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Praedication verbi Dei est verbum Dei).
이 명제는 제 2 헬베틱 고백서에 하인리히 불링거가 종교개혁의 정신을 종합하여 담은 설교에 대한 정의이다. 2)
2) The Office of the General Assembly Presbyterian Church (U.S.A.), “The Second Helvetic Confession,” in The Book of Confession, pt. 1, The Constitution of the Presbyterian Church U.S.A., (Louisville: Office of the General Assembly, Presbyterian Church USA, 2002), 53-54.
같은 고백서에서 불링거는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 인 이유는 성육신하신 말씀으로서 그리스도와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경과 함께 선포된 말씀으로서 설교가 같은 속성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의 다른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혁교회의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설교에 관한 정 의는 20 세기 들어서 칼 바르트에 의해 말씀 사건이라는 개념으로서 재조명되어 개신교 설교학의 근간을 이뤄왔다.
뿐만 아니라, 바르트의 말씀의 신학의 영향 을 받은 칼 라너 및 에드워드 스킬레벡스와 같은 가톨릭 신학자들의 공헌으로 「하나님의 말씀(Verbum Dei)」이라는 교황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제 2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에서도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례전과 함께 하 나님의 현존을 매개하는 계시의 채널로서 성례적 성격이 있음을 인정하게 되었 다. 3)
사실 이러한 이해는 종교개혁자들의 발명품이 아니라, 초대교회로부터 전 해져 온 교회의 설교에 관한 고백의 재확언이다.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교회 전 통과 궤를 같이 하며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고백을 공유하고 있다.
2009 년 목회와 신학, 한국설교학회, 글로벌 리서치가 전국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에 대한 인식에 관해 조사한 통계를 보면, 68.7%의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 혹은 선포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4)
3) 마틴 루터부터 바르트, 현대 설교학에 이르는 하나님 말씀으로서 설교에 관한 이해가 가톨릭 성례 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해 다음을 참조하라. Jung Jaewoong, "The Sacramentality of Preaching: A Sacramental Theological Approach to Preaching as the Word of God," Theology and Praxis 70(2020), 61-92.
4) 목회와 신학 편집부, 『한국교회 설교분석』(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09), 29-36. 150․신학과 실천(Theology and Praxis)
10 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이러한 설교에 대한 인식은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이러한 인 식에 동의하지만, 풀리지 않은 문제는 "설교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 는가" 혹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를 통해 체험하는가"하는 것 이다.
전통적으로 한국교회는 이러한 질문에 성서 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성서 본 문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한다고 답해왔다.
불링거부터 바르트까지 개혁 교회 전통이 고백하는 삼중 말씀의 전제 아래 성서 본문에 충실한 설교가 하나 님의 말씀을 전달한다고 설명해왔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과업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고 이를 본문에 충실한 설교 원고로 잘 정리해서 회중 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쓰임 받는 설교자는 감정을 절제하고 원 고에 있는 내용을 낭독하는 아나운서 혹은 대변인과 같은 역할을 요구 받는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역사하는 것은 설교자의 기교나 지식이 아닌 선포 된 말씀을 통해 일하시는 성령이시기에 설교자는 말씀에 복종하는 종 혹은 말 씀을 전달하는 수도관과 같은 통로일 뿐이며, 회중은 수동적 수용자로서만 이 해될 뿐이다.
대체로 이러한 관점에서 설교의 경험은 텍스트를 이해하고 해석 하는 지성적인 활동으로 묘사된다.
필자 역시 이러한 개혁교회 전통의 고백에 대해 동의하지만, 이러한 이해가 설교의 실행에서 발생하는 하나님 체험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관한 실제적인 의문점들을 해소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설교의 경험을 지나치게 텍스트 해석이라는 문해적인 차원에서의 지적 경험에 집중하 다보니, 설교가 신체를 통해 수행되고 전달되는 행위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즉, 설교가 성서 본문을 매개로 한 문학-해석학적 말씀 사건임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설교라는 말씀 사건에서 텍스트에 담긴 말씀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용하는 주체는 텍스트가 아니라 신체를 가진 인간이며 이러한 말씀 수용의 과정은 예배라는 수행미학적 컨텍스트(performative aesthetic context)에서 일 어나기 때문에 설교에서 말씀 경험은 단지 성서 본문의 구술적 주해를 통해서 만이 아니라 신체적 실행(embodied practice)을 통한 신체미학적 해석학적 과 정(kinesthetic hermeneutical process)을 통해 구성된다는 이해의 균형이 필요 하다.
설교에서 일어나는 하나님 현존 경험이 체화된 말씀 사건임을 논의하기 위해 본 논문은 먼저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퐁티의 현상학 및 체화된 인지 이 론, 사회적 기억이론 등을 통해 인간의 인지 활동이 본질적으로 체화된 경험임 을 논의하고, 다음으로 이에 근거하여 퍼포먼스 설교학의 계시 경험에 관한 이 해를 보다 발전시켜 설교에서 신체를 매개로 한 하나님 경험을 설명하고자 한 다.
이를 통해 텍스트를 어떻게 해석하고 전달할 지에 관한 전통적인 설교학적 관심사를 보다 확장시켜 설교의 수행미학적 측면에 관한 논의를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II. 인간의 인지 활동에 관한 성육신적 이해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상 술한 바와 같이 이는 그리스도교 교회들이 보편적으로 고백하는 내용이다. 그 러나 이는 선험적 신학적 명제라는 점에서는 참이지만 실제 그것이 어떻게 발 생하고 경험되는가에 관해서는 다른 관점에서 탐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설교에서 말씀하시는 사건-곧 말씀 사건은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존재론적 차 이를 가진 두 주체가 참여하는 이중적 현상이다.
그런 점에서 신학적 이해와 함께 현상학적 이해가 필요하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인 설교를 통 해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 자체로 참인 신학적 명제이나, 인간이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인간학적인 차원의 질문이 남아 있는 것 이다.
이에 관해 프레드 크래독은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어떤 이들 에게는 그것이 지붕 위에서 들리는 천둥소리처럼 자명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은 소리일 수 있고, 어떤 이들에게는 세미한 음성일 수 있다는 것이 다. 5)
5) Fred Craddock, Preaching, 25 th anniversary ed., (Nashville: Abingdon, 2010), 55-60.
그러므로 인간의 편에서 설교에서 말씀 사건 경험이 어떻게 발생하는지는 신학적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즉, 우리는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경험하는가?" 혹은 "인간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다고 인식하 는가?" 하는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
1. 메를로-퐁티의 현상학적 이해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필자는 인간 의식 속에 발생하는 경험을 연 구하는 현상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상학은 "사태 그 자체로(Zu den Sachen selbst)"라는 모토에서 드러나듯이 사태가 발생하는 그 자체를 있 는 그대로 기술하고자 하는 학문이므로, 설교에서 말씀 사건 경험에 관한 현상 학적 연구는 인간의 경험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다. 먼저 현대 철학에서 전개되 고 있는 심신이원론 (心身二元論)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심신일원론(心身一元 論)적 현상학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서구 철 학의 심신이원론적 전통에서 볼 때에 인간의 하나님 말씀 경험은 주로 정신적 지적 활동으로 이해되어왔다.
인간이 몸을 가진 존재라는 것은 선험적 사실이 나, 몸은 정신을 담는 그릇 혹은 두뇌의 껍데기 정도로만 여겨졌기 때문에 몸이 인간의 인지 활동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20 세기 중반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에 드먼드 후설(Edmund Husserl)의 현상학에 기반하여 신체가 인간의 인지 활동 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독특한 인지 활동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했다.6)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적인 심신이원론을 반박하면서 인간의 몸 은 두뇌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라고 주장한 다.
