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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죽은 자를 위한 애도와 남은 자의 윤리-‘데리다의 애도’를 통한 구약 여성의 죽음 서사 연구/김민정.성공회大

Ⅰ. 들어가는 글

 

오늘날 세계는 개인의 생물학적 죽음뿐 아니라 전쟁, 테러, 사회적 폭 력, 각종 재난과 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동시에 환경 파괴, 기후위기, 핵무기, 국제 분쟁은 살아 있는 이들에게도 지속적인 죽음의 불 안을 안겨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죽음이 만연한 사회에서 그 죽음이 소외 되어 있는 현상이다.

능률과 생산성을 지향하고 의술이 발달한 현대사회 에서 죽음은 주목할 일이 아니라 그저 극복의 대상이 되었다.

오히려 모두 가 죽지 않을 것처럼 죽음을 망각하고 금기하기까지 한다.

이로 인해 대부 분의 죽음은 무관심 속에 흘러가고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의미가 훼 손되는 죽음도 적지 않다.

죽음 사건과 죽은 자를 대하는 자세와 관계 맺기의 방식 속에서 애도(mourning)가 부재한 오늘의 현실에 문제를 제기해 본다.

현대인은 죽음을 맞이한 사람에 대한 연민, 그리고 남겨진 자에게 전하는 의미나 책임의 수용을 잊은 채, 다시 말해서 애도가 부재한 삶을 산다.

이는 죽음 소외 현상과 함께 일어나는 인간 소외의 한 양상이다.

그 러나 성경은 죽음 자체와 그것의 가치를 직면하도록 요청한다.

인간이 결 국 흙으로 돌아갈 존재임을 상기시키며(전 12:7),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 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시 116:15)라고 말한다.

죽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기억과 책임의 문제를 탐구한 자크 데리다 (Jacques Derrida)는 ‘애도를 인간 존재의 방식 중 하나로 자리해야 할 윤리’ 로 보고 이 시대의 일그러진 애도 상실의 현상을 부각시킨다.1

본 연구는 데리다의 애도 이론(Theory of Mourning)을 통해 구약의 여성 죽음 서사를 재해석한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 죽음 서사들은 주로 남성, 왕, 선지자 등 영웅적 인물에 주목하던 기존의 관점에서 벗어나 있는 소외된 죽음이거나 애도의 대상이 되지 못한 죽음에 해당한다.

애도 이론을 통해 여성들의 죽 음 서사를 해석하여 죽은 자에 대한 애도와 남은 자의 윤리를 제시함으로 써 현대 사회와 기독교 전통이 도외시하고 있는 애도와 공생의 차원을 부 각시키고자 한다.

그동안 구약의 여성 죽음 서사 연구는 주로 페미니즘 비평을 통해 이 루어져 왔다.

대표적 연구 결과인 트리블(Phyllis Trible)의 Texts of Terror (공포의 텍스트)는 그녀가 눈물과 고통의 작품이라 부르는 것으로서 여성 희 생자들의 역사와 울부짖음을 드러내고 그들이 도구가 아닌 목적이 되게 했다.2

 

     1  그는 현 사회에 팽배해진 무관심과 무감정, 그리고 성찰 부재의 상태는 “인류에 대한 범죄의 시작”이라 고 비평한다. J. Derrida, Living Together: Jacques Derrida’s Communities of Violence and Peace, ed. Elisabeth Weber (New York: Fordham University Press, 2013), 35-38.

    2  필리스 트리블, 『공포의 텍스트: 성서에 나타난 여성의 희생』, 김지호 옮김 (서울: 도서출판100, 2022), 23-25. 

 

이후 여성의 죽음 서사는 가부장제 사회 속에서 발생한 희생 구조 와 폭력의 현실을 드러내는 본문으로 다양하게 읽혀 오고 있다.

본 논문은 이 지점에서 나아가 타자의 죽음과 애도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본문 해석의 틀로 삼되, 여성주의 성서해석과 내러티브적 읽기, 그리고 기억과 트라 우마에 대한 해석학적 논의를 보조적으로 활용한다.

이를 통해 여성의 죽 음 서사를 기억의 재구성과 죽은 타자를 향한 윤리적 응답으로 재독해하 고자 한다.

 

Ⅱ. 애도 이론과 구약성서

 

구약 여성 죽음 서사의 해석 틀은 데리다가 다양한 저작과 추도문에서 전개한 애도에 관한 철학적 논의이다.

그의 애도 이론에 대해 ‘애도의 불 가능성’, ‘응답과 책임’ 그리고 ‘애도의 불가피성’ 차원으로 구분하여 살펴 본다.

 

1. 자크 데리다의 애도 

 

1) 애도의 불가능성

 

아이러니하게도 데리다의 애도에 대한 사유는 애도의 성공이 아니라 애도의 불가능성(l’impossibilité du deuil)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애도는 결코 완전히 수행될 수 없다. 그것은 항상 어떤 실패를 내포한 다. 우리가 타자를 내면화하려 할 때, 즉 죽은 이를 우리 안에 보존하려 할 때, 우리는 동시에 그 타자의 타자성을 훼손하게 된다. 반대로, 그 타 자를 철저히 외부에 남겨 두려 할 때, 우리는 그를 잃어버린다. 이처럼 애 도는 언제나 불가능성과 필연성 사이에서 진동다.”3 

 

    3  J. Derrida, The Work of Mourning, eds. Pascale-Anne Brault and Michael Naa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1-5. 이 저서는 데리다가 지인들의 죽음에 대해 응답으로서 내놓은 편지나 조 문, 추도문, 강연문 등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는 각기 고유한 죽음을 대하는 서로 다른 응답을 드러내 는데, 그 안에 삶과 죽음, 우정과 애도의 사유가 잘 드러난다. 편집자는 이 책을 “데리다의 애도의 정치 학”이라 부를 만 하다고 말한다. 

 

이는 죽은 이를 기억하는 애도의 과정이 오히려 그의 타자성을 훼손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으며 경계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 은 요구이다.
우리는 애도를 통해 상실을 극복하고자 하며, 그 과정에서 타자를 우리 안으로 흡수하고 나의 방식 안에 환원시키기 쉽다.

애도가 오 히려 타자의 타자성을 지워 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여성 죽음 서사에 대한 애도의 해석 역시 불변의 최종 결론에 도달할 수 없는 작업임을 인정해야 한다.

애도의 해석은 완성된 결론을 찾는 여정이 아니라 불가능성의 가능성 안에서 이루어지는 열린 결말이다.

 

2) 애도의 윤리: 응답과 책임

 

애도는 상실에 대한 감정 표현만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를 지속하려 는 윤리적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데리다의 애도에 관한 글들은 단순한 추도문이기보다 타자와의 관계를 사유하려는 철학적 실천의 결과에 해당 한다.

이는 임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evinas)의 ‘타자성’(otherness) 개념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죽음을 단순한 ‘무’(無)로 환원하기를 거부하며, 이를 ‘응답 없음’의 상태로 이해한다.

죽음을 단순한 소멸로 이해할 경우, 타자를 쉽게 제거가 가능한 존재로 환원하는 폭력적 논리와 연결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4

 

     4  엠마누엘 레비나스, 『신, 죽음 그리고 시간』, 김도형 외 옮김 (서울: 그린비, 2013), 19-23; 자크 데리다, 『아듀 레비나스』, 문성원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16), 20-22. 레비나스는 죽음이 무화(無化)나 비 존재이기 전에 일종의 경험, 살아남는 자가 겪는 ‘응답 없음’이라고 함으로써 죽은 자의 존재를 무로 돌 리는 것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레비나스는 죽음을 존재 론의 문제이기보다 윤리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에게 죽음이 ‘응 답 없음’의 상태라면, 데리다의 애도는 응답할 수 없는 타자에게 끝없이 응답하려는 새로운 관계의 가능성을 요청하는 윤리적 과제가 된다.

이런 차원에서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말하는 애도의 성공과 실 패와는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데리다의 애도는 ‘상실을 극복하기 위해 대 상에게 향한 리비도(libido)를 철회’하는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의 지속 을 형성하는 사건이다.5

이때 단순히 죽은 이를 기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그리고 죽음 이후에 남은 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묻게 된다.

더 이상 응답할 수 없는 타자에게 계속해서 응답해 야 하는 것은 비대칭적 구조이지만 그 응답과 책임이 애도의 방향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성서에 나타나는 죽음 서사를 단순한 역사적 기록이 아니 라 남은 자에게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텍스트로 읽을 수 있는 해석의 틀을 제공한다.6

 

       5  조현숙은 프로이트와 달리 데리다는 죽은 자를 포기하거나 대체하는 대신 망자와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자아를 재구성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고 설명한다. 조현숙, “산산이 부서진 몸”으로 울기, 기억 하기 - 애도하는 주체의 재구성, 「목회와상담」 44 (2025), 236-240; Sigmund Freud,“Mourning and Melancholia,” in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 14 (London: Hogarth Press, 1981), 243–258.

      6  죽은 이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수용하면서도 비통의 늪에 침잠하지 않고 먼저 떠난 이의 삶이 남은 자 에게 남기는 과제와 책임을 발견하는 ‘탈낭만화 된 애도’가 요구된다. 강남순, 『데리다와의 데이트 - 나 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행성B, 2022), 28.

 

3) 애도의 불가피성

 

애도를 특별한 상황에서만 가능한 특수한 행위로 이해하는 것은 데리 다의 입장과 거리가 있다.

모든 죽음은 환원 불가능한 단수적 사건이지만, 애도는 그러한 단수성에 반복적으로 응답하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복수성 을 지닌다.

