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근대 국가 체제에서 정교분리는 필수적인 원칙으로 여겨져 왔다. 그 러나 종교는 여전히 공적 영역에서 정치적,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 으며, 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이러한 맥락에 서 ‘정치신학’은 서구 근대성 속에서 이성과 신념, 종교와 정치의 긴장 관 계를 분석하는 중요한 주제로 주목받아 왔다. 특히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의 ‘정치신학’은 근대적 국가 모델이 종교적 신념과 정치적 권력을 어떻게 결합했는지를 보여주며, 근대성에 내재된 모순을 드러낸다. 더 나아가, 정치신학적 관점은 서구 정치 구조의 기저에 여전 히 작동하는 종교적·신학적 관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1)
1) ‘탈세속화 사회(세속화 이후 사회)’ 개념과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Jürgen Habermas, “Secu larism’s Crisis of Faith: Notes on Post-Secular Society,” New perspectives quarterly 25/4 (2008/ Fall), 17-29. 독일의 경우 2001년 독일 출판 업계로부터 하버마스가 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수상 강연에서 그는 ‘탈세속화 사회’(postsäkulare Gesellschaft)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이 개념은 이 후 널리 확산되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다만 슈미트는 나치 정권에 적극 협력하며 권력의 중심에 참여한 전력이 있고, 평생 보수주의적 사고를 유지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사상을 이 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맥락화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위해 그 러한 주장을 했는지를 짚어가며 비판적 관점에서 분석해야 하며 그의 신 학적 관점 또한 고려되어야 한다. 슈미트의 ‘정치신학’은 정치와 종교, 정치와 신학의 결합을 통해 과 거에 파시즘적 절대주권을 옹호하는 데 기여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체주의를 정당화하는 이론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2)
뿐만 아니라 여 기에는 그의 신학적 관점 또한 작동한다. 한 예로 헝가리의 오르반(Orbán) 총리, 2023년 10월 총선 전까지 폴란드를 집권한 카친스키(Kaczyński)와 같은 동유럽 극우 정치인을 들 수 있다. 그들은 서구 자유주의와 민주주 의를 맹렬히 비판하며 스스로를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유럽을 지켜내는 자(아우프할터, Aufhalteer)로 자처했다. ‘세상의 종말을 막는 자’로서의 ‘아 우프할터’는 슈미트의 『대지의 노모스』(Nomos der Erde, 1950)에서 언급 된다. 이는 헬라어 ‘카테콘’(τὸ κατέχον)의 번역어로서 데살로니가후서 2장 2-7절에 등장한다.3)
2) 서구에서는 자유주의적 좌파 지식인들이 칼 슈미트와의 대결을 진행하고 있으나, 중국에서 슈미 트적 ‘정치신학’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점은 흥미롭다. 분권 방식이 아닌 군주에게 절대 권력 이 집중되는 방식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이용될 수 있는 ‘정치신학’ 이론이, 그리스도교와 무관한 중국에서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서구 근대 정치의 정점인 민주주의를 서구에 서 등장한 이론으로 비판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이 될 수 있으며, ‘하나의 중국’ 과업을 이룩할 수 있 는 유일한 권력으로서 공산당 일당 체제를 옹호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Ryan Martínez Mitchell, “Chinese Receptions of Carl Schmitt Since 1929,” Penn State Journal of Law & International Affairs 8/1 (2020/5), 182-263, Xiaodan Zhang, “Carl Schmitt in China: Why Is He Needed and How is he Understood? - An Analysis of Chinese Political Constitutional Theory,” Zeitschrift für Chinesisches Recht 25/2 (2018/2), 83-101.
3) 이 책에서 슈미트는 “나는 본래 기독교 신앙에서 카테콘 외에 다른 역사적 이미지(Geschichtsbild) 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의 종말을 막는 자에 대한 믿음은, 종말론적 마비 상태로부 터 모든 인간적 사건들이 게르만 왕들의 기독교적 제국과 같은 위대한 역사적 권력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다리를 놓는다”고 언급했다. Ivan Krastev & Stephen Holmes, The Light That Failed: Why the West is losing the fight for democracy (New York, London: Penguin Books, 2019), 30(e-book); Paul Metzger & Markus Mühling, “Katechon,” Constance M. Fure & Peter Gemeinhardt & Joel Marcus LeMon & Thomas Chr. Römer & Jens Schröter & Barry Dov Walfish & Eric Ziolkowski (eds.), Encyclopedia of the Bible and Its Reception Online (Berlin, Boston: De Gruyter, 2017).
슈미트의 사유, 특히 홉스 해석은 그의 ‘정치신학적’ 관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동시대인인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과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에 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두 학자는 모두 독일인으로서 나치즘과 제2 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이 있다. 잔혹한 전체주의와 참혹한 전쟁의 경험 을 공유하고 있으며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관한 분석을 시도했다. 슈미 트의 영향 때문이었다. 그러나 둘은 서로 명확한 차이점을 보여준다. 코 젤렉은 슈미트적 관점을 역사적 맥락에서 수용하며 근대성의 위기를 분 석했지만, 몰트만은 이와 비판적으로 대결을 시도하여 현대 민주주의와 신학적 책임을 강조하는 “새로운 정치신학”의 제시했다.4)
4) 본 논문에서는 정치신학의 다양한 개념이 등장한다. 홑따옴표로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을, 겹따옴 표로는 아우슈비츠 이후 신학의 자리를 반성하며 등장한 “새로운 정치신학”과 신학적 “정치신학” 으로 구분했다. 뚜렷한 방향 설정은 안 되었으나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개념인 정치신학은 따 옴표 없이 표기한다.
슈미트적 관점 하에서 역사적 맥락화를 시도한 코젤렉의 경우와 슈 미트적 관점과의 비판적 대결을 하며 역사적 맥락화 뿐만 아니라 홉스 당대의 시대 정신 상 벗어나기 어려웠던 신학적 배경을 고려한 맥락화를 시도했던 몰트만의 경우를 고찰한다.
이러한 비교를 진행하기에 앞서 잠 시 슈미트의 홉스 해석의 핵심적인 부분을 요약적으로 살핀다.
결론에는 전체적 평가를 통해 서구 ‘정치신학’과 신학적 “새로운 정치신학”의 긴장 관계 및 다학제적 협력을 위한 신학의 과제에 대해 생각해본다.
Ⅱ. 슈미트가 바라본 홉스와 ‘리바이어던’5)
슈미트는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가 성서에 등장하 는 해수이자, 유대 그리스도교적 개념인 ‘리바이어던’을 세속 국가적 맥 락으로 체계적 전환을 시도했음을 주목했다.6)
5) 이 장의 내용은 다음의 글을 참조하여 전체적으로 요약 평가하였다. 칼 슈미트/김효전 옮김, “홉스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아턴,” 『로마 가톨릭주의와 정치형태 홉스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아턴』(서울: 교육과학사, 1992); Carl Schmitt, Der Leviathan in der Staatslehre des Thomas Hobbes: Sinn und Fehlschlag eines politischen Symbols (Stuttgart: Klett-Cotta, 1938); 김태연, “코로나 시대, 서구 위기 담론에서 드러난 근대 국가와 종교 문제: 슈미트의 정치신학적 관점에서,” 「종교문화비평」 40 (2021/9), 45-76.
