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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교회 속성에 대한 논의:고전기와 종교 개혁기를 중심으로/양진영.광신大

 

Ⅰ. 들어가는 말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처럼 ‘교회론’의 문제가 부각된 적은 없 었다.1)

소위, ‘교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놀랍지 않을 정도로 일상화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교회론의 현주소는 어디에 있는가? 현대 교회가 추구하는 성경적 교회는 무엇인가?

역사를 거슬러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 325)에서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451)2) 에서 규정한 ‘교회의 속성’ 곧, 교회는 ‘하나이며, 거룩하며, 보편적이며, 사도적인’ 교회의 정체성은 그 모습을 잘 드러내는가?3)

오늘 현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어떤 속성을 드러내고 있는가?4)

 

    1) Edmund P. Clowney, The Church, Contours of Christian Theology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1995), 14.

    2) 니케아 공의회(First Council of Nicaea, 325)에서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 451)까 지를 편의상 “니케아-칼케돈 공의회”로 칭한다.

    3) 교회 속성에 대한 문구, “(I Believe)... in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Church...”는 니케 아 공의회를 거쳐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에 확정되어 우리에게 왔다. Philip Schaff, The Creeds of Christendom with a History and Critical Notes, vol. Ⅰ (Grand Rapids: Baker, 1983), 28-9, 그런데도 여기에 칼케돈 공의회까지 연결한 것은 본 고를 교회 속성과 기독론 관계 가운데 전개하고자 함이다.

   4) Daniel L. Akin, et al., Theology for the Church (Nashville: B & H Publishing Group, 2014), 610-2.

 

교회가 그 역동성을 회복하고 본연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 는 무엇보다 교회의 성격이 규명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교회 성격으로 드 러난 것이 ‘교회 속성’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교회에서 ‘교회 속성’에 대한 언급은 자주 하지 않는다.

일반 성도들은 ‘교회 속성’에 대해 낯설어 한다.

아니면, ‘교회 속성’은 그저 신학자들의 학술 연구나 신학교 강단에 서 약간 언급될 뿐이다.5)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교회 속성’은 신학자들 이 언급하는 전문 용어로만 굳어져 가는 듯 보일까?

과연 교회 속성을 알 지 못한 채 교회로서 그 정체성과 사명은 정당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는 어디서 기인한 것일까?

이것을 위해 우선 역사적 니케아-칼케돈 공의회를 통해 논의되었던 것 이 무엇인지 살펴본다.6)

왜냐하면, 초대교회 이후로 고대 신경의 하나인 니케아 신경에서 교회 속성에 대해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역사적 으로 형성된 그 신조가 추구한 것이 무엇이고, 또한 그 한계와 그 함의가 무엇인지를 돌아본다.

그 후에는 참된 교회를 나타내기 위해 교회 표지를 강조했던 종교 개혁기를 살펴본다.7)

이를 통해, 교회 표지와 달리 ‘교회 속성’이 희미해진 이유를 살펴보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교회’ 되기 위 해 바른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으로서 ‘교회 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지 검 토한다.8)

 

    5) 「한국개혁신학」에서 학술지 검색을 통해 발견되는 교회 속성은 단지 2건뿐이다. 2023년 6월 검색; 「조직신학연구」에서도 교회 속성과 관련된 것은 3건뿐이다(은사 이해, 교회 일치, 교회의 연합). 2024년 10월 검색.

    6) 3대 신경으로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과 사도신경이 있다. 영국 국교회의 39조 신조는 이 3대 신경을 전통적인 신경으로 강조한다. John V. Fesko, The Theology of the Westminster Standards, 신윤수 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8), 216.

   7) 김재윤은 고전기의 기독론 논쟁이 종교 개혁기의 성찬론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리스 도의 양성론에 대한 주장이 성찬 논쟁을 결정짓는 함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재윤, “‘속성간 의 교류 교리와 그 함의에 대한 일고찰 – 루터와 본회퍼를 중심으로 – ”, 「한국개혁신학」 55 (2017): 238-40, 여기서 기독론은 교회 속성 문제에 대한 함의를 가진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 과 교회 속성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각주 60 참고.

    8) 이승구는 복음주의 계열에서 교회 속성과 교회 표지를 구분 없이 사용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며, 이 구분이 참 교회를 규정하기에 필수적이었던 것을 염두에 두어 그 구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이 승구, “교회의 속성들과 교회의 표지들의 관계성”, 「신학정론」 37/1 (2019): 430-4, 하지만, 본 고 는 교회 표지를 드러냈던 종교개혁의 전통이 현대는 오히려 약화되었음을 드러내며, 그로 인해 잃어 버린 듯한 교회 속성을 다시 소환(recall)해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현대에 갱신되어야 할 교회의 ‘새로운’ 또는 ‘보충되 고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교회 속성을 중점으로 살펴본다. 

 

Ⅱ. 역사적 산물로서의 니케아-칼케돈 신조의 한계와 그 함의

 

초대교회부터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까지의 약 400년의 소위 ‘고전기’ 는 기독론의 뿌리가 세워지는 시기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에 대한 삼위일체론과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며 하나 님이신지에 대한 양성론에 대한 중대한 논의를 통해 정통신앙이 형성된 다.9)

특히, 기독론(Christology)은 기독교 신학의 정수이자 가장 오래된 주 제로, 2,000여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 는 누구신가?”라는 고백의 역사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시 대마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와 사상과 전통과 환경에 따 라, 그리스도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해 왔다.

그리고 당연히 그 시대 정신 과 문화, 세계관에 따라 그 질문과 대답이 달랐으며, 이것을 살펴보게 되 면 그 당시 시대의 정신과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10)

 

     9) 이에 대한 논쟁의 대상자들은 아리우스주의, 테오도레투스주의, 네스토리우스주의, 유티케스주의와 같은 쟁쟁한 반론들이 있었다. 이후로는 어거스틴과 펠라기우스의 인간론 논쟁이 이어진다.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Ⅲ (Grand Rapids: E. Bible Society, 2002), 523-38; 김은수, “‘공교회의 고전적 정통 삼위일체 교리’의 정립과 발전 역사에 대한 연구”, 「조직 신학연구」 27 (2017): 308-45.

    10)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8), 10; 김상엽,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 리에 대한 워필드의 변증”, 「한국개혁신학」 63 (2019): 257-8.

 

1. 역사적 공의회, 니케아-칼케돈 공의회

 

당시 유대 사회는 언제나 외세의 침략과 압제 속에 놓여 있었고, 그런 가운데 그리스-로마의 지배 아래 초기 신학적 토대가 형성되는 길은 전혀 쉽지 않았다.

물론, 그런 문화권의 긍정적인 요소도 있어서 선교 사역을 통한 복음은 소아시아로 확장되어 갔다.

그러나 여전히 기독인들은 박해 와 순교를 당했고, 유대 사회 전반에 걸친 각 당파의 분열과 기득권 싸움 이 가득했다.

그런 가운데도 성경이 정경화 되면서 오히려 이와 같은 기독교 교리의 토대를 낳았다는 것이 당시의 급박했던 신앙의 기초가 어떠했 는지를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11)

구체적으로, 2~3세기의 교부들은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구약을 해석 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 이유는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현현, 혹 은 흔적을 찾음으로 기독교와 유대교를 구별할 수 있었고, 가현설, 군주 신론 등을 주장하는 이단과의 논쟁뿐만 아니라, 삼위일체론의 정립을 위해서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12)

4세기는 기독교 역사와 신학 모두에 서 전환의 시대였다.

무엇보다 오리겐의 그리스도에 대한 종속론 사상 (subordinationism)은 끊임없이 논쟁이 되었다.13)

당시의 기독론에 대한 흐름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오리겐의 종속론을 다듬어 체계화하는 것 으로 그것은 아리우스주의(Arianism)으로 나왔고, 또 다른 하나는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확고히 하는 것으로 그것은 니케아의 신학으로 나타 났다.14)

 

    11)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나용화 역, 『최신조 직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739-40.

