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Ⅱ. 동교 개념의 문제점 요약문
Ⅲ. 의상계 화엄의 동교 이해와 송대 화엄과의 비교
Ⅳ. 맺는말
I. 들어가는 말
해동 화엄종의 개조(開祖)로 알려진 의상(義相 또는 義湘, 625-702)은 화엄사 상의 실천적 구현에 주력한 인물로서, 이러한 실천성이 한국 화엄을 중국 화엄 과 차별화한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1)
1) 한국의 화엄 전통에 대한 연구사 개괄은 曺潤鎬·佐藤厚 2000 참조. 의상 화엄사상의 형성과 동아시 아 불교에 끼친 영향, 그 실천성에 대해서는 정병삼 2024, 2장, 4장, 5장 참조.
그러나 논자는 제자들에 대한 개방적 태도, 대규모 국가사업에 대한 비판, 정토신앙의 포용 등 구체적 사례에서 그의 실천성을 찾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무분별중도(無分別中道)’, ‘일승보법(一乘 普法)’, ‘구래불(舊來佛)’ 등 그의 저술에 보이는 일부 용어를 통해 ‘사상의 실천 성’을 보이려는 접근법에는 수긍하기 어렵다.
더욱이 그러한 주장을 위해 의상 사상의 핵심 개념을 부처의 청정한 세계가 그대로 드러남을 의미하는 ‘성기(性 起)’로 파악하고, 이를 그의 스승 지엄(智儼, 602-668)의 법계연기설에 연결하면 서, 중생의 현실 세계를 가리키는 ‘연기(緣起)’ 또는 ‘연수(緣修)’를 그 대립항으 로 설정할 경우 실천성보다는 오히려 추상성이 더 부각될 수 있다.
예컨대 의상 의 강의록으로 추정되는 화엄경문답에서 성기가 구체적 수행의 현실태인 연기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신생(新生)의 보살이 본유(本有)의 부처에 말미암음을 강조하는 문장에 근거하여 “의상이 성기사상을 철저히 실천적 범주 에서 전개”했다고 주장할 경우2) 부처와 수행자 또는 중생에 대한 그런 식의 관 계 설정은 화엄 문헌에 보이는 일반적 경향일 뿐이라는 반론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3)
물론 지엄의 제자로서 의상과 동문수학한 법장(法藏, 643-712)의 경우 “이론 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지엄에게서는 “구체적인 실천을 중시”하고 “각각의 교설이 수행자의 근기에 맞추어져” 있음이 두드러진다는 점을 부인하 기는 어렵다.4)
그러나 의상이 지엄의 그러한 ‘실천성’을 더욱 발전시켰다고 하 더라도 그가 사용한 용어 가운데 ‘지금 현재의 나’를 강조한 ‘오신(吾身)’, ‘오척 신(五尺身)’ 또는 ‘자체불(自體佛)’ 등을 제외한 나머지 용어에 대하여 ‘실천적’ 이라는 수식(修飾)을 가할 때는 보다 구체적인 맥락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화엄일승법계도(이하 ‘법계도’)로 대표되는 의상의 저술과5) 법 계도기총수록(이하 ‘총수록’)에 포함된 그의 제자들, 곧 의상계 화엄가들의 주석에는 지엄이나 법장의 문헌에는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교학 용어나 논증 방 식이 종종 보이기 때문에,6) 그 용어의 연원을 추적하거나 이론적 차이점에 주목한 연구도 많이 산출되었다.
2) 정병삼 2024, 252-261. 관련 경문은 다음과 같다. 華嚴經問答 (T1873, 45:610c19-611a7): 問 …중 략…如是佛菩薩樹芽等生一切菩薩芽等生者 其義云何. 答 此義顯示本有新生不異. 謂但一心中有故 新生菩 提心等發時 定由本有菩提心等. 無不由本有行德而有新生行德也. …중략… 問 先以大緣起(+爲)樹者 即一 切衆生界盡攝. 若爾亦得一衆生發心時 一切衆生發心等耶. 答 既緣起樹 豈不一切衆生即一衆生 一衆生即一 切衆生. 衆生既爾 起行豈不爾. 然而此處中文顯者 但示本有新生同時並起義 本即佛 新即菩薩等. 한글 번역 은 김상현 2013, 160-162 참조.
3) 예컨대 법장은 화엄경지귀에서 비슷한 취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華嚴經旨歸 (T1871, 45:596b27-c5): 十稱性益者. 謂依此普法 一切衆生無不皆悉稱其本性 在佛果海中 即舊來益竟更無新. …중 략… 乃至云 一切如來無極大悲度脫衆生. 解云 辨衆生舊來同佛者 是無極大悲也.
4) 이시이 코세이 2020, 169.
5) 최연식에 따르면 의상의 법계도는 “한국의 화엄학 문헌 중 가장 시기가 앞서는 것”이며, “지엄 문 하에서의 수학 내용을 총결산한 것이자 귀국 후 의상의 가르침의 원형”이다. 최연식 2011, 237-238. 또한 정병삼은 한국불교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한 저술에 대한 주석서가 나온” 유일 한 사례가 법계도임을 지적한다. 정병삼 2024, 497. 법계도와 관련한 문헌학적 문제와 의례 문 헌으로 사용된 사례에 대해서는 佐藤厚 2015와 佐藤厚 2018 참조. 조선시대 김시습의 법계도 주석 에 대한 간략한 연구로는 韓鍾万 1982 참조.
6) 김천학에 따르면 “지엄의 시대에는 그다지 확정적이지 않은 사유가 의상과 법장 대에 와서 구체화 되었다.” 김천학 2012. 68. 김천학은 의상의 제자들은 물론 고려의 균여까지도 ‘의상계’ 또는 ‘의상 학파’에 포함시키는데, 본 논문에서는 균여의 교판까지는 다루지 않을 것이다. 김천학 2002, 229; 김천학 2012, 77. 후지야마 가마네는 일본 화엄종의 주류인 동대사 계열을 존승원계(尊勝院系)와 계단원계(戒壇院系)로 나누어, 교넨(凝然, 1240-1321)으로 대표되는 후자가 “의론(議論)에 얽매이 지 않는 자유로운 입장에서의 화엄학 연구”를 특징으로 하였기에 다른 종파에도 전파될 수 있었 지만, 의론 중심의 전자가 동대사 화엄의 본류였음을 보인다. 藤山要 2019, 169-177. 그렇다면 의상 계 화엄도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의 신앙을 배려하면서도, 학승들 사이에서 교리에 대한 활발한 토 론을 전개하는 의론 중심의 성격이 남아있었기에 상당 기간 계승되지 않았나 하는 추론도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법계도와 그 주석서에 보이는 ‘이이상 즉(理理相卽)’, ‘다라니법(陀羅尼法)’, ‘오중해인(五重海印)’ 등의 용어에서 지론 교학 및 선불교의 영향을 추적하고, 그 이론 체계를 규명하며, 주석의 동이(同 異)를 비교함으로써 의상계 화엄사상의 형성 과정은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할 수 있다.7)
그러나 그간 의상 화엄사상의 키워드로 인식되어 온 ‘성기’ 개념을 둘 러싼 논란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으며,8) 화엄사상의 또 하나의 축을 구성하고 있는 교판(敎判) 중 ‘동교(同敎)’ 개념에 대해서도 여전히 분석할 여지가 남아있 다고 판단된다.9)
7) 이시이 코세이는 의상계 화엄의 키워드로 간주되는 ‘이이상즉’이 “지론 계통에서는 오래전부터 있 던 사상”이며 “이이상즉에서의 개개의 이(理)야말로 지론종 이래로 이의 주류”라고 지적하면서, 여 여무애(如如無礙)를 근거로 ‘일리일체리(一理一切理)’를 보이려는 습선자(習禪者)나 지론사를 법 계도가 비판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시이 코세이 2020, 357, 398. 박보람은 그러나 법계도의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과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과 같은 구절이 이(理)와 사 (事)의 구분 없는 일승의 중도와 “하나의 연기법이 모든 것을 갖춘” 다라니법과 관련됨을 상기시키 면서, 이이상즉을 둘러싼 논란 자체가 “근원적인 법계와 복수의 이와 사의 이중 구조”라는 잘못된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박보람 2022, 55-63. 다른 한편으로 법장의 탐현기에 이와 사 의 상즉에 관한 4구가 제시되는 등의 사례를 들어 김천학은 의상계 화엄의 이이상즉설이 동아시아 화엄 전통 내에서 영향을 주고받았음을 주장한다. 金天鶴 2012 참조. 의상계 화엄에 보이는 선적 경 향과 그 영향에 대한 연구로는 석길암 2013, 18-24 참조. 대기를 중심으로 한 오중해인의 구조와 그 취지에 대한 연구로는 이미선 2018 참조. 또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와 대기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佐藤厚 1995 참조.
8) 최연식은 의상계 화엄의 특징을 성기사상으로 파악하는 것에 대하여 “지눌의 ‘이통현=성기, 법장· 징관=연기’라는 이해 틀에서 이통현을 의상으로 바꾼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최연식 2016, 255.
9) 사카모토 유키오, 요시즈 요시히데, 그리고 사토 아쓰시는 의상의 교판 체계에 대하여 각각 1) 지엄 의 체계에 가깝다, 2) 법장의 체계에 가깝다, 3) 삼승과 일승의 병립 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바 있다. 曺潤鎬·佐藤厚 2000, 33-34. 논자는 의상의 일승 개념이 지엄의 가르침을 수용하면 서도 결과적으로 법장의 별교일승에 가까워졌지만 의상 자신은 법장처럼 ‘동교’를 명시적으로 언 급하지는 않았으며, 그의 제자들이 오히려 동교와 별교를 선명하게 대비하였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한편 김천학은 화엄의 교판이 “오교판이라는 수직적 교판”과 “동별이교라는 수평적 교판”으로 이루어졌으며 의상도 ‘동교’라는 용어를 사용했음을 지적하는데, 이는 화엄경문답의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논자 역시 동·별 2교를 수평적 교판 체계로 설정하는 데 법 계도가 기여한 “선구적” 역할을 인정하며, 법계도에서는 ‘동교’ 대신 ‘방편일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는 그의 지적에 동의한다. 김천학 2012, 69-72.
