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현대 그리스도교 조직신학은 바르트(Karl Barth)라는 거대한 산맥 을 경유하며 ‘계시 중심주의’와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그 확고한 토대로 삼아 왔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자기 계시를 통해 서만 알려지며, 따라서 모든 하나님에 관한 진술은 성육신과 십자가 사건 이라는 렌즈를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신학의 주류적 합의다.
이러한 흐름은 인간의 주관적 인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 타자성을 확보 하는 데 기여했으나, 동시에 ‘신론’(神論) 그 자체가 지닌 독자적인 영역 과 고전적 형이상학이 지탱해 온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상대적 으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 버지니아신학대학원(Virginia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 교수인 캐서린 손더레거(Katherine Sonderegger)는 바로 이러한 현대 신학의 흐름 속에서 매우 이례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신학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녀는 영미권 조직신학계에서 주목받는 신학자이지만, 아직 국내 학계에선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않았다.1)
1) 본 논문은 손더레거의 신학을 국내 학계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첫 번째 연구다. 현재까지 한국어로 접할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글은 현대신학 지형도에 수록된 “창조”뿐이다. 캐서린 손더레거/박찬호 옮김, “창조,” 현대신학 지형도: 조직신학 각 주제에 대한 현대적 개관, 켈리 M. 케이픽 ․ 브루스 L. 맥코믹 엮음 (서울: 새물결플 러스, 2016), 173-259.
본 논문은 이 공백을 메우 려는 시도로서, 그녀의 신학방법론을 소개하고 검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손더레거는 현대 신학이 “하나님은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천착하 느라 “하나님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망각했다고 비판한다.
그녀는 칸트적 인식론의 잔재인 주관주의를 극복하고, 하나님을 우리 지성이 마주해야 할 엄연한 ‘영적 객체’이자 ‘실재’로 복원시키고자 한다.
손더레거 기획의 핵심은 ‘하나님의 단일성’(divine oneness)을 신학적 사유의 제일 원리로 재정립하는 데 있다.
그녀에게 하나님의 단일성은 단순히 수적인 하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적 속성을 규율하고 통합하는 ‘기초적 완전성’(foundational perfection)이다.
이는 삼위일체 론이나 그리스도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리를 그리스도 중심 적으로 해석하려는 환원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 하나님 그 자체의 본성 과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논문은 손더레거가 어떻게 성서적 근거와 스콜 라적 전통을 창조적으로 결합하여 ‘성서적 형이상학’을 구축하는지 살펴 보고자 한다.
구체적으로는 그녀가 제안하는 신학방법론의 특징인 ‘신적단일성과 완전성’, ‘탈(脫) 그리스도 중심주의’, ‘신학적 양립주의’ 그리고 ‘찬양으로서의 신학’이라는 개념을 분석함으로써 그녀의 기획이 현대 조직신학에 던지는 의의와 그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학이 인간의 이해를 돕는 도구를 넘어 유일하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실재 앞에 지성을 굴복시키는 ‘지적인 예배’로 거듭날 가능성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II. 손더레거의 현대 신학적 좌표와 계보
손더레거가 2015년에 출간한 ‘조직신학’ 시리즈 중 첫 번째 책인 조 직신학 1: 하나님 교리(Systematic Theology 1: The Doctrine of God)는 현대 그리스도교 조직신학의 지형 안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바르트 이후 계시론과 인식론적 성찰이 신론의 전제로 자리 잡은 현대 조직신학의 주류적 흐름 속에서, 이 책은 그 공통된 방향을 거슬러 하나님의 단일성을 주제로 한 신론을 전면에 내세운다.2)
2) 키스 존슨(Keith Johnson)은 손더레거의 신학을 “칼 바르트가 설정한 궤적을 따르는 신학자들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Keith L. Johnson, “Katherine Sonderegger’s Systematic Theology,”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9/2 (2017): 175.
물론 이러한 기획은 단순한 복고나 시대착오적 반동이 아니다. 그것은 20세기 신학의 성취를 충분히 경유한 뒤에 이루어진 의식적이고 논증적인 재배치다. 손더레거는 조직신학 1 서문에서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하나님은 무엇인가?”(Qui sit et quid sit Deus)3)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짐 으로써 자신의 신학방법을 개진한다.
그녀는 하나님의 본질을 묻는 이 고전 신학적 질문 구조가 모든 조직신학의 “표제이자 토대”라고 말한 다.4)
그녀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근본 적인 원천은 바로 ‘성서’다.
하나님의 완전성을 서술하는 것은 철학적 추상이 아니라 성서의 언어를 성실하게 따르는 작업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성서에 귀를 기울이고, 성서를 음미하며, 성서의 풍요로움으로 부터 한 분이신 하나님의 신성의 완전성을 길어 올리는 것”이 자신의 신학적 목표라고 말한다.5)
이와 관련하여 손더레거가 가장 우선적으로 대화하는 상대는 바르 트와 그의 후예들이다.
그녀는 바르트의 이스라엘 교리를 주제로 박사학 위 논문을 썼을 만큼,6) 그에게 많은 신학적 빚을 지고 있다.
바르트가 성서를 신학의 토대와 원천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의 신학방법 적 틀을 공유한다.7)
3) Katherine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The Doctrine of God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15), xi.
4) Ibid.
5) Ibid., xvi.
6) Katherine Sonderegger, “Karl Barth’s Dogmatic Interpretation of Israel” (Ph. D. diss., Brown University, 1990).
7) Katherine Sonderegger, “Barth on Holy Scripture,” in The Wiley Blackwell Companio n to Karl Barth, Volume I: Barth and Dogmatics, eds. George Hunsinger and Keith L. Johnson (Hoboken: Wiley Blackwell, 2020): 81.
바르트의 신학적 기획은 성서를 ‘종교 문헌’이 아닌 ‘계시’로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그는 성서를 인간의 종교적 경험과 경건의 증언으로 보는 슐라이어마허적 독법을 거부하고, “성서를 종교적인 것이 아닌 계시로 보려는 철저한 시도”를 통해 자유주의 신학을 극복하는 새로운 체계를 구성한다.8)
하지만 초기 바르트의 과열 된 계시 이해, 즉 성서와 독자가 실존적으로 만나는 구조는 오히려 그가 극복하려 했던 슐라이어마허적 종교 이해로 회귀할 위험을 내포한다.
바르트는 이 불안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교회교의학 I/2에서 ‘증 언’(witness)의 성서론을 발전시키지만,9) 이 지점에서 손더레거는 바르 트의 방법론적 한계를 포착한다.
그녀에 따르면, 바르트의 방법은 (단순 한 정보의 나열에 불과한) “전화번호부와 같은 책마저도 구약과 신약의 정경 못지않게 언제든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계시가 될 수 있는 것처 럼 보인다.”10)
다시 말해 바르트의 체계에서는 성서의 고유성이 확보하 지 못할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손더레거가 보기에 이러한 공백은 바르트를 계승한 로버트 젠슨(Robert Jenson)에게서 더욱 확장된다. 젠 슨은 성서를 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역사적 서사로 이해한 바르트의 방향 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하나님의 정체성을 오직 이스라엘의 서사 안에서 만 규정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에게 구약의 ‘쉐마’에 나타난 하나 님의 단일성 선언은 “이스라엘에서의 형이상학적 분석 결과가 아닌 드라 마의 슬로건”일 뿐, 존재론적인 술어일 수는 없다.11)
8) Ibid., 73.
9)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서는 거룩하며 하나님의 말씀이다. 왜냐하면 성령 을 통해 성서는 교회에게 신적 계시의 증언이 되었고 또 될 것이기 때문이다.” Karl Barth, Church Dogmatics I/2, eds. G. W. Bromiley and T. F. Torrance (Edinburgh: T&T Clark, 1956), 457. 이러한 점에서 바르트는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위엄을 갖지만, 동시에 인간적 오류 가능성도 갖고 있다고 말한다.
10) Sonderegger, “Barth on Holy Scripture,” 79.
11) Robert Jenson, Systematic Theology: Vol. 1, The Triune Go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97), 75.
하지만 손더레거의 반론은 명확하다. 성서에 나타난 우상숭배 금지 명령은 하나님의 단일성 을 나타내는 단순한 서사적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분인지 를 우리에게 계시하는⋯ 형이상학적 술어”다.12)
손더레거 신학의 두 번째로 중요한 축은 스콜라 신학 전통, 특히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의 대화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한 분 하나님’(De Deo Uno)으로부터 시작하여 ‘삼위 하나님’(De Deo Trino)으로 나아가는 구조로 신론을 전개한다.
그녀는 아퀴나스의 방법 론적 순서를 따라 한 분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전면에 배치한다. 이는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논의를 삼위일체론에 종속시키는 라너(Karl Rahner)와 바르트를 위시한 현대 신학의 방법론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 다.
그녀는
“현대 조직신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스콜라 적 논고인 ‘한 분 하나님’ 교리에 대한 거부감일 것”
이라고 주장하며,13) 현대 신학의 주류적 흐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무 엇’이란 질문이 신학의 필수적 토대라는 사실을 역설함으로써 ‘실체 형이 상학’에 대한 현대 신학의 거부감을 극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퀴 나스의 영향 속에서 손더레거는
“참된 하나님은 반드시 유(類, genus)를 넘어서는 분으로 긍정되어야 한다”
고 선언하며,14)
12)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15.
