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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제국 사회의 감정 윤리에 맞서는 바울의 감정 윤리  로마서 12:14-15을 중심으로/설재록.연세大

 

I. 서론

 

로마서를 사회사적 맥락 속에서 읽으려는 연구는 바울이 처한 구체 적 공동체 상황과 설득 전략 속에서 이해하려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로마서의 윤리적 권면들이 단 순한 보편 도덕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갈등 구조 속에서 제 시된 발화라는 점을 부각한다.

이와 더불어 후기 스토아 철학과 바울 윤리를 비교하는 연구 역시 오랜 전통을 형성해 왔으며, 바울의 권면이 당대 사회의 지배적 윤리 와 어떤 긴장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를 해명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 어지고 있다.

또한, 로마 교회를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 사이의 긴장 속에 놓인 공동체로 파악하고, 바울이 그러한 균열에 개입하여 새로 운 집단 정체성을 형성하려 했다는 논의 역시 신약학에서 중요한 연 구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은 대체로 각각 사회사적 배경, 철학적 윤리 비교,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라는 개별 관심사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 으며, 이 세 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로마서 12:14-15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특히 ‘박해’의 현실, 공감의 요청, 그리고 당대의 감정 규범이라는 요소를 하나 의 분석 틀 안에서 결합하여 읽는 시도는 아직 충분히 체계화되었다 고 보기 어렵다.

이러한 연구 지형 속에서 에슬러(Philip F. Esler)의 사회과학적 독해 는 로마서를 공동체 내부의 민족적 긴장을 조정하려는 설득적 담론으 로 이해함으로써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그의 연구는 바울의 권면 을 실제 사회적 상황과 연결하고, 공동체 정체성 형성의 문제를 전면 에 부각한다는 점에서 본 논문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된다.1)

 

     1) Philip F. Esler,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The Social Setting of Paul’s Letter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11-12, 25-26, 33-34.

 

그러 나 본 논문은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 간의 갈등으로 나타난 상황을 로 마서 12:14의 ‘박해’로까지 확장하여 이해하는 해석과는 구별되는 관 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로마서 12:14에 나타나는 ‘박해’가 로마 제국 내 로마라는 도시의 사회적 환경 속에서 형성된 외부의 적대나 위계적 압력과 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분 석의 초점을 사회정체성의 문제에 두기보다, 비우호적 외부 상황 속 에서 바울이 요청한 공감의 실천이 당대의 지배적 감정 윤리와 어떤 긴장 관계를 형성하는지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본 논문은 후기 스토아 철학이 형성한 감정 절제의 윤리가 로 마 사회의 중요한 도덕 담론으로 기능하고 있었음을 전제로, “우는 자 들과 함께 울라”(12:15)는 요청이 그러한 감정 질서와 충돌하며 공동 체의 실천을 새롭게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동했음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 관점에서 공감은 개인의 내면적 덕목을 넘어, 박해라는 상황 속에 놓인 공동체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를 새롭게 규정하도록 요구하는 실천적 행위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로마서 12:14-15에 나타난 바울 의 권면은 로마 교회가 처한 실제적인 사회적 적대와 박해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으며, 바울의 공감 권면이 후기 스토아 철학이 형성한 제 국 사회의 지배적 감정 윤리에 맞서 공동체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저항적 실천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II장에서는 로마 교회를 둘러싼 박해와 사회적 압력의 역 사적 정황을 검토하고, III장에서는 바울의 공감 권면을 당대 스토아 적 감정 윤리와의 대비 속에서 분석함으로써 그 사회적 의미를 밝히 고자 한다.

 

II. 로마서 12:14-15의 ‘박해’ 이해와 바울 권면의 성격

 

로마서는 12장에 들어서며 이전 교리에 대한 설명에서 삶의 태도에 대한 강한 권면으로 그 방향을 전환한다.2)

그중에서 14절 이후는 교 회 공동체를 둘러싼 외부 환경에 대한 태도를 다룬다.3)

 

    2) Frank J. Matera, Romans, Paideia: Commentaries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0), 19.

    3) Matera, Romans, 290.

 

바울은 이 환 경을 ‘박해’라고 명시하고, 교회 공동체에 이 박해의 대상들과 공감하 라고 권면한다(롬 12:14-15).

그렇다면, 바울이 말하는 로마 교회 공동 체가 처한 ‘박해’란 어떤 상황이었고 왜 공감의 태도를 권면했을까?

학자들은 박해에 대한 각자의 이해를 토대로 로마서 12:14-15의 성격 에 관하여 주로 세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 일반적 윤리 권면

 

먼저 로마서 12:14-15에 언급되는 ‘박해’를 바울 당시 로마 교회가 직면한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지켜야 할 일반적인 윤리적 권면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있 다.

그 대표적인 학자는 무(Douglas J. Moo)이다.

무는 로마서가 기록 되던 시점에 로마 교회가 조직적이거나 제도적인 박해를 경험하고 있 었다는 명확한 역사적 증거가 없다고 지적하며, 로마서 12:14-15의 권 면을 특정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 구절이 예수가 가르쳤던 원수 사랑의 전승(마 5:44; 눅 6:27-28)을 반영한 것으로 보며, 따라서 이것이 초기 그리스도 공동 체 안에서 전승된 것으로 본다.4)

이러한 그의 견해는 박해 상황에 대 한 바울의 권면을 보편적 윤리 권면으로 다룬다고 볼 수 있다.

던(James D. G. Dunn) 역시 무와 유사한 맥락에서 로마서 12:14-21을 이해한다.

던은 이 단락이 단순히 예수 전승을 반복한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의 갈등과 적대에 대응하는 방식에 관한 유대 전통의 지혜와 윤리적 성찰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고 본다.

그는 바울이 박해 와 적대의 ‘가능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태도를 유대 성경과 유대 공동체의 축적된 경험에 호소함으로 써 정초(定礎)시키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이 점에서 던은 본문을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의 일반 원칙으로 이 해한다.5)

 

     4) Douglas J. Moo, The Epistle to the Romans, NICNT (Grand Rapids: Eerdmans, 1996), 780-81.

     5) James D. G. Dunn, The Theology of Paul the Apostle (Grand Rapids: Eerdmans, 1998), 650-51. 

