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 신학의 중심 개념이자 예수 선포의 핵심 주제이 다. 그러나 그 의미와 성격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며, 단일한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현대 신약신학에서는 하나님 나 라를 시간적 긴장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지배적이었다.
대표적으로 조지 엘던 래드(George Eldon Ladd)는 하나님 나라를 ‘이미-아직’의 구조 속에서 설명하며 현재적 성취와 미래적 완성을 동시에 강조하였고,1 톰 라 이트(N. T. Wright) 역시 하나님 나라를 종말론적 사건의 현재적 선취로 이 해하였다.2
1 George Eldon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74), 91–105.
2 Nicholas T. Wright, Surprised by Hope: Rethinking Heaven, the Resurrection and the Mission of the Church (London: SPCK, 2007), 5–15.
이러한 논의는 하나님 나라의 시간성과 역사성을 해명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였지만,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어떻게 현재의 삶 속에서 경험되고 실현되는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설명을 제공한다.
이 러한 한계는 하나님 나라를 주로 개념적이거나 종말론적인 범주로 이해하 는 데서 비롯된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라는 점에서 단순한 공간 적 개념이나 사후적 실재가 아니라는 점에는 학계의 대체적인 동의가 존 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추상적 진 술이나 신학적 명제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으며, 그것이 신자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실재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하나님 나라를 예수의 언어 행위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자 한다.
특히 언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실제적인 행위를 수행한다는 점에 주목하는 언어행위이론은 이 문제 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유용한 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존 오스틴(J. L. Austin)은 언어를 발화 행위로 이해하며, 말하기가 곧 행위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3 존 설(John Searle)는 이를 발전시켜 언어의 의미가 그 수행 적 힘 속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4
3 John L.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75), 1–24.
4 John R. Searle, Speech Acts: An Essay in the Philosophy of Language (Cambridge: Cambridge Univer sity Press, 1969), 16–42.
이러한 관점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 포를 단순한 교훈이나 설명이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고 형 성하는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할 때 사용한 언어의 성 격이다.
예수는 종교적 전문 용어나 철학적 개념보다는 씨 뿌리는 농부, 잔치, 겨자씨와 같은 일상적 경험에 근거한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일상언어는 단순한 비유적 장치가 아니라, 청중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 며 그들의 행위와 반응을 이끌어내는 수행적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예수의 언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청중 을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참여하도록 초청하는 행위로 기능한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설명되는 대상’이 아니라 ‘수행되는 현실’로 이해될 수 있다.
예수의 언어행위는 하나님 나라를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현재화하며, 그 언어에 응답하는 신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는 실존적 현실로 나타난다. 이때 하나님 나라의 실존성은 필연적으로 윤리적 차원 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언어행위에 대한 응답은 단순한 인식의 변화가 아 니라 삶의 방향 전환과 행위의 변화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윤리는 외적 규범이나 도덕적 지침이 아니라, 예수의 언어행위에 참 여함으로써 형성되는 삶의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본 논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언어행위로 이해함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단순한 종 말론적 개념이나 미래적 약속에 머무르지 않고 예수의 수행적 발화와 이 에 대한 신자의 응답 속에서 현재화되는 현실임을 논증한다.
나아가 이러 한 수행적 현실이 윤리적 실천과 공동체적 책임을 요청한다는 점을 밝히 고자 한다.
본 연구의 독창성은 하나님 나라를 단순히 ‘이미-아직’의 종말 론적 구조나 윤리적 실천의 대상으로 이해하는 기존 논의를 넘어,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수행적 언어행위를 통해 현재화되고 신자의 응답 속에서 사회적·윤리적 현실로 형성된다는 점을 밝히는 데 있다. 기존 연구들이 하 나님 나라의 내용(content)이나 시간성(temporality)에 주목하였다면, 본 연 구는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수행되고(actualized) 실현되는가의 문제에 집 중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행위이론은 단순한 해석학적 비유가 아니 라,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 실재성과 윤리적 형성을 설명하기 위한 핵심 분 석 틀로 기능한다.
특히 언어행위이론은 예수의 선포가 단순히 하나님 나 라를 설명하는 담론이 아니라, 청자를 하나님 나라의 현실 안으로 초청하 고 응답을 요구하는 수행적 사건이라는 점을 분석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 자체보다 하나님 나라가 예수의 발화와 청 자의 응답 속에서 어떻게 현실화되는가에 주목하며, 이를 통해 기존 하나 님 나라 연구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수행적 차원을 드러내고자 한다.
Ⅱ. 언어행위이론과 하나님 나라 이해의 해석학적 가능성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언어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근대 초기 언어철학과 논리실증 주의 전통에서는 언어를 주로 사물이나 사건을 지시하고 사실을 기술하는 수단으로 이해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언어의 핵심 기능은 세계를 묘사 하거나 사실을 진술하는 데 있다. 그러나 언어는 현실을 설명하고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말함으로써 특정한 행위를 수행하고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기능도 가진다. 예수의 말씀은 종교적 진리를 설 명하고 미래의 사건을 예고할 뿐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가운 데 드러내고 청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적 성격을 지닌다. 오스틴은 『How to Do Things with Words』에서 인간의 발화는 단순 한 진술 행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5 그는 언어가 사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발화 자체를 통해 사회적·실천적 행위를 수행한 다고 보았다.
오스틴은 발화를 세 가지 차원으로 설명한다.
첫째, 단순발 화행위(locutionary act)는 특정한 문장을 실제로 말하는 행위이다.
둘째, 의미수반발화행위(illocutionary act)는 그 발화를 통해 명령, 요청, 약속, 선언, 권면 등의 의도를 수행하는 행위이다.
셋째, 효과수반발화행위(per locutionary act)는 그 말이 청자에게 설득, 감동, 순종, 저항 등의 결과를 일으키는 차원을 의미한다.6 예를 들어 “문을 닫아 주십시오”라는 표현은 단순히 문이라는 사물과 닫힘이라는 상태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청자 에게 실제 행동을 요청하는 수행적 발화이다.
