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본 연구에서는 일제 문화정치 초기 宗敎界諸名士講演集(1922)1에 수 록된 길선주(吉善宙, 1869~1935), 김창준(金昌俊, 1889~1959), 박동완(朴東 完, 1885~1941), 박희도(朴熙道, 1889~1951), 신석구(申錫九, 1875~1950), 이 필주(李弼柱, 1869~1942), 정춘수(鄭春洙, 1874~1951) 등2 민족대표 7인의 메시지를 분석하여 당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한 신앙적 지침을 분석할 것이며 현재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한석원 편, 宗敎界諸名士講演集 (京城: 活文社書店, 1922), 1-242.
2 본 논문에서 살펴볼 일곱 분의 민족대표자 중 박희도와 정춘수는 1930년대 만주사변, 만주국 설립, 중일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전시체제에서 일제에 협력하여 『親日人名事典』에 이름이 등재되 었다. 본 논문에서는 1922년 이들의 설교문에 나타난 메시지를 분석하는 데 의미를 두었으며 이후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박희도는 1939년 친일 잡지 「東洋之光」의 주필, 국민총력조선연맹 참사직 등 친일 단체의 간부로 활동했다. 정춘수는 국민정신총동원 기독교조선감리회연맹 이사, 조선감리교단 통리자로 친일 활동에 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편, 금단의 역사를 쓰다, 18년간의 대장정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09), 167, 185;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 명사전편찬위원회 편, 親日人名事典(2)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20), 162;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편, 親日人名事典(3) (서울: 민족문제연구소, 2020), 513.
宗敎界諸名士講演集은 한국인 기독교 지도자들만의 설교문이 게재된 최초의 설교집이다.3
특별히 이 설교 집에는 기독교 계열 3.1운동 민족대표 16인 중 7인의 설교문이 수록되었으며 문화정치기에 한국기독교의 신앙 정체성과 민족애를 고취하기 위한 취지를 담았다.
이들은 모두 3.1운동 주동자로 검거되어 옥고를 치렀고 출옥 직후 설교문을 기고했다는 점에서 이들의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은 각별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사료된다.
한국은 1919년 3월 1일 일제의 폭정과 탄압에 맞서 독립항쟁을 전개했지 만, 민족의 숙원인 민족자결(民族自決)과 독립을 쟁취하지 못했다.
한국이 일제에 의해 강제 점거된 역사적 정황을 고려하면, 3.1운동은 시민운동이 아닌 거족적 민족운동의 성격을 갖는다.4
일제의 무자비한 살상 진압으로 인해 피로 물든 독립운동 현장을 지켜본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은 “일본: 피에 굶주린 아모크”를 통해 일제의 무력 탄압에 대해 살인적인 아모크 (amock)가 저지른 광기 어린 참극이었다고 질타했다.5
3 한국 최초의 설교집은 百牧講演(1921)으로 20인의 한국인과 5인의 선교사가 작성한 도합 25편 의 설교문이 게재되어 있다. 양익환 편, 百牧講演 (京城: 博文書舘, 1921), 1-252. 그러나 이듬해 한석원이 편집하여 발행한 宗敎界諸名士講演集에는 민족대표 7인을 포함하여 한국인 20인의 설교문 20편이 게재되었다. 따라서 宗敎界諸名士講演集은 한국인들만의 설교가 게재된 최초의 설교집이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4 김기용, “삼일운동에 끼친 시민사회로서의 개신교의 영향,”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12 (2019), 445.
5 제임스 S. 게일, “일본: 피에 굶주린 아모크,” 착 목쟈 게일의 삶과 선교(2), 유영식 편 (서울: 진흥, 2013), 221. ‘아모크’란 병리학적 정신착란증을 가리키는 용어로 이 증세를 가진 자는 흥분한 상태에서 살상을 범하기도 한다.
그는 3.1운동이 전개 된 1919년 3월, 브라이스(Viscount Bryce, 미국 주재 영국대사 역임)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분과 격정을 담아 이렇게 기술했다: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동화[식민이념 이식 _ 연구자 주]시켜서 일본인으로 만들 것[황국신민화 _ 연구자 주]이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은 일본의 신민이 될지언정, 절대로 일본화되지는 않습니다. 조선인의 문명, 이상과 종교 그리고 언어가 그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6
선교사 블레어(William N. Blair)는 1921년 “The Forward Movement in Korea”를 통해 한국 기독교인들은 비록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았으며, 민족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략을 탐색했고, 이러한 신념이 충만했다고 소회했다.7
3.1운동을 기해 일제는 더 이상 무단정치가 아닌 문화정치로 국정을 전환 할 것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문화정치는 한일 합방을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 하여 한민족의 문화를 붕괴시키고, 최종적으로는 한국인들에게 이데올로기 로서의 식민 사상을 주입하여 황국신민화를 획책하기 위한 간교한 이념 공작 이었다.8
역사 신학자 민경배는 황국신민화를 지향한 문화정치의 속성에 대해, 이는 고도의 정치적 책략이자 한민족의 정기와 정신을 유린하려는 기만적인 전술이었다고 단언한다. 9
6 제임스 S. 게일, “브라이스 경(卿)에게 보낸 편지,” 착 목쟈 게일의 삶과 선교(2), 유영식 편, 208.
7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0), 365-366에서 재인용.
8 안수강, “한석원(韓錫源) 목사의 “責任의 自覺”(1922) 분석 및 현재적 함의 ― 내연(內燃)과 외연(外 延)의 관점을 중심으로,” 「한국교회사학회지」 56 (2020), 196; 길진경, 靈溪 吉善宙 (서울: 종로서 적, 1980), 283.
9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354.
일제는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를 경질하여 1919년 8월 13일자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를 새 총독으로 취 임시켰다.
문화정치 훈령을 받은 사이토 마코토는 경술년 합방을 기점으로 약 10년 동안 지속해 오던 무단정치 체제를 중단하고 문화정치 체계로 선회했 다.
주목할 것으로서, 일제는 한국교회를 식민 이념에 흡수함으로써 일제화 하려는 종교 정책의 일환으로 합방 당시부터 어용 조합교회(組合敎會)를 국내에 잠입시켰고, 3.1운동 당시에는 이들을 선동하여 온갖 감언이설로 한 국인 신자들을 조합교회에 포섭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일본조합기독교회 조선전도부 주임 와다제 츠네요시(渡瀬常吉)는 한국 기독교인들을 어용화 하기 위해 조합교회들을 동원했고 한국기독교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10
조합교회 측은 1919년 4월 14일 소위 ‘시국운동선언’을 선포하여 3.1운동을 일본의 인도주의에 저항한 폭거 행위라고 규정했으며,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비판하여 “행동을 ‘교정’하여 ‘편협 무식한 신앙’을 배제하고, ‘게으르 고 황폐한 공기’를 일소하고, ‘건전한 신앙’을 육성하며”11라고 호도했다.
1920년대 초엽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이 일제가 표방한 문화정치 노선을 지혜롭게 활용하여 신앙 정체성을 지키고 민족 복음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가장 적합한 전략은 문서 선교였다.
이들은 1920년대 초부터 부지런히 신앙 문서들을 배포하여 기독교 문화 창달과 복음 전파의 활로를 모색했으며 문서 중 설교집은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의 심령에 생명의 복음을 심어 줄 수 있는 파급효과가 큰 문헌이었다.
이로써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은 일제 의 어용화 종교 정책에 맞서 기독교 신앙 정체성을 수호하고자 했고,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대중성과 범용성을 갖춘 설교집 宗敎界諸名士講演集을 서둘러 보급했다.
이 문헌은 활문사서점(活文社書店)에서 발간되었다.
한석 원이 취합한 20편의 원고는 242쪽 분량의 한 단 내려쓰기 구도로 인쇄되었다.
김필수는 기독교 문화 보급의 활성화를 기대하여
“기독교 문화 보급에 만유 (萬有) 일조(一助)가 되기를 옹망(顒望)노라”12라고 포부를 밝혔다.
10 이영헌, 한국기독교사 (서울: 컨콜디아사, 1991), 166-167; 도히 아키오, 일본기독교사, 김수 진 옮김 (서울: 기독교문사, 1991), 289-291;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서울: 장로회신학 대학교출판부, 1998), 382-384.
11 도히 아키오, 일본기독교사, 290.
12 김필수, “序,”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京城: 活文社書店, 1922), 1.
한석 원은 별도의 “自序”를 통해 “본서가 우리 반도 교회에―또는 각 가정에― 현대 생활에 도움이 될 것”13이라고 소신을 첨언했다.
宗敎界諸名士講演集을 연구한 선행 논문으로 한경국의 “한국 최초의 절기 설교집 종교계저명사강연집에 대한 연구”(2018)가 있다.
이 논문에서는 큰 틀에서 ‘시대적 배경, 용어와 구성, 설교 연구 등’ 14을 고찰하여 후속 연구의 외연을 모색했다.
