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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부파불교에서 바라본 몸과 마음 - 설일체유부 전통을 중심으로 -/최경아.강릉원주大

Ⅰ. 시작하는 말

Ⅱ. ‘몸과 마음’에 대한 논의

   1. 논의의 시작

   2. ‘몸과 마음’에 대한 니까야의 대표적 경문

Ⅲ. 부파불교에서의 ‘몸과 마음’

   1. ‘몸과 마음’ 문제의 부상

   2. 설일체유부의 다르마체계가 보는 세상

   3.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아비다르마 논서들의 해설

Ⅳ. 맺음말

 

 

Ⅰ. 시작하는 말

 

본 논고는 인도불교사에 있어 본격적으로 철학적 논의가 시작된국면이라 할 수 있는 부파불교에서 ‘몸과 마음’의 문제를 어떻게조망하고 논의했는지를 다룬다.

부파불교는 학파불교라고 치환할수있으며, 아비다르마불교라고도 통칭된다.

아비다르마(abhidharma)란 다양한 개념을 분류 정리하고, 자연현상과 심리현상을 자세히관찰하고 치밀하게 분석하여 번쇄한 교의(敎義) 체계를 형성하여가는 경향을 말한다.

초기불교 문헌으로 알려진 니까야(Nikāya) 또한 남방상좌부의 편집본으로서 아비다르마적인 경향을 보이는 부분이있다.1)

 

    1) Pruden(1989), xlii.

 

니까야라는 용어 자체가 부파라는 의미가 있으므로 부파불교를 니까야불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니까야와 아함(阿含)은 부파의 전승으로 이를 전승한 부파의 교리적 특색을 반영한다.

대승의 논서도 또한 아비다르마라 할 수 있으므로 부파불교의 영역 안에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 범위는 니까야의 일부부터 대승논서에 이를 수 있다.

또한 빨리어로 된 남방상좌부 전통과 산스끄리뜨어 등의 언어와 한문으로 번역되어 전승된 북전 등 상이한 전통의 논서들이 현존한다.

따라서 이들 문헌을 어느 한 주제로 통합해서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지난한 작업일 수밖에 없다.

본 논고에서는 이 가운데 후대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한역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설일체유부의 논서와 대승으로의 다리를 놓은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의 저작과 아상가(Asaṅga, 無著)의 저작을중심으로 탐색이 이루어질 것이다.

불교철학에서 ‘몸과 마음’을 지시하는 대표적인 단어는 산스끄리뜨어로 ‘나마루빠(nāmarūpa)’이다.

‘나마루빠’는 나마(nāma)와 루빠(rūpa)의 병열복합어로 배열순으로는 ‘마음과 몸’, 또는 ‘정신과 물질’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몸과 마음’이라 부르는데, 동의어인 오온(五蘊, skandha)이 등장하는 경문에도 언제나 몸을 의미하는 루빠가 먼저 거명된다.

불교철학에서 오온은 십이처 십팔계와 연계되는데, 여기서 나마는 심리현상을 의미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인식작용으로 다루어져 왔다.

‘나마루빠’와 관련된 주제는 부파불교에서 가장 맹렬하게 논의됐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불교 교단이 확장되면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브라만들도 유입되었다.

그들에게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는 체계적인 불교철학이 요구될 때 아비다르마는그장이 되었다.

특히 자아와 관련된 논의는 영원한 자아에 고착되어있었던 그들에게 필수적으로 거쳐 가야할 통과의례라고 할 수있다.

인도철학사에서 불교 출현의 가장 극명한 특징은 인간의 위치를 천상에서 지상으로, 형이상학에서 삶의 현장으로 옮겨 놓았다는 것이다.

붓다는 인간의 경험적인 삶에 주목했다.

부파불교시대에 이르러 유력한 부파들은 다르마의 분석을 통해 이 문제를해명해야 했다.

특히 설일체유부는 나마루빠를 면밀히 분석한 법체계를 완성하여 대승아비다르마의 토대를 제공했다. 본 논고는초기불교 니까야의 교설 가운데 인간의 ‘몸과 마음’을 지시하는오온에 대해 아비다르마 논사들이 주목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이를 어떻게 일체법(一切法)으로 해명하려 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Ⅱ. ‘몸과 마음’에 대한 논의

 

1. 논의의 시작

 

‘몸과 마음’을 통합해서 호칭하는 가장 오래되고 유력한 용어는아뜨만(ātman)이다.

본래 생기(生氣)를 의미했던 아뜨만은 불교가 발생할 무렵에는 궁극적 실재 또는 최고아(最高我)를 뜻하는 브라만(Brahman)과 통합되면서 아뜨만이라는 개념만으로는 인간의 개별적 정체성을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2)

이러한 상황은 최초기 설법으로 알려진 비나야(Vināya)(이후 Vin) 「마하박가(Mahāvagga)」에 나타난다.

붓다는 초전법륜으로 알려진 중도(中道), 팔정도(八正道),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법문에 이어, 다섯스깐다(skandha, P. khandha) 곧 오온에 대해 설명한다.

설법의 수순이나 내용으로 보아 이는 인간의 ‘몸과 마음’에 대한 것임을알수 있는데, 루빠(rūpa)로부터 차례로 다섯 스깐다에 대해

 

“비구들아, 만약 루빠가 아뜨만이라면 이 루빠는 병에 걸리지도 않을것이고, 루빠에 대해 ‘내 루빠는 이렇게 되어라’, 또는 ‘이렇게 되지마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식의 문답을 이끈다.3)

루빠의경우 물질이나 몸에 대입시켜 연상하면 이러한 해설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만 다른 스깐다에도 적용하는 것은 다소 부자연스러운 감이 있다.

어쨋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멸해 갈 수 밖에없는 루빠를 비롯한 다섯 스깐다는 그들이 익히 알고 있었던 아뜨만이 아니라는 답으로 유도된다.

그들이 아는 아뜨만은 과거· 미래 · 현재에 제약을 받는 시간적 존재도 현상적 존재도 아니니, 이다섯 스깐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우빠니샤드(Upaniṣad)의 빤짜꼬샤(Pañcakośa)4)는 가까이서 지켜본[upāsana] 아뜨만의 다섯 단층을 해설한 것으로 그 핵심은 아난다마야(ānandamaya, 지고의환희)이다.

 

    2) 최경아(2015), 84-85 참조.

    3) Vin.I, 13-14, “rūpaṃ bhikkhave anattā, rūpañ ca h’idam bhikkhave attā abhavissa, na yidaṃ rūpaṃ ābādhāya saṃvatteyya, labbhetha ca rūpe evaṃ me rūpaṃ hotu, evaṃ me rūpaṃ mā ahosīti” 이어서 vedanā, saññā, saṅkhārā, viññāṇaṃ 등 나머지 온도 같은 식으로 설명된다.

    4) Taittirīya Upaniṣad, III.1.1-5.1. 

 

반면 스깐다는 활동하는[有爲] 자아를 해체하여[P. vibhajja] 관찰한 것으로,5) 이 다섯 스깐다는 항상 상호 연계되어 작용하면서 이 가운데 어떠한 것도 특별한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6) 

 

    5) 제법을 분석하여 관찰한다는 의미에서 분별설부(分別說部), 곧 비밧자바딘(P. Vibhajjavādin)이라고 불렸으니, 이는 남방 상좌부의 다른 이름이다. 

    6) MN.III, 19 참조. 

 

요컨대 인도정통파철학에서는 아뜨만의 단층을 열거함으로써 수직적 분류를 했다면, 불교에서는 아뜨만을 수평적 또는 병렬적으로 분류했다고 볼 수 있다.

산스끄리뜨어로 몸을 의미하는 용어로는 샤리라(śarīra, P. sarīra), 루빠(rūpa), 데하(deha), 까야(kāya) 등이 있고, 때로는 아뜨만도 몸을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다.

마음은 마나스(manas), 찟따(citta), 쩨따스(ceta), 비즈냐나(vijñāna) 등이 있고, 흐리다야(hṛdaya), 나마(nāma), 아뜨만 등도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인다.

일반적으로 몸을 대표하는 용어는 까야. 또는 샤리라이지만, 불교에서 스깐다 곧 온(蘊)을 일체 유정(有情)으로 이해한 이래 루빠가몸을 나타내는 대표적 용어로 정착하게 된다.

마음 또한 찟따나마나스와 같은 대표적 용어가 있지만, 스깐다의 범주에서는 루빠를 제외한 나머지 사온이 마음에 해당되며, 이를 통칭하는 나마가‘몸’에 대비되는 ‘마음’으로 간주되었다.7)

 

    7) nāma는 rūpa를 제외한 vedanā, saṃjñā, saṃskāra, vijñāna에 해당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Nyanatiloka의 Buddhist Dictionary에도 그렇게 소개되어 있다. Nyanatiloka(1950), 103 그러나 니까야에는 nāma가vedanā, saññā, cetanā, phassa, manasikāra라고 정의되어 있다. SN.II, 3; MN.I, 53 참조

 

나마는 이름(name)으로도 번역된다.