    12)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80-1.

    13) 제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Second Council of Constantinople, 553)에서 최종적으로, 이단으 로 정죄되었지만, 그의 영향은 지대했다.

   14) 그 당시는 어느 것이 정통되느냐의 사활을 건 싸움이었고, 만일, 이 싸움의 결과가 반대로 되었다 면 기독교의 신앙고백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 758-63.

 

그러나 이 신조는 451년 칼케돈 신조가 만들어질 때까지 모든 교회의 신조로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약 50년 동안 교회는 니케아의 옹호자들과 아리우스주의자들 사이에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거기에 이제는 ‘양성 그 리스도론’(doctrine of two natures)에 대한 이슈가 새롭게 부각 되면서 혼 란을 가중했다.

드디어 451년 10월 8일 칼케돈에서 제4차 공의회가 열렸 다.

이때는 오직 ‘그리스도론’에 집중되었다.

칼케돈 신조에서 가장 중요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vere Deus, vere home) 으로 선언하면서, ‘두 본성과 한 위격’에 대한 교리를 확립한 것이다.15)

결 국, 5세기에 가서야 양성 그리스도론이 정립되는 중요한 시기를 맞이하면 서, 그리스도의 신비(Mysterium Christi)에 대한 교리가 수립되기에 이른 다.16)

이와 같이, 니케아 공의회를 거쳐 칼케돈 공의회가 열리기까지의 시대 는 모든 질문과 대답이 오직 예수에 관한 것이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 도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다양했고 때로는 과격하기도 했다.17)

이러한 신 학 논쟁 역사에 대해서 역사학자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이런 말을 했 다.

 

“진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에 증오(odium)와 신학에 대한 과도한 욕구 (rabies theologorum)가 상당 부분 뒤섞여 있었다.” 18)

 

이에 대해, 잭 로저 스(Jack B. Rogers)는 기독론 논쟁이 끊임없이 이어져 갔고, 칼케돈 공의 회에 이르기까지 총 네 개의 공의회에서 기독론에 각각 이바지했다고 말 한다.19)

 

     15) B. B. Warfield는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리가 기독교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김상엽,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리에 대한 워필드의 변증”, 271-4.

     16) “시기적으로는 그리스도와 성부의 관계를 추구하는 삼위일체론적 논의가 먼저였으나, 내용적으 로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질문이 먼저였다. 오히려 삼위일체론은 그리스도론에 대한 답변이었다.” Paul Tillich,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From Its Judaic and Hellenistic Origins to Existentialism, ed. Carl E. Braaten (New York: A Touchstone Book, 1968), 79. 다른 어떤 회 의보다 더욱 큰 가치가 있는 점은, 이 회의 역시 치열한 논쟁의 연속이었지만, 다른 회의와 다르게 서방과 동방의 대표들이 함께 참여한 회의였다는 점이다. 이 신조는 동방 정통교회, 로마 가톨릭교 회, 그리고 개신교회가 다 같이 사용하는 유일한 신조로, 그 전통에서 각 교파의 신조가 파생한다 는 점에서 매우 고매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272-4.

    17)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770-89.

    18)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25.

    19) 니케아 공의회(325)는 아리우스를 반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참으로 신이심을 강조하였고, 콘스 탄티노플 공의회(Council of Constantinople, 381)는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를 반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인간이심을 강조하였고, 에베소 공의회(Council of Ephesus, 431)는 네 스토리우스(Nestorius)를 반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통전적 인간이심을 강조하였다. 칼케 돈 공의회(451)는 유티케스(Eutyches)를 반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신성과 인성이라는 두 개의 본성을 가지고 계심을 강조하였다. Jack B. Rogers, Presbyterian Creeds, 차종순 역, 『장로교 신 조』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3), 60.  

 

정리하면, 사도와 교부들 시대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이단적 해석 가운데 기독론의 초석을 놓은 때다.20)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그 당시의 언어와 문화와 사상과 전통과 환경 가운데 가장 중대한 것이었다. 왜냐하 면, 기독교가 태동하면서 마주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교회 공동체를 지키는 데 우선적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21)

즉,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니케아 신조는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에 대 하여 가르친 것을 교회가 어떻게 이해하였는가를 표현하며, 하나님과 예 수와의 관계, 인간으로서 우리와의 관계를 질문한다.

그 핵심은 구원이며, 니케아 신조는 이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다.22)

결과적으로, 오랜 시간의 논의와 몇 차례의 공의회를 거쳐, 니케아-칼케돈 공의회에 이르러 교회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공식적 입장을 가지게 되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 다.23)

 

   20) 니케아 공의회 이전까지의 교부들은 그리스도의 ‘존재’에 초점을 두고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하에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그의 ‘위격’을 살피는 ‘존재론적 유형’으로서의 기독론 (ontological Christology)에 대한 문제와 그리스도의 ‘역할’에 초점을 두고 ‘그리스도는 무슨 일 을 하셨는가?’라는 질문하에 그리스도의 ‘역할,’ 곧, 그리스도의 사역을 살피는 ‘구원론적 유형’으 로서의 기독론(soteriological Christology)에 대해서 논의해야만 했다. 그중에서 존재론적 기독 론은 상당히 많은 교부에 의해 나타났고, 클레멘트는 그리스도의 선재(pre-existence)와 선재한 그리스도의 ‘영’ 사상을 피력하였다. 성육신 이전의 그리스도를 ‘선재한 영’으로 보았다는 것은 중 요한 기독론의 초석이자, 초기 삼위일체론의 흔적도 보인다. 헤르마스의 ‘목자’에는 그가 그리스 도를 선재로 이해하고, 삼위일체에 대한 인식도 있어 보이나, ‘아들은 성령이다’고 말함으로 ‘이 위일체론’을 가진 것으로 보이고, 뚜렷하지 않다. 다만, 실천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 다. 2세기 초 안디옥 감독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7개의 서신을 남겼는데, 죽음을 앞두고 짧 은 시간에 쓴 것이기에 신학적 균형이 부족하지만, 그 논지는 교회의 분열을 걱정하고 교리적 이 유로 교회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다. 주제가 다양했지만, 그의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로 드러난 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인식하고, 특히, 그는 가현설을 경계하였기에 성육신을 강조하는 데, 이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선재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다. Issac A. Chavez, “The Catholic Ecclesiology of St. Ignatius of Antioch,” (Th. M. Thesis, Dallas Theological Seminary, 2012), 4-8;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62-9

    21) 마르키온(Marcion)의 성경해석도 2세기 교회에 상당히 위협적이었는데, 자기 기준에 따라 성경을 해석함으로 어떤 경우 영지주의와 비슷하기도 하고 차이가 있기도 했다. 영과 육의 이원론적 구조 와 악의 문제 등에서는 영지주의와 흡사했지만, 영지주의와 같이 학파를 만들어 신비하고 비밀스 러운 의식을 하지 않고 교회를 세웠다는 점은 달랐다. Wouter J. Leiden Hanegraaff, Dictionary of Gnosis & Western Esotericism (Boston: Brill, 2006), 403-5.

    22) 중세에 이르러서는 니케아 신조에다 무엇을 덧붙일 것인가 하는 논의가 또다시 논쟁과 분열을 이 끌었는데, 성령에 관하여 ‘아버지로부터 발출한다’는 것에 ‘그리고 아들로부터(filioque)’를 첨가하 는 것에 대해서 동방과 서방은 분열하게 된다. Jack B. Rogers, 『장로교 신조』, 62.