따라서 언어는 현실을 설명 하는 동시에 현실 안에서 무언가를 발생시키는 능동적 행위가 된다.
셜(John R. Searle)은 이러한 오스틴의 논의를 발전시키며, 의미수반발 화행위를 언어적 의사소통의 핵심 단위로 규정하였다.7
5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4-7.
6 Ibid., 98–108.
7 Searle, Speech Acts, 16–24.
셜에 따르면 인간은 언어를 통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하고, 명령하고, 선언하며, 감사하고, 관계를 형성한다.
곧 언어의 의미는 문장 자체의 구 조에만 있지 않고, 그것이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떠한 의미수반발화의 힘 (illocutionary force)을 가지고 사용되는가에 의해 형성된다.8
이러한 통찰 은 성서 텍스트의 의미를 단순히 문자적 내용이나 과거의 역사적 사실에 한정시키지 않고, 텍스트가 독자와 공동체 안에서 수행하는 현재적 기능 에 주목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언어행위이론은 성서 해석학에도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케 빈 밴후저(Kevin J. Vanhoozer)는 성서를 단순한 종교 문헌이나 교리적 자 료집으로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과 소통하시는 언약적 담론 (covenantal discourse)으로 이해하였다.9
성서 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주체이며, 신앙 공동체는 그 말씀을 듣고 응답하는 청자이다.
따라서 성서 읽기는 과거 기록의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지금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참여하는 사건이 된다.10
이러한 관점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역시 단순히 과거 예수의 가르침을 보존한 자료가 아니 라, 오늘의 독자를 향하여 여전히 요청하고 초청하며 형성하는 수행적 말 씀으로 이해될 수 있다.
앤서니 티슬턴(Anthony C. Thiselton) 역시 언어행위이론이 성서 해석 에 중요한 이유는 텍스트의 의미를 문장 내부에 고정시키지 않고,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를 드러내기 때문이라고 보았다.11
성서의 말씀은 읽히는 순간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공동체를 세우고 인간 의 자기 이해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실천을 요구하는 사건이 된다.
이러한 해석학적 통찰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교리적 명제로 환원하지 않 고, 하나님 나라를 실제로 형성하는 언어행위로 읽게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 복음서의 핵심 선언인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 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은 단순한 종말론적 정보 제공이 아니 다.
이 발화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동시에 청자에게 회개와 믿음 이라는 실존적 응답을 요구한다.
곧 예수의 선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청자를 하나님 나라의 현실 안으로 부르는 의미수 반발화행위이다. 여기서 회개는 단순한 심리적 후회나 내적 반성이 아니 라, 삶의 방향 전환과 새로운 질서에 대한 참여를 뜻한다.
따라서 예수의 발화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말함과 동시에, 청중을 그 도래 속으로 들어 오게 하는 수행적 성격을 가진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의 언어는 이러한 특징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는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와 같은 말씀을 통해 새로운 삶의 질서를 선포하였다.
이러한 발화는 단순한 도덕 교훈이나 종교적 권면이 아니라, 청자의 존재 방식과 공동체의 관계 구조를 재편하는 의미수반발화행위이다.
예수의 말 씀은 듣는 자에게 새로운 자아 이해를 제공하고, 타자와의 관계를 재구성 하며, 하나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요청한다.
특히 예 수의 비유는 언어행위의 수행성을 잘 보여준다.
겨자씨 비유(막 4:30-32) 는 하나님 나라의 미약한 시작과 놀라운 확장을 상상하게 만들며, 잃은 양 의 비유(눅 15:1-7)는 하나님의 기쁨과 회복의 질서를 새롭게 인식하게 한 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는 청중에게 “누가 내 이웃인가” 를 다시 질문하게 만들며, 자비의 실천으로 나아가도록 촉구한다.
이러한 비유들은 하나님 나라를 개념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대신 청자의 인식 과 삶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효과수반발화행위를 발생시킨다.
곧 비유는 설명적 언어라기보다, 삶을 변화시키는 언어행위이다.
이처럼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언어행위의 관점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미래에 완성될 종말론적 상태나 추상적 신학 개념 으로 남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현재적으로 선포되 고, 그 말씀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구체화되는 현실이 된다. 이 는 하나님 나라를 “언제 오는가” 혹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문제로만 다루는 협소한 접근을 넘어, “어떻게 선포되고, 어떻게 응답되며, 어떻게 살아지는가”라는 실천적 차원으로 확장시킨다. 결국 하나님 나라의 실재 성은 개념의 정교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을 통해 형성되는 삶 의 방식과 공동체적 실천 속에서 드러난다. 예수의 언어행위는 하나님 나 라를 현재 가운데 열어 보이며, 그 말씀에 대한 신자의 응답은 하나님 나 라에 참여하는 구체적 통로가 된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 나라 윤리는 외 부로부터 부과된 규범 체계가 아니라, 예수의 수행적 말씀에 응답함으로 써 형성되는 존재 방식으로 이해되어왔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수행성 과 신자의 실존적 참여는 분리될 수 없으며,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 나 라와 윤리의 내적 연관성이 성립한다.
Ⅲ. 예수의 일상언어와 하나님 나라의 수행성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단지 종교적 메시지의 전달이 아니라, 언 어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구성하는 행위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복음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발화는 어떤 교리를 설명하거나 미래의 종말을 예고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말은 듣는 자의 인식 구조를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관계 질서를 재편하며, 새로운 실천을 요청하는 사건으로 기능 한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언어행위이론의 관점에 서 해석될 때 보다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곧 예수의 언어는 하나님 나 라에 대해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현재 가운데 수행하는 언 어이다.
오스틴이 지적하였듯이 모든 발화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층위를 가진다.12
발화에는 문장을 말하는 단순발화행위가 있으며, 그 문장을 통해 약속·명령·선언·초청·경고 등을 수행하는 의미수반발화행위가 존재하고, 나아가 청자에게 설득·회개·행동 변화·정체성 재구성 등의 결과를 낳는 효 과수반발화행위가 수반된다.13
예수의 말씀은 바로 이 세 층위가 긴밀하게 결합된 언어로 볼 수 있다.
