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
1. 서론
2. <최척전>에 나타난 동아시아와 다문화의 양상
3. <최척전>을 활용한 다문화 교육 방안
4. 결론
【국문초록】
17세기 한문소설 <崔陟傳>은 동아시아의 전란을 배경으로 하여 한 가족의 고난 과 이산․재회를 다룬 작품으로, 한중일 삼국을 주된 배경으로 하여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고 모국이 아닌 곳의 문화를 체험한다는 점에서 다문화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최척전>에 나타나는 다문화적인 면모는 크게 인적 교류 와 언어․의복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요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척전>의 등장 인물들은 대개 국경을 초월한 삶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 긍정적이며, 국적이 다른 이 들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또 이들은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어 국적을 가리지 않고 약자를 돕고 연대한다. 다만 이러한 ‘善隣’ 관계에도 침략과 방어, 중화와 오랑캐,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항이 지배하는 구조적 문제는 남아있다. 한편 작품에 나타 나는 문화적 요소는 언어와 의식주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등장인물들이 외국어를 습득하고 제2언어를 사용하여 소통하는 과정, 상황에 맞추어 의복을 착용하는 모 습, 음식과 주택에 대한 간접적인 묘사를 통해 동아시아의 문화가 만나는 모습을 확 인할 수 있다. <최척전>에 나타난 다문화의 양상은 2015개정 한문과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다문화 교육의 제재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다.
주제어: <최척전>, 교류, 동아시아, 다문화, 다문화 교육, 한자문화권, 2015개정교육과정
1. 서론
<최척전>은 17세기 한문소설의 名篇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작품으로 서, 특히 동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진 가족의 서사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 왔다.1)
1) 박희병(1990); 김현양(2006); 최원오(2009); 정환국(2010); 진재교(2010); 김경미 (2013) 등을 주요한 연구로 들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최척전>은 동아시아의 전란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고난과 이산․재회를 다룬 작품으로서 동아시아인들의 인간애와 연대를 표출하고 있다. 작품에 대한 이러한 평가는 최근에 급격히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다문화 시대’ 혹은 ‘통 일 시대’를 예비하는 관점을 취한 연구로 발전하고 있기도 하다.2)
2) 김경회(2014); 김용기(2016); 이동일(2020)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최척전>의 ‘다문화’는 국적이 다른 나라 사람들 간의 혼인을 포함한 교류, 해외로의 이동과 해외에서의 거주 등의 범주에서 주 로 다루어져 왔다. 달리 말하면 <최척전>이라는 작품의 ‘역동적 서사구 조’3)
3) 박희병․정길수(2007), 169면의 “<최척전>은 조선, 중국, 일본, 베트남 등 동아시아 의 네 나라를 작품의 무대로 삼고 있는 매우 이채로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30년 가까운 기간 동안 한 가족이 두 차례의 전란을 겪으며 여러 나라에 흩어져 있다가 천신만고 끝에 재회하는 과정을 대단히 흥미롭게 그려 내고 있다”라는 요약적 평가가 이 말의 의미에 해당한다. 이하 본고에서 <최척전>의 원문과 번역문은 박희병(2005) 및 박희 병․정길수(2007)를 따른다.
자체를 다문화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왔다고 할 수 있다. 물 론 조선, 일본, 중국의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고, 그들이 각자의 모국이 아닌 곳에서 생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다문화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다문화의 양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인들의 만남이 가지는 내적 속성과 해외에서 체류하면서 겪는 다 양한 문화적 경험의 양상이 드러나야만 ‘다문화’라는 단어에 걸맞은 내실 을 갖추었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최척전>의 작품 실상에 맞추어 동아시아 다문화의 양상을 인적 교류와 언어․의복을 중심으로 한 문화적 요소의 두 가지 측 면에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최척전>은 작품 속에 펼쳐 진 시공간의 규모가 대장편을 방불케 하지만, 실상 작품의 편폭은 중편 정 도에 불과해 상기한 내용과 관련된 구체적인 묘사가 결여되어 있는 경우 가 많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본론에서는 각국 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단편 적인 부분이라 할지라도 최대한 의미화하는 방향에서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검토의 결과는 <최척전>이 다문화 교육의 텍스트로 활용될 수 있 는 근거가 될 것인바, 이를 바탕으로 <최척전>을 다문화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할 것이다. 이때 <최척전>이 한문소설이라는 점에 특히 유의하여 2015 개정 교육과정 가운데 한문과 교육과정의 내용 체계와 성취기준, 교수․학습 방법 등에 작품을 적용하여 구체적인 교육 방안의 도출을 시도할 것이다.