13) Ibid., xiv.
14) Ibid., 33.
하나님이 인간의 개 념적 분류 체계에 갇히지 않는 초월적 실재임을 분명히 밝힌다.
나아가 하나님의 본질과 존재가 하나라는 실재론적 원칙을 통해 하나님의 객체성을 회복하고자 하는데, 여기에서 객체성은 인간 인식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이 피조물의 수준으로 자신을 낮추어 찾아오시는 행위, 곧 ‘거룩 한 겸비’(holy humility)에 의해 담보되는 것이다.
손더레거의 신학적 기획은 단순히 아퀴나스를 답습하는 것을 넘어 신론의 위상을 현대적으로 재정위하는 데 있다.
아퀴나스가 신적 단일성 을 주로 철학적 논증, 특히 존재의 단순성과 순수 현실태 개념을 통해 확립했다면, 손더레거는 그 일차적 근거를 ‘쉐마’라는 성서적 증언에서 찾는다.
또한 아퀴나스의 단일성이 주로 존재론적 명제로 기능한다면, 손더레거의 단일성은 모든 신학적 사유를 규율하는 방법론적 원리로 확장된다.
특히 그녀는 ‘전능성’(omnipotence)을 설명하기 위한 아퀴나 스의 ‘인과성’(causality) 범주가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를 위협할 수 있다 고 진단하며, 현대 물리학의 ‘에너지’ 개념을 차용하여 완전한 권능을 ‘거룩한 겸비’로 재해석한다.15)
이처럼 손더레거 신학의 방법론적 목표 는 스콜라주의를 현대적으로, 비판적으로 계승함으로써 “하나님은 무 엇인가”라는 형이상학적 물음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학의 핵심 과제라 는 것을 논증하는 데 있다.
셋째로 손더레거의 신학은 현대 성공회 신학과의 교차점에 위치해 있다.
그녀는 새라 코클리(Sarah Coakley), 캐서린 태너(Kathryn Tanner) 와 함께 21세기 조직신학의 “주목할 만한 부흥의 시기”를 선도하는 성공회 여성 신학자로 평가받는다.16)
15) Ibid., 176.
16) Jana Marguerite Bennett, “Telling the Old Story in Gendered Keys: The Theological Revivals of Katherine Sonderegger, Kathryn Tanner, and Sarah Coakley,” Anglican Theological Review 101/2 (2019): 277. 손더레거, 코클리, 태너는 현대 신학의 파편 화 경향에 저항하며 ‘조직신학’이라는 전통적인 명칭을 고수하는데, 이는 신학이 다른 학문과 달리 전체를 조망하는 종합하는 메타 학문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코클리와 손더레거는 여성 신학자로는 드물게 다권 (多卷)으로 구성된(multi-volumed) 조직신학 시리즈의 편찬을 기획하고 있다.
이들은 20세기 후반 신학의 파편화와 거대 담론의 상실에 저항하며 체계적인 조직신학을 재건하려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한다.
비록 손더레거는 신론의 출발점을 하나님의 단일성에 둠으로써 삼위일체론 중심의 코클리나 그리스도론 중심의 태너와 방법 론적 차이를 보이지만, 이들 모두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비경쟁 적’(non-competitive)으로 재구성하려 한다는 점에서 기초적인 신학의 토대를 공유한다.17)
손더레거의 신학 형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성공회 신학자는 존 웹스터(John Webster)다. 그녀는 웹스터를 ‘하 나님께 심취한 신학자’(God-intoxicated theologian)라 칭하며 깊은 학 문적 유대를 드러낸다.18)
특히 웹스터가 추구한 ‘원천으로의 귀환’, 즉 르수르스망(ressourcement)과 전통의 재발견은, 그녀가 스콜라주의와 아퀴나스를 현대적으로 복원하고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영감을 주었 다.19)
17)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26. 코클리와 태너의 창조주와 피조물의 비경쟁적 관계에 대한 설명은 각각 다음을 참고하라. Kathryn Tanner, Jesus, Humanity and the Trinity: A Brief Systemic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1), 4; Sarah Coakley, “Does Kenosis Rest on a Mistake? Three Kenotic Models in Patristic Exegesis,” in Exploring Kenotic Christology: The Self-Emptying of God, ed. C. Stephen Evans (Vancouver: Regent College Publishing, 2010), 262.
18) Katherine Sonderegger, “The God-Intoxicated Theology of a Modern Theologian,”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1/1 (2019): 24.
19) Ibid., 27.
또한 신학의 일차적 목표가 구원론적 효용성을 넘어 하나님을 향한 기도와 찬양이 되어야 한다는 웹스터의 통찰은 ‘지적인 기도’로부터 신학 의 가능성을 포착하는 그녀의 독특한 경건주의적 방법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20)
20) Bennett, “Telling the Old Story,” 287-288.
III. 손더레거 신학방법론의 구조와 특징
1. 하나님의 단일성과 완전성들: 근대 인식론 비판
손더레거의 신학적 기획은 현대 조직신학의 지배적인 흐름에 대한 근본적인 이의 제기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교 신학이 칸트(Immanuel Kant)의 비판철학적 유산 아래 하나님의 ‘본성’ 보다는 ‘인격적 정체성’과 ‘계시의 사건’에만 몰두해 왔다고 비판한다.21)
21) 가령 고든 카우프만(Gordon D. Kaufman)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따라 하나님을 인간의 제한된 인식 구조 안에서만 파악되는 ‘구성된 개념’으로 본다. 즉, 하나님 개념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반성과 경험에 대한 해석 과정 속에서 그리 고 그 과정을 통하여 고안되고 발전되어 온 것”이라는 것이다. 고든 카우프만/기독 교통합학문연구소 옮김, 신학방법론 (서울: 한들, 1999), 28. 하지만 손더레거 신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카우프만의 방식은 하나님을 무의미한 신비의 존재로 전락시킬 위험을 갖는다. 그녀에 따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인식 너머에 ‘물자체’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유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현존 하시는 분”이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40.
즉, “하나님은 누구이신가”(Qui sit Deus)라는 물음에만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은 무엇이신가”(Quid sit Deus)라는 물음은 도외시했다는 것이 다.
특히 바르트 이후의 신학은 하나님의 신성(deity)에 대한 형이상학적 탐구를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철학의 잠식으로 간주하여 거부했다.
이러 한 경향은 전통적으로 조직신학 서두에서 다루었던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거나, 이를 곧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논의로 흡수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손더레거는 이러한 현대적 흐름에 맞서 하나님의 ‘단일성’이 모든 신적 속성을 규율하는 “기초적인 완전성”이 자22) 신학의 “제일 원리”(first principle)라고 선언한다.23)
그녀에게 단일 성은 단순히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를 규정 하는 가장 근본적인 술어다.
그녀는 신명기 6장의 ‘쉐마’(Shema), 즉 “이 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는 구절을 신학적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음으로써,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논의가 삼위일체론이나 그리스도론에 의해 대체되거나 축소되지 않도 록 신학의 구조를 재설정한다.
손더레거가 보기에 현대 신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나님에 대한 논의가 칸트의 인식론적 틀에 지나치게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오성이 ‘현상’(phenomena) 너머의 ‘물자체’(noumena)를 직접 포착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하나님을 근본적으로 알 수 없는 ‘한계 개념’으로 만들었다.
이 거대한 영향 속에서 현대 신학은 하나님의 자존 성(aseity)이나 본질에 대한 논의를 포기하고, 오직 계시의 사건 속에서 만 경험되는 ‘우리를 향한’(pro nobis) 하나님만을 다루려 한다.24)
22)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23.
23) Ibid., 9.
24) 매튜 윌콕슨(Matthew A. Wilcoxen)은 “하나님 그 자체(God in se)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God pro nobis)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이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의 핵심적 특징이라고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 신학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배제하고 오직 우리를 향한 ‘관계성’ 논의에만 집중함으로써 이 생산적인 긴장을 제거해 버렸다. 신적 에너지로서 하나님의 겸손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Matthew A. Wilcoxen, Divine Humility: God’s Morally Perfect Being (Waco, TX: Baylor University Press, 2019), 161-168 참고.
손더레거는 이와 같은 방식, 즉 인간의 제한된 경험 세계 안에서만 하나님을 구성해 가는 방식이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지닌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한계에 매몰된 우상화된 하나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주권적 ‘주체’로만 이해하려는 현대 신학적 경향을 넘어서 우리의 탐구와 경배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 보려는 노력이 요청된다.
라너를 비롯한 현대 조직신학자들은 하나님을 ‘우주 안의 또 다른 객체’로 다루는 것을 ‘실체 형이상학’의 침투로 보며 이를 기피하지만, 손더레거는 이러한 ‘객 체성’의 거부가 오히려 하나님을 인간의 주관적 투사와 인식 구조 안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25)
하나님의 객체성(divine ob jectivity)은 하나님이 우리의 지성 밖에 알 수 없는 ‘물자체’로 숨어 계시는 분이 아니라 그분의 인격적 현존 안에서 우리 지성이 마주하고 찬양해야 할 ‘영적 실체’(spiritual substance)라는 것을 보여준다.