    23)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27-9; 결국, 교회가 갖게 된 그리스도론으로부터도 교회의 성격 역시 규명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기인하고 역사하고 목표되기 때문이다.밀라드 에릭슨(Millard Ericson)은 사도 바울의 서신 구조가 함축적인 삼위일체론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교회를 이해하는 방식에서도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전’으로 나타나는 점을 주목했다. Millard Erickson, Christian Theology, 신경수 역, 『복음주의 조직신학 상, 하』 (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225-6; 현대도 진행되는 논의는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Sang Hwa Han, “Currunts in Christological Debates,” 「조직신학연구」 22 (2015): 51-90

 

2. 역사의 산물로서의 교리의 한계와 그 함의

 

니케아-칼케돈 신조는 지금까지 정통신앙의 기준이 된 고백의 형태를 가진 ‘선언’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 승천하신 후 400여 년의 역 사 가운데 그 시대가 요청한 것이었고, 그런 요청은 당시의 시대, 문화적 상황과 당시 제국을 다스리던 콘스탄틴(F. V. A. Constantinus, 273-337) 의 정치적 배경을 배제하고도 생각할 수 없다.24)

 

     24) 니케아에 총회를 소집할 당시, 수많은 사람은 박해 기간 입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한쪽 눈이 빠졌고, 어떤 사람은 불붙은 인두로 고문을 당한 흔적을 가지고 있었고, 어떤 사람은 은 둔하여 금욕주의 생활을 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 역사적 핍박의 잔해가 남겨진 상황 속에서 콘스탄 틴은 통일된 제국은 통일된 교회를 가져야 정치적 안정을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즉, ‘교회 내의 불 일치’는 어떠한 전쟁보다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영향력이라면 양쪽의 힘을 균 등하게 하여 확고한 해결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선포하기를 ‘동일본질(homoousios)’라는 개 념을 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낳으신 분이며 만들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 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다”는 수정안이 통과되기에 이른다. Jack B. Rogers, 『장로교 신조』, 48, 54-5. 즉, 콘스탄틴의 정치적 목적으로 회합 된 니케아는 겉으로는 일치된 고백을 얻은 것 같지만, 속으로는 양자 간에 교리적 타협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위 정통신앙이 라고 고수하는 곳에 니케아-칼케돈의 정통성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오히 려 그것이 낯선 역사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앞서 니케아-칼케돈 공의회는 역사적 산물로 그 한계가 보이지만, 그런데도 그런 한계 속에서 도 현대 교회에 적용 가능한 함의를 발견해야 한다.

  첫째,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살펴봄에 있어서 최종적 주제는 언제나 ‘언어’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 언어가 전달하려는 ‘기본적 의미’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기독론 역사에서 초기에 사용되었던 ‘언어’는 형성 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니케아 공의회가 진행되던 4세기 동안 그 시대의 지배적인 철학은 궁극적인 실체를 ‘본질’(substance) 혹은 ‘본연’(essence) 이라는 단어와 일치된 뜻으로 사용하였으며, 스토아 철학에서는 이 단어를 ‘본체’(hypostasis)로, 그리고 플라톤 사상에서는 ‘본질’(ousia)로, 희랍 어들은 라틴어로 ‘본질’(substantia: substance)로 번역되었다.25)

이런 점 을 고려하면, 중요한 것은 ‘언어’ 자체보다 언어에 담긴 ‘의미’다.

즉, 니케 아 신조는 하나님을 무엇이라고 말하더라도 예수는 바로 그 하나님과 동 일하며, 인간을 무엇이라고 말하더라도 예수는 바로 한 분 온전한 개체 (Prosopon)이신 그 인간이시라는 사실을 전하고자 했다.26)

   둘째, 니케아-칼케돈 신조(또한, 다른 신조들)는 역사적 산물이다.27)

교리는 어디까지나 교리다. 교리는 신앙이 아니며 그 자체로 구원을 보장 하지는 않는다.

교리는 언제나 새롭게 연구되고 재해석되어야 하며, 경직 되어서는 안 된다.

당시 기독론에 대한 논의와 정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론은 열려 있고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28)

칼케돈 공의회에 이르는 과정은 역사였고, 그 역사 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수많은 질문은 결국은 누 군가에 의해 답변이 이루어지어야 할 신학적 주제들이었다.29)

 

     25) Augustine, On the Holy Trinity, A Select Library of th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ed. Philip Schaff, trans. William G. T. Shedd (Buffalo: The Christian Literature Company, 1887), 7.5.10.

     26) Jack B. Rogers, 『장로교 신조』, 64-5.

    27) Alister E. McGrath, Heresy: A History of Defending the Truth (New York: HarperCollins Publishers, 2009), 47-54.

    28) 김상엽의 “그리스도의 두 본성 교리에 대한 워필드의 변증”에서 슐라이허마허보다 알브레히트 리 츨이 학파를 형성하며 자유주의 신학을 크게 형성시켰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상엽, “그리스도 의 두 본성 교리에 대한 워필드의 변증,” 261-6. 29) J. Ryan Davidson, “Nicea and Chalecon After Modern Christologies: Herman Bavinck as Exemplar in Engaging Christological Development,” Bulletin of Ecclesial Theology 6/1 (Jan. 2019): 66-68.

 

한편, 만일 니케아-칼케돈 신조가 없었다면 그것은 마치 초석이 없는 교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역사의 산물로 니케아-칼케돈 신조에 빚지고 있 다는 것도 역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니케아-칼케돈의 최고 신학자들의 실존을 건 길고 큰 싸움의 결 론은 ‘그리스도의 신비’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어느 시대든, 그당시 시대적, 역사적 요청 가운데, 끊임없이 성경적 대답을 찾아가며, 시 대의 요청에 부응하지만, 결국 인간의 한계는 드러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 면, 그리스도는 ‘신비’ 자체이시고, 인간은 ‘한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니케아-칼케돈 신조에 대한 역사적, 신학적 논의는 어떤 신조 자 체를 절대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오늘을 포함하여 그 어느 시 대든 우리 기독인은 ‘그리스도’로 인해 묻고, 대답하고, 살아야 한다.

   넷째, 당시 고대 신조를 통해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 기독론을 확보하 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면, 이제 현대 교회에 가장 긴급한 역사적 요청은 ‘교회론’에 대한 질문이다.30)

 

       30) Edmund P. Clowney, The Church, Contours of Christian Theology, 14. 31) 기독교 신앙 가운데 예수가 뛰어난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양자 그리스도론(Christology of adoptionism)’은 역사의 과정에 꾸준히 일어났다. 기독교 초기에 발생한 이런 종류의 이단성은 시 대를 거쳐 17세기 이신론, 19세기에는 합리적 관점에서 접근한 자유주의도 유사한 형태이거나 이 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20세 중반 이후 역사비평 방법으로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는 그리스 도론에서도 이런 요소 - 예수를 위대한 예언자, 랍비, 은자, 혁명가, 현자로 묘사 - 가 보인다. 또 한, 이념과 연관해서도 사회주의적 경향의 성서해석, 해방신학, 민중신학 그리고 영국과 북미의 유 일신격론(unitarianism)이 또한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 결국, 역사상 일어났던 예수의 양성을 배격하려는 모든 시도는 예수의 인간됨과 신성을 약화시키며 예수를 하나님의 능력 속에서 이해하 려는 시도들이다. ‘가현 그리스도론’도 지금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아 있다. 가현 그리스도론도 2세 기의 형태 그대로 전승되지는 않았지만, 몇 가지 특징은 기독교에 끈질기게 남아 있다. 가현 그리 스도론의 근저에는 ‘신은 역사 안에서 고통받을 수 없다’는 ‘불가고통성’(impassibility) 사상이 들 어 있다. 그러므로 가현 그리스도론은 역사와 세계에 대한 경시가 일어나는 곳에는 언제나 출현할 수 있다. 또한 가현 그리스도론은 이원론적 경향이 강한 곳에서 나타난다. 영을 강조하고 육을 낮 게 보는 문화에서 흔히 보인다. 아울러 샤머니즘과 신비적 체험이 강조되는 교회에서 나타나기 쉽 다. 예수의 사역과 십자가보다는 부활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신학전승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의 세계이며, 역사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리스 도인의 소명 현장이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역사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성육신하여 역사 안으로 들어왔다. 우리의 구원은 ‘역사와 함께’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사』, 43-54; 정재권, “존 웨슬리와 디트리히 본훼퍼의 공동체적 교회론 비교 연구” (박사학위논 문, 호서대학교, 2011), 93-105.

