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며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 )는 『이기적 유전자』 (1976)에 서 인간을 유전자의 숙주에 불과한 존재로 제시했다.
그의 도발적인 테 제는 우리 시대에 인간의 이타주의와 이기주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 1929-2021)은 『인간 본성에 대하여』 (1979)에서 인간의 행동과 그 행동 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이며, 유전자는 자기 복제를 통해 자신을 보존한다는 논의를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인간본성에 대한 탐구를 통해 인간집단, 공동체의 기원 이해를 도모하기에 이타성, 이타주의에 대해 대중적 담론 형성에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1)
흥미로운 점은 이러했던 윌슨이 이후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발언 을 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제자인 최재천 교수와의 대담(2009)에서 유전자 중심의 적응 이론이 완전히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그것을 강조 한 사실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혈연관계를 근본으로 놓고 친족선택, 즉 내 형제를 위한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는데 그 외에 집단 선택론을 배제한 것이 자신의 큰 실수였다는 것이다.
“진사회성(eusociality), 그러 니까 밀접하게 조직화된 사회에서 분업에 기초한 이타주의는 아주 드물 고, 아주 오래 걸려서야 진화”했기에 그것이 ”전적응인 것(환경에 적응해서 사회성을 진화시킨 것이 아니라 이런 형질이 먼저 있어 결과적 적응처럼 보인다는 뜻)이며, “사회성 곤충의 기원에 대한 생각이 틀렸기 때문에, 사회성을 해 석하는 열쇠도 친족(유전자)은 아”니라고 자신의 입장을 철회하는 발언을 했다.2)
1) Richard Dawkins, The Selfish Gene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76); Edward O. Wilson, On Human Nature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9).
2) 김희원, “[탄생 200년·진화론 150년 다윈은 미래다] 3부 <5> 사회생물학의 대부 에드워드 윌슨,”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0906030083403052.
그리고 윌슨은 『새로운 창세기: 사회들의 기원에 대하여』 (Gene sis: The Deep Origins of Society, 2019)에는 사회성을 지닌 개체들의 집단 에서 일부 개체들이 집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성을 논하여 진화 적 관점에서 분명히 이기적인 개인의 집합체보다 협력적 집단이 유리하 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었다.
사회생물학, 진화 생물학의 대표주자로서 과거 도킨스의 논의를 지 지하던 그가, 이기주의만으로는 인간과 사회를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하 며 이타성으로 선회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을 해 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사회적,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이 구성하는 공동 체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공동체를 구성의 중요한 원동력이 되는 종교에 대한 탐색 또한 여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과학적 혁신을 통해 추동되기도 하지만, 인간본성을 이해하려는 ‘시대정신’과 연동된다.
1970년대 말, ‘이기주의’가 생명의 생존과 진화의 엔진이라는 주 장은 도킨스만의 전유물이 아닌 당대의 믿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독일 의 철학자 프레히트(Richard D. Precht)가 1970년대에서 2010년대까지 독일어권에서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던 것도 이러한 담론으로부터 현대로의 변화를 잘 반영한다.
그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의 저널리스트 키르슈너의 저서 『이기주의자가 되는 기술』 (1976)은 큰 성공 을 거두었다.
키르슈너는 타인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된 이기주의자가 자 아실현과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3)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 자’와 일맥상통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2010년경 ‘이기주의의 금기’가 사 라진 시대에는, 키르슈너가 자신의 책에서 사회적 폐해로 분류했던 배려 하는 마음, 양심, 겸손함과 같은 이타적인 면모야말로 사람들이 절실히 원하는 덕목이 되었다는 것이다.4)
3) Josef Kirschner, Die Kunst ein Egoist zu sein: Das Abenteuer, glücklich zu leben, auch wenn es an deren nicht gefällt (München: Knauer Verlag, 1976).
4) 리하르트 D. 프레히트, 『내 행복에 꼭 타인의 희생이 필요할까: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는 기술』 (서 울: 21세기 북스, 2011), 8-9.
프레히트가 “이기주의자가 되지 않는 기술”이 시대적 요구로 떠올랐 다는 지적은 현재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무한경쟁과 무한한 비교, 번 아웃에 시달리며 유난히 낮은 행복도와 높은 자살률을 보이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서로를 포용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태도, 따뜻한 말 한마디가 시급한 사회적 과제가 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윌 슨을 비롯하여 많은 과학자들이 우리 시대에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으로 서의 이타성을 해명하려는 노력은 결국 사회적,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 이 구성하는 공동체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타성’, ‘이타주의’라는 개념이 최초로 등장한 때의 인간 이해가 어떠했을까를 질문할 수 있다.
이타주의의 개념이 등장했던 당대 시대정신과 그 함의를 살펴보는 것은 결국 우리 시대의 인간관과 윤리적 필요성을 성찰하는 작업이 될 수 있다.5)
그 어떤 인류의 역사에서도 누 릴 수 없던 최첨단 과학기술과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점점 인간의 이기 심, 이기주의가 문제시되는 모순을 지니는 우리 시대와의 공통점과 차이 점은 무엇이었을까?
이타주의 개념이 대두된 시점에 인간과 인간 공동체 에 이해에 종교적, 혹은 과학적 관점은 어떻게 관련되었는가?
종교와 과학과 관련한 시각을 언급한 이유는 콩트가 사회학의 창시 자였으며 ‘인류의 종교’(religion de l’humanité)를 제창하기도 때문이다.6)
그는 사상적으로는 실증주의의 세례를 받았으며 당대 기독교, 즉 제도종 교에 대한 철저한 비판자이자 반종교주의자이기도 하였다. 인간의 이타 성에 대한 논의는 근대과학의 발전과 인간 공동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 방법으로서 사회학의 등장 등, 전통적인 신학에서 철학의 독립에서 더 나아가 철학에서 사회학, 심리학, 생리학 등이 독자적 근대학문으로 성 립되어가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타주의 개념에 대한 성찰은 과 도기적 근대성의 성립과 인간에 관한 근대적 기획의 단면을 엿볼 수 있 는 계기이기도 하다.