2. <최척전>에 나타난 동아시아와 다문화의 양상
1) 동아시아인의 교류 양상
<최척전>에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최척 부부 외에도 이름이 적시되 고 언행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주로 조선인, 중국인, 일본인인데 <최척전>은 이러한 매개적 인물의 다양함과 형상 화의 수준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4)
4) 박희병(1990), 99면.
최척 부부와 이들의 만남 은 도움, 우정, 혼인 등의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 은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새로운 삶의 공간을 구축하는 데 긍정적이며, 국적이 다른 이들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적다는 점이다. 다음은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 왔다가 훗날 최척을 중국으로 데리고 가는 명나라 장수 여유문의 말이다.
“(…)인생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하나니, 먼 곳이건 가까운 곳이건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노닐고 머물 따름이지 하필 구석진 땅 에 머물며 옹색하게 살 이유가 무어 있겠소?”
여유문은 국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삶의 공간을 이동하는 삶을 옹호하며, 중요한 것은 제가 태어난 나라가 아니라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의 존재임을 강조한다. 그는 의탁할 곳이 없어진 최척을 측은해하며 받아 들이고 자질이 뛰어난 그를 아껴 “한 상에서 밥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잘 정도”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그가 최척을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으로 여겼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또한 최척이 그만큼 뛰어나고 매력 있는 인 물이라는 점과 여유문이 타국인에 대한 경계와 의심이 없는 인물이었다는 점을 동시에 의미한다. 후금의 포로로 잡혀 재회한 최척과 아들 몽석의 사연을 궁금해 한 오랑 캐 노인 또한 고국에서의 삶을 고집하지 않고 적합한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는 일을 긍정하였다. 그는
“와 보니 이곳 사람들은 성품이 정직하고 가렴주구도 일삼지 않더라. 인생이란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인데, 벼슬 아치들의 매질에 시달리며 움츠리고 살 이유가 뭐 있겠나?”
라고 하면서 조국인 조선을 부정하고 만주를 긍정하는 발언을 한다. 이에 따르면 조선 의 관리들은 정직하지 못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으며 백성들을 학대한다는 것이다. 자유롭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라면 태어난 나라 따위는 중요하 지 않다는 것이 이 노인의 생각이다. 두 사람 모두 국경 혹은 조국을 뛰어 넘는 가치가 존재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최척 또한 비록 자의에 의한 것은 아니나 외국을 두루 다니며 여러 사람 과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성품 및 태도와도 일정한 관련이 있어 보 인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 사귀기를 좋아하고 자잘한 예의범절에 구애 받지 않는 인물이었다.5)
5) “自少倜倘, 喜交遊, 重然諾, 不拘齪齪小節.”
이를 통해 그가 각국의 문화에 따른 크고 작은 차이들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외국인들과 기꺼이 사귀었으리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최척이 여유문과 의형제를 맺었고, 知己로 사귀던 宋佑라 는 중국인 벗까지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벗 사귐에 있어 남다른 개방성의 소유자였음을 확인시켜 준다.6)
6) 옥영의 경우는 이와 매우 다르다. 옥영은 전란의 와중에 자신을 남성으로 가장하였고, 중국인들과 비교적 대등한 관계를 맺었던 최척과 달리 일본인 돈우의 노예 생활을 하면서 최대한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한편, 최척이 국가보다 개인을 우선시하는 유형의 인물이라는 점은 변 사정의 의병대에 속해있던 최척이 옥영과의 혼인을 앞두고 근심하고 휴가 를 요청하는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7)
7) 김경미(2013), 178면에서 이러한 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최척이나 옥영이 만나는 인물들은 국가를 중심에 놓는 가치관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다. 최척, 옥 영과 명의 여유문, 송우, 일본의 돈우, 삭주 출신의 오랑캐 노인과 최척, 옥영이 맺는 관계가 우호적인 데에는 국가를 중심에 놓는 삶보다는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가치관 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혼례식을 올리 고 오겠다는 게냐? 임금께서 피난 생활을 하시며 풀섶에서 주무시고 계시니, 신하 된 자로서 창검을 베고 잘 겨를도 없는 게 옳다 할 것이다.”
