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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안보국방

‘전후레짐’을 넘어서려는 일본외교의 시도-아베레거시의 계승과 변화 /황세희.성공회大

 <目 次>

1. 들어가며

2.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와 아베레거시

   2.1. 전후레짐으로서의 요시다노선

   2.2. 또 하나의 전후레짐인 국제협조주의

3. 전후레짐 탈피를 위한 안전보장정책의 정비

   3.1. 국가안전보장전략 책정과 적극적 평화주의

   3.2. 국제정세가 강요한 ‘신시대 리얼리즘외교’

4. 미일협력의 글로벌화

   4.1. 미일동맹과 인도태평양구상

   4.2. 팬데믹시대의 질서 재건과 미일협력 심화

   4.3. 확장억지구상과 미일동맹의 일체화

5. 국제협조주의의 글로벌 지평 확대

   5.1. FOIP의 업데이트와 글로벌사우스로의 확장

   5.2. 캠프데이비드정신과 한미일협력의 제도화

6. 나가며: 아베레거시와 일본외교의 현실주의

 

 

1. 들어가며

 

역대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우며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했던 아베 신조(安倍晋 三) 총리가 2020년 9월 사임했다.

이후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그리고 현재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내각을 거치는 동안 자 민당의 정권 장악력은 불안정한 상황을 지속해 왔다.

특히 자민당 비자금 스캔들 이 직격한 2024년 2월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은 14%로 15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하 기도 했다1).

반면 국내정치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은 아베 내각 이후 일정한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경쟁의 심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 등 불안정한 국제정세 속에 일본의 외교안보기 조는 아베 내각에서부터 추진되어온 변화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런데 아베 내각 이후 진행된 일본 외교안보정책 상의 변화에 대해, 주변국가 들은 우려와 경계의 시선을 보내왔다.

이러한 경계심에는 일본외교를 분석하는 신현실주의와 구성주의 연구의 경향에 기인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즉 기존 연구 들은 무정부상태의 국제질서에서 국가의 목표가 국익 추구와 생존에 있다고 전제하는 신현실주의2)와 일본의 국내정치적 특수성, 평화국가로서의 정체성만 강조하는 구성주의3)에 기반하는 경우가 많다.

 

     1) 「自民支持率16%、自公政権下最低に裏金問題など直撃世論調査」 󰡔毎日新聞󰡕(2024.2.18.).

     2) 대표적인 신현실주의 연구자인 케네스 파일은 일본이 전통적으로 국제 환경의 변화에 임기응변으로 대응해 온 나라이며, 이러한 유연성을 가진 일본은 냉전 후 국제 환경 변화에 대응하여 종래의 요시다 노선을 포기하고 대국화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Pyle, Kenneth B.(2007), Japan Rising, Public Affairs 참조.

    3) 일례로 이즈미카와는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에 끼친 반군사주의문화의 영향을 분석했다. Izumikawa, Yasuhiro(2010), “Explaining Japanese Antimilitarism: Normative and Realist Constraints on Japan’s Security Policy,” International Security, Vol. 35, No. 2, Fall 2010, pp. 123-160 참조.

 

신현실주의는 일본을 보통 국가처럼 체제 논리에 환원하고, 구성주의는 일본을 ‘특수한 국가’로 예외화하면서 서 로 대화 없이 평행선을 달렸다.

동시에 양 이론적 시각 모두 일본이 헌법-미일안 보체제의 틀을 바꾸려는 ‘현상타파국가’라는 전제를 공유해 주변국 불신을 키웠 다.

본고에서는 두 이론에 반영된 일본에 대한 과대 혹은 과소평가를 교정하고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이 변화해온 현실적 근거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고에서는 아베 이후 스가, 기시다 내각으로 이어지는 일본외교안 보정책의 흐름을 고찰한다.

이를 통해 아베외교가 남긴 정책적 유산이 어떤 방식 으로 계승 혹은 전환되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아베 정권이 추구한 ‘전후레짐로부터의 탈피(戦後レジームからの脱却)’이라는 목표가 외교안보영역에서 어떠한 정책으로 실현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특히 본 논문에서는 ‘아베레거 시’를 아베 총리가 추진했던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충동에서 진행된 일 련의 외교안보정책이 가져온 영향과 제도화라는 측면에 주목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안전보장정책의 정비, 미일협력의 심화, 국제협조주의의 강 조가 아베 내각 및 다음 내각들에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이를 통해 아베 총리가 남긴 외교안보정책의 변화가 전후일본외교의 현실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평가하고 향후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을 전망하고자 한다.

 

2.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와 아베레거시

 

2.1. 전후레짐으로서의 요시다노선

 

2012년 12월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뒤 8년 동안 추구했던 국정 모토는 ‘전후레 짐으로부터의 탈피’였다.

아베가 주창한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후레짐의 본질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일본국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승전국인 미국의 전후처리방침에 따라 설계되었다. 점령 초기 미국은 패전국가 일본의 재군사화를 방지하기 위한 전후처리에 집중 했다.

철저한 비군사화와 전쟁범죄인에 대한 처벌, 전쟁시기 지도자의 공직추방 및 농지개혁, 노동조합의 육성, 경찰제 및 교육제도의 개편 등 잇달아 중요한 개혁을 일본 정부에 명령하였다4).

 

    4) 神谷不二(1989) 󰡔戦後史の中の日米関係󰡕 新潮社, p. 42. 

 

특히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무력행사와 군사력 보유를 영구히 포기한 9조가 일본 헌법의 핵심 조항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곧이어 발생한 중국본토의 공산화와 한국전쟁은 동북아시아에서 반공의 전초기지로 일본을 재설정하게 하였다.

결국 미국은 일본을 자유진영의 보루이 자 민주주의 산업국가로 재건하는 급격한 전략 변경, 이른바 역코스(逆コース)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미군의 일본주둔과 일본의 안전보장이 결부된 미일안 보체제가 형성되었다. 전후 처리와 냉전 대응이라는 상반된 시대 상황 속에 형성 된 헌법-미일안보체제를 국가재건의 핵심 전략으로 채택한 일본의 선택은 당시 수상이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이름을 따 요시다노선(吉田路線)으로 명명되 었다.

헌법과 미일동맹을 일본 전후외교의 두 기둥으로 양립시키고 이를 바탕으 로 경무장, 경제성장을 추진한 것이 전후일본의 국가노선이었다5).

전후레짐의 본질이라고 할 요시다노선은 국내의 좌우정치세력의 대립속에 장기간 비판 받아왔다.

평화헌법을 중시하는 반전평화주의세력들은 미일동맹의 파기를 요구했다.

한편 분쟁해결수단으로서의 군사력 보유가 금지당한 헌법을 자주성 침해로 받아들이는 보수세력 역시 요시다노선의 파기를 주장했다.