6) Oliver Hidalgo, Politische Theologie: Beiträge zum untrennbaren Zusammenhang zwischen Religion und Politik (Wiesbaden: Springer VS, 2018), 7 참조.
그는 홉스의 『리바이어던: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l and Civil, 1651)에서 절대적 권위를 지닌 주권자에 주목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 기계이자 괴수, 주권자인 리바이어던은 사회 계약을 통해 탄생한 국가 그 자체이 다. 이 인공의 거인을 중심으로 전체 인민은 통합된 체제를 이루기에 그 괴물의 몸체와 하나가 되어있다. 이 주권자는 최종 결정권을 지닌 결단 하는 자이다. 그가 국가의 법과 질서를 수립하며, 국가 체제가 전복될 수 있는 위기에 직면하면 예외 상황 하에 초법적 결단할 권한을 지닌다. 법 을 넘어서는 그의 결정은 결국 초월적인 신적 권위에 의한 기적에 상응 하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 점을 강조하며, 주권자가 법과 질서를 유지하 는 궁극적인 권위자로 기능한다고 본다. 슈미트는 근대 국가론이 세속화된 신학의 개념을 담고 있다는 그 유 명한 테제 하에 근대 국가는 종교적 질서를 대체한 세속적 권위에 근거 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상 여전히 신학적 논리 구조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홉스는 절대적 주권자가 종교적 질서뿐 아니라 정치적 질서를 통 합할 수 있다고 보았고, 슈미트는 이 통합을 ‘정치신학’의 한 형태로 해석 했다.
홉스가 제시하는 국가론은 신학적 개념을 세속적으로 변형한 것이 다. 이는 그가 재차 반복해서 쓴 “Jesus is the Christ”에서 단적으로 드 러난다.7)
7) 홉스는 자신의 저작에서 반복적으로 다음의 문장을 사용했다. “Jesus is the Christ,” 이에 대해서는 본고 제3장 2절 참조.
슈미트는 홉스가 리바이어던을 인공 인간(homo artificialis)으로 명명 하여 국가가 인위적으로 구성된 정치적 기계라는 점에 주목했다. 홉스적 국가관에서 인간이란 본래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가 되어 투쟁하는 비극 적 자연 상태에 놓여있다.
전쟁 중이나 마찬가지인 자연 상태를 끝내기 위해 인간들은 스스로 권력을 주권자에게 양도하여 강력한 국가를 형성 한다. 주권자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된 기계적 국가 모델을 근대 국가 탄 생의 본질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는 강력한 주권자 하의 국가 탄생에 있어 치명적 단점 또한 이때 형성되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내면적 신앙과 공적 신앙의 분 리이다.
홉스는 주권자가 공적인 신앙을 통제할 수 있으나 개인의 내면 적 신앙을 강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슈미트는 홉스의 리바이 어던이 결국 이러한 내적 균열, 결함을 지니고 있으며 근대적 ‘세속’ 국가 의 시작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근대 국가의 기계적 성격과 주권자의 권 력은 강력하지만, 결국 내면적 신앙의 자유가 국가의 통일성을 깨트릴 위험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근대 국가는 끊임없이 내부적 위기 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데, 근대 국가의 통치가 종교와 정치의 문제를 완 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슈미트의 홉스적 국가론의 해석은 근대 국가가 종교적 질서와 세속적 질서를 통합해 내고자 시도하지만, 그 내 적 모순에 직면하였기에 한계가 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더 나아가 그 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단순한 정치적 상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근 대 국가의 기계화된 구조 및 주권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 공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슈미트적 홉스 해석은 홉스의 시대적 상황에서 도출된 정치 신학적 사유를 다시 정치적 대격변기였던 자신의 당대에 논의한 것이기 에 그는 반근대적이며 국가 존립 우선주의만을 지향한다.
의회주의, 자 유주의, 민주주의는 국가 혼란을 부추겨 다시 자연 상태로 빠지게 하기 에 강력한 독재자에게 개인이 모든 권리를 내어주어 국가 붕괴의 위기를 빠르게 극복하여야만 국가가 통일된 연합체로 유지될 수 있다는 독재론 을 정당화한다. 슈미트적 ‘정치신학’은 표면적으로는 신학과의 거리를 두 는 정치사적, 법학사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지만, 명백히 ‘정치화된 종교’, 막강한 주권자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정치적 정당화를 위한 종교, 종교화 된 정치를 추구한다.
그렇다면 1880년대 말부터 독일 제국, 바이마르 공 화국, 제1차 세계 대전, 나치즘과 제2차 세계 대전을 통과한 슈미트로부 터 영향을 받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 청년기를 보내며 전쟁을 경험 한 코젤렉의 홉스 해석은 어떠했는지, 그 차이점과 역사인식, 서구 근대 성에 관한 문제의식은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하자.
Ⅲ. 코젤렉의 홉스 ‘리바이어던’ 해석
코젤렉의 『위기와 비판: 시민적 세계의 병인론(病因論)에 관한 연 구』(Krise und Kritik: Eine Studie zur Pathogenese der bürgerlichen Welt, 1959)는 슈미트와 긴밀한 학문적 교류 속에서 탄생한 박사 학위 논문이 다.8)
8) 2019년 코젤렉과 슈미트의 30년간의 서신 교류가 정리/출판되었다. Jan Eike Dunkhase (ed.), Reinhart Koselleck, Carl Schmitt: Der Briefwechsel (1953-1983), (Frankfurt/Main, Suhrkamp, 2019). 이전에도 둘의 학문적 상호 교류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서신의 내용을 통해 35살 차 이의 두 학자의 학문적 인간적 교류 관계가 놀라울 정도로 긴밀했음이 드러났다.
1959년에 집필된 이 논문은 제2차 세계 대전과 나치즘을 지나 냉전의 긴장 속에서 탄생했으며, 1973년에 다시 출간되었다.
1970년대 초는 중국과 제3세계의 부상, 지속되는 세계 내전, 핵전쟁의 위협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코젤렉이 14년 후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재출간한 것은, 서 구 ‘근대성’의 위기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다시금 강조하고자 한 의 도였을 것이다.
그는 각 시대마다 지배적인 인간론적 요인을 고찰하는 방식을 통해 17세기의 종교 전쟁에서 18세기의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 지 역사적 시대의 구조를 탐구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도출된 결과물 들을 단순히 과거의 일회적 사건으로 간주하지 않고 현재까지 지속되는 순간을 담은 과거로 재해석한다.
이 논의는 서구 정치와 국가 문제를 다 루며, 그 과정에서 홉스에 대한 해석 역시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코젤렉은 계몽주의로부터 찬란한 근대 세계가 탄생했다는 서구 ‘근 대성’의 신화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슈미트 사상과 공명 하며, ‘근대 국가’와 ‘계몽주의’와 같은 서구사의 핵심적 개념들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어떻게 그 외연과 내포가 변화했는지 주목한다.
물론 그가 서구 ‘근대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그 본질을 재검토하며 나아가는 방식은 슈미트와는 다르다.
슈미트는 나치즘의 그림자에 머물 며 근대 국가의 모순과 분열의 원인을 유대인에게 돌렸다.
코젤렉은 근 대 ‘시민 세계’의 문제를 ‘계몽주의’와 그로부터 비롯되는 ‘해방’의 변증법 적 역설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진단은 진단 자 체에서 머무르고 있으며 홉스적 정치신학의 문제와의 정면 대결은 이루 어지지 않는다.