라는 변사정의 말이 당대 士族의 대의를 대변한다면, 혼례일의 휴가를 허락받 지 못하고 병이 깊어가는 최척의 모습은 개인적인 삶의 가치에 대한 지향 을 상징한다. 요컨대 최척은 군주의 臣民으로서의 자의식이 강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최척과 몽석이 포로수용소에서 벗어나 도피하던 중 만나는 중국인이 있 다. 이 사람 또한 왜군과 싸우기 위하여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파병되었다 가 군법을 위반하여 도피 중이었는데, 그는 침술로 최척의 종기를 치료하 여 그 목숨을 구해준다. 이 사람은 기실 최척의 사돈이라고 할 수 있는 진 위경이었는데, 진위경은 대구에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머물다가 한 노파에게 침술을 배워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박씨와 노파 두 조선인 에게 도움을 얻은 중국인 진위경이 다시 조선인 최척에게 은혜를 베푼 것 이다. 그리고 최척의 가족은 그를 자신들의 집으로 옮겨와 살게 한다. 두 사람의 도피는 단면만 보면 불의한 일탈이지만 실상은 전쟁으로 인해 강 요된 징집에서 벗어나고자 한 생존의 의지이자 자유의 의지라고 할 수 있 다.
국가 권력이 전쟁에 골몰해 있을 때 거기에 강제로 포섭된 개인들은 탈출하고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척과 옥영 가족의 이산이 동아시아의 전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최척전>에 화해와 우정 이전에 국가 간의 적대와 공격이 배경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최척 가족을 이산시 킨 1592년의 임진왜란과 1597년의 정유재란은 일본의 조선에 대한 공격 이며, 여기에 명나라가 조선과 합세하여 일본에 대적하게 된다.
1619년의 요양 공격은 후금의 명에 대한 공격으로, 명은 후금을 토벌하기 위하여 나 섰고 조선은 강홍립 휘하의 援軍을 파견한다. <최척전>의 동아시아인들은 대체로 선량하고 고결한 인품을 지닌 인 물로 그려져 있으며, 惡人이라 할 만한 사람은 없다.8)
8) 옥영 일행이 조선으로 가는 해상에서 만난, 아마도 중국어의 방언을 사용한 듯한 해적의 무리가 옥영 일행을 구타하며 배를 빼앗는 악역으로 등장하지만, 이들도 옥영 일행을 죽이거나 극심한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
이들은 惻隱之心을 가지고 있으며, 국적을 가리지 않고 약자를 도울 만한 관대함을 지닌 인물 들이다. 명나라 장수 여유문은 홀로 된 처지를 비관하여 중국에 따라 들어 가 은둔하고 싶다는 최척을 측은하고 가련하게 여겼으며,9)
9) “唐將聞之惕然, 且燐其志”
일본 상인 돈 우 역시 옥영을 가련히 여기며 자신의 이름자와 같은 글자를 써서 ‘沙于’ 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10)
10) “頓于尤憐之, 名之曰沙于”
최척과 옥영이 외국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각기 중국인과 일본인의 도움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홀로 분투하며 외국에서의 삶을 영위한 것이 아니며, 이들의 도움이나 호 의에 힘입어 조금이나마 용이하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원문 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여유문과 돈우가 베푼 호의는 이들의 개인 적인 성품에 기인한 것으로 동등하지 않은 상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의 발 로이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인의 화해적인 관계 이면에는 국가 간의 적대 적 관계 혹은 그로 인한 상해 관계가 엄연히 존재한다. 돈우와 옥영의 관계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옥영은 돈우라는 인물 에 의해 일본에 끌려가서 노예 생활을 한다. 돈우는 항해에 능숙한 장사꾼 으로 배를 타고 장사하러 나갈 때마다 옥영에게 火長 일을 맡겼다. 이는 옥영이 자신은 왜소하고 약골이라 바느질이나 밥 짓는 일밖에 하지 못한 다고 말한 때문이다. ‘화장’은 배에서 밥 짓는 일을 담당하는 이로, 주로 나이 어린 소년이 이 일을 맡아서 했다. 돈우는 불교 신자로 살생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옥영의 총명함을 사랑했다. 그러나 敦厚한 주인이라고는 하나 돈우와 옥영의 관계는 일본인 주인과 조선인 노예의 그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 가운데는 노예로 팔려간 사람이 적지 않았고, 그 가운데는 옥영과 같이 일본 상인의 종노릇 을 하면서 동남아 무역에 종사한 예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11)
11) 박희병(1990), 89면에서 그러한 사례로 조완벽전 을 소개하였고, 권혁래(2019)는 두 작품에 나타난 포로의 형상을 비교 검토하였다.