13 한석원, “自序,”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2.
14 한경국, “한국 최초의 절기 설교집 종교계저명사강연집에 대한 연구,” 「신학과 실천」 61 (2018), 147-174.
이 설교집을 통해 일제 문화정치의 식민정치에 맞서 초기 한국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호소한 메시지와 추구해야 할 과업들, 신앙 정체성, 가치관, 한국의 미래를 제시한 비전 등 다양한 담론들을 고찰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사적인 가치가 크다.
본 연구에서는 “문화정치 초엽 宗敎界諸名士講演集(1922)에 게재된 민족대표 7인의 메시지 분석”이 라는 제하에 이들의 설교문들을 분석하여 ‘문화정치 전후 시대 진단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길선주, 박희도), ‘내면의 기독교 신앙 정립 당부’(박 동완, 이필주), ‘한국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할 과업 제시’(신석구, 김창준, 정춘 수) 등을 하위 주제들로 설정하여 고찰할 것이며, 게쉬히테(Geschichte) 차원 에서 현재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다만 연구의 제한점으로서 이 일곱 편의 설교문은 본래 공통된 주제로 통일성을 갖추어 작성되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기고문이라는 점에서 설교문들을 교차하여 비교 분석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밝혀둔다.
宗敎界諸名士講演集은 문장이 고어체이며 한자가 60퍼센 트를 상회하기 때문에 독해가 난해한 문헌이다.
설교 제목은 원문대로 기록했 지만, 원문을 인용할 경우 독자들의 가독성을 고려하여 한자는 한글로 음역했 고, 비문(非文)은 의역(意譯)하여 현대체로 윤문했다.
가령 고체(古體)를 윤문 한 일례로서, “그리스도셔 困難을 當 生活을 혼 ”15은 “그리스도께 서 고난을 당한 생활을 배운 까닭”으로 대체했다.
15 김창준, “最大의 模範,”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241.
宗敎界諸名士講演集에 수록된 민족대표 7인의 저자, 설교 제목, 성경 본문 등을 취합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표 1> 宗敎界諸名士講演集에 수록된 민족대표 7인의 설교
저자(생몰) 설교 제목 성경 본문 면수
길선주(1869~1935) “平和의 曙” 시 85:10 외(外) 28-42
김창준(1889~1959) “最大의 模範” 벧전 2:21 230-242
박동완(1885~1941) “至誠一貫” 눅 7:31-35 111-122
박희도(1889~1951) “精神界의 復興” 눅 19:41 87-102
신석구(1875~1950) “基督敎와 使命” 마 28:19-20 외(外) 135-147
이필주(1869~1942) “참으로 自己를 알나” 시 139:1-4 169-178
정춘수(1874~1951) “예수와 自然” 마 6:26-30 103-110
II. 당대 시대 진단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1. 길선주의 역사 인식과 하나님 의존적 신앙
고취 길선주는 1910년 경술국치와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 문화정치가 착수 되자 “平和의 曙”를 발표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임하기를 기원했다.
또한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과 더불어 파리강화회의가 폐회된 지 2년이 경과 하는 시점이었으며, 이러한 세계적 전화(戰禍)를 지켜보면서 한층 간절한 심정으로 민족의 평화를 염원했다.
그는 이 설교문을 통해 세계열강의 틈바 구니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약소국가들이 감내해야 할 고난을 토로하 면서 우리 민족이 일제에 복속되어 지배당하는 험난한 시대상을 어떻게 풀어 가야 할 것인지 신앙적 관점에서 고뇌했다.
그는 요한복음 14장 27절(“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사야 32장 17절(“공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시편 85편 10절(“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 이상 세 구절을 통해 ‘평화’에 관한 논지를 전개했다.
1) 세계열강을 의지하려는 신념을 버릴 것
길선주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약 1년에 걸쳐 체결된 강화조약의 추이 에 주목했다.
당시 기독교 지도자 중 세계 정세에 밝았던 그는 ‘베르사유조약 (Treaty of Versailles, 1919년 6월), 생제르맹조약(Treaty of Saint-Germain, 1919년 9월), 뇌이조약(Treaty of Neuilly, 1919년 11월), 트리아농조약(Treaty of Trianon, 1920년 6월), 세브르조약(Treaty of Sevres, 1920년 8월)’16 등을 지켜보면서 강대국 위주로 돌아가는 국제 정세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았 고, 이들 국가가 체결하는 조약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단정했다.
그는 단적으 로 힘없고 가난한 약소국가에는 결코 평화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마음 과 마음, 정신과 정신, 정의라는 것에 의지하여 이야기[강화회담 _ 연구자 주]가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무래도 세계의 평화 는 약한 자에게는 없는 것입니다.”17
16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강화조약은 1919년 6월 베르사유조약을 기점으로 1920년 8월 세브르조약에 이르기까지 약 1년에 걸쳐 체결되었다. 베르사유조약은 독일, 생제르맹조약은 오스트리아, 뇌이 조약은 불가리아, 트이라농조약은 헝가리, 세브르조약은 오스만투르크와 관련된 강화조약이다.
17 길선주, “平和의 曙,”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42.
그렇다면 왜 길선주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승전 국가들이 주관하는 회담을 낙관할 수 없다고 소신을 밝혔는가?
그는 그 근거를 세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당시의 정세에 비추어 정복 야욕에 불타는 불의한 국가들이 평화를 선도할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령 대표적인 사례로 전승국 영국은 자국의 일몰 시간대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전 세계에 가장 넓은 식민지를 소유한 나라였다.
길선주는 강대국들의 정복 야욕과 세계 진출을 우려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오늘과 같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은 어떤 곳이든지 불의가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18
이 소신은 길선주의 심중에 체험적으로 각인된 확고 부동한 신념이기도 했다.
그는 일제의 정복 야욕과 관련하여 강화도조약 (1876), 을사조약(1905), 정미조약(1907) 그리고 한일 합방(1910) 등 구한말 (舊韓末) 격동기의 굴욕을 맛보았던 터라 이 강대국들이 주도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는 선의의 조약이 성사될 수 없다는 소신을 굳혔다.
둘째, 길선주는 힘없고 가난한 약소국가들을 제외한 채 소수의 강대국만 이 회담석에 둘러앉아 타협하는 강화회의는 자칫 자국의 국가 이기주의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보았다.
그는 강화회의가 소진(蘇秦)과 장이(張儀) 식의 탁상공론에 그칠 것이라고 우려했으며, 그 결과 약소국가들 은 세계열강의 허울 좋은 평화 축제에 희생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점점 이 평화회의가 열렸다 하는 때에 소진이나 장이[중국 전국시대에 언변에 능했던 두 모사 _ 연구자 주]와 같이 말 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자기 영지를 조금이라 도 더 확장하려는 것은 아닐까?”19
셋째, 길선주는 소수의 세계열강이 주도하는 강화회의는 실상 하나님을 배제한 회의라는 점에서 진정한 평화를 논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성사재천 (成事在天), 즉 일의 성사는 하늘에 있다며 인간의 소망은 반드시 주님의 의지에 합치할 때만 성취된다고 천명했다.20
18 앞의 글.
19 앞의 글, 40.
20 길선주, 講臺寶鑑 (平壤: 東明書館, 1926), 157-159. 설교 제목: “謀事 在人이오 成事는 在天”.
그가 일련의 강화회의에 대해 “평화와 정의가 입을 맞춘다는 그리스도 이전의 시인이 노래한 그 말처럼 될까?
혹은 십자가 위에서 평화를 선언하신 그리스도의 생각하신 것과 같이 행하게 될까?”21라고 회의한 대목에서 그의 깊은 탄식을 읽어낼 수 있다.
21 길선주, “平和의 曙,” 41.
2)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평화
길선주는 온전한 그리고 최종적인 평화는 그리스도의 최후의 심판을 통 한 우주적 정화(淨化)와 신천신지의 도래로 실현된다고 보았다.22
그러나 재림으로 이루어질 궁극적 신천신지의 평화 못지않게 기독교인들이 오늘날 지상의 현상계에서 향유해야 할 평화 역시 필연적 과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천상의 평화는 아니더라도 최상의 평화가 지상에 임하기를 갈망했다.
그렇다면 이 지상에서 어떻게 이상적인 평화를 실현할 수 있는가?
그는 일체 인본사상에 바탕을 둔 인위적인 계책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을 마무리한 일부 열강들이 서로 손잡고 결탁한다고 해서 진정한 평화를 실현할 수 없고, 이는 오직 하나님을 의존하는 신앙에 달린 문제라고 확언했 다.
길선주가 의도하는 평화 그리고 평화의 새벽(曙)은 일제 식민 치하에서 응어리진 한을 품은 우리 민족을 염두에 둔 지고의 소망이었다.
그는 한민족 이 갈망해야 할 평화를 마음에 두어 각별히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심중에 각인해야 할 두 가지의 교훈을 당부했다.