즉, 데카르트가 "나는 몸을 가졌다(I have the body)"라고 생각했다면, 메를 로-퐁티는 "나는 몸이다(I am the body)"라고 주장하는 것이다.7)
정신은 몸 안 에 존재하는 것이기에 분리할 수 없으며, 인간이라는 존재는 세계 내의 신체적 존재이며 인간의 경험은 체화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신체는 세 계-내-존재의 매체(the vehicle of being in the world)이고, 살아있는 존재에게 있어서 신체를 가진다는 것은 어떤 특정 환경에 통합되어 있으며, 어떤 기획과 일체가 되는 것이고 계속적으로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8)
즉, 신 체는 인간의 세계 내 현존 방식이며, 세계를 지각하는 인간의 해석학적 활동의 정초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신체적 현존 방식이 인간의 지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메를로-퐁티는 육화된 존재로서 인간의 지각은 신체적 경험을 기반으로 하 기에 모든 인간의 지각 활동은 체화된 지식임을 주장한다.
그에게 몸은 죽은 몸 과 같이 물질적 대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몸으로서 지각의 주체이다.
즉, 인간 은 생활세계(the lived world, lebenwelt) 내에서 살아있는 몸(the lived body)으 로서 존재하며 지각하는데, 이 때 신체는 지각의 대상(the objectified body, le corps objectif)임과 동시에 지각의 주체인 현상학적 몸(the phenomenal body, le corps phénoménal)이다.9)
6) 메를로-퐁티는 데카르트적 이원론을 공유하는 주지주의와 경험주의적 관점을 비판 하면서 몸과 정신이 하나임을 주장한다. Maurice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trans. Donald A. Lander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2014), 13-51, 97-99. 국내 학자들 중 메를로-퐁티의 몸의 현상학을 논의한 저작은 다음을 참조하라. 김정형, “몸의 현상학과 몸의 사회학을 통한 몸의 부활 교리의 현 대적 재해석 가능성 탐구,”「신학사상」189(2020), 231-235; 전현식, “성육신 신앙의 몸 현상학, 몸 신학적 이해,”「신학논단」56(2009), 339-361. 유사한 맥락에서 다음 논문도 기독교 신학에서 몸의 의미에 관한 귀한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김은혜, “포 스트 바디시대에 대한 신학적 응답: 성육신적 몸과 신체의 개념을 중심으로,”「신학 과 실천」68(2020), 759-784.
7)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205.
8) Ibid., 84.
9) Ibid., 73-74, 84.
그러므로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몸은 지각하고, 인식하고, 사유하는 주체, 즉 의미의 운반수단일 뿐만 아니라 의미를 지각하고 의미가 실현되는 코기토의 주체이다. 10)
그렇다면, 인간의 몸은 어떠한 방식으 로 사태를 지각하는가?
메를로-퐁티는 세계-내-현존으로서 몸이 사유하는 방 식으로 언어에 대해 다룬다.
그는 언어를 통한 인간의 의사소통은 단순히 기호 화된 정보를 교환하는 행위가 아니라, 인간이 실제 몸으로 생활세계에서 경험 한 것을 언어라는 매체를 통해 소통하는 행위라고 이해한다. 또한 말을 하고 지 각하는 행위는 몸을 통해서 일어나므로 말과 같은 언어적 활동 역시 근원적으 로 신체를 매개로 하여 발생하는 체화된 행위라고 주장한다. 11)
더 나아가 그는 언어와 같이 추상적 기호체계를 통한 의사소통 뿐만 아니라 인간이 실제로 몸 을 움직이며 획득하는 신체적 지식이 존재함을 제시하고 이를 실천지 (praktognosia)라고 설명한다.
메를로-퐁티는 "우리의 몸의 동적 경험은 실천지(praktognosia)라는 세계 와 대상에 이르는 방식을 제공해 준다"고 주장한다.12)
인간이 실천지를 획득하 게 되는 것은 생활세계에 존재하는 신체가 운동성(motricity)과 공간성 (spatiality)을 갖고 있는 데서 기인한다.
공간성이 몸이 공간적 세계 안에 존재 함을 가리킨다면, 운동성은 몸이 시공간 안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즉, 공간성이 인간이 세계 내에서 신체로서 존재하는 조건을 의미한다면, 운동성은 신체가 시공간적 세계 가운데 어떻게 행위하고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13)
이런 점에서 움직임 혹은 동작(movement)은 몸의 운동성이 나타나는 방식을 보여주 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메를로-퐁티는 동작을 주체가 객체와 관계하 는 지각의 원초적 방식이라고 묘사하면서 이를 동적 의미화(a motor signification)라고 부른다.14)
10) 강미라,『몸 주체 권력: 메를로 퐁티와 푸코의 몸 개념』(서울: 이학사, 2011), 70, 75.
11)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199, 179-205. cf. 조광제,『몸의 세 계, 세계의 몸: 메를로-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 대한 강해』(서울: 이학사, 2004), 245-265.
12)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148.
13) Ibid., 127-155.
14) Ibid., 113. 메를로-퐁티가 설명하는 실천지는 부르디외의 실천적 지식(practical sense)과 유사하다. Pierre Bourdieu, The Logic of Practice, trans. Richard Nice,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0), 86, 80-97.
특별히 그는 몸짓(gestures)이나 신체적 기호 (bodily signals)와 같은 추상적 동작에 주목하며, 이러한 신체적 동작은 인간의 몸이 세계를 지각하고 자신이 지각하는 세계에 관한 의식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메를로-퐁티는 습관을 실천지 혹은 동적 의미화의 예로 제시한다. 새로운 안무나 수영 영법을 배운다고 하자. 이 때 댄서나 수영을 배우는 사람은 어떻게 동작을 해야 하는지에 관해 언어적 교육을 통해서도 배우게 되지만, 동시에 실 제 그것을 몸을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실행하는 비언어적 신체적 움직임을 통해 어떻게 동작을 수행하는지 배우게 된다. 반복적인 실행이 습관이 되어 몸이 기 억하게 되면, 행위자는 그 동작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일 상생활에서의 몸짓이나 신체적 기호, 더 나아가 예술이나 종교에서 실행되는 신체 동작들은 기능적인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성하고 전달한다. 즉, 몸은 단순히 생각의 작용을 통해 발생하는 의미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채널 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성하고 세계를 이해하는 "의미가 충만한 핵심 "이다. 15)
15)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148.
약술하자면, 메를로-퐁티는 인간은 문자와 같은 언어적 기호 체계를 매개로 한 지적 학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동작과 같은 신체적 경험을 통해 세 계에 관한 지식을 획득한다는 것을 밝히면서 지적 추론을 통한 인식론과는 구 별되는 신체적 인식론(somatic epistemology)을 제시한다.
2. 체화된 인지 이론의 인식론
이러한 몸에 관한 현상학적 이해에 기초하여, 20 세기 후반에 체화된 인지이 론(embodied cognition theory)이 등장했다. 16)
16) 체화된 인지이론에 관하여는 다음 저작들을 참고하라. Mark Johnson, The Body in the Mind: The Bodily Basis of Meaning, Imagination, and Reason, (London and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7), xix-xxxx; Francisco J. Varela, Evan Thompson, and Eleanor Rosch, The Embodied Mind: Cognitive Science and Human Experience, (Cambridge, MA: MIT Press, 1991), 15-23; George Lakoff and Mark Johnson, Philosophy in the Flesh: The Embodied Mind and its Challenge to Western Thought, (New York: Basic Books, 1999), 16-44; Shaun Gallagher, How the Body Shapes the Min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5), 17-39; Lawrence Shapiro, Embodied Cognition, (New York: Routledge, 2011), 1-6.
메를로-퐁티가 체화된 인지에 관한 철학적 이해의 기초를 제공했다면, 체화된 인지이론가들은 경험주의적 연 구들을 통해 신체와 정신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연결되어 있으며, 신체가 정신 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입증하고자 한다.
