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본 논문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저항 권 사상을 루터파 전통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은 루터 신학과 상호교섭 가운데 형성되었다.
본회퍼는 베를린 대학 시절 칼 홀과 라인홀트 제베르크 등 루터 신학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학자들 로부터 교의학을 배웠다.1)
1) A.J. Klassen, ed., A Bonhoeffer: Essays in Understanding (Grand Rapids: Eerdmans, 1981), 48. 본 회퍼는 하르낙의 “가장 진정한 문하생”이었다.; John W. de Gruchy, ed., The Cambridge Com panion to Dietrich Bonhoeff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53. 본회퍼의 생애 와 사상에 관한 전기적 기술은 다음을 참고하라. 에버하르트 베트게 지음/김순현 옮김, 『신학자 그리스도인-동시대인 Dietrich Bonhoeffer』 (서울: 복있는 사람, 2014); Eric Metaxas, Bonhoeffer : Pastor, Martyr, Prophet, Spy (Nashville: Thomas Nelson, 2010).
이때 본회퍼는 마르틴 루터 신학의 중심 주제, 즉 칭의론을 비롯하여 십자가 신학, 두 왕국론의 원리 등을 심도 있게 학습하였다.
루터의 두 왕국론과 본회퍼의 저항권과의 관계성과 관련하여 학자들 사이에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아래에서 입론하겠지만 비판의 요지는 히틀러 나치 치하 독일 그리스도인의 국가와 사회를 향한 태도를 고려해 볼 때 과연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국가 권력에 대항한 저항 사상 을 찾아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2)
그러므로 본회퍼의 정치 윤리 는 루터와 루터파 전통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반론은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의 기본 토대는 루터파 전통 에 기인한다는 견해이다.3)
반론의 요지는 본회퍼의 교회 개념, 국가 권 력의 기능과 역할, 그리스도인의 사회 윤리적 행동 양식에 관한 담론은 히틀러 제3 제국의 특정한 역사적 사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지만 본 회퍼의 저항권은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나치 치하 교회 의 투쟁 기간을 거치면서 단계적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주장이다.4)
2) Ernst Troeltsch, Reinhold Niebuhr, Karl Barth, Jürgen Moltmann 등이다. 자세한 토론은 다음 장 을 참고하라. 3) George W. Forell, Carter Lindberg, Michael P. DeJonge 등이다. 이들의 견해는 루터의 정치신학 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윤리를 적극적으로 내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자세한 토론은 다음 장을 참고하라.
4) 이와 관련하여 드종은 본회퍼의 두 왕국 사상은 그의 생애 주기별로 세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해 나갔다고 논의한다. Michael P. DeJonge, Bonhoeffer’s Reception of Luther (Oxford: Oxford Uni versity Press, 2017), 102. 참고. 정승훈, “디트리히 본회퍼와 포스트모던 해석학,” 「신학사상」 116 (2002/봄), 193-217.
그러므로 이 글은 본회퍼의 정치신학 형성의 역사적인 배경, 즉 그의 저항권 사상이 루터 신학 및 루터파 전통과 어떻게 내재적 연관성이 있 는지를 탐구하고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의 정치신학의 기초와 그 구조를 연구하여 그 현대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결국 본 연구는 루터파 전통과 본회퍼 사상은 서로 불연속적이며, 특히 저항권과 관련하여 본회 퍼는 루터파 전통과 단절되어 있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Ⅱ. 루터파 전통과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의 관계
1. 루터와 루터파 전통의 정치-사회 윤리적 함의
루터파 전통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치적 저항 윤리를 찾아볼 수 있는가?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은 루터의 종교성은 기본적으로 인간 의 내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으며 독일 농민전쟁 때 보여준 그의 태도는 농민들의 정치적 저항을 무력화시켜 기존 체제를 정당화하였다고 비판하 였다.
마르크스는 루터는 종교를 인간의 내면적인 차원으로 끌어들였다 고 비판하였고 엥겔스는 루터의 신학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며 부르주와 귀족들 편에 서 있다고 말하면서 루터와 이후 프로테스탄티즘에서 부르주와 기독교의 전형을 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5)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서도 루터의 정치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 다.
에른스트 트뢸취는 16세기 유럽의 종교개혁운동은 여전히 “단일화된 기독교 체제”(Corpus Christianum)를 지향하였던 중세의 교회론적 문명 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보았으며 루터의 종교개혁을 사회변혁보다는 개인의 내적 투쟁의 산물로 보았다.6)
트뢸취에 따르면 특히 루터의 두 왕국론은 개인 윤리와 공적 윤리를 구분한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였다고 주 장하였다.
그 결과 루터는 공적 영역보다는 종교적 개인주의와 순전한 영적 윤리를 강조하게 되었다.7)
5) K. Marx/F. Engels, trans., Andy Blunden, Marx and Engels on Religion (Moscow: Progress Pub lishers, 1957), 51; Frederick Engels, The Peasant War in Germany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1956), 53, 64-67.
6) Ernst Troeltsch, Protestantism and Progress: The Significance of Protestantism for the Origins of the Modern Worl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6), 51, 65-68, 80-88.
7) Ernst Troeltsch, The Social Teaching of the Christian Churches, Vol 2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2), 467. 512-13.
트뢸취의 비판적인 평가는 루터의 현대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라인홀드 니버는 루터의 두 왕국론은 현대 사회의 불의한 구조를 혁 파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윤리적 “패배주의”를 낳는다고 비판하였다.
따라서 루터의 정치신학은 사회 변혁적 요구에 완벽하게 부 응할 만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나 책임윤리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니버에 따르면 루터는 “현실적이고 공적인 윤리”보다는 “완벽주의적인 개인 윤리”를 발전시켰다.8)
위르겐 몰트만 또한 루터의 신학은 그리스도 인의 내면적인 의를 강조하고 개인 윤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독교의 사회-정치적인 차원을 회피한다고 비판하였다.