 

오늘 현대 교회에도 얼마나 많은 신학적 도 전이 산재해 있는지 조금만 둘러봐도 우리는 쉽게 판단할 수 있다.31)

동성 애자들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으며, 현대 문 명에 맞춘 귀에 듣기 좋은 복음주의 설교들과 많고 큰 것이 좋다고 여기 는 물량주의 속에 일어나고 있는 세속적 외형주의화 현상 등, 포스트모더 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교회론’의 문제는 너무나 심각한 지경이다.

결국, 이런 문제들은 교회가 어떤 신조 위에 세워졌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32)

지금과 같이 분열의 유행되는 시기에, 올바른 신학 안에서, 역사 이래로 모든 동서양 기독 지도자들이 모여 함께 고백한 칼케돈 신조와 같은 역사가 시급하다.33)

 

    32) J. Gresham Machen, Christinaity and Liberalism (Grand Rapids: Wm. B. Eerdman Publishing Co, 2009), 133-52, 교회론의 문제는 단지 교회에 대한 이해의 부족을 말하는 것이 아 니라, 교회를 누가 세웠는지에 대한 ‘삼위일체론,’ 교회가 어디에 기초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독 론,’ 교회 가운데 구원 적용 사역을 누가 하는지에 대한 ‘성령론’ 그리고 하나님 나라와 교회라는 관점에서의 ‘종말론’ 등을 모두 포함한다. 송영재, 『더 뉴커버넌트 신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307-16.

    33) 다른 어떤 회의보다 더욱 큰 가치가 있는 점은, 이 회의 역시 치열한 논쟁의 연속이었지만, 다른 회 의와 다르게 서방과 동방의 대표들이 함께 참여한 회의였다는 점이다. 이 신조는 동방 정통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개신교회가 다 같이 사용하는 유일한 신조로, 그 전통에서 각 교파의 신 조가 파생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매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동건, 『그리스도론의 역 사』, 274-5. 

 

Ⅲ. 교회 속성의 재정립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의 Decoding the Church에서는 니케아 신조를 언급한다.

그 이유는 니케아 신조에서 언급하는 교회에 대 해 즉, ‘교회가 하나이며, 거룩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이라는 부분은 대 단히 모호하며 교회에 대한 반쪽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래서 이 신조를 확장하여 ‘교회는 하나일 뿐 아니라 다양하고, 교회는 거 룩할 뿐 아니라 은사적이고, 교회는 보편적일 뿐 아니라 지역적이며, 교회 는 사도적일 뿐 아니라 예언자적’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 그는 교회론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였다. 한 마디로, 스나이더는 니케아 신조에서 선언하는 교회 속성에 대해 그 속성만으로는 교회를 온전히 드 러내는 데에 있어 정면으로 비판한다.34)

 

     34)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니케아 신조의 교회 속성을 언급하기 전에 앞서 자유감리 교회(Free Methodist Church)의 벤자민 로버츠(Benjanin T. Roberts, 1823-1893)가 말한 교회의 본질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면서 교회의 가난한 자를 향한 복음 전파야말로 교회의 사도성을 드러낸다고 말한다.이러한 언급은 향후 자신이 논의할 니케아 신조의 교회 속성의 모호성에 대한 주장 과 연관된다. Howard A. Snyder, Decoding the Church (Grand Rapids: Baker, 2002), 17-34.

 

1. 교회 속성에 대한 비판과 그 재고

 

스나이더는 우선 교회 속성을 언급한 니케아 신조를 의문시한다.

왜냐 하면, 교회는 통일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교회 속성은 교회 성격을 모두 포함하지 못하고 반쪽짜리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그래 서 주장하기를, 니케아 신조에서 언급되는 교회의 속성, “하나이며, 거룩 하고, 보편적이며, 사도적인”에서 교회의 다른 한쪽이 있는데, 그것은 “다 양하고, 은사적이고, 지역적이며, 예언자적”인 면으로 교회 속성이 온전하 기 위해 그 모두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의 회의를 통해 고백 된 교회의 속성은 당시의 상황을 파 악하는 것과 함께, 왜 이런 ‘교회의 속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용 이 더욱 중요하다.35)

그가 언급한 니케아 신조에서 발췌한 ‘교회’에 대한 표지는 그 신조가 형성될 때 주된 논의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선 아래 신조 의 내용 면에서 발견할 수 있다.36)

 

      35) 마찬가지 예로, 콘스탄틴은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는 하늘에서 승리의 십자가 표시를 보았고, 그 위 에는 “이 표지로 정복하라(In hoc signo vinces)”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의 권 좌를 위한 막센티우스와의 맹렬한 전투에서 승리하며 최고의 통치자가 되었고, 그 유명한 ‘밀란의 칙령’을 통해, 교회에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게 된다. 박용규, 『초대교회사』, 106-7, 그 이후 321년 일요일(Sunday)은 예배의 날로 규정된다. 이 일에 대해서 콘스탄틴이 하나님을 믿었는지 태양신 을 믿었는지 논의가 되면서, 이날을 해석하려고 할 때, 고대의 위대한 지도자, 제롬은 이런 말을 했 다. “이교도들이 이날을 태양의 날이라고 부른다면, 우리도 그 호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왜냐하 면, 세상의 빛이 나타나시고 공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신 날이 바로 이 날이기 때문이다.” Grant R. Jeffrey, Unveiling Mysteries of the Bible (Toronto: Frontier Research Publications, 2002), 261, 즉, 이 ‘해(Sun)’가 무엇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에서 그 날 을 구별되어 정해서 거룩한 예배의 날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36) Kevin Giles, What on Earth Is the Chruch? 홍성희 역, 『신약성경의 교회론』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9), 311.

 

우리는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만물을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 한 하 나님을 믿사오며, 하나님의 아들, 성부에게서 나신 독생자, 즉 성부의 본질 (ousis)로부터 나신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요, 나셨으나 지음 받지 않았고 성부와 동질(homosios)이시며 그를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으며, 그는 우리 인간과 우 리의 구원을 위하여 강림하사 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사 하늘에 오르셨으며,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을 심 판하시기 위해 오시리라. 또한 우리는 성령을 믿는다... 그리고 ‘그는 존재하 지 않았던 때가 있었다’거나 ‘태어나기 전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그 는 무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자들이나 혹은 하나님의 아들은 ‘다른 본체(hypostasis)나 본질(ousia)로부터 나신 것’이라거나 혹은 ‘피조되 었다거나 혹은 ‘변경’과 변화’에 종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해서 보편 적(가톨릭)이며 사도적인 교회는 이를 정죄한다.37)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조는 역사적 산물로 그 시대의 언어로 이해 하기 위해 먼저 역사적 정황을 이해해야 한다.38)

당시에 형성된 진술은 교 회의 기초가 되는 기독론 형성에 위대한 가치를 가진다.

그것은 그 신조가 성경을 모두 포함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 당시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 여, 무엇보다 교회의 기초이자 중심인 삼위일체 신조와 기독론을 정립했 기 때문이다. 그 몸 된 교회를 위해 오신 예수가 과연 어떤 분인지, 삼위일 체 하나님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기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조를 정 립한 시기였다.

과거 기독론의 전제 없이 오늘의 교회론을 제시할 수 없다 는 면을 상기한다면, 니케아-칼케돈 신조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비판은 적 어도 하나의 교리가 나오기까지 그 신학적 노고에 대한 경의와 교리에 담 긴 내용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물론, 현대에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신조(또는, 교의)39)에 대한 일반적성찰도 필요하다.

 

     37)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Ⅰ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877), 28-9.

     38) Alister E. McGrath, Heresy: A History of Defending the Truth, 108-14.

    39) ‘교의(dogma)’의 어원은 ‘좋게 보이는 것’이라는 매우 흡족할 만한 의미를 오히려 가지고 있다.