이름 지을 수 있는 모든것은 정신 작용과 연계되고 이를 나마라고 부른다.

루빠는 몸외에도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되는데, 감각기능과 관련해 마음과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나마루빠는 오온의 동의어이며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로 분류되기도 한다.

아비다르마에 이르러 이들 소위 삼과(三科)는 일체법(一切法)으로 간주되어 이에 대한철학적 논의가 심화되었다.

곧 나마루빠는 ‘몸과 마음’에 머물지않고 감각대상과도 연계된다.

이러한 근경식(根境識)의 작용으로경험되는 세상이 펼쳐지며, 나마루빠는 유위(有爲)의 현상세계로 그범위가 확대된다.

 

2. ‘몸과 마음’에 대한 니까야의 대표적 경문

 

불교에서의 ‘몸과 마음’에 대한 해석은 가치적 판단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

아낫따락카나숫따(Anattalakkhaṇa-sutta)(無我相經) 에서는 다섯 스깐다를 열거하며 각각의 스깐다는 무상하고[anitya], 만족스럽지 않으며[duḥkha], 아뜨만이 아닌 것[anātman]이므로이들 각각이 ‘내 것’도 아니고[P. netam mama], ‘나’도 아니고[P. neso ham asmi], ‘나의 아뜨만’도 아니라고[P. na meso attā] 한다.8)

루빠를 포함한 다섯 스깐다에 대해 모두 덧없고, 불만스럽고, 그래서 ‘나’일 수 없다는 지극히 가치적인 판단이 개입되어 있는것이다. 특히 루빠의 경우 쇄해 가는 몸에 대한 안타까움과 불안한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곧 객관적인 상태에 대한 해석이라고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스깐다, 곧 온이라는 용어가 소개되기이전으로 보이는 최고층의 불전인 숫따니빠따(Suttanipāta)(이하Sn)에서는 “색과 소리와 향기와 맛 촉감은 중생을 취하게 만드는것”9)이라고 전한다.

여기서의 색은 육경(六境)의 하나로 안근의 대상을 말하지만, 중생을 현혹케 한다는 해설이 동반된다.

니까야에 나타나는 루빠에 대한 대표적인 경문은 쇠멸과 연관된 루빠의 어원적 해석이다.

 

“비구들아 무엇을 루빠(rūpa)라고 하는가? 무너지기(ruppati) 때문에 루빠이다. 무엇으로 인해 무너지는가? 추위에 의해서도 무너지고, 더위, 배고픔, 목마름에 의해서도 무너지고, 모기 · 이 · 바람 · 화염 · 뱀에 의해서도 무너진다.”10)

 

   8) SN.III, 22.

   9) Sn, 68(389), “rūpā ca saddā ca rasā ca gandhā phassā ca ye sammadayanti satte”.

  10) SN.II, 86, “kiñca bhikkhave rūpaṃ vadetha. 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 ti vuccati. kena ruppati. sītena pi ruppati uṇhena pi ruppati jighacchāya pi ruppati pipāsāya pi ruppati ḍaṃsa-makasa-vātātapa -siriṃsapa-samphassena pi ruppati. ruppatīti kho bhikkhave tasmā rūpan ti vuccati”.   

 

여기서 루빠는 사람의 몸을 나타내는 것이 명백한데, 이 내용은아비다르마꼬샤바샤(Abhidharmakośabhaṣya)(구사론, 이하 AKBh)에도 인용되어 있다.11)

반면 실재론적 입장에서 루빠의 정의를 밝힌대표적인 니까야의 경문은 다음과 같다.

 

“비구들아, 루빠는 무엇인가? 루빠는 사대종(四大種; 地 · 水 · 火 · 風) 과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 루빠이다. 비구들아. 이를 루빠라고 한다”12)

 

여기서 사대종[mahābhūtā]으로부터 파생된 루빠 곧 우빠다야루빠(upādāyarūpa, 所造色)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정의는 니까야에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루빠에 대해서 “모든 루빠는 과거· 현재 · 미래이거나, 내부이거나 외부이거나, 거칠거나 섬세하거나, 크거나 작고, 멀거나 가깝다고 한다.”13)라고 한다.

 

    11) AKBh, 9. “kasmāt punar ayam avijñaptiparyanto rūpaskandha ity ucyate. rūpaṇāt. uktaṃ bhagavatā ‘rūpyate rūpyata iti bhikṣavas tasmād rūpopādānaskandha ity ucyate. kena rūpyate. pāṇisparśenāpi spṛṣṭo rūpyata’ iti vistaraḥ”.        12) Upādānaparivatta-sutta, SN.III, 59, “katamañ ca bhikkhave rūpaṃ. cattāro ca mahābhūtā catunnaṃ ca mahābhūtānam upādāya rūpaṃ. idaṃ vuccati bhikkhave rūpaṃ”. Mahāhatthipadopama-sutta, MN.I, 185, “katamo c' āvuso rūpupādānakkhandho. cattāri ca mahābhūtāni catunnañ ca mahābhūtānaṃ upādāya rūpaṃ. katame c' avuso cattāro mahābhūtā. paṭhavīdhātu āpodhātu tejodhātu vāyodhātu”. 참조.

     13) SN.III, 68, “yaṃ kiñci rūpaṃ atītānāgatapaccuppannaṃ ajjhattaṃ vā bahiddhā vā oḷārikaṃ vā sukhumaṃ vā hīnaṃ vā paṇītaṃ vā. yaṃdūre santike vā ...”

 

이는 관찰자의 시점에서 마주한 대상으로서의 루빠에 대한 이해로 사대종에 대한해석이라기보다는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 루빠와 관련된 설명으로 보인다.

이 개념은 아비다르마에 이르러서야 주목을 받게 되는데, 그 해석이 논서에 따라 상이하다.

니까야에서 보이는 ‘몸과 마음’에 대한 이해는 이상에서 보듯이가치적 판단이 개입되어 있다.

이는 수행을 고무하는 기제로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 논의는 아비다르마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Ⅲ. 부파불교에서의 ‘몸과 마음’

 

1. ‘몸과 마음’ 문제의 부상

 

AKBh의 「아뜨마바다쁘라띠쉐다(Ātmavādapratiṣedha)」(「破我品」, 이하 「파아품」)에서 바수반두(Vasubandhu)는 마누시야까수뜨라(Mānuṣyaka-sūtra)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온에 대해서만 사람(pudgala)이라고 부른다’라고 마누시야까수뜨라에서 설해졌다. ‘안[근]과 색을 연하여 안식(眼識)이 일어나며, 이셋이 화합한 것이 촉(觸)이고, 촉과 함께 생기는 것이 수(受) · 상(想) · 사(思)인데, 이 네 가지 비색온(非色蘊, arupiṇaḥ skandhā)과 안근이라는 색, 이 만큼을 사람(manuṣyatva)이라 한다. ...’14)

 

   14) AKBh, 465, “skandheṣv eva pudgalākhyeti mānuṣyakasūtram. cakṣuḥpratītya rūpāṇi cotpadyate cakṣurvijñānaṃ trayāṇāṃsaṃnipātaḥ sparśaḥ sparśasahajātā vedanā saṃjñā cetanā itīme catvāro [']rūpiṇaḥ skandhāś cakṣurindriyaṃ ca rūpam etāvan manuṣyatvam ucyate. ...” 위의 밑줄 친 ‘catvāro rūpiṇaḥ skandhāh’(네가지 비색온)에서 ‘rūpiṇaḥ’ 앞에 ‘a’를 뜻하는 ‘'’가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비색온은 ‘無色蘊’, ‘無色陰’으로도 한역되는데, 문맥 상 ‘非色蘊’이더 적합하다. 이후 다음과 같이 ‘인간’의 동의어가 열거되고 해설이 따른다. AKBh, 465, “여기에서 삿뜨바, 나라, 마누시야, 마나바, 뽀샤, 뿌루샤, 뿌드갈라, 지바, 잔뚜라는 이 이름. 여기에서 ‘나는 눈으로 색을본다’라는 이 지각. 여기에서 그 장로는 이런 이름이며, 이런 출생이고, 이런 종성이며, 이런 음식[을 먹고], 이런 고락의 느낌[을 받으며], 이렇게 장수하고, 이렇게 오래 머물며, 이렇게 수명을 다한다라고 하는 이세간언설이라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은 실로, 비구들이여, 오직 이름뿐인것이며, 오직 세간언설뿐인 것이다. 이 일체 법은 무상(無常)하며 유위(有爲)라고 하는 그것을 연기법이라 한다.(atreyaṃ saṃjñā sattvo naro manuṣyo mānavaś ca poṣaḥ puruṣaḥ pudgalo jīvo jantur iti. atreyaṃpratijñā ahaṃ cakṣuṣā rūpāṇi paśyāmīti. atrāyaṃ vyavahāra ity api sa āyuṣmān evaṃnāmā evaṃjātya evaṃgotra evamāhāra evaṃsukhaduḥkhapratisaṃvedī evaṃdīrghāyur evaṃcira sthitika evamāyuḥparyanta iti. iti hi bhikṣavaḥ saṃjñāmātrakam evaitad vyavahāramātrakam evaitat. sarva ime dharmāḥ anityāḥ saṃskṛtāś ceti tāḥ pratītyasamutpannā iti)”. 