1. ‘계몽주의’에 대한 문제의식
코젤렉은 독일 나치즘이 현실을 떠나 “유토피아적 자기 고양”을 통 해 초래한 극악한 범죄에 대한 역사적 전제 조건을 계몽주의로부터 추적 한다.
이 과거의 위기가 세계사적으로 냉전 체제의 위기로 계승되어, 미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양극단이 대립하는 팽팽한 긴장이 펼쳐지고 있 는 것이 ‘유럽사의 결과’라고 진단한다.
대치하는 양 강대국이 각각 도덕 적, 철학적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뿌리가 계몽주의에 있다는 것이다.
계몽주의에서 등장한 부르주아적 시민 사회의 역사철학적, 유토피아적 자기 이해 속에서 유럽인은 자신을 ‘인류’로, 유럽사를 ‘보편사’로 자기 확 장시키고 말았다.
18세기 시민 사회의 역사철학은 ‘영원한 진보’라는 미 래적, 유토피아적 기획이었다. 이 사유 속에서 18세기 시민 계급이 부상 했고 그들 자신의 역할을 정당화하는 개념이 구비되었다. 그러나 코젤렉 은 이러한 시민 계급 부르주아 역사철학으로 인해 근대인들이 이제 어느 곳에서도 고향을 가질 수 없는 고향을 상실한 이들이 되었다고 말한다. 계몽주의 속에서 그들이 바라는 끝없는 진보와 희망의 역사가 아닌, ‘끝 없는 위기의 역사’가 발견되고 전개되기 때문이다. 코젤렉은 정치적인 것 을 이러한 역사적 시간성 속에서 파악해야만, 근대 계몽주의와 그로부터 비롯된 해방과 관련된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본다.
근 대 국가 체제란 시간을 초월한 무시간적 산물이 아닌 역사적인 산물임을 인정하는 것, 계몽주의를 단일하고 고유한 계기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변증법적 전개로서 이해하는 작업을 통해 시대적 위기를 진단하고 이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교파주의’(Konfessionalisierung) 시대로 알려진 17세기 유럽은 일반적으로 근대적 주체 성이 등장한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잔혹한 종교 전쟁이 있었으며, 이 시기는 근대적 주체뿐만 아니라 근대 국가 역시 형성된 시 기였다. 종교적 내전 속에서 발전한 정치 체제는 다름 아닌 ‘절대주의’였 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위그노를 탄압하며 왕권신수설을 바탕으로 스 스로를 태양왕이라 일컬었던 루이 14세 치하에서 신민(Untertan)은 계몽 적 자기 인식을 통해 시민(Bürger)으로 스스로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코 젤렉은 계몽주의가 절대주의 체제 속에서 발전했으며, 이후 절대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저항이자 적대 세력으로 작용하며 절대주의 국가의 몰락 을 준비했다고 지적한다.
계몽주의가 유토피아적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선적인 이유는 계몽주의를 정치적 권력과 전혀 상관없는 것 으로 이해하는 방식 때문이다.9)
9) Koselleck, Kritik und Krise, 11-12.
중세적, 종교적, 집단 광기로 휩싸였던 암흑을 물리치고, 이성적 주체가 등장하는 때가 계몽주의 시대라는 일반 적 인식은 계몽주의를 탈정치화, 탈역사화 시켜 본질화, 이상화시킨 이 해 방식이다.
이러한 진단의 일환으로 코젤렉은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이 해를 위해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홉스의 절대주의 국가론을 분석한다.
2. 코젤렉의 홉스의 역사적 관점 해석: 내전과 국가 형성
코젤렉은 홉스의 국가론을 17세기 유럽 내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인간적 반응의 차원으로 고찰한다.
홉스는 앙리 4세에서 루이 13세로 이 어지는 프랑스 절대주의 국가 형성 기간 동안 그곳에서 망명 생활을 했 다.
앙리 4세의 암살, 루이 13세와 위그노파 간의 내전(1627-28) 가운데 그는 로마 가톨릭 측과 왕권의 승리를 목격하며 영국의 내전을 종식시키 고 평화를 지속시킬 방안을 고민했다.
데카르트는 절대주의 체제로 완성 된 프랑스에서 내전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았으나, 홉스는 종교 내전 속 에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국가 기초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10)
10) Ibid., 19.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홉스는 ‘역사’를 ‘내전에서 국가로, 그리고 다시 국가에서 내전으로’ 이어지는 연속적 교대 과정으로 보았다.
그에게 국가 이성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는 진보가 아닌 내전의 종식이었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존재가 필수적이며, 국가 이성은 선악 이라는 도덕적 문제보다는 전쟁과 평화라는 정치적 문제를 다뤄야 한다 고 보았다.
코젤렉은 이러한 역사적 맥락에서 홉스를 해석하며, 당시 널리 받아들여졌던 홉스 이해 방식이 역사적 맥락을 배제한 해석임을 비판 하고자 했다.
이는 그가 독일 개념사 연구에서 강조했던 ‘개념의 역사적 맥락화’라는 문제의식과 긴밀히 연결된다.
홉스는 신학자, 도덕철학자, 법학자들이 특정 당파의 주장만을 강화 시키며 내전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았다.
이들처럼 부분적인 것을 내세우 지 않고 전체를 아우르는 상위의 법, 초당파적 통일의 법을 찾기 위해 그 는 우선 내전의 원인이 무엇인지 탐구했다.
내전이 발발하게 된 공통적 기반이란 인간들이 자신의 바람과 희망에 눈먼 나머지 이성에 반하여 행 동하면서도 악의 원인인 자신들의 잘못마저도 인식 못 하는 무지에 빠진 상태 때문이다.
무지의 기본적 내용을 그는 ‘욕망과 두려움’(appetitus et fuga)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홉스는 사회, 정치, 종교 관계에서 문 제적인 인간 존재에 대해 개인주의적 인간론(individualistische Anthropologie)을 발전시켜갔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끊임없이 폭력적인 죽음의 공포 속에 불안해하며 살아가기에 인간 본성에 속하는 것은 전쟁일 뿐, 평화란 단지 희망 사항일 뿐이다.
최고의 선으로서 평화를 바라는 것만 으로는 지속적 평화를 보장할 수 없는 문제를 홉스는 도덕철학적으로 접 근하여, 교파적 투쟁 가운데 이데올로기적으로 기능하는 양심과 그 역할 문제로 지적했다.11)
홉스는 좀 더 나아가 탈종교적인 ‘의견’ 개념을 채택 하게 되는데, ‘양심’ 개념에 종교적 의미가 가미되었기에 이를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12)
11) Koselleck, Kritik und Krise, 18-25.
12) Ibid., 22-23.
홉스는 모든 이가 주관적 순수 의지로 배타적 주장을 일방적으로 선 언하며 대적하는 상황은 ‘만민의 만민에 대한 투쟁’이며 내전을 발생시키 는 이러한 정신적 태도, 신념을 종교개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이 가 선행과 악행을 심판할 자격을 가지니 각자 양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는 만인 제사장설을 선동적 교리로 간주한 것이다.