요시 다노선을 미국이 강요한 선택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좌우내셔널리즘 세력의 대립 속에서 요시다노선은 타협점을 제공하지 못한 채 지속되어 온 것이다6).

 

     5) 이를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요시다노선을 ‘헌법-미일안보체제의 양립을 제도화한 외교노 선’으로 정의한다. 요시다노선을 둘러싼 국내외적 논의와 전후일본외교의 현실주의에 관해서는 황세희(2017) 「일본외교와 적극적 평화주의:요시다노선의 대안으로서의 평가」 � �한일군사문화연구󰡕 23, pp. 37-62 참조.

      6) 전후일본외교에 있어 요시다노선에 대한 평가는 大嶽秀夫(2005) 󰡔再軍備とナショナリ ズム—戦後日本の防衛観󰡕講談社; 中島信吾(2006) 󰡔戦後日本の防衛政策―吉田路線を 巡る政治・外交・軍事󰡕慶應義塾大学版会; 添谷芳秀(2010) 󰡔戦後日本外交史―自立を めぐる葛藤󰡕有斐閣; 남기정(2013)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전후 구상에 대한 재검토: ‘군대 없는 메이지국가’ 구상과 미일동맹의 현실」 󰡔일본연구논총󰡕 37, pp. 173-203을 참조.

 

그러나 요시다노선에는 전후일본이 견지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인 균형 (equilbrium)이 존재했다.

헌법개정 혹은 미일동맹의 폐기라는 한쪽만의 선택을 결정할 경우, 전후일본은 다른 한쪽의 포기가 가져올 막대한 비용을 책임질 수 있었을까?

어느쪽을 선택하던 일방에 대한 선택은 일본에 대한 국내외의 거센 비판과 반발을 초래할 것이 분명했다.

전후일본이 요시다노선을 견지할 수 밖에 없었던 국내외적 상황에 대한 불만 은 아베 총리로 하여금 전후레짐을 21세기 일본이 더 이상 지속해서는 안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하였다.

1차집권 시절 출간한 저서 ‘아름다운 나라로’에서 아베총리는 지금까지의 일본이 ‘일본 국민의 생명과 재산 및 일본의 영토를 일본 정부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려는 명확한 의식 없이 문제를 회피한 채 경제적 풍요를 누려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7).

그는 헌법과 미일안보를 큰 기둥으로 하는 전후레짐이 ‘21세기의 시대적 큰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는 인식하에 전후레짐을 원점으로 돌아가 과감히 재검토할 것을 천명하였다.

이를 통해 ‘활력과 기회, 그리고 따뜻함이 넘치고 자율의 정신을 중시하며, 세계에 열린 아름다운 나라, 일본8) ’을 만드는 것이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아베 총리는 전후레짐을 벗어난 일본이 태평양전쟁 이후 부정돼 온 일본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일본의 보편적 가치를 국제사회에 전파해 국제사회에 기여할 것을 주장하였다9).

아베 총리가 벗어나고자 했던 전후레짐이란 대미 종속을 내재화한 요시다노선을 파기하고 대등한 미일동맹을 추구하고 평화헌법의 제약을 해소하 는 것을 의미한다10).

 

     7) 安倍晋三(2006) 󰡔美しい国へ󰡕 文春新書.

     8) 위와 같은 책.

     9) 최은미는 이러한 아베외교의 지향을 기존의 일본외교가 지녔던 반응형 국가(reactive state)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행과정에 있다고 평가한다. 최은미(2019) 「일본은 여전히 ‘반응형 국가’인가? : 아베 내각에서 나타난 일본외교의 변화와 연속성」 󰡔일본연구논총󰡕 49, pp. 109-141 참조.

    10) 이러한 측면에서 소에야는 요시다노선을 패전과 점령을 수용하고 미일안보체제를 받아 들인 외교 노선으로 정의한다. 이에 비해 패전과 점령 자체를 부인하고 미일안보체제만 을 수용한 아베의 지향을 아베노선으로 규정한다. 添谷芳秀(2017), 󰡔日本の外交:「戦後」 を読みとく󰡕 ちくま学芸文庫 참조. 

 

즉 아베가 추구한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가 진정한 의미의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헌법-미일안보체제의 양립구도를 벗어난 새로 운 외교 노선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후술하듯이 새로운 외교적 대안의 제시보다는 요시다노선이 내재한 구조적 한계, 평화헌법의 제약 을 벗어나는 것에 치중하는 정책변화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2.2. 또 하나의 전후레짐인 국제협조주의

 

그런데 전후 일본에는 요시다노선과 함께 견지해 온 또 하나의 외교기조가 존재한다.

바로 국제협조주의(国際協調主義)이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 약 체결로 국제사회에 복귀한 이래, 일본은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을 존중하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기여하겠다는 방침을 견지해 왔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岸信介)가 총리이던 1957년에 발표된 일본 외무 성의 첫 외교청서가 정의한 일본외교 활동의 3원칙은 ① 유엔 중심, ② 자유주의 국가들과의 협조, ③ 아시아 일원으로서의 입장 견지였다11).

요시다노선에 가장 비판적이었던 기시 내각에서도 유엔과 자유주의 진영, 아시아 국가로서의 정체 성에는 이론이 없었다.

같은 시기, 대미종속을 벗어나고자 했던 미일안보조약의 개정 과정에서 기시 총리 스스로가 미일동맹을 일본안보의 기축으로 정착시키며 ‘요시다 없는 요시다노선’을 확인하였다.

패전국 일본이 독자적인 안전보장을 포기한 이상, 유엔과 미일동맹에 의존한 집단안전보장이 현실적인 선택지였던 것이다.

이어진 요시다노선으로 규정된 경무장, 경제성장 국가전략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국제사회에서의 정치성은 유엔-자유진영-아시아의 일원으로 정착되었다.

고도경제성장을 통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다시 주목받는 행위자가 될수록 국제협조주의에 대한 일본사회의 공감대는 확산되었다12).

1992년 걸프 전쟁시기 외교적 실패를 경험한 일본 사회는 평화헌법의 틀을 의식하면서도 국제평화유지활동에의 참여를 확대해 왔다.

탈냉전 이후 미일동맹이 협력을 더 욱 심화시키고 주변사태법 제정과 미일가이드라인의 개정 등을 통해 국제공헌의 공간을 넓혀 온 것은 이러한 배경에 있어 가능했다13).

 

     11) 外務省(1957) 「わが外交の近況」.

     12) 국제협조주의가 전후일본외교의 일관된 기조였다는 점에 대해서는 전후레짐으로부터 의 탈피를 추구하는 시각으로부터의 반론도 존재한다. 전술한 아베 정부의 간담회 중심 멤버였던 호소야 유이치는 전후일본이 일국평화주의적 외교를 펼쳐왔다고 비판하며 아베외교의 국제협조주의가 가지는 전환의 의미를 강조하기도 한다. Hosoya, Yuichi (2020), “Assessing the Legacy of Abe’s Foreign Policy,” Tokyo Foundation (September 15,2020) 참조.

