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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은총 중심적 책임성(Responsible Grace)의 신학적 재구성과 한국적 맥락에서의 실천-존 웨슬리의 선행 은총론을 중심으로-/최광진.호서大

 

현대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구조 속에서 개인의 성취를 절대화하며 실패의 책임을 과도하게 개인에게 전가하는 ‘책임의 과잉’과 거대한 구조적 악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이를 운명으로 수용하는 ‘실존 적 운명론’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양극화는 한국교회 내에서도 실천 주의적 헌신 강요와 신비주의적 책임 유보라는 형태로 재현된다.

이러한 분열적 구조는 하나님의 주권(Grace)과 인간의 응답(Responsibility)을 대립적으로 이해하는 신학적 오류에서 기인한다.

이에 본 연구는 웨슬리 의 선행 은총 이해를 통해 인간을 자율적 주체로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성령의 은총 안에서 ‘응답 가능한 인격’으로 회복시키는 신학적 틀을 고찰하고자 한다.

현대 사회와 교회 안에 나타난 은총과 책임의 왜곡된 분리는 인간의  주체성을 절대화하거나 반대로 무력화하는 두 극단을 낳으며, 신학적으 로도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응답 사이의 관계를 재사유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은총의 우선성과 인간 책임의 실재를 동시에 포괄하려는 신학적 모형은 오늘의 상황에 중요한 해석학적 자원 을 제공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존 웨슬리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을 대립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상호 긴장 속에서 통합 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1)로 주목될 수 있다.

존 웨슬리의 구원론은 하나님의 은총 이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웨슬리에게 은총은 단지 죄를 용서하는 신적 선언에 머물지 않고, 타락한 인간 존재를 치유하고 새롭게 갱신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로 이해된 다.2)

이러한 은총 이해의 핵심에는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이 있다.

선행 은총은 인간의 결단 이전에 먼저 역사하여 인간을 하나님께로 향하 게 하고, 동시에 인간이 응답하거나 거부할 가능성을 열어 주는 성령의 예비적 사역이다.3)

 

   1) 국내 연구에서도 웨슬리의 은총론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통합하려는 ‘복음적 신인협동설’로 이해되어 왔다. 오성욱은 웨슬리 신학이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 문제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며, 동시에 “인간의 협력 가능성과 책임의 여지”를 인정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본 연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러한 논의를 선행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이성, 양심, 자유의지의 구조를 중심으로, ‘은총 중심적 책임성’이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하고자 한다. 오성욱, “존 웨슬리의 사변형 원리와 맥클렌돈의 침례교 비전의 대화 ― 북미 감리교와 침례교의 신학방법론과 강조점을 중심으로,” 「한국조직신학논총」 49 (2017): 135-167.

     2) Theodore Runyon, The New Creation: John Wesley’s Theology Today (Nashville: Abingdon Press, 1998), 26.

     3) 웨슬리는 “사랑의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라고 설교하면서 보편적 구원에 대하여 명시적으로 진술한다. John Wesley, “Sermon 120: “On the Wedding Garment,” The Works of John Wesley, 14 vols., vol. I, ed. Thomas Jackson, 3rd ed., complete and unabridged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79), 317. 이하 Works로 표기.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없이 창조하셨으나, 우리 없이 구원하지 않으신다”라고 주장하면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서 시작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의지와 응답을 제거한 채 구원하지 않으신다고 진술한 다. John Wesley, “Sermon 85: 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 Works, vol. II, 513. 

 

따라서 선행 은총은 하나님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소멸시키지 않는 웨슬리 신학의 구원론적 균형을 형성한다.4)

 

      4) Ibid.; Runyon, The New Creation, 27-28.

 

본 연구의 목적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를 구원론적 구조 안에서 재구성하고, 그 선행 은총이 타락한 인간 안에서 이성(reason), 양심 (conscience), 자유의지(free will)를 어떻게 회복시켜 책임 있는 신앙적, 윤리적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지를 규명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본 연구는 선행 은총을 단순한 ‘구원 이전의 준비 단계’로 축소하지 않고 인간의 인지, 도덕, 의지의 회복을 매개하는 성령의 선행적 역사로 분석함으로 써, 신적 주도성과 인간 책임성의 조화를 설명하는 신학적 틀을 제시하고 자 한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첫째, 웨슬리 구원론에서 선행 은총은 어떤 개념으로 규정되며 그 신학적 기능은 무엇인가,

  둘째, 선행 은총으로서 의 이성은 계시 이해와 신앙 분별에 어떤 인식론적 역할을 수행하며 그 한계는 무엇인가,

  셋째, 선행 은총으로서의 양심은 죄 인식과 회개의 촉발 과정에서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가,

  넷째, 선행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는 인간의 책임성과 선택을 어떻게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공로 주의를 어떻게 배제하는가,

다섯째, 이러한 논의는 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상처(무력감, 자기혐오)와 윤리적 혼란(혐오, 책임 회피, 공동체 무기력) 및 한국교회의 실천적 문제(강압적 결단, 운명론적 태도)에 어떤 신학적, 실천적 적용 가능성을 제공하는가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결국 본 연구는 웨슬리의 선행 은총 교리가 인간을 무력한 존재로 고정시키지도 자율적 구원 주체로 과장하지도 않으면서, 성령의 선행적 사역 안에서 인간을 ‘응답 가능한 인격적 존재’로 회복시키는 구조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본 연구는 은총과 책임의 긴장을 건강하게 보존하는 웨슬리 신학의 통찰이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들 속에서 존엄의 회복, 회개의 갱신, 책임적 선택과 회복적 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천적 신학 자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은총 중심적 책임성’(Responsible Grace)이 라는 개념은 존 웨슬리(John Wesley)가 직접 사용한 용어라기보다는 웨슬리 신학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랜디 매덕스(Randy L. Maddox)가 그의 대표 저서 󰡔책임적 은총󰡕(Responsible Grace)에서 제시한 신학적 해석 틀에 기초한다.

매덕스는 웨슬리 신학의 핵심을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응답을 상호 배타적 관계가 아닌 역동적 관계로 이해하는 데서 찾는다.5)

 

     5) 최근 국내 연구 역시 웨슬리가 은총과 인간 본성의 관계를 상호 대립이 아니라 참여적 이고 협력적인 관계로 이해하였음을 강조한다. 류재성은 웨슬리 신학의 특징을 하나 님의 은총과 인간 본성이 인격적, 역동적, 참여적 관계 속에서 연결된 구조로 설명한 다. 류재성, “존 웨슬리의 사상에서 은총과 본성 사이의 역동적 이해에 대한 참여적/내 재주의적 읽기,” 「한국조직신학논총」 69 (2022): 115-159. 

 

그의 해석에 따르면, 웨슬리의 구원론은 전통적으로 대립되어 왔던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은총과 책임, 예정과 응답 사이의 긴장을 어느 한쪽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이안에서 응답 가능성 자체를 창출하고 유지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책임은 은총의 경쟁자가 아니라 은총의 결과이자 표현으로 이해된다.6)

 

     6) Randy L. Maddox, Responsible Grace: John Wesley’s Practical Theology (Nashville, TN: Kingswood Books, 1994), 19-27, 73-87. 

 

웨슬리에게 있어서 인간의 책임은 결코 자율적 능력에 근거하지 않는다.

인간은 원죄로 인해 하나님을 향해 스스로 나아갈 능력을 상실한 존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을 통하여 인 간의 이성(reason), 양심(conscience), 자유의지(free will)를 부분적으 로 회복시키시며,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는 존재 가 된다.

따라서 인간의 응답은 구원의 원인이나 공로가 아니라 이미 주어 진 은총의 역사에 대한 참여이며 협력이다.

웨슬리의 신학에서 책임은 독립적 자율성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 가능해진 응답성(response-ability) 의 의미를 지닌다.