이에 본 논문에서는 총수록에 수록된 법기, 진기, 대기 등 법계도 주석 문헌에서 의상의 제자들이 동교와 그 대립항인 별교(別敎)에 대하여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다만 성기와 연기의 문제를 중심으로 그간 활발히 연구가 되었던 화엄경문답은 동·별 2교 의 문제가 산발적으로만 다루어지기 때문에 논하지 않기로 한다. 논자는 이러 한 비교 고찰을 통해 의상과 그의 제자들이 지엄과 법장의 문헌에 다소 모호하 게 제시된 동교와 별교 개념에 새로운 수행론적 차원을 더하거나 외연을 확장 했음을 보이고자 한다. 또한 중국의 초기 화엄가들의 동·별에 대한 극히 간략한 설명으로 인해 송대에는 많은 논란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를 그보다 이른 시 기인 의상계 화엄가들이 제시한 설명 방식과 비교하면 동아시아 화엄교학의 전개 양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10)
10) 동아시아 최초로 오교장 주석서인 오교장지사를 저술한 쥬레이(壽令, ?-?) 등 일본 화엄가들의 화엄사상 수용 양상과 일본 화엄의 중심인 동대사(東大寺)와 고산사(高山寺)의 변천에 대해서는 藤 丸要 2019 참조.
이하에서는 초기 화엄의 교판에서 동교 개념이 어떤 식으로 제시되었고 어 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우선 살펴보고, 의상계 화엄과 송대의 화엄에서 이 개념 이 어떻게 논구되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중국의 초기 화엄종 조 사들이 미해결 상태로 남겨둔 문제가 의상계 화엄가들에 의해 상세히 논의되 었으며, 그들의 설명은 중국 송대의 ‘정통주의적’ 화엄가들의 다소 무미건조한 논의와 상당히 대조적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II. 동교 개념의 문제점
주지하듯이 동아시아의 불교 종파는 그 성립 과정에서 자신들의 소의경전 (所依經典)에 지상(至上)의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화엄종은 화엄경의 가르침을 ‘원교(圓敎)’, ‘일승(一乘)’ 등으로 명명하는 교판을 제시하였는데, 일승이 성문승·연각승·보살승이라는 삼승(三乘)의 존재를 전제로 하여 설정된 것 이기 때문에 일승과 삼승 사이의 관계 설정이 하나의 과제가 되었다.
화엄가들은 한편으로 일승을 삼승보다 뛰어난 것으로 보고 삼승과의 차별성 을 강조하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승이 ‘원교’, 곧 원만한 가르침이 되기 위해 서는 삼승을 배제하기만 해서는 안 되므로 일승과 삼승이 둘이면서 둘이 아니 라는 입장을 개진해야 했다.
이러한 입장은 이미 지엄의 수현기, 오십요문 답, 공목장에 보이지만, 일승의 포괄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는지 그 의 동교 개념에는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요시즈 요시히데에 따르면 지엄은 수현기에서 ‘공·불공(共不共)’이라는 용 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동·별 2교’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곳에서는 화엄경이 삼승의 사람들에게 견문(見聞)과 수행의 경계가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법화경 「방편품」의 삼계화택(三界火宅)과 「신해품」의 장자궁자(長者窮子)의 비유를 들어 각각 삼승 외에 일승이, 소승 외에 삼승이 있음을 알게 한다.11)
요 시즈는 이에 대해 지엄이 “소승에서 삼승으로, 삼승에서 일승으로”라는 인입 (引入)을 수행하기 위해 “뛰어난 가르침”인 별교와 “솜씨 좋은 가르침”인 동교 의 두 측면이 화엄경에 갖추어져 있음을 보이는 한편, ‘삼승동교’라는 개념도 사용한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지엄이 수현 기에서 ‘동’ 대신 ‘공’이라는 용어를 채택하여 포괄성을 논할 때는 일승·삼승 또는 일승·삼승·소승 모두에 공통되는 수행법[共行法]이나 공통되는 가르침[共 敎]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동’ 또는 ‘공’과 같은 개념이 반드시 일승과 삼승 사이의 관계에만 적용되는 것도 아님에 유의해야 한다.12)
11)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T1732, 35:14b26-c3): 問 此經何故上來通三乘分別及攝者. 答 爲此 經宗通有同別二敎 三乘境見聞及修等故也. 如法華經三界之中三車引諸子出宅 露地別授大牛之車. 仍此二 敎同在三界爲見聞境. 又聲聞等爲窮子 是其所引 故知小乘之外別有三乘 互得相引主伴成宗也.
12) 吉津宜英 1991, 51-53.
한편 지엄은 오십요문답에서 ‘불공’ 대신 ‘별교’를 통해 일승을 “적극적으 로 드러내려” 하면서도, 삼계교의 「보경인악의」를 인용하고 이 종파를 “보법 (普法)에 의해 이루어진” 동교일승으로 간주하는데,13) 요시즈는 이로부터 “지 엄의 종교성”을 읽어내어 법장과 대비한다.14)
13) 華嚴五十要問答 (T1869, 45:534c8-10): 此中所明如來藏佛性 雖約諸義差別不同 皆是同敎一乘義也. 何 以故. 爲成普法故 普法所成故.
14) 吉津宜英 1991, 60-61.
다른 한편으로 지엄의 공목장 은 다음과 같이 일승을 동교와 별교 대신 방편승(方便乘)과 정승(正乘)으로 구별 하면서 전자에 대하여 ‘부정(不定)’, ‘통(通)’, ‘소류(所流)’, ‘소목(所目)’, ‘섭(攝)’ 등의 용어를 사용한다.
또 일승의 뜻은 분별하면 둘이 있으니, 첫째 정승이고, 둘째 방편승이다.‘정승’은 화엄경에서 설한 것과 같으며, 또한 앞에서 분별한 것과 같은 ‘방편승’의 경우 …중략… 불보는 일승이고, 법(보)와 승(보)는 삼승이다. 왜 그러한가? 부처는 무진(無盡)과 같기 때문이며, 법과 승은 부정(不定) 이 다. …중략… 문장에 따라 뜻을 이해하는 것은 삼승법이요, 허망함을 알아 무분별에 계합하는 것은 일승법이다. 왜 그러한가? 무분별에 계합하는 것 은 무진과 같기 때문이며, 문장에 따라 취하는 것은 부정이다. …중략… 이상에 논한 것은 권속(眷屬)의 경전에서 원통무진(圓通無盡)의 법장(法 藏)을 나타내기 위함이니, 방편인 곳에 일승의 명칭을 보여 나아가 들어가 는 자가 쉽게 이해하도록 이러한 설을 지었다. 만약 방편으로 나아가는 법 문에 횡으로 의지하면 두 가지 뜻이 있어 통하여 일승이라고 설하니, 첫째 궁극적 일승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왜 그러한가? 일승으로부터 흘러나 온 것[所流] 이기 때문이다. 또 일승에 의해 지목된 것[所目] 이기 때문이다. 둘째 저 궁극적 일승에 대하여 방편이 되기 때문에 일승이라고 설하니, 원 통자재의 뜻은 아니다. 나머지 뜻은 이에 준하여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상 의 법문은 아래의 가르침을 포섭한다. 돈교는 저 뛰어난 근본 교의에 속하 고, 점교는 그 말단의 뜻을 따르니, 일승·삼승·소승에 통한다 . 왜 그러한 가? 저 원교에 의해 지목된 것이다. 나아가 삼승종교는 고요하면서 비추 고, 비추면서 고요한 한 모습의 진여(에 관한 것)이다. 초교(삼승시교)의 법문을 아우르면 염법과 정법이 공하며, 법공에 어리석은[愚法] 소승(에 게 설해지는) 고제의 가르침의 경우 설명되는 실법은 유위, 무위 등이다. (이처럼) 종지가 다 다르며, 뜻과 이치가 구별되는 것이다.15)
15) 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章 (T1870, 45:538a10-b2): 又一乘義者 分別有二 一者正乘 二者方便乘. 正乘如華 嚴經說. 亦如前分別方便乘者 …중략… 佛寶是一乘 法僧是三乘. 何以故. 佛同無盡故 法僧則不定. …중 략… 隨文解義 是三乘法 知虛契無分別 是一乘法. 何以故. 契無分別 同無盡故 隨文取者 是則不定. …중 략… 上來所辨 於眷屬經中 欲顯圓通無盡法藏 一乘敎義故 於方便之處 示一乘名 令進入者易得解故 作如是 說. 若橫依方便進趣法門 即有二義 通說一乘. 一由依究竟一乘敎成. 何以故. 從一乘流故 又爲一乘敎所目故. 二與彼究竟圓一乘 爲方便故說一乘 非即圓通自在義. 餘義準可知. 上件法門 攝下諸敎. 頓屬其上分本敎義 漸從其末義 通一乘三乘小乘. 何以故. 爲彼圓敎所目. 及三乘終敎 寂照照寂一相眞如. 并初敎門 染淨即空. 愚 法小乘苦諦之敎 所詮實法有爲無爲等. 宗並不同 義理各別也.
여기에서 지엄은 방편승, 곧 동교라는 말단에 점·돈·원의 3교는 물론, 소승· 삼승·일승의 3승이라는 교판의 범주들이 놓여있고, 그것들이 모두 일승이라는 근본에서 흘러나오거나 일승을 지향한다고 말하는데, 이처럼 그에게는 동교가 반드시 일승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은 없었고 모든 가르침을 포괄 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요시즈는 지엄의 이러한 포괄적 동교 개념이 법장에게 전승되지 않고 “별교 일승 우월론이라는 완전히 이질적인 내용”으로 전개되었음을 지적한다.16)
16) 吉津宜英 1991, 47. 8 불교학연구 제86호
그 러나 법장은 오교장 「건립일승장」의 첫 문장에서 일승을 별교와 동교의 2문 으로 구분하고, 다시 별교 중 말할 수 있는 측면인 연기인분(緣起因分)을 분상문 (分相門)과 해섭문(該攝門)으로 나누는데, 해섭문이 다음과 같이 삼승과 일승의 상즉을 가리키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그가 별교일승 우월론을 전개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두 번째 해섭문.