 

여기서 촉 · 수 · 상 · 사 등 색온이 아닌 것은 나마를 말하고안근은 루빠를 말한다.

곧 나마루빠가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어 사람을 지시하는 다양한 동의어들을 열거하는데, 여기에 아뜨만은없다.

사람은 오온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뜨만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빨리 문헌에서부터 쓰이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는 뿌드갈라(pudgala) 혹은 뿍갈라(P. puggala)는15) 사람을 의미하지만 자이나교에서는 물질로 간주되었다.

니까야에서는 뿌리사뿍갈라(P. purisa-puggala)라는 복합어로 쓰였고, 후에 부파불교에서는 뿌리사는 탈락되고 뿍갈라(뿌드갈라)라는 용어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을 보는 일반적인 시각을 시사한다.

집이문족론에서도 사람을 유정으로 이해하며, 그 동의어에서 아뜨만은 배제되어 있다.16)

 

    15) Rhys Davids(1978), 214.

    16) 集異門足論(T26, 386b4), “여기에서 ‘모든 유정이 있다’라고 함은 모든유정이 진실한 의미나 뛰어난 의미에서 알 수 없고 가늠할 수 없으며 있는 것도 아니고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님을 이르며, 다만 모든 온 · 계 · 처에서 생각이나 생각 같은 것으로 말미암아 임의의 언설을 써서 이르되 유정, 나라, 의생, 유동, 명자, 생자, 양자, 사부, 보특가라라고 하니 이로말미암아 ‘모든 유정이 있다’라고 설한다. ‘눈앞에 드러나는 모든 욕망의경계를 느끼기 좋아한다’라고 함은 그 유정은 본래 생기는 눈앞에 드러나는 욕망의 경계를 수용하고 간직해 지키며 쌓아 모으고 맡기며 안치하는 것을 언제나 좋아한다는 것을 이른다.) 이 가운데 유정이라는 것이있다. 이 유정은 진실한 의미로나 초월적 의미로는 알 수 없고 가늠할수도 없다. 있는 것도 아니고 드러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만 온 · 계 · 처가운데 (생한) 지각 등으로 말미암아 생각하며 임시적 언설을 사용하여이르되, 유정, 나라, 의생, 유동, 명자, 생자, 양자, 사부, 보특가라 라고 여길 뿐이니, 이로 말미암아 유정들이라고 한다. 눈앞에 있는 모든 묘한 욕 망의 대상을 느끼기 좋아한다고 함은 소위 그 유정은 본래부터 눈앞에나타나는 욕망의 대상을 수용하고 간직하고 지키고 모아 쌓으며, 맡기고, 안치하는 것을 항상 좋아한다는 것이다.(此中有諸有情者 謂諸有情諦義勝義 不可得不可近得 非有非現有 但於諸蘊界處 由想等想假言說轉 謂爲有情那羅意生儒童命者生者養者士夫補特伽羅 由斯故說有諸有情 樂受現前諸妙欲境者 謂彼有情恒樂受用藏護積集委寄安置 隨本所生現前欲境)”.   

 

부파불교에서 궁극적 실재와 연결되어 있는 아뜨만에 대한 논의는 이미 논점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한편 가아(假我, pseudo-self)를 내세우는 대표적인 부파인 정량부(正量部, Saṃmitīya)는 뿌드갈라바딘(Pudgalavādin)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뿌드갈라를 아뜨만과 동류로 보거나 실재시하는 학파로 타학파로부터 비판 받았다.

그러나 그들의 소전인삼미지부론(三彌底部論)에서 조차 자신들의 학설을 분명히 밝히고있지 않다.

바수반두는 「파아품」에서 여전히 진정한 자아에 고착하고 있는 집단이 있음을 지적하며, 뿌드갈라바딘이 시도했던 해결책이 브라마니즘으로의 회귀가 아닌지 의심했던 것으로 보인다.17)

 

    17) AKBh, 472 참조. “내가 아닌 것을 나로 이해했기 때문에 집착이 일어난것이지, 진정한 자아에 대해서는 어떠한 집착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종양처럼 사견(邪見)이 일어난다(tat ka idānīm eṣa yogo yad anātmany ātmādhimokṣāt sneha utpadyate ātmany eva tu notpadyate. tasmāt dṛṣṭyarvudam etasmin śāsane utpannaṃ).” 

 

이는 정량부라는 거대부파의 세력을 경계하는 여러 아비다르마 논사들의공통된 근심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인간활동을 합리적으로 해명해야만 했다.

 

2. 설일체유부의 다르마체계가 보는 세상

 

부파불교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설일체유부 전승의 논서에 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쇼카왕 재세시 설일체유부는 마가다국에서 나마루빠의 세밀한 분석자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였다.18)

현존하는 자료가 가장 많고, 무엇보다후대의 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부파이며, 특히 많은 문헌들이한역화되어 동아시아불교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설일체유부는 정교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는 존재로서의인간의 개별적 삶을 설명하기 위해 다르마(dharma) 곧 법을 분석했다.

아비다르마에서 다르마는 주로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의 구성요소를 말하는데, 설일체유부는 복잡한 인연법에 따라 이 세상을 찰나적으로 존재하게 하는 요소들로 본다.19)

이들 다르마는 다른 것들과 구분되는 특성[svabhāva, 自性]이 있으며,20) 현상의 근저인 불변의 실체로서 존재한다고 한다.

설일체유부에 따르면 인과관계의 적절한 배열로 작용이 일어나고 이를 기준으로 현재가규정된다.

곧, 이 작용에 의해 삼세(三世) 가운데 현재가 구별되는것이다.

미래는 다르마가 작용을 아직 갖지 않는 것이며, 과거는 다르마의 작용이 이미 과거로 가버린 것이다.

설일체유부에서 루빠 곧 색법(色法)은 실재하며 사대종과 소조색을 모두 포괄한다.

사대종으로 만들어진 소조색은 물질적 영역에 해당하는 12처에서의 10처와 무표색(無表色)을 포함한다.

이들은 오온의 색온(色蘊)에 해당한다.

물질은 빠라마누(paramāṇu, 極微)의 집합으로 성립되는데, 이는 소립자(素粒子)를 말한다.

더이상 분할되지 않는 크기로 입체적으로 이를 둘러싼 면을 갖지않는다.

1개를 중심으로 그 전 · 후 · 좌 · 우 · 상 · 하에 각각 하나의또 다른 빠라마누가 결합되어 7개가 집합된 것이 제2의 단위인

아누(aṇu)인데, 이는 눈과 안식이 취하는 물질 가운데 가장 미세한 것이다.21)

 

    18) Dutt(1970), 129.

    19) Rhys Davids(1978), 259, “불교철학에서 다르마는 복수로 쓰일 때, ‘순간’ 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실’, ‘상태’, ‘현상’ 등을 의미한다.” 참조.

    20) AKBh, 12(I. 18cd). “svabhāvena parabhāvaviyogataḥ”.

    21) 大毘婆沙論(T27, 702a4‐10), “극미는 가장 미세한 물질이어서 단절하거나 파괴하거나 꿰뚫을 수도 없고, 취하거나 버리거나. … 더 미세한 부분도 없고 더 분석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맛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기 때문에 극미라고 한다. 이것이 가장 미세한 물질이다. 이 극미가 일곱 개 모여서 하나의 미립자(微塵)를 이룬다. 이것은 눈과 안식(眼識)으로 취해지는 물질 중에서 가장 미세한 것이다.(問彼極微量復云何知 答應知極微是最細色不可斷截破壞 貫穿 不可取捨 … 無有細分不可分析 不可睹見 不可聽聞 不可嗅嘗 不可摩觸故說極微是最細色 此七極微成一微塵 是眼眼識所取色中最微細者)”.   

 

각각의 극미가 서로 다른 것과 접촉하는가 아닌가가 아비다르마 논사들의 쟁점이 된다.22)

설일체유부는 극미가 발생할 때는 항상 지 · 수 · 화 · 풍의 사대와 이 사대로부터 파생된물질을 의미하는 색 · 향 · 미 · 촉의 소조색의 극미 넷이 항상 함께생기[俱生])한다고 한다.23)

 

    22) 극미에 대한 상세한 논의는 박창환(2010) 참조.

