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1. 연구 배경: 고립의 시대와 한국 교회의 위기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과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류에게 ‘초 연결’(Hyper-connection)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역설적 으로 오늘날 현대인들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고립과 단절을 목도하고 있 다.
세대 간 심리·사회 변화 연구의 권위자인 진 트웬지(Jean M. Twenge) 는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이 세대 간 단절, 곧 ‘연결된 고 립’(Connected but Alone)의 병리적 현상을 초래했다고 진단한다.1)
1) Twenge는 스마트폰 등장 이후의 세대(Gen Z)가 왜 더 불안하고 외로움을 호소하는지를 분석하면 서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의 확산이 세대 간의 단절을 심화시키고, 청소년과 성인 모두에게서 우 울증과 불안을 급격히 증가시켰음을 실증적으로 규명한다. Jean M. Twenge, iGen: Why Today's Super-Connected Kids Are Growing Up Less Rebellious, More Tolerant, Less Happy and Completely Unprepared for Adulthood (New York: Atria Books, 2017), 95-100.
이러한 사회적·관계적 파편화는 개인이나 특정 세대의 위기를 넘어서서 가정의 해체, 고령화에 따른 노인 소외, 무한 경쟁이 부추기는 인간 소외 현상과 맞물려 공동체 전체의 심각한 정신건강 위기까지 초래하고 있다.
교회 공동체도 이 위기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2023년과 2024 년에 각각 발표된 ‘한국교회트렌드’는 한국 기독교인의 46.2%가 외로움 을 느끼고 있으며 교회 내에서도 36.2%가 외로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보 고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빈곤과 심리적 고립이 결합된 '외로운 크리스 천'들은 교회 안에서도 주변화되며 자살이나 고독사와 같은 극단적 위험 에 노출되어 있다.2)
이런 고독과 외로움은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 개신교인들 가운데 최근 2주간 우울과 불안으로 고통을 경험하고 있 다고 응답한 비율이 각각 23%와 21.9%로 나타나고 있는 점은 한국 교회 내 영적·정신건강적 개입의 필요성을 시사하고 있다.3)
주목할 점은 고립이 초래하는 위기 상황에서 기존 목회적 돌봄 시스 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조사된 결과에 따 르면 영적·정서적·생활고로 목회자 또는 다른 성도로부터 돌봄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38.1%에 불과했으며 교회에서 돌봄을 받아 본 경 험이 전혀 없다는 응답도 33%에 달했다.4)
더욱이 기존 교회가 행해오던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돌봄마저도 신앙 수준이 초기 단계에 있거나 조용 한 성도, 남성 성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 드러났다.5)
2)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4』 (서울: 규장, 2023), 67-74.
3)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서울: 규장, 2024), 60-61.
4)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6』 (서울: 규장, 2025), 224.
5) Ibid., 237-244.
이에 한국 교회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와 돌봄을 요청받고 있다.
이 는 교회 내 달라지는 돌봄 인식에서 여실히 확인되고 있는데, 최근 조사 에서 ‘교회에서 누가 성도들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평신도 56.1%는 ‘모든 성도’가 돌봄을 실천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6), 교회로부터 받은 돌봄 내용으로 ‘공감과 위로’(72.5%)가 ‘말씀과 기도’ (55.6%)보다 17% 포인트 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7)
6) 이 응답률은 ‘목회자’(23.6%), ‘소그룹 인도자’(19.1%), ‘훈련받은 전문가’(19%), ‘돌봄 전문가’(15.7%) 대비 압도적인 수치에 해당한다. Ibid., 228.
7) Ibid., 230-231.
이는 오늘날 한국 교회의 돌봄이 공동체적 상호 돌봄에 기반을 두며 공감과 위로와 같은 관계적 돌봄을 요청하고 있음을 강력하게 시사한다.
2. 문제 제기
본 연구는 고립의 시대로부터 비롯된 한국 교회의 위기가 단순한 영 적 침체나 심리적 위축을 넘어, 인간 존재의 생물학적 기반인 뇌와 유전 자를 파괴하는 실체적 위협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대 신경과학은 사회적·관계적 고립이 인간의 신경계에 물리적인 상해와 동일한 상흔을 입힌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냈다.
매튜 리버만(Matthew D. Lieberman)의 사회인지신경과학 연구에 따 르면, 인간의 뇌는 타인과의 연결을 지향하는 ‘기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고립이나 배제는 신체적 고통을 처리하는 뇌 부위인 배측 전대상피질(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을 활성화한다.8)
나아가 토모바(Tomova) 등의 연구는 급성 사회적 고립이 중뇌의 흑질(Substantia Nigra)을 자극하여, 마치 굶주린 사람이 음식을 갈망하듯 뇌가 사회적 접촉을 생존 필수 조건으로 갈망하 게 만듦을 밝혔다.9)
8) Naomi I. Eisenberger, Matthew D. Lieberman, and Kipling D. Williams,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Science 302, no. 5643 (2003), 290-292; Matthew D. Lieber man, “Social Cognitive Neuroscience: A Review of Core Processes,”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8 (2007), 270-272.
9) Livia Tomova et al., “Acute Social Isolation Evokes Midbrain Craving Responses Similar to Hun ger,” Nature Neuroscience 23 (2020), 1597-1600.
이 연구들은 오늘날 한국 교회 성도들이 겪고 있는 고립과 외로움이 은유적 표현이 아니라 뇌가 감지하는 실제적인 고통과 몸부림임을 보여준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이러한 고립이 유전자의 손상과 질병을 유발한 다는 점이다.
스티븐 콜(Steven W. Cole)의 소셜 게노믹스(Social Genomics) 연구는 만성적인 외로움과 사회적 위협이 인체의 백혈구 내 유전자 발현 을 변화시켜, 염증 반응을 유발하는 유전자는 활성화하고 바이러스 방어 유전자는 억제하는 ‘역경에 대한 보존된 전사 반응’(Conserved Transcrip tional Response to Adversity, CTRA)10)을 촉진한다고 보고했다.11)
이 보고 를 토대로 요아힘 바우어(Joachim Bauer)는 선한 일, 곧 인간이 타인과 공명하고 협력할 때 비로소 우리 몸을 만성 염증에서 보호해 주는 유전 자 패턴을 활성화하며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2)
10) CTRA는 사회적 역경 상황에서 나타나는 전사적 반응으로, 염증 관련 유전자의 발현이 증가하고 항바이러스 및 항체 합성과 관련된 유전자의 발현이 감소하는 특징을 보인다. CTRA와 관련된 연구는 다음의 연구들을 참조하라; Steven W. Cole, Morgan E. Levine, Jesusa M. G. Arevalo, Jeffrey Ma, David R. Weir, and Eileen M. Crimmins, “Loneliness, Eudaimonia, and the Human Conserved Transcriptional Response to Adversity,” Psychoneuroendocrinology 62 (2015/12), 11 17; Steven W. Cole, “Human Social Genomics,” PLoS Genetics 10/8 (2014/9), e1004601.
11) Steven W. Cole, “Human Social Genomics,” 5.
12) “사회적(관계적) 고립은 우리의 감각을 통해 잠재적 위협으로 감지되며 전두엽에서 평가가 이루 어진다. 이는 신경회로를 통해 공포 및 불안 중추인 편도체로 이동해 신경세포를 활성화 시킨다. 이때 불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Glutamate)가 분비된다. 이로인해 시상하 부의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며, 이는 스트레스 유전자 중 하나인 CRH(Corticotropin-Releasing Hormone)을 활성화시키고, 다시 CRH로 인해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올라가게 된다.” 요아힘 바우어/장윤경 옮김, 『공감하는 유전자』 (서울: 매일경제신문사·매경출판, 2022), 37-47.