일체의 삼승 등은 본래 저 일승법이다. 왜 그러한가? 삼 승의 관점에서 일승을 바라보니 2문이 있기 때문이니, 다르지 않음과 동 일하지 않음이다. 첫 번째 ‘다르지 않음’은 다시 둘인데, 첫째 삼승이 그 대로 일승이니[三即一] 다르지 않고, 둘째 일승이 그대로 삼승이니[一即 三] 다르지 않다. …중략… (첫째 “삼승이 그대로 일승이니 다르지 않다” 라는 것은 삼승이 파괴되기를 기다리지 않음[不待壞], 삼승이 존속함을 가로막지 않음[不礙存], 삼승이 파괴되지 않음이 없음[無不壞], 삼승으로 서 존속할 만한 것이 없음[無可存]이라는 4句로 말미암기 때문이니) 따라 서 오직 일승이 있을 뿐 다시 나머지는 없다. 둘째 “일승이 그대로 삼승이니 다르지 않다”라는 것은 (일승이 숨는 것을 기다리지 않음[不待隱], 일 승이 드러남을 가로막지 않음[不礙顯], 일승이 숨지 않음이 없음[無不隱], 일승으로서 드러낼 것이 없음[無可顯]이라는) 은현(隱顯)의 4구로써 위와 뒤집어 생각해 보라. 따라서 오직 삼승이 있을 뿐 다시 일승은 없다. 이는 아래의 동교에서 논한 것과 같다. 두 번째 ‘동일하지 않음’은 이 일승 그 대로인 삼승과 앞의 삼승 그대로인 일승이 동일하지 않다는 문인 것이 다. …중략… 또한 여기에서 ‘동일하지 않음’이 위의 분상문이요, 여기에 서 ‘다르지 않음’이 바로 이 해섭문이다.17)
17) 華嚴一乘敎義分齊章 (T1866, 45:478b24-c11): 該攝門者 一切三乘等 本來悉是彼一乘法. 何以故. 以三乘 望一乘有二門故. 謂不異不一也. 初不異亦二 一以三即一故不異 二以一即三故不異. …중략… 是故唯有一 乘更無餘也. 二以一乘即三明不異者 隱顯四句 反上思之. 是故唯有三乘 更無一也. 此如下同敎中辨. 二不一 者 此即一之三 與上即三之一 是非一門也. …중략… 又此中不一是上分相門 此中不異是此該攝門也.
곧 법장은 별교의 해섭문 중 삼승과 일승의 ‘다르지 않음’을 다시 삼승이 그 대로 일승인 것과 일승이 그대로 삼승인 것으로 나누고 있지만, 여기에서는 일 승별교에 삼승과의 차별성과 삼승에 대한 포괄성이 망라되어 있음을 지적하는 정도이다. 위의 밑줄 친 문장은 일승별교에 동교적 요소가 있음을 명시하는 것 처럼 보이며, “오직 삼승이 있을 뿐 다시 일승은 없다”라는 문장에 이어지기 때 문에 ‘일승 그대로 삼승’인 것을 동교로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 승 그대로 일승’인 것과 ‘일승 그대로 삼승’인 것이 모두 별교의 해섭문의 하위 범주에 있기 때문에 별교와 동교의 개념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측면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법장은 이어 동교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분제승(分諸乘)과 융본말(融 本末)로 나눈 뒤 분제승의 수승문(殊勝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 번째 수승문을 기준으로 하면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 중 대승 (인 보살승)을 일승으로 삼는데 , 별교를 바라볼 때 비록 방편과 진실에 있 어서 다른 점과 같은 점이 있더라도 똑같이 보살이 타는 바이기 때문이다. …중략… (법화경의 일승진실을 말하는) 이 문장에는 두 가지 뜻이 있 는데, 첫째 위의 별교를 바라보면 (삼승 중 일승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곧 대승과 소승의 이승인 것이다. …중략… 일승을 떼어내어 삼승으로부터 구분하기[開一異三] 때문이다. (두 번째) 만약 동교를 바라보면 성문 등은 둘이니, 대승을 융합하여 일승과 같게 하기[融大同一] 때문이다.18)
18) 華嚴一乘敎義分齊章 (T1866, 45:479a1-7): 四約殊勝門 即以三中大乘爲一乘. 以望別敎雖權實有異同是 菩薩所乘故. …중략… 此文有二意. 一若望上別敎 餘二者則大小二乘也. …중략… 若望同敎即聲聞等爲二 也. 又融大同一故.
위의 인용문에서 “삼승 중 대승을 일승으로 삼는다[以三中大乘爲一乘]”와 “별 교/동교를 바라본다[望別敎/望同敎]”의 의미가 문면(文面)만으로는 명확히 드러 나지 않지만, 삼승과 일승의 관계에 대한 법장의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은 도표 로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開一異三 [別敎] 一乘 一乘眞實 融大同一 [同敎] 唯此一事實 三乘 = 大乘 + 小乘 = 二乘 餘二則非眞 大乘 = 一乘 聲聞乘 + 緣覺乘 = 小乘 = 二乘 인용문에서 볼드체로 나타낸 ‘이 문장[此文]’은 법화경의 “이 하나만이 진 실이고, 나머지 둘은 진실이 아니다[唯此一事實 餘二則非眞]”라는 경문인데, ‘하 나[一事]’가 삼승으로부터 분리된 일승을, ‘나머지 둘[餘二]’이 대승과 소승을 합한 이승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별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와 달리 ‘하나’는 대승을 융합한 일승에, ‘나머지 둘’은 성문승과 연각승이라 는 이승에 대응한다고 보는 것은 동교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 나 여기에 보이는 동교에 대한 법장의 규정, 곧 “대승을 일승으로 삼는다”라 는 말이 과연 일승이 대승에 융화됨과 대승이 일승에 융화됨 중 후자만을 의 미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위의 별교 해섭문에 나 오는, “삼승이 그대로 일승이다”라는 ‘별교’에 대한 정의와 그 표현이 매우 유 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교장은 소·삼·일이라는 삼승의 관점에서 공(共)과 불공(不共)을 밝히는 다음의 인용문에서 일승에는 통하지 않지만 삼승 내부에서는 상통하는 가르침이 있고, 삼승과 구분되는 화엄경에만 해당하는 별교일승이 따로 있 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셋째 삼승에도 셋이 있음을 밝힌다. 첫째 일승, 삼승, 소승을 삼승이라 한 다. …중략… 대지도론은 말한다. “반야바라밀에 두 종류가 있으니, 공 과 불공이다. …중략…” 풀이하자면 (불공에 해당하는) ‘부사의경’이란 저 논서에서 스스로 가리킨 화엄경 바로 이것이다. 오직 별교일승만을 설하므로 ‘불공’이라 하는 것이다. (공·불공의) 뜻은 이에 준하여 알라. 4 부 아함경의 경우 ‘불공’이라 하는데, 오직 법공에 어리석은 이승의 가 르침만 설하기 때문이며, 대품반야경 등은 삼승의 무리를 함께 모아서 삼승의 법을 회통하여 설하며 삼승의 이익을 갖추어 얻으므로 ‘공’이라 한다. 여기에서 대승에 통하는 소승[通大之小]은 법공에 어리석은 것이 아니며, 소승에 통하는 대승[通小之大]은 일승이 아니다. (법공에 어리석 어 대승에 통하지 않는 소승, 대승에 통하지만 일승에는 통하지 않는 삼 승, 그리고 삼승과 구별되는 일승이라는) 이 세 뜻에 의하여 양(梁=진제 역) 섭대승론은 “세 가지를 잘 성립시키니, 첫째 소승, 둘째 삼승, 셋째 일승 중 세 번째가 가장 높은 데 있으므로 ‘잘 성립시킨다’라고 한다”라 고 말하니, 바로 이것이다.19)
19) 華嚴一乘敎義分齊章 (T1866, 45:479a18-b25) : 三明三乘亦有三種. 一者一乘三乘小乘名爲三乘. …중 략… 大智度論云 般若波羅蜜有二種 一共二不共. …중략… 不共者 如不思議經不與聲聞共說故. 解云 不思 議經者 彼論自指華嚴是也. 以其唯說別敎一乘故 名不共. 義準知之 如四阿含經 名不共 以唯說愚法二乘敎故. 如大品等經 共集三乘衆 通說三乘法 具獲三乘益 故云共也. 此中通大之小非愚法 通小之大非一乘. 依此三義 故 梁攝論云 善成立有三種 一小乘 二三乘 三一乘 其第三最居上故 名善成立. 即其事也.
따라서 오교장에서 별교의 외연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동교가 ‘일 승에서 삼승으로’라는 방향성을 가리키는 것인지, 일승에서 흘러나와[所流] 도 달하게 되는 목적지[所目]인 삼승에 대한 포괄성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 게 드러나지 않는다. 만약 ‘동’이 단지 방향성만을 의미한다면 ‘동’을 하나의 속성으로 가지는 일승, 곧 동교일승의 외연은 소승교(小乘敎)-대승시교(大乘始 敎)-대승종교(大乘終敎)-돈교(頓敎)-원교로 이루어진 5교 교판 체계에서 처음의 소승교와 중간의 3교(삼승교), 곧 ‘하4교’를 제외한 마지막 가르침인 원교에 국 한될 것이다. 그러나 ‘동’이 포괄성의 의미를 겸한다면 동교일승의 외연은 중간 의 3교까지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송대에 전개된 동교 논쟁에서 이 포괄 적 동교 개념을 지지하는 이들은 동교일승의 외연에서 대승시교를 제외하여 ‘후삼일승설(後三一乘說)’을 주장하였고, 반대로 방향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후 일일승설(後一一乘說)’을 주장하면서 그 아래의 가르침과 같아질 수 있는 주체 [能同]를 별교일승으로 명시하였다.20)
송대의 화엄은 대개 오교장에 대한 주석을 통하여 전개되었는데, 특히 동 교 논쟁은 위에서 살펴본 지엄과 법장의 문헌, 그리고 종밀(宗密, 780-841)과 징 관(澄觀, 738-839)의 문헌에 동교에 대한 의미 규정이 착종(錯綜)되었기에 발생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장이 오교장의 초고(草稿)를 신라에 돌아간 의 상에게 보내 검토를 요청하였고 그 수정본을 의상의 법계도 저술(668) 후 간 행했다는 기록을 신뢰할 수 있다면 오교장은 법장의 초기 저술로 볼 수 있을 것이다.21)
20) 후일일승설과 후삼일승설의 유래와 간단한 설명은 주동교문답의 다음 문장을 참조하라. 이 문 헌에서 저자는 전자가 지엄의 공목장과 법장의 오교장에서, 후자가 징관의 화엄경소와 종 밀의 원각경소 등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리하고 있다. 註同敎問答(X1017, 58:576a18-b2): 評曰 此 亦後三合爲一實 開二卽同別. …중략… 開三卽圓終頓也. 是以爲四 卽但有同別. 是合取頓實 卽圓中之同也. 以一乘三乘小乘三宗不同 一乘有二故. (然此三宗寄於五敎 有乎二說. 一孔目敎章等 則以後一爲一乘宗 中間 三敎爲三乘宗 初一爲小乘宗. 二依華嚴圓覺等疏 初一爲小乘宗 次一爲三乘宗 後三爲一乘宗. 今卽後義.) 此 上釋合後三也. 合爲一乘.