본 연구는 이러한 매덕스의 통찰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의 상황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지금까 지 국내 웨슬리 연구들은 주로 선행 은총의 교의학적 의미, 자유의지 논쟁 혹은 웨슬리 구원론의 구조를 중심으로 논의되어 왔다.

반면 본 연구는 선행 은총의 결과로 회복되는 인간의 ‘인지(이성), 도덕(양심), 의지(자유의지)’라는 세 차원을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책임의 과잉’과 ‘실존적 운명론’이라는 이중적 위기에 대한 신학적 대안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특히 본 연구에서 사용하는 ‘은총 중심적 책임성’은 단순히 매덕스의 저작 제목을 번역하여 사용하는 개념이 아니다. 본 연구는 이 개념을 하나님의 선행 은총이 인간의 전인적 기능을 회복시킴으로써 책임 있는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 신학적 구조 전체를 설명하는 개념으로 재구성한 다.

다시 말해 은총 중심적 책임성이란 인간의 책임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서도 그것을 결코 공로주의로 환원하지 않는 신학적 원리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인격적 응답을 실질적으로 인정하 는 웨슬리 신학의 핵심 구조를 의미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의 책임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자기책임 담론과 반대로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약화시키는 다양한 결정론적, 운명론적 경향 모두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신학적 기준을 제공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웨슬리의 선행 은총론을 단순한 역사신학적 연구에 머물 지 않고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의 실존적, 윤리적 위기를 진단하고 치유하기 위한 공공신학적 자원으로 재해석하는 데 그 학문적 의의를 둔다.

따라서 본 연구가 사용하는 은총 중심적 책임성(Responsible Grace) 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기 위한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 은총이 인간의 이성, 양심, 자유의지를 회복함으로써 책임 있는 응답을 가능하 게 한다는 웨슬리 구원론의 구조 전체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다.

이하에 서는 이러한 은총 중심적 책임성이 선행 은총을 통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지를 이성, 양심, 자유의지의 차원에서 순차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I. 존 웨슬리의 선행 은총론: 신적 주도성과 인간 책임성의 조화

 

웨슬리는 칼빈주의 전통이 이른바 ‘자연적 인간’(natural man)을 영 적으로 돌과 같이 완전히 죽은 존재로 규정하는 관점을 신학적으로 불합 리한 전제라고 비판한다.

웨슬리에 따르면, 모든 살아 있는 인간은 예외 없이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의 지배 아래 놓여 있으며, 이는 하나님 의 은총이 인간의 삶으로부터 전적으로 철회될 수 없다는 그의 은총 이해 에 근거한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자연적 인간은 실존적 현실이 아닌 논리 적 추상이며 개념적 산물에 불과하다.7)

 

     7) Umphrey Lee, John Wesley and Modern Religion (Nashville: Cokesbury Press, 1936), 124. Lee는 웨슬리를 현대적 종교 사상과 연결하면서도, 웨슬리가 인간을 단순한 감정, 욕망적 존재로만 보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그는 웨슬리 신학이 “은혜를 인간 내적 경험과 결합시키는 방식”, “전통적 개혁주의와 현대 종교적 실존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라고 평가한다. 즉, 웨슬리는 ‘자연적 인간’ 개념을 어떤 독립적 실존적 실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론적, 신학적 논증에서 설정되는 개념적 범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Lee의 주장은 웨슬리의 인간 이해를 직접적인 경험적 실존의 범주가 아니라 은혜의 필요성과 인간의 응답 가능성을 전제로 하는 교리적 장치로 본다는 방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웨슬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룸에 관하여”(On Working Out Our Own Salvation)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단순한 법적, 선언적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치유적, 회복적 효력을 지닌 실재로 이해한다.

그는 은총 을 죄의 책임과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힘일 뿐 아니라 질병에 서의 회복과 유비적으로 연결되는 치유와 갱신의 과정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은총은 인간 존재 전반을 회복시키는 생명적 능력으로 기능한다.

웨슬리에 따르면, 선행 은총은 인간의 삶 속에서 사랑의 치유 로 작동하며, 이를 통해 인간은 거듭남(new birth)의 과정을 향한 여정에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받는다.8)

이러한 하나님의 은총은 특정 집단에 제한되지 않고 보편적으로 주어지며, 모든 인간은 이미 하나님의 선행 은총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존재로 이해된다.

웨슬리는 한편으로 인간이 타락한 상태에서는 스스로 하나님을 향 해 나아갈 수 없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동적인 은총에 의존해 있음을 분명히 강조한다. 동시에 그는 인간이 자신의 구원에 대해 책임적인 주체 로서 응답해야 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실질적 인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의 선행 은총 개념은 인간 내면에 신앙에 대한 자유로운 응답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신학적 구조를 형성한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와 달리 인간이 자율 적으로 선을 시작할 수 있다고 보지 않으며, 선을 향한 최초의 의지조차도 성령의 선행적 사역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웨슬리의 신학 은 인간의 도덕적 책임과 응답성을 분명히 인정하면서도, 선의 시작과 지속, 나아가 궁극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면을 철저히 하나님의 은총에 귀속시킨다.

이와 같은 점에서 그의 은총 이해는 펠라기우스주의 는 물론, 반펠라기우스주의와도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신학적 입장을 명확히 드러낸다.9)

 

     8) Wesley, “Sermon 85,” 509.

     9) Ibid., 509, 512; Steven Harper, John Wesley’s Message for Today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3), 41-43; Harper는 웨슬리의 은총 이해가 펠라기우스주의와 불가항력적 은혜론 모두와 구별된다는 점을 명시적으로 말하지 는 않지만, 선행 은총의 선재성, 비강제성 그리고 인간 책임의 실재를 강조함으로써  동일한 신학적 입장을 드러낸다. 

 

알버트 C. 아우틀러(Albert C. Outler)는 웨슬리의 은총론을 ‘성령 중심의 구원론’(pneumatocentric soteriology)으로 규정하면서, 선행 은 총을 포함한 구원의 전 과정을 성령의 능동적 사역 안에서 이해한다.

그에 따르면, 은총은 영원한 법령이나 정태적 선언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인도하고 치유하며 변화시키는 동적 능력이다.

이러 한 은총이 실제로 구원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자발적 협조 (cooperation)가 요청되며, 동시에 은총의 적용은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 로 변형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변화 앞에서 인간의 저항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이 점에서 아우틀러의 해석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가 인간 존재의 실제적 변형과 책임적 응답을 동시에 포괄하는 구원론적 구조임 을 분명히 드러낸다.10)

 

    10) Albert C. Outler, “A focus on the Holy Spirit: Spirit and spirituality in John Wesley,” The Wesleyan Theological Heritage, eds. Thomas C. Oden and Leicester R. Longden (Grand Rapids, MI: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91), 159-173. 

 

콜린 윌리엄스(Colin Williams)는 존 웨슬리의 신학에서 선행 은총 을 인간의 양심(conscience)을 매개로 작동하는 하나님의 선제적 은혜 로 해석한다.

웨슬리는 모든 인간이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도덕적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양심의 보편성을 근거 로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 고 주장한다.

이때 양심은 흔히 ‘자연적 양심’으로 불리지만, 하나님의 은총이 남긴 흔적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인간의 책임성은 자율적 자유의 지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거나그것을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은총 앞에서 중립적 인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시작된 장(場) 안에 놓여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윌리엄스는 선행 은총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면서, 이 은총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사역 에 응답하거나 저항할 수 있는 최초의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설명한다.

선행 은총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현존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인간 은 이미 은총의 장 안에서 신앙적 결단의 가능성을 부여받은 존재로 이해 된다.