이런 차원에서 한국 교회가 직면한 고립과 그에 따른 교회 공동체의 위기는 성도들의 영혼을 피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과 몸 모두를 병들게 하는 생물학적 비상사태에 해당한다.
동시에 이 위기로부터 한국 교회는 고립을 넘어서 공명과 협력을 지향하며 종국에 영적·정신건강적· 신체적 질병의 위험을 감소시키고 의미 지향적이고 유대적인 삶의 태도 에 반응하는 유전자 활동 패턴을 불러일으키는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상 호 돌봄’을 요청받고 있다.
3. 연구 목적 및 방법: 상호 돌봄 모델-고엘(לאג) 공동체
이에 본 연구는 고립의 위기를 돌파할 한국 교회 공동체의 상호 돌봄 모델의 전거를 ‘고엘(לאג)’ 제도에서 찾고자 한다.
고엘은 혈족이 빈곤이나 부당한 피해로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가까운 친족이 개입하여 그의 생 명, 자유, 기업을 회복시키는 제도이다.13)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는 고엘 제도가 단순한 친족 간의 부조를 넘어, 사회적·경제 적·영적으로 고립되고 파산한 자를 다시 언약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 로 복귀시키는 ‘전인적 구속’(Holistic Redemption)의 시스템임을 강조한 다.14)
‘고엘의 원형’ 모델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이다(출 6:6 참조).
하나님은 노예로 사로잡힌 이스라엘의 고엘이 되어 땅(애굽에서 자기 땅 없이 사는 백성들을)과 몸(애굽에서 종의 신분으로 노역하던 백성들을)과 피(애 굽에서 바로에게 생명을 위협받는 백성들을)를 구속했다.15)
나아가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을 통해 인간의 고통에 깊이 공명하고 자신의 생명을 ‘대속물(λύτρον)’로 지불한 ‘고엘의 완성’이며 오늘의 교회는 이 사명을 계승한 우주적 가족 공동체에 해당한다.16)
13) Donald A. Leggett, The Levirate and Goel Institutions in the Old Testament: With Special Atten tion to the Book of Ruth (Cherry Hill, NJ: Mack Publishing, 1974), 63-65.
14)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Unlocking the Bible’s Grand Narrative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6), 357-360.
15) 정진명, “모세오경에 나타난 고엘 사상 연구,”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서울 홍성사, 2017), 45.
16) 이상명,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고엘의 완성,”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서울 홍성 사, 2017), 91-101.
그리고 고엘의 원형 으로서 하나님과 고엘의 완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친족의 고통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도리어 공명하는 ‘상호 돌봄’의(레 25:25-28, 47 55, 민 5:6-8, 35:9-34; 신 19:1-13;, 수 20, 욥 19:25; 시 119:154; 렘 50:34)의 고엘이 자리하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서가 밝히는 고엘 제도를 현대 신경과학적 관점 에서 재해석함으로써, ‘상호 돌봄’이 단순한 윤리적 당위나 책무가 아니 라 교회 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회복과 영적·정신건강적 안녕을 위한 필 수 조건임을 밝히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첫째, 신학적 고찰을 통해 고엘 의 정의와 기능, 우주적 가족으로의 확장, 현대적 의미에 대해서 고찰한 다.
둘째, 신경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회적 뇌, 거울뉴런, 소셜 게노믹스 이론을 고엘 제도에 잇대어 설명한다. 특히 고엘의 역할을 감당하는 친 족 혹은 돌봄 제공자 또한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되어 상호 유익을 얻 는다는 최신 연구 결과를 통해 상호 돌봄의 과학적 타당성을 밝힌다.
셋 째, 목회상담의 실천 및 현장 적용의 맥락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연결된 고립'의 병리적 현상으로 점철된 한국 사회 속에서 교회 공동체가 성도들의 영혼과 정신건강을 통합적으로 치유하고 지속 가능한 생명 공동체로 회복되는 길을 밝히는 작업이 될 것이다.
Ⅱ. 본 론
1. 이론적 배경
1) 고엘 제도의 신학적 논의
(1) 구약성서에서 고엘의 의미와 기능: 고엘의 원형, 하나님
구약성서의 고엘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의 친족법에 근거한 독특한 사 회적 안전망이자 신학적 구원 모델이다.
히브리어 동사 ‘가알(ל ַ אּגָּ)’17)에서 파생된 고엘은 문자적으로 ‘되찾는 자’, ‘무르는 자’, ‘친족 구속자’를 의미 하며, 친족이 생존의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대신하여 개입할 법적 권리와 의무를 가진 ‘가장 가까운 친족’을 지칭한다.
17) 가알의 기본적인 의미는 사람이나 소유물 등을 ‘되찾는다’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가알의 의미 는 세 가지로 구체화 된다. 첫째, 타인에게 양도한 물건이나 소유권을 되찾는 행위. 둘째, 혈통과 기업을 계승할 길을 되찾는 경우를 묘사. 셋째, 죽은 친족을 대신해서 값을 받는 경우이다. 정진명, “모세오경에 나타난 고엘 사상 연구,”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35-36.
고엘과 관련된 구체적인 내용은 구약성서에 나타난 고엘의 역할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 있는데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고 엘은 가난한 형제나 친족이 생계유지 차원에서 자신의 재산을 타인에게 팔았을 경우, 그 형제나 친족의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고엘의 역할, 즉 그 값을 대신 치르고 재산을 되찾아주는 ‘토지상환자’이다(레 25:25-28).
둘 째로 고엘은 형제나 친족이 종으로 팔렸을 경우, 가장 가까운 친족이 고 엘의 역할을 통해 그 값을 치르고 형제를 되찾아 오는 ‘종의 속량자’이다 (레 25:47-55).
셋째로 고엘은 민수기 35장에 나타나는 도피성 제도와 같 이 가까운 형제나 친족이 타인에 의해 살해당했다면 그 가해자를 끝까지 추적해서 처형하거나, 과실치사의 경우 도피성으로 피신할 수 있는 ‘피의 복수자’이다.
넷째로 고엘은 자신의 형제나 친족이 타인의 범죄로 인해 사망했을 경우, 그 죽은 자에 대한 가해자의 속전을 수납하는 ‘속전의 수 납자’이다(민수기 5:6-8).18)
18) 이상명,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고엘의 완성,”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85-86.
이상의 고엘의 네 가지 역할이 가(친)족 공동체 기반에서 이루어졌다 면, 끝으로
다섯째 고엘은 ‘구속자’ 혹은 ‘변호자’로서 개인뿐만 아니라 이 스라엘 국가와 민족의 처한 고난의 문제를 구속하고 민족의 정당성을 변 호하는 역할을 의미한다.
이때 고엘의 역할을 담당하는 주체는 야훼 하 나님이다.
특별히 이러한 ‘구속자’ 혹은 ‘변호자’의 역할은 출애굽기(6:6 8)와 이사야(43:14, 47:4, 48:17, 49:7, 54:5 63:16 참조)에서 자주 등장하는 데, 여기서 야훼 하나님은 애굽과 바벨론이라는 포로 상태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고엘로 등장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는 이러한 고엘을 단순한 채무 이행자가 아닌, 가족의 생명과 유산을 보호하고 회복시키는 ‘친족 보호자’ 혹은 ‘가문의 챔 피언’(Family Champion)으로 정의하면서 고엘과 희년의 상보적 기능을 통 해 가족의 경제적인 생존 능력을 유지 혹은 회복시켜 가족들이 사회적 존엄성과 참여의 회복(사회적 기능)과 하나님의 주권에 순종하고 섭리를 신뢰하며, 하나님의 속량과 속죄를 경험하고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둘 것을 요구한다고 보았다(신학적 기능).19)
이런 차원에서 고엘의 기능은 다음의 세 가지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
먼저 ‘토지 무르기’는 생존권의 회복이다.