     13) 요시다노선의 탈냉전 이후의 변화과정에 대한 분석은 황세희(2018) 「전쟁가능한 일본을 향한 안보정책 전환」 󰡔아베시대의 국가전략󰡕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pp. 180-210 참조. 

 

이처럼 전후레짐의 이면에 는 국제협조주의라는 외교원칙이 일본사회의 컨센서스로 존재해 왔다.

국제협조 주의는 전후일본외교가 요시다노선의 구조 속에서 국제사회의 행위자로 존재감을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현실적인 해법으로 확대되어 온 것이다.

때문에 국제협조 주의는 후술하듯이 국내외에 일본의 외교안보정책의 전환을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전후레짐의 산물인 국제협조주의가 전후레짐을 벗어 나기 위해 추진하는 외교안보정책의 주요한 근거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상의 분석에 기반하여 아베가 벗어나고자 했던 ‘전후레짐’을 미국에 의해 규정된 전후일본의 외교안보체제로 정의하고자 한다.

또 헌법-미일 안보체제의 양립을 제도화한 요시다노선을 전후레짐의 본질적 요소로 보고 아베 이후의 일본외교에서 요시다노선에 어떠한 변화가 진행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전후레짐의 정착에 확립된 일본외교의 국제협조주의가 요시다노선의 수정 속에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찰할 것이다.

 

3. 전후레짐 탈피를 위한 안전보장정책의 정비

 

3.1. 국가안전보장전략 책정과 적극적 평화주의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아베에게 있어 전후레짐을 벗어나는 것은 미국이 설계 한 요시다노선, 헌법-미일안보체제의 제약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아베 총리는 먼저, 헌법에 의해 규정된 안전보장정책의 법률적 한계를 돌파하고자 하였다.

아베 내각은 재집권 직후인 2013년 2월, ‘안전보장의 법적 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安全保障の法的基盤の再構築に関する懇談会, 이하 ‘간담회’)를 설 치하고 집단적 자위권 문제를 비롯한 헌법 및 안전보장법제 관련 논의를 전개하 였다.

간담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같은 해 12월 4일 처음으로 국가안전보장회의 (国家安全保障会議, NSC)를 설치하였다.

이어 같은 달 17일에는「국가안전보장전 략’(国家安全保障戦略)」을 채택하였다. 일본 정부 최초의 안전보장전략 구상을 담은 이 문서는 일본이 당면한 외교안보환경의 엄중함을 분석하면서 ‘일본의 평화와 안전은 일본 혼자서는 확보할 수 없고 국제사회 역시 일본이 국력에 부합하는 형태로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층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국제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의 입장에서 일본의 안전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실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 번영의 확보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이 일본의 국가안전보장 기본이념’이라고 명시하였다14).

 

     14) 内閣官房(2013) 「国家安全保障戦略について(平成25年12月17日国家安全保障会議・閣 議決定)」.

 

아베 내각은 국가안전보장전략 문서와 함께 「방위계획의 대강(防衛計画の大 綱)」을 각의결정하였고 2014년 4월 1일에는 「방위장비이전 3원칙(防衛装備移転 三原則, 이하 3원칙)」을 각의결정하였다.

같은 해 7월 1일에는 각의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용인하는 해석개헌을 단행하였다.

변경된 헌법해석 아 래 평화안전법제의 정비를 추진하여 2015년 9월 19일 동법제가 성립되었다. 헌법의 제약으로 개별적 자위권만이 행사 가능하다고 보았던 종래의 해석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평화 유지를 위하여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시도할 수 있다는 전략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3원칙은 기존의 무기수출3원칙을 대신 하여 새로운 안전보장환경에 적합한 원칙을 책정할 것을 의도했다.

무기수출에 대한 사실상의 금지를 규정했던 기존의 무기수출 3원칙에서 탈피하여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은 ‘평화공헌, 국제협력의 적극적 추진에 도움이 되는 경우, 그리고 일본의 안전보장에 도움이되는 경우에는 투명성을 확보하며 업격한 심사를 통해 이전을 허가한다’고 규정하였다.

일련의 정책을 통해 아베 내각은 국제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일본외교안보의 기조로 확립하였다.

심화된 21세기의 안보상황 속에 적극적으로 국제평화에 기여하는 것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논리가 광범위하게 받아들 여지게 된 것이다.

또한 적극적 평화주의는 국제사회 공헌과 미일동맹을 연속선 상에서 파악하며 그간 전후일본이 견지해온 전수방위(専守防衛)를 넘어선 안전 보장구상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한편으로 적극적 평화주의의 표방은 그간 헌법의 제약을 벗어나고자 했던 내셔널리즘적인 충동과 보통국가화 가 접점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15).

닐슨 라이트(John Nilsson-Wrigh)는 아베 총리가 국내적으로는 보수적 국가주의자이지만 동시에 실용주의적 외교전략을 전개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16).

또 사사키(Rena Sasaki)는 아베외교가 미일동맹 을 핵심으로 하는 다각적인 외교를 펼치는 ‘파노라마뷰의 외교(diplomacy with panoramic views)’를 통해 일본을 글로벌 플레이어로 인식시켰다고 보았다17).

 

     15) 황세희(2017) 「일본외교와 적극적 평화주의: 요시다노선의 대안으로서의 평가」 󰡔한일군 사문화연구󰡕 23, pp. 37-62.

    16) Nilsson-Wright, John(2020), “Shinzo Abe: Revisionist nationalist or pragmatic realist?” BBC (August 29, 2020).

    17) Sasaki, Rena(2022), “The Mixed Legacy of Abe Shinzo’s ‘Panoramic’ Foreign Policy.” the Diplomat (September 27, 2022). 

 

 

3.2. 국제정세가 강요한 ‘신시대 리얼리즘외교’

 

스가 정부에 이어 2021년 10월 4일 기시다 내각이 출범하였다.

아베 내각의 외무대신을 역임한 바 있는 기시다 총리는 각자의 파벌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아베와 기시다는 아베외교를 지탱해 온 신뢰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기도 했다18).

팬데믹 이후 전개된 국제질서 변화 속에 일본의 미래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던 2022년 1월 17일, 국회 시정방침연설에서 기시다는 국내 적으로는 ‘새로운 자본주의(新しい資本主義)’를, 외교안보전략으로는 ‘신시대 리 얼리즘외교(新時代リアリズム外交)’를 주창하였다19).

 

    18) 細谷雄一(2022) 「岸田政権が掲げる「 1.24.). 新時代リアリズム外交」の意味」 APInitiative, (2022.