이러한 해석은 웨슬리의 사상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으며 선행 은총 을 인간 구원의 실제적 출발선으로 파악하도록 이끈다. 다만 웨슬리는 선행 은총이 곧바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충분조건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선행 은총은 인간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첫 계기일 뿐이며, 회개와 칭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하나님의 은혜, 곧 회개케 하시는 은총 과 칭의의 은총이 필요하다.

결국 선행 은총은 인간을 구원의 길 위에 세우는 하나님의 직접적이고 선제적인 개입이며, 신학과 설교의 과제는 이 은혜의 실재를 분명히 드러내어 인간이 하나님의 은총에 책임적으로 응답하도록 촉구하는 데 있다.11)

 

     11) Colin Williams, John Wesley’s Theology Today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60), 42. 

 

테오도어 러년(Theodore Runyon)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를 보다 구조적이고 과정 중심적으로 분석한다.

그는 선행 은총이

   첫째로 인간의 영적 감각(spiritual senses)을 회복시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며,

  둘째로 양심의 작용을 통해 고소와 변명, 승인과 정죄를 수행함으로써 구원의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감당한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인간을 창조의 본래 목적, 곧 하나님 형상의 회복이라는 운명으로 부르시며, 선행 은총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러한 소명을 자각하고 이에 응답하도록 촉구하는 은혜로 이해된다.

특히 러년은 인간이 하나님을 찾기 이전에 실제로 선행 은총이 시작되는 지점을 형성한다.

나아가 선행 은총을 ‘새 창조’(new creation)로 들어가는 첫 단계로 규정하며 은혜를 단지 죄 사함을 위한 법적 선언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은혜는 인간 존재 전체의 회복을 목표로 작동하는 능동적 과정이며, 이러한 관점에서 웨슬리 신학에서의 칭의는 단순한 신분(status)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존재 자체를 변형시키는 변혁 적 사건(transformative event)으로 이해된다.

즉, 칭의란 단순히 죄가 용서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의해 새 삶의 출발선에 서게 된 존재론적 전환을 가리킨다.

이러한 해석은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가 구원을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전인적 회복을 향한 지속적 과정으로 파악 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12)

 

     12) Runyon, The New Creation, 30-42. 

 

이러한 선행 연구를 바탕으로, 선행 은총이 인간의 자연적 기능을 단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이성, 양심, 자유의지’를 새롭 게 활성화하는 ‘변혁적 과정’임을 명확히 하고자 한다.

웨슬리의 선행 은총 이해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전제하면서도 하나 님의 구원 사역이 모든 인간에게 선행적으로 역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선행 은총은 죄 사함에 국한되지 않고 치유와 갱신을 포함하는 성령의 역동적인 사역으로 이해된다.

특히 웨슬리는 선행 은총을 통해 인간에게 하나님께 응답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실제적인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강조하면서도, 그 가능성 자체가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된 것임 을 분명히 하였다.

이 점에서 선행 은총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는 동시에 인간의 책임을 소멸시키지 않는 구원론적 기초로 기능한다.

따라서 웨슬 리의 선행 은총 개념은 신적 주도성과 인간 책임성 사이의 긴장을 조화롭 게 유지하는 핵심 교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선행 은총의 보편성과 선행성 은 이후 논의할 이성, 양심, 자유의지가 단순한 자연 능력이 아니라 성령 의 예비적 사역 안에서 회복된 기능임을 이해하게 하는 전제가 된다.

 

II. 선행 은총으로서 이성(reason)의 인식론적 기능과 한계

 

선행 은총은 인간의 타락한 이성을 자극하는 성령의 역동적인 은총 이다.13)

웨슬리는 인간의 이해의 눈이 열릴 때까지 영적인 것을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알 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인간은 이해 의 눈이 열리기 전까지 영적인 것을 판단하거나 바르게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14)

 

    13) 김홍기, 󰡔존 웨슬리의 구원론󰡕 (서울: 성서연구사, 2000), 105.

    14) John Wesley, “Sermon 44: Original Sin,” Works, vol. II, 58; “Sermon 85,” 509. 

 

웨슬리는 당시 유행하던 두 극단, 즉 이성만으로 종교를 세우려는 합리주의와 이성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맹신적 신앙을 동시에 비판하면서, 이성은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신앙을 이해하고 분별하며 정리하는 필수 도구로 이해한다.

즉, 이성은 신앙을 대신하지 않지만, 신앙을 제거하면 종교 자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성은 계시를 판단하는 최종 기준은 아니지만, 계시를 이해 ․ 해석 ․ 적용하는 데 필수적 인 능력으로 보았다.

이러한 신앙과 신학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이성에 대한 강조는 웨슬 리의 “이성에 대해서 올바른 재고를 해야 하는 이유”(The Case of Reason Impartially Considered)에 잘 드러난다.

웨슬리는 이 설교에서, 앞서 말 한 것처럼 당시 영국 사회와 교회 안에 공존하던 두 극단, 즉 이성을 절대 화하는 합리주의와 이성을 배제하는 열광주의(enthusiasm)를 동시에 비판한다.

그는 먼저 이성의 정의를 명확히 한다.

그에게 이성이란 인간 이 사물의 관계를 분별하고, 추론하며,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으로서, 하나님이 창조 시 인간에게 부여한 본래적으로 선한 능력이다.

따라서 이성을 사용하는 행위 자체는 신앙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됨의 일부이며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다. 이 점에서 웨슬리는 이성을 버리라는 열광주의자들의 종교적 태도를 비성경적이며 비인간적인 것 으로 비판한다.

웨슬리는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적 계시에 대한 배타적 편견을 갖고 있거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이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격을 부인하는 사람들 이며 이성을 그들의 변함없는 안내인으로 열렬하게 추앙한다고 웨슬리 는 비판한다.15)

 

       15) John Wesley, “Sermon 70: The Case of Reason Impartially Considered,” Works, vol. II, 351-352. 

 

비록 웨슬리가 인간 이성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을지라도, 항상 이성의 중요성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웨슬리는 극단적으로 이성을 찬양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 들은 쉽게 이성을 과대평가할 뿐만 아니라 이성을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성만을 가장 좋은 것으로 묘사하 고 최고의 가치로 평가 절상시킨다.

나아가 이성이 모든 진리로 이끌어 주며 선함으로 이끄는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러한 이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대하여 웨슬리는 반대한다.

실제로 웨슬리는 이성의 한계를 다음 과 같이 지적한다.

   첫째, 이성은 믿음을 생산해 낼 수 없다.

비록 믿음이 항상 이성과 부합하지만, 이성은 그 언어의 성서적 차원에서 믿음을 생산 해 낼 수 없다.

  둘째, 이성 자체는 인간 안에 참된 기독교적 소망을 일으킬 수 없다.

웨슬리는 성서적인 소망을 중시했으며, 이러한 소망은 기독교 의 믿음에서만 솟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이성은 아무리 개발되고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생산해 낼 수는 없다.

이성이 하나 님의 사랑을 생산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모든 사람에 게 관대하고 사심 없는 자비심을 생산해 낼 수 없게 된다.

   넷째, 이성은 선한 의지(good will)를 만들 수 없다.

선은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솟아 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16)

이 지점에서 그는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특히 기독교 진리를 자연 이성으로만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단호히 거부한다.

웨슬리는 이성이 종교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분석하면서, 이성과 신앙의 중도적 해석을 시도한다.17)

 

     16) Ibid., 593-600.

     17) 웨슬리의 이성과 신앙의 중도적 해석 시도는 “An Earnest Appeal to Men of Reason and Religion,” Works, vol. VIII, 9. 제목 자체에 나타나듯 웨슬리는 이성과 종교를동시에 호소의 대상으로 삼는다.그는 기독교 신앙이 비이성적이지 않으며, 참된 신앙은 이성에 의해 검토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다만 이성은 계시 위에 군림하지 않고, 계시를 이해하고 분별하는 도구로 기능해야 한다고 명확히 선을 긋는다.정리 하면 신앙은 초월적이지만, 이성적, 도덕적 검증을 거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이성의 역할은 다 음과 같다.

