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이야기

분황 원효 금강삼매경론의주요 내용과 특징― 반야 중관(空性)의 이제설과 유가 유식(假有)의 삼성설의 一味적 通攝:기신론소 ‘一心’과 삼매경론 ‘本覺’의 유기적 상관성을 중심으로 ―고영섭(동경大)

- 목 차 -

Ⅰ. 서언

Ⅱ. 일심과 본각의 상의성과 역동성

   1. 󰡔금강삼매경󰡕의 편찬 주체와 󰡔금강삼매경론󰡕의 간행

   2.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의 상관성

Ⅲ. 정설분 6품 및 제7품 총지품의 유기성

   1. 금강과 삼매의 정의와 상호 관계

   2. 정설분 6품의 구조와 풀이

   3. 총지품의 정설분 편제와 의미

Ⅳ. 중관 이제설과 유식 삼성설의 일미적 통섭

   1. 일미관행의 요체와 십중법문의 종지

   2. 반야 공관과 유가 유관의 화회적 통섭

   3. 진제 유식의 구식설과 아마라식

   4. 일각, 본각과 시각의 관법

Ⅴ. 일심지원과 일심본각의 상호의존성

    1. 일심지원과 일심

    2. 일심본각과 일각

Ⅵ. 결어

 

 

Ⅰ. 서언

 

고타마 싯다르타(BCE. 624~544)는 ‘중도’(中道)의 발견을 통해 사캬무 니 붓다로 탈바꿈하면서 인류 역사에 ‘깨침’ 혹은 ‘깨달음’의 새로운 세계 를 보여주었다.

그가 상대적 극단을 넘어서 보여준 중도행은 과현미 삼 세의 인과를 뛰어넘어 붓다로서 보여준 영원한 대자유인의 삶이었다.

그 는 붓다가 되기 이전의 인과는 붓다가 되어서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한 번 붓다가 되면 영원한 대자유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렇다 면 붓다의 ‘깨침’ 또는 ‘깨달음’은 무엇이며 붓다의 제자들은 어떻게 ‘깨침’  혹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까?

싯다르타는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거쳐 초야(初夜), 중야(中夜), 후 야(後夜)의 과정을 통해 무명이 사라지자 명지(明智)가 생겨났고 어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다고 고백하고 있다

. 즉 그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에 의한 번뇌[欲愛, kāmataņnhā]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존재에 의 한 번뇌[有愛, bhataņhā]에서 마음이 해탈되었고, 무명에 의한 번뇌[無明 愛, avijjtaņhā]에서 마음이 해탈되어 무명이 사라지고 명지가 생겨났고 어 둠이 사라지자 빛이 생겨났지만 나의 안에서 생겨난 즐거운 느낌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어 그는 대화가 끝나면 언제나 항상 닦기 이전과 같은 ‘삼매의 인 상’으로서 사념처 즉 네 가지 새김[念]의 토대가 되는 ‘공(空)의 경지의 성취(空果等持, suňňstaphalasamāpatti)를 닦는다1)고 언표하였다. 2)

이처럼 싯다르타는 출가 이후 알라라 깔라마와 웃따까 라마뿟따를 통해 고행 수 행을 하였으며, 선정 수행을 통해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거쳐 중도와 연기 즉 팔정도와 십이연기를 깨달았다.

󰡔초전법륜경󰡕은 붓다가 중도 즉 팔정도와 사성제 즉 십이연기에 대해 설하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3)

 

     1) Pps.II. 285. 전재성, 역, 󰡔쌋짜까에 대한 큰 경󰡕(Mahāsaccakasutta, M1:237), pp.452~ 454; p.439의 주석 645) 참조; 대림 역, pp.183~186. 譯者는 싯다르타는 몸의 수행을 관찰하는 것은 위빠싸나로, 마음의 수행을 멈추는 것은 사마타로 주석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身受心法의 四念處를 적용하면 몸의 수행은 위빠싸나로, 마음의 수행 은 사마타로 보는 것이 된다. 여기에서 受는 身의 염처에, 法은 心의 염처에 속하는 지 혹은 속하지 않는지 분명하지 않다.

     2) 하지만 붓다의 당시 수행이 현재의 위빠사나 수행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 않다.

     3) 高榮燮, 「깨침 혹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고타마 싯다르타의 중도(中道) 연기(緣 起)와 분황 원효의 일심(一心) 일각(一覺)―」, 󰡔불교철학󰡕 제4집, 동국대학교 세계불 교학연구소, 2019. 4. 

 

붓다 의 깨침은 사성제와 십이연기로 알려져 있지만 이를 수렴하면 중도 연기로 집약된다.

붓다의 깨침인 중도는 불교사상사에서 고락(苦樂), 단상(斷 常), 일이(一異), 유무(有無)의 범주로 설명되어 왔으며 이들을 포괄하는 상위개념을 삼론가는 속제중도와 진제중도를 아우르는 ‘이제합명중도’ 또 는 ‘불이중도’로, 분황 원효(617~686)는 속제, 진제, 속제중도, 진제중도를 아우르는 ‘중도일미’(中道一味) 4) ‘중도일실’(中道一實) 혹은 ‘무이중도’(無二 中道) 5)로 표현해 왔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의 구도 속에서 일심에 도달하기 위해 본각/불각/시각/시각이 곧 본각의 순서로 해명해 왔으며, 󰡔금강삼매경6)론󰡕의 일미관행과 십중법문의 구도 아래서 일각에 도달하기 위해 시각/본각/불각의 순서로 설명해 왔다.

 

     4) 元曉, 󰡔金剛三昧經論󰡕권중(󰡔대정장󰡕 제34책, p.987하; 󰡔한불전󰡕 제1책, p.645하). “案云, 三時不失中道一味, 卽是此觀守一之用, 此觀在於十行位也.”

    5) 元曉, 󰡔金剛三昧經論󰡕권하(󰡔대정장󰡕 제34책, p.965중; p.999상; p.999상; 󰡔한불전󰡕 제1책, p.11중; p.663하; p.663하). “于時不生取空之心, 不得已會無二中道, 同佛所入 諸法實相”; “聞佛所說空有二門, 計有二法, 而無一實, 由此排發無二中道, 而未曾聞無 二中道.”

    6) 元曉, 󰡔金剛三昧經論󰡕권하(󰡔대정장󰡕 제34책, p.999중; 󰡔한불전󰡕 제1책, p.664상). “亦不依中住者, 雖離二邊, 不存中道一實而住, 卽離第一輪水之妄.”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에서 ‘일미’(一味)는 시각과 본각이 하나의 맛 인 ‘동일미’(同一味)이자 평등한 한 맛이며[平等一味] 일심과 본각이 같은 ‘일각미’(一覺味)로 언표된다.

‘일각’(一覺)은 시각과 본각이 본래 평등한 동일각(同一覺)이자 시각이 원만하면 곧 본각과 같아져서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는 것이며, 모든 중생이 똑같이 본래 깨달았기 때문에 동일본각 (同一本覺)이자 일심과 본각을 하나로 아우르는 일본각(一本覺)으로 표현 된다.

따라서 원효가 󰡔대승기신론소󰡕에서 보여준 일심의 지형이 본각/불 각/시각/시각이 곧 본각의 순서로 전개된다면 그가 󰡔금강삼매경론󰡕에서 보여준 일각의 지형은 시각/본각/불각의 순서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원효는 전자의 이론적 체계와 후자의 실제적 방법을 통해 깨침 혹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유기적 상관성의 구조를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미 많은 선행연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7) 󰡔금강삼매경󰡕8)과 󰡔금강삼매경론󰡕은 반야 중관(空性)과 유가 유식(假有)의 일미적 통섭이라 는 커다란 기획과 일미관행(一味觀行)과 십중법문(十重法門)의 구도 아래 일심과 본각,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닌 일각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7) 이기영, 「원효사상의 독창적 성격」(1975)·「원효의 여래장사상」(1978), 󰡔원효사상연 구󰡕(I)(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94); 고익진, 「원효사상의 실천원리―금강삼매경론 의 一味觀行을 중심으로―」, 󰡔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 한국불교사상사󰡕(원광대출 판국, 1975); 김영태, 「신라에서 이룩된 금강삼매경」, 󰡔불교학보󰡕 제25집, 동국대학 교 불교문화연구소, 1988; 정순일, 「원효의 일미관행 연구―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 로」, 󰡔여산유병덕박사화갑기념 한국철학종교사상사󰡕(이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 구소, 1990); 佐藤繁樹, 「원효의 화쟁논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6; 김병환 (원영), 「원효의 금감삼매경론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7; 남동신, 「신라 중대불교의 성립에 관한 연구―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제21집,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98);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 삼매경론󰡕과 원효사상(I), 󰡔원효학연구󰡕 제5집, 원효학회/원효학연구원, 2000; 박태 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과 원효사상(II), 󰡔원효학연구󰡕 제6집, 원효학회/ 원효학연구원, 2001; 박태원, 「원효의 각사상 연구」, 󰡔새한철학󰡕 제34집, 새한철학 회, 2003; 박태원, 「원효의 󰡔금강삼매경󰡕 6품 해석학」, 󰡔철학논총󰡕 제77집, 새한철학 회, 2014; 박태원, 「원효의 선사상」, 󰡔새한철학󰡕 제68집, 새한철학회, 2012; 박태원, 「본각이란 무엇인가」, 󰡔새한철학󰡕 제93집, 새한철학회, 2018; 김영미, 「원효 󰡔금강삼 매경론󰡕의 무이중도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7; 최건업, 「분황 원효의 수행관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2020.

    8) 원효의 󰡔금강삼매경론󰡕(6권 혹은 3권, 存)에 이어 五代 南唐의 廬山 大林寺 僧遁선 사의 󰡔金剛三昧經注󰡕(4권, 失), 명나라 圓澄선사의 󰡔金剛三昧經註解󰡕(4권, 存), 寂震 선사의 󰡔金剛三昧經通宗記󰡕(10권, 存)이 간행되었다

 

이 글에서는 이 󰡔경󰡕과 원효의 󰡔론󰡕이 말하고자 하는 주요 내용과 특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일심과 본각의 상의성과 역동성

 

1. 󰡔금강삼매경󰡕의 편찬 주체와 󰡔금강삼매경론󰡕의 간행

 

원효는 무수한 저술을 지었지만 그의 사상적 체계는 중만년 작인 󰡔대 승기신론소󰡕와 󰡔금강삼매경론󰡕에 집약되어 있다. 9)

 

     9) 원효의 만년작의 하나인 󰡔華嚴經疏󰡕도 그의 이전 화엄 주석서를 집대성하여 확장 한 것이지만 아쉽게도 「序文」과 「光明覺品疏」만 남아있어 그의 사상적 지형을 온 전히 추적하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의 󰡔대승기신론소󰡕 에서 집중하고 있는 일심의 두 가지 측면인 심진여문과 심생멸문의 구도 중 특히 심생멸문에서 보여주는 각과 불각의 내용은 일심을 지닌 인간이 어떻게 깨칠 수 있는가에 대해 촘촘한 지형으로 그려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신론소󰡕의 본각/불각/시각/시각이 곧 본각이라는 구조는 󰡔삼매경론󰡕에서는 시각/본각/불각의 구도 속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자가 본각에서 시작하여 불각을 거쳐 시각과 시각이 곧 본각이라는 구 조로 설명하고 있는 반면 후자는 시각에서 시작하여 본각을 거쳐 불각으 로 이어지는 구조로 해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우선 ‘두 가지 깨달음을 원만히 통하게 하고 보살행을 나타내는 󰡔금강삼매경󰡕의 성립 유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얼마 안 되어 왕의 부인이 머리에 악성 종기가 생겼는데 의사[醫工] 도 효험을 보이지 못하였다. 왕과 왕자와 신하들이 여러 산천의 신령한 사당에 기도를 드리려 이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떤 무당이 말하였다. “진실로 사람을 시켜 다른 나라에 보내어 약을 구해오게 하면 이 병은 나을 것입니다.” 왕은 이내 사신을 선발하여 바다를 건너 당나라에 들어 가서 그 의술을 구해오게 하였다. 그런데 남쪽 바다 가운데에서 갑자기 한 노인[一翁]이 나타나서 파도에서 뛰쳐나와 배에 올라가서 사신을 맞 이하여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궁전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보여주 고 용왕에게 알현시켰으니, 용왕의 이름은 검해(鈐海)였다. 용왕이 사신 에게 말하였다. “너희 나라 왕비는 천제의 셋째 딸이다. 우리 용궁에 예 전부터 󰡔금강삼매경󰡕이 있었는데 곧 두 가지 깨달음이 원만히 통하고[二 覺圓通] 보살행을 나타내었다[示菩薩行]. 이제 왕비의 병에 의탁하여 증 상연(增上緣)을 삼아서 이 경전을 부쳐서 저 나라에 출현시켜 유포시키고 자 할 따름이다.” 이에 삼십 장쯤 되는[三十來紙] 중첩된 흩어진 경전[中 畓散經]을 사신에게 주면서 다시 말하였다. “이 경전이 바다를 건너가는 도중에 마구니의 장난에 걸릴지도 모른다.” 용왕이 칼을 가지고 사신의 장딴지를 찍어 그 속에 넣고서 밀납 종이로 봉하여 약을 바르자 장단지 가 예전과 같았다. 용왕이 말하였다. “대안 성자(大安聖者)로 하여금 차례 를 매겨 꿰매게 하고[銓次縫綴], 원효 법사(元曉法師)를 청하여 주석을 지 어 강론하게 하면[造疏講釋之] 왕비의 병이 낫는 것은 의심할 바가 없을 것이다. 가령 설산의 아가타 약(阿伽陀藥)의 효력도 이것보다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용왕이 전송하여 해면에 나와서 드디어 배에 올라 귀국하 였다. 때마침 왕이 듣고서 기뻐하여 곧 먼저 대안 성자를 불러 차례에 따라 묶게 하였다. 대안이라는 사람은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형색과 차림새가 특이하였고 늘 저자거리에서 동으로 만든 발우를 치며 외쳤다. “크게 편안하시오. 크게 편안하시오.” 이 때문에 대안이라고 불렸다. 왕 이 대안에게 명하자 대안이 말하였다. “경전만 가져오십시오. 왕의 궁궐 에는 들어가고 쉽지 않습니다.” 대안이 경전을 얻고서 배열하여 여덟 품 을 만들자 모두 부처님의 뜻에 부합하였다. 대안이 말하였다. “빨리 원효 에게 가져다 주어 강론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은 안됩니다.”

 

원효가 이 경전을 받은 것은 바로 본래 태어난 상주(湘州, 章山, 현 慶山)에 있을 때 였다.

원효가 사신에게 말하였다.

 

“이 경전은 본각과 시각(의 두 가지 깨 달음)을 종지로 삼고 있습니다[此經以本始二覺爲宗]. 나를 위하여 소가 끄는 수레를 준비하여[爲我備角乘] 책상을 두 뿔 사이에 두고[將案几在兩 覺之間] 붓과 벼루를 비치해 주십시오[置其筆硯].” 시종 소가 끄는 수레 에서 주석을 지어 다섯 권을 만들었다. 왕이 요청하여 날을 정하여 황룡 사에게 설법하기로 하였는데, 당시에 경박한 종도가 새로 지은 주석을 훔쳐갔다.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어 사흘을 연기하여 다시 써서 세 권을 만들었으니 이것을 󰡔금강삼매경약소󰡕라 한다. 왕과 신하, 승려와 속인에 이르기까지 법당을 구름처럼 에워싸자 원효가 이에 설법하자 위의가 있 었으며, 얽힌 것을 풀어 줌에 법칙으로 삼을 만하였으니, 칭찬하고 감탄 하여 소리가 허공에 치솟았다. 원효가 다시 소리 높여 말하였다. “지난 옛날 백 개의 서까래 고를 때에는 비록 내가 그 모임에 참예하지 못했지 만, 오늘 아침 하나의 대들보를 놓는 곳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구나!” 당 시에 모든 유명한 고덕들이 얼굴을 숙여 부끄러워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 였다. 10)

 

    10) 贊寧, 「新羅國 黃龍寺沙門 元曉傳」(宋高僧傳󰡕 권제4(󰡔대정장󰡕 제50책 史傳部 2).

 

당나라의 절도사였던 조광윤(趙匡胤)이 송나라를 건국하자 고구려의 후예로 알려진 국사 찬녕(贊寧)은 어명에 의해 관찬의 󰡔송고승전󰡕(30권) 을 편찬(988)하였다.

그는 그 안에 몇몇 신라의 고승 전기를 수록하면서 「신라국 황룡사 사문 원효전」도 수록하였다.