곧 옥영은 전쟁 포로로서 개인의 노예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돈 우가 옥영이 달아날까 걱정하여 옷과 음식으로 안심시키려 한 것,12)
12) “惟恐見逋, 給以善衣美食, 慰安其心”
훗날 옥영과 최척이 재회했을 때 최척과 동행했던 송우가 백금 3정으로 몸값을 치르고 옥영을 데려가려 했다는 점13)
13) “鶴川請於頓于, 欲以白金三錠買婦”
등에서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요컨대 돈우와 옥영의 관계의 본질은 主從 관계였으며, 옥영은 원치 않 는 노동과 海上의 유랑으로 속박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최척 을 만난 후 옥영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돈우가 돈을 받기는커녕 되레 은 10냥을 주며 옥영을 떠나보내는 호의를 보이지만, 옥영이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괴로이 남자 행세를 하며 타국에서 뱃사람의 시종 노릇을 한 것은 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돈우는 옥영의 “단정한 모습과 성실한 성 품을 좋아해 친형제”처럼 지냈노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두 사람 사이에 평등에 기반한 우정이나 교류가 성립하기는 어려웠다. 이 불가능성은 전 쟁이라는 폭력에 기인한 것으로, <최척전>에 국가 간의 적대 관계와 개 인 간의 우호 관계가 공존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최척전>에 나타난 연대와 인간애 또한 전면적이기보다는 선택적이고 부분적이라는 점은 이미 선행 연구에서 지적되었다.14)
14) 김경미(2013), 180~181면 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를 두고 보편 적인 인간애, 타자들의 연대라고 하기는 어렵지 않은가? <최척전>에 나타난 연대는 오히려 명나라 사람(여유문, 송우)과 조선 사람, 조선 사람(오랑캐 노인)과 조선 사람 의 연대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오랑캐 두목(蕞爾小酋)’이라 하고 옥영도 ‘누르하치의 소굴(奴酋窟穴)’이라고 비하해 서 부르는 것도 이들이 어느 편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최척이 금과 명의 관계를 “그까짓 오랑캐 무리가 감히 대국의 상대가 될 수 있겠 소?”라는 말로 표현한 것이나 옥영이 후금의 세력을 “누르하치의 소굴”이 라고 표현한 데서 華夷를 구분하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음은 분명하지 만, 이는 후금과 명의 대립이 최척 부부가 이별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과 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단순히 추상적인 명분론에 견인된 반응이기보다 는 자신들의 삶을 파괴하는 현실에 대한 적대감의 표현으로 읽히는 것이 다. 아들 몽선이 “누르하치가 중국 병사는 모조리 죽였지만 조선 사람은 모두 살려 주었다고 합니다.”라고 말한 데서는 분명 이와 다른 관점이 보 인다. 조선인을 살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하는 몽선에게서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한결 누그러진 반응을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최척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선한 품성을 바 탕으로 상대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돕는 동아시아의 ‘이웃’임에는 분명하 나,15)
15) 진재교(2010), 131~138면.
여기에는 침략과 방어, 중화와 오랑캐, 남성과 여성이라는 대립항이 지배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하여 이 ‘이웃 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분명하다.