 

무와 던과 마찬가지로 마테라(Frank J. Matera)도 이 본문을 개별 상 황에 종속된 윤리 명령으로 보지 않는다. 마테라는 로마서 12:1-15:13 전체를 “칭의된 자들의 도덕적 삶”을 설명하는 확장된 권면 단락으로 규정하며, 이 단락이 바울의 복음 이해와 분리된 윤리적 부록이 아니 라, 하나님의 의에 대한 신학적 논증이 삶의 차원에서 구체화되는 결론부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구조적 이해 속에서 로마서 12:14-15는 박 해나 공동체 내 갈등과 같은 특정 상황에 대한 대응 전략이라기보다 는, 이미 칭의된 자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야 할 삶의 일반적 방 향을 제시하는 윤리적 지침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6)

하지만, 이들의 설명과 같이 로마서 12:14-15를 일반적인 윤리로 간 주하기에는 ‘박해’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너무 강하다는 문제가 있다.

‘박해’라는 의미인 διώκειν은 이어지는 로마서 12:17-21을 참고하면 다 른 의미로 해석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로마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 게 ‘악’(17절)을 행하거나 ‘원수’(20절)로 불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 울에게 ‘박해’란 적어도 자신이 사울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을 때 예 루살렘 교회에 가했던 행위 정도의 강도를 의미한다. 이는 바울이 자 신의 다른 서신들에서 교회를 박해했던 사건을 언급할 때 διώκειν을 사용하기 때문이다(고전 15:9; 갈 1:13; 23; 빌 3:6).

적어도 갈라디아서 와 고린도전서는 로마서보다 이른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기에, 로 마서 12:14의 διώκειν은 분명 특정한 사건이나 로마 교회에 압박을 가 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가리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7)

 

   6) Matera, Romans, 281-82.

   7) 학자들은 대개 갈라디아서의 기록 시기를 주후 47-48년, 고린도전서를 주후 53-55 년으로 보고, 로마서는 주후 56-58년 정도로 본다. Yinger는 이 ‘박해’를 공동체 내부의 상황으로 보며, 그 주요한 근거를 앞선 단락 12:1-13이 교회 내부를 위한 권면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즉, 갑자기 외부의 상황이 개입한 것으로 읽으면 그 흐름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로마서 13장도 공동체 내부의 상황을 다루는 것이라면 Yinger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로마서 13장이 초반에서부터 ‘위에 있는 권세’(롬 13:1)로 초점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롬 12:14부터 외부 상황을 언급하는 것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롬 12:13까지 내부 상황을 다루고 롬 12:14부터 외부의 상황을 다루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만일 내부와 외부에 대한 초점 전환이 문제가 된다면, Yinger가 지적하는 로마서 14-15장의 공동체 내 부 갈등은 로마서 13장을 반드시 내부에 대한 권세에 관한 것으로 고정해버린다. Kent L. Yinger, “Romans 12:14-21 and Nonretaliation in Second Temple Judaism: Addressing Persecution within the Community,” CBQ 60 (1998), 87-90.  

 

구체적 박해 사건이 기록된 역사 자료가 없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그리 스도인들에게 적대적인 분위기였다면, 충분히 διώκειν으로 표현이 가 능했을 것이다.

 

2. 역사적 박해 상황을 전제한 윤리 권면

 

로마서 12:14의 박해를 역사적 상황으로 볼 수 있는 단서들이 있다.

슈넬레(Udo Schnelle)에 따르면, 1세기 중엽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적으로는 가시적이었으나, 법적·문화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위치 를 점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사회적 하층에 속한 구성원들로 이루 어진 성장하는 도시적 운동이었으며, 분산된 가정교회 형태로 조직되 어 있었고,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이후 로마 사회로부터 점차 위험한 비사회적 종교, 즉 ‘미신’(superstitio)로 인식되기 시작했다.8)

 

     8) Udo Schnelle, Apostle Paul: His Life and Theology, trans. by M. Eugene Boring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05), 302-304, 383.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Seneca)는 감정적 격분이나 육체 적 자학을 동반한 종교 행위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러한 행위를 하는 종교를 ‘미신’(superstitio)으로 보았다.

유대교는 이러한 형태의 제의와 는 구별되지만, 안식일 준수와 유대인의 관습 때문에 미신의 범주에 포함되었다.9)

 

     9) Seneca의 De Superstitione은 전해지지 않으며, 일부 단편만 Augustine, De civitate Dei 6.11에 보존되어 있다. Augustine은 Seneca가 “정치신학의 다른 비난받을 만한 미신들 가운데 히브리인들의 신성한 제도들, 특히 그들의 안식일”을 포함했다고 전한다. 이어서 그는 유대인의 관습이 세계로 퍼졌고,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예식의 이유와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적어도 Augustine에 보존된 이 단편에 따르면, Seneca는 유대인의 제도와 안식일 역시 비판 대상인 superstitio의 범주 안에 넣고 있었다. Seneca, De Superstitione, frag. preserved in Augustine, De Civitate Dei 6.11, in The City of God, Books I-VII, trans. by Demetrius B. Zema and Gerald G. Walsh, The Fathers of the Church 8 (Washington: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1950), 335. 당시 기독교는 사회에서 유대교와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 Mark D. Nanos, The Mystery of Romans: The Jewish Context of Paul’s Letter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6), 14, 31. 

 

로마의 종교 담론에서 superstitio는 단순히 낯선 종교를 가리키는 중립적 표현이 아니라, 전통적 religio의 규범에서 벗어난 집 단에 대한 비난과 낙인으로 사용되었다.10)

이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 이 사회적 불신과 압박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카터(Warren Carter)는 이러한 맥락에서 실제적인 박해가 있었을 법 한 정황을 설명한다.

여기서 그가 의미하는 박해는 네로 황제의 박해 와 같은 제국 차원의 제도적 행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대신, 로 마 그리스도인들이 제국 질서 속에서 경험하던 실제적인 사회적 적대 와 지역적 압박을 의미한다.11)

그러므로 로마 교회가 겪은 박해는 당 시 사회에서 제도적이고 전면적인 박해라기보다, 로마 도시 공간에서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속한 집단이 일상적으로 경험했던 사회적 적대 와 지역적 압박의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당시 로마 사회 는 권력자들이 사회에서 비교적 낮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에게 지속 적으로 부당한 압박을 가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12)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전제로 할 때, 키즈마트(Sylvia C. Keesmaat) 역시 로마서 12장이 공동체를 억압하는 외부 세력과의 관계를 전제한 다고 보며, 로마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압박과 적대적 분위기 에 노출되어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13)

 

    10) 로마의 종교 담론에서 religio와 superstitio는 각각 정당한 종교 행위와 부적절한 종교 행위를 가르는 핵심 범주였으며, 특히 superstitio는 타자를 비난하고 경계하는 언어로 기능하였다. Mary Beard et al., Religions of Rome, vol. 1, A Histo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8), 215–17.

