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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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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예찬/안병옥 "봄"은 처녀, 여름은 어머니, 가을은 미망인, 겨울은 계모..." 일년 사계절을 여인에 비유한 폴란드의 격언입니다. "봄"은 처녀처럼 부드럽고, "여름"은 어머니처럼 풍성하고, "가을"은 미망인처럼 쓸쓸하며, "겨울은" 계모처럼 차갑다. 봄처녀가 불룩한 생명의 젖가슴을 갖고 부드러운 "희열(喜悅)"의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문을 두드린다. "봄은 세가지의 덕(德)"을 지닌다. 첫째는 "생명(生明)"이요. 둘째는 "희망(希望)"이며, 세째는 "환희(歡喜)"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땅에 씨앗을 뿌리면 푸른 새싹이 나고, 나뭇가지마다 신생의 잎이 돋고 아름다운 꽃이 핀다. "봄의 여신은 생명의 여신"이다. 세상에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고 놀라운 일은 없다. 밀레와 고호는 "씨뿌리는 젊은..
인간의 정/김재진 꽃은 피어날때 향기를 토하고 물은 연못이 될 때 소리가 없다 언제 피었는지 알 수 없는 정원의 꽃은 향기를 날려 자기를 알린다. 마음을 잘 다스려 평화로운 사람은 한 송이 꽃이피듯 침묵하고 있어도 저절로 향기가 난다. 한평생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참 많은 사람과 헤어진다. 그러나 꽃처럼 그렇게 마음깊이 향기를 남기고 가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인간의 정이란 무엇일까? 주고 받음을 떠나서 사귐의 오램이나 짧음의 상관없이 사람으로 만나 함께 호흡하고 정이 들면서 더불어 고락도 나누고 기다리고 반기고 보내는 것인가?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소박하게 살다가 미련이 남더라도 때가 되면 보내는 것이 정이 아니..
2월 끝자락에서/라형식 아하~! 2월은 하고 생각해 보니 어느새 2월 끝흐머리에 서있네요 가는 세월 잡을 수 없다지만 너무나 빠른 세월은 야속하기만 하군요 흔적 없이 가버린 시간이지만 남는 게 있다면 매화꽃 망울이 하늘을 향해 터뜨렸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2월 끝흐머리에서 봄 꽃망울처럼 예쁜 모습으로 3월을 마중한다면 세상은 새롭게 재 탄생의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2월은 더 빨리 가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행복한 시간들 이였습니다 2월의 고운 추억을 고이 간직하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우리 힘차게 달려가 보자구요 크게 심 호흡하고 크게 함성을 지르며 3월 문턱을 넘어 보자구요 아마 아름다운 새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곱게 단장한 아름다운 님들이 우리를 환영할 거예요 2월 끝자락에서~!
내 오랜 친구야 /주응규 산모퉁이 돌아 산등성이를 넘어 뻐꾹새 울음소리 따라 찔레꽃잎이 날리던 길 위를 다정히 어깨동무하고 마냥 걸었던 친구야 내 오랜 친구야 그리워 그리워서 너를 부르면 아득한 메아리로 답하는 너의 목소리는 내 마음에 내려앉아 친구야 너는 꽃으로 피어난단다 논두렁길 밭두렁 길 풀숲을 지나 초록이 바람과 노닐고 뭉실뭉실 꽃구름 피는 강가에 팔베개하고 누워 흰 구름에 꿈을 싣던 친구야 내 오랜 친구야 외로워 외로워서 너를 부르면 어느새 내 마음의 창가에 아침햇살처럼 싱그럽게 피어나는 친구야 너는 내 삶의 여백이란다. 친구야 내 오랜 친구야 너는 내 마음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피는 꽃이란다
지친 친구에게 보내는 시/전진탁 여보게, 기분은 괜찮은가? 자네가 요즘 힘들다 해서 묻는 말일세! 문을 열고 나가서 세상을 한 번 보시게! 어떤가? 언제나 세상은 그대로이며 눈부시게 아름답지 않은가?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광풍이 휘몰아쳐도 여전히 해는 뜨고 또 여전히 땅은 그대로 있으니 자네 가슴으로 불어와 꽁꽁 얼어버린 찬바람일랑은 저 햇살 아래에 서서 녹여 떠나보냄이 어떠한가? 어느 곳 어느 땅이건 그 중심에는 언제나 자네가 서 있다네 그러니 중심 잘 잡으시게 자네가 휘청거리면 세상이 거세게 요동친다네 자네 휘청거리면 나는 넘어지는 신세니 한 번 봐 주시게 여보게, 세상의 중심! 그래, 자네 말일세! 자네가 태양을 집어삼킨 가슴으로 살기를 내 간절히 바라네 자네 식어있는 가슴을 지난날처럼 뜨거운 열정으로 다시 한 번 활활 태워보시..
비가 전하는 말/이해인 밤새 길을 찾는 꿈을 꾸다가 빗소리에 잠이 깨었네 물길 사이로 트이는 아침 어디서 한 마리 새가 날아와 나를 부르네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배워 나보다 더 자유로운 새는 작은 욕심도 줄이라고 정든 땅을 떠나 나를 향해 곱게 눈을 흘기네 아침을 가르는 하얀 빗줄기도 내 가슴에 빗금을 그으며 전하는 말 진정 아름다운 삶이란 떨어져 내리는 아픔을 끝까지 견뎌내는 겸손이라고 오늘은 나도 이야기하려네 함께 사는 삶이란 힘들어도 서로의 다름을 견디면서 서로를 적셔주는 기쁨이라고!
산중문답 / 조지훈 새벽닭 울 때 들에 나가 일하고 달 비친 개울에 호미 씻고 돌아오는 그 맛을 자네 아능가 마당가 멍석자리 쌉살개도 같이 앉아 저녁을 먹네 아무데나 누워서 드렁드렁 코를 골다가 심심하면 퉁소나 한 가락 부는 그런 멋을 자네가 아능가 구름 속에 들어가 아내랑 밭을 매면 늙은 아내도 이뻐 뵈네 비온 뒤 앞개울 고기 아이들 대리고 낚는 맛을 자네 太古적 살림이라꼬 웃을라능가 큰일 한다고 고장 버리고 떠나간 사람 잘되어 오는 놈 하나 없네 소원이 뭐가 있능고 해마다 해마다 시절이나 틀림없으라고 비는 것뿐이제 마음 편케 살 수 있도록 그 사람들 나라일이나 잘하라꼬 하게 내사 다른 소원 아무것도 없네 자네 이 마음을 아능가 노인은 눈을 감고 환하게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따라 주신다. 예 이 맛은 알만 합니더 靑山白..
이렇게 또 그렇게 /정석희 누군가 물어 옵니다 나에겐 아주 쉬운 일을 물어 옵니다 이 길이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어 옵니다 나에겐 늘 이시간에 가야할 길이기에 난 너무나도 쉽게 대답 할 수 있었습니다 출근하는 길이라고 또 한참을 걸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 물어 옵니다 이 길로 가면 거기가 나오냐고 물어 옵니다 난 또 아주 쉽게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바로 가면 나오는 길 돌아가면 쉽지 않을 거라 답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또 그렇게 답해 주었습니다 나에게 물어 봐준 사람들 어디 가는 중이었을까 돌아가야 할 그 사람은 아직도 곧장 걷고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또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