레위기 25장은 가난으로 인해 기업인 땅을 판 자를 위해 고엘이 그 값을 지불하고 땅을 되찾아줄 것을 천명한다(레 25:25).
고대 이스라엘에서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언약의 기업이자 가족의 생계와 연결된 주된 터전이었다.
따라서 고엘의 토지 무르기는 경제적으로 파산하여 사회적 기반을 상실 한 친족에게 다시금 공동체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물리적 환경을 복구 해 주는 행위이다.20)
다음으로 ‘노예 속량’은 자유와 주체성의 회복이다. 부채로 인해 자 신을 종으로 판 친족의 몸값을 고엘이 대신 지불하여 그를 자유인으로 복귀시키는 것이다(레 25:47-49).
여기에는 땅만 아니라 사람 역시 소유 자가 여호와라는 것과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자유케 된 종’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이 반영되어 있으며, 이때 노예 속량 은 사회적 고립과 죽음 상태에 빠진 자의 인격적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구원 사건이다.21)
19)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Unlocking the Bible’s Grand Narrative, 269; 크리 스토퍼 라이트/김재영 옮김,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 (서울: IVP, 2006), 285-289.
20) Raymond Westbrook, Property and the Family in Biblical Law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1), 58-60.
21) 정진명, “모세오경에 나타난 고엘 사상 연구,”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40-42.
끝으로 ‘피의 복수’는 정의와 생명의 회복이다.
억울하게 살해당한 친족을 대신해 살인자를 처단다는 ‘피 무르는 자’(민 35:19)의 역할은 사적복수가 아니라, 깨어진 공동체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땅의 부정함을 씻 어내는 공적 사법 행위였다.22)
종국에 이상의 세 가지 기능은 출애굽 사 건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계시하신 땅과 몸과 피에 대한 구원의 예표 이며 하나님이 곧 고엘의 원형임을 강조한다. 나아가 이상의 고엘의 기 능은 이사야 35장과 61장이 밝히는 희년의 비전과 소망에 긴밀하게 연결 되고 있다.23)
22) Ibid., 42-44.
23) 크리스토퍼 라이트/김재영 옮김,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 290.
주님께 속량받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들이 기뻐 노래하며 시온에 이를 것이다.
기쁨이 그들에게 영원히 머물고, 즐거움과 기쁨이 넘칠 것이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질 것이다. (이사야 35:10)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고엘
구약성서의 친족 중심의 고엘 제도는 신약에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 의 성육신과 십자가 수난을 통해 이제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신약 성서는 예수를 인류의 진정한 고엘로 묘사하며, 특히 성육신과 십자가 수난을 통해 친족 구원자로서의 인간적 고엘과 이스라엘의 민족적 고엘 인 야훼 하나님 사이의 연결고리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우주적 고엘이 되 었음을 증언한다.24)
24) 이상명,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고엘의 완성,”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181.
성육신은 고엘의 자격인 ‘친족 됨’의 성취이다. 고엘이 되기 위해서 는 반드시 혈연적 친족이어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동 시에 ‘혈과 육을 함께 지닌’(히 2:14) 참 사람이 되심으로 타락한 인류의 ‘가까운 친족’이 되셨다.
이는 인류 전체를 형제라 부르는 일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히:2:11)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깊이 공명하기 위해 친히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속으로 들어오신 진정한 고엘의 면모이다.
예 수 그리스도는 사회적 부조리나 정치적 억압, 경제적 수탈에서의 해방보 다 더 심각한 형태의 근원적 속박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해 성육신했 다.25)
다음으로 십자가 수난은 고엘의 의무인 ‘대가 지불’의 완성이다.
예 수는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막 10:45)고 선 포하는데, 여기서 ‘몸값’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뤼트론(λύτρον)26)으로 ‘대속 물’ 혹은 ‘속전’의 의미를 지닌다.
마가 공동체는 ‘몸값’이라는 표현을 통 해 예수가 멸망할 사람을 대신해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인류의 고 엘이 되심을 선포한다.
나아가 예수는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치러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있던 인류의 ‘몸’과 ‘자유’를 되찾으셨으며(롬 8:23), 잃 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회복시키셨다.
이로써 예수는 룻기에서 보아스가 룻과 나오미를 위해 기업을 무르고 생명을 이어준 것을 예표하 듯,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 고 영원한 생명의 계보를 잇는 ‘종말론적 고엘’이 되셨다.27)
25) Ibid., 203.
26) 70인역(Spetuagint/LXX)에 의하면 헬라어 ‘속량(λύτρον)’은 히브리어 명사 고엘(גאל)과 연결된다.
27) Ibid., 195-199; Peter H. W. Lau, Identity and Ethics in the Book of Ruth: A Social Identity Ap proach (Berlin: De Gruyter, 2011), 185-188.
(3) 고엘의 확장과 교회적 적용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고엘 제도는 이제 교회의 정체성과 사 명으로 확장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새로운 언약 공 동체이자 우주적 가족으로서, 세상 속에서 고엘의 역할을 수행하도록 부 름 받았기 때문이다.
김판임은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앞에서 침묵 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비판하면서 교회의 존재 이유와 목적, 사 회를 향한 교회의 과제를 탁월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에서 그녀는 신약성서의 교회 공동체가 우리 인간을 대신해 죽은 예수와, 예수를 죽 은 자 가운데서 일으켜 세우신 생명의 하나님을 전하고, 그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이며 이때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자 의식 아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공감하며 돌보는 공동체였음을 강조한 다.28)
이러한 강조는 오늘날 교회가 회복해야 하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 성이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고엘과 밀접한 상관성을 지닌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교회는 확장된 고엘 공동체이다. 구약의 고엘이 친족 중심의 의무와 책임을 담보한 역할이었다면 이제 십자가 이후의 고 엘은 친족 공동체를 넘어선 우주적 가족 공동체로 확장되었다.
먼저 히 브리서 2:11-18은 십자가 희생을 통해 인류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 스도로 인해 우리의 신분에 변화, 즉 그리스도의 “아들”(2:10), “형제”(2:11 12, 11:16), “자녀”(2:13)와 같은 변화가 생겼음을 증언한다.
히브리서 저자 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형제가 되심을 증언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맏아들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 녀로 그리스도와 동일한 상속자가 된다(롬 8:17, 29 참조).29)
특히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교회가 새로운 형제애를 기반으로 서로의 짐을 지고 나누는 고엘 공동체임을 천명한다(갈 3:27-28; 6:2 참조).
이는 라이트가 강조한 대로, 교회가 세상의 고통과 결핍에 대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돌봄과 책임을 다해야 함을 입증한다.30)
28) 김판임, “신약성서의 교회 이해-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력 있는 교회를 위한 성찰,” 「신학사상」 169 (2015/여름), 69.
29)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 곧 새로운 가족의 장남으로 선언한다. 이러한 새로운 가족은 하나님이 자신의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푸심으로 형성 된 우주적 차원의 가족 개념이다.” 이상명,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고엘의 완성,” 김수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204-206.
30)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421-423; Sandra L. Richter, The Epic of Eden: A Christian Entry into the Old Testament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08), 125-128.
다음으로 상호 돌봄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 제 공동체로서 오늘의 교회는 세상을 위한 고엘로서 구약의 고엘의 완전 한 완성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이웃과 사회와 인류를 섬기는 고엘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31)
이때 고엘은 일방적인 시혜자로 서의 구제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무너진 지체를 다시 세우고 참여시켜 전 체의 온전함을 회복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현대적 의미의 관점에서 파편 화된 개인주의와 고립 속에서 교회 공동체의 성도들이 서로에게 ‘사회적 안전기지’가 되어주고 영적·정신건강적 위기에 처한 지체의 고엘이 되어 주는 돌봄을 가리킨다.