희랍철학에서 교의는 영원토록 확정된 공리적인 원리를 말한다.모든 사람에게 명백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논의가 필요 없는 것을 말한다. 종교적으로 ‘교의’라는 단어는 교회의 회의(church council)같은 어떠한 권위 있는 기구에 의하여 작성되고, 이 기구에서 신적인 권위가 있다고 선언 한 교리를 말한다. Jack B. Rogers, 『장로교 신조』, 30. 

 

현대는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가진 신조보다 개인의 경 험이나 개교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현대 교회가 추구 해야 하는 방향을 개인의 의견이나 교회에서 해 왔던 것을 중심으로 형성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조에 담긴 교회 속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가 무엇인지, 그 표지가 무엇인지, 그 본질과 사명에 충실한 성경적 산물 이다.

그런 점에서 스나이더가 교회의 통일성과 다양성에 대한 교회 성격 을 위해 그 신조가 가진 함의를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반쪽짜리로 보인다 고 한다면, 그것은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가 인용하고 있는 니케아 신조는 어떤 면에서 자기가 원하는 주제를 위해 ‘골라잡기’ 하려는 위험성이 보인다.

더 나아가, 스나이더가 말하는 강조점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교회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 로서 하나이고 다양하나 그 다양함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한다. 몸의 비유는 보편성과 특수성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40)

교회는 그래서 다양한 은사가 무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거룩한 성령 안에서 은사가 활용되어 교 회를 세워가야 한다.41)

 

     40) 송영재, 『더 뉴커버넌트 신학』, 298.

     41) 교회의 은사론과 관련된 연합사역에 대한 개혁주의 견해를 잘 확인해야 한다. 이신열은 한스 큉의 견해를 비판한다. 본고에서의 논쟁점이 아니기에 생략하지만, 교회 속성론에서 ‘은사’ 문제 역시 중요하다. 이신열은 교회 속성을 은사 중심으로 살펴보기도 했다. 이신열, “한스 큉의 은사 이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그의 『교회』를 중심으로”, 「조직신학연구」 43 (2023): 158-76; 성령의 연합케 하는 사역에는 다음 논고를 살펴보라. 조동선, “성령을 통한 교회의 연합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 「조직신학연구」 46 (2024): 97-104.

 

 

그 결과 교회는 단순히 지역적일 뿐만 아니라 보편 적이고, 그래서 예언자적이며 사도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음을 당연히 천 명한다.

곧,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을 조금만 고려해서 니케아 신조를 바라 본다면, 이 신조에서 언급하는 비교적 작은 언급의 교회 속성이 과연 시대 적 상황과 역사적 요청에 따라 ‘강조점’이 달랐던 것인지, 아니면, 동서양을 막론한 공통된 신조가 아마도 반쪽짜리이거나 편협한 것이었는지 판 가름할 수 있다.42)

여기서 이와 같은 ‘교회 속성에 대한 비판과 그 재고’를 한 걸음 더 전 진해 현대 교회가 새롭게 정립할 교회론에 관련된 신조가 필요하다는 점 을 주지하여야 한다.

상론된 역사적 접근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늘날에 도 새롭게 교회론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과연 현대 교회가 요구하는 성경 적인 시대 요청이 무엇인지를 신중히 살펴야 한다.

그것은 마치, 니케아칼케돈 신조가 확립될 당시의 시대적 요청을 수렴한 것과 같다.

그 당시는 무엇보다 기독교 신앙으로 새롭게 개종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러므로 그들을 성경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중대한 일이었다.

또한, 기독론이 정립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순수하고 권위 있는 진술이 너무 나 시급하고 중대했다.

마찬가지로 현대에 현대 교회가 알아야 하고 감당 해야 할 시대적 요청이 무엇인지 신중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적 요청을 고전기와 비교하여 그 ‘유사성’ 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우선, 니케아-칼케돈 신조가 형성된 시대와 마 찬가지로 현대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점은 기독교 신앙의 순수 진리를 지 켜야 한다는 면에서 유사하다.

무엇보다 현대 기독인들에게 절실하게 필 요한 것은 자신들이 무엇을 믿는가를 천명하는 신앙고백이다. 신앙고백 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고, 날마다 말씀 아래서 자신을 개혁 해 나가는 개혁주의 신앙 아래서 그 고백대로 살아내는 것이다.43)

 

     42) 향후 전개되는 3장 2절의 “교회 속성의 재정립을 통한 교회론”에는 교회 속성의 함의를 전개한다. 특히, 게리트 베르까우어(Gerrit Cornelis Berkouwer, 1904-1996)는 교회 역사를 보면 니케아 신조의 교회 속성의 고백에 미친 적이 없다고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비로 그 역사적, 심리적, 사회적 구성 요소로 결코 설명될 수 없지만 경험적 요소의 부족이 무엇인지 간과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도신경에서 “교회”에 대한 고백은 그 고백이 가진 말의 깊이와 넓이의 함의를 자 각할 때만 알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베르까우어도 역사적으로 교회 속성과 표지의 논의를 다룰 수밖에 없는 문제를 로마 가톨릭과의 신학적 차이로 이어간다. Gerrit Cornelis Berkouwer, The Church, 나용화⋅이승구 공역, 『개혁주의 교회론』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8), 4-34.

     43) “개신교 개혁주의적 전통은 스위스에서 마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게시하던 시기와 동일한 시기에 울리히 쯔빙글리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이 스위스 종교개혁은 동유럽으로 퍼져 나갔으며, 라인강 유역과 저지대 나라들을 거쳐서 해협 건너편의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이러한 운동에 “개혁주의적”이라는 이름을 맨 처음 덧붙였다.” Jack B. Rogers, 『장로 교 신조』, 26-7. 

 

 

이를 달리 말하면, 오늘 현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 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고전기의 신앙의 원칙을 되살리고 회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초월하여 통전적으로 일치하는 신앙공동체의 성격과 정체성은 연속되어 있기 때문이다.44)

 

      44) 송영재, 『더 뉴커버넌트 신학』, 307-16.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갑 자기 등장하는 새로운 신조가 아니다.

그러므로 건강한 교회론으로 접근 하기 위해 니케아-칼케돈 신조에서 새롭게 깨달아야 할 부분을 우선하여 발견해야 한다. 비록 역사적인 정황은 다르지만, 교회의 속성은 다르지 않 다.

왜냐하면, 기독인이라면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 인성과 신성, 그리고 신성과 인성의 조화에 관심을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육신 의 의미가 무엇인지, 구원은 무엇이며, 그 가운데 성찬은 어떤 의미가 있 는지 그 본질을 어느 시대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그 시대적 요청을 고전기와 비교할 때 ‘상이점’도 고려해야 한다. 곧, 시대적 상황과 그 대상이 바뀌었다는 점을 민감히 확인해야 한다.

지 금도 여전히 새롭게 개종하는 사람이 있지만, 현대 교회의 주된 과제는 새 롭게 개종하는 사람들이 아닌, 교회 안에 복음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온 전한 복음 대신 안주한 삶을 추구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 다.

과거 고전기와 비교하면 사뭇 다른 점이다.

고전기에 기독론의 과제 는 너무 중요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실존을 걸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해서 질문하고 전 실존을 다 해 답변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를 배우고 깨 닫고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그런 절박함과 진지함 이 다르다.

핍박받던 시절에는 실존을 걸고 그리스도를 배웠는데, 풍요로 운 시대 속에서 그런 절박함이 없다.

우리가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 고 있으며, 우리는 누구인지, 왜 가야 하는지를 진지함도 부족하다.

결국, 문제는 교회 속성의 개념과 그 중대성에 관한 것이 아니라, 현대 교회가

바른 진리에 대한 절박함과 진지함이 부족하여 교회론이 부재한 것이다.