첫째, 길선주는 우리 민족의 참 평화를 위해 하나님의 통치를 구할 것을 부탁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신 의지와 절대 주권을 담보하는 하나님 의존 적 신앙이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때로부터 휴전조약에 이르기까 지 4년에 걸쳐 매일 아침 종전(終戰)과 지상의 평화를 위해 간구했다. 23
22 길선주, “末世學(十四): 變化無窮世界,” 「信仰生活」 5/10 (1936/11), 8-12.
23 길선주, “平和의 曙,” 30.
그는 우리 민족이 누려야 할 평화에 주목하여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를 구축하려면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의 손을 내밀어 한민족을 통치하셔야만 가능한 일이라 고 고백했다.
“제군(諸君)은 강화회의에 동심(動心)하지 말고 오늘 이후로는 ‘의와 평화가 입을 맞춘다’는
이 말씀을 기억하여 정의의 기초 위에 서서 싸움 을 해야 할 것이며 정의의 무대에 평화의 막(幕)이 열리도록 ‘위로부터 손을 펴사 지배하소서’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24
둘째, 그는 “平和의 曙” 마지막 문단에서 시편 85편 10절(“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에 주목하여 고난 당하는 우리 민족이 의와 화평이 성취 되는 온전한 복을 누리기를 기원했다.
그는 이 과업을 위해 각별히 한국 기독 교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정의 인도(正義人道), 즉 정의와 인간의 도리를 실천할 것과 의와 평화의 도래를 위해 힘써 간구할 것을 당부했다.
“이후 세계는 어디까지든지 정의 인도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참으로 평화는 오지 않을 줄로 생각하는 고로, 다시 말하지만 아무쪼록 제군은 시편 85편 10절에 ‘의는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춘다’는 이 말에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구하시기를 간절히 희망하는 바이올시다.”25
24 앞의 글, 42.
25 앞의 글.
2. 박희도의 당대 시대 진단과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박희도는 설교문 “精神界의 復興”에서 ‘암흑한 세상, 캄캄한 세상, 조선의 밤, 모욕’ 등의 용어들을 자주 구사했으며 ‘개혁, 하나님의 나라, 이상, 정의, 아침, 광명’ 등 이와 대척점에 있는 단어들도 기술했다.
이 어휘들만 발췌하여 나열하면 충분히 조선총독부의 심기를 자극할 만한 용어군(用語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직접 일본을 겨냥하는 방식으로 문장을 기술하지는 않았지 만, 암시적인 수사법을 적용하여 필치를 발휘함으로써 독자의 해석 여하에 따라 암흑의 세상의 책임을 일본에 물을 만한 내용들을 진술했다.
그는 이사 야 21장 11절과 12절(“두마에 관한 경고라 사람이 세일에서 나를 부르되 파수 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말씀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精神界의 復興” 을 작성했다.
1) 역사적 암흑기로서의 당대
박희도는 대한제국 광무 시대(光武時代)로부터 일제가 한국을 식민 통치 하던 문화정치 초엽에 이르기까지 시대적 흐름을 진단하여 냉정하게 암흑시 대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흑막(黑幕)의 역사가 초래된 책임이 망국 직전의 대한제국과 당시 일본의 총독 정치체제 양자 모두에게 귀속된 사안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진단한 당시 한국의 실상은 철저하게 암흑시대로 묘사되어 있다. 그는 광무 시대의 타락상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국가는 마음대로[국 민의 의지와 상관없이 _ 연구자 주] 일을 합니다. 이를 암흑한 세상이라 하지 않으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우리 조선은 어떠합니까? … 조선 역사를 자세 히 말할 수는 없으나 광무 시대는 캄캄한 세상이었습니다. 회뢰(賄賂)[뇌물 _ 연구자 주]를 바치고 포학한 정치를 하였습니다.”26
또한 1920년을 전후한 일제의 무단정치기와 문화정치 초기의 시대상에 대해서는 마치 ‘밤’과 같은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우리 조선에 이 밤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 언제까지 이 밤이 계속되겠습니까? 이는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이올시다. 밝다가는 어둡고 어둡다가 밝습니다[광명과 암흑의 순환적인 반복 _ 연구자 주]. … 세계는 그리스도교를 향하여 밤이 얼마나 되었느냐? 조선은 그리스도교를 향하여 아침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묻습니다.”27
26 박희도, “精神界의 復興,”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94.
27 앞의 글, 95.
당대는 도무지 이상과 정의를 찾을 수 없는 시대이고, 사람들의 뇌리에는 오직 돈만 잔뜩 긁어모으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을 뿐이며, 이는 전형적인 암흑시대의 전횡을 보여 준다고 그는 개탄했다. 28
28 앞의 글, 100.
그는 한국의 암흑이 언제쯤 그치고 새로운 광명의 세계가 도래할 것인지 독백(獨白) 형식으로, 때로는 독자들을 향해 공개적으로 질문을 던져 이들의 심적 성찰과 자각을 유도하는 기법을 적용했다.
고종황제는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 직후 1년간 아관파천(俄館播遷)을 단행했으며, 1897년에 환궁하여 대한제국(1897~1910) 을 선포하면서 연호(年號)29를 광무로 제정했다.
29 상종열, 조선왕조실록 (서울: 이다미디어, 2003), 458; 공준원, 五宮과 都城: 王道를 새긴 五宮 과 五常을 쌓은 都城 (서울: 세계문예, 2009), 475. 대한제국 연호는 초대 고종황제 재위 시기에는 건양(建陽, 1896~1897)과 광무(光武, 1897~1907), 제2대 순종황제 재위 시기에는 융희(隆熙, 1907~1910)로 제정되었다
박희도는 이때로부터 을사 늑약, 한일 합방 그리고 1919년 사이또 총독이 부임하여 문화정치를 수행한 이래 1922년 당시에 이르기까지 큰 틀에서 암흑시대가 지속된다고 역사적 맥락을 짚었다.
그는 이 논지를 통해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하여 식민 통치 12년째에 들어섰지만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함축적으로 회의 론과 아울러 대담하게 저항 정신을 보여 주었다.
2)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박희도는 오랜 기간 지속되는 암흑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며, 그 중차대한 책임과 의무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역설했다. 그에 의하면 이 개혁의 과업이야말로 하나님께 속한 싸움이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가 나서야 할 성전(聖戰)과도 같았다.30
그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감당해야 할 영적인 책무를 다음 두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광명한 아침이 도래하도록 하나님을 향해 간절히 기도하고, 이 과업 에 책임 의식을 절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 30만 명을 상회하는 기독교 인들을 향하여 “우리 조선 안에 신교도(新敎徒)만 30만 이상이 됩니다. 그동 안 일하여 놓은 것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불 가운데나 물 가운데라도 들어갈 만한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31라고 힐문했다.
30 박희도, “精神界의 復興,” 99. 31 앞의 글, 97. 안수강 | 일제 문화정치 초기 宗敎界諸名士講演集(1922)에 게재된 민족대표 7인의 메시지 분석 155
그는 당대 기독교인들이 안일한 자세로 책임을 방기했기에 암흑기가 지속된 것이라고 자책하여 기도의 책무를 호소했다.
“오늘은 우리 조선 그리스도 신자가 책임을 자각하고 어떠하든지 이 캄캄한 세상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기도하고 노력한다면 확실히 캄캄한 밤은 지나가고 우리 조선은 광명한 세상을 불원(不遠)하여[머지않아 _ 연구자 주] 볼 줄로 압니다.”32
둘째, 한국이 이상적인 나라로 체질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 사명을 깨달아 결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음에 밤이 왔습니다. 우리가 자기 가정을 어두움에 잡히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 면 어찌해야 합니까?어디까지나 성경을 읽고 하나님과 친해야 할 것입니다.”33
라고 고백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숙독하고 하나님을 심중에 모셔야만 개혁 정신을 갖출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러한 생명력 있는 소명을 가리켜 ‘불붙는 믿음’(믿음이 불붙듯 해야 할 것)34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인 들의 사명을 다짐하는 대목에서 ‘일 개인’(一 個人)의 위치를 중시하여 ‘일 개인-이상’, ‘일 개인-사명’, ‘일 개인-하나님의 나라’라는 의미심장한 도식을 제시했다.
그가 논한 ‘일 개인의 위치’란 한국기독교인 개개인이 이상을 품고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사명을 충직하게 감당한다면, 이로써 한국에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될 것이라는 신념을 함축한다.35
32 앞의 글, 98.
33 앞의 글, 100.
34 앞의 글, 101.
35 앞의 글, 100.
박희도는 왜 이 과업을 반드시 기독교인들이 선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
그는 3.1운동 민족대표 중 일원이었고 출옥 후 1922년 민족운동을 목적으 로 「新生活」 저널을 출간했다가 2년간 다시 투옥되는 등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체험했다.