상호 돌봄으로서 고엘은 단순한 윤리적 실천을 넘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유기적으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한 필수 적인 생명 유지 활동이다.
소결의 차원에서 신학적으로 살펴본 고엘 제도는 고대 이스라엘의 폐기된 관습이 결단코 아니다.
고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으 며 오늘날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지속되어야 하는 상호 돌봄의 핵심 원 리이다. 교회는 이 원리를 따라 고립으로 신음하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 지고 나서며 고엘로서 서로의 짐을 나누어질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교 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고엘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 는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생명 공동체로서의 고엘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32)
31) 크리스토퍼 라이트/정효진 옮김, 『하나님의 선교, 세상을 바꾸다』 (서울 IVP, 2024), 157-158.
32)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5』, 86-87; 이상명,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 고엘의 완성,” 김수 정 외 9명, 『고엘, 교회에 말걸다』, 213-214.
2) 신경과학이 밝힌 인간의 사회적·관계적 본성
(1) 사회적 뇌(Social Brain)와 사회적 연결의 필연성
① 기본 모드 네트워크(DMN): 뇌의 관계 지향적 초기 설정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사회적 연결’을 위해 설계된 존재다. 이 명제 는 단순한 인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현대 뇌과학이 밝혀낸 인간 뇌의 해 부학적 구조와 기능적 작동 원리에 의해 증명된 과학적 사실이다.
사회인지신경과학의 권위자인 리버만은 인간의 뇌가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사회적 정보를 처리하는 데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설계되었음을 ' 사회적 뇌' 가설을 통해 설명한다.33)
리버만의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기본 모드 네트워크’의 발견이 다.
뇌는 우리가 수학 문제를 풀거나 논리적 과제를 수행할 때 특정 영역 을 활성화하지만, 놀랍게도 아무런 인지적 과제를 수행하지 않는 휴식 상태일 때 더 활발하게 작동하는 신경망이 존재한다.
리버만은 fMRI 연 구를 통해 이 DMN이 활성화되는 부위(내측 전전두엽 등)가 타인의 마음을 추론하거나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리허설할 때 사용되는 부위와 거의 완 벽하게 일치함을 밝혀냈다.34)
이는 인간 뇌의 ‘기본 설정값’이 ‘문제 해결’이 아니라 ‘사회적 연결’에 맞춰져 있음을 시사한다.
컴퓨터가 부팅될 때 자동으로 운영체제를 불러 오듯, 인간의 뇌는 쉴 때마다 자동적으로 타인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관 계의 역학을 시뮬레이션한다.
즉, 인간은 ‘생각하기 위해’(Cogito)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기 위해’(Connect) 존재한다.35)
이런 차원에서 고 엘 제도가 부재하여 사회적·관계적 고립이 지속되는 것은 뇌의 자연스러 운 항상성을 거스르는 행위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뇌에 과부하를 주고 신경학적 불안을 야기한다.
제임스 코안(ames A. Coan)과 데이벳 스바라 (David A. Sbarra)는 이를 ‘사회적 기준선 이론’(Social Baseline Theory)으 로 확장하며, 인간의 뇌는 혼자일 때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있을 때’를 에너지 소모가 가장 적은 기준선(Baseline)으로 인식한다고 주장한다.36)
33) Matthew D. Lieberman, “Social Cognitive Neuroscience: A Review of Core Processes,” 259 289.
34) Matthew D. Lieberman, 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New York: Crown, 2013), 18-20.
35) Ibid., 22.
36) James A. Coan and David A. Sbarra, “Social Baseline Theory: The Social Regulation of Risk and Effort,” Current Opinion in Psychology 1 (2015), 87-91.
② 사회적 굶주림(Social Craving): 뇌의 기아 상태로서 고립
고립이 뇌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외로움의 감정을 넘어 생존 본능 을 자극하는 ‘갈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토모바 등의 최신 연구는 급성 사 회적 고립이 인간의 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규명했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을 10시간 동안 격리시킨 후 사회적 자극(사람 사진)을 보여주 었을 때, 뇌의 중뇌 흑질과 복측 피개 영역(VTA)이 강력하게 활성화됨을 발견했다.
놀랍게도 이 부위는 배고픈 사람이 음식 사진을 볼 때 활성화 되는 보상 회로와 정확히 일치했다.37)
37) Livia Tomova et al., “Acute Social Isolation Evokes Midbrain Craving Responses Similar to Hunger,” 1597-1600
이는 뇌가 사회적 접촉을 선택적 기호품이 아닌, 음식과 같은 ‘생존 필수품’(Basic Need)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배고픔이 영 양분을 섭취하라는 신체의 경고 신호인 것처럼,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은 사회적 관계를 맺으라는 뇌의 비상 경보 시스템이다.
따라서 현대 교회 의 성도들이 겪는 고립감은 영적인 문제를 넘어선 ‘신경학적 기아’ 상태 로 간주할 수 있으며, 교회는 굶주린 뇌에 ‘관계적 영양분’을 공급하는 고 엘의 돌봄을 수행해야 한다.
③ 사회적 통증(Social Pain): dACC와 고통의 중첩
인간에게 사회적 연결의 단절은 곧 죽음의 공포와 직결된다.
나오미 아이젠버거와 리버만의 기념비적인 연구는 사회적 거절이 뇌에 미치는 충격을 시각적으로 입증했다.
연구진은 피실험자들에게 가상의 공 던지 기 게임에 참여하게 한 뒤, 의도적으로 그들을 게임에서 배제시켰다.38)
38) Naomi I. Eisenberger, Matthew D. Lieberman, and Kipling D. Williams, “Does Rejection Hurt? An fMRI Study of Social Exclusion,” 290-292.
이때 고립된 피실험자의 뇌에서는 배측 전대상피질(dACC)이 강력하게 활 성화되었다. dACC는 본래 신체적 부상이나 물리적 고통의 ‘괴로움’(Affective distress)을 처리하는 영역이다.39)
39) Tania Singer et al., “Empathy for Pain Involves the Affective but Not Sensory Components of Pain,” Science 303, no. 5661 (2004), 1157–1162.
즉,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 거나 “가슴이 아프다”는 표현은 단순한 문학적 은유가 아니라, 뇌가 감지 하는 실체적 통증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고립으로 인한 외로움이나 관계의 단절로 고통받는 성도들에게 고엘의 상호 돌봄적 개입이 왜 절실 한지를 역설한다.
고엘이 개입하여 그를 다시 공동체로 복귀시키는 것 은, 뇌의 고통 스위치를 끄고 생존을 보장하는 신경학적 구명 활동이다.
(2) 소셜 게노믹스(Social Genomics)와 후성유전학적 치유
① CTRA: 고립이 유발하는 유전자의 염증 반응
사회적 환경은 뇌를 넘어 세포 핵 안의 DNA, 즉 유전자의 발현까지 조절한다. 스티븐 콜의 소셜 게노믹스 연구는 사회적 고립이 인체의 면 역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편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콜은 만 성적인 외로움이나 낮은 사회적 지위, 위협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백혈구 에서 특정한 유전자 발현 패턴이 나타남을 발견하고, 이를 ‘역경에 대한 보존된 전사 반응(CTRA)’이라 명명했다.40)
CTRA 상태에서는 두 가지 치명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먼저 염증을 유발하는 유전자(Pro-inflammatory genes; IL1B, IL6, TNF 등)가 과도하게 발현되며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항체 생성 및 인터페론 관련 유전자(An tiviral genes; IFI, OAS 등)는 억제된다.41)
40) Steven W. Cole, “Human Social Genomics,” 7.