‘altruism’ 개념에 관한 대표적 연구로는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딕슨 (Thomas Dixon)의 『이타주의의 발명: 빅토리아 시기 영국에서의 도덕적 의미의 형성』 (The Invention of Altruism: Making Moral Meanings in Vic torian Britain, 2009)이 있다.7)
5) 강성영 · 이상철, “포스트휴먼 시대, 이타성(Aterity)의 신학과 윤리학을 위한 서설,” 「신학사상」 198 (2022), 9-41; 전철 · 송기원, “생물학의 관점에서 본 이타성: 생명, 진화, 도덕에 대한 생물학과 종교의 대화,” 「신학사상」 203 (2023), 63-82.
6) ‘인류종교’, ‘인륜종교’ 등 여러 번역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여기에서는 ‘인류의 종교’라고 번역한다.
7) Thomas Dixon, The Invention of Altruism: Making Moral Meanings in Victorian Britain (The British Academy, 2008).
오귀스트 콩트(1798–1857)의 altruisme은 자연과 사회에 관한 과학적이고 진보적인 신개념으로 영국에 수용되었 다.
이타주의는 이미 콩트가 제시한 당시에도 여러 방면으로 해석 가능 한 광범위한 개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 개념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도덕철학과 진화론, 사회진화론과 관련한 담론의 전개에 다양한 임펄스를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당시 영국의 콩트주의 자들을 비롯하여 조지 엘리엇, 찰스 다윈, 허버트 스펜서 등에 영향을 끼 침은 물론, 당대 잡지와 소설에서 드러나는 정치와 종교, 과학 관련 논쟁 에서 이 개념이 다양하게 변주, 변화하며 사용되었다.
김원철의 “이타주 의의 발명: 현대 메타-윤리학의 등장 배경에 관한 지성사적 한 연구”에 서는 딕슨의 개념사적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콩트의 ‘이타주의’ 개념에 대해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영국의 도덕철학과 진화론의 전개 상황 속 에서 이타주의의 등장과 확산을 통해 메타윤리가 가능해진 영국 사회과 학의 구조적 전환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8)
8) 김원철, “이타주의의 발명: 현대 메타윤리학의 등장 배경에 관한 지성사적 한 연구,” 「철학연구」 174 (2025), 49-75; 상기 논문에서 영국에서의 콩트 후기사상 수용과정에 대한 전개 과정의 삼 단 계는 53-55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다.
서구에서의 ‘altruism’라는 신 조어의 등장 배경은 위의 선행연구들을 참조하되, 본고에서 관심을 갖는 근대 과학과 종교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고자 한다.
본고는 다음과 같이 전개될 것이다.
이타주의 개념보다 먼저 존재했 던 ‘이기주의’ 개념의 사용에 관해 간략히 고찰한다(II).
19세기 콩트의 이 타주의 개념에 대한 선행연구를 참조하되, 본고에서 관심을 갖는 근대과 학과 종교 관련 부분을 살펴본다(III).
20세기 초, 한국 근대 시기의 이타 주의 관련 개념의 한 예를 통해 그 대표적 쓰임과 유입 맥락에 대한 파악 을 시도한다(IV).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타주의 개념이 현대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리고 어떠한 성찰 속에서 발전시켜야 할지 탐색함으로써 개념사의 시론격인 이 글을 마무리한다(V).
Ⅱ. ‘이기주의’ 개념
19세기 콩트가 altruisme(이타주의)라는 신조어를 처음으로 제시하기 이전부터, 이기주의(egoism) 개념은 철학적 전통 속에서 중요한 주제로 다루어져오고 있었다.9)
18세기 중반 독일의 철학자, 크리스티안 볼프 (Christian von Wolff, 1679-1753)가 이기주의자(Egoist)라는 표현을 사용 했다.
하지만 그가 ‘에고이스트’라는 표현을 최초로 고안한 것은 아니었 다.
그는 1719년부터 파리에서 생겨났다고 알려진 “이기주의자 분 파”(Sekte der Egoisten)에 관해 반복적으로 언급했는데, 이들은 만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고 오직 ‘나’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러 한 성향의 분파를 가리키는데 에고이스트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며 유아론(solipsism)의 의미로 사용되었다.10)
9) Auguste Comte, System of Positive Polity, Vol. 1, (trans.) J. H. Bridges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875), 600–605.
10) Christian von Wolff, Vernünfftige Gedancken Von Gott: Der Welt und der Seele des Menschen (Halle: Renger, 1720), 제1장, p. 2; Sonja Klimek, “Postmoderner Solipsismus. Über den psy chischen Zentralismus in 〈La secte des Égoïstes〉(1994) von Éric-Emmanuel Schmitt und 〈Ag nes〉(1998) von Peter Stamm,” Germanistik in der Schweiz: Zeitschrift der Schweizerischen Aka demischen Gesellschaft für Germanistik (2013/10), 433 참조.
이기주의(egoism) 개념을 근대 철학의 도덕 담론 안에서 정교하게 구 조화한 인물은 임마누엘 칸트였다.
그는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1798)에서 인간이 자아를 인식 하고 언어로서 ‘나’(Ich)를 말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기주의는 인간 행 위와 사고의 중심 동력으로 등장했다고 보았다.
칸트는 다음과 같이 이 기주의를 서술한다.
“인간이 ‘나’를 통해 말하기 시작한 날로부터 인간은 허락된다면 그 자신이 사랑하는 ‘자아’를 어디에서나 드러내 보이고, 이 기주의는 거침없이 발전해 간다.”
‘이기주의는 자의식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본성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기주의’를 단순한 성향이나 감정이 아닌, 인식과 판단의 구조를 침식하는 하나의 근본적 오류로 간 주했다.11)
『판단력 비판』 (Kritik der Urteilskraft, 1790)에서도 세 가지 사고방식 (Denkungsart)에 대해 논의하는데, 이는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에서 의 내용과 연동되는 것이다.
칸트는 이성(지성)적 측면에서의 ‘논리적 이 기주의자’, 자신의 취미, 취향과 관련된 ‘심미적 이기주의자’, 실용적/실 천적 관심에서의 ‘도덕적 이기주의자’로 분류하여 논의를 펼쳤다.