예수의 발화는 단순히 “무엇을 말했다”는 기록 이 아니라, “무엇을 행하였는가”라는 관점에서 읽혀야 한다.
예를 들어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 1:15)는 말씀은 표면적으로는 사건의 도래를 알리는 문장이다. 이것은 단 순발화행위의 차원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을 진술하는 형식을 가진다.
그러나 그 문장은 동시에 청중에게 회개와 믿음을 요청하는 의미수반발화 행위이다.
예수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을 결단의 자리로 소 환한다.
더 나아가 이 발화가 실제로 사람들의 삶의 방향을 바꾸고 공동체 를 형성할 때, 그것은 효과수반발화행위로 완성된다.
따라서 예수의 하나 님 나라 선포는 문장적 의미와 수행적 효과가 분리될 수 없는 통합적 언어 행위이다.14
이러한 구조는 예수의 비유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비유 는 표면적으로는 일상적 이야기의 형식을 띤다.
씨 뿌리는 농부, 포도원 주인, 잃어버린 양, 혼인잔치, 겨자씨와 누룩은 모두 당시 청중이 쉽게 이 해할 수 있는 현실의 소재들이다. 단순발화행위의 차원에서 비유는 농업, 노동, 가정경제, 잔치 문화에 관한 서술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는 바로 이 일상적 서사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새롭게 제시한다.
즉 비유는 서술 형식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의미수반발화행위를 수행한다.
비유는 단 순한 이야기가 아니라, 청중의 세계 이해를 전복하는 행위적 담론이다.15
12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5-8.
13 Ibid., 98-108.
14 George Eldon Ladd, The Presence of the Future (Grand Rapids, MI: Eerdmans, 1974), 149-168.
15 Joachim Jeremias, The Parables of Jesus (London: SCM Press, 1972), 17-24.
겨자씨 비유(막 4:30-32)는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예수는 하나 님 나라를 “가장 작은 씨앗”에 비유한다.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던 나라는 눈에 보이는 정치적 권력, 군사적 힘, 민족적 회복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러나 예수는 가장 작고 미미한 씨앗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한다. 이 비유의 단순발화행위는 식물 성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의미수반발화행 위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존 기대를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데 있다.
예수 는 이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정치적 권력이나 민족적 회복의 범주로 이해하던 청중의 기대 자체를 재구성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비유의 발화 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해석 틀의 변화를 요구하는 수행적 행위이다.
다시 말해 예수는 겨자씨 비유를 말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하여 금 기존의 기대를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방식에 동의하도록 요 청한다.
이러한 점에서 겨자씨 비유의 의미수반발화행위는 설명을 넘어 요청(request), 초청(invitation), 재구성(reconfiguration)의 기능을 수행한 다.16
16 Klyne Snodgrass, Stories with Intent: A Comprehensive Guide to the Parables of Jesus (Grand Rap ids, MI: Eerdmans, 2008), 211-220.
누룩의 비유(마 13:33) 역시 동일한 구조를 가진다. 단순발화행위의 차원에서 이는 한 여인이 반죽에 누룩을 넣는 가사 노동의 장면이다.
그러 나 의미수반발화행위의 차원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가 외적 강압이나 즉 각적 혁명으로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전체를 변화시키는 방 식으로 역사함을 선언한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과시적 권력보다 내재 적 변형의 힘에 있다.
이 비유를 들은 청중이 변화의 방식 자체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효과수반발화행위의 성취라 할 수 있다.
예수의 비유는 단순히 인지적 재구성만이 아니라 윤리적 재구성까지 요청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는 “누가 내 이웃인가”라 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제시된다. 표면적으로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한 행인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의미수반발화행위의 차원에서 예수는 단순 히 ‘누가 이웃인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 비유 를 통해 청자가 자신과 타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수정하도록 요구 한다.
제사장과 레위인이 아니라 사마리아인이 참된 이웃으로 제시됨으로써, 이웃의 범주는 혈연·민족·종교적 동일성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자비의 실천에 의해 재정의된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이웃의 개념을 설명하는 담론 이 아니라, 청자를 새로운 관계적 실천으로 부르는 수행적 발화이다.
특히 예수의 결론인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단순한 교훈의 전달이 아니 라 청자에게 구체적 실천을 요청하는 의미수반발화행위로 기능한다.
나아 가 청자가 실제로 경계 밖의 타자를 향해 자비를 실천할 때, 효과수반발화 행위는 현실 속에서 성취된다.17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예수의 언어가 규범 명령의 형식보다 서사적 우회 형식을 자주 취한다는 사실이다.
예수는 단 순히 “타인을 도우라”고 명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의 형식 을 사용한다.
이는 언어행위의 철학적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직 접 명령은 외적 복종을 요구하지만, 비유는 청자의 내적 판단 구조 자체를 변형시킨다.
명령은 행위를 요구하지만, 비유는 행위자를 새롭게 형성한 다.
따라서 예수의 비유는 윤리 규칙의 전달보다 윤리 주체의 재구성을 목 표로 하는 수행적 언어라 할 수 있다.
셜은 언어행위가 제도적 사실(institutional facts)을 형성한다고 보았 다.18
17 Craig L. Blomberg, Interpreting the Parables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2), 301-318.
18.John R. Searle, Speech Acts, 54-71.
예컨대 “나는 너희를 부부로 선언합니다”라는 발화는 단순한 진술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성립시킨다.
이 관점을 적용하면 예수의 발 화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라는 새로운 사회적 현실을 창출하는 선언적 성 격을 가진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 다”(마 5:14)라는 말씀은 단순한 비유적 칭찬이 아니다.
이는 제자들의 정 체성을 새롭게 규정하는 선언적 의미수반발화행위이다.
예수의 말은 제자 들이 누구인가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들이 어떠한 공동체로 살아야 하는 가를 규정한다.
