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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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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볕 /주응규 봄 강에 가랑가랑 부서지는 꽃바람이 어느 꽃나무를 하느작하느작 흔드는 봄날 첫 꽃물들인 매무새 고와라 그대 웃음 띤 청아한 모습이 햇살에 초록이 피어나네 봄볕에 흐르는 꽃향기 스미면 남몰래 눅잦히던 가슴은 볼그레 봄물이 올라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리네 옛 추억을 살몃살몃 들춰내는 봄 어느 봄날에 흘리던 그대 가엾은 눈물 눈물 닦으리.
기다린다는 것/이정하 ♣ 기다린다는 것 ♣ - 글 이정하 기약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쓸쓸하고 허탈한 마음을 아는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막연히 기다리는 일 밖에 없을 때 그 누군가가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을 아는가. 한자리에 있지 못하고 서성거리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소리라도 들릴라치면 그 자리에 멈추고 귀를 곤두세우는 그 안절부절 못하는 마음을 아는가. 끝내 그가 오지 않았을 때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왜 가슴은 속절 없이 무너지는 것인지, 온다는 기별이 없었는데도 다음에는 꼭 올 거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아는가. 그를 기다린다는 것은 내 마음에 그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 그를 위해 마음 한 구석을 비워두는 일. 비워둔 자리만큼 고여드는 슬픔을 아는가 모르는가, 그대여 ..
나무들의 약속 /김명수 ♣ 나무들의 약속 ♣ - 글 김명수 숲 속 나무들의 봄날 약속은 다같이 초록 잎을 피워내는 것 숲 속 나무들의 여름 약속은 다같이 우쭐우쭐 키가 크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가을 약속은 다같이 곱게 곱게 단풍 드는 것 숲 속 나무들의 겨울 약속은 다같이 눈보라를 견뎌내는 것
하피첩 서시 /정약용 “병든 아내가 치마를 보내/ 천리 밖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쳤는데/ 오랜 세월에 홍색이 이미 바랜 것을 보니/ 서글피 노쇠했다는 생각이 드네./ 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그나마 아들들을 타이르는 글귀를 쓰니/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며/ 평생 가슴속에 새기기를 기대하노라”
갈림길 /정일근 ♣ 갈림길 ♣ - 글 정일근 길은 처음부터 그 곳에 있었다 너에게로 가는 길이 나에게 있었고 나에게로 가는 길이 너에게 있었다 지금 가장 멀고 험한 길을 걸어 너는 너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고 있다 이제 작별하자 이승에서의 길은 여기까지다 길은 가까워질수록 멀어지는 것이니 멀어질수록 가까워지는 것이니
회고/박인걸 - 글 박인걸 고갯길을 넘을 때면 지절거리는 산새들소리가 궁벽(窮僻)한 초망(草莽)에서 청아하게 귓전을 울렸네라. 숲 사이로 하늘은 맑고 휘젓는 바람은 반가운데 인적 드문 산길에는 외로움이 그림자처럼 붙었네라. 부여된 운명일지라도 사절하지 않고 받아드리면 불에 달군 쇠붙이처럼 몸과 마음이 굳세어 지더라. 적막한 그 고갯길을 목적도 지향도 없이 걸었어도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하니 내가 나 되는 경로(徑路)였네라. 여물지 않은 정강이뼈로 힘겹게 넘어야 했던 영로(嶺路)는 꿈속에서 간혹 넘을 때면 아직도 양손에 땀이 맺힌다.
벚꽃 활짝 피던 날/용혜원 꽃봉오리가 봄 문을 살짝 열고 수줍은 모습을 보이더니 봄비에 젖고 따사로운 햇살을 견디다 못해 춤사위를 추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봄소식을 전하고자 향기를 내뿜더니 깔깔깔 웃어 제치는 소리가 온 하늘에 가득하다 나는 봄마다 사랑을 표현할 수 없거늘 너는 어찌 봄마다 더욱더 화려하게 사랑에 몸을 던져 빠져버릴 수가 있는가 신바람 나게 피어나는 벚꽃들 속에 스며 나오는 사랑의 고백 나도 사랑하면 안 될까 - 용혜원, '벚꽃이 필 때' 중에서 -
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말아요/ 메리 엘리자베스 프라이 내무덤 앞에서 울지말아요 나는이곳에 있지않아요 나는천개의 바람되어 흘러다니고 하얀 눈송이되어 다이아처럼 빛나며 햇빛되어 익어가는 곡식을 비추고있어요 당신이아침의 고요속에서 깨어날때 난가을비되어 내리고있어요 아름답게 창공을나는 새들의 날개짓속에 있으며 밤하늘의 별빛되어 빛나고있어요 그러니 내무덤앞에서 울지말아요 나는그곳에없답니다 나는잠들지 않았어요