찬녕은 「원효전」을 편찬하 면서 고려 사신들인 견송사들과 유학승 및 상인들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 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기록은 원효의 전기임에도 불구하고 여타의 전 기와 달리 주로 ‘본각과 시각을 종지로 삼고 있는’ 󰡔금강삼매경󰡕과 원효 의 󰡔금강삼매경론󰡕이 성립되는 과정에 대해 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그런데 이 「원효전」의 󰡔금강삼매경󰡕 성립 이야기는 종래 한중일 삼국 의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소홀히 취급되어 왔다.

황제의 어명(御命)에 의 해, 나라의 국사(國師)에 의해 편찬된 󰡔송고승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원효 관련 이야기와 경전의 성립 연기를 터무니없는 것으로 볼 수만은 없다.

종래에 이 경전의 성립11)과 내용12)에 대한13) 다양한 선행연구14)가 있어왔고 일부 연구에서는 확정할 수 없는 주장15)들16)을 제기해 왔다. 17)

 

      11) 󰡔金剛三昧經󰡕(󰡔대정장󰡕 제9책, pp.365하~374중). 이 경전의 이름은 양나라 僧祐 (445~518)의 󰡔出三藏記集󰡕에서 처음 거론되었다. 여기에 의하면 道安(312~385)의 󰡔新 集安公梁土異經錄󰡕 제3집에 󰡔금강삼매경󰡕 1권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승우는 󰡔금강삼매경󰡕은 양나라 시대에 번역된 것이며 역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梁代失譯]고 하고 있다. 수나라 시대에 편집된 󰡔法經錄󰡕과 󰡔彦琮錄󰡕과 󰡔歷代三寶記󰡕, 그리고 당나 라 시대의 󰡔靜泰錄󰡕과 󰡔內典錄󰡕과 󰡔大周刊定錄󰡕에는 현존하지 않는 경전이라고 적고 있다. 이후 中唐 시대의 사문 智昇은 󰡔金剛三昧經󰡕에 대해 개원 19년(730)의 󰡔開元釋敎 錄󰡕 권4의 北涼失譯部(金剛三昧經二卷或一卷)와 권12의 現存錄(金剛三昧經二卷或一 卷 北涼失譯 拾遺編入)에 2권 혹은 1권이라고 적고 있다. 智昇은 이전 경록에서 없어졌다고 적었던 󰡔금강삼매경󰡕이 새로 발견되어 拾遺經으로서 현존한다고 보아 경록에 편입한 것이다.

     12) 水野弘元, 「菩提達磨の二入四行說と金剛三昧經」, 󰡔駒澤大學硏究紀要󰡕 13, 1955, pp.33~57. 미즈노 고오겐은 이 경전에 포함되어 있는 다양한 내용들은 “남북조 시 대에서 수나라 시대에 걸쳐 중국불교에서 문제로 삼던 것들을 망라하고 있는 관점 이 있다”며 달마의 二入四行說이 󰡔금강삼매경󰡕에 근거하고 있다는 기존의 통설을 부정하고, 현장의 󰡔반야심경󰡕 번역 이후에만 나타나는 네 가지 주문인 ‘大神呪와 大明呪와 無上明呪와 無等等呪’가 이 경전에 언급되어 있다는 점과 󰡔唯識三十頌󰡕에 서 사용하고 있는 제칠식을 ‘末那’라고 적고 있다는 것에 근거하여 이 경전의 성립 은 달마대사 이후인 648년 이후에 중국에서 찬술된 것이어야 하며, 원효가 이것을 주석한 시기인 665년 전후로 보았다.

   13) 木村宣彰, 「金剛三昧經의 眞僞問題」, 󰡔佛敎史學硏究󰡕 18-2(佛敎史學會, 1976), pp.106~ 117. 기무라 센쇼는 이 경이 󰡔열반경󰡕이나 󰡔법화경󰡕 외 기타 경전을 얼마나 이용하고 있는지 얼마나 다양한 교리가 도입되어 있는지를 밝혔다. 아울러 그는 󰡔송고승전󰡕 「원효전」 및 󰡔삼국유사󰡕 「원효불기」조에 보이는 일화에 주목하여 이 경이 異說을 융합 회통하는 특색을 지닌 신라 불교계의 필요성에 근거하여 “신라의 대안이나 원효의 주변 인물에 의해서 저술되었다고 생각한다”고 적고 있다.

    14) 金煐泰, 「新羅에서 이룩된 金剛三昧經」, 󰡔불교학보󰡕 25,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1988. 필자는 이 경의 제작연도는 648년~665년 사이에 이루어졌지만 󰡔송고승전󰡕에 나타난 경 출현의 연기설화는 중국 전래가 아니라 신라에서 처음 출현한 것을 의미 하고 신라에서 유포된 사실을 설화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 경전은 신라 불교가 불교의 진수를 재결집한 진경이며, 작자는 신라 10성 중 大安·蛇福·惠空 등 복수 의 설을 취하고 있다. 대안 성자는 현행 󰡔금강삼매경󰡕의 「서품」 제1에서 「총지품」 제8에 이르기까지 제목과 차례를 정한 것으로 보았다.

    15) R.E. Buswell, The Formation of Gh’an Ideology in China and Korea ― The Vajra samadhi-Sutra, A Buddhist Apocryph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로버트 버스웰은 崔致遠이 지은 碑文에 근거하여 法朗은 선덕여왕 치세(632~646)에 道信의 문하에서 禪을 수행한 적이 있으며, 그를 중국에서 신라에 처음으로 선을 전한 신라 승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라도 법랑과 같은 경력의 승려일 것으로 보아 법랑이 󰡔금 강삼매경󰡕을 찬술한 시기는 676~685년이라고 보았다.

   16) 柳田聖山, 「金剛三昧經の硏究―中國における頓悟思想のテキスト」, 󰡔白蓮佛敎論集󰡕 3, 성철선사상연구원, 1993. 야나기다 세이잔은 미즈노 고오겐의 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현장과 자은(규기)의 유식 법상종에 대항하는 여래장계의 사람들이 있 었는데 그 하나가 해동불교로서 이들은 󰡔십지경론󰡕계의 여래장에 전도되어 있었으 며 그 중심이 원효이고 또 원효에 의하여 󰡔금강삼매경론󰡕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는 원효가 먼저 󰡔금강삼매경론󰡕을 저술하고, 여기에 대안이 여덟품으로 구성하여 󰡔금강삼매경󰡕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17) 石井公成, 「󰡔金剛三昧經の成立事情」, 󰡔印度學佛敎學硏究󰡕 46-2(일본: 인도학불교학 회, 1998), pp.551~556. 이시이 코세이는 종래의 연구사를 개관하고, 미지모토와 기 무라 이후의 근거가 부족하고 상상력에 의한 점이 많은 여러 연구자의 설을 비판했 다. 그리고 이 경전은 승려에게도 존숭된 傅大士와 같은 非僧非俗의 실천자를 이상 적인 持經者로 그리고 있기 때문에, 東山法門의 교설을 세상에 널리 전파하기 위해 작성된 선종 직계의 僞經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如來藏佛’, ‘普經 普法사상’, ‘삼계교 謀禪師→ 신라 원효 → 일본 교키’의 영향관계, ‘如來藏海’, ‘四依菩薩’, ‘形像 佛’, ‘末法思想’, ‘地藏菩薩의 높은 평가’ 등등처럼 三階敎와 관련시킨 일부 선행연구 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전거를 들어 비판하고 있으며 그의 비판은 일정한 설득력 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 전기 이외에 󰡔금강삼매경󰡕에 대한 기록이 드물고, 이 전기가 󰡔금강삼매경론󰡕의 성립 과정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 해 볼 때 우리는 이 전기의 기록을 중심으로 이 경전의 성격을 구명해 볼 수밖에 없다.

원효 당시 신라는 삼국의 쟁패를 위한 통일전쟁을 수행하면서 남북조 와 수당 시대 이래의 불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특히 인도 서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현장(602~664)의 귀국과 신역 경론의 번역은 종래의 경론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기하였다. 또 보리달마의 동류(東 流) 이래 막 번역된 교종 경론들과 편찬된 선종 어록들의 상통점과 상이 점을 비롯하여 천태 성구설과 화엄 성기설의 대립, 구역과 신역 경론 상 의 개념과 내용의 상이, 교종 강사와 선종 선사의 갈등, 출가 승려와 재가 장자의 문제 등이 제기되고 있었다.

실크로드를 통해 상인들과 견당사 및 유학승들을 통해 신속하게 불전들을 접한 신라 불교계 또한 이러한 영향권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신라는 삼국의 통합을 위해 고구려와 백제와 전쟁에 힘쓰고 있 었다.

신라 불교계는 이러한 현실을 뒷받침하면서 구역 경론을 통해 불 교를 신행하면서도 유학승들을 통해 신역 경론을 접하고 있었다. 정치계 와 불교계는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적 사상적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 해 종래의 신라 불학이 이루어낸 성취를 원용하여 새로운 경전을 편찬할 것을 요청받았다.

그 결과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에 투철한 몇몇 주역들이 종래의 교종과 선종 경론 및 새로운 신역 경론 등을 참고하여 󰡔금강삼매 경󰡕을 찬술해낸 것으로 이해된다.

원효 전기는 이 경전이 검해(창작)→대안(편집)→ 원효(주석)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원효가 활발하게 활약했던 650 년 전후의 신라의 통치자는 진덕여왕(647~653)→ 무열왕(654~660)→ 문무 왕(661~680) 대에 해당한다.

원효의 전기에 기술된 것처럼 경전 편찬의 주요 실마리가 되는 ‘왕비의 머리에 악성 종기가 생겼다’ 18)는 기록을 검 토해 보면 당시에 치유 받을 주체는 여러 정황상 무열왕의 왕비인 문명 왕후로 모아진다.

 

       18) 물론 왕비의 머리에 종기가 생겼다는 것은 중생의 머리에 갖은 분별로 인한 악성 종양의 번뇌가 생겼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출자를 살펴보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 왕→ 김세종/김무력19)→김서현(부인, 공주 萬明夫人)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진골로 편입된 금관가야계 김서현의 둘째딸이자 김유신의 둘째 여동생 이다.

또 용왕 검해(鈐海)가 누구를 상징20)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검해’라는 말이 머금고 있는 것처럼 ‘빗장 지른 바다’ 또는 ‘바다를 다스리는 이’ 혹 은 ‘바다의 달인’을 의미한다.

또한 󰡔삼국유사󰡕「의해」‘이혜동진’ 조목에 혜공(惠空)은 어릴 때 이름이 ‘우조’(憂助) 즉 ‘근심을 돕는다’는 것처럼 주 인인 천진공(天眞公)의 종기를 고쳐 목숨을 살렸다.

이처럼 그는 어릴 때 부터 종기 치료의 전문가였다.

그는 우물 속에 들어가 몇 달씩 나오지 않았으며 우물에서 나오거나 비가 와도 옷이 젖지 않고 흙도 묻지 않을 정도로 물에 대한 법력이 뛰어난 인물로 기술되어 있다.

혜공은 또 원효 와 오어사의 오어지 물고기를 건져 먹고 법력 게임을 한 이로도 널리 알 려져 있다. 21)

 

    19)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金官伽倻의 마지막 왕인 仇衡王의 아들을 金世宗(장남) 과 金武力(차남)으로 기술하고 있다. 구형왕이 신라에 투항해 신라 眞骨에 편입되 면서 그의 아들들인 세종과 무력(→金舒玄→庾信/欽純) 또한 신라 진골로서 신라 의 통일 전쟁에 참여하여 두각을 나타내었다.

   20) 불교 전통에서 󰡔반야경󰡕과 󰡔화엄경󰡕에도 龍宮將來說이 있으며, 여기서 龍은 皇帝 혹은 王을 상징하므로 ‘龍王’은 가야계 왕 혹은 왕족을 상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왕비가 가야계 후손이므로 그녀의 병을 가야계 왕 혹은 왕족이 해소시켜 주는 것을 비유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혜공이 가야계 출신이었는데 나라가 망하자 신라 귀족 집안의 파출부가 된 어머니의 아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21) 一然, 󰡔三國遺事󰡕 제4권, 「義解」, ‘二惠同塵’. 惠空은 항상 한적한 절에 있으면서 매 양 미친 듯이 술에 취하여 삼태기를 짊어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춤추었 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負簣和尙이라 하였고 그가 있는 절을 夫蓋寺라 하였다. 만년 에 恒沙寺(吾魚寺)로 옮겨 머물렀을 때 원효는 여러 불경의 疏를 짓다가 의심이 나 면 혜공에게 가서 물었는데 가끔 농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구참공 이야 기, 선덕여왕-지귀이야기, 신인종 조사 명랑이야기 등 신령한 자취가 많았다고 전한 다. 임종할 때는 공중에 높이 떠 있는 채로 입적했는데 사리가 부지기수로 많았다고 하였다.一然은 일찍이 중국 남북조시대 불학의 기반을 다진 舊三論學의 정초자 僧肇의 󰡔肇論󰡕을 보고 말하기를 “이것은 내가 옛날에 지은 것이다” 했으니 ‘僧肇法 師의 후신인 것을 알겠다’고 적고 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혜공 또한 물 혹은 바다 또는 가야계와  연관된 인물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나아가 용왕 검해를 바다 즉 용 토템을 믿는 가야계(금관가야/대가야 등)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면 이 경전은 신라계와 가야계의 연합, 즉 신라 왕실의 정계와 그 방계로 편입된 가야계의 연합에 의해 성립된 경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

가야계 ‘왕비의 병’이 상징하는 정치적 문제 즉 가야계의 골품제 편입 문제 등 신라계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 적 난제를 신라의 통치자는 불교계와 바다를 무대로 동아시아의 해상무 역을 주도했던 가야계와의 연합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은 아닐까?

그 리고 신라 왕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해(혜공)→ 대안→원효 등 에게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경전의 출현은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실현해 가는 과 정 속에서 신라계와 가야계의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계까지 끌어들이며 보다 큰 그림을 그리려 했던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전은 성골과 진골 등의 골품귀족들 출신 승려들 중심의 왕실불교 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왕실(요석공주)과 인연을 맺었던 두품사 족 출신의 원효를 매개로 하여 혜공-대안 등의 대중불교 혹은 서민불교 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만들어간 과정을 보여준다.

바로 이런 점에서 보 면 이 경전의 일련의 편찬 과정에는 혜공→대안→원효가 깊숙이 관련되 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들은 당시 동아시아의 질서 속에서 신라 정치계가 안고 있는 과제 즉 신라계와 가야계의 갈등을 원광-안함-자장 등으로 대표되는 왕실불 교와 혜공-대안-원효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불교가 연합하여 천태 성구설[空]과 화엄 성기설[有]의 대립, 구역과 신역 경론의 개념과 내용의 상이, 교종과 선종의 갈등, 출가와 재가의 역할 문제 등등을 해소하기 위 해 󰡔금강삼매경󰡕을 편찬한 것22)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금강삼매경󰡕의 편찬 과정에는 󰡔능가경󰡕, 󰡔기신론󰡕, 󰡔선문경󰡕, 󰡔법왕경󰡕23), 󰡔법구경󰡕 등이 긴밀하게 연결된 것으로 추정된다. 24)

일본의 선학자인 오키모토 가츠미는 󰡔금강삼매경󰡕과 󰡔법왕경󰡕에 각 각 한 번 사용된 ‘대승결정요의’(大乘決定了義25))라는 문자의 예는 흔히 쓰 이는 표현처럼 보이지만, 동경대의 SAT와 대만의 C-BETA 검색에 의하 면 󰡔금강삼매경󰡕, 󰡔법왕경󰡕보다 빠른 용례는 없다고 하였다.

 

      22) 박태원, 앞의 글, 앞의 책, p.363.

      23) 󰡔법왕경󰡕은 󰡔大唐內典錄󰡕(664)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고 󰡔大周刊定衆經目錄󰡕(695) 권15 ‘僞經目錄’에 󰡔法王經󰡕(T55, 473a)이라고 처음 수록되기 때문에 이 사이에 성립 되었다고 추정된다.