    11) Warren Carter, The Roman Empire and the New Testament: An Essential Guide (Nash- ville: Abingdon Press, 2006), ix-x, 21.

    12) Robert Knapp, Invisible Romans: Prostitutes, Outlaws, Slaves, Gladiators, Ordinary Men and WomenThe Romans That History Forgot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2011), 14-15, 23.

    13) Keesmaat는 로마 사회 속의 박해 때문에 로마 교회의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 사이의 긴장까지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Sylvia C. Keesmaat, Paul  and His Story: (Re)Interpreting the Exodus Tradition, JSNTSup 181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9), 149.

 

 

이 점에서 카터가 말하는 사회적 적대와 지역적 압박은, 미신(superstitio)으로 인식되던 로마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실제로 경험했을 역사적 조건으로 이해될 수 있 다.

이에 비해 틸만(Frank Thielman)은 로마서 12:14의 ‘박해’를 보다 절 제된 방식으로 규정한다. 틸만은 이 구절(롬 12:14)이 구체적인 사회사 적 메커니즘을 상세히 묘사하려는 의도라기보다, 바울이 실제적인 박 해 상황을 전제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데 초점이 있다고 본다. 특히 그는 바울이 διώκειν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그것을 그리스도 인 내부의 갈등이 아니라, 불신자가 신자들에게 가하는 외부의 적대 를 가리키는 용어로 일관되게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틸 만에게서 박해는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사회적 양상으로 한정되기 보다는, 네로 이전 로마 사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직면해 있던 적대적 환경 전반을 가리키는 포괄적 개념으로 이해된다.14)

 

    14) Frank S. Thielman, Romans, Zondervan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Zondervan, 2018), 588, 592-93. Runar M. Thorsteinsson과 Troels Engberg-Pedersen 역시 교회 공동체의 외부인들로 본다. Runar M. Thorsteinsson, Roman Christianity and Roman Stoicism: A Comparative Study of Ancient Morality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0), 97; Troels Engberg-Pedersen, Paul and the Stoic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0), 265-69.

 

나아가 주엣(Robert Jewett)은 로마서 12:14의 박해를 클라우디우스 의 유대인 추방령(주후 49년)과 관련지어 이해한다.

클라우디우스의 추방이 로마서 수신자인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직접적으로 해당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클라우디우스 치하의 추방 이후 54년경 로마 교회 안 팎에서 지속되던 사회적 적대와 공동체 내부의 긴장이라는 역사적 맥 락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즉, 바울이 추방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까지 포함하는 공동체 전체의 윤리적 응답을 요 청한다는 것이다.15)

이러한 이해는 국내 연구에서도 일정 부분 지지 를 얻는다.

이승호는 클라우디우스의 유대인 정책과 추방령을 로마의 질서와 평화 유지를 우선하는 통치적 대응으로 이해한다.16)

이런 관 점은 클라우디우스 치하의 조치가 곧바로 제도적 박해를 뜻하지는 않 더라도, 로마 교회 안팎의 사회적 긴장과 불신의 배경을 형성했을 가 능성을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학자의 역사적 박해 상황에 대한 이해는 분명 바울이 ‘박해’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할 충분한 동기를 제공한다.

그럼 에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 곧 로마 교회가 직면한 외부의 박해에 대해 로마서 내부에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는다는 점은 학자들로 하여금 실제적 외부 박해를 의심하게 할 만한 정황이 되기도 한다. 가벤타(Beverly Roberts Gaventa)는 바울이 로마서 12:14에서 의도적 으로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고 본다.

그녀는 이를 바울이 특정 사건 을 로마 교회 공동체와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세한 언급을 피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의 행위자를 외부인이나 공동체 내부 인물 어느 한쪽으로 한정하지 않고 모호성을 통해 다양한 적대 관계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바울의 신학적 의도로 이해한다.17)

 

       15) Robert Jewett, Romans: A Commentary, Hermeneia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7), 765-67.

       16) Seung Ho Lee, “Claudius und Paulus,” Korean New Testament Studies 16 (2009), 1162-64. 

       17) Beverly Roberts Gaventa, Romans: A Commentary, New Testament Library (Louis- 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24), 349-51. 

 

그러나 가벤타의 해석은 바울이 특정 사건을 명시하지 않는 본문의 수사적 개방성을 잘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마 공동체가 외부 의 사회적 적대와 무관했다는 점을 뜻하지는 않는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특정한 박해 사건을 명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외부 적대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클라우디우스의 추방 이후 로마는 유대인들과 그들과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던 그리스 도 공동체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여전히 잔존하던 환경이었으며, 미 신(superstitio)이라는 낙인은 지역 차원의 배제와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따라서 로마서 12:14의 ‘박해’는 네로 시기 같은 제도적 국가 박해를 전제한다기보다, 로마의 그리스도 공동체가 도시 공간 안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사회적 적대와 취약한 위치를 반영하는 표 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그러나 바울이 그 박해를 암시 적으로만 언급하고 있을 뿐 구체적 사건을 명시하지 않는 이상, 그 역 사적 양상을 세부적으로 복원하는 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3.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윤리적 조정

 

로마서 12:14의 ‘박해’를 다르게 이해하는 관점도 있다. 그것은 박해 가 외부에서 가해졌던 것이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갈등과 긴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는 관점이다.

잉어(Kent M. Yinger)는 박해가 외부에 서 가하는 것이 아닌 로마 교회 공동체 내부의 갈등 상황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을 위해 그는 로마서 내에 외부의 박해 가 있었다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로마서 14-15장에 공동체 내부 갈 등이 매우 분명하게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διώκειν이 반드시 외부의 박해만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덧붙인다.18)

 

    18) Yinger, “Romans 12:14-21 and Nonretaliation in Second Temple Judaism,” 88-91. 

 

한편, 로마서 12:14의 ‘박해’를 다른 공동체 내부의 갈등에서 빚어진 상황으로 설명하는 관점도 있다. 나노스(Mark D. Nanos)는 박해가 발 생한 ‘공동체’를 로마의 교회 공동체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이 여 전히 속해 있던 로마의 유대교 ‘회당 공동체’라고 주장한다.

나노스에  따르면, 이방인 기독교인들은 회당에 참석하면서 ‘의로운 이방인’에게 요구되는 유대교적 행동 규범을 거부하려는 경향을 보였고, 이로 인 해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으며 그들을 복음의 ‘원수’로 간주하게 되는 긴장 상황에 놓여 있었다.19)

즉, 나노스는 당시 이방인 그리스도 인들이 유대교와 결별한 독립된 교회를 형성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유대교 회당의 권위와 보호 아래 모임을 갖고 있었다는 전제 위에서 이 박해를 해석한다.20)

반면, 에슬러는 로마서 12:14의 ‘박해’를 외부적 박해와 내부 갈등을 모두 포함한 것으로 본다.