41) George M. Slavich and Steven W. Cole, “The Emerging Field of Human Social Genomics,”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1, no. 3 (2013), 333-335.
이는 과거 인류가 맹수의 습격 등 물리적 위협을 받을 때, 상처로 인한 세균 감염(염증 반응 필요)에는 대 비해야 했지만, 바이러스와 싸울 여력은 없었기 때문에 형성된 방어 기 제다.
문제는 현대 사회의 ‘사회적 고립’이 뇌로 하여금 마치 맹수 앞에 홀로 남겨진 것과 같은 위협으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고엘의 보 호를 받지 못하는 자는 만성적인 CTRA 상태에 빠져, 심혈관 질환, 우울 증, 암과 같은 염증성 질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즉, 고립은 영혼을 갉 아먹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를 병들게 하여 물리적 고통과 질병을 야기 하는 것은 물론 죽음을 앞당긴다.
②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42): 의미 추구와 유전자 치유
그렇다면 손상된 유전자는 어떻게 회복되는가?
바바라 프레드릭슨 (Barbara L. Fredrickson)과 스티븐 콜의 공동 연구(2013)는 단순한 ‘쾌 락’(Hedonic well-being)이 아닌 ‘의미와 연대’(Eudaimonic well-being)가 유전자를 복구하고 치유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43)
연구 결과, 맛있는 음 식을 먹거나 개인적 만족을 누리는 ‘쾌락적 행복’이 높은 사람들은 여전 히 CTRA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반면, 타인을 돕고 공동체적 목적을 추 구하는 ‘에우다이모니아 행복’이 높은 사람들은 염증 유전자가 현저히 감 소하고, 항체 생성 유전자가 활성화되었다.44)
심지어 두 집단이 느끼는 주관적인 행복감이 동일하더라도, 유전자는 그 행복의 질을 정확히 구분 하여 반응했다.
이는 고엘 제도의 핵심인 상호 돌봄적 섬김과 희생이 왜 돕는 자와 도움받는 자 모두를 살리는지 설명해준다.
고엘의 행위는 쾌락적 만족이 아닌, 숭고한 의미(에우다이모니아)를 추구하는 행위다.
콜은 이러한 현상 을 설명하며 인간을 서로의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메타게놈’ (Metagenome)적 존재라고 정의한다.45)
42)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행복 혹은 ‘좋은 길’을 의미한다. 에우 디이모니아에서 ‘에우(Eu)’는 그리스 말로 ‘좋다’라는 뜻을 ‘다이몬(Daimon)’은 삶에 영향을 미치 는 정령을 뜻한다. 그렇기에 에우다이모니아는 ‘좋은 정령이 이끄는 삶’으로도 볼 수 있다. 요아 힘 바우어/장윤경 옮김, 『공감하는 유전자』, 240. 43) Barbara L. Fredrickson et al., “A Functional Genomic Perspective on Human Well-Being,” Pro 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0, no. 33 (2013), 13684.
44) Ibid., 13685-13687
45) Cole, “Human Social Genomics,” 8; Slavich and Cole, “The Emerging Field of Human Social Genomics,” 341.
따라서 교회가 성도들에게 고엘 의 상호돌봄을 안내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은, 성도들의 몸을 세포 수준 에서부터 건강하게 만드는 후성유전학적 치유 과정으로 볼 수 있다.
(3) 공명과 협력: 상호 돌봄적 고엘의 작동 원리
① 거울 뉴런(Mirror Neurons)과 의도의 파악
고엘 제도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 는 인지적 기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자코모 리졸라티등이 발견한 ‘거울 뉴런 시스템’은 인간이 타인의 행동을 관찰할 때, 뇌의 전운동피질 과 두정엽을 활성화시켜 마치 자신이 그 행동을 하는 것처럼 시뮬레이션 한다는 사실을 밝혔냈다.46)
더욱 중요한 것은 거울 뉴런이 단순한 동작의 모방을 넘어, 그 행동 의 의도까지 파악한다는 점이다.
카타네오와 리졸라티는 ‘행동 제약적’ (Action-constrained) 거울 뉴런이 동일한 잡는 동작이라도 그것이 ‘먹기 위한 것’인지 ‘옮기기 위한 것’인지 그 목적에 따라 다르게 반응함을 확인 했다.47)
이는 고엘이 친족의 표정과 상황을 볼 때, 그가 처한 절망적 상 황과 그 이면에 숨겨진 도움의 필요를 직관적으로 ‘시뮬레이션’하고 이해 할 수 있는 신경학적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요아힘 바우 어는 이를 ‘공명’이라 부르며, 인간이 투쟁이 아닌 협력과 공감48)을 통해 상호 돌봄을 추구하도록 설계된 존재임을 강조한다.49)
46) Luigi Cattaneo and Giacomo Rizzolatti, “The Mirror Neuron System,” Archives of Neurology 66, no. 5 (2009), 557. 47) Ibid., 557-559
48) 이현주는 공감을 “몸의 깊은 곳으로부터 유래하는 ‘나’의 감정으로 체험되지만, 동시에 타자의 경 험을 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며 느끼는 타자와 나의 합일된 경험”으로 정의한다. 이현주,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 신경과학적 공감 이해와 누가복음의 공감,” 「신학사상」 208 (2025/3), 92.
49) 요아힘 바우어/장윤경 옮김, 『공감하는 유전자』, 193-197.
② 뇌-뇌 동기화(Brain-to-Brain Coupling)와 주는 자의 기쁨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여 도움을 주는 행위, 곧 고엘적 돌봄은 일방적 인 소진(Burnout)을 가져오는가?
최신 신경과학 연구는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골드스타인(Goldstein) 등의 연구에 따르면, 파트너가 고통받 는 자의 손을 잡아주며 공감할 때, 두 사람의 뇌파가 동기화되면서 고통 받는 자의 통증이 획기적으로 감소했다.50)
이는 고엘의 개입이 물리적이 고 실제적인 도움을 넘어, 신경학적 연결을 통해 고통을 공감하며 상호 분담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나아가 이나가키(Inagaki)와 아이젠버거의 연구는 사회적 지지를 ‘주 는 것’이 받는 것보다 뇌의 보상 중추를 더 강하게 활성화하고 스트레스 를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51)
50) Pavel Goldstein et al., “Brain-to-Brain Coupling During Handholding Is Associated with Pain Reduction,”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5, no. 11 (2018), E2528-E2530.
51) Tristen K. Inagaki and Naomi I. Eisenberger, “Neural Correlates of Giving Support to a Loved One,” Psychosomatic Medicine 74, no. 1 (2012), 3-7.
이는 고엘 사역이 돕는 자에게도 신 경학적 보상과 치유를 제공하는 ‘상호 유익’의 구조임을 과학적으로 입증 한다.
이처럼 신경과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고엘 제도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행 20:35)”는 예수의 가르침이 뇌의 작동 원리와 정확히 부 합함을 보여준다.
이상의 신경과학과 유전학의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면, 인간은 개별 적으로 존재하는 ‘독립된 개체’가 아니라, 서로의 뇌와 유전자 발현에 결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상호 의존적 존재다.
고립은 뇌를 굶주리게 하고 유전자를 병들게 하지만, 의미 있는 연결(고엘)은 뇌를 안식하게 하고 유 전자를 치유한다.
따라서 고엘 제도는 단순한 고대 이스라엘의 관습법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뇌가 안정감을 느끼고(dACC 진정), 협력하는 유전 자가 최적의 상태로 발현(CTRA 억제)되도록 돕는, 하나님이 설계하신 ‘상 호 돌봄의 알고리즘’이다.