21) 가마타 시게오는 일본의 주석에 근거하여 오교장의 찬술 시기를 676년~678년(30대), 684년(43 세), 그리고 684년 이후로 보는 설을 소개한 뒤 첫 번째 설이 타당함을 주장한다(괄호 속은 법장의 나이). 이는 오교장의 시교(始敎)에 대한 규정이 탐현기에서 달라지거나 탐현기에 소개된 일 조(日照)삼장과의 만남(680)에 대한 기술이 오교장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근거한 것이다. 鎌 田茂雄 1979, 19-24. 오교장의 판본과 관련한 최근의 문헌학적 성과에 관해서는 佐藤厚 2022 및 佐 藤厚 2023 참조.
위에 언급한 동교의 외연을 제한함으로써 원교를 별교일승과 동일 시하는 이들, 곧 송대의 후일일승론자들은 대개 화엄경의 독자성을 보이려 는 ‘정통주의적’ 경향이 강했고 이들은 법장의 오교장을 주요 논거로 삼았다. 그런데 오교장 인용 빈도가 송대 화엄가들보다 높지는 않지만, 의상계 화엄 가들 또한 고려 균여(均如, 923-973)와 마찬가지로 오교장의 여러 논점들을 논의하면서 교판과 관련하여 후일일승설과 유사한 입장을 취했다는 점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이는 지엄과 법장의 초기 화엄사상으로 돌아가 화엄종의 부흥 을 꾀했던 송대 화엄의 정통주의 경향의 원형적 모습을 의상계 화엄으로부터 볼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22)
22) 사토 아쓰시에 따르면 중국의 화엄가들이 오교장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것은 송대인 11세기부터 였고, 이는 당말 오대의 혼란에 따른 문헌의 산일, 화엄종 부흥 운동 및 고려로부터의 불전 역수입 등의 시대적 배경과 연관된다. 佐藤厚 2023, 85. 송대 화엄교학의 부흥은 천태종 산외파의 영향을 받 은 자선(子璿, 965-1038)과 그의 제자 정원(淨源, 1055-1101)이 주도하였는데, 이에 앞서 오월국 전숙 (錢俶)의 전폭적 지원과 의통(義通, 927-988), 제관(諦觀, ?-?) 등 고려 출신 승려들의 활약, 의통 문하 의 지례(知禮, 960-1028) 등에 의한 산가파·산외파 논쟁 등으로 당대(唐代) 이후 침체되었던 천태종 도 부흥하였다. 김용태 2012, 271-272; 고승학 2024, 135 각주7; 임상묵 2024 참조.
이하에서는 구체적으로 총수록 등에 보이는 동교와 별교에 대한 이해 방 식을 송대의 동교 논쟁과 비교하여 그 유사점과 차이점을 보이고자 한다.
다만 동교 논쟁을 포함한 송대의 교판 논의 전체를 한정된 지면에서 다룰 수는 없기 에 동교문답 등과 대비하여 그 일단(一端)을 보이는 데 그치고자 한다.
III. 의상계 화엄의 동교 이해와 송대 화엄과의 비교
의상계 화엄의 교판론을 총수록을 통해서 살펴보면 진기, 법기, 대 기, 도신장 등은 5교 교판 중 최상위의 원교에 해당하는 화엄경을 대체로 별교일승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법기는 법계도 「서」의 “위대한 성인의 훌륭한 가르침은 특정한 방법이 없다[夫大聖善敎無方]”라는 구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훌륭한 가르침’이란 삼승의 관점에서는 이 생과 저 세상에 수순하는 이 익이 선이며, 이 생과 저 세상에 거스르는 손해가 악이다. …중략… 일승 의 관점에서는 다만 선일 뿐이다. 왜 그러한가? 지엄 스님은 “원통(圓通) 의 지극함은 선하지 않음이 없는 곳에 자리하니, 조건[緣]을 만나서 이것에 수순하며 사물을 가리지 않고 베푼다”라고 하였으므로, 일승은 오직 하나의 선일 뿐임을 안다. …중략… 그러나 ‘선’이라는 말은 무엇을 들든 곁이 없다[無側]는 뜻에 근거하여 말한 것일 뿐이다. ‘(특정한) 방법이 없 다’란 만약 삼승이라면 하나, 둘 내지 무량을 설함에 따라 (특정한) 방법 이 없는 것이 아니다. 왜 그러한가? 삼승의 가르침은 상이한 근기에 따라 서 설하기 때문에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승의 가르침은 사성제, 십 이인연, 육바라밀 등을 설함에 따라 해인삼매의 궁극적 경지까지 사무쳐 서 자재로이 설하기 때문에 ‘(특정한) 방법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23)
23)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72c16-772b11): 善敎者 約三乘 則此生他世順益者 善也. 此生他世違損者 惡 也. …중략… 約一乘 則只是善也. 何者. 謂儼師云 圓通之致 處無不善 觸緣斯順 不擇物而施(已上). 故知一 乘唯一善耳. …중략… 然云善者 約隨擧無側義云耳. 無方者 若三乘 則隨說一二乃至無量 非是無方. 何者. 三乘之敎 隨別機說故 非無方. 一乘之敎 隨說諦綠度等 徹於海印究竟之際 自在而說 故云無方也. 이하 법 계도의 한글 번역은 해주 2010을, 총수록 한글 번역은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사이트를 참 조하되 필요한 경우 논자가 수정함.
곧 청정함을 유지하면서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無側] 일승을, 근기에 따른 차 별이 있는 삼승과 대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일승의 동교와 별교에 대한 본격 적인 논의는 「서」의 반시(槃詩) 읽는 법에 대한 주석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데, 법기는 반시의 글자를 삼승별교에, 도인(圖印)을 일승별교에, 도인과 글 자가 서로 따르는 것을 일승동교에 배대한 뒤, 삼승별교와 일승별교, 그리고 일 승동교를 포함한 것이 바로 일승원교라고 풀이한다.
나아가 삼승이 일승을 향 해 참예(參詣)하고 삼승이 일승에게 드리우는 것 모두를 동교라고 규정하면서 오교장의 문장을 인용한 뒤 이렇게 일승과 삼승이 서로 접하고 포섭함으로 써 중생을 일승별교에 들어가게 한다고 주석을 마무리하고 있다.24)
24)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74c16-775a9): 隨印道者 若唯約字 則三乘別敎. 若唯約印 則一乘別敎. 以印 隨字以字隨印 則一乘同敎. 若具此三 則一乘圓敎也. 以印隨字者 一乘垂於三乘. 以字隨印者 三乘叅於一乘. 上叅下垂並同敎. …중략… 此即一乘垂於三乘 三乘叅於一乘. 是即兩宗交接連綴 引攝成根欲性 令入別敎一 乘故也.
곧 법기 는 일승동교의 핵심이 삼승별교와 원교의 상입(相入)에 있고 그 귀착점은 일승 별교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동교의 양방향성은 지엄에게서는 일부 보이지 만 법장에게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 측면인데, 그러면서도 일승동교가 결국은일승별교에 종속됨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법장이 제창한 것과 같은 별교일승 우월론으로 나아갈 단초가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도신장은 물결과 물의 본질[理體]에 근거하여 양자가 하나라고 보는 것은 삼승의 견지일 뿐이고, 한 물결의 부재가 다른 한 물결의 부재를 초래하거 나 한 물결이 공하여 다른 물결과 합치되는 식의 중(中)과 즉(即)을 갖춘 것은 일 승의 관점이라고 보면서 현상[事]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일승의 풍부함을 삼 승의 환원적 태도와 대비한다.25)
여기에서 ‘동교’라는 표현이 명시적으로 보이 지는 않지만, 이러한 설명은 동교일승을 부정(不定)으로 규정한 지엄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26)
총수록에 수록된 의상계 문헌에서는 이처럼 삼승과 일승을 대비하는 설명 은 자주 보이지만,27) 동교와 별교 개념을 직접 비교하는 단락은 그리 많지 않다.
25)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80a16-b1): 若放二風 水無二波. 旣無二波 以何即何乎. 旣以此即彼故 可知不 除二波論相即耳. 非約理體論相即矣. 此中此波之水 與彼波之水 □體是一故 波雖無盡 體言即一者 三乘義耳. 若非此波 即無彼波 若非彼波 即無此波 是中門 此波非自性故 在於彼波 彼波非自性故 在於此波 是即門者 一 乘也. 다음의 문답에서도 현상[事] 중심의 일승과 이치[理] 중심의 삼승이 대비되는데, 일승을 ‘불공 별교’로 표현하고 있다.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81b5-9): 故此經中 欲示不共別敎之義 約微塵虛空 爲初位也. 問 此一乘之塵 與三乘理 何別. 答 約三乘云 則是理也. 約普眼所見 則是最細事法也. 26) 吉津宜英 1991, 74-77.
27) 예컨대 일념과 십세의 상즉을 설한 법계도의 게송과 관련하여 총수록은 다음과 같이 지귀장 원통초를 인용하여 삼승과 일승의 시간관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82a20-b6): 三乘中過去唯狗位 現在唯人位 未來唯佛位. 故從過去狗 至現在人 從現在人 至未來佛. 故云 三乘中立法孤單故 以時隔法 法是無常 時亦無常 . . 一乘中過去狗中具人佛 現在人中具狗佛 未來佛中具狗人. 故不從過去狗 迁到現在人 不從現在人 轉至未來佛也. 故云 一乘中立法交徹故 以時隔法 法是常住故 時亦常 住也
우선 법계도의 오중해인에 대한 대기의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동·별 2교가 언급되는데, 무차별인 별교와 근기에 따른 차별이 있는 동교가 대비되어 있다.