    19) 首相官邸(2022) 「第二百八回国会における岸田内閣総理大臣施政方針演説」(2022.1.17.). ‘신시대 리얼리즘외교’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자민당 내 가장 리버럴하고 평화주의적이 라고 평가받는 파벌(宏池会)의 수장이면서 이상주의자로 평가받기를 꺼려온 기시다 총리 개인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細谷雄一(2022) 참조. 

 

일본사회의 격차와 저성 장을 돌파할 ‘새로운 자본주의’와 함께 제시된 ‘신시대 리얼리즘외교’는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라는 보편적 가치와 원칙을 중시하며 동시에 지역 평화 협력의 중요성을 주창하였다.

기시다 총리는 이 연설을 통해 보편적 가치의 중시, 지구적 규모과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 국민의 생명과 생활을 단호히 지켜나갈 태세를 ‘신시대 리얼리즘외교’의 세가지 기둥으로 정의하였다.

보편적 가치 의 유지와 국제사회의 정세변화를 감안한 외교 태세라는 점에서 ‘신시대 리얼리 즘외교’는 아베 총리가 내세웠던 외교안보 인식과 근본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전세계는 안보위기 와 에너지를 비롯한 공급망 충격을 맞이하였다.

더욱이 2023년 10월 7일, 하마스 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은 세계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기시다 총리는 수차례 ‘우크라이나는 내일의 동아시아일 지 모른다’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당시 기시다 내각의 외무대신이던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는 ‘국제사회가 오랜시간 노력해 왔고 때로는 많은 희생을 지불하면서 유지해온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폭거’ 라고 평가하기도 했다20).

이웃국가인 러시아의 침략행위를 목도하면서 일본사 회는 동북아에 잠재하고 있는 위협요소들을 더욱 경계하게 되었다.

한반도, 혹은 타이완을 둘러싼 미중대립이 현실화될 경우 일본은 어떠한 대응을 취할 것인지 에 대한 정책적 논의들이 다수 진행되었다21).

2023년 5월 히로시마에 개최된 G7 정상회담에서도 의장국인 일본은 ‘법의 지배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지키기 위해 우크라니아 지원을 주도할 것을 주창하기도 했다22).

 

    20) 林芳正・中西寛(2023) 「G7広島サミット改めて「 法の支配」を問う」 󰡔外交󰡕Vol. 77, pp. 6-11.

    21) 일본 내의 타이완 유사 사태에 대한 전략논의에 대해서는 김정현(2024) 「일본의 안보인 식 변화와 대응이 한반도 안보에 미치는 영향: 대만 유사사태를 중심으로」 󰡔한일군사문 화연구󰡕 42, pp.33-68 참조.

   22) 岸田文雄(2023) 「G7広島サミット「 78, pp. 6-7. 法の支配」に基づく国際秩序を守り抜く」 󰡔外交󰡕Vol. 

 

긴장된 국제정세 속에 2022년 12월, 기시다 내각은 「국가안전보장전략」, 「국 가방위전략」, 「방위력정비계획」 의 이른바 안보전략 3문서를 개정하였다.

아베 내각 이후 9년만에 개정된 「국가안전보장전략」 은 ‘전후 가장 엄중하고 복잡한 안전보장환경에 직면해 있다’는 인식에 기반하여 외교력, 방위력, 경제력, 기술 력, 정보력을 포함한 ‘종합적인 국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국가의 대응을 고차원의  레벨에서 통합시키는 전략’의 수립을 제시했다23).

안보관련 3문서의 각의결정 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기시다 총리는 향후 5년간 긴급하게 ‘방위력을 근본적으 로 강화(防衛力を抜本的に強化)’하기 위하여 43조엔의 방위력정비계획을 실시할 것을 표명하였다.

2027년까지 GDP의 2%에 해당하는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이 계획으로 인해 전후일본이 견지해온 GDP 대비 방위비 1%라는 한계는 사실상 사라졌다.

기시다 총리는 반격능력의 보유, 우주 및 사이버, 전자파 등의 신영역 대응, 남서지역 방위체제 강화를 새로이 요구되는 능력의 구체적인 사례로 들었 다24).

 

     23) 首相官邸(2022) 「国家安全保障戦略令和4年12月16日国家安全保障会議・閣議決定)」(2022. 12.16.).

     24) 首相官邸(2022) 「岸田内閣総理大臣記者会見」(2022.12.16.). 

 

또 종합적인 국력을 활용하여 일본을 전방위에서 빈틈없이 지켜나가기 위하여 해상보안청의 능력강화, 경제안전보장정책의 촉진 등 정부부처를 횡단하 는 체제를 정비할 것을 약속하였다.

안전보장 3문서의 책정을 통해 내세운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 방침은 상술 한 바와 같은 당시 안보환경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특히 안전보장 3문서와 관련하여 가장 이슈가 된 것은 ‘반격능력의 보유’였다.

기시다 총리는 반격능력의 보유에 대해서 ‘상대에게 공격을 단념시킬 정도의 억지력을 가지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하였다.

반격능력은 아베 내각 이래 논의되어 오던 ‘적기지공격능력’을 정책방침으로 명기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베 내각 이후 전개된 안전보장정책의 전환은 전후일본이 견지해 온 전수방위(専守 防衛)를 폐기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왔다.

‘반격능력’ 명기를 비롯한 안전 보장 3문서의 책정이 기존의 전수방위원칙을 형해화한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기시다 내각은 국제정세의 엄중함을 이유로 과감한 전환을 진행하였다.

공세적인 이미지가 강한 ‘적기지공격능력’을 공격억제라는 방어적 의미에 초점 을 든 ‘반격능력’으로 전환함으로써 헌법 9조와의 위헌성 문제를 회피하려 하였 다.

기시다는 당일 기자회견에서 이어진 질문에 답하면서 ‘평화안보법제에 의해 법률적, 이론적으로는 일본이 유사사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방위체제는 질적, 양적 측면에서 충분한지 정치가 확실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문서를 책정하기까지의 논의 과정에 배경이었다고 설명했다25).

헌법의 제약을 의식하면서도 동시에 평화안보법제를 실질적으로 완성하는 것이 기시다 정부의 안전보장 3문서의 책정을 만든 핵심적인 요인이었던 것이다.

이처 럼 ‘신시대 리얼리즘외교’를 표방했던 기시다 내각은 국제정세의 급변 속에 아베 내각이 시작한 안전보장정책의 정비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

기시다 내각의 안 보정책전환은 국제사회의 현상유지를 목표로 하는 ‘보통국가’의 완성이라고 평 가받기도 하였다26).

 

     25) 首相官邸(2022) 「岸田内閣総理大臣記者会見」(2022.12.16.).

     26) 박영준(2023) 「군사대국의 부활 혹은 보통국가의 완성?: 일본 기시다 내각의 안보전략 3문서 공표와 ‘전후 안보정책의 대전환」 󰡔일본연구논총󰡕 57, pp. 57-83.

