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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감정의 유동성 -현대 구성주의 감정이론과 초기불교 연기론을 중심으로/ 박정아.경북大

 

I. 서론

II. 감정 본질주의의 한계와 구성주의로 의 전환

III. 초기불교의 연기적 감정 발생 구조 요약문

IV. 구성주의와 연기론에 기반한 감정의 유동성

V. 결론

 

 

 

I. 서론

 

감정(emotion)1)은 인간 경험의 가장 근원적이면서도 해명하기 어려운 차원 가운데 하나이다.

 

    1)정동(affect), 느낌(feeling), 감정(emotion)이라는 용어는 서구 심리학과 신경과학에서 오랫동안 혼 용되었며, 이로 인해 감정 현상의 이해를 위한 그 층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본 연 구는 이 세 개념을 다음과 같이 구분하여 서술하고 있음을 밝힌다. 감정은 분노, 기쁨, 슬픔 등 범주 화된 정서 개념(emotion category)을 가리키며, 이는 정동과 느낌과는 엄밀히 구별된다. 정동은 자동 적이고 신체 기반의 정서 상태이고, 느낌은 이러한 정동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적 체험이다. 이러한 구분은 Antonio Damasio 1996; James Russell 2003; Lisa Feldman Barrett 2017의 논의에 근거 한다. 

 

인간은 사고하기 이전에 느끼며, 행위 이전에 반응한다. 바로 이 ‘느낌’과 ‘반응’의 자리에서 우리는 세계와 접촉하고, 자신과 타자의 존재를 경험한다.

따라서 감정은 단순한 심리적 반응에 그치지 않고, 삶을 조직하고 의 미를 부여하는 구조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러한 점에서 오늘날 감정은 자기 정 체성의 형성, 타자와의 상호작용, 도덕적 판단과 의사결정 등 존재론적·윤리적 차원에 깊이 관여하는 핵심 주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이성 중심적 철학 전통에서 감정은 주로 정념(情念, pathos, passio, affectus)으로 이해되었으며, 진리 인식과 도덕적 자기 지배를 저해하는 부차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로 간주되었다.

플라톤(Plato, B.C. 428/427~B.C. 348/347)은 정념의 조율을 이성(reason)의 과제로 설정했고,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또한 감정(Gefühl)을 도덕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을 경계하 고 이성에 의해 규율되어야 할 요소로 파악하였다.2)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은 감정을 철학적 성찰의 영역에서 실증과학의 연구 대상으로 이동시켰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도덕적 규제의 차원이 아닌, 자연적·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반응이라는 관점에서 설명되기 시작하였다. 챨스 다윈 (Charles Darwin, 1809~1882)은 감정을 진화적 적응의 산물로 보았고, 폴 에크만 (Paul Ekman, 1934~2025)은 감정이 특정한 표정과 연관된 보편적·선천적 체계 라고 주장하며 이를 실험적으로 뒷받침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감정을 일정한 신경회로로 설명 가능하다고 보는 본질주의적(essentialism) 관점을 강화하였 다.3)

 

    2) Martha Nussbaum 1994, 36-43; William Fortenbaugh 2002, 13-19.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psychē)을 이성(logos), 기개(thymos), 욕망(epithymia)의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감정을 기개와 욕망의 영역에 속 하며,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하위적 요소로 규정하였다. 이 구도에서 감정은 이성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비이성적 에너지이자, 인간의 도덕적 완전성에 장애가 되는 요소로 간주되었다. 아리 스토텔레스(Aristotle, B.C. 384~B.C. 322)는 감정을 ‘판단을 변화시키며 쾌·불쾌를 수반하는 상태 (pathos)’로 정의하였다. 그는 감정을 단순한 충동이 아닌 이성과 관련된 복합적 작용으로 보았지 만, 감정의 목적을 인간의 윤리적 덕(aretē)과 사회적 조화의 실현에 두었다. 즉, 감정은 인간 행위의 보편적 구조에 내재한 자연적 양식으로 보면서, 그 의미는 여전히 이성적 규율의 대상으로 한정하 였다.’

       3) ‘감정본질주의’ 개념과 관점은 Kristin Lindquist., Maria Gendron and Lisa Feldman Barrett 2013, 629-639; Iris Berent., Lisa Feldman Barrett and Michael Platt 2020, 562666 참고.

 

그러나 이 접근 방식은 실제 감정 경험이 내포하는 개인적·문화적·맥락적 다양성을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며, 감정의 변화 가능성을 파악하기보다는 단 지 조절과 억제의 대상으로 축소시키는 한계를 내포한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등장한 구성주의적 관점은 감정을 자연적 실체로 전제 하기보다, 인지적·문화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제임스 러 셀(James A. Russell, 1947~)과 리사 펠드먼 배럿(Lisa Feldman Barrett, 1963~)은 감정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신체의 정동(affect)과 개념적 해석이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경험이 특정 감정으로 범주화되고 명명되는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주 장한다. 이들은 감정을 유동적이고 관계적인 사건으로 해석함으로써, 감정이 인간의 신체, 뇌, 언어, 사회적 맥락 속에서 작용하는 통합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한편, 초기불교 전통에는 이미 감정의 성립 방식과 변화 가능성에 관한 심층 적인 사유가 내재되어 있다. 빨리(Pāli) 문헌에 따르면, 감정적 경험은 조건 지 어진 흐름 즉, 연기(paṭiccasamuppāda)의 과정으로 이해된다. 감정은 다양한 마 음 요소들이 상호 의존적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무상한 현상(anicca) 이며, 따라서 감정은 ‘나의 것’으로 소유되거나 동일시될 수 없다.

불교학자 드 실바(Padmasiri de Silva, 1933~2024)가 지적하듯이, 초기불교는 감정을 단순히 억제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수행을 통해 전환 가능한 심리적 과정으로 파악한 다. 이는 감정을 단일한 실체로 가정하는 본질주의적 관점과는 뚜렷이 구별되 며, 관계적이고 과정적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현대 구성주의 이론과 깊은 상 응 관계를 이룬다. 이러한 논의는 감정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성립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인 질문을 다시 요구한다. 만약, 감정이 어떤 고유한 성질을 지닌 실체가 아니 라 구성적이고 무상한 경험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감정이라 부를 수 있는가. 또한 서로 다른 맥락 속에서도 동일한 감정으로 인식되도록 만드는 조건적 기 제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감정을 단지 견디거나 소멸되기를 기다리는 내적 사 실로만 한정하지 않고, 인지적 전환과 수행을 통해 그 변화 가능성의 지평을 열 어준다. 이에 본 연구는 감정을 본질적이고 고정된 실체로 이해해 온 관점을 비판적 으로 검토하고, 감정을 조건적으로 구성되고 변화하는 관계적 과정으로 해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첫째,

   감정의 실체성을 전제한 본질주의 의 한계를 비판하고, 현대 구성주의 감정이론으로의 전환 양상과 감정의 구성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둘째, 초기불교 문헌인 니까야(Nikāya)와 청정도론 (Visuddhimagga)등 상좌부 주석 전통에 나타난 감정에 관여하는 구성 요소들 을 분석하고, 연기적 성립 구조를 밝힌다.

  셋째, 두 전통의 논의를 비교·종합하 여 감정의 유동성(fluidity)을 논증하고, 감정의 동일성이 조건 반복의 결과임을 해명한다. 본 연구는 감정을 단일한 생물학적 단위나 고정된 본질로 환원하는 전통적 이해를 넘어, 비환원적이고 비본질적인 경험 양식으로 조명함으로써 감정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확장하고, 나아가 정서적 실천과 윤리적 성찰의 새로운 이 론적 기반을 제공하는데 의의가 있다.