애도는 죽음의 고유성과 단수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끝내 다시 말하고 기억하고 호명할 수밖에 없는 작업에 해당한다.

데리다가 “우 리는 매번 고유한 그와 그녀의 죽음 앞에서 반응하고, 읽고, 말하고, 애도 하게 된다.”라고 하면서 애도를 감정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애도 없 이는 살아갈 수 없다”(on ne survit pas sans porter le deuil)라고 하는 데는 존재론적 근거가 있다.7

 

   7  Derrida, The Work of Mourning, 56-60. 14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1집

 

데리다는 인간 존재 자체를 이미 살아남음(survival)의 구조 안에 놓인 것으로 이해한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 “나는 애도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개인적 사유의 존재론이 아닌 공생의 존재론을 암시한다.8

그에 따르면 우리는 항상 죽은 자의 기억과 전통을 상속받으며 살아간다.

이런 의미에 서 생존은 곧 애도의 다른 이름이다.9 남은 자로서 죽은 자와 다시 새로운 관계를 맺는 존재론적 변화가 불가피한 것이다.

 

     8  Jacques Derrida, Points...: Interviews, 1974–1994, ed. Elisabeth Weber, trans. Peggy Kamuf et al.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5), 321.

    9  J. Derrida, Politics of Friendship. Trans. George Collins (London and New York: Verso, 2005), 13. 

 

이러한 관점에서 성서의 독자이자 유산의 상속자인 우리는 희생과 침묵당하고 배제된 구약의 여성 죽음 서사와 오늘날의 반복에 대해 응답할 것을 요구 받는다.

애도는 선택 가능한 수행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에게 부과되는 윤리적 과제가 된다.

 

2. 애도 이론과 히브리 성서: 기억과 윤리

 

데리다의 애도가 상실감과 애착 관계의 정리나 제거가 아닌 ‘기억’, 그 리고 응답 없음이 아니라 ‘책임’의 차원으로 수렴되듯이, 히브리 성서의 죽 음에 대한 애도 역시 기억을 보존하고 공동체적 책임을 수행하는 윤리를 지향한다.

 

1) 기억

 

성서에서 죽음은 ‘망각의 땅’(ֶאֶ ֶרֶ ץ ְנְִׁשׁ ָּיּה )과 같이 기억이 사라지는 공간으 로 그려진다.

다른 무엇보다 떠나간 존재에 대한 기억이 잊혀진다는 점에 서 죽음의 비애가 서려 있다(시 88:5–12). 때로 이 기억은 이름이라는 표상 안에 담기는데, 전도서 9장 5절의 개역개정 본문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그들이 다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름이 잊어버린 바됨이니라”인데,

이에 해당하는 BHS의 표현은(ְנִׁׁשְ ַּכּ ח ִזְׁכְ ֶרּ ם) ‘그들에 대한 기 억이 잊혀진다’이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기억’ 전체를 표상하는 개념으로 이해된다. 이는 성서 전반의 맥락과 호응 한다(시 135:13; 신 25:6; 시 34:16; 욥 18:17).

아울러 죽음이 존재의 소멸을 넘어 기억의 소멸로 이어짐에도 불구하 고 남은 자들, 특히 후손을 통해 죽은 자의 이름이 기억되기를 바라는 염 원과 이를 보존해야 할 의무 또한 강하게 나타난다(민 27:4, 룻 4:5, 10, 삼하 18:18).

압살롬은 자기 이름을 ‘기억할’ 아들이 없어서 스스로 자신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기 위한 기념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삼하 18:18).

이처럼 히브 리 성서에서 기억은 죽음을 넘어 존재를 지속시키는 중요한 매개이며, 그 기억을 보존하는 일은 남겨진 자들의 책임으로 이해된다.

 

2) 공동체 윤리

 

히브리 성서에서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위한 일련의 의례(ritual)들은 연민이라는 감성적 차원을 넘어 책임과 연대의 차원을 지닌 사회적 실천 으로 드러난다.

사울 M. 올리언(Saul M. Olyan)은 장례와 애곡을 포함한 애도의 의례들을 하나의 공적 제스처로 이해했다.10

 

   10  Saul M. Olyan, Biblical Mourning: Ritual and Social Dimension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1–27. 

 

애도는 공동체 윤리와 긴밀하게 연결되는데, 정의와 공의의 핵심 대상인 “고아와 과부”는 단순한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 죽음으로 인해 보호자와 생계 기반을 상실한 아이 와 아내이다.

이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죽음 이후 남은 자로서 공동체 가 실천해야 할 책임에 속했다(출 22:22–24, 신 10:18, 신 14:29, 신 24:17–21, 시 68:5, 사 1:17, 렘 7:6, 슥 7:10).

구체적으로 친족의 권리를 ‘속량하고’ ‘회복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고 엘(ֹּגֶּאֵ ל ) 제도는 남은 자가 죽은 자에게 속했던 권리와 책임을 이어가는 윤 리적 차원을 보여준다.

지파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를 살아가던 고대 이스라엘은 이 제도를 통해서 재산 유지와 상속, 복수, 계대(繼代) 문제 등을 상 호 부조했다(레 25:25, 룻 4:1-10, 민 35:19, 신 19:6; 25:5-10).

고엘 제도의 서사를 배경으로 하는 룻기는 가장(家長)의 죽음이 의미하는 유가족의 생존 위기에 대해서 죽은 자의 이름과 유산을 공동체 안에서 회복한다는 점에서 애도의 윤리를 보여 준다(룻 2:10-13).

나오미는 보아스의 행위를 언급하면 서 그 은혜의 수혜 대상으로 ‘죽은 자들’(המתים)과 ‘살아 있는 자들’(החיים)을 함께 제시한다(룻 2:20).11

 

    11  김민정, “가족 죽음과 애도 윤리에 대한 신학적 고찰,” 『가족 제도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박성철 편 (서울: 한국학술정보, 2025). 122-124.

 

히브리 성서에서 애도의 윤리는 죽은 자의 끊어진 삶을 단순히 기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공동체가 그의 이름과 권 리, 그리고 미완의 책임을 이어받아 수행함으로써 죽은 자와의 관계를 지 속하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물론 죽음과 애도의 서사 방식은 히브리 성서 내 문헌군에 따라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여성의 죽음으로 범위를 좁히더라도 오경에는 사라 (창 23장), 리브가와 레아(창 49:31)와 같이 가족 공동체 안에서 애도의 대상 으로 기억되는 죽음들이 등장한다.

반면 신명기계 역사서의 죽음 서사는 역사신학적 관심 속에서 죽음을 평가하고 서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결과 어떤 죽음은 공동체적 기억 속에 보존되지만, 어떤 죽음은 심판이나 희생의 논리 속에서 주변화되거나 망각된다.

본 연구는 성서에 나타나는 모든 여성의 죽음을 포괄하여 다루지 않고 공동체 안에서 기억과 애도의 방식이 서로 다르게 구성되는 여성들의 죽 음에 주목한다.

희생되거나 제거된 여성들의 죽음은 어떠한 방식으로 서 사화되고 기억되는가? 또한 그 죽음 앞에서 공동체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 으며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무엇인가?

본 연구는 이러한 질문을 중심으 로 여성의 죽음 서사를 고찰하고 기억과 애도의 문제를 논하고자 한다.

본론에서 먼저 이름 없는 소녀의 희생적 죽음을 전하는 입다의 딸 서 사(삿 11장)를 중심 텍스트로 삼아 그녀의 죽음을 재구성하고 애도의 가능 성을 집중 분석한다.

다음으로 다양한 죽음들을 향해 애도가 열려 있어야 함을 환기하기 위해 애도 부재의 결과를 보여주고 애도 차단의 메커니즘 을 드러내는 두 가지 사례를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레위인의 아내(삿 19 장)와 이세벨(왕상 21; 왕하 9)의 죽음 서사이다.

 

Ⅲ. 존엄한 죽음과 애도의 가능성: 입다의 딸(삿 11)

 

에스더 푹스(Esther Fuchs)는 입다의 딸 서사가 주변화(marginaliza tion), 모호성(ambiguity), 침묵(silencing)의 구조 속에서 구성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12

 

     12  Esther Fuchs, “Marginalization, Ambiguity, Silencing: The Story of Jephthah’s Daughter,” in A Feminist Companion to Judges, ed. Athalya Brenner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116 130. 

 

비록 그녀의 죽음이 남성 서사에 종속된 부차적 이야기로 배치되고, 죽음의 성격과 책임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름과 표현이 은폐된 구조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죽음의 고유성과 애도의 가능성을 재조명할 수 있다.

 

1. 죽음의 무게

 

1) 죽음 사건에 대한 인정

 

사사기 11장은 입다의 서원이 정당성을 지니는가에 대한 평가나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현상이 어떠했는가라는 역사적 배경을 논하기에 앞서 한 소녀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그녀의 죽음은 아버지의 서원에 의해 수행된 인신제사(human sacrifice)의 성격을 지닌다. 한 소녀가 희생제물처럼 바쳐 진 이 사건은 야훼의 성품과 히브리 성서 전체의 허용 범위를 넘어선 제의의 방식에 해당한다.

야훼는 침묵할 뿐이고 사사기 저자는 사건의 의미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은 채 모호하게 서술한다.13

그동안 종교적이고 윤 리적 차원에서 심각성을 띠고 있는 이 죽음의 무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 서사를 해석하는 갈래가 다양하게 나뉘어 왔다.

입다의 딸의 죽음을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려는 해석은 이미 유대 전통 안에서부터 나타나며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양립한다.