외부적 박해는 로마 그리스도 공동체의 신 앙 때문에 외부에서 가해지는 사회적·정치적 압박으로 이해한다.

이에 더해 공동체 내부의 갈등은, 잉어의 주장과 같이, 로마 교회 내의 유 대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의 긴장, 즉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 의 상호 비난과 소외를 일종의 내부적 ‘박해’ 혹은 ‘공격적 태도’로 설 명한다.21)

 

     19) Nanos, The Mystery of Romans, 322-24, 347.

     20) Nanos, The Mystery of Romans, 14, 31.

     21) Esler, Conflict and Identity in Romans, 329-30.

 

이상의 학자들이 제시하는 공동체 내부 갈등에 기초한 해석 역시 일정한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서 12:20에서 박해를 가 하는 자들을 ‘원수’로 지칭하고 있다는 점은, 이 구절을 단순한 공동체 내부 분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하는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공동체 내 부의 갈등 상황에서 바울이 특정 집단을 일방적으로 ‘원수’로 규정하 는 것은 전체 공동체의 결속을 도모하려는 수사 전략에 오히려 방해 되기 때문이다.

그 예가 바로 잉어의 해석이다.

그는 로마서 12:14–21의 ‘원수’ 표현 을, 공동체 내부에서 동료 구성원에게 잘못을 당했을 때 개인적 보복을 금하고 하나님의 복수 권한에 맡기며, 가능하면 선행과 화평으로 응답하도록 가르치는 제2성전기 유대교의 비보복 전통과 연결한다.

잉어에 따르면 이 전통은 공동체 내부 갈등 상황에서 형성된 규범적 응답 방식으로, 악을 악으로 갚지 말 것, 복수하지 말 것, 선으로 대할 것, 그리고 공동체의 사랑과 평화를 유지할 것을 강조한다.22)

그러나 그가 제시하는 병행 자료들은 대부분 공동체 내부 규칙서나 교훈 문학으로서, 외부의 권위자가 실제 분쟁 중인 공동체에 서신으 로 개입하는 담화 상황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차이는 수사적 효과 면 에서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내부 규율 문서에서는 갈등 상대를 ‘원수’ 로 규정하는 것이 질서 유지를 위한 경고로 기능할 수 있지만, 외부의 권위자가 공동체의 한쪽을 부정적으로 명명하는 것은 오히려 적대 구 도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또한 잉어는 박해라는 단어(διώκειν)가 공동체 내부 혹은 적어도 내 부/외부의 경계가 흐려진 유대 종파적 갈등 상황에서도 사용될 수 있 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가 이 주장을 전개하는 직접적이고 주된 근 거는 바울서신 자체라기보다 1QS 10.17-18을 비롯한 제2성전기 유대 문헌들이다.23)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용례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조적 으로 뒷받침하는 예로 제시된다.24)

 

     22) Yinger가 제시하는 제2성전기 유대교 내부 갈등 규율 전통의 자료들은 다마스커스 문서(Damascus Document 9.2-5), 공동체 규칙서(1QS 10.17–18), 슬라브어 에녹서 (Slavonic Enoch 50.3-4), 갓의 유언(Testament of Gad 6-7), 유사 포킬리데스 (Pseudo-Phocylides 76-78), 그리고 요셉과 아스넷(Joseph and Aseneth 28:10, 14)이 다. Yinger, “Romans 12:14-21 and Nonretaliation in Second Temple Judaism,” 74, 85-86, 92.

    23) Yinger, “Romans 12:14-21 and Nonretaliation in Second Temple Judaism,” 77-86, 90-91.

    24) Yinger가 제시하는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용례는 다음과 같다. 마 5:10-12, 10:16-23, 23:34; 눅 11:49, 21:12-19; 갈 4:29; 5:11; 살전 2:15.

 

특히 바울서신의 경우 잉어는 이 를 명백한 교회 내부 사례로 단정하지 않고 바울의 복음에 대항하는 유대인 혹은 유대-그리스도인 반대자들의 활동으로 설명한다.

이 경 우 내부자와 외부자의 구분은 다소 흐려지며, 따라서 바울서신에 나 타나는 박해의 사례는 완전히 공동체 내부의 갈등이라기보다 유대-그 리스도인 종파적 갈등 속에서 안과 밖의 경계가 중첩되는 경우를 보 여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바울의 친서에서 διώκειν은 특히 자 신이 교회를 박해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맥락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다(고전 15:9; 갈 1:13, 23; 빌 3:6). 물론 이 동사는 친서 안에서도 반드 시 그러한 경우에만 쓰이는 것은 아니며, 실제 박해를 가리키는 다른 용례들(고전 4:12; 고후 4:9; 갈 4:29, 5:11, 6:12)과 ‘추구하다’라는 의미 의 용례들도 함께 존재한다.25)

 

      25) ‘추구하다’라는 의미의 용례들은 다음과 같다. 롬 9:30, 9:31, 12:13, 14:19; 고전 14:1; 빌 3:12, 14; 살전 5:15.

 

그럼에도 ‘박해’라는 강한 표현 자체는 단순한 의견 충돌이나 일시적 긴장만이 아니라, 힘의 비대칭과 반복 적·지속적 공격이 수반되는 관계를 연상시킨다.

이런 점에서 로마서 12:14를 공동체 내부 갈등의 차원에서 조명하려는 잉어의 해석은 중 요한 통찰을 제공하지만, 그 박해를 공동체 내부의 갈등으로만 환원 하는 경우 본문이 지닌 언어적 강도와 폭력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 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연구사를 종합할 때, 로마서 12:14-21의 박해 언어는 보편적 윤리 격언이나 공동체 내부 갈등 규율로만 환원되기 어렵다.

바울이 다른 서신들에서 διώκειν을 사용하는 방식, 그리고 ‘원수’와 ‘악’이라는 어휘가 형성하는 담화의 강도를 함께 고려하면, 이 표현들은 로마 도 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던 외부의 적대와 권 력 비대칭 구조를 최소한 전제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만 이어지는 공감의 권면 역시 그 사회적 무게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III. 바울의 공감 권면과 그 사회적 의미

 

바울은 로마서 12:14에서 ‘박해’를 언급한 후, 박해당한 피해자들을 위해 행동할 것을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권면한다.

그것은 바 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라는 공감의 태도이다.