신체가 인간의 세계내 존재 방식이 며 경험의 근원적 조건임을 주장한 메를로-퐁티와 같이 체화된 인지학자들은 신체가 인지의 근본적 정초이며 정신은 체화된 것이라고 본다. 더 나아가, 체화 된 인지학자들은 메를로-퐁티의 실천지로 대표되는 신체를 통한 지식의 개념 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몸이 의미를 구성하는지를 연구한다. 예를 들어, 마크 존 슨(Mark Johnson)은 상상(imagination)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이 몸을 통 해 경험하는 것을 어떻게 추상적 개념으로 발전시키는지를 논의한다. 17)
인식론 적인 측면에서 상상이란 공상(imaginary)과는 달리 존재하지 않는 것을 머릿속 으로 그려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세계에서 경험한 이미지를 기반으로 사 유하는 방식을 이른다.
존슨은 이미지 도식(image schemata)과 은유적 투사(metaphorical projection) 라는 경험을 상상력을 통해 구성하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첫째, 이미지 도식은 "우리의 경험을 구조화하고 연결시키는 개념적인 상호작용과 공적 프로 그램의 반복적이고 동적인 패턴"이다.18)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위와 아래라는 방향을 지각할 때에, 이러한 공간에 관한 지각은 이미지 도식의 일종인 수직적 도식을 활용하여 발생한다.
수직적 도식이라는 것은 공간 안에서 수직이라는 추상적 구조이지만, 공간 안에 존재하는 신체가 신체 도식을 통해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들을 통해 획득된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일어서려고 한다면, 그 행 위자는 자기 몸 안에 각인되고 이미지화된 수직 도식을 활용하여 그 동작을 수 행하게 되는 것이다.19)
17) Johnson, The Body in the Mind, xiv-xv, 139-172.
18) Ibid., xiv, 29, 79.
19) Ibid., 75-76. 마크 존슨의 이미지 도식에 관한 설명은 메를로-퐁티의 신체 도식에 의한 지각 이론에 근거함을 알 수 있다. cf.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244, 253-311.
둘째, 은유적 투사는 경험을 상상력을 통해 구성하는 다른 방식이다.
존슨은 은유란 우리의 신체적 경험을 통해 얻은 패턴들을 활용하여 추상적인 이해 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정의한다. 20)
즉, 인간은 신체적 활동을 통해 획득한 구 체적 경험을 우리가 이해해야하는 추상적 개념에 은유적으로 투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격이 올라간다"라는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공간 안에 신체를 통해 체득한 위-아래 방향이라는 이미지 도식을 사용한다. 이 때, "올라 간다"라는 개념은 공간 안에서 물리적 위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더 비싸다는 것의 은유로 확장되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21)
필자는 은유적 투사가 신학적 이해의 과정에도 작동한다고 본다. 우리가 " 높이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신체적으로 경험한 "위"라는 이미지 도식을 활용하여 이해한다.22)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한 추상적 개념들을 이해하려 할 때에 이미지 도식을 은유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 므로 게렛 그린(Garrett Green)이 주장한 바와 같이, 상상력은 인간의 경험과 하나님의 계시가 만나는 접점이자 인간이 계시를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23)
20) Johnson, The Body in the Mind, xv.
21) Ibid., xv, 65-100.
22) 여기에서 신체적 경험은 시각적 경험만이 아니라 시공간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모 든 운동감각적 경험을 포함한다. 예를 들어,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의 경우라 할지라 도 "위"라는 공간 개념을 인지할 수 있다. 이는 시각을 상실했다 할지라도 중력이 작 용하는 공간 안에서 앉고, 일어서고, 눕는 등의 신체적 동작을 통해 체득한 지식이 다. 메를로-퐁티는 뇌손상환자인 슈나이더의 경우를 논의하면서 신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몸에 각인된 신체도식(body schema)을 통해 세계를 지각하는 것 이 유효함을 설명한다.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78-91) 필 자는 이러한 추상적 개념의 인지과정에 언어 역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인간에게 있어서 몸만큼이나 언어는 자명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관한 추상적 사유에 있어서도 역시 신체를 통한 운동감각적 이해와 언어를 매개로 한 이해가 통합되어 은유적 상상으로 발현된다고 볼 수 있다.
23) Garrett Green, Imagining God: Theology and Religious Imagination, (Grand Rapids, MI: Eerdmans, 1989), 28-40, 84. 찰스 바토우는 상상력은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자리라고 하며 설교에서의 계시 경험을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논한다. cf. Charles L. Bartow, God's Human Speech: A Practical Theology of Proclamation, (Grand Rapids, MI: William Eerdmans Publishing, 1997), 37.
이러한 신체를 통한 초월적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식이 잘 드러나 는 곳이 예배이다. 예배를 드리며 수행하는 많은 상징적 행위들은 단지 의미 없는 몸짓에 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 내고 의미를 표현하며, 동시 에 그를 통해 하나님을 사유하는 은유적 방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성체를 거양하면서 왜 집례자는 빵을 위로 드는가? 찬양 중에 예배자들이 손을 높이 드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설교자가 설교 중에 손을 들어 하늘 을 가리키는 것은 청중들의 의식 속에 어떤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촉진하는가?
그동안 이러한 예배 가운데 수행되는 퍼포먼스들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발산 혹 은 별 의미 없는 몸짓 정도로 여겨졌지만, 은유적 투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몸을 통해 이해하고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징적 행위들을 수행하는 신체는 단지 생각이나 의식 의 저장고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경험하고 이에 관한 의미를 구성하고 표현 하는 실존적 기초이며 더 나아가 예전적 퍼포먼스는 인간이 몸을 통해 하나님 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는 방식임과 동시에 몸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방식 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3. 사회적 기억의 변증법을 통한 체화된 인지
앞서 마크 존슨의 체화된 인지이론을 신학적 은유적 상상에 적용하여 예전 적 퍼포먼스가 상상력을 통한 계시 경험을 구성할 수 있다고 했으나, 이러한 주 장은 혹자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곡해 혹은 오해의 여지를 열어주는 것으로 생 각될 수 있다. 즉, 은유라는 것이 비교하는 두 대상이 일치함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르지만 공통적인 속성을 발견하고 연결 짓는 작업이기에 배태하고 있는 은유적 상상의 인식론적 오류의 위험을 지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타당한 지적이며, 필자 역시 은유적 상상을 통한 인식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잠정적인 것임을 강조하고 싶다. 비교 대상의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공통점을 상상력을 통해 적절하게 연결시킬 수 있을 때 은유는 합당한 인식으 로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않을 때에는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거부된다. 또한 은 유를 통해 인식하는 대상이 실재하는 것이라면, 은유가 표현하는 대상의 속성 과 실재의 속성이 일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말을 할 때에 혹은 손을 높이 들어 높이 계신 하나님을 가리킬 때에 이는 공간의 한계안에 경험되고 표현되는 표상을 통해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간을 초월하여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온전히 일치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이 자신의 경험의 한계 내에서 상상하고 언어로 표현하는 하나님은 공간적인 의미에서만 "위에 계신 분"이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위에 계신 분"으로서 은 유적 언어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기술은 성서에 서 기술된 하나님의 표상과도 일치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 요컨대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지각의 한계 내에서 지각하고 상상하기 때 문에 하나님에 관한 이해와 경험을 은유적 상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성서 의 언어가 과학 논문에 쓰인 글과 같이 실험을 통해 검증 가능한 데이터라기보 다는 은유적 언어인 것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나님 경험을 증언하는데서 오는 한계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지각의 한계는 신체적 지각의 한 계와 인간의 불완전한 상상력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언어의 한계이며 이성의 한계이기도 하다. 즉, 이성적 추론이든 신체적 지각이든 인간의 지각은 불완전 하며 온전히 신뢰할 수 없으며, 신체적 동작을 통해 표현하고 전달하는 의미뿐 만 아니라 설교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의미 역시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지각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그것이 공동체가 보존하 고 증언하는 실제 계시 사건의 기억과 일치하는 지 여부를 검증해야 한다.
기독 교 신학에서 하나님의 원계시 사건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사건이기에 그리스 도인이 경험하는 하나님 체험은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과 일치하는 지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사회적 기억 이론을 주목한다.
