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본 연구는 20세기 근대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원죄론 재해석 연구를 통해 기독교의 ‘윤리적 연대’(ethical solidarity)라는 개념이 현대 교회와 사회에 던지는 신학적 통찰을 찾아보고자 한다.
가장 우려되는 21세기 현상 중 하나는 나와 동질성을 가지지 않은 타자 와 타자 공동체를 향한 혐오와 배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타자를 향한 혐오 와 차별은 인종, 성, 지역, 문화, 나이 등과 같은 다름과 차이를 다양성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이질성으로 간주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 다도 타자를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해 주는 협력과 연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나의 이익을 침해하는 혐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기인한다.
타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타자에 대한 성숙한 윤리를 형성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를 화합의 장이 아닌 투쟁과 대결의 장으로 만든다.
이러한 맥락에서 타자의 허물과 고통에 대한 ‘윤리적 연대책임’이라는 개념을 강조한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은 타자를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아닌 협력과 연대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현대 인에게 성숙한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할 것이다.
기독교는 타자가 결코 혐오나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과 연대의 대상 임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러한 정신은 그리스도의 이타적 삶과 죽음을 통해 강력하게 선포되었다.
하지만 몇몇 전통적 교리들은 성서의 지엽적 해석이 나 해석적 오류 등으로 인해 성서가 근원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타자에 대한 포용과 윤리적 연대의 정신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원죄 론의 가장 핵심적인 두 요소는 아담과 하와로 대표되는 첫 인류 이후 모든 인간은 죄의 경향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죄의 보편성’(universality of sin)과 최초의 인류가 저지른 죄의 책임마저도 그 후손인 모든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전이된다는 ‘죄책의 전이’(transmission of guilt)라는 개념이다.
위 두 개념 중 논란이 되어 온 것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다.
이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 비판받는 주요한 이유는 타자의 죄책에 대한 비자발적 연대책임이라는 연좌제적 개념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1
1 이 논문에서 ‘죄책의 전이’(transmission of guilt)라는 용어는 유전으로 전이되는 조상의 죄책이라 는 개념으로, 타자의 죄책을 일컫는 ‘외래적 죄책’(alien culpability)과 맥락상 유사한 의미로 사용 된다.
하지 만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한 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원죄론에 내포된 죄책의 양도 개념은 무엇보다도 성서 해석의 오류에 기인하였을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죄책의 전이’라는 교리는 나치 정권의 유대인 배제 정책과 같이 혈연 공동체와 같은 타자 공동체에 대한 혐오와 배제와 같은 사회적 현상에 신학적 정당성을 제공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본회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을 재해석하면서 원죄론은 ‘죄의 보편성’이라는 타락 후 인간의 상태에 대한 성서의 가르침에 서 벗어나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으로까지 과대 해석하였다고 이해하였다.
본회퍼는 혈연 공동체에 대한 공동체 처벌이라는 나치 정권의 개념과는 대조 적으로, ‘대리 행위’(Stellvertretung)라는 그리스도 중심의 교회 공동체 개념 을 통해 타자 공동체를 향한 ‘윤리적 연대’ 정신을 강조하였다.
본회퍼의 ‘윤리적 연대’라는 개념은 타자나 타자 공동체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합법화한 나치 독일의 비-아리안(non-Aryan) 인종 차별 정책 비판과 그 맥을 같이한다.
본회퍼의 ‘윤리적 연대’ 사상의 고찰은 본회퍼의 시대뿐 아니라 21세기 현대 사회에 팽배한 혈연, 지연, 문화, 성별, 빈부, 외모, 나이 등의 차이와 다름으로 인해 타자 공동체에 대한 혐오와 배제 현상의 비윤리적임과 반기독교적임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본 논문은 본회퍼의 ‘죄책의 전이’ 개념의 재해석을 고찰함으로써 타자나 타자 공동체에 대한 자발적이고 윤리적인 연대 정신이 교회 공동체가 타자 공동체에 행해야 할 사명임을 밝혀 보고자 한다.
앞의 연구 목표를 수행하기 위하여 본 논문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첫째,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핵심인 유전적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을 알아본다.
둘째, 죄와 공동체 처벌이 라는 주제를 신구약 성서를 통해 살펴봄으로써 본 논문의 주제에 대한 성서적 배경을 제공한다. 셋째,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죄론을 공동체적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본회퍼 죄론의 시대적 동향을 고찰한다.
넷째, 본회퍼가 ‘죄책 의 전이’라는 개념을 그리스도 중심적인 윤리적 연대 사상으로 전환함을 고 찰한다.
마지막으로 본회퍼의 윤리적 연대 사상이 현 교회와 사회에 제시할 수 있는 신학적 통찰을 살펴본다.
II.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과 연대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서방 기독교 죄론 전통에 가장 영향력 있는 관점을 제공한 신학자이다.
그가 원죄론을 확립시킨 것은 철학적 방법론을 사용한 초기 접근법에서 신학적 전환을 이룬 후반기이다.
초기 저작인 자유의지론 (De Libero Arbitrio)을 살펴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를 상대적인 선, 즉 중간선이라고 이해한다. 2
그는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원인은 중간선인 의지가 최고선인 하나님을 배향(aversio ab)하고 열등한 선으로 전향(conversio ad) 하기 때문이라고 철학적으로 정의한다.3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성의 근원을 가장 열등한 선(lesser good)인 무(nothing)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의 하향성이라고 지적한다.4
2 Augustine, On Free Will (De Libero Arbitrio), Augustine: Earlier Writings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6), 2.19.53.
3 Ibid.
4 Ibid. 초기 저작인 자유의지론(On Free Will)을 살펴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의지는 상대적인 선, 즉 중간선이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이 죄를 짓게 된 원인은 의지가 최고선인 하나님을 배향(aversio ab)하고 열등한 선으로 전향(conversio ad)하기 때문이라고 이 해했다. Augustine, Confessions, tr. by Henry Chadwick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8), 2.4.9-11.
아우구스티누스가 초기 신학에서 신플라톤주의적 세계관을 기반으로 죄의 근원과 원인을 탐구했다면, 성숙기에는 로마서와 같은 성서 주해를 통해 죄의 본질과 특성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특히 그는 로마서의 주요 구절 주해를 통해 ‘원죄론’(doctrine of original sin)의 구조를 확립하였다.
이 성서 주해를 통해 그는 ‘죄의 보편성’과 생물학적 유전을 통한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을 원죄론의 중심적인 특징으로 정립한다.
원죄론은 이후 서방의 주요 한 관점이 되었고 안셀무스, 토마스 아퀴나스 등 이후 주요 신학자들이 원죄 론을 계승하여 심화시켰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에서 현재까지 논쟁이 되는 문제 중 하나는 원죄론에 내포된 유전을 통한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다. 5
로마서 5장 12절에 대한 라틴 성서 번역은 ‘때문에’(because)를 ‘그(아담) 안에서’로 오역함으로써 아담 이후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가 아담 안에서 함께 죄를 범하였고 아담의 죄책도 이후 모든 인류의 공통적 책임이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주해 하였다. 6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 로마서 5장 12절의 오역에 기반한 논리 전개 로 인한 것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원죄론의 신학적 근거는 로마서 5장 12절뿐 아니라 그 이외의 구절을 통해서 도출한 결과라고 주장한 다.7 하지만 J. N. D. Kelly가 지적하듯이,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암브로시우스 (Ambrose)나 암브로시아스터(Ambrosiaster)도 죄의 보편성에는 동의하였 지만,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까지 확장하지 않았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8
피에르 F. 베아트리체(Pier Franco Beatrice)와 같은 학자들이 지적하듯 이, 무엇보다도 타자의 죄에 대한 책임이 생물학적이거나 사회학적 공동체 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로 책임이 전이될 수 있다는 ‘죄책의 전이’는 비성서적 개념이라고 보는 견해가 근현대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대두되었다.9
5 Crisp, “A Moderate Reformed View,” 44; Berkouwer, Studies in Dogmatics: Sin, 424.
6 Augustine, “On Marriage and Concupiscence Concupiscence (De Nuptiis et Concupiscientia),” St. Augustine: Anti-Pelagian Writings, vol. 5, A Select Library of the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of the Christian Church, ed. Philip Schaff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1978), 2.15; J.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New York: HarperCollins, 1978), 353.
7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353.
8 Ibid; Pier Franco Beatrice, The Transmission of Sin: Augustine and the Pre-Augustinian Sourc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2013).