하나는 입다가 약속대로 딸을 번제물로 바쳤다는 전통이고 다른 하나는 입다가 딸을 위해 별도의 집을 지어 그곳에서 남은 생을 은둔하며 봉헌하게 했다는 것이다.14

현대의 유대 신학자 모세 라이스(M. Reiss) 역시 중세 랍비 데이비드 킴히 (David Kimhi)의 견해를 따라 그녀의 운명을 죽음이 아닌 평생의 헌신, 특 히 처녀성의 유지로 이해하는 해석을 제시한다.15

그러나 “내가 나의 처녀 성을 위해 울겠습니다”(ְוְֶאֶ ְבְַּכֶה ַעּ ל־ְּבְתּולּ י)하면서(삿 11:37) 성서에서 유일하게 1인칭으로 자신의 처녀성을 강조하는 이 대목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 다.

결혼과 출산이라는 당시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당연하게 주어진 생애의 과제와 가능성이 좌절된 채 처녀의 상태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한 탄식으로 보아야 한다.

인신제사의 실행 여부를 유보하거나 부정하면서 신학적으로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입다의 딸이 당한 죽음의 심각성과 무게를 반증한다.16

 

   13  일찍이 엑섬(J. Cheryl Exum)은 이 서사를 문학적 아이러니를 통해 강한 윤리적 불편함을 유발하는 본문이라고 말했다. J. Cheryl Exum, “On Judges 11,” in A Feminist Companion to Judges, ed. Atha lya Brenner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3), 131–143.

   14  L. Juliana Claassens, “Female Resistance In Spite of Injustice: Human Dignity and the Daughter of Jephthah,” Old Testament Essays 26/3 (2013), 609-610. 인신제사의 신학적 딜레마는 국내에서도 다 양한 해석을 불러 일으켰다. 본문의 모호성에 따라 인신제사가 아닌 다른 가능성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한편 인신제사 금지의 이유를 신학적으로 논의하거나 입다의 딸의 희생 을 야훼를 위한 것이 아닌 바알 숭배적 영향에 의한 결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재구, “입다의 딸, 누 구를 위한 희생인가?” 「한국기독교신학논총」 64 (2009), 29-51; 임신호, “입다의 인신제사(삿 11:29-40) 에 대한 신명기 사가의 평가,” 「장신논단」 50 (2018), 11-33; 장석정. “사사기 11:37–38 번역 연구: ‘처녀 로 죽음’을 중심으로,” 「성경원문연구」 50호 별책 (2022), 14–21.  

    15  Moshe Reiss, “Jephthah’s Daughter,” JBQ 37.1 (2009), 57–63. 하경지는 구약에서 번제를 비유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는 없기에 이 본문에서만 예외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개인적 목적과 왜곡된 신앙에 의해 저지른 일로 본다.

   16.  하경지, “구약의 인신 제사에 대한 신학적 고찰,” 「구약논집」 22 (2022), 65. 

 

2) 죽음의 원인과 죽음에 이르는 과정 19

 

이 죽음의 원인은 자기 아버지 입다(יְׁפְָּתּ ח)가 입을 열어서 야훼 앞에서 약속한 말이었다.

한 사람의 발화가 충분한 윤리적 검토나 정당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직결되었다. 그러나 서사의 최종 형 태는 그가 사사였고 그가 한 말이 야훼 하나님에게 한 서원이었다는 것으 로 정당화를 시도한다(삿 11:30–31, 35, 39). 그러나 이에 대한 야훼의 침묵을 곧 동의로 해석할 수는 없다.

안근조의 해석을 참고할 때 불확실성과 모호 성 속에 숨어 있는 이 현존 방식은 오히려 입다의 불안과 불신이 어떻게 비 극을 낳는지 보여주는 서사 장치로 읽힌다.17

그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떠나 서18 죽음이라는 사건 앞에서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자신의 말로 인해 딸 의 죽음을 초래한 입다가 보인 반응들이다.

외동딸이 승전하여 돌아오는 자신을 맞으러 나왔을 때 입다는 절망과 비탄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 옷을 찢었다”(삿 11:35).19

 

  17 안근조, “입다의 서원과 하나님의 침묵: 삿 10:17-11:40에 대한 수사비평적 읽기,” 「신학논단」 83 (2016), 225-256.

  18.데이비스(Tamie S. Davis)는 입다를 또 다른 인신제사에 해당하는 아브라함 서사의 전복으로 제시된 반영웅(anti-hero)이라고 말한다. Tamie S. Davis, “The Condemnation of Jephthah,” Tyndale Bulle tin 64, no. 1 (2013), 1–16. 야이라 아미트의 해석처럼, 다수의 주석가들 역시 입다를 점차 실패해 가 는 사사들의 흐름 안에서 이해하며, 필자 또한 이러한 관점을 따른다. Yairah Amit, “The Book of Judges – Dating and Meaning,” in Homeland and Exile: Biblical and Ancient Near Eastern Studies in Honour of Bustenay Oded, ed. Gershon Galil, Mark Geller, and Alan Millard (Leiden: Brill, 2009), 309–310.

 19.옷을 찢는 행위는 히브리 성서 전반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애도와 파국 인식에 따르는 몸짓에 해당한 다. 주로 극도의 위기 상황에서 마주한 고통과 붕괴가 이 신체적 행위로 드러난다(창 37:29, 34; 44:13; 왕하 2:12; 욥 1:20; 렘 41:5). 

 

그런데 이 행위에서 드러나는 고통이 과연 무엇을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 질문으로 남는다.

그는 온몸으로 고통스러운 마음을 표출하면서도 정작 야훼로부터 어떠한 응답도 받지 못한 일방적인 자신의 서원을 철회하지 않았다.

물론 야훼 앞 에서 한 서원은 철회가 불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민 30:2; 신 23:21–23).

그러나 입다는 길르앗 장로들과의 협상 과정에서 정치적 주도 권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 하였고(삿 11:4–11), 야훼 앞에서도 승리를 조건 으로 서원을 제시할 만큼 능동적으로 행동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딸의 죽 음이 예정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재고나 저항이 드러나지 않는다 는 점은 서사적으로 중요한 긴장을 형성한다.

아울러 거시적 맥락에서 이 제사는 인간의 생명에 대한 야훼 신앙의 핵심 윤리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 다(레 18:21, 20:2–5, 신 12:31, 18:10, 렘 7:31, 19:5).

설사 이것이 역사적으로 실제로 시행되었을 고대의 제사 형태라 할지라도20 인간의 죽음 앞에서 ‘서 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쉽게 빠져나간 결과는 지속적인 의문을 남긴다.

이어지는 입다의 발화를 보면, 자기의 말이 져야 할 책임을 단번에 딸 에게 넘기고 딸을 원망하고 책망하는데 이른다.

사사기 11장 35절 본문의 ‘너와 나’의 수사적 대조는 잘 알려져 있다.21

 

     20 앨리스 로건(Alice Logan)은 고고학적 관찰을 통해 볼 때, 실제로 인신 제사가 고대 이스라엘에서 시 행되었을 가능성과 위기 상황에서의 선택으로서 용인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Alice Logan, “Rehabilitating Jephthah,”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28, no. 4 (2009), 665–685.

    21.트리블, 『공포의 텍스트』, 150-151.

 

“아하, 내 딸아!”(ֶאֲ הּ ּה ְּבָּׁתׁ י )로 시작하는 그의 발화는 2인칭 여성 단수 주어( ְֶאָּּת )의 반복을 통해 책임을 딸 에게 전가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특히 본문에 사용된 히필형 동사(הׁ ְכְֶרּ ַעְָּתׁ ְנׁ י ) 는 ‘너는 나를 무너뜨렸다’는 사역의 의미를 부각시키고 이에 더하여 동일 어근의 부정사 절대형( ּהּ ְכְֶרֵ ַע )을 병치하여 행위의 결과가 철저하고 결정적 인 것임을 강조한다.

이어지는 표현 “ְוְֶאּ ָּתְ הּ יׁיתְ ְּבְ ֹעְּכְֶרּ י”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너’( ְֶאּ ָּת )를 전면에 내세우며, 딸을 단순히 고통의 원인 제공자가 아니라 ‘나 를 괴롭게 하는 자’로 규정한다.

이는 고통의 원인을 딸의 행위에 귀속시키 는 것을 넘어, 그녀의 존재 자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수사 전략 을 드러낸다.

반면 이어지는 문장의 서두에 등장하는 “나”(ֶאּ ְנְּכׁ י )는 이미 입을 열어 서 원을 마쳤고, 그것은 야훼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할 뿐 이다.

책임의 원인은 존재하지만 그 책임을 감당하려는 주체는 부재하며, 오히려 딸이 그 책임을 떠안고 죽어야 하는 죽음이 되었다.

따라서 이 죽음 은 단순히 아버지에게 순종한 착한 딸의 희생이나 신앙적 모범으로 읽힐 수없다.

오히려 죽음의 원인과 과정 전체에 가부장적 권력과 책임 전가의 폭 력이 내재한 죽음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죽음에 대한 공모와 희생

 

입다의 딸의 죽음은 유사한 조건 아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위기의 아 들들과는 명백한 대조를 이룬다.

인신제사의 위기에 놓였던 이삭의 경우 에는 야훼의 사자가 긴급하게 개입하여 그의 죽음을 중단시키며 그 아들 에게 손도 대지 말라고 말한다(창 22:11–12).