몰트만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특정 사회에서 세속 윤리나 세속 질서의 윤리를 인정하는 기준만 을 제시하며” 세상에서 기독교적 실천을 위한 기준은 없다고 말한다.9)
칼 바르트는 루터와 루터파의 유산은 결국 율법과 복음, 세상 질서와 영적 질서를 구분하게 만들었고 어떤 점에서는 독일 국가사회주의의 길 을 예비하였다고 비판하였다.
바르트는 루터파의 두 왕국론 교리는 영적 왕국은 하나님의 통치에, 세속 왕국은 세속 권력의 통치자 손에 맡겨 둠 으로써 두 영역이 각자 자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써 국가 권력과 권한을 신학적으로 합법화하였고 그 것의 과도한 남용이 곧 국가사회주의의 등장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다 시 말해 나치 종사자들이 루터의 교리를 기독교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10)
정치학자 윌리엄 맥거번의 책 『루터로부터 히틀러까지』는 파시스트-나치즘의 정치 철학의 역사적 계보와 담론을 다루었다.
맥거번은 “파시즘은 좁은 의미로 본다면 16세기 종교개혁 시기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11)
8) Reinhold Niebuhr, The Nature and Destiny of Man, Vol 2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43), 193. 9) Jürgen Moltmann, Following Jesus Christ in the World Today: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and Christian Discipleship (Elkhardt: Institute of Mennonite Studies, 1983), 38.
10) Karl Barth, Community, State, and Church: Three Essays (Garden City: Doubleday, 1960), 38f. 71-2, 102-5. 11) William M. McGovern, From Luther to Hitler: The History of Fascist-Nazi Political Philosophy (Boston: The Riverside Press Cambridge, 1941), 21
그는 종교개혁의 정치 철학 형성에 미친 영향을 다루는 부분에서 마르틴 루터와 루터파의 정치사상과 헨리 8세와 초기 영국 국교회 성직자들의 정치사상을 검토한다.
맥거번은 루터파와 앵글리칸이즘은 신학이나 정 치 이론의 여러 측면에서 철저하게 서로 달랐지만 “이 두 운동 모두 국가 의 중요성과 강력한 권위주의 정부의 필요성을 강조” 함에 있어 공동보 조를 취하였다고 주장한다.12)
맥거번에 따르면 파시즘을 주장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루터는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의 교리는 국가를 모든 교회의 통제 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이다.”13)
그러나 맥거번은 제목이 암시하듯이 루터와 히틀러 나치즘 사이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규명하려는 의도였지 만 그 관계성을 찾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20세기 파시즘의 등장은 종교 개혁 이후 역사, 사회, 정치 경제의 복잡한 변화 요인을 고려하여야 하며 나치가 자행한 인종 차별이나 집단 학살 이념을 종교개혁 운동의 결과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나치 정권이 루터의 신학적인 맥락은 무시하고 그의 이론을 선택적으로 취하여 선전 선동에 오 용하였다는 점을 직시할 때 양자는 분명히 구분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역사학자 윌리엄 쉬러 또한 루터와 히틀러 나치 치하의 독일 국민의 운명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거론하며 “나치 초기 독일 개신교도 대부분의 행동은 마르틴 루터의 영향”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았다.14)
쉬러는 1525년 독일 농민 전쟁 때 루터는 영주 편을 들었고 정치권력을 옹호하 였던 그의 입장은 영주들을 크게 고무시켰으며 결국 지방 영주들의 정치적 독재를 보장하여 독일 국민 대다수를 가난과 고통, 노예로 전락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루터는 히틀러 독재체제에 독일 국민의 복종을 정당화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15)
12) Ibid., 30
13) Ibid., 31
14) William L. Shirer, The Rise and Fall of the Third Reich: A History of Nazi Germany (New York: Simon & Schuster, 1960), 236. 김주한 | 디트리히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 연구 – 루터파 전통의 관점에서
맥거번이나 쉬러의 주장은 루터파는 어떤 식으로든 국가사회주의의 이론적 토대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동의한다.
이들은 루터의 사상은 교 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복음 선포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하여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신학적으로 합리화하였으며 세속 질서와 관련하여 교회와 그리 스도인의 무비판적인 복종을 낳았다고 주장하였다.
말하자면 루터와 루 터파 전통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 사회윤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이다.
다른 한편 루터와 루터파 전통에서 사회변혁을 위한 정치 윤리, 교회 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윤리를 강조하는 학자들은 다양한 이론과 사례를 제시하며 위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헤롤드 그림은 나치 부역자들 이 종교개혁운동, 특히 루터의 사상을 나치즘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이데 올로기로 오용하였음을 지적한다.
그림은 루터와 함께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은 독일 사회 전체의 사회 경제적 변화를 초래하였고 모든 계층에게 자신의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희망하도록 만들었다 고 주장한다.
“루터주의는 농민들 사이에 상당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곧 자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종교 적인 욕구를 사회적인 용어로 번역하였다.”16)
그림은 프로테스탄트가 내 세운 사상과 가치들, 즉 “복음, 하나님 말씀, 형제적인 사랑, 하나님의 정 의, 자유와 평등”은 사회변혁을 위한 동력을 제공하였다고 주장하였다.17)
조지 포렐은 루터의 사회윤리 신학의 토대를 구성하는 원리를 탐구 하였다.
포렐은
“국가사회주의는 종교개혁의 논리적 결론이었다”
는 주장 을 비판하고 루터의 사회 윤리적 시사점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사상에 있다고 주장한다.18)
15) Ibid., 91-2.
16) Harold J. Grimm, “The Social Basis of the German Reformation,” Lewis W. Spitz, Ed., The Ref ormation: Basic Interpretation (Lexington: D.C. Heath and Company, 1972), 91
17) Ibid., 96.
18) George Wolfgang Forell, Faith Active in Love (New York: The American Press, 1954), 20.