물음:(二重 오중해인에서 반시의 “能人海印三昧中 繁出如意不思議 雨寶益 生滿虛空 衆生隨器得利益”에 대응하는) 제4중해인은 (해인삼매라 는) 선정 가운데 있어서 이타(利他)의 모습이 숨어 있는데 어찌하 여 이타에 배대하는가? 답변:제4중(해인) 안에 동교와 별교의 두 가르침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 다.
만약 곧바로 한 길의 붉은 도인을 기준으로 하여 논하면 곧 차 별이 없기 때문에 별교이고, 만약 굴곡을 기준으로 하여 말하면 차 별이기 때문에 곧 동교 중의 근기를 따르는 뜻이다. 그러므로 근기 를 따르는 굴곡의 붉은 도인이기 때문에 ‘여의(如意)의 가르침’이 라 한다. 그러므로 앞에서 ‘이법에 의지하고 가르침에 근거하여’라 고 한 것은, 제3중(해인)을 기준으로 하면 머무름 없는 이법, 머무 름 없는 가르침이고, 제4중(해인)을 기준으로 하면 머무름 없는 이 법, 여의의 가르침이다.28)
28)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86b6-b16): 問 弟四重海印 是定內故 利他相隱. 何故以配利他耶. 答 弟四重內 具同別二敎故. 若直約一道朱印而論 即無差別故 是別敎. 若約屈曲而言 是差別故 即同敎中逐機之義也 . 是 故逐機屈曲之朱印故 云如意敎也. 是故前云 依理據敎者 約弟三重 則無住理無住敎也. 約弟四重 則無住理如 意敎也.
이 오중해인설과 관련하여 대기는 “그러므로 수행자는 본래 자리에 돌아 올진대, 망상을 쉬지 않고선 얻을 수 없네. 조건 없는 뛰어난 방편으로 여의보를 잡으니, 집에 돌아와 분수 따라 자량 얻네[是故行者還本際 叵息妄想必不得 無緣善 巧捉如意 歸家隨分得資糧]”라는 수행방편에 관한 반시를 풀이하면서 다음과 같 은 문답을 제시한다. 물음:무엇 때문에 (二重 오중해인의 緣起分 14구에 해당하는) 제3중(해 인)에서는 위광과 선재 등을 근기로 삼지 않는가? 답변:저 제3중(해인)은 (一重 오중해인의 마지막 普賢出定在心中及現言語 海印을 세분한 것으로서) 불공별교(不共別敎) 이기 때문에 다만 보 현(보살)을 비로소 근기로 삼는다. (利他行 4구에 해당하는) 제4중 (해인)에는 동교와 별교를 갖추고 있으므로 위광과 선재를 근기로 삼는다. …중략… 따라서 (선재동자가 수행하는) 견문·해행 등 삼 생은 삼승의 자리에 의거하여 일승을 나타냈을 뿐이다 . 이 삼생의 지위는 제4중(해인) 안에서는 깊고 얕음이 없으나, (修行方便 4구에 해당하는) 제5중(해인)에서는 깊고 얕음이 있다. …중략… 이런 까 닭에 만약 일승에 들어가면 반드시 삼승에서 말하는 망상을 끊는다는 마음을 쉬어야 한다. 만약 그 망상 끊는다는 망상을 쉬지 않는 다면 곧 망상을 쉬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런즉 망상을 끊는다는 마음을 끊어 없애서 일으키지 않는 것, 이것을 여 기에서 ‘망상을 쉰다’라고 이름한다. 또 말한다. “이른바 망상이란 무릇 자기의 몸과 마음 외에 부처를 바라고 법을 구하는 마음이 총 체적으로 망상이 되는 것이다.” 혹은 말한다. “별교의 뜻으로써 이 문장을 해석하면 마땅히 ‘망상을 쉬지 않는다’라고 해야 할 것이 니, 만약 망상을 쉰다면 반드시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 나 아래 구절에서 이미 ‘분수 따라 자량을 얻네’라고 한 까닭에 동 교를 기준으로 하여 해석하는 것이 마땅하다. …중략… 물음:아래 본문에서 ‘행자(行者)’에 대하여 “행자란 일승의 보법(普法)을 보고 들은 이후, 내지 이것은 별교일승을 기준으로 하여 설한 것이 다”라고 풀이하였는데, 무슨 까닭에 여기서는 동교라고 하는가? 답변:이것은 목표로 하는 바[所目]인 별교를 기준으로 하여 말했을 뿐, 불공무주(不共無住)의 별교가 아니다. ‘일승의 보법을 견문(見聞)한 다’는 것은 제5중해인에 서서 선정 외의 견문을 기준으로 하여 말 했을 뿐이다.29)
29)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88a19-c9): 問 何故弟三重內 不以威光善財等爲機耶. 答 彼弟三重 則是不共 別敎故 但以普賢方爲機也. 於弟四重 具同別敎故 以威光善財而爲機也. …중략… 是以見聞解行等三生 依 三乘位現一乘耳. 此三生位 於弟四重內 無淺深 於弟五重 有淺深也. 是故若入一乘 要息三乘謂斷妄想之心. 若不息其謂斷妄想之妄想 則以不息妄想故 必不得入也. 然則斷妄想之心 斷除不起 是名此中息妄想也. 又云 所謂妄想者 凡自身心之外 希佛求法之心 惣爲妄想也. 一云 以別敎義釋此文者 應云不息妄想. 若息妄想必不 得故也. 然而下句 旣云隨分得資糧故 約同敎釋者 冝也 . …중략… 問 下文釋行者云 行者者 見聞一乘普法已 去 乃至此約別敎一乘說也. 何故 此云同敎耶. 答 此約所目別敎云耳. 非是不共無住別敎. 所云見聞一乘普法 者 立在弟五重海印 約定外見聞云耳.
첫 번째 문답은 보현 또는 부처로 대표되는 별교일승(불공별교)과 선재를 비 롯한 수행자로 대표되는 동교일승을 대조하면서 후자가 삼생에 걸친 수행을 통해 전자로 인입(引入)됨을 강조하고, 쉬어야 할 대상을 설정하는 ‘망상을 쉰 다’와 같은 분별적인 언설은 별교의 관점에서는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있다. 이 어지는 두 번째 문답에서는 ‘별교’를 형용하는 말로 ‘소목’이 나오는데, 지목하 거나 목표로 하는 주체[能目]와 그 대상을 각각 별교와 동교로 설정하는 교판적 맥락이 아니므로, 여기에서 ‘소목’은 동교일승의 수행자라는 주체가 견문 등을 통해 향해가는 별교일승이라는 목표 지점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처럼 의상계 화엄은 동교와 별교의 문제를 특히 수행의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 는데, 이것만으로는 ‘실천적’이라고 말하기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래에서 살펴볼 송대 화엄의 동교 논쟁에 보이는 다소 무미건조한 설명과는 분명히 차별화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총수록은 육상(六相) 중 총상과 별상이 상호 의존하는 것처럼 일승 과 삼승이 서로 도와 중도를 이룬다는 내용의 의상의 「기(記)」를 인용하고 나 서,30) 다음과 같이 진기의 교판적 해석을 덧붙여 삼승의 수행자가 동교일승 을 통해 별교일승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역설한다.
30)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91c16-792a7): 所謂捴相者 義當圓敎. 別相者 義當三乘敎. 如捴相別相成相壞 相等 不即不離 不一不異 常在中道. 一乘三乘 亦復如是 主伴相資 不即不離 不一不異. 雖利益衆生 而唯在中 道 主伴相成 現法如是. 一乘別敎 三乘別敎 准義可解. 汝所問疑 義亦如是. 初曲如因 後曲如果. 如初後不同 而唯在當中. 雖因果義別 而唯住自如. 依三乘方便敎門故 高下不同. 依一乘圓敎故 無有前後.
물음:(총상은 원교이고 별상은 삼승이며, 누각의 장엄에 견주면 동교라 는 문을 열어 누각의 안쪽을 장엄하는 것은 일승에 해당한다. 그렇 다면 그런 일승에 의해) 지목되는 삼승은 그 뜻이 (누각의) 바깥에 해당하니, (동교일승으로써) 삼승을 장엄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그런 동교에 대하여 삼승 이상의 뜻을 기준으로 할 때는) “별교일 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답변:이 (일승의) 경에서 흘러나오고 지목되는 것[所流所目]인 삼승은 두 가지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첫째 저 아래 근기로 하여금 나의 법과 같다고 헤아리게 하는 뜻이며, 둘째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얻은 법이 온전히 화엄의 큰 허공임을 알도록 하는 뜻이다 . …중 략… 지금은 뒤의 뜻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지목되는 것을 동교 일승으로 삼으며 내지 별교일승이라고 이름할 뿐이다 . 바로 누각 안쪽을 기준으로 삼아야 비로소 자체의 별교일승이다. 맨 처음부 터 삼승을 보지 않기 때문에 ‘자체의 별교’라고 하는 것이다. ‘원교’ 란 앞의 4교를 통틀어 행하는 것이다. 물음:이것은 곧 저 동교의, 일승과 삼승이 화합하는 뜻 과 어떻게 다른가? 답변:아래 근기를 (자기에게) 이끌어 화합시키고자 하는 것은 동교이다. (삼승을) 자신의 참된 덕으로 삼아 통틀어 행하고자 하는 것은 원 교이다. 따라서 옛사람이 “동교는 대지와 같으니 삼승의 풀과 나무 를 기르기 때문이고, 별교는 큰 바다와 같으니 삼승의 죽은 시체를 머무르게 하지 않기 때문이며, 원교는 허공과 같으니 (대지와 큰 바다) 둘의 의지하는 바가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31)
31) 法界圖記叢髓錄 (H107, 6:793c20-794a15): 問 所目三乘 義當於外 是嚴三乘. 何云別敎一乘耶. 答 此經之 內 所流所目之三乘 具含二義. 一者 令彼下機計謂同於我法之義 二者 令彼解其自所得法 全是花嚴大虛之義 也 . …중략… 今約後義故 以所目爲同敎一乘 乃至亦名別敎一乘耳 . 直約樓觀之內 方自體別敎一乘也. 初初 不見三乘 故云自體別敎也. 圓敎者 通履前四敎也. 問 是則與彼同敎一三和合之義 何異耶. 答 欲引下機而和 合者 是同敎也. 欲爲自家實德而通履者 是圓敎也. 故古人云 同敎如大地 長養三乘草木故. 別敎如大海 不宿 三乘死尸故. 圓敎如虛空 爲二所依故也.