    23) AKBh, 52, “욕계에서 극미는 소리와 감각기관을 배제한 여덟 실체로 되어 있다. 물질의 적취 가운데 일체 미세한 것을 ‘극미’라고 부르는데, 이것 말고는 더 인식될 수 없을 것이다. 욕계에서 극미는 소리와 감각기관없이 여덟 실체가 함께 생기[八事俱生]하는데, 그 가운데 하나라도 적으면 생기하지 않는다. 여덟 실체란 사대종과 사대종에 의지한 물질[所造色] 색 · 향 · 미 · 촉이다(kāme 'ṣṭadravyako 'śabdaḥ paramāṇur anindriyaḥ. sarvasūkṣmo hi rūpasaṃghātaḥ paramāṇur ity ucyāte. yato nānyataro vijñāyeta. sa kāmadhātāv aśabdako 'nindriyaś cāṣṭadravyaka utpadyate. nānyatamena hīnaḥ. aṣṭau dravyāṇi catvāri mahābhūtāni catvāri copādāyarūpāṇi rūpagandharasaspraṣṭavyāni)”. 

 

이들은 유위의 다르마로서 시간적 지속성을 갖지 못하며 순간적으로 생멸한다.

물질은 여러 극미가 집합된 것으로 인식되며, 단지 하나의 극미 자체가 인식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다.

물질은 공간을 점유하며, 다른 물질이 동일한 공간을 점유하는 것을 방해한다.

소조색과 관련하여 12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는6가지 인간 내부의 인식토대인 눈, 귀, 코, 혀, 몸, 마음과 6가지 인간외부의 인식토대인 물질, 소리, 냄새, 맛, 촉각, 마음의 대상이다.

이 가운데 마음(manas)과 마음의 대상(dharma)을 제외한 나머지가 물질에 해당됨으로 이를 열 가지 물질[十色處] 또는 열 가지물질적 요소[十色界]라고 한다.

설일체유부에서만 인정하는 또 하나의 물질[色]은 드러나지않은 행위[無表色, 無表業, avijñāpti]인데 이는 강력한 선악의 행위의경우 종료 후에도 그 영향이 아직 행위자 자신에게 남아있는것을 말한다.

18계는 12처에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 의식(意識) 등 6식을 각각 더한 것이다.

설일체유부는 두 마음의 동시 생기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음이 일어날때 6식 가운데 하나만이 한 찰나에 작용한다.

둘 이상의 식이 한 순간에 동시에 작용하지 않는다.

전오식(안식 · 이식 · 비식 · 설식· 신식)이 현재의 대상에만 작용하는 것과 달리 의식은 법에 대해 작용함과 동시에 과거 · 미래의 대상에도 작용을 한다.

어떠한 인식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일어나지 않는다.

곧 과거와 미래가 인식대상일 수 있는 한, 반드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24)

과거 · 현재 · 미래가 모두 존재한다는 삼세실유설(三世實有說)은 대상이 없는 인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에 근거한다.25)

설일체유부는 존재요소로서의 다르마를 다섯 상태[五位] 즉

   1) 물질적인 것[色, rūpa],

   2) 마음[心, citta],

   3) 마음의 작용[心所, caitta, citta-saṃprayukta-saṃskāra],

   4) 심불상응행(心不相應行, cittaviprayukta-saṃskāra),

   5) 무위(無爲, asaṃskṛta)의 75종으로 분석한다.26)

 

     24) AKBh, 295-6 (V. 25;633),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미래에선악의 효과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 효과가 발생하는 시점에서 현재의 이숙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바사사는 과거와 미래가 존재한다고주장한다(yadi cātītam na syāt śubhāśubhasya karmaṇaḥ phalamāyatyaṃ katham syāt. na hi phalotpattikāle vartamāno vipākahetur astīti. tasmād asty evātītānāgatam iti vaibhāṣikaḥ)”.

     25) 칼루파하나(Kalupahana)는 ‘Sarvāstivādin’은 곧 ‘모든 것이 존재한다’라는 뜻임을 지적하며, 이는 설일체유부의 주장이지, 초기불교는 과거와 미래, 혹은 시간에 대한 어떤 개념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Kalupahana(1975), 76 참조.

    26) 오위(五位)는 이미 阿毘達磨品類足論(T26, 692b23-24, “有五法 一色 二心三心所法 四心不相應行 五無為”)에서 나타난다. 阿毘達磨俱舍論 「界品」 (T29, 18b16-18, “謂一切法略有五品 一色 二心 三心所 四心不相應行五無為”)에서도 5가지를 언급하지만 75법은 체계화되어 나타나지 않고 후대에 이르러 普光의俱舍論記(T41, 59a)에서 체계화된다. 

 

설일체유부는 시간 또는 과거 · 현재 · 미래를 따로 다르마로상정하여 포함시키지는 않고 있다.

다만 마음이 작용하는 순간[心刹那]의 생 · 주 · 이 · 멸과, 시간적 개념을 배제할 수 없는 득(得, prāpti)을 심불상응행의 영역에 포함시켜 존재의 요소로서 실체시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필연적으로 시공과 연계되어 있어 어떤경우이든 시간적 · 공간적 측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사고능력으로 시간을 극한까지 분석해 들어가면 거의 정지인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고, 정지된 것 같은 초 말미의 순간은 또 다른순간에 의해 거의 동시적으로 대체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동시성은 현상세계의 핵심적 요소인 시간적 연속성을 무효화시키기 때문에 가장 근접한 동시성이 작용하는 순간, 그 시간을 의미하는 분리된 실체에 대한 가정이 상정된다.

아비다르마 논사들은 변화하는 이 세계의 시간적 측면을 최대한으로 분석해 들어간 결과로 찰나(kṣaṇika)를 설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분리성(discreteness)은 공간적 측면에 대한 설명에도 적용된다.27)

찰나설은 항상한 것은 없다[無常]고 규정되는 불교의 현상세계 분석과정에서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찰나설은 이 세상이 한 순간에서다른 순간으로 이어지는 물질적 보존으로 이뤄졌다기보다, 다음찰나가 시작되기 전에 완전히 멸해버리는 존재의 찰나적 연속성―마치 만화영상의 원리처럼―으로 이루어졌음을 설하고자 한것이다.

슈바이저도 찰나설은 세계가 한 순간부터 다음 순간까지물질적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련의 단절된‘순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다음 순간이 시작되기 전에 완전히소멸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을 지적한다.28)

 

     27) 위에서 빠라마누와 아누가 언급된 내용 참조(pp.20-21). 아누의 경우는부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아누와의 결합이 가능하지만 최소단위인 빠라마누는 결합 자체가 불가하다는 논리적인 결함이 있다. 결국 시간도 공간도 극단적으로 분석해 들어가면 결국 낱낱이 분리된 찰나나 극미로귀결되지만 그 자체로서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가화합(假和合)된 존재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바로 이점을 AKBh 에서 바수반두가 지적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박창환(2010) 참조. 

    28) Schweizer(1994), 81. 

 

바로 이 문제점 때문에 설일체유부는 순간의 연속성과 동일성이라는 고유의 문제를설명하기 위해 심불상응행 중 하나인 ‘득(得)’ 이론을 도입했다.

설일체유부는 학파의 기본 입장에 입각한 적절한 해명이 필요했으며, 곧 삼세실유와 찰나설을 양립하게 함과 동시에 자기 동일성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해명해야 했다. 심불상응행이라는 범주가이러한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설일체유부는 다양한 인과론과 함께 5위 75법을 구체화한다.

설일체유부에서 마음(心)은 5위 가운데 하나이다.

마음을 의미하는 또 다른 용어인 의(意, manas)는 12처 가운데 하나이며 식(識, vijñāna)은 5온 가운데 하나이다.

구사론 「근품」에서도이세 용어는 마음을 나타내는 동의어로 간주된다.29)

18계의 경우는 마음을 6식으로 분류하는데 설일체유부는 여기에 의를 더해7심계(心界)로 분류한다.

7심계라 하더라도 다르마로서는 마음[citta] 에 해당하며, 하나의 다르마로 간주한다.

설일체유부에서는 이미과거로 가버린 바로 직전의 마음을 의지처로 하여 새로운 마음이일어나는데 이를 의계(意界)라고 별도로 상정한 것이다.

의식을제외한 전오식은 현재의 대상에 대해서만 작용을 하지만, 의식은과거 · 미래의 대상에 대해서도 작용을 한다.

의식의 대상은 단지협의의 마음의 대상[法]에만 한정되지 않고 모든 존재요소[法]에적용된다.30)

 

    29) AKbh, 61(Ⅱ, v.34), cittaṃ mano 'tha vijñānam ekārthaṃ. ... cittacaitasāḥ. sāśrayālambanākārāḥ saṃprayuktāś ca ... pañcadhā. 阿毘達磨俱舍論, T29, 21c18-19, “心意識體一 心心所有依 有緣有行相 相應義有五”. 阿毘達磨俱舍釋論, T29, 180c3, 7, 12, “心意識一義 心及餘心法有依境界相 相應義有五”.

    30) [표1] 참조. 5온, 12처, 18계를 5위 75법에 대비해 분류한 도표이다.