 

2. 교회 속성의 재정립을 통한 교회론

 

니케아 신조로부터 칼케돈 신조에 이르기까지 초대 교부들과 변증가 들이 논쟁한 ‘삼위일체’ 특히,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부분은 우 리가 만일 그로부터 온 구원을 믿는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주제다. 이 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정체성을 인식하는 데도 필수적이다. 즉, 예 수가 만일 신이라면 하나님 안에 한 ‘위격’ 이상 있어야 하며, 그 하나님 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곧, 성부, 성자, 성령이 속한 신적 공동체로, 그에 속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역시 공동체성을 가져야 함을 보여준다.45)

이를 종합하고 접목하여 고찰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한 교회로의 부르심은 우리를 공동체적 삶으로 이끄는 부르심이라는 귀중한 적용점에 이르게 된다.46)

그런데 칼케돈 신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대한 담론은 예수의 성육신에 있어서 너무나 중대한 사건으로, 예수의 두 본성은 “혼 동 없이, 변화 없이, 분열 없이, 분리 없이” 연합되었다고 정의 내릴 뿐, 그 신비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 “그들은 그저 어떤 용어가 이 신비를 설명할 때 사용되어야 하는지를 결정했을 뿐이다.” 47)

 

     45) Ralph W. Neighbour, Christ’s Basic Bodies, 최은정 역, 『그리스도의 몸』 (서울: NCD, 2009), 164-9.

     46) Roger E. Olson, God in Dispute, 박동식 역, 『신학논쟁』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144; 이경 직은 교회의 일치에 대해 종교 개혁기를 중심으로 교회 일치의 근거에 대해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 적인 것에 대한 차이가 얼마나 다양한 결과를 도출하는지 연구하였다. 이경직, “교회 일치와 분열 의 기준: 본질적 교리와 비본질적 교리”, 「조직신학연구」 29 (2018): 24-38.

    47) Roger E. Olson, 『신학논쟁』, 169-86.

 

이 진술은 그 리스도의 구속에 대해 놀라움과 신비 자체를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진리에 근접하기에 절대 불가능한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위대한 그리스도의 구속 경륜으로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표상은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분명하게 밝힐 뿐이다.

또한, 그 구속 사역을 위한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의 죽음, 그리고 부활, 승천 하여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삼았다는 놀랍고 위대한 신비와 진리가 내재하여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신비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것을 믿고 어떻게 적용하여 그 신비에 참여하느냐의 문제가 된다.

이를 위 해,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 역사적 접근으로서 니케아 신조 와의 관련성을 좀 더 긴밀하게 접근하여 이 고백이 차후에 어떤 변화를 이 루어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교부와 변증가들은 영지주의와의 이원론 논쟁 속에서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에 대해 승리하였다.48)

그러나 당시에 편만했던 계급 질서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임으로 니케아의 고백은 중세를 거치면서 조직화 되고 제도화되기에 이르게 된다.49)

 

     48) 기독교 초기 몇 세기 동안 교회를 가장 괴롭힌 사상 중의 하나는 영지주의였다.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가현설(docetism)은 기본적인 구조를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와 ‘영적 존재’의 결합으로 보았고,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은 ‘영적 존재’와 분리된 인간 예수가 받고 겪은 것이라고 보았다. 이 런 생각은 기본적으로 물질은 악하기 때문에 물질로부터 해방되어 영적 상태로 회귀하는 것을 구 원이라고 보는 이원론적 사고였다. 어쨌든,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의 팽배, 그 중심에 있는 영지주 의는 당시 그리스-로마의 헬레니즘 문화가 팽배해지고 민족과 국가의 절대성이 약화하면서 개인 주의적 경향이 강하게 일어날 때, 그 당시 사람들의 구원론에 심각한 영향을 던져 주었다. Urban C. Von Wahlde, Gnosticism, Docetism, and the Judaisms of the First Century (New York: T&T Clarks, 2015), 40-2.

    49) Kevin Giles, 『신약성경의 교회론』, 312-4

 

조직은 어느 사회집단의 자연적 현상이라면, 그것이 제도화되는 것은 유기적 생명체로 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런 점에서 로마 가톨릭교 회는 지속적으로 교회의 ‘표지’를 제한하게 된다.

17세기 로마 가톨릭 신 학자 로베르투스 벨라르미누스(Robertus Bellarminus)는 로마 가톨릭교 회가 참된 교회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15개의 표지 이상을 말하였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4개의 표지를 말하였다.

그것은 니케아 공의회 다음에 열렸던 콘스탄티노플 신조 속에 요약되는데,

  첫째, 통일성(unitas),

  둘째, 거룩성(sancititas),

  셋째, 보편성(catholicitas),

  넷째, 사도성(apostolicitas)이다.50)

여기서 교회의 ‘속성’과 ‘표지’에 대한 개념과 관계가 도출된다.

‘표지’ 라는 것은 참된 교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검증할 만하고 비판받을 만한 ‘기 준’이라고 한다면, 로마 가톨릭교회는 앞에서 언급한 4가지의 교회 ‘속성’ 을 그들의 표지로 삼아 로마 가톨릭교회야말로 ‘진정한 교회’라고 주장 하는 전유물로 삼아 버린다.

그렇게 로마 가톨릭교회는 모든 교회 ‘속성’ 을 한결같이 제도화로 고착하는 데 사용되어 버린다.51)

따라서 종교 개 혁은 교회를 개혁하는 모토로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Ecclesia reformanda semper reforma)라는 사상적 원리 속에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장하는 교회의 4가지 속성을 가진 ‘로마 가톨릭교회 자 체’의 권위에 대한 신봉에서 벗어나 오직 성경(Sola Scriptura)에서 그 권 위가 나오는 것을 주장해야 했다.52)

그런데 결과적으로 이에 대한 개혁 교회의 반작용은 교회 속성에 대한 주저함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즉, 교회의 속성으로서 ‘보편성’(catholic)이란 용어를 말하기를 주저하거 나53)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 교회’(One Holy Catholic Church)를 ‘거룩한 공회’로 수정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런 점 에서 현대에 이르러 교회의 표지, 특히 ‘속성’이라는 것은 교회 성도들이 어떤 특별한 시간에 주어진 강좌 외에는 일반적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 되 어 버린 것도 무관하다 할 수 없다.54)

 

     50) 최홍석, 『교회론』 (서울: 솔로몬, 1998), 119; 김재윤, “개혁신학이 추구한 ‘보이는’ 보편교회에 대 한 일고찰”, 「개혁논총」 52 (2020): 227-8.

    51)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 1068-71.

    52) Eduardo J. Echeverria, Berkouwer and Catholicism: Disputed Questions (Boston: Brill, 2013), 273-4.

    53) 로마 가톨릭이 자신들의 전유물처럼 사용하고 있다. 김재윤, “개혁신학이 추구한 ‘보이는’ 보편교 회에 대한 일고찰”, 228. 54) Daniel L. Akin, et al., Theology for the Church, 611.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속성으로 보편성, 통일성, 거룩성은 종교개혁 이후 정적 개념으로 자리 잡고, 교회 개혁의 목적을 위해 교회표상으로 말씀, 성례, 권징은 교회 속성의 동적 개념 역할을 해 왔다.

다 시 말하면,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혁교회가 각각 권위의 근거로 삼는 의존 이 달랐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교회의 ‘속성’으로 ‘표지’를 삼았고, 반면, 개혁교회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인해서 교회의 ‘속성’과 함께 교회 의 ‘표지’로서 ‘말씀, 성례, 권징’을 삼게 된다. 개혁교회의 이런 비판과 개 혁은 교회의 ‘역동성’이라는 면에서도 그 중대성이 있었다.

즉, 앞서 언급 한 교회의 4가지 속성은 ‘정적’인 교회론으로 로마 가톨릭교회가 점유한 상태에서의 이 정적 교회론으로는 참된 교회의 표지로 삼을 수 없다고 하 는 것이 개혁 신앙의 관점이었다.

왜냐하면, 로마 가톨릭교회의 ‘제도화’ 를 혁파하기 위해서 교회의 표지는 ‘동적’ 교회론을 지향해야 했기 때문이 다.55)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시대가 흘러 현대 교회는 여러 교파가 수없이 난립할 뿐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사적 종교가 되어 버린 듯하며, 무엇보 다 사회와 국가와의 관계 속에 공적 영역에서 전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다.56)

 

      55) 최홍석, 『교회론』, 119-20.