 

II. 감정 본질주의의 한계와 구성주의로의 전환

 

서양 철학사에서 감정은 오랫동안 이성과 대립되는 정념으로 규정되었으나, 근대 이후, 과학적 방법론은 감정을 심리적·생리적 현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 다.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감정을 ‘영혼의 움직임’으로 규정하고, 신체의 자극이 송과선(pineal gland)을 통해 영혼에 작용할 때 정념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는 ‘경이(admiration), 사랑(love), 미움(hatred), 욕망(desire), 기쁨(joy), 슬픔(sadness)’을 여섯 가지 기본 정념(passions)으로 제시하고, 이들 이 고유한 신경 자극, 혈류 변화, 신체감각과 연관된다고 설명하였다.4)

칸트는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관점을 비판하면서도, 감정을 도덕적 이성의 자율성을 위협하는 ‘병리적 정념(pathologische Gefühle)’으로 규정하였다.5)

 

     4) Thomas Dixon 2003, 32-41.

     5) Nancy Sherman 1997, 90-98.

 

이러한 이해 는 감정을 윤리적 전통의 고전적 정념론을 계승하는 동시에, 신체적·기계적 인과로 환원함으로써, 고정된 신경생리학적 실체로 간주하려는 과학적 본질주의 (scientific essentialism)의 토대가 되었다.6)

19세기 이후, 감정연구는 실증주의의 본격적인 탐구 대상이 되었다. 챨스 다 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종 간의 진화적 연속성이 있음을 제시하고, 감 정을 유전적·생물학적 생존 적응 반응으로 설명하였다.7)

폴 에크만은 이를 계 승하여 문화적 차이가 있는 집단 간 연구를 통해 ‘기본 감정이론(Basic Emotion Theory)’을 확립하였다. 에크만에 따르면, ‘기쁨(joy), 분노(anger), 슬픔(sadness), 혐오(disgust), 놀람(surprise), 두려움(fear)’의 여섯 감정은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 게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되는 기초 감정이며, 선천적으로 조직된 생물 학적 체계에 의해 뒷받침된다.8)

그는 또한 ‘Facial Action Coding System(FACS)’ 을 개발하여 각 감정이 특별한 얼굴 표정 구성 및 생리적 변화와 연결된다는 가 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감정 범주는 인지과정과 구 분되는 고유한 생물학적 단위로 상정되었으며, 감정을 측정 가능한 신체적 현 상으로 환원하려는 본질주의적 경향이 강화되었다. 20세기 후반, 이러한 관점은 신경과학으로 계승되면서, 감정은 ‘뇌 속에 존재 하는 특정 신경 회로’의 활동으로 설명되고, 정서 반응(emotional response)은 자 극에 대한 하위 피질(subcortical) 중심의 처리 과정으로 이해되었다.9)

 

     6) 근대 감정론이 과학적 본질주의로 이어졌다는 평가는 Paul Griffiths 1995, 39-7; James Russell and Lisa Feldman Barrett 1999, 805-819; Joseph LeDoux 2012, 653-676 참고. 7) Charles Darwin 1872, 13. 8) Ekman은 감정의 생물학적 모델을 확립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그의 ‘기본감정이론’은 Paul Ekman and Wallace Friesen 1971, 124-129; Paul Ekman 1992, 170-171 참고.

     9) 폴 맥클린(Paul MacLean, 1913~2007)은 삼중 뇌 이론(Triune Brain theory)을 바탕으로 감정을 포유 류 변연계의 고유 기능으로 보았고, 조셉 르두(Joseph E. LeDoux, 1949~)는 공포 반응이 편도체 중 심의 하위 회로(fear circuit)에서 신속하고 자동적으로 처리된다고 주장하였다. 야크 판크셉(Jaak Panksepp, 1943~2017) 또한 공포(fear)·분노(rage)·욕망(seeking)·슬픔(grief) 등 일련의 기초 정동 (primary afftects)으로써 포유류 전반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접 근은 감정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규명하고 조절 전략을 제시하는 데 기여했 으나, 감정을 자극에 의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비의식적 반응’으로 간주함 으로써,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감정을 신경계 수준에서 발생·소멸하는 생물학적 ‘자연종((natural kind)’으 로 전재할 때, 그것은 일단 발생하면 피할 수 없는 반응 패턴으로 간주되기 쉽 다. 그 결과, 감정은 이해와 해석의 대상이라기보다 통제·억제의 대상으로만 축 소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분노를 특정 자극이 편도체 회로를 활성화하여 행동 반응을 유발하는 생리적 실재로만 파악할 경우, 그것이 ‘왜’, ‘언제’, ‘어떤 방식 으로’ 성립하는지에 관한 조건이나 사회적 의미, 상황적 맥락, 해석의 구조 등 은 부차적인 것으로 처리되고 만다. 이는 감정의 성찰과 변화 가능성을 이론적 틀 속에서 약화시키며, 감정을 인간이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경험적 차원에서 파악하기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감정을 생물학적 본질로 환원하려는 관점과 함께, 감정 경험을 인지적· 개념적 해석의 결과로 파악하려는 인식론적 관점도 비슷한 시기에 전개되었 다. 리차드 라자루스(Richard Lazarus, 1922~2002)는 감정을 ‘상황의 인지적 평 가(cognitive appraisal)에 따른 심리적 반응’으로 정의하며, 감정은 외부 자극 그 자체보다 개인이 그 자극에 부여하는 의미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였 다.10)

제임스 애버릴(James Averill, 1935~2024) 역시 감정을 ‘사회적·문화적 규 범 속에서 학습되고 유지되는 평가 체계(evaluative system)’로 파악하였다.11)

이 들은 감정을 신체적 반응의 결과가 아닌 의미 부여와 해석의 결과로 이해함으 로써, 감정의 인지적·사회적·문화적 조건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1944~)는 감정을 신체 신호(somatic markers)의 통합적 표현으로 재해석하며, 의사결정 과정의 핵심 기제로 재평가 하였다.12)

 

    10) Richard Lazarus 1966, 55-59.

    11) James Averill 1980, 305-339.

   12) Antonio Damasio 1996, 1413-1420. 

 

그는 감정을 하위피질 중심의 신경 기제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지만, 신체 변화와 인지적 표상의 상호 작용을 강조함으로써 신체와 마음의 통합적 이해를 시도하였다. 조셉 르두(Joseph E. LeDoux, 1949~) 역시 초기에는 감정을 자동 반사회로(공포회로)로 해석하였으나, 이후에는 다중시스템이론(multiple systems theory)으로 재정의하였다. 그는 ‘정동적 반응(affective response)’과 ‘정 서 경험(conscious feelings)’을 구분하고, 감정이 단일 회로의 결과가 아니라, 의 식적 인식, 주의, 언어적 표상 등 고차적 인지 과정이 결합된 현상임을 강조하였 다.13)

이러한 연구들은 감정을 신체 신호·인지 표상·의식적 평가가 포함된 다층 적이고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함으로써, 감정 연구의 구성적 전환을 이끄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감정의 구성적 접근에 대한 핵심 논의는 제임스 러셀의 ‘핵심 정동(core affect)’ 개념에서 나타난다. 러셀에 따르면, 핵심 정동은 신체의 각성 수준과 정서적 방 향성에 대한 지속적이고 배경적인 느낌(feeling)으로, 분노·공포·슬픔 등과 같은 구체적인 감정보다 선행하는 기초적인 ‘정서 좌표계’를 형성한다.14)

이는 ‘쾌 불쾌(valence)’·‘각성-비각성(arousal)’이라는 두 차원에서 연속적으로 변화하는 상태이며, 항상 존재하지만 그 자체로는 감정이 아니며 특정 대상과 연결되지 않을 때는 기분(mood)으로 경험된다. 핵심 정동이 구체적인 감정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귀인(attribution)과 해석 (interpretation) 등으로 이루어진 심리적 구성(psychological construction) 과정이 필수적이다.15)

 

     13) Joseph LeDoux 2012, 653-676.