포렐에 따르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야말로 루터 칭의론의 사회 윤리적 차원의 방법론이요 실용적인 원리이 다.19)
카터 린드버그는 루터의 사회복지 사상을 탐구하여 사회윤리 신학 의 모델을 제시한다.
린드버그에 의하면 루터의 칭의론은 “공동체의 새 로운 정신”을 창출하였다.20)
린드버그는 루터가 가난의 문제를 개인과 수도원, 교회의 영역을 벗어나 시 정부와 협력하여 제도화시킨 사례를 제시한다.
린드버그는 루터가 참여한 ‘비텐베르크 사회복지 법령 제 정’(1522)이나 ‘그리스도인 사이에 어떠한 구걸하는 사람들은 없어야 한 다’(1522), ‘성직자는 고리대금업 반대 설교를 해야 한다’(1540) 등의 글을 사례로 소개하며 루터의 사회윤리 신학의 성격을 분석한다.21)
린드버그는 루터는 교회와 정부의 상호 협력을 통해 사회적 개혁을 위한 제도적 발판을 마련하였다고 주장한다.
마이클 드종은 본회퍼의 루터파 전통의 수용 문제를 탐구한다.
드종 은 정치권력을 향한 저항 문제와 관련하여 본회퍼는 루터파 전통, 특히 루터의 두 왕국론 사상에 의존하여 당대의 상황에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 문제를 다루었다고 말한다.
드종은 본회퍼와 루터파 전통 모두 정치권력 에 대한 저항은 교회의 순수성 확보를 위한 투쟁과 결부되어 있다고 말 한다.
따라서 “정치적 저항과 교회를 위한 투쟁 사이의 연결”은 “저항의 암묵적인 논리를 내포한” 본회퍼의 두 왕국 사상에서 볼 수 있다.22)
본회퍼는 교회는 국가가 말씀 선포를 위태롭게 할 때 거기에 당연히 저항해 야 한다고 주장하며 교회는 국가에 복종하기도 하지만 저항도 해야 한다 고 주장하였다.23)
19) Ibid., 11-25.
20) Carter Lindberg, Beyond Charity: Reformation Initiatives for the Poor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3), 94.
21) Ibid., 95-127.
22) Michael P. DeJonge, Bonhoeffer’s Reception of Luther, 190.
23) 본회퍼의 박사학위 논문 『성도의 교제』는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인 연구로서 ‘타자를 위한 교회’로서 직무와 역할을 사회적 기본 관계 구조 속에서 파악한다. 디트리히 본회퍼/유석성 · 이 신건 옮김, 『성도의 교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지금까지 루터와 루터파 전통은 세상 변혁을 위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정치 사회 윤리적 행동의 토대를 제공하는 여부와 관련하여 찬반의 양론을 검토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본회퍼에게 교회와 국가의 본질적인 성격을 신학적으로 정의하고 규명하는 작업은 그것을 현실 세 계에 적용하는 문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태도를 결정하는 것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2. 루터파 전통과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
이제 루터파 전통의 저항 사상의 본질과 성격을 살펴보고 그것이 본 회퍼 사상 형성에 얼마나 신학적인 근거로 작용하고 어떻게 영향을 주었 는지를 탐구하여 분석해 보기로 한다.
여기서는 루터파 전통의 저항사상 그 자체를 분석하기보다는 본회퍼가 이 저항권 전통을 그의 삶의 자리에 서 어떻게 실제화하였는지를 논증하고자 한다.
존 드 그루시는 칼빈주의와 본회퍼 사상의 연관성은 “놀랍고도 심지 어 충격일 수 있다”고 말한다.24)
본회퍼의 여러 저항 행위, 즉 히틀러의 아리안 법(유대계 배척조항)에 대한 저항이나 평화를 향한 노력, 히틀러 암 살 모의에 가담한 일 등은 루터파 유산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25)
24) John W. de Gruchy, “Bonhoeffer, Calvinism and Christian Civil Disobedience in South Africa,”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34, no. 3(1981), 247.
25) Ibid., 246.
그루시의 단정적인 견해는 나중 약간의 수정이 있었지만 ― 그는 본회퍼 가 암살 시도 공모에 대한 참여 문제로 씨름할 때 루터의 저술이나 아우 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1530) 등을 참고하였다는 점을 인정 ― 여전히 본 회퍼가 알았던 루터주의는 이 문제에 대한 도움보다는 오히려 히틀러 나 치 정권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그루시는 본회퍼는 개혁파 전통에서 일부 영감을 얻었다는 점을 주장한다.26)
그루시는 칼빈주의와 본회퍼의 시민 불복종 사상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루터파 전통에서도 저항권 사상을 찾아볼 수 있지만 본회퍼가 직접 의존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였다.
빅토리아 바넷 또한 그루시와 유사한 견해를 주장하였다.
바넷은 1933년 6월에 출간된 본회퍼의 “교회와 유대인 문제”의 글을 분석하면서 본회퍼는 국가 권력에 대한 교회의 복종 교리와 관련하여 기존의 루터파 전통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수정하였다고 주장하였다.27)
“교회와 유대인 문제”는 많은 논란이 벌어졌던 본회퍼의 글 중 하나이다.
이 글은 본회퍼가 나치 정권의 “아리안 조항”(the Aryan paragraph)에 대응하여 발표한 글이다.28)
“아리안 조항”은 독일 사회 공직 부분에서 유대인의 참여를 배 제하였던 법령이었다.
바넷은 본회퍼의 글은 “그리스도인은 불법적인 국 가 권력을 반대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기존의 루터파 전통 의 가르침을 철저하게 수정하였다고 주장하였다.29)
이와 반면 드종은 본회퍼의 사상을 루터파와 분리하여 이해하는 것 은 그를 잘못된 이해의 오류를 범하는 길의 문을 여는 것과 같다고 말한 다.