그는 종교개혁과 그 에 따른 종교적 권위의 분열로 인해 인민은 각자 내면적 양심에 따라 행 동하게 되었고, 외부에 근거를 갖고 있지 않은 인간적 양심은 결국 독선 적 우상이 되었다고 보았다.
권력의 의지는 물론 양심마저 평화보다는 폭 력과 악의 근원이 되어 국가 질서의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 한다고 보면서 홉스는 이를 제한할 수 있는 권력으로 국가를 제시했다.
공법(국법)은 사적 이익이나 종교적 소망과 상관없이 모든 교회, 신 분, 정당을 넘어서는 정치적 결정의 공적 영역을 탄생시킨다.
홉스의 리 바이어던은 강력한 권력을 지닌 인공 인간이 주권적 절대 의지를 펼치는 세속 국가, 그것도 독재 국가였던 것이다.
죽음의 공포 속에서 인간은 신 이 아닌 국가로 피신했기에 국가 최상의 도덕적 의무는 보호를 보장하는 것이다.
신민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계명으로서 복종의 의무를 짊어진 다.
보호와 복종의 상호관계 또한 주권자의 절대 권력과 함께 국가를 국 가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국가가 안전을 보장할 때 국가 이성의 도 덕은 적법한 것이다.
주권자의 도덕적 자격이란, 질서를 이룩하고 유지 하는 정치적 기능에 충실함에 있다.
홉스에게 국가는 가사의(mortal) 신 이자, 거대한 자동기계이고, 법은 주권적 절대 의지의 조작 장치(lever)로 서 국가의 기계적 작동(Staatsmaschinerie)을 유지시킨다.
이렇게 그는 주 권자의 의지 표현으로 적법성을 축소시킴으로써 혼란과 분열의 원인인 내적 신념과 외적 행동의 불일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13)
13) Ibid., 24-25.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이 인공 인간인 리바이어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존대한 다.
하나는 종교적이고 불합리한 인간들을 규제하는 법이 국가 위에 자 리 잡게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이 사적인 반쪽, 공적인 반쪽(시 민)으로 분할되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은 신이 아닌 내전을 종식시키는 잠깐의 권력인 지상의 법에 예속된다.
반면 그의 신념은 사적으로는 자 유롭고 정치적 영역에 직접 발을 담그지 않는 한 개인의 신념을 정치적 차원의 도덕, 법과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14)
이후 18세기 계몽주의 시기 에 신념의 내적이고 사적인 영역이 확장되어가지만, 공적 영역에서 사적 신념의 영역만큼은 비밀스럽게 유지될 수 있었다.
한 시민이 국가에 대 한 의무를 수행하고, 그 권위에 복종하는 한 그의 사적 삶은 주권자의 관 심 밖이다.15)
홉스는 종교 내전으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이루고 지속시키 려는 필요에 집중하며 내적 공간을 주권자의 결정에 직접적으로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남겨두었다.16)
14) Ibid., 23; “⋯ 시민법에 복종할 의무가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의 이성 이외에는 달리 따를 규 칙이 없으므로 자신의 양심에 반하는 모든 행동이 죄가 되겠지만, 코먼웰스에서 살아가는 사람 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법이 바로 공적 양심이며, 이 공적 양심의 지도를 받겠다고 이미 약속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적 의견에 불과한 사적 양심의 다양성 때문에, 코먼웰스는 필경 혼란에 빠지고 말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제 눈에 선으로 보이는 것 외에는 더 이상 주권에 복종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토머스 홉스/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 1: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서울: 나남, 2008), 제II부 제29장, 417.
15) “법은 공적 양심이다 - 사적 양심들은 사적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The Law is the publique Conscience - private Consciences are but private opinions),” Hobbes, Leviathan, II, 29. Ibid., 29에서 재인용.
16) 『리바이어던』 제42장에서 홉스는 열왕기하 3장 17-19절, 나아만이 엘리야에게 하는 고백 근거로 삼아 “국가 권력은 그리스도교에 반하는 “혀의 고백”을 구할 수 있으나 “내적 신앙”은 강제 영역 밖”이라고 논했다. “나아만이 말하였다. “정 그러시다면, 나귀 두어 마리에 실을 만큼의 흙을 예 언자님의 종인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예언자님의 종인 저는, 이제부터 주님 이외에 다른 신들 에게는 번제나 희생제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주님께 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모시는 왕께서 림몬의 성전에 예배드리려고 그 곳으로 들 어갈 때에, 그는 언제나 저의 부축을 받아야 하므로, 저도 허리를 굽히고 림몬의 성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림몬의 성전에서 허리를 굽힐 때에, 주님께서 이 일 때문에 예언자님의 종인 저를 벌하지 마시고,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왕하 3:17-19); 칼 슈미트/김효전 옮김, 『로 마 가톨릭주의와 정치형태 홉스 국가론에서의 리바이어던』, 322.
내전 종식이라는 목표를 위해 성립 한 절대 국가가 비워둔 틈새인 탈종교화된 사적 양심, 신념에서 계몽주 의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코젤렉은 이를 홉스적 국가론의 결정적 귀착으 로 간주하며 근대 계몽주의의 변증법적 전개를 제시한다.
자연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 도덕적 세계관은 종교적 내세(저 세상)를 배제하고, 철저히 현실 세계(이 세상)에서 정치적으로 확장된다.
종교 전쟁과 내전 상황 속 에서 국가의 존재와 형태가 형성되었던 계몽주의 시대의 초기 맥락은 점 점 망각되어가고, 시간이 흐르며 망각이 심화되어 가면서 내전 종식을 위해 인민이 주권자에게 모든 권리를 양도했던 국가 이성을 이후 계몽 사상가들은 의해 철저히 비도덕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 다.17)
슈미트처럼 코젤렉은 공적인 정치와 사적인 인간 내면으로의 분리 가 결국 절대주의 국가의 몰락을 자초한 것으로 결론짓는다.
코젤렉의 『리바이어던』 분석 마지막 부분은 신약성경의 한 구절로 마 무리된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고전 2:15).
이는 시민 사회의 정신성(Geistigkeit)으로 서의 ‘휴머니즘’이 결국 신학적 성직(聖職, Geistlichkeit)의 유산을 수용한 것이라는 날카로운 지적이다.18)
17) Ibid., 29-30
18) Ibid., 29-32.
홉스의 사상을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함 으로써 코젤렉은 내전 종식 이후 계몽주의 사상과 세속화란 종교적 차원 의 대립적인 측면으로 작용한 동전의 양면 중 하나임을 제시했다
그는 근대성 비판의 틀 안에서 법치 국가와 의회주의가 점점 기계화되는 문제 를 탐구하며, 근대 국가가 진보의 역사가 아니라 위기의 역사 속에 놓여 있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분석은 시민 사회의 휴머니즘이 신학적 유산에 대립하는 것이 아닌 신학적 유산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으며, 계몽주의적 비판 정신을 바탕으로 서구 근대성의 본질을 재검토 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3. 의의 및 신학적 통찰에의 요구
코젤렉은 슈미트적 해석을 계승하면서도 역사학자로서 홉스 사상을 시대적 맥락 속에서 보다 깊이 분석했다.
