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수필 (1257) 썸네일형 리스트형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 문정희 내가 세상을 안다고 생각할 때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그때 나는 별을 바라본다. 별은 그저 멀리서 꿈틀거리는 벌레이거나 아무 의도도 없이 나를 가로막는 돌처럼 나의 운명과는 상관도 없지만 별!을 나는 좋아한다. 별이라고 말하며 흔들린다. 아무래도 나는 사물보다 말을 더 좋아하는.. 마흔 살의 시 / 문정희 숫자는 시보다도 정직한 것이었다 마흔살이 되니 서른아홉 어제까지만 해도 팽팽하던 하늘의 모가지가 갑자기 명주솜처럼 축 처지는 거라든가 황국화 꽃잎 흩어진 장례식에 가서 검은 사진테 속에 고인 대신 나를 넣어놓고 끝없이 나를 울다 오는 거라든가 심술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심.. 남자를 위하여 / 문정희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때 비로소 자신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 혜화동/이경림 혜화동이라 했습니다 성당이 있는 로터리를 돌아 약간 언덕진 골목을 올라 첫 번째 전봇대에서 꺾으라 했습니다 삼간초가라 했습니다 조금만 걸어가면 혜화 국민학교가 있다 했습니다 열 살이라 했습니다 엄마를 태운 꽃상여가 집을 나간 게 그게 뭔지 몰랐다 했습니다 마루기둥 붙잡고 .. 沙平驛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서울의 예수/정호승 1 예수가 낚시대를 드리우고 한강에 앉아있다 강변에 모닥불을피워 놓고 예수가 젖은 옷을 말리고 있다 들풀들이 날마다인간의 칼에 찔려 쓰러지고 풀의 꽃과 같은 인간의 꽃 한 송이피었다 지는데, 인간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보기 위하여, 예수가겨울비에 젖으며 서대문 구치소 담벼락.. 안도현 -봄날, 사랑의 기도 봄이 오기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제대로 맞지 못하였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물이 차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 시어머니가 며느리년에게 콩심는 법을 가르치다 / 하종호 외지 떠돌다가 돌아온 좀 모자란 아들놈이 꿰차고 온 좀 모자라는 며느리년을 앞세우고 시어미는 콩 담은 봉지 들고 호미 들고 저물녘에 밭으로 가고 입이 한 발 튀어나온 며느리년 보고 밥 먹으려면 일해야 한다고 핀잔주지는 않고 쪼그려 앉아 두렁을 타악타악 쪼고 두 눈 멀뚱멀뚱 딴..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15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