 작품료를 높이 요구해야 좋은
작품을 만든다.”는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지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안병섭은 오영진의 시나리오가 많이 영화화 되지 않은 이유가 높은
작품료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회고하였다. (안병섭, 「오영진의 시나리오에 대하여」,
오영진전집(3), 범한서적주식회사, 1989, 433쪽)
34) 「옛 영화의 再作 붐」, 동아일보, 1961.9.30.
바로 오영진 원작의 <맹진사댁 경사>다. 옛 영화의 재제작 붐을 선도한
영화로 <맹진사댁 경사>가 가장 먼저 주목되는 이유는 이 영화가 “해외
영화제의 ‘파이어니어’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1956년 이병일 감독이
연출한 영화 <시집가는 날>이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서 특별 희
극상을 수상하여 한국영화사상 첫 해외영화제 수상작이 된 것이다. 더욱
이 오영진은 1961년 2월 마닐라에서 열린 제8회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
으로 피선될 만큼 한국영화계의 대표적인 국제통이었으며, 아시아영화
제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던 것이다. 과거의 악연에도
불구하고 신상옥이 오영진의 시나리오 <꿈>(1959)을 탐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선, 신상옥 자신이 1950년대 중반 <코리아>, <꿈>의 제작
당시부터 세계무대 진출을 꿈꾸어 온 점, 둘째 오영진의 시나리오가 민족
원형 심상을 표현하는 한국적 작품이어서 세계무대 진출에 유리하다는
점, 셋째 오영진이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을 맡는 등 영화, 연극계의 국
제통이라는 점 등이 그 이유였을 것이다.
그밖에 원작자 - 각색자(시나리오 작가) - 영화감독의 관계인 세 사람
이 모두 이북 출신(이광수:평북 정주, 오영진:평양, 신상옥 :함북 청
진)이라는 친밀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특히 원작자와 각색자
인 이광수와 오영진은 같은 서북인(西北人) 출신으로서 역시 서북(평남
강서) 출신의 민족지도자 도산 안창호와 특수 관계에 놓여 있었다.35)
35) 김윤식은 안창호, 이승훈, 방응모, 주요한, 이광수 등으로 연결되는 서북인 특유의
끈끈한 유대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춘원이 1933년 8월에 그 동안 몸담
았던 동아일보에서 조선일보 부사장으로 갔던 일도 그가 서북 사람임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예이다. 조선일보는 당시 사장에 서북인(정주인) 방응모, 편집국장에 평양
태생 주요한이었다. 도산은 물론 비범한 인물이어서, 그가 주도한 신민회도 흥사단도
팔도 인물을 편견 없이 기용하려 했고 또 그렇게 실천하였다. 뒤집어 말하면 도산이야
말로 이 지방색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친 사람이었다.” 이러한 진술은 다시
말해 도산과 같은 비범한 인물이 아닌 사람이 지방색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롭기가 얼마
나 어려운지를 역설해주는 것이다.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1)한길사, 1986,252쪽
춘원 이광수는 오랫동안 도산 안창호를 따른 충량한 추종자라 할 수 있을
만큼 그를 존경했다. 1937년에 도산 안창호의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검거,
투옥되었고, 이듬해 도산 사망 이후에는 아비 잃은 고아처럼 방황하다가
마침내 친일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36) 그는 해방 직후인 1947년에는 도
산의 평전인 도산 안창호를 저술하기도 했다.
한편, 오영진은 평양의 기독교계 민족주의운동가인 오윤선 장로의 아
들로서 어릴 적부터 자신의 집 사랑방에 자주 찾아오던 도산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우리 집 사랑은 한일합방 이래 민족지도자들의 집합소이
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대전 감옥에서 출옥 이후 나의 서재인 2층에서
유(留)하였고, 고당 조만식 선생은 십 수 년래 매일같이 사랑방에서 조선
물산장려회, 관서체육회, 기독청년회, 조선일보, 숭실전문중학, 숭인학교
등 민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친(家親)과 의논하였다.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해문제, 순교자 주기철 목사 사건 등 모두가 집 사랑에서 발생
하고 의논되었다.”37)고 회고하였을 만큼 오영진은 안창호, 조만식 등
서북 출신의 민족운동가들과 어려서부터 친밀하게 접하면서 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는 도산의 사망 직전 같은
병원에 입원하면서 도산에게 영화에 대한 자신의 포부를 털어놓고 격려
를 받았다고 한다.38) 안창호를 매개로 한 이광수와 오영진의 연관관계는
도산의 장례식 풍경을 통해 명징하게 나타난다. 1938년 3월에 열린 도산
의 장례식에는 일경의 요구에 의해 참석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하였는데,
오영진의 부친 오윤선을 비롯해 조만식, 김지산 등이 참석하였고, 이광수
는 장례식을 주재하였다.39) 신민회, 흥사단, 수양동우회의 회원을 비롯
36)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3), 한길사, 1986, 997-1003쪽.