이 공감의 태도는 당시 로마 사회에 퍼져 있던 스토아적 감정 윤리와 구조적인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다.

이러 한 맥락에서 바울의 공감 명령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을 넘어,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여 그들과 연대함으로써 제국 사회의 감정 질서와 구별 되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로마 교회에 부여하는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로마 제국의 심리적 토대: 스토아적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 사회에 통용되던 스토아 철학은 제3기(후기) 스토아 철학으로 구분된다.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300년 경 키티온(Citium)의 제논(Zeno)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그 뿌리는 견유 학파를 거쳐 소크라테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철학은 논리학, 자 연학, 윤리학의 세 부분이 조화롭게 통합된 매우 복잡하고 정밀한 체 계를 갖추고 있었다.26)

 

    26) Timothy A. Brookins, Greek & Roman Philosophy: A Survey for Students of the New Testament (Peabody: Hendrickson, 2025), 73-75.

 

스토아 철학의 핵심은 우주를 지배하는 신성한 이성(λόγος)에 따라 조화로운 삶을 살며,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외적 환경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덕’(ἀρετή)을 통해서만 인간적 번영(εὐδαιμονία)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외적 조건들은 ‘무관한 것들’로 분류되며, 불행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다고 이해된 다. 따라서 분노나 두려움 같은 정념(πάθη)은 교정되어야 할 오류적 판단의 결과이며, ἀπάθεια는 감정의 제거가 아니라 이성에 의해 통제 된 평정의 상태를 가리키며, 이러한 이상을 향한 훈련과 실천이 스토 아 철학의 핵심으로 제시된다.27)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스토아 철학은 후기 스토아 철학으로 구분된다.

토르스타인손(Runar M. Thorsteinsson)에 따르면 후기 스토아, 곧 로마 스토아 철학은 기원전 2세기 파나이티오스(Panaetius)가 로마에 스토아 사상을 소개한 데서 출발하여, 기원전 1세기 키케로(Cicero)의 라틴어 저술과 체계적 보급을 통해 로마 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 었으며, 특히 1-2세기 제국 로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28)

후기 스토아 철학의 특징은 논리학·자연학·윤리학이라는 고전적 삼 분법을 유지하면서도, 이 시기에 이르러 윤리를 철학의 중심 영역으 로 부각하고 삶의 실천과 도덕 훈련에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초기 스토아의 교리를 계승하면서도 공동체적 책임과 현실 적용을 강조하 는 방향으로 발전하였다.29)

이에 따라 후기 스토아는 ἀπάθεια를 이론 적으로 다루기보다, 평정과 자기 수양, 사회적 책임의 실천이라는 방 향으로 강조한다.30)

 

     27) Brookins, Greek & Roman Philosophy, 75-82.

     28) Thorsteinsson, Roman Christianity and Roman Stoicism, 13.

     29) Thorsteinsson, Roman Christianity and Roman Stoicism, 15-16.

     30) Runar M. Thorsteinsson, “Paul and Roman Stoicism: Romans 12 and Contemporary Stoic Ethics,” JSNT 29 (2006), 155-57.

 

이러한 후기 스토아 철학은 로마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토르스타인손은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Seneca)가 황제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영향력이 정점에 달할 때였다고 지적한다.31)

이를 감안하면, ἀπάθεια는 로마 엘리트층의 정신적 태도로서 제국의 질서 유지에 기 여하는 기능도 하였다.

그렇다고 스토아 철학이 오로지 상류층에서만 전유된 것은 아니다.

노예 출신인 에픽테토스(Epictetus)가 노예 상태 에서 스토아 철학을 공부했었다는 사실을 통해 1세기 중엽 당시 사회 의 상류층과 하층민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2)

토르스타인손도 스토아 철학이 이미 기원전 1세기에 가장 인 기 있는 철학이었다고 설명하며, 교육받은 소수의 사람뿐만 아니라 사회의 하층민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설명한다.33)

요컨대, 1세기 로마 사회에서 스토아적 ἀπάθεια는 단순한 철학적 이 론을 넘어 제국의 안정을 지탱하는 보편적인 ‘심리적 문법’이자 감정 통제의 질서로 기능하고 있었다.

이러한 철학적 환경은 어떤 고난 앞 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개인의 주체성을 찬양했으나,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의도적 거리두기를 미덕으로 삼는 사회적 분위기 를 형성했다.34)

 

    31) Thorsteinsson, “Paul and Roman Stoicism,” 142.

    32) Thorsteinsson, “Paul and Roman Stoicism,” 142.

    33) Runar M. Thorsteinsson, “Stoicism as a Key to Pauline Ethics in Romans,” Stoicism in Early Christianity, ed. by Tuomas Rasimus et al.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0), 18-19.

    34) Seneca는 관용에 관하여(De Clementia)에서 연민을 스토아적으로 덕이 아닌 정 념으로 분류하며, 이를 판단을 흐리는 정신의 병적 상태(vitium, aegritudo animi)로 규정한다. Seneca, De Clementia 2.5.1-2, in Moral Essays, vol. 1, trans. by John W. Basore, Loeb Classical Library 214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28), 438. 또한, Esler는 타인의 슬픔을 공유하는 행위는 스토아주의자들에게 ‘훨씬 더 무의 미하고 몰상식한’ 일로 여겨졌다고 설명한다. Philip F. Esler, “Paul and Stoicism: Romans 12 as a Test Case,” New Testament Studies 50 (2004), 123. 

 

바로 이 견고한 제국적 감정의 토대 위에서, 바울은 스토아적 가치관에 익숙한 로마 교회 구성원들을 향해 전혀 다른 차 원의 감정적 응답을 요청한다. 물론 스토아 철학이 모든 감정을 동일하게 배제한 것은 아니다.

스 토아 철학은 비이성적 정념(πάθη)을 경계하면서도, 이성에 합치하는 ‘좋은 감정’(εὐπάθειαι)의 가능성은 인정하였다.35)

그러나 이러한 감정 역시 어디까지나 이성의 통제 아래 놓인 정서적 상태를 의미하는 것 이지, 타인의 고통으로 들어가 함께 정서를 공유하는 방식의 참여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36)

 

     35) Richard Sorabji, Emotion and Peace of Mind: From Stoic Agitation to Christian Temp- tatio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47-50.

     36) Sorabji의 설명에 따르면, 스토아가 인정한 εὐπάθειαι는 참된 판단에 근거한 이성적 이고 안정된 정서 상태이며, 이러한 틀 안에서 스토아 철학은 타인의 고통에 정서 적으로 동참하는 방식의 연민을 적극적으로 정당화하는 방향과는 거리를 둔다. Sorabji, Emotion and Peace of Mind, 48-49, 390.