 

4. 미일협력의 글로벌화

 

4.1. 미일동맹과 인도태평양구상

 

안전보장정책 및 관련 법제의 재정비는 요시다노선의 다른 한 축인 미일동맹 의 결속을 촉진하였다.

먼저, 평화안보법제가 추진되던 2015년 4월 27일, 신(新) 미일가이드라인(정식명칭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 이하 가이드라인)이 체결 되었다.

가이드라인은 동맹조정메커니즘에 주목하여 평시정보수집, 경계감시 및 정찰, 방공 및 미사일방위, 해양안전보장, 후방지원, 긴급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시설과 구역의 공동사용 강화 등, 상호 운용성의 향상에 힘쓸 것에 합의하였 다27)

 

     27) 황세희(2017) 「아베정권하 일본 국가전략 변화와 차기 정부의 한일 관계 방향」󰡔아베정 권하 일본 국가전략 변화와 차기 정부의 한일 관계 방향󰡕 재단법인 여시재. 

 

이는 당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리밸런싱 전략을 취하고 있던 오바마 정부의 이해와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이어진 트럼프 정부 시기, 아베 내각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긴밀한 대미관계를 구축하였다.

당시 일본이 전개한 대미 외교의 정점은 아베 정부가 제안하고 트럼프 정부가 채택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구상이었다.

냉전초기 일본에 대한 안전보장에서 출발한 미일동맹은 탈냉전 시기를 거치며 점직적으로 글로벌 규모로 협력법위를 확대해 왔다. 1990년대 주변사태를 규정 한 미일신가이드라인의 책정, 그리고 2001년에 발생한 동시다발테러 이후의 테 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미일동맹은 글로벌차원에서 미국의 세계질서 유지에 협 력하기 위한 일종의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28).

이러한 미일동맹 의 글로벌화, 광역화 추세는 아베 내각을 거치며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1기 집권시기인 2007년, 아베 총리는 인도 국회연설에서 ‘두 바다의 합류(Confluence of the Two Seas)’라는 개념을 통해 태평양과 인도양의 전략적 연계성을 지적한 바 있다.

2기 아베 정권이 탄생하던 2012년 12월, 아베 총리는 초기 미국-인도-호 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아시아의 안보다이아몬드 구상’로 그 개념을 확장하였 다29).

 

    28) 福島安紀子(2013) 「日本にとっての日米同盟―󰡔二国間同盟ロジック󰡕と󰡔良きグローバ ル市民ロジック󰡕の相互作用」󰡔日米安全保障同盟―地域的多国間主義󰡕 原書房.

   29) Abe, Shinzo(2012), “Asia’s Democratic Security Diamond,” Project Syndicate (Dec 27, 2012). 

 

안보다이아몬드 구상을 통해 아베 총리는 중국의 군사적 확장이 가속화에 대응하기 위한 인도와의 전략적 연대 강화를 주장하였다. 아베 내각의 지역질서 구상을 트럼프 정부는 공식전략으로 채택하였고 바이든 정부에서도 FOIP 구상 은 커다란 변화 없이 추진되었다.

2017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논의에 서 이탈하는 등 트럼프 정부에서 진행된 미국우선주의의 파도 속에서 종래 미일 양국이 협력하던 아시아태평양 지역질서에 대한 관여는 일본에게 상당 부분의 역할이 부가되었다.

미국이 떠나버린 TPP협상을 주도하며 2018년 포괄적・점진 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결성한 것도 아베 내각이었다.

중국을 견제하는 한편 인도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자유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를 매개로 한 지역질서의 협력자, 유지자로 기능하는 것이 아베 내각 이후의 일본의 기조가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아베 내각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를 전개하 였다.

FOIP에 더하여 인도,호주와 미일동맹이 연계된 4자안보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약칭 QUAD) 구상 등에 있어서도 미국의 지역전략과 호응하며 역내 질서 유지에 동참하였다.

오바마-트럼프- 바이든 정부로 이어지는 미국권력 의 교체에 따라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유동적인 상황에서도 인도태평양 지역 질서의 핵심축으로 미일동맹의 중요성은 변함없이 유지되었다

 

4.2. 팬데믹시대의 질서 재건과 미일협력 심화

 

아베 내각에 이은 스가 내각 시기, 미일양국은 팬데믹 이후의 국제질서 재건을 위한 광범위한 협력을 구체화시켰다.

2020년 이후 진행된 팬데믹의 글로벌 확산 은 기존의 국제질서를 뒤흔드는 전환을 전세계에 강요하였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와 글로벌 공급망 분리정책은 자유무역과 민주주의에 기반한 국제질서에도 도전와 전환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은 큰 손상을 입었다. 동시에 비전통적 위협에 의해 각국의 안전보장이 도전을 받는 시기였던만큼,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 위기 대응에 대한 모색이 활발히 진행된 시기이기도 했다.

2021년 4월 16일 미국을 방문한 스가 총리는 바이든 대통령과의 공동성명인 ‘새로운 시대를 위한 미일 글로벌 파트너십’을 발표하였다.

본 성명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시기 첨예해진 미중 대립과 글로벌 밸류체인의 변화 속에 미일 양국이 가치를 공유하고 혁신을 주도 하는 동맹임을 확인하였다.

양국은 센카쿠제도 방위에 대한 재확인에 더하여 사이버영역과 우주안보영역에서의 동맹협력을 심화할 것을 결의하였다.

또 성명 은 인도태평양 지역 및 세계평화와 번영에 대한 중국의 영향을 주시함과 동시에 ‘동중국해에 대한 일방적인 현상변경에 반대하며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불법 적인 해양권익에 대한 주장과 활동에 반대’할 것을 표명하였다.

나아가 ‘대만해 협에 대한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 였다30).

 

     30) 外務省(2021) 「日米首脳共同声明」(2021.4.16.).

 

미일공동성명에 대만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포함된 것은 중일수 교 이전이었던 1969년의 성명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중경쟁이 상수화 되어 가는 국제정치상황에서 동 성명은 인도태평양지역에서 미일동맹이 향후 어떤역할을 담당할지를 전망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만한 것이었다.

미일정상공동성명과 함께 발표된 「미일경쟁력・강인성 파트너십(日米競争 力・強靱性(コア)パートナーシップ)」선언은 글로벌이슈 전반에 대한 미일협력 의 지향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동 문서에는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과 같은 현안 의 핵심 기술 협력에 더하여 개방형 무선 액세스네트워크(Open-RAN), 5G 및 차세대 이동통신망(6G 또는 Beyond 5G), 사이버 보안 역량강화를 비롯한 차세대 기술의 공동 개발 및 투자 교류가 양국협력의 과제로 제시되었다31).