 

마음의 작용과 마음은 상호 원인[因]과 결과[果]가 된다. 대상이없는 마음이 없는 것처럼 마음은 작용이 있을 때만 실재하는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인과관계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는 특징을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찰나적인 마음이 일어나지만, 이러한마음은 전후 순식간의 찰나에 인과관계가 성립되어 그 마음이 연결됨으로써 결국 개인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성립된다.

설일체유부는한 순간에 한 마음과 여러 마음의 작용이 동시에 발생한다고주장한다.

한 마음이 일어날 때 최소한 대지법이라 불리는 10가지마음의 작용과 유위의 다르마에는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네 가지상태의 다르마(생 · 주 · 이 · 멸)와 다르마 간의 관계를 연결하는작용을 하는 특수한 다르마인 심불상응행 가운데 하나인 득(得)과비득(非得)이라는 다르마가 수반된다.31)

 

    31) 대지법을 포함한 심소법은 다음과 같다. i) 대지법(大地法, 10가지 마음이일어날 때 항상 동반하는 법): vedanā(受), cetanā(思), saṃjñā(想), chanda(欲), sparśa(觸), prajñā(解), smṛti(念), manaskāra(作意), adhimokṣa(勝解) samādhi(三摩地). ii) 대선지법(大善地法, 10가지 좋은 마음을 낼 때 항상 동반하는 법): śraddhā(信), apramāda(不放逸), praśrabdhi(輕安), upekṣā(捨), hrī(慚), apatrāpya(愧), alobha(無貪), adveṣa(無瞋), ahiṃsā(不害), vīrya(勤). iii) 대번뇌지법(大煩惱地法, 6가지번뇌로운 마음일 때 항상 동반하는 법): moha(無明), pramāda(放逸), kauśīdya(懈怠), āśraddhya(不信), styāna(昏沈), auddhatya(掉擧). iv) 2가지 나쁜 마음을 낼 때 항상 동반하는 법: āhrīkya(無慚), anapatrāpya(無愧). v) 소번뇌지법(小煩惱地法, 10가지 천박한 마음을 낼 때 동반하는법): krodha(忿), upanāha(覆), śāṭhya(慳), īrṣyā(嫉), pradāsa(惱), mrakṣa(諂), mātsarya(恨), māyā(誑), mada(憍), vihiṃsā(害). vi) 부정지법(不定地法, 8가지 애매한 마음을 낼 때 동반하는 법): kaukṛtya(惡作), middha(睡眠) vitarka(尋), vicāra(伺), rāga(貪), pratigha(瞋), māna(慢), vicikitsā(疑). 심불상응행법은 각주36 참조. 

 

심불상응행법의 주요 특징은 이 범주에 속하는 다르마가 다른다르마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자기동일성을해명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로서, 이산적(離散的)이고 순간적인두개의 순차적 다르마가 연결될 수 있도록 작용한다.

설일체유부에서 실체라기보다는 논리나 에너지에 가까운 심불상응행법을 이를위해 고안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붙여서 연결시킬수있는가이다.

심불상응행법은 이미 계신족론과 품류족론 단계에서 거의 완성된 형태를 보이며, 대비바사론에 그대로 수용되었다가 구사론에서 독립적 비득(非得) 개념을 추가하여 확정된다.32)

이들은 따라서 몸도 마음도 아닌 것으로 법처(法處) 또는법계(法界)에 해당하며,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오온 가운데 행온에 포섭된다. 5위 75법이 구체화되기 이전 설일체유부의 논서법온족론에서 제법(諸法)은 22근으로 정리되는데, 그 가운데 여근, 남근과 함께 명근이 열거되는 것을 알 수 있다.33)

명근을 심불상응행법에 속한다고 본 다른 설일체유부 전승의 다른 논서와는달리, 명근이 남근, 여근과 함께 열거되고 있는 점이 특이한데 이는남방상좌부의 아비담마와 유사하다.34)

이러한 생명원리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일체법 안에서 작동하게할지가 설일체유부의 과제로 남게 되며, 결국 명근[jīvitendriya]은색법이나 심법이 아닌 물질과 정신을 연결하는 작용으로써 심불상응행법에 배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찍이 법온족론에서심불상응행법 16가지를 소개하였고,35) AKbh에서 14가지 다르마를상정하였던 것이다.36)

 

    32) 이규완(2022), 30.

    33) 法蘊足論, T26, 498b20-24, “梵志問言 根有幾種 世尊告曰 有二十二 何等二十二 謂眼根 耳根 鼻根 舌根 身根 意根 女根 男根 命根 樂根 苦根 喜根 憂根捨根 信根 精進根 念根 定根 慧根 未知當知根 已知根 具知根 此二十二”.

    34) 남방상좌부의 비숫디막가(Visuddhimagga)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Visuddhimagga, 444, “4대종(mahābhūta)으로부터 파생한 rūpa (upādārūpa, 所造色)는 24가지가 있다. 곧, 안, 이, 비, 설, 신, 색, 성, 향, 미, 여근, 남근, 명근, 심사(心事), 몸의 암시, 말의 암시, 공계, 물질의 가벼움, 물질의 부드러움, 물질의 업지성(業智性), 물질의 생성, 물질의 지속, 물질의 늙어감, 물질의 무상성, 음식이 있다(upādārūpānaṃcatuvīsatividhaṃ : cakkhu, sotaṃ, ghānaṃ, jivhā, kāyo, rūpaṃ, saddo, gandho, raso, itthindriyaṃ, purisindriyaṃ, jīvitindriyaṃ, hadayavatthu, kāyaviññatti, vacīviññatti, ākāsadhātu, rūpassa lahutā rūpassa mudutā, rūpassa kammaññatā, rūpassa upacaya rūpassa santati, rūpassa jaratā, rūpassa aniccatā, kabaḷinkāro āhāro ti)”.

   35) 法蘊足論(T26, 500c20-22; 501b20-21).

   36) AKbh, 62. “그러나 [심]불상응행은 득과 비득, [중(衆)]동분(同分), 무상(無想)[과(果) 또는 사(事)], [무상(無想) · 멸진(滅盡)의 두 가지]정(定), 명(命)[근(根)] 그리고 [생(生) · 주(住) · 노(老) · 무상(無常)의 네 가지 유위 有爲)]상(相)이다. 그리고 명신(名身)[ · 구신(句身) · 문신(文身)] 등이다(viprayuktās tu saṃskārāḥ prāptyaprāptī sabhāgatā āsaṃjñikaṃsamāpattī jīvitaṃ lakṣaṇāni ca nāmakāyādayaś ceti)”. 阿毘達磨俱舍論 (T29, 22a6-7), “心不相應行 得非得同分 無想二定命 相名身等類” 

 

마음[心法]과 마음의 작용[心所法]이 수반하고 이의 연결을 위한 심불상응행법에 속하는 다르마 득 등이작용하며 한 개체의 정신면이 구성되고 자기동일성과 지속성이갖춰진다.

마음이 작용하는 공간인 육체와 물질로서의 색법, 마음과마음의 작용인 심법과 심소법, 그리고 심불상응행법이 작용하면서전체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유정이라 불리는 유기체가 형성된다. 이러한 유기체는 삶을 유지하는 동안 다양하고 중첩된 인과관계를 맺으며 지속된다.

 

3.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아비다르마 논서들의 해설

 

아비다르마에 이르러 사대종과 더불어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물질도 상세히 분석된다.

이는 소조색(所造色), 소조(所造) 또는사대소조(四大所造)로 주로 한역되었다.

사대종은 원초적 물질로서 만드는 물질인 반면, 감각기관과 그 대상들은 사대종을 원질로하여 만들어진 물질이다.

그래서 각각 능조색(能造色), 소조색(所造色)이라고도 한다.

설일체유부의 논서 품류족론에 따르면, “소조색은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 신근[5근]과 색 · 성 · 향 · 미[4경]와 촉의 일부와 무표색을 말한다.”37)

 

    37) 品類足論(T26, 692b 26-27), “所造色者 謂眼根 耳根 鼻根 舌根 身根 色聲 香 味 所觸一分及無表色”

 

대비바사론에서도 사대종과소조색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둘 다 11가지라고 설명하고 있다.

 

“모든 사대종에는 열한 가지가 있다. 안처·이처·비처·설처·신처의소의(所依) 그리고 색처·성처·향처·미처·촉처·법처의 소의이다. 모든소조색에도 11가지가 있다. 안처·이처·비처·설처·신처 그리고 색처·성(처·향처·미처·촉처·법처이다.”38).

 

요컨대 사대종은 그 범위가 감각기관과 그 대상이 의지하는바모든 대종을 포괄하는 반면 사대소조는 감각기관과 그 대상에한정된다.