그런데 두 번째 문답에 나오는 ‘일승과 삼승이 화합하는 뜻[一三和合之義]’이라 는 표현은 송대의 대표적 화엄가인 가당 사회(可堂師會, 1101-1166)가 비판의 대상 으로 삼은 ‘삼일화합동(三一和合同)’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동교문답과 제자인 이암 선희(頥菴善熹, 1127-1204)의 주석(【】로 표시)을 함께 보이면 다음과 같다.32)
32) 이하 동교문답에 제시된 여러 동교 개념에 대한 사회의 비판과 그 자세한 분석에 대해서는 고승 학 2024 참조.
오교장의 처음에 나오는 별교와 동교에 대하여 이간기는 이렇게 풀이 한다. “뒤의 동교문은 바로 법계에서 근본과 말단을 융회(融會)한 것이다. 따라서 아래에서 오교장은 ‘이 동교는 여러 승(乘) 등이 회융(會融)하여 둘이 없고 하나의 법계와 같아진다고 설한다’라고 말한다.” …중략(A)… 영복(관복)은 이렇게 풀이한다. “이는 곧 삼승과 일승을 합하여 설한 것 이니, 삼승과 일승이 화합하여 다르지 않다.” 【물음: 이른바 “다르지 않 다”라는 말은 삼승이 일승과 다르지 않다는 것인가? 일승이 삼승과 다르 지 않다는 것인가? 더욱이 조사(법장)는 스스로 “첫째 삼승이 그대로 일 승이므로 다르지 않다. 둘째 일승이 그대로 삼승이므로 다르지 않다”라고 하였다. 전자(의 ‘일승’)은 별교에 속하니, 동교가 아니다. 지금 삼승과 일승이 다르지 않다고 하는데, (그런 말은) 어떤 경전과 논서에 나오는 가? 법화경의 경우에도 삼승을 부수어 일승을 드러내니, 삼승과 일승 이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또한 주석에서 “이는 삼승과 일승이 함께 하므로 ‘동교’라고 한다”라고 말한다. 【(관복의) 회해기는 “일승과 삼 승은 화합하여 다르지 않다”라고 말한다. 또 “삼승과 일승이 공통되기 때문에”라고 말한다. 또 “이는 삼승과 일승이 함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절신은 “삼승과 일승을 합하여 밝힌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구절들이 같은지 다른지는 모르겠다. 만약 같다면 어찌하 여 각각 제시하는가? 만약 다르다면 어떤 뜻이 합당한가?】 …중략(B)… 지상(지엄)은 풀이하여 말한다. “ (법화)경은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간 다’라고 하므로 같음을 안다. 많은 뜻은 저것과 같다.” 【지상은 (공목장 에서) “‘같다’라는 것은 삼승이 일승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또 “‘같다’라는 것은 소승이 일승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또 “‘같다’ 라는 것은 소승이 삼승과 같기 때문이다” 운운한다. 만약 “삼승이 일승 과 같다”라고 말한다면 방편과 소승을 통틀어 거두며, 만약 “소승이 일 승과 같다”라고 말한다면 단지 도랑[溝洫] 등을 거둘 뿐이다 . 앞에서 (동 교에 대한 여러 설이) “큰 뜻에서 어긋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는데, 지금 (지상이) “많은 뜻은 저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니, (이 동교문답의 문장 이) 앞뒤로 호응한다.】 …중략(C)… 이제 (사회는) 지상을 따르겠다. 【양자는 말한다. “요·순·문왕과 부합하 는 것을 바른 도로 삼고 그렇지 않은 것을 다른 도로 삼는다. 군자는 바른 것을 취하고 다른 것을 취하지 않는다.”】33)
33) 註同敎問答(X1017, 58:574b9-c5): 章初 一別敎 二同敎. 易簡釋曰 後同敎門 直就法界本末融會. 故下章 云 此同敎說諸乘等會融無二同一法界. …중략… 迎福釋曰 此乃三一合說 則三乘一乘和合不異. (問 所謂不 異者 還是三乘不異一乘耶 一乘不異三乘耶. 況祖師自謂 一以三卽一故不異 二以一卽三故不異. 初屬別敎 卽 非同敎. 今謂三一不異 出何經論. 縱法華經 亦破三顯一 非三一不異也 .) 又注曰 此約三一俱故名同. (會解曰 一乘三乘和合不異. 又云 三一共故. 又曰 此約三一具故. 析薪云 三一合明. 不審諸句為一為異. 若一 何用互出 若異 何義為當.) …중략… 至相釋曰 經云 會三歸一故知同也 多義如彼. (至相曰 所言同者 三乘同一乘故. 又 言 同者 小乘同一乘故. 又言 同者 小乘同三乘故等. 若言三乘同一乘 則總收權小. 若言小乘同一乘則 但收溝 洫等 . 前云大義不差 今云多義如彼. 前後相仍也.) …중략… 今從至相. (揚子曰 適堯舜文王者 爲正道 非堯舜 文王者 爲他道 君子正而不他也.) 20 불교학연구 제86호
여기에 인용된 이간기(易簡記)는 오교장에 대한 종예(宗豫, ?-?)의 주석서 인데, 동교문답에서 주로 비판하고 있는 소암 관복(笑菴觀復=迎福, ?-1144/1152-?) 이 이간기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는 이 두 사람을 함께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 생략한 부분(A)에서 사회는 종예가 “여러 승을 회융한 것”을 동교로 본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가 “방편을 소멸하여 진실로 돌아감”과 “진실을 붙잡아 방편을 이룸”이라는, 동교가 동교일 수 있는 소이(所 以)를 제시하지 않고, 또한 종(宗)과 인(因)을 혼동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사회 와 그의 제자들은 사소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고 동교에 대한 다른 학설들을 날 카롭게 비판하는데, 이는 삼승과 일승이 화합한 것이 동교라는 관복의 주장을 반박할 때에도 적용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오교장 본문은 “삼승이 그대 로 일승인 것”과 “일승이 그대로 삼승인 것”을 구별하고 있는데, 사회에게는 관 복의 주장이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무시한 나이브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인 용문의 첫 번째 밑줄 친 부분).
이에 따라 동교문답은 동교를 포괄적으로 이 해하려는 지엄의 공목장을 인용하면서도, 소승은 물론, 삼승까지도 일승으 로 흡수되어야 함을 역설하고(인용문의 두 번째 밑줄 친 부분), 이를 군자의 바 른 도라고 말하면서 삼일화합동에 대한 비판을 마무리한다.34)
34) 위의 인용문에는 법화경의 회삼귀일(會三歸一)이 언급되어 있다. 송대 화엄가들의 법화경에 관한 여러 입장은 吉田剛 1996a 참조. 요시다 다카시는 찬자 미상의 명종기(‘釋雲華尊者融會一乘 義章明宗記’의 약칭)에서 동교의 의미를 법화경의 회삼귀일에 한정한 사회의 설을 비판한 점에 주목하여 이 책이 천태교학으로부터 화엄의 완전한 독립을 기도(企圖)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명 종기의 성립 배경에 관해서는 吉田剛 1996b 참조.
동교문답은 그 밖에도 후일일승설의 관점에서 ‘민이동(泯二同)’, ‘의류상 사동(義類相似同)’, ‘전수제교동(全收諸敎同)’ 또는 ‘동성일교동(同成一敎同)’ 등 의 동교에 관한 이설(異說)들을 비판하는데, 결론적으로 자신만의 고유한 동교 개념을 제시하지는 않고 동교가 일승별교에서 나머지 가르침으로 흘러간다는 일방향성을 가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그친다. 그러나 ‘민이동’에 대해 논할 때에는 한편으로 성문승과 연각승, 곧 이승이 소멸된 종교(終敎)와 돈교(頓敎) 가 일승에 포섭된다는 ‘동교’ 정의를 징관의 화엄경소에 근거하여 인정하면 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종밀의 행원품소에 근거하여 이때 종교와 돈교는 원 융(圓融)하지 않기 때문에 동교일승에 불과함을 지적한다.35)
이런 점에서 동 교문답은 별교일승 우월론을 전제하면서도 기존 주석서나 이론들과의 회통 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가 오교장에 대한 관복의 주석서인 절신을 조목조목 비판 한 분신에서 보여주는 비타협적인 태도는 송대 화엄의 또 다른 측면인 ‘정통 주의’를 대표하기 때문에 일부를 인용해 본다.
절신기는 또 묻는다. “저 종지(宗旨)는 어찌 시교(始敎)의 상종(相宗)이 아니겠는가?” 이제 논하겠다. 공목장에서는 “삼승종교의 경우 고요하 게 비추고, 비추면서도 고요하니”, “무위 등을 종지로 삼는다” 운운하였 고, 또 (오교장의) 아래에서는 “세 가지 종지가 각각 다르다”라고 하였 다. 또 “이 삼승의 종지 등이 어찌 모두 법상종이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또한 그대는 아래의 문장에서 “한 조사 자신의 말이 어긋났 는데[自語相違], (탐현기를 쓰면서) 나중에 비로소 고쳤다”라고 하였 다. 현수(법장)가 (의상에게) 편지를 쓰고 특별히 문자를 부쳐서 해동으 로 넘어오게 하였다면, 이는 곧 자신의 말이 모순되었음[胡越]을 모르고 있다가 (의상의 지적을 받고서) 고침으로써 서로 이어지던 것이 장차 멀 어지게 한 것이(라는 말이)다. 덕을 어그러뜨리고 조사를 비방한 여섯 번 째 잘못이다.36)
35) 註同敎問答(X1017, 58:574c12-575b4): 清涼總相會通中 或分爲四中云 三同敎一乘如法華等 . (…중 략… 演義釋云. 一中間三敎存三泯二者 始終頓三 名爲中間. 以初有小乘 後有圓敎 故名中間. 而始敎存三 故 別爲一敎 終頓二敎泯二是同 故合爲一敎. 下列四中云 三同敎一乘 卽合終頓二敎也 .) …중략… 迎福會解曰 要終頓二敎同泯二 故名同敎一乘也. …중략… 又曰 近人皆云 終頓二敎合爲同敎. …중략… 又曰 約圓融不 融 分成二種. 卽實敎頓敎並皆不融 爲同敎一乘 . …중략… 評曰 既曰不融爲同 非泯二名同 不亦顯然乎. 又此 同敎一乘 是合終頓 義亦明矣. 36) 華嚴一乘敎義分齊章焚薪 (X996, 58:264c4-10): 薪又問曰 言彼宗者 豈非始敎法相宗耶. 今論曰 孔目曰 及三乘終敎寂照照寂 乃至 無爲等宗. 又下云 三宗各別. 又云 此三乘宗等 豈皆法相宗邪. 又汝下文云 一祖自 語相違後來方改. 且賢首作書特寄文字過海東 便不知自言胡越而修改 令相順將去. 悖德謗祖 六妄也.