      56) 양진영, 『국가 없는 교회, 교회 없는 국가』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21), 166-97.

 

더 놀라운 것은 교회 표지인 말씀, 성례, 권징이란 교회의 동 적 개념은 현대 교회에 또 다른 정적 개념이 되어 버린 듯 교회가 세속화 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니케아-칼케돈의 고백적 신앙이 변질하여 제도화 에 이른 역사 속에서도 그 당시의 역사적 산물로서 니케아-칼케돈 신조로 부터 유산된 교회 속성은 성경적 교회의 근간을 확보하는 반면, 종교개혁 당시의 파격적 교회론은 그 권위의 주체를 성경으로 변혁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그 사회적 계급 구조를 당연한 것으로 여김으로 온전한 개혁은 완수하지 못하게 된다는 점과 원치 않았던 분열이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 서, 그 종교개혁의 유산을 물려받은 현대 교회가 이토록 변질하였는가를 반추할 때 매우 조심스럽지만, 과연 ‘정적’ 교회론에서 ‘동적’ 교회론으로의 전환도 역시 역사적 산물이 아닌가 추론하게 된다.57)

그런 면에서 교회의 ‘속성’ 소위, ‘정적 교회론’을 회복함과 함께 교회 의 ‘표지’로서의 ‘동적 교회론’에 대한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58)

왜냐 하면, 고대부터 중세교회까지 참된 교회를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했던 네 가지 속성(una, sancta, catholica, apostolica)은 당시의 로마 가톨릭이 의 도하는 바에 의해 비록 역사적, 교리적 산물로서 여겨질 수 있지만, 그런 데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서 세워주신 가 장 적절한 속성들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59)

로마 가톨릭에서는 개신교 회들이 이러한 네 가지 속성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교회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개신교회들은 참된 교회가 무엇인지 주의 깊게 정 의 내려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그것이 바로 교회의 ‘표지(marks)’로 서 ‘참된 말씀 선포’와 ‘올바른 성례의 시행’과 ‘충실한 권징의 시행’이었 다.60)

이는 교회 표지가 참된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분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61)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교 개혁자는 이 세 가지 표지에 대한 생 각이다.

이 세 가지 표지는 실제로 대등한 것은 아니고, 첫 번째 표지만이 교회의 존재에 필수적이라 믿었다.62)

 

     57) Kevin Giles, 『신약성경의 교회론』, 314-6.

    58) 교회 ‘속성’은 교회의 본질과 성격을 규정하는 최소한의 조항으로 이 속성만으로 충분한지에 대한 논의가 지속해서 진행되어 왔다. 김재성, “교회의 본질과 속성”, 「신학정론」 22/2 (2004): 517-20.

   59)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 1059.

   60) 칼빈은 무형 교회와 유형 교회를 분리한 것이 아니다. 칼빈은 외적 방편을 통해 로마 가톨릭 아닌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를 지향했다.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ans. Henry Beveridge (Michigan: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3), Ⅳ.1.7-11.

    61) 김길성, “교회의 속성과 표지”, 「신학지남」 73/3 (2009): 62-78.

    62) 김재윤은 종교개혁 이전 에베소에 보내는 이그나티우스의 편지에서 사제들이 교회에 필수적임을,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사도적 전통과 가르침을, 키프리아누스는 교리적 가르침을 교회의 표지로 삼았다고 말한다. Ante Nicene Father Book. 1 The Apostolic Father, Justin Martyr, Irenaeus, ed. Philip Scharff (Grand Rapids: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894), 김재윤, “개혁신학이 추구한 ‘보이는’ 보편교회에 대한 일고찰”, 「개혁논총」 52 (2020), 233-4 에서 재인 용; 김길성,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난 한국교회의 미래와 준비”, 「개혁논총」 46 (2018): 60.

 

엄격히 말하자면, 말씀을 참되게 선포하고 그것을 교리와 삶의 표준으로 인식하는 것이 교회의 유일한 표지 가 된다. 따라서 다른 어떤 것보다 이 표지가 없으면, 교회가 존재하지 않 는다.

이 표지로 성례의 바른 시행과 권징의 신실한 집행을 결정한다.63)

게다가, 종교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에서 주장한 네 가지 속성에 대해서 결코 논박하지 않았으며, 또 다른 교회의 속성도 채택하지 않았다.64)

그들 이 거부한 것은 제도적인 교황 주의에 연결하는 그들의 방식이었을 뿐이 다.65)

그런 점에서,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로마 가톨릭교회가 ‘속성’과 ‘표지’를 구별 없이 사용한 것에 대해 비판하였다면, 바르트만(B. Bartmann)은 교회의 보편성을 말할 때 이것이 교회의 ‘내적인 속성’일 뿐 아니라, ‘외적 표지’라고 하기도 한다.66)

 

     63)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 Michigan: Wm. B. Eerdmans, 1941), 577

     64)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Ⅳ.1.7.

     65)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 1074-5.

     66) 최홍석, 『교회론』, 119-120,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5장의 ‘교회 정의’는 이런 보편적 진리 가운 데 당시의 교회론을 새롭게 정리하고자 시도하였기에 주목할 만하다. 이 신앙고백에서 “보편적 가 시적 교회”(The Catholic Visible Church)라는 언급은 다른 어떤 개혁주의 고백과 구별되는 특징 이다. 그 이유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작성할 당시의 정황 때문이다. 곧, 당시는 무엇보다 가 시적 교회의 가시적 연합과 그 연합으로 말미암은 보편적 교회로서의 권위가 중요했고, 이에 개교 회 이상의 치리 기구에 대한 교회적 권위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이 신앙고백 25장은 다 른 신앙고백과 비교되는 교회 표지로, ‘말씀, 성례, 예배’를 언급한다. 즉, 길리아 신앙고백, 스코 틀랜드 신앙고백, 벨기에 신앙고백은 말씀과 성례와 권징을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구별하기 위한 ‘결정적 기준’(determinative standards)을 강조했다면, 이 고백은 당시 다양한 장로교파의 다양 한 제도의 상충 가운데 ‘교회의 순수함’을 판단하는 ‘평가적 표지’(evaluative marks)로 온건했 다. 그래서 교회 일치를 위해 ‘권징’ 대신 오히려 ‘공적 예배’가 들어갔다. 여기서 공적 예배를 교 회 순수함의 기본으로 삼은 것은 신앙고백의 논리적 일관성과 실천적 강조를 위해서였다. 김요섭,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회 정의와 그 역사적 의의”, 「한국개혁신학」 40 (2013): 144-5, 156- 7, 158-63; 불링거(Bullinger)도 거룩성과 보편성을 함께 말했다. 또한, 흥미롭게 경건한 자에게 속하는 내적 표지로 ‘성령과의 교제, 진실한 믿음, 이중적 사랑’을 말했다. 한유진, “『하이델베르 크 요리문답』과 불링거의 교회론 비교”, 「기독교철학」 16 (2013): 72; 우르시누스(Ursinus)는 권 징 대신 ‘순종’을 포함시켰다. Robert L. Reymond, 『최신조직신학』, 1081-2; 루이스 벌콥(Louis Berkhof)은 예수의 삼중직에 대해 심도있게 서술한다. Louis Berkhof, Systematic Theology, 299-307, 341-6; 여기에 제랄드 윌리암슨(G. I. Williamson)은 예수의 삼중직을 중심으로 인간 본래의 구성으로부터 인간 구속을 위한 구약 역사, 그리고 구속 이후 죄인의 회심, 마침내 참 교 회의 표지를 각각 세 가지(선지자적, 제사장적, 왕적)로 구분하였다. 곧, 그리스도 중심의 구속 역 사에 교회가 표지로 삼아야 할 근본이 담겨 있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세 가지 속성인 보편성과 통일성과 거룩성은 교회의 삼대 표지인 말씀의 신실한 전파와 올바른 성례의 집행과 정당한 권징의 시행은 각각 비교된다. G. I. Williamson, The Westninster Shorter Catechism, 최덕성 역, 『소요리문답강해』 (서울: 개혁주의신행협회, 1986), 93-7; 더불어, 현 대 교회와 관련해 다양한 접근도 있다. 아지쓰 퍼난도(Ajith Fernando)는 교회의 선교적 사명 을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접근했다. William D. Taylor, Global Missiology for the 21st Century (Pasadena: William Carey Library, 2000), ch. 13-16; 또한, 이신열은 은사의 관점에서 교회의 속성을 살펴보며, 이 속성이 오직 그리스도로부터 기인하는 점을 주목하였다. 이신열, “교회의 속 성에 대한 개혁신학적 이해: 은사를 중심으로”, 「개혁논총」 34 (1015), 153-83. 

