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선의가 폭력이 되는 조건과 ‘선한 목자 콤플렉스’
돌봄은 일반적으로 주체에 의해 수행되는 ‘객체를 향한 베풂’의 구조로 이해된다. 이 안에는 고통 받는 자에 대한 측은지심과, 그 고통에 응답하 는 돌봄 주체의 소명 의식 및 책임감이 내재되어 있다.
특히 기독교적 영 혼 돌봄의 구체적 실천 방법 중 하나인 목회상담은 사랑과 공감, 위로와 지지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돌봄의 정당성 보증을 위한 핵심 가치로 간 주한다.1
1 이창규, “은혜와 진리의 목회신학: 예수에게서 배우는 목회돌봄과 상담,” 「신학과 실천」 87 (2023), 360 361.
이 때 상담자의 선한 의도는 돌봄의 윤리적 근거이자 돌봄 주체를 실천으로 이끄는 내적 동력의 원천으로 인식된다.
이 속에서 목회상담은 선의를 돌봄의 조건으로 설정하고, 더 나아가 돌봄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으로까지 확장하였으며, 그 결과 돌봄 주체의 선의가 강할수록 더 유 능하고 성숙한 상담자라는 암묵적 기준과 규범이 형성되었다.2
2 Eberhard Hauschildt, Alltagsseelsorg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6), 71, 385; Joachim Scharfenberg, Seelsorge als Gespräch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2), 37.
하지만 목 회상담 현실에서는 상담자의 선의가 내담자의 고통을 완화하기보다 고통 을 강화하는 역설적 관계 구조로 변형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선한 의도 는 선행으로 이어진다고 보지만, 실제 돌봄 현장에서는 그러한 의도가 타 자에게 해를 초래하는 결과로 전도되기도 한다.
이 연구는 ‘상담자의 선의로 인한 폭력’을 주요 논제로 설정하고, 선의 가 목회상담 안에서 내담자를 위한 안전한 돌봄의 조건이 아닌, 그를 침묵 시키고 고통을 은폐하는 권력의 형식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분석한다.
연 구에서 말하는 ‘상담자의 선의로 인한 폭력’은 결코 내담자를 향한 노골적 강압이나 무례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더 ‘듣기 좋은 말’의 형태, 곧 위 로와 격려, 신앙적 조언이라는 온화한 언어로 작동한다: 목회상담에서 사 용되는 신학적 언어는 상담자의 선의와 달리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말 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또한 신앙적 위로와 격려는 내담자의 불안과 죄책감을 심화시키고, 조속한 회복을 바라는 상담자의 열정은 내담자가 자기 고통의 원인을 탐색할 시간을 차단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돌 봄의 실패를 단지 기술적 미숙이나 악의의 결과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든 다. 더욱이 내담자가 상담자의 선의에 대해 알고 있을 경우, 그로 인해 발 생한 상처를 비판하거나 거부하는 일은 더 어렵다. ‘저 사람은 나를 자유 롭게 하려고 한 것인데, 이를 거부한다면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과 정서가 형성될 때, 내담자가 하려고 했던 고통의 표현은 그 즉시 중단된다.
그래서 고통은 상담 관계 안에서 다루어지지 못한 채 다시 내담 자 내부로 회기하고, 그는 상담 전보다 더 심각한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된 다.
외형적으로는 돌봄이 성공한 듯 보이지만, 이는 고통이 해소되었기 때 문이 아닌, 관계 속에서 표현될 가능성이 사라졌기에 나타나는 착시에 가 깝다.
물론 연구자는 목회상담에서 상담자의 선의와, 그로 인해 형성된 돌봄 언어의 사용 및 내담자를 향한 신앙적 접근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 은 내담자가 고통을 인식하고 견디도록 하는 힘의 주요 출처가 되기도 한 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이 내담자의 개별적 경험과 정동을 충분히 고려하 지 않은 채 보편적 방식으로 적용될 때, 더 이상 돌봄의 자원이 아닌, 고통 을 겪는 내담자에게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겪게 하는 폭력이 될 수도 있 다.
동일한 신앙 언어와 동일한 종교적 틀 안에서도 어떤 내담자는 자기 고통을 충분히 표현하지만, 어떤 내담자는 침묵을 강요받는다고 느낀다.3
연구자가 이 연구에서 다루려하는 주제의 핵심 질문은 다음과 같다:
‘목회 상담 상황에서 내담자를 향한 상담자의 선의가 방어로 전환되는 조건은 무엇이며, 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상담자에게 요구되는 준비 사항은 무엇 이 있는가?’, 상담자의 선의에 대한 연구는 내담자의 효과적인 돌봄을 위 함인 동시에 상담자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담자의 고통 은 상담자에게도 정서적-심리적 영향을 끼친다.
내담자의 불안과 죄책감, 상실과 절망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상담자에게 무기력감과 초조를 유발하 며, 특히 목회상담처럼 돌봄 주체의 정체성이 ‘돕는 자’로 강하게 규정된 상태에서는 이러한 반응이 내담자의 고통을 빠르게 해결해주고 싶은 상담 자의 소망으로 조직되기 쉽다.
연구자는 상담자의 선의로 인한 내적 역동을 ‘선한 목자 콤플렉스’라 명명하고, 이 개념을 실천으로 옮기는 상담자의 심리적 조건들을 분석하 려 한다.4
3 Oskar Pfister, Das Christentum und die Angst (Zürich: Walter Verlag, 1975), 84.
4 ‘선한 목자 콤플렉스’ 개념의 명료화를 위해 ‘헬퍼 증후군’과 ‘구원자-메시아 콤플렉스’와의 비교하고자 한다. 먼저 ‘헬퍼 증후군’은 돌봄 주체의 생애사적 자기애 결핍과 자기 부정이라는 성격 구조에 주목하 는 반면, ‘선한 목자 콤플렉스’는 ‘선한 목자’라는 신학적-상징적 명령이 매개가 되어 상담 내에서 선의 가 즉각 방어로 전환되는 과정에 초점을 둔다. 또한 ‘구원자-메시아 콤플렉스’는 타인을 구제해야 한다 는 전능적 과대성을 전제하지만, ‘선한 목자 콤플렉스’는 위로와 권면이라는 온화하고 겸손한 언어를 통해서도 작동하므로 과대성을 필수 조건으로 하지 않는다. Wolfgang Schmidbauer, Die hilflosen Helfer: Über die seelische Problematik der helfenden Berufe (Reinbek bei Hamburg: Rowohlt, 1977), 9-12와 고유식, “정신역동 관점에서 본 ‘돌봄 구조 속 주체의 자기애 욕구 충족 심리’ 연구,” 「신학과 실 천」 91 (2024), 261-265를 참고하라.
‘선한 목자’라는 상징은 목회상담자에게 강력한 규범을 부여한다.
목자는 길을 제시하고 잃은 자를 찾으며, 아픈 자를 안고 흔들리는 자 를 붙든다.5
5 권현지, “상담자와 내담자를 변형시키는 분석적 삼자, 성령 하나님 – 영적지도를 적용한 목회상담 사 례연구,” 『신학과 실천』 89 (2024), 356.
문제는 이 상징이 목회상담자에게 무거운 윤리적 명령으로 작 동할 때, 내담자의 고통에 대한 탐색보다 상담자에 의해 돌봄이 제공되어 야 한다는 충동이 앞서기 쉽다는 점이다.
‘선한 목자 콤플렉스’는 상담자의 열정이나 헌신을 문제 삼는 용어가 아니다.
선의가 개입 충동과 결합될 때 돌봄이 어떻게 방향을 잃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해석적 장치다.
연구자는 이 문제의 탐색과 목회상담에서의 실천적 적용을 모색하기 위해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을 이론적-임상적 성찰의 해석 통로로 사용하려 한다.
두 학자의 서신 교환 내용들 중 연구자는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치유 와 돌봄을 주제로 한 서신들에 주목하고, 이를 오늘의 목회상담에 적용하 고자 한다.