9 Crisp, “A Moderate Reformed View,” 44; Berkouwer, Studies in Dogmatics: Sin, 424; Carl R. Trueman, “Original Sin and Modern Theology,” Adam, the Fall, and Original Sin: Theological, Biblical, and Scientific Perspectives, eds. Hans Madueme et al.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4), 167-186; Beatrice, The Transmission of Sin, 특히 “The Essence and Transmission of Original Sin.” 베아트리체 는 결정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담의 모든 후대 인류와의 연대 책임을 주장하고 있는 논리적 근거는 ‘그 안에서’라는 해석에 있다고 비평한다. ‘그 안에서’라는 오역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담 의 생물학적 씨앗(seed) 안에서라고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이 개념은 많은 고대 사회나 현대의 비민주적 사회 공동체에서 대두되는 개인의 죄책에 대한 공동체적 처벌의 개념인 연좌제(collective punishment)와 비슷 한 비윤리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죄와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연대적 처벌 문제를 다루고 있는 성서 구절들의 고찰을 통해 성서 전체의 맥락 속에서 조명되어야 할 것이다.
III. 성서와 연대책임
구약과 신약에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는 다수 있다.
이 중 본 논문의 주제와 연결되는 개인과 공동체의 연대책임이란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해 본다.
이 주제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이 있겠지만, 이 단락은 개인의 죄와 연대책임 문제를 하나님의 공의(justice)와 사랑(love)의 균형이 라는 틀을 통해 접근하고자 한다.
1. 구약: 개인과 공동체
구약에서 공동체와 개인의 연대책임 문제와 관련된 구절은 다수 발견된 다. 10
10 김진수, “구약에서 보응과 연대책임,” 「신학정론」 35 (2017/2), 191-225. 11 구약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연대책임을 강조한 대표적인 구절이나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우상의 금지와 하나님의 보응(출 20:5; 신 5:9); 아버지의 죄와 자손에 대한 보응(출34:7; 민 14:18); 아간의 죄와 가족들의 처형(수 7); 다윗의 죄와 밧세바 사이의 첫 자녀의 죽음(삼하 12); 사울의 일곱 남자 후손의 죽음(왕상 14); 아합 아들의 죽음(왕상 21:29); 므낫세의 죄와 북왕국 멸망(왕하 24:3).
이러한 구절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어떤(출애굽기, 신명기, 민수기, 여호수아,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등) 구절들은 공동체의 연대책임을 강조 하고 있으며, 다른(예레미야와 에스겔 등) 구절에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책임 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11
겉보기에는 구약에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이후의 단락에서 다룰 것이다.
연대책임에 대하여 서로 다른 의견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 구절들은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관계를 무조건적 연대책임을 강조하기보다는 개인의 죄와 그에 가담의 여부를 통해 책임 소재를 판단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우선 구약 성서의 몇몇 구절은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책임을 구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레미야 31장 29절과 에스겔 18장 3절의 두 대응 구절은 그 대표적인 예다.
예레미야서의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리다”라는 구절은 분명 아버지의 죄와 그 아들들에게도 혈연 공동체적 처벌이 가해지는 구절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에스겔의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라는 구절을 통해 부모의 죄에 대한 자녀의 연대책임을 거부하고 있다.
이는 구약에서 개인의 죄책을 죄와 상관없는 혈연 공동체에 전가하는 것을 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아간의 죄와 집단적 처벌을 다룬 여호수아 7장은 개인의 죄로 인해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 대표적인 예다.
이 성서 이야기는 학자들에게 해석상 어려움을 안겨 준다.
왜냐하면 조수아 벌만(Joshua Berman)이 지적하듯이, 개인의 죄로 인한 무죄한 공동체에 대한 연대 처벌 개념은 고대 근동 법률 문헌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이 기 때문이다.12
하지만 김진수가 지적하듯이, 아간의 죄와 공동체의 연대책 임에 관한 구절에 사용된 ‘삼사 대까지 보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사용된 ‘파카드’(פקד(라는 동사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성서 의 관점을 좀 더 합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준다.13
‘파카드’는 기본적으로 ‘심판’의 의미라기보다는 ‘조사’와 ‘검열’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4
12 Joshua Berman, “The Making of the Sin of Achan (Joshua 7),” Biblical Interpretation 22 (2014), 115-131.
13 김진수, “구약에서의 보응과 연대책임,” 193.
14 앞의 논문.
‘파카드’를 조사와 검열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보응이라는 개념은 연대 처벌하는 하나님이라는 협소한 개념 보다는 사건을 절차적으로 이해하며 정의에 부합하여 책임 소재를 가리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즉, 연대책임이라는 개념이 개인 의 죄와 공동체의 관계를 혈연이나 문화로 엮인 공동체에 무조건적 가해지는 연대적 처벌이 아니라 이 죄에 가담한 사람들의 책임의 정도를 묻는 과정이 포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책임의 정도에 따라 공동체 일원이나 때로는 전체에게 합당한 책임을 묻는 전 과정을 ‘보응’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인다.
정리하자면 구약에서의 연대책임이라는 개념은 무조건적인 공동체적 연대책임이라는 개념이기보다는 개인이나 공동체의 죄가 상호 작용하여 발생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죄책을 다루고 있으며, 구약의 이야기들에 내포 된 성서의 주제는 결코 구약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라는 성서의 핵심 주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2. 신약: 개인과 공동체
신약에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관계를 다룬 대표적으로 사건은 사도행 전 5장 1-11절에 기록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겠지만 개인과 공동체 관계 면에서 보자면, 앞서 살펴보았 던 구약 구절에서의 해석상 긴장과는 다르게 개인의 죄를 공동체적 처벌로 연결하고 있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에 대한 처벌이며 공동체의 처벌로 연결되지 않는다.
이 이야기가 구약의 이야 기와 차별되는 점은 구약에서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연대책임이라는 점이 때로는 긍정하는 듯하고 때로는 부정하는 듯한 구절들이 혼재해 있었다면, 이 사건에서는 개인적인 일탈 행위에 대한 처벌을 공동체 전체와 분리해서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15
15 정복희는 이 사건을 “개인의 죄와 처벌보다는 교회의 집단 명예에 관한 도전과 방어”로 해석하고 있다. 정복희는 피츠마이어(Joseph A. Fitzmyer)를 인용하며 이 사건은 주로 “원인론, 쿰란 공동 체의 공동체 헌납과의 관련성, 하나님께 속한 헤렘을 취한 사건, 추방, 구원에 관한 역사적 읽기, 죄의 기원과 관련된 읽기” 등 여섯 분야로 논의되었다고 말한다. 정복희,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과 집단명예(행 4:32-5:16),” 「신약논단」 26 (2019/4), 1012, n. 2.
아간의 죄와 집단적 처벌을 다룬 여호수아 7장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좀 더 자세히 비교해 보는 것은 공동체 처벌이라는 주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아간의 죄와 공동체의 관계는 아간과 죄와 아간이 속한 공동체에 파급된 죄의 영향의 결과라는 해석상의 여지를 두고 있다. 김진수 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의 보응이라는 의미의 ‘파카드’가 ‘조사’와 ‘검열’의 의미를 담고 있다면, 아간과 공동체적 처벌은 개인과 혈연이나 문화 공동체 의 무조건적 공동 처벌이라는 해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살펴보면, 신약 공동체에서도 사건에 대한 절 차적 확인이 행해졌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죄가 그 둘에 한정되었고 죄성이 공동체에 전이되지 않았음을 의미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구약과 신약에서 다루는 개인의 죄와 공동체적 처벌이라는 주제에서 도출되는 신학적 통찰은 결코 성서는 개인의 죄를 무고한 공동체 일원이나 전체에 공동체 일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가하지 않는다.
오직 개 인의 범죄가 공동체 전체나 일원에 의해 공모되었을 때 공동체적 처벌이 행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아간이나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기록한 성서 저자들의 초점은 죄의 처벌 자체가 그 중심에 있기보다는 이후 행해지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동체의 성결과 회복에 있다.
아간 사건의 경우 개인의 행위가 전체 공동체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사건은 아이성 전투라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이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후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발견된 아간의 죄는 공동체의 성결을 해치는 중대한 범죄였다.
아간과 그의 가족들과 소유들에 대한 처벌은 아간과 그의 가족이 아간의 죄를 묵인하고 동조했음을 암시한 다.
또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오순절 성령 세례 이후 초대교회가 형성되는 시기에 일어났다.
이 사건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게 한정되 어 일어난 일이지만, 교회의 성장과 성결에 방해물이 될 수 있는 파급력이 큰 행위였다.
아간의 사건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모두 신구약 공동체 의 확립 과정에 일어난 중대한 사건이었고, 그로 인해 그에 연루된 사람들에 게 죽음의 형벌이 내려졌다.
두 사건 이후 공동체는 정화된 공동체로 성장했 다.
아이성 전투에서의 승리와 초대교회의 확장이라는 한 단계 성장하는 공동체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즉, 개인과 공동체 사이에 일어난 범죄행위에 대하여 성서는 결코 무고한 사람들에게 죄책이 전가되거나 처벌 하는 것에 동의한다고 해석할 수 없다.
무죄한 사람들이 오직 혈연 등의 공동 체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성품 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단락에서는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책임이라는 문제의 새로운 신학 적 관점을 제시한 디트리히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의 신학적 자원을 제공한 근대 신학자인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죄론을 고찰해 보겠다.