예수의 식탁 교제 또한 언어행위와 긴밀히 연결된다. 그는 세리와 죄 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으며, 이를 통해 기존 종교 질서가 규정한 배제의 경계를 흔들었다. 식탁에서의 말과 행위는 분리되지 않는다.
예수의 초대, 용서의 선언, 함께 먹는 행위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환대 질서를 수행적으 로 드러낸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5)라는 말씀은 단순한 위로 가 아니라 새로운 관계 상태를 열어 주는 선언적 발화이다.
이처럼 예수의 언어는 행위와 결합되어 하나님 나라를 가시화한다.19
예수의 일상언어가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은 청자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점이다.
언어행위는 강제력이 아니라 응답 가능성을 전제한다.
예수는 듣는 자에게 비유를 들 려주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말한다(막 4:9).
이는 의미수반발화 행위가 자동적으로 효과수반발화행위로 이어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청자 는 거부할 수도 있고 수용할 수도 있다.
하나님 나라의 수행성은 기계적 인과가 아니라 자유로운 응답 속에서 성립한다. 바로 이 점에서 하나님 나 라 윤리는 외적 통제가 아니라 내적 전환과 자발적 참여의 윤리로 이해된 다.
예수의 언어가 일상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그는 성전 제 의 언어, 철학적 추상어, 정치 권력의 수사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말 하지 않았다. 대신 씨앗, 빵, 돈, 노동, 길, 잔치, 가족과 같은 삶의 언어를 사용하였다.
이는 하나님 나라가 일상과 분리된 별도의 종교 영역이 아니 라 인간 삶 전체를 포괄하는 통치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 나라 윤리 는 예배 행위에만 국한되지 않고 경제생활, 노동 윤리, 타자 환대, 용서, 정의 실천, 공동체 책임 등 생활 세계 전체를 변형시키는 윤리이다.20
19 Nicholas T.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6), 192-210.
20 John Dominic Crossan, In Parables (New York: Harper & Row, 1973), 58-73.
결국 예수의 일상언어는 하나님 나라의 내용을 설명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현실 가운데 작동시키는 매개였다. 그의 말씀은 청중의 인식을 바 꾸고, 관계 질서를 재구성하며, 새로운 공동체 정체성을 형성하고, 실천을 요청하였다. 이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단순한 교리 교육이 아니라 수행적 사건이었음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는 추상적 개 념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에 응답하는 삶 속에서 현재화되는 현실이다.
신 자의 윤리 역시 외부 규범의 수동적 준수가 아니라, 예수의 수행적 언어에 의해 새롭게 형성된 존재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Ⅳ. 하나님 나라 윤리와 신자의 실존적 참여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수행적 언어행위라면, 그 선포에 대한 응 답 또한 단순한 정보 수용이나 교리적 동의로 환원될 수 없다.
수행적 발 화는 본질상 청자의 참여를 요청하며, 그 참여 속에서 비로소 완결된다.
누군가의 약속은 그것을 신뢰하는 관계 안에서 의미를 가지며, 선언은 그 것을 인정하는 공동체 안에서 효력을 갖는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의 하나 님 나라 선포는 듣는 자가 그 말씀에 자신을 열어 놓을 때 현실성을 획득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윤리는 외부 규범의 수용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 사건에 자기 존재를 개입시키는 실존적 참여의 형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여기서 ‘실존적 참여’란 단순히 종교 활동에 참여한다는 뜻이 아니 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삶의 근거와 방향을 새롭게 규정받는 존재론적 사 건을 의미한다.
인간은 언제나 세계 안에서 이미 어떤 가치 질서, 욕망 구 조, 관계 망 속에 던져져 살아간다.
인간은 중립적 공간에서 자유롭게 선 택을 시작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미 특정한 삶의 해석 안에서 자신을 이해 하며 행동하는 존재이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새로 운 정보의 추가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던 해석 틀 자체를 전환시키는 요청이다.
회개(metanoia)는 단순한 도덕적 반성이 아니라 존 재 이해의 전환이며, 실존적 참여는 바로 이 전환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이 다.21
21. Rudolf Bultmann, Jesus Christ and Mythology (New York: Scribner, 1958), 36-52.
전통적 윤리학은 대체로 두 가지 길을 걸어왔다.
하나는 규칙과 의무 를 중심으로 한 규범 윤리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성품의 형성을 강조하는 덕 윤리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윤리는 이 둘을 단순히 선택하는 방식으 로 이해되기 어렵다. 예수의 윤리는 명령을 포함하지만 명령에 머물지 않 으며, 성품을 강조하지만 내면 수양에 갇히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의 윤리는 먼저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현실의 도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윤리적 요청은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서 시작하지 않고, “어떤 현실이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하였는가”에서 시작한다
. 하나님 나라 윤리는 존재론이 윤리학에 선행하는 구조를 가진다. 새로운 존재 현실이 먼저 열리고, 그 현실에 상응하는 삶이 뒤따르는 것이다.22
예를 들어 “너 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3-14)는 말씀은 먼 저 규범 명령이 아니라 정체성 선언이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소금이 되 라”고 말하기보다 “너희는 소금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수사적 표 현이 아니라 존재 규정적 의미수반발화행위이다.
제자들은 그 선언을 통 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새롭게 부여받는다.
윤리적 삶은 이 선언을 실현하 기 위한 후속 과제가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윤리는 행위를 통해 정 체성을 획득하는 윤리가 아니라, 부여된 정체성에 응답하여 행위가 형성 되는 윤리이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은혜가 명령에 선행하며, 소명은 의무 보다 앞선다.23
22 Stanley Hauerwas, A Community of Character (Notre Dame, I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1), 9-27.
23 Glen H. Stassen and David P. Gushee, Kingdom Ethics: Following Jesus in Contemporary Context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2003), 32-48.
실존적 참여는 이러한 선언을 외부 문장으로 두지 않고 자기 존재의 진실로 받아들이는 사건이다.
동일한 말씀을 듣더라도 어떤 이는 그것을 종교적 언어로 흘려보내고, 다른 이는 삶의 방향을 재구성하는 부르심으 로 듣는다.