이에 앞서 대비바사론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색이 통틀어2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대종이고 둘째는 소조이며, 이것을 떠나다른 제3의 색체(色體)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39)

또한 소조곧 소조색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 만듦(造)은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인(因)이라는 의미인가, 연(緣)이라는 의미인가? 가령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오류를 볼 수 있다. 만일 인(因)의 뜻이라면, 이 사대종은 소조색에 대하여 다섯 가지의인[五因: 다섯 가지의 인은 여섯 가지의 인40) 가운데 능작인(能作因)을제외한 동류인(同類因) 등]이 모두 없는데, 어떻게 모든 색을 만든다고말할 수 있는가? 만일 연(緣)의 뜻이라면, 모든 소조색은 각기 스스로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법이 전부 이것의 증상연(增上緣)이 되는데, 어떻게 다만 대종으로만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겠는가?

(답) “만듦(造)은 인(因)의 의미이다”고 말해야 한다.

(문) 이 조색에 대해 다섯 가지 인이 모두 없는데, 어째서 인(因)의의미란 말인가?

(답) 동류인 등 다섯 가지의 인이 모두 없다 하더라도 별도의 다섯가지의 인이 있다는 뜻이다.

즉, 생인(生因)ㆍ의인(依因)ㆍ입인(立因)ㆍ지인(持因)ㆍ양인(養因)이다.

이로 말미암아 색을 만들 수가 있다.41)

 

   38) 大毘婆沙論(T27, 664b11-13), “諸四大種有十一種 謂眼處所依乃至身處所依色處所依乃至法處所依 諸所造色亦有十一種 謂眼處乃至身處 色處乃至法處”.

   39) 大毘婆沙論(T27, 663a5-6), “謂所有色摠有二種 一四大種 二所造色 除此更無第三色體”.

   40) 육인(六因)은 상응인(相應因), 구유인(俱有因), 동류인(同類因), 변행인(遍行因), 이숙인(異熟因), 능작인(能作因)을 말한다. 발지론(T26, 920c5-921a10); 대비바사론(T27, 79a16) 참조.

   41) 大毘婆沙論(T27, 663a22-29), “問 造是何義 爲是因義 是緣義耶 設爾何失俱見其過 若是因義 此四大種於所造色 五因皆無 如何可言能造諸色 若是緣義 諸所造色各除自體餘一切法 無不皆是 此增上緣 如何但言大種所造 荅 應作是說 造是因義 問 此於造色 五因皆無 如何因義 荅 雖同類等五因皆無 而別有餘五種因義 謂生因依因立因持因養因 由此能造” 

 

사대종과 소조색 사이에는 6인 4연과 같이 설일체유부에서통용되는 인연론과는 다른 별도의 생인(生因) · 의인(依因) · 입인(立因) · 지인(持因) · 양인(養因)의 5인이 있다는 것이다.

AKBh에는소조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색은 5근과 5경, 그리고 무표이다.

5근이란 안 · 이 · 비 · 설 · 신의감각기관이며, 5경이란 눈 등의 감각기관에 각각 대응하는 5가지 대상즉 색 · 성 · 향 · 미 · 촉을 말한다.

그리고 무표색이 있고 이것들이 색온이다.

거기서 그것은 색 등의 5가지 대상이라고 말했는데, 눈 등은그인식의 의지처이며, 청정색이다. 색 · 성 · 향 · 미 · 촉의 인식의 의지처가 되며, 그 자체로 청정색42)인 바로 그것은 차례대로 안 · 이 · 비 · 설· 신임을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 설한 바와 같다.

‘비구들이여, 눈은내처로서, 사대종에 의지한 청정색이다.’43)라고 자세히 설명하셨다.

 

    42) 야쇼미뜨라(Yaśomitra)는 스푸따르타(Sphuṭārthā)(이후 Sphuṭ)에서 루빠쁘라사다에 대해 “루빠쁘라사다라 함은 [무엇인가?]. 루빠들 그리고 그들의 청정함을 일러 루빠쁘라사다라고 한다(rūpaprasādāḥ iti. rūpāṇi ca tāni prasādāś ca iti rūpaprasādāḥ)”라고 간략히 소개한다. Sphuṭ, 24. 이후 “비구여, 눈은 내처이다. 사대종에 의지한 청정한 색으로서, 색을 가지며 보이지 않고 길항적(拮抗的)이다(cakṣur bhikṣo ādhyātmikamāyatanaṃ. catvāri mahābhūtāny upādāya rūpaprasādo rūpy anidarśanaṃ sapratighaṃ).”라고 설명한다. Sphuṭ, 63.

    43) AKBh, 5. 해당 내용은 “佛告彼比丘 眼是內入處 四大所造淨色 不可見 有對耳鼻舌身內入處亦如是說”으로 雜阿含經 13(T2, 91c5-6)에 근거한다. 阿毘達磨俱舍論(T29, 2b13-20), “論曰 彼謂前說色等五境 識即色聲香味觸識 彼識所依五種淨色 如其次第應知 即是眼等五根 如世尊說 苾芻當知 眼謂內處四大所造淨色為性 如是廣說 或復彼者 謂前所說眼等五根 識即眼耳鼻舌身識 彼識所依五種淨色名眼等根 是眼等識所依止義 如是便順品類足論 如彼論說”. 阿毘達磨俱舍釋論(T29, 161a8-13), “釋曰 色聲香味觸識所依止五種淨色類 次第應知 是眼耳鼻舌身根 如佛世尊言 比丘眼是內入 合四大成 是淨色性類 如此廣說 復次前已說眼等五根 此識依淨色說名眼等根 眼根等識依止 其義如此 若立此義 則順分別道理論 彼論云”. 

 

또는눈 등에 관해서 논했는데, 눈 등은 ‘그 식의 의지처’가 되며, 청정색이다.

안 등 식들의 의지처이다라는 의미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품류족론에도 또한 상응하는(내용이 있는)데, ‘눈이란 무엇인가?

안식의의지처이며 청정색이다’라고44) 자세히 설명한다.”45)

아상가(Asaṅga)의 아비다르마사뭇짜야(Abhidharmasamucca ya)(大乘阿毘達磨集論, 이후 AS)에서도 색온이 모든 색을 말하며, 사대종과 사대소조라고 밝힌다.

사대종의 각각에 대해 설명한후 소조색에 대해 설명한다.

“무엇이 소조색인가?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 색・성・향・미・촉 등의 일부, 법처에 속해있는 색등이다.”46)

 

      44) 品類足論(T26, 692c11), “眼根云何 謂眼識所依淨色”.

      45) AKBh, 5, “rūpaṃ pañcendriyāṇy arthāḥ pañcāvijñaptir eva ca / pañcendriyāṇi cakṣuḥśtrotragrhāṇajihvākāyendriyāṇi. pañcārthās teṣām eva cakṣurādīnām indriyāṇāṃ yathāsvaṃ ye pañca viṣayāḥ rūpaśabdagandharasaspraṣṭavyākhyāḥ. avijñaptiś ceti. etāvān rūpaskandhaḥ. tatra ya ete pañca rūpādayo 'rthā uktāḥ. tadvijñānāśrayā rūpaprasādāś cakṣurādayaḥ. rūpa śabdagandharasaspraṣṭavyavijñānānām āśrayabhūtā ye pañca rūpātmakāḥ prasādās te yathākramaṃ cakṣuḥśrotraghrāṇajihvākāyā veditavyāḥ. yathoktaṃ bhagavatā ‘cakṣur bhikṣo ādhyātmikamāyatanaṃ catvāri mahābhūtāny upādāya- rūpaprasāda’ iti vistaraḥ. yāny etāni cakṣurādīny uktani tadvijñānāśrayā rūpaprasādāś cakṣurādayaḥ. cakṣurvijñānādyāśrayā ity arthaḥ. evaṃ kṛtvā prakaraṇagraṇtho 'py anuvṛtto bhavati. ‘cakṣuḥ katamat. cakṣurvijñānāśrayo rūpaprasāda’ iti vistaraḥ”.

      46) AS, 3, “upādāya rūpaṃ katamat. cakṣurindriyaṃ śrotrendriyaṃghrāṇendriyaṃ jihvendriyaṃ kayendriyaṃ rūpa-śabda-gandha-rasa -spraṣṭavyānām ekadeśo dharmāyatanasaṃgṛhītaṃ ca rūpaṃ”. 大乘阿毘達磨集論(T31, 663b23), “云何所造色 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 色聲香味所觸一分 及法處所攝色”. 바로 앞서 색온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rūpaskandhavyavasthānaṃ katamat. yat kiṃcid rūpaṃsarvaṃ tac catvāri mahābhūtāni catvāri ca mahābhūtāny upādāya. katamāni catvāri mahābhūtāni. pṛthivīdhātuḥ abdhātuḥ tejodhātuḥ vāyudhātuś ca. pṛthivīdhātuḥ katamaḥ. kaṭhinatā. abdhātuḥ katamaḥ niṣyandatā. tejodhātuḥ katamaḥ. uṣṇatā. vāyudhātuḥ katamaḥ. kampanatā”. 大乘阿毘達磨集論(T31, 663b19), “云何建立色蘊 謂諸所有色 若四大種及四大種所造 云何四大種 謂地界水界火界風界 何等地界謂堅鞕性 何等水界 謂流濕性 何等火界 謂溫熱性 何等風界 謂輕等動性”. 위의 소조색에 대한 원문 설명에서는 ‘일부’가 색・성・향・미・촉 모두에 해당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한역본 大乘阿毘達磨集論이나 빤짜스깐다까(Pañcaskandhaka) 원문에 따르면 ‘일부’는 촉에만 해당된다.  