37) 오영진, 하나의 증언 : 작가의 수기, 국민사상지도원, 1952, 10쪽.
38) 오영진, 「도산선생과 영화」, 오영진전집(4), 범한서적주식회사, 1989, 276-277쪽.
한 수많은 도산의 추종자들 가운데 이광수, 오윤선은 장례식을 주재하고
참석할 자격을 가질 만큼 도산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던 것이다.
1959년에 오영진이 춘원 이광수의 소설 <꿈>을 각색하여 시나리오로
재창작한 배경에는 도산 안창호를 정점으로 연결되는 서북인의 유대의
식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좋아하
고, 오영진의 시나리오에 애착을 보인 신상옥의 경우도 같은 이북 출신으
로서의 친밀감이 일정 정도 작용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
단된다.
그렇다면 오영진은 시나리오를 통해 춘원의 소설 <꿈>을 어떻게 재해
석하였을까. 그리고 신상옥의 1967년작 영화는 1955년작 영화와 어떻게
다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오영진의 시나리오(1959)와 신상옥의
1967년작 영화텍스트를 비교,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인데, 필자의 검토
에 따르면 신상옥은 오영진의 시나리오 원안에 매우 충실하게 영화를
제작하였다. 세부적인 측면에서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고 두 작품 사이에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렵다. 오영진의 시나리오와 신상옥의 영화는 하나
의 통합된 텍스트로 보아도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논문에서는 오영진의 시나리오가 거의 대부분 신상옥의 영화에 반영
되었다는 전제하에 오영진과 신상옥의 텍스트를 별도로 나누어 분석하
지 않고 오영진, 신상옥의 통합텍스트로서 신상옥의 영화(1967)를 중심
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1967년작 영화 <꿈>의 시퀀스를 분석해보면 다음
과 같다.
① 낙산사의 중 조신은 잡념에 빠져 있다. 평목은 세속적인 노래를 부르다
태수에게 발각되어 곤욕을 치른다.
39)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3), 994쪽.
② 조신과 달례의 첫 만남, 조신이 달례를 위해 절벽 위에 올라가 꽃을 따준다.
③ 달례와 김태수 일행, 낙산에서 재를 올린다. 조신, 용선화상에게 달례와
인연을 맺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④ 조신, 용선화상의 말을 듣고 법당의 관음불 앞에서 염불을 한다.
⑤ 조신, 절 뒤편 계곡에서 달례를 만나 유혹을 받는다.
⑥ 조신, 달례와 함께 깊은 산중으로 도피한다. (도피1)
⑦ 조신, 두 사람을 쫓아와 돌아가자고 설득하는 평목을 물리친다. (추적1)
⑧ 15년이 뒤, 조신과 달례는 깊은 산속에서 자녀들과 함께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⑨ 평목, 조신의 집을 찾아와 달례에게 돌아가자고 설득한다. (추적2)
⑩ 평목, 조신의 딸 별아기를 겁탈하다가 죽게 만든다. 조신, 평목을 살해하
고 시체를 동굴에 감춘다.
⑪ 사냥에 나선 모례 일행, 우연히 조신의 집에 찾아온다. 조신은 사냥 길잡
이가 된다. (추적3)
⑫ 사냥의 과정에서 조신의 아들 미력이 부상을 입고, 모례 일행은 동굴에
유기된 평목의 시체를 발견한다.
⑬ 조신, 가족들과 함께 도주한다. 도피과정에서 미력이 죽는다. (도피2)
⑭ 조신과 그 가족, 민가에 숨어 있다가 모례 일행에게 붙잡힌다.
⑮ 조신, 목숨을 구걸하다가 달례의 의연한 태도를 보고 죽기를 자청한다.
