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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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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동백꽃 그대 위하여 목놓아 울던 청춘이 이 꽃 되어 천년 푸른 하늘 아래 소리없이 피었나니 그날 항상 종이로 꾸겨진 나의 젊은 죽음은 젊음으로 말미암은 마땅히 받을 벌이었기에 원통함이 설령 하늘만 하기로 그대 위하여선 다시도 다시도 아까울 리 없는 아 아 나의 청춘의 이 피꽃!
이육사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내가 바라는 손님...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
김광규 -능소화 7월의 어느 골목길 어디선가 해피버스데이 노래를 서투르게 흉내내는 바이올린 소리 누군가 내 머리를 살짝 건드린다 담 너머 대추나무를 기어올라가면서 나를 돌아다보는 능소화의 주황색 손길 어른을 쳐다보는 아기의 무구한 눈길 같은
정희성 -雨期는 가볍다 오후의 生은 바람이 눕는 방향을 연습하는 시각같은 것, 허름한, 더러 허망한 빛 빼고 어울리는 色 하나 걸치는 것, 그리하여 저 비탈의 억새만큼이나 가벼워지려는 것. 후두두둑 제비 날 듯 장맛비, 그러므로 雨期는 가볍다
박두진 -7월의 편지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 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김종제 -장마 한 사나흘 바람불고 비만 내려라...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지고 비내린다고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겠느냐...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게는 없구나...평생 줄 사랑을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테니 속까지 다 젖어보자는 거다
이성선-여름비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소리 후두둑 문밖에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강문숙 -이슬꽃 피는 아침 이슬로 맺히는 인연의 말 뜨거운 가슴속에 묻어놓고 여윈 햇살의 마음 기도로 배를 채우며 빛살은 빛살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아프게 가는 세월의 눈빛에 인연의 흔적 곱게 실어올리며 허공에 찍힌 무상한 사랑의 발자국 겨울나무의 수액으로 거르고 걸러 신음소리 한 쪽 들리지않은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