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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원효의 공성과 중도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김현구.전남大

 

목 차

Ⅰ. 서론

Ⅱ. 인도 중관학파의 공성 해석

Ⅲ. 원효의 공성에 관한 입장

Ⅳ. 중관학파와 원효의 중도

Ⅴ. 결론

 

Ⅰ. 서론

 

원효(元曉, 617-686)의 사상 가운데 중관(中觀) 사상만을 가려 뽑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사유의 특징상 한 전통만을 고집하지 않았으며 대승의 양대 산맥인 중관·유식(唯識)을 아우른 그의 횡보를 쫓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활동 시기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원효 사상의 윤곽은 그가 접한 대승 문헌들과 그가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논서들을 통해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의 특징들을 파악하고 적절히 종합하 려는 지점에서 그려진다.

이러한 관점은 중관학파(Madhyamaka)의 청변(靑 辨: Bhāviveka, 490-570경)과 유식학파(Vijñānavādin)의 호법(護法: Dharmapāla, 530~561) 사이의 논쟁인 ‘공’(空)·‘유’(有) 논쟁의 연장선상에서 접근할 수 있다. 1)

 

     1) 이수미, 「공유논쟁을 통해 본 원효의 기신론관 재고」 󰡔한국사상사학󰡕 제50집(2015), pp. 222-6 참조; 󰡔成唯識論了義燈󰡕 (T43, 1832: 660a) 護法菩薩千一百年後方始出世 造此論釋及廣百論釋 淸辯菩薩亦同時出 造掌珍論 此時大乘方諍空有. 

 

이는 신라에도 호법이 지은 󰡔대승광백론석(大乘廣百論釋)󰡕과 청변이 저술한 󰡔대승장진론(大乘掌珍論)󰡕에서의 논쟁을 원효가 충분히 인지하 고 있었을 정황에서부터 출발한다. 2)

야마구찌(山口)가 지적했듯이 공·유 논쟁의 배경은 붓다의 깨달음의 내용인 연기(緣起: pratītyasamutpāda)설에 대해 인도불교사 초기부터 있어 왔던 해석 양식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것이다. 3)

특히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사이에 있었던 사상적 대립의 특징은 자신의 관점에서 상대를 수용하려는 경향이다.

그 특징으로서 유식학파의 중관사상 수용은 요의설 (了義說, nītārtha)·불요의설(不了義說, neyārtha)에 근거한다.

이는 중관학 파의 무자성(無自性, niḥsvabhāva)설을 불요의설로 평가하는 유식학파의 입장이 󰡔해심밀경(解深密經)󰡕의 요의설·불요의설의 구분에 따라 요의설 로서의 삼상(三相, tri-lakṣaṇa) 혹은 삼성(三性, tri-svabhāva) 설을 제시하는 배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2)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의 원효사상1」 󰡔원효학연구󰡕 제5집(2000), pp. 361-6 참조.

    3) 山口益, 󰡔佛敎における無と有對論󰡕(東京: 山喜房佛書林, Re 1975), pp. 40-1, pp. 46-7 참조: 야마구찌(山口)는 공·유 논쟁에 대해 공을 주장하는 중관학파와 시설된 것으로서의 존재를 주장하는 유식학파가 각자의 특징을 상대에게 강조하는 과정에 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4) 위의 책, pp. 329-47 참조.

 

반면 중관학파의 청변과 월칭(月稱: Candrakīrti, 600-650)은 유식설을 승의의 관점에서 지양(止揚)하면서도 방편적 가르침 으로서 인정한다.

이는 중관사상을 최상의 견해로 위치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즉 중관학파가 유식사상을 수용하는 특징은 세속제(世俗諦)와 승의제(勝義諦)를 통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원효가 공·유 논쟁의 배경과 방식을 이해했다면, 그러한 대립을 화해시키는 접점을 고민해볼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원효의 사상을 분석하는 작업은 공성(空性, śūnyatā)과 중도 (中道, madhyamā-pratipad)에 관한 중관학파의 주된 주장과 유식학파 입장 을 변별한 후 그 차이를 통해 원효의 공성과 중도관이 갖는 고유한 가치를 평가하는 것이 된다.

이 글에서는 원효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이해를 인도 중관학파의 시 각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할 것이다.

이는 인도불교사에서 있었던 공·유 논쟁을 촉발한 공성에 관한 이해 방식에 근거한다.

중관학파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해석 방식과 이에 대한 원효의 이해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 만, 그것을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의 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해석의 유형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는 문화적 토양이 다른 동아시아의 변방에서 공성이 라고 하는 부정의 사유 방식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과정으로서 존재와 인식에 관한 원효의 고뇌와 혜안을 확인하는 여정이다.

 

Ⅱ. 인도 중관학파의 공성 해석 󰡔

 

중론󰡕 「관사제품」 제18게는 공성이 연기와 중도 사이를 어떻게 매개 하면서, 서로를 함축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는 연기를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것(공성)은 의존적인 언어표현 (假名)이다; 그것(공성)은 실로 중도이다.(󰡔중론󰡕 「관사제품」 제18게) 5)

 

    5) 번역은 Mark Siderits & Shōryū Katsura, Nāgārjuna’s Middle way: the Mūlamadhyamakakārikā, (Boston: Wisdom Publications, 2013) 참조. MMK(1903: 503, 10-11): yaḥ pratītyasamutpādaḥ śūnyatāṃ tāṃ pracakṣmahe/ sā prajñaptir upādāya pratipat saiva madhyamā//24-18//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에 의해서도 인용된 바 있고, 삼제게(三諦 偈)로도 알려진 이 게송은 공(空), 가(假), 중(中)의 영역을 관의 대상으로 삼는 실상(實相)에 대한 통찰과 연결된다. 6)

물론 이러한 지의의 접근은 구마라즙(鳩摩羅什, Kumarājīva: 344-413)의 제자 승조(僧肇: 384-414)의 ‘비 유’(非有)와 ‘비무’(非無)의 이제(二諦)적 해석의 유산이다. 7)

지의 역시 모든 존재들의 실체성을 부정하는 공성의 역할에 주목하였으며, 그것을 자신의 교판에 흡수한다. 8)

이렇듯 ‘공성’이라는 언어표현이 함축하고 있는 부정 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이 중관학파, 특히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의 철학적 입장을 확인하는 첩경이다. 이는 인도 중관학파의 월칭의 󰡔중론 (中論)󰡕 주석에서 ‘자성(svabhāva)의 비어있음’으로서 공성이 곧 ‘무자성’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알 수 있다. 9)

 

   6) Paul L. Swanson, 󰡔천태불교의 철학적 토대󰡕 김정희 역(서울: 씨아이알, 2015), pp. 162-9 참조. 7) Ibid, pp. 48-9.

   8) 김정희, 「천태지의의 중도불성과 관심(觀心)에 대한 소고」 󰡔철학사상󰡕 제11집 (2000), pp. 315-8 참조.