요나단의 경우 사울의 성급한 맹세로 인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지만, 백성들은 결코 사울의 아들이 죽어 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만류한다(삼상 14:45).22

반면 입다의 딸의 죽음 앞 에서는 어떤 신적 개입도, 무엇보다 공동체의 고민이나 저항도 드러나지 않는다.23

이은애는 이전에 공동체가 자신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행했던 수많은 대화 및 협상과 지금 드러나는 침묵이 완전하게 대조되고 있음을 지적한다.24

 

     22  “그녀는 공동체에 의해 살해된 것이다.”라는 엑섬의 말처럼 공동체의 침묵하는 폭력은 지속적으로 비 판되고 있다. Cheryl Exum, Tragedy and Biblical Narrative: Arrows of the Almighty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58; 배희숙, “입다의 서원과 입다의 딸의 희생의 의의(삿 10–11 장),” 「장신논단」 55/5 (2023), 177.

    23  이윤경은 요나단을 살린 백성들을 상기시키면서 길르앗 사람들의 침묵에 대한 이유를 묻는다. “입다 의 딸이 승리의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인가? 입다는 서원을 하였고, 사울은 맹세를 하였기 때문인가?” 그리고 그 이유를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서 찾는다. 이윤경,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읽 는 입다의 딸 이야기,” 「구약논단」 19(3) (2013), 97-112.

    24  이은애, “입다의 딸과 이피게네이아: 상호매체성으로 읽는 소녀의 희생,” 「구약논단」 28/4 (2022), 169. 

 

이 침묵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외면과 암묵적 동의로 읽힐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이윤경이 제안한 르네 지라르(René Girard)의 희생양 이론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공동체가 내부 갈등과 폭력이 증폭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할 때, 그 폭력을 특정 개인에게 집중시켜 희생시킴으로써 질 서를 회복하고자 하는데, 이때 희생양(scapegoat)은 공동체의 불안과 폭력 을 흡수하고 제거된다. 그리고 나서 공동체는 그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희생양을 신성화 한다.25

 

      25  René Girard, Violence and the Sacred, trans. Patrick Gregory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77), 4–6, 79–82. 이 폭력은 인간의 모방 욕망에 기인하며 이로 인한 경쟁이 상호적 폭력으로 귀착되어 폭력의 해소를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 해소의 유무가 공동체의 존속과 와해의 갈림길이 된다. 이윤경,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읽는 입다의 딸 이야기,”105-106.

 

그런데 일반적으로 지라르가 말하는 희생양은 공동 체가 자신의 폭력을 은폐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존재인 반면, 입다의 딸의 죽음은 서원(vow)이라는 의식적 종교 행위 속에서 정당화된 다.

이에 그 폭력이 은폐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는 언어 속에서 신성화된다.

공동체의 침묵과 묵인이 죽음에 대한 공모로 기 능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제의화된 희생의 논리 때문일 수 있다.

공동체 내에서 소녀의 죽음이 치러질 때 보인 이러한 침묵은 단순한 방관 을 넘어 죽음에 대한 공모로 기능했다.

 

2. 애도의 가능성

 

1) 이름 없는 소녀의 죽음에 대한 기억의 재구성

 

분명히 이름이 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남겨지지 않고 죽음의 사실만 남은 이에 대한 애도는 시작부터 어려움을 준다. 코플로비츠-브라이어 (Anat Koplowitz-Breier)는 히브리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여성 인물들 이, 그 무명성으로 인해 서사적 가시성이 결여되고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부여받지 못한 존재로 이해되는 점을 지적한다.26

그 럼에도 불구하고 입다의 딸 서사를 단순한 희생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 극 단적 불의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주목하고, 침묵 이 아니라 드러나는 행위성으로 초점을 옮기는 최근의 해석 경향은 애도 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그녀는 익명화된 희생자이면서도 동시에 도덕적 행위성을 지닌 인물로 읽힐 수 있다.27

 

   26  Anat Koplowitz-Breier, “A Nameless Bride of Death: Jephthah’s Daughter in American Jewish Women’s Poetry,” Open Theology 6 (2020), 1-5. 

   27  브레너(Athalya Brenner)는 그녀를 “전적으로 혹은 대체로 긍정적인 인물로 간주될 수 있는 소수의 여 성들” 가운데 하나로 포함시키고, 클라센스(L. Juliana Claassens)는 입다의 딸이 자신의 가치가 침해 되는 상황에 갇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욕적인 현실에 저항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강조 한다. Athalya Brenner, “Women and Men He Created Them: Gender and Ideologies in the Book of Judges,” in Words, Ideas, Worlds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 20-31; Claassens, “Fe male Resistance In Spite of Injustice,” 607. 

 

⑴ 가부장적 권력과의 대조 23

 

애도의 일환으로 재구성해보는 입다의 딸의 모습은 먼저 아버지 입다 와 이스라엘 공동체와의 대조 속에서 명확해진다.

길르앗 지역을 의인화 하여 아버지로 칭할 만큼 불확실한 혈통과 인정받지 못하는 첩의 아들로 서 불안한 혈통 때문에 자신의 사회적 정당성을 전쟁 능력으로 확보해야 했던 입다의 입장은 무모한 서원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딸의 결정 동기 역 시 아버지의 동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처지에 대 한 연민보다 아버지에 대한 연민을 드러낸다(삿 11:36).28

당연히 당혹스러 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감정이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는 본문의 형태는 많은 의문을 남긴다.

박유미는 그녀가 서원의 성격과 전쟁 승리 사 이의 인과관계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원 이행을 수용한 것 으로 이해한다.29

입다가 ‘내 딸아’ 하면서 책임 전가를 시작하는 반면(삿 11:35), 입다의 딸은 ‘내 아버지’ 하면서 그를 정당화하고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한 다.30

그렇다고 이것이 순종의 표본이나 칭송할 일이 되지는 못한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아버지와 불안한 자기 지파의 현실을 의 연하게 마주한 그녀의 존엄을 엿보게 된다.

그녀의 행동에서 아버지와 지 파 공동체의 생존과 안녕을 바라보는 열망을 읽어내는 것이 과장은 아니 다.31

 

    28  이윤경은 입다의 딸을 희생대체(substitution sacrificielle)로 보고, 쿠퍼(Cooper)의 말로 이 상황을 설 명한다. 이 부녀는 이중적 주변인에 해당하고, 그녀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에는 태생적으로 사회적 약 자인 아버지의 명예를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다. 이윤경,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으로 읽는 입다의 딸 이야기,” 109-110.

   29  박유미, 『내러티브로 읽는 사사기』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8), 236-237.

   30  필리스 트리블, 『공포의 텍스트』, 151.

   31  배희숙은 그녀의 희생이 공동체의 평화와 화해를 이루고자 한 자발적인 자기희생이었으며, 땅을 상실 할 위기에 처했던 이스라엘에게 승리와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제사로 승화시 킨 것이었다고 말한다. 배희숙, “입다의 서원과 입다의 딸의 희생의 의의(삿 10–11장),”178-179.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소녀의 죽음에 대해 침묵했던 공동체의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붕괴를 드러낸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아 버지의 입장과 권위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다. 이들과의 대조 속에서 입다 의 딸은 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희생자에 그치지 않고 유일한 행위자로서 양가적인 역할을 수행하면서 자신의 존엄을 드러냈다.

 

⑵ 기억의 재구성

 

유대 미드라쉬32 전통은 입다의 딸을 공적 영역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사사 드보라(삿 4–5장)와 병행시키며 그녀의 기억을 재구성했다.

여기서 입 다의 딸은 드보라와 유사하게 남성과 대면(confrontation)하고 도덕적 우위 를 지닌 인물로 해석되는데, 그녀가 아버지 입다와 논쟁하며 그의 잘못을 드러내는 장면이 흥미롭다. “입다가 딸을 바치려 하자, 딸은 울며 말하였다.

 

“나는 기쁨으로 아버지 를 맞이했는데, 아버지는 나를 죽이려 하십니까? 토라 어디에 자녀의 생 명을 제단에 바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오히려 ‘너희의 제물은 가축에 서 가져올 것이요 사람에게서가 아니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레 1:2).

 

그러자 입다는

“내 딸아, 나는 서원을 하였다”고 답하였다. 이에 딸은 다 시 말하였다. “우리 조상 야곱이 ‘주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것에서 십일조 를 드리겠다’고 서원했을 때(창 28:22), 하나님이 그에게 열 두 지파를 주 셨지만 그 중 하나를 제물로 드린 적이 있습니까? 또한 한나가 ‘그를 평 생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서원했을 때(삼상 1:11), 아들을 제물로 바친 적 이 있습니까?”(Midrash Tanhuma, Beḥuqqotai 5)33

 

   32  미드라쉬적 해석은 유대교의 해석 전통으로서 성서 본문을 고정된 단일 의미로 환원하기보다, 본문 간의 연결과 서사적 공백의 채움, 그리고 해석 공동체의 현재적 상황 속에서 의미를 확장하고 재구성 하는 해석적 실천이다. Daniel Boyarin, Intertextuality and the Reading of Midrash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1990), 12–18.

   33  Shulamit Valler, “Strong Women Confront Helpless Men: Deborah and Jephthah’s Daughter in the Midrash,” in Words, Ideas, Worlds: Biblical Essays in Honour of Yairah Amit (Sheffield: Sheffield Phoenix Press, 2012), 247-249. 

 

슐라밋 발러(Shulamit Valler)의 분석대로 미드라쉬의 시도는 인신제사 앞에서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신정론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석 전략이지만34 히브리 성서가 침묵시킨 입다의 딸에 대한 개연성 있는 해석적 개입이다.

비록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주어 진 현실을 직면하고 해석하며 응답하는 과정에서는 분명한 행위성을 보여 준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발러가 말하는 “Strong Women Confront Helpless Men”(무력한 남성들과 대면하는 강인한 여성들)의 범주 안에서 이해 될 수 있다.