IV. 본회퍼의 근대 원죄론 평가와 공동체성
근대 독일 개신교 죄론의 지형은 본 논문의 중심 주제인 본회퍼의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원죄론 전통 속에서 고찰하는 데 풍부한 사상적 자양분을 제공하였다.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에서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알브레히트 리츨의 죄 이해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이번 단락에서는 본회퍼가 평가한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죄론을 살펴봄으로써 본회퍼 원죄론 해석의 신학적 배경을 제공하고자 한다.
슐라이어마허 와 리츨의 죄론은 두 신학자의 전체적인 신학의 지평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할 광범위하고 심오한 분야이다. 본 단락에서는 방대한 논의가 필요한 슐라 이어마허와 리츨의 죄론 그 자체에 대한 분석과 평가보다는 본회퍼가 그들의 죄론을 이해하고 평가한 부분을 본 논문의 주제인 개인과 공동체성의 관계와 연결하여 다루겠다.16
16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죄론에 대한 다양한 분석과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본 연구에서 슐라이 어마허와 리츨의 죄론에 대한 평가는 본회퍼의 관점을 통하여 조명한다.
1. 본회퍼의 슐라이어마허 죄론 분석과 평가
19세기 베를린 신학교 설립 초대 멤버 중 하나인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 허(Friedrich Schleiermacher, 1768~1834)의 신학적 영향력은 매우 광범위했 다. 17
17 마르틴 레데커, 슐라이어마허: 생애와 사상, 주재용 옮김 (서울: 대한 기독교출판사, 1985), 111-117. 18 Friedrich Schleiermacher, Christian Faith, vol. 1, tr. by Terrence N. Tice et al., eds. Catherine L. Kelsey et al. (Louisville: John Knox Press, 2016), 417-418.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적 영향력 중 특히 죄론은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 에 중요한 참고가 되었다.
원죄론 해석에서 그가 가장 많이 언급하고 참조한 근대 신학자는 단연 슐라이어마허이다.
슐라이어마허는 기독교 신앙(Christian Faith)에서 원죄 개념을 다음 과 같이 설명한다.
그는
“어떤 개인에게 있어서 그 개인의 행위 이전에 이미 존재하는 죄에 대한 취약성, 즉 그 개인의 존재를 넘어 있는 취약성은 선을 행할 수 없는 완전한 무능력이며 이 무능력은 오직 구속의 영향을 통해서만 제거될 수 있다”
고 말한다. 18
본회퍼 역시 슐라이어마허가 원죄를 “인간 본성 에 내재한 경향성”으로 이해했다고 분석한다.19
하지만 슐라이어마허는 아 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이 타락을 역사적 사건이라고 보는 것에 회의적이었 다.
그는 타락을 역사적 사건이기보다는 역사를 초월한 상징적 사건이라고 보았다. 20
슐라이어마허는 원죄를 개인의 자범죄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공통 으로 내재한 ‘죄의 경향성’으로 보았고,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담의 타락 이전 과 이후의 인간 본성에 매우 급격한 변화가 생겼다고 이해한 것과는 다르게 인간의 성향은 아담의 타락 이전과 이후 달라지지 않았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인간은 아담과 같이 한계적 존재로 태어나고, 그러므로 죄를 지을 수밖 에 없게 된다고 설명한다. 21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를 아담의 첫 범죄와 죄책 의 유전으로 이해했다면, 슐라이어마허는 모든 사람은 아담과 동일하게 죄 의 경향성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며 그로 인해 아담과 같이 범죄할 수밖에 없다고 이해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죄성의 시작을 ‘의지의 왜곡’이나 ‘의지의 남용’과 같이 인간 본성의 변경으로 이해한 전통적인 원죄론 해석과는 다르 게, 죄의 경향성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설명한다.
즉,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시원적(始原的) 의로움의 상태를 전제하지 않는다.22
본회퍼는 “[슐라이어 마허에게] 원죄는 사람들 안에 존재하지만, 개인의 존재를 초월한 곳에 뿌리 를 둔 죄성”이며 개인적 영역의 것이기보다는 “인류의 집단적 행위와 공동의 책임”을 의미한다고 분석한다.23
19 Dietrich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 ed. Clifford Green, tr. by Reinhard Krauss et al.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8), 113, SC-A [11]. SC-A는 최초 출판 시 박사학위 논문에서 삭제되었다가 재출판 시 복원된 부분을 의미한다.
20 Schleiermacher, Christian Faith, 439.
21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3, SC-A [11].
22 슐라이어마허는 죄의 기원에 대하여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죄의 근원을 신정론 범주까지 확대하면, 결국 인간이 가진 죄의 경향성을 인간의 책임이 아닌 신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다고 비판받는다. De Cruz et al., “Schleiermacher and the Transmission of Sin: Biocultural Evolutionary Model,” 12.
23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3, SC-A [11]. 본회퍼와 비슷한 맥락에서 Kevin M. Vander Schel은 슐라이어마허의 죄론은 원죄를 특정한 개인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상호적 생활에 속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Kevin M. Vander Schel, “Social Sin and the Cultivation of Nature,” Schleiermacher and Sustainability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16), 82. 또한 De Cruz et al.은 슐라이어마허의 죄책의 전가 개념을 생물-문화적 진화 이중 전이 모델로 설명하였다. De Cruz et al., “Schleiermacher and the Transmission of Sin.”
또한 슐라이어마허가 전통적인 죄책의 유전이라는 개념에 대하여 설명 하는 방식 역시 전통적 원죄론과 다른 방식을 취한다.
슐라이어마허는 원죄 가 전파되는 방식이 생식이 아닌 사회적인 활동성에 기인한다고 설명한다.
본회퍼는 슐라이어마허의 죄의 전파 방식을 분석하며 죄의 ‘자기 활동성’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 가운데 있는 죄를 일깨우고 퍼뜨린다”24고 말한다.
24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3, SC-A [11]; Schleiermacher, Christian Faith, 427.
슐라 이어마허에게 원죄는 “인간의 자기 활동성이 그 전체의 범위로 전개될 때까 지 순수하게 수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25
25 Ibid.
슐라이어마허는 태어나면서 인 간은 원죄 상태, 즉 죄의 경향성을 가진 상태라고 보았다.
아직 죄의 씨앗을 품기는 했지만 실제로 죄를 짓지는 않은 상태이며, 죄의 활동성이 증대하면 서 인간은 죄를 범하게 된다. 이 자기 활동성은 자신과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교감을 통해 발현되고 전파되는 것이다.
원죄란 사회학적으로 세대 간 이어 지는 상호적 관계성을 통해 전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란 다른 사람과 의 관계 속에서 증대되는 공동체적 행위이며 동시에 인류 전체와 연결된 집단적 행위이다.
인류는 생식을 통해 죄의 보편성과 아담의 죄책을 전가 받는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 안에 내재한 죄의 활동성을 사회 속에서 발현시키 며 증대시킨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러한 사회적 전파 방식으로 인해 인류 전체로서 집단적 죄책을 가지게 된다고 보았다.
정리하자면 본회퍼는 슐라 이어마허에게 원죄의 정의는 공동체적 죄의 보편성이며 타자와의 사회 공동 체적 교류를 통해 전파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본회퍼는 슐라이어 마허의 죄론 구조 속에서는 원죄에 대한 책임 역시 인류 공동체 전체에 귀속 다고 평가한다. 본회퍼는 슐라이어마허의 죄 이해를 일정 부분 참고하여 아우구스티누 스의 원죄론을 교정하고 자신의 죄론을 구성하는 자원으로 삼는다.
하지만 본회퍼는 슐라이어마허가 원죄라는 개념을 인류의 총체성(Gesamtheit, totality)에 귀속시키는 것은 개인에게서 죄의 책임을 현저히 경감시키거나 면 제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다.26
26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3, SC-A [11].
즉, 슐라이어마허가 원죄의 주체를 개인에 서 인류 공동체의 총체성으로 이전시키는 것은 원죄로 비롯된 자범죄 역시 개인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윤리적 주체로서 의 개인의 책임을 약화시키게 된다고 비판한 것이다.
2. 본회퍼의 리츨 죄론 분석과 평가
비록 슐라이어마허보다는 짧게 인용하고 있지만, 본회퍼가 원죄론 부분 에서 슐라이어마허와 함께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20세기 신학자는 알브레 히트 리츨(Albrecht Benjamin Ritschl, 1822~1889)이다.27
리츨은 무엇보다 죄 개념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통찰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에 대하여 회의적이 다.
그는 “기독교에서 약속한 구원에 대한 갈망을 품기 위하여 먼저 개인의 죄와 공동체의 죄부터 완전하게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28
27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사회적 죄에 대한 논의는 Derek R. Nelson, “Schleiermacher and Ritschl on Individual and Social Sin,” Zeitschrift für neuere Theologiegeschichte 16 (2009/2), 131-154.