2. 고엘 제도의 신경과학적 재해석
1) 신경학적 안전기지(Secure Base)로서의 고엘
(1) 토지 무르기와 뇌의 생존 불안 해소
고엘 제도의 핵심 기능 중 하나인 ‘토지 무르기’는 단순한 땅의 반환 이 아니라, 뇌와 신체가 느끼는 느끼는 생존의 위협을 제거하는 신경학 적 구명 조치로 재해석 할 수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토지는 생존의 기 반이자, 하나님이 주신 기업52)이었다.
이를 상실한다는 것은 곧 생존 가 능성이 사라지는 절체절명의 위기, 즉 ‘사회적 죽음’을 의미했다.53)
이러 한 상실은 현대인에게는 경제적 파산, 실직, 혹은 주거 불안정에서 비롯 된 고립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는 단순한 스트레스 요인을 넘어 뇌에 심 각한 타격을 입히는 외상적 사건으로 작용한다.
현대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경제적 파산과 사회적 기반 의 상실은 뇌의 편도체를 과활성화시킨다.
편도체는 위협을 감지하고 공 포 반응을 유발하는 중추로,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즉각적인 스트레 스 호르몬(코르티솔) 분비를 촉진한다.
문제는 이러한 위협이 지속될 경 우, 뇌는 만성적인 경보 상태에 빠져 인지기능이 마비되고 정서적 조절 능력을 상실한다는 점이다. 특히 전두엽의 기능이 저하되면서 이성적인 판단이나 장기적인 계획 수립이 불가능해지고, 오로지 눈앞의 위기 상황 에만 반응하는 단기적인 생존 본능에 지배당하게 된다.54)
52) “어떤 이스라엘 백성도 그 땅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취급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 땅을 ‘소유’한 듯이 자기 땅을 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또한 상속법과 친족법에 따른 경우를 제 외하고는, 어떤 다른 이스라엘 백성의 땅에 대해서도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심지어 왕이라 할 지라도 그저 여호와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임차인의 한 사람일 뿐이다.” 크리스토퍼 라이트/김 재영 옮김, 『현대를 위한 구약 윤리』, 130.
53) Christopher J. H. Wright, The Mission of God: Unlocking the Bible’s Grand Narrative, 358; Matthew D. Lieberman, Social: Why Our Brains Are Wired to Connect, 56.
54) Danilo Bzdok and Robin I. M. Dunbar, “The Neurobiology of Social Distance,” Trends in Cog nitive Sciences 24, no. 9 (2020), 718-720.
이때 고엘이 개입하여 토지를 무르고 생존 기반을 회복시키는 행위 는, 친족의 뇌에 안전 신호를 송출하는 것과 같다.
혼스타인(Hornstein) 과 아이젠버거의 연구에 따르면,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지지자의 존재 는 뇌의 공포 학습을 억제하고 편도체의 반응을 진정시킨다.55)
55) Erica A. Hornstein and Naomi I. Eisenberger, “Unpacking the Buffering Effect of Social Sup port Figures: Social Support Attenuates Fear Acquisition,” PLoS ONE 12, no. 5 (2017), e0175891.
즉, 고엘 은 위기에 처한 자에게 ‘예측 가능한 안전’(Predictable Safety)을 제공함으 로써, 그의 뇌를 ‘생존 투쟁 모드’에서 ‘안식과 회복 모드’로 전환시키는 신경학적 안전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기지는 단순히 물리적인 피난처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심리적 안정감을 회복하고 다시 금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2) 사회적 기준선 이론과 짐 나누기
고엘의 또 다른 기능인 ‘피의 복수’나 ‘노예 속량’은 공동체 구성원이 겪는 억울함과 속박을 대신 해결해 주는 대속 행위다. 코안과 스바라의 사회적 기준선 이론은 이러한 대속적 행위가 어떻게 인간의 뇌 에너지를 보존하는지 설명한다.
이 이론에 의하면, 인간 뇌의 에너지 소비 기준선 은 ‘혼자일 때’가 아니라 ‘타인과 함께 있을 때’다.
누군가와 함께 짐을 나 누어 질 때, 뇌는 위협을 처리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절약한다.
혼자서 무거운 짐을 들 때보다 둘이서 들 때 힘이 덜 드는 것처럼, 심리적인 짐 또한 함께 나누어 질 때 그 무게감이 현저 히 줄어든다.
반대로 고립된 상태에서 모든 문제를 홀로 감당해야 할 때, 뇌는 막대한 인지적·대사적 비용을 지불해야 하며 이는 신경계의 소진, 곧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현대인들의 고립 이면에 있는 무기력감, 불안, 우울증 등은 바로 이러한 신경계의 과부하가 초래하는 결과다.56)
56) Coan and Sbarra, “Social Baseline Theory: The Social Regulation of Risk and Effort,” 88-89.
따라서 고엘이 친족의 빚을 속량하고, 억울함을 풀어주는 대속 행위는, 위기에 처한 자가 감당해야 할 과도한 신경학적 부하를 대신 짊어지 는 것이다.
이는 바울이 말한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갈 6:2)는 윤리적 당부를 넘어선 생물학적 실현이며, 공동체 전체가 서로의 뇌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생존력을 높이는 집단적 상호 돌봄 전 략에 해당한다.
2) 메타게놈(Metagenome) 고엘 공동체: 상호 돌봄의 생명망
(1) 상호 조절과 유전자의 반응
인간은 개별적인 유전체를 가진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유전 자 발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메타게놈적 존재다. 스티븐 콜의 소 셜 게노믹스 연구는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백혈구 내 유전자 스위치를 켜고 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57)
우리가 맺는 인간관계, 소속된 공동체, 경험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은 우리의 유전자 활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 치며, 이는 곧 우리의 건강과 직결된다.
고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고립된 자는 뇌가 위협을 감지하여 ‘역경 에 대한 보존된 전사 반응(CTRA)을 일으킨다.
이 상태에서는 염증 유전 자는 켜지고 반대로 면역 유전자는 꺼져, 각종 질병에 취약해진다.
그러 나 고엘 공동체 안에 거하며 ‘함께 있음’을 경험할 때, 뇌는 안정을 되찾 고 유전자 발현은 역전된다.
따뜻한 환대, 깊은 유대감, 서로를 향한 배 려는 우리 몸의 치유 시스템을 가동시키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프레드릭슨의 연구가 보여주듯, 공동체적 의미와 연대를 추구하는 ‘에우 다이모니아적’ 환경은 염증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유전자 프로 그램을 활성화시킨다.58)
57) Cole, “Human Social Genomics,” 7.
58) Barbara L. Fredrickson et al., “A Functional Genomic Perspective on Human Well-Being,” 13684-13685.
이런 차원에서 고엘 제도는 단순한 법적 의무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 원들이 서로의 유전자 건강을 지켜주는 상호 조절 시스템이다. 나의 섬 김과 돌봄이 형제의 유전자를 살리고, 형제의 안위가 나의 유전자를 보 호하는, 생물학적으로 얽히고설킨 상호 돌봄의 생명망인 것이다.