이렇듯 그는 험난한 인생사의 질곡을 거치면서 당시 기독 교인들이 비록 소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향해 엄청난 힘과 파급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체득했다.
참고로 1919년 5월 8일 조선총독 부 발표에 따르면, 기소된 피고인 6,417명 중 기독교인은 최소한 1,540명을 상회하여 23퍼센트에 달했다.36
또한 민족대표로 서명한 33인 중에서 무려 16인이 기독교인이었다.
당시 기독교인 수는 한국의 인구 대비 1퍼센트 정도 에 불과했지만, 3.1운동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했다.37
36 민경배, 한국기독교회사, 346.
37 김인수, 한국기독교회의 역사, 411.
박희도는 이러한 놀라운 역사를 몸소 3.1운동 현장에서 체험했기에 한국 기독교인들이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전면에 나서서 암흑기에 처한 한국을 구원해야 한다고 호소 했다.
III. 내면의 기독교 신앙 정립 당부
1. 박동완의 성경관과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박동완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of Ephesus, 주 전 5~6C)의 만물 유전 사상을 부정하고 성경은 시간대와 공간을 초월한 절대 적 카논(κανων, 잣대)이며 항존적(恒存的) 진리(prennial truth)라고 주장했 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항존적 진리이지만, 그 생명력을 외연하고 수호하기 위한 현실적 과업을 실천하려면 누구보다도 한국 기독교인들이 솔선하여 성경을 탐구하고 변증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누가복음 7장 31절부터 35절까지의 말씀(“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설교문 “至誠一貫”을 작성했다.
3.1운동 민족대표 중 일원으로 독립 정신과 민족의식이 투철했던 그는 한국 기독교인 들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초석으로 삼아 자신을 건축하며 신앙 정체성을 정립하기를 소원했다.
1) 성경의 항존성 고백
박동완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무궁한 생명을 갖춘 부동의 진리라는 점에서 ‘참-거짓’, ‘선-악’, ‘정의-불의’ 등 양극(兩極) 간 구도를 구분 짓는 최고 최종(最高最終)의 잣대라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 유전 사상을 통해 물줄기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포함하여 만상(萬象)에 이르기까지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주장했다.38
그러나 항존 사상은 일체 유전 사상을 부정하며 플라톤(Platon)과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토마스(Thomas of Aquinas)의 사상에서 그 이론적 원천을 탐색한다.
항존주의(恒存主義)는 상황성을 중시하는 실용주의(pragmatism) 혹은 다양한 사상들로 재편성된 개조주의(reconstructionism) 사고 체제에 저항하는 역학 구도를 갖는다.39
박동완은 항존주의 입장을 취하여 의무론적 윤리(deontological ethics) 를 견지했다.
그는 진리를 거부하는 사람은 멸망을 자초하지만, 하나님께서 는 진리를 인정하는 충직한 사람을 보호하시고 영광을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 다.
그의 이 논증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조건적, 당위적 그리고 정언적(定言 的)으로 고백하는 의무론적 윤리 체계가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제군!(諸 君) 진리[성경 _ 연구자 주]를 따르는 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요 진리를 거역 하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 진리로 보는 것[성경을 진리로 시인하는 것 _ 연구자 주]에 충실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시는 고로 반드 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40
38 사무엘 E. 스텀프, 서양철학사, 이광래 옮김 (서울: 종로서적, 1994), 21.
39 김영규, 기독교교육학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89), 105-120; Will Durant, The Story of Philosophy (New York: The Pocket Library, 1954), 518.
40 박동완, “至誠一貫,”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120.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견지하여 물질을 극복해야 하며, 자신의 이성과 주장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주의(主義)를 변(變)하면[성경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행위 _ 연구자 주] 백만 원이 생긴다 하더라도, 천만 원이 불시에 어디서 난다 할지라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 자기의 주의(主義)를 세워 단 몇 천원이라도 얻지 못한다면… 그 결과 자기의 시커먼 눈 속의 토대(土臺) 마저 무너져 내려 망할지도 모릅니다.”41
41 앞의 글, 121.
2)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박동완은 성경의 항존성을 논증한 후 한국 기독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성심을 다해 감당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최우선적으로 솔선수범해야 할 과업을 다음 두 가지로 당부했다.
첫째, 한국 기독교인들이 부지런히 진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신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지닌 성경을 수호하고 변증하는 사명은 다음 인용문 중 ‘머리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라고 기술된 것처럼 순교적 신앙으로 감당해야 할 만큼 중차대한 과업이라고 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도(道), 이것 이 과연 영구하게 변함이 없는 진리냐 하는 것을 연구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무 연구도 하지 않고 예수교에 뛰어 들어오는 사람은… [총독부에서 강제 로 삭제한 부분 _ 연구자 주] 고심하며 참담한 이 정황이 진리라 할 수 있겠습니 까? … 머리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영구한 진리 _ 연구자 주]은 변하 지 아니할 것입니다.”42
총독부 문서 검열에 의해 강제로 삭제 처리된 부분43 에 대해서는 “참담한 이 정황이 진리라 할 수 있겠습니까?”
42 앞의 글.
43 김영수는 “…” 형태로 되어 있는 부분은 조선총독부 문서 검열 과정에서 강제로 삭제 처리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宗敎界諸名士講演集 영인본 서지정보의 뒷면을 참고할 것.
그리고 ‘머리가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라고 기술된 원색적 표현들을 감안하면 노골적으로 종교 탄압을 일삼는 일제의 악법을 비판하는 내용이 기술되었을 것으로 사료 된다.
둘째, 불굴의 신앙과 순교를 각오하는 결단으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변증해야 하며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정진하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고 격려했다.
이처럼 백절불요(百折不撓)의 신앙심을 가진 신자라면 비록 평소에는 주변인들에게 절교의 수모까지 당한다 할지라도 죽은 후에는 의롭고 참된 인물로 추앙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래의 한국 사회에 진리를 수호하고 실천하는 많은 인재가 배출되기를 기원했다.
“자기가 이 진리 위에 섰다 할 것 같으면 무슨 방해가 있던지 무슨 고장(故障)이 있던지 앞으로 진행해 나갈 것뿐입니다. … 자신이 죽은 후에는 절교를 선언하였던 촌락 사람들이 자기 무덤 앞에 화환을 바치며 ‘그는 실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참사람이었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 오늘 우리 조선 사회에서 자기 가 믿는 바를 이루겠다고 다짐하는 신령한 사람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고대합 니다.”44
44 박동완, “至誠一貫,” 122.
2. 이필주의 인간 자신에 관한 지식과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이필주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해야 할 영적 사명을 논증하는 대목 에서 그 누구보다도 기독교인들이 스스로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자세를 취해 야 하고, 부지런히 자신을 아는 지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에 의하 면 기독교인들의 자신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과 신자 양자 사이의 인격적 관계성을 규정짓는 절대적 그리고 필연적 요건이 된다.
그는 시편 139편 1절 부터 4절까지의 말씀(“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 다…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참으로 自己를 알나”라 는 제하에 참지식에 관한 논지를 전개했다.
1) 인간 자신에 관한 지식
대체로 사람들은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필주는 이러한 낙관적인 사고에 이의를 제기했다.
되레 그는 가장 자신을 알지 못하는 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 자신이라고 지적 했다.
그는
“옛날에도 지금도 자기를 알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또는 자기를 죽도록 모른다는 말도 있습니다”45
라고 단정지었다.
그는 주전 5세기 그리스 의 현자 소크라테스(Socrates)가 소피스트들을 향해 구사한 “너 자신을 알라” (γνῶθι σεαυτόν)는 구절을 음미하여 인간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 존재인가를 이렇게 논했다:
“깊이 생각하여 보면 자기가 자기를 알지 못하는 것도 있습니 다. 헬나의 성인(聖人) ‘소크라데쓰’는 천고(千古)의 위인이었습니다. 저는 자기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 수 없습니다. 설혹 남의 일을 모른다 할지라도 자기의 일은 알 듯도 한데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46
인간의 이성을 현혹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궤변과 논증의 능력을 발휘한 소피스트들이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인간 중심의 사고로 철학을 사유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얼마나 올바르게 인식하는지, 무엇이 진리 이며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당하게 깨닫는지, 인간의 가치를 관철하는 지를 종합적으로 진단하여 이를 철학적 사유의 정초로 삼았다.47
45 이필주, “참으로 自己를 알나,”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169.
46 앞의 글, 173. 소크라테스가 말한 ‘자신을 알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 능력,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김현수, “서구 정의 개념의 지성사적 연원에 관한 연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71 (2010), 251.
47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상), 강성위 옮김 (서울: 이문출판사, 1984), 101-103.
이필주는 소크라테스가 소피스트들을 향해 일침을 가한 “너 자신을 알라”는 가치 있는 진술을 기독교인들이 갖추어야 할 신앙적 자세에 전이(轉移)하여 숙고했다.