⑯ 참형의 순간, 꿈에서 깬다.
⑰ 김태수 일행은 재를 마치고 하산하고, 조신은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다.40)
신상옥의 1967년작 <꿈>은 춘원의 원작을 존중한 각색이기에 근본적
으로 1955년작과 크게 다른 점은 많지 않다. 차이점을 꼽는다면, 첫째
1955년작에 비해 작품 분량이 15분 정도 확장된 점, 둘째 조신과 달례의
40) 1967년 6월 국도극장에서 개봉한 안양필름의 작품으로서 당시 13만 3,381명의 관객
을 동원하였다.
자녀들을 등장시켜 비극성을 강조한 점, 셋째 평목의 극중 역할이 강화된
점, 넷째 달례를 용선화상의 분신으로 암시한 점, 다섯째 원작과 달리
조신/평목을 미남/추남으로 역전시킴 점, 여섯째 컬러 영화로 제작해서
명암 대비 효과보다는 자연 풍경을 색채 영상에 담는 방식을 추구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먼저, 텍스트가 확장된 점. 1955년작 <꿈>이 67분 분량인데, 비해 1967
년작 <꿈>은 91분 분량으로 14분 분량이 늘었다. 늘어난 분량은 우선
조신과 달례의 자녀들 별아기, 미력 등이 등장한 것과 연관된다. 또 평목
의 극중 역할이 강화된 점, 달례를 용선화상의 분신으로 암시한 점 등과
도 연결된다. 따라서 텍스트 분량의 확장은 등장인물의 확대와 캐릭터
(평목, 달례)의 심화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앞 단락에서
1955년작과 1967년작 사이의 차이점으로 꼽았던 앞의 네 가지는 모두
연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네 가지 요소는 모두 오영진의 시나
리오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창의성의 근원은 오영진에게 있는 것이며,
여기에 신상옥의 영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다.
1955년작 <꿈>에 아이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데 반해 1967년작에
조신과 달례의 아이들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불도를 버리고 세속적 삶을
선택한 조신의 불행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추적을 피해
깊은 산속에서 15년간 평화롭게 가정을 이루며 살아온 조신이 평목, 모례
일행 등의 잇단 추적자들을 만나 자식들을 차례로 잃어가는 설정은, 비록
조신설화와 춘원의 소설 <꿈>에 토대를 둔 것이기는 하나, 도피-추적의
플롯과 결합되면서 조신의 비극성을 강화하는 요소가 된다. 조신, 달례를
찾아온 평목의 두 번째 추적(추적2)에 의해 딸 별아기가 희생되고, 조신
이 평목의 살해자라는 사실이 밝혀짐에 따라 모례 일행의 추적(추적3)을
받음으로써 아들 미력이 희생되는 양상으로 자식들을 추적의 희생자로
활용하였다.
낙산사의 중 평목의 캐릭터가 강화된 점 또한 주목을 요한다. 1955년작
에서 평목은 역할 비중이 매우 적어서 비중 있는 추적자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주요 추적자는 사실상 말을 타고 나타난 모례 일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1967년작에서는 평목의 성격에 세속성과 탐욕성을
강화시켜 역할 비중이 매우 커진다. 극의 도입부에 평목이 산길에서 통속
적인 노래를 부르다가 김태수 일행을 만나 곤욕을 당하는 장면을 설정함
으로써 평목의 성격을 암시한다. 그리고 추적1, 2에서 평목이 달례를
추근추근 희롱하는 장면, 추적2에서 평목이 조신에게 별아기를 달라고
요청하다가 거절당한 뒤 겁탈하다가 죽게 만드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평목의 악인성(惡人性)을 강화하는 각색은 영화서사의 대중성을 확대하
는 요소로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평목의 과장된 악인성 부여에 신상옥의
개입이 있었다는 점이다. 오영진의 시나리오에는 평목이 조신에게 딸을
달라고 요구하는 장면은 있지만 겁탈하는 장면은 없다. 이는 조신과 달례
가 처음 도피하면서 산 속 동굴에서 첫날밤을 보내는 장면에서 신상옥이
오영진의 시나리오에 없는 애정행위 장면을 넣은 것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이다. 신상옥은 애욕의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영화의 대중성을 높이고
자 의도했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시도는 당시 불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
키는 등 비난을 받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41) 더욱이 평목을 탐욕적 악인
캐릭터로 설정하고 희극 배우인 양훈에게 배역을 맡긴 것은 통속성과
희극성이라는 대중성의 양면을 모두 취하고자 한 시도로 보인다. 이는
언론 및 평단으로부터 비판받는 요소가 되었는데, 당시 언론은 평목이
재미있는 캐릭터지만 속되게 처리되었다고 비판했다.42)
41) 「영화 <꿈>, 세 씬 삭제 : 대한 불교 조계종 항의로」, 신아일보, 1967.7.8.