양국은 글로 벌 공급망의 재편과 기후위기, 글로벌 보건위기 대응 등의 과제들을 미일협력의 틀 안에서 추진할 것임을 확인하였었다.

같은 해 9월 24일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최초로 QUAD 회원국인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정상이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조 바이든(Joseph R. Biden), 스가 요시히데, 스콧 모리슨(Scott Morrison),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네 명의 각국 정상은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 구상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하였다.

아울러 향후 코로나 팬데믹 백신에 안전하고 공평한 공급을 지원 하기 위한 워킹그룹 설치에도 합의하였다.

또한 기후변화 대응과 신흥기술분야 의 협력과 인프라 투자, 사이버와 우주영역에 이르는 협력 등을 공동 추진할 것을 약속하였다32).

 

     31) 外務省(2021) 「日米競争力・強靱性(コア)パートナーシップ」(2021.4.16.).

     32) 外務省(2021) 「日米豪印首脳共同声明」(2021.9.24.). 

 

스가 총리로서는 마지막 외교일정이었던 이 회담은 향후 일본외교가 미일동맹에 근거한 국제질서의 재구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미일정상 공동성명에서 다루어 졌던 협력들이 대부분 인도 태평양의 핵심행위자인 호주와 인도까지 포함하는 다국적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되었다.

 

4.3. 확장억지구상과 미일동맹의 일체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속에 전개된 기시다 내각의 미일안보협력 역시 글로벌질서 유지에 적극 참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특히 중국의 타이완 침공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일양국은 일본의 안전보장 및 지역안전보장에 있어 미일동맹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합의하였다.

상술한 안전보장 3문서 책정에서 한달 여 후인 2023년 1월에 진행된 미일안전보 장협의위원회(SCC, 통칭 2+2회의)에서 일본은 새로운 안전보장 전략, 특히 반격 능력을 포함한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의지를 표명하였다.

미국 정부는 일본의 새 국가안전보장정책이 ‘동맹의 억지력을 강화시킬 중요한 진화’라고 지지를 표시하였다33).

양국은 각국이 책정한 새로운 국가안전보장전략과 국가방위전략 을 기반으로 하여 ‘전략적 경쟁의 새로운 시대에서 승리하는 태세를 갖추기 위한 현대화된 동맹 비전’을 제시했다고 평가하였다.

남중국해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 북한의 미사일 발사 행위, 러시아-우크라니아 전쟁이라는 중첩된 긴장 속에서 미일양국은 복합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동맹현대화’를 추진하 기로 합의하였다.

앞서 2019년에 열린 2+2 회담에서는 일본에 대한 ‘대규모 사이 버공격’도 미일안보조약 제5조의 대상임을 합의한 바 있다.

또한 2022년 1월 개최된 2+2 회의에서는 “우주는 미일안보조약 제5조의 발동대상”임을 명기하였 다.

이처럼 미일동맹의 협력범위는 안전보장 3문서의 책정 이후 일본 본토와 동북아라는 지리적 범위를 넘어 사이버, 우주라는 새로운 영역에서의 협력일체 화로 심화되고 있다.

또 2023년의 2+2회의에서 양국은 다차원, 다영역에서의 상호운용능력을 강화하기 위한 분야별 협의를 가속시키는 동맹현대화에 합의하 였다.

미일동맹이 일본의 ‘근본적인 방위력 강화’와 연계되는 지점은 확장억지구상 에 있다.

이를 위한 대표적인 논의의 장은 미일확대억지협의(日米拡大抑止協議, Extended Deterrence Dialogue, EDD)였다34).

 

     33) 防衛省(2023) 「日米拡大抑止協議」(2023.12.7.).

    34) Extended Deterrence라는 개념에 대해 한국에서는 ‘확장억지’로 통용되나 일본정부는 확대억지(拡大抑止)로 표현하고 있다.

 

EDD는 미일동맹의 확장억지의 유지 및 강화의 방향을 논의하기 위한 2010년 설립된상설협의체이다.

안전보장 3문서 책정 이후 진행된 2023년, 2024년의 EDD 협의에서 미일 양국은 미국 핵자산이 일본에 가지는 억지효과의 강화를 재확인하였다.

동시에 양국은 미일동맹이 잠재적 공격에 대한 방위와 핵사용의 억지로서 기능하기 위한 ‘미일동맹의 종합적 억지력’을 강화시킬 것을 약속하였다35).

 

    35) 防衛省(2024) 「日米拡大抑止協議」(2024.6.15.).   

 

미국이 핵을 포함한 확장억제를 재확인 한 일본은 자국방어에서 반격능력을 보유하는 것으로 양국간의 역할 분담이 더욱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고 종합적이고 일체화된 미일협력이 가능해 졌다.

 

5. 국제협조주의의 글로벌 지평 확대

 

5.1. FOIP의 업데이트와 글로벌사우스로의 확장

 

미일동맹의 글로벌협력 심화는 자연스레 일본외교의 글로벌 지평을 확장시켰 다.

기시다 내각은 아베 내각 이후 추진해 왔던 FOIP 구상의 업데이트를 진행했 다.

2023년 3월 20일, 인도를 방문한 기시다 총리는 변화된 국제정세 속세 FOIP의 발전을 위한 네가지 추진 방향을 제시했다. 평화의 원칙과 번영의 규칙, 인도태평 양 방식의 과제 대처, 다층적 연결성과 해양 협력, ‘바다’에서 ‘하늘’로 넓어진 안전보장 및 안전 이용의 체제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 새로이 2030년까지 민간을 통틀어 750억달러의 자금을 인도태평양 지역에 투입해 성장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36).

 

    36) 首相官邸(2023) 「岸田総理大臣のインド世界問題評議会における政策スピーチ」(2023.3. 20.); 「首相 “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推進へ: 750億ドル以上投入」 NHK (2023.3.20.). 

 

같은해 7월 외무성은 구체적인 지원 방침의 사례를 정리한 「자유롭 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를 위한 새로운 플랜(自由で開かれたインド太平洋 (FOIP)のための新たなプラン)」을 발표했다

‘자유’와 ‘법의 지배’를 확산시키기 위해 각국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함께 제도 및 인재양성, 해양의 안전, 안보에 중점을 두던 종래의 구상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하늘’과 디지털, 사이버 안보의 영역에서의 지역 협력의 기틀을 다지고자 하는 것이 새로운 FOIP구상에서 주목 할 점이다.

지역의 경제발전에 더하여 ‘국제공공재’로서 기후와 환경, 국제보건, 사이버 공간 등의 협력 분야를 포괄하는 지역 전체의 협력 전략을 과감하게 제시한 구상이라 할 수 있다.

기시다 내각은 나아가 새로이 부상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 의 협력도 강화하였다37).

인도태평양에 더해 중동과 남미를 포괄하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세계 인구의 70%이상을 차지하는 국가군이다.