아울러 현대 유대 페미니스트35 시인들은 이름 없는 입다의 딸을 이야 기의 화자로 전환시켜 그녀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게 하며, 본문이 침묵하고 있는 공백을 채우는 방식으로 그녀에게 감정과 내면을 부여한 다.

이 또한 사후적 애도의 시도 중 하나로서 주목된다.36

 

     34  Ibid., 242–243.

     35  현대 유대 페미니스트의 경향은 전통의 수용 너머 재창조의 작업으로 파악된다. 이는 성서 텍스트의 의미가 후대의 해석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 Jody Myers, “The Midrashic Enterprise of Contemporary Jewish Women,” In Jews and Gender, edited by Jonathan Frankel (Ox 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119–141.

     36  Anat Koplowitz-Breier, “A Nameless Bride of Death: Jephthah’s Daughter in American Jewish Women’s Poetry,” 1–14. 침묵 되었던 인물을 화자로 전환시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발화하게 하는 과정에서 두려움, 체념, 저항, 자기 인식과 같은 내면적 감정과 경험이 재구성될 수 있다. 이는 그녀를 단순한 희생 대상이 아니라 기억되고 인식되는 존재로 재위치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입다의 딸은 발 화하고 판단하는 주체이자, 율법적 지식을 갖춘 도덕적 행위자이며, 가부 장적 질서가 외면한 책임을 몸으로 떠안은 인물로 재구성될 수 있다.

 

⑶ 존엄한 주체의 죽음

 

인간의 존엄은 존재 여부를 증명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어떠한 방 식으로 인식되고 유지되는가를 살펴보아야 할 가치이다.

가장 먼저 승전 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환영하기 위해 ‘소구를 잡고 춤을 추며’ 나선 환영 식은 곧 희생제사 제물이 확정되는 비극의 순간이 되는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물론 이것을 우연이나 실수 내지는 입다의 말대로 어떤 잘못처럼 치부할 근거는 전혀 없다.37

오히려 이 첫 번째 행동에서부터 그녀의 주도성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죽음을 받아들임에 있어서 자발적으로 행동했 는데,38 줄리아나 클라센스(L. Juliana Claassens)는 이에 대해서 그녀의 ‘발 화, 요청, 그리고 행위’는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그녀가 자신의 운명을 형 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39

 

    37  배희숙, “입다의 서원과 입다의 딸의 희생의 의의(삿 10–11장),” 178.

    38  Athalya Brenner, “Women and Men He Created Them: Gender and Ideologies in the Book of Judges,” 23-24.

    39  클라센스는 이러한 저항이 비록 제한적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그녀의 인간적 존엄과 주체성이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Claassens, “Female Resistance In Spite of Injustice,” 607-610. 

 

입다의 딸은 자신과 무관하게 성사된 서원을 다음의 말로 수용한다.

“내게 행하소서”(삿 11:36)에 해당하는 ‘יֵַעּ ֶׂשֶ ה לׁ י’는 수동의 의미인 니팔 미완 료(Nifal Imperfect)와 ‘나에게’라는 전치사구로 되어 있다.

그 일이 이루어 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녀가 그것을 자신에게 실행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달만 “나를 버려 두세요” 라는 요청은(삿 11:37) 사역의 의미인 히 필 명령(Hifil Imperative)으로 다소 강력하게 들린다. 여기에 따르는 전치 사구 ‘מׁ ֶּמֶ ִּנׁ י ’ 즉, “나로부터”가 아버지를 포함한 이 상황으로부터 분리를 강 조한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시간과 공간을 스스로 확보하고 구성하려는 주체의 명령이었다.

 

2) 여인들의 애곡과 관습이 된 애도 의례

 

입다의 딸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친구들과의 애곡의 시간은 충분히 수 행된 공동체적 애도는 아니었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며, 침묵한 공동체와 대조를 이루는 지점이다.

이는 히브리 성서에서 유일무이하게 죽음 이전 에 애도가 선취적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에 동참하여 연대하는 존재들을 보 여주는 대목이다(삿 11:38).

물론 성서 본문은 두 달이라는 기간을 반복해 서 언급할 뿐 그 중요한 애도의 내용에 대한 일체의 설명을 하지 않지만(삿 11:37-39), 이경숙은 여기서 드러나는 이스라엘 여성들의 연대를 강조한 다.

사사기 편집자가 여성을 등장시켜 여성의 희생을 종결 짓게 하고 있으 며, 고발하고 슬퍼하는 일에 여성들이 앞장 섰다고 보도한다는 것이다.40

아마도 그녀들은 이 시기상조의 죽음, 비인간적인 폭력적 죽음 그리고 당 시 사회 문화에서 저주에 해당하는, 자신을 기억해 줄 이와 상속자를 남기 지 못하는 죽음에 대해 애곡했을 것이다.41

동시에 가부장제 사회에서 존속 위기에 처해 있는 지파의 딸들로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다면 그들도 역 시 동일하게 직면할 수 있었던 희생임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한적이지만 의미 있는 이 애도의 실천은 죽음 사건 이후의 의례로서 자리 잡아 그녀의 죽음을 기억하는 의식이 하나의 전통이 되어 유지된다(삿 11:40).

이스라엘 여자들은 해마다 나흘씩 입다의 딸을 위해 애곡하는 관습 을 따랐다(삿 11:40).

‘해마다’로 번역되는 ‘יּמׁ י ם יּמׁ י מּ ה’는 “날들에서 날들로” 라는 의미의 반복 구조로 되어 있어서 시간의 순환성과 지속성을 강조한다.

시기적으로 보면, 입다의 딸의 서사는 이러한 정기적 여성 의례의 기원을 설명하는 기원 설화(etiological legend)가 된다.

이 수행에서 드러나는 언어의 차원과 저항의 의식이 주목된다.

나흘 동 안 입다의 딸을 애도하면서 수행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그녀에 대해 기억하며 다시 이야기하는(לְתּ ִּנֹות לְְבּת־יְׁפְָּתּ ח) 것이다.

비록 아버지의 잘 못된 “말”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 말이 딸의 생명과 함께 그녀의 기억까 지 소멸시키는 것을 막도록 “말을 통해 그녀를 다시 살게 만드는” 것이다.42

아울러 이는 불의에 대한 저항(resistance)의 의미를 지닌다. 여성들의 현실 을 지배하는 구조의 힘에 맞서서 별도의 공간을 형성하고 여성들이 지닌 또 다른 힘을 증언하기 때문이다.43

 

     40  이경숙, “여성의 연대를 강조하는 입다의 딸 설화: 사사기 11장 1-40절,” 「기독교사상」 (1994), 199.

     41  필리스 트리블, 『공포의 텍스트』, 153.

     42  Cheryl Exum, “On Judges 11,” 132.

     43  Claassens, “Female Resistance In Spite of Injustice,” 610-611. 

 

이 공간은 서원의 책임에서 쉽게 벗어나고 부조리 앞에 침묵했던 기존의 가부장적 지배 권력과 제의의 언어로 이를 합 리화하면서 일체의 저항을 허락하지 않았던 종교 권력의 질서가 억누르지못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애도는 침묵이 아니라 다시 말을 꺼내는 것이며 저항의 또 다른 이름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한 최근의 해석 경향은 애도 의례의 또 다른 차원을 일깨운다. 로드리게스 페르난데스(Lidia Rodríguez Fernández)는 이를 트라우마 이론 으로 해석하는데, “입다의 딸이 겪은 개인적 트라우마가 여성들의 집단적 전통의 출발점이 되고, 이는 일종의 문화적 트라우마(cultural trauma)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44

실제로 이 충격적인 죽음을 기억하고 애 도한다는 것은 매년 결혼 적령기의 젊은 이스라엘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운명에 가해진 가부장적 폭력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아울러 페르난데스는 애도가 트라우마를 공동체적으로 “재의미화”(re-signification)하는 과정임 을 강조하는데, 입다의 딸에 대한 애도 의례가 이스라엘 역사에서 지녔을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45

애도는 트라우마를 극복하거나 종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공동 체의 시간 속에 머물게 하는 지연된 지속의 방식에 해당한다. 개인의 고통 을 집단적 기억으로 번역하는 매개로 기능하는 공동체적 애도는 그 과정 에서 트라우마를 발생시킨 폭력적 구조를 드러내고 비판하는 저항적 기억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애도는 어떤 시점에서 완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여정을 함께 하면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며 매 순간 살아 있는 자들을 일깨운다.46

 

     44  “문화적 트라우마(cultural trauma)는 어떤 집단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끔찍한 사건을 겪었다고 느끼 며, 그 사건이 집단의 의식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겨 기억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미래 의 정체성을 근본적이고 돌이킬 수 없게 변화시킬 때 발생한다.” Lidia, Rodríguez Fernández, “A Feminist Perspective on Trauma Studies in the Hebrew Bible: The Unnamed Jephthah’s Daughter (Jdg. 11:29–40),” Religions 16 (2025), 3-8.

   45  Ibid., 3-6.

   46  김민정, “가족 죽음과 애도 윤리에 대한 신학적 고찰,” 115-118. 

 

오늘날 입다의 딸의 죽음이 남은 자에게 남기는 질문과 책임은 무엇인 가?

먼저 우리는 입다의 딸의 죽음을 단순한 희생이 아니라 존엄한 죽음 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녀의 죽음의 원인과 방식에서 드러나 는 희생양 메커니즘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지속적인 비판과 경계의시각을 유지해야 한다.47

입다의 딸에 대한 애도는 한 여성의 죽음에만 머 물지 않는다.