      24) 冲本克己, 「MNSURA ZOILI - 禪文獻の計量語彙論的硏究の試み」, 󰡔禪文化硏究紀要󰡕 19(禪文化硏究所, 1993); 冲本克己, 󰡔禪思想形性史の硏究󰡕(京都: 花園大學國際禪學 硏究所·硏究報告제5冊, 1997). 오키모토 가츠미는 컴퓨터분석을 통해 선종과 관계 가 깊은 󰡔수능엄경󰡕, 󰡔원각경󰡕, 󰡔法王經󰡕, 󰡔금강삼매경󰡕, 󰡔禪門經󰡕, 󰡔(위작)법구경󰡕, 󰡔범망경󰡕 및 그것들에 영향을 준 󰡔기신론󰡕과 󰡔능가경󰡕에서 잘 쓰인 상위 50자를 추출하여 통계적으로 검토하면서 어떤 글자가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지, 경향성에서 유사한 문헌이 어떤 것인지 조사하였다. 그 결과 󰡔기신론󰡕은 다른 텍스트와 공통성 이 많고, 󰡔능가경󰡕은 거의 완벽하게 󰡔금강삼매경󰡕, 󰡔법왕경󰡕, 󰡔법구경󰡕을 포함하고 있으며, 󰡔금강삼매경󰡕은 󰡔기신론󰡕과 비슷한 수치를 보이지만 󰡔법왕경󰡕과 다르고, 󰡔법왕경󰡕은 󰡔금강삼매경󰡕과 유사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를 도출했다. 이 결과로 보 아 󰡔금강삼매경󰡕 편찬시에 󰡔법왕경󰡕을 참고했거나 󰡔법왕경󰡕을 편찬시에 󰡔금감삼매 경󰡕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石井公成, 「금강삼매경의 성립사 정」, 󰡔원효, 문헌과 사상의 신지평󰡕(서울: 동국대출판부, 2020), pp.92~100 참조.

       25) 󰡔金剛三昧經󰡕 권하(󰡔대정장󰡕 제9책, p.10상). 󰡔경󰡕에서는 ‘大乘決定了義’의 용어를 쓰고 있다. 현존 편집본 󰡔금강삼매경론󰡕(󰡔대정장󰡕 제34책, p.1006중하)에서도 󰡔경󰡕 에서는 ‘大乘決定了義’, 󰡔론󰡕에서는 ‘決定了義’의 용어를 쓰고 있다. 하지만 오키모 토 기츠미는 이것을 구분하지 않고 컴퓨터 분석에만 단순히 의존하다 보니 편집된 󰡔금강삼매경론󰡕의 ‘대승결정요의’를 󰡔법왕경󰡕이 빌렸다고 오해하고 있다. 

 

또 󰡔금강삼 매경󰡕에는 이 표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법왕경󰡕은 󰡔금강삼매경󰡕이 아니라 󰡔금강삼매경론󰡕으로부터 표현을 빌렸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럴 경 우 󰡔법왕경󰡕, 󰡔금강삼매경󰡕, 󰡔금강삼매경론󰡕의 전후 관계가 문제가 된 다26)고 하였다.

 

    26) 石井公成, 위의 글, 위의 책, p.95 참조. 

 

그런데 오키모토의 주장과 달리 ‘대승결정요의’란 용어는 󰡔금강삼매 경󰡕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금강삼매경론󰡕에서는 ‘결정요의’를 쓰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법왕경󰡕이 󰡔금강삼매경󰡕의 ‘대승결정요의’를 빌렸을 지언정 󰡔금강삼매경론󰡕의 ‘결정요의’에서 표현을 빌렸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여튼 󰡔금강삼매경󰡕과 󰡔법왕경󰡕은 경전의 성립사에서 볼 때 긴 밀한 관계 속에 있는 경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금강삼매경󰡕은 󰡔대승기신론󰡕 이외에 처음으로 ‘본각’이란 말을 사용한 문헌이라는 점에 서 󰡔대승기신론󰡕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원효의 주석에서는 ‘본각’과 ‘일심’으로 대표되는 이들 󰡔경󰡕과 󰡔론󰡕 사이의 영향 이 잘 드러나 있다.

 

2.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의 상관성

 

원효는 많은 저술 중 󰡔대승기신론󰡕과 󰡔금강삼매경󰡕을 통해 자신의 사 상을 집대성하고 있다.

그는 마명보살이 지었다는 󰡔대승기신론󰡕의 일심이문(心眞如門/心生滅門)-삼대-사신-오행-육자법문의 구조 아래 심진여 문의 의언진여(여실공/여실불공, 始覺)와 이언진여(不覺) 및 심생멸문의 각 과 불각의 구조를 원용하여 깨침 혹은 깨달음의 내용과 방법을 촘촘하게 구명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검해 용왕이 소개한 󰡔금강삼매경󰡕은 반야 중관의 이제설과 유가 유식 삼성설의 일미적 통섭의 기획 아래 일미관행과 육자법문으로 경의 종지를 밝힌 뒤 별도로 관행(觀行)을 드러내고 통틀어 의정(疑情)을 물리치고 있다.

특히 원효는 󰡔기신론󰡕의 본각/불각/시각/시각이 곧 본각이라는 구조 를 원용하여 이론적 체계를 굳건히 한 뒤 󰡔삼매경󰡕의 시각/본각/불각의 구조를 원용하여 실천적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구도는 그 가 󰡔기신론소󰡕에서 보여준 ‘상홍불법 하화중생’의 방향과 󰡔삼매경론󰡕에서 보여준 ‘귀일심원 요익중생’ 혹은 ‘일심지원 삼공지해’의 방향에 잘 부합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원효에게 있어 󰡔기신론󰡕과 󰡔삼매경󰡕의 지위와 위 상은 󰡔기신론소󰡕와 󰡔삼매경론󰡕의 주석을 통해 더욱더 구체화되고 있으며 그의 사상은 굳건하게 체계화되고 있다.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의 동일한 사상적 지향점들에 대해 박태원은 크게 세 가지로 대별하고 있다.

  첫째는 공(空)의 철학인 중관(中 觀)과 마음의 철학인 유식(唯識)의 상이한 개성들을 통섭적으로 화쟁하려 는 것이고,

  둘째는 구세(救世)의 실천이 강조되는 대승선(大乘禪) 사상의 천명이며,

  셋째는 대중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진속불이(眞俗不二)의 원융(圓融)불교를 천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 지향을 펼쳐내는 근본 원리는 ‘본각/시각을 중심으로 하는 깨달음(覺)사상’이다. 27)

 

    27)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과 원효사상(I)/(II), 󰡔원효학연구󰡕 제5집/제 6집, 원효학회/원효학연구원, 2000.2001, p.362/p.300.

 

이러한 분류 와 원리는 이 경전의 편찬 목적과 구성 내용으로 볼 때 타당한 지적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전의 목적과 내용에서 논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중관학 의 이제설과 유식학의 삼성설의 일미적 통섭이다.

정설분의 6품 구조(觀 行의 別顯)와 제7 총지품(疑情의 總遣)의 편입을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경전은 반야 중관의 이제설과 유가 유식의 삼성설을 일미적으로 통섭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붓다가 대력보살에게 삼공을 밝히는 대목에 대해 원효는 ‘공상도 공한 것’이며(진짜금을 버려 장엄구를 만드는 것), ‘공공도 공한 것’이며(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항아리를 만드는 것), ‘소공도 공 한 것’(이제를 녹여 일법계/일심을 나타낸 것)이다고 설하고 있다.

이 ‘삼공 이제’를 원효의 삶에 배대하면 그는 속제 가운데에서 진제를 깨쳐 다시 속제로 돌아왔고, 다시 돌아온 속제중도의 삶을 또다시 진제중도의 삶으 로 이끌어나갔다.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귀일심원’은 진제중도에 상응하 고, ‘요익중생’은 속제중도에 상응한다.

그리고 그는 무이중도의 삶을 제 시하여 붓다의 삶을 사는 길을 열어보였다.

원효는 처음 공의 문 안에서 버린 ‘속제’의 소집상(所執相, 변계소집성) 과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녹인 ‘속제’인 의타상(依他相, 의타기성), 처음 문 안에서 속제를 버려 나타난 진제(遣俗所顯之眞, 속제중도)와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속제를 녹여 나타난 진제(融俗所顯之眞, 진제중도)를 오직 하 나이자 둘이 없는 원성실성(唯一無二, 圓成實性)이라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 공은 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며,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무 이중도의 삶으로 보았다.

 

         三空二諦                                                          俗諦(遣俗諦) 眞諦(融俗諦, 空相)

                                                                                     (소집상)  (시각의 원성실성)

 1. 空相亦空: 진짜금을 버려 장엄구를 만드는 것          俗諦中道 (遣俗所顯之眞)

                                                                                      (의타상)

 2. 空空亦空: 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항아리를 만드는 것 眞諦中道 (融俗所顯之眞)

                                                                                    (본각의 원성실성)

 3. 所空亦空: 이제를 녹여 일법계/일심을 나타낸 것        無二中道 (非眞非俗無邊無中)

 

이처럼 원효는 ‘속제’(변계소집성)와 ‘진제’(空相, 시각의 원성실성)의 이 제 구도에 다시 ‘속제중도’(空相亦空, 의타기성)와 ‘진제중도’(空空亦空, 본각 의 원성실성)를 시설하고 여기서 다시 나아가 비진비속무변무중(所空亦空, 非眞非俗無邊無中)의 중도의인 ‘무이중도’로 나아가는 과정을 열어보였다.

그가 속제의 소집상과 진제의 (시각의) 원성실성, 속제중도의 의타기성, 진제중도의 (본각의) 원성실성, 속제중도와 진제중도가 둘이 아닌 비진비 속의 무이중도를 배대하고 있는 점28)은 주목되고 있다. 29)

 

    28)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83하).

    29) 김영미, 앞의 논문, pp.270~274 참조

 

이것은 원효가 선(禪)사상을 각(覺)사상 내지 삼매(三昧)사상으로 종 합하는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금강삼매경󰡕의 성격을 ‘깨뜨리 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금강삼매(金剛三昧)’라고 하고, ‘세우지 않는 것 이 없기 때문에 섭대승경(攝大乘經)’이라 하고, ‘모든 뜻의 종지가 이 둘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무량의경(無量義經)’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원효가 이 경전을 유식사상에 상응하는 ‘섭대승경’이 아니라 반야사상에 상응하 는 ‘금강삼매’로 규정한 것은 이 경전이 지니고 있는 복합성 때문이다.

그러면서 원효는 “우선 하나의 제목을 들어서 머리에 나타냈기 때문 에 금강삼매경”이라 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그는 이 경전의 이름인 ‘금 강’과 ‘삼매’의 의미를 해석하고 구분하면서 삼매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원효가 경 이름인 금강과 삼매의 해석에 집중한 것은 이 경전의 성격을 대승선(大乘禪)을 담고 있는 경전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이 경전의 편찬 목적과 과정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풀 이했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 정설분 전6품 및 제7 총지품의 有機性

 

1. 금강과 삼매의 정의와 상호 관계

 

원효는 경명인 ‘금강삼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통해 금강과 삼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이 경전이 속제와 진제의 이제 설을 기반으로 한 반야 공관을 지닌 경전으로 파악하고 소집상과 의타상 과 원성실성의 삼성설을 기반으로 하는 삼성관을 통해 해명하는 대목에 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속제(소집상)→ 진제(空相, 본각의 원 성실성)→ 속제중도(空相亦空, 의타상)→ 진제중도(空空亦空, 본각의 원성실 성)→ 무이중도(所空亦空)로 이어지는 ‘비껴가는 논법’ 30)을 통해 이 경의 의미와 가치를 극대화시켜 내고 있다.

 

     30) 김영미, 앞의 글, 앞의 책. 그는 이것을 ‘비껴가는 논법’이라고 명명하였다. 

 

원효는 대승 선관을 담고 있는 이 경전이 중관의 이제설과 유식의 삼성설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잘 보여주는 경전으로 파악하였다. 경전의 이름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금강’의 성질을 비유로 삼아 모든 ‘의혹’을 깨뜨리고, 모든 ‘선정’을 꿰뚫고자 하는 ‘삼매’로 일미관행을 실천해 나가 는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금강’이란 비유하여 일컫는 말이니, 굳건함과 단단함을 체성으로 삼 고, 꿰뚫음과 깨뜨림을 공능으로 한다.

‘금강삼매’도 또한 그러하여 실제 를 체성으로 삼고, 깨뜨리고 뚫는 것으로 공능을 삼는 것임을 알아야 한 다.

‘실지와 형편을 체성으로 삼는다’는 것은 이치를 증득하고 근원을 궁 구하기 때문이니, 아래의 글에서 ‘법을 증득하는 진실한 정(定)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깨뜨리고 뚫는 것으로 공능을 삼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뜻이 있다.

  첫째는 모든 의혹을 깨뜨리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선정을 뚫 는 것이다.

‘모든 의혹을 깨뜨린다’는 것은 설명을 제시하여 의심을 끊기 때문이니, 아래의 글에서 결정코 의혹과 후회를 끊는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모든 선정을 뚫는다’는 것은 이 선정이 모든 다른 삼매로 하여금 유용하게 하는 것이 마치 보배구슬을 뚫어 유용하게 하는 것과 같기 때 문이다. 31)

 

여기서 금강이 굳건함과 단단함을 체성으로 한다는 것이 반야 중관의 측면이라면, 꿰뚫음과 깨뜨림을 공능으로 한다는 측면은 유가 유식의 측 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금강삼매의 ‘모든 의혹을 깨뜨리고’, ‘모든 선정을 뚫는다’는 두 가지 공능은 정설분의 구조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6품에 서 ‘관행을 별도로 드러내는 것’은 모든 선정을 뚫기 위한 것이며, 제7 총지품에서 ‘의정(疑情)을 통틀어 버리는 것’은 모든 의혹을 깨뜨리기 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관행을 별도로 드러내는 6품만 주목할 것이 아니라 의정을 통틀어 버리는 제7 총지품도 함께 주목해야 한다.

관행을 별도로 드러내야 의정을 낱낱이 버릴 수 있으며, 의정을 통틀어 버려내야 관행을 통틀어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저 ‘삼매’라는 명칭은 번역하면 정사(正思)라고 한다는 옛 논사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사’에 대해 “정에 있을 때에 반연하는 경계에 대하여 자세 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또 󰡔유가사지론󰡕에 의거하여 “삼마지(三摩地)란 반연하는 대상에 대하여 자세하고 바르게 관 찰하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하였다.” 32)

 

    31)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32)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원효는 ‘정’이란 고요함으로써, 하나의 경계에 고요히 머무는 것인데, 어째서 자세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살핀다고 말하고, 생각하고 살피는 작 용이 심사(尋伺)인데 어째서 정을 생각하고 살피는 것[審正思察]이라고 말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만일 하나의 경계를 지키는 것을 곧 정(定)이라고 한다면 혼침한 상태 로 경계에 머무는 것도 곧 정이어야 할 것이다.

만일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正思察]을 심사(尋伺)라고 한다면 그른 지혜로 추구하는 것은 심사가 아니어야 할 것이다. 33)

또 원효는 ‘심사’(尋伺) 즉 ‘바르게 생각하고 촘촘히 살피는 것’에 두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답한다.

만일 그르거나 바른 것에 다 통하는 의언분별(意言分別)을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고 한다면, 곧 이것은 심사(尋伺)로서 다만 분별하는 것이 다. 만일 오직 반연하는 경계를 자세하고 바르게 분명히 아는 것만을 바 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고 한다면 바르다는 것(正)은 정(定)의 작용 이니 심사가 아니다.

정(定)은 분별과 무분별에 다 통하는데, 자세하고 바르다는 점에서 저 심사와 구분된다. 34)

 

     33)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34)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또 하나의 경계에 머무는 것에도 두 가지가 있다. 만일 하나의 경계 에 머무는데도 혼미하고 어두워 자세히 살필 수 없다면 곧 이것은 혼침 (惛沉)이며, 만일 하나의 경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가라앉지도 들뜨지도 아니하여 자세하고 바르게 생각하고 살핀다면[審正思察] 이것은 정(定)이 니, 생각하고 살피는 것으로써 저 혼침과 구별된다.

그러므로 머무는 것 과 옮겨 다니는 것으로써 정(定)과 산란함[散]의 차별되는 상을 구별하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어째서인가?

빠르게 하는 변설은 비록 속히 옮겨지더라도 정이 있기 때문이고, 느리고 둔한 생각은 오래 경계에 머물 더라도 이것은 산란함이기 때문이다. 35)

이제 이 금강삼매를 바르게 생각하고 살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여 기에 바름도 바르지 않음도 없고, 생각함도 생각하지 아닌 것도 없으나, 다만 분별하는 잘못된 생각과 구별하기 위한 것이며, 또 허공이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과도 같지 않기 때문에 억지로 정사(正思)라고 이름한 것 일 뿐이다. 36)

 

    35)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36)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

 

이렇게 금강의 정의와 삼매의 정의에 대해 설명한 원효는 다시 ‘삼매’ 즉 정(定)이 지닌 삼마희다, 삼마지, 삼마발제, 타연나, 사마타, 심일경성, 정, 정사의 여덟 가지의 명칭을 해석해 나간다.

정(定)이라는 명칭에는 대략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삼마희다(三摩 呬多)라 하니 번역하면 등인이다.

혼침(惛沉)과 도거(掉擧)의 편벽됨을 멀 리 떠났기 때문에 ‘등’(等)이라고 하며, 신통력 등의 여러 가지 공덕을 끌 어내기 때문에 ‘인’(引)이라고 한다.

또 이 등인은 무회환희(無悔歡喜)와 안락이 이끄는 것이기 때문에 등인(等引)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욕계의 정과는 같지 않다.