신체적 실행을 통해 획득한 체화된 지식은 개별 신체적 경험을 타인과 공 유할 수 없는 개인적 지식이다.
특별히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는 은유적 상상을 통한 지식이기 때문에 인식론적 오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회적 기억 이론은 이러한 개인적으로 체화된 지식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승인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변증법적 과정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찬양 중에 손을 들면서 그 몸짓이 지향하는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든 지 언어와 몸짓으로 전달되는 설교를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했다고 주장한다고 하자.
이러한 경험은 그것을 인식하는 개인에게는 분명한 사실 로 인식될 수 있지만, 그 개별적인 몸의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는 신뢰할 수 없는 주장에 불과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승인 받지 못한 개인의 경 험은 그 행위자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경험의 진정성에 대해 회의하도록 한다.
만약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타인들이 공유할 수 있다면, 혹은 자신이 속한 공동 체에 의해 승인될 수 있다면, 개인의 신체적 경험은 진실되고 신뢰할만한 경험 으로 인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자신의 개별적 신체를 통해 경험한 의례 적 지식은 사회적 승인을 추구한다.
사회적 기억 이론의 대표적인 학자인 폴 코너톤(Paul Connerton) 은 모리 스 알박스(Maurice Halbwachs)의 집단 기억 이론을 발전시켜 사회적 기억의 변증법을 제시한다.
코너톤에 따르면 공동체가 어떤 의미 있는 사건을 공동으 로 경험하게 될 때에 사회적 기억을 형성하게 되며, 이 때 공동체는 이 의미 있 는 사건에 관한 기억을 공유하고 전수하기 위해 문서와 같은 기록 저장 매체와 함께 의례적 퍼포먼스를 활용한다고 주장한다. 24)
24) Paul Connerton, How Societies Rememb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9), 3-4, 38, 40.
이를 교회에 대입해 본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이라는 그리스도 사건을 원시 기독교 공동체가 경험 할 때에 이를 성서라는 기록 저장 매체와 함께 성만찬과 세례와 같은 의례적 퍼포먼스를 통해 기억을 공유하고 전수함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코 너톤에 따르면 사건의 사회적 기억은 단지 텍스트를 통한 정보의 전달을 통해 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의례적 퍼포먼스라는 수행미학적 수단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것이다.
텍스트와 의례를 통해 전달되는 기억 속의 사건은 최초 사건을 그대로 마 치 복제하듯이 후대의 전승자들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독서자 혹은 의례 참여자들 개인에 의해 그리고 그들이 속한 공동체에 의해 해석된 사건으로서 기억된다.
그러므로 텍스트를 통해서든 의례적 퍼포먼스를 통해서든 전승된 사회적 기억은 해석의 산물임이 고려되어야 한다.
특별히, 텍스트를 통한 기억은 텍스트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보존되고 해석되기 때문 에 일정한 해석학적 틀을 유지하는 반면, 의례적 퍼포먼스의 의미는 공동체가 기억하는 사건을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별 참여자들의 개체적 경험에 따라 다양하며 변이가 일어날 여지를 보다 폭 넓게 허용하기 때문에 보다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기억을 풍성하게 해주기도 하지만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에 공동체에 의한 검증 혹은 합법화(legitimate) 과정이 필요하다. 25)
알박스는 사회적 기억이 전통, 언어, 문화와 같은 사회적 틀(the social framework)안에서 형성되며 동시에 이러한 사회적 틀에 통해서 검증되고 합법 화된다고 주장한다. 26)
교회에 있어서 이러한 사회적 틀을 통해 걸러진 사회적 기억은 교리 혹은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신앙공 동체의 언어-문화라고 불려질 수 있을 것이다.27)
그렇다면, 개인의 경험은 사 회적 틀을 안에서 어떻게 사회적 기억으로 형성되고, 사회적 틀은 어떻게 개인 의 사회적 기억을 검증하고 합법화하는가?
이러한 과정을 단순화하여 대답하기 는 어렵지만, 필자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의 체화된 기억과 공동체의 사 회적 기억 간에 변증법적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다.
즉, 어떤 개인이 공동체로부터 텍스트의 독서를 통해서든 의례적 퍼포먼스 에 참여함을 통해서든 그 공동체가 전수하는 사건을 기억하게 될 때에, 개별 참여자는 자신의 개인적 해석학적 지평에서 본인이 지적, 정서적, 신체 감각적으 로 기억의 과정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사건을 해석학 적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 때, 개별 참여자들은 사회적 틀 안에서 사유하기 때문에, 그들이 해석학적으로 재구성한 기억은 순전해 개인적인 것이 아닌 사 회적 기억을 구성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동시에 이들은 자신이 재구성한 사건 의 기억이 공동체의 사회적 기억에 부합하는지를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 다.
이 때 개인의 기억과 공동체의 사회적 기억에 부합하는 것들은 수용 가능한 기억으로 승인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걸러지게 된다. 28)
25) Ibid., 35.
26) Maurice Halbwachs, On Collective Memory, ed. and trans. Lewis A. Coser,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University, 1992), 40, 43. cf. Connerton, How Societies Remember, 37. 이승진은 다음 논문에서 알박스의 집단기억과 복음의 내러티브 형성 간의 관계를 논의하고 있다. 이승진, “설교를 통한 신앙 공동체의 집단 기억 형성에 관한 연구,”「신학과 실천」24/1(2010), 145-175.
27) Halbwachs, On Collective Memory, 106. cf.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84), 32-41.
28) Halbwachs, On Collective Memory, 38-40, 172.
동시에 공동체가 기술하는 사회적 기억은 개별 구성원들이 해석학적으로 재구성한 기억에 비추어 받아들일 수 있는지 평가받고 승인 혹은 거부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과 정을 통해 공동체의 사회적 기억 속에서 개별 참여자들은 자신이 텍스트 및 의 례를 통해 전달받은 기억을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검증하고, 합법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설교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독교의 복음을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사회적 기 억으로 본다면, 우리가 설교 사건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현존 경험을 구성하는 지 이해할 수 있다.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계시된 하나 님에 관한 기억에 다름 아니다.
예수께서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은 제자공동체에 의해서 목격되었고, 이들 의 그리스도 사건에 관한 기억은 성서라는 기록 매체와 성례전이라는 의례적 퍼포먼스 및 설교라는 구술 전승 매체를 예배라는 의례적 해석학적 매트릭스 안에 결합시켜서 전수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승받았고 매 예배 때마다 경 험하는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온전히 텍스트를 통해서만 매개되는 것도 아니 고, 의례적 퍼포먼스를 통해서만 매개되는 것도 아니고, 설교와 같은 구전 전승 으로만 전수된 것이 아니라, 이 모두가 통합적으로 예배라는 매체를 통해 전달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의 청중이자 예배참여자들인 회중들은 예배라 는 상황 속에서 성서를 읽고, 설교를 듣고, 성례전 및 다양한 예전적 행위들에 참여함으로서 그리스도 사건을 기억한다.
아남네시스(Anamnesis)라는 말로 표 현되듯이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단지 과거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적 경험으로 재현되는 기억이다. 29)
29) 브루스 모릴(Bruce Morrill)은 기억이라는 행위는 단지 과거만이 아니라 현재 그리 고 미래의 어떤 것을 관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Anamnesis 로서의 기 억은 과거에 관한 무언가를 기억저장고에서 꺼내는 행위임과 동시에, 우리가 기억하 는 대상과 현재 우리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반추하게 하는 인식론적 활동(a noetic activity)이다. Bruce T. Morrill, Anamnesis as Dangerous Memory: Political and Liturgical Theology in Dialogue, (Collegeville, MN: Liturgical Press, 2000), 146-147.
그러므로 예배 중에 회중은 과거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동시에 현재 그리스도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설교가 왜 예배와 분리될 수 없는지를 보여준다.
설교라는 구술 언어로 구성된 텍스트가 전달하는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예배라는 언어 와 퍼포먼스, 그리고 텍스트가 통합되어 있는 해석학적 매트릭스를 통해 전달 되고 재현된다.
