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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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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해마다 6월이면 해마다 유월이면 당신 그늘아래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뒷걸음질치는 이 진행성 퇴화의 삶, 그 짬과 짬 사이에 해마다 유월에는 당신 그늘아래 한번 푸근히 누웠다 가고싶습니다... 그래도 다시한번 지켜봐 주시겠어요..
안톤 슈낙 -6월에는 스스로 잊도록 하자 시냇가에 앉아보자 될 수 있으면 너도밤나무 숲 가까이 앉아보도록 하자 한 쪽 귀로는 여행길 떠나는 시냇물소리에 귀기울이고 다른 쪽 귀로는 나무 우듬지의 잎사귀 살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그리고는 모든 걸 잊도록 해보자 우리 인간의 어리석음 질투 탐욕 자만심 결국에는 우리 자신마저도 사랑과 죽음조차도 포도주의 첫 한모금을 마시기전에 사랑스런 여름 구름 시냇물 숲과 언덕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건강을 축복하며 건배하자
김사랑 -유월의 노래 유월에는 진정 이 땅 위에 평화를 주십시오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축복된 행복만 주십시오...진정 참다운 진실로 누군가를 사랑하게...거침없는 바람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가게...안개에 가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롭게 유월과 더불어 흐르게 하십시오
김용수 -초여름 고운 님 얼굴 닮은 마음으로 가만가만 불어오는 명주바람 앞세우고 싱그러운 연초록 잎사귀 사이로 은빛 햇살 쏟아져 아늑거리는 신록의 꿈을 안고 여름 너 벌써 왔구나!
6월의 오면/도종환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속에 바람과 뻐꾸기만 웁니다 바람과 뻐꾸기 소리로 감자꽃만 피어납니다 이곳에 오면 수만 마디의 말들은 모두 사라지고 사랑한다는 오직 그 한마디만 깃발처럼 나를 흔듭니다 세상에 서로 헤어져 사는 많은 이들이 많지만 정년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이별이 아니라 그리움입니다 남북산천을 따라 밀이삭 마늘잎새를 말리며 흔들릴 때마다 하나씩 되살아나는 바람의 그리움입니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모두 쓸데없는 일입니다 떠오르는 아침 햇살도 혼자 보고 있으면 사위는 저녁노을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 사는 동안 온갖 것 다 이룩된다 해도 그것은 반쪼가리일 뿐입니다 살아가며 내가 받는 웃음과 느꺼움도 가슴 반쪽은 늘 비워둔 반평생의 것일 뿐입니다 그 반족은 늘 당신의 몫입니다..
이승훈 -저 바람때문에 저 바람때문에 시 한 줄 못쓰고 이마에 손을 얹으면 저 바람이 나를 부르고 나 대신 나무가 흔들리네
문병란 -낮술 아무도 만나고싶은 사람이 없는 날 아무 일도 하고싶은 일이 없는 날 나는 혼자서 낮술을 마신다. 꽃마저 피다가 심심해서 제 흥에 취해 하르르 시드는 날 꽃사이 몰래 숨어 잠든 바람아 너마저 이파리 한잎 흔들 힘이 없니? 어디선가 산퀑이 길게 울고 햇살 눈부시어 사무치는 날 혼자서 사랑하다 혼자서 미치는 그리움보다 먼저 취하는 고독을 마신다.
심보선 -갈색가방이라는 역 “작업에 몰두하던 소년은 스크린도어 위의 시를 읽을 시간도 달려오던 열차를 피할 시간도 없었네 갈색가방 속의 컵라면과 나무젓가락과 스텐수저 나는 절대 이렇게 말할 수 없으리 ‘아니, 고작 그게 전부야?’” 2016년 오늘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중 김 모 씨(19세) 전동차와 안전문사이에 끼어 세상떠남 “눈을 감아도 아이 얼굴이 기억이 안나요. 마지막에 봤던 처참한 찢어진 모습만 떠오릅니다.”-김씨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