     14) James Russell 2003, 146.

     15) Ibid 148-150. 

 

귀인은 경험하고 있는 정동 상태를 특정 외부 원인이나 대상과 연결 짓는 작용이며, 이 단계에서 감정적 사건(emotional episode)은 시작된다. 해석은 귀인된 정동을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조직하는 인지적 의미화 과정 으로, 개인의 사회문화적 상황, 감정 개념 범주, 세계에 대한 이해 방식 등이 개 입한다. 예컨대 높은 각성과 불쾌감이라는 핵심 정동이 위험 상황으로 귀인 되 고, 이를 위협으로 해석할 경우, ‘공포’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정동이 부당한 대우나 목표의 좌절로 귀인되어 불공정한 상황으로 해석되면 ‘분노’로 드러날 수 있다. 이와 같이 러셀은 감정을 정동-귀인-해석이 맥락에 따라 연속 적으로 변화하는 심리적 구성 과정으로 파악함으로써, 개인적으로 의미화된의식적 인간 경험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러셀의 심리적 구성 모델을 신경과학적 수준으로 확장 하여, 감정을 뇌의 예측적 구성(predictive construction) 과정으로 설명한다. 감정 은 뇌가 내부 상태와 외부 환경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예측하고 분류하는 과정 에서 경험 정보를 활용해 인지적으로 구성된 것(constructed emotion) 이다.16)

배럿에 따르면, 뇌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구축된 기억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를 내부 모델(internal model)로 재구성하고, 이를 근거로 향후 유입될 감각 정보 를 예측한다(predictive coding). 이 예측은 실제 감각 입력과 지속적으로 비교되 며, 두 정보의 차이인 예측 오류(prediction error)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내부 모델이 끊임없이 정교하게 재조정된다. 이러한 예측 과정이 성공적으로 이루 어질 때, 주관적으로 체험되는 것이 곧 우리가 ‘지각’ 혹은 ‘감정’이라고 부르는 심리적 경험을 구성한다. 감정의 구성 과정은 분산된 신경 네트워크(distributed neural networks) 연구 를 통해 신경학적 수준에서도 확인된다. 린드퀴스트(Lindquist) 등의 메타분 석에 따르면, 분노·공포·슬픔 등 전통적 감정 범주는 특정한 뇌 영역과 일관된 대응 관계를 보이지 않았으며, 동일한 감정 범주 내에서도 상황과 맥락에 따 라 활성 패턴이 달라지는 역동적 변화의 과정으로 나타났다.17)

이는 감정이 특정 회로의 출력 결과가 아니라, 정동적 신체 상태와 기억 및 상황적 정보가 결합하여 뇌의 네트워크가 실시간으로 재구성해 가는 개념적 재현(conceptual representation)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뇌는 수동적 반응 장치가 아니 라, 변화하는 조건에 따라 내부 모델을 지속적으로 조정하고 의미를 구성하는 유연한 기능적 체계로 작동한다.18)

 

     16) Lisa Feldman Barrett 2017, 1-23.

     17) Kristin Lindquist et al. 2012, 121-143.

     18) Lisa Feldman Barrett and Ajay B. Satpute 2013, 361-372. 

 

감정은 이러한 신경학적 예측-조절 메커니즘 위에서 개념화(conceptualization) 과정을 거쳐 의식적으로 인식된다.

개념화란, 뇌가 현재의 감각 정보를 분류하고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경험으로 축적된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을 활성화하는 과정이다. 즉 정동적 경험인 ‘느낌’이 개인에게 의미 있는 특정한 감정 단어와 결합할 때, 비로소 구체적인 감정으로 구성된다. 배럿은 이 과정 을 ‘개념적 행위(conceptual act)’라 부르며, 감정 개념이 감정을 식별하고 구분 할 수 있게 하는 ‘인지적 구조(cognitive architecture)’라고 설명한다.19)

예컨대, 동일한 생리적 변화라도 어떤 맥락에서는 ‘공포’, 다른 맥락에서는 ‘흥분’이나 ‘분노’로 인식될 수 있다. 혹은 동일한 신체 각성 상태가 어떤 문화권에서는 ‘부 끄러움’으로, 다른 문화권에서는 ‘존중·겸양’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차 이는 각 개인이 지닌 개념적 지식과 사회·문화적 범주화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 한다. 감정 개념의 내용과 범주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언어적 자원, 사회적 규범, 문화적 학습에 의존하여 다양하게 조직된다. 어린아 이는 신체 내부의 정동적 변화와 외부 상황을 특정 감정 단어와 반복적으로 연 결하는 과정을 통해 개념적 틀을 형성하며 감정 개념을 습득한다.20)

 

    19) Lisa Feldman Barrett 2006, 21.

    20) Lisa Feldman Barrett 2017, 9-15; Sherri Widen and James Russell 2008, 291-312. 

 

이때 언어 는 신체의 감각적 신호를 개념적으로 분류하고 경험 가능한 형태로 조직하는 핵심적 도구이자, 감정 구성의 인지적 기반을 제공한다. 이는 감정이 개인의 신 경학적 예측과 개념적 체계를 통해 내부적으로 구성되지만, 그 내용과 방향은 사회·문화적 요소라는 외적 조건과 긴밀히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감 정을 인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적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주 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인지적 해석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감정의 본질주의적 관점이 감정의 실체나 신경학적 기제를 파악 하는 데 집중했다면, 구성주의는 감정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구성되고 인 식되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인식론적 전환을 제시한다.

이는 감정을 고정된 실 체로 보던 관점에서, 감정을 관계적 인식 과정으로의 패러다임의 이동을 의미 한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접근은 감정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통제와 조절의 대 상이 아니라, 맥락과 개념적 분류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로 드러날 수 있는 변화 가능한 경험으로 파악해야 함을 시사한다.

 

III. 초기불교의 연기적 감정 발생 구조

 

1. 감정의 구성 요소와 작용 분석

 

전통적으로 ‘감정’ 개념은 주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통합된 심리·신체 적 상태를 가리키며, 개인의 내적 경험과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간주 되었다. 반면, 초기불교 문헌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포괄하는 단일한 심리 범주 로서의 감정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니까야에 따르면, 인간의 정서적·인지적 경험은 마음(citta)이 세계와 자신 을 인식하는 과정 속에서 전개된다.

그리고 그 과정은 ‘접촉(phassa, contact)’, ‘느 낌(vedanā, feeling)’, ‘지각(saññā, perception)’ 그리고 ‘(심리적)형성력(saṅkhāra, mental formation)’ 등의 상호작용으로 설명된다.

감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결합하고 전개되는 자리에서 드러나는 의식적 경험이다.

먼저, 접촉은 감각기관(indriya), 감각 대상(visaya), 그리고 의식(viññāṇa, con sciousness)의 결합으로 성립한다.

이는 단순한 물리적 충돌이 아니라, 대상과 마음이 만나는 심리적 만남을 의미한다. 냐나포니카(Nyanaponika, 1901~1994)는 접촉을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마음에 의해 조건 지어진 정신적 과정으로 해석하 며, 모든 인식 작용의 출발점으로 보았다.21)

 

    21) Nyanaponika Thera 1983, 7-8. 