성찬을 중심으로 한 예전적 예배뿐만 아니라, 빌리 그래이엄의 전도 집회와 같은 비예전적 집회에서조차도 자세히 살펴보면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언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예전적 퍼포먼스들을 통해 전달됨을 부 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성서의 증인들이 그들이 살아가던 현실 속에서 몸으로 체 험하고 성서에 기록된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예배라는 사건 속에서 언어라는 기호 체계와 예전이라는 신체적 실행을 통해 씨줄과 날줄처럼 직조되어 설교의 청중인 회중들의 의식 속에 살아있는 경험으로 나타난다.
개별 참여자들은 그 리스도 사건의 기억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언어라는 기호 체계와 퍼포먼스라는 신체적 실행을 양자택일의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를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전인적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다.
설교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사건의 기억은 언어라는 기호 체계 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설교자와 회중이 실행하는 다양한 신체적 퍼포먼스를 통해 구성된다.
혹자는 설교는 현장 예배에서의 실행뿐만 아니라, 라디오 설교 와 같은 음성 매체를 통해 전달될 수도 있고 설교집과 같은 문서 매체를 통해 전달될 수 있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설교라는 텍스트의 메시지는 문 서 매체 혹은 음성 매체와 같은 신체적 매개를 덜 필요로 하는 매체 (disembodied media)를 통해서도 전달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경험이 현장 예배에서 경험하는 말씀 경험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청교도적인 예배에서 실행되는 설교와 같이 설교자는 원고를 읽고 회중은 정자세로 앉아 귀로 듣고 설교 요지를 받아쓰는 설교에서의 경험 과 오순절교회의 예배에서나 흑인 교회에서 설교자와 회중이 능동적이며 다양 한 방식으로 화답하는 설교에서의 경험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음성 으로만 전달되는 라디오 설교라고 할지라도 설교자는 음성의 고저, 빠르기, 강 약 등을 조절하며 말씀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이지 않을 뿐 설교자는 말씀 을 신체적으로 실행하고 있으며, 오디오 설교를 듣는 회중도 역시 신체적으로 실행된 말씀을 다양한 신체적 방식을 통해 받아들인다.
어떤 이들은 운전을 하 거나 일을 하면서 라디오 설교를 들으며, 어떤 이들은 정자세로 앉아 라디오에 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노트에 받아 적으며 설교를 듣기도 한다.
이들이 경험하는 다양한 모드의 말씀 경험은 설교 원고의 차이에서 나오기도 하거니와 설교 를 음성으로든 온 몸으로든 실행하는 방식과 설교를 듣는 회중의 신체적 실행 방식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할 수 없다.
앞서 메를로-퐁티가 말한 바와 같이 말하기나 듣기와 같은 인간의 언어활동 자체도 신체를 매개로 한 체화된 지각 의 활동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라는 의례적 컨텍스 트 속에서 행해지는 설교에 참여할 때에 얻게 되는 하나님 현존 경험은 순수하 게 지성적인 정신활동이 아니라 신체의 모든 감각이 동원되는 통합적이고 전인 적인 인지활동, 곧 체화된 인지의 산물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돈 세일리어스(Don E. Saliers)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순수하게 지적인 것일 수 없으며," 구술 언어와 함께 예전적 행위와 같은 물리 적 감각(physical senses)을 동원하는 비구술적 언어(nonverbal language)가 같 이 작동하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라고 부르는 성령이 주신 사회적 몸 안에서 물리적 감각들을 통해 하나님을 이해하게 된다" 30)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배 라는 컨텍스트 속에서 행해지는 설교 역시 몸을 통해 수행되고 경험되는 체화 된 인지 경험이라는 점에서 설교가 어떻게 성서 텍스트의 정보를 설교문이라는 또 다른 텍스트로 구성하여 청중에게 전달하는가 하는 전통적인 설교학적 관심 에 머무르지 않고 설교 중에 행해지는 설교자와 청중의 예전적 퍼포먼스가 하 나님 경험을 구성하는데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관해 이해를 확장할 필요가 있 다.
즉, 설교가 성서 본문의 내용을 해석하고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텍스트를 매 개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는 하지만, 그 텍스트의 전달 역시 몸이 없으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며, 설교라는 행위는 텍스트의 문자 정보를 해석하는 독서 보다는 텍스트에 담긴 메시지를 말과 몸짓과 같은 체화된 언어를 통해 전달하 는 수행미학적 예술에 가깝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만약 설교가 몸을 통해 수 행되는 체화된 말씀 사건임을 도외시하고 인간의 지성만이 작동하는 순수한 정 신활동으로 축소시킨다면, 이는 설교를 통해 일어나는 구원은 오직 설교를 통 해 전달되는 정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지식에 달려있다는 식의 설교학적 영 지주의 (homiletical gnosticism)의 위험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31)
30) Don E. Saliers, Worship Come to Its Senses, (Nashville: Abingdon, 1996), 15.
31) 이 표현은 토머스 롱이 현대에 신영지주의가 성육신과 체화에 대해 부정적이면서 지적 경험으로 복음경험을 축소시킨다고 비판한 것에 영감을 받은 것이다. Thomas G. Long, Preaching from Memory to Hope,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9), 72-74, 90-106.
실제 매일 강단에서 일어나는 설교는 설교자가 온 몸으로 체험하는 삶과 회중이 온 몸으로 체험하는 삶이 성령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만나는 곳이며, 설교자가 온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하는 것을 회중이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 들이며 그 자리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리이기에, 육화된 영적 사건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II. 설교에서 하나님 말씀의 체화된 경험
설교에서 하나님 경험을 이렇게 체화된 인지를 통해 구성된 것으로 본다면, 설교에서 말씀 사건은 온 몸을 통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계시 사건으로 재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인간이 설교라는 말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단순히 성서의 기록된 말씀을 설교자가 구술 언어로 전달하는 내용에 관한 지적 이해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이와 함께 청중이 생활세계에서 몸 을 통해 경험한 체화된 기억들과 성서의 증인들이 몸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에 관한 체화된 기억이 언어와 예전적 퍼포먼스라는 신체적 미디어를 매개로 하여 만나 새로운 하나님 경험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지적 활동이 하 나님의 현존 경험을 구성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 는 인간의 경험은 순전히 지성적 활동이 아니라 오히려 온 몸을 통해 경험하는 수행미학적 성격을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런 점에서 현대 설교학자들 중 퍼포먼스 이론을 통해 설교를 접근하는 이들은 설교가 체화된 말씀 사건임을 주장했다. 32)
32) Richard F. Ward, Speaking from the Heart: Preaching through Passion,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92), 17-19; Richard F. Ward, “Performative Turns in Homiletics: wrong Way or Right On?” Journal of Communication and Religion 17/1(1994), 1-11; Charles L. Bartow, God's Human Speech: A Practical Theology of Proclamation, (Grand Rapids, MI: William Eerdmans Publishing, 1997), 3-4, 26-27, 103-104; Jana Childers and Clayton J. Schmit, ed., Performance in Preaching: Bringing the Sermon to Lif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8); Clayton J. Schmit, Too Deep for Words: A Theology of Liturgical Expression,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2), 27-41. 국내 학계에서 퍼포먼스 설교학에 관한 저작으로는 김양일, “거룩한 공연으로서 설교,”「신학과 실천」67(2019), 95-124를 참조하라. 퍼포먼스 설교학자들은 퍼포먼스를 공연예술적 퍼포먼스라는 의미에서 연행이라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행동을 통해 이룬다는 의미에서 수행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는 공연예술적 퍼포먼스라는 의미가 강하게 나타날 때에만 연행이라고 표기한다.
신설교학이 설교가 텍스트의 해석 과정을 통해 말씀이 계시되는 말씀 사건(word-event) 혹은 언어사건 (language-event)이라고 강조한데 반해, 이들은 말씀이 설교의 퍼포먼스라는 체화된 행위(embodied act)를 통해 형태를 입게 되는 수행적 사건(performative event)이라고 주장한다.