드종에 의하면 본회퍼와 루터의 사상적인 접촉점은 본회퍼의 저작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져 있다.30)
26) John W. de Gruchy, Bonhoeffer and South Africa: Theology in Dialogue (Grand Rapids: Eerd mans, 1984), 105. 참고. John W. de Gruchy, “The Reception of Bonhoeffer’s Theology”, The Cambridge Companion to Dietrich Bonhoeffer, 93-112.
27) Victoria J. Barnett, “Dietrich Bonhoeffer’s Relevance for a Post-Holocaust Christian Theology,” in Bonhoeffer and Interpretive Theory: Essays on Methods and Understanding, ed. Peter Frick (Frankfurt: Peter Lang, 2013), 225.
28) Dietrich Bonhoeffer, “The Church and the Jewish Question”, No Rusty Swords: Letters, Lectures and Notes 1928-1936 (New York and Evanston, Harper & Row, Publishers, 1947), 221-229.
29) Barnett, “Dietrich Bonhoeffer’s Relevance for a Post-Holocaust Christian Theology,” 225.
30) Michael P. DeJonge, Bonhoeffer’s Reception of Luther, 208.
드종은 1933년부터 그의 생애 후반에 이르기까지 본회퍼의 국가 권력을 향한 저항과 교회의 순수성 보존을 위 한 교회의 투쟁은 루터파 전통을 토대로 전개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치권력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 정신은 루터 자신에게서 일부 선례를 발견하였다.31)
드종의 본회퍼 읽기는 저항권의 관점에서 루터파 전통의 자 료들을 분석한 후 본회퍼의 사상과 연계하여 연구하였다는 점에서 의의 가 있다.
드종은 몇 가지 실례를 제시하는데 이를테면 본회퍼의 1935년 핑켄발데 신학교에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 강의, 1550년 마그데 부르크 신앙고백서에서 원용한 ‘아디아포라’ 논리,32) 그리고 본회퍼가 자 주 인용했던 루터파 신앙고백서인 협화신조(Formula of Concord) 제10조 등이다.33)
드종은 이러한 예를 제시하며 본회퍼는 스스로 순수 루터파임 을 자임했다고 주장한다.34)
드종은 본회퍼가 16세기 중반 루터파 내에서 제국과 교황청의 조직 적인 공격에 맞서 신앙 수호를 내걸었던 교회의 투쟁 상황과 1933년 독 일 교회가 처한 상황과의 유사성을 간파하고 “신앙고백” 전통의 정신에서 교회 투쟁에 나섰다고 보았다.
이 두 상황 모두 세속 권력이 교회를 통하여 정치적인 통일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였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35)
31) Ibid., 207-261. 참고. 백용기, “마틴 루터 신학에 나타난 저항권 문제,” 「신학사상」 97 (1997/여 름), 146-190. 32) 1546년 루터 사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찰스 5세는 프로테스탄트와 전쟁에서 승리한 후 1548년 제국의 종교적 일치를 위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측이 서로 합의할 수 있는 “잠정안”(Interim)을 시행하도록 지시하였다. 멜란히톤을 비롯 일부 루터파 신학자들은 이 잠정안의 내용은 ‘아디아포라’(비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수용할 태도를 보이자 마티아스 일리리쿠스 플라키우스 등은 완강히 거부하였다. 그들은 제국의 압박은 교회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조치로서 ‘신앙을 고백 해야 상황’(status confessionis)으로 판단하고 1550년 마그데부르크 신앙고백을 통해 저항하였다. 순수-루터파 주의자들은 마티아스 플라키우스 일리리쿠스를 필두로 신앙고백의 문제에 있어서는 어떠한 중립도 없다고 주장하며 완강히 거부하였다. Hans J. Hillerbrand, ed., The Oxford Encyclopedia of the Reformation vol 2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6), 319-321.
33) Michael P. DeJonge, Bonhoeffer’s Reception of Luther, 197-203.
34) Ibid., 204.
35) Ibid., 190.
드종은 본회퍼가 1935년 핑케발데 신학교에서 아우구스부르크 신앙 고백서 16조를 강의하면서 공적 권력과 관련한 입장에 주목한다.
이 강 의에서 본회퍼는 루터가 1531년 이후 신성로마제국 황제 찰스 5세가 개신교도를 향해 전쟁을 선포하자 영주는 무력으로 황제에 대항하여 그의 백성을 보호해야 할 저항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음을 언급한 것에 비 추어 볼 때 본회퍼는 1530-31년의 루터의 저항사상을 알고 있었다고 주 장한다.36)
드종은 본회퍼의 “신앙고백”(status confessionis) 운동은 “라이프치히 잠정안”을 반대하였던 순수-루터파 플라키우스, 마그데부르크 신앙고백 서로부터 협화신조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루터파 전통의 용어와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본회퍼는 “아리안 조 항”의 도입 직후 교회는 “신앙고백”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음을 분명히 직시하였다.
본회퍼는 1540년대 라이프치히
“잠정안 시기의 루터 파 교회 상황과 1933년의 독일 교회의 상황 사이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연계성”
을 그려냈다.
결국 드종은 “본회퍼의 초기 저항 저술들은 루터파 저항권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고 주장한다.37)
36) Ibid., 203. 참고. 유석성, “본회퍼의 평화주의와 정치적 저항권,” 「신학사상」 91 (1995/겨울), 28 47.
37) Ibid., 205, 220.
이상의 논의는 본회퍼 저항권의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근거를 루터와 루터파 전통에서 발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여러 학자의 견해를 검토하였 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본회퍼 저항권 형성에서 루터파 전통은 단순히 보완재로 역할을 하는가 아니면 실질적인 근거로서 작용하였는가의 판단이다.
중요한 것은 루터와 루터파가 윤리, 정치적 문제와 관련하여 주장했던 것과 해석자들이 어떻게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있는가의 사이를 구분하는 것으로 시작할 때 본회퍼의 저항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 움이 된다는 점이다.