차이는 정보량이 아니라 존재의 응답 방식에 있다.
이 점에서 성서의 말씀은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인간을 결단의 자리로 세우는 사 건적 언어이다.
말씀은 인간 앞에 놓인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호 출하고 스스로를 해명하도록 요구하는 타자의 음성이다.
하나님 나라 윤 리는 바로 이 호출에 응답하는 삶의 형식이다.
예수의 윤리가 급진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마 5:44)는 요청은 일반적 도덕 상식의 연장이 아니다.
상호성의 윤리는 사랑받는 자를 사랑하고 해 를 끼친 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윤리는 적 대의 논리를 넘어선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인간의 공로와 보 복 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행적 자비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원수 사랑 은 단순히 고결한 감정 훈련이 아니라, 자비를 먼저 받은 존재가 그 자비 의 질서 안에서 타자와 관계 맺는 방식이다.
즉 하나님 나라 윤리는 심리 학이 아니라 존재론에 근거한다.24
이 점은 용서의 문제에서도 동일하게 나 타난다. 용서는 종종 개인 감정의 선택으로 이해되지만, 예수의 윤리에서 용서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이미 시작된 화해 사건에 참여하는 행위 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마 6:12)라는 기 도는 인간의 용서가 독립적 도덕 행위가 아니라, 먼저 주어진 용서의 현실 에 동참하는 행위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용서는 윤리적 영웅주의가 아니 라, 은혜의 질서에 참여한 자의 존재 방식이다. 실존적 참여는 자신이 받 은 것을 타자에게 흘려보내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경제 윤리 또한 실존적 참여와 분리될 수 없다. 예수는 재물을 단지 소유물로 보지 않고,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경쟁적 질서의 상징으로 다루 었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는 말 씀은 두 대상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단순한 금지 명령이 아니다.
이는 인 간 존재가 무엇을 궁극적 신뢰의 근거로 삼고 사는가를 묻는 존재론적 질 문이다.
재물 중심의 삶은 자기 보존과 축적의 논리에 인간을 가두지만, 하나님 나라 참여는 신뢰와 나눔, 청지기적 책임의 질서로 인간을 이동시 킨다.
따라서 구제나 나눔은 도덕적 옵션이 아니라, 다른 주권 아래 살기 시작한 존재의 필연적 표현이다.25
24 John Howard Yoder, The Politics of Jesus (Grand Rapids, MI: Eerdmans, 1994), 39-52.
25 Richard B. Hays, The Moral Vision of the New Testament (San Francisco, CA: HarperSanFrancisco, 1996), 193-205.
실존적 참여는 개인 내부의 변화에만 머 물지 않고 공동체적 형식을 가진다. 인간은 본래 관계적 존재이므로, 존재의 전환은 공동체의 전환 없이 완성될 수 없다.
예수는 단독 수행자를 길 러내지 않고 제자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식탁 교제, 상호 용납, 죄인의 수 용, 약자의 회복은 하나님 나라 윤리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가시화되는 지를 보여준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한다는 것은 특정 교리를 소유 했다는 주장보다,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사는 삶을 보여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 윤리는 개인의 내면 도덕이 아니라 사회적 실재를 형성 하는 공적 윤리이다.26
언어행위이론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의 말씀은 오늘도 과거 문장의 반복으로 머물지 않는다.
말씀은 읽히는 순간 다시금 현재적 의미수반발 화행위가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는 구절은 단 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라 지금의 독자에게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배열 하라고 요구한다.
따라서 신앙은 과거 발화를 기념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 재 말씀 사건 안으로 자신을 노출시키는 실존적 행위이다.
성서는 기억의 문헌이면서 동시에 현재적 호출의 매개이다.27
26 Stanley Hauerwas and William H. Willimon, Resident Aliens (Nashville, TN: Abingdon Press, 1989), 72-89.
27 Kevin J.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5), 123-140.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 나 라 윤리는 규범 준수의 윤리라기보다 응답의 윤리이다.
인간은 먼저 부름 받고, 그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윤리적 주체가 된다.
이는 자율성의 폐기가 아니라 자율성의 재구성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절대 기준으로 삼는 자율 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선한 통치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참된 자유를 획득한다.
예수의 윤리가 강제가 아니라 해방의 언어로 들리는 이유가 여 기에 있다.
하나님 나라의 요구는 인간을 억압하기 위한 외적 명령이 아니 라, 왜곡된 욕망과 두려움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초대이다.
결국 실존적 참여란 하나님 나라를 관념적으로 승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관계·욕망·소유·정체성을 하나님의 통치 아래 다시 배열하는 삶의 결단이다.
이 결단은 한 번의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 실천 속 에서 갱신된다. 사랑, 용서, 나눔, 화해, 정의, 환대는 그 결단의 외적 형태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윤리는 외부에서 추가된 도덕 조항이 아 니라,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현실에 참여한 존재가 자연스럽게 드러내 는 삶의 형식이다.
예수의 수행적 언어는 인간을 그 현실로 초대하며, 신 자의 실존적 참여는 그 초대에 대한 살아 있는 응답이다.
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 수행된 현실과 약속된 완성의 변증법
하나님 나라를 예수의 언어행위를 통해 현재적으로 수행되는 현실로 이해할 때, 필연적으로 하나의 신학적 질문이 제기된다.
만일 하나님 나라 가 예수의 선포와 사역, 그리고 신자의 응답 속에서 이미 현실화된다면, 왜 세계는 여전히 폭력과 죽음, 불의와 소외의 구조 안에 머물러 있는가.
반대로 하나님 나라가 오직 미래의 종말론적 사건이라면, 예수의 선포가 청중의 삶을 즉각적으로 뒤흔들고 공동체적 변화를 낳았다는 복음서의 증 언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이 긴장은 단순한 교리적 난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구조적 문제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두 개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문제가 아니 라, 동일한 구원 사건이 지닌 이중적 시간성(temporality)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되어야 한다.
근대 이후 시간은 흔히 선형적 연속으로 이해되었다.