2) 동아시아의 언어와 의복
‘문화’의 요소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언어와 의식주를 들 수 있다. 작품 가운데 나오는 ‘語音衣服’이라는 말이 이에 해당하는데, 특히 언어의 문제는 동아시아인들이 다양한 양상으로 접촉하는 이 작품에서 직 간접적인 문제로 제기된다. 전란 이전 최척과 옥영의 사랑과 혼인에 서사 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때는 ‘조선어’만이 존재하고 소통의 도구로서의 92 漢文敎育硏究 第55號 언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최척이 의병에 차출되면서 일본인 혹 은 중국인과의 접촉이 발생하고 작품의 표면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언어의 문제가 개재하기 시작한다. 변사정의 의병으로 있으면서 명나라 군대와 접하게 된 최척은 중국어를 약간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稍解華語] 왜적이 남원을 함락한 후 가족과 헤어져 절망에 빠진 최척은 명나라 장수 여유문에게 자신의 신세를 하소 연하며 중국에 따라가고 싶다고 말하는데, 이는 문맥으로 볼 때 중국어로 말한 것이다. 이후 최척은 소흥과 항주 일대에서 20년이 넘는 중국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동안 중국어에 숙련되었을 것이며, 심지어 오랜 중국 생활 로 인해 조선말이 약간 어눌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누르하치를 토벌하는 군대에 징집된 최척은 포로로 사로잡히게 되는데 이때 공교롭게도 조선에 서 강홍립 휘하에 출전한 아들 몽석도 함께 포로가 된다. 몽석은 함께 포 로가 되어 만난 최척을 보고 부친인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어설픈 조선말 [言語硬澁]을 듣고는 명나라 병사가 목숨을 구하고자 조선인 행세를 한다 고 여긴다. 이는 오랜 중국 생활과 중국어를 사용한 언어생활로 인해 희석 된 최척의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옥영은 최척을 찾아 조선으로 가는 항해를 떠나기 전 아들과 며느 리에게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말을 가르친다. 조선어를 가르친 것은 조선 인과의 만남 혹은 조선에서의 생활을 대비한 것이며, 일본어를 가르친 것 은 일본으로 표류하거나 일본인과 접촉했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을 것이다. 옥영 자신이 三國의 언어를 잘 구사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행여 이들이 이산하거나 위기에 처했을 때 생존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각국의 언어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제2언어(second language)란 화자의 모국어 혹은 제1언어가 공용어가 아닌 환경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언어를 말한다.16)
16) 최미숙 외(2016), 493면.
최척이 사용한 중국어, 옥영이 사용한 일본어와 중국 어, 그리고 진위경이 사용한 우리말, 곧 조선어는 오늘날의 제2언어에 해 당할 것이다. 옥영의 며느리인 홍도에게 있어 모국어는 중국어이지만 제2 언어는 조선어가 되었을 것이다. 중국에서 태어난 몽선은 어릴 적부터 부 모의 조선어를 접했을 것이므로 홍도의 경우와는 조금 다르겠지만, 더 익 숙하게 구사하여 제1언어에 가까운 것은 당시로서는 중국어였을 듯하다.
몽선은 태생적인 이중언어 사용자에 가깝다. 여하간 이들은 모두 중국어 를 능숙히 구사했을 것이므로 옥영은 중국어를 사용하여 이들에게 조선어 와 일본어를 가르친 것이다. 옥영은 나고야와 일본의 상선에서 일본어를 익혔을 것이다. 이후 항해 에서 옥영은 명나라의 경비선을 만났을 때는 항주의 차 상인으로 가장하 여 중국어로 응대하고, 일본 배를 만났을 때는 길을 잃은 일본 고기잡이인 척하며 일본어로 응대한다.
해적에게 붙잡혔다가 구사일생으로 조선 배를 만났을 때야 비로소 뱃사람들과 조선말로 대화한다. 이렇게 옥영을 통해 동아시아 삼국의 언어는 생존을 위한 소통의 도구로 활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점 한 가지는 조선 배를 발견한 옥영이 조선 옷으로 갈아입는다는 것이다. 중국 배와 일본 배를 만났을 때의 상황은 분 명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출발 당시 옥영이 조선과 일본의 옷을 미리 만들 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배의 국적을 확인하는 대로 그 나라의 옷을 갈 아입고 중국인과 일본인을 응대했을 가능성이 많다. 그래야만 중국인이라 거나 일본인이라거나 하는 말을 상대가 쉽사리 받아들였을 것이기 때문이 다. 이는 조선인임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옥 영 일행이 자신들의 정체를 중국인과 일본인에게만 숨긴 것도 아니다. 이 들은 조선인을 만났을 때도 자신들의 사정을 차마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서울의 士族이며 나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겨우 살아났다 고 둘러댄다. 이는 옥영이 서울 숭례문 밖 청파리에 거주하다가 나주를 거 쳐 남원까지 왔던 일을 생각하면 영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조선인을 대 함에 있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최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옥영 역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만을 가진 인 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옥영이 배의 모양만으로 조선 배를 알아보는 모습에서는 문화적 경험의 차이가 감지된다. 아들 몽선은 조선 배를 보고 ‘처음 보는 모양의 배’[曾所 未覩之船]라고 했지만 옥영은 기뻐하며 조선 옷으로 갈아입는다.