 

이런 점에서 바울이 요청하는 공감은 단 순한 감정 허용을 넘어, 스토아적 감정 이상과 구별되는 공동체적 공 감 실천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2. 스토아적 ἀπάθεια에 맞서는 바울의 공감 권면

 

바울은 로마서 12:14에서 박해의 상황을 언급하고, 바로 이어서 타 인에 대한 공감을 권면한다. 그것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 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라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는 자들’만 언급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자들’도 언급된 사실은 확실히 이 구절을 일반적인 윤리 권면으로 볼 가능성을 일정 부분 열어둔다. 한 예로, 던은 로마서 12:15과 유사한 다른 여러 유대 문헌을 병행 자료 로 제시하며, 이 구절을 전통적 지혜 격언의 계열 안에서 설명한다.37)

 

     37) James D. G. Dunn, Romans 9-16, WBC 38B (Dallas: Word Books, 1988), 745-46. 

 

하지만 던이 제시한 자료들에는 로마서 12:14-15와 같이 박해 같은 사회적 갈등 상황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이 사실은 15절의 내용이 유 대 문헌들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더라도, 그것이 로마서 문맥 안에서 갖는 특수성을 고려하게 만든다.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할 때, 15절 을 14절과 분리해서 읽지 않는 한, 14절의 ‘박해’라는 표현은 15절의 ‘우는 자들’에 더 큰 해석적 무게를 부여한다.

그러나 바울이 “우는 자들”만이 아니라 “즐거워하는 자들”도 함께 언급한다는 사실은, 그의 공감 명령이 단지 고난에 대한 반응만이 아 니라 공동체의 정서적 삶 전체를 포괄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박해와 사회적 취약성의 환경 속에서 타인의 슬픔을 함께 짊어지는 일뿐 아 니라, 공동체 안에서 발생하는 기쁨과 회복의 순간을 함께 기뻐하는 일 역시 공동체 결속을 강화하는 실천이 된다.

따라서 로마서 12:15의 전반부는 후반부에 종속된 부차적 요소가 아니라, 외부 적대 속에서 도 공동체가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며 삶의 방향을 함께 형성해 가도 록 하는 바울의 감정 윤리의 한 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로 마서 12:15은 바울이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적 상황 속에 서 제시하는 권면일 뿐 아니라, 당대 로마 사회에서 지배적이던 감정 윤리와의 긴장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바울이 활동하던 1세기 지중해 세계는 후기 스토아 윤리가 대중적 도덕 담론의 형태로 광범위하게 유통되던 문화적 환경이었다.

다소 출신(행 22:3)의 바울이 헬레니즘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으며, 그의 서신 곳곳에서 나타나는 윤리적 권면의 형식 과 논증 방식 역시 이러한 문화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38)

 

     38) Abraham J. Malherbe는 바울의 헬라적 배경을 설명한다. Abraham J. Malherbe, Paul and the Popular Philosopher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2), 67-68. Engberg- Pedersen은 바울의 윤리적 권면이 스토아적으로 구성된 논리적 패턴을 따르며, 헬 레니즘 도덕 철학과 광범위한 구조적 유사성을 공유한다고 주장한다. Engberg- Pedersen, Paul and the Stoics, 11, 116.

 

따라서 바 울은 로마 도시 문화에서 통용되던 스토아 윤리를 잘 알고 있었을 가 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접점이 곧바로 철학적 종속이나 단순한 차용을 의미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당대에 널리 유포되던 윤리 언어를 끌 어오면서도, 그 전제와 방향을 근본에서부터 전환하는 방식으로 자신 의 권면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스토아 철학이 감정의 동요를 제거 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외적 사건으로부터 자족적인 주체를 형성하 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바울은 로마서 12:15에서 정반대로 타인의 기 쁨이나 슬픔으로 들어가 자신을 노출하는 공동체적 실천을 요청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로마서 12:15의 공감 명령을 바울이 제국 사회에서 널리 유통되던 스토아 윤리에 맞서 새로운 감정 윤리를 제시하는 것 으로 이해될 수 있다.39)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바울의 공감 권면은 새로운 공동체적 감정 규범을 제안하는 전략적 개입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Ian Y. S. Jew)는 바울이 특정한 “감정 체제”를 형성함으로써 감정이 신앙과 공동체 정 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기제로 작동하도록 했다고 분석한다.40)

그의 연구에 따르면 바울에게서 ‘올바른 감정’은 단순한 내적 상태가 아니 라, 신앙 고백과 사회적 실천을 결속시키는 장치이며, 공동체 내부의 소속감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부 세계와의 경계를 가시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41)

 

      39) Thorsteinsson은 1세기 당시 스토아 철학이 로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철학이었다고 설명한다. Thorsteinsson, Roman Christianity and Roman Stoicism, 13-14.

     40) Jew는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서를 중심으로 바울이 감정 표현을 규율함으로써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했다고 분석하며, 바울 공동체 전반에 적용 가능한 해석 틀 로 제시한다. Ian Y. S. Jew, Paul’s Emotional Regime: The Social Function of Emotion in Philippians and 1 Thessalonians (London: T&T Clark, 2021), 182-83.

    41) Jew, Paul’s Emotional Regime, 151-52.

 

이러한 분석은 로마서 12:15을 단순한 개인 윤리 차원의 권면이 아니라, 로마 교회가 어떠한 감정적 성향을 통해 자신들의 집 단 정체성을 형성하고 제국 사회와의 경계를 설정하는지를 규정하는 공동체 형성 전략으로 읽게 만든다.

즉, 타인의 기쁨과 슬픔에 참여하 라는 명령은 감정의 자기 통제를 이상으로 삼던 당대의 윤리 지형 속 에서, 신자들의 감정이 어디에 정렬되어야 하는지를 재구성하는 시도 이며, 이를 통해 바울은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생산하는 감정의 정 치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바울은 로마서 12:15에서 “즐거워하라”(χαίρειν)와 “울라” (κλαίειν)라는 명령적 부정사를 사용하여 공감을 권면한다. 명령적 부 정사는 헬라어 문학에서 드물지 않게 발견되는 형태이며, 문맥상 공 동체적 권면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42)

여기서 주 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한 가지 감정만 언급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즐거움과 슬픔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으로, 타인과 공감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포괄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상반 된 두 감정을 병렬적으로 배열한 것은 특정 상황의 한 정서만을 강조 하기보다, 공동체의 정서적 삶 전체가 ‘함께함’이라는 원리 아래에 새 롭게 형성되어야 함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여기서 “즐거워하라”라는 요청은 단순한 보편 윤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기쁨까지도 개인의 사 적 감정으로 남겨 두지 않고 상호적 연대의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명령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감정의 병치는 전 3:1–8에 나타나는 데, 특히 전도서 3:4은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라고 표현하여 포괄적(universal) 인간 경험을 감정으로 표현한다.43)

 

    42) Dunn은 Homer가 자주 사용하고 빌립보서에도 등장한다고 말한다. Dunn, Romans 9-16, 745. 고전 그리스어 문법에서도 독립 부정사가 명령 기능을 수행하는 용례가 인정된다. Juan Coderch는 명령적 부정사를 별도 항목으로 다루면서, 대표적인 예로 Thermopylae 비문의 ἀγγέλλειν을 그 예로 제시한다. Juan Coderch, Classical Greek: A New Grammar (Fife, Scotland: Classical Greek Taught and Read, 2012), 270.