경제성장의 새로 운 엔진으로 주목받는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미중대립, 그리고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대립이 진행되는 국제사회에서 캐스팅보트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연대 강화를 위해 기시다 내각은 부처간을 횡단 하는 통합적인 정책추진을 도모하였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글로벌 사우스 국 가와의 협력 강화를 위한 정책 검토와 협의를 위해 관계 부처간 협의체인 ‘글로벌 사우스국가와의 연대강화회의’를 개최하였다.

2차례에 걸쳐 진행된 이 회의의 결과 기시다 총리는 GX(그린 전환), 디지털, 중요 광물, 차세대 자동차 등 일본이 강점을 가진 분야을 중심으로 한 산업 협력강화, ODA(공적개발원조) 전략적 활용, 기존 인프라 개념을 넘어서는 신영역에 대한 민관 공동 도전 전략 수립 등을 정부 기본방침으로 발표하였다38).

 

     37) 기시다 내각의 글로벌사우스 정책에 대한 평가는 Hisahiro, Kondoh(2024), “Japan’s Strategic Interests in the Global South: Indo-Pacific Strategy,” Center for Strategy and International Studies (May 21, 2024); Harris, Tobias(2024), “Japan’s Approach to the Global South: It sets an example for the rest of the G7 to follow,” German Marshall Fund of the United States (April 2024) 참조.

     38) 首相官邸(2024) 「グローバルサウス諸国との連携強化推進会」(2024.6.11.). 

 

 

5.2. 캠프데이비드정신과 한미일협력의 제도화

 

한편, 아베 내각 이후 진행된 국제협조주의의 글로벌화 속에 이질적 존재로 남겨진 것이 한일관계였다.

고노담화 재검증,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와 관련된 해석개헌 등 아베 내각이 추진한 ‘전후레짐으로 부터의 탈피’ 속에서 한국사회는 일본의 미래를 경계하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었다39).

 

      39) 아베 담화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에 대해서는 윤석정(2019) 「전후 70년 담화와 한국: 무라 야마 담화에 대한 덮어쓰기와 한국 배제」 󰡔아태연구󰡕 26(1), pp.41-71 참조  

 

한국 해군과 일본 해상자위대간의 레이더 조사(照射) 공방, 일본제철 강제징용소송의 배상 판결, 그리고 2019년 여름 진행된 일본 경제산업성의 ‘화이트국가(ホワイト国)리스트’ 제외 조치에 이르기까지, 한일양국의 갈등은 아베 내각 시기를 관통하였다40).

미일동맹의 일체화와 국제공헌의 확대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일본의 위상을 강화할수록 한일관계의 가치는 퇴색되고 국제협조 주의가 미치지 않는 음지의 영역으로 퇴보하고 말았다.

아베외교의 사각지대로 남겨지던 한일관계는 윤석열 정권과 기시다 내각의 극적인 관계개선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한일관계의 전환은 단순한 양국 리더 십의 교체에 기인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상술하였듯이 팬데믹 이후 진행된 미중대립의 격화, 러-우전쟁, 타이완을 둘러싼 양안관계의 긴장 고조 등 동북아 주변의 위협상황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한미일안보협력의 실질적 필요성을 강요 하였다41).

한일관계 개선에 힘입어 한미일 양국은 2023년 8월 18일, 3개국 정상은 「캠프데이비드정신」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

동 성명은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를 위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 전략적 공조 강화와 다영역에 걸친 정례훈련 등 3개국안보의 구체적 협력방안이 포함되었다.

또한 연례적인 3국 외교국방장관회 의, 3국재무장관회의, 3자 인도태평양대화, 3국간 개발정책대화 등 다양한 영역 에 대한 한미일의 정책공조와 협의체의 제도화가 약속되었다.

3국 협력의 제도화 가 명문화된 것에 대해 한일관계의 악화나 미국 대통령 교체에도 영향 받지 않는 한미일협력을 위한 보험으로 평가받기도 하였다42).

 

    40) 아베 내각의 대한국외교에 대해 이기태는 ‘협력’보다 ‘배제’ 혹은 ‘갈등’의 대상으로서의 한국정책이 실시되었다고 평가한다. 이기태(2023) 「아베외교는 무엇이었는가: ‘아베 노 선’의 한계」 󰡔일본학보󰡕 136, pp.219-239 참조.

    41) 동북아 정세 변화에 따른 한미일안보협력의 불가피성은 박영준(2024) 「국제안보질서의 동요와 한미일 안보협력의 방향」 󰡔국가전략󰡕 30(3), pp.5-33 참조.

    42) 小谷哲男(2023) 「日米韓キャンプ・デービッド合意:評価と課題」 󰡔国問研戦略コメン ト󰡕 2023-08. 

 

실질적이고 지속가능 한 다자안보체제를 구축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캠프데이비드정신은 한미일협 력의 ‘역사적 전환’이라 평가할만 하다.

특히 이는 아베 내각 이후 사각지대로 남아있던 한일관계를 보완하는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한일간의 갈등과 신뢰부족은 미일동맹에 기반한 일본의 글로벌질서에의 공헌에서 정작 일본 주변지역의 안전보장을 공백으로 남기게 했다.

캠프데이비드정신에 의한 한미일협력의 제도 화는 3개국 협력이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하는 기반이 되었 다. 이는 위협에 대한 공동인식과 신뢰 구축을 통해 동북아 지역에서의 일본이 추진해온 국제협조주의를 내실화하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아울러 아베외교의 부(負)의 유산이었던 한일관계의 악화를 해소한다는 점에서 일본외교의 현실주 의를 확인하는 장면이기도 하였다.

 

 

6. 나가며: 아베레거시와 일본외교의 현실주의

 

아베—스가—기시다 내각의 외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지난 10년간의 일본외교는 국제사회에서 ‘국제협조주의에 기반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강화, 확 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패전국 일본이 강요당했던 요시다노선을 탈피하겠 다는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아베의 모토는 평화헌법의 해소와 대등한 미일동맹을 위한 법제 정비, 외교안보 지평의 확대로 진행되었다.

아베외교가 뿌린 씨앗들은 안전보장정책의 재정비를 통해 기존의 법률적 제약을 해소하고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국제협조주의를 전개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울러 미일동 맹의 글로벌화, FOIP 구상의 업데이트,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 등은 아베 내각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확대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아베외교의 계승, 아베레거시의 성과라 일컬을 만하다.