즉, 리처드 워드(Richard Ward)가 Speaking from the Heart 에서 "몸은 당신과 함께 생각하고 상상한다"고 하면서 "설교의 의미는 설 교자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드러난다" 33)고 말한 바와 같이, 퍼포먼스 설교학자 들은 설교에서 성서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경험으로 재현되 는 것은 몸을 매개로 한 체화된 퍼포먼스(embodied performance)를 통해서라 고 주장한다. 34)
33) Ward, Speaking from the Heart, 87.
34) Ibid., 77.
그러므로 이들은 말씀을 종이에 인쇄하여 보관하는 텍스트보다 는 말씀을 수행하는 살아있는 몸을 설교에서 계시 사건을 중개하는 근원적 매 체로서 인식할 것을 주장한다.
이들 중 자나 칠더스(Jana Childers)와 찰스 바 토우(Charles Bartow)는 설교에서 발생하는 계시 사건에 있어서 몸의 역할에 관한 깊이 있는 논의를 제공한다.
1. 찰스 바토우: 하나님의 자기 수행(Actio Divina)으로서 설교
먼저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 커뮤니케이션 교수로 봉직했던 찰스 바토우의 하나님의 자기 수행으로서 설교 이해를 살펴본다.
바토우는 God’s Human Speech 에서 하나님 말씀으로서 설교라는 개혁교회 교리를 수행으로서 설교라는 관점에서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는 설교는 인간의 퍼포먼스(homo performans)와 하나님의 자기 수행(actio divina)이 만나는 곳, 다시 말해 인간 이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과 조우하는 자리라고 주장한다.35)
그러므로, 설교 는 성경에 기록된 내용의 반복도 아니고 성서 본문을 논리적으로 강해하는 것 이 아니라 드라마틱한 서사와 같이 예술적이며 시적 창의적인 작품으로 이해되 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인간이 설교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는 말씀 사건이란 구 술사건(a verbal event)이라기보다는 수행적 사건(a performative event)이라고 주장한다. 36)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바토우는 설교의 근거인 그리스도 사건을 하나님의 자기 수행의 사건으로 묘사하면서 이를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서와 선포된 말씀 으로서 설교와 연결시킨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이 성서의 세계에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은 죽은 문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퍼포먼스를 통해서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성서 본문의 형태로 기록됨에 따라, 하나님의 자기 수행은 텍스트 안에 갇혀버리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바토우는 기록된 텍스트로서 성서는 피를 잉크로 바꾸어 버린 것과 같이 퍼포먼스를 텍스트 안에 가두어 버렸다고 말한다. 37)
35) Bartow, God's Human Speech, 111.
36) Ibid., 3, 26. 바토우는 “하나님의 말씀은 소리로서의 말(verbum)이 아니라 의미를 전달하는 말씀(sermo) 이며, 이성(ratio)가 아니라 연설(oratio)이다…하나님의 말씀은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구술-청각 상황 속에서 행해지는 담화이다. 죽은 글자가 아니라 이성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actio divina) 이다”라고 말한다.
37) Ibid. 27, 63-64. 바토우가 말하는 "갇힌 퍼포먼스(arrested performance)"는 퍼포먼스 이론가인 비벌리 롱과 메리 홉킨스의 말을 빌어 기록된 문서가 수행될 때까지는 살아있는 말로 들리지 않는 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cf. Beverly Whitaker Long and Mary Frances HopKins, Performing Literature: An Introduction to Oral Interpretation, (Englewood Cliffs, NJ: Prentice-Hall, 1982).
이렇게 텍스트에 갇 힌 퍼포먼스는 읽혀지고, 말해지고, 수행될 때에야 비로소 텍스트에서 풀려나게 된다.
즉, 성서에 계시된 하나님의 자기 수행은 인간의 퍼포먼스를 만날 때에 비로소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토우는 성서 가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단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관한 증언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 리이며 우리가 퍼포먼스를 통해 신적 현실과 조우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고 주 장한다.38)
같은 맥락에서 그는 설교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건으로 체험되 기 위해서는 몸을 통한 퍼포먼스가 필수적라고 주장한다.
설교는 성서의 세계 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설교자가 만나고 또한 회중과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데, 설교는 그러한 해석학적 만남에 관해 고백적이고 책 임 있는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나 일종의 텍스트로서 설교문은 성서의 텍스트 와 같이 퍼포먼스를 가둬 두기 때문에, 설교자에 의해 수행되어야 생명력을 얻 게 된다.39)
그러므로 바토우는 설교는 인간의 퍼포먼스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자리이며 하나님의 자기 수행이라는 수행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바토우는 퍼포먼스가 설교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중개하는 방 식은 퍼포먼스를 통해 발생하는 상상력의 작용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은유, 환 유, 제유 등과 같은 수사학적 장치들을 통한 문학적 상상에도 관심을 기울이지 만, 인간이 퍼포먼스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는 방식으로서 수행적 혹은 연행 적 상상(performative imagination)을 논의한다.40)
마크 존슨의 이해를 빌려, 바 토우는 퍼포먼스가 특정한 인간의 경험과 활동들을 긴밀하게 연결시켜주고 우 리에게 의미를 전달하는 이미지 도식을 작동시킬 때에, 사람들은 퍼포먼스가 묘사하는 이미지를 현실로 인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41)
38) Bartow, God's Human Speech, 43.
39) Ibid., 113, 121.
40) Ibid., 3-4, 9-24, 36-37. 바토우는 설교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인간의 퍼포먼스 간의 긴장관계를 유지하고자 애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설교는 그저 인간의 퍼포먼스에 지나지 않으며, 인간의 퍼포먼스 없이는 성서 본문 속에 있는 말씀은 들 려질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41) Ibid., 73-75. 168․
다시 말해, 설교자가 퍼포먼스를 통해 성서 본문을 표현할 때에, 설교자가 말과 몸짓으로 표현하고 자 하는 성서의 세계에 관한 이미지들이 청중의 의식 속에서 상상력을 자극하 고, 청중들은 퍼포먼스가 묘사하는 성서의 세계를 살아있는 현실(the lived reality)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때, 하나님과의 만남은 명제적인 것이 아닌 선험적인 경험으로서 인간의 몸을 통해 매개됨을 볼 수 알 수 있다. 바토우는 더 나아가 인간의 하나님 경험은 신체적 퍼포먼스를 통해 획득되 는 신체적 경험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체화된 예술(embodied art)로서 퍼포먼스는 말씀의 감각적 경험을 제공하고, 청중이 듣고 알아왔던 것을 반성하도록 이끌면서 말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진한다고 주장한다. 42)
그러므로 바토우 는 체화된 예술로서 퍼포먼스는 인간이 하나님을 알게 되는 신체적 방식의 하 나이며, 인간은 설교에서 퍼포먼스를 통한 신체적 방식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 게 된다고 주장한다. 43)
42) Ibid., 73, 90-91. 김양일은 전달이라는 것이 단순한 정보전달의 차원을 넘어 바토우 에게 있어서는 말씀이 회중 가운데서 어떻게 체화되는지에 관한 기대를 가진 신학 적 작업이라는 점을 주지시킨다. 김양일, “거룩한 공연으로서 설교,” 113-114.
43) Ibid., 3-4, 9-24, 37.
이러한 바토우의 주장은 설교에 관한 주지주의적 이해 를 재고할 것을 요청하면서 설교를 지성과 감성, 말씀과 경험, 영과 육이 만나 는 체화된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2. 자나 칠더스: 퍼포먼스를 통한 말씀의 경험
자나 칠더스(Jana Childers)는 찰스 바토우와 함께 퍼포먼스 설교학을 대표 하는 학자이다.