그는 절대주의의 몰락과 근대 국가의 탄생을, 양심이나 사적 신념이 세속화되어 공적 영역과 분리되는 과정으로 설명하며, 이를 통해 홉스의 사상을 해석했다. 절대주의 국가 의 형성 과정에서 탈종교화된 인간의 내적 영역은 비정치적 공간으로 남았으나, 절대주의적 평화 속에서 중성화된 도덕으로 발전할 기회를 얻었 다. 이 도덕적 세계관은 계몽주의적, 칸트적 의미의 도덕 종교이자 이신 론으로 확장되었다. 슈미트는 이러한 이신론을, 주권자가 법질서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 근대 법치 국가의 이념으로 간주하며, 이를 세계에서 기 적을 배제한 일종의 신학적·형이상학적 체계로 규정했다. 이는 계몽주의 적 국가가 결국 신학적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예 다.
코젤렉은 계몽주의적 국가 체제가 진보와 희망의 서사 속에 있는 것 이 아니라, 위기의 역사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근대성 비판의 맥락에서 법치 국가와 의회주의의 기계화 문제를 탐구하며, 근대 성을 단순히 진보의 역사로 보지 않고, 끊임없는 위기의 역사로 파악함 으로써 슈미트의 비판을 역사철학적으로 심화시켰다. 그는 계몽주의가 인간 이성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내부에 존재하는 모순과 불 안정을 드러내며, 이것이 근대 정치 체제의 위기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인간의 내적 신념과 외적 행동의 분리, 그리고 계몽주의적 역사관은 서 구 정치의 불안정을 초래했다는 점에서 슈미트와 코젤렉은 의견을 같이 한다.
인간의 끝없는 진보라는 환상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의의가 있으 나, 반근대성의 경향이 곧 반민주주의적 경향으로 변질될 수 있다. 이에 신학적 통찰과 비판적 해석이 필요하다.
특히, 홉스의 신학사적 맥락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요구되며, 이에 대한 논의는 몰트만의 홉스 사상 접 근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Ⅲ. 신학적 “새로운 정치신학” 사유의 필요성
신학은 신 앞에 선 인간의 보잘것없음과 겸손함, 그리고 창조 세계에 대한 감사 속에서 깊이 있는 사유와 폭넓은 실천을 멈추지 않아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인간의 오만함이 설 자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자기비판과 권력에 대한 경계,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성찰과 사유가 필수적이다.
몰트만이 그의 ‘희망의 신학’을 통해 세상의 부패에 절망하 거나 낙심하는 대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부활을 통한 “은총 의 승리”를 믿으며 희망으로 나아가는 신앙을 강조한 점은 잘 알려져 있 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과 내용이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 또한 주목해 야 한다. 슈미트적 개념과 명확히 구분되는 신학적 “정치신학” 개념과 실 천에 대한 사유의 심화와 발전은 한국 신학의 사유를 더욱 깊이 있게 발 전시키는 데 있어 특별히 요구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1. 1960년대부터 시작되었던 “새로운 정치신학”과 지속되는 과제 여기에서 우리는 1960년대 이래 진행되었던 “새로운 정치신학”(Neue politische Theologie)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독일 신학계에서 요한 밥티스트 멧츠(John Baptist Metz, 1928-2019), 위르겐 몰트만(1926- 2024), 도로테 죌레(Dorothe Sölle, 1929-2003)가 “새로운 정치신학” 담론 을 주도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불의한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했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반성을 촉구했다. 몰트 만의 경우 한국 신학자들과 더불어 독일과 세계 교회에 군부 독재에 처 한 한국의 상황과 민중신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으며, 한국 신학자들 과의 토론에도 적극 참여했다.19)
19) 1960년대 『희망의 신학』 출간 이래 몰트만의 신학은 한국 신학계에 많은 영감과 자극이 되었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몰트만의 “정치신학”으로서 세속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삶의 정황 속에서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대응하는 신학적 고찰로 소개되고 있다. 서광선, “정치신학,” 「신학사상」 19 (1977/겨울), 794–801; 반준관.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J.몰트만),” 「신학사상」 31 (1980/겨울), 791-799.
이들의 “새로운 정치신학”은 슈미트적 ‘정치신학’이 아닌 신학적, 교의학적 의미에서 역사 속 그리스도교의 자 리와 그리스도인의 현실 참여에 대한 신학적 근거로 한정되어 전개되었 다.
이들이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이게 된 이유는, 단지 과거 신학에 서 새롭게 제시한다는 의미를 넘어서 과거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과 뚜 렷한 거리 두기를 위해서였다.
또 하나의 주지할 사실은 칼 슈미트가 1922년, 『정치신학: 주권론에 대한 네 개의 장』을 내놓은 후 1930년대 나치에 가담하게 되었을 때, 에 릭 페테르존(Erik Peterson, 1890-1960)이란 신학자가 슈미트의 ‘정치신 학’에 강력히 반대했던 점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였던 슈미트와 긴밀한 교분 가운데 그의 영향을 받아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신학자이 기도 했다. 페테르존은 스위스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 1886- 1968)와도 교우 관계였다. 바르트와 주고받은 서신 중에는 슈미트의 학식 에 찬사를 표한 내용도 있었으니 슈미트의 나치 가담과 정치 권력적 행 보에 대한 그의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는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페테르 존은 이후 슈미트적 ‘정치신학’이 신학적 전통과 무관함을 간접적인 방식 으로 선언하는 『정치적 문제로서의 유일신론: 로마제국 정치신학 역사에 대한 논고』(1935)를 내놓았다.20)
20) Erik Peterson, Der Monotheismus als politisches Problem: Ein Beitrag zur Geschichte der politschen Theologie im Imperium Romanum (Leipzig: Hegner, 1935).
페테르존의 책은 독일 나치당의 ‘영도자 숭배’(Führerkult), 일당 체 제,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을 함축하고 있었다.
페테르존은 계몽주의 하 에 유럽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이 유일신론으로 축소되어 삼위일체적 신앙 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슈미트와 같은 유일신론적 ‘정치신학’의 강조는 결국 유일신과 유일한 통치자 중심의 왕국 신학과 신적 군주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정치신학’ 을 따르는 것은 히틀러의 제3제국에 영합하는 것이며 삼위일체 교리와 신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을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헌정 하며 삼위일체 교리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논증함으로써, 슈미트의 테 제, 즉 그리스도교 신학이 근대 정치에 연루되었다는 테제를 반박했다.
겨울 페테르존의 논의는 독재 국가를 정당화하는데 그리스도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신학’에 대한 정당한 비판으로 수용되었으며 교회사 연구 작업으로도 그 의미를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독일에서 현대 정치신학 논의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20 세기 초중반 이후, 법철학 영역에서의 ‘정치신학’ 논의와 신학계에서의 “정치신학”이 서로 긴밀히 얽히며 발전해 왔다. 이 과정에서 두 영역 간 의 긴장 관계는 중요한 논의의 축이 되었다.
페테르존을 비롯한 나치즘 에 반대한 신학자들은 슈미트를 비판하며 정치와 종교의 혼합을 강하게 경계했다.
페테르존과 슈미트, 바르트는 모두 1880년대 후반에 태어난 동일 세대였지만, 이후 1920년대 후반에 태어난 새로운 신학자 세대는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며 과거 세대가 겪은 정치적 문제와 근대성의 한 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들은 이러한 역사적 성찰을 바탕으로 현대 신학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고자 했다.