그것은 ‘십볼렛’(shibboleth) 발음으로 죽임을 당한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을 비롯하여 전쟁에 희생된 남성들의 죽음48, 나아가 고대의 비극을 넘어 오늘날에도 가부장적 폭력과 종교적 정당화 속에서 반복되는 또 다른 ‘입다의 딸들’을 기억하도록 요청한다.

 

     47  조현숙은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매번 희생양을 찾으려 했던 집단의 폭력성을 지적하면서, 입다의 딸 과 같은 희생양 메커니즘에 고통 받는 모든 입다의 딸들을 위한 치유공동체를 제언한다. 그것은 정의 로운 증언 공동체가 되어주기, 편들기 공동체가 되어 주기로 수렴된다. 조현숙, “잔혹한 공동체의 희 생양 찾기와 치유공동체의 가능성 탐구,”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26 (2022), 342-346. 

  48  Claassens, “Female Resistance in Spite of Injustice,” 614-616. 

 

그러므로 입다의 딸에 대한 애도는 한 소녀의 죽음을 과거의 비극으로 봉합하는 일이 아니라, 희생을 정당화하는 공동체의 구조를 비판하고 오늘의 또 다른 희생에 대해 저항 하고 기억하게 하는 윤리적 실천으로 남는다.

 

Ⅳ. 애도 되지 못한 죽음들과 애도의 과제

 

애도는 매번 고유한 죽음들과 애도 되지 못한 죽음들을 향해 열려 있 어야 한다.

성서 안의 모든 여성의 죽음이 입다의 딸처럼 기억과 애도의 가능성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애도의 과제를 열어서 확장하는 차원 에서 다른 두 여성의 죽음을 주목해 본다.

 

1. 레위인의 아내: 애도의 부재와 폭력의 재생산

 

사사기 19장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은49 히브리 성서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난해한 죽음 서사 중 하나이다.

 

    49  흔히 ‘레위인의 첩 사건’으로 불리는 사사기 19장은 사실 한 레위인 남편의 아내 중 한 사람이 폭력 속 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이다. 레위인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이쉬(ֶאׁ יִׁש )의 포괄적 의미와 첩으로 번역된 단어(ִּפׁ י לֶ ֶגִֶׁש )가 고대 이스라엘의 일부다처 사회에서 사용된 용례(삼하 5:13; 19:6, 왕상 11:3, 아가 6:8-9, 대 11:21)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와 레위인이 장인과 사위의 관계로 묘사된 것은 이를 설명해준다.  Tammi J. Schneider, Judges: Berit Olam: Studies in Hebrew Narrative and Poetry (Collegeville, MN: T he Liturgical Press, 2000), 248-249. 

 

이는 사회적 폭력과 약자의 위치를 집약 적으로 드러낸 죽음 사건에 해당한다.

그녀는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지 만 끝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그녀를 둘러싼 사건들이 상세히 전개되 는 동안 정작 그녀 자신의 생각과 감정, 의지는 철저히 침묵당한다.

애초에 그녀가 집을 떠난 이유조차 분명하지 않다. 사사기 19장 2절은 본문 전승에 따라 달리 읽히는데, 한 전승은 그녀가 남편에게 불성실하여 떠난 것으로 이해하고, 다른 전승은 남편에게 분노하여 떠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녀 의 목소리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해석도 확정할 수가 없다.50

그녀 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타인의 결정과 폭력에 내맡겨진다.

역설 적으로 그녀의 주체성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은 죽음 직전의 장면 이다(삿 19:26).

본문은 “그 여자가 왔다”(ְוָּּתּ ְבֶּא הּ ֶאׁ ָּׁשּ ה)고 서술하면서 주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삿 19:26).

집단 성폭력을 당하고 죽음의 문턱에 이른 그 녀가 마지막 힘을 다해 돌아와서 두 손을 뻗고 엎드러진 곳은 본래 보호와 환대가 이루어져야 할 공간인 “그녀의 주인이 있는 집 문 앞”(ִּפֶתּ ח ְּבֵ ית־הֶּאׁ יִׁש 이었다.51

 

    50  William Krisel, “Was the Levite’s Concubine Unfaithful or Angry? A Proposed Solution to the Text Critical Problem in Judges 19:2,” Old Testament Essays 33, no. 3 (2020), 473–489. 한편 스위어츠-페 르뮐런(Evelyn Sweerts-Vermeulen)은 사사기 19장을 가정폭력(domestic abuse)의 관점에서 읽는다. 이에 레위인의 아내가 집을 떠난 이유를 학대와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로, 레위인이 “마음을 달 래어 말하려”(삿 19:3) 하는 장면을 가정폭력의 화해(reconciliation)로 본다. Evelyn Sweerts-Vermeu len, “He Made Her Play the Harlot: Judges 19 through the Lens of Domestic Abuse,” Priscilla Pa pers 35, no. 3 (2021), 16–18.

     51  파커(Julie Faith Parker)가 해석한 대로 그녀의 뻗은 두 손은 마지막 자기 결정에 따른 행위를 보여준 다. Julie Faith Parker, “Re-membering the Dismembered,” in The Beauty of Violence against Wom en: Biblical and Ancient Near Eastern Texts, ed. Alice Bach (New York: T&T Clark, 2014), 177.

 

집단적 가해자들의 폭력과 그녀를 그 상황에 내맡)ֶאֲִׁשֶ ֶר־ֶאֲ ֹדְּנֶ יה ּ ִׁשּ ם 긴 채 외면한 남편의 방관이 드러난 상황이다.

정동 정치(affective politics)의 관점에서 이 서사를 분석한 알렉시아나 프라이(Alexiana Fry)의 해석은 공포와 불안이 여성의 몸에 집중되는 과정 을 구체화시켜준다.

일단 레위인이 이방인들의 성읍인 여부스를 두려워하 여 기브아를 선택한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공동체 내부의 폭력을 드러낸 이었다(삿 19:11–15).

그 상황에서 레위인의 아내는 남성 공동체의 경계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불안과 위협을 처리하는 타자로 전락하며 희생당했 다.52

김진호의 제안은 이 죽음을 대하는 애도의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 는 이와 같이 극단적 폭력의 피해자들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잊힌 이름을 다시 부르는 것이 그녀를 위한 애도의 시작이 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 본문에 대한 독해가 누군가를 혐오하는 욕구를 정당화하는 텍 스트로 읽혀서는 안 되며, 오히려 혐오의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53

이는 애도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 가 아니라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한 책임을 요청하는 실천임을 보여 준다.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이 하나의 사건으로 종결되지 않고 연쇄적인 폭 력으로 이어진 점은 애도의 부재와 깊이 연결된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서, 지금 문 앞에 쓰러진 그녀의 몸은 남편의 배신과 공동체의 폭력이 남 긴 흔적 그 자체였다.

그러나 레위인은 그 몸을 애도의 대상으로 대하지 않고 또 다른 폭력의 대상으로 삼았다.54

 

     52  사라 아흐메드(Sara Ahmed)가 제시한 정동(affect)의 개념은 개인의 내면적 감정에 머무르지 않고 사 람들과 대상, 공간 사이를 순환하며 사회적 관계와 공동체의 경계를 형성하는 정서적 힘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공동체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와 불안을 특정 타자에게 집중시키며 질서를 유지하 려는 양상을 볼 수 있다. Alexiana Fry, “Whom Shall I Fear? The Irony of Affective Politics in Judges 19,” Journal for Interdisciplinary Biblical Studies 5, no. 1 (2023), 1–15.

    53  김진호, 『성서와 동성애: 혐오와 억측을 넘어, 성서 다시 읽기』 (파주: 오월의봄, 2020), 60.

    54  신체의 절단이라는 파편화가 그 존재를 완전하게 사라지게 했다. 이 부재가 곧 레위인이 그녀의 몸을 보면서 느껴야 할 수치심과 죄책을 덮는 기능을 했을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폭력이 폭력 으로 이어진 이 사건은 어떠한 해소나 해결도 허락하지 않고 있다. Brownsmith, Gendered violence in biblical narrative: the devouring metaphor (abingdon/new york: routledge, 2024), 64. 

 

여인의 몸을 열 두 조각으로 절단 함으로써 존재를 해체하고 자신의 분노와 정치적 목적을 위한 매개물로 재구성하였다.

토막이 난 그녀의 죽은 몸은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으로, 야 베스 길르앗 사람들의 학살로 그리고 처녀들의 납치로 이어졌다(삿 20-21 장).

애도의 부재는 폭력의 확산을 멈추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재생산하는 구조로 이어졌다.

외면하고 싶을 만큼 참혹한 죽 음을 조명하고 애도하는 것은 과거를 회복시키지 못하지만 또 다른 과거가 될 현재를 새롭게 구성하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레위인의 아내를 비롯하여 야베스 길르앗과 실로의 딸 들의 서사를 잊지 않고 현대 한국 사회의 버닝썬 사건과 교차하여 읽은 유 연희의 연구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55

 

     55  유연희, “‘선녀와 나무꾼,’ 사사기 21장, 버닝썬 클럽의 교차점: 여성 취하기와 여성의 몸에서 뽑아내는 자본,” 「신학과 사회」 vol. 34, no.1 (2020), 1-23. 

 

납치, 감금, 마약 등을 통해 여 성의 몸을 착취하고 경제적 이익의 수단으로 삼았던 버닝썬 사건과 사사 기의 여성 서사를 나란히 읽을 때, 시대를 달리하면서도 반복되는 여성 대 상 폭력의 구조가 드러난다.

이 평행하는 폭력들을 폭로할 뿐 아니라 사사 기 본문이 침묵시킨 여성들의 삶과 고통을 시적 언어를 통해 복원시킨 읽 기의 방식 또한 의미가 있다.