손더레거는 다음 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본래 두 측면으로 이해된다. 하나님의 실재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신성(Deity), 곧 그분의 본성(Nature)과 정체성 (Identity)을 진술하고 찬양하게 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객체 (Object)인 동시에 주체(Subject)로, 즉 무엇(What)인 동시에 누구(Who) 로 고백한다.”26)
25)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iii.
26) Ibid., xii. 강조는 원저자의 것.
손더레거가 보기에 칸트적 인식론의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하나님 의 ‘숨어 계심’(hiddenness)과 ‘보이지 않으심’(invisibility)을 인식론적 한계나 불가지론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27)
칸트의 도식 아래에서 하나님의 숨어 계심은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물자체’의 영역으로 밀려 났고, 이로 인해 하나님은 우리 삶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하는 “무의미 한 무형의 신비 덩어리”로 여겨지게 되었다.28)
그러나 손더레거는 성서 의 증언을 따라 하나님의 ‘숨어 계심’과 ‘보이지 않으심’을 ‘하나님의 완전 성’(divine perfection) 그 자체로 규정한다.29)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알 수 없기에 숨어 계시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유일성 안에서 우리에게 매우 가까이 현존하시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인식론적 문제는 우리의 한계상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압도적인 실재가 우리 실존에 부딪혀 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룩한 신비일 따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숨어 계심은 인식론적으로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성공했기 때문에 경험되는 것이다.”30)
손더레거는 더 이상 신학 이 하나님의 인식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칸트적인 ‘인식론적 전제’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31)
27) Ibid., 50.
28) Bennett, “Telling the Old Story,” 283.
29) 손더레거는 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고 음성만 들었다는 진술(신 4:12), 도단성을 에워싼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군대 이야기(왕하 6:17) 그리고 만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속성’에 대한 증언(롬 1:20) 등을 근거로 삼아, 하나님의 숨어 계심과 보이지 않으심을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가 아닌 하나님의 존재론적 완전성으로 이해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49, 68-74, 85-86.
30) Ibid., 89.
31) Katherine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The Doctrine of the Holy Trinity: Processions and Perso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20), 41-42.
그녀는 현대 신학이 “칸트의 규제적 개념 사용 앞에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던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 하며, 오직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와 그분의 유일성으로부터 신학 담론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32)
이러한 방법론적 결단은 신학을 “숭고한 퍼즐”과도 같은 지적 유희에서 하나님의 실재 앞에 무릎 을 꿇게 하는 ‘고백적 학문’이자 ‘지적인 기도’로 되돌려 놓는다.33)
32)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119.
33) Bennett, “Telling the Old Story,” 288. 손더레거는 조직신학을 단지 지적인 정합성 을 맞추기 위한 하나의 ‘퍼즐’처럼 취급하는 현대 신학의 분석적 경향을 비판한다. 그녀에게 신학의 과제는 사변적 난제에 대한 기술적 답변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신비’ 앞에 인간의 지성을 내려놓는 것이자 그 탁월한 실재 를 대면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393.
결론적으로 손더레거 신학방법론의 첫 번째 원리는 근대 인식론이 설정한 회의주의의 장벽을 넘어 하나님의 ‘단일성’을 모든 신적 완전성을 규율하는 근원적 토대로 회복시키려는 시도다.
하나님의 단일성은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강조를 넘어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그분의 단일한 실재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보여주는 규정적 틀이다.
그녀의 방법론 안에서 신학은 이제 하나님을 인간의 경험과 필요에 맞춰 구성하는 일을 멈추고, 유일하신 하나님의 완전성 안에서 드러나는 그 영광스러운 실재 를 향해 다시금 시선을 돌려야 한다.
2.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방법론적 거리두기
손더레거의 신학에서 가장 대담하고 독창적인 기획은 현대 신학의 확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sm)와 방법론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점이다.
그녀는 자신의 저작 곳곳에서 “모 든 것이 그리스도론은 아니다”라는 명제를 신학적 후렴구처럼 반복하며 모든 교리적 논의를 성육신 혹은 십자가 사건으로 수렴시키는 현대 조직 신학의 그리스도론 중심적 흐름에 이의를 제기한다.34)
손더레거에 의하 면, 슐라이어마허(Friedrich Schleiermacher)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바탕으로 교리 전체를 정초하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단일 성과 신성에 대한 탐구를 신학의 주변으로 밀어내는 효과를 가져왔다.35)
특히 바르트를 기점으로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인식하기 위한 유일한 통로이자 근거로 설정되면서, “전능한 하나님은 ‘성서 내러티브’의 한 ‘캐릭터’”로 환원될 위기에 놓이게 되었고,36) 하나님의 실재는 구원의 경륜(economy of salvation) 안에 종속되는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다.37)
34) 손더레거는 자신의 신학적 특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세기와 20세기의 대부분의 조직신학 작업들과는 달리, 이 신학은 그리스도론적 형태(Christomorphic) 를 갖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이지도 않다. 이 작업 에서 반복되는 후렴구는 반드시 다음과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론은 아니다!’” Ibid., xvii.
35) 슐라이어마허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 궤적에 대해서는 Richard Niebuhr, Schleiermacher on Christ and Religion: A New Introduction (New York: Scribner, 1964) 참고. 손더레거는 니버의 이 책을 참고하여 그리스도 중심주의의 계보를 추적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xiii.
36)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522. 손더레거는 자신의 조직신학 2권에서 도 하나님은 “하나의 캐릭터가 아니다, 심지어 초월적이고 거룩한 캐릭터도 아니 다”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67.
37) 존 틸(John E. Thiel)은 손더레거 신학을 평가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의 신학자들은 구원의 경륜을 풍성하게 서술하고 싶은 열정 때문에, 신적 단일성의 온전함과 그에 따른 신적 자존성을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라는 신학 담론 속에 상실시켜 버렸다.” John E. Thiel, “Sonderegger’s Systematics: The Divine Attributes as the Divine Being,”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9/2 (2017): 198.
현대 조직신학에서 전통적인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논의가 생략 되고 삼위일체론으로 대체된 것도 이러한 ‘그리스도론적 집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논의가 그리스도론이라는 단일한 렌즈를 통해서만 조명됨에 따라, 그 풍성한 의미가 현대 신학에서는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38)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손더레거가 그리스도 혹은 그리스도론을 부정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그녀 가 그리스도론으로 환원되지 않는 신론의 고유한 범위와 독자성을 확보 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서 올바르게 인식하고 경배하기 위한 방법론적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진공 속에서 선언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 온전한 무게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논의가 신학적으로 먼저 정립되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손더레거는 구약성서의 계시, 특히 출애굽기 3장의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라는 매개 없이 그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실재와 영광이 온전히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한다.39)
38) 손더레거는 이러한 흐름이 현대 신학에서 얼마나 지배적인지를 다음과 같이 진단 한다. “현대 신학에서 그리스도론적 전환이 너무나 두드러져서, 다른 형태로 형성 되고 전개된 하나님 교리는 많은 독자들에게 성서적이지 않은 것으로, 실제로 비성서적인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vii.
39) Ibid., 80-82.
손더 레거에 따르면, 모세가 대면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현존’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예비하는 단순한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유일성과 거룩한 신비를 가리키는 독립적이고 탁월한 ‘교사’ (magistra)이다.40)
손더레거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나시기 전에도 이미 비가시적이지만 실제적으로 현존하신다는 것 을 강조한다.
따라서 신학은 그리스도의 인간적 이야기에 집중하기에 앞서, 먼저 호렙산의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드러난 거룩한 신비, 즉 비가 시적이지만 유일하신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지성이 겸손해지는 것”을 배워야 한다.41)
이를 통해 그리스도론을 신론의 유일한 기초로 삼으려는 경향을 비판적으로 견제하고, 하나님의 본질적 영광이 그리스도론이라 는 단일한 렌즈에 갇히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손더레거는 하나님의 완전성 들에 대한 논의가 그리스도론이나 구원론의 하위 분과로 전락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 자존성과 단일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역설한 다.42)
또한 그녀는 신학적 사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하나님은 피조물을 위한 어떤 목적도 없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의 목적을 추구할 수도 있었는 가?”라는 반사실적(counterfactual) 질문을 던진다.43)
40) 손더레거에 따르면, 구약성서는 단순히 신약성서를 예비하는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 교 교리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교사’(magistra)이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xxvi.
41)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xi.
42) 그녀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론은 아니다!”라는 선언을 넘어서 조직신학 2권에서 는 “모든 것이 구원론은 아니다!”라고 선언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33.
43)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318.
이는 하나님의 존 재를 오직 ‘우리를 향한’ 기능적 관계로만 이해하려는 현대의 인간 중심 적 신학으로부터 하나님을 해방시키려는 시도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 만을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그분의 본질은 우리와의 관계를 넘어서 는 근원적인 충만함에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우리가 없더라도 또한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더라도, 완전하시다.”44)
이러한 맥락에서 손더 레거는 현대 그리스도론이 인간을 위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지나치 게 몰두한 나머지, 그분의 ‘신성’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한 관심을 갖지 않아 왔다고 비판한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Godhead)이 너무나 적은 관심과 찬양 그리고 경배를 받아 왔다”는 것이다.45)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이시 기에 앞서 더 근원적으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 도에 대한 우리 찬양과 경배의 일차적 대상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이 아닌 그분의 신적 완전성 그 자체여야 한다.