    43) Roland E. Murphy, Ecclesiastes, WBC 23A (Dallas: Word Books, 1992), 33. 

 

또한 바울은 15절에서 ‘함께’(μετά)라는 전치사를 사용하여 대상에 대한 공감의 성격을 연대로 규정한다. 특히 μετά가 두 감정 명령 모두 에 반복적으로 결부된다는 점은 중요하다. 바울은 기쁨과 슬픔 어느 하나만이 아니라, 상반된 정동 전체를 ‘함께’의 관계 속에 위치시킴으 로써 공동체 구성원들이 타인의 정서를 외부의 사건으로 두지 않고 자신들의 삶 안으로 받아들이도록 요청한다. ‘함께’하기 위해서는 반 드시 물리적·관계적 거리를 좁혀 대상의 곁으로 다가가야 하기 때문 이다.

이는 공감해야 할 대상의 개인적 공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 미하는 동시에, 그 대상을 자기 삶의 영역 안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함 의한다.

이러한 감정적 연대의 요청은 당대 스토아 전통에서 이상적인 인간 상으로 제시되던 감정 통제 윤리, 곧 ἀπάθεια의 이상과 직접적인 대비 를 이룬다.

예를 들어, 에픽테토스는 엥케이리디온(Enchiridion) 16에 서 슬픔에 잠긴 이를 만날 때 겉으로는 함께 신음할 수 있지만, 내면 적으로는 동요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권한다.44)

곧 외적 동조 는 허용되더라도 내적 동요는 금지된다는 점에서 스토아적 자기통제 의 이상이 드러난다. 이러한 권면은 외적 사건으로부터 자족적인 이 성의 주체를 보존하려는 스토아적 이상을 잘 보여준다.

세네카의 황 제 윤리 역시 유사한 방향에서 감정의 거리두기를 요청한다.

관용에 관하여(De Clementia)에서 그는 연민(misericordia)을 판단을 흐리게 하 는 정념, 곧 결함(vitium)의 한 형태로 규정하며, 공적 삶에서는 감정에 압도되지 않는 절제된 판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45)

 

   44) Epictetus는 사랑하는 자가 슬퍼할 때 “그와 함께 신음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동시에 그 슬픔에 내적으로 휩쓸리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권한다. Epictetus, Enchiridion 16, in Ancient Philosophy; or, The Enchiridion of Epictetus, and Chrusa Epe of Pythagoras, trans. by The Hon. Thomas Talbot (Montreal: John Lovell, 1872), 37.

   45) Seneca는 현명한 통치자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무감각해야 한다기보다 감정에 압 도되지 않는 절제된 판단을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세네카의 자비는  타인의 고통을 함께 짊어지는 공감이라기보다, 거리두기 속에서 실행되는 통치자 의 덕목에 가깝다. Seneca, De Clementia 2.5.1-2, 438. 

 

이와 같은 스토아적 감정 윤리는 로마서 12:15에서 바울이 요구하 는 태도와 구조적으로 충돌한다. 바울은 슬픔을 마주할 때 외면적 동 조에 머무르지 않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고 명령함으로써 타인 의 정서 안으로 들어가는 참여를 요청한다. 여기서 바울의 공감은 단 순히 감정을 허용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스토아의 εὐπάθειαι가 이성에 의해 질서 지워진 내적 상태를 가리킨다면, 바울의 “함께 울 라”라는 타인의 고통을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짊어지도록 요구하는 관 계적·상호적 참여를 지향한다. 에슬러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바울의 권면이 스토아 전통과 완전히 다른 감정 논리를 전제하고 있으며, 바 울의 권면이 당시 엘리트 윤리의 관점에서는 몰상식하거나 위험하게 보였을 수도 있는 실천이었다고 평가한다.46)

 

    46) Esler의 주장의 핵심은 바울의 윤리가 스토아의 윤리와 유사성이 있지만 근본적으 로는 갈라섰다는 것이다. Esler, “Paul and Stoicism,” 120-23. Thorsteinsson은 Esler의 주장에 반박하며, 오히려 바울의 윤리에 스토아 윤리와의 차이보다 유사성이 더 많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Thorsteinsson 역시 롬 12:15이 당대 사람들에게 비스토 아적으로 들렸을 가능성을 인정한다. Thorsteinsson, “Paul and Roman Stoicism,” 156. 

 

요컨대, 로마서 12:15에 나타난 바울의 공감 권면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제국의 지배적 감정 윤리였던 스토아적 ἀπάθεια에 대한 능동적 인 저항의 산물이다. 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개인을 외부의 고통에 동요하지 않는 자족적 주체로 정립하며 초연함을 유지하는 것을 미덕 으로 삼을 때,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공감하 며 연대하도록 권면한다. 이러한 공감의 실천은 로마 제국에 흐르는 감정 질서에 균열을 내며, 박해받는 자들의 슬픔을 공동체 형성의 접 점으로 삼는 새로운 저항적 정체성을 구축한다. 이로써 바울의 공감 권면은 고난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제국의 사회적 분위기와 구별 짓는 신학적·정치적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이상을 종합하면, 로마서 12:15의 공감 명령은 후기 스토아 철학이 형성한 제국 사회의 지배적 감정 체제인 ἀπάθεια에 반하는 급진적 요 청이었다.

이러한 권면은 로마 교회가 어떠한 감정적 방향성 속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야 하는지를 제시하였으며, 박해의 현실 속 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가시화하고 제국 사회의 질서와 거리를 두는 공동체적 실천으로 기능하였다.

 

 

IV. 결론

 

본 논문은 로마서 12:14-15을 둘러싼 해석의 쟁점을 검토하고, 바울 의 공감 권면이 제시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재구성함으로써, 이 본 문의 역사적 무게와 윤리적 급진성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였다.