 

즉, 접촉이 성립함으로써 마음은 비 로소 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며, 감정적 경험을 인식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느낌은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나며, 이 느낌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자신과 세 계를 의식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인식의 전개 과정은 다음의 구절 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도반이여, 느낌과 지각과 의식, 이 법들은 서로 얽혀 있으며, 분리되어 있지 않다. 이 법들을 분리하고 분리하여 차이점을 규정하는 것은 가능 하지 않다. 도반이여, 느낀 그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그것을 의식한다.’ 22)

 

인용 구절에서 느낌은 지각이나 의식과 독립된 별개의 작용이 아니라, 이들 세 요소가 상호 얽혀 하나의 인식 과정 속에서 통합적으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인식이 단일한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심리 적 층위들이 결합 된 다층적 구조임을 시사한다. 느낌은 일차적으로 ‘앎’을 의미하지만, 이 ‘앎’은 지적 인식이 아니라, 쾌·불쾌· 중성의 세 가지로 구분되어 ‘느껴지는 것(vedayita)’이다. 청정도론(Visuddhimagga) 은 이를 ‘대상에 대한 맛을 경험’하는 것에 비유하며,23) 개념적 지각 이전의 직 접적 체험임을 보여준다. 또한 느낌이 쾌·불쾌·중성 세 가지가 서로 뒤섞인 더 미(受蘊, vedanā-khandha)라는 점은, 어떤 느낌과 연결되느냐에 따라 경험은 여 러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따라서 느낌은 인식의 방향을 결정하 는 단초를 제공할 뿐, 그 자체가 분노·두려움·기쁨과 같은 특정 감정 상태를 확 정하지는 않는다. 느낌과 함께 작용하는 지각은 “푸른색을 지각하고, 붉은 색을 지각하고, 노 란색을 지각한다”라고 설명되듯이, 형태·색상·모양 등 느껴진 대상의 속성을 구별하는 기능을 담당한다.24)

이 지각은 느낌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는 가치 판단을 수반하지 않는다. 이는 청정도론의 “분별없는 어린아이가 동전을 보 는 것”이라는 비유에서 그것이 기초적인 식별 작용이라는 근거를 제공한다.25)

 

     22) MN I.293. “yā c’ āvuso vedanā yā ca saññā yañ-ca viññāṇaṃ ime dhammā saṃsaṭṭhā no visaṃsaṭṭhā, na ca labbhā imesaṃ dhammānaṃ vinibbhujitvā vinibbhujitvā nānākaraṇaṃ paññāpetuṃ. yaṃ h‘ āvuso vedeti taṃ sañjānāti, yaṃ sañjānāti taṃ vijānāti,

    23) Vim XVIII.20.

    24) MN I.293. “nīlakam-pi sañjānāti, pītakam-pi sañjānāti, lohitakam-pi sañjānāti, odātam-pi sañjānāti. sañjānāti sañjānātīti”

    25) Vim XIV.5. “saññā hi ajātabuddhino dārakassa kahāpaṇadassanaṃ viya hoti”

 

그러나 청정도론의 다른 대목에서는 “목수가 나무에 표식을 새기듯, 동일한대상을 다시 알아볼 수 있도록 표상을 남긴다.”라고도 설명한다.26)

이는 지각이 순수한 식별의 순간을 넘어서 표상(nimitta)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기억(sati)이 작동할 수 있는 조건임을 암시한다. 표상이 있어야 마음이 동일한 대상을 다시 알아볼 수 있고, 경험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유사한 대상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차이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상 형성(nimitta-karaṇa)은 감각 대상에 대한 지각과 더불어, 느낌, 의도(cetanā), 접촉, 주의 기울임(manasikāra)과 서로 관계하면서 ‘이름(nāma)’ 을 구성하는 과정과도 연결된다.27)

이때 이름은 대상을 구분하고 식별하는 언 어적 표지이며, 언어는 개별적 지각과 기억 내용을 보다 일반화된 패턴으로 조 직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28)

즉, 표상이 개별 대상의 특징적인 이미지를 보존 한다면, 이름은 그 특징을 언어적·개념적 범주로 체계화하여 인식의 층위를 한 단계 더 확장시킨다고 할 수 있다. 루퍼트 게틴(Rupert Gethin, 1957~)이 지각을 ‘conceptual recognition’으로, 드 실바가 ‘categorizing perception’으로 설명한 것 도 이러한 분석과 맥락을 같이한다.29)

따라서 지각은 단순히 대상의 특징을 포 착하는 기능에 머물지 않고, 표상과 이름을 매개로 경험의 내용을 조직하며, 조 직한 내용을 특정한 감정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인지적 기반을 마련하는 중추 적인 역할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지각된 대상은 의식을 통해 ‘앎’으로 드러난다. 이때 의식은 정신적 요 소(名, nāma: 느낌·지각·의도·접촉·주의)와 물질적 요소(色, rūpa: 신체 및 형상) 가 상호 작용하여 하나의 ‘알려진 경험(known experience)’으로 드러나도록 하 는 근본 요건으로 기능한다.30) 디가니까야(Dīgha Nikāya)의 ‘의식을 조건으 로 명색(nāma-rūpa)이 생기고, 명색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긴다’라는 구절은31)

 

    26) Vim XIV.130. “tadevetanti puna sañjānanapaccayanimittakaraṇarasā dāruādīsu tacchakādayo viya”

    27) SN II.3; Vim XVII.187.

    28) Leonard Priestley 1999, 138.

    29) Rupert Gethin 1986, 35-53; Padmasiri de Silva 2011, 255.

    30) Sue Hamilton 1996, 68, 95.

    31) DN II.62. “viññāṇapaccayā nāmarūpaṃ, nāmarūpapaccayā viññāṇaṃ”

 

의식과 명색이 상호 의존 속에서 경험의 장(field)을 형성함을 보여준다. 이는 의 식이 외부에서 추가되는 어떤 ‘주체적 관찰자’가 아니라, 느낌·지각·표상·이름 등의 상호 의존적인 총합이 경험을 성립시키는 기본적 통로이자, 인식의 가능 조건임을 의미한다. 감정은 이러한 ‘의식하기’를 통해 비로소 인식적 전체로 드 러나며, 조건적 결합 속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된다.

한편, 감정은 느낌·지각·의식의 결합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들 의 작용의 배후에는 과거 경험의 흔적, 반복된 습관, 잠재된 경향성(anusaya)을 포괄하는 심리적 형성력인 ‘행/행온(行蘊, saṅkhārakkhandha)’이 개입한다. 행은 기본적으로 의도(cetanā, volition)의 성격을 가지며, 그 방향성이 업(karma) 적 행위와 관련될 때 윤회(samsāra)의 지속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32)

숫타니 파타(Sutta-nipāta)에서 ‘사람은 출생이 아니라 행(kamma)에 의해 규정된다.’33) 라는 가르침은 행이 존재와 경험의 형성을 이끄는 마음 작용의 핵심적 역할임 을 시사하며, 이는 감정적 경험의 성립에도 중요한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교리문답 짧은 경(Cūḷavedallasutta)」에서는 행을 몸(kāya), 말(vacī) 그리고 마음의(citta) 형성력으로 구분하면서, 느낌과 지각을 행과의 관련 속에서 다룬 다.34)

 

   32) Sue Hamilton 1996, 74.

   33) Sn 650-651. “na jaccā brāhmaṇo hoti, na jaccā hoti abrāhmaṇo; kammanā brāhmaṇo hoti, kammanā hoti abrāhmaṇo.” 이 구절에서 ‘kamma’를 ‘cetanā/saṅkhāra’의 실천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해석하였음.

   34) MN I.301. “katamo ca, bhikkhu, cittasaṅkhāro? Vedanā ca saññā ca — ayaṃ vuccati cittasaṅkhāro(수행 자여, 어떤 것이 ‘cittasaṅkhāra’인가? 느낌과 지각이다. 이것이 ‘cittasaṅkhāra’라고 불린다.)” 

 

이는 느낌과 지각이 단순한 감각적·개념적 등록에 머무르지 않고, 행의 영 향 아래에서 특정한 방향성을 띠며 전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연기의 정 형구인 “행을 조건으로 의식이 일어난다(saṅkhārapaccayā viññāṇaṃ)”라는 구절 도, 의식이 대상을 무엇으로, 어떻게 ‘앎’으로 드러내는가가 행의 형성력에 의 해 선행적으로 조건 지어질 수 있음을 함의한다.