연구자는 특히 서신들에서 ‘목회상담 내에서 고통의 표현이 중 단되는 지점’, ‘신학적-신앙적 의미 부여가 탐색을 앞서는 순간’, 그리고 ‘상담자의 선의가 방어로 전환되는 원인과 그에 대한 우려’에 집중함으로 써 ‘선한 목자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조건들을 파악하고, 목회상담에서 신 학적-신앙적 언어와 분석적 태도가 어떤 방식으로 상보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목회상담에서 내담자의 고통이 더 표 현되고, 더 탐색될 수 있는 언어의 조건을 갖추기 위함이다.
이 연구는 또 하나의 목회상담 방법이나 규범을 제시하는데 목적을 두 지 않는다. 이 연구의 관심은 목회상담에서 익숙하게 사용되는 신앙적 언 어가 고통을 경험하는 내담자의 심리와 정서를 어떠한 방식으로 드러내 고, 이해의 장으로 들어가게 하는지를 성찰하는데 있다.
따라서 이 연구에 서 전개되는 논의는 하나의 완결된 모델이 아닌, 영혼 돌봄을 실천하는 상 담자로 하여금 고통을 다루는 속도와 방향, 그리고 자기 개입의 방식을 다 시 점검하도록 요청하는 사유의 틀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내담자의 진술 이 중단되거나 왜곡되는 순간을 보다 민감하게 포착하고, 해석이나 위로에 앞서 고통을 충분히 듣고 견디는 책임을 우선 과제로 위치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 점에서 연구자는 이 연구가 목회상담 현장에서 고통 을 더 신중히 대면하고, 그에 대해 더 성찰적으로 응답하게 하는 작은 전 환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Ⅱ. 목회상담자의 ‘선의’가 갖는 병리 가능성: 돌봄은 어떻게 고통을 왜곡하는가?
목회상담 상황에서 상담자는 고통을 호소하는 내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쉽게 내면화한다.
이는 상담자로서의 효 능감 욕구와 내담자의 요구에 응답하지 못할 경우 그가 상담 관계와 신앙 차원에서 깊은 좌절에 빠진다는 종교적 불안이 중첩되면서 강화된다.6
그 결과 상담자는 자신이 내담자의 정신적-영적 상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 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기 쉬우며, 이 인식이 강화될 때 돌봄은 내담자의 경험을 중심에 두지 않고, 상담자의 개입과 효과를 우선시 하는 ‘상담자 중심’으로 기울 수 있다.7
6 상담자의 돌봄에 대한 강박화는 상담자 자신의 ‘돌봄을 도구로 한 자기애 분출 욕망’과 ‘돌봄의 신경증 화’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유식, “정신역동 관점에서 본 ‘돌봄 구조 속 주체의 자 기애 욕구 충족 심리’ 연구,” 255-259를 참고하라.
7 Eckart Nase, Oskar Pfisters analytische Seelsorge (Berlin: Walter de Gruyter & Co, 1993), 146.
이처럼 상담자가 경험하는 압박은 돌봄 주체의 책임감으로 읽히지만, 실제로는 상담자 자신의 심리적 욕구와 결합되어 작동한다.
이 때 상담자의 선의는 내담자 돌봄에 대한 책임감과 능력 있는 상담자로 인식되길 바라는 욕구가 결합된 정동적 결과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연구자는 이 연구에서 상담자의 선의가 무효하거나, 상담 요건에 서 배제해야 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상담자의 선의는 분명 돌봄의 출발점 이자, 치유의 주요 자원이다.
다만 이 선의가 목회상담에서 내담자의 방어 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위험이 있으며 상담자는 이 위험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다루고 싶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먼저 선의가 발동 되는 정동적 조건을 검토하고, 그것이 의미화와 도덕화, 조기 위안의 형태 로 등장해 내담자의 고통에 대한 탐색을 병리적으로 차단하는 작동 구조 및 과정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1. 선의의 심리적 요소
내담자의 고통은 상담자에게 단순한 이해의 대상이 아니다. 내담자의 고통을 유발시킨 그의 불안과 공포, 죄책감과 수치심, 상실과 절망 경험은 상담자 내부에 정동적 긴장을 형성하며, 그의 정신을 압박하는 자극으로 작용한다.
게다가 내담자의 고통이 완화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상담자는 무력감을 강하게 느낀다.8
그는 자신이 이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인 지, 현재의 상담이 내담자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지를 의심하며 자기검열과 불안을 강화한다.
이러한 불안은 곧 내담자의 회복 요구에 보 다 신속히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으로 이어진다. 내담자의 침묵이 길어지 고 고통이 더욱 심화되는 것처럼 느껴질수록, 상담자는 그 고통을 함께 견 디기보다 그것을 빠르게 제거하려는 욕망에 이끌린다.9
8 Scharfenberg, Seelsorge als Gespräch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2), 40.
9 Leonardo Boff, Kirche: Charisma und Macht (Düsseldorf: Patmos Verlag, 1981), 87. 레오나르도 보프 는 교회 안 권위가 복음적 봉사의 형식에서 벗어날 경우 절대 권력과 지배 구조로 오염될 수 있음을 비 판한다. 이 통찰은 목회상담에서도 상담자의 개입이 조속한 해결과 영향력 행사를 통해 자신을 결정 적 존재로 인식하도록 하는 권위적 구조로 변질될 위험을 분석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
이 때부터 상담자 의 선의는 내담자를 향한 돌봄의 동력으로 작동하지 않고, 상담자 자신의 정동적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욕구와 결합한다.
그래서 그의 선의는 내담 자의 고통을 탐색하고 파악하는 힘의 기능을 포기하고, 상담자 자신의 불 안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구성된다.
이 정신 과정에 대해 상담자가 성찰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상담자는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추적하여 고통의 원인을 충분히 진술하 도록 하는 작업보다 상담자 자신의 주관적 개입을 통해 고통을 정리하려 는 경향을 보인다.
상담자의 말이 많아지고 질문이 결론으로 바뀌며 안내 와 조언이 공감을 대신하는 순간, 상담은 내담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보 다 종결시키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이 때 상담자는 상담자로서의 자존감 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며, 상담 중 느끼던 불안과 무력감이 완화되는 경험 을 한다.
그러나 이는 내담자의 고통이 상담 안에서 충분히 다뤄졌기 때문 이 아닌, 고통의 정동이 신경증으로 일시적 안정 배출되었기 때문이다.10
결국 돌봄은 내담자의 주체적 탐색을 지지하는 힘이 되지 못하고, 상담자 자신의 자기애적 균형을 보존하는 이기적 방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이 과 정에서 내담자는 상담자가 제공한 개념과 서사에 자신을 맞추며 일시적 안도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표출 및 표현되지 못한 고통의 핵심은 그의 내 면으로 회귀하여 자아 건강에 해를 끼친다.11
10. Sigmund Freud, “Das Unbewußte,”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13-1917. Bd. X (Frankfurt: Fischer Verlag, 1963), 268-269, (263-303).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억압에 의해 의식적 표상 과의 연결이 차단된 심리적 체계로 이해한다. 따라서 증상은 제거되어야 할 단순 장애가 아닌, 진술되 지 못한 소망과 정동이 왜곡된 방식으로 표출되는 형식이다. 이 관점에서 상담자의 과도한 개입이 내 담자의 자유로운 연상과 자기 진술을 차단할 때, 상담은 고통을 해소하는 작업이 아니라 고통의 상징 화 가능성을 다시 봉쇄하는 장면으로 변질될 수 있다; Pfister, Das Christentum und die Angst, 466.
11.Sigmund Freud, “Die Verdrängung,”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13-1917. Bd. X (Frankfurt: Fischer Verlag, 1963), 250.
표면적으로 안정된 듯 보였던 돌봄 관계는 결국 내담자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상담자의 무력함과 불안 이 다시 증폭되는 악순환의 역동 속에 놓이게 된다.