Performing the Word 에서 칠더스는 퍼포먼스가 설교에서 말씀 에 관한 반성적이며 미학적인 해석 경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바토우의 주 장과 유사한 입장에서, 그녀는 연기가 대본을 살아있는 경험으로 전환시키듯이 퍼포먼스를 통해 설교가 증언하는 성서 본문이 생생한 말씀으로 살아나고 설교 를 살아있는 말씀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주장한다. 44)
따라서 그녀는 "설교자가 본문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것은 본문의 생기와 능력을 풀어놓으며, 청중들에게 그 본문이 개방되고 접근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준다"고 주장한 다. 45)
44) Jana Childers, Performing the Word: Preaching as Theatre,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98), 41.
45) Ibid., 54.
칠더스는 엘라 보자르-캠벨(Alla Bozarth-Campbell)의 이론을 활용하여 설 교에서의 연행적 경험을 창조적 과정(the creative process)으로 설명한다. 그녀 에 따르면, 설교자가 연행 과정에서 경험하는 해석학적 경험은 설교자가 본문 의 목소리를 듣고(창조), 본문에 참여하며(성육신), 최종적으로는 본문에 의해 변화(변화)되는 창조적 과정이다.46)
즉, 설교자가 본문을 읽을 때 마치 배우가 대본을 읽는 것처럼 본문이 말하는 것을 듣고, 본문에 있는 말들을 수행하면서 그 말들을 체화한다. 마지막으로 설교하는 과정에서 설교자는 자신이 연행하는 설교에 붙잡히게 되고 변화되게 됨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설교자의 퍼포먼 스를 통해 본문은 회중과 의미 있는 말씀으로 연결되게 된다. 이러한 설교에서 의 창조적 과정을 설명하면서, 칠더스는 두뇌활동을 통한 말씀의 언어적 이해 와 신체를 통한 지식이라는 인간이 무언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어서의 이중적 모드에 관심을 기울인다. 47)
즉, 인간은 언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서만이 아니 라 몸을 활용한 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말씀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나 칠더스는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의 도널드 맥러드 설교학 강좌(the Donald Macleod Preaching Lecture)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성령께서 역사하 시는 계시의 자리로서 설교자의 몸에 관한 보다 심화된 신학적 철학적 논의를 제공한다.
이 발표에서, 칠더스는 몸은 "의식 혹은 개체의 공간"이자 "경험의 여 러 측면들이 지각되고, 통합되고, 포현되는 자리"라고 정의한다. 48)
릴랜드 롤로 프(Leland Roloff)의 신체적 사고(somatic thinking) 혹은 몸을 매개로 한 지식 (body-mediated knowledge)의 주장을 따라서, 그녀는 의미를 지각하고 환기하 는데 있어서 몸의 창조적 역할에 대해 긍정하면서 동작 혹은 움직임을 몸이 의 미를 생성하고 지식에 이르는 방식으로 여긴다. 49)
46) Ibid., 52-55. cf. Jana Childers, "The Preacher's Creative Process: Reaching the Well," in Performance in Preaching, 153-168. 자나 칠더스는 공연예술적 퍼포먼스(theatrical performance)라는 성격을 강조하기 때문에 performance에 대해 연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47) Childers, Performing the Word, 115-116. 48) Jana Childers, "The Preacher's Body," Princeton Seminary Bulletin 27/3(2006), 227.
49) Ibid., 226-229. 170․
즉, 인간은 언어적 커뮤니케 이션뿐만 아니라 연행적 퍼포먼스 등 신체적 동작들이 표현하는 메시지들을 교 환함으로써 보다 온전한 사태의 인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3. 신체를 통한 설교에서의 하나님의 현존 경험
찰스 바토우와 자나 칠더스로 대표되는 퍼포먼스 설교학은 설교가 본질적으로 인간의 몸을 통해서 수행되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토대로 몸이 계시적 말 씀 사건으로서 설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관해 조명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들의 논의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몸은 의미를 표현하고, 동시에 인간은 몸을 통해 인식한다는 것이다. 에이마 맥컬로우가 말하듯이, 퍼 포먼스 설교학은 "우리는 몸 안에서, 몸을 통해서, 그리고 몸을 가지고 설교한 다" 그리고 "설교할 때 우리는 몸이다" 50)라는 단순하지만 그동안 간과해온 사 실을 상기시킨다.
퍼포먼스 설교학자들의 논의는 메를로-퐁티가 주장하는 신체 적 앎이나 체화된 인지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체적 인식론과 궤를 같이한다.
즉, 신체는 인간의 세계-내-현존의 기초이며 인식의 매체이며, 움직임은 인간이 세 상을 이해하는 지각의 방식이라는 메를로-퐁티의 주장51)과 같이, 퍼포먼스 설 교학자들은 인간의 몸이 퍼포먼스를 통해 의미를 표현하고 전송하는 수단이며 텍스트의 해석과 같은 지적인 의사소통 외에 몸의 움직임을 통해 경험하는 것 들을 통해 사태를 인식하는 또 다른 의사소통 수단임을 인정한다.
50) Amy P. McCullough, Her Preaching Body: Conversations about Identity, Agency, and Embodiment among Contemporary Female Preachers, (Eugene, OR: Cascade Books, 2018), 10. 유사한 맥락에서 김병석은 우리가 몸(σϖμα)으로서 예배와 설교에 참여한다고 주장한다. 김병석, “예배와 설교의 일치와 통합적 접근,”「신학과 실천」66(2019), 87.
51) Merleau-Ponty, Phenomenology of Perception, 113, 141, 148.
즉, 퍼포먼스 는 단지 설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퍼포먼스 자체가 의미 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설교에서 몸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 여 몸이 말을 전달하는 운반 수단일 뿐만 아니라, 말씀이 세상 속에서 생생한 현실로 드러나는 계시의 자리임을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몸은 설교가 살 아있는 말씀으로 들려지는 해석학적 지평이며, 설교 사건에서 말씀이 몸을 통 해 체화되고 수행될 때에 그저 말에 머무르지 않고 온전하고 살아있는 말씀으 로 체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퍼포먼스 설교학의 이러한 논의는 설교 중에 행해지는 설교자와 회중의 퍼 포먼스를 단순히 메시지의 전달 효과라는 측면에서 논의하는 것을 넘어서 설교 에서 하나님 말씀 경험이라는 계시 사건을 인식하는 해석학적 과정에 기여하는 요소로서 퍼포먼스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논의할 공간을 열어준다.
퍼포먼스 설교학의 관점에서 볼 때, 강단에서의 몸짓이나 움직임, 표정 등을 통해 표현되는 설교자의 퍼포먼스는 의미 없는 몸부림이 아니라 공연예술가의 무대에서의 몸 짓이나 예배에서 행해지는 예전적 행위들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생성하고 메시 지를 전달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메시지들 은 기록된 성서 본문과 설교의 언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들과 함께 설교에 서 하나님 말씀 경험이라는 계시 사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숙고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설교자의 신체적 퍼포먼스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를 청중은 회중석에서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퍼포먼스를 실행하면 서 수용한다.
회중은 눈을 크게 뜨거나 감는다든지 혹은 고개를 젓거나 끄덕이 는 방식으로 설교의 메시지에 반응하기도 하고, 흑인 교회 전통에서나 오순절/ 성결교회 전통에서 회중은 부름과 응답(Call and Response)이라는 의례적 혹은 예전적 실행을 통해 설교라는 말씀 사건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한다.
나직이 "아멘"이라고 응답하는 이들도 있고, 일어나서 두 손을 뻗치며 큰 소리로 "아멘, 할렐루야!" 혹은 "설교하세요! (Preach!)"라고 응답하는 이들도 있다.
한국교회 의 부흥 설교의 실행을 살펴본다면, 전통적인 부흥설교자는 설교 중에 회중들 과 함께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기도 하고 설교를 마친 후에는 설교의 내용을 기도 제목으로 요약하여 온 회중이 통성기도를 통해 설교의 메시지를 수용하도 록 인도한다.