요컨대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손더레거의 방법론적 거리두기 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부정하거나 위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 님을 인간 중심적인 구원 드라마의 일부로 한정하는 것을 거부하고 그분 의 무한한 신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나아가 그 신비 앞에 인간의 지성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을 향한 경건과 기도의 가치를 복원하는 것이 다.
그녀는 그리스도론이 신론을 지배하는 현대의 경향에서 벗어나 성서 라는 ‘질그릇’에 담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실재와 그분의 탁월한 유일성 으로부터 신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46)
44) Ibid., 344.
45) Ibid., xvii-xviii.
46) Katherine Sonderegger, “Response to Review Essays on Systematic Theology, volume 1, The Doctrine of God,” Anglican Theological Review 101/2 (2019): 293.
이러한 접근법은 신학의 중심축을 ‘인간의 필요’에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되돌림으로써 현대 신학이 상실한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위엄과 신전(神前)에서의 경 외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대담한 기획이라 할 수 있다.
3. 신학적 양립주의: 비경쟁적 현존
손더레거 신학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신학적 양립주의’(theo logical compatibilism)를 중요한 방법론적 원리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손더레거가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철학적 논쟁으로부터 차용한 것”으로 하나님의 자존성과 창조 세계의 실재성이 어떻게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인식론적 틀이다.47)
그 녀는 현대 신학의 고질적인 편견인 신-인 관계의 ‘제로섬’(zero-sum) 구 도, 즉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혹은 초월성과 내재적 접점을 상충 관계로 파악하는 이분법적 전제를 단호히 거부한다.48)
47) Gregory W. Lee et al., “Book Panel Discussion: Katherine Sonderegger’s Systematic Theology, The Doctrine of God, vol. 1,” Journal of Reformed Theology 14 (2020): 24.
48) 손더레거는 신-인 사이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신성은 창조 세계를 혐오하 지 않으며, 역설적인 것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는 한 분이신 주님과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 사이에서 어떤 모순이나 대립도 발견하지 못한다. 오히려 신적 실재는 창조 세계와 양립 가능(compatible)하다. 하나님은 세상과 ‘긍정적인’ 관계 를 맺고 계신다”(강조는 원저자의 것).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ix-xx. 같은 맥락에서 코클리도 하나님과 인간을 “같은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다투는 두 개의 팽팽한 경쟁자(vying contestants)”로 보는 현대 신학의 구도를 비판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성과 인성은[또는 하나님과 피조물은] 매우 급진적으로 구분되며, 질적으로 매우 다른 범주에 속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 두 범주는 하나의 평평한 차원(one flat package)으로 함몰될 수 없다.” Coakley, “Does Kenosis Rest on a Mistake?,” 261-262.
그녀에게 하나님은 피조물과 같은 공간에서 다투는 “우주 안의 한 물체”가 아니라49)
피조 물의 고유한 성격과 활동을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충만하게 임재 하는 존재다.
요컨대 “하나님과 피조물은 비경쟁적인 관계”에 있다.50)
손더레거에 따르면, 이러한 신학적 양립주의의 가장 결정적인 성서 의 모델은 출애굽기의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이다.
호렙산의 떨기나무 는 하나님의 거룩한 불길에 휩싸였지만, 불에 타지 않고 형태를 그대로 유지한다.
이는 하나님의 실재가 피조물 안으로 내려와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여도, 그 피조물의 본질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양립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 상징은 “모든 신학적 사유의 신비로운 토대”이다.51)
여기서 양립주의는 단순한 이론적 가설이 아니라 하나님과 피조물의 실제 관계에서 비롯하는 교리 적 서술이다.52)
손더레거는 하나님이 피조물과 양립할 수 있는 이유가 그분의 ‘겸비한’ 본질 때문이라고 말한다.53)
49)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iii. 동일한 의미에서 태너도 “하나님은 여러 부류의 존재들 사이에 놓인 또 하나의 어떤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Tanner, Jesus, Humanity and the Trinity, 4.
50) “피조물과 하나님의 비경쟁적 관계(non-competitive relation)”는 태너의 중요한 신학방법론적 축이다. Tanner, Jesus, Humanity and the Trinity, 2. 손더레거는 태너가 이 명제를 “탁월한 통찰과 엄밀함 그리고 명료함으로 발전시켰다”고 평가 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147.
51)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80.
52) 윌콕슨은 손데레거의 양립주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이것은[양립주의는] 그리스도교 교리를 정초하는 인식론이 아니라 교리 자체로부터 흘러나오는 인식 론이며, 이미 일어난 사건을 서술하는 것이다.” Wilcoxen, Divine Humility, 149.
53) 바르트도 ‘겸비’를 신론의 중심적 개념으로 이해하지만, 그의 방식은 그리스도론 으로부터 하나님의 겸비를 연역한다. 이에 대해 손더레거는 바르트의 아래로부 터의 방식은 하나님 안에 두 개(혹은 세 개)의 서로 다른 의지가 있다는 것을 전제해 야 하는 오류가 발생함을 지적하며, 겸비 개념을 위로부터 아래로 전개하는 것의 타당성을 논증한다. 즉, 그녀의 전략은 하나님의 단일성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존재론적 완전성이 곧 그분의 겸비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윌콕슨은 손더레 거가 제안하는 하나님의 겸비 개념을 “그리스도 중심주의 없는 신적 겸비”로 요약 한다. Ibid., 163-164, 179.
즉, 그분의 ‘거룩한 겸비’로 인해 무한한 존재가 유한한 존재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며 또한 유한한 존재가 무한한 존재를 탐구하고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54)
54) 손더레거가 말하는 ‘거룩한 겸비’는 하나님이 자신의 신적 속성을 후퇴시키거나 포기하신다는 ‘하나님의 케노시스’(divine kenōsis)보다는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 는 하나님이 인간의 수준에 낮추어서 찾아오신다는 의미의 ‘하나님의 맞추심’(di vine accommodation)에 가깝다. 자세한 논의는 고형상, “‘하나님의 케노시스’(di vine kenōsis)의 신학적 문제점과 대안으로서의 ‘하나님의 맞추심’(divine accom modation),” 「신학논단」 97 (2019): 7-39 참고.
55)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270. 동일한 맥락에서 코클리도 신-인 관계의 핵심에는 경쟁이 아닌 “하나님에 대한 피조물의 급진적이고, 질적으로 분명한 의존성”이 있다고 말한다. Sarah Coakley, “Creaturehood before God: Male and Female,” Theology 93 (1990): 343.
따라서 하나님 과 피조물의 관계는 모순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 안에서 이루어지 는 ‘신적 객체성’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우리 삶에 실제적이고 객관적으로 그리고 비경쟁적으로 임재한다는 것이다.
손더레거에 의하면, 현대 신학의 지배적인 경향은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그분의 인격적 주체성만을 다룰 뿐, 그분의 객체성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특징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을 인간의 인식 너머에 있는 ‘신비’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녀는 하나님은 피조 물과 동일한 공간 안에서 더 많은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는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이 존재하도록 하는 근원적 힘이자 “모든 생명을 위한 감추 어진 원천”이다.55)
손더레거는 하나님의 비경쟁적 현존이 그분의 ‘전 능’(omnipotence)과 직결된다고 논증한다.
그녀에게 신적 전능은 단순 히 “자신의 의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피조물에 내주하며 그것이 소멸되지 않도록 하는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56)
사물 안에 물질 성과 에너지가 경쟁 없이 필수적으로 양립하는 것처럼 또한 원자 단위에 서 보면 에너지가 사물을 구성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 세계의 역동성 안에 완전히 숨겨 계시며, 그분 자신의 능력으로서 창조 세계 안으로 쏟아져 나오시고, 객관적이시며, 겸비하시다.”57)
즉, 손더레거에 게 하나님의 전능이란 세상을 압도하는 파괴적인 힘이 아니라 세상을 지탱하고 유지하는 “감추어지고 비가시적인 현존이자 능력”이다.58)
56) 손더레거는 ‘전능’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 즉 아우구스티누스가 선호했던 전능에 대한 정의, “Potest quod vult”(그분은 자신 원하는 것을 하실 수 있다)를 거부한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176.
57) Ibid., 209.
58) Ibid., 526.
하나님이 피조물 안에 비경쟁적으로 현존하신다는 존재론적 통찰 은 단순히 형이상학적 주장에 그치지 않고 인식론적 확신으로 이어진다.
손더레거는 인간의 유한한 언어와 개념이 하나님의 초월적 실재를 담아 낼 수 없다는 칸트적 인식론에 맞서, 하나님의 자존성이 우리의 지상적 언어와 세계의 표징들 안에서 실제로 현존하고 드러나며 알려진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분’으로 고백하는 것은 그분이 물자체로서 인식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실존 과 너무나 가까이에 현존하여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압도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존재가 우리의 모든 개념과 언어로는 형용될 수 없는 하나의 신비로서 인식되는 이유다.