   첫째, 진실된 종교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이성은 살아있는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에게 설명 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이성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 있는 근본적인 믿음들을 이해할 수는 없다.

사도신경은 성령께서 사람들과 함께하고 하나님께 대해 찬미하게 함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해 주는 이성의 역할로 이루어졌다.

   둘째, 비록 이성이 우리가 무엇에 대해 회개해야 할지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무엇이 회개인지는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셋째, 이성 은 우리가 구원받은 믿음이란 무엇인지 또 정당화의 근원과 조건은 무엇 인지, 그것의 즉각적이고 차후적인 열매는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만든다.

    넷째, 이성을 통해 우리는 거듭남이 무엇인지 알아 그리스도께서 가지셨 던 마음과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걷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다섯째, 이성의 지시에 의해 행동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이해력을 사용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양심의 거리낌 없이 살 수 있다.18)

 

     18) Wesley, “Sermon 70,” 352-353. 

 

웨슬리가 제시하는 결론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중도적 입장이 다.

이성은 신앙의 토대가 아니라 신앙을 이해하고, 설명하고, 왜곡으로 부터 보호하는 도구다. 성경을 읽고, 교리를 정리하며 거짓 계시나 주관 적 감정을 분별하는 데 이성은 필수적이다.

이성을 배제한 신앙은 맹신과 혼란으로 빠지기 쉽고, 이성을 절대화한 신앙은 계시와 은혜를 상실한다.

웨슬리는 이성 없는 신앙도, 신앙 없는 이성도 모두 거부하며, 성경의 권위를 최상위에 두되 그 성경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 이성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강하게 옹호한다.

이러한 중도적 입장은 훗날 정식화되는 웨슬리안 사변형(The Wesleyan Quadrilateral)19)에서 ‘이성’이 다른 근거들에 대하여 어떠한 신학적 위상에 놓이는지를 결정하는 근거로 평가된다.

 

    19) 웨슬리안 사변형 구조(The Wesleyan Quadrilateral)는 신앙적 진리를 탐구하고 신학적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성서(Scripture), 전통(tradition), 이성(Reason), 경 험(Experience)이라는 네 가지 원천을 통합적으로 사용하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이 방법론은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신학방법론을 현대적으로 체계화한 것으 로, 1964년 앨버트 아우틀러(Albert C. Outler)가 웨슬리의 신학적 사유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처음 고안한 용어다. 아우틀러는 웨슬리가 종교개혁의 유산인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를 따르면서도, 동시에 이를 해석하기 위해 이성적 사고와 역사적 전통 그리고 개인의 체험을 적절히 조화시켰음을 강조하기 위해 이 방법론을 제시했다. Albert C. Outler, “The Wesleyan Quadrilateral in John Wesley,” in Wesleyan Theological Journal vol. 20, no. 1 (Spring 1985): 7-18. 

 

본 장에서는 선행 은총으로서의 이성이 웨슬리 구원론에서 차지하 는 역할을 살펴보았다.

웨슬리는 이성을 경멸하는 반지성주의와 이성을 절대화하는 합리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이성을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주어진 유한하지만 필수적인 도구로 이해한다.

이성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회개의 의미와 믿음의 내용을 분별하며, 신앙의 삶을 질서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성이 믿음, 소망, 사랑과 같은 구원의 본질적 요소들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였다.

이러한 이성 이해는 이성을 구원의 원인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구원의 과정에서 배제하지 않는 웨슬리 특유의 중도적 신학 입장을 잘 드러낸다.

따라서 이성은 선행 은총의 한 양상으로서 인간을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담당할 뿐, 결코 구원 자체가 될 수는 없다.

 

III. 선행 은총으로서 ‘양심’(Conscience)의 도덕적 기능과 회개의 촉발 구조

 

웨슬리는 선행 은총과 관련하여 ‘양심’의 문제를 함께 다룬다.

그는 양심을 단순한 감정이나 사회적 규범의 산물로 이해하지 않고 선과 악을 분별하도록 인간 내부에서 작동하는 내적 인식 원리(inward principle) 로 규정한다.

이러한 양심은 자연적 능력이 아니라 선행 은총에 의해 활성화되는 기능으로서, 인간 영혼에 내재된 도덕적 인식 능력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양심이란 ‘도덕적 선과 악을 분별하는 능력’이며 동시에 인간 내면에서 스스로를 판단하는 ‘내적인 재판관’으로 자리한다고 보았다.

웨슬리의 이러한 규정으로 인하여 양심은 이성과 구별되면서도 도덕적 판단과 자기 인식의 핵심 기제로 위치하게 된다.

또한 양심은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다음의 세 가지를 동시에 바라보는 영혼의 능력을 지니게 된다.

  첫째, 우리 자신의 성향과 삶, 곧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실제적 성격과 질을 인식하는 것이며,

  둘째, 우리가 따라야 할 규범,

  셋째, 그 규범과의 일치 혹은 불일치를 아는 것이다.20)

 

      20) John Wesley, “Sermon 105: On Conscience,” Works, vol. III, 189-190. 

 

웨슬리의 이러한 양심에 대한 이해는 먼저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아는 능력, 곧 일반적으로나 구체적으로나 자신의 성향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분별하는 능력과 사람이 모든 일에서 따라야 할 규범, 즉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을 아는 지식 그리고 자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 규범에 합당한지 여부를 아는 지식을 포함한다.

이 모든 양심의 작용에 있어서 “거룩하신 이의 기름 부으심”은 절대적이다.21)

 

       21) 인간의 내적 작용(의지, 판단, 양심)은 하나님의 선행적, 동반적 역사 없이는 성립 하지 않는다. 즉, 양심의 작동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에 의존한다. 왜냐하면 성령 없이 인간 내적 판단은 신뢰가 불가하기 때문이다. Wesley, “Sermon 85,” 509.

 

양심의 역할에 대한 웨슬리의 이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양심은 자 기 인식의 역할을 지닌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성향, 생각, 말, 행동을 정확히 인식하도록 하는 내적 능력이다.

웨슬리에게서 양심은 단순한 반성이나 감정이 아니라 자기 삶의 실제적 도덕 상태를 드러내는 인식 기관이다.

다만 이 기능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으며, 성령의 도우심이 있을 때만 참되게 수행된다.

   둘째, 양심은 도덕적 기준 인식의 역할로 기능한다.

양심은 행위를 판단할 때 임의적 기준을 사용하 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 따라야 할 규범, 곧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인식하고, 이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양심은 율법을 창조하는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된 규범을 적용하 는 매개다.

   셋째, 양심은 판단과 판결의 역할을 감당한다.

양심은 자기 인식과 규범 인식을 종합하여 자신의 삶이 그 규범과 일치하는지 혹은 불일치하는지를 판단한다.

이때 양심은 인간 내면의 ‘재판관’(inward judge)으로 기능하며, 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변명하고 승인하며, 악한 행위에 대해서는 고소하고 책망한다.

이를 통해 인간은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적 존재가 된다.

  넷째, 양심은 은혜의 도구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웨슬리는 양심의 모든 작용이 하나님의 은혜, 특히 성령의 ‘기름 부으심’(unction of the Holy One)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양심은 자율적 도덕 능력이 아니라 선행 은총 아래에서 인간을 회개와 순종으로 이끄는 도구적 역할을 수행한다.

웨슬리는 양심을 단순한 자연적 능력이나 생래적 도덕 감각으로 이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선행 은총의 한 양태로 파악한다.

이러한 이해 속에서 양심은 인간 내면에서 도덕적 선악을 분별하고 자기 삶을 판단하게 하는 능력일 뿐 아니라 하나 님의 뜻과 인간의 삶 사이의 불일치를 인식하게 하는 내적 증인으로 기능 한다.