몰트만은 신학적 “새로운 정치신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는] 새로운 신학적 경향이거나 특별한 신학 분야가 아니라 신학마다 정치와 연관성이 있음을 자각하자는 신학이다. 모든 신학은 그 나름대로 “정치신학”이다. 다만 신학 분야 가운데 미처 이런 상황의 요인이 의식화 되지 않았거나 고의적으로 아직 개발하지 않고 있는 분야가 있을 뿐이라 고 생각한다. 하지만 멧츠와 나는 약 20년 전부터 이런 “정치신학”, ‘정 치해석학’, 정치 비판적 혹은 해방신학에 관해 논의해왔다”,
“모든 종말 론적 신학은 (사회)비판적인 신학으로서 반드시 “정치신학”이 되어야만 한다.”(J. B. Metz)
나는 ‘희망의 신학’을 몇 가지 부정 작업을 담아서 희 망의 실천 현장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도 멧츠가 제안한 것을 받아들이 고자 한다.”21)
21) 위르겐 몰트만/박종화 옮김, 『정치신학, 정치윤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7), 5, 55; 위르겐 몰 트만/조성로 옮김, 『정치신학, 정치윤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2); Jürgen Moltmann, Politische Theologie, Politische Ethik (München; Chr. Kaiser Verlag, 1984). 9, 34; 올해 소천한 몰 트만의 생애 약력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미하엘 벨커/전철 옮김, “위르겐 몰트만(1926- 2024) - 희망의 신학자,” 「신학사상」 205 (2024/여름), 9-19.
이러한 멧츠의 선언과 몰트만의 동의는 2011년에 있었던
“정치신학: 새로운 역사와 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도 여전히 재확인할 수 있다.
“비정치적인 신학은 존재하지 않는다”(Es gibt keine unpolitische Theologie).22)
2. 몰트만의 리바이어던 해석과 슈미트식 접근에 대한 비판
몰트만은 『정치신학, 정치윤리』(1984)에서 국가 중심의 형이상학을 뜻하는 슈미트적 정치신학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복음의 선포와 십자가에서의 고통, 죽음의 “정치적 십자가 신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 임을 이미 명확히 한 바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위로부터 아래로 억압하 는 “종교-정치적 권세의 이름으로 처형”당했다.
예수를 따르는 이들은 예수를 처형한 그 권세를 “위로부터” 힘입어 제거해야만 하며, 결국 인간 의 정치적 지배란 “오직 ‘아래로부터’만 정당화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정치의 신성화”(Vergötterung)를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결코 행해서 는 안 되는 “미신”으로 간주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의지하여 인류에게 위대한 자유를 증거하는 자들이다.”23)
이후 몰트만은 1997년 『근대 기획 속의 하나님: 신학의 공적 중요성 에 대한 위한 기여』에서 슈미트적 홉스 해석과 그 정치신학 문제를 상세 히 다루며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정치신학”과의 뚜렷한 차이, 경계를 재 차 강조했다.24)
22) Francis Schüssler Fiorenza & Klaus Tanner & Michael Welker (eds.), Politische Theologie: neuere Geschichte und Potenziale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Theologie, 2011).
23) 위르겐 몰트만/박종화 옮김, 『정치신학, 정치윤리』, 90, 98, 106-107.
24) Jürgen Moltmann, Gott im Projekt der modernen Welt: Beiträge zur öffentlichen Relevanz der Theologie, Gütersloh: Kaiser, Gütersloher Verlagshaus, 1997; 위르겐 몰트만/곽미숙 옮김, 『세계 속에 있는 하나님: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공적인 신학의 정립을 지향하며』(서울: 동연, 2009).
과거에 이미 슈미트적 ‘정치신학’에 대한 명확히 거리를 두었으나 그 주제를 다시 다루게 된 중요한 계기에는 근대성에 대한 성 찰과 더불어 1990년대에 그 확장,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던 초국가적 기구 유럽 연합(EU)이라는 현장적 상황이 있었다.
회원국 간의 통합과 안 전, 번영을 위해 상호 견제와 협력을 통해 민주주의적으로 유럽 연합이 운영되어야 함에 대한 신학적 사유를 펼친 것이다.
몰트만은 홉스 당시 종교 내전이 그의 ‘리바이이던’이라는 정치적 사 유를 추동한 맥락이기는 하나, 그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만으로 홉스 사 상 전체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17세기 영국의 정신사적 경향과 밀접하게 연관된 신학적 맥락을 고려하며 홉스를 맥락화고 분석 한다.
장로교 가정 출신이었던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는 해수의 이름을 성서에서 가져와 강력한 주권 국가의 형성을 논의했다. 『리바이어던』을 집필하면서 홉스는 시민이 아닌 당시 망명 중이었던 자신의 군주, 찰스 2세를 중요한 독자로 염두에 두었었기에, 절대 주권 권력의 중요성만을 강조하며 통치 계약(Herrschaftsvertrag)만을 다루었다.
홉스는 백성과 통 치자 모두 하나님의 언약(Gottesbund)에 종속되어 있고, 통치자가 권력을 남용하며 하나님의 법을 위반할 경우 백성은 그에게 저항할 권리가 있다 는 가능성 자체를 원천 봉쇄했다.25)
애초부터 『리바이어던』은 시민이 아 닌 주권자를 위해 설계된 책이었고 홉스는 리바이어던을 종교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을 통합한 ‘지상의 평화를 위한 군주’로 설정하였다.
『리바이 어던』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Jesus is the Christ)라는 고백이 무 려 40번이나 반복되는 점 또한 주목해야만 하는 지점이다.
홉스가 추구 한 국가 유토피아란 요한계시록 20장처럼 천년왕국의 도래를 고대하며 역사와 세상이 종말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믿음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홉스의 종말론적 사유를 고려해야만 그의 정치사상을 제대로 인 식 가능한 것이다.26)
25) Moltmann, Gott im Projekt der modernen Welt, 38; 위르겐 몰트만/곽미숙 옮김, 『세계 속에 있 는 하나님』, 56-57. 26) Ibid., 39.
몰트만은 홉스적 정치신학의 문제점 중 특히 인간론 관련 주요 문제 를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홉스가 “만민의 만민에 대한 투쟁”을 “자연 상태”라 명명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타락의 상 태”이다.
태초에 모든 만물은 선하게 창조되었기에 인간의 본래적 악을 상정한 ‘자연 상태’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이가 서로에게 적대적인 투쟁 의 상태란 묵시록적인 세계의 종말, 창조 이전 카오스로 세계가 침몰하 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때 홉스가 절대적 권력의 주권자를 굳이 ‘가사의 신’, ‘인공 인간’인 ‘리바이어던’으로 명명했는지가 드러난다.
그는 리바이 어던의 평화로운 왕국에 세상의 종말을 막아내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리바이어던을 종말을 억제하는 자인 카테콘으로 보았던 것이다.27)
홉스가 자연 상태를 폭력과 전쟁으로 보며 시민적 상태만이 평화로 운 은혜의 상태라고 간주한 데에는 그의 왜곡된 자연관이 반영되어 있어 자연은 인공의 대립물이자 무질서, 카오스를 대표한다.
리바이어던이란 인공 신이자 국가는 자연과 철저히 대립하며 자연을 제압하는 존재이다. 자연을 적대적으로 보는 관점은 인간에게도 그대로 반영되어, 홉스는 인 간을 본래적으로 위험하고 자기 보호라는 안전 욕구만을 철저히 따르는 위험한 존재로 규정한다.