위의 인용문은 법화경 「방편품」의 우거(牛車)와 대백우거(大白牛車)에 근 거하여 삼승에 대한 일승의 덕량차별(德量差別)을 논하는 오교장의 단락을 주석하면서 관복이 자문자답한 내용 중 일부를 논박한 것이다.
관복은 그 전에 해심밀경의 제3시가 화엄 교판의 종교(終敎)에 통하며 법화경의 삼거 역시 종교에 통한다고 말했기 때문에37) 사회가 저런 비판을 제시했던 것인데, 상당 히 높은 수위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37) 華嚴一乘敎義分齊章焚薪 (X996, 58:260c1-12): 析薪曰 分相下 一別於三. 問 此三乘唯是始敎邪. 通中間 三敎邪. 乃至今釋此義略爲二門. 一引敎正釋. 二問答辯明. 初中此一乘者 是華嚴逈異之別. 此門外三車通中 間三敎 故下章三處明文 以深密法相爲終敎. 何者. 如李唐三藏解深密等三法輪中後二是始終二敎故. 文云 此 三法輪 但攝小乘及三乘中始終二敎 不攝別敎一乘. (此亦是將別敎一乘對法相宗三乘料揀. 亦以三乘通於始 終二敎.) 又正立敎中 復指深密三法輪中後二 是始終二敎. 又決擇其意第三門 小始入終亦云 後二爲始終二敎 如深密說者是. 此上三說 正以法相宗第三時爲終敎也. 相宗正當第三時. 故知三車通終敎也.
아마도 이것은 그가 화 엄경, 법화경 등의 일승이 삼승 중 하나인 종교와 연결되는 것을 극도로 경 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상에서 송대 화엄 문헌 일부를 의상계 화엄의 법계도 주석과 비교해 보 았는데, 동교에 대한 의미 규정이 상당히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의상계 화엄의 경우 법기에서 보듯이 일승동교에 ‘원교와 삼승 사이의 상입’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거나, 대기에서 보듯이 별교일승과 동교일승을 각각 부처와 수행자에 연결하여 수행론적 차원을 추가하는 등 동교를 일승원교의 한 부분으로 보면 서도 획일적인 이해 방식은 피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역시 원교를 별교일승과 동일시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법장의 오교장에 보 이는 것과 일치한다.
그런데 송대 화엄에서는 사회와 같은 정통주의자가 주류 가 되어 동교라 하더라도 별교일승에서 아래를 향해간다는 일방향성만을 인정 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IV. 맺는말
동아시아에서 화엄은 화엄경을 중심으로 풍부한 경전 해석과 심층적인 교 리 이해를 전개하여 교학 전통의 대표가 되었으나, 때로는 이론을 위한 이론에 그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부의 부정적 시선을 불식시키려는 의도에서인지 모르겠으나 화엄 전통 내에서 보다 실천지향적인 것으로서 의상 계 화엄을 거론하기도 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들은 무미건조해 보이는 ‘동교’와 같은 용어에 실제 수행의 차원을 더하는 등 교학적 개념의 외연과 내 포를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반해 송대 화엄가들의 동교 논쟁은 공격적이고 비타협적인 면모가 강하고, 초기 화엄가들을 ‘정통’으 로 보려는 이들이 주류가 되었지만 오히려 지엄이 모호하면서도 풍부한 상태 로 남겨둔 동교 개념의 외연을 축소시켜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의상계 화엄에 이론적 측면이 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컨대 지엄과 의상, 그리고 법장이 제시한 수십법(數十法) 또는 수십전법(數十錢法)에 서 생략된 많은 부분이 그들에 의해 복원되었는데, 이는 당대(唐代)나 송대의 화 엄과 대비되는 ‘이론적 철저성’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다.
특히 그들은 법계 도의 “하나의 현상으로써 하나와 많음을 변별하는 까닭에 곧 다하고, 다른 현 상으로써 하나와 많음을 변별하는 까닭에 곧 다하지 않는다”38)라는 문장과 오 교장의 “1 가운데에 10이 있으므로 다하고 10 가운데에 1이 있으므로 다하지 않는다”39)라는 문장에 보이는 ‘진·부진(盡不盡)’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논의를 전개하였는데, “이런 교의천착(敎義穿鑿)의 흐름은 신라 화엄학을 마침내 활기 잃은 침체의 늪으로 몰아갔던 것”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40)
38) 華嚴一乘法界圖 (H28, 2:6c4-7): 問 一門中攝十盡不. 答 盡不盡. 所以者何. 須盡卽盡 須不盡卽不盡故. 其 義云何. 以一事辨一多故卽盡 以異事辨一多故卽不盡.
39) 華嚴一乘敎義分齊章 (T1866, 45:503c21-23): 問 一門中攝十盡不. 答 盡不盡. 何以故. 一中十故盡 十中一 故不盡.
40) 고익진 1989, 337.
그러 나 논자는 지엽적인 것으로 보이는 이런 문제까지도 끝까지 붙들고 따져 물으 며 그러면서도 중생의 현실과 수행의 목표를 자각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의상 계 화엄 내지 한국불교의 교학적 활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따라서 의 상계 화엄을 포함하여 한국불교 교학 전통에 대한 앞으로의 연구는 이론적 차 원과 실천적 차원을 종합적으로 아우르되, 나아가 동아시아의 사상적 교류까 지도 파악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 문헌 REFERENCES
◆ 약호 및 일차 문헌
Abbreviations and Primary Sources T X Taishō shinshū daizōkyō 大正新修大藏經, ed. by TAKAKUSU Junjirō 高楠順 次郞 and WATANABE Kaikyoku 渡邊海旭, 100 vols. Tokyo: Daizōkyōkai, 1924-1935. Manji shinsan Dai Nihon zokuzōkyō 卍新纂大日本續藏經 (Revised reprint of the Dai Nihon zokuzōkyō). Edited by KAWAMURA Kōshō 河村照孝, et al. 88 vols. Tokyo: Kokusho Kankōkai, 1975-1989. 大方廣佛華嚴經搜玄分齊通智方軌 (T1732) 法界圖記叢髓錄 (H107) 註同敎問答 (X1017) 華嚴經內章門等雜孔目章 (T1870) 華嚴經問答 (T1873) 華嚴經旨歸 (T1871) 華嚴五十要問答 (T1869) 華嚴一乘敎義分齊章焚薪 (X996) 華嚴一乘敎義分齊章 (T1866) 華嚴一乘法界圖 (H28)
◆ 이차 문헌
Secondary Literature CHO, Yoonho 曺潤鎬 and SATO, Atsushi 佐藤厚. 2000. 「韓国華厳学の研究」 (“Studies on Korean Hua-yen Buddhism in Japan”), 韓国仏教学セミナ- (Journal of Korean Buddhist Seminar), no. 8, 12-65. CHOE, Yeonshik 최연식. 2011. 「신라 및 고려시대 화엄학 문헌의 성격과 내용」 (“The Contents and Character of the Huayan Literature in Shilla and Koryo Dynasties”), 불교학보 (Journal of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vol. 60, 235-262. 의상계 화엄의 동교 개념 25 . 2016. 「한국불교에서의 성기(性起)와 연기(緣起)-의상 화엄사상의 성기적 이해 에 대한 재검토-」 (“Understanding on Huayan Theory of Seonggi (Xingqi) and Yeon’gi (Yuanqi) in Korean Buddhism: Focusing on the Differences between Uisang’s and Jinul’s Thought”), 불교학보 (Journal of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vol. 74, 245-269. HAEJU 해주, tr. 2010. 정선 화엄Ⅰ (Hwaŏm I: The Mainstream Tradition), Seoul: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HAN, Jongman 韓鍾万. 1982. 「朝鮮朝初期雪岑の法界図註釈」 (“The Interpretation by Sul-Jam of Bub-kye-do in the Early Rhe Dynasty”), 印度學佛敎學硏究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vol. 30, no. 2, 172-175. ISHII, Kosei 이시이 코세이, KIM, Chonhak 김천학, tr.. 2020. 화엄사상의 연구 (A Study of Huayan Thought). Seoul: Minjoksa 민족사. JUNG, Byungsam 정병삼. 2023. 의상 (Uisang). Seongnam: Academy of Korean Studies Press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KAMATA, Shigeo 鎌田茂雄. 1979. 華厳五教章 (Huayan wujiao zhang), 佛典講座 28. Tokyo: Daizō shuppan 大藏出版. KANAME, Fujimaru 藤丸要. 2019. 「日本における華厳教学の展開」 (*“Development of Huayan Scholasticism in Japan”). Research Center for Buddhist Cultures in Asia, Ryukoku University 龍谷大学アジア仏教文化研究センター. KIM, Chonhak 金天鶴. 2012. 「東アジアの華厳思想における無碍説」 (“Huayan Philosophy in East Asia: Focusing on the Theory of Non-obstruction”), インド哲学仏教学 研究 (Studies In Indian Philosophy And Buddhism, Tokyo University), no. 12, 53-67. . 2012. 「동아시아 화엄사상에서 의상과 법장의 위상」 (“The Status of Uisang and Fazang in East Asian Huayan Studies”), 불교학보 (Journal of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vol. 61, 65-87. . 2005. 「義相系の華厳学における一乗義の特質」 (“One Vehicle in the Huayan school of Uisang and Its Main Character”), 東洋文化研究 (Journal of Asian Cultures), no. 7, 229-251. KIM, Sanghyun 김상현. 2013. 교감번역 화엄경문답 (*Critical Edition and Translation of 26 불교학연구 제86호 the Hwaeomgyeong mundap). Nonsan: Geumgang Center for Buddhist Studies 금 강대학교 불교문화연구소. KIM, Yongtae 김용태. 2012. 「동아시아의 징관(澄觀)화엄 계승과 그 역사적 전개: 송대와 조 선후기 화엄교학을 중심으로」 (“The Legacy of Jing’gwan’s Teaching of Hwa'eom Buddhism throughout East Asia, and Its Historical Meaning: Examination of the Hwa’eom-based Academic Buddhism of the Chinese Sung dynasty, and Also of the Latter Half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불교학보 (Journal of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vol. 61, 267-296. KOH, Ikjin 고익진. 1989. 한국고대불교사상사 (*History of Buddhist Thought in Ancient Korea). Seoul: Dongguk University Press 동국대학교 출판부. KOH, Seunghak 고승학. 2024. 「‘즉(卽)’에 대한 당·송대 화엄교학의 이해-형이상학적 해석 과 교판적 해석을 중심으로」 (“Understanding of ‘Ji’ (卽) by Tang-Song Huayan Scholasticism: Focused on Its Metaphysics and Doctrinal Classification Schemes”). 밀교학불교학연구 (Journal of Esoteric and Buddhist Studies), vol. 6, 127-163. LEE, Miseon 이미선(정우). 2018. 