논리적 이기주의자란 타인이 이해한 것에 대해 자신의 판단을 시험해볼 필요가 없다고 간주한다.
미적 이기주의자는 자신의 취향만으로 충분조건이 성 립한다고 생각한다. 도덕적 이기주의자는 모든 목적을 자기 자신에게로 국한시킴으로써 도덕적 의무 보다 자신에게 얼마나 유용하고 행복한 일 인지를 자신의 의지를 결정하는 최고 기준으로 삼는다.
이 외에 칸트는 형이상학적 차원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앞서 언급 했던 볼프식의 유아론에 해당할만한 이기주의에 대한 반대개념이다.
이 는 ‘세계시민적 사고방식’(weltbürgerliche Denkungsart) 및 ‘타자의 입장에 서 사고하기’ 로서 ‘다원주의’(Pluralismus)‘로 명명될 수 있다.12)
11) Immanuel Kant,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AA VII, 127.
12) Kant, Kritik der Urteilskraft, AA V, 293-294; Anthropologie in pragmatischer Hinsicht, AA VII, 127–130.
이기주의 를 유아론적으로 이해할 때, 다원주의가 그 반의어임은 논리적 귀결이라 고 할 수 있다.
18세기 칸트 철학에서 이기주의자란, 타자를 제외시킨 도덕성으로서 고립된 자아의 합리화된 유아론적 윤리로서 철저한 비판의 대상이었다.
다원주의란 그 반대로 세계시민적 자의식을 상정함으로써 정치적 차원을 띄고 있었다.
그렇다면 19세기 실증주의자이자 ‘사회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콩트가 제시한 ‘이타주의’란 칸트와 달리 어떠한 함 의를 지니고 있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그의 실증주의적 역사 인식, 종 교관, 사회 윤리론을 개괄하면서, ‘이타주의’ 개념이 처음으로 등장한 후 기의 저작, 『실증정치학 체계: 인류의 종교를 정초하는 사회학 논고』(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Traité de sociologie instituant la religion de l’Humanité, 1851-1854)와 『실증주의 교리문답서 또는 보편 종교에 대한 요약적 저술』 (Catéchisme positiviste ou Sommaire exposition de la religion universelle, 1852)에서 드러나는 사용 맥락을 간략히 고찰한다.13)
13) 본 논문에서는 다음의 영어 번역본을 참조하였다. Auguste Comte, System of Positive Polity or Treaties of Sociology: Instituting the Religion of Humanity, Vol. 1, (trans.) J. H. Bridges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875), 특히 600–605 참조; Comte, Catechism of Positive Religion, (trans.) Richard Congreve (London: Chapman, 1858).
Ⅲ. 콩트적 의미의 ‘이타주의’
‘이타주의/altruism’가 언급될 때마다, 이 개념을 최초로 명시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한 인물이 프랑스 철학자 콩트라는 사실은 거의 모든 문 헌에서 반복된다.
그는 또한 현대 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며, ‘사회학/ sociology’을 처음으로 고안한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어떤 개 념의 ‘기원’을 특정 인물에게 귀속시키는 행위는 종종 역사적 맥락을 단 순화하거나 생략한 채 반복되기 쉽다.
개념의 창안 그 자체보다 개념 등 장의 철학적·사회적 조건, 그리고 그것이 무엇에 대한 응답으로서 출현 했는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콩트가 왜, 그리고 어떤 문제의식 속에서 ‘이타주의’라 는 개념을 새롭게 도입했는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그의 사상이 우리 시대에 실천적으로 직접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그가 살던 시대의 위기와 전환기에 어떤 사유가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오늘 날 우리가 당면한 윤리적, 사회적 문제들과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살펴보 는 일은 의미 있는 작업이다.
철저히 실증주의적 입장을 취하던 그가, 후기에는 실증주의를 ‘인류의 종교’로까지 확장하려 했다는 점 ― 즉, 과학 과 종교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사회적 통합의 원리를 찾고자 했다는 점 ― 은 단순히 모순적이거나 퇴행적인 일탈로 보기 어렵다.
실제로 ‘이타주의’ 개념은, 단지 덕목이나 미덕으로서가 아니라 사회 질서의 위기와 해체에 대한 철학적 대응의 일환으로 제시되었다.
콩트는 19세기 유럽, 특히 프랑스 대혁명 이후 닥친 급격한 사회적 불안정성과 공동체 해체의 현실 속에서,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절제하고 사회적 연 대를 회복하기 위한 윤리적 원칙으로서 이타주의를 구상했다.
그는 이타 주의를 실증주의 철학의 완결판으로 이해했으며, 그것이 단지 심정적 자 기희생이 아니라, 인간 이성과 사회 조직이 요구하는 합리적 윤리 기제 라고 보았다.14)
14) Dixon, 37-56.
더욱 흥미로운 점은 콩트가 이 개념을 단지 철학적 주장으로 제안한 것이 아니라, 종교의 형식을 빌려 실천적 제도로 구체화하려 했다는 사 실이다.
그는 후기 저작에서 실증주의를 하나의 ‘인류의 종교’(Religion de l’Humanité)로 정립하려 하며, 그 중심 개념으로 ‘이타주의’를 위치시킨 다.
이 시도는 종종 19세기 특유의 낡은 이상주의나 개인적 환상으로 간 주되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그가 근대의 ‘종교 이후의 윤리’가 무엇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가장 급진적이고 체계적으로 사유했던 철학자 중 한 명임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타주의’라는 용어가 콩트 로부터 유래했음을 반복 확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용어가 어떠한 실존적·사회적 요청 속에서 발명되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이기주 의에 대한 대항 개념으로 체계화되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1. 실증주의적 역사 인식과 사회질서 문제
콩트는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전쟁, 부르봉 왕정의 복고 등 격동의 시대를 직접 체험한 사상가였다.
이처럼 지속되는 정치적·사회적 혼란 속에서, 콩트와 동시대 유럽의 급진적 지식인들이 직면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무너진 공동체를 어떻게 다시 통합할 수 있는 가?”