따라서
“신적 신비는 우리의 앎이 실패했음을 나타내는 표지가 아니라 오히려 성공했음을 나타내는 표지이다. 우리가 참되고 적절하게 알기 때문에, 하나님은 신비인 것이 다.”59)
이와 같이 손더레거의 신학적 양립주의는 존재론과 인식론을 하나 의 일관된 신학적 확신 안에서 통합한다.
그녀는 하나님을 구원의 드라마 를 위한 기능적 도구로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자리까지 내려오시는 겸비의 전능자로 고백하게 한다.
그녀에게 신학의 과제는 하나님을 증명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세상 속에 비경 쟁적으로 현존하시는 그분의 영광을 경배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 교리 를 가장 적절하게 탐구하고 설명하는 방식은 바로 감사와 찬양이다. 그리 고 이것이 우리의 영적 예배이다.”60)
59) Ibid., 24. 강조는 원저자의 것.
60) Ibid., 177.
하나님은 우리와 무관하게 완전하 시지만, 동시에 그분 자신의 실재가 우리의 세계와 양립 가능하도록 존재 하신다.
바로 이 양립의 신비 속에 창조와 구원의 은총이 모두 담겨 있다.
이처럼 손더레거는 인간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신학의 토대이 자 목적으로 설정함으로써, 현대 신학이 상실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4. 성서와 기도: 신학의 장소와 형식
손더레거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비경쟁적 현존과 신학적 양립주의 는 신학의 형식에까지 일관되게 관철된다.
신학이 가능한 조건과 그 형식에 대해서 그녀는 명료하게 답한다. 신학은 성서에서 시작하여, 기도라 는 형식 안에서 수행된다.
손더레거는 먼저 자신의 조직신학 저작을 가리켜
“이 책은 성서신 학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라고 선언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신학 적 논의가 철저하게 성서에 근거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61)
이 선언은 하나님의 단일성, 완전성, 속성론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의가 어떻게 성서신학적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의식한 것이다.
그녀에게 조직신 학과 성서신학의 분리야말로 현대 신학이 가져온 가장 큰 폐해다.62)
61) Ibid., xv.
62) 손더레거는 성서를 고대 신화의 텍스트처럼 읽으려는 자유주의 신학과 성서 무오 설과 문자주의에 기초한 근본주의 신학 모두가 현대의 인식론적 집착이 만들어 낸 왜곡된 산물이라고 말한다. Katherine Sonderegger, “Holy Scripture as Sacred Ground,” in Oliver D. Crisp and Fred Sanders, eds., The Task of Dogmatics: Explorations in Theological Method (Grand Rapids: Zondervan, 2017), 135-138. 그녀에게 성서는 단순한 인식의 도구나 명제의 집합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자 “모든 신학의 토대”이다. Ibid., 143.
하나 님의 단일성을 신론의 제일 원리로 제시하는 것은 성서와 무관한 사변적 진술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이 다.
손더레거에게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의 구분은 방법론적 편의를 위한 것일 뿐, 실질적으로 이 둘은 동일한 작업이다.
손더레거의 성서신학적 관심은 구약성서에 대한 특별한 강조로 이 어진다. 손더레거가 보기에 현대 신학의 폐해 중 하나는 그리스도론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구약성서를 신약성서의 예비적 단계로 종속시 켜 온 것이다.
그녀는 구약성서의 신학적 독자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성 서를 ‘제1성서’(the First Testament)로 명명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 한다.
“나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문제들을 다룰 때, 구약성서를 전통의 자리, 즉 교사(magistra)의 자리로 되돌리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 다. 신앙의 선조들이 제1성서를 광범위하고 사변적이며 교의적으로 해 석하면서 보여준 그 담대한 확신, 그것이 우리의 길잡이별이자 이상이 다.”63)
이는 그리스도론과 구약성서의 권위를 경쟁적으로 배치한 현대 신학에 대한 직접적인 교정이라 할 수 있다.
구약성서는 독자적인 권위를 지닌 계시의 장소로서, 그리스도의 중재가 없이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실재와 영광을 그 자체로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
이처럼 구약성서를 신학의 교사로 삼는다는 것은 곧 신학자의 역할이 정교한 철학적 체계를 구성하거나 신학적 정합성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를 신실하게 따라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손더레거의 성서 이해는 성서를 근원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로 보는 데서 기인한다.
그녀에 따르면,
“성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관한 책이 아니다. 물론 성서는 분명히 한 분 하나님에 대한 가르침과 서술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핵심과 전체적 범위에서 보자 면, 성서는 그곳에 거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64)
이러한 관점은 성서를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문서나 인간의 종교적 경험의 증언으로 보는 현대적 관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손더레거에게 성서는 단순히 하나님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된 인간적 언어가 아니라 “하나님으로 살아 숨 쉬는 언어적 피조물”, 그 자체다.65)
63)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xxvi.
64) Sonderegger, “Response to Review Essays,” 292.
65) Ibid.
하나님은 성서라는 인간적 언어에 현존하시면서도, 그 언어를 소멸시키지 않으신다.
마치 불타는 떨기나무 가 소멸되지 않는 것처럼 또한 마리아가 하나님을 잉태한 것처럼, 무한하 신 하나님의 현존과 유한한 인간의 언어가 비경쟁적으로 양립한다.
이 특별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안에서 성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현 현, 즉 일종의 신현(神顯, Theophany)”으로서 우리 앞에 있다.66)
따라서 성서를 신실하게 읽고 따라가는 신학적 작업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신학 작업, 즉 성서 탐구가 하나님의 현존 앞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신학은 단순히 지적인 탐구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재를 경배하는 행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손더레거는 기도를 신학의 고유한 형식으로 제시한다.67)
66) Ibid. 강조는 원저자의 것.
67) 손더레거와 마찬가지로 코클리도 기도를 신학적 사유의 전제 조건으로 삼는다. 코클리는 기도 없이는 그에 상응하는 깊이의 지식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기도와 관상과 예배의 실천에 결연히 참여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더 라도, 결코 얻을 수 없는 철학적 통찰들이 있다”는 것이다. Sarah Coakley, God, Sexuality and the Self: An Essay ‘On the Trinit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3), 16. 코클리는 다른 학문과는 달리 신학만은 삶의 전체를 조망하고 파편화된 관점들을 종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신학방법을 “종합 신학”(théologie totale)으로 명명한다. 신학이 전체를 조망하고 부분을 종합할 수 있는 이유는 ‘기도’ 때문이다. 그녀는 기도를 신학의 핵심적 조건으로 삼음으로 써 자신만의 독특한 신학 체계를 구성한다. 코클리의 기도를 중심으로 한 신학방 법론에 대해서는 고형상, 욕망, 기도, 비움: 새라 코클리의 생애와 신학 (고양: 도서출판 100, 2021), 51-59 참고.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 교리는 기도라는 날개 를 달지 않을 수 없다.
중보, 회개, 예배, 찬송으로 뜨거워진 마음이 없다면, 그 어떤 연구도 검토도 이해도 있을 수 없다.
아름다운 빛으 로서의 하나님의 객체성은 그것을 바라보는 피조물에 말로는 형용 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살아계신 존재로서의 하나님의 주 체성은 주님 자신의 선물인 불타는 사랑을 피조물의 마음 안에 점화 한다.
이것이 하나님 교리의 올바른 교의학적 형식이다.
즉, 기도 안 에서 굽혀지고 영화롭게 된 지성이다.68)
손더레거의 이 말은 단순히 경건에 관한 권고가 아니라 신학적 인식 에 관한 명료한 방법론적 논증이다.
손더레거에게 신학의 고유한 인식론 적 자세는 자율적으로 ‘직립한’ 지성이 아니라 기도 안에서 ‘굽혀진’ 지성 이다.
지성은 오직 겸손한 태도를 취할 때만 역설적으로 그 역량이 온전히 발휘된다.
성서라는 질그릇(earthen vessel)이 하나님의 인격적 현존을 오롯이 담지하더라도 그 인간적 언어의 고유성이 상실되지 않듯,69)
68)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xi.
69) 손더레거는 “성서는 하나님의 인격적 현존을 그 안에 담지하며, 비록 우리 자신 의 언어라는 질그릇 아래에서이지만, 그것을 우리에게 현현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성서를 하나님의 현존을 담는 인간 언어로 구성된 질그릇으로 표현한다. Sonderegger, “Response to Review Essays,” 293.
신학 적 지성도 기도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겸손해질 때만 하나님의 조명 아래 더욱 충만해지고 활성화된다.
이러한 구조는 피조물의 실재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그 안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비경쟁적 양립주의 원리에 상응한다.
이로써 손더레거는 ‘굽혀진 지성적 기도의 형식’ 위에 자신의 조직신학을 정초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기획이 “지성적 기도의 형식으로서 조직신학이 가장 잘 추구될 수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70)
이는 기도가 신학 작업의 외부에 있는 준비 단계나 결과 적 실천이 아니라 신학 담론이 전개되는 양식 그 자체임을 의미하는 것이 다. 성서를 하나님의 숨결로 가득한 ‘신현’으로 읽는 것과 기도로서 그것 을 탐구하는 것은, 구분은 되지만 결코 나뉠 수 없는 신학함의 두 측면이다.