본회퍼는 분명히 그의 신학과 교회의 투쟁에서 일 부 학자가 주장하듯이 루터파 사상이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주장된 사회-윤리적 차원을 강조하고 윤리적 침묵주의를 수정하여 루터파 사상을 현대 사회와 관련하여 자신의 저항 사상 구도에서 적극 의존하였다.
Ⅲ. 본회퍼 저항권 사상의 신학적인 근거와 구조
1. 마르틴 루터의 두 왕국론 사상
마르틴 루터의 정치신학은 두 왕국 사상으로 대변된다.
루터는 1523 년 “세속 권력: 어디까지 복종해야 하는가”를 발표하였다.
여기서 루터는 교회와 세속 권력의 본질과 역할, 그 한계성, 정부의 임무와 역할, 그리 스도인의 정치 참여 등을 논하였다.38)
루터는 하나님은 두 왕국, 즉 하나 님의 우편에 영적 왕국과 하나님 왼편에 세속 왕국을 세우셨다고 말한 다.
루터는 인류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으로 구분한다.
“우리는 인류를 두 계급으로, 즉 아담의 자손과 그 밖의 사람으로 나누어야 한다. 전자는 하나님 왕국에 속하고 후자는 세속 왕국에 속한다. 하나님 왕국 에 속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은 모두 진실한 성도들이다. …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은 모두 세속 왕국에 속해 있으 며 율법 아래 놓여 있다.”39)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을 받아 처음에는 두 왕국을 서로 대 립한 위치로 설정하여 설명하였다.40)
38) Martin Luther, ed., Walther I. Brandt, Luther’s Works vol 45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62), 75-129. 이하 LW. 참고. 김주한, “저항과 복종,” 「기독교사상」 02 (2016), 69-70.
39) LW 45: 88, 90.
40) Augustine, City of God, Book 19, Chapter 21 (London: Penguin Books, 1972). 아우구스티누스 는 영적 왕국과 세속 왕국은 종말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대립과 갈등 속에 있다고 보았다. Ibid., 883.
그러나 루터는 이후 두 왕국이란 용어보다 두 정부란 표현을 더 자주 사용하면서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 는 서로 반대되는 대립 영역이 아니라 상보적이라고 주장한다.
루터에 따르면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는 하나님의 두 가지 통치 방식이다.
하나 님은 영적 정부를 통해 세상 사람을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고 그들을 그 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만든다. 이때 사용하는 도구는 교회, 말씀과 성례 전이다.
영적 정부는 비강제적이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기꺼 이 수용한다.
루터는
“법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법 없는 자를 위해서 주어진 것”
이라는 바울의 디모데전서 1장 9절을 인용하면서 어떠한 세상 법이나 칼(권력)도 영적 정부를 향해 명령을 내릴 수 없으며 영적 정부는 인간과 세상을 위한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 칼과 법은 그 리스도인에게 해당하지 않는다.”41)
반면
“세속 정부는 비-그리스도인과 사악한 사람의 악한 행동을 억 제하며 외적인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42)
이 목적 을 위한 도구는 법과 칼(권력)이다.
세속 정부의 대표는 통치자, 법, 칼이 다.
통치자는 법과 칼을 사용하여 세상의 사악한 자를 억제하고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무질서로부터 세상의 평화를 수호하는 직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세속 정부의 권력 행사는 이 지상의 영역으로만 제한 되는데 시민의 재산, 생명, 법, 다른 물리적 재화 등이다.
두 정부 모두 분명한 제한이 있다.
영적 정부는 인간의 양심, 영혼 문제에 관심하고 세 속 정부는 외적인 물리적인 문제만 다룬다.43)
41) LW 45:89.
42) LW 45:91.
43) 칼 홀은 루터의 두 왕국론은 두 가지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말한다. 하나는 “국가 이론에 대한 깊 이 있는 통찰”이요 또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에 대한 분명한 제한”이다. Karl Holl, “Luther’s Con tribution to the Progress of Western Culture,” Sessions, Kyle C. ed., Reformation and Authority (Lexington: Raytheon Education Company, 1968), 77.
루터에 의하면 두 정부는 모두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셨다.
하나님은 두 정부의 주인이고 보증자이며 지배자다.
두 정부가 서로의 역할과 직 무를 혼동할 때 각기 권한 남용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하나님이 세우신 세속 정부가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남용하여 폭력적일 경우 그리스도인 은 어떻게 할 것인가?
루터는 그 문제를 개인과 직무를 구분하여 이렇게 설명한다.
개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악에도 저항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직책 한계 내에서 모든 악에 대처해야 한다.”44)
루터는 인간보다 하나님의 질서에 복종을 우선 시하여
“정치적 권위는 무력보다는 진리의 고백에 의해서만 저항 되어야 한다”
는 입장을 견지하였다.45)
세상의 직책 모두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 이기 때문에 직책 그 자체는 선하다.
그러나 그 직책을 맡은 자가 불의를 자행할 때는 저항을 통해 그 직책을 본래의 자리로 회복하게 해야 한다.
루터는 인간보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우선 하였다.
루터는 두 정부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더라도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영적 정부는 복음 선포를 위해 세상의 평화가 필요하며 세속 정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이 필요하다.
루터는 두 정부 모두 하나님의 통치 질서 안에 나 란히 존재한다고 말한다.
“어느 정부도 상대방 없이는 이 세상에서 충분 하지 않다.”46)
44) LW 21:113-14.
45) LW 45:126.
46) LW 45:91.
그러므로 루터는 두 왕국을 서로 혼동하거나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 을 지배하려 할 때 세상의 무질서가 초래하고 평화가 깨진다고 말하였 다.
따라서 루터는 로마가톨릭의 국가에 대한 교회의 우위성 주장을 비판하고 종교개혁 급진파, 즉 세속 정부에 참여를 거부하였던 아나뱁티스트와 세상을 혁명적으로 전복하여 지상에 하나님 왕국을 세우려 열망했 던 토마스 뮌처와 같은 그룹 등을 비판하고 거부하였다.