실제로 느낌과 지각은 본래 중립적이나, 어떤 느낌이 지각과 결합하는가 혹 은 지각의 표상 기능이 어떤 개념을 활성화하는가에 따라 경험의 성격은 달라 진다. 이는 행온이 과거 경험의 흔적과 경향성 등을 현재의 느낌과 지각에 지속 적으로 제공하며 그 방향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뿌리에 대한 법문 경(Mūlapariyāyasutta)」에서는 행온이 범부의 경험을 ‘자 아적 의미’로 굴절시키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무지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그는] 땅을 땅으로 부터 알고, 땅을 땅 으로부터 알고 나서, 땅을 생각하고, 땅에 대해 생각하고, 땅으로부터 생 각한다. [그는] 땅을 나의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땅을 환락한다.’35)

 

    35) MN I.1. “assutavā puthujjano...pathaviṃ pathavito sañjānāti, pathaviṃ pathavito saññatvā pathaviṃ maññati, pathaviyā maññati, pathavito maññati, pathaviṃ-me ti maññati, pathaviṃ abhinandati.”

 

인용 구절에서 범부는 대상을 인식하고(sañjānāti) 그것에 대해 생각(maññati) 한 후, 이를 ‘나의 것’으로 전유하며 해석한다. 반면, 성자(arahant)는 대상을 인 식하되(abhijānāti)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음(na maññati)으로써 자아적 해석 으로부터 벗어난다. 이러한 차이는 분별적 생각(maññanā)이 단순한 인식적 착 오가 아니라, 행이 느낌·지각에 개입하여 대상을 자아적 의미로 해석하게 하는 심층적 구성력이라는 점을 암시한다.

여기에 지각된 표상에 이름을 부여하는 언어적 명명(adhivacana)이 더해지 면, 경험은 하나의 개념적 틀 속에 고정되기 쉬워진다.

그 결과 ‘나의 느낌’, ‘나의 지각’, ‘나의 의식’이라는 자아 관념(atta-diṭṭhi)이 강화되고, 여기에 취착 (upādāna)이 결합하면서, 경험은 ‘나의 감정’으로 조직되어 감정적 의미는 공고 화된다. 동일한 자극과 상황에서 개인마다 다른 감정을 인식하는 것은, 현재의 느낌·지각·의식이 각자의 행온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건지어지고, 그 결 과가 자아적 의미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온은 과거의 흔적을 현재의 경험에 반복적으로 재구성하여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특정 경험을 나와 관련 된 특정한 감정으로 견고히 하는 중심적인 조건임을 알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니까야에서 감정은 접촉을 조건으로 일어난 느낌이 지각 및 행과 상호작용하며 의식 속에서 드러나는 통합적 인식 과정으로 이해 된다. 이들은 일정한 조건 아래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식적으로 경험 되는 의존적·관계적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양상은 초기불교의 핵심 사유인 연기와 무상성(aniccatā)에 의해 뒷받침된다.

「인연 상윳따(Nidāna Saṃyutta)」에 따르면, 연기는 어떤 현상이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는 의미를 넘어, 모든 존재와 경험이 서로를 조건(paccaya)으로 성립 하고 동일한 조건 관계 속에서 소멸하는 구조적 원리임을 보여준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사라지므로 저것이 사라진다(imasmiṃ sati idaṃ hoti; imassa nirodhā idaṃ nirujjhati)”라는 연기의 정형구는 존재와 경험이 조건 적 관계 속에서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지는 상호성을 밝힌다.

이때 ‘조건’이 란, 단순히 원인과 결과를 잇는 외적 관계를 넘어, 현상의 성립 가능성을 열어주 는 존재론적 기반을 의미한다.

감정 역시 접촉·느낌·지각 등의 조건적 관계 속 에서 구성되고, 그 조건이 소멸하면 사라지는 연기적 과정으로 파악된다.

한편, 상좌부 전통에서는 이와 같이 조건적으로 구성된 것(saṅkhata)은 그 어 떤 것도 실체(substance)로 인정하지 않는다.36)

그것은 다만 가설적 지칭(upādā- paññatti)일 뿐이다. 여기서 ‘upādā-paññatti’는 여러 법(dhamma)의 관계적 결합에 서 발생한 현상을 사유 속에서 효율적으로 지시하기 위해 부여된 명칭이다. 이 것은 존재론적 실재(reality)가 아닌 개념적 편의에 따른 언어적 설정(conceptual designation)이며,37) 따라서 이를 자립적 존재로 상정하는 것은 단지 개념적 환 상(conceptual illusion)에 지나지 않는다.38)

 

     36) 상좌부 불교의 Paññatti에 대한 논의는 Leonard Priestley 1999, 138-141 참고.

     37) DN Ⅱ.202. “itimā kho citta loka-samaññā loka-niruttiyo loka-vohārā loka-paññattiyo yāhi tathāgato voharati aparāmasan ti(이러한 것들은 찌따여 세속적인 명칭들이며, 표현들이며, 화법이며, 명칭들 이니, 여래는 이러한 것들에 의해 미혹되지 않으면서 그것들로 표현한다.)”

     38) Leonard Priestley 1999, 102.

 

이러한 관점은 청정도론과 밀린다팡하(Milindapañhā)의 ‘마차 비유’를 통해 지지된다.39)

 

     39) Vim XVIII.25-28; Mil 26-28. 감정의 유동성 421 

 

마차는 바퀴, 차축, 차체, 바퀴살 등 다양한 구성 요소들이 일 정한 방식으로 결합할 때, 비로소 ‘마차’라는 이름을 얻는다. 마차라는 이 ‘집 합’은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과의 관계적 결합에 의존해서만 성립할 뿐, 그 요 소들과 구별되는 고유한 속성(svabhāva)을 지닌 별도의 존재가 아니다. 무언가가 ‘구성되어 있다’라는 것은 요소들이 의존하여 성립한다는 점에서 실체가 없으며, 동시에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립적 실체로 성립할 수 없다. 만약, 마차가 개별 부품과 완전히 동일하여 그것으로 환원될 수 있다 면, 그 집합은 더 이상 집합으로서의 의미는 없게 된다. 반대로 마차가 각각의 부품과 완전히 구별되어 자립적으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조건적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고정된 실체가 되고 만다.

따라서, 마차는 구성 요소들의 결합에 의존하여만 성립하며, 그 집합을 개별 부품으로 환원할 수도, 그 자체를 독립된 존재로 상정할 수도 없다. 이때 ‘마차’라는 명칭은 실체를 지시하는 것 이 아니라, 구성 요소들의 관계적 결합을 지시하는 가설적 지칭에 지나지 않는 다. 이는 조건적으로 성립한 모든 현상에는 고유한 속성이 없으며, 그 명칭 역시 존재론적 실재가 아닌 개념적 표지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감정 또한 이와 같다. 감정은 느낌·지각·행 등 여러 구성 요소가 특정한 방식 으로 결합하여 나타나는 조건적 결과일 뿐, 그 자체로 독립된 실체를 지닌 것이 아니다. 감정을 구성하는 요소들 역시 무수한 조건들의 흐름 속에서 기능적으 로 구분되는 작용에 불과하다. 감정은 그것을 구성하는 어느 하나의 요소와 동 일하지 않으며, 동시에 구성 요소들의 단순한 집합으로 완전히 환원될 수도 없 다. 만약 감정을 개별 요소나 그 결합으로 환원한다면, 감정이 마치 자립적이고 고유한 속성을 갖춘 실체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특정한 조건적 관계가 성립할 때만 그 의미를 드러낸다. 예컨대, 긴장 하는 느낌이 ‘불안’을 의미하지 않으며, 우리가 현재 느끼는 감정을 불안으로 명명한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불안한 상태임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감정은 오직 특정한 조건적 관계가 성립하는 그때, ‘불안’이라는 이름을 얻는다.40)