28 알브레히트 리츨, 기독교 강요, 진규선 옮김 (파주: 서로북스, 2022), 52.
리츨은 죄 개념의 이해 불가성에도 불구하고 아우 구스티누스가 정립한 원죄론은 성서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는 로마서 5장 12-19절을 기반으로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론을 도출한 것이 부적절하다고 비판한다.
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원죄를 모든 개인의 책임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저주이며 세대를 통하 여 전파되는 악을 향한 근본적인 경향성으로 보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장은 신약 의 그 어느 저자에 의해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바울은 단지 타락에 관한 본문에서 예표적인 해석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내려진 보편적 죽음이라는 운명이 첫 사람의 죄에 뒤따르는 것으로 또한 이미 저러한 운명에 놓인 후손들이 죄를 지었다고만 생각했다(롬 5:12-19).
예수도 그리고 신약의 그 누구도 죄가 자연적 출생을 통한 보편적인 것이라고 전제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가정(원죄 _ 역자 주)을 뒷받침하는 구약의 구절들은(시 51:7; 욥 14:4; 15:14) 그 자체로는 유익하지 않으며 또한 기독교의 사고방식을 규정하기도 적합하지 않다.29
리츨은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가장 핵심적 성서 구절인 로마서 5장 12-19절과 같은 구절들이 의미하는 바는 원죄론이 주장하는 죄의 보편성과 죄책의 전이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원죄론의 두 특징을 모두 거부한다.
더불어 원죄론을 뒷받침하는 구절인 시편 51장 7절이나 욥기 14장 4절; 15장 14절 등도 원죄론의 논리를 제공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한다. 30
리츨 은 신약의 다른 저자 누구도 죄가 자연적 출생을 통해 유전되는 보편적인 것이라고 전제하지 않는다고 말한다.31
원죄론에서처럼 생물학적 유전을 통한 죄성과 죄책의 전파 방법에 대한 설명을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인간이 죄를 범하는 필연성은 “인간의 본성에서도, 도덕적 훈육을 위한 합목적성에서도, 인식될 수 있는 하나님의 의도”32에서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29 앞의 책, 53.
30 앞의 책.
31 앞의 책.
32 앞의 책, 54. 1
결국 죄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은 “이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유혹과 집단의 죄를 이 세상 안에서 마주한다는 사실”을 통해 인식된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내부에서 죄의 근원을 찾는 원죄론의 전통에서 자신을 분리한다.33
이러한 리츨의 죄론에 대하여 본회퍼는 “리츨의 죄론은 부분적으로는 슐라이어마허에 대한 반발(reaction)이며 부분적으로는 그에게 동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34
본회퍼는 리츨이 죄의 보편성을 반박하는 충분히 근거를 대고 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리츨도 일정 부분 펠라기우스처럼 성서 에서 중요하게 지적하는 ‘죄의 보편성’을 간과하고 있다고 평가한다.35
본회 퍼는 리츨이 죄에 대한 책임을 환경에서만 찾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에게 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36
본회퍼는 아우구스티누스와 이후 원죄론을 계승한 안셀름, 토마스의 죄론에서 말하는 “죄의 집단성”(sinful collective act)은 “모든 개인 행위의 기초”라는 이해를 정통적 기독교의 죄 이해로 받아들인다. 37
즉, 집단적 죄와 개인의 죄는 연결되어 있으며 원죄 의 주체에서 개인을 제외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본회퍼는 리츨에게서 “원죄 (Erbsünde)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개인의 합(sum of individuals)으로서의 인류”라고 지적한다. 38
원죄에 대한 리츨의 개념은 개인의 죄와 인류의 악한 집단적 행위를 반드시 연결해야 함에도 리츨은 총합으로서의 인류라는 개념 에만 원죄 개념을 전가해 놓음으로써 실존적으로 발생하는 죄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는 부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회퍼는 비판한다.
본회퍼는 “인간은 개별적 존재로서 또한 인류이다.
이것이 근본적인 사회적 범주와 관련하여 인간 정신에 합당한 정의”39라고 말한다.
33 앞의 책.
34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4, SC-A [11].
35 Ibid., 115.
36 Ibid.
37 Ibid.
38 Ibid.
39 Ibid.
본회퍼는 시간과 공간에 실존하는 구체적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아닌 추상적 인간이나 총합으로서의 인류 개념 에는 책임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았다.40
정리하자면 본회퍼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원죄의 근원을 인간의 내부에 서 찾지만, 리츨은 죄의 근원을 인간 밖인 환경에서 찾는다고 비판한다.
이는 분명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인간론의 쟁점이었던 타락 사건 전후 인간의 상태에 대한 논의와 연관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타락 후 인간은 마치 추가 얹어져 한쪽으로 기울어진 양손 저울의 한쪽과 같이 악을 향한 경향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이해했지만, 펠라기우스는 창조 시 하나님으로부 터 인간에게 부여된 도덕적 품성이 손상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의지 를 통한 선 추구 가능성을 긍정하였다.41
본회퍼와 마찬가지로 레지널드 S. 목슨(Reginald S. Moxon, 1875~1950) 역시 리츨이 인간의 내부에서 죄의 근원 을 찾는 것에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죄의 보편성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42
40 Ibid., 34-57.
41 Alister E. McGrath, Christian Theology: An Introduction (Hoboken: Wiley, 2016), 331;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4, SC-A [11].
42 앤서니 티슬턴, 기독교 교리와 해석학,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6), 514.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리츨의 죄 이해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그가 죄의 근원을 찾는 것과 같은 고전적 관심에서 거리를 두고, 대신 인간의 실존인 죄의 집단적이고 구조적인 특성에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사회적이거나 공동체적 요소에 대한 리츨의 관심 은 슐라이어마허의 죄론에서도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본회퍼가 아우 구스티누스 원죄론 평가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V.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과 공동체적 죄책
담당 근대 신학자들의 전통 기독교 교리에 대한 재해석의 시도는 활발하였다.
특히 19~20세기 동안 삼위일체론, 예정론과 같은 교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43
하지만 슐라이어마허, 리츨 그리고 본회퍼와 같은 근대 신학자들의 원죄론 재해석은 그 중요성에 비하여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 44
본회퍼가 원죄론에 가장 깊은 관심을 보이던 시기 는 베를린대학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쓰던 때였으며, 이 시기에 형성된 그의 죄 이해는 그의 후반기 신학과 윤리의 토대가 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이전 그는 아돌프 폰 하르낙(Adolf von Harnack, 1851~1930)의 아우구스티누스 세미나에 참여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폭넓게 공부하였다. 45
43 McGrath, Christian Theology, 313-325.
44 이 논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가장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이 성도의 교제(Sanctorum Communio)로 처음 출판될 당시 원죄론 논의가 포함된 많은 부분이 삭제된 채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이 삭제된 부분이 다 복원된 후(독일어판: 1986년, 영어판: 1988년) 본회퍼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Clifford J. Green, “Editor’s Introduction to the English Edition,”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9-13.
45 Eberhard Bethge, Dietrich Bonhoeffer: A Biography, rev. ed., ed. Victoria J. Barnett, tr. by Eric Mosbacher et al.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0), 67. 본회퍼와 하르낙의 신학적 관계는 김현 주, “본회퍼의 스승이자 비판자: 아돌프 폰 하르낙,” 「기독교사상」 (2024), 138-147.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이어진다.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인 “성도의 교제: 교회 사회학의 신학적 연구”(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그는 사회학적 관점을 교회 공동체에 적용하 여 연구하는 것을 논문의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 본회퍼가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은 ‘사회 철학의 정의와 사회학’(On the Definition of Social Philosophy), ‘인격의 기독교적 개념과 사회적 기본 관계’(The Christian Concept of Person), ‘원초적 상태와 공동체의 문제’(The Primal State and the Problem of Community), ‘죄와 깨어진 공동체’(Sin and Broken Community) 그리고 ‘성도의 공동체’(Sanctorum Communio)로 이어진다.
이 목록에서 알 수 있듯이 본회퍼는 하나님과 인간 공동체의 관계성을 사회학적 관점을 통해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특히 ‘원초적 상태와 공동체의 문제’와 ‘죄와 깨어진 공동체’라는 부분에서는 원초적 인간 공동체에 생겨난 죄와 타락의 문제를 그리스도 안에서 극복된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와의 연결이라는 도식 을 통해 다룬다.
그는 ‘죄와 깨어진 공동체’라는 단락에서 ‘원죄론’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 차원으로 면밀히 분석한다.46
1. 원죄론 평가: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 공동체의 죄 문제를 다루면서 본회퍼는 원초적 공동체인 아담 공동 체와 그리스도 공동체인 교회를 연결하여 고찰한다. 47
기독교 신학에서 인간 공동체의 죄와 타락을 다루는 것은 필연적으로 창세기 이야기에 담긴 시원적 (始原的) 공동체와 연결하여 살펴보게 한다
본회퍼는 원초적 공동체의 개념 과 이 공동체에서 발생한 죄와 타락의 문제를 다루면서, 무엇보다도 서방 기독교 죄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을 분석한다.