새로운 사회적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 결속의 원리, 곧 공동체의 윤 리적·정치적 기초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가가 중심 과제로 부상했 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이 등장하고, ‘이기주의’ 에 대한 철학적·사회적 비판이 ‘이타주의’ 개념을 낳게 된 것은 결코 우연 이 아니다.
이는 근대적 사회질서가 요청한 이념적·학문적 응답으로서 콩트가 제시한 구조적 해명이었다.
콩트는 프랑스 혁명을 단순한 폭동이나 나폴레옹 전쟁을 일회적 사 건이 아닌 역사적 전환기의 징후로 간주했다.
종교와 군사 권력이 주도 하던 구체제가 쇠퇴하여 새로운 사회 ― 그가 말하는 ‘산업사회’ ― 로 이 행해 가는 과도기적 징후로 읽어낸 것이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사회가 무너졌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데 필요 한 통합적 사유의 틀이 아직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바 로 이 지점에서 그는 ‘사회학’과 ‘이타주의’의 필요성을 본 것이었다.
콩트는 인간 역사의 전개를 ‘인간 정신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해석 했다.
이는 유심론적 역사철학, 다시 말해 인간 의식의 구조가 사회 질서 를 결정한다는 명확한 철학적 전제를 기반으로 한다.
그는 인간 정신이 세 가지 단계를 거쳐 발전한다고 주장했다.15)
15) Volker Kruse, Geschichte der Soziologie (Konstanz: UVK Verlagsgesellschaft, 2018), 15-20.
첫 번째는 신학적 단계로서, 자연 현상을 신적 존재나 초월적 힘의 결과로 해석하는 시기이다.
이는 어린아이의 사고방식에 비견된다.
이 시기에는 물신숭배(fetishism), 다신론, 유일신론의 순으로 사유가 진화한다.
사회 조직은 사제계급과 군사계급에 의해 지배된다.
이 시기의 통합 원리로서 기능하는 것은 종 교이다.
두 번째는 형이상학적 단계로서 신학적 사고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추상적 본질과 개념을 실재로 간주하는 시기이다.
콩트는 종교개 혁을 이 단계의 주요 전환점으로 보았다.
로마 가톨릭의 신학 체계에 대 한 비판, 계몽주의의 확산, 이후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 들이 이 단계를 형성한다.
세 번째는 실증적 단계로서 인간 정신이 더 이 상 초월적 존재나 추상적 본질을 세계 설명의 원인으로 상정하지 않는 다.
이제 인간은 경험 가능한 사실(fait)을 관찰하고 법칙을 도출하는 과 학적 사유에 입각하여 세계를 이해한다.
이 시기에는 사회가 산업적으로 조직되고, 과학과 이성이 갈등 없는 평화로운 사회가 가능하게 된다.
콩트의 세 단계 법칙은 단지 인류 전체의 역사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 닌 개별 인간의 발달 과정에도 평행적으로 적용되었다.
어린아이는 귀신 을 두려워하고, 청소년은 추상적 정의를 논하며, 성인은 이성을 통해 경 험 세계를 관찰한다.
다윈의 『종의 기원』 (1857)이 출판되기 이전이었음에 도 역사발전과 진화론적 이해방식이 당대의 시대정신으로 드러나고 있음 을 잘 보여준다.
콩트는 ‘사회’와 ‘개인’의 발전을 동일한 논리와 법칙의 지배하에 있는 역사 과정으로 바라보았고, 최종 단계인 산업사회를 매우 이상화하였다.
그 사회에서는 학자와 기업가가 중심이 되어 활동하고, 신분이나 출신이 아닌 능력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정해진다.
이해관계의 충돌은 공동의 생산성과 이익으로 조화되며, 전쟁은 더 이상 합리적 선 택이 아닌 과거적 잔재로 여겨진다.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이 ‘실증적 단계’로 이행하는 마지막 과도기라고 규정하고, 자신에게 인간 정신의 진보를 완성할 사명이 부여되었다고 확신하였다.16)
16) Ibid.; Comte, Auguste, The Positive Philosophy, (trans.) Harriet Martineau, Vol. I, (London: George Bell & Sons, 1896), 1-2.
그러나 이 낙관적 역사 진보 사상은 단순한 기술 낙관주의나 진보주의적 환상에 그치지 않는다.
콩트는 구체적인 정치·사회 위기 속에서, 과 학적 합리성과 도덕적 연대를 결합하는 새로운 사회 통합 원리를 탐색하 고자 했다.
그의 ‘이타주의’ 구상은 바로 이러한 역사철학적 프레임 속에 서 탄생한 것이었다.
이타주의는 진보의 산물이자, 진보를 지속시키기 위한 도덕적 조건으로서 근대기획과 이상적 완성을 위해 인류가 실천해 야할 핵심 키워드였던 것이다.
2. 콩트의 실증주의와 사회학의 의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콩트에게 산업사회는 생산 구조의 변화뿐만 이 아닌 인간 정신의 진보가 실현되는 사회형태였다.
그가 이 사회의 근 본 원리로서 제시한 것 ‘실증주의’였는데, 이는 인식론적 방법이 아닌 사 회 조직의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사유 방식이자 세계관이었다.
구시대에 는 초월적 종교가 사회 통합의 기능을 수행하였다면, 새로운 사회에서는 실증주의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여 사회 통합을 실현시 켜야 한다.17)
콩트가 말한 ‘실증적’(positive)이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이를 단순한 경험주의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실증적 사유란 사실에 근거 하고 유용할 뿐더러 명확하게 결정 가능하며 사회적 통합에 기여할 수 있는 인식 방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실증철학은 관찰 가능한 현상들 사 이의 항구적인 관계, 즉 ‘법칙’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18)
17) Ibid.. Comte, Auguste, The Positive Philosophy, (trans.) Harriet Martineau, Vol. I, (London: George Bell & Sons, 1896).
18) “실증철학의 특징은 모든 현상이 불변하는 자연법에 종속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Ibid, 5.
과학은 이러한 관계의 인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콩트는 사회도 하나의 ‘자연’으로 간주했다.