 

     40) DN Ⅱ.201-202. “tveva tasmiṃ samaye saṅkhaṃ gacchati.....itimā kho citta loka-samaññā loka-niruttiyo loka-vohārā loka-paññattiyo.(그것은 그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이름을 얻는다.....이는 세상의 이름들, 언어들, 표현들, 명칭들이다)” 

    

여기서 ‘이름을 얻는다(saṅkhaṃ gacchati)’는 것은 대상(길이 시간 등)을 구분하고 소통의 편의를 위해 임시적으로 구성된 개념적·세속적 지칭(nāma-paññatti)일 뿐, 감정의 실재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실재하지 않음’이 곧 그것의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는 것 은 아니다. 그것은 다만 고정불변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오온의 조건적 결 합으로서 감정은 영원하지 않고(āniccaṃ), 조건에 따라 변화하는 성질을 지닌 (vipariṇāmadhammaṃ) 무상한 현상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감정이 특정한 ‘이름 을 얻었다’는 사실이 그것의 실재성을 보장하지 않듯이, 특정한 이름조차도 구 성되어 드러난 작용을 지시할 뿐, 항구적이지 않고 조건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며 무상한 것이다. 감정은 스스로 존재하지 않으므로, 자기 동일성을 부여할 수 있는 고유한 속 성도 없다. 이는 붓다가 「무아상경(Anattalakkhaṇasutta)」에서 오온에 대해 “이 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며, 나의 자아도 아니다(na mama, n’eso ‘ham asmi, na me so attā)”라고 설한 바와 정합한다. 따라서 감정은 오온의 의존적 상 호작용을 통해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관계적 결합일 뿐, 그 자체로 독립적 실체 나 자아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감정은 연기에 따라 조건적으로 성립하며, 특정 한 조건이 형성될 때만 일어나고, 그 조건이 소멸하면 함께 사라진다.

따라서 감 정의 존재는 실체적 실재가 아니라, 환원 불가능한 조건들의 관계적 결합이 특 정한 언어·개념 체계 속에서 규정되고 이름 붙여져 드러나는 연기적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IV. 구성주의와 연기론에 기반한 감정의 유동성

 

우리는 감정을 마치 ‘이미 존재하는 내적 실재’처럼 경험하지만, 실제 감정경험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성을 지닌다. 그렇다면 감 정이 변화한다는 사실과, 우리가 때때로 ‘같은 감정이 반복된다’고 인식하는 경 험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본 장은 이 근본적인 질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감정의 동일성이 경험 내부의 고유성에서 비롯된다는 가정 대신, 특정 조건들이 반복적으로 결합하고 해석 되는 방식에서 공고화되거나 고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검토한다. 여기서 ‘감 정의 유동성’은 감정이 임의적으로 변한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은 신체 상태와 상황적 맥락, 그리고 학습된 개념·언어적 자원이 맞물리는 조건 속에서 성립하 며, 조건의 결합 방식이 달라질 때 감정의 양상 또한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본 장은 지금까지 분석한 두 전통의 논의를 바탕으로, 감정이 어떤 조건 아 래에서 특정 감정으로 식별되고, 동시에 그 동일성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밝 히고자 한다. 현대 구성주의는 감정을 설명할 때, 감정 범주 이전의 정동 수준을 세밀하게 구분한다. 러셀과 배럿은 핵심 정동을 ‘쾌-불쾌와 ‘각성’의 두 차원에서 기술하 고, 이것이 경험을 관통하는 기본적인 정서 톤(emotional tone)으로 설정한다.

그 러나 중요한 점은 핵심 정동이 곧바로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특정 감정 범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구성주의는, 특정 감정이 선천적·고유한 생 물학적 단위로 주어지며 전담 회로나 고정된 표지로 식별될 수 있다는 본질주 의적 가정과 구별된다.

구성주의의 핵심 정동은 감정 범주가 성립하기 위한 필 요 조건에 가깝지만, 그 자체가 특정 감정의 ‘본질’로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정동이 특정 감정 범주로 포착되기 위해 어떤 추가 가설이 필요한가.

이에 구성주의가 제시하는 핵심 가설은 다음과 같다.41)

 

    41) James Russell and Lisa Feldman Barrett 1999, 5-6; Lisa Feldman Barrett 2017, 7-13. 

 

정동적 변화가 일어날 때, 뇌는 그것을 ‘단지 느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과거 학습과 개념 체계를 동원하여 감정을 범주화(categorization)한다. 이 범주화은 사회·언어·문화적 자원을 포함한 개인의 개념적 지식에 의해 안내되고, 그 결과로 어떤 순간의 경험은 ‘분노’나 ‘불 안’처럼 특정 감정 범주로 인지적으로 해석 가능한 형태를 갖는다.

이 과정에서 ‘이름 붙이기’는 단순한 라벨링이 아니라, 경험을 하나의 감정으로 ‘인식 가능하 게’ 만드는 핵심 작용으로 기능한다.

동일한 신체 변화가 다른 감정으로 경험 될 수 있다는 구성주의의 주장은, 바로 이 범주화와 명명의 경로를 전제로 한다.

이때 구성주의는 감정을 뇌 속 고정된 ‘전용 회로’로 환원하는 설명을 경계한 다.

배럿은 감정 범주에 대해 고유하고 이를 전담하는 신경 본질(neural essence) 이 존재한다는 관점을 비판하면서, 감정 범주는 다른 심리 범주들과 마찬가지 로 ‘실재하지만’, 그 실재성은 단일 회로의 재현이 아니라, 다양한 뇌 네트워크 가 신체 상태·상황 단서·학습된 개념 자원과 결합하여 경험을 조직하는 방식에 서 성립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구성주의에서 감정의 동일성은 경험 내부에 고정된 표지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예측과 조절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유사 한 정동 변화와 맥락이 반복적으로 같은 범주로 해석되고 같은 이름으로 지칭 되면서 점차 공고화되는 결과로 이해된다. 한편, 구성주의가 감정의 성립을 정동·범주화·명명의 관계로 설명한다면, 초 기불교는 접촉·느낌·지각·형성력·의식 등의 조건들이 결합하고 전개되는 양상 으로 분석한다. 이때 느낌은 감정 경험의 중요한 출발 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 특정 감정이 확정되지는 않는다. 특정 감정으로 구별되어 드러나는 양상은, 느 낌 위에서 지각이 대상을 어떤 방식으로 식별하는지, 그리고 그 식별이 어떤 반 응 경향을 준비·강화하는지(형성력·행온)에 크게 의존한다. 따라서 감정은 느 낌의 자동적 결과라기보다, 느낌 이후의 조건적 전개가 어떤 방향으로 조직되 는가에 따라 서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이 점은「꿀덩어리 경(Madhupiṇḍikasutta)」이 제시하는 인식의 전개에서 분명 하게 드러난다.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며, 지각한 것을 바 탕으로 사유하며, 사유한 그것을 바탕으로 망상하고, 그와 같이 망상하 는 그 사람에게 망상에 [오염된] 지각(想)과 관념(papañca-saññā-saṅkhā) 이 생겨난다.’42)

이 구조는 느낌이 감정적 전개의 출발점이더라도, 지각의 식별 방식과 형성 력의 작동, 그리고 그 이후의 과잉 증식(papañca)에 따라 경험이 특정 방향으로 굳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쾌·불쾌·중성의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분노’나 ‘두려움’처럼 특정한 양상으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대상을 어떻게 식 별하는지(지각)와 그 식별을 따라 어떤 반응 경향이 강화되는지(형성력·행온) 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43)

특히 ‘papañca-saññā-saṅkhā’의 결합은, 망상의 증식 이 지각과 (그와 결부된) 관념적 형성을 매개로 하여 경험을 대상화·서사화하 고, 그 결과 특정 방향으로 공고화되는 국면을 드러낸다.