본회퍼는 원죄론을 평가하며 ‘인류의 연대성’(solidarity of human race)이라 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인류를 massa pertionis (mass of destruction, 멸망의 집단)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오로지 인간을 죄인으로의 연대라는 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48
46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09-118.
47 Ibid., 107
48 Ibid., 112, SC-A [11].
원죄론을 평가하 며 그는 원악(original evil), 인류가 아담 안에 있음(the ‘being in Adam’ of humanity) 그리고 전가(imputation)라는 세 가지 의미를 주의 깊게 고찰해야 한다고 말한다. 49
본회퍼는 원죄의 의미, 성서 해석 그리고 원죄의 전파 방식 을 원죄론 평가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으로 보았다.
우선 본회퍼는 ‘원악’ 또는 ‘원죄’라는 의미를 재정의하고자 한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죄의 보편성’이라는 의미에서 더 나아가 첫 조상의 죄책 마저 유전을 통해 후대에 전가된다고 해석한 것은 심각한 성서 해석의 오류라 고 비판한다.
슐라이어마허나 리츨이 지적하듯, 본회퍼 역시 “로마서 5:12의 ἐφ᾽ ᾧ를 그 안에서라고 부정확하게 번역한 것은 교리의 역사에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평가한다. 50
그러면서 그는 원죄 개념에 내포된 두 가지 의미인 ‘죄의 보편성’과 ‘죄책의 전가’는 오직 ‘죄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으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정리한다.51
다음으로 본회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로마서 5장 12절의 ‘아담 안에서’ 의 해석이 결국은 생물학적 공동체에 죄책을 전가하는 교리로 잘못 발전된 것을 지적하며 성서가 말하는 ‘아담 안에서’라는 의미는 로마서 5장 12절이 아니라 고린도전서 15장 22절(“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 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52을 통해 그 본래 의미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담 안에서’의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짝을 이룬 대구(對句)와 연결되어야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53
49 Ibid.
50 Ibid. 아우구스티누스가 라틴 성경의 로마서 5장 12절의 ἐφ᾽ ᾧ(때문에, because)에 대한 오역인 ‘in quo’(그 안에서)를 기반으로 원죄론의 논리를 발전시켰다고 보는 것이다. Augustine, “On Marriage and Concupiscence Concupiscence,” 2.15. 원죄론과 성서 해석에 관한 자세한 논의는 Beatrice, The Transmission of Sin;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353. Beatrice와 Kelly는 로마 서 5장 12절이 원죄론의 가장 기초가 되는 성서 구절이라고 지적한다.
51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0.
52 KRV(한글개역). 김현주 | 윤리적 연대(Ethical Solidarity)의 신학 123
‘아담 안에서’는 모든 인류가 죄를 범하고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운명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대구가 바로 이어지는 것이 성서의 초점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범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는 그리 스도를 통해 드러난 생명의 이야기인 대속, 죄사함 그리고 그리스도 안의 새로운 삶이라는 일련의 주제와 연결되기 때문이다.54
그러므로 그는 ‘아담 안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와 연결되어 다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본회퍼는 죄인 공동체에 대한 교리는 반드시 성도의 공동체의 관점 으로부터만 적절하게 고찰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55
즉, 창세기의 원시 공동 체는 반드시 극복된 공동체인 교회 공동체와 연결해서 조명해야 하는 것이다. 56
본회퍼는 ‘원초적 상태, 죄 그리고 화해’(primal state, sin, and reconciliation)의 연속선상에서 인류의 연대성이라는 면을 재고찰하고자 하였다. 57
그는 성도의 교제에서 원시 공동체에 머물렀던 죄론의 지평을 그리스도 공동체까지 넓게 펼쳐 연결하고 있다.
만약 그리스도 안의 계시가 아담의 옛 인류로부터 그리스도의 새로운 인류, 즉 교회를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고, 내가 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통합되었 다고 알고 있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지지 않은 공동체의 개념을 원시 상태의 교리로 되돌려 투영해야 한다.
이는 교회에 대한 가르침에서 말한 것 이상으로 본질적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러나 원초 상태 교리의 논리 내에서, 원초 공동체의 교리는 그 자체의 조건에서 발전될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58
54 Ibid., 62.
55 Ibid., 123-124.
56 Ibid., 62.
57 Ibid. 58 Ibid.
본회퍼는 원시 공동체 그 자체의 이야기로부터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창세기 이야기라고 말한다.
옛 인류의 이야기는 단절된 이야기가 아니 라 그리스도의 교회와 연결된 상태의 교리로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옛 아담이라는 원시 공동체와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회복된 공동체와의 신학 적 균형 속에서 원죄 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회퍼의 이러한 원시 공동체에 대한 접근은 그리스도-중심적(Christocentric)이며 동시에 교회-중 심적(ecclesiocentric)인 신학적 방법론이다.
그는 창세기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하나의 예시라고 말한다.
그는 원시 공동체의 이야기가 담긴 창세기는 인간에 대한 진리가 담긴 교회의 책이라고 강조한다. 59
하지만 그 자체의 논리 안에서는 그 본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보았다.
본회퍼 는 창세기의 타락 이야기는 인간 타락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그 목표로 삼고 있지 않다고 말하며 고전적 죄론의 철학적 경향성과 거리를 둔다.
‘아담 안에 서’와 ‘그리스도 안에서’를 연결한 본회퍼의 방법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원 시 공동체에 한정된 원죄론 이해와 다른 접근법이며 슐라이어마허나 리츨보 다 더 원시 공동체 이야기에 신학적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회퍼는 원죄론의 가장 특징적인 요소인 ‘죄책의 전이’ 개념 을 고찰한다. 60
59 Dietrich Bonhoeffer, Creation and Fall: A Theological Exposition of Genesis 1-3, ed. John de Gruchy, tr. by Douglas Stephen Bax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04), 22-23. 본회퍼는 1932~ 1933년 겨울 베를린대학에서 강의한 것을 창조와 타락(Creation and Fall)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한다. 이 책의 서문에서 본회퍼는 창세기는 ‘교회의 관점’에서 쓰인 교회의 책이라고 말한다.
60 아우구스티누스의 ‘죄책의 전이’(transmission of guilt)라는 의미와 유사하게 본회퍼는 루터적 전가(imputation)라는 구원론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본회퍼가 유전적이며 인간 내재적 개념 대신 윤리적이며 외재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인 의미인 imputation을 사용하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은 원죄론의 가장 특징 적인 요소이다.
본회퍼는 분명 이 개념이 성서 해석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라 고 결론 내렸지만, ‘죄책의 전가’라는 개념을 ‘아담과 그리스도’라는 관계 속에 서 다시 조명한다.
왜냐하면 ‘아담 안에서’로 대표되는 인류의 죄는 반드시‘그리스도 안에서’의 속죄와 연결하지 않고는 인류의 암담한 운명론으로 끝 나기 때문이다.
본회퍼가 생식을 통한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을 부인하고 있지만, 그 안에 내포된 인류의 연대성(solidarity)이라는 개념을 포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인류는 죄의 보편성으로 연결된 죄인 공동체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본회퍼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를 오직 생물학적 종(species) 개념으로만 이해한다면, 죄책에 대한 윤리적 중 대함(gravity)은 약화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기독교-윤리적(Christian-ethical) 종 개념을 발견해야만 한다. 이 문제는 죄라는 개념에 있어서 인류 종(human species)을 이해하는 방법이다.61
본회퍼는 유전을 통한 공동체적 죄책 전이를 거부했지만, 인류가 종으로 서의 가져야 하는 윤리적 연대라는 문제는 사라질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는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사회 공동체적 접근법 에서 간과했다고 비평한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적 책임 문제를 기독교 신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사역과 삶을 관통하는 주제로 보았다.
이에 대한 본회퍼 의 신학적 사유를 다음 단락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공동체적 인격: ‘동시에 의인이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
본회퍼가 성도의 교제에서 공동체를 집단 인격(collective person)으로 이해하는 것은 이 논문의 주제인 공동체성과 매우 밀접하다.
마틴 부버(Martin Buber), 한스 에렌베르크(Hans Ehrenberg), 페르디난드 퇴니스(Ferdinand Tönnies) 등의연구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성은 그 시대의 중요한 주제였다. 62
61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11-113.
62 Wayne Whitson Floyd, “Dietrich Bonhoeffer,” Modern Theologians: An Introduction to Christian Theology Since 1918, eds. David F. Ford et al. (Oxford: Blackwell Publishing, 2013), 49. 1920년대 는 특히 마틴 부버(Martin Buber), 한스 에렌베르크(Hans Ehrenberg), 페르디난드 퇴니스 (Ferdinand Tönnies) 등의 학자들이 ‘나’(I)와 ‘타자’(the Other)라는 관계적 용어를 사용하여 인간의 종교 철학적,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였다.