다문화 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문화의 조우와 공존, 타협, 갈등, 혼효를 의미한다.
<최척전>에는 조선인과 중국인, 일본인이 각기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며 이웃을 만나는 장면이 자주 보이지만 이른바 문화적 교류라고 할 만한 것 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옥영이 만들고 입었던 조선 옷과 중국 옷, 일본 옷은 각기 동아시아 삼국의 문화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세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고 세 나라의 옷을 입고 이를 활용하는 옥영의 모습은 <최 척전>의 다문화를 보여주는 함축적 장면이라고 여겨진다. 아쉽게도 <최척전>에서는 음식[食]과 주거[住]의 다양성에 대한 묘사 나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척의 벗 송우가 “비단이나 차를 매매하며 남은 생을 즐기는 게 세상사에 통달한 사람의 할 일 아니겠나?”라고 한 말이라든지, 옥영이 조선을 향한 항해에서 중국 배와 일본 배를 만나자 각 각 “산동으로 차를 팔러 갑니다”, “고기잡이하러 바다로 나왔으나(…)”라 고 둘러대는 말에서 각국의 문화적 배경을 퍽 막연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공들이 환란을 피하여 거주한 외국의 공간은 독자에게 긍정 적 이미지를 남기게 된다. 최척이 여유문을 만나 2년 여를 보낸 소흥을 고 독한 망명자 최척에게 우정과 호의를 베푼 ‘피신의 장소’로, 최척과 옥영 부부가 재회하여 18년을 머문 항주를 ‘안식의 장소’로 ‘장소 정체성’을 부 여한 선행 연구가 있거니와17)
17) 권혁래(2015).
이들 장소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옥영이 머무른 나고야의 돈우의 집에서 옥영을 남성으로 여긴 돈우가 “아내와 딸이 있는 내실에는 출입하지 못하게 했 다”는 대목에서 일본의 가옥 구조에 대한 막연한 그림을 그려볼 수도 있 다. 이러한 문화 정보의 부족은 <최척전>이 동아시아라는 광대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행’이나 ‘문화 체험’으로서의 성격이 희박하고 유랑 과 그 속에서의 인간관계에 주로 관심을 둔 작품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 이 아닌가 한다.18)
18) ‘여행’과 관련된 내용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최척은 여유문이 죽은 후 중국 각지를 유람하는데, 이때 양자강, 회수, 용문, 우혈, 동정호, 악양루, 고소대 등의 명승지를 방문하고, 신선의 술법을 배워 은거하려는 마음까지 먹는다. 별다른 묘사 없이 나열되 어 있는 명승지들은 글을 통해서만 접한 중국의 자연과 풍물에 대한 관심 및 탈속적인 지향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 부분은 대체로 <최척전>의 전체적인 서사 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부분으로 여겨진다.
‘다문화’에 관심을 둔 오늘날의 독자는 이 여백을 상상 과 새로운 정보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최척전>을 활용한 다문화 교육 방안
이상에서 <최척전>에서 국가 간의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화해와 공존 을 모색하는 개인들의 모습이 나타난다는 점, 언어나 의복과 같은 구체적 인 문화 요소의 공유․확산․활용이 이루어진다는 점을 살펴보았다. <최 척전>은 <김영철전>, <강로전> 등과 같이 동아시아를 무대로 한 소수 의 한문소설 가운데서도 秀作으로 평가받는 작품인바 이제 <최척전>에 나타나는 다문화 양상을 어떻게 다문화 교육에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 에 대해 생각해보자. 한문이 고전 ‘文言文’으로서 한자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던 국제 적 표기 수단의 하나였다19)는
19) 교육부,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별책 17] 한문과 교육과정, 3면.