이들 모두 영적 정부와 세속 정부의 고유한 역할과 기능을 모두 혼동하였다.
루터는 교 회와 국가는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질서이고 하나님의 손안에서 한 쌍을 이루며 나란히 존재한다.
루터파 신앙고백 전통은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의 기조를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2. 본회퍼의 교회와 국가의 관계와 저항권 문제
루터의 정치신학은 두 정부의 역할과 직무의 구분이 뚜렷하면서도 두 정부의 동시성을 주장하고 있다.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은 본회퍼 신학 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본회퍼는 두 왕국 사상에 기초하여 영적 질서 (교회 영역)와 세속 질서(국가와 정부 영역)의 관계를 다루었다.
루터가 하나 님 안에서 이 두 영역은 함께 나란히 존재하는 한 쌍이라고 주장했던 것 처럼 본회퍼 또한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의 관점에서 “거룩하고 초자연적 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이고 범속하고 자연적이고 비 그리 스도교적인 영역”은 서로 배타적이고 충돌하고 있는 실재가 아니라고 말 한다.47)
그는 “두 개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현 실과 세상의 현실이 서로 하나가 되어 있는 그리스도 현실의 한 영역만 이 존재할 따름”이라고 잘라 말한다.48)
이러한 기조의 바탕에서 본회퍼는 두 영역의 본질과 기능, 역할을 논 한다.
따라서 인간은 두 영역 가운데 어느 한 영역에 속하려고 한다거나 또 두 영역 동시에 속하려고 할 때 세상의 무질서를 초래하고 “영원한 갈 등에 휘말리게 된다.”49)
그러므로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벗어난 세상 질서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법에 맞서 세 상 질서의 자율성”을 강조한 가르침을 유사(pseudo)-루터주의라 명명하 였다.50)
따라서 본회퍼는 두 영역의 이원론적이고 이분법적인 구분을 거 부한다.51)
47) 디트리히 본회퍼, “그리스도, 현실, 선 - 그리스도, 교회, 세상,” 손규태 · 이신건 · 오성현 옮김, 『윤리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49.
48) Ibid., 52.
49) Ibid., 51.
50) Ibid., 49. 본회퍼에게 “유사-루터주의”(pseudo-Lutheranism)는 루터의 두 왕국론을 왜곡한 자들을 가리킨다. 루터교회의 신학자 베르너 엘러트, 폴 알트하우스, 임마누엘 히르쉬, 라인홀트 제 베르크와 같은 신학자들은 국가 사회주의적 사상과 그리스도교적 결합을 위해 노력하였던 바, 본회퍼는 자율적인 자연 질서를 지향하는 것은 산상설교에 선포된 ‘그리스도의 법’과 배치되며 하나이고 전체적인 현실을 두 영역으로 분리하는 태도에 반대하였다. Ibid., 50.
본회퍼는 1932년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Thy Kingdom Come)란 글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본회퍼는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의 논법에 따라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개괄적으로 설명하는데 교회와 국가 를 제도적인 기구로서가 아닌 기능적인 관점에서 정의한다.
하나님 왕국은 교회와 국가의 이중성 속에서만 이 세상에 존재한다. 각자는 필수적으로 서로 관련되어 있다. 어느 쪽도 그 자체로만 존재 하지 않는다. … 교회가 하나님의 기적을 증언하는 한 하나님 나라는 교회의 형태 안에 존재한다. 또한 국가가 생명의 질서를 유지하고 보 호하는 한 하나님 나라는 국가라는 형태 안에 존재한다. 이처럼 하나 님 나라는 교회와 국가의 이중 형태로 이 세상 가운데 각기 존재한 다. 교회와 국가는 반드시 서로 관련이 있으며 어느 것도 각자 따로 분리하여 존재하지 않는다.52)
본회퍼는 히틀러 나치 정권이 1933년 4월 악명 높은 “아리안 조항” 을 발표하자53) 1933년 6월 “교회와 유대인 문제”의 단편 글을 발표하였 다.
여기서 본회퍼는 아리안 조항 시행으로 인하여 교회와 신학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국가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교회의 태도는 무 엇인가? 그리고 교회 회중 가운데 세례받은 유대인에게 교회는 어떤 태 도를 취해야 하는가?”54)
51) 본회퍼 역시 루터처럼 영적 질서, 자연의 질서 모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 아래에 있다고 말한 다. “국가의 자율성의 문제 … 교회적 신정체제의 타율성을 반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 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자율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Ibid., 435.
52) Dietrich Bonhoeffer, “The Kingdom Come: The prayer of the church for God’s Kingdom on Earth,” John D. Godsey, Preface to Bonhoeffer: The Man and Two of His Shorter Writings (Phila delphia: Fortress Press, 1965), 40.
53) 나치 정권의 “아리안 조항”(비 아리안계 배척조항)은 다음의 문헌을 참고하라. J. Noakes and G. Pridham, ed., Documents on Nazism, 1919-1945 (New York: Viking Press, 1975).
54) Dietrich Bonhoeffer, “The Church and the Jewish Question”, No Rusty Swords, 222.
본회퍼는 이 두 질문은 각기 분리해서 검토해야 하며 교회 본질의 관점에서 대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본회퍼의 교회와 국가의 기본 논지는 ‘종교개혁 교회는 그 특수한 정 치적 행동으로써 국가의 정책에 직접 말할 권리가 없으며 교회는 국가의 법률을 찬양하거나 비난해서도 안 된다.’는 전제 위에 서 있다.55)
본회퍼 는 “교회는 국가가 아니며” “법을 제정하고 무력을 사용하여 질서”를 유 지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말한다.56)
이처럼 “아리안 조항”과 같은 특 별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 본회퍼가 교회의 제한을 두는 이유는 교회의 본질과 성격에 대한 그의 정의에 기인한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오직 복음으로 살며 … 어떤 인도주의적 이상의 관점에 서서 역 사를 결정하는 행동을 비판하는 태도로 국가에 개입해서는 결코 안 된 다.”