본회퍼는 ‘나와 타자’라는 관계성을 신학적 영역으로 연결한다.
그는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도 ‘집단 인격’(collective person)으로 정의함으로써 공동체를 인격으로 다룰 수 있는 신학적 장치를 마련한다.63
그는 옛 아담의 죄성은 아직 교회 공동체라는 집단적 인격에 남아 있지만, 교회 공동체적 인격은 그럼에도 옛 아담에 대항하는 책임적 존재로 선포되었음을 지적한다.64
죄의 세계는 ‘아담’의 세계, 즉 옛 인류의 세계이다.
그러나 아담의 세계는 그리스도 가 화해시킨 새로운 인류(a new humanity),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든 세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아담이 완전히 극복된 것은 아니며, 오히려 아담의 인류는 그리스 도의 인류 속에서 계속 살아간다.
이 때문에 죄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성도의 교제 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65
63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89-90. 본회퍼는 공동체에 인격 개념을 부여하기 위해 페르 디난드 퇴니스(Ferdinand Tönnies)의 ‘공동체’(community)와 ‘사회’(society)라는 개념을 구분하 여 사용하였다. 또한 막스 쉘러(Max Scheler)의 위계적 관계를 나타내는 ‘Herrschaftsverhaltnis’ 라는 개념도 함께 사용하였다.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91, [106].
64 Ibid., 107.
65 Ibid.
본회퍼는 아담의 세계는 이미 그리스도가 화해시켜 놓은 세계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리스도가 화해시킨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새 인류인 교회는 아직 옛사람인 아담의 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철저히 이 면에 서 본회퍼는 루터의 구원론적 인간론을 계승하고 있다.
루터가 개인 차원의 ‘동시에 의인이자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이중적 개념을 교회 공동체라는 집단 인격(collective person)에 적용하고 있다.
본회퍼는 슐라이 어마허나 리츨과 같은 그 시대 신학자들이 관심을 가진 공동체 문제에 역시 깊은 관심을 표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론의 성서 해석의 오류를 통해 도출된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의 부적절함에도 불구하고 원죄론에 내포된 인류의 연대성이라는 문제는 기독교 신학에서 간과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 이다. 하지만 그는 이 인류의 연대성이라는 점은 유전적이며 비자발적인 죄책의 전가(imputation)가 아닌, 윤리적이며 그리스도교적 방식으로 이해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66
66 Ibid.
67 Ibid., 62, 122-123.
그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교회에 통합되었다고 알고 있다면, 우리는 또한 하나님과 인간의 끊어지지 않은 공동체의 개념을 원시 상태의 교리로 되돌려 투영”해야 인류의 연대성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67
본회퍼는 집단 인격인 교회 공동체 내에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죄의 문제 에도 불구하고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화해된 세계라고 말하 면서 루터의 개인 차원의 칭의(justification)를 공동체에 부여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 공동체는 ‘새로운 인류’이며, 이 새로운 인류는 개인 성도와 같이 ‘동시에 의인이며 죄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imputation)로 말미암아 의인이라고 간주되지만, 여전히 옛 아담의 습성은 남아 있는 것이 다.
하지만 그 공동체의 정체성은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새로운 인류’라는 데 있으며, 이 새로운 인류의 행위는 그리스도의 행위에 근원을 둔 ‘대리 행 위’(Stellvertretung)와 연결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3. 교회 공동체와 죄책의 전이
비록 본회퍼가 슐라이어마허와 리츨의 원죄론 이해에 있어서 많은 부분에 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본회퍼 역시 개인과 사회 공동체의 관계성이라는 면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루고자 한다.
본회퍼는 슐라이어마허를 투영하며 죄는 “개인적 행위”(an individual deed)인 동시에 “초-개인적 행위”(supra-individual deed)라고 말한다.68
본회퍼에게 문제는 어떻게 개인의 죄와 인류 공동체의 죄가 연결되는지에 대한 방식에 있다. 69
인류의 연대성을 생물학적으로 설명 하는 원죄론의 설명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인류의 연대성이라는 개념을 본회퍼는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 그는 인류라는 개념은 생물학적 측면 이외 에 윤리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70
본회퍼가 원죄와 인류 공동 체의 관계를 설명하는 슐라이어마허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 역시 개인 의 죄와 인류 공동체의 죄책 문제를 ‘사회학적으로’(sociological) 접근하고자 한다.
하지만 본회퍼의 접근법은 단순히 사회학적이지 않고 사회학적인 용어 와 개념을 교의학에 도입하는 것이다.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인 “성도 의 교제: 교회 사회학의 신학적 연구”(Sanctorum Communio: Eine dogmatische Untersuchung zur Soziologie der Kirche; Sanctorum Communio: A Theological Study of the Sociology of the Church)는 그의 신학적 방법론을 잘 드러내 준다. 71
본회퍼가 ‘죄책의 전이’라는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아우구스티누스와도 슐라이어마허와도 다르다. 72
68 Ibid., 108.
69 Ibid., 110-111.
70 Ibid., 112.
71 예를 들면 본회퍼는 사회학적 용어를 사용하면서 ‘사회’(society)와 ‘공동체’(community)를 구분 한다. 특히 Gensellschaft, Gmeinschaft, Herrschaftsverhalinis등과 같은 당시 사회학 개념들을 교회 공동체 인격 개념에 차용한다. Ibid., 89-92; 91, [106]. 72 Ibid., 120, [29].
그는 원죄라는 개념에 동반된 개인과 인류 공동체 사이의 ‘죄책의 전이’라는 주제를 그리스도론적이며 동시에 교회론적인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로 인식했고, 더 나아가 교회 공동체에 위임된 문제로 보았다.73
왜냐하면 죄의 문제는 근원적으로 개인의 능력의 범위를 넘어선 구원론적 문제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루터를 인용한다.
루터는 죄책의 문제를 그리스도와 교회 공동체의 관계로 설명한다.
누가 그들의 죄로 인해 절망할 수 있겠는가? 누가 그들의 슬픔 속에서도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죄와 형벌을 혼자 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 죄를 짊어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 더 나아가 그리스도 자신에게서 지지받고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성도의 공동체가 이토록 위대한 것이다.74
본회퍼는 루터가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그리스도 와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한 것에 주목한다.
그는 루터를 인용하며 어떤 개인도 홀로는 죄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본회퍼는 인간의 참된 연대(solidarity)는 생물학적이라기보다 는 윤리적 연대라고 말한다.75
그는 “개인들이 스스로가 개인들이자 인류라 고 인식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요구에 복종할 때, 집단 인격의 심장은 뛴다”라 고 말한다. 76
결국 본회퍼는 각 개인은 동시에 개인이자 인류로서 타자와 윤리 적 연대를 가지는 존재라고 이해한다.
그는 “아담이라는 집단 인격은 오직 ‘교회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Christ existing as church-community)라 는집단 인격에 의해서만 대체될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77
73 Ibid., 114, SC-A [11].
74 Ibid., 189, [63]. 본회퍼는 루터(WA 6:131, LW 42:162)의 글을 인용한다.
75 Ibid., 112, SC-A [11].
76 Ibid., 121.
77 Ibid.
아우구스티누스가 원죄론에서 비자발적 생물학적 연대로 묶인 죄인 공동체(peccatorum communio)로서의 비참함을 강조했다면, 본회퍼는 개인이 죄책을 의식함 으로써(consciousness of guilt) 다른 죄인들과 윤리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78
본회퍼는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은 오직 그리스도 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윤리 영역으로 이전되어야만 온전히 설명 될 수 있다고 말한다.79
본회퍼의 윤리적 연대라는 개념은 ‘대리 행위’로 표출된다. ‘대리 행위’ 개념 은 성도의 교제에서 이론적 윤곽이 드러난다.80
그는 성도의 윤리적이며 공동체적 죄책 담당을 전통적인 교회 사역에서 찾는다.
그는
“자기-부인, 이웃 을 향한 적극적인 활동, 중보 기도… [그리고] 상호 간의 죄 사함”
이라는 교회 공동체의 활동을 자발적인 책임의 예로 들고 있다.81
분명 본회퍼는 죄책을 혈연과 같은 공동체적 처벌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의 공동체인 교회가 자발적으로 감당할 문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본회퍼의 윤리적 책임이라 는 개념은 교회 내의 범주를 넘어 사회의 영역으로 확대된다. 그의 사회-공동체 적 윤리적 연대성이라는 개념은 이후 유대인 문제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독일의 제3제국(The third Reich)은 그들의 국가 정책에 아리안족 이외의 인종에 대한 차별 정책을 도입했다.
본회퍼의 유대인에 대한 초기 태도는 그의 유대인과의 연대성 면에서 논란이 되기도 한다.82
78 Ibid.
79 Ibid.
80 본 논문은 Stellvertretung이라는 용어를 문맥에 따라 ‘대리 행위’ 또는 ‘대리적 대표 행위’(vicarious representative action)라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81 Ibid., 78-92.