특 히 로마서 12:14의 ‘박해’(διώκειν)를 보편적 윤리 격언이나 공동체 내 부 갈등 규율로 환원하는 해석들을 검토하는 한편, 바울의 어휘가 형 성하는 담화의 강도와 1세기 로마 도시 사회의 위계적 권력 구조를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이 표현들이 로마 교회가 지속적으로 노출되 어 있던 외부의 적대와 사회적 취약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논증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 위에서 비로소 로마서 12:15의 공감 명령의 사 회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바울의 공감 권면은 단순히 개인 윤리의 차원을 넘어 후기 스토아 철학이 형성한 감정 절제의 윤리, 곧 ἀπάθεια 가 지배하던 로마 사회의 도덕 담론과 구조적 긴장 관계에 놓여 있었 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는 것을 이상으로 삼던 로마 제국 사회의 감정 질서와 달리, 바울은 ‘함께’ 울고 즐거워하라는 요청을 통해 신자들이 타인의 정서 안으로 들어가 연대하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공감의 실천은 공동체의 감정 배치를 재구성하고, 로마 사회에서 통용되던 지배적 윤리와 구별되는 집단 정체성을 형성 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결국, 본 논문이 제시한 바는, 로마서 12:14-15은 로마 교회가 처한 실제적인 사회적 적대의 환경을 전제하고 있으며, 바울의 공감 권면 이 후기 스토아 윤리가 지배하던 제국 사회의 감정 체제에 맞서 공동 체의 실천을 재조직하는 저항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이는 바울 윤리를 단순히 헬라 철학과의 유사성이나 차이의 문제로 돌리기보다, 제국의 사회적 조건 속에서 공동체의 감정과 관계를 재배열하는 전략 적 개입으로 읽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로마서 12:15의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라 는 요청은 단지 고난당하는 이들을 위로하는 권면이 아니라, 박해라 는 상황 속에서 공동체가 자신들의 사회적 위치와 윤리적 방향성을 새롭게 규정하도록 촉구하는 수행적 발화라 할 수 있다.

바울의 공감 윤리는 로마 제국 사회에 흐르던 감정 규범과 거리를 두며, 상호 취약 성의 공유를 통해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한다 는 점에서, 로마서의 윤리적 단락을 해석하는 데 중요한 사회사적·문 화비평적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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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은 로마서 12:14-15을 둘러싼 해석의 쟁점을 검토하고, 바울의 공감 권면이 제시된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재구성함으로써 이 본문의 역사적 의미와 윤리적 급진 성을 분석한다. 기존 연구는 이 단락을 보편적 윤리 격언으로 이해하거나, 로마 교회가 처한 구체적 박해 상황의 반영으로 읽거나, 또는 공동체 내부 갈등을 조정하기 위한 권면으로 해석해 왔다. 본 논문은 이러한 해석 지형을 정리한 뒤, 로마서 12:14에서 바울이 사용한 어휘가 형성하는 담화의 강도, 그리고 1세기 로마 도시 사회의 위계적 권력 구조를 함께 고려할 때, 이 표현들이 외부 사회의 지속적인 적대와 공동체의 사회 적 취약성을 전제하고 있음을 논증한다. 이러한 역사적 조건 위에서 로마서 12:15의 공감 명령은 단순한 개인 윤리를 넘어선 사회적 실천으로 드러난다. 본 논문은 후기 스토아 철학이 형성한 감정 절제의 윤리, 곧 아파테이아(ἀπάθεια)가 제국 로마의 지배 적 감정 규범으로 기능하던 맥락 속에서, 바울의 요청이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도록 공동체의 감정 배치를 재구성하는 대안적 윤리였다고 주장한다. ‘함께’ 울고 즐거워하 라는 명령은 제국 사회의 감정 질서와 구별되는 공동체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수행적 행위로 작동하며, 박해받는 이들의 고통을 공동체 결속의 핵심 지점으로 전환한다는 82❙신약논단 제33권 제1호∙2026년 봄 것이다. 이로써 본 논문은 롬 12:14-15을 사회사적 배경, 스토아 윤리, 감정 규범의 문제를 교차시키는 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바울의 윤리를 제국 사회의 감정 체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으로 읽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로마서의 윤리 단락을 해석하는 데 새로운 분석 틀을 제공한다.

주제어 로마서 12:14-15, 박해, 함께 울라, 스토아 철학, 바울의 감정 윤리

 

Abstract

Paul’s Emotional Ethics Against the Emotional Ethics of Imperial Society  A Study of Romans 12:14-15

Seol, Jaeroc (Institute of Christianity and Korean Culture, Yonsei University, Research Fellow)

This article examines interpretive debates surrounding Romans 12:14-15 and clarifies the historical weight and ethical radicality of the passage by reconstructing the social and cultural contexts in which Paul’s exhortation to empathy was articulated. Previous scholarship has interpreted this unit as general ethical maxims, as reflecting persecution faced by the Roman church, or as admonitions regulating conflicts within the community. After surveying these approaches, the article argues that the discursive force of the voca- bulary in Romans 12:14, together with the hierarchical power structures of first-century urban Roman society, presupposes sustained external hostility and the social vulnerability of Roman believers. Against this backdrop, the social significance of the empathetic command in Romans 12:15 comes into focus. The article contends that Paul’s exhorta- tion transcends individual morality and functions as social practice. Situated within a context in which late Stoic philosophy  especially the ethic of  emotional restraint embodied in apatheia  shaped imperial moral discourse, Paul’s appeal promoted an alternative ethic that reconfigured the community’s emotional dispositions by drawing believers into participation in others’ suffering. The injunction to rejoice and weep “with” others thus operates as a performative act forging a communal identity distinct from the empire’s emotional order. In this way, the article rereads Romans 12:14-15 at the intersection of social-historical reconstruction, Stoic ethics, and emotional norms, proposing that Paul’s moral vision be understood as a critical intervention into the empire’s emotional regime and offering a new analytical framework for inter- preting Romans’ ethical discourse.

 

Keywords Romans 12:14-15, persecution, weep with those who weep, Stoic Philo- sophy, Paul’s emotional ethic

 

(투고일: 2026. 02. 11. 최종심사일: 2026. 03. 03. 게재확정일: 2026. 03. 07.) 

신약논단 제33권 제1호(2026년 봄)/81~110  

제국 사회의 감정 윤리에 맞서는 바울의 감정 윤리 - 로마서 1214-15을 중심으로.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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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i: https://doi.org/10.31982/KNTS.2026.03.31.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