 

이에 대해 주석서인 아비다르마사뭇짜야바샤(Abhidharmasamuccaya-bhāṣya)(大乘阿毘達磨雜集論, 이후 ASBh) 에 보다 자세한 해석이 나타난다.

 

어찌하여 소조색인가? 사대종에 의지하여(upādāya) 생(生) · 의(依) · 입(立) · 지(持) · 양(養) 등의 인(因)에 의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생 등의 인은 대종에 의지한 색(所造色)에 대한 다섯 가지 인에 관한것이다. [생인은] 생기(生起)의 인으로서 그것(大種) 없이는 그것(所造色)이 생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인은] 전(轉)의 인으로서 대종을버리고서 의지한 색이 다른 곳에 의거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인은] 수전(隨轉)의 인으로서 대종의 변이에 의해 그것에 안립한, 의지한 색의 전변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지인은] 주(住)의 인으로서 유사함이 일어날 때 의지한 색의 상속이 단절되지 않고 결합되어대종에 의해 지탱되기 때문이다. [양인은] 집(集)의 인으로서 전(轉)할때 대종에 의해 의지한 색이 증장되기 때문이다.47)

 

    47) ASBh, 3, “katham upādāyarūpam. catvāri mahābhūtāny upādāya janana-saṃniśraya-pratiṣṭhopastaṃbhopabṛṃhaṇa-hetutvena. jananādi hetutvaṃ punar bhūtānām upādāya-rūpe pañcavidhaṃ hetutvam-adhikṛtya. utpattihetutvaṃ tair vinā tadanutpatteḥ. vṛttihetutvaṃbhūtāni pratyākhyāyopādāyarūpasya pṛthagdeśāvaṣṭambhasāmarthyābhāvāt. anuvṛttihetutvaṃ bhūtavikāreṇa tatpratiṣṭhitopādāyarūpavikriyāgamanāt. sthitihetutvaṃ sadṛśotpattikāle bhūtair upādāyarūpasaṃtānasyānupacchedayogena saṃdhāraṇāt. upacayahetutvaṃvṛttikāle bhūtair ūpādāyarūpāpyāyanād iti”. 大乘阿毘達磨雜集論(T31, 696a4), “云何建立色蘊 謂諸所有色 若四大種及四大種所造 所造者 謂以四大種為生依立持養因義 即依五因說名為造 生因者即是起因謂離大種色不起故 依因者即是轉因謂捨大種諸所造色無有功能 據別處故 立因者即隨轉因 由大變異能依造色隨變異故 持因者即是住因 謂由大種諸所造色相似相續生 持令不絕故 養因者即是長因 謂由大種養彼造色令增長故”.

 

이는 앞서 대비바사론에도 나타난 내용이다.

이어서 AS에서는 소조색에 대해 안근(眼根, cakṣurindriya)부터 설명하고 있는데, 루빠쁘라사다(rūpaprasāda)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무엇이 안근입니까?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 안식에 의지한 청정색이다.”48)

루빠쁘라사다는 깨끗한 루빠라는 의미로 ‘淸淨色’ 또는 ‘淨色’으로 한역되었는데, 니까야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유부(有部) 소속의 잡아함경에는 나타난다.49)

바수반두의 빤짜스깐다까(Pañcaskandhaka)(大乘五蘊論, 이후 PSk)에도 소조색에 대한 정의가 보인다.

PSk는 바수반두가대승의 유식으로 전향하는 과도기적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대종으로부터 파생된 색들은 무엇인가?

안근 ・ 이근 ・ 비근 ・ 설근 ・신근, 색 ・ 성 ・ 향 ・ 미, 촉의 일부, 무표색 등이다.”50)

 

    48) AS, 2-3, “katamāni catvāri mahābhūtāni pṛthivīdhātuḥ abdhātuḥ tejodhātuḥ vāyudhātuś ca. pṛthivīdhātuḥ katamaḥ kaṭhinatā. abdhātuḥ katamaḥ niṣyandatā. tejodhātuḥ katamaḥ. uṣṇatā vāyudhātuḥ katamaḥ kampanatā upādāya rūpaṁ katamat cakṣurindriyaṁ śrotrendriyaṁghrāṇendriyaṁ jivhendriyaṁ kāyendriyaṁ rūpaśabdagandharasaspraṣṭavyānām ekadeśo dharmāyatanasaṁgṛhītaṁ ca rūpam. cakṣurindriyaṁ katama catvāri mahābhūtāny upādāya cakṣuvijñānāśrayo rūpaprasādaḥ.” 大乘阿毘達磨集論(T31, 696a13), “四大種者 謂地水火風界 地界者堅勁性 水界者流濕性 火界者溫熱性 風界者輕動性 所造色者 謂眼等五根 色聲香味所觸一分及法處所攝色 眼根者 謂四大種所造眼識所依 清淨色為體 耳根者 謂四大種所造耳識所依清淨色為體 鼻根者 謂四大種所造鼻識所依 清淨色為體 舌根者 謂四大種所造舌識所依 清淨色為體 身根者 謂四大種所造身識所依 清淨色為體”.

     49) 각주 42참조. 有對는 가로막고 있는(對礙) 물질, 곧 10색을 말한다. 반면無對(apratigha)는 극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가로막힌 것이 없는의처, 법처를 말한다. AKBh, 125, “pratighātaḥ pratighaḥ. so 'syāstīti pratighavān ... ”참조.

     50) PSk, 2, “upādāyarūpaṃ katamat. cakṣurindriyaṃ śrotrendriyaṃ ghraṇendriyaṃ jihvendriyaṃ kāyendriyaṃ rūpaṃ śabdo gandho rasaḥ spraṣṭavyaikadeśo 'vijñaptiś ca”. 현장이 한역한 大乘五蘊論(T31, 848b11-13)은 다음과 같다., “云何四大種所造諸色 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 色聲香味所觸一分無表色等”. 

 

또한 오근에 대한 설명에서 안 · 이 · 비 · 설 · 신이 각기 색 · 성· 향 · 미 · 촉을 대상으로 삼는 청정색이라고 기술하고 있다.51)

여기서 청정색이라 함은 대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감각기관이깨끗하고 맑은 물질인 상태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청정색은길항성(拮抗性)을 그 특성으로 하므로 대상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들 논서에 따르면, 나머지 다른 네 스깐다가 정신적 기능인반면 루빠는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요소와 더불어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기관과 그에 상응하는 대상들을 지시한다.

루빠의 범위에각 감각기관의 대상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형태가 없는 냄새· 맛 등도 포괄하는 것으로 이는 루빠가 단순히 물질이나 몸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인식기관과 상응하는 대상을 각기 연계시키는사고는 인식 작용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루빠는 단순히 물질이나 몸으로 이해될 수 없으며, 나머지 4스깐다와 분리되어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다. 위에서 언급한 니까야의 도처에나타나는 “모든 루빠는 과거 · 현재 · 미래이거나, 내부이거나 외부이거나, 거대하거나 미세하거나, 크거나 작고, 멀거나 가깝다고한다.”52)는 기술은 시점과 비교 대상이 있는 상대적 상태에 대한기술이다.

불교에서는 애초부터 루빠를 객관적 실재로만 보지 않았던 것이다.

육신을 포함해 외계의 물질적 · 비물질적 인식대상을포괄하는 오온에서의 루빠의 개념은 단지 육체에 한정되지 않고, 감관이 대상과 접촉하는 순간 대상과 작용까지도 취하게 된다.

우빠다야루빠는 ‘몸과 마음’을 연계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언급했듯이 니까야에는 우빠다야루빠에 대한 언급만 있었을 뿐그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비다르마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논의된 이문제는 북전과 남전 논서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53)

 

    51) PSk, 2, “tatra cakṣurindrayaṃ katamat. varṇaviṣayo rūpaprasādaḥ. śrotrendriyaṃ katamat. śabdaviṣayo rūpaprasādaḥ. ghrāṇendriyamkatamat. gandhaviṣayo rūpaprasādaḥ. jihvendriyam katamat. rasaviṣayo rūpaprasādaḥ. kāyendriyam katamat. spraṣṭavyaviṣayo rūpaprasādaḥ”.

   52) SN.III, 47, 68; Vin.I, 14. 

   53) 각주34 참조. 남방상좌부에서 우빠다야루빠는 북전 아비다르마와 마찬가지로 의근(意根)과 법경(法境)을 제외한 다섯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포괄하고 있다. 비숫디막가에서 거명되는 24가지 다르마는 그 범위가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 포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전 아비달마와 같은명백한 대비의 구조를 보이지는 않고 있다. 촉을 세분화했으며, 무표색에대한 언급이 없다. 