사 회는 자연처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에, 그 법칙을 발견하고 기술하는 것이 ‘실증과학’의 임무이다.
이는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자연법 개념과 유사한 구도이지만, 콩트는 이를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으 로 전환시켰다.
홉스가 자연법을 정치적 계약과 권력의 정당화 도구로 사용했다면, 콩트는 자연법을 경험과 통계, 법칙의 발견을 통해 사회 재구성을 가능케 하는 인식의 수단으로 여겼던 것이다.
콩트는 실증적 방법을 관찰(observation), 실험(experiment), 비교 (comparison)의 세 가지 기본 절차로 정의하였다.19)
이 방법론을 적용하 여 그는 전통 종교의 권위에서 벗어난 과학적 사회학, 즉 ‘실증적 사회학’ 을 창안했다.
이는 인간 사회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재조직의 과제를 수행하는 ‘규범적 학문’이었다.
사회학은 갈등과 무질서로부터 벗 어나 질서와 조화를 실현하는 데 기여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 과학처럼 법칙의 발견과 응용 가능성을 갖춘 ‘실증학’이 되어야만 한다.
그이 실증주의란 단순한 인식론이나 방법론을 넘어서 하나의 총체적 세 계관, 즉 과학에 의해 통합된 사회 질서의 사상적 기초로 제시되었다 할 수 있다.
콩트는 실증주의를 종교를 대체하는 세속적 종합원리, 곧 근대 사회의 새로운 도덕과 통합의 언어라고 보았다.
실증주의는 더 이상 하 나의 학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철학이자 정치사상이며, 동 시에 종교의 기능을 계승한 새로운 윤리적 사회조직의 토대로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콩트는 ‘사회학’을 처음에는 ‘사회물리학’(physique so ciale)으로 명명했다.
자연과학이 자연의 법칙을 탐구하듯, 사회과학 역 시 사회적 현상 간의 인과적 관계를 탐색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 다.
그러나 벨기에의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Adolphe Jacques Quetelet, 1796–1874)가 이미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기에, 콩트는 자신의 신학문에 ‘사회학’(sociologie)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부여했다.20)
19) Ibid., 318-319; 일단 콩트는 이 부분에서 자연과학에 한정시켜 세 가지 절차를 논의하고 있다. 사 회학으로 확대시키기 이전의 설명이다.
20) Horst Jürgen Helle, Einführung in die Soziologie (Wiesbaden: Springer VS, 2015), 26.
이로써 사회학은 단순한 현상 서술이 아닌, 사회 통합의 실천적 도구이자 사회과학으로서 실증주의의 핵심 매개체가 되었다. 또한 진보는 중요한 범주로서, 더 큰 사회적인 통합의 방향으로 발전되어 간다고 보았다.21)
3. ‘인류의 종교’와 이타주의
후기의 콩트는 자신을 ‘인류의 대제사장’으로 자처하며, 실증주의를 ‘인류의 종교’로 발전시켰다.
그 계기로 흔히 언급되는 인물은 작가이자 제자의 누이였던 끌로틸 드 보(Clotilde de Vaux, 1815–1846)이다.
콩트는 1844년 드 보와 정신적 교감을 나누며 영감을 얻게 되었음을 고백했고, 그녀의 사망 이후 그 비극적 체험은 콩트의 철학을 윤리적·종교적 차원 으로 확장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일부 비판자들은 콩트가 드 보에 대 한 상실의 충격으로 실증주의에서 퇴보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그의 사 유 전체를 사적 심리학으로 환원하는 해석일 수 있다.
실제로 콩트는 이미 1847년부터 실증주의를 사회통합의 규범 체계 이자 도덕적 신념 체계로 이해하기 시작했고, 드 보의 이미지를 로마 가 톨릭의 마리아처럼 상징적으로 격상시키며 인간성 종교의 정서적 초상으 로 삼았다.
콩트는 초기에 기존 종교의 해체와 이탈을 지향하였으나, 후 기에는 종교가 사회 통합을 위한 불가결한 장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존 종교가 해체된 이후 남겨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그는 새로운 형태 의 세속 종교, 즉 실증주의에 기반을 둔 인간성 종교의 창출을 시도했다.
이러한 전회는 개인적 계기뿐 아니라, 19세기 유럽의 종교 쇠퇴와 사회 통합 위기에 대한 이론적 응답이기도 했다.22)
21) Gunnar Hillerdal, “Altruismus,” Theologische Realenzyklopädie, Vol. 2, (De Gruyter, 1978), 348.
22) Kruse(2018), 31.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콩트만의 독특한 발상이었다고 하기는 어렵 다.
프랑스 혁명기에도 종교의 세속적 대체물을 고안하려는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1793년 로베스 피에르 중심의 혁명 정부는 기독 교의 신과 축일을 폐지하고, ‘지고의 존재’(Supreme Being)에 대한 이성 숭배를 국가 의례로 설정한 바가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콩트가 한 때 협력했던 생시몽(Saint-Simon, 1760–1825) 역시 세속적인 진보를 옹호 하며 추상적이고 합리적인 신성(deity)을 제시하려 했습니다.23)
이러한 종교적 경항으로 인해 콩트가 생시몽에게 등을 돌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후기 콩트가 생시몽과 유사한 종교적 상상력으로 회귀하는 경로 를 밟게 되는 것은 사상사적으로 흥미로운 반복 지점이다.
앞서 언급했던 콩트의 대표적 저작, 『실증정치학 체계』는 콩트의 인 간성 종교 구상의 결정적 결과물이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 조직의 생물 학적 기반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이타주의’ 개념을 명시적으로 도입했다.
특히 1권 후반부에서 그는 인간의 ‘공감적 본능’이 이기심을 극 복하게 하여 도덕을 성립시키는 기반이 되며, 이타주의는 사회 통합의 윤리적 원리로 기능한다고 제시했다.
책의 부제가 “사회학 논문, 혹은 인 류의 종교 제정을 위하여”로서, 이는 실증주의가 과학이자 윤리이자 종 교로 기능해야 한다는 콩트의 포괄적 기획을 잘 드러내고 있다.