2. 선의의 방어화
단순 회피로 여겨지는 상담에서의 방어는 사실 고통이 유발되는 정동 을 감당할 수 있는 형태로 처리하려는 심리 구조다.12
12. Sigmund Freud, “Formulierungen über die zwei Prinzipien des psychischen Geschehens,” in Gesa 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09-1913. Bd. VIII (Frankfurt: Fischer Verlag. 1955), 232.
이는 내담자와 동일 하게 상담자에게도 작동된다. 물론 이 방어기제 자체가 상담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문제는 상담자의 방어가 선의의 언어와 결 합될 때 발생한다.
선의가 방어로 기능하는 순간, 내담자의 경험을 여는 역할을 해야 할 상담자의 언어는 그의 경험을 닫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내담자에게 폭력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는, 그 언어가 자신의 삶 을 윤리적-신앙적으로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3
사실 목회 상담에서 가장 흔한 상담자의 방어기제 표출이 성급한 의미화다.
의미화 는 본래 혼돈을 상징화하여 삶의 연속성을 회복하도록 하는 정신 기능으 로써, 상담을 통해 고통의 탐색이 충분히 진행된 이후 내담자 스스로 자기 삶을 탐색하며 이뤄진다.14
하지만 목회상담에서 의미는 종종 상담자의 성 급한 ‘돌봄 성취’ 욕망으로 인해 내담자의 자기 경험 구성의 과업이 무시된 채, 상담 초기임에도 상담자에 의해 이미 완성된 이야기 틀로 제시되기도 한다.
물론 내담자는 제공된 의미 속에 자신을 편입시키며 안정을 얻는다.
그러나 이 안정은 일시적이며, 의미화는 내담자의 고유성을 빠르게 퇴색 시킨다. 고통은 내담자의 역사적-관계적 사건에서 다뤄지지 못하고 타인 들의 고통과 동일하게 취급되어, ‘보편적 당연성’ 구조 안에서 고유성과 독 특성을 상실한다.
그래서 내담자의 고통은 이미 이해된 것으로 간주되고, 그의 내면에 대한 진술은 발견의 언어가 아닌, 주어진 의미를 확인하는 언 어로 축소된다.15
또한 윤리화는 의미화보다 내담자를 더 빨리 침묵시킨다.
윤리적 언어 가 고통을 해석하는 틀로 사용될 때, 내담자의 경험은 탐색과 이해의 대상 에서 벗어나 평가와 판정의 대상이 된다.
내담자의 고통은 관계적 상처가 아닌 태도 문제로 인식되어 죄책감과 수치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킨다.16
13 Sigmund Freud, “Ratschläge für den Arzt bei der psychoanalytischen Behandlung,”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09-1913. Bd. VIII (Frankfurt: Fischer Verlag. 1955), 384-385.
14 Sigmund Freud, “Erinnern, Wiederholen und Durcharbeiten,”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13-1917. Bd. X (Frankfurt: Fischer Verlag, 1963), 133.
15 최성훈, “그리스도인의 고난과 신앙적 대응,” 「신학과 실천」 89 (2024), 679-680, 682. 최성훈은 현대 한국교회가 고난 앞에서 신정론적 의미를 섣불리 부여하며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태도를 지적하 며, 고통 앞에서 해답을 제공하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질문하고 견디는 태도가 요청된다고 하였다.
16.Michael Klessmann, Seelsorge (Göttingen: Neukirchener Verlag, 2009), 75.
이때부터 고통은 교정과 통제의 대상이 된다. 특히 목회상담에서는 윤리화 가 신학적-신앙적 정당성을 쉽게 얻기 때문에, 상담자의 윤리적 판단은 내담자에게 신앙적 요구이자 영적 압력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17
그래서 내담자는 자기 고통을 깊이 있게 진술하지 않고, 상담자가 승인할 만한 ‘올바른 말’로 표현하려는 방향으로 자신을 조정한다. 상담자의 위로 또한 목회상담의 필수 자원이지만, 이것이 내담자의 고 통을 빠르게 소산시키려는 상담자의 욕구와 결합될 때 내담자를 고통에 가두는 도구가 된다.
조기 위로는 내담자에게 즉각적 안도감을 제공하지 만, 이는 고통의 구조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내담자는 상담자의 위로 후에 ‘더 진술하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고, 고통은 회피 및 은폐된다.
이처럼 상담자의 방어 매커니즘을 통한 위로가 반복될수록 내담자는 깊은 고통을 드러내는 것이 관계를 위협한다 인지하고, 자신의 내면, 곧 정동의 표현에 대해 스스로 검열하고 조절하게 된다.
이 의미화와 윤리화, 조기 위로는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고 서로를 강 화시킨다.
고통을 의미로 전환하려는 모든 시도는 어렵지 않게 윤리적 평 가로 이동하고, 이 평가가 내담자의 고통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면 다시 위 로가 이뤄진다.
이 순환 속에서 상담 관계는 탐색의 장에서 안정 관리의 장으로 변형되며, 경험을 확장할 목적을 가진 언어는 경험을 축소시킨다. 이때 선의는 상담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정동을 처리하는 체계로 굳어진 다.
이처럼 방어화된 선의는 본래 의도와 달리 고통이 진술될 내담자의 권 리를 제한하는 구조적 힘을 갖는다.18
17 안석, “신앙인가 아니면 병리인가? - 유사신앙에 관한 기독교상담심리학적 연구 -,” 「신학과 실천」 42 (2014), 278.
18 Eckart Nase, Oskar Pfisters analytische Seelsorge, 82; Ernst L. Freud and Heinrich Meng, eds., Sig 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Frankfurt: Fischer Verlag, 1963), 113-114.
3. 선의의 병리적 경로
목회상담 상황에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고통이 일정한 속도로 ‘개선되 어야 한다’는 암묵적 기대를 갖고 상담의 리듬을 가속시킨다. 아직 내담자 의 경험이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담자의 변화를 바라는 이유 는 사실 상담자와 내담자가 생각하는 ‘상담의 성공’ 기준이 과정적 탐색보 다 가시적 결과에 강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집중된 상담 은 내담자의 진술과 함께 의미가 구성되는 형식을 포기하고, 여러 신뢰할 만한 규범들에 근거해 상담자가 주체적으로 도출해 낸 해석과 해답 제시 에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의존하는 방향에 집착한다.
그리고 신앙적 언어 와 윤리적 가치 등 ‘신뢰할 만한 규범들’이 이미 풍부하게 존재하는 목회상 담의 특수성은 이러한 상담자의 주관성과 일방성을 더욱 중요시하는 조건 을 갖는다.
또한 목회상담은 신앙 공동체라는 사회적 맥락에서 이루어지기에, 상 담의 성패는 개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기대와도 긴밀히 연결된다.19
내담 자의 빠른 안정은 공동체에게 신앙의 효력에 대한 표지가 되고, 상담자에 게는 목회적 성취 지표로 읽히기 쉽다.
이러한 환경은 상담자에게 내담자 의 심리-정서적 탐색보다 ‘정상화’에 집중하도록 만들며, 그 과정에서 내 담자 고통의 조기 봉합은 상담자의 조급함을 제거해줄 최적의 선택이 된 다.
이처럼 조기 봉합은 돌봄이 위치한 사회적-종교적 공간의 논리와 결 합하여 구조적으로 강화된다.20
19 Jürgen Ziemer, Seelsorgelehre (Stuttgart: UTB, 2008), 132-133.
20 앞의 책, 139.
더 나아가 조기 봉합의 욕망은 목회상담자 의 정체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목회상담자는 일반 상담자와 달리 내 담자의 신앙 역동을 인지하고, 영적 동반자이자 ‘선한 목자’로 기능하기를 바라는 내담자의 종교적 욕구와 이상이 투사된 존재다.
그런데 만약 상담 이 진행 중임에도 내담자의 혼란이 지속된다면 상담자는 내담자로부터 돌 봄 주체의 역할을 감당해내지 못하다는 의심을 받을 것이라 여기고, 상담에 더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압박을 스스로 부가한다.