   9) “이 자성의 공성, 그것(공성)은 의존적인 언어표현이다. 실로 이 공성이야말로 언어 표현이라고 확립된다. 바퀴 등 수레의 부속에 의존해서 수레가 언어로 표현된다. 그 자신의 부분에 의존한 언어표현, 그것은 자성으로서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또 자성으로서 불생인 것 그것이 공성이다. 실로 이 자성으로서 불생인 것을 특징 으로 하는 공성이야말로 중도라고 확립된다. 자성으로서 불생인 것 그것의 존재성 (astitva)은 없으며, 또 자성으로서 불생인 것에는 소멸이 없기 때문에 비존재성 (nāstitva)도 없다. 그러므로 존재와 비존재(bhāvābhāva)의 두 가지 극단을 떠나 있 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자성으로서 불생인 것을 특징으로 하는 공성은 중도라고 말해진다. 실로 이와 같이 공성과 언어표현과 중도는 연기의 다른 이름이다.(󰡔명구 론󰡕 「관사제품」 제18게 주석)” MMK(1903: 504, 8-15): yā ceyaṁ svabhāvaśūnyatā sā prajñaptir upādāya/ saiva śūnyatā upādāya prajñaptir iti vyavasthāpyate/ cakrādīny upādāya rathāṅgāni rathaḥ prajñapyate/ tasya yā svāṅgāny upādāya prajñaptiḥ sā svabhāvenānutpattiḥ/ yā ca svabhāvenānutpattiḥ sā śūnyatā// saiva svabhāvānutpattilakṣaṇā śūnyatā madhyamā pratipad iti vyavasthāpyate/ yasya hi svabhāvenānutpattis tasya astitvābhāvaḥ/ svabhāvena cānutpannasya vigamābhāvān nāstitvābhāva iti/ ato bhāvābhāvāntadvayarahitatvāt sarvasvabhāvānutpattilakṣaṇā śūnyatā madhyamā  pratipat madhyamo mārga ity ucyate// tad evaṁ pratītyasamutpādasyaivaitā viśeṣasaṁjñāḥ śūnyatā upādāya prajñaptir madhyamā pratipad iti// 

 

티벳의 경우 무자성의 의미를 더욱 강조한다.

이러한 정황은 티벳의 강원 교재(yig cha)인 종의문헌’(宗 意文獻, Grub mtha)에서 섬세하고 다루어지고 있다.

특히 간덴(dGa 'ldan)사 원의 교재인 Grub mtha'i rnam gzhag rin chen phreng ba(이하 󰡔종의보만 (宗義寶漫)󰡕)은 중관학파를 중관종(中觀宗, dbu ma pa) 또는 무자성종(無自性 宗, ngo bo nyid med par smra ba)으로 이름하며, 그 학파를 ‘실재하는 법이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불교의 종의논사(宗義論師, grub mtha' smra ba)’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그 이름을 해석하면서 ‘상(常, rtag pa)·단(斷, 'chad pa)의 양변을 여읜 중(中, dbu)을 승인하므로 중관종 이라 하며, 제법에 실재(實在, bden grub)하는 자성(自性, ngo bo)이 없다고 설하므로 무자성종(ngo bo nyid med pa)’이라고 정의한다. 10)

 

    10) 김현구, 「중관학파의 학파적 특징과 티베트에서의 전개」 󰡔보조사상󰡕 제37호(2012), 참조; 󰡔종의보만󰡕의 영역은 Geshe Lhundup Sopa & Jeffrey Hopkins, practice and Theory of Tibetan Buddhism (Grove Press, 1976); 󰡔종의보만󰡕의 한역은 廖本聖, 「至 尊.法幢吉祥賢著《宗義建立》之譯注研究」, 󰡔正觀: 佛學研究雜誌󰡕 32, (臺灣: 正觀 雜誌社, 2005); 󰡔종의보만󰡕의 한글번역은 박은정, 󰡔불교철학의 보물꾸러미󰡕(티벳장 경연구소, 2010) 참조. 

 

다만 중관학파 가 무자성을 주장하면서 중도를 추구한다는 점을 공유하더라도 내부적으 로 입장 차이가 생겨났다는 점에서 포괄적인 공통분모와 섬세한 차이를 아는 것이 사상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관점이 될 수 있다.

간략히 용수 이후 인도 중기 중관학파로 알려진 자립논증파(自立論證 派, Svātantrika)와 귀류논증파(歸流論證派, Prāsaṅgika) 사이의 공성 논증에 관한 견해 차이를 소개한다.

두 전통의 학파적 정체성을 확보한다는 점 에 주목해서 용수의 입장을 재고해야 하는데 이는 두 학파를 분기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에지마(江島)는 두 학파의 차이가 공성 논증에 기 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에 따르면, 귀류논증이란 세속(언어관습)의 범위 안에서 진행하는 것으로서 대론자의 설을 귀류하거나 대론자의 학설 에 기초해서 추론식을 구성하고 논박을 진행하는 것이다. 11)

귀류논증파 의 관점에서 자립논증파의 입장을 비판하는 월칭의 경우 공성을 부정을 통해 얻어지는 인식의 획득으로 간주한다.

이 역시 󰡔종의보만󰡕에 잘 묘 사되어 있다.

자상으로 존재하는 것을 언설로조차 인정하지 않고 자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것이 귀류논증파(thal 'gyur ba)의 특징이다.

귀 류(thal 'gyur)만으로 대론자의 심중에 논증의 대상(所證, bsgrub bya) 을 이해하는 비량(比量, rjes dpag)이 생긴다고 주장하므로 그와 같이 부르는 까닭이다. 12)

 

    11) 江島惠敎, 「中觀思想の展開-Bhāvaviveka硏究󰡕(東京: 春秋社 1980), p. 192.

    12) Grub mtha'i rnam gzhag rin chen phreng ba, pp.74. rang gi mtshan nyid kyis grub pa tha snyad tsam du yang mi bzhed pa'i ngo bo nyi med par smra ba de, thal 'gyur ba'i mtshan nyi, ci'i phyir dbu ma thal 'gyur ba zhes bya zhe na, thal 'gyur tsam gyis phyi rgol gyi rgyud la bsgrub bya rtogs pa'i rjes dpag skye bar 'dod pas na de ltar brjod pa'i phyir. 

 

귀류로 대표되는 월칭 주장의 핵심은 잘못된 이해를 시정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오해가 사라지면서 획득된 인식 또는 바른 앎을 추구한다. 특히 이러한 이해의 기원으로 공 또는 무자성이라는 부정 표 현에 의한 인식의 의미를 󰡔회쟁론(廻諍論, Vigrahavyāvartanī)󰡕에서 잘 보 여주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말한다.

‘모든 사물들은 무자성하다’는 이 말이 모든 사물들의 무자성을 지어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자성이  없기 때문에 사물들은 무자성하다고 알려준다.

예를 들면, “데와닷따 가 집에 없음에도 누군가가 집에 데와닷따가 있다”고 말한다. 그 경우 에 [다른] 누군가가 ‘그가 [집에] 없다’라고 대응할 수 있다.