이러한 의례적 퍼포먼스들은 설교와 단절된 혹은 구분되는 행위 들로 혹은 기껏해야 청중의 주의를 환기시키거나 감정을 고조시키는 수단 정도 로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이 텍스트의 문자 정보를 해석하는 것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신체적인 퍼포먼스의 참여를 통해서 의미를 구성하고 메시지를 해석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이러한 의례적 퍼포먼 스들 역시 회중이 설교에서 말씀을 신체를 통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해되어 야 할 것이다.
IV. 나가는 말
지금까지 설교에서 하나님의 현존 경험은 신체와 분리된 두뇌활동 혹은 순수 정신활동의 결과가 아니라, 텍스트를 통한 지적 경험과 퍼포먼스와 같은 신 체를 통한 미학적 경험을 통합한 체화된 인지 활동의 결과임을 논의하였다.
메 를로-퐁티가 주장한 바와 같이 인간의 몸은 정신을 보관하는 껍데기가 아니라 세계-내-존재로서 사태를 지각하는 인식론적 기초이다.
그러므로 메를로-퐁티 의 정신을 이어서 체화된 인지학자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인지 활동 은 신체와 분리된 두뇌 활동이 아니라 신체 감각을 통한 경험을 통합하는 체화 된 인지활동이다.
이러한 체화된 인지 활동은 어떤 동작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은유적 투사를 통해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어 서도 작동하며 더 나아가 초월적 현실인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는데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은유적 상상은 텍스트의 문학적 상상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의례적 퍼포먼스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도 작동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은유적 상상을 통한 경험은 오해 및 곡해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지식은 개별 행위자가 속한 공동체가 보존하는 지식과 교차검증 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사회적 틀을 통해 개인의 경험과 기억이 형성되고 검증되는 변증법적 과정을 논의하는 사회적 기억 이론을 살펴보았다. 즉, 성육 신하신 그리스도의 사건에 관한 기억은 예배와 설교의 실행 속에서 성서 본문 의 텍스트의 해석과 함께 예전적 퍼포먼스라는 체화된 실행을 통해 매개되며, 이는 사회적 틀 속에서 구성되고 검증되는 변증법적 해석학적 과정임을 살펴보 았다.
이러한 체화된 인식론을 찰스 바토우와 자나 칠더스 같은 퍼포먼스 설교학 자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살펴보면서, 필자는 설교를 텍스트의 문자 정보를 해 석하고 전달하는 행위를 넘어 퍼포먼스를 통해 체화된 하나님 체험을 구성하는 수행적 사건으로 볼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동안 간과되어 온 설 교의 실행에 있어서 신체 및 신체를 통한 의례적 퍼포먼스의 해석학적 역할에 관해 주목할 것을 요청했다.
즉, 설교 사건에서 몸을 단순히 설교문을 음성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아닌 말씀을 표현하고 수행하는 해석학적 기반으로 보게 된다 면, 설교에서 설교자는 말로만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고, 회중들 역시 귀로만 설교를 듣는 것이 아니라 온 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설교 사건 중에 설교자와 회중이 실행하는 설교에서 하나님 현존의 체화된 경험․173 신체적 퍼포먼스는 성서에서 추출한 설교의 메시지를 전송하고 수용하는 전달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의미를 표현하고 발생시키는 해석학적 구성요 소로서 보아야 한다. 성서가 가장 권위있는 계시의 자리임은 분명하지만, 실제 설교 실행에 있어서 성서가 보존하는 계시가 전달되는 과정은 신체를 매개로 하며, 특별히 신체적 퍼포먼스가 이러한 과정에 기여하고 있음을 인정할 것을 요청한다.
이는 설교가 텍스트 전달을 통해 계시 사건을 매개하는 점을 부정하 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과정 속에 일어나는 신체의 역할을 주목할 것을 요청하 는 보완적 목소리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성서 본문을 면밀하게 해석하고 논 리적이며 본문에 충실한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것만큼이나 성서가 증언하는 하 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설교자의 몸을 통해 표현할 지, 그리고 회중들이 설교의 사건 속에서 어떻게 몸을 통해 말씀을 수용하는 지에 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이러한 논의가 한국 교회의 설교 실행을 더욱 풍성하게 하 고, 설교에 대한 보다 폭 넓은 논의를 촉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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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 록 ■
설교가 하나님의 현존을 계시하시는 통로라는 것은 초대교회부터 지켜온 신학적 고백이다. 특별히 기록된 말씀으로서 성서와 선포된 말씀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개혁교회 전통에서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경험되는 방식은 텍스트의 지적 이해라 는 측면에 치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모리스 메를로-퐁티를 비롯한 일군의 학자들 이 지적한 바와 같이 텍스트를 비롯한 세계를 지각하는 주체는 신체를 가진 인간이며 인간의 세계 내 지각은 신체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간과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러 한 반성에 기초하여 설교가 성서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나 문학적 상상 력을 통해 성서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신체를 매개로 한 수행미학적 경험이라는 점 을 부각하고자 한다. 먼저 메를로-퐁티의 신체에 관한 현상학적 이해를 살핀 후에, 메 를로-퐁티의 신체적 인식론을 발전시킨 체화된 인지 이론에서 주장하는 신체를 통한 인식과정을 고찰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 개인의 신체를 통한 지식이 공동체의 사회적 틀 안에서 사회적 기억으로 변증법적인 상호검증을 통해 형성되는 과정을 논의한 사 회적 기억 이론을 토대로 필자는 이러한 인간의 신체미학적 경험의 역동을 탐구하고 자 한다.
더 나아가 이러한 논의를 찰스 바토우 및 자나 칠더스 등 퍼포먼스 설교학 자들이 제시하는 신체적 퍼포먼스를 통한 말씀 사건 구성이라는 이해와 접목하여 설 교에서 발생하는 하나님의 현존 체험이 근본적으로 체화된 경험임을 주장하고자 한 다.
이러한 연구가 설교를 단순히 성서 본문의 의미를 지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넘 어서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을 신체를 통해 살아있는 말씀으로 경험하는 수행적 사 건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길 기대한다.
주제어 하나님의 체화된 경험, 모리스 메를로-퐁티, 체화된 인지이론, 사회적 기억 이 론, 퍼포먼스 설교학
■ Abstract ■
Embodied Experience of the Divine Presence in Preaching
Jaewoong Jung
Since the early Church, most churches have confessed that preaching is a channel that reveals the presence of God. In particular, for those who stand in the Reformed tradition, which has emphasized the continuity between the Scripture as the written Word and preaching as the proclaimed Word, the way in which one experiences God's presence in preaching tends to be described as an intellectual experience. However, such an understanding misses what a group of scholars, including Maurice Merleau-Ponty, points out; it is that the subject who perceives the world, including the text, is the human in body and that the human perception in the world is based on the body. Based on this reflection, this paper attempts to highlight the overlooked truth that preaching is not only to understand the literal sense of the scriptural texts and interpret it by use of literary imagination but also to construct a performative aesthetic experience that is mediated through the 설교에서 하나님 현존의 체화된 경험․177 body. To describe how such a somatic aesthetic experience becomes constructed, the author discusses Merleau-Ponty's phenomenology of body, the embodied cognition theory, which developed the somatic epistemology by Merleau-Ponty, and the social memory theory, which investigates the dialectical process that forms an individual's embodied knowledge into social memory in light of social framework. Applying these theoretical discussions to the performance homiletical theory presented by Charles Bartow, Jana Childers, and other scholars, which supports the performative Word-event through bodily performance, the author claims that the experience of the divine presence in preaching is essentially embodied. I hope this study will help to understand preaching as a performative event in which experience the divine presence, witnessed in the world of the Scripture, in and through the body, rather than simply an intellectual understanding of textual meanings of the Scripture.
Key Words Embodied Experience of God, Maurice Merleau-Ponty, Embodied Cognition Theory, Social Memory Theory, Performance Homiletic
논문접수일 : 2021년 1월 29일 논문수정일 : 2021년 2월 11일 논문게재확정일 : 2021년 2월 25일
신학과 실천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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