조기 봉합은 이처럼 상담자가 ‘좋은 상담자’로 남기 위해 선택하는 무의식적 전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적 위험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선시 되어야 할 상담자 의 과제는 ‘자신에게 닥친 구조적 위험들을 자기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일’ 이다.
상담자는 먼저 내담자의 고통이 언어화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조급함과 불확실성을 견디는 인내가 필요하며, 해석과 권면 이전에 경험 의 전개를 우선시하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이 위험들을 인식하고 대처하 려는 그 순간부터 목회상담은 ‘결과 중심의 개입’에서 ‘탐색 중심의 동행’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Ⅲ. 프로이트-피스터의 서신 교환에서 드러난 ‘선의의 위험’과 ‘돌봄 윤리’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은 정신분석과 종교, 과학적 인간 이 해와 신학적 세계관이 만나 서로를 탐색하고 갈등하며 결국 서로를 인정 하는 역사적 기록이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를 치료와 돌봄의 관점에서 보면 그 핵심은 두 학자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돌봄의 역동과 그 위험 조건 에 대한 성찰임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서신들은 고통을 겪는 인간을 돕 고자 하는 의도가 어떤 조건에서 탐색의 의지를 축소시키고 내담자의 언 어를 대체하며, 관계를 미묘한 위계 구조로 전환시키는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서신을 통해 피스터(Oskar Pfister)에게 목 회자가 내담자와 상담 및 분석을 진행할 경우, 그의 선의가 분석적 탐색의 필요를 대신하려는 충동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피 스터 역시 이 문제를 인식하고 이에 대한 보완의 필요성을 인정했다.21
21 L. Freud, 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62-64, 68-72.
따라서 이들의 서신 교환은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돌봄의 취약성으로 작동 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환기한다.
이제부터 연구자는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에 등장하는 정신 분석 요소들을 토대로, 목회상담자의 선의가 내담자에게 해를 가하게 되 는 구체적 경로를 살펴보려 한다.
그의 선의가 탐색의 필요성을 약화시키 는 과정, 상담자의 우월성 확인 욕구와 결합하는 구조, 초자아와 죄책감의 회로 속에서 돌봄이 왜곡되는 양상을 추적하고, 목회상담에서 정신분석 기술의 도움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파악해보고자 한다.
1. 프로이트의 반복된 경고: 선의가 분석을 위안으로 대체하는 순간
프로이트에게 분석은 억압된 무의식을 의식으로 전치시키고, 이를 대 면하여 삶에 적용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분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 경증처럼 무의식이 의식으로 표출되는 순간 불안이 형성되며, 자아는 불 안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방어기제로서 저항을 발생시킨다.22
그 런데 이 기제가 목회상담에서도 유사하게 일어난다. 고통을 겪는 내담자 를 도우려는 상담자의 선의는 역설적으로 저항과 결합할 위험이 있다.
프 로이트는 상담자의 긍휼과 선의가 종교적 해석의 형태로 내담자에게 성급 한 안도와 조기 안정을 부여한다면 돌봄이 파괴될 수 있다고 피스터에게 경고한다.23
22 Sigmund Freud, “Jenseits des Lustprinzips,” Gesammelte Werke, Jenseits des Lustprinzips und ande re Arbeiten aus den Jahren 1920-1924, Bd. XIII (Frankfurt: Fischer Verlag, 1967), 13-14.
23 L. Freud, 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91, 113-114, 143-145.
즉 고통이 내담자 외부로 표현되지 못한 상태에서 외부 의미가 상담자에 의해 먼저 제시 및 주입된다면, 내담자는 자기 경험을 진술할 필 요를 더 이상 느끼지 못하고, 그로 인해 분석적 탐색 역시 구조적으로 중 단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제 목회상담 상황에서 상담자는 내담자가 분노와 수치, 상실과 같은 정동 언어로 자기 경험과 감정을 진술할 때, 이를 용서와 은혜, 섭리 등의 신학적 의미 틀 안에서 빠르게 정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개입은 목 회상담의 윤리적 차원에서 상담자의 선의 표현으로 이해되기 쉽고, 신학 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듯 보인다.
하지만 정신분석 관점에서 보면, 이와 같은 정의는 무의식적 갈등을 구성하는 억압된 욕구가 표현되기도 전에 그 욕구를 다시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래서 치유를 위해 반드시 탐 색되어야 할 내담자의 정동은 다시 자아의 통제 영역으로 회수되고, 갈등 은 이미 상담자가 제시한 신앙적 결론 속에서 봉합되어 분석되지 못한 채 남는다.
1924년 5월 11일자 서신에서 프로이트는 정신분석이 인격적 선함 과 과도하게 결합할 경우, 무의식의 진실은 계속 은폐된 채, 환자를 안심 시키는 기능으로 축소될 수 있음에 대해 경고했다.24
이는 목회상담의 필수 가치로 간주되는 ‘선함’이 분석적 장면에서는 역설적으로 탐색을 차단하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실제 분석 과정에서 환자 를 조기에 안정시키려는 분석가의 욕망이 저항과 결합해 분석의 지속을 약화시키고 무의식의 전개를 단축시키는 양상을 반복적으로 문제 삼았 다.25
24 앞의 책, 98-99.
25 Sigmund Freud, “Zur Einleitung der Behandlun,”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09-1913. Bd. VIII (Frankfurt: Fischer Verlag. 1955), 465.
이러한 맥락에서 치료자의 적극적-일방적 개입은 결코 치료적 전진 의 징후라기보다, 분석 중단의 신호로 읽혀야 한다.
2. 선의와 권력의 결탁: 전이, 이상화, 역전이 심화 구조
프로이트와 피스터는 분석가의 치료적 개입에 관한 각자의 견해를 서 신을 통해 지속적으로 교환하였다.
물론 이 논의는 자기 입장을 일방적으 로 고수하거나 상대의 견해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두 학자는 서로의 관점 속에서 타당한 부분을 인정하는 반면, 치료적 위험이 발 생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며 신중히 논의를 심화시켰다.26
피스터는 목회자이자 교육자로서 다수의 청년과 교회 공동체 구성원 들에게 접근 가능한 ‘돌보는 자’의 위치에 있었다.27
프로이트는 초기 서신 에서 이미 피스터가 ‘많은 젊은 영혼들’에 접근할 수 있는 목회적 특권을 지녔음을 인정하는 한편, 그의 영향력이 조언이나 교육의 효과를 넘어, 피 스터라는 인물 자체에 대한 전이를 매개로 형성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28
이 점에서 피스터의 언어는 정서적 권위와 윤리적 방향성이란 이상적 전 이적 특징을 함께 갖는다.
이상화 전이는 돌봄을 받는 자에게 안정과 신뢰 를 제공하지만, 돌봄을 주는 자에게는 관계의 의미를 선점하고 해석의 방 향을 규정하는 특권을 부여한다.29
프로이트가 피스터에게 경계할 점으로 지목한 특징이 바로 영혼 돌봄을 실행하는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비대 칭성이다.
상담자가 인격적 선함의 표상으로 자리 잡는 순간, 내담자는 자 신의 언어를 통해 스스로를 탐색하지 않고, 상담자의 예상과 기대의 방향 으로 자신의 경험을 진술 및 정리하면서 그가 제시한 의미를 승인 및 수용 하고 삶에 적용하려 한다.
피스터 역시 이 위험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는 서신에서 자신이 돌 보는 사람들에 대해 대체로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에게 집중된 정서 적 의존과 기대의 부담에 대해 프로이트에게 토로한다.
돌봄 객체가 목회 자 및 교육자에게 ‘해답을 가진 존재’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소망을 피스터 가 직접 체험했기 때문이다.30
26 L. Freud, 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103-104. 27 Oskar Pfister, Die Willensfreiheit (Berlin: Georg Reimer, 1904), 39-40. 28 L. Freud, 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10, 24. 29 앞의 책, 12.
30 앞의 책, 94, 97.