이러한 논리는 「화살 경(Sallasutta)」의 범부와 성자를 대비하는 ‘두 화살 비 유’에서 더욱 분명해진다.44)

경전에 따르면, 범부는 괴로운 느낌이 일어날 때(1 차 화살), 거기에 대한 근심·비탄·슬픔 등 반응적 덧붙임을 더하여(2차 화살) ‘이 중의 느낌’을 경험한다. 이는 괴로운 느낌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고통의 양상이 느낌 이후에 작동하는 분별·사유·증식 등과 같은 조건적 전개 방식에 따 라 증폭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동일한 불쾌한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지각의 식 별 방식과 형성력의 반응 경향에 따라 경험은 ‘단지 괴로운 느낌’에 머물 수도 있고, ‘근심·비탄·분노·두려움’과 같은 구체적 양상으로 증폭될 수 있다.

여기에 느낌과 결부된 ‘잠재 성향’을 함께 고려하면,45) 이러한 반복과 공고화의 논리는 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42) MN I.111-112. “phassapaccayā vedanā. yaṃ vedeti, taṃ sañjānāti. yaṃ sañjānāti taṃ vitakketi. yaṃ vitakketi taṃ papañceti. yaṃ papañceti tato nidānaṃ purisaṃ papañcasaññāsaṅkhā samudācaranti”

    43) papañca와 vitakka에 대한 논의는 Ñāṇananda 2006, 27 참고.

    44) SN IV.207.

    45) MN I.303. “sukhāya kho āvuso visākha vedanāya rāgānusayo anuseti. dukkhāya vedanāya paṭighānusayo anuseti. adukkhamasukhāya vedanāya avijjānusayo anusetīti(벗 비사카여, 즐거운 느낌에는 탐욕의 잠 재 성향이 잠재해 있고, 괴로운 느낌에는 악의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는 무명의 잠재 성향이 잠재해 있다.)” 

 

상좌부의 주석 전통은 ‘특정 감정으로의 식별’이 궁극적 법(paramattha)과 구 별되는 ‘가설적 지칭’의 틀에서 성립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 관점에서 감정 경험은 구성 요소들의 조건 결합 속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그 전개가 ‘분노’와 같은 특정 이름으로 식별되는 방식은 일정 부분 관습적 명명과 지 칭의 틀에 의존한다.

즉, ‘분노’는 느낌 자체와 동일시될 수 있는 궁극의 요소가 아니라, 오온 등 여러 조건을 근거로 성립하는 ‘가설적 지칭’으로 이해된다.46)

 

    46) Leonard Priestley 1999, 68-72. 

 

따라서, 초기불교에서 감정은 요소들의 조건적 결합과 명칭의 결부로 성립하 며, 그 동일성은 느낌 위에 작동하는 지각의 방식과 잠재 성향, 그리고 형성력의 누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구성주의의 핵심 정동과 초기불교의 느낌은 이론적 토대와 지향 하는 맥락은 다르지만, 감정의 최소 단위로서 특정 감정의 본질을 내포하지 않 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핵심 정동과 느낌은 감정이 특정 이름으로 식별 되기 위한 재료이자 조건으로 기능하며, 그 위에 범주화·명명(구성주의) 혹은 지각·행온의 결합(초기불교)이 일어날 때, 비로소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구체 적인 감정으로 인식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정 유동성은 본질을 지닌 감정에 우연히 덧붙는 부차적 현상이 아니라, 감정 범주 자체가 다양한 조건들의 결합 위에서 성립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귀결이다. 즉, 감정은 예측적 해석과 연기적 조건의 교차 지점에서 구성되며, 그 자체로 끊임없는 변화와 전 환의 가능성 속에 놓여 있다. 그러나, 두 전통이 감정 유동성을 다루는 초점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구성 주의가 주로 신경 구성적 기제 속에서 감정의 가변성을 해명하고, 개념 학습 및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른 범주화의 재조직에 주목한다면, 초기불교는 ‘이름 붙 여짐’의 층위에 머물지 않고, 그러한 경험이 ‘나 혹은 내 것’으로 전유될 때, 취 착이 강화된다는 점을 핵심 문제로 삼는다.

「무아상경」에서 제시하는 오온의 관찰 공식은 느낌이나 지칭 자체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내 감 정’으로 동일시될 때, 취착과 반응적 전개가 강화되는 조건들을 해체하는 데 목 적이 있다.

이는 초기불교의 논의가 감정의 유동성을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 ‘동일시’라는 기제가 유동적인 감정 경험을 어떻게 ‘고정된 것’처럼 공고화하 고 괴로움을 심화시키는지를 드러낸다. 또한 그 동일시의 고리를 끊음으로써 감정적 강화에서 벗어나는 해탈론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구성주의와는 차별화된다.

 

V. 결론

 

감정은 오랫동안 진화적 적응과 생물학적 회로의 산물로 이해되어 왔다. 이 러한 관점은 감정을 본능적 반응이나 타고난 속성으로 간주하는 경향을 강화 하였고, 감정을 자아 정체성과 결합된 고정적 표지로 오해하게 만들 위험을 내 포하였다. 그러나 본 연구가 출발점으로 삼은 물음은, 감정이 실제 경험에서 끊 임없이 변화한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우리가 ‘같은 감정이 반복된다’고 인식하 는 동일성 현상이 어떻게 함께 설명될 수 있는가였다. 이에 본 연구는 감정을 둘 러싼 존재론적 전제를 검토하고, 감정을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조건적 성립과 변화의 관점에서 해명하고자 하였다. 현대 구성주의 감정이론은 감정을 정동 그 자체로 동일시하지 않으며, 감정 이 특정 범주로 경험되기 위해서는 개념적 지식과 언어적 범주가 작동해야 한 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감정은 신체적 변화가 어떤 의미로 조직되는가에 달려 있으며, 동일한 신체 변화도 서로 다른 맥락과 학습된 개념 자원에 따라 다른 감 정으로 이해될 수 있다.

초기불교 역시 감정을 단일 요소로 환원하지 않는다. 니까야에 따르면, 감정적 경험은 접촉, 느낌, 지각, 형성력 그리고 의식 등이 상호 의존적으로 결합하는 가운데 잠정적으로 드러나는 흐름으로 제시되며, 조건이 갖추어질 때 나타나고 조건이 변하면 달라지며 조건이 사라지면 소멸 한다.

또한 상좌부의 주석 전통이 시사하듯, ‘분노’나 ‘불안’등은 그것만의 고유 성질이 아니라, 여러 조건을 근거로 성립하는 지칭(가설적 지칭)의 층위로 이해 될 여지가 있다. 두 전통의 비교를 통해 본 연구가 제시한 핵심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감 정의 유동성은 감정이 임의적으로 변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이 언제나 신체 상태, 상황 맥락, 학습된 개념(언어 포함), 습관적 경향이 결합하는 조건 속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둘째, 우리가 ‘동일한 감정’으로 경험을 묶는 현 상은 감정 내부의 고정된 본질을 가정하지 않더라도 설명될 수 있다.

감정의 동 일성은 경험 자체에 내재한 불변 성질이라기보다, 반복되는 조건 결합과 그에 대한 해석, 명명 방식이 축적되면서 서로 다른 순간의 경험이 하나의 범주로 묶 여 보이는 인식의 공고화 혹은 내면화로 이해될 수 있다.

이때 감정은 더 이상 자아의 본질적 표현이나 고정된 정체성의 지표로 전제될 필요가 없으며, 조건 이 달라지면 다른 방식으로 드러날 수 있는 비본질적·비환원적·관계적 현상으 로 재규정된다.