둘째는 삼마지(三摩地)라고 하니 번역하면 등지(等持) 다.

‘등’의 뜻은 앞서와 같으니, 마음을 잘 제어하고 간직하여 치달리거나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고 한다.

또한 정과 혜가 평등하여 서로 떨어지지 않게 하기 때문에 등지라고 한다.

예전에는 삼마제(三摩 提)라고 하였는데 이 또한 곧 등지(等持)다. 셋째는 삼마발제(三摩鉢提)라 고 하니 번역하면 등지(等至)라고 한다.

등지(等持)하는 가운데 수승한 지 위를 이를 수 있기 때문에 등지(等至)라고 하는 것이다.

넷째는 타연나(馱 演那)라고 하니 번역하면 정려(精慮)다.

이것은 매우 고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며, 또 산란한 생각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선 나 혹은 지아나라고 했으니 지방에 따라 말을 달리하나 똑같이 정려를 이르는 것이다.

다섯째는 사마타(奢摩他)라고 하니 번역하면 지(止)다.

마 음으로 하여금 경계를 그치게 하기 때문에 ‘지’(止)라고 하는 것이다.

여 섯째는 심일경성(心一境性)이라고 한다.

마음으로 하여금 경계에 전일하 게 하는 성품이므로 심일경성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일심(一心)이라고 한 것은 간략하게 말한 것이다.

일곱째는 정(定)이라고 하니 반연하는 대상 을 살펴 정하기 때문에 정(定)이라고 한다.

여덟째는 정사(正思)라고 하니 그 뜻은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37)

 

     37)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62중하)

 

원효는 금강과 삼매의 정의와 삼매의 종류와 공능에 대한 설명을 통 하여 이 경의 편찬 목적과 구성 내용 방향을 대승선경으로 규정하고 있 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삼매에 대한 자세한 해명은 이 경의 제목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경의 특징을 ‘삼매’(三昧) 즉 ‘정’(定)에 두고자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은 ‘선’(禪)과 ‘각’(覺)과 긴밀 하게 상통한다.

그러면 이 경전의 본문에 해당하는 정설분의 구조에 대 해 살펴보기로 하자.

 

2. 정설분 6품의 구조와 풀이 및 총지품-관행의 별현과 의심의 총견

 

이 경전은 전 3권 8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1에는 대의의 서술, 경의 종지의 설명, 제목의 해석, 글의 뜻 풀이의 분과와 서분 및 정설분의 「무 상법품」까지, 권2에는 「무생행품」 「본각리품」, 「일실제품」, 권3에는 「진 성공품」, 「여래장품」과 「총지품」 및 유통분을 배대하고 있다. 이 중에서 도 정설분은 관행을 별도로 나타내는 부분과 의심을 총괄해 버림으로 구 성하고 있다.

‘관행을 별도로 나타냄’에는 상이 없는 관을 밝히는 「무상법품」, 일어 남이 없는 행위를 나타내는 「무생행품」,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본각리품」,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입실제품」, 일체의 행 위가 진성의 공에서 나옴을 분별하는 「진성공품」, 한량없는 문이 여래장 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여래장품」의 6품과 ‘의심을 총괄해 버림’에는 「총 지품」을 배대하고 있다

이 경전의 편찬 목적과 편집자의 구성 체계에 대해 원효는 ‘망상의 흐름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모든 상을 깨뜨려 없애는 데에 겨냥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 여섯 가지 품으로 관행을 두루 펼치니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모 든 망상(妄想)이 무시로부터 흘러 다니게 된 것은 다만 상(相)을 집착하여 분별하는 병 때문이다.

이제 그 흐름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려 면 먼저 모든 상을 깨뜨려야 한다. 38)

 

   38)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如是六門, 觀行周盡, 所以然 者. 凡諸妄想, 無始流轉, 只由取相分別之患, 今欲反流歸源, 先須破見諸相.”

 

원효는 중생들이 형상(形相)에 집착하여 분별하는 병을 깨뜨리기 위 해 힘쓰고 있다.

이것은 아비달마적 실체론에 붙들려 있는 이들을 위한 경계로 읽을 수 있다.

그는 이 경전의 정설분을 크게

  1) 각 1품씩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가지,

  2) 2품으로 묶어 3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가 지,

  3) 3품으로 묶어 2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가지,

  4) 총괄(總括)하 여 일미(一味) 하나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의 7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그 러면서 원효는 6품의 유기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일미로 해석하는 마지막 의 총괄 유형은 6품 해석에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까 원효는 6종의 6품을 각기 두 겹의 체계로 파악하고 있다.

이것은 실체론을 벗어나게 하려는 중관적 이제론으로 이해되며 동시에 비실체론에도 붙들리지 않게 하려는 유식적 삼성론으로 이해된다.

6품 각각의 두 겹은 ‘깨뜨리지 않음이 없는’[無所不破]의 금강삼매와 ‘드세우 지 않음이 없는’[無所不立] 섭대승경의 구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금강삼매의 중관적 특성과 섭대승경의 유식적 특성을 아울러 마지막 7번 째의 총괄 유형인 일미(一味)의 무량의경으로 통섭하고 있다.

 

가. 각1품씩 6품을 풀이하는 구조 1 ― 유식적 삼성론의 체계

 

<도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효는 ‘명무상관’(明無相觀) 즉 ‘상이 없 는 관을 밝히는’ 「무상법품」을 시설한 이유에 대해 ‘상을 집착하여 분별 하는 병’ 때문이라 해명하고 있다.

모든 망상이 무시로부터 흘러 다니게 된 것은 다만 상을 집착하여 분별하는 병 때문이다.

이제 그 흐름을 돌이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려 면 먼저 모든 상을 깨뜨려 없애야 하니, 이 때문에 처음에 무상법을 관찰 해야 하는 법을 밝혔다. 39) 

‘상이 없는 관을 밝히는 「무상법품」을 해탈보살이 설한 이유에 대해 원효는 ‘현무생행’(顯無生行) 즉 ‘일어남이 없는 행위를 나타내는’ 「무생행 품」을 설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비록 모든 상을 없애버렸더라도 관찰하는 마음이 남아 있다면, 관찰 하는 마음이 오히려 일어나서 본각에 부합되지 못하므로 일어나는 마음 을 없애야 하니, 이 때문에 두 번째로 무생행을 나타내었다. 40)

‘일어남이 없는 행위를 나타내는 「무생행품」에서 심왕보살이 등장한 이유에 대해 원효는 ‘의본리물’(依本利物) 즉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 게 하는’ 「본각리품」을 설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행위가 이미 일어남이 없어서 이제 본각에 부합하며, 이것에 의하여 중생을 교화하여 본각의 이익을 얻게 하니 따라서 세 번째로 본각의 이 익 문을 나타내었다. 41)

 

    39)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凡諸望想, 無始流轉, 只由取 相分別之患, 今欲反流歸源, 先須破見諸相.”

    40)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誰遣諸相, 若存觀心, 觀心猶 生, 不會本覺, 故泯生心, 所以第二, 顯無生行.”

    41)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行旣無生, 方會本覺, 依此化 物, 令得本利, 故第三明本覺利門.”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본각리품」에서 무주보살이 설한 이유에 대해 원효는 ‘종허입실’(從虛入實) 즉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 는’ 「입실제품」을 설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만일 본각에 의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면 중생이 곧 허상으로부터 실 제에 들어갈 수 있으니, 이 때문에 네 번째로 실제에 들어감을 밝혔다. 42)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입실제품」에서 대력보살이 설한 이 유에 대해 원효는 ‘변일체행(辨一切行) 출진성공(出眞性空)’ 즉 ‘일체의 행 위가 진성의 공에서 나옴을 분별하는’ 「진성공품」을 시설하기 위해서라 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안의 수행과 밖의 교화를 대비하여 참된 자성으 로부터 나와서 모두 진성의 공을 따르는 길로 이끌고 있다.

안으로의 수행은 곧 모양이 없고 일어남이 없으며, 밖으로의 교화는 곧 본각의 이익으로 실제에 들어가게 하니, 이러한 두 가지 이익으로 만 가지 행위를 구비하되 똑같이 참된 자성으로부터 나와서 모두 진성의 공 을 따르니, 이 때문에 다섯 번째로 진성의 공을 밝혔다. 43)

‘일체의 행위가 진성의 공에서 나옴을 분별하는’ 「진성공품」에서 사리 불이 설한 이유에 대해 원효는 ‘현무량문(顯無量門) 입여래장(入如來藏)’ 즉 ‘한량없는 문이 여래장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여래장품」을 설하기 위 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 진성에 의하여 만 가지 행이 곧 갖추어져서 여래장 일미의 근원에 들어가니, 이 때문에 여섯 번째로 여래장을 나타내었다. 44)

 

    42)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若依本覺, 以利衆生, 衆生卽 能從虛入實, 所以第四明入實際.”

   43)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內行卽無相無生, 外化卽本 利入實, 如是二利, 以具萬行, 同出眞性, 皆順眞空, 是故第五明眞性空.”

   44)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依此眞性, 萬行斯備, 入如來 藏一味之源, 所以第六顯如來藏.”

 

‘한량없는 문이 여래장에 들어감을 나타내는’ 「여래장품」에서 범행장 자가 설한 이유에 대해 원효는 육품을 각기 풀이하는 구조를 시설한 것 은 마음에 근원에 돌아가는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이미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면 곧 작위함이 없으며, 작위함이 없기 때 문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따라서 육문을 설함으로써 대승을 포섭한 것이다. 45)

 

    45)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8하). “旣歸心源, 卽無所爲, 無所爲 故, 無所不爲, 故說六門, 以攝大乘.” 

 

작위함이 없기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기에 이 때문에 육문을 설 함으로써 대승을 포섭하려 하였다.

대승을 포섭하려 하는 것은 이 경전 을 ‘섭대승경’의 유식적 삼성론으로 보는 관점과 상통한다.

이렇게 원효 는 6품 각1품을 풀이하는 구조를 시설한 뒤에 다른 구조로 다시 6품 각1 품을 다른 뜻으로[異意] 풀이하는 유형을 시설하고 있다

 

나. 각1품씩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 ― 중관적 이제론의 체계

 

<도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효가 앞의 6품 풀이와 다른 뜻[異意] 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는 아래와 같다.

이것은 대승을 포섭하는 위의 ‘섭대승경’의 유식적 삼성론 체계와 다른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또 이 육품에는 다른 뜻이 있다.

초품은 관찰의 대상인 법을 제시하 였으니, 법은 일심으로서 여래장의 본체를 말한다.

제이 품은 관찰의 주 체인 행위를 밝혔으니, 행위란 육행으로서 분별함이 없는 관찰을 말한다. 

세 번 째의 「본각리품」은 일심 속의 생멸문을 나타냈고, 네 번째의 「입실 제품」은 일심 속의 진여문을 나타낸다.

다섯 번째의 「진성공품」은 진여 와 세속을 다 버렸으나 진제와 속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여섯 번째의 「여래장품」은 모든 문을 두루 거두어 똑같이 일미임을 보인다. 46)

 

    46)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此六品, 亦有異意. 謂初品 示所觀之法, 法謂一心如來藏體. 第二品明能觀之行, 行謂六行無分別觀 第三本覺利 品, 顯一心中之生滅門, 第四入實際品, 顯一心中之眞如門. 第五眞性空品, 雙遣眞俗, 不壞二諦. 第六如來藏品, 遍修諸門, 同時一味, 以此二重六門, 攝大乘義周盡.”

 

원효가 풀이한 위의 내용을 각 품별로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하자. 초 품 「무상법품」에서 원효는 ‘관무상법’(觀無相法) 즉 ‘상이 없는 관을 밝히 는 것’을 ‘소관지법’(所觀之法) 즉 ‘관찰의 대상인 법을 제시’하였으니 ‘법 은 일심으로서 여래장 본체를 말하는’(法謂一心如來藏體) 것으로 풀이하 고 있다.

제이품 「무생행품」에서 그는 ‘현무생행’(顯無生行) 즉 ‘일어남이 없는 행위를 밝히는 것’을 ‘능관지행’(能觀之行) 즉 ‘관찰의 주체인 행위’를 밝혔 으니 ‘행위란 육행으로서 분별함이 없는 관을 말하는’(行謂六行無分別觀) 것으로 해명하고 있다.

원효는 제삼품 「본각리품」에서 ‘본각리품’(本覺利品) 즉 ‘본각에 의하 여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을 ‘일심 속의 생멸문을 나타내는’(一心中之生滅 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귀일심원 요익중생’ 중에서 ‘요익중생’ 에 해당된다.

제사품 「입실제품」에서 그는 ‘명입실제’(明入實際) 즉 ‘허상으로부터 실제에 들어가는 것’을 ‘일심 속의 진여문을 나타내는’(一心中之眞如門) 것 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것은 ‘귀일심원 요익중생’ 중에서 ‘귀일심원’에 해 당된다.

원효는 제오품 「진성공품」에서 ‘명진성공’(明眞性空) 즉 ‘진성의 공에 서 나옴을 밝히는 것’을 ‘진여와 세속을 모두 버렸으나(雙遣眞俗) 이제는 무너뜨리지 않았다’(不壞二諦)고 해명하고 있다.

제육품 「여래장품」에서 그는 ‘현여래장’(顯如來藏) 즉 ‘헬 수 없는 문이 여래장에 들어감’을 ‘모든 문을 두루 거두어[遍收諸門] 동시에 똑같이 일 미임을 보이는’[同示一味]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원효는 이 경전을 주석하면서 중관의 이제도리와 유식의 삼성설을 원 용하여 속제(변계소집성)-진제(시각의 원성실성)-속제중도(의타기성)-진 제중도(본각의 원성실성)-무이중도의 다섯 단계의 과정을 시설하고 있으 며, 무이중도를 드러내기 위해 중관의 이제설에 유식의 삼성설을 원용하 고 있다.

이 대목에서도 원효는 6품을 각1품씩 풀이하는 구조를 두 겹으로 중 관과 유식의 체계 속에서 해명함으로써 논의를 보다 중층적으로 세분화 하고 있다.

 

다. 2품씩 3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1 ― 중관적 이제론의 체계

 

<도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효는 6품을 2품씩 3문으로 다시 풀이 하고 있다. 또한 이 육품을 합하여 세 문이 되니, 앞의 두 품은 관행의 처음과 나중을 모두 포괄하였고, 다음 두 품은 교화의 근본과 지말이며, 나중의 두 문은 원인을 거두어 결과를 이루었다. 47)

 

   47)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此六品, 合爲三門, 前二品, 攝觀行始終, 此二品者, 敎化本末, 其後二門, 攝因成果.”

 

원효는 ‘관행시종’(觀行始終) 즉 ‘관행의 처음과 나중을 모두 포괄하는’ 「무상법품」과 「무생행품」, ‘교화본말’(敎化本末) 즉 ‘교화의 근본과 지말을 포괄하는’ 「본각리품」과 「입실제품」, ‘섭인성과’(攝因成果) 즉 ‘원인을 거두 어 결과를 이루는’ 「진성공품」과 「여래장품」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렇게 시종, 본말, 인과의 범주로 분류한 원효는 또 다른 하나의 겹으로 6품을 2품씩 3문으로 풀이하는 구조를 시설하였다

 

라. 2품씩 3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 ― 유식적 삼성론의 체계

 

<도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효는 6품을 2품씩 3문으로 거듭 풀이 하고 있다.

또한 앞의 두 품은 상을 버리고 근본에 돌아가는 것이고, 중간의 두 품은 근본으로부터 행위를 일으키는 것이며, 나중의 두 품은 (근본으로) 돌아감과 (근본으로부터) 일어남을 모두 나타내었다. 48)

 

  48)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前二品, 遣相歸本, 中間二 品, 從本起行, 後二品者, 雙顯歸起.”

 

원효는 ‘견상귀본’(遣相歸本) 즉 ‘망상을 버리고 근본으로 돌아가는’ 「무 상법품」과 「무생행품」, ‘종본기행’(從本起行) 즉 ‘근본으로부터 행위를 일으 키는’ 「본각리품」과 「입실제품」, ‘쌍현귀기’(雙顯歸起) 즉 ‘근본으로 돌아감 과 근본으로부터 일어남을 모두 나타내는’ 「진성공품」과 「여래장품」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에 대해 원효는 6품을 “이 두 종류의 세 문으로 대승을  모두 포괄하였다” 49)고 정리하고 있다.

 

    49)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以此二三, 攝大乘盡.” 

 

이것 또한 대승을 포괄하고 있다 는 점에서 ‘섭대승경’의 유식적 삼성론으로 보는 관점이다.

살펴본 것처 럼 원효는 6품을 각1품씩 풀이하는 구조를 두 겹으로 해명함으로써 논의 를 보다 중층적으로 세분화하고 있다.