콩트는 남성 사제와 여성 입문자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실증주의 교리문답』 (Catéchisme positiviste, 1852)을 통해 실증주의 종교의 구체적 실천방식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실증주의 신자는 전통 종교의 신 대신 ‘인류’(l'humanité)를 숭배해야 하며, 일상적 헌신의 실천으로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Imitatio Christi, 1471)를 정기적으로 읽을 것을 권유했다.
또한 콩트는 13개월로 구성된 새로운 달력을 고안하여, 각 월을 모세, 아리스토텔레스, 데카르트, 셰익스피어, 바울, 단테 등 서구 지성사의 위인들로 명명했다.24)
23) 다음의 저작 참조: Henri de Saint-Simon, The New Christianity (Boston: Beacon Press, 1957).
24) Auguste Comte, The Catechism of Positive Religion, (trans.) Richard Congreve, (London: John Chapman, 1858). 13개월과 각 위인으로의 명명방식에 대해서는 콩트의 다음 저작, 『실증정치학 체계』 제4권, 120쪽 이하에 상세하게 전개된다: Auguste Comte, System of Positive Polity, trans. J. H. Bridges et al., Vol. 4 (London: Longmans, Green, and Co., 1877).
이 는 실증주의가 종교, 역사, 과학, 윤리의 통합적 체계로 기능해야 한다는 그의 이상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요컨대 콩트의 실증주의 종교란 그의 당대 로마 가톨릭에 대한 비판 적 태도와 계몽주의적 이성 종교 사이 중간지점에서 사회적·도덕적 통합 을 위한 과학적 종교로 기획된 것이었다.
19세기 중반 “타인을 향한 사 랑”으로 등장한 ‘이타주의’는 콩트가 사적인 상실을 넘어선 정치적·윤리 적 기획 가운데 인류 결속을 위한 열쇠 개념으로 구성한 것이었다.
그는 실증주의 전문가들의 윤리적 독재 아래, 인류가 과학적 합리성과 이타적 도덕성을 결합한 사회를 실현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므로 autrui(타 자)와 isme(주의)이 결합된 이타(利他)+주의(主義)라는 조합의 인위적 느 낌, 낯설음은, 이러한 근대 기획 속에서 ‘사랑’, ‘자비’, ‘이웃 사랑’ 등의 종교적 개념을 세속화하려는 시도였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콩트는 기존 종교가 담지하던 윤리적 정서를 근대 과학적 언어로 치환함과 동시 에 자율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표현으로 라틴어 alter에서 유래한 프 랑스어 atrui를 활용했던 것이다.
이는 ego와의 대조항으로 구성한 추상 적·철학적 개념 장치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이타주의’의 기원에 는 이처럼 사상적·언어적 실험과 사회 공학적 기획이 긴밀히 결합되어 있다.
요약하자면 콩트의 ‘이타주의’란 자율적 도덕주체로서의 인간보다, ‘사회통합’을 위한 실천적 연대를 목적으로 한 정치적 차원의 실용적 원 칙으로 제시된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프레히트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적절하다.
즉 콩트는 엄격한 통제 하에서 사회적 불안정을 해소하고 무 탈하게 작동하게 하는 것을 민주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실현시키는 것보 다 훨씬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콩트적 의미의 이타주 의는 인간 진보를 위하여 개인의 자유를 넘어서라도 지킬 수 있게 하는, 권위주의적 톱다운(top down) 방식의 사회 통합적 가치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타주의란 개념이 이러한 진보를 위해 지켜져야 할 과학적이자 사회 공학적 규범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좀 더 자기희생 적인 개념으로 다가올 수도 있는 중립적이면서도 넓은 범위의 의미로 이 해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딕슨의 연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영국의 경 우 콩트의 이타주의는 다양하게 변주되어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의 경 우 어떠한 경로를 통해 이타주의 개념이 유입되었을까.
우리에게 이타주 의는 상당히 중립적인 표현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과거에 우리에게도 콩 트식으로 이해되는 이타주의적 개념이해의 가능성이 있었던 것일까.
우 리에게 어떠한 경로와 의미로 이타주의 개념이 유입되었는지를 볼 수 있 는 에피소드 하나를 살펴보도록 하자.
Ⅳ. 20세기 ‘이타주의’ 개념의 유입: 한국의 경우
한국 근대 시기 잡지와 신문을 대상으로 ‘이타주의’ 개념의 유입을 추 적해 보면, 가장 먼저 확인되는 사례로 재일 한국인 유학생 잡지였던 『대한학회월보(大韓學會月報)』에 실린 번역 기사를 들 수 있다.
1908년 9월호 에는 「動物界의 善과 惡」이라는 제목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번역자의 이름만 기재되어 있을 뿐 원제와 저자명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 글에 서는 ‘이타주의’라는 용어 대신 ‘이타심’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며, 이는 ‘이기심’에 대한 반의어로 제시된다.
특히 “자기의 욕정(이기심)”과 “단체의 요구(이타심)”라는 완전히 대칭적인 구도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 이다.
이러한 서술에 따른다면 이기주의는 개체가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욕망의 범주 안에 머무는 상태를 가리키는 반면, 이타주의는 개체의 한 계를 넘어 더 큰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태도, 즉 단체의 요구에 따르며 나아가는 방향성을 뜻한다.
따라서 이타심은 단체에 손해를 끼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간주되며, 그 결과 선과 악의 구분은 비교적 단순한 방식으로 설정된다
. …各個體는 欲情의 一部를 强制야 全 團體의 維持 繁榮을 不計 면 各自의 生存도 不能지니 强者는 勝코자 欲을 制야 弱者 를 助며 智者는 瞞코자 情을 忍야 愚者를 敎치 아니면 全 團體가 滅亡지라. 如斯 團體中의 各 個體는 양 自己의 欲情(利 己心)과 團體의 要求(利他心)間에 關이니 或奮發야 團體의 要求 에 從야 全 團體에 利益을 與도 有고 或自己의 欲情에 拘碍 야 全 團體에 損失을 及도 有니 此 善惡의 分라.25)
25) 밑줄은 인용자에 의해 추가되었다. 그러나 본 인용문은 역자 이대용이 모두 강조표시를 하고 있 는 부분이다. 李大容, “動物界의 善과 惡 (譯),” 「大韓學會月報」 제6호 (1908/6), 27-28.