리바이어던이란 국가의 탄생은 이렇게 자연과 인간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종말론적 산물로서 평화가 강제된 유토피 아를 설정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완전한 자연 상태에서 공포에 의 해 맺어진 신의 계약”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맺게 된 철저한 굴종 의 계약이다.28)
27) “여러분은, 영이나 말이나 우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편지에 속아서, 주님의 날이 벌써 왔다고 생 각하게 되어, 마음이 쉽게 흔들리거나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어 떤 방식으로도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그 날이 오기 전에 먼저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생기고, 불법자 곧 멸망의 자식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는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이나 예배의 대상이 되 는 모든 것에 대항하고, 그들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서, 자기가 하나 님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이런 일을 여러분에게 거듭 말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여러분이 아는 대로, 그자가 지금은 억제를 당하고 있지만, 그의 때가 오면 나타날 것입니다. 불법의 비밀이 벌써 작동하고 있습니다. 다만, 억제하시는 분이 물러나실 때까지는, 그것을 억제하실 것입니다.”(살후 2:7-10, 새번역).
28) 토머스 홉스/진석용 옮김, 『리바이어던 1』, 189.
몰트만은 이러한 홉스의 계약 사상을 “허구적이며 비생산적”인 것으 로 단언한다.
당대의 주권자에게 대혼란을 잠재우는 리바이어던을 중심에 둔 책을 헌정한 그가 제시한 주권론이란 결국 주권자가 자의적 권력 을 확신하게 하고 인민의 공포를 이용하여 그에게 순응하고 복종하게 하 는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악한 본성의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주권자에게 양도한다는 가정도 상상하기 어려운데, 리바이어던이 인간의 늑대 본성 을 길들이는 것 보다 자신이 초월적 늑대(Superwolf)로 변모하여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 아닌지 반문한다.29)
29) Moltmann, Gott im Projekt der modernen Welt, 40.
그러므로 본디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 속에서 출발하는 홉스적 정치신학은 그로부터 굴종적 계약을 도출하고, 주권 권력을 인간 사이의 불신 속에서 정당성을 얻고 강제된 평화를 위 한 것으로 옹호하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홉스가 비인간적인 존재인 리 바이어던으로 국가권력을 표상한 이유를 이러한 신학적 분석을 통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리바이어던』의 부제가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 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이었으며 후반부에는 성서에 관한 홉스의 해석 이 주를 이루고 있기에 몰트만의 신학적 논지는 설득력이 있으며, 홉스 식 사유를 독일 제3제국 나치즘 하에서 해석하고 서구 근대성의 문제를 짚으며 끝없는 위기와 반목의 상태로 근현대 세계를 읽어내는 슈미트적 관점의 한계를 더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
3. ‘새로운 정치신학’의 민주주의를 향한 과제
몰트만의 신학적 독해는 홉스의 인간론처럼 부정적이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한계와 그 욕망의 문제를 잘 지적한다.
자신의 생존과 안위만을 염려하는 강력한 욕망의 존재인 인간이 잠시는 안전 욕구에 자신을 굴복 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이 영속되기는 어렵다.
만약 잠시 안전 욕구 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았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 욕망이 증폭되어 다시 혼란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더 클 수 있다.
몰트만은 “폭군의 지배(Tyrannis)”가 무정부 상태(Anarchie) 보다 무조건 더 나을 수 있는지, 폭군이 지배하는 것은 오히려 근본적으로 무-정부적 인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아닐지 독자들에게 반문한다.
홉스의 리바 이어던이란 결국 “조직화된 평화 부재의 비전”으로 의심해야 함을 촉구 하며 그는 개혁파 신학자들에게 다음을 상기시킨다.
“개혁파 신학자는 그러한 의심을 가지고 홉스를 읽어야 하는데, 세속적 권력과 종교적 권 력이 교황이건 황제이건 유일한 주권자의 한 손에 통합되는 것은, 루터 이후 적그리스도의 상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30)
홉스의 리바이어던 모델은 정치적 절대주의를 정당화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양심, 정치적 다양성을 억압하는 데 기여하기에 몰트만은 그리스 도인의 책임윤리와 시민적 연대, 참여, 민주적 책임성을 강조하는 “새로 운 정치신학”적 접근을 제안했던 것이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슈미트적 정치-종교의 통합과 국가의 절대성에 대한 강조, 주권자의 결정권을 “구 원적” 차원으로 격상시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종교와 정치의 통합은 전체주의적 국가를 낳고, 개인의 자유와 양심을 억압하는 것이다.
“새로운 정치신학”은 “아우슈비츠의 충격적 영향” 하에 서 “아우슈비츠 이후”(Nach Auschwitz)를 그 구체적인 자리로 삼고 있다.
‘아우슈비츠’란 이름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위기”를 뜻했기 때문이다. 나 치즘에 무력했던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의 동조와 나치 만행에 침묵했던 죄를 참회하며 몰트만은 그리스도교 교회의 자유와 신앙적 증언은 반드 시 정치적 권력과 분리되어야 함을 거듭 강조한다.31)
30) Ibid., 40-41.
31) Ibid., 46.
그리스도교는 정치 적 권력을 상대화하고,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역할을 해 야 한다. 권력에 편승하는 그리스도교는 겸손과 자기 비움과 희생의 예 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경시 하고, 정치적 통일성과 권력 중심의 접근을 주장하는 슈미트식 협소화된 ‘정치신학’은 절대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몰트만은 참여와 다원주의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구현하는 것이 현대 “새로운 정치신학”의 과제임을 강조하고 있다.
Ⅳ. 결론과 과제
현재 한국 학계에서는 슈미트식 ‘정치신학’ 관련 서적의 번역과 출판 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구 ‘정치신학’ 학술 담론에 포함된 그리스도교 신학의 용어와 신학적 사상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는 충분히 해석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철학과 정치학적 논의를 넘어, 관련 역사적 맥락과 사유의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는 신학적 논의가 반드시 뒷받침 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이를 위한 하 나의 예이자 기여로서 정치와 신학, 정치와 종교의 긴장을 선명히 드러 내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슈미트와 코젤렉의 분석을 검토한 후, 몰트만의 신학적 접근을 고찰하였다.
슈미트적 ‘정치신학’의 핵심은 어떠한 정치적 판단과 행위라도 그것 은 그 자체로 어떤 근본적 믿음이나 세계관에 뿌리를 둔 형이상학적인 판단과 행위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정치적 결정을 세속적 영 역에 국한시킬 수 없으며 종교적, 신학적 신념과 깊은 연관 관계에 있음 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때 그는 이미 신학적 자장 안에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으며, 곧 신학과 학문의 명확히 경계선을 긋 고 움직이는 근대적 이해 방식에 대한 반대이기도 했다.
코젤렉은 개념 사를 정립한 학자이자, 몰트만과 동시대인으로서 역사의 비극을 공유한 인물이었다.
그는 당대 널리 수용되던 홉스의 사상이 탈역사적 해석이라 는 문제의식 속에서 계몽주의와 근대 국가 형성의 이상적 서사에 비판적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리바이어던』을 17세기 절대주의와 종교 내전 이라는 구체적 역사적 맥락 속에 정위시키며 분석했다.
