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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1257)
오인태 ‘꽃무릇’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만 이 무렵 그래선 안된다고 그러면 안된다고 안간힘으로 제 몸 활활 태워 세상, 끝내 살게하는 무릇, 꽃은 이래야 한다는 무릇, 시는 이래야 한다는
김준태 ‘참깨를 털며’ 산그늘 내린 밭 귀퉁이에서 할머니와 참깨를 턴다...할머니는 슬슬 막대기질...젊은 나는 한번을 내리치는데도 힘을 더한다 세상사에는 흔히 맛보기가 어려운 쾌감이 참깨를 털어대는 일엔 희한한 게 있는 것 같다 한번을 내리쳐도 셀 수 없이 솨아솨아 쏟아지는 무수한 흰 알맹이들...
이성진 ‘가을 코스모스’ 가을 해거름 들길에서 꽃들의 속삭임에 가던 길을 멈춥니다 분홍꽃잎 파르르 하얀꽃잎 부는 바람에 까르르 넘실넘실 눈부신 햇살도 마지막 빛이 사라져 저 산 아래로 어둠의 그림자 땅끝까지 내리면 하얀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와 그대는 계절의 한 모퉁이에 서있는 코스모스...
류종민 ‘상사화’ 선운사 낙엽지는 냇가에서 물에 비쳐 어룽이는 그녀 가슴태우며...사모하다 죽어 핀 상사화 솟은 대롱에서 꽃만 피어 지고 잎 따로 나중 피어 잎과 꽃이 만나지못하는 서러움...토해내며 많이도 피었네 하늘의 별이 냇가에 뜨면 따로 피지말고 별과 함께 피어라
서주석 ‘가을이 춤을 춘다’ 어두운 풀섶 파란 옷 훌훌 벗어던지는 가을...귀뚜라미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춤을 춘다 룸바춤을 춘다 찌르르 찌르르 찌르르...수면위에 떠오른 가을의 넥타이 귀뚜라미 빛이다 귀뚜라미가 웃는다 가을이 웃는다 나도 웃는다
박성룡 -처서기 처서 가까운 이 깊은 밤 나는 아직은 깨어있다가 저 우렛소리가 산맥을 넘고, 설레는 벌레소리가 강으로라도, 바다로라도, 다 흐르고 말면 그 맑은 아침에 비로소 잠이 들겠다.
윤이현 -여름은 강물처럼 그러니깐 우리들이 매미채를 들고 숲속을 헤매는 사이에도 여름은 흘러가고 있었나보다...하늘 저 너머에서 하얗게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에 깜빡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에도...쉬지않고 여름은 대추랑 도토리, 알밤들을 탕글탕글 영글게하며 그렇게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나보다
김경식 -팔월의 노래 ..소쩍새 울음소리로 별이 뜨자 마당에 모닥불을 피운다. 고가는 3.1만세 때에 태극기를 인쇄하던 곳 해방의 날엔 마을 사람들 모두 모여 눈물로 애국가를 불렀다. 자유와 함성과 노래...쉬지않고 흘러가는 강물소리에 별들도 잠들지못하는 팔월의 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