특히 웨슬리는 양심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죄책과 도덕적 왜곡을 자각하게 되며, 이를 통해 회개의 필요성이 촉발되는 구조를 강조한 다.22)

양심을 통해 인간이 단순히 도덕적 잘못을 인식하는 차원을 넘어 자신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 있음을 자각하도록 이끄는 구조 다.

즉, 양심은 먼저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의 실제적 도덕 상태를 직면하게 하고, 이어서 그 상태가 하나님의 계시된 규범과 불일치함을 인식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자신의 죄가 단일한 행위 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 전체를 관통하는 왜곡된 상태임을 깨닫게 되며, 이러한 자각은 필연적으로 자기 개혁이 아닌 회개에 대한 요구로 귀결된 다.

이처럼 회개의 필요성은 외적 율법의 강제나 정서적 불안에서 비롯되 는 것이 아니라 선행 은총으로서의 양심이 수행하는 내적 인식과 판단의 작용을 통해 촉발된다.23)

 

     22) John Wesley, “Sermon 12: The Witness of Our Own Spirit,” 143.

     23) Wesley, “Sermon 85,” 509. 

 

양심은 인간을 단순히 정죄하는 기능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결코 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함으로써 인간으로 하여금 은혜를 향한 존재론적 개방 상태로 이끈다.

따라서 웨슬 리에게서 회개는 양심의 고발에 대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자신의 실존을 새롭게 인식한 결과로서 발생하는 신학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양심은 인간을 구원으로 직접 이끄는 능력은 아니지만, 자기기만을 깨뜨리고 회개와 신앙을 향해 인간을 준비 시키는 실존적 계기로 작동한다.

즉, 양심은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세우는 준비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웨슬리는 양심에 대한 순종 그 자체가 인간을 의롭게 만든다고 보지 는 않는다.

양심은 결코 구원의 공로가 될 수 없으며, 언제나 성령의 지속 적인 역사와 하나님의 은총에 의존하는 도구적 기능에 머문다.

이로써 웨슬리는 인간의 도덕적 책임을 분명히 강조하면서도, 구원의 주도권과 공로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귀속시키는 신학적 균형을 유지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웨슬리의 양심 이해는 도덕적 자율성과 은혜 의존성 사이의 긴장을 창조적으로 통합하며, 선행 은총 교리 안에서 인간의 책임적 응답 과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을 동시에 조명하는 중요한 신학적 통찰을 제공 한다.

 

IV. 선행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free will)의 의지론적 성격과 책임성

 

웨슬리의 구원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행 은총으로서의 ‘자유의지’(free will)에 대한 이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선행 은총으로 시작되는 웨슬리의 구원의 과정은 무엇보다도 자유의지의 필연성이 강 조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자유의지를 사용해 구원의 준비 단계에 이르 기 때문이다.

인간 안에 있는 자유의지의 필연성을 강조한 웨슬리의 주장 은 1774년 5월 23일 그의 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일기에서 웨슬리는 던디와 아브로드로 이동하는 여정 중 케임즈 경(Lord Kames)의 󰡔도덕의 법칙과 자연 종교에 관한 논문󰡕(Essays on the Principles of Morality and Natural Religion)을 읽고, 특히 그의 자유와 필연에 관한 결정론적 인간 이해를 강하게 비판한다.

웨슬리는 케임즈가 인간을 자율적 도덕 주체가 아닌 자연적 인과율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적 존재(시계태엽의 부품)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능력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이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바다의 흐름이나 북풍의 방향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것으로 평가된다.

웨슬리는 케임즈 자신이 인정하듯, 만일 인간이 이러한 결정론적 관점에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면 도덕적 의무 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 선악에 따른 상벌의 개념은 필연적으로 붕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임즈가 스스로 이러한 빛 속에서 자신을 이해한다고 주장한다면, 그의 이론이 참일 경우 그는 더 이상 도덕 판단의 전제 조건 자체를 소유하지 못한 존재가 된다.

웨슬리 는 이 점을 법적 비유를 통해 강조하며, 도덕적 책임 능력을 부정하는 자는 타인을 정죄하거나 심판할 자격을 상실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자신의 행위를 통제할 수 없다면, 그러한 인간을 처벌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자기 손안에 바람을 쥐고 있지 않다”(holding the wind in his fist)는 372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3집 (2026년 6월) 이유로 사람을 정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24)

이로써 웨슬리는 케임즈의 결정론이 단지 이론적 오류에 그치지 않고 윤리, 법, 종교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해체하는 자기모순적 체계임을 폭로한다.

이 글에서 웨슬리는 인간의 도덕적 자유와 책임성을 부정하는 철학은 도덕 판단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며, 따라서 사회적 ․ 신학적으로 수용 불가능하다 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자유의지의 필연성을 강조한다.

구원의 과정 가운데서 자유의지가 필연적이라고 해서, 선행 은총으로서의 자유의지가 이성이나 양심과 마찬가지로 구원 자체가 될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웨슬리에게 있어서 선행 은총은 구원의 첫 여명이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첫걸음일 뿐이다.

다만 그 ‘첫걸음’ 은 인간이 스스로 시작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먼저 역사함 으로써 가능해진 응답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자유의지는 구원의 문을 열거나 아니면 거부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선행 은총은 구원 의 과정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구원을 사모하는 열심을 갖게 하며 마음의 문을 열게 하는 결단을 촉구한다.

또한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는 자유의지적인 참여를 독려한다.

웨슬리는 이러한 자유의지적인 참여를 ‘생명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성향’(tendency toward life)25)으로 설명한다.

 

   24) John Wesley, “Journal: Mon. 23, May 1774,” Works, vol. IV, 15.

   25) Wesley, “Sermon 85,” 509. 

 

또한 웨슬리의 자유의지에 대한 이해가 “인간이 자연인으로 태어날 때부터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다”라는 펠라기우스의 주장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지적해야 한다.

웨슬리는 자연인의 원죄성과 부패 를 인정한다.

따라서 자유의지는 자연적으로, 본성적으로, 생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양심처럼 선행 은총에 의해 어느 정도 회복 된 것26)으로 보는 것이 웨슬리의 이해다.

즉, 자유의지는 원죄로 인해 상실되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선행 은총에 의해 제한적으로 회복되었다 는 것이 웨슬리의 주장이다.

이러한 점에서 웨슬리의 자유의지 이해는 반(半)펠라기우스주의와 구별되며, 오히려 아우구스티누스 전통 안에 서 재구성된 은총 중심적 자유 개념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 다.27)

회복된 자유의지는 ‘긍정의 자유’뿐만 아니라 반대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부정의 자유’(a liberty of contradiction)28) 와 어느 방향으로 행동하거나 그 반대 방향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서의 ‘반대의 자유’(a liberty of contrariety)를 함께 포함한다는 점은, 웨슬 리의 자유의지 이해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자유의지의 성격 때문에 인간은 구원의 과정을 통한 결과에 책임을 갖게 되기 때문이 다.29)

 

     26) John Wesley, “Sermon 109: What is Man?,” Works, vol. VII, 228.

     27) John Wesley, “Predestination Calmly Considered,” 229-230; Maddox, Responsible Grace, 85-90.

    28) 웨슬리가 말하는 ‘부정의 자유’(a liberty of contradiction)란 어떤 행위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그 행위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인간이 외적 강제에 의해 필연적으로 행동하는 존재가 아니라 은총 안에서 실제적 인 선택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웨슬리의 자유 개념은 단순한 자율성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응답 가능성(response-ability)을 의미한다.

      29) Wesley, “Sermon 109,” 228-229. 