(2) 후성유전학적 치유: 상호 돌봄적 인큐베이터
야훼 하나님은 고엘에게 가난한 형제와 “함께 거주할 것”을 명한다 (레 25:35-43 참조).59)
이는 고엘의 사역이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적 인 관계 맺음, 즉 '함께 거주함'을 통한 삶의 공유를 의미한다. 단순히 물 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삶의 공간을 나누고 일상을 함께하며 정 서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것이 진정한 회복의 시작임을 고엘 제도는 보여 준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이러한 지속적인 ‘동거’와 ‘돌봄’은 단순한 정서적 지지를 넘어, 스트레스와 고립으로 손상된 유전자의 발현 패턴을 건강하게 되돌리는 ‘후성유전학적 치유’ 과정으로 볼 수 있다.60)
59) 더 가난한 형제가 형편이 악화되어 여러 차례 땅을 판 후에도 지속적으로 지급 능력이 없다면, 친 척이 이자 없는 대부를 주어 가난한 형제를 자기 집에 딸린 일꾼으로 두는 것이 고엘의 의무였 다. 이때 가난한 형제는 친척인 고엘과 함께 살아야 했다. 한편, 경제적으로 완전히 파산하여 더 가난한 친척이 더는 팔 땅이나 대부도 없는 경우에는 그와 가족 모두는 자신들을 더 부유한 친척 에 팔아 고용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이때 부유한 친척은 빚친 형제를 노예처럼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동거하는 피고용인으로 다루어야 한다. 크리스토퍼 라이트/김재영 옮김, 『현대를 위한 구 약 윤리』, 281-282.
60) George M. Slavich and Steven W. Cole, “The Emerging Field of Human Social Genomics,” Clinical Psychological Science 1, no. 3 (2013), 336-338; Patrick O. McGowan et al., “Epigenetic regulation of the glucocorticoid receptor in human brain associates with childhood abuse,” Na ture Neuroscience 12 (2009), 342–348.
특히 만성적인 스트레스나 트라우마는 뇌의 유전자(글루코코르티코이 드 수용체)에 후성유전학적 변형을 일으켜 스트레스 반응을 과민하게 만 들거나 조절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변형은 고정불변 의 것이 아니라, 안전하고 지지적인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회복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닌다.
고엘 공동체는 고립과 공포로 인해 ‘방어 모드’ 로 고착된 형제의 유전자를, 사랑과 안전을 제공하는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성장 모드’로 전환시키는 ‘상호 돌봄적 인큐베이터다.
이는 고엘 제 도가 단순히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넘어, 뇌와 유전자, 나아가 영 혼과 정신건강 모두를 회복시키는 전인적 치유의 장임을 시사한다.
3) 공감의 제도화와 상호 유익으로서 고엘
(1) 뇌-뇌 동기화와 신경학적 공명(공감)으로서 고엘
고엘이 타인의 고통의 문제에 개입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고 엘이 고통받는 자의 삶에 개입할 때 일어나는 현상은 단순한 윤리적 구 제의 차원을 넘어선다.
현대 신경과학은 이를 두 뇌가 하나의 시스템으 로 연결되는 '신경학적 공명' 현상으로 설명한다.
골드스타인 등의 최신 연구는 파트너가 고통을 겪는 이의 손을 잡아주며 깊이 공감61)할 때, 두 사람의 뇌파가 동기화되는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특히 고통을 인지하 고 처리하는 뇌의 핵심 영역인 전대상피질과 섬엽의 활동 패턴이 일치하 게 되는데, 이때 고통을 겪는 사람의 뇌에서는 통증을 처리하는 데 소모 되는 에너지가 현저히 줄어들고 주관적인 통증의 강도 또한 획기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이 밝혀졌다.62)
61) 이와 관련하여 김상덕은 공감이 인류 안에 내재된 본능으로서 상대방의 감정을 읽어내고 자신을 동일시 함으로써 집단을 이루어 왔다고 본다. 김상덕, “공감의 두 얼굴, 그리고 종교-공감에 관한 싱경인문학적 성찰과 종교의 역할” 「신학사상」 207 (2024/12), 300.
62) Pavel Goldstein et al., “Brain-to-Brain Coupling During Handholding Is Associated with Pain Reduction,” E2528-E2530
이는 고엘과 관련한 성서적 명령이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타 인의 고통을 신경학적으로 분담하여 실제적인 치유를 일으키는 생체 에 너지 공유 메커니즘임을 입증한다.
고엘이 친족의 고통에 깊이 접속하여 그 아픔을 자신의 뇌로 시뮬레이션할 때, 고립된 자의 뇌는 "혼자가 아니 다"라는 강력한 신호를 감지하고 '투쟁-도피 반응'을 멈추게 된다.
이 과 정은 마치 두 개의 악기가 공명하여 더 큰 울림을 만들어내듯, 고엘과 수 혜자의 뇌가 공명하여 고통의 파고를 함께 넘는 상호 돌봄의 연대를 연출한다.
이러한 뇌-뇌 동기화는 인간의 뇌에 내재된 거울 뉴런 시스템을 통 해 가능해진다.
거울 뉴런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할 때, 마치 자 신이 직접 경험하는 것처럼 활성화되는 신경 세포다.
특히 '행동 제약적' 거울 뉴런은 단순한 동작의 모방을 넘어, 그 행동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목적까지 파악할 수 있다.
고엘은 친족의 표정과 상황을 통해 그가 처한 절망의 깊이와 구원의 필요성을 직관적으로 감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 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나아간다.
이는 고엘 제도가 인간의 가장 고차원 적인 인지 능력인 사회적 인지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정교한 시스템임을 보여준다.63)
63) Luigi Cattaneo and Giacomo Rizzolatti, “The Mirror Neuron System,” Archives of Neurology 66, no. 5 (2009), 557.
(2) 주는 자의 유익: 상호 유익의 원리
고엘 제도는 돕는 자에게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가?
많은 이들 이 이타적 행동을 ‘자원 소모’로 간주하지만, 신경과학적 연구 결과는 정 반대의 사실을 가리킨다.
앞서 다룬 이나가키와 아이젠버거의 연구는 사 회적 지지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뇌의 보상 중추인 복측 선조체와 중 격 의지핵을 더 강하게 활성화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64)
타인을 돕는 행위, 즉 고엘의 역할을 수행할 때 뇌는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과 유대 호르몬인 옥시토신을 분비한다.
이는 돕는 자에게 깊은 정서적 만족감과 행복감을 줄 뿐만 아니라, 스트레스 반응을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또한, ‘돌봄’(Caregiving) 행동은 뇌 의 편도체 활성도를 낮추어 불안과 두려움을 감소시킨다. 즉, 돕는자로 서 고엘은 타인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자신 또한 신경학적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65)
64) Tristen K. Inagaki and Naomi I. Eisenberger, “Neural Correlates of Giving Support to a Loved One,” 3-5.
65) Stephanie L. Brown et al., “Providing Social Support may be More Beneficial than Receiving it: Results from a Prospective Study of Mortality,” Psychological Science 14, no. 4 (2003), 320-327; 요아힘 바우어/장윤경 옮김, 『공감하는 유전자』, 50.
이는 고엘 제도가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의 생명 력을 증진시키는 포지티브섬 게임임을 의미한다.
고엘 제도는 단순한 도 덕적 교훈이 아니라, 인간의 뇌 보상 회로에 각인된 생물학적 진실이다.
나아가 고엘 제도는 자발적 섬김과 상호 돌봄을 통해 공동체의 생명 총 량을 늘리고, 서로를 살리는 '상호 유익’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한다.
Ⅲ. 나가는 말: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를 향하여
오늘날 한국 교회 공동체가 직면한 고립의 문제와 그로부터 비롯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시혜적이고 수직적인 돌봄 구조를 넘 어서 상호 돌봄을 실천하는 고엘 공동체로의 전환이 시급히 요청된다.
이때 고엘 공동체는 단순히 구약성서의 윤리적·제도적 돌봄을 넘어서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도전받고 있는 우주적 가족 공동체를 향한 영적·정 신건강적 상호 돌봄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뜻한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목회상담의 실천 및 현장 적용의 맥락에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 방안을 간략히 제안하고 자 한다. 먼저 한국 교회는 상호 돌봄의 문화 창출 및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 다.