과거는 지나갔 고, 현재는 순간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성 서적 종말론에서 시간은 단순한 연속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에 의해 질적으로 중단되고 새롭게 열리는 역사적 장(場)이다.
하나님 나라는 단지 미래의 한 지점에 배치된 사건이 아니라, 미래가 현재 안으로 침투하는 방 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미래의 부정 이 아니라 미래의 선취이며,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현재의 무효화가 아니라 현재의 지평을 열어 주는 약속이다.28
예수의 선포는 질적으로 새로운 시간 이해를 전제한다.
“때가 찼고 하 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막 1:15)는 말씀에서 ‘때’(kairos)는 단순한 연대 기적 시간(chronos)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행위가 역사 안에 개입하는 결정적 순간을 뜻한다.
예수는 시간을 흐르는 배경으로 말하지 않고, 하나 님의 통치가 현실 가운데 도래하는 사건의 순간으로 말한다.
따라서 하나 님 나라의 현재성은 “이미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도착한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금 행하시기 때문에 열린 현재”이다.
여기서 현재는 단순한 찰나가 아니라 계시와 결단의 장이 된다.
이 점에서 예수의 언어행위는 시 간 자체를 재구성한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시간을 기술한다고 여겨지지 만, 수행적 언어는 시간을 창출한다. 예컨대 “지금부터 너희는 부부이다” 라는 선언은 새로운 사회적 시간을 시작한다.
같은 방식으로 예수의 “하나 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포는 단순히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 문장이 아니라, 하나님 통치의 새로운 시대를 개시하는 선언적 발화이다.29
그의 말씀은 시간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시간의 변환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의 현재성은 단지 심리적 체험이나 내면적 확신이 아니라, 예수의 발화 속 에서 역사적 시간이 새롭게 배열되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현재성은 완성 의 현재성이 아니다.
예수의 사역 안에서 병든 자가 치유되고 죄인이 용납 되며 악한 영이 쫓겨났으나, 질병과 죄와 죽음 자체가 역사에서 완전히 제 거된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충만한 실현이 아 니라 실질적 시작임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는 현재 안에 실제 로 도래하였으나, 아직 세계 전체를 포괄적으로 변형시키지는 않았다.
여 기서 “이미”와 “아직”은 양적 차이가 아니라 존재론적 긴장이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참되게 현존하지만, 아직 총체적으로 승리하지 않은 방식 으로 현존한다.30
28 Oscar Cullmann, Christ and Time (Philadelphia, PA: Westminster Press, 1964), 84-101.
29 Austin, How to Do Things with Words, 98-108.
30 Ladd, The Presence of the Future, 218-223.
이러한 구조를 가장 잘 설명하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선취’(prolepsis)이다.
선취란 미래의 실재가 현재에 앞당겨져 부분적으로 나 타나는 사건이다.
예수의 치유는 단순한 자비 행위가 아니라, 미래의 온전 한 회복이 현재 안에 미리 드러난 징표이다.
식탁 교제는 단순한 사회적 포용이 아니라 종말론적 잔치의 선취이다.
죄 사함 선언은 단순한 심리적 위로가 아니라 마지막 날의 의롭다 하심이 현재 안에 열려 있음을 보여준 다.
그러므로 예수의 사역은 하나님 나라 그 자체의 완성이 아니라, 완성 이 어떤 것인지를 현재 안에서 미리 맛보게 하는 표징적 현실이다.31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단순히 “아직 남아 있는 시 간”이 아니라, 현재를 판단하고 견인하는 초월적 지평이 된다.
미래는 단 지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체제와 성취를 상대화한다.
어떤 정치 질서도, 어떤 경제 구조도, 어떤 종교 제도도 하나님 나라와 동 일시될 수 없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는 현재 세계를 비판하는 기준으로 기 능한다.
동시에 그 미래는 현재의 고통과 실패가 최종 진실이 아님을 선언 한다. 따라서 미래성은 비판과 위로라는 이중 기능을 가진다.32
신학적으 로 이는 십자가와 부활의 관계 안에서 가장 깊이 드러난다.
십자가는 하나 님 나라의 실패처럼 보인다. 예수가 처형되었다는 사실은 세속 권력이 여 전히 승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부활은 십자가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역설적 승리였음을 계시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 는 가시적 성공의 방식이 아니라 자기 비움과 희생, 낮아짐의 방식으로 현 재화된다. 그러나 부활은 그 은폐된 현재성이 궁극적으로 헛되지 않으며 미래의 공개적 승리로 이어질 것임을 보증한다.
십자가 없는 현재성은 승 리주의가 되고, 부활 없는 미래성은 절망적 유예가 된다.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 신학은 이 둘의 결합 속에서만 성립한다.33
31 Wright,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202-210.
32 Jürgen Moltmann, Theology of Hope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1993), 196-214.
33 Wolfhart Pannenberg, Systematic Theology, Vol. 2 (Grand Rapids, MI: Eerdmans, 1994), 343-361.
실존적 참여 역시 이 변증법적 시간성 안에서 재정의된다. 신자는 완 성된 세계에 사는 존재가 아니라, 시작된 완성 안에 사는 존재이다. 그는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불리지만 여전히 옛 인간성과 투쟁한다. 그는 화해 의 공동체에 속하지만 여전히 분열된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그는 하나님 의 통치를 고백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탐욕의 유혹 속에 놓여 있다. 따라 서 신자의 윤리는 완전성의 윤리가 아니라 순례의 윤리이며, 성취의 윤리 가 아니라 충성의 윤리이다. 하나님 나라 윤리는 결과의 보장이 아니라 약 속에 대한 지속적 응답 속에서 형성된다. 이러한 구조는 윤리적 태도에 두 가지 중요한 균형을 부여한다. 첫째, 급진성과 겸손의 균형이다.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믿기에 신자는 현재의 불의와 화해할 수 없으며, 사랑과 정 의를 급진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나 아직 완성이 오지 않았음을 알기에 자 신의 신념이나 제도를 절대화하지 않는다.