춘원의 원작에서 각각 추남과 미남으로 묘사된 조신과 평목을 신상옥
의 1967년작 영화에서 뒤바꾼 점도 영화의 흥행을 고려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못생긴 주인공을 대중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러한 점 역시 오영진의 시나리오와 무관하게 신상옥에 의해 결정된 것이
다. 본래 춘원의 소설 <꿈>에서 조신은 못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다.
“태수가 온다는데 왜 그렇게 놀라? 무슨 죄를 지었어?”
하고 평목은 그 가느스름한 여자다운 눈에 눈웃음을 치면서 조신을 바라본
다. 평목은 미남자였다.
“죄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
하고 조신은 비질을 하면서 툭 쏜다. 평목과는 정반대로 조신은 못생긴 사
내였다. 낯빛은 검푸르고, 게다가 상판이니 눈이니 코니 모두 찌그러지고 고
개도 비뚜름하고 어깨도 바른편은 올라가고 왼편은 축 쳐져서 걸음을 걸을
때면 모으로 가는 듯하게 보였다.
“네 마음이 비뚤어졌으니까 몸뚱이가 저렇게 비뚤어진 것이다. 마음을 바로
잡아야 내생에 똑바른 몸을 타고 나는 것이다.”
용선화상은 조신에게 이렇게 훈계하였다.43)
춘원의 소설 <꿈>에서 주인공 조신은 외적으로는 추남이고 내면적으
로는 우유부단한 겁쟁이로 묘사되어 있다. 조신에게 추한 외모를 부여한
것은 빼어난 미인인 달례와의 결합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였다
는 점은 당연한 것이다.44) 그러나 조신의 추한 외모는 단지 플롯의 요구
에서 비롯된 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1947년 중편소설 <꿈>의 창작
42) 「사랑의 번뇌 <꿈>」, 동아일보, 1967.6.17.
43) 이광수, <꿈>, 이광수전집(5), 삼중당, 1971, 542쪽.
44) 송하춘, 「<꿈>의 주제사적 조명」,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김열규, 신동욱 편),
새문사, 1994, 93쪽.
당시 이광수가 처해 있던 상황에서 기인한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춘원은 문단의 대표적 친일인사로 몰리게 되자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 남양주 사릉에서 문하생 박정호와 함께 농사를 짓고 살았다. 그
무렵에 구입한 못생긴 자빠뿔소까지 포함해 주인과 머슴과 소가 삼위일
체로 못난이였다고 당시의 춘원은 쓰고 있었다. 춘원은 특이한 외모 때문
에 동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던 못난이 자빠뿔소를 친일인사
로 비난당하던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45) 소설 <꿈>의
못생긴 사내 조신은 사릉 시절 못난 자빠뿔소의 화신(化身)이며, 그것은
독실한 불교 행자였던 춘원 자신의 자화상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46)
춘원의 소설 <꿈>에서 이러한 깊은 의미를 지닌 것이 추남 조신의
설정인 것인데, 신상옥의 1967년작 영화에서는 이러한 의미가 제대로
포착되지 못한 채 대중성에 의거한 인물 설정이 이루어진 셈이다. 조신과
평목의 인물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1955년작 <꿈>에 비해
1967년작 <꿈>은 후퇴한 것이며 속물화된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의 1967년 리바이벌 작품이 전편에 비해 더욱 강한 속물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한국영화계의 절반을 차지하는 거대 영화
기업 신필름의 생산물이었던 데 기인한다.
이렇듯 대중성에 대한 지향을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
고 신상옥이 1960년대에 영화 <꿈>을 만드는 데 재도전하고자 했던 것
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환영 받을 한국적인 영화를
45)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3), 1065쪽.