그 말은 데와닷따의 비존재를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면 데와닷따가 집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와 같이, ‘사물들에 자성이 없다’는 이 말은 사물들의 무자성성(niḥsvabhāvatva)을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 든 사물들의 ‘자성의 결여’(svabhāvasyābhāva)를 알려준다.(󰡔회쟁론󰡕 64게주) 13)

이와 같이 무자성이라는 언어표현은 실체가 있다는 착각만을 시정해 주는 말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중관학파는 무자성을 통해 대 론자의 잘못된 이해를 시정한다. 이러한 무자성의 특징 때문에 중관학파 는 공성을 부정으로 일관하는 ‘비정립적 부정’(非定立的否定, prasajyapratiṣedha)에 의한 공성 해석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14)

 

    13) 번역은 Bhattacharya Kamaleswar & E.H. Johnston & Arnold Kunst, Dialectical Method of Nagarjuna: Vigrahavyavartani, (Delhi: Motilal Banarsidass, 2002) 참조. VV(Re 2005: 80-81) atra brūmaḥ/ niḥsvabhāvā sarvabhāvā ity etat khalu vacanaṃ na niḥsvabhāvān eva sarvabhāvān karoti/ kiṃ tv asati svabhāve bhāvā niḥsvabhāvā iti jñāpayati/ tad yathā kaścit brūyād avidyamānagṛhe devadatte asti gṛhe devadatta iti/ tatra inaṃ kaścit pratibrūyān nāstīti/ na tadvacanaṃ devadattasyāsadbhavāṃ karoti kiṃ tu jñāpayati kevalam asaṃbhāvaṃ gṛhe devadattasya// tadvan nāsti svabhāvo bhāvānām ity etad vacanaṃ na bhāvānāṃ niḥsvabhāvatvaṃ karoti kiṃ tu sarvabhāveṣu svabhāvasyābhāvaṃ jñāpayati//

     14) 카츠라 쇼류, 󰡔인도인의 논리학: 문답법에서 귀납법으로󰡕 권서용 외 역(부산: 산지 니, 2009), pp. 161-2. 

 

비정립적 부정은 공성에 관한 해석의 유형으로 중관학파가 실체론 비판에 집중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을 세우지 않는 입장과 맞물려 있다.

그들이 배격하고자 하 는 것은 형이상학적 원리를 주장하는 실체론적 입장이다.

그것은 상주성을 주장하는 입장으로서 불교의 태동과 함께 비판받아 온 ‘본질주의’ (essentialism) 전통이다. 15)

특히 인도의 본질주의 전통은 그들의 언어 관습과 밀접한 관련성을 보인다.

이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인도 산스크리트 문법학(Vyākaraṇa)이 전제하고 있는 문장구성의 6가지 기능적 요소(kāraka)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빠니니(Pānini)의 문법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 는 개념인데, 특정한 동사의 동작(kriyā)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해당하는 동작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정해진 문장의 역할을 의미한다. 16)

박창환은 ‘데바닷타는 부인을 위해서 자신의 수레를 타고 마을에서 숲으로 간다’ (bhāryāyai devadatto svasya rathena gramvt vanaṃ gacchati)라는 예문을 통 해 ‘감’이라는 행위와 관련된 부인이라는 수여의 대상, 수레라는 이동 수 단, 마을이라는 분기점, 숲이라는 목적지의 여섯 가지 문법적 요소를 보 여준다.

이는 인도 문법학이 실체론적 언어관에 기초함으로써 문장의 구 성에서도 실체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포섭관계로 이해한다는 점을 지적 한다. 17)

인도 문법학 규정에서 말이나 문장 속에 행위주체(kartṛ)는 제1격 이나 제3격으로 표현되어 자재자(svatantra)로 정의된다.

이는 행위주체와 행위를 별개의 것으로 구별하기 때문에 무언가 식별한다는 행위는 그것 과 별도의 행위주체를 필요로 한다.

결국 이러한 문법적 전제는 아트만 이론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18)

 

   15) R. Bernstein, 󰡔객관주의와 상대주의를 넘어서󰡕, 정창호 외 역(서울: 보광재, 1996), p. 25: 서구 철학계의 객관주의 전통은 단일한 탐구의 기준이 존재한다고 믿는 시각 이다.

  16) 강성용, 󰡔빠니니 읽기󰡕(경기: 한길사, 2011), pp. 280-9: 예를 들면 어떤 행위자는 특정한 행위에 대해서 어떤 관계를 갖는 집단에 속하는지가 정해져야 문장을 만드 는 경우 그 행위자의 행위에 대한 관계를 표현할 수 있다.

   17) 박창환, 「구사론주 세친의 현상주의적 언어철학」 󰡔동아시아불교문화󰡕 제14집(2013), p. 35-6 참조. 원효의 공성과 중도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13

   18) 이종철, 「vijñāna에 관한 논변」 󰡔불교학연구󰡕 창간호(2000), p. 401 참조.

 

중관학파의 경우 바이쉐시카(Vaiśeṣika)학파의 논리와 상주적 자아관 을 비판하기 위해 사유의 과정을 반성하고, 언어와 대상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부정한다.

이는 소극적 실재론 또는 무화과잎 실재론(Fig-Leaf Realism)으로 알려진 실재론자들의 사유 방식을 비판하는 것인데, 󰡔중론󰡕 「관거래품(觀去來品)」의 거·래에 관한 고찰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어 거·래에 관한 고찰에서는 가는 자(gantṛ)는 6가지 기능적 요소(kāraka)와 대비해 분석해보면 가는 자를 행위주체로서 실체화하고, 가는 자의 감이 라는 행위로서 그 속성을 구분하기 때문에 실체가 속성의 소유자가 되는 모순을 보여준다.

용수는 이러한 분석의 과정을 통해 인도 본질주의 전 통에 자리한 실체적 이해를 비판하면서 행위주체와 행위 사이의 내재적 관계를 무자성에 의해 부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획득된 앎은 반성 적·부정적 사유에 의한 접근이므로 우리의 인식 상에서 잘못된 이해가 사라진 그 자리이다.

 

Ⅲ. 원효의 공성에 관한 입장

 

원효의 활동 시기를 통해 유추해 볼 때, 원효 사상의 윤곽은 그가 접 한 대승 문헌들과 그가 직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논서들을 통해 중관사 상과 유식사상의 특징들을 파악하고 적절히 종합하려는 지점에서 그려진 다.

󰡔대승기신론 소·별기(大乘起信論疏別記)󰡕에 보면 원효는 “󰡔중관론󰡕 󰡔십이문론(十二門論)󰡕 등과 같은 것은 모든 집착을 두루 깨뜨리고 또한 깨뜨린 것을 또 깨뜨리되 깨뜨리는 주체와 깨뜨려지는 대상을 다시 허락 하지 않는 ‘보내기는 하되 허락하지는 않는 논’”으로 “󰡔유가론(瑜伽論)󰡕 󰡔섭대승론(攝大乘論)󰡕 등은 심천을 두루 세워 법문을 판별하되 자신이 세워놓 은 법을 녹여 보내지는 않으니, 이것을 ‘허락하기는 하되 빼앗지는 않는 논’”이라고 한다. 19)

특히 원효의 사상이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쓰여진 󰡔금 강삼매경론󰡕은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각별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이미 원효의 사상은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와 같이 ‘관행(觀行)’ 의 성취를 목표로 한다. 이는 마음의 근원에 돌아가 하는 바 없이 모든 것을 이루는 과정이다. 20)

앞 절에서 밝힌 바대로 용수는 무자성을 통해 반성적·부정적 사유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인식 상에서 잘못된 이해가 사라진 그 자리를 도모한다.

그 자리를 새로 지시하여 언어표현 하지 않을뿐더러 인식의 영역으로서 관조하는 대상으로 설명하지 않는 다.