82 본회퍼와 유대인에 관한 주제는 Andreas Pangritz, “Bonhoeffer and the Jews,” The Oxford Handbook of Dietrich Bonhoeffer, eds. Michael Mawson et al.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91-107.
본회퍼의 유대인에 대한 태도는 부분적으로 일관적이지 않다.
여러 가지 요인 중 루터 신학의 영향은 중요한 요소임을 부인할 수 없다.
1933년 6월 본회퍼는 “교회와 유대 인 질문”이라는 글에서 루터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벌하였던 이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역사는 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끝날 것이다.”83
본회퍼가 루터 후기 신학 에서 유대인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게 유대인들이 당하는 고난의 이유가 선조 들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시각을 일정 부분 투영하고 있는 듯하 다.
이에 대하여 윌리엄 J. 팩(William J. Pack)은 초기 본회퍼의 유대인에 대한 인식의 양면성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핍박받던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연대 성은 그의 삶으로 명확히 드러났다고 말한다.84
그의 유대인에 대한 루터적 초기 인식 그리고 그 시대의 압도적 분위기에 일면 공포를 느꼈음에도 불구하 고,85 “교회와 유대인 질문”이라는 같은 글에서 그는 독일 정부의 유대인에 대한 공동체 배제와 차별을 단호히 반대한다. 86
83 Dietrich Bonhoeffer, Berlin: 1932-1933, ed. Larry L. Rasmussen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9), 367.
84 Andreas Pangritz, “Bonhoeffer and the Jews,” 92.
85 본회퍼는 1933년 4월 11일 그의 매형인 Gerhard Leibholz의 아버지의 장례식 집전을 거절한다. 표면적 이유는 그의 교구 감독(superintendent)이 유대인 조항의 발표가 이루어진 1933년 4월 7일 며칠 후인 민감한 시기에 세례받지 않은 유대인의 장례를 집전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 다. 하지만 이후 본회퍼는 이 일을 매우 후회하며 그의 매형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Bethge, Dietrich Bonhoeffer: A Biography, 275-276. 당시 칼 바르트, 디트리히 본회퍼, 프리드리히 지그 문트-슐츠 등 몇몇 개신교 신학자들이 유대인들과 연대하며 나치의 반유대인 정책에 반대를 표했다. 하지만 후에 칼 바르트가 회고하듯이 그가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연대를 강하게 표현하 지 못했음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Andreas Pangritz, “Bonhoeffer and the Jews,” 91.
86 Bonhoeffer, Berlin, 365.
그의 ‘공동체적 처벌’에 대한 신학적 사유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인 “성도의 교제”에서 원죄론 비판을 통해 제시한 인류를 향한 윤리적 연대성이라는 그의 신학적 방향성과 일치한다. 본회퍼의 유대인 공동체 이해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가 이론적으로 체계를 놓은 그의 타자 공동체와의 윤리적이며 자발적 연대 사상 은 유대인 문제를 통해 당시 어떤 신학자보다 명확하게 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87
1933년 4월 7일 나치 정권은 ‘아리안 조항’(Aryan Paragraph)이라는 정책을 통과시켰다. 이 정책의 핵심은 독일 내 거주하는 아리안 이외의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직을 비롯한 국가의 주요 직책에 참여할 수 없다는 법령이었 다. 이 법이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한 혈연이나 문화 공동체에 대한 집단적 처벌을 법으로 정당하게 만든 점이다. 이 정책이 배제하고자 하는 주요 집단은 유대인이었다.
아리안 조항이 표방했던 것은 독일인의 정체성을 민족적 혈연 공동체에 두는 것이었다. 독일의 영토 내에서는 아리안 혈통인 사람들이 우선 권을 가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책에 대한 본회퍼의 반응은 누구보다 즉각 적이었다. 그는 아리안 조항이 발표되고 2개월 후인 1933년 6월 “유대인 문제 앞에서의 교회”(Die Kirche vor der Judenfrage)라는 글을 통해 교회 공동체가 국가 정책 실패의 죄책을 감당해야 한다고 주장한다.88
교회가 국가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세 가지 행동 방안이 있다. 첫째는… 국가의 행동이 합법적인 국가의 특징인지에 대하여 국가에 질문하는 것이다. 즉, 국가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의 행동으로 인한 피해자들 을 위한 봉사이다.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어떠 한 사회질서의 피해자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의무가 있다. … 이 두 가지 방법은 교회가 자유롭게 자유 국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방식이다. 법이 변화하는 시기에 교회는 이 두 의무를 절대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89
87 본회퍼가 탄압받는 유대인 공동체와 연대한 활동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본회퍼의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 인식과 탄압받는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연대가 어떻게 구분되는지 등과 같은 논의는 따로 다루어져야 할 주제라고 본다. 88 Ibid. 본회퍼와 유대인 정책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논의는 강안일, “본회퍼와 유대인 문제,” 「기독교 사회윤리」 56 (2023), 99-125; 김현주, “바퀴 그 자체를 저지하라: 본회퍼의 교회와 정부,” 「기독교 사상」 786 (2024), 128-139.
89 Bonhoeffer, Berlin, 365.
본회퍼는 나치 독일 정권의 유대인 배제 정책은 비합법적인 국가의 행위 라고 지적한다. 90
이 글에서 그는 “교회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사람 들을 포함하여 어떠한 사회질서의 피해자들에게도 무조건적인 의무가 있 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상처에 대한 책임을 교회가 행해야 할 윤리적 의무라고 말한다.
본회퍼의 자발적이 고 윤리적인 죄책 담당이라는 초기 윤리는 ‘아리안 조항’과 같이 유대인 배제 정책 후 교회 밖으로 확장되어 나타난다. 독일 히틀러 정권의 인종 정책은 독일 내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유대인에 게도 혈통 공동체라는 이유로 공동체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처벌하자는 것이 었다.
이미 “성도의 교제”에서 본회퍼는 원죄론의 유전을 통한 ‘죄책의 전가’라 는 개념이 비성서적이며, 이는 ‘죄의 보편성’이라는 개념으로만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인류라는 개념을 유전적으로 운명지어진 ‘죄인 공동체’ 라는 측면에만 몰입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를 통해서 이루어 놓은 자발적인 죄책의 담당이라는 개념을 흐리게 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인류라는 개념은 반드시 ‘죄인의 공동체’(peccatorum communio)라는 ‘아담 안에서’의 개념과 더불어 ‘성도의 공동체’(sanctorum communio)라는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개념과 연결해야 한다고 이해했기 때문이다.91
본회 퍼는 이어 1933년 7월 “교회 신앙 고백 상태로서의 유대-기독교인 문제”(The Jewish-Christian Question as Status Confessionis)라는 글을 통해 독일 교회의 신앙 고백의 상태의 판별은 유대-기독교인에 대한 교회의 태도에 달려 있다 고 주장한다.92
90 Ibid.
91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189.
92 Bonhoeffer, Berlin, 371-373.
당시 독일 개신교교회(German Evangelical Church)의 새로운 헌법 제정 개요에서 비-아리안계 학생들을 신학 교육에서 배제하려는 시도 는 “복음의 진리와 기독교인의 자유”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그는 강하게 비판한다. 93
본회퍼는 독일 주류 교회가 명백히 타자 공동체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정책에 동조하여 교회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교회 구성원의 자격과 규칙이 더 이상 편의적이거나 교리적 무관심의 문제가 아닌, 복음의 진리와 기독교 의 자유가 달린 신앙적 항의 상태”와 직결되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94
본회퍼의 ‘대리적 대표 행위’라는 개념은 ‘교회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 도’(Christ existing as Church-community)라는 본회퍼의 교회 정의(definition) 에 부합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강조한 공동체적 행위이다.95
이 대리적 행위는 우선 교회 내의 혈연, 지연, 성별과 같은 이질적 타자나 타자 공동체의 고통을 대리하는 것이어야 하며, 동시에 교회 공동체에 속하 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죄가 아닌 혈연과 같은 공동체의 죄책을 강요받는 타자 공동체를 위한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회퍼의 사유 방식은 행위와 존재(Act and Being)에서 잘 드러난다.
본회퍼는 ‘아리안 조항’과 같이 타자나 타자 공동체를 인종이나 문화 등 다름을 이유로 공동체 적 배제와 차별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 안에 갇혀 자기를 사유의 기반으로 하는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인간’(homo incurvatus in se 또는 cor curvum in se)96의 ‘사유적 행위’(actus reflexus)라고 보았다.
93 Ibid.
94 Ibid., 366, [14].
95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214.
96 Ibid., 108. 본회퍼는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중심성을 루터의 용어인 ‘cor curvum in se’(자기 안으 로 구부러진 마음)라는 표현을 계승하여 사용했다. 또한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homo] incurvatus in se’(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인간])라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인간의 죄성의 근원을 인 간의 자기 사랑(self-love)으로 지목하여 표현한 개념을 계승하였다. Dietrich Bonhoeffer, Act and Being, ed. Wayne Whitson Floyd, Jr., tr. by H. Martin Rumscheidt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09), 41; Bonhoeffer, Creation and Fall, 165.