 

마. 3품씩 2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1 ― 중관적 이제론의 체계

 

<도표 1>에서 보이는 것처럼 원효는 다시 6품을 3품씩 2문으로 다시 풀이하고 있다.

또한 이 육품은 단지 두 문일 뿐이니, 상과 생을 모두 없애는 것은 본각의 이익이고, 실제와 진공은 여래장이다. 50)

 

    50)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此六品, 只是二門. 相生都 泯, 是本覺利. 實際眞空, 是如來藏.”

 

원효는 ‘상생도민’(相生都泯) 즉 ‘상과 생을 모두 없애는’ 「무상법품」과 「무생행품」은 「본각리품」의 ‘시본각리’(是本覺利) 즉 ‘본각의 이익이고’, ‘실제진공’ 즉 ‘실제와 진공’(實際眞空)의 「입실제품」과 「진성공품」은 「여 래장품」의 ‘시여래장’ 즉 ‘여래장이다’(是如來藏)로 분류하고 있다.

이것은 6품 중 전반부의 마지막인 「본각리품」과 후반부의 마지막인 「여래장품」 을 중심으로 포섭하는 부분이다.

 

바. 3품씩 2문으로 6품을 풀이하는 구조 2 ― 유식적 삼성론의 체계

 

또한 앞의 문은 허망함을 버리어 원인을 드러내는 것이고, 뒤의 문은  참됨을 드러내어 결과를 이룬 것이다. 51

 

원효는 ‘견망현인’(遣妄顯因) 즉 ‘허망함을 버리어 원인을 드러내는’ 「무 상법품」과 「무생행품」과 「본각리품」, ‘현진성과’(顯眞成果) 즉 ‘참됨을 드러 내어 결과를 이루는’ 「입실제품」과 「진성공품」과 「여래장품」으로 분류하 고 있다. 이러한 분류에 대해 원효는 “이러한 두 가지의 이문으로 또한 대승을 모두 포괄하였다” 52)고 매듭짓고 있다.

대승을 모두 포괄하였다는 이것 또한 이 경전을 ‘섭대승경’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렇게 6품을 각기 3가지 구조의 6가지 유형으로 구분한 원효는 마지 막으로 이들 6가지 구조와 다른 또 하나의 구조에 대해 정리하고 있다.

또한 이 육품은 모두 일미(一味)다. 왜냐하면 상과 생은 자성이 없고, 본각은 근본이 없으며, 실제는 한계를 떠난 것이고, 진성 또한 공한 것이 니, 무엇을 연유하여 여래장의 자성이 있겠는가?

이것은 아래의 「여래장 품」 중에서 ‘이 식은 항상 적멸하며, 적멸한 것도 또한 적멸하다’고 말하 고, 「총지품」에서 ‘칠식과 오식이 생기지 아니하며, 팔식과 육식이 적멸 하여 구상이 공허하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얻을 것이 없는 일미 가 바로 이 경의 종요다.

그러나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한량없는 뜻을 짓는 종지가 되는 것이다.

비록 일미이지만 여섯 가지 문을 전개하기 때 문에 여섯 가지 부분에 의하여 글을 나누어 풀이하였다. 53)

 

   51)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前門者, 遣妄顯因. 其後門 者, 顯眞成果.”

   52)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如是二二之門, 亦攝大乘周盡.” 

   53)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9상). “又此六品, 唯是一味. 所以然 者, 相生無性, 本覺無本, 實際離諦, 眞性亦空, 何由得有如來藏性. 如下如來藏品中 言, ‘是識常寂滅, 寂滅亦寂滅’. 總持品言, ‘七五不生, 八六寂滅, 九相空無.’ 如是無所 得之一味, 正爲此經之宗之要. 但以無所得, 故無所不得. 所以諸門無所不開, 故作無 量義之宗也. 雖是一味而開六門, 故依六分科文而釋.”

 

원효가 정설분의 6품과 제7품 총지품을 풀이하는 구조 중 특히 6품의 구조를 촘촘히 구분한 이유는 이 경전이 지니고 있는 ‘금강삼매’의 중관 적 특성과 ‘섭대승경’의 유식적 특성이 지닌 입체성과 구체성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또 편찬 과정에도 참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이 경전의 편찬 목적과 간행 취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원효는 대승선관을 지향하는 이 경전의 내용과 취지를 살리기 위해 육품의 구조를 유기적이고 상관적으로 해석하였다.

일심의 생멸문에 배대되는 「본각리품」과 일심의 진여문에 배대되는 「입실제품」을 중심으로 나머지 4품을 총섭하면서도 더 나아가 「본각리품 」 1품에 나머지 5품을 총섭하고자 한 것도 이러한 의도에서였다.

이것은 ‘일각’ 즉 시각과 본각, 등각(照寂慧)과 묘각(寂照慧)의 배대를 의식하면서 궁극적으로 시각과 본각이 하나 되는 동일본각(同一本覺) 즉 일본각(一本 覺)으로 귀결시키고자 함이었다.

동시에 ‘일미’ 즉 시각과 본각의 평등한 동일미(同一味)이자 일각미(一覺味)로 나아가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강삼매경론󰡕에서 ‘일미’(一味)는 시각과 본각이 하나의 맛 인 ‘동일미’(同一味)이자 평등한 한 맛이며[平等一味] 일심과 본각이 같은 ‘일각미’(一覺味)이다. ‘일각’(一覺)은 시각과 본각이 본래 평등한 동일각 (同一覺)이자 시각이 원만하면 곧 본각과 같아져서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는 것이며, 모든 중생이 똑같이 본래 깨달았기 때문에 동일본각(同一本 覺)이자 일심과 본각을 하나로 아우르는 일본각(一本覺)이라 할 수 있다.

 

3. 「총지품」의 정설분 편제와 의미

 

정설분은 특이하게도 앞의 육품과 제7 「총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육품은 관행을 별도로 드러내지만 뒤의 「총지품」은 의정을 통틀어 없애버린다.

이 때문에 앞의 육품이 지니는 유기적 구조와 달리 제7 「총 지품」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앞의 육품이 관행을 별도로 드러내려면 한편으로는 「총지품」처럼 의정을 통틀어 결단해야만 한다.

원효는 서분의 서품과 달리 정설분의 육품은 여섯 갈래의 겹으로 자 세히 해명하고 있다.

반면 제7의 「총지품」은 ‘앞의 모든 품 중의 의심을 결단하여 중요한 뜻을 모두 지녀서 잊어버리지 않게 하는’ 형식으로 풀이 하고 있다.

「총지품」은 유통분의 앞에 자리하면서도 정설분에 포함되어 있어서 유통분과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설주도 지장보살이다.

지장보살 은 육품의 해탈보살, 심왕보살, 무주보살, 대력보살, 사리자, 범행장자와 달리 의심을 결단하는 역할을 한다.

지장보살은 ‘동체대비를 얻어서 일체 중생의 선근을 생장시켜 주는 것’이 마치 대지가 모든 초목을 생장시켜 주는 것이 같으며, ‘다라니로 모든 공덕을 지니고서 모든 이에게 베풀어 주되 다함이 없는 것’이 마치 큰 보배 창고에 보배가 다함이 없는 것과 같기에 지장(地藏)이라고 한다.

원효는 「총지품」 주석에서 모든 의혹을 결단하여 모든 믿음과 이해를 내 고 모든 결단의 보배를 내어 법을 구하는 대중에게 베풀어 주니 뜻이 그 이름에 합당하기 때문에 청하여 물을 수 있다고 하였다.

처음 가운데 ‘칠(七)식과 오(五)식이 생겨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두 가지 지말의 식(末識)이 공함을 합하여 밝힌 것이니, 항상 작용하는 식 중에서 제칠식이 지말이 되고, 항상 작용하지는 않는 중에 오식이 지말이 되는 것이다.

‘팔(八)식과 육(六)식이 적멸하다’고 한 것은 두 가지 본 식(本識)이 공적함을 합하여 밝힌 것이니, 항상 작용하는 식 중에서 제팔 식이 근본(本)이 되고, 항상 작용하지는 않는 것 중에서 제육식이 근본 (本)이 되는 것이다.

다음에 성(性)을 여의었음을 나타낸 것이니, ‘구식의 상(九相)이 공적하다’고 한 것은 제구식의 상(相) 또한 자성을 지키지 않 기 때문이다. …… 일심(一心)은 이와 같이 상(相)을 버리고 성(性)을 여의 의서 곧 무량한 공덕의 더미이니, 이와 같은 것을 ‘불가사의한 더미’라고 하였다. 54)

 

    54)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70중하)

 

이 경전에서는 중관의 연기-무자성-공성의 공관과 유식의 소집상의타상-진실성의 유관을 일미적으로 통섭하면서 본각 즉 암마라식을 원 용하였다.

이것은 진제의 구식설을 원용하면서도 암마라식 즉 본각의 경 지를 실체화시키지 않기 위해 진여의 경지를 ‘일미’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구식의 상이 공적하다고 한 것은 제구식의 상 또한 자성을 고수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 때문에 일심은 이와 같이 상을 벗어나 고 성을 벗어나서 곧 무량한 공덕의 더미이므로 ‘불가사의한 더미’라고 하였다.

따라서 정설분의 마지막에 자리한 「총지품」에서는 앞의 「무상법품」, 「무생행품」, 「본각리품」, 「입실제품」, 「진성공품」, 「여래장품」의 여러 의 심들을 총체적으로 모아 의심들을 결단하고 있다.

이 때문에 「총지품」은 앞의 6품에 맞서며 정설분의 한 축을 균형있게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Ⅳ. 반야 중관과 유가 유식의 일미적 통섭

 

원효는 자신의 저술 이름에 ‘종요’(宗要)를 많이 붙였다. 현존하는 20 여종의 저술 중 ‘종요’가 붙은 것은 6종 남짓 된다.

그는 ‘종요’를 ‘종’(宗) 과 ‘요’(要)로 구분했으며 ‘종’이 ‘종지’(宗旨)를 가리킨다면, ‘요’는 요체(要 諦)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원효는 󰡔금강삼매경󰡕을 ‘종합’해서는 일미 관행(一味觀行)으로, ‘전개’해서는 십종법문(十重法門)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가 이 경의 주석서에 ‘종요’라고 붙이지는 않았지만 일미관행을 요 체로 삼고, 십종법문을 종지로 삼은 것은 이 경의 종요를 적절히 뽑아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일미관행의 요체’는 반야 중관에 상응시키고, ‘십중법문의 종지’는 유가 유식에 상응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1. 일미관행의 요체와 십중법문의 종지

 

가. 일미관행의 요체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종요를 일심과 이문으로 체계화했다.

반면 이 경전의 요체는 종합해서 일미관행으로 집약하고 있다.

관(觀)의 경과 지, 행(行)의 인과 과, 과(果)의 오법 원만, 인(因)의 육행 구족, 지(智)의 본각 과 시각, 경(境)의 진과 속 모두 사라짐, 모두 사라졌지만 멸하지 않으며, 두 가지로 깨달았지만 생긴 것이 없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경의 종요를) 종합하여 말한다면 일미(一味)의 관행(觀行)이 요체가 된다. 관행이라는 것은, 관(觀)은 횡으로 논하는 것[橫論]으로서 경(境)과 지(智)에 통하고, 행(行)은 종으로 바라본 것[竪望]으로서 인(因)과 과(果) 에 걸쳐 있다. 과(果)는 오법이 원만함을 말한 것이고, 인(因)은 육행이 잘 갖추어짐을 말하며, 지(智)는 곧 본각과 시각의 두 깨달음이고, 경(境)은 곧 진과 속이 없어진 것이다. 함께 없어졌지만 아주 없어진 것이 아니 고, 두 가지로 깨달았지만 생긴 것이 없으니 무생의 행위[無生之行]는 그 윽히 무상에 계합하고, 무상의 법[無相之法]은 본각의 이익을 순조롭게 이룬다. 이익이 이미 본각의 이익으로서 얻음이 없기 때문에 실제를 움 직이지 아니하고, 제(際)가 이미 실제로서 자성을 떠났기 때문에 진제 또 한 공허하다. 모든 부처와 여래가 여기에 간직되어 있으며, 모든 보살도 이 가운데에 따라 들어가니 이러한 것을 여래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 것이 육품의 대의다. 55)

 

     55)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4하; 󰡔대정장󰡕 제34책, p.961상). 

 

주목되는 것은 정설분의 무생의 행위가 무상에 계합하고, 무상의 법 이 본각의 이익을 순조롭게 이루며, 본각의 이익이 실제를 움직이지 않으 며, 실제로서 자성을 떠난 진제가 공허하며, 모든 부처와 여래가 여기에 간직되어 있으며, 모든 보살도 여래장에 따라 들어간다는 것으로 이 육품 을 대의 중심으로 축약하고 있다. 이 관(觀)의 문에서 처음의 신해(信解)로부터 등각(等覺)에 이르기까 지 육행(六行)을 세운다. 육행이 만족될 때 아홉 가지 식이 전변하거나 현현하니, 무구식을 현현시켜 청정한 법계로 삼고, 나머지 팔식을 전변시 켜 사지(四智)를 이루니, 오법(五法)이 이미 원만해져서 삼신(三身)이 이에 구비된다. 이러한 인과 과는 경과 지를 떠나지 아니하였으며, 경과 지는 둘이 아니라 오직 일미(一味)니, 이러한 일미(一味)의 관행(觀行)으로 이 경의 종지를 삼는다. 그러므로 대승의 법상이 포괄되지 않는 것이 없고, 헬 수 없는 뜻의 종요(宗要)가 여기에 들어가지 않음이 없으니, ‘이름이 헛되이 일컬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일미의 관행을 종합적으로 논하여 대략 서술하면 이와 같다. 56)

 

  56)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4하; 󰡔대정장󰡕 제34책, p.961상).

 

여기서도 주목되는 것은 행(行)의 인과 과가 관(觀)의 경과 지를 떠나 지 않으며, 경과 지는 둘이 아니라 오직 일미니 일미의 관행으로 이 경의 종지로 삼는다는 대목이다.

그리하여 원효는 대승의 법상의 포괄성과 헬 수 없는 뜻의 종요가 일미의 관행에 들지 않음이 없다고 하면서 이것이 이 경의 요체라고 하였다.

종합적인 면에서 본다면 이 경전의 요체는 일미관행 즉 관행에 있다.

‘관’(觀)이란 진과 속이 사라지고, 시각이 본각으로 자리한 것 것이며, ‘행’ (行)이란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의 여섯 단계 수행[六行]을 완 수하여 무지와 번뇌로 들뜨던 인식 작용(八識)이 안정되어 성소작지 묘관 찰지 평등성지 대원경지의 네 가지 지혜와 청정한 법계의 오법이 원만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관(觀)의 문에서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 등각의 육행이 전개되고(行의 因), 그 결과 무지와 번뇌가 극복된 무구식인 구식의 진실 한 경지와 팔식이 변하여 이룩되는 네 가지 지혜가 성취되어 오법(行의 果)이 원만해 진다.

그리하여 ‘관’의 지와 경은 ‘행’의 인과 과와 하나가 되어 결국 관과 행이 일미로 모아지는 것이다

 

나. 십중법문의 종지

 

원효는 이 경의 종지를 전개하여 열 가지 법문으로 펼치고 있다.

주 목되는 것은 일문(一門)을 일심→ 일념→일실→일행→ 일승→일도→ 일 각→ 일미를 깨닫는 것으로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 경의 종요를) 전개하여 말한다면 열 가지 법문이 종지가 된다.

‘전 개해서 설명하면 열 가지의 법문이 종지가 된다’고 한 것은 일문으로부터 점차 십문에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일문(一門)은 무엇인가?

일심(一心) 가운데 일념(一念)이 움직여 일실(一實)을 따라서 일행(一行)을 닦아 일승 (一乘)에 들어서 일도(一道)에 머물러 일각(一覺)을 써서 일미(一味)를 깨 닫는 것이다.

이문(二門)은 무엇인가?

이안(二岸)에 머무르지 아니하여 이 중(二衆)을 버리고, 이아(二我)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이변(二邊)을 떠나 며, 이공(二空)에 통달하여 이승(二乘)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이제(二諦)를 함께 융합하여 이입(二入)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삼문(三門)이란 스스 로 삼불(三佛)에 귀의하여 삼계(三界)를 받으며, 삼대제(三大諦)를 좇아 삼 해탈(三解脫)과 등각(等覺)의 삼지(三地)와 묘각(妙覺)의 삼신(三身)을 얻 고, 삼공취(三空聚)에 들어가서 삼유심(三有心)을 없애는 것이다.

사문(四 門)이란 사정근(四正勤)을 닦고 사신족(四神足)에 들어가며, 네 가지 큰 인 연[四大緣]의 힘으로 사의(四儀)가 항상 예리하며, 사선(四禪)을 초월하여 네 가지 비방[四謗]을 멀리 떠나 사홍지(四弘地) 가운데서 사지(四智)가 흘러나오는 것이다.