 

여기서 웨슬리가 말하는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은 구원의 공로 로서의 책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응답 가능성 자체가 이미 은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선행 은총에 순종하거나 거부 하는 행위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인격적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결과에 해당할 뿐이다.

이 점에서 웨슬리의 구원론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하면서도 공로 개념을 철저히 배제한다.30)

 

      30) Runyon, The New Creation, 27-28; Outler, “A focus on the Holy Spirit,” 194. 

 

본 장에서는 선행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가 웨슬리 구원론에서 차지하는 필연적 위치를 분석하였다.

웨슬리는 인간이 원죄로 인해 전적 으로 부패하였음을 인정하면서도, 선행 은총을 통해 응답 가능한 자유의 지가 회복된다고 보았다.

이 자유의지는 자연적으로 주어진 능력이 아니 라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응답 가능성이라는 점에서 펠라기우스적 자유의 지 개념과 명확히 구별된다.

웨슬리에게 자유의지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에 참여 하도록 허락된 은총의 결과다.

인간은 이 자유의지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거나 거부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이러 한 책임성은 결코 공로주의로 환원되지 않는다.

자유의지에 대한 웨슬리 의 강조는 하나님의 주권을 약화시키려는 시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의 은총이 인간을 인격적 존재로 회복시키는 방식을 설명하려는 신학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V. 현대 한국 사회에서의 선행 은총의 실천적 적용

 

1. 현대 한국 사회의 신학적 상황 진단

 

현대 한국 사회는 급격한 산업화와 정보화,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의 성취와 자기결정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인간의 책임과 선택은 강조되었으나, 실패와 좌절의 부담 역시 개인에게 과도하게 전가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그 결과 개인들은 자기 비하와 무력감, 관계의 단절 그리고 구조적 불의 앞에서의 체념을 경험한다. 이러한 정서는 도덕적 무감각과 공동체적 무기력으로 확장되기도 한다.31)

 

    31) 한국 사회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①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전환과 경쟁, 개인 책임의 강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와의 긴장 관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1980 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변동이 산업화, 정보화 과정과 어떻게 결합했는지, 사회 적 불평등과 시민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각도로 설명한 장경섭 ․ 김세균 ․ 이근, Neoliberalization of South Korea (Cham, Swiss: Springer, 2025), ②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 속에서 불평등, 배제, 사회운동, 문화변동 등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루 고 경쟁, 소외, 사회적 가치 변화, 시민사회 등 여러 사회구조적 문제를 포괄적으로 분석한 조희연 ․ 로렌스 수렌드라(Lawrence Surendra) ․ 조효제, Contemporary South Korean Society: A Critical Perspective (New York: Routledge, 2015), ③ 신자 유주의적 시장과 민주주의 간 긴장 속에서 시민운동과 사회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 를 분석하고, 개인주의적 경쟁 구조가 사회적 연대, 참여에 어떤 제약을 가져오는 지 비판적으로 조명한 문승숙, Civic Activism in South Kore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24), ④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시민사회, 구조적 변화에 대한 종합적 안내서이며, 경쟁 ․ 개인주의와 같은 사회문화적 논의를 제도적 맥락 과 연결하여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Charles K. Armstrong, ed., Korean Society: Civil Society, Democracy, and the State (New York: Routledge, 2007) 참고.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양극화된 신앙 태도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결단과 헌신을 과도하게 강조 하는 실천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환원하며 인간 책임을 약화시키는 운명론적 신앙 태도도 발생한 다.

이 두 극단은 모두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책임 사이의 긴장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신학적 한계를 갖는다.32)

 

    32) 한국교회의 현실(신뢰 하락, 세속화, 구조적 문제 등)과 신앙 태도(개인주의, 성공 주의, 번영 담론, 정치화 등)를 비판적으로 진단한 자료로는 한국교회의 핵심 사역 들(예배, 교육, 친교, 봉사, 선교 등)을 데이터 기반으로 점검하고 현장 변화(약화, 왜곡 지점)를 진단한 목회데이터연구소, 󰡔한국 교회 진단 리포트󰡕 (서울: 두란노, 2025), 한국교회의 현재를 정량, 정성 분석으로 조망하면서 ‘쇠퇴/전환’ 국면에서 나타나는 신앙 양식의 변화를 주제별로 다루는 지용근 외 12인, 󰡔한국 교회 트렌드 2026󰡕 (서울 규장, 2025), 한국교회 현상을 사회과학적 문제의식으로 요약 ․ 비판적 으로 다루는 지용근,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서울: 규장, 2024) 참고. 또한 최근 개신교의 극우화 현상을 진단하며 ‘기독교 국가’ 담론을 축으로 극우/내셔널리즘 이 신앙 언어를 통해 정치 종교화되는 양상을 개념틀(시민종교, 정치 종교, 파시즘 등)로 분석한 김현준, “극우 개신교는 무엇을 믿는가: 한국 개신교 극우 내셔널리 즘의 신정정치 욕망,” 「경제와 사회」 147 (2025, 가을): 207-242 참고.

 

이러한 상황에서 웨슬리의 선행 은총 신학은 인간의 무능을 직시하 면서도 인간을 책임 있는 존재로 회복시키는 균형의 틀을 제공한다.

선행 은총은 인간에게서 자유를 박탈하는 강제가 아니라 성령의 예비적 역사 로서 인간의 인지(이성), 도덕(양심), 의지(자유의지)를 회복하여 하나 님께 응답 가능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선행 은총은 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상처와 윤리적 혼란을 동시에 다루는 실천적 신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2. 선행 은총과 이성: 인식, 존엄성 회복을 위한 실천적 제안

 

웨슬리가 이해한 선행 은총으로서의 이성은 단순한 합리적 사고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하고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도록 회복된 인식 능력이다.

이는 특히 경쟁과 성취 중심 문화 속에서 자기 비하와 무력감에 빠진 개인에게 실패자이기에 무가치하다는 자기 해석 을 수정하도록 돕는 신학적 자원이 된다.

선행 은총은 인간에게 먼저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성취 여부가 아니라 은총의 관계 안에서 재정의하도록 이끈다.

이를 위한 실천은 ‘지성의 회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은총의 빛 아래에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도록 돕는 방식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구체 적으로 교회는 설교와 교육에서 성공/실패의 이분법적 언어를 약화시키 고 ‘은총 안에서 이해된 자기’라는 관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개인 상담과 돌봄 사역에서는 죄책이나 무력감의 언어를 단지 심리적 문제로 만 처리하기보다

선행 은총이 열어 주는 성찰의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면

   첫째, 설교, 교육에서 “성공/실패” 중심 해석을 넘어 “은총/회복/순례” 중심 해석을 훈련하는 ‘은총 언어 가이드’를 마련해야 한다.

  둘째, 상담, 양육 현장에 적용 가능한 “내 삶에 서 이미 주어진 도움의 흔적은 무엇인가?”, “지금의 내 한계가 곧 무가치 함을 뜻하는가?”와 같은 ‘선행 은총 기반 성찰 질문’들을 던지고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신앙과 지성의 분리를 완화하기 위해 웨슬리 의 이성 이해를 토대로 반지성주의, 합리주의의 양극단을 분별할 수 있 는, ‘성경 읽기-해석-적용’을 연결하는 교육 모듈을 마련해야 한다.

 

3. 선행 은총과 양심: 회개, 사회윤리 각성을 위한 실천적 제안

 

선행 은총으로서의 양심은 개인의 내면에서 개인을 넘어서서 사회 공동체의 죄와 불의를 인식하게 하는 도덕적 감각으로 작동한다.