전자가 신학의 장소(locus)를 확정한다면, 후자는 신학의 형식(forma)을 확정한다.
‘성서’라는 거룩한 터전 위에서 지성을 굽혀 드리는 ‘기도’, 바 로 이것이 손더레거가 제시하는 신학함의 본질이며, 그녀의 조직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방법론적 원리다.71)
70) Ashley Cocksworth, “On Prayer in Anglican Systematic Theology,”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2/3 (2020): 402, n. 77.
71) 애슐리 콕스워스(Ashley Cocksworth)는 손더레거의 조직신학을 “신학과 기도가 가장 완벽하게 (성공회적으로) 통합된 결과물”로 평가한다. Ibid., 402.
IV. 손더레거 신학방법론의 의의
지금까지 손더레거의 신학방법론이 지닌 네 가지 구조적 특징, 즉 하나님의 단일성에 근거한 근대 인식론 비판,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대한 방법론적 거리두기, 신학적 양립주의 원리 그리고 신학의 장소와 형식으 로서의 성서와 기도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 장에서는 이러한 방법론적 기획이 현대 신학의 지형에서 갖는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1. 하나님의 단일성에 근거한 고전 신론의 창조적 복원
손더레거의 방법론이 갖는 가장 근본적인 의의는 현대 신학에서 나타나는 신론의 양극화를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앤드 루 무어(Andrew Moore)가 적절히 관찰한 것과 같이, 현대 신학의 논쟁들 은 상당 부분 “구원사라는 드라마의 등장인물(dramatis personae)에 대해 적절하게 주목하면서도 어떻게 하나님의 단일성과 자존성에 대해 설명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72)
72) Andrew Moore, “Review of Systematic Theology 1, The Doctrine of God, by Katherine Sonderegger,”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68/1 (2017): 448.
이 문제에 대한 응답으로서 한편에는 모리스 와일즈(Maurice Wiles)로 대표되는 자유 주의 신학이 있다.
이 흐름은 이성적으로 수용 가능한 신학적 주장만을 채택하는 최소주의 입장을 취함으로써 철학적 정당성은 확보하였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세계 밖으로 밀어내는 이신론적 신론을 배태했다.
다른 한편에는 바르트, 몰트만, 젠슨으로 대표되는 그리스도 중심적 삼 위일체 신학이 있다.
이 계열은 그리스도 사건으로부터 신론을 구성함으 로써 강력한 삼위일체 신학을 산출하였지만, 그 드라마적 구조가 하나님 의 단일성과 자존성을 약화시키는 한계를 노출했다.
이 양극화의 좌표 위에서 손더레거의 방법론이 갖는 전략적 위치가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그녀는 자유주의 신학처럼 철학적 검증 가능성을 신학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다.
동시에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처럼 그리 스도 사건을 신론의 유일한 관문으로 설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하나님의 단일성을 신학적 사유의 제일 원리로 삼음으로써 하나님의 자존성과 세계 내 현존 모두를 단일성이라는 하나의 원리 안에서 포괄한다.
이처럼 손더레거의 기획은 두 극단을 절충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신학이 상실한 고전 신론의 문제의식을 성서적 토대 위에서 적극적으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손더레거의 신학적 균형과 조화는 무엇보다 신론의 창조적 복원에서 기인한 것이다.
손더레거는 현대 신학이 “무질서와 소심함”(dis order and timidity)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며,73)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아퀴 나스를 비롯한 전통 신학의 핵심 통찰들을 현대적으로 재활성화한다.
하지만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복고’(repristination)가 아닌 원천으로의 귀환을 통한 현재의 갱신, 즉 르수르스망이라 할 수 있다.74)
73) Sonderegger, “The God-Intoxicated Theology,” 24. 손더레거는 웹스터의 과제를 “현대 신학에서의 무질서와 소심함을 진단하는 것”으로 평가하는데, 이는 그녀 자신의 현대 신학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74)손더레거는 웹스터의 신학이 “과거에 대한 단순한 복고나 반동이 아니라 르수르 스망 혹은 원천 회귀(retrieval)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신학을 전개한다고 평가 하며, 이를 자신의 신학적 방법의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Ibid.
그녀의 신학 안에서 전통 신학의 통찰들은 근대 인식론 및 현대 신학과의 비판적 대화 속에서 재구성된다.
하나님의 단일성을 신론의 제일 원리로 삼는 것이 가져오는 첫 번째 신학적 유익은 신적 완전성들에 대한 통전적 이해다.
현대 신학은 종종 하나님의 전능, 전지, 선함, 사랑 등의 속성들을 서로 긴장하거나 충돌하는 개념들로 다루며, 이 긴장을 해소하는 것을 신학의 주요 과제로 삼아 왔다.
손더레거는 이러한 접근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단순성’(simplicity)을 파괴한 결과라고 본다. 그녀에 따르면, “단일성이 신적 완전성들을 통치한다.
신론의 모든 내용은 하나님의 초월적 단일성 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것을 표현하고 그것에 부합해야만 한다.”75)
완전성들은 서로 경쟁하는 속성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님의 단일한 성품에서 흘러나오는 풍요로움의 표현들이다.
이러한 통찰은 신론을 마치 “영원히 풀리지 않는 개념적, 인식론적 수수께끼”처럼 다루는 현대 의 ‘퍼즐 신학’적 경향을 넘어서도록 한다.76)
하나님의 단일성에 대한 강조가 주는 또 다른 신학적 유익은 인간이 욕망을 하나님에게 투사하려는 우상숭배의 유혹을 성찰하고 차단한다 는 것이다.
손더레거는 현대 신학이 하나님의 인격적 관계에만 과도하게 몰입함으로써 하나님을 ‘인간 자아의 확장’이나 ‘우주 속의 거대한 존재’ 처럼 여기는 신인동형론적 상상력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77)
그녀에게 하나님의 단일성은 단순히 숫자적 일치가 아니라 창조 세계의 그 어떤 형상과도 비교될 수 없는 “모든 것을 능가하는 유일 무이한 실재”에 대한 고백이다.78)
75)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xiv.
76) Ibid., 230.
77) 손더레거는 하나님을 “유일한 이름을 가진 초개인(superindividual)”로 보는 것은 “우상숭배적인 조형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단지 “고양된 피조 물”(exalted creature)로 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인동형론적 이해, 즉 우상화의 결과라는 것이다. Ibid., 459. 그녀는 하나님은 인격적이시지만, 동시에 “비가시적 이시고, 형상이 없으시며, 거룩하게 비물질적이신” 분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한 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2, 540.
78)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40.
따라서 신학이 하나님의 단일성에 확고히 근거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인간 지성이나 의지에 의해 포착되거나 통제되는 ‘대상’으로서 전락시키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모 든 개념적 틀을 압도하며 우리 앞에 현존하시는 엄준한 ‘신적 객체성’으 로 올바르게 고백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신적 객체성은 하나님을 우리 세계 안의 또 다른 물체가 아닌 우리의 지성을 경이로움 속에 굴복시키는 초월적 신비로 남게 한다.
2. 신학적 양립주의에 근거한 신학적 실재론의 회복
손더레거의 신학방법론이 갖는 두 번째 의의는 ‘신학적 양립주의’ 원리가 제공하는 신학적 기여에 있다.
이 원리는 단순히 하나님과 인간 혹은 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교리적 명제가 아니 라 신학의 토대를 재편하는 구조적 원리다.
그 의의는 방법론과 인식론 그리고 실천의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먼저 신학적 양립주의는 현대 신학이 매몰된 두 가지 방법론적 함정, 즉 역설(paradox)과 우상숭배의 함정을 모두 극복하는 제3의 길을 제시 한다.
손더레거에 따르면, “올바른 신학적 방법은 역설도 우상숭배도 아니다.”79)
역설의 함정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 창조 세계의 모든 관계를 이율배반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신학 적 불가지론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윌콕슨에 따르면,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역설로 규정하는 것은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판단하는 선험적 틀”이 작동한 결과다.80)
79) Ibid., 82.
80) Wilcoxen, Divine Humility, 150.
하지만 어떤 것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적 틀이 아니라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과 같은 ‘계시적 신현’(revelatory theophany)이다.
이런 맥락에서 역설의 함정은 하나님의 계시보다 인간이 설정한 틀을 앞세움으로써 하나님께서 이 세계에서 비경쟁적으로 현존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역설의 함정이 하나님과 세계를 적대적으로 분리하는 오류라고 한다면, 우상숭 배의 함정은 하나님을 세계와 동일시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은 피조물의 범주 안에 속한 존재가 됨으로써 단지 창조 세계의 여러 존재자 가운데 가장 탁월한 존재 혹은 인간적 이상이 무한히 확장된 존재로 규정된다.