이 지점에서 인식주관의 역할은 초기 유가행파의 관심사가 된다. 원 효에게서는 초기유가행파의 이런 고민이 일심으로 재구성되어진 듯한데, 초기 유가행파는 가설(假說)의 존재론적 ‘의지처’(āśraya)가 필요하다고 생 각한다. 21)

이는 인도 불교사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선대 사상에 대한 지속 적 보강의 과정이지만 중관학파와 유식학파 사이의 논쟁의 단초이기도 하다.

원효의 경우는 인도 불교 전통처럼 학파적 입장에 제약받지 않았 고, 오히려 인도 불교를 화쟁적으로 수용하는 특징이 나타난다. 22)

 

     19) 󰡔大乘起信論別記󰡕 (T44 1845, 226a) 其為論也 無所不立 無所不破 如中觀論十二門 論等 遍破諸執 亦破於破 而不還許能破所破 是謂往而不遍論也 其瑜伽論攝大乘等 通立深淺 判於法門 而不融遣自所立法 是謂與而不奪論也.

    20) 박태원, 「󰡔금강삼매경󰡕·󰡔금강삼매경론󰡕의 원효사상2」 󰡔원효학연구󰡕 제5집(2001) 참조.

    21) 다케무라 마키오, 󰡔유식의 구조󰡕 정승석 역(서울: 민족사, 2006), pp. 60-1 참조.

    22) 박태원,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읽기󰡕(서울: 세창미디어, 2014) 참조.

 

특히 일심에 관한 입장이 공성에 의해 획득해야 하는 내용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원효의 사상에서 ‘일심’과 ‘공’에 관한 사유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는데, 󰡔금강삼매경론󰡕 「서품」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원효의 주 장은 다음과 같다.

무릇 일심(一心)의 근원은 존재(有)와 비존재(無)를 떠나서 홀로 맑으 며, 삼공(三空)의 바다는 승의(真)와 세속(俗)을 융합하여 깊고 고요 하다. 23)

 

  23) 이하 󰡔금강삼매경론󰡕의 번역은 은정희 송진현 역주, 󰡔원효의 금강삼매경론󰡕(서울: 일지사, 2017) 참조; “깊고 고요한 채로 둘은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며, 홀로 맑 아 양변을 여의나 중간은 아니다. 중간은 아니면서 양변을 여의었으므로 존재가 아닌 법이 비존재에 머무르지 않는다. 비존재가 아닌 상이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가 아니면서 둘은 융합하였으므로 승의의 사태가 아직 세속이 된 적 없으며, 세속이 아닌 이치가 아직 승의가 된 적이 없다. 둘은 융합하였으면서도 하나가 아 니기 때문에 승의와 세속의 자성이 세워지지 않는 것이 없고, 염오와 청정의 상이 갖추어지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양변을 떠났으면서도 중간이 아니기 때문에 존재와 비존재의 법이 만들어 지지 않는 바가 없고, 옳고 그름의 뜻이 두루하지 아니함이 없다. 이와 같이 깨뜨림이 없으면서 깨뜨리지 않음이 없으며, 세움이 없으면서 세 우지 않음이 없으니, 이야말로 이치가 없는 지극한 이치요, 그렇지 않으면서 크게 그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이 경의 대의다.”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1a) 第一述大意者 夫一心之源離有無而獨淨 三空之 海融真俗而湛然 湛然融二而不一 獨淨離邊而非中 非中而離邊 故不有之法不即住無 不無之相不即住有 不一而融二 故非真之事未始為俗 非俗之理未始為真也 融二而不 一 故真俗之性無所不立 染淨之相莫不備焉 離邊而非中 故有無之法無所不作 是非 之義莫不周焉 爾乃無破而無不破 無立而無不立 可謂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矣 是 謂斯經之大意也 良由不然之大然 故能說之語妙契環中 無理之至理 故所詮之宗超出 方外 無所不破故名金剛三昧 無所不立故名攝大乘經 一切義宗無出是二 是故亦名無 量義宗 且舉一目以題}其首 故言金剛三昧經也.

 

일심은 존재와 비존재를 떠난 중도이며, 삼공은 승의와 세속의 법을 여의어 가는 과정적 단계이다. 일심과 삼공 둘의 관계를 고찰하기 위해 삼공의 내용을 살펴보자. 

 

‘공상도 공하다’ 한 것은 공상(空相)은 곧 세속을 버려 승의를 나타낸 것으로서 평등한 상이고, ‘또한 공하다’는 것은 곧 승의를 융합하여 세속으로 삼은 것으로서 공공(空空)의 뜻이니, 마치 진금을 녹여 장 엄구를 만드는 것과 같다. ---- ‘소공(所空)도 공하다’고 한 것은 처음 공 가운데의 공이 나타낸 세속과 두 번째 나타낸 승의의 둘이 다름이 없기 때문에 또한 공하다고 한 것이다. 이것은 일제로 융합하여 일법 계를 나타낸 것이니 일법계라는 것은 이른바 일심이다. 24)

 

    24)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83c) 空相亦空者 空相即是遣俗顯真 平等之相亦空 即 是融真為俗 空空之義如銷真金作莊嚴具 如涅槃經言 是有是無是名空空 是是非是是 名空空 是明俗諦有無是非差別之相是空空義 空於平等空顯俗差別故 故此差別名為 空空 空空亦空者 空空即是俗諦差別 亦空還是融俗為真也 如銷嚴具還為金缾 第三 中言所空亦空者 謂初空中空所顯俗 第二空中空所顯真 此二無二故言亦空 是融一諦 顯一法界 一法界者 所謂一心. 

 

 첫째, 공상이다.

세속에서의 관습은 존재와 비존재, 옳고 그름의 시비 를 가리는 차별적 세계 그 자체이다.

이를 부정하는 역할을 공상이 수행 한다.

예를 들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와 같은 언명이다.

다만 이 공상 역시 부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공의 공이 제시된다.

  둘 째, 공공을 통해 분별이 제거된 무차별의 세계를 부정한다.

곧 차별적 현 상계가 다시 드러난다.

이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고 언명할 수 있다.

  셋째, 소공의 공이다.

이는 공상과 공공의 공이 공하다는 의미다.

따라서 공상은 세속을 부정함으로써 드러난 승의의 영역이며, 공공은 차 별의 그물을 벗고 다시 드러난 현상으로서 세속의 영역이다. 이는 마지 막 소공을 통해 승의와 세속의 이제가 둘이 아닌 모습, 즉 한 가지 진리 로서 드러난다.

이를 일법계로서 일심이라고 부른다. 25)

 

  25) “처음 공의 문 안에서 버린 속제는 소집상(所執相)이고,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융합 한 속제는 의타상(依他相)이니, 속제에 두 가지 상이 있기 때문에 버린 것과 융합한것이 하나가 아니다.또 처음 문 안에서 속제를 버려서 드러난 진제와 두 번째 공 가운데에서 속제를 융합하여 드러난 진제는, 즉 이 두 문의 진제는 오직 하나이고 둘이 아니니 진제는 오직 한 가지로서 원성실성(圓成實性)이다. 그러므로 버리고 융합하여 드러난 진제는 오직 하나다. 세 번째 공은 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며, 다르지도 않고 같지도 않은 것이다.”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83c) 然初空門內所遣俗者是所執相 第二空中所融俗者 是依他相 俗有二種相故所遣所融非一也 又初門內遣俗所顯之真 第二空中融俗所顯 之真 此二門真唯一無二 真唯一種圓成實性 所以遣融所顯唯一 第三空者非真非俗非 二非一. 