서구 근대성의 위기, 분열을 짚어내면서 계몽주의가 절대주의의 요람에서 탄생했다는 역설을 제시하여 서구 계몽주의의 신화와 근대성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 각을 제시했다.
다만 슈미트적 관점의 영향 하에서 홉스 사상을 분석함 으로써 내면과 외면, 종교적 신념의 영역과 정치적 영역의 분리로부터 근대 국가의 끝없는 갈등과 위기의 역사를 보았다.
60년대 이래로 멧츠와 죌레와 함께 몰트만이 제안했던 “새로운 정치 신학”은 인간 존엄성과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현대 민주주의의 과제를 모 색하며, 슈미트적 ‘정치신학’ 관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 시하는 것이었다.
이미 오래된 내용이지만 ‘새로운’이란 형용사를 떼지 않고 본고에서 논의를 이어간 이유는, 아직도 슈미트적 ‘정치신학’의 차 별성을 강조해야할 담론적 상황과, 그리스도교 신학적 “정치신학”의 발 전이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몰트만은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의 자리에서 과거 그리스도교가 전체주의의 폭정에 맞서지 못했음을 통렬히 반성하며 “새로운 정치신학” 의 필요성을 논의했다.
그는 현대 신학의 자리에서 서구 정치와 신학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정치신 학적 접근”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2010년의 글에서 몰 트만은 당시 독일에서 협소한 내용을 담은 슈미트식 ‘정치신학’ 개념이 당시 담론의 장을 지배적으로 점유하고 있었던 상황을 언급했다.32)
32) Moltmann, “Politische Theologie in ökumenischen Kontexten,” 3.
현재 한국에서의 담론의 장 또한 몰트만 당시 독일처럼 슈미트적 ‘정치신학’ 개념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극우 단체 등이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이 “적 과 동지의 구분”이라며 갈등과 반목을 더 부추기는 선동에 사용하고 있 는 실정이다.
슈미트적 ‘정치신학’의 오용 가능성은 매우 크다.
그 개념은 더 넓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을 수 있는 정치신학 개념을 협소화 시키며, 대화와 협력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일구어나가기 위한 ‘정치적 인 것’을 비관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슈미트는 역사적 맥락화라는 학문성 을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그의 가톨릭 신학적 사유가 담겨있으며 홉스의 신학적 사유 방식 또한 고려되어야만 했다.
몰트만이 슈미트식의 홉스 해석을 신학적으로 재해석하며 문제적 이해 방식을 비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러한 ‘정치신학’ 논의에는 종교적 정치와 정치적 종교의 정당 화가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치신학’에 대한 “새로운 정치신학”의 신학적 비판 작업이 요청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더 신학적이고 다학제적 관점으로 그에 대한 비판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다.
슈미트는 종교가 사적 영역화한 근대 시민정신을 리바이어던 몰락의 원인으로 보았으나 “새로운 정치신학”은 오히려 이를 “내적 망명”(inner Emigration)의 문제로 보았다.
이웃의 고통과 부당한 폭력, 불의를 비판 하고 이에 저항하기보다 무관심한 그리스도교 교회와 교인을 낳았기 때 문이다. 멧츠와 더불어 몰트만이 “정치적으로 비판적이고 공적으로 책임 있는 신학을 요청하고 발전시켜야”함을 강조했던 이유이다.
“신앙의 자 유”란 “자신의 개인적 신앙만을 잘 돌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닌, 이 신앙을 공적으로 [공적인 목적을 위해]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다.33)
33) Ibid., 47.
신학은 결 코 정치적 종교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 책임 있는 대화를 통해 민주주 의와 윤리적 책임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의 평화적 발전에 공적으로 기 여해야 한다.
과거의 역사적 비극을 넘어,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강조 하는 민주주의와 윤리적 책임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한국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과 희생의 십자가를 따라 더욱 책임 있는 그리스도 교의 역할과 그 “정치신학”의 발전과 전개가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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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나치즘 가담 전력과 보수적 정치철학으로 유명한 독일의 공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 1888-1985)에게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정치신 학’ 관점을 형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이후 세대인 역사학 자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2006)과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이 홉스의 『리바이어던』에 대한 분 석을 통해 근대성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코젤렉과 몰트 만은 나치즘과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경험이 있는 동시대인이었으나 홉 스 해석과 슈미트 ‘정치신학’ 사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차이를 보였다. 코 젤렉은 슈미트적 관점을 역사적 맥락에서 수용하며 계몽주의의 위선과 근대성의 위기를 분석했다. 몰트만은 슈미트적 관점과 비판적으로 대결 하며 민주주의의 발전, 정의와 평화를 위해 신학의 공적 책임을 강조하 는 “새로운 정치신학”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본고는 먼저 슈미트의 홉스 해석의 핵심을 요약한 후 코젤렉의 홉스 분석을 살펴본다. 이후 몰트만 의 슈미트적 홉스 해석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비교·분석하면서 신학적 맥락화의 의의를 고찰한다. 결론에서는 서구 ‘정치신학’과 신학적 “새로 운 정치신학” 사이의 긴장 관계 및 다학제적 협력을 위한 신학의 과제를 논의한다.
주제어 정치신학, 칼 슈미트, 새로운 정치신학, 라인하르트 코젤렉, 위르겐 몰트만, 정치적 종교, 그리스도교와 민주주의
Abstract
The Necessity of Advancing “New Political Theology” in Critically Engaging with the ‘Political Theology’
Tae-Yeon Kim (Assistant Professor, History of Religion / Intercultural Theology Baird College of General Education Soongsil University)
The German jurist, Carl Schmitt (1888-1985), known for his involvement with Nazism and his political conservatism, found Thomas Hobbes’ Leviathan to be central to the formation of his ‘political theology’. His influential interpretation stimulated subsequent generations, e.g. the historian Reinhart Koselleck (1923-2006) and the theologian Jürgen Moltmann (1926-2024), who explored the challenges of modernity through their analyses of Leviathan. Although Koselleck and Moltmann were contemporaries who both experienced Nazism and witnessed the devastation of the World War II, their interpretations of Hobbes’ thought and their responses to Schmitt’s ‘political theology’ reveal significant differences. Koselleck adopted Schmitt’s perspective within a historical framework, using it to critique the hypocrisy of the Enlightenment and to analyze the crises of modernity. In contrast, Moltmann posed a critical challenge to Schmitt’s ‘political theology’, emphasizing the necessity of a “new political theology” that underscores theology’s public responsibility to promote democracy and just peace. This paper begins by summarizing Schmitt’s interpretation of Hobbes and its core arguments, followed by Koselleck’s historical analysis on Hobbes. It then offers a comparative analysis of Moltmann’s critical approach to Schmitt’s reading of Hobbes, highlighting the significance of theological contextualization. In conclusion, this paper discusses the tension between ‘political theology’ and the “new political theology,” as well as the Korean theological tasks required for interdisciplinary cooperation.
(Political Theology, Carl Schmitt, New Political Theology, Reinhart Koselleck, Jürgen Moltmann, Political Religion, Christianity and Democracy)
神學思想 207집 · 2024 겨울
논문접수일: 2024년 9월 27일 논문수정일: 2024년 12월 19일 논문게재확정일: 2024년 12월 20일
* (참고)神學思想 207집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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