상담자는 내담자에 의해 그의 소망을 채우고 결핍을 줄이는 존재로 이미지화되며, 상담자 역시 환상적-허구적 이미지 가 계속 유지되길 욕망한다.
선의는 이러한 상담자의 욕망을 가장 쉽고 빠 르게 충족시키는 언어이며, 목회상담에서는 이 충족의 욕망이 신앙적 책 임감과 영적 소명 의식으로 인해 더욱 강화된다.
피스터는 선의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을 프로이트와의 관계 안에서 실 천으로 옮겼다.
프로이트가 딸 소피(Sophie)를 잃은 후 피스터에게 상실의 고통에 대해 진술했을 때, 피스터는 섣불리 위로의 명분으로 그 상황에 맞 는 신학적 해석을 감행하지 않았고, 그의 심리를 분석하려는 태도 역시 보 이지 않았다.31
즉 그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선의로 돕는 자’가 되려는 욕 망을 스스로 억제했다.
이 억제는 상대의 고통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의 미화하려는 충동을 유보함으로써 돌봄이 고통의 지속을 함께 견디는 관계 적 윤리 위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는 목회상담에서도 자 주 관찰되는 구조다.
아무리 내담자에게 위로와 지지를 표현할 목적으로 선의로 포장된 언어를 사용할지라도, 상담자가 내담자의 삶의 의미를 규 정하면 할수록 내담자는 자신의 언어를 상실한다.
그리고 상담자가 내담 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확신이 커지면, 상담자는 자신이 수행했 던 상담 내에서의 태도를 점검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상담자로서의 정 체성은 ‘내담자를 대하는 주체적 태도’에 의해 증명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 구조 속에서 목회상담은 상담자가 비의도적으로 가하는 억압적 개입과 정서 조절의 요구로 인해 내담자의 주체적 진술 가능성을 약화시키고 결 과적으로 증상의 심화를 초래할 수 있다.32
31 앞의 책, 77-78.
32 Reinhard Schmidt-Rost, Seelsorge zwischen Amt und Beruf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85), 23-24.
동시에 상담자 역시 ‘내담자를 향한 선의’를 자신의 목회적 정체성을 지지하고 강화하는 심리적 근거로 삼는 순간, 그 선의를 신경증적으로 조직하여 목회상담을 억압된 욕구의 우회적 출구로 사용할 위험에 놓인다. 프로이트와 피스터는 서로 존중의 태도로 상대를 대했다.
그래서 자신의 선의가 상대의 생각을 지배하지 않 도록, 관계를 침해하지 않도록 유의했다.
피스터가 프로이트에게 신앙적 위로를 강요하지 않았던 것, 프로이트가 피스터의 고통을 분석 대상으로 만들지 않았던 것, 그 절제 속에서 두 학자는 전이와 역전이가 침범하지않는 공간을 만들었다.
이는 목회상담자가 숙고해야 할 가장 중요한 유산 이다.
선의가 관계의 중심이 될 때 권력은 폭력적이 되고, 선의를 스스로 조절할 때 진정한 대화가 시작된다.
3. 초자아와 죄책감의 회로: 선의가 내담자의 진술을 잠식하는 경로
피스터는 기독교적 영혼 돌봄을 요청하는 신앙인들의 공통된 성향으 로써 자신의 고통에 대해 숙고하기보다, 신앙의 언어로 자신의 고통의 정 서를 빠르게 형용하고 정의하려는 모습에 대해 지적한다.33
그들은 상처와 분노, 좌절과 열망 등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 아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지 않아서’와 같은 신앙 표현으로 자기 상태를 규정한다.
이는 자칫 경건하고 겸손한 자기 고백처럼 보이지만, 정 신분석 차원으로 보면 숙의를 거친 고백이 아닌, 이미 내면화되어 있는 종 교적 규범을 즉시 작동시킨 결과다. 다시 말해 고통의 정서적 맥락을 탐색 하기 전에 초자아의 명령이 먼저 발동하고 자아가 이를 적극 수용한 구조 라 할 수 있다.
물론 고통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이 생략되 고, 즉시 자신을 향한 도덕적 판단과 함께 자기 비난이 이뤄진다.
그래서 이해되어야 할 경험인 고통은 교정되어야 할 잘못으로 재구성되어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스스로 심문하고 단죄하는 결과에 이 르게 된다.
피스터는 이 현상을 개인의 미성숙한 신앙 때문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는 종교적 언 어가 사람들의 내면에서 처벌 기능을 수행하는 방식에 주목했다. 그가 영 혼 돌봄에 있어 정신분석적 통찰의 필요성을 느낀 이유도 정신분석으로 신앙을 대체하고자 함이 아닌, 신앙이 무의식적 억압의 통로로 전환되는 지점을 찾아내어 수정하기 위함이었다.34
33 Pfister, Das Christentum und die Angst, 412-413. 피스터는 종말론적-보상적 신앙 언어가 열등한 동 기, 곧 정동의 빠른 제거를 위한 공포처리와 보상심리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34 L. Freud, Sigmund Freud - Oskar Pfister Briefe 1909-1939, 11-13,
이로써 그는 돌봄 주체의 선의가 표출된 목회적 권면이 내담자의 죄책감을 강화하는 위험으로 이어지는 돌 봄의 역설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은 이 과정을 설명하는 구조적 틀을 제공한 다.
초자아는 노골적인 금지나 처벌 형식으로만 작동하지 않고, 사랑과 보 호의 언어를 매개로도 처벌을 수행하고 금지를 정교하게 강화시킨다.35
목 회상담에서의 선의 역시 초자아의 처벌과 금지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다.36
35 앞의 책, 120-121.
36 앞의 책, 134-135.
상담자가 ‘하나님은 용서하신다’고 말하는 순간, 내담자는 이를 위로로 여 기지 않고, 자신이 용서받을 자격의 유무를 숙고하며 자기 검열을 촉발시 킨다. 또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진술 역시 고통을 견디게 하는 약속인 동시에 분노를 분출하지 못하게 하는 암묵적 규범으로 기능 한다. 피스터는 목회상담 상황에서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교리적 문장 으로 표현하는 모습, 자신의 욕망에 대해 설명하지 않고 죄책감을 고백하 는 태도, 슬픔을 회개로 전환하는 과정을 어렵지 않게 목격했다.
이때 상 담자가 선의로 내담자에게 동조하면, 초자아의 영향력은 더욱 강화된다. 표현되지 못한 감정은 해소되지 않고, 무의식 속으로 억압되어 신경증 등 의 형태로 증상화되어 정신적으로도, 일상생활에도 피해를 끼친다.
만약 상담자가 초자아의 기능과 자아기제 등 내담자의 정신역동적 과 정에 대해 이해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목회상담은 내담자에게 안전한 돌 봄의 실천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신분석 기술의 도움으로 상담 자가 자신의 심리와 정서, 특히 상담에서의 선의 표현의 기제를 분석할 수 있다면, 좀 더 객관적으로 내담자를 탐색하여 그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돌봄을 실천할 수 있다. 즉 목회상담에 있어 정신분석은 반드시 필 요한 윤리적 장치다.
Ⅳ. 목회상담으로의 실천: 선의의 충동적 표출을 절제하는 돌봄의 조건
앞서 살펴본 상담자의 선의가 지닌 정신 역동적 위험을 넘어, 이제는 실제 목회상담 장면에서 윤리적 자원으로써 선의가 어떤 방식으로 분별되 고 조율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실천적 적용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이 를 위해 연구자는 먼저 선의를 목회상담의 실천 윤리 안에서 재구성하고, 목회상담의 사례를 통해 상담자의 선의가 방어로 전환되는 정동적-관계 적 경로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목회상담자가 내담자를 향한 선의 를 자기 성찰의 대상으로 삼고 선의의 절제와 유보의 태도에 대한 방법론 을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에 비춰 제시하고자 한다.