이 함정에 빠진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피조물과 어떤 의미에서 닮은 존재, 즉 피조물들의 연장이자 고양”으로 만들어 버리고, 스스로 하나님이 된다.81)
손더레거에 따르면, “하나님은 개체(individual) 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실체(substance)일 수 없다.”82)
하나 님을 하나의 개체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우상숭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요컨대 역설의 함정이 하나님의 내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면, 우상숭배의 함정은 하나님의 초월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신학적 양립주의는 이 두 극단, 즉 하나님과 피조물을 동일시 하거나 상호 배타적인 경쟁 관계로 설정하는 입장 모두를 거부하며, “하 나님의 자존성이 피조물과 모순되거나 동일시되는 것 없이 혹은 소멸되 는 것 없이 공존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83)
81)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82. 손더레거는 시편 115편 8절, “우상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만다”를 인용함 으로써 피조물의 범주 안에서 하나님을 구성하는 신학은 결국 자기 자신을 예배하 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경고한다.
82) Ibid., 190. 강조는 원저자의 것.
83) Ibid., 80.
손더레거의 표현대로, “신학에서의 양립주의는 오랜 딜레마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훨씬 더 신비롭고 놀라운 것을 주장한다.”84)
손더레거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창조 세계와 유리된 ‘거리’가 아닌 어떤 ‘유’(genus)에도 속하지 않는 ‘유일 무이성’에서 도출한다.
하나님은 우주 내의 다른 존재들과 더 많은 공간 을 얻기 위해 다투는 “부가 항목”(extra item)이 아니기에, 피조물과 비경 쟁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 안에 온전하고 완전하게 현존할 수 있다.85)
84) Ibid.
85) 코클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정의상, 인간의 지성이나 의지, 상상력 에 의해 인식되고 그리하여 통제될 수 있는 우주 안의 (비록 매우 거대한 것일지라 도) 부가 항목이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그 무엇이다.” Coakley, God, Sexuality and the Self, 44.
이러한 전제 위에서 신학적 양립주의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실재한다”는 식의 수사적 역설의 함정을 극복하며 하나님과 세계의 관계를 명료한 공존의 신비로 설명한다.
동시에 양립주의에 따르면, 하나님은 결코 인 간적인 것으로부터 유추되거나 주관적 투사에 의해 구성될 수 없는 절대 적 실재다.
하나님이 우리의 언어와 세계 안에 현존하시는 것은 인간 언어나 인식의 탁월함 때문이 아니라, 피조물의 공간을 파괴하지 않으면 서도 그 안에 거하기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겸비’ 때문이다.
결과 적으로 신학적 양립주의는 하나님을 인간 욕망의 투사물로 왜곡하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함으로써 우상숭배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더레거의 신학적 양립주의는 칸트 철학에 기초 한 현대 신학의 인식론적 도전에 강력한 교의학적 응답을 제공한다.
칸트 이후의 신학은 인간의 인식 능력이 하나님이라는 ‘물자체’에 도달할 수 없다고 전제함으로써 신학적 진술을 하나님의 실재 자체에 대한 서술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이나 실존적 자기 이해를 드러내는 하나의 ‘현상’ 으로 환원시켜 버렸다.86)
손더레거는 이러한 칸트적 불가지론의 전제를 단순히 철학적으로 반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교의학적 근거 위에 서 전적으로 거부한다.”87)
그녀는 하나님의 자존성이 얼마든지 우리의 유한한 언어와 창조 세계 그리고 구체적인 표징들 안에서 현존하며 그 안에서 명료하게 알려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확신은 신학적 실재 론의 토대를 위협했던 칸트식의 이분법을 근본적으로 해체한다. 윌콕슨 의 표현을 빌려 다시 말하면,
“자존하시는 하나님(God a se)은 그분이 직접 만드신 세계와 언어 안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기에 또한 ‘충만한 빛’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분이기에 현상-물자체 분리(phenomenal- noumenal split)는 단호히 거부될 수 있다.”88)
우리의 오성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서 형이상학적 단절을 뚫고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스스로를 알리셨기 때문” 이다.89)
손더레거는 이를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이라고 말한다.90)
86) 대표적으로 조지 린드벡(George Lindbeck)은 “교회 교리의 기능은⋯ 그것이 표현 적 상징이나 진리 주장으로서가 아니라 담론, 태도, 행동에 관한 공동체적으로 권위 있는 규칙으로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즉, 신학적 진술은 하나님의 실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 공동체의 언어적 관습이나 삶의 형식을 표현할 뿐이라 는 것이다.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4), 18.
87) Wilcoxen, Divine Humility, 149.
88) Ibid.
89) Johnson, “Katherine Sonderegger’s Systematic Theology,” 175.
90)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66.
나아가 신학적 양립주의는 이론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교회의 실천 적 차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윌콕슨이 분석하듯, 손더레거의 양립주의 원리는 “성서와 성례전의 전통을 계승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 으로 구성되는 교회의 일상적 사회언어적 실천들에 뿌리를 둔 신학적 인식론의 토대를 마련”한다.91)
이 토대 위에서 설교, 기도, 예배, 성례전 과 같은 교회의 구체적인 실천들은 단순한 인간 공동체의 사회적 관습으 로 환원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겸비가 이러한 실천적 기표 들 안에 기꺼이 현존하기에, 이 평범하고 일상적인 실천들은 “결정적으 로 초월적이고 존재론적이며,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지식을 담지하는” ‘신현’의 장이 된다.92)
손더레거는 이러한 신비 앞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 한다.
“우리는 다만 소박한 감사와 기쁨으로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의 언어 안에 그리고 우리의 바로 그 생각 안에 거하신다.”93)
91) Wilcoxen, Divine Humility, 155.
92) Ibid. 손더레거는 신학적 양립주의를 통해 서구 신학의 고전적 난제인 ‘유한의 무한 수용성’(capax Infiniti) 논쟁을 근본적으로 재편한다. 그녀는 유한이 무한을 담을 수 있는지(Finitum capax Infiniti) 혹은 없는지(Finitum non capax Infiniti) 를 묻는 루터파와 개혁파의 전통적 대립이 창조주와 피조물을 동일한 존재론적 층위 위에 두고 ‘용량’의 문제를 따지는 경쟁적 구도를 전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은 더 많은 공간을 점유하기 위해 피조물과 다투지 않기에, 이러한 이분법 적 선택은 무의미한 것이다. 신학적 양립주의는 이러한 경쟁적 구도 자체를 거부 함으로써 사실상 이 해묵은 논쟁을 종결한다. 그녀의 표현대로, “신학적 양립주의 는 유한자와 그것이 지녔다고 주장되는 무한자에 대한 ‘수용 능력’(capacity)에 관한, 고도로 전문적이며 결국 해결 불가능한 논쟁들을 교리가 일일이 해결해야 할 부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준다.”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82-83.
93) Ibid., 86.
3. 성서신학에 근거한 조직신학의 재정향
손더레거 신학방법론의 세 번째 의의는 성서를 조직신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현대 조직신학은 주로 인간의 종교적 경험(슐라이어마허)이나 그리스도론(바르트) 혹은 사회 ․ 정치적 실천 (해방신학)을 그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성서는 신학적 사유의 일차적 원천으로서의 위상이 약화되었고, 교의적 진술을 예증하 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손더레거는 이러한 현대 신학적 흐름에 맞서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논증한다.
즉, 조직신학의 언어는 성서로부터 이탈해서는 안 되며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 를 충실히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교리가 방법을 이끌고 생성한다. 그 역이 아니다!”라는 그녀의 확고한 명제에서 나타나듯,94) 방법론이 교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가 신학의 방법론 자체를 규율한다.
이처럼 손더레거는 신학의 원천 자료로서의 성 서의 위상을 확고하게 설정함으로써 조직신학의 출발점을 재정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손더레거는 조직신학자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음 과 같이 재정의한다.
“신학자에게 가장 큰 영예이자 가장 탁월하게 인정 받는 순간은, 그가 ‘성서 본문의 전문가’로 일컬어질 때다.”95)
94) Ibid., xx.
95) Ibid., xvii.
다시 말해 조직신학은 성서신학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조직신학자는 성서 주석에 탁월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루터, 칼뱅과 같은 신학사에 서 중요한 신학자들이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정교한 형이상학의 체계를 구축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의 실재를 신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형이상학적 교리와 성서를 분리시키지 않음으로써 “유일하고 거룩한 성서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전개하는 것”을 신학함의 본질로 규정한다.96)
손더레거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단일성’ 교리는 성서에 기초한 조직 신학방법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녀의 신학 체계에서 하나님의 단일 성이 신론의 제일 원리이자 기초적 완전성으로 설정된 것은 철학적 추론 이나 논리적 연역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성서 자체에 의해 권고된 것”이다97)
성서, 특히 구약성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일관되게 강조한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단일성만큼 성서의 핵심에 가까운 것은 없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은 한 분 하나님을 예배한다. 이 백성과 그 주님 사이의 영원한 언약은 주 하나님이 하나이시고 유일하시다는 가르침에 의해 확언되고, 존중되며, 유지된다.”98)
96) Ibid., xv.
97) Ibid., 9.
98) Ibid., xiv.
하나님의 단일성은 십계명과 쉐마로부터 예언자들의 외침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가장 근본 적이고 일관된 증언이다.
손더레거의 신론은 바로 이 성서적 증언을 출발 점으로 삼는다.