대등한 미일동맹, 그리고 일본외교가 국제사회에서의 존재감과 지위를 확장시키는 정책적 효과라는 점에서 보자면 전후레짐 속에 고착되었던 경무장-경제성장 중심의 일본이라는 이미지는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볼 때,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아베의 모토는 요시다노선의 수정이라는 점에서 일정의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아베로 하여금 전후레짐의 탈피를 염원하게 했던 충동과 불만이 해소되었냐는 측면에서 보자면 전후레짐의 완전한 탈피는 성취하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아베가 추구했던 미국이 설계한 전후레짐로부터의 탈피라는 충동은 ‘전후레짐’을 넘어서려는 일본외교의 시도 / 황세희 25 아베레거시가 계승될수록 동력을 잃었다.

미중경쟁의 심화 속에 국제협조주의는 미국이 설계한 국제질서의 가장 적극적인 지지자이자 협력자로서 일본을 자리매 김하는 바탕이 되었다.

확인하였듯이 기시다 내각의 안전보장 3문서 책정은 아베 외교가 요시다노선 아래 억제되어 왔던 안전보장상의 제약을 해소하고 방위체제 의 근본적 정비에 나섰다는 점에서 상당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아베레거시가 전승되는 과정에서 아베가 주창했던 ‘전후레짐로부터의 탈피’이라는 슬로건은 사라지고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적극적 평화주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 양’이라는 정책적 지향은 강화되었다.

반면에 ‘전후레짐으로부터 탈피’의 마지막 염원이었을 헌법 9조의 개정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로 남겨졌다.

미국이 설계한 전후레짐에서 벗어나고자 한 아베외교가 미일동맹의 일체화를 한층 심화시킨 것은 전후레짐을 대체하기 어려운 일본외교의 현실을 보여준다.

전후레짐의 본질이라 할 요시다노선의 헌법-미일안보체제의 양립은 개헌없이 미일안보체제를 확대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형되었으나 이를 벗어난 새로운 외교 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1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탈냉전이후 전개된 일본 의 평화유지 활동이나 미일협력의 심화는 동아시아 국가들에게 요시다노선의 종식과 군사대국화의 전조로 파악되었다.

아베가 추구했던 ‘전후레짐으로부터 의 탈피’ 역시 동일한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아베 총리의 동력이 전후레짐의 본질인 요시다노선의 대미종속에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일견 이는 타당한 인식이 다.

그러나 아베의 충동이 정책으로 제도화되는 과정은 헌법-미일안보체제의 양립을 부정하기보다는 이에 기반한 일본의 외교안보 지평을 확장하는 과정이었 다.

이는 일본외교가 국제정세의 변화 속에 채택해 온 현실적 선택이기도 했다.

지난 10여 년간 심화된 미중경쟁, 그리고 예기치 못했던 글로벌 감염병의 확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변수 속에 일본외교는 국제공헌과 미일동맹의 일 체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가속화하였다.

이에 대하여 소에야는 아베의 외교노선이 기존의 요시다노선을 규정한 환경을 뛰어넘지 못하는 내재적 지향에 서 머물러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43).

 

    43) 添谷芳秀(2016) 󰡔安全保障を問いなおすー「九条ー安保体制」を超えて󰡕 NHK出版. 

 

요시다노선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에야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러나 동시에 헌법해석의 확대와 적극적인 국제질서의 행위자로 일본을 자리매김했다는 점에서 아베레거시는 요시다노선 의 외연을 확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베레거시는 21세기의 국제환경 변화 속에 일본외교의 현실주의가 어디까지 수용, 혹은 변경이 가능한 지를 확인하는 작업의 산물이기도 하다.

2024년 11월 11일 이시바 시게루 2차 내각이 출범하였다. 트럼프의 재집권 후 더욱 강경한 미국우선주의는 연일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동맹국에게 조차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며, 자국의 부담은 줄이려는 트럼프의 미국은 일본에 새로운 도전을 던져주고 있다.

전후 80주년을 맞이하는 일본이 요시다노선을 뛰어 넘는 독자적 외교 비전을 어떻게 설정하고 실행할 것인지에 귀추가 주목되 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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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본 논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제창한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정치적 슬로건 이 외교안보정책에서 어떻게 계승되고 변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아베는 헌법과 미일 안보체제의 양립으로 만들어진 전후레짐이 21세기 국제정세에 부합하지 않다고 보고 적극적 평화주의, 안보법제 재정비, 미일동맹의 글로벌화, 인도태평양 구상 등을 추진 하였다. 그의 정책적 유산은 스가・기시다 내각으로 이어지며 제도화되었고, 특히 기시다 내각에서는 안보전략 3문서 개정과 GDP 대비 방위비 2% 확보, 반격능력 보유 등으로 보통국가화의 길을 가속화했다. 또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진화, 글로벌사우스와의 협력, 그리고 미일동맹의 심화와 한미일 3자 협력의 제도화(캠프데이비드 공동성명)등을 통해 국제협조주의 기반의 외교를 강화했다. 이 과정에서 아베 총리가 추구했던 전후레짐으로부터의 탈피라는 슬로건은 옅어지 고, 그가 설계한 외교안보 정책들은 현실주의 기반의 제도화된 전략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아베레거시가 상징보다는 실질적 정책유산으로 계승되었음을 보여준다.

 

키워드:아베 신조, 전후레짐, 국제협조주의, 요시다노선, 미일동맹

 

 

Abstract

Japan’s Attempt to Move Beyond the Postwar Regime―The Inheritance and Transformation of the Abe Legacy

Hwang, Sehee( Sungkonghoe Univ.)

This study analyzes the changes and continuities in Japan’s foreign and security policy, focusing on the Abe administration’s pursuit of “breaking away from the postwar regime.” Abe viewed the postwar regime-characterized by the coexistence of Japan’s pacifist constitution and the U.S.-Japan Security Alliance-as inadequate for addressing 21st-century international realities. In response, he promoted proactive pacifism, the reorganization of security legislation, the globalization of the U.S.-Japan alliance, and the Indo-Pacific initiative. His policy legacy was institutionalized under the Suga and Kishida administrations, with the Kishida Cabinet accelerating Japan’s path toward becoming a ‘normal’ state through key security document revisions, increased defense spending, and counterstrike capabilities. Japan’s diplomacy was further reinforced through the evolution of the Indo-Pacific strategy, deeper ties with the Global South, and the institutionalization of trilateral cooperation with the U.S. and South Korea, exemplified by the Camp David Joint Statement. Abe’s slogan of “breaking away from the postwar regime” gradually faded, but the policies he initiated have endured as pragmatic and realist strategies, forming the core of Japan’s current foreign and security framework..

 

Key Words : Abe Shinzo, Postwar Regime, Japan’s diplomacy based on international cooperation, Yoshida Doctrine, U.S.-Japan alliance

 

 

 

 

 

접 수: 2025. 07. 13. 수 정: 2025. 08. 11. 게재확정: 2025. 08. 20.

韓日軍事文化硏究 第44輯

&lsquo;전후레짐&rsquo;을 넘어서려는 일본외교의 시도-아베레거시의 계승과 변화-.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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