둘째, 희망과 인내의 균형이다.
현재가 불완전하더라도 미래의 약속 때문에 냉소에 빠지지 않으며, 동시 에 즉각적 성공이 없다고 해서 조급한 폭력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나님 나 라의 미래성은 윤리적 인내를 가능하게 하고, 현재성은 윤리적 무기력을 거부하게 만든다.34
34 Richard B. Hays, The Moral Vision of the New Testament (San Francisco, CA: HarperSanFrancisco, 1996), 207-220. 35 Lesslie Newbigin,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Grand Rapids, MI: Eerdmans, 1989), 118-132.
교회론적으로도 이 변증법은 결정적 의미를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 나 라의 완성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전조(前兆)이며 표징이다. 교회가 자 신을 완성된 나라로 착각할 때 권위주의와 자기 절대화가 발생한다.
반대 로 교회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종교 조직으로 축소될 때 선교적 정체성 을 잃는다.
교회는 이미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맛본 공동체로서 세상 속에 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실험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 역시 끊임없이 회개 해야 하는 미완의 공동체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긴장을 잃을 때 교회는 승리주의나 냉소주의 가운데 하나로 기운다.35현대 사회의 맥락에서 하나 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정치신학적 통찰도 제공한다.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사회적 책임을 요청한다. 가난, 차별, 폭력, 생태 파괴 앞에서 신앙은 내면성으로 후퇴할 수 없다. 반면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은 어떠한 정치 이념도 구원의 대체물이 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인간이 만든 체제를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하는 순간 전체주의적 유혹이 시작된다.
따라서 기 독교적 공공 윤리는 현실 참여와 우상 비판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것 이 하나님 나라의 변증법이 사회 속에서 갖는 실제적 의미이다.
언어행위이론의 차원에서 보면, 예수의 약속은 단순한 미래 예측이 아 니라 현재를 생성하는 언어이다. 약속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현재 행동의 근거로 만든다.
부모가 자녀에게 “내가 너와 함께하겠다”고 말할 때, 미래 의 동행은 이미 현재의 불안을 변화시킨다.
같은 방식으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는 약속은 미래의 지속적 임 재를 현재 공동체의 용기와 사명의 근거로 만든다.
약속된 미래는 현재의 감정 상태를 넘어 현재의 존재 양식을 형성한다.36
36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123-140.
결국 하나님 나라의 현 재성과 미래성은 두 시대의 병렬이 아니라 하나의 구원 사건이 지닌 내적 리듬이다. 현재성은 하나님이 이미 행하고 계심을 말하며, 미래성은 하나 님이 아직 끝내지 않으셨음을 말한다.
현재성은 신자를 행동하게 만들고, 미래성은 그 행동을 우상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성은 사랑과 정의의 실천을 요구하고, 미래성은 실패 속에서도 희망을 지속하게 한다.
예수의 수행적 언어는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열어 놓았으며, 약속의 말씀 은 그 열린 현실이 마침내 충만히 완성될 것임을 보증한다.
그러므로 신자 의 실존적 참여는 이미 시작된 나라를 살아 내면서 아직 오지 않은 나라를 기다리는 이중의 충실성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하나님 나라 윤리는 현실 도피도 아니고 현실 숭배도 아닌, 희망 가운데 책임 있게 사 는 종말론적 삶의 형식으로 완성된다.
Ⅵ. 결론
본 연구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언어행위이론의 관점에서 재조 명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단순한 종말론적 개념이나 미래 사건으로 이 해하는 협소한 틀을 넘어, 현재적 현실성과 윤리적 요청을 지닌 수행적 사 건으로 해석하고자 하였다.
전통적 하나님 나라 논의는 대체로 두 방향으 로 전개되어 왔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를 역사 종말의 미래적 완성으로 보 는 입장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내면의 영성이나 교회 제도 안에서 실현되 는 현재적 질서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분법은 복음서가 증언 하는 예수 선포의 역동성과 긴장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미래를 약속하면서도 현재를 변형시키며, 초월적 완 성을 지향하면서도 일상의 삶 속에서 이미 작동하는 현실이었다.
이에 본 논문은 오스틴과 셜의 언어행위이론을 해석학적 도구로 활용 하였다.
언어는 단순히 사실을 묘사하는 기호가 아니라, 약속하고 선언하 며 관계를 형성하고 현실을 구성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는 어떤 객관적 사실에 대한 중립적 설명이 아니라, 하나 님 통치를 현재 가운데 개시하고 청자를 그 현실 안으로 초대하는 수행적 발화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인간 존재를 결단과 응답의 자리로 불러내는 사건적 언어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설명되는 대상이기 이전에, 예수의 발화 안에서 열리고 작동하는 현실이다.
특별히 본 연구는 예수의 일상언어 사용에 주목하였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철학적 추상어나 종교 제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씨앗과 누룩, 잔치와 식탁, 포도원과 빚, 노동과 길 위의 만남과 같은 일상적 소재를 통 해 선포하였다.
이는 단순히 대중적 이해를 돕기 위한 수사적 전략이 아니 라, 하나님 나라의 본질 자체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일상 과 분리된 초월적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과 경제생활, 관계와 식탁, 환대와 용서의 자리 속으로 침투하는 하나님의 통치이다.
예수의 비유는 청중의 사고 구조를 해체하고, 기존 가치 체계를 재배열하며,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열어 보이는 수행적 담론이었다. 또한 본 논문은 하나님 나라 윤리를 외적 규범의 집합이 아니라 신자 의 실존적 참여라는 범주 안에서 해석하였다.
예수의 윤리는 단순히 새로 운 도덕 명령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라는 새로운 현 실에 자신을 개방하고, 그 현실에 상응하는 존재 방식으로 살아가도록 부 르는 초대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말씀은 행위를 요구하기 이전에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 윤리는 행위를 통해 자격을 획득하는 윤리가 아니라, 은혜로 부여된 존재 규정에 응답하는 삶의 윤리이다.