 

이와 같이 일심에 이르는 과정이 공성에 의한 부정적 반성의 과정이다.

역시나 원효에게서도 인도 중관학파의 사유처럼 공성은 부정적 반성 이다. 다만 우리의 인식 상에서 잘못된 실체적 이해가 사라진 그 자리가 끊임없이 개념적 사유에 영향받기 때문에, 원효는 거듭 속박의 근거를 제거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금강삼매경론󰡕에서 제시하는 일심과 󰡔기신 론소󰡕, 󰡔대승기신론별기󰡕의 그것과 차이가 나타난다. 이전 저작들이 일 심을 이론적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금강삼매경론󰡕에서는 관행이라는 실 천과 맞물려 있다. 26)

이를 위한 이치적 이해가 인식 내용으로서 ‘형상’ 또는 ‘관념’에 관한 검증이다. 중생은 본래 마음이 형상(相)을 떠나 있음을 잘 알지 못하고 두루 온갖 형상을 다 취하여 생각을 움직여 마음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먼저 모든 형상을 깨뜨림으로써 형상을 취하는 마음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허깨비로 만들어진 유상(有相)은 이미 깨뜨렸으나, 아직 허 깨비가 없다는 공성(空性)에 집착하여 그 공성을 취하기 때문에 공 (空)에 대하여 마음을 일으키므로 이번에는 무화공성(無化空性)까지 도 버리라고 하는 것이다. 27)

 

     26) 송진현 「󰡔금강삼매경론󰡕의 중도적 사유체계 연구」 박사학위논문(고려대학교 대학 원, 2005), p. 48 참조.      

     27)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5b) 眾生本來迷心離相 遍取諸相動念生心故 先破諸 相滅取相心 雖復已破幻化有相 而猶取 其無化空性 取空性故於空生心 所以亦遣無 化空性. 

 

특히 형상으로서 우리의 인식을 구성하는 관념들은 객관 세계의 존재 들로서 인(존재자)과 법의 세계이다.

이는 다시 인식의 대상으로서 소취와 인식하는 주체로서 능취로서 대별한다.

이 둘은 공한 것으로서 반드시 우리에게 이해되고 경험되어야 할 영역이다. 󰡔금강삼매경󰡕에서는 심과 아(我)로 표현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주석에서 바르게 관찰해야 할 대상 으로서 법과 인으로 소개한다.

먼저 소취의 영역 모두에서 이 둘을 여의 어야 한다.

소취의 영역에서는 이미 취한 관념을 없애는 ‘견리’(遣離)와 이미 취한 관념이 본래 공한 까닭에 없애는 ‘민리’(泯離)를 통해 존재로 구성한 관념들을 제거한다.

능취(能取)의 영역에서는 심과 아가 본래 공 함을 통달했을 때, 바로 본각(本覺)의 공적한 마음을 얻는 ‘본리’(本離)와 본각인 공적심(空寂心)을 얻었을 때 능취의 분별이 다시 생길 수가 없어서 그 마음을 얻는 대로 환화가 없어지는 ‘시리’(始離)에 도달한다. 28)

 

     28) “이것은 정관의 둘이 없는 모양을 밝힌 것이니, 소취와 능취의 두 가지를 떠났기 때문이다. 소취를 떠났다는 것은 모든 인·법의 상을 떠난 것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보내어 떠나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없애어 떠나게 하는 것이다. 견리(遣離)란 앞서 취한 상을 이제 없애 버리기 때문이니, 경에서 ‘저 중생들로 하여 금 모두 심과 아를 떠나게 한다’고 말한 것과 같다. 민리(泯離)란 앞서 취한 상이 본래 공하기 때문이니, 경에서 ‘모든 심과 아는 본래 공적한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다. 심과 아란 인을 아라고 하고 법을 심이라고 하니 마음은 모든 법이 의지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과 법이 본래 공한 것임을 깨닫았을 때에는 앞서 취한 상이 이때에 일어나지 아니하니, 그러므로 두 가지의 떠남이 한꺼번에 성취되는 것 이다. 소취를 떠나는 것을 설명하였다. 무엇이 능취를 떠난다고 하는 것인가? 이것 은 모든 능취의 분별을 떠난다는 뜻이니 여기에도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본래 떠난 것(本離)이고, 둘째는 비로소 떠난 것(始離)이다. 본리란 심과 아가 본래 공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에는 바로 본각의 공적한 마음을 얻게 되고, 이 공적한 마음은 본래 능취를 떠난 것이니 능취를 떠났기 때문에 본래 환화하지 않는다.”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5b) 是明正觀無二之相 以離所取能取二故 離所取者 以離一切人法相故 此有二種 一者遣離 二者泯離 遣離者先所取相今滅除故 如經令彼 眾生皆離心我故 泯離者先所取相本來空故 如經一切心我本來空寂故 言心我者 人名 為我法名為心 心是諸法所依主故 達諸人法本來空時 先所取相此時不起 所以二離一 時成就 已說離所取 云何離能取 謂離一切能取分別此亦二種 一者本離 二者始離 言 本離者 通達心我本來空時正得本覺空寂之心 此空寂心本離能取 離能取故本不幻化. 

 

원효는  소취의 제거를 통해 능취의 소단으로 이어지는 차제의 과정을 제시한다. 이는 본론에 해당하는 「무상법품」, 「무생행품」의 내용을 통해서도 확인 되듯이 무상관을 통해 견리 → 민리 → 본리 → 시리로 나아가지만 이는 개 념상 전개되는 것일 뿐이다.

오직 이각원통(二覺圓通)으로서 본각과 시각 의 평등한 관계만이 있다. 29)

이는 결과적으로 형상과 관념으로 구성한 일체 존재에 대해 자성이 없다는 부정적 반성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체적 사태 아래에서도 관념에 속박 받지 않는 무생(無生)의 상황에 도달한다.

무생의 행을 위한 전제는 관념에 대한 부정적 반성이다. 이와 같은 실천 적 실증적 접근을 통해 원효의 무상관은 무생의 행을 완성한다. 보살은 관행이 성취되었을 때 스스로 마음을 관찰할 줄 알아서 이치 에 따라서 수행하되, 일어나는 마음이 있지도 않고 일어나는 마음이 없지도 않으며, 또한 행이 있지도 않고 행이 없지도 않다.

다만 증익 의 변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임시로 ‘무생’이라고 하였으니 일어남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마음을 내지 않고 일어남이 없다는 것에 대해 서도 마음을 내지 않게 한 것이며, 손감의 변을 떠나게 하기 위하여 또한 임시로 ‘행’이라고 하였으니 비록 행함이 있는 행을 두지 않으나 행함이 없는 행도 없지 않게 한 것이다. 30)

 

    29) 이병학, 󰡔역사 속의 원효와 󰡔금강삼매경론󰡕󰡕(서울: 혜안, 2017), pp. 139-54 참조.