 

우빠다야루빠가 사대종과의 관계에 기댄 감각기관과 그 대상을포괄한 물질로서, 물질과 몸을 매개하며 마음과 연결하는 공시적(synchronical)관계에 작용한다면, 심불상응행법 가운데 득은 개체의 지속성과 동일성에 통시적(diachronical)으로 작용하는 측면이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心法)과 마음의 작용(心所法)이 수반하고이의 연결을 위한 심불상응행법의 득(得)과 비득 등이 작용하며한 개체의 정신면이 구성되고 자기동일성과 지속성이 갖춰진다.

마음이 작용하는 공간인 육체와 물질로서의 색의 다르마와,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법과 심소법, 그리고 심불상응행법이 작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유정이라 불리는 유기체가 형성된다.

 

Ⅳ. 맺음말

 

‘몸과 마음’을 연결시켜 인간이라고 불리는 유기체를 작동하게하는 원리에 대한 의문은 아비다르마 논사들의 숙제 가운데 하나였음이 분명하다.

부파불교 가운데 ‘몸과 마음’의 관계를 가장 면밀히관찰했던 부파가 설일체유부이다.

본 논고에서는 루빠의 정의로서 사대종와 함께 니까야에 언급되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은없었던 소조색을 중심으로 물질과 몸,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를살펴보았다.

설일체유부에 속하는 품류족론, 대비바사론 등에나타난 소조색에 대한 해설을 확인했고, 아상가의 AS와 ASBh에 나타난 우빠다야루빠의 정의를 통해 이들 논서들이 설일체유부의소조색에 대해 일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했다.

곧, AS에서 4대종과 소조색의 관계는 ASBh에서 해설된 바와같이 인(hetu)에 의한 관계이다. 여기서 우빠다야(upādāya)는생인 · 의인 · 입인 · 지인 · 양인을 말한다.54)

요컨대, 4대종은 인식가능태(감각기관과 그 대상)와 연결되기 전의 물질로 해석될 수있으며, 소조색은 인식가능태로서 마음과의 연결이 전제된 물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여러 논서에서 오근을 안 · 이 · 비 · 설 · 신이각기 색 · 성 · 향 · 미 · 촉을 대상으로 삼는 청정색이라고 기술하고있는 점에서도 확인된다.

청정색은 언급했듯이 길항성(拮抗性)을그 특성으로 하므로 대상이 전제되어야 하며, 대상을 받아들일수있도록 감각기관이 깨끗하고 맑은 물질인 상태임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설일체유부와 유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작품으로 간주되는 바수반두의 PSk의 해석도 살펴보았다.

남방상좌부의 비숫디막가의 해석은 각주를 통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설일체유부는 일체법을 소위 5위 75법으로 분류했다.55)

이가운데 심불상응행법은 ‘몸과 마음’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특화된설일체유부의 이론이다.

이는 물질적인 것도 정신적인 것도 아닌이들 관계에 작용하는 논리나 에너지 같은 특수한 법을 의미하는데, 이는 설일체유부의 독특한 해석방식이다.56)

소조색은 대부분의 부파에서 의근과 법경을 제외한 5감각기관과 이에 상응하는 대상으로 해석하므로 마음과 수반한다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대승오온론에도 동일한 정의가 나타난다.57)

 

  54) 각주 47 참조.

  55) 각주 26 참조.

  56) AKBh, 62, “이들은 마음과 상응하지도 않고 루빠의 성품도 아닌 행(온) 이므로 심불상응(행)이라고 한다(ime saṃskārā na cittena asaṃprayuktā na ca rūpasvabhāvā iti cittaviprayuktā ucyante).

  57) 大乘五蘊論, T31, 848b. 云何四大種所造諸色. 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 色聲香味所觸一分無表色等. 

 

반면 AS에는 무표색 대신 법처(法處)에 속해 있는 색이라고 언급된다.”58)

 

    58) AS, 3. “upādāya rūpānaṃ katamat. cakṣurindriyaṃ śrotrendriyaṃghrāṇendriyaṃ jihvendriyaṃ kayendriyaṃ rūpa śabda gandha rasa spraṣṭavyānām ekadeso dharmāyatana samgrhītaṃ ca rūpaṃ”. 玄奘번역의 大乘阿毘達磨集論(T31, 663b) “云何所造色. 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 色聲香味所觸一分. 及法處所攝色.” 

 

곧 어떤 형태로든 소조색은 물질과 정신작용을 매개하는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요컨대, 전적으로 물질이라 볼수도 없고, 정신작용과 연루된 중간적 양태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육체와 물질로서의 색법,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법과 심소법, 그리고 심불상응행법이 작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유정이라 불리는유기체가 형성된다.

이로써 루빠(rūpa)는 단지 물질이나 몸으로만이해할 수 없는 다르마(dharma, 法)로서, 마음(nāma)을 수반할때비로소 그 존재성이 확립된다.

이는 물질과 정신작용은 분리될수없다는 아비다르마의 입장을 반영한다. [표1] 

 

약호 및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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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나마루빠(nāmarūpa)와 관련된 주제는 부파불교에서 가장 맹렬하게논의되었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원한 자아에 고착되어 있었던 인도정통파철학에 반하여 불교도들은 현실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몸과 마음’의 문제를 해명해야 했다. 특히 설일체유부는 나마루빠를 면밀히 분석한 법체계를 완성하여 대승아비다르마의 토대를 제공했다. 본논고에서는 오온(五蘊, skandha) 가운데 루빠(rūpa)의 정의로서 사대종(四大種, Mahābhūta)과 함께 니까야에 언급되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해설은 없었던 소조색(所造色, upādāyarūpa)을 중심으로 물질과 몸, 그리고 몸과 마음의 관계를 아비다르마 논서들을 통해 살펴본다. 이들논서에 따르면, 나마(nāma)가 정신적 기능인 반면 루빠는 물질을 구성하는 근본요소와 더불어 다섯 가지 육체적 감각기관과 그에 상응하는대상들을 지시한다. 육신을 포함해 외계의 물질적 · 비물질적 인식대상을 포괄하는 루빠의 개념은 단지 육체에 한정되지 않고, 감관이 대상과접촉하는 순간 그 대상과 작용까지도 취하게 된다. 소조색 곧 우빠다야루빠는 ‘몸과 마음’을 연계하는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설일체유부의경우는 심불상응행법을 통해 마음과 마음의 작용, 개인의 자기동일성에대한 설명을 보완하고 있다, 육체와 물질로서의 색법, 마음과 마음의 작용인 심법과 심소법, 그리고 심불상응행법이 작용하면서 전체적으로 유정이라 불리는 유기체가 형성된다. 결국 나마루빠에 대한 분석으로 본격화된 몸과 마음의 문제는 물질과 몸, 나아가 몸과 마음이 상호 연계된일체법에 관한 것이라고 아비다르마 논서들은 말하고 있다. 

 

주제어 : 몸과 마음, 색, 소조색, 아비다르마 

 

Abstract

The Mind-Body problem in Abhidharma Buddhism- Centered on Sarvāstivāda tradition

Choi, Kyung Ah (Gangneung-Wonju National Univ.)

The discourse concerning nāmarūpa stands as one of the most vigorously debated topics within Buddhism. In contrast to the rigid adherence to the concept of the eternal self in Indian orthodox philosophy, Buddhists found themselves compelled to address the intricacies of the body and mind in the context of life. Notably, Sarvāstivādin formulated a systematic framework that intricately scrutinized nāmarūpa, laying the groundwork for Mahāyāna Abhidharma. This study delves into the interplay between matter and body, as well as body and mind, as elucidated in Abhidharma treatises, with a specific focus on Mahābhūta and upādāyarūpa. Although mentioned in the Nikāyas alongside Mahābhūta as part of the definition of rūpa, upādāyarūpa lacked explicit elucidation. According to these treatises, while the other four skandhas pertain to mental functions, rūpa encompasses the fundamental constituents of matter, the five physical sense organs, and their corresponding objects. The concept of rūpa of the five aggregates extends beyond the physical body to encompass the material and immaterial objects perceived in the external world. Rūpa even encompasses the object and action the moment the senses come into contact with it, thereby serving to bridge the gap between body and mind. Within the framework of Sarvāstivādin, elucidation on the nature of mind, its actions, and individual self-identity is complemented through various avenues such as rūpa, citta, caitta, citta-viprayukta-saṃskāra, asaṃskṛta, resulting in the formation of a sentient being. Ultimately, the analysis of nāmarūpa reflects the Abhidharma's view of the inseparability of material and mental processes.

 

Key Words : mind-body, rūpa, upādāyarūpa, Abhidharma

 

투고일 2024. 01.27 | 심사기간 2024. 01. 31 - 02. 15 | 게재확정 2024. 02. 17

佛敎硏究제6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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