다만 두 전통이 감정의 조건성을 공유한다고 하여, 목표와 지향까지 동일해 지는 것은 아니다.

구성주의는 주로 감정 범주가 형성·학습되고 재구성되는 방 식 그리고 그에 따른 가변성을 설명하는 데 관심을 둔다면, 초기불교는 감정이 ‘나 혹은 내 것’으로 전유되고 동일시될 때 취착이 강화되고 괴로움이 증폭된다 는 점을 핵심 문제로 제시한다.

따라서 초기불교의 논의는 감정이 어떻게 성립 하는가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감정과 자아의 동일시를 해체하는 방향 으로까지 나아가는 분석적 토대를 제공한다.

본 연구의 의의는 감정의 유동성을 동일성의 문제와 함께 다루면서, 감정을 고정된 본질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감정 경험의 조직성과 반복성을 설명할 수 있는 비교 철학적 가능성을 제시한 데 있다.

또한 니까야의 조건 분석과 구 성주의의 범주화·명명 논의를 교차시켜, 감정이 무엇인가로 환원하기보다, 감 정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제안하였 다.

궁극적으로 본 연구는 감정의 인식론적 지위를 고정된 실체에서 관계적 과 정으로 이동시켰으며, 감정을 피할 수 없는 통제 대상이 아닌 개념적 분류와 조 건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는 유연하고 변화 가능한 경험으로 파악할 새로운 지 평을 확장하였다.

그러나 한계 또한 분명하다. 본 연구는 니까야 및 상좌부 주석 전통을 중심으로 논의했기 때문에, 불교 내부의 다양한 부파 전통에서 논의된 ‘고유한 속성’ 개념을 충분히 다루지 못하였다.

설일체유부, 경량부, 중관학파 등은 존 재의 본질성과 관계성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며, 이러한 차이는 감정에 대한 존재론적 이해에도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향후 연구에서는 이들 전통이 제시 한 ‘sabhāva’ 개념을 면밀히 분석하여, 그 층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감정을 무상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단지 감정이 변한다는 경험 적 사실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이 언제나 조건에 의해 성립하고 소멸하며, 동일성조차 조건의 반복이 낳는 공고화와 내면화의 결과로 이해될 수 있음을 통찰하는 것이다.

이 통찰은 감정을 ‘내가 본래 가진 것’으로 고정하 는 습성을 약화시키고, 감정 경험을 관계적 조건의 흐름으로 재배치하는 인식 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본 연구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감정에 대한 본질주의적 이해를 넘어서는 비환원적·비본질적 감정 존재론의 가능성을 논증하고자 하 였다.

 

 

 

참고 문헌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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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감정이 본래 ‘있는 것’이라는 전제는 감정을 피할 수 없는 내적 실재로 고정시키고, 우리를 감정의 영향력 아래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감정을 조건과 맥락에 따라 구성 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면, 감정 경험은 필연이 아니라, 전환 가능한 현상으로 재조 명될 수 있다. 이에 본 연구는 감정을 본질적 실체로 가정해 온 본질주의의 한계를 검 토하고, 현대 구성주의 감정이론과 초기불교 연기론을 비교·분석함으로써 감정의 유 동성을 논증한다. 현대 구성주의 감정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뇌의 예측과 개념화가 실시간으로 작동 하는 가운데, 정동 상태가 개념적 지식과 언어적 범주를 통해 의미화될 때 특정한 감정범주로 구성된다. 이때, 감정의 동일성은 범주화와 감정 개념의 반복적 적용(naming) 을 통해 성립한다. 한편, 초기불교는 감정을 연기적 조건 속에서 성립·변화·소멸하는 무상한 현상으로 제시한다. 빨리 문헌에서 감정적 경험은 접촉·느낌·지각·형성력·의 식이 상호 의존하는 조건 속에서 전개되는 흐름이며, 지각에 따른 표상과 언어적 명 명 및 가설적 지칭이 결합할 때, 비로소 특정 감정으로 분별 되어 드러난다. 특히 행온 은 인식 과정의 배경 조건으로 작용함으로써, 감정 경험의 반복적 동일성이 유지·강 화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두 전통은 감정을 고정된 본질이 아닌 조건적 과정으로 파악하고, 감정이 식별·명 명·지칭 등 개념적 처리에 의해 조직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접점을 이룬다. 그러나 구 성주의는 감정을 사회·문화적 학습과 개념 체계의 재구성을 통해 변화 가능성의 해 명에 초점을 둔다면, 초기불교는 감정이 ‘나와 내 것’으로 동일시될 때 취착이 강화된 다는 점을 핵심 문제로 삼고, 이를 해체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 한 분석을 바탕으로, 본 연구는 감정을 경험 내부의 고유한 성질로 환원하지 않고, 조 건·해석·개념적 범주에 의해 성립하고 변화하는 유동적 경험 양식으로 제시한다. 이 는 감정을 비환원적·비본질적 해석의 가능성을 확장하며, 정서적 실천과 윤리적 성 찰이 성립할 수 있는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다.

주제어 감정본질주의, 정동, 느낌, 웨다나, 개념화, 상카라, 빤냐띠, 무상

 

 

Abstract

The Fluidity of Emotion: A Comparative Study of Contemporary Constructivist Emotion Theory and Early Buddhist Dependent Arising PARK, Jung-A( Lecturer Department of Humanistic Counseling Graduate School,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Treating emotion as something that inherently “exists” tends to fix it as an unavoidable inner reality and thereby keeps individuals under its influence. By contrast, when emotion is understood as a process constituted through conditions and context, emotional experience can be reconsidered not as a necessity but as something transformable. This study examines the limitations of emotional essentialism and argues for the fluidity of emotion through a comparative analysis of contemporary constructivist theories of emotion and the early Buddhist doctrine of dependent arising (paṭiccasamuppāda). Within constructivist accounts, emotion is constituted when the brain’s real-time processes of prediction and conceptualization render ongoing affective states meaningful through conceptual knowledge and linguistic categories, thereby forming specific emotion categories. The apparent sameness or continuity of emotion is stabilized through repeated categorization and the recurrent application of emotion concepts, a process often described as naming. Early Buddhism, by contrast, presents emotion as an impermanent phenomenon that arises, changes, and ceases within networks of dependent conditions. In Pāli sources, affective experience is described as a conditioned flow in which phassa, vedanā, saññā, saṅkhāra, and  viññāṇa operate in mutual dependence; when representational processes, linguistic naming, and hypothetical designation converge, experience is discriminated and recognized as a particular emotion. The aggregate of formations (saṅkhāra-khandha) functions as a background condition within cognition, suggesting how patterned repetition can sustain and reinforce the appearance of emotional identity over time. Both traditions thus understand emotion not as a fixed essence but as a constituted process shaped through categorization and naming, forming a significant point of convergence. Nevertheless, they diverge in emphasis: constructivist approaches focus on the possibility of emotional change through socio-cultural learning and the reconfiguration of conceptual systems, whereas early Buddhism identifies the appropriation of emotion as “I” and “mine” as the central problem that intensifies clinging and underscores the necessity of dismantling such identification. On this basis, the present study proposes emotion as a fluid mode of experience that arises and changes through conditions, interpretation, and conceptual categorization, thereby extending a non-reductionist and non-essentialist framework within which affective practice and ethical reflection may be grounded.

 

Keywords Emotional Essentialism, Affect, Feeling, Vedanā, conceptualization, Saṅkhāra, Paññatti, Impermanence (Anicca)

 

 

 

2025년 11월 10일 투고 2025년 12월 03일 심사완료 2025년 12월 19일 게재확정

불교학연구(Korea Journal of Buddhist Studies) 제85호(2025.12) pp. 405∼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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