 

한스 큉(Hans Küng)은 ‘교회의 속성’ 네 가지는 어떤 경우에나 다른 두 가지 특징에 입각할 때만 진정한 것인데, 그것은 순수한 복음과 진정한 성례의 거행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한다.67)

결국, 이런 교회의 속성과 표지 사이에 놓인 역사적 교회론 정립 은 현대 교회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창조거나 추가하거나 예전의 위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그런 차원이 아니 라,68) 아니, 될 수 없고, 교회의 정체성의 근간인 그리스도의 삼위일체 하 나님이심과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인한 구속 역사의 ‘신비’를 역사적 교 훈으로 삼아 다시 회복하고 정립해야 할 현대 교회론이 되어야 한다.69)

개혁교회의 헌법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10가지 교리가 있 는데, 그중에서 2가지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 2가지는 개신 교 종교개혁과 일치되는 주장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6가지는 개혁적 전 통에 따른 신앙을 표현하고 선언하는 것이다.70)

 

     67) Hans Küng, WAS IST KIRCHE?, 이홍근 역,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분도출판사, 2000), 119.

    68) James W. Thompson, The Church according to Paul: Rediscovering the Community Conformed to Chris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4), 1-2.

    69) 교회의 표상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도바울의 중요 강조점이다. 이에 대해 기독론의 핵 심인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관련해 ‘그리스도의 신비’와 ‘성육신’과 ‘구속’이라는 기독론적 관 점은 깊게 관계된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이루어진 보편적이고 그리스도 안 에서 하나된 거룩한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할 때, 왜 교회를 인간의 몸과 유비 관계를 삼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논의를 시도해 보았다. 이 논의는 기독론과 교 회론의 관계성을 파악할 뿐 아니라, 교회 속성으로서 ‘보편성, 통일성, 거룩성’의 요소를 기독론 에 도전하는 여러 세력과 비교하여 실제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 적용할 수 있다. 양진영, “그리 스도의 몸인 교회: 교회와 인간의 몸을 유비 관계로 삼는 이유에 대한 소고”, 「한국개혁신학」 74 (2022): 217-246.

     70) David Hagopian et al., Back to Basics: Rediscovering the Richness of the Reformed Faith, 김학문 역, 『개혁 신앙 기본 진리』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6), 23.

 

여기서 2가지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첫째 삼위일체의 신비와

  둘째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말씀의 신비인데,

이것이 바로 니케아-칼케 돈 신조의 공헌이다.71)

 

    71) Jack B. Rogers, 『장로교 신조』, 30.

 

그로 인한 결과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종교 개혁 시기에 일어난 교회 속성과 표지에 대한 논의 역시 보편 진리에 대한 논의 와 별개가 아니다.

결국, 가시적 교회는 한계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그 어 떤 용어보다 그리스도의 통치가 말씀 안에서 일관되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때 진정한 교회는 내적(속성)으로나 외적(표지)으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러난다.

 

Ⅳ. 나가는 말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서 건강한 교회론 확립을 위해, 역사적 접근 을 통해 현대 교회가 새롭게 정립해야 할 교회론은 성경과 전통에 근거하 여 재정립해야 하는 당위성을 살펴보았다.

현대 교회는 가지고 있는 것이 부족하여서 변질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것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 므로 변질할 수 있다.

니케아-칼케돈 공의회 이후 그 시대 속에서 교회가 우선적 관심사를 가졌던 것은 국가와 비슷한 존재로서 ‘교회론’을 가짐으 로 교회의 ‘공동체성’이나 교회 가운데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보편적 충 만의 신비가 잊히고 변질한 것이지, 교회의 본질적 속성 자체가 밝히 드러 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적 유산으로서 주어진 삼위일체론 과 그리스도의 양성론은 여전히 현대 교회론의 근간이자, 정체성이자, 나 아가야 할 교회의 속성과 표지로서 건강한 교회론을 위한 성경적 대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는 무엇보다 기독 교회가 역사적으로 가진 교리에 취약하다.

그러면서 교회는 문제가 가득하다고 토로한다.

예수 그리스도 의 몸인 교회의 교리적 가르침과 현실 문제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한다. 

그런데 사실 앞서 살펴본 두 시기처럼 모든 교회가 이 교리 논쟁에 주목 하고 집중하는 그런 진지하고 중대한 논의는 없었다는 점을 성찰해야 한 다.72)

따라서 진실로 현대 교회가 ‘진정한 교회’ 되기를 원한다면, 그 교회 는 당연히 성경적, 신학적 가르침에 깊게 주목해야 한다.73)

 

      72) Philip Schaff,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424-5.

      73) 김영한, “신앙고백서의 현재적 의의와 적용”, 「조직신학연구」 25 (2016): 122-8

 

그러면 그 가 르침에 따라 살 수밖에 없다.

은혜와 율법은 다른 것이 아닌 것과 같다.

그 런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당연히 삼위일체론과 기독론의 핵심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가운데 흘러나오고, 그 성격은 당연히 교회 속 성으로 표지 삼아 바르게 재정립될 수 있다. 

 

 

 

[한글초록]

교회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 회 속성을 알아야 한다.

역사적 회의인 니케아 공의회는 처음으로 교회 속 성을 언급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봄으로 교회 속성에 대한 이해 에 접근한다.

교리는 역사적 산물로 그 한계가 있지만, 그런데도 그 함의 를 살펴봄으로 교회 속성 정립의 근간으로 삼는다.

다음으로, 종교 개혁 기에는 그 역사적 상황 가운데 교회 속성이 정적 개념으로 자리 잡고 교회 표지는 동적 개념으로 삼아 교회의 순수성을 드러내려 했다는 점에서 주 목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 교회는 교회 표지에 대한 개념도 약화하고 있 다.

그런 점에서 교회 속성의 근간이 무엇이고 무엇을 지향하고자 했는지 확인하여 교회의 정체성과 그 사명을 재정립해야 한다.

[주제어 :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교회 속성, 교회 표지, 역동성, 교회론, 니케아 공의회]

 

 

Abstract

DISCUSSION OF CHURCH ATTRIBUTES

Gene J. Yang (Gwangshin University, Assistant Professor)

In order to confirm the identity of the church and fulfill its commission, it is necessary to know the church’s attributes above all else. The Council of Nicaea, a historical council, was the first to mention church attributes. By examining the historical situation at the time, we approach the understanding of church attributes. Doctrine has its limits as a historical product, but nevertheless, by examining its implications, it is regarded as the basis for establishing church attributes. During the Reformation period when focused on, in the midst of the historical situation, the church attribute was established as a static concept and the church marks as a dynamic concept to reveal the purity of the church. However, the modern church is also weakening the concept of the church marks. In this respect, it is necessary to redefine the identity of the church and its commission by confirming what the basis of the church’s attributes is and what it was aimed at.

[Key words: Church as a Body of Christ, Attributes, Marks, Dynamics, Ecclesiology, Council of Nica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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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투고일: 2024.10.04. 수정 투고일: 2024.11.16. 게재 확정일: 2024.11.21.

조직신학연구 48권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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