   30)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73b) 菩薩觀行成就之時 知自觀心順理修行 非有生心 非無生心 亦非有行亦非無行 但為離增益邊故假說為無生 不於有生生心 不於無生生 心故 為離損減邊 亦假說為行 雖非有有行之行 而非無無行之行故. 

 

원효가 도달하고자 제시한 무생의 경험은 존재 사태 일반에 관한 실 체적 사유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인식의 획득은 부정적 반성으로 시작하지만 부정적 반성 역시 실체화하지는 않는다.

이때 부정적 반성조 차도 실체화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 성격이 도구적이라는 의미이다.

자신 을 부정하는 것은 긍정하는 무언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에 의한 긍정의 가능성이 이미 내포되어 있다. 따라서 부정과 긍정 어느 쪽에도 머무르지 않는 마음으로서 무생의 실천이 완성되는 것이다.

다만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에서 삼공을 주석하는 방식이 중관학파 의 공성에 대한 해석과 차이가 난다.

그는 삼성설을 두 가지 진리, 즉 속제와 진제의 관점에서 병합한다.

다시 말해

 첫째, 공상을 통해 진제로 서 원성실상(圓成實性, 속제중도)이 드러난다.

둘째, 공공을 통해 드러난 속제는 의타기상이나 변계소집상이 없는 의타기상이므로 이 역시 원성실 상(진제중도)이다.

삼성설과 이제설을 병합하는 특징은 중관학파가 삼제 게에서 보여준 바와 같은 병렬적 구조로서 연기가 공이며 이는 가명으로 서 중도의 의미를 함축하는 이해와 차이가 있다.

따라서 원효의 중도관 을 고찰하면서 인도 중관학파의 공성 해석과 차이 나는 지점을 살펴보아 야 한다.

 

Ⅳ. 중관학파와 원효의 중도

 

인도 중관학파의 경우 잘못된 이해가 사라진 인식론적 지평에서 언어 의 실체적 성격을 제거한다. 중관학파의 입장에 따르면, 언어란 가유 즉 ‘언어적 실재’(prajñaptisat)일 뿐이며 모든 언어표현은 객관적 의미가 결정 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많음’과 ‘적음’ 같은 언어표현이 함의하는 의 미가 언어 그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는 오직 ‘사회적 약 원효의 공성과 중도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 21 속’(dharmasaṃketa)을 통해 규정될 뿐이다. 이런 모습이 세속 즉 우리의 ‘관습적 언어세계’(vyavahāra-satya)의 실상이다. 31)

특히 중관학파가 실체 론 비판을 위해 제시하는 주요한 접근법은 일종의 반테제를 활용하는 것 이다. 다시 말해 인도 본질주의와 함께 실재론 전통을 비판할 때 사용하 는 방식은 언어가 실체성을 담보할 때 봉착하는 역설에 직면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무자성에 바탕한 접근으로 전통적 상주론 비판 과 연결되어 중도의 한 축을 담당하고, 다른 한 축으로서 상호의존의 연 기설을 통해 비실체적 현상을 설명함으로써 단멸론을 비판하고 있다. 따 라서 무자성에 의한 상주론 비판과 상호의존의 연기설에 의한 단멸론 비 판은 중도로 지향되어지는 구조이다. 즉 중도는 상주론과 단멸론을 포함 하여 발생과 소멸 또는 동일성과 비동일성 같은 모순적인 관념들을 지양 하는 논리이다. 원효도 역시 인도 중관학파가 󰡔중론󰡕에서 문제 삼은 발생과 소멸, 존 재와 비존재에 대한 논의를 시도한다. 이는 「무상법품」에서 제기하고 있 는데 먼저 마음이 발생과 소멸에 묶이는 견해를 대치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이 묶이는 것은 세간의 사람들이 대상을 집착하기 때문에 생멸하는 무상한 마음이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생멸을 깨뜨려 마 음을 제약하는 견해를 없애는 것이다. 이는 발생에 상대해서 소멸을, 소 멸에 상대해서 발생을 주장하는 것이지, 본래 일어남이 없는데 멸하는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32)

 

     31) 김현구, 「무이(無二, advaya)의 중도적 의미」 󰡔불교학보󰡕 제74호(2016), pp. 55-6 참조.

     32) “이하 두 번째로 마음을 두는 견해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 중에 두 가지가 있으니, 바로 다스리는 것과 거듭 풀이하는 것이다. 이승인들은 법에 대한 집착이 마음에 남아 있어 생멸하는 무상한 마음이 있다고 헤아리기 때문에 생멸을 깨뜨려 마음을 두는 견해를 없애는 것이다.”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6c) 此下第二治存心見 於中有二 正治重釋 二乘人等 法執存心 計有生滅無常之心 故破生滅滅存心見. 

 

이러한 견해가 병통으로서 소단(所斷)해야 할 극단이다

. 또한 존재와 비존재라는 또 다른 극단의 견해가 있다. 이 존재와 비존재라는 견해 역시 병통으로서 관행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 법이 일어남을 볼 때라는 것은 세속법이 인연으로 일어남을 바로 관 찰하는 때이니, 이때에 비존재(空)를 취하는 견해를 떠날 수 있기 때 문에 비존재의 견해를 멸하게 하라고 한 것이다. 법이 멸함을 볼 때 라는 것은 세속법이 본래 멸하는 것임을 바로 관찰할 때이니 이때에 존재(有)를 취하는 견해를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존재의 견해를 멸하 게 하라고 한 것이다. 33)

 

    33)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7a) 見法生時者 正觀俗法因緣生時 此時能離取空之見 故言令滅無見 見法滅時者 正觀俗法本來滅時 此時能離取有之見 故言令滅有見 此 中何故言令滅者 佛教能令觀者滅故 此意正明修觀行者觀法生時只離無見而不存生 觀寂滅時唯離有見而不取滅 所以然者 若存生耶生本寂滅 若取滅耶滅即生起.

 

존재·비존재와 같은 두 극단은 한 측면에서는 발생에 근거해 사태를 존재하는 것으로 잘못 이해한 바이다.

이러한 발생은 허물이기에, 인연생 기를 통해 사태를 잘 관찰하면 비존재에 대한 집착이 제거된다. 다른 관 점에서는 소멸에 근거해 사태를 비존재로 잘못 이해한 것이다.

이러한 소멸도 허물이므로, 무상을 잘 관찰하면 비실체적 현상을 통해 존재에 대한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다. 오직 참된 관행만이 극단의 견해를 소단 하지만, 이것조차 의언분별로써 규정하는 것이 지양되어야 진정한 무생 법인을 이룰 수 있다.

원효가 발생과 소멸, 존재와 비존재와 같은 모순된 입장들에 대처하 는 양상은 인도 중관학파가 상주론과 단멸론을 극단으로 세울 때 그 자체가 중도로서 지시하는 방식과 일치하는 면이 있다.

다만 이미 인도 중 관학파와 삼론종(三論宗) 사이에 이제와 중도에 관한 입장 차이가 나타나 듯이 원효와 인도 중관학파 사이에도 차이가 있어 보인다. 먼저 인도 중 관학파와 삼론종이 보여준 이제와 중도관의 차이를 보자.

󰡔중론󰡕 「관사 제품」 제8-9게34)에 대한 주석에서 용수의 ‘약교이제’(約敎二諦) 사상을 약 경이제(約境二諦)로 해석하는 방식을 중국 삼론종이 받아들인다.