그의 이러한 논지는 두 가지의 의미심장한 논점을 보여 준다.48
첫째, 대신 관계(對神關係)에서 신자가 갖추어야 할 겸손의 덕목이다.
이필주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은 극히 미미하고 제한적인 존재에 불과하 며, 따라서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둘째, 인간은 도무지 자신을 모르는 불가지(不可知)의 존재이고, 인간을 가 장 정확하게 아는 존재는 자신이 아닌 하나님뿐이시라고 했다.
그는 인간에 관한 지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전지하신 속성에 속한 문제라고 고백했으며, 따라서 인간은 결코 하나님의 시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제한된 존재라고 인식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논한 양면적 지식이 칼빈(John Calvin)이 기독교강 요(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제1장에서 논한 지식체계와 같은 맥락 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칼빈은 기독교강요 초두에서 ‘인간에 관한 지식’과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중심 논제로 제시하여 이중적 지식을 논증했 다.
그는 이러한 두 종류의 지식을 인과관계로 설정하여 인간이 자기 자신을 모르면 결코 하나님도 알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무지, 허무, 궁핍, 무력, 부패, 무능성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면 결코 하나님 의 선하심과 광대하심을 알 수 없다고 단언했다.49
주목할 점으로서, 칼빈이 논한 이중적 지식은 ‘인간에 관한 지식 →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라는 인과관 계의 논리적 서정(序程)을 구축하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의 영광에 압도당하여 두려워 떨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50
48 이필주, “참으로 自己를 알나,” 173.
49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tr. by Ford L. Battles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60), I. 1. 1(35-37면).
50 Ibid, I. 1. 1(35-39면).
2)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이필주는 기독교인이 먼저 자신에 관한 지식을 갖추고, 이 지식을 기반으 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연이어 탐구함으로써 양자가 조화를 이룬 참된 이중적 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논지를 설파하여 한국 기독교 인들이 이중적 지식을 한 지평 위에 구축하기를 소망했다.
그는 하나님에 관한 정당한 지식을 갖추기 위한 유익한 방안들로 순종, 성경 탐독, 기도와 회개, 하나님을 향한 탄원 등 네 가지로 제시했다.
첫째, 이필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이로써 예수님이 나의 친구가 되시고 성부께서 나를 시인하시 는 복락을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들으신 것[교훈 _ 연구자 주]을 아는 고로 예수께서는 너희는 친우(親友)라… [총독부 에서 강제로 삭제한 부분 _ 연구자 주] ‘나도 아버지의 일을 모른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교훈을 지켜 행한다면 역시 그리스도 자신의 친우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는 말씀입니다.”51
둘째, 그는 열정을 다하여 성경을 탐독할 것을 장려했다.
부지런히 독경 (讀經)하여 예수님을 배우면 성부와 주님께서 나를 시인하실 것이며 기독교 인은 그만큼 심오한 신앙을 체득할 수 있다고 했다.
“한층 더 성경을 읽음으로 써 예수를 배우고 또 하나님께서 아시는 내(自己)가 되어야만, 어느 때 내 머리 위에 우레가 떨어질지라도,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라도, 나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시요 나를 아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심오한 경지에 들어가야 되겠습니다.”52
51 이필주, “참으로 自己를 알나,” 178.
52 앞의 글.
셋째, 그는 하나님께 기도할 것과 회개할 것을 촉구했다.
신자는 그 누구를 막론하고 성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할 때 죄인이라도 그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회개하겠사오니 아무쪼록 나를 친우(親友)로 사랑하여 주소서.’ 이같이 기도하며 참으로 회개하고 가까이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죄인이라도 친우로 삼으십니다.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대하여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53
넷째, 중상모략과 누명으로 인해 고통을 당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 를 의지하여 오직 그에게 탄원하라고 했다.
하나님께서는 은총을 구하는 신자에게 선하게 응답해 주실 것이며 억울한 처지에서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 고 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고로 사람들이 낸 헛소문도 쓸데없을 것이며 반드시 나를 증명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버지여! 나를 정결케 하옵소서. 아버지여! 이러한 악한 소리[악한 소문 _ 연구자 주]를 제하여 주시기를 원하 옵나이다’
하고 태연하게 있을 것 같으면 언제든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자기 얼굴빛은 한층 더 빛날 것입니다.”54
53 앞의 글.
54 앞의 글, 177.
IV. 한국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할 과업 제시
1. 신석구가 제시한 기도와 전도의 과업
신석구는 한국기독교의 생명력을 보존하고 후세에 전수하기 위한 과업 으로서 당대의 기독교인들이 담당해야 할 시급한 사명들을 제시했다.
그는 기독교가 하나님으로부터 유래되었기에 본질적으로 항구적인 생명력을 지 녔지만, 이 생명을 수호하고 외연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진보를 담보하려면 기독교인들이 솔선하여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설교문 후 반부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여 한국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할 과제를 기도와 전도, 두 가지로 제시했다.
그는 마태복음 16장 16-18절(“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과 28장 19-20절(“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설교 문 “基督敎와 使命”을 작성했다.
1) ‘하나의 교회’를 실현하기 위한 기도의 과업
신석구는 목사, 전도사 등 교역자로부터 장로, 교사 등 제직들을 포함하여 비직분자들에 이르기까지 교회 구성원 모두가 기도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구체적인 기도 제목들로서 성결한 영혼과 고상한 정신, 환자의 치유, 마음의 상처 위로, 초신자들의 영적 진보, 신앙의 성장 등 신앙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 개개인을 위하여 간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제시한 기도 제목들은 공동체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한 가지의 지고한 목적을 지향한다. 그 목적은 곧 ‘하나의 교회’(one church)이다.
그는 신앙 공동체에 적(籍)을 둔 신자 개개인을 온전한 하나의 교회로 결속시킴으로써 교회의 항구적 생명력을 보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교회의 생명력은 곧 ‘하나의 교회 됨’에 있으며, ‘하나의 교회 됨’은 신자 개개인의 유기적 결속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구한말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는 몇 가지의 특징적인 전통 을 확립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하나의 교회로 연합할 수 있었다.
가장 뚜렷한 전통은 무엇보다도 열정적인 기도였고, 이는 한국에 항존적 교회가 탄생하 는 핵심적 단초로 자리 잡았다.55
55 김병훈, “기도의 본질에 관한 심층적 고찰,” 「신학과 실천」 15 (2008), 183.
“목사, 전도사, 장로, 교사, 그 모든 사람이 교회에서 전심으로 일치하여 힘써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사람들의 영혼이 성결하게 되도록, 그 정신이 고상해지도록, 기독교인들이 덕을 세우도록, 병환 중인 자는 건강을 회복하도록, 괴상한 믿음을 가진 자는 신앙이 부흥하도록, 심적인 병이 있는 사람, 혹은 몸이 병든 자가 있다면 잊지 않고 매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56
신석구는 다른 교인들을 위해 간구해야 할 기도의 사명과 아울러 부지 중(不知 中)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는 동료 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가령 자신이 병환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하여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때 그러한 나의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기도해 주는 영적 동료가 있다는 것이다. 57
56 신석구, “基督敎와 使命,”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144-145.
57 앞의 글, 146.
그런데 신석구의 권면과 관련하여 반드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제시한 기도의 주제들 은 한결같이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상례(常例)들이라는 점이다.
그는 거족적 혹은 거대한 틀에서 기도 제목들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 개개인의 내면과 가까운 주변에 위치한 일상적이며 소박한 본보기들을 제시 하여 기도에 충실할 것을 교훈함으로써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고자 했다.
위의 인용문에 부각된 신자 개개인을 위한 ‘성결한 영혼과 고상한 정신, 환자 의 치유, 마음의 상처 위로, 초신자들의 영적 진보, 신앙의 성장 등’의 기도 제목들 역시 일상적 범례에 속한 일들이다.
2) 여러 대상을 고려한 전도의 과업
신석구는 기도와 아울러 한국 기독교인들이 진력해야 할 핵심적인 사명 으로서 민족 복음화를 지향한 전도사역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먼저 기도 를 할 것이오 그다음에는 복음을 전할 것”58이라고 하여 기도와 전도를 한국 기독교인들이 추구해야 할 양대 과업들로 설정했다.
58 앞의 글.
아울러 “복음을 전하는 그것이 천직(天職)이라”59 하여 전도 사역에 대해 이미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 한 신자들이 필수적으로 수행해야 할 ‘천직’, 즉 ‘보케이션’(vocation)60이라 고 확언했다.
뷜만(Walbert Bühlmann)이 말했듯이, 복음을 세상 만민에게 외치고 전파하는 것은 교회에 부여된 고유한 사명이다. 61
신석구는 기성 신자 들 각자가 전도 사역을 실천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당위적 사명이라 고 했으며 책임을 등한시하여 방기하거나 나태할 경우 지고의 소명을 포기하 는 처사라고 경고했다.
그는 복음 전파의 대상을 큰 틀에서 세 계층으로 구분 했다.