1. 상담자의 선의를 돌봄의 윤리적 자원으로 재개념화하기
고통 받는 내담자를 향한 사랑과 연민, 그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 등의 정서적 자질과 인격적 품성은 목회상담자의 윤리적-신앙적 성숙을 나타 내는 지표로 간주되고, 실제로 많은 목회상담 담론은 이를 상담의 신뢰성 과 치유 가능성으로 연결시켜왔다. 그러나 목회상담의 성숙은 결코 상담 자의 선의 강도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문제는 상담자가 얼마나 선한 마 음을 갖고 있는가가 아닌, 선의가 상담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는가에 있다.
프로이트는 “Zur Einleitung der Behandlung”에서 분석가가 환자의 회복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그의 고통을 함께 견디지 못하고 자기 견 해를 성급히 주관적인 개입 형태로 제시할 경우, 분석은 환자의 무의식을 탐색한다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채, 분석가의 기대와 해석을 환자에게 강요하는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37
즉 프로이트는 치료자의 고유식 | 목회상담자의 ‘선한 목자 콤플렉스’에 대한 정신분석적 고찰 - 상담자의 선의와 임상적 책임의 재정립을 중심으로 365 과한 적극성, 곧 ‘환자를 돕고자 하는 욕구’가 분석을 훼손할 수 있음을 경 고했다.
이 문제는 사실 목회상담 상황에서 더욱 복합적인 형태로 심화된 다. 목회상담에서는 신앙적 책임감과 영적 소명 의식이 함께 결합되면서 상담자의 선의가 강한 정서적 압력으로 전환되기 용이하고, 여기에 목회 상담과 목회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과잉 기대가 더해질 때, 선의는 허구 적인 정당성을 얻는다.
이는 ‘능력 있는 상담자’, ‘책임 있는 돌봄 제공자’, ‘내담자를 문제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해결사’와 같은 자기상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결합되어, 상담자의 인정 욕구와 보상 심리를 자극하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이 과정에서 선의는 열등감을 보상하고 우월감을 강화하려는 심리적 동기와 맞물려 돌봄의 관계 내로 즉각 침투한다.38
37 Freud, “Zur Einleitung der Behandlung,” 467, 471–474.
38 Alfred Adler, Menschenkenntnis (Köln: Anaconda Verlag GmbH, 2008), 72-74.
따라서 목회상담 에서 선의는 강화되어야 할 미덕이 아닌, 철저한 관리와 절제가 요구되는 요소로 재개념화되어야 한다.
결국 상담자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과제는 ‘내가 얼마나 진심으로 내 담자를 돕는가’를 스스로 확인하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담자 는 자신의 선의가 내담자로 하여금 고통을 여과 없이, 왜곡 없이 진술하도 록 돕고 있는지, 혹시 그 진술의 욕구를 위축시키고 은폐를 촉진시키고 있 지는 않은지 자문하며 선의의 근본적 원인을 탐색 하고 점검해야 한다.
2. 목회상담의 사례를 통해 본 ‘선의가 방어로 전환되는 정동적-관계적 경로’
목회상담 현장에서 선의의 병리화는 대개 극적 실패나 노골적 폭력 형 태보다는 위로와 지지라는 돌봄의 형태로 작동하기 때문에 상담자와 내담 자 모두에게 쉽게 식별되지 않고, 점차 관계를 훼손시킨다. 다음 사례는 선의의 병리적 작용이 목회상담 과정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형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중년 여성 내담자 A는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온 교인이다. 그녀는 최근 남편의 외도로 인해 사실상 부부 관계가 붕괴된 상태에 놓여 있으며 해소 되지 않는 불안과 불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 초기 A 는 자신의 상황과 상태를 비교적 차분히 설명했으나, 상담이 진행될수록 ‘하나님이 정말 계신지 모르겠다’, ‘기도해도 내 상황은 여전하고 감정 또 한 무너진다’며 심리적 갈등과 심각한 신앙적 혼란을 호소했다. 이때 상 담자는 내담자의 고통이 더 심화될 가능성을 감지하고, ‘정황상 그런 생 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믿음의 사람이니 모든 면에서 서서히 괜찮아 질 것이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과 함께 하신다’, ‘이 시간을 잘 견디면 앞으로 더 신앙이 굳건해질 것’이라며 정서적 안정과 신앙적 확신을 제공 하고자 상담자의 생각을 주입했다. 이는 내담자의 고통이 더 심화될 위험 을 저지하려는 상담자의 선의, 그리고 돌봄 주체로서 책임을 다하고자 하 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A는 상담자의 위로와 지지, 응원 에 대해 감사를 표한 후, 다음 회기부터 자신의 분노와 절망, 하나님을 향 한 원망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내 믿음이 약하다’, ‘내가 더 기도하지 않아서 나쁜 일을 겪는다’는 신앙적, 그리고 자기 비하적 표 현으로 상담 시간을 채웠고, 여전히 불안과 불면증은 호전되지 않았다.39
39 이 사례는 임상 윤리상 특정 개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재구성된 예시적 사례이며, 단일하고 사후적인 서술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지닌다. 이 연구는 선의가 방어로 전환되는 전형적 경로를 예시하는 데 목 적을 두었을 뿐, 이를 통계적으로 일반화하거나 인과를 확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내담자 구성과 신앙 맥락에서 선한 목자 콤플렉스가 어떻게 분화되어 나타나는지에 대한 후속 사례 연구가 필요하다.
이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담자의 개입 목적이 내담자를 의도적 으로 통제하려는데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목회상담 장면에서 자 주 등장하는 위로와 권면을 통해 내담자의 고통을 완화하고, 동시에 신앙 의 붕괴를 방지하려는 선한 의도를 갖고 이를 돌봄의 행위로 옮겼다.
그러 나 바로 그 선의는 상담 안에서 특정한 규범적 의미 구조를 형성하며, 내 담자의 정신 역동이 충분히 전개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했다.
배우자를 향 한 분노와 절망,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배신감 같은 감정은 상담 내에서 자유롭게 표출되지 못했고, 신앙적으로 소산시켜야만 하는 감정으로 처리 되었다.
내담자는 결국 고통을 관계적 상처와 상실의 문제로 다루지 못하 고, 자기 신앙의 결함이라는 틀 안에 편입시키며 치유로 가는 길을 스스로 막았다.
프로이트가 “Trauer und Melancholie”에서 밝혔듯, 상실의 고통은 자기 내면에서 재경험되지 못하고, 이를 언어로 표출하지 못할 때 병적 형 태로 고착된다.
애도는 이러한 고통의 증상을 빠르게 소산시키는 과정이 아닌, 고통의 원인을 탐색하고, 그 의미를 재구성하는 정신 작업이다.40
40 Sigmund Freud, “Trauer und Melancholie,” in Gesammelte Werke, Werke aus den Jahren 1913 1917. Bd. X (Frankfurt: Fischer Verlag. 1963), 430. 3
하 지만 위 사례에서 상담자의 선의는 애도 과정을 중단시키고 고통으로 나 타나는 2차 증상만을 빨리 봉합하는 방향으로 작동했다. 결론적으로 상담 자의 선의는 내담자의 상담에 대한 비의도적 저항의 원인이 되었고, 이는 내담자의 신앙적 강박과 자기비난의 형태로 전위되었다.
그러나 상담자는 이를 내담자의 불안 해소와 안정화의 결과로 오해할 수 있다. 특히 내담자 가 신앙적 언어로 상담자에게 순응할수록 상담자는 자신의 개입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내담자의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고, 다 만 그 불안을 표현하는 방식만 제한되었다.
갈등 역시 다뤄진 것이 아닌, 이를 표현하는 언어가 축소되었을 뿐이다. 따라서 상담자는 내담자의 빠 른 안정과 회복을 확인하고자 하는 기대를 버리고, 내담자의 정동이 상담 내에서 은폐되는지에 대해 민감하게 식별할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노력해 야 한다.
내담자가 더 이상 슬프지 않다는 고백보다, 무슨 이유로 슬픔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는지에 대한 심리 과정을 탐색 및 분석해야 하며, 신앙 적 언어 자체의 의미 파악보다, 그 언어가 내담자의 심리 묘사를 돕는지, 아니면 고통을 억제시키는지를 상담자는 구분해야 한다.