한국 사회는 빠른 변화 속에서 책임의 회피, 공감의 약화, 혐오와 배제의 언어 가 강화되는 현상을 경험해 왔다.33)

 

    33)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성별,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혐오 표현은 개인의 인격과 존엄을 침해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차별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성찰보다는 사회적 문제의 책임을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도덕성, 노력 부족 으로 전가하는 담론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최근 한국의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갈등 국면에서 공감적 언어는 급격히 감소하는 반면, 비난과 조롱, 배제적 표현은 우세하게 나타 난다. 이는 한국 사회가 정서적 공감보다는 적대적 감정의 동원을 통해 사회적 긴장을 해소하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가인권위원회, 󰡔혐오 표현 리포트󰡕 (PDF 자료) (서울: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 2019), https://www.humanrights.go.kr/storage/synapdocumentviewerhtml/skin/doc. html?fn=in_11909251043140222371.pdf&rs=/storage/synapdocumentviewerhtml/ result/202601/(2026. 1. 25. 접속). 

 

이러한 맥락에서 양심의 역할을 단지 개인 도덕의 문제로 축소할 경우, 교회는 사회적 불의에 침묵하거나 도피 하는 형태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웨슬리에게 양심은 성령의 책망을 통해 인간을 회개와 변화로 이끄는 역동적 과정이며, 정죄로 끝나는 기능이 아니라 더 큰 은총으로 나아가도록 준비시키는 기능이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양심을 ‘율법주의적 통제’로만 사용하지 않고, 회개를 ‘후회’로 환원하지 않으며, 공동체가 함께 책임을 감당하도록 이 끄는 방식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양심의 각성은 개인의 죄 인식에 머물지 않고 공동체가 사회적 약자와 구조적 불의 앞에서 어떤 응답을 해야 하는 지 분별하게 한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죄 중심 회개 설교가 아니라 ‘회개-회복-실천’의 흐름을 갖는 회개 교육 을 운영해야 한다.

  둘째, 혐오, 차별, 배제의 문화에 대응하여 교회 내 소그룹에서 “사람을 규정하지 않고 행위를 평가한다”, “약자 관점의 질문 을 반드시 포함한다”와 같은 내용이 포함된 ‘양심 점검 대화 규칙’을 마련 해야 한다.

  셋째, 사회윤리 적용을 위해 ‘양심의 사회적 확장’ 워크숍을 시행해야 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는 노동, 빈곤, 돌봄, 장애, 이주 등 다양한 주제 가운데 개교회가 가장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부분을 선택해 ‘고발-회개-연대’의 단계로 토론과 실천으로 연결 ․ 확장시켜야 한다.

 

4. 선행 은총과 자유의지: 책임적 선택 ․ 공동체 실천을 위한 제안

 

웨슬리의 자유의지 이해는 현대 한국 사회에서 특별한 실천적 함의 를 갖는다.

그는 자유의지를 인간의 자율적 능력으로 보지 않고 은총에 의해 회복된 응답 가능성으로 이해하였다.

이는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문화와 반대로 모든 책임을 구조나 운명으로 환원하는 태도34)를 동시에 비판할 수 있는 신학적 관점을 제공한다.

 

     34) 김동노는 한국의 개인주의는 자율, 권리 강화보다는 이기주의로 오해되며, 집단 주의는 공동체 윤리성을 결여한 채 집단 중심적 압력으로 남아 있음을 지적하고, 이 과정에서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이 귀속되고 구조적 지원이나 공동체성은 약화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비판한다. 김동노, “개인주의, 집단주의, 자유주의, 공동 체주의와 한국 사회의 변화,” 「사회이론」 63 (2023): 153-196. http://doi.org/10. 37245/kjst.2023.05.63.153.

 

자유의지는 공로를 산출하는 힘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 열린 ‘응답의 자리’이며, 인간은 그 자리에 서 하나님께 순종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책임을 지닌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이 자유의지는 결단을 강요하거나 조작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성령의 선행적 역사 안에서 인간 의 결단을 존중하고 선택의 결과를 공동체가 함께 감당하는 방식으로 나타나야 한다.

특히 한국교회 문화 속에서 나타나는 ‘강압적 헌신’이나 ‘성과 중심 제자훈련’은 자유의지를 신앙의 표지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웨슬리의 관점에서 재평가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실천 방안 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첫째, 전도, 양육에서 결단을 압박하기보다 ‘응답을 돕는 과정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둘째, 제자훈련을 성취 지표 로 평가하기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을 선택 ․ 실천 ․ 성찰하도 록 하는 ‘책임적 선택의 훈련’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셋째, 공동체는 개인 의 선택 실패를 정죄하는 대신, 다시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회복적 책임성 을 위한 프로그램(멘토링, 동반자 제도, 재시작을 위한 회복 주간 등)을 운영해야 한다.

이상과 같이 웨슬리의 선행 은총 신학이 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윤리적 문제들 속에서 어떻게 실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았 다.

선행 은총은 인간의 무능을 직시하게 하면서도 성령의 예비적 역사 안에서 인간의 ‘인지’(이성), ‘도덕’(양심), ‘의지’(자유의지)를 회복하여 책임 있는 응답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관점은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문화와 인간 책임을 약화시키는 운명론적 태도 모두를 비판하며, 한국교회가 신앙과 삶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유의미 한 실천적 자원이 될 수 있다. 

 

VI. 결론

 

본 연구는 현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실존적 위기인 ‘책임의 과잉’과 ‘실존적 운명론’이라는 이중적 모순을 신학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 하기 위한 대안적 모델로서 존 웨슬리의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교리를 재구축하였다.

웨슬리 신학에서 선행 은총은 단순히 구원의 문턱 에 도달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가 아니라 타락으로 파괴된 인간의 전인성 을 성령의 역동적 사역 안에서 ‘응답 가능한 인격’으로 복원해 가는 치유 의 실재임을 논증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도출된 핵심적인 결론과 학술적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교의학적 정합성의 확립과 주체성의 재정의이다.

본 논문은 웨슬 리의 선행 은총이 이성, 양심, 자유의지라는 인간의 본질적 기능을 구원 론적 맥락에서 어떻게 재활성화하는지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인간의 책임성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자율적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 적 은총에 의해 부여된 ‘응답성’(Responsibility as Response-ability)임을 명확히 하였다.

이러한 통찰은 인간의 공로를 절대화하는 ‘열광주의적 실천론’과 하나님의 주권을 오해하여 인간의 응답을 소거하는 ‘결정론적 무기력’을 동시에 극복하는 신학적 중도(Via Media)를 제공한다.35)

 

   35) 최근 국내 연구는 웨슬리의 선행 은총을 단순한 구원론적 교리가 아니라 인간 회복과 사회적 실천의 원리로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박영범은 웨슬리 신학의 핵심을 “훼손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이해하며, 선행 은총을 통해 인간이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는 존재로 변화된다고 설명한다. 동일선상에 서 본 연구도 어떻게 선행 은총이 인간의 이성, 양심, 자유의지를 회복하여 책임적 응답을 가능하게 하는가에 대한 체계적 분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점에서  ‘은총 중심적 책임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웨슬리의 선행 은총론을 재구성한 것이 다. 박영범. “웨슬리와 디아코니아적 교회 ― 다문화가족 돌봄에 관한 교회론적 발전 가능성 모색,” 「한국조직신학논총」 65 (2021): 61-104. 

 

  둘째, 한국 사회의 실존적 치유를 위한 신학적 처방이다.

신자유주의 적 경쟁 구조가 고착화된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성취를 강요받는 ‘책임의 과잉’ 상태에 놓여 있다.

본 연구는 선행 은총에 근거하여, 인간의 가치를 사회적 성과가 아닌 ‘은총의 관계성’ 안에서 재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실패를 존재적 파멸이 아닌 하나님의 인격적 다스림 하에 있는 ‘교정과 갱신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이성적 회복 그리고 타자의 고통에 공명하며 구조적 불의를 직면하는 사회적 양심의 회복은, 원자화된 한국 사회의 관계적 유대를 복원하는 강력한 신학적 기제가 될 것이다.