그가 말하는 세 계층이란 ‘불신자’, ‘구도자’(求道者 혹은 願入人), ‘미형 성된 믿음의 소유자’(중생하지 못한 자)를 가리킨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구도자(원입인)에게 전하는 것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에게만 하라는 것이 아니요 이미 그리스도 신자가 된 그 사람에게도 복음을 전하여야 하겠습니 다. 그리스도 신자[이미 교회에 등록한 자 _ 연구자 주]에게 복음을 전하며 구도자에게 복음을 전하며 아직 주님을 모르는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천직이라 하겠습니다.”62
59 앞의 글.
60 천직은 단적으로 소명 의식의 여부에 단초를 두며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업’(業, business, occupation)과는 달리 ‘vocation, profession’ 등의 용어로 표기된다. 이장형, 안수강, “그리스도모범에 나타난 기독교 사회윤리: 국가관과 노동관을 중심으로,” (2015), 113.
61 권오훈, “하나님 나라 전도와 성령,” 「한국기독교신학논총」 65 (2009), 327에서 재인용.
62 신석구, “基督敎와 使命,” 146.
이 인용문은 전도 사역과 관련하여 그 대상을 다음 세 부류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불신자들을 복음 전파의 대상으로 제시 했다.
이들은 일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이고 기독교 복음을 도외시하거나 관심을 표명하지 않는 전형적인 불신자 계층으로 분류된다.
둘째, 교회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불신자들이지만 나름 종교에 대해 관심 을 갖는 사람들을 ‘구도자’(求道者)들로 명명하여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로 분류했다.
이들은 기독교에 무관심하거나 배척하는 자들과는 달리 종교와 진리에 관심을 가질 만큼 내적으로 종교심이 배태된 사람들이다. 그는 이 구도자를 ‘원입인’(願入人)이라고도 칭했다.
셋째, 교회 공동체에 소속하여 기존 신자들과 더불어 예배에 출석하고는 있지만 복음의 내적 진리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따로 분류했다.
예컨대 요즘 교인 중 신앙이 배태되지 않아 학습이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 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칼빈은 이런 부류에 속한 자들의 신앙을 ‘미형성 된 믿음’(unformed faith)63으로 규정하며 중생에 이르지 못한 자들로 보았다.
63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III. 2. 8(551-553면).
2. 김창준이 제시한 책임의 자각과 이타의 과업
김창준은 복음을 성취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임을 자각하는 그리스 도인 상을 강조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에 임하시기 전이나 그 이후의 삶 전체를 통해 책임 의식을 자각하여 직무에 충실하셨으며, 이를 외연하여 동일한 책임 의식으로 대속 사역의 본을 보여 주셨다고 했다.
또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기독교인이라면 이타적 고난을 수용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했다.
김창준은 베드로전서 2장 21절(“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 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설교문 “最大의 模範”을 작성했다.
1) 책임을 자각할 것
김창준은 책임을 논증하기 전에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려 는 취지에서 예리한 필치로 수사적 질문을 던졌다:
“다른 사람은 어떠하든지 간에 여러분들이 아시듯 오늘날 우리 조선에서 스스로 책임을 깨닫고 진력 (盡力)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64
그는 한국 기독교인들은 항상 이 질문을 심중에 깊이 되새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책임의 자각과 관련하여 반드시 주지해야 할 세 가지 과제로서 책임의 일관성, 외식 행위를 경계할 것 그리고 성실한 청지기 상을 제시했다.
첫째, 초림하신 예수님께서 30년간 가사를 돌보신 것과 이후 3년 공생애 사역에 솔선하신 책임의 일관성을 논했다.
그는 예수님의 보적(寶跡)을 30세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가사일과 이후 3년 공생애를 혼신의 힘을 다해 감당하셨 다는 점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 최후의 순간까지도 모친을 생각하셨던 지극한 효심에 주목했다.
“주 예수는… 12세부터 30세까지는 ‘마 리아’의 일가를 두 어깨에 지고서 집안의 모든 일을 치리(致理)하는 책임을 다하셨고… 구주로서 사람들을 고귀하게 하시려고 자신이 하셔야 할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운명하실 때 제일 사랑하는 ‘요한’을 부르시어 자기를 낳으시고 기르시느라 애쓰신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하셨습니다. 실로 예수는 책임의 자각으로써 이 사명들을 다 감당하신 것입니다.”65
둘째, 책임을 자각하려면 무엇보다도 외식 행위를 경계하여 자신의 내면 부터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표리부동(表裏不同)하다는 것은 자신이 부여받은 책무를 가볍게 여겨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 복음 23장에 여러 차례 기록된 ‘외식’(ὑπόκρισις)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위조 품’, ‘거짓말하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66
64 김창준, “最大의 模範,” 238.
65 앞의 글, 238-239.
66 Gerhard Kittel, T. D. N. T.(VIII), tr. by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5), 559-560.
김창준은 기독교인들이 투철한 사명 의식으로 책임을 자각해야만 국가가 위대해지며 국민에게 소망을 심어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책임을 깨달아 책임을 다하는 사람 도 있으나, 대체로 모든 사람이 누가 보면 그 눈앞에서는 진심갈력(盡心渴力) 을 하지만 쳐다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마간 가감(加減)하여 속이는 일이 일반적입니다. … 책임의 자각! 자기가 맡은 일은 사람이 보든지 아니 보든지 어디 까지나 진력해야 한다는 이 아름다운 풍속은 그 나라로 하여금 위대하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소망이 있게 하는 것입니다.”67
셋째, 기독교인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하여 어떤 책무를 맡았든지 대소사 를 막론하고 충성스럽게 책무를 수행하는 청지기 상을 갖추어야 한다고 했 다.
가령 교회 공동체 안의 신자들이 부여받는 다양한 직무들과 관련하여 멤버십이 있는 회원으로 또는 주일학교 교장이나 교사로 자신에게 부과된 책무를 감당하여 교회 공동체 전체를 섬기는 사역자로 헌신해야 한다고 했 다.
이 논지에는 교회의 일치와 조화를 중시하는 공동체 의식이 깊이 반영되 어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교회의 어떠한 직임에 뽑혔든지 힘껏 그 직무를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위원이 되었으면 위원의 일, 주일학교장으로 피선되 었으면 주일학교장의 책임, 또 교사가 되었으면 교사로서 그 직분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도록 서로 책임을 자각하 고 그 직무마다 힘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68
67 김창준, “最大의 模範,” 237-238.
68 앞의 글, 239.
2) 이타의 고난을 감수할 것
김창준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기독교인이라면 이타의 고난을 자청 하여 감수하는 일을 필연적 사명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과 과거 신앙의 역군들도 이타의 고난을 기쁨으로 수용했다며, 특히 선진들이 큰 고난을 감수하여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한 생활 을 배운 까닭’ 69이라고 했다.
69 앞의 글, 241.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조명한 후 이를 외연하 여 사도들, 초기 교회 기독교인들, 선교사들,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을 돌보는 귀부인 간호사들의 헌신을 소개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에 대해 “자기는 죽기까지 삼년 동안 주야를 불계(不係)하며[주야를 가리지 않으심 _ 연구자 주] 주무실 시간도 없고 잡수실 만한 여가도 없을 정도로 진력하신 것은 구주로서 사람들을 고귀하게 하기 위하여 자기가 할 일을 다 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 손은 못 박혀 선지피[鮮血 _ 연구자 주]가 흐르며”70라고 감읍했다.
그는 그리스도 의 이 헌신적인 사랑이야말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바치신 이타 적 사랑의 절정이라고 했다.
또한 신앙의 선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적을 본받아 이타적 고난을 자청했던 단호한 결단에 대해서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 다.71
둘째, 사도들과 초기 교회 신자들의 열정적 헌신을 본받아야 한다고 했다.
베드로의 순교, 복음을 전한 바울의 수고, 초기 교회 교인들이 보여 준 섬김의 헌신은 현하 기독교인들에게 선행적 사표가 된다고 했다.
“남을 위하여 고난 을 당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죽은 것이나 ‘바울’이 생명을 잃기까지 낙심하지 않고 정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한 생활을 배운 까닭이라 합니다.”72
그는 계속해서 사도들, 과거에 고난을 무릅쓴 교우들의 헌신에 주목했다.
“그리스도의 제자 혹은 교회의 옛날 교우들, 신자들은 괴롬을 당하리라는 각오를 다졌습니다. 훌륭한 귀족의 집에서 그리고 자유를 누리는 부자의 집에서 태어난 사람이 일부러 빈민굴을 찾아가서 그곳에 집을 세우고 가난한 자들의 친우가 된 사람이 몇천만인지 알 수 없습니다.”73
70 앞의 글, 239.
71 앞의 글, 240.
72 앞의 글, 240-241.
73 앞의 글, 240.
셋째, 김창준은 현시대에 이타의 삶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의 행적에도 주목했다.