46) 이광수와 불교의 인연은 어린 시절 춘원과 가까이 지내다가 후에 승려가 된 삼종제
이학수와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김윤식, 이광수와 그의 시대(1), 참조) 「불교와 조선
문학」(불교 7호, 1924)은 춘원이 일찍이 불교와 불교사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
을 알게 해주는 사례 중의 하나다.
만들고자 한 욕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신상옥은 이미 <성춘향>(1961),
<사랑방손님과 어머니>(1962), <벙어리 삼룡>(1965)으로 세 번이나 자
신의 영화를 베니스영화제에 출품시킨 경험이 있다. 1967년 또다시
<꿈>이 공보부 영화위원회에 의해 제28회 베니스영화제 출품작으로 결
정됨으로써 1951년에 구로사와 아키라가 베니스영화제에서 이룬 아시
아 영화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47) 1967년 공보부
영화위원회가 선정한 베니스영화제 출품작 <꿈>과 <물레방아>는 신상
옥의 앞선 베니스영화제 출품작들과 여러 가지 점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는 점에서 주목을 요한다.48) 문학작품을 토대로 한 문예영화이면서 동시
에 한국적인 정취를 가진 토속적 세계, 즉 한국적 로컬리티(locality)가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라는 사실에서 이 영화들은 공통분모를 갖는다.
그렇다면 신상옥의 <꿈>의 영화화에 대한 집념을 보인 것이 그가 서구
인의 오리엔탈리즘적 시선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한국적 로컬리티를 춘
원의 소설 <꿈>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 최초의 국제영화제 수상작 <시집가는 날>의 작가이면서
아시아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이며 한국영화계 최고의 국제통인 오영진
의 각본(시나리오)이라는 사실 또한 대단히 매력적으로 작용하였을 것
이다.
47) 1960년대에 들어 신상옥의 영화가 연이어 공보부에 의해 국제영화제 출품작으로
결정된 점에는 영화의 우수성 이외에 박정희 정권과의 밀월관계를 가졌던 영화 외적인
요인도 상당히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조준형, 영화제국 신필름, 한국영상자료원,
2009 참조)
48) 「<꿈>, <물레방아>, 베니스영화제 출품키로」, 동아일보, 1967.6.27.
4. 결론을 대신하여
이제 결론을 맺도록 하자. 신상옥은 1955년과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이광수의 소설을 각색하여 영화 <꿈>을 만들었다. 신상옥은 왜 이광수
소설 <꿈>의 영화화에 강한 집착을 보였을까. 그것은 소설 <꿈>이 전형
적인 3단 구성의 희곡적 구조를 갖고 있어서 영화화하기에 좋은 조건을
확보하고 있었던 점, 그리고 <꿈>이 지닌 한국적 로컬리티와 불교적 깊
이로 인해 해외 진출에 유리할 수 있었던 점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1950년대에는 일본영화가 잇따라 유럽의 영화제를 석권
함으로써 전세계적으로 동양영화에 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되던 시기였
기에 소설 <꿈>은 서구적 드라마 구성의 보편성과 동양적 미의식의 로컬
리티를 겸비한 작품으로서 해외 진출을 위한 ‘동양적’ 영화 만들기에
최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요건을 갖춘 소설 <꿈>을 신상옥은 1955년에 각색, 영화화하면
서 특유의 영상미 추구에 주력하였다. 흑백 이미지의 대조를 통한 영상미
구현, 클로즈업 기법을 통한 인물 내면의식의 표현 등은 영상 테크니션으
로서 신상옥다운 특징을 보여준 것이었다. 여기에 조신과 모례 일행의
경마 추격 장면들을 연출하여 서사적 박진감과 시각적 운동감을 부여한
것은 대중영화의 미학을 추구한 것이었다. 그러나 1955년작 <꿈>은 영상
미와 대중성의 다소 어색한 조합으로 인해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영화작가 신상옥의 위상을 공고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였다.
신상옥은 1960년대에 <성춘향>, <연산>, <폭군 연산>, <로맨스 빠빠>,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등의 인기 영화들을
잇달아 제작하면서 대중영화 작가로서 지위를 굳건히 하게 된다. 한편
1966년에 한국 최대 규모의 안양영화촬영소를 인수하여 한국 최대 거대
영화기업 신필름의 대표가 된 그는 연간 30-40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양산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해외시장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었다.49) 이를 위해 그는 런런 쇼와 런메이 쇼 형제가 설립한 영화사 쇼
브라더스(Shaw Brothers)를 사업파트너로 삼아 홍콩, 대만을 비롯한 동
남아 시장 개척에 나서게 된다. 해외 영화 수출을 위해서 한국적 로컬리
티와 대중적 서사를 효과적으로 조화시킨 대중영화의 제작은 필수적 과
제일 수밖에 없었다. 1967년의 <꿈> 재작(再作)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
어지게 된다.