   셋째, 한국교회의 공적 정체성과 윤리적 실천의 회복이다.

그간 한국 교회는 신앙의 사사화(privatization)에 매몰되어 사회적 책임을 유보하 는 ‘신비주의적 태도’를 보이거나 반대로 교세 확장과 성취를 신앙의 척도로 삼는 ‘번영 신학적 실천’에 경도되어 왔다.

이는 모두 선행 은총의 보편성과 성령의 역동성을 상실한 결과다. 교회는 선행 은총이 모든 인간 에게 차별 없이 임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사회적 소외 계층과 혐오의 대상들을 향해 열린 ‘은총의 장’(Field of Grace)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는 교회가 단순히 종교적 위안을 주는 장소를 넘어 모든 생명의 존엄성을 지탱하는 공적 보루로서의 사명을 회복해야 함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웨슬리의 ‘은총 중심적 책임성’(Responsible Grace)은 인간의 주체성을 존중하되 결코 그것을 절대화하지 않으며, 거대한 구조 를 직시하되 절망하여 굴복하지 않는 신앙적 태도를 견지하게 한다.

본 연구가 제시한 선행 은총의 전인적 회복 모델은 한국교회가 성취 지향적 종교의 틀을 벗어나 고통받는 이웃과 사회를 향해 치유와 소망을 선포하 는 본연의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향후 과제로는 이러한 신학적 원리를 구체적인 기독교 윤리 교육 과정과 목회 현장의 소그룹 공동체 형성 모델로 체계화하고 실증하는 후속 연구가 지속적으 로 요청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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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본 연구는 현대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가 직면한 ‘은총과 책임의 균형 상 실’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신학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해 석학적 자원으로서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선행 은총’(prevenient grace) 교리를 재구성하여 그 현대적 적용 가능성을 탐구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심화와 성과 중심의 문화 속에서 개인 의 선택과 성취를 절대화하며 실패의 책임을 오롯이 개인에게 귀속시키 는 ‘책임의 과잉’ 현상을 보이는 한편, 거대한 사회 구조적 모순 앞에서 는 인간의 주체적 응답 가능성을 유보한 채 현실을 ‘운명’이나 ‘구조’의 탓으로 돌리는 ‘실존적 운명론’의 양극화를 드러낸다.

이러한 왜곡된 분 리는 한국교회 내부에서도 유사하게 재현되어, 신자의 결단과 헌신을 과도하게 압박하는 실천주의적 신앙 태도와 하나님의 주권을 명분으로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소거해 버리는 운명론적 신앙 형태가 기형적으로 공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현상의 본질적 원인을 하나님의 주권적 은총과 인간 의 책임적 응답을 대립적, 배타적 관계로 파악하는 신학적 이분법에서 찾는다.

이를 교정하기 위해 본 연구는 웨슬리의 구원론적 구조 안에서 선행 은총을 단순한 ‘구원 이전의 준비 단계’나 논리적 전제로 축소하지 않고, 타락으로 손상된 인간 존재 내부에서 성령의 선제적 역사를 통해 ‘인지(이성), 도덕(양심), 의지(자유의지)’가 전인적으로 회복되는 ‘역동 적 치유 과정’으로 재정립한다.

   첫째, 선행 은총으로서의 이성(Reason)은 계시를 분별하고 자기 실존을 성찰하는 인식론적 도구로서, 한국 사회의 성취 중심 문화가 생산한 ‘실패= 무가치’라는 자기기만적 해석을 해체하고 인간 존엄을 은총의 관계 안에 서 재정의할 것을 요청한다.

   둘째, 선행 은총으로서의 양심(Conscience) 은 인간 내면의 ‘내적 재판관’으로서, 회개를 단순한 정서적 후회로 환원 하지 않고 혐오와 배제의 사회적 현실을 직면하게 함으로써 교회가 공 적 영역에서 윤리적 각성과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가 된다.

   셋째, 선행 은총으로 회복된 자유의지(Free Will)는 공로주의를 철저히 배제 하면서도 인간을 ‘응답 가능한 인격’으로 실재화하며, 개인에게 책임을 과도하게 전가하는 문화와 책임을 운명론으로 소거하는 태도 모두를 비 판하는 신학적 균형추 역할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웨슬리의 ‘은총 중심적 책임성’(Responsible Grace) 모델이 현대 한국 사회의 실존적 상처와 한국교회의 실천적 무기력을 치유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신학적 자산임을 논증한다.

이는 주체성을 존중하되 절대화하지 않고, 구조를 직시하되 굴복하지 않는 제3의 길로 서, 교회가 공공성을 회복하고 존엄과 공감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천 지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목회적 의의를 지닌다. 

 

주제어 ‖ 존 웨슬리, 선행 은총, 은총 중심적 책임성, 이성, 양심, 자유의지, 한국 사회와 교회, 공공신학

 

 

 

Abstract

Theological Reconstruction of “Responsible Grace” and Its Practical Application in the Korean Context: Focusing on John Wesley’s Doctrine of Prevenient Grace

Choi, Kwang-Jin(Ph.D. Special Appointment Professor Hoseo University Asan, Korea)

 

This study critically diagnoses the “loss of balance between grace and responsibility” as a structural crisis facing contemporary Korean society and the Korean church. To address this, it reconstructs John Wesley’s doctrine of “prevenient grace” as a hermeneutical resource and explores its potential for modern application. Today, Korean so ciety exhibits a dual polarization: an “excess of responsibility” where individual choice and achievement are absolutized within a neo-lib eral competitive culture―attributing the burden of failure entirely to the individual― and an “existential fatalism” where social and struc tural contradictions lead to a resignation of moral agency, reducing re ality to “destiny” or “structure.” This distorted separation is mirrored within the Korean church, resulting in a malformed coexistence of an activist spirituality that exerts excessive pressure on personal com mitment and a fatalistic faith that vacates ethical responsibility in the name of divine sovereignty. The study identifies the root cause of this phenomenon in the theo logical dichotomy that perceives God’s sovereign grace and human accountable response as antagonistic or mutually exclusive. To cor rect this, the research reframes prevenient grace within Wesley’s so teriological framework. Rather than reducing it to a mere “pre-salvific stage” or a logical premise, this study defines it as a “dynamic healing process” through which cognition (reason), morality (conscience), and volition (free will) are holistically restored within the fallen hu man being through the proactive work of the Holy Spirit. First, reason as prevenient grace serves as an epistemological tool for discerning revelation and reflecting on one’s existence; it deconstructs the self-deceptive interpretation of “failure as worthlessness” pro duced by a success-oriented culture and calls for a redefinition of hu man dignity within the relationship of grace. Second, conscience as prevenient grace acts as an “inward judge” that prevents repentance from being reduced to mere emotional regret. By confronting the social realities of hatred and exclusion, it provides a pathway for the church toward ethical awakening and practice in the public square. Third, free will as restored by prevenient grace actualizes the “responsive person” while strictly excluding merit. It serves as a theological coun terweight, critiquing both the culture of excessive individual account   ability and the fatalistic erasure of responsibility. In conclusion, this study demonstrates that Wesley’s model of “Responsible Grace” is a significant theological asset for healing the existential wounds of Korean society and the practical lethargy of the Korean church. As a “third way” that respects agency without absolu tizing it and confronts structure without succumbing to it, this model provides concrete ethical indicators for the church to recover its pub lic nature and form a community of dignity and empathy.

 

Keywords  ‖  John Wesley, Prevenient Grace, Responsible Grace, Reason, Conscience, Free Will, Korean Society and Church, Public Theology ∙

 

 

투고접수일: 2026년 05월 08일 ∙ 심사(수정)일: 2026년 05월 15일 ∙ 게재확정일: 2026년 05월 29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3집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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