제목과 내용 모두 동물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의 저본을 추적해 보면, 일본의 생물학자 오카 아사지로(丘浅次郎, 1868 -1944)의 저작을 중심으로 한 발췌 번역일 가능성이 높다.
오카는,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진화동물학자이자 우생학자였던 바이스만(August Weismann, 1834–1914)과 라이프치히 대학의 동물학자 로이카르트(Rudolf Leuckart, 1822–1898)에게서 수학한 인물이었다.
그의 “동물계에서의 선 과 악”(動物界における善と悪)에는 해당 논의 중 핵심 개념이 일본어와 독 일어를 병기한 형태로 제시되어 있어,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개념의 사용 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오카는 여기서 한 개인이 항상 자신의 욕정, 즉 이기심(Egoismus)과 단체의 요구, 즉 이타심(Altruismus) 사이에 놓여 있다고 설명한다.
개인 의 행위가 전체 단체에 이익을 가져다줄 경우, 그 이익을 함께 나누는 동 료들은 이를 칭찬하며 선(Bonum)이라 부르고, 반대로 전체에 손해를 끼 칠 경우에는 그 피해를 함께 입는 동료들이 이를 비난하며 악(Malum)이 라 부른다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의 기준은 초월적 규범이 아니라 집단적 유용성에 의해 규정된다. 단체 내 각 개인은 항상 자신의 욕정 즉 이기심(Egoismus)과 단체의 요구 즉 이타심(Altruismus) 사이에 끼여, 때로는 분발하여 단체의 요 구에 따라 전 단체에 이익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약해져 자 신의 욕정에 지고 전 단체에 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선 악이 갈리는 지점이다.
한 개인의 행동 결과가 전체 단체에 이익을 줄 때에는 이익 분배에 참여하는 동료들이 이를 칭찬하며 선(Bonum) 이라 칭하고, 한 개인의 행동 결과가 전체 단체에 손해를 끼칠 때는 균등하게 피해를 입는 동료들이 이를 비난하며 악(Malum)이라 부르 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26)
26) 丘浅次郎, “動物界における善と悪,” 「教育学術界」 (1902/12), https://www.aozora.gr.jp/cards/001 474/files/57424_61243.html
이처럼 오카는 Egoismus(이기주의)와 Altruismus(이타주의)를 각각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번역하였다.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 속한 『대한 학회월보』의 번역자 또한 이러한 대응을 그대로 수용하되, 독일어 Ego ismus와 Altruismus 자체는 생략한 채 한자어 표현만을 제시했던 것으 로 보인다.
이러한 『대한학회월보』의 번역 기사에 나타난 이기심-이타심의 대칭 적 구도는, 그것이 단순한 도덕 담론의 차원이 아니라 서구 근대 사상의 특정한 전파 경로 위에 놓여 있음을 시사한다.
‘이기주의’(egoism)와 이에 대립하는 ‘이타주의’(altruism)라는 개념쌍은 본래 콩트가 실증주의적 사 회 이론과 인류 종교의 윤리적 원리를 정초하는 과정에서 조어한 것으 로, 사회를 계산된 자기이익이 아니라 사회적 본능과 연대의 원리에 의해 설명하려는 시도와 결부되어 있었다.
이 개념은 19세기 후반 유럽에 서 사회학, 생물학, 동물학 담론 등으로 이행하였으며 사회, 윤리적 규범 을 넘어 진화생물학적인 어휘로도 재맥락화 되었을 것이다.
이때 이기주 의와 이타주의란 개체와 집단의 생존 전략이라는 틀 속에서 해석되었고, 사실 이는 콩트식의 기본적 이해방식과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오 카 아사지로는 이러한 서구 진화생물학의 성과를 일본에 소개하는 과정 가운데 Egoismus와 Altruismus를 각각 ‘이기심’과 ‘이타심’으로 번역·정식화한 것이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도덕적 개념으로서의 선 과 악이 과학적 설명과 결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대용의 번역 문은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타주의와 이기주의 담론을 흡수한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V. 나가며
‘이타주의/altruism’라는 개념은 오늘날 일상 언어에서 너무나 자연 스럽게 사용되고 있지만, 그 철학적 기원과 사회사적 함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해명되어야 할 것이 많다.
본 논문은 이타주의가 단순한 도덕적 미덕이나 종교적 덕성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닌, 근대 이후의 특정한 역사 적·철학적 요구 속에서 고안된 개념임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칸 트의 ‘이기주의’(Egoismus)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오귀스트 콩트가 창 안한 ‘이타주의’가 어떻게 실증주의적 세계관과 사회 통합의 윤리 원리로 등장했는지 추적하였다.
콩트에게 이타주의는 자발적 희생의 심리나 개인적 선의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회적 혼란과 도덕적 해체를 극복하기 위한 합리적 장치이자, 프랑스적 맥락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대표되는 제도종교 및 초월적 종교에 대신할 새로운 윤리 질서의 핵심 원리였다.
이타주의는 신에 대한 복종이나 자연적 도덕감에서 연역된 것이 아닌, 사회 조직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인간을 실증적으로 이해하려는 근대적 시도 속에서 등장한 새로운 도구 개념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이타주의는 종 교, 도덕, 정치,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형성된 윤리적–사회적 장치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타주의 개념은 서구 철학 내부에 머물지 않 고, 사회학, 생물학, 진화론을 거쳐 일본의 근대 과학 담론 속에서 재맥락화되었으며, 다시 근대 한국어 지식장으로 번역, 유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사례로서 「대한학회월보」에 게재된 번역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Altruismus는 ‘이타주의’보다는 ‘이타심’으로 옮겨졌고, 이는 ‘이 기심’과의 대칭적 구조 속에서 집단의 유지와 번영이라는 기능적 기준에 의해 선악이 판별되는 개념으로 재구성되었다.