고 말한다.57)
본회퍼는 “오직 복음으로만” 관점에서 교회의 본질을 정의하면서 교회와 정부 사이의 역할과 기능을 구분한다.
본회퍼의 주장 은 교회는 국가의 정책에 대해 어떠한 저항도 하지 말아야 하고 비정치 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국가가 본래의 의무, 즉 법과 권력을 사용하여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거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경우 교회는 어떻게 행동해 야 하는가?
본회퍼는 국가가 법과 명령을 통해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 고 실패할 경우, 즉 국가가 법과 명령을 “너무 소극적”(too little)으로 수 행하거나 또 “너무 과도하게”(too much) 사용하는 경우 교회는 국가를 향 하여 단호하게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58)
55) Ibid., 222.
56) Ibid., 223-4.
57) Ibid., 223.
58) Ibid., 224. 루터는 세속 권세에 너무 광범위한 영역이 주어지면 과도한 형벌이 가해지고 또 너무 많이 제약되면 너무 경미하게 처벌하게 된다고 말한다. LW 45:104. 여기서 본회퍼의 논법은 루 터의 두 왕국론 사상을 따르고 있다.
본회퍼에게 “너무 과도한” 법 집행은 국가가 세례받은 유대인을 교회 공동체로부터 배제하라고 명령한 경우이고, “너무 소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복음 전도 할 수 있는 권리 를 박탈할 정도로 권력을 사용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본회퍼는 분명히 주장한다.
“교회는 국가와 국가 행동의 한계에 대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 당국자들의 이와 같은 침해를 거부해야 한다.”59)
본회퍼는 유대인 혹은 유대주의는
“결코 인종적인 개념이 아니라 종 교적”
이며 역사적인 사안이며
“세례받은 유대인은 우리 교회의 회원”이 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60)
여기서 본회퍼는 그의 반나치 운동의 저 유 명한 말,
교회는 “바퀴 아래 깔린 희생자들에게 붕대를 감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바퀴를 멈추게 하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직접적인 정치적 행 위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행위는 국가가 법과 질서를 창출하는 기능 에서 실패하는 것을 볼 때만 가능하며 바람직한 것이 된다.”
고 말함으로 써 국가적 행위로 발생한 희생자에 대해 교회는 무조건적인 의무를 갖는 다고 주장한다.61)
본회퍼는 생애 후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 나치 정권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가해 오자 교회와 국가,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두 왕국 사상의 논리에 기반하여 나치 정권의 행태를 더욱 날카롭게 비판하 였다.
본회퍼의 『윤리학』에 실린 몇 편의 글은 루터의 두 왕국론을 가장 체계적이고 심도 있게 분석한 것으로 여기서 본회퍼는 부당한 국가 권력 에 대한 교회의 태도를 명확히 정의하였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 한 신앙을 방해하는 모든 구체적인 질서에 맞서 저항할 수 있고 또 저항 해야 한다.”62)
59) Ibid., 225.
60) Ibid., 223, 227.
61) Ibid., 225.
62) 디트리히 본회퍼, “교회가 세상에게 말할 수 있는 가능성에 관해”, 『윤리학』, 433. 김재진은 본회 퍼가 히틀러 나치 정권에 저항한 근본 동기는 단순히 사회정의나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 차원 이 아니라 당대를 지배하였던 “종교적 마성에 대한 투쟁”이었다고 주장한다. 김재진/한국본회퍼 학회 엮음, “본회퍼의 평화를 위한 저항: 종교적 마성에 대한 저항과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복,”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사상 연구』 (서울: 동연, 2017), 185.
본회퍼 『윤리학』의 “유산과 몰락”의 글은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확 고한 근거로 하여 서구사회의 역사와 현실을 분석한다.
본회퍼는 서구사 회 기독교가 추구했던
“그리스도교적 체제(corpus christianum), 곧 예수 그리스도의 위임안에서 황제와 교황을 통치하고 통합하고자 했던 서양의 그리스도교적 공동체 질서는 종교개혁과 함께 무너졌다”
고 보았다.63)
63) 본회퍼, “유산과 몰락,” 『윤리학』, 121.
본 회퍼는 종교개혁 이후 서구 기독교사회는 다양한 세속화의 과정을 거치 면서 단일체가 붕괴하였다고 본다.
본회퍼에게 서방세계의 일치와 그 일 치가 붕괴한 현실의 논의 판단 기준은 두 왕국 사상이었다.
지금까지 본회퍼의 몇 편의 주요한 글을 분석하였다.
분석의 대상이 된 글의 논리는 두 왕국 사상을 기반해 있으며 본회퍼 역시 루터의 두 왕 국 사상의 전통에서 볼 때 영적 영역과 세속 영역을 양자택일이 아니라 역설적인 긴장 관계에서 파악한다.
본회퍼는 교회는 국가의 정책에 복종 하고 비정치적인 태도를 유지하든지 아니면 세속의 문제에 적극 개입하 여 국가에 저항하든지 둘 중 하나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본회퍼는 국가 의 특수한 정책에 대한 교회의 현실 참여 문제는 교회의 본질과 국가의 위임과 책임 사이의 구분 문제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Ⅳ. 나가는 말
이 글은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은 루터와 루터파 정치신학의 범주를 벗어나서는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하였다.64)
64) 루스 체르너는 “본회퍼는 마르틴 루터의 계승자라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Ruth Zerner, “Church, state and the ‘Jewish question,’ John W. de Gruchy,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Dietrich Bonhoeffer, 193.