사실은 새삼스러운 재론을 필요로 하지 않 는 한문교육의 대전제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한자문화권 국가로는 한 국을 포함하여 중화권 국가,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를 들 수 있는데, 이들 국가는 과거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권에 속해 있었으며 오늘 날에도 상호 교류가 활발하여 이들 나라는 대부분 한국 내 국제결혼 배우 자의 국적에서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20)
20) 국가지표체계(e-나라지표)의 국제결혼 현황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외국인 아내의 국적은 중국-베트남-필리핀-일본 순으로, 외국인 남편의 국적은 일본-중국-미국-캐나 다의 순으로 많다.(http://www.index.go.kr/potal/main/EachDtlPageDetail.do? idx_cd=2430)
따라서 다문화교육에서 한문 텍 스트를 활용하는 것은 다문화 학습자의 자료 접근성을 고려할 때 효율적 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 한자문화권 국가들의 한자 및 한문 활용도가 상이하고, 한자와 한문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어휘 와 문법이 나라마다 많이 異化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문화가정의 정신․문화적 배경을 고려할 때 번역을 동반한 한문 텍스트를 활용한 교 육은 바람직한 선택지 가운데 하나로 여겨진다. 특히 <최척전>은 한국, 일본, 중국, 만주, 베트남을 공간적 배경으로, 동아시아 공통의 전란의 역사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다 문화 학습자들의 공감을 유도하기에 매우 적절한 텍스트이다.21)
21) <최척전>은 2009 개정교육과정 시기에 1종의 한문 교과서(미래엔)에 수록되었으 나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한문소설이 수록되지 않은 교과서가 증가하는 추세 속 에서 한문 교과서에는 수록되지 않았고 1종의 국어 교과서(신사고)에만 수록되어 있 다. 2015 개정 교육과정 한문 교과서 수록 소설 작품에 대해서는 류준경(2018) 참조.
이는 한 자문화권 내에서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한문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는 한문교육의 목표와도 상통한다.
2015개정 한문과 교육과 정에 의거하면 <최척전>은 다음의 내용 체계 및 성취기준과 밀접한 관련 을 가지고 있다.
<최척전>에 나타난 다문화의 양상은 ‘한자문화권의 언어와 문화’라는 내용 요소와 연관해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자 문화권 내 국가의 상호 이해와 교류를 증진시키는 것이 해당 영역에서 성 취해야 할 기준이다. 이제 <최척전>을 통해 동아시아의 인적․문화적 교 류 양상을 살펴보는 작업을 수행해야 할 차례이다.
제시된 성취기준에 따 르는 교수․학습 방법 가운데 <최척전>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것 으로는 ‘한자문화권의 상호 교류 사례 찾아보기’, ‘한자문화권 언어․문화 사전 만들기’를 들 수 있다. <최척전>에는 다양한 층위의 교류 사례가 나타난다. 이를 편의상 개인 -집단-국가로 구분해본다고 했을 때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은 우정, 도움, 혼인 등이다. 집단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은 상업 혹은 무역 이며 국가적인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은 외교와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개 인과 집단 차원에서의 교류는 대체로 호혜적인 것으로 긍정적인 면이 강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의 교류는 부정적인 면이 강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 했듯이 이 전란은 개인의 우호적인 교류가 성립 가능하게 하는 부득이한 배경으로 이 작품에서 기능하고 있다.
<최척전>의 배경이 되는 16~17세 기의 전란은 동아시아인의 공통적인 역사적 경험이다.
<최척전>을 통해 적대적이거나 부정적인 관계까지 포함한 교류의 역 사를 이해하고 감상한다면 오늘날 현실에서 존재하는 국가 간의 갈등, 다 문화에 대한 거부와 충돌을 포함한 갈등의 양상까지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안목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후금 정벌 등의 전란은 비록 폭력적이고 부정적이지만 작품에 드러나는 교류의 한 양상으로 이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컨대 이에서 파생된 상하관계로서 돈우 와 옥영의 관계 또한 주종이라는 부정적 속성을 가지지만 연민과 이해라 는 보완적 요소를 지니고 있음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최척이 여유문․송 우와 맺은 우정, 오랑캐 노인이나 진위경이 보여준 조력 등이 교류의 한 중요한 양상이 될 수 있며, 홍도와 몽선이 맺은 혼인 관계는 가장 구체 적이면서도 강력한 교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최척전>을 포함한 고전을 활용한 교류 사례의 조사는 “신문, 방송, 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한자문화권 내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방식의 교류 사례를 찾아보”는 것과 병행이 가능하며 학습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동시에 사례를 더욱 풍부하게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다음으로 ‘한자문화권 언어․문화사전 만들기’ 가운데 ‘언어사전 만들기’ 에 대해 살펴보자. 앞서 모국어인 조선어 외에 최척은 중국어를, 옥영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였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또 홍도와 몽선에게는 중국어가 모국어 혹은 제1언어이며 조선어가 제2언어가 될 것 이라고 했다. “사전, 서적, 인터넷 등을 활용하여 한자문화권 국가의 언어 와 문화에 대하여 조사한 후, 그 공통점과 차이점을 정리한 한자문화권 언 어․문화사전을 만드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부로 <최척전>과 관련된 내 용을 조사하여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우선 서로 다른 국적 혹은 태생의 여러 사람이 대화를 나눌 때 어떤 언 어를 사용했을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초에 조선에 있을 때 최척의 가족 은 조선어를 사용했으리라. 그러나 최척과 여유문, 혹은 최척과 송우는 중 국어를 사용했을 것이며, 돈우와 옥영은 일본어를 사용했을 것이다. 몽선 과 홍도는 중국어를 사용했을 것이며, 진위경과 최척은 조선어를 사용했 을 가능성이 많다. 이과 같은 다양한 대화 상황을 상상하며 이들의 대화를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로 구성해본다면 한자문화권 국가의 언어에 대한 훌륭한 예시가 될 것이다.