<꿈>의 재영화화는 실상 1960년대 초부터 기획되었는데, 그것은 1959
년에 발표된 오영진의 시나리오 <꿈>을 토대로 하는 것이었다. 1956년
이병일 감독이 오영진의 시나리오를 기초로 만든 영화 <시집가는 날>이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 특별 희극상을 받으면서 한국 최초의 해외
영화제 수상작의 쾌거를 기록하면서 오영진 작품에 대한 가치가 일약
상승하였고, 오영진이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을 맡는 등 해외에서 인정
받는 한국 영화계의 대표적인 국제통이라는 점도 작용하였기에 신상옥
으로서는 ‘오영진 효과’를 통해 영화 <꿈>의 해외 진출 성공을 기대하였
을 것이다. 1959년 오영진의 각색 시나리오에서는 조신의 아이들이 등장
하므로 인해 인물이 다양화 되고, 평목의 세속적 캐릭터가 강화되고, 용
선화상의 분신으로서 달례의 이미지가 구축됨으로써 대중적 흥미와 불
교적 깊이가 심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를 기초로 만든 1967년 신상옥
의 영화에서는 전반적으로 오영진의 각본에 충실하였으나 당대 인기 코
미디언 양훈을 평목의 역에 캐스팅하여 평목을 희극화, 속물화 하였으며
여기에 성애 장면, 겁탈 장면을 삽입하여 통속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
로 수정하였다. 또 1947년 소설 <꿈>을 쓸 당시 친일인사로 지탄받고
사릉에서 은둔하면서 못난 자빠뿔소와 함께 농사를 짓던 자신의 처지가
49) 조준형, 앞의 책, 141쪽.
투영된 조신의 추남 이미지를 신영균을 캐스팅함으로써 소거시킨 것도
원작의 깊이를 반영시키지 못하는 요소가 되고 말았다. 신상옥에게 1967
년의 영화 <꿈>은 이미 1955년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변질되었
다. 그것은 영화계에 막 입문하여 구로사와 아키라나 미조구치 겐지를
닮고 싶어 하는 신인 영화감독의 젊은 패기가 묻어나는 영화가 더 이상
아니었다. 1967년에 신상옥에게 그것은 하나의 대중영화이면서 동시에
1년에 30-40편을 제작하는 거대 영화제작공장 신필름의 한 생산품이었
고, 해외 사업파트너 쇼 브라더스의 동남아시아 배급망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수출 품목의 하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1967년
작 <꿈>의 각색은 속물화의 운명을 피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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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Journal of Korean Culture 19
[Abstract]
The Adaptation of and It's Meanings
Lee, Sang-woo
*
50)
This article's purpose is to examine the differences from Yi Kwang-su's novel
analyzing adaptation between Yi's the original work and Shin's adapted works.
Further more this article persue to determine what each adapted work has a certain
meaning.
In this article, the following some results were determine through analyzing
works. First of all, Shin chose Yi's the original work for film adaptation, because
Yi's the original has good dramatic storytelling structure and typical national
identity, locality. In the film of 1955, Shin added some pictorial aesthetic, for
example, some lively images with trace scenes, as like the Western movies, and
the colour contrast with black and white. At that time, because Shin pursued artistic
value through film, he produced the film for winning the international movie prize.
However, (1967) was different from (1955). In mid
1960's, as Shin was a great film maker and producer, who owned the biggest movie
company in Korea, preferentially he pursued popular appeal in film making. So,
he intended to remake a film as a commercial product for maintaining
and managing a giant movie company. Moreover, was very nice
narrative for oversea movie markets because of taking oriental subject and mood.
In film oh 1967, Shin pursued strongly popular appeal in his adaptation,
Dream>(1967) showed some vulgar taste in making certain characters, and in
setting up certain scenes.
Key words : Shin Sang-ok, Yi Kwang-su, Oh Young-jin, adaptation, plot of
escape and trace, popular appe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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