3. 상담자의 선의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목회상담의 임상적 기준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이 오늘날 목회상담에 제공하는 주요 통찰은 내담자를 향한 위로와 지지를 명분으로 상담자가 자신의 선의를 상담에 즉각 개입시키려는 의지를 정당화하지 말고, 이 개입의 충동 자체 와 그 배후에 작동하는 심리적-관계적 동인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점검 하는 실제적 훈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하는데 있다.
만약 상담 자가 내담자의 위로와 지지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반응한다면 분명 내담자 로부터 환상적 파트너로 인식되어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상호간 긍정 평 가를 하게 된다.41
41 Ulrich H. J. Körtner, “Seelsorge und Ethik – Zur ethischen Dimension seelsorgerlichen Handelns,” in Zukunftsperspektiven für Seelsorge und Beratung (Göttingen: Neukirchener Verlag, 2000), 93-94.
하지만 이 과정이 지속된다면 내담자는 자신의 모든 문 제와 갈등을 상담자를 통해 해결하려는 절대 의존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목회상담은 내담자의 성장과 성숙이 아닌 퇴보의 도구로 전락하게 된다.
이제 연구자는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을 토대로 상담자의 선 의로 인해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비판적으로 검토 후, 이를 바탕으로 목회 상담에 적용해야 할 몇 가지 핵심 임상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상 담자, 특히 목회자 정체성이 강한 상담자는 ‘즉시 응답의 충동’을 스스로 억제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는 상담자이자 목회자로서 고통을 겪는 내 담자에게 자신이 해주고 싶고 해줘야 하는 일방적-주관적인 설교와 권면 형태의 방법으로 즉시 도움을 주길 원한다.
게다가 내담자가 상담자로부 터 자신의 상실과 죄책감, 불안과 분노의 원인과 의미를 신앙적 언어를 통 해 설명듣기를 바란다면 즉각적인 도움의 충동은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목회상담은 일반적인 목회행위와는 차별화된 임상적 고유성을 지닌 전문 치유 영역으로써 내담자의 심리 탐색을 통한 진단이 치료 과정 중 가장 중 요하다.
치료가 진단을 앞설 수 없듯, 목회상담도 마찬가지다. 물론 상담 자는 고통 받는 내담자에게 가시적인 치유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내담자 를 고통 속에 방치하고 있다는 강박적 평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진단은 치유의 전 과정을 파괴시키고, 그로 인해 내담자의 삶도 훼손될 수 있음을 상담자가 인지하고, 이 인식을 훈련을 통해 구체적 실천 방법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또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하는 ‘질문의 방향’을 계속 점검해야 한다.
상담자의 선의가 개입 충동과 결합될 경우, 상담자의 질문은 그의 주관적 의도대로 내담자의 삶을 결정하는 방향으로 향한다. 목회상담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인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 이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지 않을까요?’와 같은 질문은 사실 상담자의 기대를 내담자에게 주입하는 우회적 명령에 가깝다.
반면 선의 가 절제된 질문은 내담자의 정서를 세밀히 분화시키고, 아직 인식하지 못 한 경험을 언어화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향하는 질 문이 ‘신앙적 정답의 유도’인지, ‘정동의 세분화를 돕는 개방’인지를 구분해 야 한다.
이 구분은 상담자의 선의가 권력으로 전환되는 위험을 저지하는 핵심 요소다.
그리고 상담자에게는 신학적–신앙적 언어에 내재된 내담자의 정동과 관계 역동을 임상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이 요구된다.
동시에 이러한 언어를 언제, 어느 정도까지 개입의 자원으로 활용할 것인지를 판단하고 조절할 임상적 분별력도 갖춰야 한다.
지금까지 연구자가 이 언어들에 대 해 제기한 문제는 상담자의 선의와 결합된 채 부적절한 시점에 과도한 의 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면서 내담자의 경험을 조기에 정리하고, 고유한 정동의 진실을 약화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목회상담 에서 결코 배재되어야 할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내담자는 자신에게 익숙 한 이 언어들을 통해 분노, 수치, 상실, 죄책감 등과 같은 복합적 정동을 표현할 가능성을 얻고, 상담자는 그 표현을 해석의 자료로 삼아 내담자의 내면 구조와 관계 경험을 더 정교하게 파악할 수 있다.42
42 Kristin Merle and Birgit Weyel, Seelsorge – Quellen von Schleiermacher bis zur Gegenwart (Tübin gen: Mohr Siebeck, 2009), 156-157.
상담자가 내담자 의 신학적-신앙적 언어 속 의미와 가치를 해석의 주요 도구로 삼는다면 이 언어들의 사용 시점과 강도 또한 조절할 수 있다.
즉 상담자는 이 언어 들의 등장 자체를 부정하지 말고, 해석적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바라보며 느끼는 내 부 반응을 임상의 1차 자료가 아닌 2차 자료로 삼는 태도가 필요하다. 내 담자의 고통이 강해질수록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관계 안정을 위해, 그리 고 내담자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는 존재로 인식되기 위해 내담자의 삶에 개입하길 원한다. 그래서 상담자는 회기 중이나 직후에 다음의 질문 들을 통해 자기 점검을 수행해야 한다. ‘지금 내가 하려는 말은 내담자의 고통을 더 들을 수 있게 해주는가, 아니면 내 불안을 먼저 낮춰주는가?’, ‘현재 느끼는 나의 조급함은 내담자의 위기 때문인가, 아니면 좋은 상담자 로 보여지길 원하는 나의 위기 때문인가?’, ‘내가 제공하려는 신앙적 언어 는 내담자의 정동을 더 분명하게 만드는가, 아니면 그 정동을 빠르게 정리 하도록 만드는가?’ 이 질문들은 자기반성의 의미도 있지만, 선의가 방어로 이동하는 경로를 실시간으로 차단하는 미시적 윤리 장치로써 의미가 더 크다. 하지만 이 과정들을 상담자 개인의 자발적 성취에만 맡겨서는 안 된 다. 이를 위해서는 목회상담 교육과 슈퍼비전의 평가기준 및 실행구조 전 반이 보다 엄밀히 재정비되어야 한다. 기존 목회상담 교육과 슈퍼비전 역 시 상담자의 심리학적 이해와 내담자에 대한 분석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 해 왔지만, 실제 훈련의 중심에는 목회 돌봄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강 조해 온 경향이 적지 않다.43
왜냐하면 그것이 다른 영역의 상담자와 차별 화된 목회상담만의 고유성이자 독특성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며, 내담자 가 다른 상담자가 아닌 목회상담자에게 돌봄을 요청한 원인과 기대하는바 역시 목회 돌봄 차원의 위로와 지지일 것이라는 선행적 가정이 상담자 생 각 속에 지배적이기 때문이다.44
43 이창규, “은혜와 진리의 목회신학: 예수에게서 배우는 목회돌봄과 상담,” 360.
44 Hans-Christoph Piper, Kommunizieren lernen in Seelsorge und Predigt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81), 34, 37-38.
그래서 상담자의 친절함과 정서적 수용성, 그리고 적절한 성경적-신학적 조언의 제공 여부가 ‘좋은 상담자’를 가 늠하는 기준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이 가정은 내담자의 기대를 지나치게 단순화하였다.
유능한 목 회상담자는 정서적으로 친절한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물론 위로와 지지 역시 제공되어야 하지만, 내담자의 신학적–신앙적 언어 속에서 그의 심리 역동을 파악할 수 있는 분별력과 자기 선의의 무의식적 동기를 성찰할 수 있는 분석적 자기이해, 그리고 내담자의 진술을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관 계를 견딜 수 있는 임상적 역량이 없다면 유능한 상담자가 될 수 없다.
바 로 이 점에서 프로이트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은 목회상담자의 자질을 위 로의 능숙함보다, 내담자의 고통에 대한 솔직한 진술을 확보하고 사유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을 다시 세워주는 임상적 준거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 다.