이러한 방법론의 토대 위에서 그녀는 구약성서를 그리스도론의 틀 안에서 해석하거나 신약성서의 예비 단계로 그 의미를 축소하 는 현대 신학적 흐름에 저항하며, 구약성서의 위상을 ‘오래된 것’에서 ‘첫 번째’로 재정위한다.
그리스도라는 매개 없이도 구약성서 그 자체만 으로 하나님의 실재와 완전성이 모자람 없이 증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이슨 바야시(Jason Byassee)가 적확하게 표현하듯이,
“그녀[손더레 거]는 단순히 본문을 주의 깊게, 긴 호흡으로 읽으며, 그 본문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배운다. ⋯ 그녀는 구약성서의 모든 본문에서 예수를 찾아 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99)
손더레거에게 성서는 단순한 신학적 원천이나 제일 자료를 넘어 하나님이 현현하는 장소, 즉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신비의 터전 이다.
이러한 이해는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 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인격적 현존을 담지하는 신현이라면, 성서 탐구 로서의 조직신학은 단순한 논리적 작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 앞에 서는 경배의 행위가 된다.
신학의 방법론, 내용 그리고 형식이 모두 성서 에 의해 조율된다.
이로써 조직신학과 성서신학은 하나의 신학적 과업 안에서 유기적으로 통합된다.100)
99) Jason Byassee, “Our God is a Humble God,” Christian Century (2020): 23.
100) 18세기 후반 이후로 성서신학과 조직신학이 점차 분화되었다. 요한 필리프 가블러 (Johann Philipp Gable)는 1787년 알트도르프(Altdorf)대학 취임 강연에서 성서신 학을 역사적 탐구의 영역으로, 교의신학을 체계적 적용의 영역으로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19세기에 들어서 이 두 분야의 영역이 더욱 분명하게 나뉘었다. 성서신학 은 역사비평적 방법론 아래 성서 본문의 역사적 맥락과 문학적 장르를 탐구하는 방향으로, 조직신학은 성서를 형이상학적, 철학적 체계 안에 통합하는 방향으로 분화되었다. 이로써 조직신학은 성서로부터, 성서신학은 교의학적 물음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손더레거의 기획은 이 두 분야를 하나의 신학적 작업 안에서 통합하 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는 철저히 성서적이면서 동시에 엄밀한 교의학적 범주 들을 통해 신론을 재구성한다. 이에 대해서는 John Sandys-Wunsch and Laurence Eldredge, “J. P. Gabler and the Distinction between Biblical and Dogmatic Theology: Translation, Commentary, and Discussion of his Originality,”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33 (1980): 133-158 참고.
이는 신학적 실천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 역동적 존재[하나님]가 성서의 모든 페이지에서 불타오르고” 있기에,101) 성서를 읽고 묵상하며 설교하는 실천은 단순한 교회적 전통이나 관습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과 실제로 만나는 사건 이다.
101) Sonderegger, Systematic Theology 1, 187.
손더레거의 성서 이해는 신학적 탐구를 단지 이론의 영역에만 머물 게 하지 않는다.
성서가 하나님의 현존을 담지하는 ‘신현’이기에, 성서를 탐구하는 모든 행위는 필연적으로 경배의 차원으로 고양된다.
요컨대 성서에 기초하여 신학을 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마주하는 것이자 그분 께 예배하는 것이다.
V. 나가는 말: 손더레거 신학의 가능성과 비판적 과제
손더레거는 현대 조직신학이 망각했던 하나님의 ‘실재’와 ‘단일성’ 이라는 고전적 가치를 성서적 문맥 안에서 복원하려 한다.
그녀는 모든 것을 인간의 경험이나 인식론적 틀 혹은 그리스도론적 사건으로 환원하 려는 현대 신학의 경향에 제동을 걸고, 하나님을 우리 지성이 마주해야 할 압도적인 ‘영적 객체’로 볼 것을 제안한다.
신학을 인간 중심적 학문에 서 하나님의 완전성을 향한 ‘지적인 찬양’으로 변모시킨 점은 그녀의 기획이 지닌 독보적인 의의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혁신적 시도는 동시에 몇 가지 신학적 우려와 비판적 질문을 남긴다.
우선 그녀가 강조하는 ‘하나님의 단일성’과 ‘그리스도 중심주의로부터의 거리두기’가 자칫 신론과 기독론 사이의 유기적 통일 성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성육신 사건을 신론의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하거나 하나님의 단일성을 삼위일체론보다 논리적 ․ 발생적 으로 우선시하는 태도는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학의 성취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또한 하나님의 절대성을 보존하 려는 노력이 지나칠 경우, 역사 속에서 고난받고 응답하시는 인격적 하나 님의 모습이 형이상학적 추상성 안에 갇혀 버릴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더레거의 신학은 여기서 마침표를 찍는 완성 된 체계가 아니라 여전히 역동적으로 구성되고 있는 ‘진행 중인 신학’이 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녀의 기획은 이제 막 신론의 토대를 쌓았을 뿐이며, 우리는 곧 출간될 이어지는 저작들을 통해 그녀가 이 단일성 중심의 신론을 그리스도론과 어떻게 연결하며 발전시킬지 보게 될 것이 다.
결국 손더레거의 신학은 우리에게 중요한 신학적 여정을 제안한다. 그녀의 방법론이 현대 신학의 정당한 비판들을 어떻게 포용하며 성서적 충실성을 입증해 나갈지는 향후 전개될 그리스도론 논의에서 더욱 선명 해질 것이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실재를 향한 그녀의 집요한 탐구가 보여 줄 새로운 신학적 지평과 이어질 논의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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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본 논문은 캐서린 손더레거의 조직신학 1: 하나님 교리에 나타난 신학 방법론을 분석하고, 그 의의와 한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손더레거는 바르트 이후 현대 신학이 그리스도 중심주의에 함몰된 나머지 “하나님 은 무엇이신가”라는 고전 신학의 근원적 물음을 망각했다고 비판하며, 하나님의 ‘단일성’을 모든 신적 완전성을 규율하는 신학의 제일 원리로 재정립한다. 본 논문은 그녀의 신학방법론을 구성하는 네 가지 특징을 분석한다.
첫째, 하나님의 단일성에 근거하여 칸트적 인식론을 교의학 적으로 거부하고, 하나님의 ‘숨어 계심’을 인식론적 실패가 아닌 존재론 적 완전성으로 재해석한다.
둘째, “모든 것이 그리스도론은 아니다”라는 명제를 통해 그리스도 중심주의로부터 방법론적 거리를 둠으로써 구약 성서의 신학적 독자성을 복원한다.
셋째, 불타는 떨기나무 사건을 성서 적 모델로 한 ‘신학적 양립주의’를 통해 하나님의 자존성과 창조 세계의 비경쟁적 공존을 논증하며, 역설과 우상숭배라는 두 신학적 함정을 동 시에 극복하는 제3의 길을 제시한다.
넷째, 성서와 기도를 각각 신학의 장소와 형식으로 제시함으로써 조직신학을 하나님의 현존 앞에 지성을 굴복시키는 지적인 기도로 재정의한다.
손더레거의 기획은 현대 신학이 상실한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찬양을 회복시키고, 신학을 인간 중심적 학문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찬양과 경배로 전환시킨다는 점에서 조 직신학에 새로운 지평을 제시한다.
주제어 ‖ 캐서린 손더레거, 신학방법론, 신론, 신학적 양립주의, 하나님의 단일성, 신적 객체성
Abstract
Katherine Sonderegger’s Theological Methodology: A Reconstruction of Theology Grounded in Divine Oneness
Ko, Hyongsang(Ph.D. Assistant Professor Yonsei University Wonju, Korea)
This paper analyzes the theological methodology presented in Kathe- rine Sonderegger’s Systematic Theology 1: The Doctrine of God and critically examines its significance and limitations. Sonderegger ar gues that modern theology since Barth has become so captivated by Christocentrism that it has forgotten the classical theological question, “What is God?” (Quid sit Deus), and seeks to reestablish divine one ness as the first principle governing all divine perfections. This paper analyzes four distinctive features of her theological methodology. First, grounding her argument in divine oneness, she rejects Kantian epistemology on dogmatic grounds and reinterprets God’s hidden ness not as an epistemological failure but as an ontological perfection. Second, through the proposition “Not all is Christology!” she main tains a methodological distance from Christocentrism and restores the theological independence of the Old Testament. Third, drawing on the burning bush narrative as a biblical model, she develops a ‘theological compatibilism’ that demonstrates the non-competitive coexistence of divine aseity and creation, thereby proposing a third way that over comes the twin theological pitfalls of paradox and idolatry. Fourth, by presenting Scripture and prayer as the locus and forma of theology respectively, she redefines systematic theology as an intellectual prayer in which the human intellect is brought into submission before the presence of God. Sonderegger’s project restores the reverence and praise for God that modern theology has lost, and in transforming theology from an anthropocentric discipline into an act of praise and worship directed toward the glory of God, it opens a new horizon for systematic theology.
Keywords ‖ Katherine Sonderegger, Theological Methodology, Doctrine of God, Theological Compatibilism, Divine Oneness, Divine Objectivity ∙
투고접수일: 2026년 05월 15일 ∙ 심사(수정)일: 2026년 05월 15일 ∙ 게재확정일: 2026년 05월 29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3집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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