가령 예수님의 삶의 자취를 추종하여 고난을 감수하고 전쟁터에서 부상 당한 군인들을 간호하는 귀부인들, 적도의 무더위와 북극의 엄동설 한을 마다하지 않고 구령 사역에 전념하는 선교사들의 수고 또한 이타적 사랑을 실천하는 귀감이라고 했다.
“자기 집에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리며 자유를 향유하던 귀부인이… 자기 집 문을 열쇠로 잠그고 전지(戰地)에 나가 부상 당한 병사들을 위하여 일한 사례가 얼마인지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또 무더운 초열지옥(焦熱地獄)과 차가운 지옥이라 할 만한 그린란드나 아이 슬란드에 전도하려 간 사람이 몇천 명인지 알 수 없습니다.”74
74 앞의 글.
3. 정춘수의 국토 사랑과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정춘수는 팔레스타인의 지형, 특성, 도시의 위치와 지리, 역사와 내력 혹은 풍속 등 자연을 주제로 국토 사랑을 전개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형을 두루 아우름으로써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심과 국토 사랑을 긴밀하 게 결부시켰으며 신앙의 눈으로 조국 강토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태복음 6장 26-30절(“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 다 귀하지 아니하냐…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을 본문으로 설정하여 설교문 “예수와 自然”을 작성했다.
1) 지형에 부여한 의미들
정춘수는 설교문 서두에서 프랑스 종교사가(宗教史家)이자 동양학자인 르낭(Ernest Renan)75을 소개하여 그가 팔레스타인을 순례하며 다섯 번째 복음서를 접했다는 고백을 인용했다.
75 르낭(Ernest Renan, 1823~1892)은 프랑스인으로 동양학자이다.
그는 1860년에 팔레스타인을 방문 하여 레마존산의 마론교도 오두막집에 체류하면서 예수의 생애(Origines du Christianisme) 제1권을 저술했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 기독교대백과사전(5) (서울: 기독교문사, 1994), 432.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신 팔레 스타인 현지답사와 체험을 통해서도 이천 년 전 예수님의 공생애를 새롭게 음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란서의 유명한 신학자 ‘루난’[Ernest Renan _ 연구자 주]이 예수의 탄생하신 팔레스타인에 여행할 때 그 자연 속에 들어가 서 예로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유대 갈릴리의 풍속을 시찰하였는데 복음 서에서 배운 것이 실로 새롭고 또한 취미를 크게 깨달아 ‘나는 이곳에 와서 다섯째 복음서를 읽는 것 같은 마음이 일어난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나는 ‘루난’이 말한 다섯째 복음서를 읽으러 갈 생각으로 꿈을 꾸었습니다.”76
정춘수는 예루살렘, 헐몬산, 나사렛, 레바론산, 갈멜산, 드보산, 갈릴리, 사마리아 등지를 낱낱이 열거하여 지형, 특성, 도시의 위치와 지리, 역사와 내력 혹은 풍속 등을 묘사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특히 신앙 혹은 복음적 의미 를 담는 대목에서는 별도로 주목할 만한 역사적 의의를 간추려 기술했다. 가령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중심부로, 나사렛 은 빈천한 곳이지만 예수님께서 가족과 더불어 목수 일을 하시며 성장하신 아름다운 촌으로, 갈멜산은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긴 거짓 선지 자들과 싸워 물리친 승전의 산으로, 드보산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가 무 성한 곳으로 예수님께서 큰 애착과 관심을 가지셨던 지역이라고 했다.77
76 정춘수, “예수와 自然,” 宗敎界諸名士講演集, 한석원 편, 102.
77 앞의 글, 103-105.
정춘수는 이 다양한 지역들 가운데 특별히 복음적 향취를 물씬 담은 대표적 인 장소로 사마리아와 헐몬산을 주목했다.
그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중 한낮 에 사마리아 우물터에서 여인을 만나 중생시키신 일을 소개하여 영원한 생명 을 주는 물을 가리켜 ‘진정한 영천(靈泉)’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이 생명수로 써 그 여인뿐 아니라 완고한 사마리아 사람들을 유화(柔和)시켜 복음을 전하 셨다고 했다. 78
요한복음 4장 14절(“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에 기술된 물은, 칼빈이 말했듯이, 성령을 가리키며 어느 한순 간만이 아니라 영원토록 생명을 소생하게 하는 신비로운 원천이 된다.79
이 성역과 아울러 정춘수는 예수님의 공생애 말엽 헐몬산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보여 주신 신비로운 환상과 하늘로부터 들려온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라는 하나님의 음성에 주목했다. 헨리(Matthew Henry)에 의하면, 이 선포는 복음의 큰 비밀을 계시한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울려 퍼진 성부의 음성(마 3:17)과도 일치한다.80
정춘수는 헐몬산에서 모세, 엘리야와 더불어 별세하실 것을 논의한 예수님의 사역을 포착하여 ‘살아 있는 자연’을 ‘살아 있는 성경’이라고 칭했으며, 하나님께서 헐몬산이라는 순수한 자연을 통해 보여 주신 계시의 신비를 음미했다.81
78 앞의 글, 107-108.
79 John Calvin, John Calvin’s New Testament Commentaries: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tr. by T. H. L. Parker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92-93. 요 4:13-15 주석.
80 Matthew Henry, Matthew Henry’s Commentary: Matthew to John (Old Tappan, NJ: Fleming H. Revell Company, n.d.), 243-244. 마 17:5 주석.
81 정춘수, “예수와 自然,” 107-109.
2)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정춘수는 팔레스타인에 산재한 예루살렘, 헐몬산, 나사렛, 레바론산, 갈 멜산, 드보산, 갈릴리, 사마리아 등 여러 지역을 열거할 때, 이에 견주어 간간이 조국 강토를 연상하도록 한국의 명소들을 개입시켜 소개했다.
예루살렘을 언급할 때는 이보다 고도가 더 높은 명산(名山) 삼각산을 소개했고, 예수님께 서 특별한 취미와 관심을 가지셨던 휴식처 드보산을 말할 때는 최적의 극락 휴양지 금강산의 절경과 온천에 대조했으며, 이외에도 복숭아꽃(桃花)이 만발하여 꽃 터널로 이름난 개성, 하늘을 뚫을 만큼이나 치솟은 송악산, 석왕사 등 이름난 곳들을 선별하여 소개했다.82
정춘수는 설교문 “예수와 自然”을 끝맺음하면서 신앙심에 비추어 조국 강토에 대한 열정을 붓끝에 담았다. 다음 인용문은 그가 이 설교문에 기술한 마지막 문장이다:
“살아 있는 성경을 말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살아 있는 성경을 깊이 맛볼 필요가 있는 줄로 압니다. 예수께서 맛보신 팔레스타인의 자연보다 못할 것이 없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국토[한반도 _ 연구자 주]에서 태어난 우리[한국인 _ 연구자 주]는 예수를 본받아 자연[살아 있는 성경인 한반도 _ 연구자 주]을 통해 그 오묘한 것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올시다.”83
82 앞의 글, 103-109.
83 앞의 글, 110.
그가 이 인용문에서 구사한 ‘국토’라는 두 글자에는 한국의 여러 명소를 소개한 내용을 되새겨볼 때 조국, 민족, 우리 땅이라는 함축적인 역사성과 한국인으로서의 인지상정과 애틋한 정감이 깊이 농축되어 있다.
본 연구자 의 소견으로는 그가 구사한 국토를 일제가 지배하는 땅이 아닌 ‘국토=조국= 민족의 터전=우리 땅’이라는 구도로 도식화해도 합당하리라 본다.
정춘수는 의도적으로 한국의 아름다운 삼천리강산을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구원의 복음을 성취하신 팔레스타인의 지형에 견주어 바라봄으로써 우리 민족의 터전인 한반도를 신성한 예루살렘 성지의 반열에 전이하고자 했다.
그는 한국 강산의 찬란한 자태를 가리켜 ‘예수께서 맛보신 팔레스타인의 자연보다 못할 것이 없는 이 아름다운 자연의 국토’라고 감탄했으며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주신 터전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정춘수가 이 설교문 “예수와 自然” 을 통해 보여 준 열정은 기독교 신앙에 의해 국토애를 관철하는 것이었고,한국 기독교인들이 이 자부심을 가질 것을 간절히 기원한 데서 지고의 정점을 보여 준다.
V. 나가는 말
지금까지 宗敎界諸名士講演集에 발표된 민족대표 7인의 메시지를 분 석했다.
이들은 3.1운동 이후 문화정치가 시행되던 초엽에 한국 기독교인들 에게 시대적 정황을 직시하여 문화정치 전후의 흑(黑)역사를 진단했고 하나 님 의존적 신앙, 내면적 기독교 신앙 정립, 추구해야 할 과업 등 미래지향적 사명을 제시해 주었다.