Ⅴ. 나가는 말
목회상담은 본질적으로 고통을 겪는 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가 자 신의 삶에 대한 재조명을 통해 의미를 발견하고 삶의 의지를 현실에서 실 현시키도록 돕는 관계 작업이다.45
45 Klaus Winkler, Seelsorge (Berlin: Walter de Gruyter, 1997), 1-3.
그러나 실제 목회 환경 속에서의 상담 은 종종 이러한 이상적 정의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된다. 교회, 특히 한국 교회 공동체는 목회자에게 다양한 정체성을 부여한다.
설교자이자 교회 공동체 지도자, 동시에 신앙적 권위를 부여받은 영적 인물로 알려진 목회 자에 대한 인식은 상담 상황에서도 그 정체성들이 그대로 유지된다.
교인 들은 목회자에게 일반적인 상담자의 기능을 넘어, 자신의 삶에 개입하여 갈등과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기를 기대한다.
즉 교인들에게 목회상담은 상담자와 함께 자기 경험을 나누고, 미처 풀지 못했던 삶의 의문을 깊이 있게 사고하는 과정으로 사용하기보다, 이제까 지 얻지 못했던 삶의 해답을 ‘능력 있는 목회자’를 통해 얻는 과정으로 이 해되기 쉽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일방적-조작적 관계가 돌봄이란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특히 목회자에게는 ‘선한 목자’라는 긍정적이지만 부담스러운 이미지가 비의도적으로 부여되 어있으며, 목회상담자에게도 동일한 이미지가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내담자의 회복에 대한 책임감을 강박적으로 갖게 된다.
이제까지 연구자가 논의한 내용들은 모두 목회상담자의 과대된 책임감과, 이를 자 신의 개입 행위를 통해 해소하려는 욕구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만약 상담 자가 이러한 욕구의 실현에 집착할 경우, 목회상담은 본래의 의미와 가치 를 상실할 뿐 아니라, 내담자가 문제로 경험하던 증상들을 강화하거나 고 착시키는 부작용을 얻게 될 것이다.
물론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해를 가하거나 그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려 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
의도의 차원으로만 한정한다면, 그의 태도는 오히려 목회적이며 헌신적인 돌봄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목회상담 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내담자의 건강한 독립과 성숙에 있다면, 상 담자의 선한 의도만으로 그 실천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상담자의 태도가 아무리 선의에 기반 하더라도, 그것이 치료과정을 왜곡한다면 내담자의 상태와 목회상담의 결과는 부정적일 수 있다.
다시 말해 목회상담의 선한 결과는 치료과정의 왜곡을 식별하고 조절할 수 있는 내담자 심리에 대한 분석과 통찰이 함께 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래서 연구자는 프로이트 와 피스터의 서신 교환에서 자주 언급되는 피스터의 ‘분석적 영혼 돌봄 (Analytische Seelsorge)’이 오늘날 목회상담을 재사유하기 위한 중요한 이 론적-실천적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연구자는 앞으로도 목회상담 을 보다 분석적인 차원에서 탐구함으로써, 목회상담자의 성찰적 실천과 임상적 성숙을 위한 논의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또한 목회상담을 통해 내담자의 성숙을 기대한다면, 그에 앞서 상담자 자신의 성숙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상담자의 성숙은 선의의 강도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자기 안에 내재된 선의 속에 숨은 결핍과 불 안, 책임감과 인정 욕구, 구원자적 자기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 석하고 성찰하며, 이러한 요소들이 상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능력 에 달려 있다.
상담자는 자신의 내담자를 향한 선의와 상담에 대한 기대가 돌봄의 실천을 넘어, 언제든지 자기 욕망의 실현 장치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자기 성 찰이 결여될 때, 상담자의 진정성은 쉽게 선의의 오남용을 가리는 정당화 의 언어가 될 수 있다.
목회상담은 결코 상담자의 진정성을 기반으로 성립되지 않고, 정당화 를 얻지도 못한다. 목회상담은 내담자의 삶에 미칠 실제적 영향, 개입의 논리성과 합리성, 그리고 그 과정이 내담자에게 어떻게 경험되고 수용되 는가를 함께 고려하는 이성적 판단 위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상담 자는 선의의 진정성을 내세워 내담자를 설득하거나 교정하려 하지 말고, 내담자가 자신의 삶을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함께 검토 가능한 관계를 형성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실천이 가능해질 때, 목회 상담은 더 이상 ‘선한 목자’라는 이상화된 자기상과 그로 인한 상담자의 ‘선한 목자 콤플렉스’로부터 벗어나, 내담자의 삶 앞에서 스스로를 끊임없 이 점검하는 성찰적 책임을 다하면서 상담자와 내담자 모두 성숙으로 나 아갈 수 있도록 안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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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이 연구는 목회상담에서 치유의 핵심 조건으로 여겨져 온 상담자의 선 의가 내담자를 지지하는 힘이 될 수 있으나, 특정한 심리적-관계적 조건 에서는 오히려 그의 고통을 조기에 봉합하고 침묵과 왜곡을 유발할 수 있 음을 밝히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내담자가 상담자의 위로와 신앙적 해석 을 통해 일시적 안정을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회복의 진전인지 아니 면 더 이상 고통을 말하지 않게 된 조기 봉합의 결과인지는 엄밀히 구분될 필요가 있다.
특히 목회상담은 상담자의 언어가 신앙적 권위와 영적 정당 성을 쉽게 획득하는 구조를 지니기에, 선의에 기초한 개입의 부작용은 더 욱 은밀하고 강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에 이 연구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와 오스카 피스터(Oskar Pfister)의 서신 교환을 주요 텍스 트로 삼아, 목회상담자가 내면화한 ‘선한 목자’ 이미지가 과도한 개입과 조 기 의미화의 심리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음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목회상 담의 윤리를 상담자의 선의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그 선의가 상담 장면에 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지속적으로 식별하고 절제하는 임상적 책임의 차 원으로 재정립하고자 한다.
주제어 상담자의 선의, 프로이트-피스터 서신교환, 선한 목자 콤플렉스, 선의의 병리화, 영혼 돌봄 윤리
Abstract
A Psychoanalytic Inquiry into the Pastoral Counselor’s ‘Good Shepherd Complex’ — Focusing on the Reconfiguration of the Counselor’s Goodwill and Clinical Responsibility
Yousik Ko(Dr.theol. Assistant Professor, Department of Pastoral Counseling United Graduate School of Theology, Hoseo University )
This study aims to demonstrate that the counselor’s goodwill, long regarded as a core condition of healing in pastoral counseling, may indeed function as a supportive force for the counselee, yet under certain psychological and relational conditions, it may also prematurely foreclose the counselee’s suffering, thereby producing silence and distortion. Even when the counselee appears to experience temporary relief through the counselor’s consolation and faith-based interpretation, it remains necessary to distinguish rigorously whether such stability reflects genuine progress in recovery or merely the result of premature closure in which suffering is no longer spoken. Pastoral counseling is especially susceptible to this dynamic because the counselor’s language readily acquires religious authority and spiritual legitimacy, allowing the adverse effects of goodwill-based intervention to operate more subtly and powerfully. Against this backdrop, the present study takes the correspondence between Sigmund Freud and Oskar Pfister as its primary text and examines how the “good shepherd” image internalized by the pastoral counselor may function not merely as a symbol of devotion, but as a psychological mechanism that organizes excessive intervention and premature meaning-making. In doing so, this study seeks to reconceptualize the ethics of pastoral counseling not as trust in the counselor’s goodwill itself, but as a form of clinical responsibility grounded in the ongoing discernment and restraint of how that goodwill operates within the counseling encounter.
Keywords Counselor’s Goodwill, Freud–Pfister Correspondence, Good Shepherd Complex, Pathologization of Good Intentions, Ethics of Soul-Care
접수일: 2026년 05월 09일, 심사완료일: 2026년 06월 08일, 게재확정일: 2026년 06월 13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1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