특히 본회퍼의 정치신학의 용어, 관점, 기조는 루터의 두 왕국론 사상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물론 본회퍼는 루터파 전통을 기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지만 교회와 세상의 관계, 정치권력에 대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대 응 문제는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은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이 세우신 두 질서이 며 각기 고유한 임무와 역할이 부여되었다는 관점에 기초해 있다.
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벗어난 자연적 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 였다.
따라서 세속 권력의 자율성이나 자체 규정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은 당대 시대 상황 및 그의 삶의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권력을 향한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행동 양식 에 대한 설명은 언제나 도덕적 긴장과 역설이 내재해 있었다.
하지만 이 와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본회퍼가 제시한 해법은 루터의 두 왕 국론이었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 있는 행동 윤리 강 령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본회퍼는 히틀러 나치 정권에 대항하기 위한 그리스도인의 양심적인 결단과 행동은 루터의 두 왕국론에 기초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교회와 국가가 각자 자기에게 위임된 권한을 “너무 소극적”이거나 “너무 과도하게” 사용할 때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항거하고 그 권한을 바로 잡 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본회퍼는 생애 후반 전쟁을 일으켜 세상의 무질 서와 혼란을 초래한 히틀러 나치 정권의 사악한 행태에 대해 교회와 그 리스도인의 필수적인 저항을 강조하였다.
그는 자유 가운데 개인의 책임 있는 행위는“역사 속에 내재하는 의”보다 “하나님의 영원한 의”와 “용서 와 위로를 약속하시는 하나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하였다.65)
본회퍼에 게 이 세상 무질서와 혼란을 초래하는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은 곧 하나 님의 계명에 복종하는 것이요 이 세상 한복판에서 “그리스도의 현실에 대한 참여이며” 그 과정에서 제자 공동체의 고난은 피할 수 없지만 “인간 적 모든 속박, 억압, 무거운 모든 짐, 근심과 양심의 고통 등에서 해방”되 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66)
65) 디이트리히 본회퍼, 고범서 옮김, 『옥중서간 - 반항과 복종』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7), 14, 21.
66) 디이트리히 본회퍼, 허혁 옮김, 『나를 따르라 - 제자의 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17.
본회퍼의 저항 사상은 오늘의 역사 환경에서 교회란 무엇이며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끊임없이 숙고하게 한다.
현대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행동에 대한 본회퍼의 신학적 통찰 과 유산은 여전히 우리에게 교회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묻 도록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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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1945)의 저항 권 사상을 마르틴 루터와 루터파 전통의 관점에서 분석한다.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은 루터의 두 왕국론 신학을 기반으로 하여 형성되었다.
이 와 관련하여 학자들 사이에 비판이 제기되었다.
비판의 요지는 히틀러 나치 치하 독일 그리스도인의 국가와 사회를 향한 태도를 고려해 볼 때 과연 루터의 두 왕국론에서 국가 권력에 대항한 저항 사상을 찾아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따라서 본회퍼의 정치 윤리는 루터와 루터파 전통 밖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의 기본 토대는 루터와 루터파 전통에 기인한다는 견해이다.
반론의 요지는 본회퍼의 교회 개념, 국가 권력의 기능과 역할, 그리스도인 의 사회 윤리적 행동 양식에 관한 담론은 히틀러 제3 제국의 특정한 역사적 사태와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지만, 본회퍼의 저항권은 루터의 두 왕국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나치 치하 교회의 투쟁 기간을 거치면서 단계 적으로 발전해 나갔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본회퍼의 정치신학 형성의 역사적인 배경, 즉 그의 저항권 사상이 루터 신학 및 루터파 전통과 어떻게 내재적 연관성이 있는지를 탐구하고 본회퍼의 저항권 사상의 정치신학의 기초와 그 구조를 연구하여 그 현대적 의미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결국 본 연구는 루터와 루터파 전통과 본회퍼 사상은 서로 불연속적이며 특히 저항권과 관련하 여 본회퍼는 루터파 전통과 단절되어 있다는 비판에 대한 응답이다.
주제어 디트리히 본회퍼, 두 왕국론, 저항, 교회와 국가, 마르틴 루터, 루터파
Abstract
A Study on the Thinking of Dietrich Bonhoeffer’s Resistance — In terms of the Lutheran Tradition
Joo-Han Kim (Professor, Church History College of Theology Hanshin University)
This thesis analyzes the thinking of Dietrich Bonhoeffer(1906-1945) in terms of the Lutheran tradition. Bonhoeffer draws his idea of the right to resistance in the church struggle from Luther’s two kingdoms theory. Criticism has been raised among scholars regarding this connection in Bonheoffer’s thought. T he point of criticism is the question of whether Luther’s two kingdoms theory provides resources for Christian political ethics against Hitler’s regime. T hese critics insist that Luther’s two kingdom’s doctrine does not include Christian political resistance to political authority, and that Lutheran tradition characteristically gives excessive autonomy to political authority. On the other hand, some scholars argue that Bonhoeffer’s ideas regarding resistance to political authority are formed based on Luther’s two kingdoms theory. They maintain that while Bonhoeffer’s discourse on the nature of church, the function and role of the state, and the social and ethical behavior of Christians is closely linked to certain historical situations in Hitler’s third Reich, Bonhoeffer’s right to resistance to authority developed gradually throughout Luther’s two kingdoms. T herefore, this article examines the theological basis of Bonhoeffer’s political theology, that is to say, how Bonhoeffer intrinsically is connected with Lutheran tradition on the question of resistance to authority. The paper is a response to criticism that Lutheran tradition and Bonhoeffer’s ideas on resistance are discontinuous and also tries to draw out the modern meaning of Bonhoeffer’s thinking on the church and on a Christian attitude to the state.
Key Word: Dietrich Bonhoeffer, Two-Kingdoms Doctrine, Resistance, Church and State, Martin Luther, Lutheranism)
논문접수일: 2025년 11월 18일 논문수정일: 2025년 12월 16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20일 466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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