사랑, 용서, 화해, 나눔, 정의, 환대는 외 적 의무 이전에 하나님 나라 참여의 열매이다.
특히 ‘실존적 참여’라는 개 념은 본 연구의 핵심적 통찰 가운데 하나이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는 것은 특정 교리를 승인하거나 종교 집단에 소속되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 는다.
그것은 인간의 시간 사용, 욕망 구조, 소유 방식, 관계 맺음, 사회적 책임이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새롭게 재배열되는 존재론적 전환이다.
회개 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세계 이해의 변화이며, 믿음은 추상적 동의가 아 니라 자기 존재를 하나님 나라의 약속에 맡기는 신뢰이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 윤리는 인간 외부에 부과된 규범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현실에 참 여한 존재가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삶의 형식이다.
아울러 본 논문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수행된 현실과 약 속된 완성의 변증법으로 해석하였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말씀과 사역 안에서 이미 현실화되었으나, 아직 완전한 형태로 드러나지 않았다.
치유 와 용서, 식탁 교제와 공동체 형성은 미래 완성의 선취이며, 동시에 세계 가 여전히 죄와 죽음 아래 있다는 사실은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요청한 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승리주의로 흐를 수 없고, 미래성은 현실 도피로 귀결될 수 없다.
현재성은 신자를 행동하게 만들고, 미래성은 그 행동을 절대화하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성은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게 하며, 미래성은 실패와 한계 속에서도 희망을 지속하게 한다.
이러한 논의 는 오늘날 교회와 신학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현대 교회는 종종 하나 님 나라를 사후적 구원이나 개인 영성으로 축소하거나, 반대로 특정 정치 프로그램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진다.
그러나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 는 내면성과 공공성, 개인과 공동체,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포괄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단순히 설교하는 기관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살 아가는 공동체를 통해 그것을 증언해야 한다.
환대와 화해, 정의와 나눔, 겸손과 책임의 삶은 하나님 나라가 오늘도 수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교 회의 언어가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멀리 있는 미래의 이상향이 아니라, 예수의 수행적 언어 속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신자의 실존적 참여 속에서 현재 화되는 현실이다.
동시에 그것은 여전히 완성을 향해 열려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윤리는 규범 이전에 참여이며, 명령 이전 에 초대이며, 의무 이전에 은혜에 대한 응답이다.
예수의 언어행위는 하나 님 나라를 말하는 동시에 그것을 현실 가운데 열어 보였고, 신자의 삶은 그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 나라를 증언한다.
이 점에서 예수의 언어 행위와 하나님 나라 윤리는 분리될 수 없으며, 바로 그 통합 속에서 기독 교 윤리의 생명력과 공공성이 새롭게 발견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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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본 논문은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를 언어행위이론의 관점에서 해석 함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단순한 미래 사건이나 추상적 신학 개념이 아니 라 현재적 현실성과 윤리적 요청을 지닌 수행적 사건으로 조명한다. 오스 틴과 셜의 언어행위이론에 따르면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현 실을 구성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예수의 하나 님 나라 선포는 하나님 통치를 현재 가운데 개시하고 청자를 그 현실 안으 로 초대하는 의미수반발화행위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예수는 씨앗, 누 룩, 잔치, 식탁, 노동 등 일상언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써, 하 나님 나라가 인간 삶의 구체적 자리 속에서 경험되고 실천되는 현실임을 드러낸다. 본 논문은 또한 하나님 나라 윤리를 외적 규범 체계가 아니라 신자의 실존적 참여로 해석한다. 하나님 나라 참여는 인간의 시간, 욕망, 소유, 관계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새롭게 재배열되는 존재론적 전환이며, 사랑·용서·화해·정의·환대는 그 참여의 윤리적 표현이다. 나아가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은 수행된 현실과 약속된 완성의 변증법으로 이해 된다. 하나님 나라는 이미 예수 안에서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 으며, 이 긴장은 신자로 하여금 희망 가운데 책임 있게 살아가도록 요청한 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예수의 수행적 언어 속에서 현재화되며, 신 자의 실존적 참여 속에서 윤리적으로 증언되는 현실이다.
주제어 하나님 나라, 언어행위이론, 예수의 비유, 수행성, 기독교 윤리, 실존적 참여, 현재성과 미래성
Abstract
Jesus’ Speech Acts and the Ethics of the Kingdom of God — The Performativity of the Kingdom and the Believer’s Existential Participation
Anna Cho(Ph.D. Research Fellow, Department of Systematic Theology and Ecclesiology Stellenbosch University)
This study interprets Jesus’ proclamation of the Kingdom of God through the lens of speech act theory, arguing that the Kingdom should be understood not merely as a future event or an abstract theological concept, but as a performative reality with present significance and ethical demand. According to J. L. Austin and John Searle, language is not only descriptive communication but also action that constitutes reality and shapes relationships. From this perspective, Jesus’ proclamation of the Kingdom functions as an illocutionary act that inaugurates God’s reign in the present and invites hearers into that reality. Jesus’ use of ordinary language—such as seeds, leaven, banquets, tables, labor, and debt—demonstrates that the Kingdom is encountered and enacted within the concrete sphere of everyday life. This article further argues that Kingdom ethics is not primarily an external system of moral rules, but a mode of existential participation. Participation in the Kingdom entails an ontological reordering of human time, desire, possessions, and relationships under the sovereignty of God. Love, forgiveness, reconciliation, justice, and hospitality emerge as ethical expressions of such participation. Moreover, the Kingdom’s present and future dimensions are interpreted dialectically as performed reality and promised fulfillment. The Kingdom has already begun in Jesus, yet it awaits consummation. This tension calls believers to live responsibly in hope. In conclusion, the Kingdom of God becomes present through the performative language of Jesus and is ethically witnessed through the existential participation of believers.
Keywords Kingdom of God, Speech Act Theory, Parables of Jesus, Performativity, Christian Ethics, Existential Participation, Present and Future Dimensions
접수일: 2026년 05월 09일, 심사완료일: 2026년 06월 08일, 게재확정일: 2026년 06월 13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1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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