오문(五門)이란 오음(五陰)에서 생겨나서 오십 악(五 十惡)을 갖추었기 때문에 오근(五根)을 심고 오력(五力)을 길러 오공(五空) 의 바다를 건너고 오등(五等)의 지위를 넘어서 오정법(五淨法)을 얻고 오 도(五道)의 중생을 제도하는 것 등이다. 57)

 

   57)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4하; 󰡔대정장󰡕 제34책, p.961상). 

 

일문의 일심 일념 일실 일행 일승 일도 일각 일미를 깨닫는 것으로 시작해, 이문의 이안 이중 이아 이변 이공 이승 이제 이입, 삼문의 삼불 삼계 삼대제 삼해탈 삼지 삼신 삼공취 삼유심, 사문의 사정근 사신족 사 대연 사의 사선 사방 사홍지 사지, 오문의 오음 오십악 오근 오력 오공 오등 오정법 오도의 중생까지 제도하기 위한 차제적 단계를 시설하고 있다.

육·칠·팔·구 등의 문은 어떤 것인가? 육도(六度)를 온전히 닦아서 육입(六入)을 영구히 제거하며, 칠각분(七覺分)을 행하여 칠의과(七義果) 를 없애고, 팔식(八識)의 바다가 맑아지고, 구식(九識)의 흐름이 깨끗해지 는 것이다. 처음 십신(十信)에서부터 십지(十地)에 이르기까지 백행이 만 족하게 갖추어지고 만덕이 원만한 것이니, 이러한 여러 문이 이 경의 종 지가 된다. 이것은 모두 경의 글에 있으니, 그 글이 나오는 곳에서 설명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뒤의 아홉 문은 모두 일문(一門)에 포함되고, 일문 에 아홉 문이 있으니, 일미(一味)의 관행(觀行)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 므로 전개하여도 하나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종합하여도 열에서 더 줄어 들지 않으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 이 경의 종요다. 58)

 

    58)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05상; 󰡔대정장󰡕 제34책, p.961상).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일문 이후의 아홉 문이 모두 일문에 포함되고 일문에 아홉 문이 있으니 일미의 관행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지점이다.

따라서 이 경의 종요는 전개하여도 하나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종합하여 도 열에서 더 줄어들지 않으니,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효는 처음 십신에서부터 십지에 이르기까지 백행(百行) 이 만족하게 갖추어지고 만덕(萬德)이 원만한 것이니 이러한 여러 문이 이 경의 종지(宗旨)라고 하고 있다.

따라서 일문은 나머지 아홉 문의 종합이며 그것은 일관 즉 일미관행 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십신에서 시작하여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에 이르러 백행을 갖추고 만덕이 원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전개하여도 하나에서 더 늘어나지 않고, 종합하여도 열에서 더 줄어들지 않아서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것이 바로 이 경전의 종요 (宗要)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원효는 이 경전의 ‘요체’로서의 일미관행과 ‘종지’로서의 십중 법문을 통해 반야 중관과 유가 유식의 구도를 의식하면서 전개해 나가고 있다.

 

2. 반야 공관과 유가 유관의 화회적 통섭

 

원효는 당시 구역 경론에서 보이는 존재(의 현상)에 대한 부정적 관점 을 보이는 중관과 그것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보이는 유식의 대립을 해 결하기 위해 새로운 문헌을 찾는 과정에서 󰡔대승기신론󰡕을 발견하였다.

이 때문에 원효는 초기작인 󰡔대승기신론별기󰡕의 대의문에서 이 논서가 중관의 존재에 대한 현상적 부정과 유식의 존재에 대한 현상적 긍정을 종합하는 저술임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대승기신론󰡕은 세우지 않은 바가 없으며 깨뜨리지 않은 바가 없다.

󰡔중관론󰡕과 󰡔십이문론󰡕 등과 같은 것은 모든 집착을 두루 깨뜨리고 또한 깨뜨린 것을 또 깨뜨리되 깨뜨리는 주체와 깨뜨려지는 대상을 다시 허락 하지는 않으니, 이것을 ‘보내기는 하되 두루하지는 않는 논서’라고 말한 다.

󰡔유가론󰡕과 󰡔섭대승론󰡕 등은 깊고 얕음을 두루 세워 법문을 판별하 되 자신이 세워놓은 법을 녹여 보내지는 않으니, 이것을 ‘허락하기는 하 지만 빼앗지는 않는 논서’라고 말한다.

지금 이 󰡔대승기신론󰡕은 지혜롭고 어질며 깊기도 하고 넓기도 하여, 세우지 않음이 없으되 스스로 보내 버 리고 깨뜨리지 않음이 없으되 다시 허락한다.

‘다시 허락한다’는 것은 ‘저 보내 버리는 것이 보냄이 다하여 두루 세움’을 드려내며, ‘스스로 보내 고영섭_ 분황 원효 󰡔금강삼매경론󰡕의 주요 내용과 특징 163 버린다’는 것은 ‘이 허락하는 것이 허락함을 다하여 빼앗음’을 밝히니, 이 것을 모든 논서의 조종이요 여러 다툼의 평주라고 일컫는다. 59)

이처럼 원효는 불교의 전모를 파악해 가면서 그의 인식은 심화되고 확장되었다.

그래서 그는 중년작인 󰡔대승기신론이장의󰡕와 󰡔대승기신론 일도장󰡕 및 중만년작인 󰡔대승기신론소󰡕에서는 이 논서의 성격을 ‘파이불 립’(破而不立)하는 중관의 부정과 ‘립이불파’(立而不破)하는 유식의 긍정이 라는 단선적 시각을 배제하고 은밀문(여래장)의 소지장과 현료문(아뢰야 식)의 번뇌장, 적멸로서의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과 같이 일심의 층위 를 중층적 면모로 파악하였다. 60)

 

  59) 원효, 󰡔대승기신론별기󰡕(󰡔한불전󰡕 제1책, p.678상).

  60) 고영섭, 「분황 원효 󰡔대승기신론소󰡕의 내용과 특징」, 󰡔불교철학󰡕 제6집,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20.4.

 

이런 변화에 대해 박태원은 “원효는 중관과 유식의 대립적인 개성을 숙지하고 있었다. 모든 불교사상을 일미로 회통시키려는 원효는, 중관· 유식의 공·유 대립을 화쟁적으로 종합하려는 의지를 품는다.

처음에 그 는 이 공·유 대립의 화쟁적 종합이라는 사상적 과제를 기신론사상을 통 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비록 그가 기신론을 일미적 불 교 회통의 토대로 삼기는 하였지만, 기신론 사상의 내용을 체계로 볼 때 중관과 유식을 등가적(等價的)으로 병립(竝立)시키며 기신론사상을 그 지 양, 종합이라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기신론은, 비 록 중관적 논의를 흡수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유식사상의 맥락에서 나름대로의 독자적 개성을 추가로 확보해 나간 논서이기 때문이다.

그래 서 󰡔소󰡕를 지을 때는 문제의 대의문 구절을 삭제하고 그 내용을 재구성 하였다.

그러나 그의 󰡔별기󰡕 대의문에서 천명한 중관·유식의 지양, 종합 의지와 그 논리가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신론 사상에 대한 평가에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했을 뿐이었다. 공(空)·유(有) 대립의 화쟁 에 대한 사상적 의지와 관점은 지속되었으며, 원효는 그 과제를 해결하였 기에 더욱 절절한 문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별기󰡕 대의문에서 천명하였 던, 그러나 기신론 사상의 특성상 부적절할 천명이라 생각되어 기신론 주석에서는 더 이상 발전, 적용시킬 수 없었던 중관·유식의 화쟁적 종합 논리를 충분히 전개할 수 있는 문헌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었다.

󰡔금강삼 매경󰡕이 바로 그 문헌이었을 것이다” 61)고 추정하고 있다.

일찍이 박태원 은 원효의 󰡔대승기신론󰡕 인식에 대한 종래의 선행연구에서 ‘중관과 유식 을 등가적으로 병립시키며 지양 종합한 것’이라고 한 것을 비판하고 기신 론 사상을 유식사상이라고 비판하였다. 62)

 

     61)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의 원효사상(I)」, pp.368~369.

     62) 박태원, 󰡔대승기신론사상연구(I)󰡕(서울: 민족사, 1994), pp.167~170. 

 

그런데 근래에 들어와 박태원은 󰡔금강삼매경󰡕에 대한 원효의 인식은 󰡔별기󰡕 대의문에서 천명한 중관·유식의 지양, 종합 의지와 그 논리가 의미를 잃은 것은 아니었으며 단지 기신론 사상에 대한 평가에 적용하는 것이 부적절했을 뿐이라고 보고 있다.

공·유 대립이 화쟁에 대한 사상적 의지와 관점은 지속되었으며, 원효는 그 과제를 해결하기에 더욱 절절한 문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원효가 보여준 일련의 사상적 전환과 성숙 과정에서 보면 박태원의 지적은 타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금강삼매경󰡕의 찬자가 검해 (용왕)이거나 대중불교의 주역들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당시 신라불교계 의 동향도 그러했겠느냐는 좀더 구명해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원효의 초기작인 󰡔대승기신론별기󰡕에 투영된 중관과 유식의 대립 해소라는 문제 의식처럼 당시 동아시아의 불교사상계 내지 신라 불교사상계에서 중관과 유식의 사상적 대립이 있었음을 유추해 볼 수는 있다.

또 원효가 󰡔대승기신론이장의󰡕과 󰡔대승기신론일도장󰡕을 거쳐 󰡔대승 기신론소󰡕를 쓰면서 보여준 은밀문(여래장)과 현료문(아뢰야식)의 시설, 적멸로서의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 그리고 화엄 진심으로서 일심(󰡔화 엄경소󰡕), 본법으로서 일심(󰡔금강삼매경론󰡕)으로 변화해온 과정을 통해 확 인할 수 있다.

나아가 중관과 유식의 사상적 대립의 해소라는 학문적 화 두는 5~6세기 인도 중관파의 청변(淸辯)과 유식가의 호법(護法) 등의 사 례에서 보듯이 대승 불학자들이 지속적으로 공유해온 사상적 논점이라는 점에서 수용할 수 있다.

 

선남자여, 이 마음의 성상(性相)은 또한 아마륵(阿摩勒) 열매와도 같아 서, 본래 스스로 생긴 것도 아니고, 다른 것으로부터 생긴 것도 아니며, 공동으로 생긴 것도 아니고, 인(因)으로 생긴 것도 아니며, 인 없이 생긴 것도 아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연(緣)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러나 연이 일어나도 생기는 것이 아니고, 연이 물러나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숨거나 드러남에 실체적 모습(相)이 없고, 뿌리의 이치는 적멸하 여 있는 곳이 없어서 머무르는 곳을 보지 못하니 결정성(決定性)이기 때 문이다. 이 결정성은 또한 같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단절되는 것도 아니고 불변하는 것도 아니며,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나오는 것도 아니 며, 생하는 것도 아니고 멸하는 것도 아니니, (有·無·亦有亦無·非有非無 의) 사구 판단을 여의어 언어의 속성에 포착되지 않는다. 생겨남이 없는 심성도 이와 같은 것이니, 어떻게 생겨남과 생겨나지 않음, 인정함이 있 음과 인정함이 없음을 말할 수 있겠는가? 63)

 

   63) 元曉, 󰡔金剛三昧經論󰡕(󰡔한불전󰡕 제1책, p.626상중). 

 

원효는 반야 중관의 이제설 즉 속제와 진제, 속제중도와 진제중도 및 유가 유식의 삼성설 즉 변계소집성과 의타성과 원성실성을 원용하여 중 관과 유식의 일미적 통섭을 도모하고 있다.

그는 변계소집된 속제와 시 각의 원성실성인 진제를 의타기된 속제중도와 본각의 원성실성인 진제중 도를 다시 무이중도로 통섭해 가고 있다.

경전은 붓다가 대력보살에게 삼공을 밝히는 대목에서 ‘공상도 공한 것’이며(진짜금을 녹여 장신구를 만드는 것), ‘공공도 공한 것’이며(장엄구를 녹여 다시 금덩어리를 만드는 것), ‘소공도 공한 것’이다(이제를 녹여 일법계 즉 일심을 나타낸 것)고 설한다.

여기에 대해 원효는 처음 공의 문 안에서 버린 ‘속제’의 소집상(所執相, 변계소집성)과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융합한 ‘속제’인 의타상(依他相, 의타기성), 또 처음 문 안에서 속제를 부정해서 나 타난 진제(遣俗所顯之眞, 속제중도)와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속제를 융합 하여 나타난 진제(融俗所顯之眞, 진제중도)를 오직 하나이자 둘이 없는 원 성실성(唯一無二, 圓成實性)이다.

그리고 세 번째 공은 진제도 아니고 속 제도 아니며,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것이다.

이처럼 원효가 ‘속제’(변계소집성)와 ‘진제’(空相, 시각의 원성실성)의 이 제 구도에 다시 ‘속제중도’(空相亦空, 의타기성)와 ‘진제중도’(空空亦空, 본각 의 원성실성)의 이제중도 나아가 비진비속무변무중(所空亦空, 非眞非俗無邊 無中)의 중도의인 ‘무이중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속제의 소집상과 진제 의 (시각의) 의타상, 속제중도의 의타기성, 진제중도의 (본각의) 원성실성, 속제중도와 진제중도가 둘이 아닌 비진비속의 원성실성을 배대하고 있는 점64)은 주목되고 있다. 65)

 

   64)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중(󰡔대정장󰡕 제34책, p.983하).

   65) 김영미, 앞의 논문, pp.270~274 참조.

 

존재의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중관과 그것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보여주는 유식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원효가 원용해온 진 제 유식의 구식설과 아마라식은 그의 학문적 화두가 󰡔대승기신론별기󰡕 대의문에서 보여준 중관과 유식의 지양 종합이라는 초기의 의단과 다르 지 않았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3. 진제 유식의 구식설과 아마라식 - 묘각위의 적조혜와 등각위의 조적혜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은 편찬 의도에서도 드러나고 있듯이 원효는 연기-무자성-공성을 기반으로 존재(의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을 보여주는 중관학과 번뇌를 지닌 의식을 번뇌를 지운 지혜로 전환시키 는 유가 유식학을 일미적으로 통섭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존재의 실체성과 지속성에 집중하는 비담적 인식을 깨뜨리는 반야 중관학의 이 제설과 인식의 왜곡성과 전도성을 전환하는 유가 유식학의 삼성설을 아 우르려고 시도하고 있다.

우선 원효는 진제(?~599)의 삼성설과 제9 암마라식설을 적극적으로 원용한다. 66)

이것은 원효가 이 경전을 진경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강력하 게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암마라(唵摩羅)란 제9식으로 진제 삼장의 구식(九識)의 뜻이다.

이 문 장을 일으키는 것에 의거함은 저 문장에서 설하는 것과 같다. 67)

원효는 󰡔대승기신론󰡕의 “득견심성(得見心性), 심즉상주(心卽常住)”라는 문구가 󰡔금강삼매경󰡕의 심상안태(心常安泰)”라는 구절을 풀이한 것이다68) 고 하였다.

 

  66)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의 원효사상(I)」, p.374.

  67) 元曉, 󰡔金剛三昧經論󰡕(󰡔한불전󰡕 제1책, p.630하).

  68) 馬鳴, 󰡔大乘起信論󰡕(󰡔대정장󰡕 제32책); 元曉, 󰡔金剛三昧經論󰡕(󰡔한불전󰡕 제1책, p.636중 하). “案云得, 此中得見心性, 心卽常住, 卽釋此經, 心常安泰之句.” 

 

이것을 근거로 그는 󰡔금강삼매경󰡕이 󰡔기신론󰡕에 앞선 진경이 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경전이 미 즈노 고오겐처럼 중국에서 찬술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원효는 자성의 공적함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지혜의 작용을 등각과 묘 각에 배대해 해명하고 있다.

그는 지혜의 작용이 등각위에 있을 때에는 ‘조적혜’(照寂慧)라고 하고, 묘각위에 이르면 ‘적조혜’(寂照慧)라고 풀이하 고 있다.

조적혜가 등각위의 보살이 중도의 관혜(觀慧)로 중도의 이체를 비추는 지혜라면, 보살이 불각위에서 중도의 체에 나아가 중도의 용을 일으켜 체용 불이와 정혜 평등한 지혜가 적조혜이다.

이처럼 생명의 움 직이는 상을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등각위의 조적혜와 달리, 이미 제구식의 완전한 적정에 돌아간 묘각위의 적조혜는 다른 것이다.