첫째, ‘당대 시대 진단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는 길선주의 “平和 의 曙”와 박희도의 “精神界의 復興”에 부각되어 나타난다. 길선주는 한국은 정복 야욕에 심취한 세계열강들을 신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치리하시 는 평화와 의를 열망할 것을 촉구했다. 그는 우리 민족이 누려야 할 참 평화는 하나님의 통치로서만 가능하며, 한국 기독교인들이 정의 인도(正義人道)의 삶과 기도에 힘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희도는 구한말과 1920년대 당대를 역사적 암흑기로 규정하고 한국 기독교인들이 한국에 광명한 아침이 도래하 도록 간구할 것, 사명을 자각할 것, 기독교인 개개인이 ‘일(一) 개인’의 위치를 소중하게 여겨 사명을 감당할 것 등을 호소했다.
둘째, ‘내면적 기독교 신앙 정립 촉구’는 박동완의 “至誠一貫”과 이필주의 “참으로 自己를 알나”에 깊이 있게 진술되었다.
박동완은 만유유전설을 논박 하여 성경의 항존적 속성과 진리의 불변성을 고백했으며 성경에 바탕을 둔 의무론적 윤리관을 중시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부지런히 진리를 탐구할 것과 불굴의 신앙으로 성경을 변증하여 기독교인답게 신앙 정체성을 확립할 것을 권고했다.
이필주는 자신을 아는 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하나님 을 아는 지식을 추구할 것을 피력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를 것, 열정을 다해 성경을 탐독할 것, 기도와 회개에 힘쓸 것,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는 신자 상을 지향할 것을 논했다.
셋째, ‘한국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할 과업’에 대해서는 신석구의 “基督敎 와 使命”, 김창준의 “最大의 模範”, 정춘수의 “예수와 自然”에서 깊이 있게 살펴볼 수 있다.
신석구는 한국기독교의 항구적 생명력과 후대 전수를 위해 한국 기독교인들이 가장 솔선해야 할 양대 과업들로서 하나의 교회를 실현하 기 위한 기도와 전도의 사명을 제시했다.
김창준은 복음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책임을 자각하는 그리스도인 상,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이타의 고난을 실천하는 헌신적인 신자 상을 강조했다.
정춘수는 한반도 강토에 대한 신앙적 열정을 ‘국토=조국=민족의 터전=우리 땅’이라는 구도로 도식화하여 기독교 신앙에 의한 국토애를 관철시켰다.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일제 문화정치 초기, 당대 기독교 지도자들의 메시 지를 재해석하여 현실적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사성 있는 과업들을 숙고 해야 한다.
1919년 3.1운동이 무위로 돌아가고 문화정치가 착수될 무렵 우리 민족이 실의에 잠겨 있을 때, 기독교계 민족대표 7인은 宗敎界諸名士講演 集에 설교문들을 기고하여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 정체성을 환기(喚起)하 고자 했다.
이들은 당대 역사의 흐름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현실을 직시했고 미래지향적 혜안(慧眼)으로 한국의 장래를 내다보았다.
이로써 한국 기독교 인들에게 투철한 신앙심으로 민족을 선도할 것을 촉구했다.
현하 한국기독 교는 과거 믿음의 유산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직시하는 지혜를 터득하고 담론을 활성화해야 한다.
첫째, 한국기독교는 평범한 일상생활의 개혁을 통해 신앙 정체성 회복을 강구해야 한다.
민족대표 7인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당부한 과업들은 생사 를 담보해야 할 정도로 거국적 혹은 거대한 수준의 과제들이 아니었다. 다만 신자들이 일상의 삶 속에서 꾸준히 노력해야 할 평범한 사안들이었으며, 이들이 제시한 하나님 의존적 신앙, 하나님의 통치, 기도와 회개, 책임과 사명 자각, 성경의 진리 수호와 변증, 진리 탐구, 순종, 선교와 전도 사역, 이타 정신 실천, 헌신과 고난의 감수, 민족애와 국토애 등은 오늘날 신자들이 힘써 추구해야 할 지극히 일상적인 과업들이다.
둘째, 한국기독교는 세속적 풍조와 급변하는 시류를 극복하여 바른길로 선도하는 지도자적 위상과 지도력을 갖추어야 한다.
1920년대 한국기독교는 일제 문화정치에 맞서 문서 선교의 활성화를 통해 식민 이념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다.
현세대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사회의 급변, 인공지능 활성화 로 인한 인간 소외현상, 문화와 문명이 괴리된 문화 지체 현상, 세계화와 국제 화로 인한 민족의식의 약화, 피폐화되는 윤리 의식과 도덕관념, 성적 방종, 비성경적 인권론, 낙태와 안락사 등 생명 경시 현상, 집단 이기주의, 치열한 경쟁 구도, 극단적 양극화 현상 등 고질적인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한국기독 교는 이러한 시대적 난항을 어떻게 극복하고 선도할 것인지 속히 성경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한국기독교는 민족 복음화, 특히 북한 선교 사역 추진을 활성화해야 한다.
민족대표 7인은 민족 복음화를 애국을 실천하는 방편으로 생각했고 민족의 숙원으로 여겼다.
지금 한국은 남북이 분열된 지 80년이 경과하는 시점에 서 있다.
북한 선교는 미래적 과업이 아니라 지금 그리고 이 자리에서 착수해야 할 현재적 과업이다.
박정란과 강동완은 북한 선교의 현주소를 이렇게 기술했다:
“한국교회는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상흔을 주님의 말씀 으로 회복시키고 치유하였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먼 미래 가 아닌 현재 가능한 남북 간의 남한 내부의 산재한 갈등과 상처들을 어루만지 고 극복할 수 있도록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가의 문제이다.”84
84 박정란, 강동완, “한반도 정세 변화와 북한선교,” 「한국기독교신학논총」 61 (2009), 7.
한국기독교는 북한 선교 과업을 체계화하여 모든 신자가 동참할 수 있도록 선교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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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본 연구는 일제 문화정치 초기 宗敎界諸名士講演集(1922년)에 게재된 민족대표 7인의 메시지를 분석하려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설교문집에 뚜렷 하게 제시된 핵심적인 논지들은 ‘당대 시대 진단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 ‘내면적 기독교 신앙 정립 촉구’, ‘한국 기독교인들이 힘써야 할 과업’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길선주의 “平和의 曙(새벽)”와 박희도의 “精神 界의 復興”을 중심으로 ‘당대 시대 진단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향한 당부’에 역점을 두어 고찰했다. 둘째, 박동완의 “至誠一貫”과 이필주의 “참으로 自己 를 알나”를 중심으로 ‘내면적 기독교 신앙 정립 촉구’에 관하여 다루었다. 셋째, 신석구의 “基督敎와 使命”, 김창준의 “最大의 模範” 그리고 정춘수의 “예수와 自然”을 중심으로 ‘내면의 기독교 신앙 정립 당부’ 분석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들의 메시지에 부각된 핵심적인 논지들은 하나님 의존적 신앙, 하나님의 통치, 기도와 회개, 책임과 사명, 성경의 진리, 민족 복음화, 이타적 고난, 민족애 등이다.
주제어 : 宗敎界諸名士講演集, 민족대표, 신앙 정체성, 한국기독교, 일제 문화정치
Abstract
An Analysis of the Messages of Seven National Representatives in Jonggyogyeoi Jemyeongsa Gangyeonjip (1922) in the Early Era of Japanese Cultural Policy
Su-Kang Ahn,( Ph.D. Lecturer, Department of Theology Baekseok University)
This paper aims to analyze the messages of seven national representatives in Jonggyogyeoi Jemyeongsa Gangyeonjip(1922) in the Early Era of Japanese Cultural Policy. The prominent points in this book are ‘the diagnosis of the times and the call for Christians in Korea’, ‘a call for the establishment of internal Christian faith’, and ‘Korean Christ’s Mission’. Firstly, I concentrated on ‘the diagnosis of the times and the call for Christians in Korea’, focusing on Seon-Ju Gil’s “Dawn of Peace” and Heui-Do Park’s “Revival of Spirit”. Secondly, I dealt with ‘a call for the establishment of internal Christian faith’, focusing on Dong-Wan Park’s “Consistent Sincerity” and Pil-Ju Lee’s “Know Who You Really Are”. Thirdly, I treated with ‘Korean Christ’s Mission’, focusing on Seok-Gu Shin’s “Christianity and Missions”, Chang-Jun Kim’s “The Greatest Model”, and Chun-Su Jeong’s “Jesus and Nature”. The key points highlighted in their messages are dependence on God, the reign of God, prayer and repentance, responsibility and mission, the truth of the Bible, evangelical propagation, altruistic hardship, patriotism, and so on.
Keywords :Jonggyogyeoi Jemyeongsa Gangyeonjip, National Representatives, Faith Identity, Korean Christianity, Japanese Cultural Policy
접수일: 2024년 11월 10일, 심사완료일: 2024년 12월 4일, 게재확정일: 2024년 12월 5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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