주변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다시 서사의 중심 으로 불러내어 목소리를 회복시키는 것은 단순한 재해석을 넘어 애도의 실천으로 이해될 수 있다.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은 애도가 부재할 때 폭력 이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보여 주며, 애도의 필요성을 일깨운다.

비록 그 녀의 목소리를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그 한계 앞에 머물러 응답 을 시도하는 일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2. 이세벨: 의도된 기억과 애도 차단

 

열왕기서의 이세벨은 바알 숭배와의 연관성,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백성에 대한 박해, 그리고 음행과 많은 주술 등 가장 악명 높은 성서의 여 성으로 기억되어 왔다(왕상 16:31–33; 왕하 9:30–37).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이세벨은 단순한 성서 속 인물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 코드로 반복 재생산 되는 여성 혐오적 기호가 되었다.56

 

    56  티나 피핀(Tina Pippin)은 이세벨이 단순한 성서 인물을 넘어 서구 문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 어 온 여성혐오적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그녀는 위험하고 유혹적인 여성, 성적으로 타락한 여성, 남 성을 파괴하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로 지속적으로 소비되어 왔다는 것이다. Tina Pippin, “Jezebel Re Vamped,” Semeia 60 (1992), 221–222., Susan Ackerman, “The Queen Mother and the Cult in An cient Israel,”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12, no. 3 (1993), 385-401. 이영미 역시 이세벨에 대한 전 통적 악녀 서사가 여성 권력과 타자성에 대한 남성 중심적 기억 구조 속에서 형성되었음을 지적한다.  이영미, “이세벨 이야기 다시 읽기,” 「한국여성신학」 54 (2003), 110–135. 

 

그러나 여성주의 성서해석은 이러한 이해가 특정한 신학적·정치적·젠더적 구성과 해석의 산물일 가능성을 제기 해 오고 있다.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이세벨이 외부에서 새로운 우상숭배를 가져온 인 물이 아니라, 이미 북이스라엘 내부에 존재하던 다원적 종교 구조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해석이 제시된다.

특히 애커만(Susan Ackerman)은 이세 벨을 단순한 왕비가 아니라 정치적·종교적 권위를 지닌 왕모(ֹּגְְבׁ יֶרּ ה)로 이해 하며, 그녀의 종교 활동 역시 이러한 공식적 지위와 관련하여 해석할 필요 가 있다고 주장한다.57

이세벨을 비윤리적이고 폭압적인 악녀로 보게 하는 나봇의 포도원 사건(왕상 21장)의 경우도 이것이 오히려 이세벨의 정치적 권 력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본문으로 재조명되기도 한다.58

나아가 이세 벨의 음행과 주술에 대한 언급(왕하 9:22)은 실제 행위에 대한 객관적 서술 이라기보다, 특정한 여성 권력과 이방 종교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번 역하는 신학적 언어의 은유로 이해될 수 있다.59

이러한 해석들은 이세벨의 죽음을 단순한 악녀의 최후로 이해하기보다, 그녀의 죽음이 어떠한 의미와 기억을 남기도록 서사화 되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만든다.

본 연구의 관심 은 이세벨의 윤리적 정당성 여부를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데 있지 않다.60

 

    57  Susan Ackerman, “The Queen Mother and the Cult in Ancient Israel,” 392–401. 애커만은 열왕기하 10장 13절의 “태후의 아들들”(ְּבְ ְנֵ י הּ ֹּגְְבׁ יֶרּ ה )이라는 표현은 이세벨이 왕실 내 최고 여성 권력자인 왕모 ה (י ֶרּ ב ְ ֹּׁגְ )의 지위에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본다. 왕모는 단지 영향력 있는 여성 개인이 아니라, 일정한 제 도적 지위를 가진 존재였다는 것이다.

   58  이세벨은 왕의 이름과 인장을 사용하여 장로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공적 재판 구조를 조직하는데, 이 장면이 오히려 “왕권의 공백”과 이세벨의 정치력을 드러낸다. Helena Zlotnick, “From Jezebel to Es ther,” Vetus Testamentum 51, no. 4 (2001), 477–495. 한편 이와 달리 알렉산더 로페(Alexander Rofé) 와 같이 나봇의 포도원 서사 자체를 포로기 이후에 외국인 아내의 위험과 에즈라-느헤미야의 개혁과 같은 배경 아래 서술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Alexander Rofé, “The Vineyard of Naboth: The Origin and Message of the Story,” Vetus Testamentum 38, no. 1 (1988), 101.

   59  Gregory D. Cook, “Naqia and Nineveh in Nahum: Ambiguity and the Prostitute Queen,”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36, no. 4 (2017), 899–902. 브라운스미스는 왕하 9:22를 근거가 없는 논리 비 약으로 본다. 오히려 성적 부정이나 마법을 행했다는 용어의 조합이 그녀를 위험한 여성성의 전형으로 대상화 하는 기능을 한다고 말한다. Brownsmith, Gendered violence in biblical narrative, 124 125.

    60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이세벨 서사의 보다 심층적인 논의는 별도의 연구를 필요로 한다. 최근의 연구 경향은 선악의 이분법과 윤리적 판단 여부를 넘어서 복합적 타자로 재구성하면서 서사비평과 탈식민 주의 비평 그리고 에코페미니즘과 문화 비평을 통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Stephanie Wyatt, “Je zebel, Elijah, and the Widow of Zarephath: A Ménage à Trois that Estranges the Holy and Makes the Holy the Strange,”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36, no. 4 (2012), 435–458., Melis sa Jackson, “Reading Jezebel from the ‘Other’ Side: Feminist Critique, Postcolonialism, and Come dy,” Review & Expositor 112, no. 2 (2015), 239–255., Kristin Joachimsen, “Jezebel as Voiced by Others in 1 and 2 Kings,” Die Welt des Orients 50, no. 2 (2020), 216–233., Young Gil Lee, “Other izing Violence: Dismemberment and Remembrance of Jezebel,” in King, State, Empire in the He brew Bible: Postcolonial Approaches (Berlin/Boston: De Gruyter, 2025), 169–196.   

 

오히려 그녀의 죽음이 서술된 방식과 그 과정에서 차단된 애도에 있다.

열왕기하 9장 서사에서 이세벨의 죽음은 “그녀를 던져 버리라”는 예후 의 명령에 따라 어떤 저항과 보호 없이 즉시 이루어진다(9:33).

명령형으로 사용된 동사 ‘ ִּׁשׁ מְטּוה’는 “내던지다”(to fling down)뿐 아니라 “놓아버리다”, “내버려두다”(to let go, to let alone)의 의미도 내포한다.

이세벨은 단순히 창 아래로 던져진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버려졌 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정치적 보호와 법적 지위를 상실한 채 쉽게 폭력 의 대상이 되는 “벌거벗은 생명”(bare life)로 제시된다.61

 

    61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표현을 빌리면, 이세벨은 정치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 죽일 수는 있으나 제의적으로 희생될 수는 없는 존재인 호모 사케르(homo sacer)의 위치에 놓인다. 동시에 그녀는 정치 적 권리와 사회적 보호를 박탈당한 채 단순한 생물학적 생명으로 환원된 벌거벗은 생명(bare life)의 상태로 전락한다. Giorgio Agamben,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trans. Daniel Heller-Roazen (Stanford, CA: Stanford University Press, 1998), 8–12. 

 

그녀의 죽음이 공 동체의 질서를 회복하는 정치적 폭력으로 기능하는 동안 그녀는 그 질서 속 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상실한 채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러한 이세벨의 존재론적 추락은 그녀의 몸에 대한 서술을 통해 더욱 강조된다.

본문은 권력을 지닌 여성의 몸을 시선의 대상으로 제시하고 점 차 폭력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서사는 먼저 이세벨이 “눈을 그리 고 머리를 단장한 후 창문으로 내다보는”(9:30) 모습을 묘사한다.

전통적 으로 허영과 유혹의 몸짓으로 해석되어 온 이 장면은 오히려 죽음 앞에서 도 자신을 정돈하고 존엄을 지키고자 한 왕비의 주체성을 보여준다.

그러 나 창밖으로 던져진 그녀의 몸은 급격하게 파편화된 사물처럼 변모한다.

이세벨은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뿐”(9:35)인 잔해가 되고 결국 동물의 먹 이로 전락하게 된다(9:36).

에스더 브라운스미스(Esther Brownsmith)는 캐럴 J. 아담스(Carol J. Adams)의 여성 신체와 육식 소비에 관한 여성주의 비평을 차용하여 이 과 정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이세벨의 죽음은 객체화(objectification), 파편화  (fragmentation), 소멸(annihilation)의 과정을 거친 여성 신체의 소비(con sumption)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62

창문에 나타난 이세벨의 얼굴이 그녀를 부분적 신체로 환원하는 객체화의 시작이라면, 두개골·발·손바닥 만 남는 장면은 파편화의 완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세벨의 집에서 예후 가 먹고 마시는 동안 그녀는 개들에게 먹혀 소비된 후 더 이상 “이 사람이 이세벨이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된다.

이는 그 몸이 소비되어 궁극적으로 소 멸에 이른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본문은 시각적이고 신체적인 묘사를 통 해 여성 권력의 몸을 무력화할 뿐 아니라, 그녀를 기억과 공동체의 영역으 로부터 점차 제거해 간다.

더욱이 이 죽음을 성문(ִׁשּ ַעֶּר ) 안에서 일어난 공 적 사건이자(왕하 9:31) 엘리야의 예언 성취로 제시함으로써(왕하 9: 36), 그 것을 정당한 심판으로 이해하도록 유도하며 그녀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가 능성을 제한한다.63

어쩌면 이세벨의 죽음이 정당화된 이유는 그녀가 단지 타락의 원흉이 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 밖의 이방 여인이자 왕처럼 권력을 행사하는 여성으로서 삭제되고 지워져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수 있 다.

