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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1257)
단풍 드는 날/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우..
김명인 ‘상강’ “...어느새 화안한 석양...방안으로 스미는 가을햇살들/ 먼 길 가다 잠시 쉬러 들어온/ 이 애잔...삯 진 여름 지나온 것일까/ 놓친 것이 많았다니 그대도 지금은/ 해 길이만큼 줄였겠구나/ 어디서 풀벌레 운다, 귀먹고/ 눈도 먹먹한데 찢어지게 가난한/ 저 울음 상자는 왜 텅 빈/ 바람 소리까..
은행나무 /곽재구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엽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가을 우체국 앞에서 / 김현성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 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 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
꿈꾸는 오십천/김형화 강물도 가끔 꿈을 꾼다 하구(河口)에서 더욱 그렇다 꿈을 위해 흐름도 멈추고 강바닥의 돌까지 소리를 낮춘다 산그늘 길어지는 가을이면 낙엽이 떠내려오고 북양에서 돌아온 연어는 물을 거슬러 마지막 힘으로 알을 낳고 생(生)을 묻는다 내 가슴속 깊은 강 내가 꾸는 꿈속 연어알이 깨어..
꽃씨/황금찬 가을 꽃씨를 받아 종이에 접는다. 종이속에 봄을 싸서 설합속에 간직한다 눈이 쌓인 날 뜰을 쓸고 받아두었던 꽃씨를 뿌려 들새들의 가슴에 황홀한 봄을 심는 것이다. 봄은 들새들의 가슴속에서 내일을 꿈꾸고있다. 그 찬란한 봄이 싹트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꽃씨속에 작은 소망을 심는..
구절초꽃/김용택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산그늘을 따라서 걷다 보면은 해 저무는 물가에는 바람이 일고 물결들이 밀려오는 강기슭에는 구절초꽃, 새하얀 구절초꽃이 저리도 잔잔히 피어 있네 구절초꽃 피면은 가을 오고요 구절초꽃 지면은 가을 가는데 하루 해가 다 저문 저녁 강가로 서늘한 저..
시월/피천득 친구 만나고 울밖에 나오니 가을이 맑다 코스모스 노란 포플라는 파란 하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