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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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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어느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
김광규 -밤눈 겨울밤 노천역에서 전동차를 기다리며 우리는 서로의 집이 되고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온갖 부끄러움 감출 수 있는 따스한 방이 되고싶었다 눈이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는 서로의 바깥이 되고싶었다
삶의 방식 / 주응규 새벽 물안개가 투명한 수채화를 그려내듯이 조용한 변화 속에서 나날이 새롭게 적응해가는 삶은 경이롭습니다 날이 새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잠들고 밤이 깊어진 후에야 비로소 잠 깨는 엇갈린 질긴 생명력은 신비롭습니다 대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끊임없는 들숨 날숨에 애증(愛憎)이 ..
이생진 -눈오는 날 시를 읽고있으면 ...눈오는 날 시를 읽고있으면 누가 찾아올 것 같아서 좋아...시는 외로운 사람과의 약속같아서 좋아 시를 읽어도 슬프고 외롭고...춥고 배고프고 그런데 시를 읽고있으면 슬픔도 외로움도 다 숨어버려서 좋아 눈오는 날 시를 읽고있으면 눈에 파묻힌 집에서 사는 것 같아서 좋아 시는 세..
피천득 -새해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너 나무들 가지를 펴며 하늘로 향하여 서다 봄비 꽃을 적시고 불을 뿜는 팔월의 태양 거센 한해의 풍우를 이겨 또 하나의 연륜이 늘리라 하늘을 향한 나무들 뿌리는 땅 깊이 박고 새해는 새로워라 아침같이 새로워라
정채봉 -첫마음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그때가 언제이든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신동엽 -새해 새 아침은 새해 새 아침은 산 너머에서도 달력에서도 오지않았다...발밑에 널려진 골짜기 저 높은 억만개의 산봉우리마다 빛나는 눈부신 태양 새해엔 한반도 허리에서 철조망 지뢰들도 씻겨갔으면,..새해 새 아침은 산에서도 바다에서도 오지않는다..
박목월(1916.1.6 생) -귤 밤에 귤을 깐다. 겨울밤에 혼자 까는 귤. 나의 시가 귤나무에 열릴 순 없지만 앓는 어린 것의 입술을 축이려고 겨울밤 자정에 홀로 까는 귤. 우리말에는 가슴이 젖어오는 고독감을 나타내는 형용사가 없지만 밤에 혼자 귤을 까는 한 인간의 고독감을 나타내는 말이 있을 수 없지만, 한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