한국 교회는 특정 전문가나 목회적 리더에게 의존하는 기존의 돌봄 구조를 탈피하여 공동체 내 모든 구성원이 서로의 고엘이 되는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한국교회트렌드 2026』의 보고와 같이 교회 내 성도들의 56.1%가 성도를 돌보는 주체를 ‘모든 성도’를 가리키고 있다.66)
66) 지용근 외, 『한국 교회 트렌드 2026』, 228-229.
이는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을 공동체 전체가 감당할 책임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를 드러내며 상호 돌봄의 수평적인 돌봄 문화에 대한 필요성 을 보여준다.
상호 돌봄의 문화 창출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는 교회의 표 어나 비전, 슬로건을 통해 상호 돌봄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 있다. 나아가 교회 내 평신도 교육과 설교, 소그룹 모임 등을 통해 고엘의 신학적·신경 과학적 의미와 가치를 제시하며 오늘의 한국 교회가 우주적 가족으로서 확장된 고엘의 역할을 감당해야 함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특히, 수혜자 만이 아니라 상호 돌봄의 주체인 고엘 또한 ‘주는 자’ 유익이 있음을 충분 히 안내하여 성도들을 상호 돌봄의 공동체로 유입시킬 수 있다.
다음으로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 전문적인 교육과 양육이 요청된다.
새신자들을 목회적으로 돌보고 양육 하기 위해서 많은 교회들이 시행하고 있는 ‘바나바 교육’처럼 한국 교회 는 평신도를 대상으로 한 ‘고엘 리더십 교육’67)을 개발하고 도입할 필요 가 있다.
67) ‘고엘 리더십 교육’은 연구자가 창안한 것으로 고엘의 성서신학적 이해, 목회상담적 이해, 신경과 학적 이해 등을 융복합적으로 구성한 체계적 교육과정을 말한다. 교육에 참가한 성도들은 상호 돌봄에 대한 신학적·성경적·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고엘로서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방법과 공 감 및 경청의 기술, 영적·정신건강적 개입의 효과와 원리를 배운다. ‘고엘 리더십 교육’의 상세한 교육과정과 내용은 향후 연구를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할 예정이다.
‘고엘 리더십 교육’을 통해 고엘의 신학적·성경적·과학적 원리를 학습하며 단순한 상담자나 돌봄의 제공자가 아닌 ‘영적 고엘’로서 정체성 을 확립하도록 도울 수 있다.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라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의 토대 위에서 교회는 오늘도 여전히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의지가 실현되는 영역 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신경과학이 새로이 조망하는 고엘의 본질과 새로운 의미를 확충하며, 하나님의 회복 정의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한 신앙 공동체로서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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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초연결’(Hyper-connection) 사회는 역설 적으로 ‘연결된 고립’(Connected but Alone)이라는 병리적 현상을 초래하 였으며, 이는 한국 교회 내 성도들에게도 심각한 영적·정신적 위협이 되 고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사회적 고립이 단순한 심리적 위축을 넘어 인 간의 뇌와 유전자를 손상시키는 생물학적 실재라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구약의 ‘고엘’ 제도를 현대 신경과학 및 소셜 게노믹스(Social Genomics)의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한국 교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상호 돌봄’ 모델을 정립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의 주요 논지와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신학적 고찰을 통 해 고엘 제도가 파산한 친족의 생존권(토지), 자유(신분), 정의(피)를 회복 시키는 전인적 구속 시스템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 를 통해 완성되어 교회라는 우주적 가족 공동체의 핵심 원리로 확장됨을 논증하였다.
둘째, 신경과학적 분석을 통해 사회적 고립은 뇌의 배측 전 대상피질(dACC)을 활성화하여 실제적 통증을 유발하고, 역경에 대한 보 존된 전사 반응(CTRA)을 촉진하여 유전적 염증을 야기함을 규명하였다.
이에 대응하는 고엘 제도는 위기에 처한 자에게 ‘신경학적 안전기지’(Secure Base)를 제공하여 뇌의 공포 반응을 진정시키고, ‘사회적 기준선 이론’에 따라 생존에 필요한 뇌 에너지를 절약하게 돕는다.
셋째, 소셜 게노믹스 및 뇌-뇌 동기화(Brain-to-Brain Coupling) 이론에 근거하여, 고엘 공동 체는 서로의 유전자 발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메타게놈’(Metage nome)적 생명망임을 밝혔다.
특히 고엘의 개입은 거울 뉴런을 통한 공명 (Resonance) 과정이며, 이는 수혜자뿐만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자의 뇌 보상 중추 또한 활성화하여 ‘상호 유익’을 창출하는 과학적 기제임을 입 증하였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고엘 제도가 단순한 고대 관습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뇌와 유전자 본성에 부합하도록 하나님이 설계하신 정교한 ‘상 호 돌봄의 알고리즘’임을 천명한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시혜적 차원의 수직적 돌봄을 넘어, 모든 성도가 서로에게 고엘이 되어 영혼과 정신건 강을 회복하는 ‘상호 돌봄의 고엘 공동체’로 전환되어야 한다.
주제어 고엘, 상호 돌봄, 신경과학, 소셜 게노믹스, 사회적 뇌, 공동체성 회복
Abstract
T he Goel (לאג) Institution from a Neuroscientific Perspective and the Restoration of Communal Life in the Korean Church: Toward a Goel Community of Mutual Care
Hwa-Jae Song (Doctor’s Degree(Ph. D.), Counseling and Coaching Yonsei University)
The ‘hyper-connected’ society resulting from the development of digital technology has paradoxically brought about a pathological phenomenon known as ‘connected but alone,’ which poses a serious spiritual and mental threat to members of the Korean Church. Starting from the recognition that such social isolation is not merely psychological withdrawal but a biological reality that damages the human brain and genes, this study aims to establish a ‘mutual care’ model for the restoration of the Korean Church’s community by reinterpreting the Old Testament ‘Goel’ institution from the perspectives of modern neuroscience and social genomics. T he main arguments and results of this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rough theological reflection, it is argued that the Goel institution is a holistic redemption system that restores the right to survival (land), freedom (status), and justice (blood) of bankrupt kin. Furthermore, it was demonstrated that this system was fulfilled through the Incarnation and Cross of Jesus Christ and expanded into a core principle of the universal family community known as the church. Second, through neuroscientific analysis, it was identified that social isolation activates the dorsal anterior cingulate cortex (dACC) of the brain, causing actual pain, and promotes the Conserved Transcriptional Response to Adversity (CTRA), thereby inducing genetic inflammation. In response to this, the Goel institution provides a ‘neurological secure base’ to those in crisis, soothing the brain’s fear response and helping to conserve brain energy required for survival, in accordance with ‘Social Baseline Theory.’ Third, based on social genomics and ‘brain-to-brain coupling’ theory, it was revealed that the Goel community is a ‘metagenomic’ web of life that positively influences mutual gene expression. In particular, it was proven that the intervention of a Goel is a process of resonance through mirror neurons, and it is a scientific mechanism that creates ‘mutual benefit’ by activating the brain’s reward center not only for the beneficiary but also for the caregiver. In conclusion, this study proclaims that the Goel institution is not merely an ancient custom but a sophisticated ‘algorithm of mutual care’ designed by God to align with the human social brain and genetic nature. Therefore, the Korean Church must move beyond vertical care at a beneficent level and transform into a ‘Goel community of mutual care’ where all members become Goels to one another, restoring both their souls and mental health.
Keyword Goel, Mutual Care, Neuroscience, Social Genomics, Social Brain, Restoration of Communal Life
논문접수일: 2025년 11월 30일 논문수정일: 2025년 12월 29일 논문게재확정일: 2026년 6월 20일
神學思想 213집 · 2026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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