그는 “유대인 문제 앞에 서의 교회”라는 글에서 교회 공동체의 고통받는 타자 공동체를 향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대리적 대표 행위’의 연장선상에 서 있어야 함을 명확히 드러내 었다. 97
97 Bonhoeffer, Berlin, 361-370; Bonhoeffer, Act and Being, 28-32.
본회퍼가 그리스도의 ‘대리적 대표 행위’를 교회 공동체가 실천해야 할 윤리적 토대로 삼는 것은, 교회 공동체를 그리스도가 머리인 그리스도의 몸이자 그 자체로 그리스도의 현존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본회퍼에게 비윤리적 ‘죄책의 전이’라는 문제는 결국 인간 공동체의 ‘자기 안으로 구부러 진 마음’의 극단적인 현상이다.
그는 ‘죄책의 전이’라는 문제를 그리스도 공동 체의 윤리적이며 자발적인 죄책의 담당이라는 행동 양식으로 전환해야 할 신학적이며 동시에 실존적인 주제로 인식하였다.
VI. 나가는 말
원죄론은 서방 기독교의 인간 존재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관점 중 하나 이다.
원죄론은 인간에 대한 냉철하고도 겸허한 자기 분석을 담고 있다. 하나 님의 은혜 없이 스스로는 하나님과 이웃 앞에서 의로울 수 없는 인간의 죄성과 무력함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원죄론은 ‘죄의 보편성’ 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에서, 더 나아가 유전적으로 전이되는 공동체적 죄책 이라는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 부가됨으로 인해 기독교의 타자를 향한 사랑의 정신을 흐리게 하였다.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은 인류가 세대를 거쳐 변하지 않고 이어지는 죄의 보편성과 더불어 인류의 첫 죄로 일컬어지는 원죄의 책임마저 모든 후대 인류에게 유전적으로 전파된다고 이해하여, 공 동체적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류의 비참함을 강조하였다.
그러 나 본회퍼를 비롯한 학자들은 원죄론의 ‘죄책의 전가’라는 개념은 성서가 인류에 대하여 말하는 ‘죄의 보편성’을 넘어선 성서 오역으로 인한 신학적 산물이라고 지적한다.
본회퍼는 성도의 교제에서 이 부분을 정확히 지적 했으며, 그의 초기 신학으로부터 후기까지 이어지는 ‘대리적 대표 행위’라는 교회 공동체적 윤리 개념을 통해 차별받는 타자 공동체를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봉사와 연대의 대상임을 상기시켰다.
본회퍼의 ‘죄책의 전이’ 개념의 재해석과 차별받는 타자 공동체를 향한 윤리적 책임이라는 주제는 다음과 같은 통찰을 제시한다.
우선 본회퍼는 원죄론의 개념과 내용을 분석함으로써 원죄론의 신학적 공헌과 한계 등을 신학적으로 제시하였다.
본회퍼의 원죄론 분석은 원죄론 에 내포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죄성이라는 기독교의 근원적인 주제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
본회퍼의 원죄론 분석은 오랫동안 기독교 역사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신학적 공헌과 결점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그는 유전을 통한 공동체적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이 기독교의 타자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정신이 흐려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오히려 그는 유전적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 대신 교회 공동체의 자발적이고 윤리적인 ‘연대’라는 개념을 통해 교회 공동체의 타자와 타자 공동체를 향한 교회의 자발적 봉사와 헌신의 행위가 기독교의 핵심 사상임을 제시하였다.
둘째, 현대 많은 사회에서는 연좌제와 같은 공동체 처벌이 법적으로 금지 되어 있지만, 이질적인 혈통, 지역, 문화 공동체에 대한 배제와 혐오는 문화나 관습과 같은 간접적 방식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본회퍼의 윤리적 공동체 성로 전환은 개인주의에 함몰된 현대 사회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윤리적 관계 정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한 ‘연대’라는 개념의 재해석을 통해 기독교의 하나님 관념이 유전을 통한 죄책을 정당화하는 억압적이고 무자비한 하나 님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초래된 고통과 죄책마저도 자발적으로 인간과 연대 하여 책임을 지는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임을 상기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셋째, 본회퍼의 원죄론 재해석은 타자나 타자 공동체가 가진 혈연적, 지연 적, 문화적, 성별적 차이 등과 같은 이질적 요인들이 타자에 대한 혐오와 대립 의 원인이라기보다는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더욱 성숙하게 하고 풍성하게 하는 긍정적 요소임을 깨닫게 하는 인식의 틀을 제공한다.
본회퍼의 ‘죄책의 전이’ 개념의 윤리적 해석은 개인이나 공동체가 다양한 타자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윤리적 인격체로서 성장하며 타자에 대한 윤리적 연대 정신의 중요성 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본회퍼의 ‘죄책의 전가’ 재해석은 현대 사회에서 특정 집단에 대한 무지성 적 혐오와 배제 현상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다.
본회퍼의 타자를 향한 책임의 정신이 21세기 세계에 제시한 신학적 통찰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자를 향한 기독교 공동체적 책임 사상은 일부 기독교인이나 공동체를 통해 오히려 자기 공동체에 대한 이기심의 도구로 오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본회퍼의 연대책임 사상은 ‘자기 안으로 구부러진’ 이기적 공동체 현상에 함몰된 독일 민족과 독일 교회를 향한 자성적 외침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는 혐오와 배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회퍼의 타자와 타자 공동체를 향한 협력과 연대 정신을 다시 한번 재해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본회퍼의 타자와 타자 공동체에 대한 연대 정신에도 불구하고 본회퍼의 타자 지향적 사상이 타자와 타자 공동체를 절대화하는 오류에 빠지거나 비현실적인 이상의 외침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타자 공동체에 대한 혐오와 배제라는 죄성을 극복하는 것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하였다.
그는 오직 그리스 도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인류’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행동 양식을 가진 공동체 만이 이 새로운 인류 안에 아직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는 옛 아담의 죄성을 끊임없이 극복하며, 타자와 타자 공동체를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아닌 포용과 협력의 대상으로 연대해 나갈 수 있다고 제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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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기독교는 타자가 결코 혐오나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포용과 연대의 대상임 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몇몇 전통적 교리들은 성서의 지엽적 해석이나 해석 적 오류 등으로 인해 기독교의 타자에 대한 포용과 윤리적 연대의 정신을 선명 하게 드러내지 못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죄책의 전 이’(transmission of guilt)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죄의 보편성(universality of sin)이라는 성서의 가르침을 넘어 선조의 죄책을 이유로 타자를 공동체적으 로 처벌하는 개념이 내포되어 있어 신학적 논란이 되어 왔다. 유전을 통한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은 나치의 유대인 배제 정책처럼 타자 공동체에 대한 증오와 차별을 정당화하는 데 오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죄책의 전이’ 개념은 성서 해석의 오류에 기인하였을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라고 비판 했다. 그는 비자발적 죄책의 전이라는 개념 대신 혈통, 신분, 성별 등의 다름을 이유로 무고하게 차별받는 공동체를 향한 교회 공동체의 자발적이며 윤리적 연대를 주장했다.
주제어 본회퍼, 죄책의 전이, 윤리적 연대, 공동체 처벌, 아리안 조항, 배제와 포용
A Theology of Ethical Solidarity: Bonhoeffer’s Reconsideration of ‘Transmission of Guilt’ Hyun Joo Kim, Ph.D. Visiting Professor, Department of Systematic Theology Torch Trinity Graduate University Christianity teaches that others or other communities are not objects of hatred and exclusion but rather of shared responsibility and embrace. Some traditional doctrines, however, have limitations in fully expressing the Christian spirit of inclusion and ethical solidarity due to peripheral or erroneous interpretations of Scripture. Augustine’s concept of the transmission of guilt is one such example, and it has been controversial as it implies a notion of communal punishment based on inherited guilt, which goes beyond the universality of sin. Bonhoeffer contends that the doctrine of transmission of guilt arises from a misinterpretation of Scripture and is both unethical and inconsistent with divine justice and love. The concept of the ‘transmission of guilt’ risks justifying hatred and exclusion of marginalized communities similar to the Nazi’s policy of excluding Jews. Rather than an alien transmission of guilt, Bonhoeffer advocates for voluntary and ethical solidarity of the church community, a new race in Christ, toward those discriminated by inherited guilt based on lineage, class, gender, and other factors.
Keywords :Bonhoeffer, Transmission of Guilt, Ethical Solidarity, Collective Punishment, Aryan Paragraph, Exclusion and
Embrace
접수일: 2024년 11월 10일, 심사완료일: 2024년 12월 2일, 게재확정일: 2024년 12월 5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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