「대기(大記)의 오중해인(五重海印)에 대한 소고(小 考)」 (“A Study on the Thought of the Ocean Seal Samādhi in Five Ways (五重海 印) in Daegi (大記)”), 동아시아불교문화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vol. 35, 181-215. LIM, Sangmok 임상목. 2024. 「송대 천태 부흥의 시대적 배경 고찰」 (“A Review of the Historical Background of the Cheontaejong Revival of the Song Dynasty”), 동 아시아불교문화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vol. 62, 183-210. PARK, Boram 박보람. 2022. 「의상(義相) 이이상즉설(理理相卽說) 논의의 비판적 고찰」 (“Critical Review of Discussions on the Theory of the Mutual Identity of Principle and Principle”), 불교학보 (Journal of Buddhist Culture Research Institute), vol. 100, 41-67. SATO, Atsushi 佐藤厚. 1995. 「均如 一乗法界図円通記と「大記」との関連」 (“The Relation between Kyunnyo’s Ilsǔng pǒpkye do wong tooug ki and the Tae ki”), 印度學佛教學研究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vol. 43, no. 2, 759-761. 의상계 화엄의 동교 개념 27 . 2015. 「일승법계도(一乘法界圖)의 텍스트 문제」 (“The Text Problem of Il Seung Beopgye-do”), 한국사상사학 (The Study of Korean History of Thought), vol. 49, 31-52. . 2018. 「儀礼文献としての一乗法界図」 (*“Ilseung beopgyedo as A Liturgical Text”), 専修人文論集 (The Journal of the Senshu University Research Society), no. 103, 361-380. . 2022. 「韓国普光寺所蔵「所詮章」断簡―高麗時代の華厳五教章テキストを めぐる問題」 (“Manuscript of the ‘Suo quan zhang (所詮章)’ Kept in the Pogwangsa Temple, Korea: The Problem of the Text of ‘Huayan wujiao zhang’ in the Koryo Period”), 東アジア仏教研究 (The Journal of East Asian Buddhist Studies), no. 20. . 2023. 「華厳五教章の成立をめぐる文献学的問題」 (“Philological Problems of the Establishment of the Huayan wujiao zhang”), 東アジア仏教学術論集 (Studies in East Asian Buddhism), no. 11, 117-137. SEOK, Gilam 석길암. 2013. 「韓國 華嚴思想의 성립과 전개에 보이는 몇 가지 傾向性-智儼 과 元曉, 智儼과 義湘의 대비를 통해서-」 (“A Few Tendency in Korean Huayen Ideology”), 동아시아불교문화 (Journal of Eastern-Asia Buddhism and Culture), vol. 13, 3-29. YOSHIDA, Takashi 吉田剛. 1996a. 「趙宋華厳学の展開-法華経解釈の展開を中心として-」 (“The Development of the Huayen Philosophy in the Song Dynasty on the Development of the Interpretations on the Lotus sutra”), 駒沢大学仏教学部論 集 (Journal of Buddhist Studies), no. 27, 215-226. . 1996b. 「融会一乗義章明宗記の成立背景」 (“The Background of the Formation of the Ronghui yicheng yizhang mingzong-ji”), 印度学仏教学研究 (Journal of Indian and Buddhist Studies), vol. 45, no. 1, 84-86. YOSHIZU, Yoshihide 吉津宜英. 1991. 華厳一乗思想の研究 (A Study on the Hua-yen One Vehicle Doctrine). Tokyo: Daizō shuppan 大藏出版.
<국문초록>
해동 화엄종의 개조인 의상(義相 또는 義湘, 625-702)은 그와 동시대인이자 중국 화엄 종의 실질적 개조인 법장(法藏, 643-712)에 비해 보다 실천적인 사상을 전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두 지역의 화엄가들은 자기 종파의 가르침이 다른 가르침들보다 뛰어나면서도 동시에 그것들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이려는 교판(敎判)을 전개하였다 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그들이 제시한 교판 체계는 ‘수승함’을 강조하는 별교(別敎) 와 ‘포괄성’에 주목하는 동교(同敎)라는 두 측면을 포함하고 있는데, 후자는 화엄종의 가르침과 동일시되는 일승에 삼승이 방편으로서 기능한다거나 포함됨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엄(智儼, 602-668)이나 법장의 동교 개념에는 포괄성 외에 ‘일승으로부터 삼승으로’라는 방향성의 측면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동교의 외연이 불명확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의상계 화엄가들은 법계도기총수록에서 일승동교 를 일승과 삼승의 상입(相入)으로 설명하거나 수행자를 일승별교로 이끌기 위한 하나 의 매개로서 이해하였다. 이는 초기 화엄가들의 이론적 모호성을 완전히 해소한 것은 * 이 논문은 2025년 11월 22일 불교학연구회 추계학술대회 발표문을 수정·보완한 것임. 의상계 화엄의 동교 개념 1 아니지만, 수행론적으로는 매우 풍부한 함축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중국 송대의 화엄가들은 일승동교의 동교 개념의 방향성만을 강조하면서 그 외연을, 5교 교판의 최상위에 위치하는 원교에 한정하려는 경향이 강하였다. 이는 이론적 명 료성을 확보하려는 시도이긴 하지만, 종파적 정통성을 추구한 결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자 모두 일승별교를 최종적인 귀결로 보았다는 공통점이 있으므로 동아 시아 화엄교학의 이론적 측면과 실천적 측면에 대한 균형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
주제어 의상(625-702), 교판(敎判), 동교(同敎), 별교(別敎), 화엄교학, 법계도기총수록, 송대 화엄
Abstract
The Concept of “Common Teaching” Understood by Uisang’s Lineage: In Comparison with Huayan Thought of the Song Period
KOH, Seung-Hak (Associate Professor Seoul National University, Department of Philosophy )
Uisang (625-702), the founder of the Korean Hwaeom tradition, was a contemporary of Fazang (643-712), the de facto founder of the Chinese Huayan tradition. Although Uisang is generally regarded as having advanced a more practice-oriented form of thought than Fazang, thinkers in both traditions developed doctrinal classification systems intended to demonstrate both the superiority and the comprehensiveness of Huayan teaching. These systems therefore comprised two dimensions: distinct teaching, which emphasizes superiority, and common teaching, which emphasizes inclusiveness. In this framework, common teaching indicates that the teaching of the three vehicles functions as an expedient means within, or is encompassed by, the Huayan teaching of the one vehicle. However, in the thought of Zhiyan (602-668) and Fazang, the concept of common teaching includes not only comprehensiveness but also a directional aspect, namely a movement “from the one vehicle to the three vehicles.” This feature renders the scope of common teaching somewhat ambiguous. In response, Hwaeom thinkers of Uisang’s lineage, in the Beopgyedogi chongsurok, explained the common teaching of the one vehicle either as the mutual interpenetration of the one vehicle and the three vehicles or as a mediating device that leads practitioners toward the distinct teaching of the one vehicle. Although this interpretation did not entirely resolve the theoretical ambiguities left by earlier Huayan thinkers, it carried rich implications for religious practice. By contrast, Chinese Huayan thinkers of the Song period tended to emphasize only the directional aspect of common teaching and to restrict its scope to the perfect teaching, the highest category in the fivefold doctrinal classification. Although this tendency may be understood as an effort to secure greater theoretical clarity, it may also be seen as the result of a concern with sectarian orthodoxy. Nevertheless, both traditions regarded the distinct teaching of the one vehicle as the final goal. A balanced understanding of East Asian Huayan scholasticism therefore requires attention to both its theoretical and its practical dimensions.
Keywords Uisang (625-702), doctrinal classification, common teaching, distinct teaching, Huayan scholasticism, Beopgyedogi chongsurok, Huayan thought of the Song period
2026년 02월 10일 투고 2026년 03월 14일 심사완료 2026년 03월 23일 게재확정
불교학연구(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제86호(2026.3) pp. 1∼30
'종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의상 연구와 한국불교사 /정병삼.숙명女大 (0) | 2026.06.06 |
|---|---|
| 화엄의 ‘전체’와 ‘개별자’에 대한 개념과 사사무애법계관의 발전/박수현.서울大 (0) | 2026.06.06 |
| 화엄일승법계도와 양자중력과의 관련성 연구/ 허하얀. 동국大 (0) | 2026.06.01 |
| 베다의 제의적 인격론: 슈라우타(Śrauta) 제식과 사후 인격의 재구성/김진영.동국大 WISE캠퍼스 (0) | 2026.05.28 |
| 한류드라마의 문화혼종성이 기독교 인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 미디어 리터러시 기반 기독교 종립대학 종교교육의 필요성과 과제 /강은미.한신大 (0) | 2026.05.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