오카의 번역을 수용한 사 례는 이타주의가 단일한 의미를 유지한 채 전파된 것이 아니라, 각 지식 장과 학문적 맥락 속에서 재구성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개념의 이동과 변형은 이타주의가 지닌 양면성을 동시에 드 러낸다.
한편으로 이타주의는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윤리 적 자원으로 기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집단생활을 영위하는 동물로 서의 인간이라는 종(種)이 구성한 사회를 과학적으로 관리 및 조직하려는 시도와 결합되면서, 이후 사회공학적 사고와 통제의 합리성, 논리를 예 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콩트가 사회학의 창시자 중 한 사람으로 평 가되는 이유가, 동시에 근대적 인간 이해가 내포한 위험성을 예고하는 지점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인간에 관한 학문과 과 학은 인간의 복합성과 양면성을 그대로 품고 있으며, 그 발전은 언제나 윤리적 긴장과 부작용의 가능성을 동반한다.
오늘날 이타주의 개념은 다시금 새로운 방식으로 호출되고 있다.
진 화생물학, 사회심리학, 신경윤리학 등은 인간의 이타적 행동을 유전자, 뇌 신경, 집단 본능으로 환원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한편, 기후 위기와 팬데믹,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과 같은 전 지구적 상황은 이타주의의 규범 적 의미를 새롭게 사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이타성’은 개인의 도덕 감정인가, 사회적 계약인가, 아니면 역사적으로 구성된 윤리적 언어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본 논문은 이타주의의 역사적 형성과 개념적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시도했으며,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어떤 언어와 사유를 통해 타자와 사회 를 이해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자 했다.
이타주 의는 완결된 규범 개념이 아니라, 근대 이후의 인간 이해가 특정한 조건 속에서 만들어낸 하나의 응답이자 실천적 요청이다. 따라서 이 개념을 다시 사용하는 일은, 그것이 형성된 철학적 조건과 번역의 경로, 그리고 그 속에 남아 있는 역사적 잔여물들을 성찰하는 작업을 동반해야 한다.
앞으로의 과제는 이타주의를 단순히 ‘이기주의의 반대’로 설정하는 이항적 구도를 넘어, 타자성과 공동체성의 윤리적 기초를 보다 정교하게 사유하는 데 있다.
나아가 이타주의의 개념사를 발판으로 삼아, 현대 사회에서 ‘책임’, ‘연대’, ‘돌봄’과 같은 윤리적 언어들이 어떠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구성되고, 어떤 방식으로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탐색 하는 보다 넓은 윤리적, 정치적 기획이 요구된다.
특히 신학적으로는 이 타주의가 하나의 ‘-ism’으로 기능하지 않도록 공감과 협동, 자비의 개념 과 함께 하는 함의로 계속적으로 발전시켜 나아갈 과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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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타주의(altruism)는 오늘날 일상 언어와 윤리 담론에서 자명한 덕 목처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개념의 기원과 역사적 함의는 충분히 성찰되어 왔다고 보기 어렵다. 본 논문은 이타주의를 초월적 도덕 가치 나 보편적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개념으로 보기보다, 근대 이후의 특정 한 역사적·철학적 요구 속에서 고안된 개념으로 바라보며 그 형성과 변 형의 과정을 개념사적으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먼저 칸트의 ‘이기주 의’(Egoismus)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아, 오귀스트 콩트가 실증주의적 세 계관과 사회 통합의 윤리 원리로서 ‘이타주의’(altruisme)를 창안한 맥락 을 분석한다. 이후 이타주의 개념이 19세기 후반 서구 진화생물학 생물 학과 진화론 담론을 거쳐 일본의 근대 과학 담론 속에서 재맥락화되고, 다시 20세기 초 한국 근대 지식장으로 번역·유입되는 사례를 고찰해본 다. 본 논문은 이러한 개념의 이동과 번역이 이타주의의 의미를 단선적 으로 확정하려하기 보다는 과학, 종교, 정치가 교차하는 담론의 장 속에 서 그 의미가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오늘날 진화생물학, 사회과학, 윤리 담론에서 다시 호출되는 이타주의 개념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현대 사회에서 타자성, 연대, 책임의 윤리적 언어를 성찰하기 위한 개념사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주제어 이타주의, 콩트, 이타성, 이기주의, 칸트, 이타심, 개념사, 이대용(李大容), 오카 아사지로(丘浅次郎)
Abstract
A Historical Reflection on the Concept of Altruism — Modern Intellectual Projects Surrounding Altruism
Tae-Yeon Kim (Assistant Professor, Soongsil University)
Altruism is widely employed in contemporary everyday language and ethical discourse as a self-evident moral virtue. Yet the origins of this concept and its historical implications have rarely been subjected to sustained critical reflection. This article approaches altruism not as an expression of a transcendental moral value or a universal human nature, but as a concept devised in response to specific historical and philosophical demands of the modern period, and examines its formation and transform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conceptual history. Taking Immanuel Kant’s notion of egoism (Egoismus) as a point of departure, the article first analyzes the context in which Auguste Comte coined altruism (altruisme) as an ethical principle of social integration grounded in a positivist worldview. It then traces how the concept was recontextualized within late nineteenth-century Western evolutionary biology and subsequently appropriated in modern Japanese scientific discourse, before being translated and introduced into the Korean intellectual milieu in the early twentieth century. T hrough this examination, the article demonstrates that the movement and translation of the concept did not lead to a linear stabilization of its meaning, but rather to its continual transformation within a discursive field shaped by the intersections of science, religion, and politics. In doing so, this study calls for a critical reexamination of the renewed deployment of altruism in contemporary debates in evolutionary biology, the social sciences, and ethics, and seeks to provide a conceptual-historical foundation for reflecting on ethical vocabularies of otherness, solidarity, and responsibility in modern society.
Keyword altruism, Altruismus, comte, egoism, Kant, Egoismus, altruistic mindset, altruistic spirit, Lee Dae-Yong, Oka Asajiro
논문접수일: 2025년 11월 30일 논문수정일: 2025년 12월 23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12월 23일
神學思想 211집 · 2025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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