 

이 때에 무주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존자시여, 무슨 이익을 굴려 서 중생의 모든 정식을 전변시켜 암마라(唵摩羅)에 들게 하나이까?’ …… 무주보살이 여쭈었다. ‘암마라식’에 들어가는 곳이 있고 그 곳에서 얻는 바가 있다면, 이것이 법을 얻는 것일 것입니다.’ …… ‘선남자여, 암마라라 는 것도 또한 이와 같아서 본래 벗어났다는 상도 없고 지금 들어간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미혹했기 때문에 없는 것이 아니고, 지금은 깨달았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69)

 

   69) 元曉, 󰡔金剛三昧經論󰡕(󰡔한불전󰡕 제1책, p.630하; 635상; 635하). 

 

원효는 이미 구역 경론으로 자신의 불학 체계를 확고하게 세우고 있 었다.

거기에다 현장 이래의 신역 경론을 통섭하여 신구 경론을 종합적 으로 통섭보고 있었다.

위의 경에서 보이는 암마라식은 구역 경론에 등 장하는 주요 개념이다.

여기서 암마라식은 본각인 자성청정심이자 제9식을 가리킨다.

 

대력보살(大力菩薩)이 말했다. ‘이와 같은 사람은 마땅히 계율을 지니 지 않을 것이며, 사문에 대해서도 공경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처님이 말 씀하였다.

‘계율을 설하는 자가 좋지 않은 교만이 있기 때문이고, 바다의 물결이 일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와 같은 마음자리에서는 팔식(八識) 의 바다가 잔잔하고 구식(九識)의 흐름이 깨끗하니, 바람이 움직이게 할 수 없어서 물결이 일어나지 않는다. 계율의 본성상 허공과 같은 사람은 칠식(七識)과 육식(六識)이 생기지 않아 모든 번뇌 망상이 그쳐 고요하며, 삼불(三佛)을 떠나지 않아서 보리심을 일으키고 세 가지 무상(無相) 가운 데로 마음을 따라 그윽하게 들어가 삼보(三寶)를 깊이 공경하고 위의(威 儀)를 잃지 않으니, 사문에 대해서 공경하지 않음이 없다. 보살이여, 저와 같은 인자(仁者)는 세간의 움직이는 법이나 움직이지 않는 법에 머물지 않고 삼공취(三空聚)에 들어가 삼유심(三有心)을 없앤다. 70)

 

    70) 元曉, 󰡔金剛三昧經論󰡕(󰡔한불전󰡕 제1책, p.648중). 

 

원효는 구역 경론의 암마라식에 의거하여 제구식설을 종횡으로 활용 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신역 경론의 팔식론도 수용하면서 7식 및 육식 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다.

󰡔금강삼매경󰡕이 암마라식뿐만 아니라 본각 과 시각을 중심으로 일각과 일미관행에 의존하고 있듯이 일각과 일미는 모두 구역 경론과 친연성이 있는 개념들이다.

원효가 󰡔금강삼매경󰡕이 구식설을 취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박태원은 󰡔금강삼매경󰡕 사상과 진제 구유식의 구식설 및 󰡔대승기신론󰡕 사상과의 밀접한 친밀성과 구식설을 취해야 중관의 무적 부정에 대립하는 유식의 유적 긍정이 선명하게 부각되어 ‘중관·유식의 화쟁적 종합’이라는 사상적 의도를 구현하는데 용이하다71)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논자도 타당한 지적으로 보고 있다.

이 경전의 찬자(撰者)가 진제유식의 구식설에 기반하고 있으며 암마 라식을 본각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지점에서 󰡔금강삼매경󰡕과 󰡔대승기신 론󰡕의 친연성을 엿볼 수 있다.

이들 경론이 부각시키고 있는 본각과 시각 의 개념은 진제 번역의 󰡔대승기신론󰡕과 진제가 ‘번역 해설’한 󰡔섭대승론󰡕 모두에서 진제의 암마라식(구식) 사상과도 긴밀하게 연결72)되어 있음에 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71) 박태원, 앞의 글, p.375.

     72) 高榮燮, 「분황 원효와 진제 삼장의 섭론학 이해」, 󰡔불교철학󰡕 제3집,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18.10. 

 

4. 일각, 시각 즉 본각의 관법

 

원효는 이 경전에서 일각 즉 시각과 본각, 등각과 묘각의 배대를 의식 하면서 궁극적으로 시각과 본각이 하나되는 ‘동일본각’(同一本覺) 즉 일본 각(一本覺)으로 귀결시키고자 하였다.

동시에 그는 일미(一味) 즉 시각과 본각의 평등한 동일미(同一味)이자 일각미(一覺味)로 나아가고자 하였다.

일각은 시각 즉 본각의 관법이며 그것은 무상관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는 무상관에서 방편관과 정관의 구도를 통해 일각과 무이중도를 해명하 고 있다.

정관으로는 일각에 이르고, 방편관으로는 무이중도에 이른다.

심생멸이란 것은 여래장을 의지하기 때문에 생멸심이 있으니, 이를테 면 불생불멸이 생멸과 더불어 화합하여 같은 것[一]도 아니고 다른 것 [異]도 아님을 아리야식이라 한다.

이 식이 두 가지 뜻을 지녀 능히 일체법을 포섭하여 일체법을 생겨나게 하니, 어떤 것이 그 두 가지 뜻인가? 하나는 각의 뜻[覺義]이고, 다른 하나는 불각의 뜻[不覺義]이다. 73)

아리야식은 불생불멸이 생멸과 더불어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고 다 른 것도 아닌 것으로 규정된다. 이 때문에 아리야식은 여래장에 의지하 는 생멸심이다. 시각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본각을 의지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고 불 각을 의지하기 때문에 시각이 있다고 말한다. 74)

이 생멸심에는 시각의 뜻과 본각의 뜻이 있는데 이들은 불각에 서로 의지하고 있다. 이들은 본각에 의지하므로 불각이 있고 불각을 의지하므 로 시각이 있다.

시각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 심체(心體)가 무명의 연을 따라 움직여서 망념을 일으키지만, 본각의 훈습의 힘 때문에 차츰 각의 작용이 있어 구경 에 이르러서는 다시 본각과 같아지니, 이를 시각이라 말하는 것이다. 75)

 

    73) 馬鳴, 󰡔大乘起信論󰡕(󰡔대정장󰡕 제32책).

    74) 馬鳴, 󰡔大乘起信論󰡕(󰡔대정장󰡕 제32책).

    75) 元曉, 󰡔大乘起信論別記󰡕(󰡔한불전󰡕 제1책, p.638중).

 

여기서 시각은 본각의 훈습의 힘으로 생긴 각의 작용으로 끝내는 본 각과 같아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 가운데 대의는 시각은 불각을 기다리고[待] 불각은 본각을 기다리며 본각은 시각을 기다린다는 것을 밝히려는 것이다.

이미 서로 기다리 는 것이기에 곧 자성이 없으니, 자성이 없는 것은 곧 각(覺)이 있지 않다.

각이 있지 않은 것은 서로 기다리기 때문인데, 서로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곧 각이 없지도 않다. 각이 없지 않기 때문에 ‘각’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자성이 있어서 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76)

여기서 서로 기다린다[待]는 서로 상대한다[待]는 것이다.

시각은 불 각을, 불각은 본각을, 본각을 시각을 상대한다.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자 성이 없고 자성이 없기에 각이 있지 않다.

하지만 각이 있지 않은 것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이며 서로 상대하여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각이 없지 도 않다.

이 사상(四相)을 총괄하여 일념(一念)이라 하니 이 일념과 사상에 의 하여 사위(四位)의 단계적인 내려감을 밝혔다.

본래 무명불각의 힘에 의 하여 생상(生相) 등이 갖가지 몽념(夢念)을 일으켜 그 심원(心源)을 움직 여 점차 멸상에 이르고, 오래도록 삼계에 잠들어 육취(六趣)에 유전하다 가, 이제 본각의 부사의훈(不思議熏)으로 인하여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찾는 마음을 일으켜 점점 본원으로 향하여 비로소 멸상 내지 생상 을 그쳐 활짝 깨달아 자심(自心)이 본래 동요한 바가 없음을 깨달아 마쳐 이제는 고요한 바도 없이 본래 평등하여 일여(一如)의 자리에 머문다는 것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니, 󰡔금광명경󰡕에서 말한 하수(河水)를 건너는 비유와 같은 것이다. 77)

 

   76) 元曉, 󰡔大乘起信論疏󰡕(󰡔한불전󰡕 제1책, p.708상).

   77) 元曉, 󰡔大乘起信論疏󰡕(󰡔한불전󰡕 제1책, p.709중). 

 

무명불각의 힘에 의해 생상 등이 갖가지 몽념이 일어나듯이 일념과 사상은 상호 맞물려 진행된다.

이 사상 등의 갖가지 몽념에 의해 심원을 움직여 멸상에 이르게 되고 긴 세월 동안 삼계에 잠들고 육취에 유전한 다.

하지만 언젠가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본각의 부사의훈습의 힘에 의하 여 생사를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찾는 마음을 일으켜 점차 본원을 향해 나아가 끝내는 일여(一如)의 자리에 머물게 된다. 본각이 있기 때문에 본래 불각이 없고, 불각이 없기 때문에 끝내 시각 이 없는 것이며, 시각이 없기 때문에 본래 본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본각이 없음에 이른 것은 그 근원이 본각에 있기 때문이고, 본각이 있는 것은 시각이 있기 때문이며, 시각이 있는 것은 불각이 있기 때문이 고, 불각이 있는 것은 본각에 의하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이 계속해서 서로 의지하니, 곧 모든 것이 없는 것이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며,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님을 나타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78)

본각과 불각과 시각은 서로 의지하므로 모두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있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이 아니지만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자각해야만 시각이 곧 본각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본각-불각-시각 의 상의상자(相依相資)와 상호의존(相互依存)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본각이란 것은 이 심성이 불각의 상을 여읜 것을 말한다.

이 각조(覺 照)의 성질을 본각이라 하니, 이는 아래 글에서 ‘이른바 자체에 큰 지혜광 명의 뜻이 있다’고 한 것과 같다. 79)

 

   78) 元曉, 󰡔大乘起信論別記󰡕(󰡔한불전󰡕 제1책, p.683하~684상).

   79) 大安 편집, 󰡔金剛三昧經󰡕「本覺利品」(󰡔한불전󰡕 제1책, p.634중). 

 

이처럼 원효는 심성이 불각의 상을 여읜 것을 본각이라 하고 이 깨달 아 비추는[覺照]의 성질을 본각이라 한다.

이 (아리야)식이 두 가지의 뜻이 있어서 능히 일체법을 포섭하며 일체 법을 일으키니, 어떤 것이 두 가지 인가?

 첫째는 각의 뜻이요,

 둘째는 불 각의 뜻이다.

각의 뜻이라고 하는 것은 심체가 망념을 여윈 것을 일컬음 이다.

망념을 여읜 상은 허공계와 같아 두루 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 법계 일상(法界一相)이니 곧 이 여래의 평등한 법신이다.

이 법신을 의지하여 본각이라 설하는 것이다.

무슨 까닭인가?

본각의 뜻이란 것은 시각의 뜻 에 대하여 설한 것인데, 시각이란 것은 곧 본각과 같기 때문이다.

시각의 뜻이란 것은 본각을 의지하기 때문에 불각이 있으며 불각을 의지하기 때 문에 시각이 있다고 설하는 것이다. 80)

 

    80) 馬鳴, 󰡔大乘起信論󰡕(󰡔대정장󰡕 제32책). 

 

본각의 기준에서 보면 일각은 이미 구현된 모든 존재의 실체 없는 참모습을 드러내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시각의 기준에서 보면 일각은 아직 가려져 있는 존재의 참모습을 새롭게 밝혀 가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체의 모든 법은 오직 일심일 뿐이고 모든 중생 은 하나인 본각[一本覺]이므로 이러한 뜻에서 일각(一覺)이라고 한 것이 다.

결국 시각이 원만하면 곧 본각과 같아져서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기 때문에 일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 선남자여, 다섯 계위는 일각으로서 본각의 이익으로부터 들어 가니, 만일 중생을 교화하려면 그 본처(本處)를 따라야 한다. (󰡔론󰡕) 다섯 계위의 모든 행이 본각을 떠나지 아니하여 모두 본각의  이익을 좇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으며 행을 이룰 때에 앞으로부터 뒤 로 들어가기 때문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이롭 게 하는 것이고[自利], ‘교화한다’는 것은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이니[利 他], 이와 같은 두 가지 행은 모두 본처를 따른 것이다. 81)

 

    81)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p.655하~656상)

 

일각으로서 본각의 이익에 들어가는 까닭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함이 다.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는 그 본처를 따라야 한다.

이 때문에 자신을 이롭게 하는 자리와 타인을 이롭게 하는 이타의 두 가지 행은 모두 본처 를 따른 것이다.

따라서 󰡔금강삼매경론󰡕에서 ‘일미’(一味)는 시각과 본각이 하나의 맛 인 ‘동일미’(同一味)이자 평등한 한 맛이며[平等一味] 일심과 본각이 같은 ‘일각미’(一覺味)이다.

‘일각’(一覺)은 시각과 본각이 본래 평등한 동일각 (同一覺)이자 시각이 원만하면 곧 본각과 같아져서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는 것이며, 모든 중생이 똑같이 본래 깨달았기 때문에 동일본각(同一本 覺)이자 일심과 본각을 하나로 아우르는 일본각(一本覺)이라 할 수 있다.

 

Ⅴ. 일심지원과 일심본각의 상호의존성

 

1. 일심지원과 일심

 

원효는 󰡔금강삼매경론󰡕에서 일심지원을 사용하여 일심과 구분하고 있다. 일심지원은 마음의 한 점이며 이 한 점은 마음의 구심으로서 본각 에 상응한다. 이 한 점이 원심으로서 뻗어나가면 시각의 일심이 된다.

일심지원이 청정한 법계인 제9 암마라식인 본각이라면, 일심은 네 가지 지혜가 펼쳐내는 제8 아리야식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82)

 

    82) 高榮燮, 「일심지원 혹은 일심이란 무엇인가? - 원효 깨침사상의 구심과 원심」, 󰡔불교 철학󰡕 제2집,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18. 4.

 

하지만 이들 모두가 일원상의 구심과 원심 즉 하나의 원상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구분하기는 쉽지 않다.

원효에게 있어 일심지원과 일심, 일심본각과 일각의 개념은 원효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그는 구역 경론에 의해 이미 자기의 불교 학 체계를 구축한 뒤 신역 경론까지 접하면서 신구 경론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일심지원은 묘각위의 적조혜와 본각에 상응시킬 수 있으며 일심은 등각위의 조적혜와 시각에 상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원효가 구현하려고 했던 ‘상홍불법 하화중생’ 혹은 ‘귀일심원 요익중 생’의 지향 또한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왼쪽으로는 법신 부처 의 차원에서 말하면서도 오른쪽으로는 보신 부처의 차원에서 말하고자 하였다.

법신의 지위에서 보여주는 본각의 결정성과 보신의 지위에서 보 여주는 일심의 신해성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심 은 모든 것의 근거이기도 하지만 중생과 부처가 만나는 자리이다.

일심지원의 본각 부처가 중생과 만나기 위해서는 일심의 공간이 필요 하다.

일심은 부처와 중생이 일미적으로 만나는 우주적 공간이며, 은밀문 (여래장)과 현료문(아리야식)이 만날 수 있는 심의식의 공간이다. 일심은 중관의 이제설과 유식의 삼성설이 일미적으로 화회할 수 있는 마음의 공 간이며, 적멸로서의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 화엄 진심으로서 일심, 본법으로서 일심이 만날 수 있는 지평이기 때문이다. 

 

2. 일심본각과 일각

 

일심과 본각의 통섭인 일심본각은 다시 일각으로 축약된다.

일각은 시각이 곧 본각인 지점에서 확인되는 것이며 청정한 법계인 일각이 네 가지 지혜와 만나는 지점에서 시각이 곧 본각임을 확인하게 된다.

일각 의 성스러운 힘과 네 가지 넓은 지혜의 경지가 만나는 지점이 곧 일체 중생의 본각의 이익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 무주보살이 말하였다. “여래께서 설하신 일각(一覺)의 성스러 운 힘과 네 가지 넓은 지혜의 경지는 곧 일체 중생의 본각의 이익입니다. 왜냐하면 일체의 중생이 바로 이 몸 가운데 본래 원만하게 구족되어 있 기 때문입니다.

(󰡔론󰡕) 시각이 원만하면 곧 본각과 같아져서 본각과 시각이 둘이 없 기 때문에 ‘일각’(一覺)이라고 하였으며, 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성 스러운 힘’이라 하였고, 일각(一覺) 안에 네 가지 큰 지혜를 갖추어 모든 공덕을 지니기 때문에 ‘지혜의 경지’라고 하였으며, 이와 같은 네 가지 지혜가 일심(一心)의 양과 같아서 모두 두루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에 ‘넓 은 지혜’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일각’은 곧 법신이고 법신은 곧 중생의 본각이기 때문에 ‘바로 일체 중생의 본각의 이익’이라고 하였다.