‘문화사전 만들기’ 또한 작품에 의거하여 시도해 볼 수 있다. 이는 衣食住의 세 가지 범주에서 접근해 볼 수 있는데 <최척 전>에 의식주의 구체적인 양상이 충분히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옥영이 배를 타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떠나기 전에 한중일 삼국의 의복을 만든 사 실 정도만이 분명히 나타나는데, 이때 뱃사람을 자처한 옥영이 만든 의복 이 어떤 것이었을지 조사해 볼 수 있다. 또 음식과 주거에 대한 정보가 전 무하긴 하지만 최초에 옥영 부부가 조선의 남원에 살았고, 옥영이 일본의 나고야에, 최척이 중국의 소흥과 항주에 거주했다는 점을 고려하며 이들 이 무엇을 먹으며 어떤 집에서 살았을지 상상하고 조사해보는 것 또한 흥 미로운 과제가 될 것이다.
4. 결론
지금까지 <최척전>에 나타난 다문화의 양상을 인적 교류와 문화적 요 소의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결과를 한문과 교육과정에서 의거하 여 다문화 교육에 적용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탐색해 보았다.
<최척전>은 중세공동문명권으로 명명할 수 있었던 동아시아의 17세기를 一國的 관점에서 벗어나 조망할 수 있는 작품이다. 더불어 <최척전>은 한국 전기소설의 전통과 미학을 확인할 수 있는 한국 문학의 학습 자료로 서의 가치 또한 풍부하다.
결혼, 이주 등으로 인해 한국의 교육과정을 이 수해야 하는 다문화가정의 자녀들 및 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한국의 학습 자들에게 <최척전>은 한국 한문 고전의 가치를 일깨워주면서 국가적인 갈등 속에서도 동아시아의 개인이 협력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새로운 다문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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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East Asia and Multiculturalism in the Chinese-language novel Choichokjeon 22)Choi, Ji-nyeo* The 17th-century Chinese-language novel Choichokjeon is a story about the hardships, separation and reunion of a family set in the context of the war in East Asia, and has a strong multicultural character in that people of various nationalities meet, interact and experience the culture of places other than their home countries. The multicultural aspects of Choichokjeon can be largely divided into human interaction and cultural elements centered on language and clothing. The characters in Choichokjeon are usually positive about building a cross-border life space, and have less resistance to people of different nationalities. In addition, they are compassionate and help the weak regardless of nationality. However, even in this good-neighbor relationship, structural problems still remain dominated by confrontation between aggression and defense, Sino and Barbarian, men and women. On the other hand, the cultural elements that appear in Choichokjeon can be viewed through language, food, clothing, and shelter. The process of the characters learning a foreign language and communicating using a second language, wearing clothes according to the situation, and indirect portrayal of food and housing can depict the culture of East Asia. The above information may be realized as a specific multicultural education plan in conjunction with the 2015 revised Classical Chinese Curriculum.
Key Word :Choichokjeon崔陟傳, interaction, East Asia, multiculture, Chinese Character system, 2015 revised Curriculum
투고일 : 10월 21일 심사완료일 : 12월 15일 게재확정일 : 12월 28일
漢文敎育硏究 55호(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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