특히 이 제적 사유와 상즉(相卽)에 의한 통합적 접근이 갖는 승조의 독창적 해석 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중국에 전승된 󰡔중론󰡕 주석서인 청목(piṅgala, 靑 目: 미상)의 󰡔청목주(靑目註)󰡕를 들 수 있다.

그 까닭은 승조에게 여러 사 상적 고민을 안겨주었을 것인데, 󰡔중론󰡕에서 제시된 이제시교(二諦是敎) 또는 약교이제로서의 이제적 사유를 성현의 인식 영역에 따라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길장(吉藏: 549-623)의 이해에 보이듯이 상즉으로 드 러난 중도 실상(實相)은 변증(辨證)적 전개를 통해 논리적으로는 그 모습 을 바꾸어 간다. 35)

다시 말해 삼론종이 이제와 중도를 병합하여 변증적으 로 지향해 간 반면에 인도 중관학파는 세속과 승의에 관한 입장을 약경 이제로 확인한다.

게다가 인도 중관학파는 공성에 대한 비정립적 부정을 통해 새로운 인식 내용을 내세우지 않음으로써 공성과 중도를 동일한 지 평에서 바라본다. 36)

 

    34) “붓다들의 교법은 이제에 의거한다. 세간의 관습적 진리와 제일의 진리이다. 이 두 가지 진리의 구분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붓다 가르침의 심오한 진실을 알지 못한다.”(󰡔 中論󰡕 「觀四諦品」 제8-9게) MMK(1903: 492, 4-5): dve satye samupāśritya buddhānāṃ dharmadeśanā/ lokasaṃvṛtisatyaṃ ca satyaṃ ca paramārthataḥ//MMK(1903: 494, 4-5): ye ’nayor na vijānanti vibhāgaṃ satyayor dvayoḥ/ te tattvaṃ na vijānanti gambhīraṃ buddhaśāsane//

    35) 변증(dialectic)이란 용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였으며, 한 주장에 내 재한 모순을 지적하는 역설부터 혼란으로부터 질서, 순간에서 영원으로 도약하는 정신의 질적 변화를 의미한다.

    36) 김현구, 「승조의 상즉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pp. 19-28 참조.

 

원효의 경우 중도는 이제를 벗어나 무이(無二)의 경지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무이중도 이 외에도 ‘속제중도’, ‘진제중도’와 같은 표현이 나타 나지만 이 둘 역시 무이중도로 수렴해가는 구조를 갖는다. 37)

“또 이 세 가지 공 가운데 처음 공은 속제중도를 나타낸 것이고, 다음 공은 진제중도를 나타낸 것이며, 세 번째 공은 진제도 아니고 속제도 아니며 변도 없고 가운데도 없는 중도의 뜻을 나타낸 것이다.” 38)

이때 무이가 지니는 의미는 진속이 융합하여 중도제일의제에 들어가 는 이제가 둘이 없는 경지이다. 39)

그렇게 될 때라야 공을 취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서 필연적으로 양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無二中道)를 만나 부처님께서 들어가신 모 든 법의 실상(實相)에 들게 된다. 40)

 

     37) 특히 무이중도와 관련한 연구는 김영미(2017)를 참조할 것.

     38)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83c) 又此三空 初空顯俗諦中道 次空顯真諦中道 第三 空顯非真非俗無邊無中之中道義.

     39)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79b) 二諦之外 獨在無二 故言無住.

     40) 󰡔金剛三昧經論󰡕 (T34, 1730: 965b) 于時不生取空之心不得已會無二中道 同佛所入諸 法實相 如是化故其化大焉. 

 

결국 원효가 보여준 중도에 관한 논의는 무이를 통해 드러난다. 이 개념은 “󰡔대혜도경종요(大慧度經宗要)󰡕에 보이는데 보살이 반야를 수행하 여 아(我)와 무아(無我), 상(常)과 무상(無常), 생(生)과 멸(滅), 유(有)와 공 (空) 등을 모두 얻을 수 없음을 알아서, 일체의 형상(相)과 견해(見)를 멀 리 여의면 평등하여 제법실상을 증득한다.

이 경지는 일체 언어의 길을 초월하고 모든 심행처를 영원히 끊은 곳으로 둘이 아닌 바로서 무이라고 한다.

원효는 둘을 융합하였으나 하나가 아니며, 지키는 하나가 없어서 둘을 이룬다고 하여 무이중도를 드러낸다.”41)

원효가 사용하는 무이의 관념은 유식학파의 대표적 논서로서 󰡔섭대 승론󰡕에 먼저 나타난다.

󰡔섭대승론󰡕은 잡염·청정 이분의 근거로서 의타 기성의 역할을 논증하면서 둘이 아닌 바로서 무이에 의해 성립한 의타기 성을 제시한다. 42)

󰡔섭대승론󰡕은 인도 중관학파가 공성 해석을 비정립적 부정에 의해 이해하려는 것과는 달리 정립적 부정’(定立的否定, paryudāsapratiṣedha)에 의한 해석에 기반한다.

즉 잡염·청정 이분이 지향됨으로써 세 번째 관념이 지시된다.

이때 세 번째 관념이 비존재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무착(無着: Asaṅga, 300-390)은 ‘없음의 있음’을 주장함으로써 의타기성의 존재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43)

 

    41) 김영미, 「󰡔금강삼매경론󰡕의 무이중도 사상 연구」 󰡔동아시아불교문화󰡕 제30집(2017), p. 125; 󰡔大慧度經宗要󰡕 (T33, 1697: 70a-b) 菩薩修行般若之時 推求一切諸法性相 若 我若無我 若常若無常若生若滅 若有若空 如是一切都無所得 不得一切所取相 不起 一切能取之見 是時遠離一切相見 平等證會諸法實相 無二無別無始無終無生無滅非 有非空 超過一切語言之路 永絕一切心行之處.

    42) “세존께서 어떤 때에 모든 법은 상주한다고 설하고, 어떤 때에 무상한 것이라고 설 하고, 어떤 때에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무상한 것도 아니라고 설하였다. 어떤 의도 를 가지고 상주한다와 같이 설하였는가? 의타기자성은 원성실성의 부분에 말미암 아 상주하는 것이고, 변계소집성의 부분으로 말미암아 무상한 것이다. 저 두 부분 으로 말미암아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 상주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의도에 의거해 이와 같이 설한 것이다.” MS(1982: 92-93 Ⅱ. 30): bcom ldan ‘das kyis la lar ni chos thams cad rtag go zhes bstan, la lar ni mi rtag go zhes bstan, la lar ni rtag pa yang ma yin mi rtag yang ma yin no zhes bstan pa ci las dgongs te, rtag pa zhes bstan ce na, gzhan gyi dbang gi ngo bo nyid yongs su grub pa’i chas rtag[brtag(P)] pa’o/ kun tu brtags pa’i ngo bo nyid kyi chas mi rtag pa’o/ gnyi ga’i chas rtag pa yang ma yin mi rtag pa yang ma yin pa ‘di las dgongs nas bstan to/

    43) 김현구, 「무이(無二, advaya)의 중도적 의미」, pp. 49-57 참조.