본래 무 량한 성덕(性德)을 갖추어 중생의 마음을 훈습하여 두 가지 업을 짓기 때 문에 ‘본각의 이익’이라 한 것이다.

이 본각의 둘이 없는 뜻으로 말미암아 한 중생도 법신 밖으로 벗어남이 없기 때문에 ‘곧 이 몸 가운데 본래 원만 하게 구족되어 있다’고 하였다. 83)

 

   83)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33중). 

 

이 경전이 설하는 것처럼 일각은 모든 식을 전변시켜 암마라에 들어 가게 한다.

시각이 곧 본각이라는 자각으로부터 일각이 실현되기 때문이 다.

일각이 실현되는 순간 곧 암마라에 들어가 청정한 법계에 노닐게 되 는 것이다. 이것이 곧 일심본각 즉 일각이라 할 수 있다.

 

(󰡔경󰡕)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과 여래는 항상 일각(一 覺)으로써 모든 식을 전변시켜 암마라에 들어가게 한다. 어째서 그러한 가? 모든 중생은 본각이니, 항상 일각으로서 모든 중생을 깨우쳐 저 중 생들이 모두 본각을 얻게 하여 모든 정식(情識)이 공적하여 일어남이 없 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정의 본성은 본래 움직임이 없기 때문이다.” 84)

 

(󰡔론󰡕) 모든 중생이 똑같이 본각이기 때문에 일각(一覺)이라고 한 것 이다. 모든 부처님은 이것을 체득하여 곧 널리 교화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으로써’라고 하였고, 이 본각으로써 다른 사람을 깨닫게 하기 때 문에 ‘항상 일각으로써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한다’고 말하였다. ‘저 중생으 로 하여금 모두 본각을 얻게 한다’는 것은 ‘교화 대상이 전변하여 들어간 다’는 구절을 풀이한 것이니, 본각은 바로 암마라식이다. ‘본각을 얻는다’ 는 것은 ‘들어간다’는 뜻을 풀이한 것이니, 본각에 들어갈 때에 모든 여덟 가지 식이 본래 적멸임을 깨닫는다. (……) ‘모든 중생은 본각이다’ 등은 본각의(本覺義)이고, ‘모든 정식(情識)이 적멸하여 일어남이 없음을 깨달 았다’는 것은 시각의(始覺義)이니, 이것은 시각이 곧 본각과 같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85)

 

   84)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30하)

   85) 元曉, 󰡔金剛三昧經論󰡕 권상(󰡔한불전󰡕 제1책, p.631상) 

 

여기서 일각은 일심과 본각을 하나로 아울렀기에 일본각(一本覺)이며, 일미와 같다는 의미에서 ‘일각미’(一覺味)이다.

‘일각’은 시각과 본각이 본 래 평등한 동일각(同一覺)이고, 모든 중생이 똑같이 본래 깨달았기 때문 에 동일본각(同一本覺)이다.

결국 시각이 곧 본각이라는 자각이 일각에 들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 곧 일심본각 즉 일각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원 효의 일심사상에 대응하는 일각사상은 일심지원과 일심본각에 상응하는 실천적 개념이다.

일각은 일미의 다른 표현이자 일본각과 일각미의 약칭 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일심지원과 일심, 일심본각과 일각의 관계를 통해 부처와 중 생이 만날 수 있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은 그가 이 경전의 편찬 취지와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효 의 주석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번경삼장이 ‘소’가 아니라 ‘론’이라 한 것도 바로 ‘경론’의 집필 방향과 펼친 취지를 온전히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Ⅵ. 결어

 

지금까지 신라에서 성립한 󰡔금강삼매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인 원효 의 󰡔금강삼매경론󰡕의 주요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았다.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은 반야 중관(空性)과 유가 유식(假有)의 일미적 통섭이라 는 커다란 기획과 일미관행(一味觀行)과 십중법문(十重法門)의 구도 아래 일심과 본각,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닌 일각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금강삼매경󰡕은 신라계와 가야계의 연합, 즉 신라 왕실의 정계와 그 방계로 편입된 가야계의 연합에 의해 성립된 경전으로 추정된다.

가야계 ‘왕비의 병’이 상징하는 정치적 문제 즉 가야계의 골품제 편입 문제 등 신라계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난제를 신라의 통치자 는 불교계와 바다를 무대로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가야계와의 연합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신라 왕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해(혜공)→대안→원효 등에게 의뢰한 것으로 짐작된다.

원효는 대승 선관을 담고 있는 이 경전이 중관의 이제설과 유식의 삼성 설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잘 보여주는 경전으로 파악하였다. 이 경전의 이름이 담고 있는 것처럼 ‘금강’의 성질을 비유로 삼아 모 든 ‘의혹’을 깨뜨리고, 모든 ‘선정’을 꿰뚫고자 하는 ‘삼매’로 중생이 부처 되는 일미관행의 길을 열어두고 있는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심 지원의 본각 부처가 중생과 만나기 위해서는 일심의 공간이 필요하다.

일심은 부처와 중생이 일미적으로 만나는 우주적 공간이며, 은밀문(여래 장)과 현료문(아리야식)이 만날 수 있는 심의식의 공간이다. 일심은 중관 과 유식이 일미적으로 화회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며, 적멸로서의 일심 과 여래장으로서 일심, 화엄 진심으로서 일심, 본법으로서 일심이 만날 수 있는 지평이다.

원효는 󰡔금강삼매경󰡕의 찬자(撰者)가 진제(眞諦) 유식 의 구식설에 기반하면서 암마라식을 본각이라 규정하고 있는 점에 주목 했다.

그는 일심의 지형이 본각/불각/시각/시각이 곧 본각의 순서로 전개 되는 󰡔대승기신론󰡕과 일각의 지형이 시각/본각/불각의 순서로 전개되는 󰡔금강삼매경󰡕의 주석을 통해 깨침 혹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유기적 상관 성의 구조를 보여주었다.

원효가 일심지원과 일심, 일심본각과 일각의 관계를 통해 부처와 중생 이 만날 수 있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둔 것은 이 경전의 편찬 취지와 의도를 가장 잘 파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효의 주석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번경삼장이 ‘소’(疏)가 아니라 ‘론’(論)이라 한 것도 바로 ‘경론’의 취지와 방향을 온전히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馬鳴, 󰡔大乘起信論󰡕(󰡔대정장󰡕 제32책). 元曉, 󰡔大乘起信論別記󰡕(󰡔한불전󰡕 제1책). 元曉, 󰡔大乘起信論疏󰡕(󰡔한불전󰡕 제1책). 元曉, 󰡔金剛三昧經論󰡕권하(󰡔대정장󰡕 제34책; 󰡔한불전󰡕 제1책). 贊寧, 「新羅國 黃龍寺沙門 元曉傳」(宋高僧傳󰡕 권제4(󰡔대정장󰡕 제50책 史傳 部 2). 一然, 󰡔三國遺事󰡕 제4권, 「義解」, ‘二惠同塵’. 水野弘元, 「菩提達磨の二入四行說と金剛三昧經」, 󰡔駒澤大學硏究紀要󰡕 13, 1955, pp.33~57. 木村宣彰, 「金剛三昧經의 眞僞問題」, 󰡔佛敎史學硏究󰡕 18-2(佛敎史學會, 1976), pp.106~117. R.E. Buswell, The Formation of Gh’an Ideology in China and Korea ― The Vajra samadhi-Sutra, A Buddhist Apocryph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9). 柳田聖山, 「金剛三昧經の硏究―中國における頓悟思想のテキスト」, 󰡔白蓮佛敎 論集󰡕 3, 성철선사상연구원, 1993. 冲本克己, 「MNSURA ZOILI―禪文獻の計量語彙論的硏究の試み」, 󰡔禪文化硏 究紀要󰡕19(禪文化硏究所, 1993). 冲本克己, 󰡔禪思想形性史の硏究󰡕(京都: 花園大學國際禪學硏究所·硏究報告 제5冊, 1997). 石井公成, 「금강삼매경의 성립사정」, 󰡔원효, 문헌과 사상의 신지평󰡕(서울: 동 국대출판부, 2020), pp.92~100. 이기영, 「원효사상의 독창적 성격」(1975)·「원효의 여래장사상」(1978), 󰡔원효 사상연구󰡕(I)(서울: 한국불교연구원, 1994). 고익진, 「원효사상의 실천원리―금강삼매경론의 一味觀行을 중심으로―」, 󰡔숭산박길진박사화갑기념 한국불교사상사󰡕(원광대출판국, 1975), 金煐泰, 「신라에서 이룩된 금강삼매경」, 󰡔불교학보󰡕 제25집, 동국대학교 불교 문화연구소, 1988. 182 불교철학_ 제7집(2020.10.31) 정순일, 「원효의 일미관행 연구―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여산유병덕박 사화갑기념 한국철학종교사상사󰡕(이리: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0), 佐藤繁樹, 「원효의 화쟁논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6. 김병환(원영), 「원효의 금감삼매경론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1997. 남동신, 「신라 중대불교의 성립에 관한 연구―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의 분석을 중심으로―」, 󰡔한국문화󰡕 제21집,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1998).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과 원효사상(I), 󰡔원효학연구󰡕 제5집, 원효학회/원효학연구원, 2000.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과 원효사상(II), 󰡔원효학연구󰡕 제6 집, 원효학회/원효학연구원, 2001. 박태원, 「원효의 각사상 연구」, 󰡔새한철학󰡕 제34집, 새한철학회, 2003; 박태원, 「원효의 󰡔금강삼매경󰡕 6품 해석학」, 󰡔철학논총󰡕 제77집, 새한철학회, 2014. 박태원, 「원효의 선사상」, 󰡔새한철학󰡕 제68집, 새한철학회, 2012 박태원, 「본각이란 무엇인가」, 󰡔새한철학󰡕 제93집, 새한철학회, 2018. 高榮燮, 「일심지원 혹은 일심이란 무엇인가?―원효 깨침사상의 구심과 원심」, 󰡔불교철학󰡕 제2집,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18. 4. 高榮燮, 「분황 원효와 진제 삼장의 섭론학 이해」, 󰡔불교철학󰡕 제3집, 동국대 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18.10. 高榮燮, 「깨침 혹은 깨달음이란 무엇인가?―고타마 싯다르타의 중도(中道) 연기(緣起)와 분황 원효의 일심(一心) 일각(一覺)―」, 󰡔불교철학󰡕 제 4집, 동국대학교 세계불교학연구소, 2019. 4. 김영미, 「원효 󰡔금강삼매경론󰡕의 무이중도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2017. 최건업, 「분황 원효의 수행관 연구」, 동국대 대학원 박사논문, 2020.

 

국문초록

이 논문은 신라에서 성립한 󰡔금강삼매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인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의 주요 내용과 특징을 살펴본 글이다.

󰡔금강삼매경󰡕은 신라계와 가야계의 연합, 즉 신라 왕실의 정계와 그 방계로 편입된 가야 계의 연합에 의해 성립된 경전으로 추정된다.

가야계 ‘왕비의 병’이 상징 하는 정치적 문제 즉 가야계의 골품제 편입 문제 등 신라계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치적 난제를 신라의 통치자는 불교계와 바다를 무대 로 동아시아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가야계와의 연합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신라 왕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검해(혜공)→대안→원효 등에게 의뢰한 것으로 추정된다.

󰡔금강삼매경󰡕과 󰡔금강삼매경론󰡕은 반야 중 관(空性)과 유가 유식(假有)의 일미적 통섭이라는 커다란 기획과 일미 관행(一味觀行)과 십중법문(十重法門)의 구도 아래 일심과 본각, 시각과 본각이 둘이 아닌 일각이 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효는 대승 선관을 담고 있는 이 경전이 중관의 이제설과 유식의 삼성설이 어떻게 접목되는지 잘 보여주는 경전으로 파악하였다. 이 경전의 이름이 담고 있는 것처럼 ‘금강’의 성질을 비유로 삼아 모든 ‘의혹’을 깨뜨리고, 모든 ‘선정’을 꿰뚫고자 하는 ‘삼매’로 중생이 부처되 는 일미관행의 길을 열어두고 있는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심 지원의 본각 부처가 중생과 만나기 위해서는 일심의 공간이 필요하다.

일심은 부처와 중생이 일미적으로 만나는 우주적 공간이며, 은밀문(여 래장)과 현료문(아리야식)이 만날 수 있는 심의식의 공간이다. 일심은 중관과 유식이 일미적으로 화회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며, 적멸로서의 일심과 여래장으로서 일심, 화엄 진심으로서 일심, 본법으로서 일심 이 만날 수 있는 지평이기 때문이다.

원효는 일심지원과 일심, 일심본각과 일각의 관계를 통해 부처와 중생 이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었으며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이것은 그가 이 경전의 편찬 취지와 의도가 가장 잘 파악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효의 주석을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번경 삼장이 ‘소’(疏)가 아니라 ‘론’(論)이라 한 것도 바로 ‘경론’의 취지와 방 향을 온전히 평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어: 금강삼매경, 금강삼매경론, 일심, 본각, 일미관행, 십중법문, 검해(혜공), 대안, 원효

 

 

Abstract

The Main Idea and Features of Treatise on Vajrasamādhi-sutra of Buhwang Wonhyo - The harmonization of Twofold Truths of the Madhyamaka School and the Three Natures Theory of the Yogâcāra School: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One Mind in Commentaries on Awakening of Faith in Mahayana (CAFM) and Original Enlightenment in the Treatise on Samadhi-sutra -

Ko, Young-seop / foreign researcher, Graduate School of Tokyo University

 

This paper examines the main idea and features of Treatise on Vajrasamādhi-sutra (TVS) of Wonhyo, which is the first treatise of Vajrasamādhi-sutra (VS) that was canonized in Silla. VS is considered a Buddhist scripture that was canonized as a result of the unification of both Silla, the main power, and Gaya, the subsidiary power. It is noted that complicated political issues have followed the unification of the two nations; we observe clues in the records, such as “the sickness of the Queen of Gaya.” These political issues have included the reorganization of the ruling system that allowed the political power of Gaya to be placed into the Golpoom system, the political system of Silla. To solve this political issue, the royal family of Silla relied spiritually on prominent Buddhist monks descended from the lineage of Gumhye 184 불교철학_ 제7집(2020.10.31) (also called Hyegong), Daean, and Wonhyo. VS and TVS demonstrate well how One Mind and Original Enlightenment, Original Enlightenment and Actualized Enlightenment, become the same One Enlightenment under the system of both the One Taste contemplation practice and Ten Dharma Gates; this is accomplished in the pursuit of harmonization of the Madhyamaka school and the Yogâcāra school. Wonhyo understood that VS is a sutra that demonstrates well how the Two Fold Truth of the Madhyamaka school and the Three Natures Theory of the Yogâcāra school harmonize with each other. The harmonization process is also exhibited in the name of the sutra itself. It is because the Vajra, or diamond, illustrates the strongest character that can demolish any kind of defilement; it bores a hole on any hard barrier of Samadhi so that a sentient being can become an enlightened person. However, for a sentient being to become enlightened, one needs to have some space to make this happen. That space is One Mind; through this universal space of mind, a sentient being can meet with an enlightened being, and esoteric teaching (tathāgatagarbha) can meet with explicit teaching (ālaya vijnāna). It is because One Mind is a space of mind that the Madhyamaka school and the Yogâcāra school can harmonize as one; likewise, different concepts of One Mind, such as One Mind as Nirvana, One Mind as tathāgatagarbha, One Mind as the True mind of Huayan, and One Mind as Original Dharma, can harmonize as one. Wonhyo opened a pathway through which a sentient being can meet with enlightened beings by clarifying the relationship between One Mind and the Origin of One Mind,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Original  Enlightenment and One Enlightenment. This demonstrates how well Wonhyo comprehended the true purpose and intention of canonizing VS. The reason the Indian translators who came to China later named Wonhyo’s work the “treatise” on VS instead of “commentaries” on VS was because of Wonhyo’s excellent comprehension of VS.

Key words: Vajrasamādhi-sutra, Treatise on Vajrasamādhi-sutra, One Mind, Original Enlightenment, One Taste contemplation practice, Ten Dharma gates, Gumhye (Hyegong), Daean, Wonhyo

 

 

 

불교철학제7집(2020.10.31) 

원고접수: 2020-10-14 심사완료: 2020-10-20 게재확정: 2020-10-23 

분황 원효 『금강삼매경론』의 주요 내용과 특징 ― 반야 중관(空性)의 이제설과 유가 유식(假有)의 삼성설의 일미(一味)적 통섭(通攝) 『기신론소 (1).pdf
1.7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