이영길은 그녀가 실제로 악인이었는가, 아니면 타자화(otherizing) 된 희생자인가 묻는다.64

 

     62  Brownsmith, Gendered violence in biblical narrative, 124-133. 아담스는 여성의 몸이 대상화되고 신 체 일부로 파편화된 후 소비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다음을 참고하라. Carol J. Adams, The Sexual Politics of Meat: A Feminist-Vegetarian Critical Theory (New York: Continuum, 1990).

    63  그녀의 죽음을 예언 성취로 제시한 것 자체가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고 보는 것은 오랜 주석의 경향 중 하나이다. Volkmar Fritz, 1 & 2 Kings: A Continental Commentary, trans. Anselm Hagedorn, Continental Commentar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3), 287. 한편 이세벨 서사가 형성한 애도 의 차단이라는 결과와 대조되는, 리스바가 제기한 애도의 요청과 정치적 변화가 있다(삼하 21:10-14). 다음을 참고하라. L. 줄리아나 M. 클라센스, 『여성, 존엄을 외치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 정혜진 옮김 (서울: 분도출판사, 2021), 2장; 박유미, “다윗과 리스바의 애도 비교 연구-애도의 정치 적 차원을 중심으로,” 「구약논집」 33 (2025), 53-82.

    64  이영길은 이세벨이 복합적 타자로서 가부장제와 페르시아 제국시대의 맥락에서 아합의 문제를 떠 안 고 제거되도록 만들어진 희생양(scapegoat)에 해당함을 논증한다. Lee, “Otherizing Violence,” 169 196.

 

이세벨의 죽음에 대한 애도는 그녀가 이스라엘 사회에서 압제적이거 나 폭력적인 권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지우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녀의 죽음이 어떠한 구조 속에서 기억되고 재현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성 찰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세벨의 이름이 상징하는 악녀의 프레임과 그 수 용의 역사에 깃든 시선이 오늘날까지 어떻게 여성의 권력과 욕망을 통제 하는 문화적 기제로 작동해 왔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이러한 애도는 특정 한 죽음을 정당화하고 혐오의 기억으로 고정시키는 서사에 저항하며, 주 변화된 죽음을 다시 기억하고 응답하도록 요청한다.

따라서 이세벨에 대 한 애도는 과거의 한 인물을 변호하는 작업이 아니라, 현재의 기억과 해석 의 방식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혐오와 배제가 반복되지 않는 공동체를 향한 윤리적 요청으로 이어진다.

 

Ⅴ. 나가는 글

 

본 논문은 구약의 여성 죽음 서사를 애도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재해석 하였다.

데리다의 애도 이론이 보여주듯 애도는 단순한 상실의 감정이 아 니라 죽은 타자의 고유성을 존중하고 기억하며 그 앞에서 응답하며 책임 지는 윤리적 실천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입다의 딸의 죽음은 공동체의 침 묵과 가부장적 질서, 종교적 정당화 속에서 발생한 구조적 폭력을 드러내 었다.

아울러 그 죽음이 존엄한 죽음으로 기억되고 후대의 삶을 재구성하 는 애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레위인의 아내와 이세벨의 죽음은 애도 의 부재가 다른 폭력으로 재생산되고 확장되는 현상과 의도된 죽음의 기 억 문제를 드러내었다.

이를 통해 애도의 지속과 열림의 필요를 환기하며, 기억의 정치와 혐오의 문제를 재고하게 했다.

애도는 침묵된 죽음을 다시 말하고 지워진 존재를 기억 속에 다시 위치시키는 기억 재구성이며 응답 이다.

데리다의 말대로 우리의 존재가 살아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죽은 사람 과도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때, 성서의 여성들과 오늘날 물리적 폭력 과 혐오와 배제를 비롯한 다양한 상징적 폭력으로 죽음을 경험하는 이들이 떠난 자리에서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강남순은 이에 대해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삶, 그들이 보고자 했던 사회, 그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한 다층적 차별과 억압의 고통을 상기하는 기억과 연민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한 변화의 씨앗을 자기 삶의 정황에서 뿌리는 것이라고 말한다.64

이 대목에서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의지 를 읽을 수 있다.

한강의 작품은 전체주의적 폭력과 역사적 트라우마를 다 루면서 죽은 자의 기억이 현재의 행위를 촉발하며 산 자의 삶을 변화시킨 다는 점에서 ‘죽은 자가 산 자를 변화시키는’ 방식을 보여준다.

죽은 자들 은 기억, 흔적, 그리고 요청의 형태로 살아 있는 이들을 호출하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여기서도 애도는 상실을 극복하고 종결하는 과정이 아 니라, 죽은 자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방식에 해당한다.66

 

     65  강남순, 『데리다와의 데이트』, 280-282.

     66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서울: 문학동네, 2021).

 

애도의 과제는 매번 고유하며, 매번 우리에게 새로운 책임과 질문을 남긴다.

한 사람의 죽음은 남겨진 이들의 삶의 구조를 흔들고, 다시 구성 하도록 요청하는 사건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 라,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흔들리고 변화하며 다시 관계 맺는 존재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애도의 윤리는 타자의 상실 이후에도 함께 살아 가는 존재의 방식이자 관계의 방식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애도는 죽은 자 뿐 아니라 산 자를 위한 실천이 된다.

마지막으로 데리다의 다음 말을 상 기해 본다.

“살아남음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기를 멈추지 말라”(never cease affirming survival). 애도는 때로는 연민과 고통으로, 때로는 용기와 책임으로, 또 때로는 경각심과 일깨움으로 살아서 남겨진 자들에게 응답 을 요청한다.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후속 연구 과제를 남긴다. 오늘날 죽음은 젠 더, 계급, 인종, 민족, 종교 등의 조건에 따라 어떻게 다르게 기억되고 애 도되는가?

성서의 다양한 죽음 서사들은 현대 사회의 죽음과 애도 양상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으며, 우리는 그 죽음들 앞에서 어떠한 책임과 응답의 윤리를 실천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애도의 윤리를 보다 넓은 사회적·신학적 지평에서 재고할 필요를 남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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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의 애도 이론을 통해 구약성서 에 나타나는 여성의 죽음 서사를 재해석한다. 데리다는 애도를 단순한 상 실 극복이 아니라 죽은 타자의 타자성을 존중하며 끝없이 응답하고 책임 지는 윤리적 실천으로 이해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관점을 본문 해석의 핵 심 틀로 삼되, 여성주의 성서해석과 내러티브적 읽기, 기억과 트라우마에 대한 해석학적 논의를 보조적으로 활용하여 여성의 죽음이 서사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망각되는지를 고찰한다. 이를 바탕으로 입다의 딸(삿 11 장), 레위인의 아내(삿 19장), 이세벨(왕상 21장; 왕하 9장)의 죽음을 분석한 다. 입다의 딸 서사에 대한 집중 고찰을 통해 희생과 침묵 속에서도 드러 나는 여성의 존엄과 공동체적 애도의 가능성을 조명한다. 나아가 애도의 부재가 폭력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레위인의 아내의 죽음, 그리고 악녀 화 된 기억 속에 수용된 이세벨의 죽음을 언급한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성서의 여성 죽음 서사가 오늘날 희생을 요구하는 다양한 폭력과 혐오, 배 제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지속되고 있는지 경계하고, 애도의 윤리적 과제 를 지속할 필요를 제안한다. 

주제어 여성 죽음 서사, 자크 데리다, 애도 이론, 입다의 딸, 레위인의 아내, 이세벨

 

Abstract

Mourning for the Dead and the Ethics of the Remnant” — Study on the Old Testament Women’s Death Narrative through ‘Derrida’s Mourning’

Min-Jung Kim(Ph.D. Lecturer, Department of Theology Sungkonghoe University)

This paper reinterprets the death narratives of women in the Hebrew Bible through Jacques Derrida’s theory of mourning. Derrida understands mourning not as overcoming loss, but as an ethical practice of respecting the irreducible otherness of the dead and assuming ongoing responsibility toward them. Adopting this perspective as its primary interpretive framework, the study also draws on feminist biblical interpretation, narrative criticism, and hermeneutical discussions of memory and trauma to examine how the deaths of women are remembered and forgotten within biblical narratives. Based on this approach, the paper analyzes the deaths of Jephthah’s daughter (Judges 11), the Levite’s concubine (Judges 19), and Jezebel (1 Kings 21; 2 Kings 9). T hrough a close reading of Jephthah’s daughter, it highlights the possibility of communal mourning and the possibility of preserving female dignity amid sacrifice and silence. It further considers the death of the Levite’s concubine, where the absence of mourning contributes to the reproduction of violence, and the death of Jezebel, whose memory has been shaped through processes of demonization and symbolic exclusion. Ultimately, this study argues that the death narratives of biblical women continue to reveal structures of violence, misogyny, exclusion, and sacrifice that persist in contemporary society, while calling for the ongoing ethical task of mourning.

 

Keywords   Women’s Death Narratives, Jacques Derrida, Theory of Mourning, Jephthah’s Daughter, The Levite’s Woman, Jezebel

 

 

접수일: 2026년 05월 09일, 심사완료일: 2026년 06월 08일, 게재확정일: 2026년 06월 13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41집

 

죽은 자를 위한 애도와 남은 자의 윤리 ― ‘데리다의 애도’를 통한 구약 여성의 죽음 서사 연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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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doi.org/10.18708/kjcs.2026.7.14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