 

이러한 사유는 희론(戱論, prapañca) 이 멸한 소취와 능취의 비존재성으로의 공성을 ‘남아 있는 것’이라고 주장 하는 󰡔현양성교론(顯揚聖教論)󰡕 「성무성품(成無性品)」, 󰡔중변분별론(中邊 分別論)󰡕 「상품(相品)」 제1게에 대한 세친(Vasubandhu, 世親: 400-480)의 주 석에도 나온다. 44)

필자의 관점에서는 원효가 의타기성의 존재성을 확보하려는 유식학 파의 무이의 입장을 직접적으로 가져왔는지 현재까지는 찾아보기 힘들 다. 일단 원효가 󰡔금강삼매경론󰡕의 삼공에 대해 이제의 관점에서 삼성설 을 병합하는 주석과 󰡔섭대승론󰡕을 인용하여 삼성설을 설명하는 대목이 󰡔대승기신론별기󰡕에 나타난다. 이 구문들은 의타기성의 존재성을 확보하 려는 󰡔섭대승론󰡕 무이 관련 구문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나, 원효는 의타 기성의 존재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추후에 엄밀한 연 구가 요청된다. 45)

 

    44) 김현구, 「승조의 상즉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동아시아불교문화󰡕 제25집 (2016), pp. 5-6 참조; 金成哲, 󰡔섭대승론 증상혜학분 연구󰡕(서울: 씨아이알, 2008), p. 117 참조: 유가행파에 따르면 공성이란 소취와 능취가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서 존재이다. 하지만 이때의 공성이란 소취와 능취가 ‘남아 있지 않는 것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어떤 것(B)에 어떤 것(A)이 없을 때 어떤 것(B)은 곧바로 남아 있는 것(C)의 상태가 되지만, 남아 있는 것(C)은 어떤 것(B)과는 다른 존재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45) 아직까지 원효의 󰡔섭대승론󰡕 삼성설 인용구문과 해석에 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이 루어지지 않았고, 이 분석 자체가 새로운 연구주제에 해당하므로 관련 연구자의 분 석을 요청한다. 

 

 

다만 현재까지의 원효 연구가들이 제시한 바와 같이 원효가 인도 유식학파나 중관학파처럼 자신들의 교의체계를 중심에 두어 야 할 명백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두 사상을 자신의 사유 방식과 실천 방식에 부합하도록 적용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대신 원효 에게서는 유식학파의 수행체계를 수용하면서 중관의 공성을 언어적 개념 으로서 이해하기보다 실증적으로 체험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다시 말해 존재세계 일반에 관해 인식론적으로 접근하여 부정이라는 사유를 통해 의식의 확장을 도모한 것이고 의식의 확장이 이루어지는 자리를 정립한 것이다.

 

Ⅴ. 결론

 

이 글에서는 원효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이해를 인도 중관학파의 시 각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였다.

이는 인도불교사에서 있었던 공·유 논 쟁을 촉발한 공성에 관한 이해 방식에 근거하였다.

중관학파가 공성에 관한 이해를 토대로 비정립적 부정을 추구하였다면 유식학파의 무착의 경우는 의타기성의 존재론적 논증을 위해 정립적 부정의 형식을 취한다.

원효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해석 방식의 특징을 어떤 학파적 종속도 받 지 않았다는 점에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의 통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해석의 한 유형이라고 간주하였다.

원효의 사상적 횡보는 인도불교사 안에서 중관사상과 유식사상 사이 의 대립을 화해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인물로서 적호(寂護: Śāntarakṣita, 725-784)와 비견할 만하다.

적호의 경우 티베트 종의문헌의 구분을 따르 면 유가행중관파(Yogācāra-Mādhyamika)에 속한다. 46)

그는 유가행에 의지 하여 세속의 관점에서 유가행의 종의와 일치하여 유식(唯識)으로 증명하 고, 승의의 관점에서는 식도 무자성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중관장엄 론(中觀莊嚴論), Madhyamakākālaṃkāra󰡕을 저작하였다. 47)

 

    46) 적호의 학파 귀속 여부는 이태승, 󰡔샨타라크쉬타의 중관사상󰡕(서울: 불교시대사, 2012) pp. 33-86 참조.

    47) 김현구, 「중관학파의 학파적 특징과 티베트에서의 전개」, p. 348: 티베트 불교사 전전 기에 나타나는 중관학파는 경중관(mdo sde pa'i dbu ma)과 유가행중관파(rnal abyor sbyod pa'i dbu ma)로만 분류된다.

보다 주목해야할 것은 티베트 종의문헌에서 중관학 파에 대한 전전기(前傳期, snga dar)와 후전기(後傳期, phyi dar)의 기술체계가 변화한 다는 사실이다. 이는 전전기에 적호와 연화계(蓮花戒: Kamalaśīla, 740-797경)를 최고 의 사상으로 간주하다가 후전기에 귀류논증파를 최고의 견해로 승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들을 불교 사상사의 연속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해 본다면, 원효의 중관사상 이해는 창의적이면서도 발전적인 전개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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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이 글에서는 원효가 공·유 논쟁의 배경과 방식을 이해했다는 전제 아래, 원효의 공성(空性, śūnyatā)과 중도(中道, madhyamā-pratipad)에 관한 사유 방 식을 인도 중관학파의 주된 주장과 차이를 통해 드러낸다.

이를 위해 원 효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이해를 인도 중관학파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비록 중관학파의 공성과 중도에 관한 해석 방식과 이에 대한 원효의 이해는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그것을 중관사상과 유식사상의 통 합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해석의 유형으로 간주한다.

다 시 말해 원효는 유식학파의 수행체계를 수용하면서 중관의 공성을 언어 적 개념으로서 이해하기보다 실증적으로 체험하려는 특징이 보인다.

이 는 문화적 토양이 다른 동아시아의 변방에서 공성이라는 부정의 사유 방 식을 받아들여 습합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주제어 : 원효, 공성, 중도, 공·유 논쟁, 인도 중관학파 

 

Abstract

A Study on the View of the Middle Way and Emptiness of Wonhyo

Kim, Hyun-gu / CNU BK21Plus, Research Professor

The purpose of this thesis is to deal with the view of ‘the middle way’(中道, madhyamā-pratipad) and ‘emptiness’(空性, śūnyatā) of Wonhyo in terms of ‘the debate on emptiness and existence’(空有論諍). In short, this is an attempt to critically examine the view of Wonhyo which reflects Korea Buddhist tradition from the lens of the Indian Madhyamaka. Although the perspectives of the middle way and emptiness from the Indian Madhyamaka and Wonhyo's are different, Wonhyo is characterized by demonstrating the conduct of Yogācāra rather than holding up the concept of emptiness itself. In other words, it is regarded as the type of interpretation that can be seen in the process of pursuing the integration of the Indian Madhyamaka and Yogācāra thinkings. This is the approaching to the universality of existence through the epistemological way for the expansion of consciousness that it has been approached by negation so it founds the plateau of consciousness.

Key words: Wonhyo, emptiness(空性, śūnyatā), the middle way(中道, madhyamāpratipad), the debate on emptiness and existence(空有論諍), the Indian Madhyamaka

 

원고접수: 2017. 10. 17 심사완료: 2017. 10. 22 게재확정: 2017. 10. 27

불교철학 제1집 

 

원효의 공성과 중도관에 대한 인도 중관학파적 리뷰 『금강삼매경론』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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